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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기구 난민구호 작전 돌입/ 유니세프, 식량30t 공수 시작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습이 사상 최악의 난민 발생 우려를 낳고 있는 가운데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과 세계식량계획(WFP),유엔아동기금(UNICEF)등 국제인도지원 기구들이 비상 작전에 돌입했다. 국제 기구들의 작전 핵심은 ‘외곽 진지 구축’및 ‘신속배치’.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 이 기구들의 통신을 금지시키고 칸다하르 등에 있는 사무실을 점령, 아프간내 활동이사실상 불가능해진데 따른 것이다. 또 겨울철이 다가오고있고 미국의 군사작전이 개시되면 항공로,항만시설,배급로에 대한 접근도 제약을 받게 돼 ‘적소 신속 배치’가 관건이다. UNHCR 피터 케슬러 대변인은 25일 “이번 구호활동은 대규모 작전이 될 것이며 우리도 군대와 마찬가지로 최상의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면서 긴급구호활동에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10여명을 파키스탄에 급파,3개의 위기관리팀을 구성중에 있다고 말했다. UNHCR은 이미 1만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텐트 2,000개,취사용품과 플라스틱 깔개용 시트 2만 세트 등을 퀘타로수송했다. 이란과 파키스탄등 접경국에 난민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외교적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UNHCR은 파키스탄내 발로키스탄 주정부를 상대로 사흘간의 협상끝에 다라를 새난민캠프로 정하고 사막국경지대인 샤망에 은신해있던 아프간 난민에 대한 트럭 수송에 나섰다.이란 정부와도 협상에 들어가 코라산과 카프 등을 추가로 난민캠프로 지정,정지작업에 들어갔다. WFP는 탈레반 정권이 아프간 내 사무실을 점거,1,400t의식량을 약탈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발로키스탄주 등으로 식량을 수송하고 있다. UNICEF는 덴마크 코펜하겐 유니세프 보급창고에 있던 30t의 식량및 응급의료품 공수를 시작했다. 현재 70명의 요원이 아프간에 있으나 통신이 두절된 상태.따라서 아프간 북서부 접경국인 투르크메니스탄을 임시 구호 기지로 정했다.식수탱크와 정수약품,응급의료품 등을 공급한다. 우선 10만명이 3개월간 연명할 수 있는 물량이지만 상황이 악화될경우 75만달러 어치의 추가 지원품을 실어나를 계획이다. 국제적십자사(ICRC)는 아프가니스탄 당국이 외국인 직원들의 출국을 요청함에 따라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현지에 남아있는 아프간인 직원 1,000여명을 활용하고 있다.아프간 현지ICRC 직원 상당수는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특별훈련을 받았다. 김수정기자 crystal@
  • [기고] 테러 고리 가진자가 풀어야

    이슬람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폭력과 테러가 연상된다.지난 50년간 팔레스타인 분쟁이라는 창을 통해 이슬람을 접하고,미국과 유대중심의 언론 정보가 아랍과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양산해 왔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분쟁은 종교와는 상관없는 민족갈등과 영토회복 투쟁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2,000년 가까이 살아왔던조국을 이스라엘에 뺏기고 나라 없이 유랑해야 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영토 되찾기 투쟁이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미국을 향한 무모한 몸짓은 항상 패배만을 안겨주었다.설상가상으로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는아랍의 기존 영토마저 이스라엘에 강점당했다. 유엔 안보리는 결의안을 통해 빼앗은 땅에서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했지만,지금까지도 유엔은 번번이 미국의 반대로 아무런제재를 가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향한 아랍인의 저항은 민족적 응어리이다.만약 힌두교나 기독교,어떤 다른 종교를 믿는 집단이 팔레스타인의 처지가 되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분쟁에서도 이슬람은 본질이 아니다. 흔히 이슬람과 서구가 대립하는 문명의 충돌로 팔레스타인 분쟁을 설명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다만강경 급진세력들이 조직의 결속을 다지고 서구와의 투쟁을정당화하기 위해 이슬람이란 겉옷으로 포장하는 것이다.우린 지금까지 겉옷만 보고 이슬람을 판단해 왔고 이슬람이가진 본질과 가르침은 들여다 볼 겨를조차 없었다. 나아가 이슬람의 호전성은 아랍인들의 유목적인 삶의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목축과 교역이 주가 되는 경제활동에서 부족이나 국가사이에 긴장과 충돌이 계속되면 교역로가 차단되고,생존을 위해 침략과 약탈이 자행된다.이때약탈은 도덕적 양심을 초월하는 생존을 위한 경제취득의방편이 된다. 따라서 이슬람과 테러는 전혀 상관이 없다.이슬람의 어원은 평화이다.어떤 종교보다도 평화를 추구하고 비폭력적절충과 화해를 강조한다.분명한 기준과 제도를 통해 다른종교와 소수민족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베푸는 종교도 이슬람이다. 아랍인들의 일반적인 성향이 반미를 깊이 깔고 있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과격 테러리스트 집단에 동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절대다수는 폭력보다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갈구하고 있다.미국중심의 세계질서를현실로 받아들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편입되어 살아가고 있는 한,대립보다는 화해를 원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의 과도한 보복공격이나 엄청난 민간인의 희생이 따르는 폭격은 또 다른 테러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결국 이런 테러의 악순환의 고리는 가진 자가 먼저 푸는 것이 순리라 생각된다.미국이 세계의 최강자로서빼앗긴 자의 아픔과 약자의 응어리에 귀 기울이는 유연한자세를 갖추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하루빨리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길만이 테러의 근거지를 약화시키는 가장 확실한응징이 될 것이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 한국이슬람학회 회장
  • [21세기 담론-생명을 말한다] (15)생태철학자 구승회 박사

