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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고한 희생 기억하겠습니다”…해군 초계기 순직장병 영결식

    “숭고한 희생 기억하겠습니다”…해군 초계기 순직장병 영결식

    지난달 29일 해군 포항기지에서 이·착륙 훈련비행 중 추락사고로 순직한 해상초계기(P-3CK) 승무원들 영결식이 1일 오전 8시 해군항공사령부 강당에서 양용모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엄수됐다. 순직장병에 대한 경례, 약력 보고, 해군참모총장 조사(弔詞), 항공사령부 장병 추도사, 종교의식, 헌화·분향 및 묵념, 조총(弔銃), 영현 운구 순으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순직장병 유가족과 해군·해병대 장병, 추모객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양용모 해군참모총장은 조사에서 “대한민국과 해군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뒤로 한 채 우리의 곁을 떠난 소중한 전우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라며 순직 장병 4명의 이름을 불렀다. 양 총장은 “고(故) 박진우 중령, 故 이태훈 소령 故 윤동규 상사, 故 강신원 상사는 해군의 자랑스러운 전사, 국가와 국민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임무에 충실했던 진정한 군인”이라며 추모했다. 또한 “대한민국과 해군은 자랑스러운 그대들을 결코 잊지 않겠다. 그대들의 이름 석자, 가슴에 눈물로 새겨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며 “숭고한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바다를 굳건히 지켜내고, 유가족을 우리의 가족으로 생각하며 끝까지 보살피겠다”라고 약속했다. 동료 전우들을 대표해 추도사를 낭독한 615대대 설우혁 소령(진)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은 박진우 중령, 비행기술과 작전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은 이태훈 소령, 솔선수범하며 비행임무에 매진했던 윤동규 상사, 항상 군인이라는 직업에 큰 자부심을 가졌던 강신원 상사. 이들이 한순간에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고, 빈자리가 하루하루 더욱 크게 느껴진다”라고 애도했다. 故 박진우 중령, 故 윤동규 상사, 故 강신원 상사의 안장식은 이날 오후 4시에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된다. 故 이태훈 소령의 봉안식은 이날 오후 2시 30분 유가족의 뜻에 따라 고인의 고향 경북 경산시와 가까운 영천 호국원에서 거행된다. 국방부와 해군본부는 훈련 중 순직한 고인들의 유공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각 1계급 진급을 추서했다.
  • “교황 선출 과정 굉장히 형제적… 영화 ‘콘클라베’는 엉터리더라”

    “교황 선출 과정 굉장히 형제적… 영화 ‘콘클라베’는 엉터리더라”

    한국인 성직자로는 유일하게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에 참석한 유흥식 추기경(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이 정치적 암투와 야합이 벌어지는 동명의 영화 ‘콘클라베’와 달리 “실제 교황 선출 과정은 굉장히 형제적이고 친교적이고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한국인 추기경으로는 1978년 10월 이후 약 47년 만에 콘클라베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 그는 “아직 영화 ‘콘클라베’를 보지 못했는데 다른 추기경들이 엉터리라고 보지 말라고 하더라”라며 웃었다. 레오 14세 교황이 선출된 뒤 다음날인 지난 9일(현지시각) 바티칸 성직자부 청사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유 추기경은 7~8일 열린 콘클라베에 대한 소감을 이같이 전했다. 8일 레오 14세 교황이 성베드로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서 축복을 내릴 때 다른 추기경들과 신도들을 향해 연신 미소를 짓던 그의 모습도 화제가 됐다. 그는 “휴대전화가 있었으면 그 장면을 찍고 싶을 정도로 잔치, 축제 분위기였다”며 “광장에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었으며 태극기도 보였고 함성이 대단했다. 그 모습을 보니 신나지 않았겠느냐”고 당시를 회상했다. 추기경 선거인단의 80%는 최근 12년 새 프란치스코 교황이 뽑았고, 20명은 지난해 말 추기경이 돼 상당수가 서로 일면식도 없어 이번 콘클라베가 ‘깜깜이 투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유 추기경은 사전에 추기경 전원의 프로필이 담긴 명부가 배포됐고 다른 추기경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했다고 반박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2차례의 총회에서 추기경들은 자유롭게 각자 버튼을 눌러 발언권을 얻었고 발언하면 화면에 이름과 국적, 약력이 나오고 6개 국어 통역도 이뤄졌다. 그는 또 “첫 투표에서 몇 분이 두드러지게 표를 얻었고 두 번째, 세 번째에선 더 좁혀졌다”며 “네 번째 투표에서는 (레오 14세 쪽으로) 표가 확 쏠렸다”고 전했다. 이어 “(교황 선출에 필요한) 89표를 넘긴 것이 확인되자마자 모두가 일어나 박수 치고 야단이 났다”며 “영화 콘클라베에서처럼 외부에서 흔히 상상하는 정치나 야합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 유흥식 추기경 ‘12인의 교황 후보’