    *””자연은 다스림 아닌 조화의 대상””. ●지구적 위기에 대한 철학의 책임론을 말할 때 언제,어디서부터 잘 못 됐다고 보십니까. 한 사람의 생각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듯 경험론이니 방법론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철학사의 연속선상에서 나왔다고 봐야 합니다.그러므로 어느 시점을 딱 잘라 말하기 어렵고 연원을 추적하면 플라톤,소크라테스 까지 올라 갈수 있겠지요.그러나 원인을 먼 곳에서 잡을수록 정확한 처방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따라서 가장 가까운데서 잡아야하는데 그렇게 보면 아무래도 18세기 계몽주의를 기점으로 잡아야 할것입니다.계몽주의는 베이컨의 ‘대지를 지배하라’는 말이함축 하듯이 자연에 대한 지식의 진보를 뜻 합니다.그 결과인류를 무지와 미신으로 부터 해방시키고 아는 것 만큼의 자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그러나 20세기를 지나면서 기독교철학을 바탕으로 한 현대문명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목자(牧者)적 역할이 강조되고 마침내 생태계 파괴라는 위기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자연을 다스리라’는 창세기의 히브리어 원전은 ‘지배’라는 뜻과 함께 ‘조화’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희랍철학의 영향을 받아 ‘지배 하라’는 제국주의적 해석만 전승됐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현대문명에 대한 책임론을 피해 보려는 기독교 학자들의 그런 해석이 있지요.그러나 베이콘이 ‘대지를 지배하라’고했을 때도 지식의 진보에 의한 자연을 유용하게 활용한다는의미로 쓰인 것이지 파괴 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마찬가지로 서양의 주류철학과 그에 기초한 과학기술이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결과는 그렇게 나타 났습니다. ●‘지배’라는 단어가 베이콘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았듯이 현대 서양철학 속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이교도에 대한기독교,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의식이 있다는 말입니다.이이분법적인 구별이 언제부터 스며 들었을가요. 아마도 그것은 피다고라스가 인도에서 수(數)에 대한 개념을 배워 온 것이 계기가 된 듯 싶군요.그 이후 분석적 시각이 생기고 자연을 패턴과 틀로 보기 시작 했으니까요,●생태철학은 어떤 경로로 싹이 텄습니까. 크게 두 흐름이 있습니다.하나는 1960년대의 신좌파 혁명이 좌절된 후 그 일부가 환경운동에 눈을 돌려 독일의 녹색당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또 한 흐름은 1980년대 중반 동유럽의 현실사회주의가 몰락 하면서 정통 좌파 철학이 자아비판끝에 찾아 나선 대안 입니다. ●마르크스주의에 생태철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요소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물론 그렇습니다.마르크스 역시 인간의 역사는 과학과 기술에 의해 진보한다는 진보 유토피아를 간직하고 있었으니까요. ●만일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하지 않았으면 그 자아비판도없었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정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마르크스주의가 한 발앞선 것은 사실입니다.그 감성이 자연과 생태계에 대한 개안으로 연결됐을 것이라는 유추는 가능 합니다. ●그렇다면 철학사적으로 생태철학의 연원은 어디가 됩니까. 마르크스 철학이 주류 철학과 대립했지만 헤겔철학의 탯줄에서 나온 것처럼,생태철학도 칸트로 대표되는 이성철학이뿌리라고 봐야지요.물론 생태주의도 여러 가닥이 있습니다. 심층생태론에서 부터 윤리의 범위를생태계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환경주의,환경의 위기는 관리의 잘못에서 기인한다는 환경관리주의 등이 그것인데 어쨌든 베이컨과 데칼트로부터 시작된 주류철학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상생과 조화를 강조하는 동양철학이 인간과 생태계 위기를 자초한 현대문명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 나고있지 않은가요. 최근에 와서 여성주의자,생태주의자들에 의해 “‘이성’은 마땅히 폐기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 되고 있습니다.설령 ‘이성’이 고전적 의미의 자유주의 정신에서 출발했다 할지라도 세계화 시대의 다문화주의를 거부하고 수구적이고 독단적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는 겁니다.동양철학은 이같은 서양 주류철학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나는 몇가지 조류중 하나 입니다. ●그 몇가지 조류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첫째 니체적 비합리주의를 들수 있습니다.니체는 서양의 철학적 사유 전통과 기독교 전반에 만연된 주체의 자아확대를비판 하면서 이성을 “영리한 동물들이 발명한 하찮은 별에불과하다”고 경멸 했습니다 그러나이성 경멸은 문화적 퇴폐를 낳을 뿐 대안이 못 됩니다.둘째 몸,감성,환상,욕망에충실 함으로써 자연에 더 가까이 닥아 간다는 이론 입니다. 이성의 반대편을 주목함으로써 이성의 위기를 넘어서려는 것입니다.셋째 포스트모던적 허무주의 입니다.이들은 문명은더 이상 이성적 성취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이성과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은 해체돼야 한다고 말합니다.그러나 포스트모던니즘은 사회변혁을 위한 기반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소외집단이 겪는 좌절감에 대해 나르시스적 모험을 제공해 줄뿐입니다.넷째 명상,요가,주술 등 신비주의에 뛰어드는 방법이있습니다.이들은 서구문명의 이성,합리성 만으로는 문명적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며 동양적 전통이 그 대안이라고 말합니다.그런데 여기에는 지적 책임감이 결여돼 있습니다.이들은 직관과 영성에 대한 신념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성을 활용한 합리적 탐구가 불가능한 반문명적 성격이 강합니다.이는 결과적으로 자연을 찬미한 나머지 반인간주의로되기도 쉽습니다. ●생태계 유기체 이론이나 지구를하나의 생명체로보는 가이아 이론은 어떻습니까. 동양철학도 이와 유사한데 이들의 맹점은 모두가 돈오(頓悟)의 경지에 들어 가야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태철학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이성철학을 보완해서 이성철학이 봉착한 한계를 극복하는것입니다. ●어떤 부분을 어떻게 보완하는 건가요. 우리는 우리가 봉착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우리에게 자유를 확대시켜 준 이성철학의 성취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생태철학은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계발해 준 이성에 의지해 인간 이외의 생태계에 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이를 신휴머니즘이라고할 수 있는데 이는 미신과 공포로 점철된 신화시대로 복귀도 아니고 탐욕과 지배로 얼룩진 현대를수동적으로 받아들이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같은 뉴휴머니즘이 구현된 사회는 어떤 형태가 될까요. 인간과 생태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약탈적 사회는 ‘나’를주체로 세우고 그 이외의 인간과 자연 모든 것을 대상화 하는 데서 생깁니다.따라서 현대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나’를 ‘우리’로 바꾼 ‘생명공동체’라야 합니다. ●그 생명공동체의 일원으로 인간 이외의 생명체도 포함 됩니까. 생태철학은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할 뿐입니다.오늘의 문제는 인간과 생태계의 갈등에서 생긴 것이아니라 인간 사회의 모순에서 생긴 것입니다.따라서 문제의해결도 인간사회를 조화롭게 해결함으로써 생태게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이 생태철학의 관점입니다. ■구승회박사 약력. ▲경북 안동 출생. ▲동국대학교 동 대학원 졸업(철학). ▲독일 다름슈타트대학교 철학박사.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 ▲현재:동국대학교 윤리학과 교수. ▲저서:논쟁 나치즘의 역사화’(1994) ‘에코필로소피’(199 5)‘생태철학과 환경윤리’‘생명공학과 생명윤리’(공저,19 01). ▲역서:‘칸트와 더불어 철학하기’(1993)‘칼마르크스의 역 사이론’(1987)‘환경윤리학의 제문제’(1997). ■철학의 환경파괴 책임론. 지구가 숨쉬기 힘들고 물마시기 어려운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생태계 파괴는 이제 더 이상의 파괴를 막으려는 안간 힘에도불구하고 사람들은 인류가 다시 원시 생활로 돌아가지않는한 불가능 하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철학은 오늘날 지구적 위기에 대해 어떤 해답 줄 수 있는가.이는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그리고 훼손에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과학·기술의 책임이기도 하다.실제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이나 식수 오염이 가져올재앙에 대해 철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지만 철학계 일부는 ‘오늘의 이 위기에 대해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라는 고백과 함께 이 위기를 ‘어떻게 풀것인가’에 대해서도 “우리가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자원하고 나선다.철학자들의 이 고백과 사명감이 ‘생태철학’(Eco-philosphy)의 출발점 이라고 할 수 있다. 생태계 위기에 대한 철학의 책임론은 현대의 위기는 바로근대과학에서 파생되었고 그것은 또 18세기 계몽주의 이래서양의 주류철학이 원조라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따라서 오늘의 자유시장 경제를 떠 받치고 있는 철학의 대전환 없이는 과잉생산-과잉소비를 막을 길이 없고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생태계파괴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물론 생태철학의 태동이 철학 내부의 변증법적 토론의 결과라거나 자아비판만의 결과로만 보기 어렵다.생태철학은 1960년대 반전(월남전) 반핵,히피로 상징되는 뉴에이지 운동이좌절을 겪은 후 그 일부가 녹색 외투로 갈아 입었듯이 동유럽의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정통좌파 철학도들이 도피성 대안으로 눈을 돌리면서 태동된 것이다. 독일에서 마르크스 철학을 공부한 구승회(具升會 동국대·윤리학)교수는 20세기 서양의 이성철학(理性)에 대한 반발로 자연과 생태를 중시하는 흐름이 생겨 났으며 휴머니즘의 지평을 생태계로 넓힌 뉴휴머니즘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 김일성 스위스에 금괴계좌說

    1994년 사망한 북한 김일성(金日成) 주석 명의로 스위스의 한 은행에 80억달러(약 10조4,000억원) 상당의 비밀계좌가 개설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일보는 1일 1970년 9월11일 스위스 최대 은행인 스위스유니온은행에 순도 99.99%의 금괴 940t이 김일성 주석의이름으로 예치됐다고 보도했다. 문화일보측에 비밀계좌 예치증서 사본을 제공한 마르코스전 대통령의 측근은 “이 계좌는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비밀계좌의 안전을 위해 차명으로 개설했다”고 밝혔다. ●왜 김일성 차명계좌인가= 마르코스의 측근은 마르코스가 20여년간의 독재정치중 마련한 금괴 4,000∼5,000t 가량을스위스 은행에 가명,차명 혹은 재단명으로 예치하는 과정에서 “안전판 마련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해외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제 3세계 독재자 이름을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만일 김주석과 합의 하에 만든 것이라면 1970년 계좌 개설 당시 북한과 필리핀간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금괴 찾을 수 있나= 이 측근은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법적 상속자’로서 이를 인출하는 것도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마르코스가 설립한 각종 재단의신탁 관리인들중 일부가 생존해 있어 계좌 비밀번호의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마르코스 망명 후 필리핀 정부가 해외은닉재산 반환을 위해 구성한 ‘선한 정부 구현위원회(PCGG)’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설 땐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엄청난 금괴의 출처·규모= 마르코스가 해외에 은닉한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 대부분은 이른바 ‘야마시타의 금’에서 유래된다.일제가 2차대전을 일으켰을 때 조선·필리핀군사령관을 지낸 야마시타 도시유키(山下奉文)는 아시아 일대에서 약탈한 금을 곳곳에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필리핀지방의원으로 일하면서 보물지도를 입수,‘금부자’가 된마르코스는 그 자금으로 1965년 대통령이 된 뒤 본격적 금찾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미기자 eyes@
  • 노암 촘스키著 ‘숙명의 트라이앵글’

    중동은 아시아·아프리카·유럽 등 세대륙을 연결하는 전략요충지로 흔히 ‘세계의 화약고’로 불린다.지난 50여년사이 이 곳에서는 네차례의 중동전쟁,이란·이라크전쟁,걸프전 등 국제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이 분쟁의 중심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대결이 자리잡고 있다.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사생결단식 대치상태는 1917년 영국의 발포어외무장관이 유대인 금융가 로스차일드경(卿)에게 유대인국가를 건설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이스라엘이 건립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 시대 최고의 언어학자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노암 촘스키의 저서 ‘숙명의 트라이앵글(1·2)’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중동문제를 다룬 고전이다.‘트라이앵글’은 미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 3자를 일컫는 것이다. 또 중층적 의미로 지식인·정치가·언론 등 3자를 말하는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중동문제는 종교적,인종적 갈등 이전에 미국이자리잡고 있는 정치적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미국인이면서도 미국을 비판하는 지성인의 면모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세 꼭지점 가운데 두 꼭지점인 미국과 이스라엘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일부 분석가들은 이같은 관계가 미국사회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고 풀이한다.일면 사실이기도 하다.그러나 촘스키는 미국·이스라엘간의 ‘특별한 관계’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지적한다.중동의 석유를 소련의위협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미국의 정책에 대해 이스라엘이‘현대의 스파르타’로서 미국의 정책을 잘 수행해주고 있다는 것이다.또 이스라엘은 미국이 직접 나설 수 없는 ‘더러운 일’을 도맡아 수행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지난 1982년 이스라엘은 미국의 무기로 레바논을 침공했다.당시 이스라엘의 표면적인 목표는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제거였다.그러나 실제목표는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서 추방하려는 데 있었다.이스라엘군은 군사적 용도와 무관한 도서관마저 파괴하고약탈했다.그러나 미국의 신문은 이에 침묵했으며,레바논인들이 이스라엘군을 환영한다고 보도했다. 촘스키의 이 저서는 지난 1983년 첫 출간된 이래 1999년까지 10쇄를 거듭했다.이번 책은 팔레스타인 출신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서문을 붙여 개정판으로 나온 것이다.이 책은 이미 국제정치와 중동문제에 관한 고전 반열에 올라 있으며,중동정치에 대한 촘스키의 기념비적 저서로 꼽히고 있다.특히 이 책은 중동정치를 현상 그대로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 ‘현상’과 ‘사실’ 뒤에 숨은 허구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어 지성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예를 들어 PLO라 하면 ‘자살폭탄테러단’을 떠올리기 쉽다.그러나 그들이 테러에 나서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무모한점령지 확장정책과 팔레스타인 사람을 포함한 아랍전체에대한 인종차별에 있다는 것이다.또 이스라엘과 아랍의 충돌을 흔히 ‘다윗과 골리앗’으로 비유하면서 이스라엘에 동정표를 던져왔으나 이 역시 허구라고 지적한다.같은 맥락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PLO를 ‘거부주의자’라며 비난해 왔는데 정작 거부주의자는 1차대전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 전체인구의 90%를 차지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국가적 자결권을 부인한 미국과 이스라엘이 ‘원조’라는 것이다. PLO와 다른 아랍세계가 다른 인종과 평화롭게 공존하지 못하는 인종주의의 화신들로 묘사된 데는 미디어의 조작과 공모가 큰 역할을 했다.미디어는 정치가들의 위장된 중립에근거를 마련해주며,이에 일부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이 가세하고 있다.미국의 외교정책-언론-지식인의 유착을 파헤쳐온 저자는 책에서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야만성을 폭로하고있다.유달승 옮김,이후,각 권14,000원. 정운현기자 jwh59@
  • [씨줄날줄] ‘외규장각’ 줄다리기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의궤(儀軌)도서 300권쯤을 탈취해 간 것은 1866년 병인양요 때 일이다.파리 국립도서관에 사서로 근무하던 한국인 여성이 이 도서의 행방을추적, 확인한 뒤 한국 정부가 프랑스에 반환을 정식으로 요청한 때는 1991년 10월이었다.그로부터 10년이 흘렀건만 외규장각 도서는 아직 우리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한국과프랑스 정부 간에 그동안 전개된 반환협상 과정을 보면 프랑스 측에서는 약탈 도서를 돌려줄 의사가 없는 듯이 보인다. 1993년 9월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다른 나라의 문화재 반환 요청은 모두 거절했지만한국 요구에는 응하기로 했다”면서 ‘휘경원원소도감의궤’ 한권을 생색내듯 전달했다.당시는 경부 고속전철 기종으로 프랑스의 테제베(TGV)를 선정한 직후여서 양국간에 우호분위기가 넘쳤고 따라서 도서반환이 프랑스의 ‘보답’이아니겠느냐는 해석도 나왔다.그러나 미테랑 대통령이 귀국한 뒤 프랑스는 문화계 반발을 이유로,이르면 그해 안에 이루어진다던 도서 반환을 흐지부지해 버렸다. 지난해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가진 서울 정상회담에서도 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올해까지 끝내기로 합의됐다.우리가 ‘반환’요구를 철회하는 대신 프랑스에 있는 유일본들을 영구임대 형식으로 돌려받고그 대가로 우리가 여러벌 소장한 의궤 일부를 보내주기로한 것이다.국내에서 반대 여론이 극심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에게 없는 유일본을 돌려받으려는 고육지책이었다. 외규장각 도서반환에 관한 한국과 프랑스의 4차 실무협상이 지난 23∼25일 파리에서 열렸다.양국은 한국 조사단이오는 9월 외규장각 도서들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실사(實査)하기로 합의했다.그동안의 과정을 보면 실질적인 진전이라고 할 만하다.그러면 프랑스가 마음을 바꾼 것일까. 우리 국방부는 차세대전투기(FX) 기종의 최종 선정을 앞두고 있다.40억달러(약 5조2,000억원) 규모의 이 거대 사업에는 네 가지 기종이 낙점을 기다리는데 그 가운데는 프랑스의 ‘라팔’전투기도 끼어 있다.그래서 ‘테제베와 미테랑’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번에도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를미끼로 전투기를 낚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의 시선을보낸다.프랑스로서는 변명의 말이 궁할 것이다.두 명의 대통령이 이미 식언한 뒤니까.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외세지배·전쟁·분단…한국인 ‘恨’의 20세기