    유흥식 추기경 ‘12인의 교황 후보’

    한국인 최초 교황청 장관인 유흥식(74) 추기경이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가 꼽은 차기 교황 유력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코리에레델라세라는 교황청 내부에 탄탄한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어 전 세계 가톨릭계에서도 주목하는 언론이다. 코리에레델라세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임자를 뽑는 콘클라베(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를 앞두고 22일(현지시간) 총 12명의 차기 교황 유력 후보를 선정했다. 유 추기경은 같은 아시아 출신인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필리핀) 추기경에 이어 11번째로 거론됐다. 아시아계는 타글레 추기경과 한국의 유 추기경 2명뿐이다.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이외에도 피에트로 파롤린, 마테오 추피, 피에르바티스타 피차발라(이상 이탈리아), 블레이즈 수피치, 조지프 토빈(이상 미국), 프리돌린 암봉고 베숭구(콩고민주공화국), 페테르 에르되(헝가리), 안데르스 아르보렐리우스(스웨덴), 장마르크 아벨린(프랑스), 후안 호세 오메야(스페인) 추기경을 유력 후보로 꼽았다.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유 추기경에 대해 “남북한 화해를 모색한 포콜라레 운동의 일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951년 11월 17일 충남 논산 출생. 1979년 로마에서 사제품·교의신학 박사. 대전교구장으로 남북 교류에 힘썼으며 4차례 북한 방문. 2021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2022년 추기경. 평화와 화해의 대화를 모색하는 인물”이라고 그의 생애와 약력, 특징 등을 소개했다. 유 추기경은 2021년 6월 한국인 최초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탁돼 프란치스코 교황 곁에서 활동하며 인맥을 쌓은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탁월한 업무 추진력과 소탈하고 열린 리더십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80세 미만인 유 추기경은 콘클라베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고 피선거권도 누린다. 한편 유 추기경은 23일 한국으로 교황의 선종과 관련한 특별 메시지를 보냈다. 유 추기경은 “교황의 선종에서 저는 슬픔과 고통, 외로움보다 고요한 평화를 본다. 그분은 우리가 슬퍼하기보다 평화롭길 바라셨기 때문”이라며 “교황 말씀처럼 (온 국민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을 잃지 말고 선을 행하는 일에 지치지 말아 달라”고 전했다. 또 “그분이 바라는 교회와 성직자의 모습을 깊이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며 “늘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고 눈높이에 맞춰 함께 고민하고 길을 찾으셨던 교황님의 발자취를 본받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 “기자들, ‘생물학적 성별’ 밝혀! 안 그러면 대답 안해준다”-美백악관

    “기자들, ‘생물학적 성별’ 밝혀! 안 그러면 대답 안해준다”-美백악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성별’에 따른 인칭 대명사를 이메일 서명이나 약력에 쓴 기자에는 응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자기소개에 자신이 선호하는 성별 인칭 대명사를 쓰는 기자는 생물학적 현실이나 진실에 분명히 관심이 없으므로 정직한 기사를 쓴다고 신뢰할 수 없다”라며 이런 기자들과는 교류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만 백악관은 이 방침이 공식적으로 언제부터 시행됐는지와 공보실 소속이 아닌 다른 백악관 직원들과 기자들 사이의 서신에도 적용되는지 여부 등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미 이메일 서명에 자신이 원하는 대명사를 썼다는 이유로 회신받지 못하는 등 이 방침에 영향을 받은 기자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자사 기자 3명이 이메일에 생물학적인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대명사를 기재했다는 이유로 백악관으로부터 회신을 거부당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정치 매체 크룩트 미디어(Crooked Media) 소속 맷 버그는 실험 삼아 여러 대명사를 나열해 트럼프 행정부 대변인에게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변이 거부됐다고 전했다. 이메일을 통해서나 사람을 직접 만날 때 자신이 선택한 대명사를 표현하는 것은 최근 몇 년간 트랜스젠더나 논바이너리(생물학적 이분법적 구분을 벗어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규정하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 공동체를 향해 지지를 표명하고 성별을 잘못 붙이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업계에서 일상화됐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런 흐름을 뒤집고 출범 이후 반(反) 트랜스젠더 정책을 잇달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취임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남성과 여성, 두 개의 성별만을 인정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 정부기관은 ‘젠더’(gender·성 정체성)가 아닌 ‘섹스’(Sex·성별)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하고, 여권 등 공식 서류에 남성과 여성 외 제3의 성별 정체성을 기재할 수 있도록 한 선택지를 삭제했다. 지난달 미 텍사스주의 한 공무원은 이메일 대명사를 삭제하라는 조직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됐는데, 텍사스주 그레그 애벗 주지사와 정부효율부(DOGE) 수장 일론 머스크는 이 해고 결정에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 ‘6·25전쟁 4대 영웅’…백마고지 승리 이끈 김종오 장군 기린 육군협회