    ■20세기 한국의 야만/ 도서출판 일빛. 원로사학자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세기말인 지난해말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20세기를 ‘한(恨)의 세기’로 규정한 바 있다.그리고 ‘한’의 요체로 외세 지배와 분단을 꼽았다. 도서출판 일빛이 펴낸 ‘20세기 한국의 야만’은 부제 ‘평화와 인권의 21세기를 위하여’에서 보듯 지난 20세기가대다수 민중들에게 ‘한의 한 세기’였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돌이켜보면 지난 20세기는 인류의 물질문명이 극에달했던 시대이면서도 극단적인 ‘야만의 시대’이기도 했다.폭력과 전쟁,대량 학살과 고문 등으로 얼룩진 유례없는 ‘폭력의 한 세기’이기도 했다.과학기술은 인류문명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일면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의 무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세기에는 크고 작은 전쟁과 혁명이 지구촌에서 끊이지 않았다.이 과정에서 폭력은 전쟁과 혁명의 동반자였다.한나 아렌트는 “전쟁과 혁명의 공통분는 폭력”이라며 20세기를 ‘폭력의 세기’로 규정한 바 있다. 20세기의 한국도 ‘폭력의 세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전반부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 ‘고난의 역사’를 감수해야 했으며,후반부 반세기는 이념갈등과 냉전의 와중에서 다시 그같은 역사를 되풀이 해야만 했다.실로가혹한 한 세기였다. 이 책은 제국주의·분단·전쟁·독재·자본의 폭력과 야만의 역사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에서 1960년대 초까지를 다루고 있다.크게 나눠 제1부는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제2부는 ‘분단·전쟁·독재의 야만’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에는 총7편의 글이 실려있다.지수걸(공주대 교수)은일제시대 대표적 악법인 치안유지법과 고등경찰제도가 독립운동가들과 식민지 조선인들을 탄압한 실태를,이정은(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3·1의거 당시 일제의 조선인 탄압실태를 살폈다.또 홍진희(역사를 생각하는 모임 회장·미림여고 교사)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실태를,김민영(군산대 교수)은 일제말기 조선인 강제연행,강제노동의 실태및 전후보상 문제를 다뤘다.강정숙(정신대연구소 연구원)은일본군 성노예(정신대)문제를 여성운동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이밖에 정순훈(배재대 교수)은 일제의 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위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최일출(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은 한국인 원폭피해 문제를 다루면서 피폭자들의 인권회복과 과오 재발방지 차원에서 전후보상 문제를 제기하였다. 제2부는 전후 1945년∼60년까지 국가형성과 6·25전쟁기,그리고 전후 반공이데올로기 체제 아래서 자행된 폭력과 학살문제를 다뤘다.강창일(제주4·3연구소장·배재대 교수)은 미 군정기 최대의 양민학살사건인 ‘제주4·3사건’을,허만호(경북대 교수)는 6·25전쟁기 민간인 집단학살문제를각각 국가폭력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또 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는 ‘노근리사건’을 통해 한국전 당시 미국범죄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김동심(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평화교육위원)은 해방후 미군이 이 땅에 진주한 이후 오늘까지의 미군범죄 55년사를 망라,미군이 이 땅에 남긴 고통과 상처와 한의 실체적 진실을 생생하게 증언하고있다. 이밖에정태영(건국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판 매카시즘 광란과 그 대표적인 희생 사례로 ‘조봉암사건’을 다루었으며,오유석(성공회대 연구교수)은 ‘피의 화요일’로 상징되는 이승만 정권의 ‘백색테러’의 야만성에 촛점을 맞췄다.학술전문서가 아닌,대중교양서로 만든 이 책은 각 사건의 전반적 개요,실상,의미 등을 소개하면서 독자의 추가적인 지적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참고문헌도 곁들였다.1만3,800원. 정운현기자 jwh59@
  • 韓·日교과서 갈등/ 中 사회과학원 국제세미나

    ***“아시아·美·러학자 공동연대 투쟁”. 중국 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는 10일 베이징 허핑(和平)호텔에서 가진 ‘근대 일본의 내외정책’주제 국제세미나에서 일본 교과서 왜곡문제를 긴급주제로 채택하고 남북한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 미국·러시아 학자들이 공동대응하자는 결의문을 채택했다.이날 발제내용을 요약한다. [왜곡교과서에 대한 공동대응방안 채택] 남북한 및 중국, 일본 역사학자들은 한결같이 일본 정부가 왜곡된 역사교과서의 추가 수정을 거부한 데 대해 극도의 유감과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이들은 일본 정부의 재수정 거부 통보를 받아들일수 없다며 아시아국가들과 미·러 등 세계 역사학자들의 공동연대를 통해 일본 교과서문제의 시정을 위해 공동연대 투쟁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채택했다. 강창일(姜昌一) 배재대 교수는 “일본 역사 교과서에 대해추가 수정을 하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의 결정은 극우세력을비호하고,침략의 역사를 부정,미화하고 있다”며 “세계의역사학자들은 일본의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잡기 위해 공동투쟁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장리펑(蔣立峰) 중국 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 부소장도 일본 역사교과서가 역사의 진실을 반영해야만 일본의 젊은 세대들에게 정확한 역사관을 길러 줄 수 있다며,일본정부가 역사의 사실들을 존중하고 자손과 후대에 책임지는태도로 교과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나이 신이치(荒井信一) 이바라키대학 명예교수는 “문제의 교과서가 일본 학생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킨다는 명분 아래 ‘일본인은 우수하고,한국인과 중국인은 열등하다’는 사고를 주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근대 일본의 아시아패권주의와 조선 침략 (강창일 배재대교수)] 메이지(明治)유신을 통해 대국화의 길을 치달은 일본은 북해도 개척과 오키나와 침략으로 군국주의의 본색을 드러냈다.이어 정한론(征韓論)을 등장시키고 1876년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을 통해 본격적으로 조선 침략을 자행했다.1890년대 일본은 부국강병과 식민지산업 발전을 통해 제국주의국가로 등장했다. 특히 ‘대아시아주의’는 일본의 대륙국가화라는 국가전략아래에서 침략의이론적 은폐수단으로 작용하며 스스로 침략성을 정당화·합리화하는 계기가 됐다.따라서 ‘대아시아주의’는 일본의 대륙침략론이라고 정의해야 한다. [일본의 민족동화정책(허종호(許宗浩)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원사)]일본의 한민족 동화정책은 일본이 한반도 침탈기에 실시한 정책중 가장 악랄한 행위이다.일본 제국주의는 한반도를 침탈한 이후 항구적으로 한민족을 노예화하기위해 민족동화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민족 동화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우선 문화자산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비열한 수법을 동원했다.일본 제국주의는 일제 침탈기 동안 한민족의 전통고전 11만권과 ‘이조실록’ 1800여권,‘승정원 일기’ 등 국보급 유물들을약탈해 갔고,파괴한 사례로는 강동읍 단군릉의 파괴가 대표적인 것으로 꼽힌다. 일본 제국주의는 황민화정책도 함께 수행했다.조선총독부와 일본 총독부에 빌붙은 일부 친일파들을 동원,‘내선일체(內鮮一體)’‘조선과 일본의 동조동근(同祖同根)’ 등을 주장하며 황국신민화를 조장한 것이다.한민족을 완전히 말살해버리겠다는 정책인 셈이다.특히 조선 총독부를 내세워 강압적으로 일본식 복장과 일본말 사용을 한글 사용을 말살시켰다. 제국주의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우민화정책도 병행했다. [군국주의 교육과 일본의 국민의식(짱이소우(張義素) 중국 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 연구원)]일본 군국주의 교육은 결코 우연하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일본의 역사·문화전통 교육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일본의 군국주의 교육은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충군애국(忠君愛國)’‘만세일손(萬世一孫)’‘천황은 신이다’라는 관념을 국민들의 의식속에끊임없이 불어넣는 것이다. 따라서 군국주의 교육은 일관성을 지니는 것은 물론 국가부문·군사부문 등 사회 각계각층에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다. 특히 군국주의 교육은 학생 및 군인 등에게는 강제성을 띠고 있어 매우 철저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군국주의 교육은 일본 국민들에게 우월감을 조장,일본 국민들에게 침략에 대한 죄책감 없이 맹목적인 전쟁으로 투입하게 함으로써 도리어일본 국민들에게 ‘아시아 해방의 주역이 돼야한다’는 망상에 빠지도록 한다.군국주의교육은 무사도 정신도 병행돼 차라리 죽을지언정 항복을 하지 않는 극단적인 모험주의로 치닫게 한다. [왜곡 역사 교과서와 야스쿠니(靖國)신사참배 문제 (쩡츠농(曾之農)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연구원)] 일본 정부가 ‘새역사 교과서 모임’이 만든 왜곡된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통과시키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야스쿠니 신사를 총리자격으로 참배하겠다고 나서자 일본내지지율이 90%까지 상승했다.이같은 우익화의 흐름은 98년 일본 정부가 국기 및 국가를 법제화가 기폭제가 됐다.일본의국기 및 국가의 법제화는 일본 천황제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국기 및 국가의 법제화는 지금까지 일본 국가권력을 강화하고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돼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80년대말 이후 동서냉전 시대를 맞아 일본 정부는 오히려 역행하는 국기와 국가를 법제화함으로써 일본내군국주의 흐름을 촉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군산 앞바다 보물선 나올까

    ‘군산 앞바다 보물선’ 인양작업이 화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리나라에서 강탈한 금과 은을 싣고일본으로 가던 일본의 ‘쾌창한 호’ 인양작업이 급진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2년여째 침몰선 인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조수찬씨(44·군산시·양식업)는 쾌창한 호를 인양하기 위한 화물칸 상층부 갯벌제거작업이 거의 마무리돼 이달 하순부터는 선체내부 물건이 하나씩 인양되는 모습을 볼수 있을 것이라고 9일 밝혔다. 조씨는 이 배가 일본 패망 직전 장항제련소에서 금괴 2㎏짜리 4,500개와 은 30t 등 싯가 1,300억원대의 약탈물을 싣고일본으로 가다 미군 어뢰에 맞아 격침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 발행된 조선 100년사에 나온 쾌창한 호의 설계도와 인양작업중인 선체가 일치해 이 배가 보물선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인양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말도 북방 5마일 해역으로수심 20m의 비교적 얕은 바다이나 선체가 갯벌에 덮여있는것으로 알려졌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밀로셰비치 戰犯재판 받는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이 마침내 유엔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법정에 서게 됐다. 유고 연방정부는 23일 ‘옛유고 전범법정과의 협력에 관한법령’을 채택,24일 관보 게재를 통해 효력을 갖도록 했다.ICTY와 협력해 지난 91년이후 옛 유고에서 국제 인도주의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단죄토록 하는 절차를 담은 이 법령에 따라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을 포함,용의자 15명이 조만간 ICTY에 인도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의 변호인측은 이날 “유고 헌법에 위배되는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난하고 수일내 정부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원조와 신병인도 맞교환=오는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고에 대한 서방국의 원조를 논의하는 회의가 열린다.미국은 참가 전제조건으로 밀로셰비치의 인도를 요구했고 여기에 다른 서방국들도 동조해왔다. 옛 유고연방의 붕괴와 잇단 각종 내전 등으로 피폐해진 유고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압력.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 대통령은 밀로셰비치의 인도를 반대해왔으나 결국 무릎을 꿇은셈이다.채택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은 “긍정적 조치이며 앞으로 사태진전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밝혔고 잭 스트로영국 외무장관은 환영성명까지 발표했다. 13년간 집권해 온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은 지난 4월1일 재임기간 중 독직과 권력남용 등의 혐의로 체포돼 현재 베오그라드 감옥에 수감중이다. 밀로셰비치가 인도되는 시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미롤류브 라부스 부총리는 ‘수일내’,조란 진지치 세르비아 총리는 ‘15∼20일 내’라고 각각 밝혔다. ◇왜 ICTY인가=ICTY는 1992년 12월 유엔총회 결의와 1993년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해 설치됐다.1991년 이후 옛 유고연방의 민족분규 와중에서 발생한 대량학살과 반인륜범죄에 책임있는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법정. 네델란드 헤이그에 있고 NATO나 인권단체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토대로 검사가 기소한다.1심에서 11명의 판사,항소심에서 5명의 판사가 심리하고 과반수 합의에 따라 선고를 내린다. ICTY는 밀로셰비치와 최측근을 포함,100명을 기소했다. 이중 38명은 현재 헤이그에 구금돼 있고 4명은 유엔회원국에 수감중이다. 전경하기자 lark3@. ***밀로셰비치 처리 어떻게. ◇헤이그 ICTY 인도 이후 절차는. 밀로셰비치는 네덜란드에 도착한 뒤 재판이 열릴 때까지 헤이그 인근 수용소에 구금된다.일주일내에 재판정에 첫 출두한다.고국에서 자신의 변호사를 데려오거나 법정이 지명한변호사를 둘 수 있다. ◇밀로셰비치의 혐의는. 밀로셰비치는 이미 부패,권력남용,수십억달러의 국고유출등의 혐의로 구금돼 있다.ICTY는 1999년 내전 당시 밀로셰비치가 코소보에서 저지른 알바니아주민 인종청소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기소장에 따르면 99년 1∼5월 알바니아주민수십만명이 고향에서 쫓겨났고 집들이 약탈·파괴됐다.라차크,베릴카 크루사,말리 크루사,드자코비차,이즈비차 마을들에서는 주민들이 집단학살됐다. ◇유죄 판결 뒤 어디에서 복역하나. 밀로셰비치는 헤이그 법정과 죄인수감 협정을 맺은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7개국중 한 나라에서 형을 살게 된다.
  • 인터넷서점 8곳 고발

    한국서점조합연합회(회장 李昌淵)는 10일 일부 인터넷서점이 전 품목 50% 할인판매에 나선 것과 관련,인터넷서점 8곳을 덤핑판매 혐의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오프라인서점들이 회원인 연합회는 또 과도한 할인이 가능한 것은 정가가 부풀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소비자 운동 차원에서 책 정가 내리기 캠페인을 펼치기로 했다. 이 회장은 “인터넷서점들의 할인행위가 도를 넘어섬에 따라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기로 했다”면서 “이같은 행위는 법적 용어로는 부당한 방법으로 경쟁상대를 제압하는‘약탈경쟁행위’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김주혁기자
  • 교황 이슬람사원서 ‘화합 기도’

    ‘갈등과 반목의 역사에서 화해의 역사로’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이슬람 등 종교간 대립의 역사가 큰전기를 맞고 있다.지난 4일부터 시작된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그리스·시리아 성지 순례를 통해 종교간 상생(相生)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는 것. 교황은 4일 그리스,5·6일 시리아 방문에서 1,000여년 계속된 대립의 역사에 새 장을 여는 행보로 종교간 화해를 호소했다.5일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등의 환영 속에 시리아 땅을 밟은 교황은 6일 다마스쿠스의 압바신 스타디움 야외 미사에서 기독교도와 이슬람·유대교도간의 이해와 존중,평화를 호소한데 이어 우마야드 사원에서 이슬람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도회를 열었다.이슬람 사원 안에 교황이 들어가고 두 종교 지도자가 함께 한 가운데 기도회가 열린 것은 이슬람 종교가 생긴지 1,400년 만에 처음.우마야드사원은 세례자 요한의 유해가 안치돼 있던 교회 자리에 이슬람인들이 8세기에 건립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사원으로 양 종교의 공동성지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5일 공항 환영행사에서 교황은 “시리아가 중동인들의 조화와 협조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영토 점령 종식과 유엔 결의 존중을 거듭 강조,이스라엘을 간접 비난했다.앞서 첫 방문지 그리스에서 교황은 로마가톨릭이 그리스 정교회에 저지른 과오에 대해 용서를 빌고기독교인의 화합을 촉구했다.교황의 그리스 방문은 1054년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가 분리된 이후 처음이다. 교황은 특히 1204년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파괴 행위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교황은 또 서기 51년사도 바울이 역사적인 설교를 했던 아레오파고스 언덕을 방문,기도를 올렸으며 크리스토둘루스 대주교와 함께 공동성명을 발표,“유럽 기독교의 뿌리와 정신이 손상되지 않도록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종교간 반목의 역사가 깊은 만큼 교황의 이번 방문 계획이알려진 이후 그리스 정교회와 이슬람 종교 세력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코스티스 스테파노풀로스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진 그리스 방문에 대해 그리스 정교회측은 마지못해 추인하는 형식을 취했고 지도부들은 공항 영접에 참석하지 않았다.교황 역시 반감을 감안,22년 동안 계속했던 땅에 입맞추는 의식을 생략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의 그리스 방문이 끝난 뒤 아테네의 일간 카티메리니 등 언론들은 “해빙이 시작됐다.양 종교가 긴밀한협조를 할 수 있게 됐다”며 교황의 방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교황은 1986년 유대교 교회 방문,99년 루마니아의 동방정교회 기도회 참석,지난해 초 중동지역 순례에 나서는 등 81세 고령에도 불구,과감한 종교간 화해 노력을 펴왔다.8일까지 시리아 방문을 마친 뒤 몰타를 방문,이번 순방을 마무리하고 6월에는 우크라이나를 방문한다. 김수정기자 crystal@. *가톨릭·그리스정교회 역사.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는 4세기 말 동·서 로마가정치적으로 분리되면서 각각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1054년 대분열그리스 정교회(동방 정교회)가 로마 가톨릭과 정식으로 분리된 사건이다.초대 기독교 교회는 예루살렘알렉산드리아 안디옥 로마 콘스탄티노플 등 5개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는데로마제국이 동,서로 갈라지면서부터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동방교회와 로마교회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6∼8세기 콘스탄티노플의 동로마제국유스티나아누스 대제(527∼565)는 황제가 교회의 수장을 겸하는 황제교황주의를따랐으며 ‘교황이 교회의 수장이어야 한다’는 로마 교회와 종교 의식·교리에서도 대립했다.콘스탄티노플교회의 포티오스 대주교는 863년 로마 교황을 이단으로 고소,불신이심해졌으며 마침내 1054년 대주교 미카엘 케룰라리우스는이 지역 라틴교회들을 폐쇄했다. 교황 레오 9세는 7월16일 사절을 보냈으나 콘스탄티노플교회측으로부터 냉대를 당했으며 분노한 교황은 콘스탄티노플성소피아 성당 제단 위에 로마 교황의 파문장을 던짐으로써 두 교회는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됐다. ■1204년 콘스탄티노플 점령1198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소집한 제4차 십자군 전쟁에서 비롯됐다. 십자군은 이해 4월13일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도시를 약탈한뒤 콘스탄티노플 라틴 제국을 세웠다.두 교회의 동맹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고그리스 정교회측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사건으로 기록된다. 김수정기자
  • 5월의 독립운동가 ‘안규홍 선생’

    국가보훈처는 30일 전라도 일대에서 항일의병투쟁을 벌인머슴 출신 의병장 담산(澹山) 안규홍(安圭洪) 선생을 광복회·독립기념관 등과 공동으로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발표했다. 선생은 1879년 전남 보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0살때부터 20년간 머슴생활을 하다 러·일전쟁 이후 토지약탈등 일제의 침략을 절감,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키고 농민을 살리겠다는 결의를 다졌다.이후 전남 순천의 강용언 의병부대에 투신,활동하던 중 의병장이 민폐를 끼치자 그를제거한 뒤 1908년 전남 보성군 동소산에서 토착농민과 해산군인 등을 모아 대규모 의병을 일으켰다. 일제와 친일세력,탐관오리를 제거하겠다는 기치를 내건 선생의 의병부대는 보성과 순천 등 전남 중동부지역에서 활동하며 세금 징수원을 공격하거나 탐욕스러운 토호의 소작료를 빼앗아 농민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1909년 10월까지 1년6개월동안 일본수비대·토벌대·순사대와 26차례 전투를 벌여 파청대첩과 진산대첩 등 숱한 전과를 올렸다. 1909년 일제가 전남지역 의병을 상대로 대토벌 작전을 전개하자 선생은 훗날을 기약하며 의병부대를 해산,고향으로돌아가다 일제 경찰에 붙잡혀 광주감옥에 수감됐다.이후 대구감옥으로 옮겨져 1911년 5월5일 교수형으로 순국했다.정부는 63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 比, 15년만에 최악의 유혈사태

    필리핀 마닐라 말라카냥궁 부근에서 1일 새벽부터 발생한 유혈충돌이 15년전인 1986년 2월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축출한 이른바 ‘피플파워’ 이후 최악의 마닐라유혈시위로 기록될 만큼 격렬해지고 있다. ◇필피핀 보안당국은 이날 대통령궁 앞에서 7시간동안 극력시위를 벌이던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대통령궁 진입을 시도하자 중무장한 군병력의 지원 아래 시위대 해산작전에 들어갔다. 1,000여명의 군병력과 장갑차의 지원을 받은 진압경찰은경고사격과 함께 물대포와 최루탄 등을 동원,해산작전을펼친 끝에 시위대를 말라카냥궁에서 멀리 떨어진 옛 상업지구로 몰아냈다. ◇사제 총기와 경찰이 버린 곤봉과 방패,칼과 파이프 등으로 무장한 8,000여명의 시위대는 진압경찰에 밀려 후퇴하면서 거리에 세워진 경찰차와 경찰 오토바이,방송사 소속소형트럭 등에 불을 질러 말라카냥궁 주변이 짙은 연기로가득찼다. 보안 당국은 시위대 가운데 상당수가 술에 취하거나 약물을 복용한 상태였다면서 이들은 말라카냥궁으로 진출하면서 주변의 상점 등을 파괴하거나 약탈했다고 비난했다. ◇유혈충돌이 발생한 뒤 경찰 헬기로 마닐라 외곽으로 이송된 에스트라다는 아들 호세 에헤르시토를 통해 시위대에 자제를 촉구하면서도 이번 시위를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투쟁으로 규정했다.아직까지 헌법상 대통령이라는 주장을굽히지 않고 있는 에스트라다는 “우리의 투쟁은 에랍(에스트라다의 애칭)을 위해서가 아니라 헌법수호를 위한 것”이라며 이 점을 아로요 정부는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당국이 에스트라다의대통령직 복귀 음모를 적발했다면서 이들은 합법적인 정부를 전복,혁명평의회를 구성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로요 대통령의 지지자인 필리핀 가톨릭 지도자 하이메 신 추기경은 에스트라다측이 시위대를 조종해 유혈 폭력사태를 야기했다고 비난했다.신 추기경은 이날 정부 지지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미사에서 시위에 참가한 빈민층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면서 그러나 이들의 약점을 이용해 유혈시위를 일으킨 자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폭동사태는 후안 폰세 엔릴레 상원의원(전 국방장관)을 비롯,에스트라다와 친한 정치인들의 개입으로 한층악화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또 필리핀 당국은 아로요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군부 지지를 바탕으로 유혈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겠지만 14일 치러지는 정·부통령 및 자치 단체장 선거 등을 앞두고 폭동 배후의 정치인들을체포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정치적 혼란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현지 관측통들은 내다봤다. ◇미국과 캐나다는 이번 유혈 충돌사태와 관련,아로요 대통령 정부에 대한 지지입장을 재확인했다.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관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에스트라다 처리문제로 인해 정정불안이 야기되고 있지만 아로요 정부의 합법성은 이미 여러 민주적절차를 통해 확인됐으며 “아로요 정부의 합법성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캐나다 대사관의 대변인도 “아로요 정부의 합법성을인정한 필리핀 대법원측의 의견을 존중한다”면서 아로요정부의 합법성을 강조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2001 길섶에서/ 일본,일본인

    일본을 부자나라라고 한다.일본 사람들은 생활도 조금은여유가 있을 것이고 어딘가 ‘부티’가 날 법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선진국이라고 하지는 않는다.그렇다고강대국이라고도 하지는 않는다. 일본은 한국의 강력한 경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세대를 가르칠 역사 교과서에서 한반도 침략과 약탈을 정당화하는 파렴치를 저지르고 있다.한술 더 떠 일부는 불과 수십년전의 반인륜적인 만행을 정당화하는 잠꼬대도 서슴지않고 있다.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들은 있어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더구나 세상을 제대로 보고다음 세대까지 내다보는 사람들은 더더욱 드문 것 같다. “나라에 의(義)가 지켜지지 않으면 비록 대국이라도 필히 망할 것이요 사람에게 착한 뜻이 없다면 용맹하여도 상하고 말 것이다(國無義 雖大必亡 人無善志 雖勇必傷)” 옛중국 전한시대 회남왕 유안(劉安)이 후세를 경계한 가르침이다.학교를 오래 다닌 일본인들에게 공부가 되었으면좋겠다. 정인학 논설위원
  • [사설] 지금 ‘화장실 역사’라고 했는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로 한국민들의 감정이 격앙되고있지만 이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짐승의 신음’같은 저열한 망언이 나와 우리 귀를 의심케 하고 있다. 일본 학습원대학의 사카모토 다카오(坂本多加雄)교수는 ‘위안부 역사는 화장실 역사와 마찬가지다’라는 식의 주장을 했다고 한다.이 자는 일제 침략전쟁을 합리화하고 황국사관을 조장하는 소위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가운데 중세부터 현대까지를 대표집필한 장본인이다.이 자는 일본 우익잡지 등에 기고를 통해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루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위안부제도는 특수상황에서의 성(性)처리에 관한 사항으로,일본 화장실 구조의 변화와 같은 것을 역사교과서에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위안부 강제동원의 피눈물 나는 역사적 사실을 ‘화장실역사’로 빗댄 사카모토의 망언은 우리를 허탈하게 만든다.일본제국주의 침략전쟁 기간 동안 ‘성적인 짐승’과 다를 바 없었던 일본군이 군대위안부가 있던 곳을 ‘공중변소’라고불렀다는데,그 사카모토의 역사 인식 수준이야말로 ‘짐승’수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우리는 이같이 악랄하고 저급한 망발을 하는 자가 일본의 2세를 가르치는역사교과서를 대표집필했다는 데 소름이 끼친다.물론 일본의 양식있는 지식인들과 절대 다수의 일본 국민들은 사카모토의 그같은 역사 인식에 거부감을 느낄 줄 믿는다. ‘일본 네트워크’등 일본 시민단체들은 오는 5월1일 사카모토의 ‘화장실 역사’망언에 항의하는 긴급집회를 갖고 망언의 철회를 요구하기로 했다고 한다.양식있는 일본지식인들의 호응 여부가 주목된다.한·일 양국간에 과거사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일본은 한국에 있어 어떤 존재인가”라는 새삼스러운 질문을 해본다.‘가깝고도 먼 나라’일본과의 무역은 한국의 지난해 총 교역량중 21%를 차지하고 있으며 쌍방 교역량이 522억달러에 달해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무역상대국이다.1998년 10월에는 ‘21세기의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협력원칙을 천명하기도 했다.진실로 일본내 극우 국수주의자의 돌출적인 행태는 한·일 양국의 미래를 열어 가는 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한강여중 1학년 권연지 학생은 외교통상부의 홈페이지 ‘열린 외교’게시판에 “그릇된 역사를 배운 일본학생들은커서 다른 나라를 약탈하더라도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이렇게 되면 일본과 한국,중국 등 국가간에는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고 그 대가는 누가 옳고 그르건간에 엄청난 피해를 보게될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일본의기성세대들은 이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 역사왜곡 日교과서 검정통과 파장/ 신용하교수가 본 ‘우익교과서’

    일본 극우파들이 채택운동 전국조직을 만들어놓고 모리정권이 이번에 검정통과시킨 후쇼사(扶桑社·새역사교과서를만드는 모임편)의 2002년도용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한국관련 부문을 재침략 책동에 맞추어 다시 날조 왜곡한 것이 큰문제이다. 우선 고대사부터 보면,일본은 야요이시대부터 7세기 야마토 정권의 고대국가 수립 때까지 한반도 국가들의 선진 문명·기술·지식 전수와 한자와 기술자의 파견까지 간청,한민족 국가들이 이에 응해서 친절하게 가르쳐주어 일본 고대국가와 문화의 기초를 만들었다.이것이 역사적 진실이어서,20년 전 한국 대통령 방일 때에 일본왕은 ‘귀국이 특히 5∼6세기에 우리 일본에 준 원조에 깊은 감사의 생각을 간직하고 있다’는 요지의 환영사를 한 바도 있다. 그런데 1890년대∼1900년대 초기에 걸쳐 일본 황국사관 주창자들은 하야시(林泰輔)를 선두로 일제 군국주의자들의 한국침략 식민지 강점을 준비 지원하기 위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날조해내었다.야마토 정권이 4∼6세기에 한반도 가라 지방을 식민지화하여 ‘임나일본부’라는 총독부를두고 직할식민지로 통치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1910년 일본의 한국점령은 ‘침략’이 아니라 고대의 성취를 ‘복구’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완전한 날조였다. 1982년 일본교과서 왜곡사건 때 다수 교과서는 ‘임나일본부설’을 사실이 아니라고 뺐고,일부는 수록했었다.이에 분개한 한국 국민과 정부의 규탄으로 결국 모든 일본 교과서는 ‘임나일본부설’은 뺐고,전문가들이 황국사관의 지나간한 주장으로 검토하기로 낙착되었다. 이번 문제의 일본교과서는 이를 다시 부활시켜 교과서에넣고,나아가서 고구려·백제·신라가 야마토 정권에 조공을했다고 기술하였다. 수정을 요구받고는 백제·신라가 야마토 정권에 조공을 했고,고구려는 유사하게 접근했다고 고쳐썼다.완전히 역사 날조인 것이다.야마토 정권의 간청에 응해서 스승·학자·기술자·선진 문명을 보내어 가르쳐준 ‘은혜’를 ‘조공’을 했다고 배은망덕하여 날조하고,직할식민지까지 두어 통치했다고 21세기의 일본 중학생들(미래 전국민)에게 교육하겠다니,또 재침략 정신과 의지를 배양하려획책하는 것이다. 다음 근대사 부분에서 일본은 ‘정한론’ 실행의 단계로‘불평등 조약’(치외법권 등)에 의한 ‘개항’을 강요하기 위해 ‘운양호 사건’을 조작했다.강화도 조약은 일본 군함 5척의 함포사격 소리를 들어가며 일본이 작성해 온 ‘불평등 조약’문에 서명해준 것에 불과했다.개항후 일본은 단계적 침투와 침략을 감행하여 1910년 결국 ‘정한’의 목적을 달성해서 한국을 식민지로 병탄 강점하였다.1982년 일본교과서 사건 때, 일본 교과서들은 이 침략사실들은 대체로인정기술하고 한반도 ‘진출’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이에격분한 한국 국민의 규탄으로 ‘진출’을 ‘침략’이나 그에 준하는 용어로 수정했었다. 이번 2002년도용 문제의 일본 역사교과서는 아예 일본이개항후 한국의 군제개혁을 도와주는 등 원조했다고 날조했다.갑오개혁 때에 잘 증명된 바와 같이 일제가 가장 방해했던 것이 조선의 근대적 군제개혁과 자주국방능력의 증강이었다.또한 이번 교과서는 한국 병탄은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권익’을 지키기 위해 국제열강의 동의 아래 합법적으로 수행된 병합이라고 한국식민지화 강점을 정당화했다.한반도는 일본을 향해 뻗은 흉기(팔뚝)와 같은 것이어서 일본이 점령해야 일본이 안전하다는 것이다.도대체 이런 엉터리침략논리가 어디 있는가. 열본 열도가 한국과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방해하는 흉기와 같은 곳이니 폭파하여 없애버리려고 점령해야 한다면 일본 국민과 세계 인류가 납득하겠는가. 일본을 침략 강점하는 것이 한국과 중국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면 납득하겠는가.일제가 1905년 ‘을사조약’을 강요할때부터, 강박에 의한 조약은 국제법상 모두 무효라고 이미1906년부터 국제법학계는 이를 무효 선언했고,1927년 미국국제법학회,1960년의 유엔 국제법위원회가 강박에 의한 무효화의 대표적 사례로 일제의 한국침략 조약을 들었다.일제는 한국을 불법 강점하기 위해 한국을 침략했으며,청·일전쟁,러·일전쟁까지 도발해가면서 한국을 불법 강점한 것이었다. 이번 문제의 교과서는 일제의 36년간 식민지통치가 철도·관개시설 등 한국을‘개발’시켜 주었다고 하여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개발’ ‘근대화’ ‘시혜’의 논리로 정당화하였다.한국인·애국자들 수만명의 체포·투옥·학살,관동대지진 때의 수천명 재일한국인 학살,한국인 기본권 완전박탈, 식량·자원·광물약탈, 산업발흥 저지·탄압,한국어말살,한글 말살,성명 말살(창씨개명),한국민족문화유산 파괴, 민족문화 말살, 강제공출,강제연행,강제징병,종군위안부… 등 한국민족 말살정책과 수탈정책을 어느것 하나도 기술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제 식민지 강점과 정책이 스스로 발전과 근대화할 능력이 없는 조선사람에게 ‘개발’ ‘근대화’ ‘혜택’을 준 것이니 일본이 한국 강점과 식민지 정책은 잘된 정책이라고 일본 중학생들에게 교육하고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전도된 역사의 가치관으로 교육받은 일본 중학생들이자라면서 한국 재침략을 고취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문제의 교과서는 또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일으킨 소위 15년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영·불·미의 지배하에 있는아시아 민족들에 대한 ‘해방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정지시를 받고는 ‘해방전쟁’의 용어는 빼고 해방을 위한 ‘용기’ ‘계기’를 준 전쟁이라고 긍정적으로 기술하였다.‘난징(南京)대학살’은 사실이 아니며 오직 패전했기때문에 도쿄(전범)재판에서 (강요당해)인정했을 뿐이라고,‘난징 학살 사건’의 실재를 부인하였다. 그러나 현재 난징에는 일본군의 대학살 전시관이 있고 무수한 증거물이 전시되어 있다.문제의 교과서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용어인 ‘대동아전쟁’ ‘대동아공영권’의 용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면서 이것이 아시아 공동번영을 목적으로한 훌륭한 정책이었다고 시사하였다.실제로는 ‘대동아공영권’은 일본의 ‘아시아점령책’이었고 침략정책이었기때문에 아시아 각국의 독립운동세력은 영 ·불 ·미 세력에대항하다가 다시 일본 침략군에 맞서 이중의 더 무거운 침략에 대항,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종전후 해방·독립하게된 것이 진실이다.이 때문에 일본은 모든 침략 점령지역에대해 전후 배상하게 된 것이었다. 이번 문제의 교과서는 광복 전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국정교과서 내용을 부활시키고 황국사관을 부활시킨 것이다.이 문제 교과서 검정통과 때문에 82년에 한국·중국·동남아 각국 국민들이 투쟁하여 고친 7종의 교과서까지 ‘침략’용어를 빼고,‘종군위안부’,한국민족말살정책을 빼는 등 개악되어 버렸다.이런 교과서로 의무교육인 일본 중학생(미래일본국민)이 교육받으면,일본인들은 한국과 모든 아시아 민족들을 깔보고 재침략을 죄의식 없이 시도하게 되어 있다. 한국 국민과 정부,북한은 물론 중국·동남아 각국 등과 연대하여 82년도 이상으로 대사 소환은 물론이요 모든 가능한방법을 동원, 단호하게 강력 대응하여 조국과 아시아 및 세계 평화와 진실을 지켜야 할 것이다. 신용하 서울대교수·사회사상사
  • 장관급회담 연기/ 미국비난 방송 재개

    북한이 14일 미국에 대한 비난을 ‘쏟아부은’ 평양방송은대외용이다. 북한은 그동안 외부에 전하는 메시지는 평양방송을 통해 밝혀왔다.물론 중앙방송과 조선중앙TV를 통해서도 대미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이날 오후 1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 평양방송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6개 프로그램에 나눠 자세히 언급했다.대미비난의 포문을 연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라’(오후1시)는 논평에는 미국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 논평에서 북한은 ‘우리의 자존심과 존엄을 건드린다’는 표현을 쓰고 ‘부시 행정부’라고 정식 거명했다.이에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라 분석했다. 이 논평에서 북한은 미국의 입장을 “조미 관계개선을 바라지 않으며 우리에 대한 적대시 정책과 고립압살 책동을강화한다”고 분석하고 “미국이 강경하게 나오는 이상 우리도 그에 강경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미국이추진중인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체에 대해 “우리(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걸고 추진시키고 있다”며 “이는 언어도단이며 우리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발생한 각종 군사적 움직임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비난했다.‘수수방관할 수 없는위험한 군사적 결탁책동’(오후1시10분),‘전쟁에 불을 지르려고’(오후1시20분)에서 “미국이 조선반도에서 우리를반대하는 새 전쟁의 불집을 기어이 터치기(터트리기) 위해서 얼마나 분별없이 덤비고 있는가를 그대로 실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문제삼는 테러와 인권문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미국측을 비난했다.‘테러를 일삼는 침략무리’(오후1시30분)에서 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 등을 언급하며 “미제야말로온갖 테러의 진범인이고 인류 공동의 원수이며 평화의 극악한 파괴자,가장 횡포한 인권유린자”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특히 “테러는 침략과 약탈을 본성으로 하는 미 제국주의의고유한 생리”라며 “우리 공화국(북한)은 미국의 종합적인 테러수법이 적용되는 대상으로 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전경하기자 lark3@
  • 드라마 ‘태조 왕건’ 제대로 보기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이 요즘 잘 나간다.그러나 다큐멘터리 작가 임종태는 ‘거꾸로 읽는 드라마 태조 왕건’(선재)에서 몇가지 이의를 제기한다. 고려 통일의 주체세력인 왕건과 패서인 및 나주상인들은 당시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주도하던 백제계 중국교민(재당신라인) 출신의 해상호족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고려는 교민정권이자 해상왕조이며 후삼국 통일의 원동력을 고구려·백제 유민사의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그러나 이드라마는 고려 창업의 결정적 계기가 된 재당신라인들의 한반도 서남해안 진출을 무시했고,경제적 실리를 중시하는 해상호족인 패서인과 나주상인들의 성격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고 나무란다.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비결은 정치적 통일에 연연해 민생 안정을 도외시하지 않고경제적 실리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또 고려 창업을 대하는 기본 시각을 문제삼는다.후삼국시대는 농지를 이탈한 농민들이 마적 떼가 돼 약탈을 일삼던 16세기 일본의 전국시대 무법천지 상황과 유사했기때문에 조선의 유교적 전통과는 전혀 다른 시대라는 것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쇼군과 지방 호족들간의 철저한 실리관계가 아닌, 조선시대 유교 정신에 입각한 주군에 대한 충성관계로 묘사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드라마 ‘용의 눈물’에 대해서도 최영이 요동정벌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시대적 정황 등을 무시했다고 꾸짖는다. 멸망한 고구려의 유민으로 실크로드를 개척한 고선지의 8세기부터 조선이 창업한 14세기까지 한반도와 중국 일본의 실타래처럼 얽힌 역사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주혁기자
  • 日역사왜곡 대응 ‘수위조절’

    정부는 28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한 국민의 빗발치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단계적 대응’방침을 정했다.어렵게 쌓아가고 있는 한·일 양국간 선린관계를 고려할 때 초강경 수단을 쓰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범(汎)정부적 차원에서다각적 외교노력을 벌여나간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이날 관계부처 대책회의에서도 깊은 우려속에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 내용이 바람직하지 못할 경우의 강력한 대응책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단계적 대응 배경=일본 교과서 검정작업이 끝나지 않았기때문에 두고보자는 게 외교통상부의 시각이다.흔들리는 모리총리 내각의 위상도 고려해 일본내 정치판도 변화를 지켜볼필요도 있다고 보고 있다.외교부 관계자는 “중국 강택민(江澤民)국가 주석이 일본 교과서 왜곡에 대해 직접 유감표명을 했지만 우리는 중국과 다소 다른 외교노선”이라고 말했다. 일단 정부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간접적으로 유감을 표시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본내상황 추이에 따라 점차적으로 대응 강도를 높여 나간다는 전략을 세웠다. ◆향후 대응방안=다각적 외교채널을 통해 일본정부를 압박해 나간다는 방침이다.이정빈(李廷彬)외교장관이 데라다 데루스케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우려의 뜻과 시정을 촉구한데 이어 5일에는 최상룡(崔相龍)주일대사가 일본 문부성을 직접방문,항의할 예정이다. 외교부의 다른 관계자는 “지방에 있던 데라다 대사를 불러들인 것은 우리 정부의 매우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부는 또 일본내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 외교부대변인 성명을 내는 등 외교적 대응도 검토중이다.국내 일부 NGO에서는 특히 일본의 NGO와 연계해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이슈화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일본 교과서 시정사례=지난 86년 한일합방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내용의 일본 고교 교과서가 문부성의 검정에 합격했지만 시정한 적이 있다.우리 정부측의 강력한 시정 요구에따라 토지약탈과 창씨개명,신사참배강요 등의 부분이 삭제됐다.또 82년에는 고교교과서의 ‘조선침략’부분을 왜곡한 부분도 고쳤다. 일각에서는 외교부가 교과서 왜곡문제에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데 대해 “국민정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광숙기자 b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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