    ‘6·25전쟁 4대 영웅’…백마고지 승리 이끈 김종오 장군 기린 육군협회

    ‘6·25전쟁 4대 영웅’으로 꼽히는 김종오(1921~1966) 장군 추모식이 서울 용산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렸다고 27일 대한민국육군협회가 밝혔다. 제59기 추모식인 이날 행사에는 권오성 육군협회장과 유가족, 권대일 국립서울현충원장 등 관계자와 6사단, 9사단 장병들이 참석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해 개식사와 국민의례, 고인 약력 보고, 추모글 낭송, 헌화와 분향, 유가족 인사 등이 이어졌다.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김명수 합동참모의장, 권 회장, 고창준 육군참모총장 직무대리, 김관진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장, 김진성 6사단장의 화환도 자리에 함께했다. 김 장군은 1921년 5월 세종시 부강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 개전 초기 육군 제6사단장을 맡아 북한군의 남진을 5일간 지연시키며 서부전선 국군 주력부대의 한강 방어선 구축과 유엔군의 참전 시간을 확보했다. 당시 김일성이 직접 “남조선의 사단 중 제대로 된 사단은 6사단 밖에 없으니 그걸 깨부숴야 한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김 장군은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9사단장을 맡을 당시인 1952년 10월 벌어진 백마고지 전투는 12번이나 주인이 바뀔 정도로 전쟁이 치열했는데 김 장군의 활약 덕분에 국군이 승리할 수 있었다. 그가 ‘6·25전쟁 4대 영웅’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런 공로를 인정바다 김 장군은 국군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이외에도 육군사관학교장,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등을 거치며 육군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그리고 군문을 나선 1년 후인 1966년 3월 30일 지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권 회장은 “그 누구보다 군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대한민국을 늘 가슴에 담고, 군대의 본질을 지켰고, 군복 입은 자를 특히 사랑하신 당신이 자랑스럽다”면서 “6·25전쟁을 온전히 한 몸으로 받아내신 당신의 존재는 바로 역사이자 기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험한 세상에 큰 빛이 되어주신 당신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김 장군의 손자 김영주씨는 “할아버지의 용기와 희생, 나라를 위한 헌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다”면서 “전장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싸우셨던 숭고한 정신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육군협회는 지난해부터 협회 주관으로 김 장군 추모식을 개최해왔다. 육군협회 관계자는 “국민적 무관심 속에 국가와 군에서조차도 영웅을 기리는 추모식이 없는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면서 “향후 김종오 장군의 업적과 위상을 재조명하고 호국영웅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전환을 위해 육군협회가 호국영웅 선양사업을 주도적으로 확대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58년 트로트 대부 영면…오열 속에 열린 송대관 영결식

    58년 트로트 대부 영면…오열 속에 열린 송대관 영결식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후배 가수들이 송대관의 대표곡 ‘해 뜰 날’을 합창하자 영결식장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한가수협회 회장인 이자연은 조사를 통해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오빠, 선배님, 안녕히 가세요”라며 오열했고, ‘절친’으로 꼽히는 태진아는 “아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 대관이 형, 잘 가”라며 울먹였다. 58년 동안 노래로 국민을 위로한 가수 송대관의 영결식이 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가수 강진, 설운도 등 동료 70여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은 고인을 향한 묵념과 약력 소개로 시작했다. 가수 이자연과 태진아가 각각 조사와 추도사를 올렸고, 설운도는 “가수는 결국 무대에서 시작해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하고 싶은 일을 웃으면서 하시다 가셨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위안이 된다”며 애도했다. 이후 강진, 김수찬 등 후배 가수들이 고인의 대표곡 ‘해 뜰 날’을 조가로 합창하며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송대관은 앞서 지난 7일 79세로 별세했다. 1946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한 그는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뒤 ‘해 뜰 날’, ‘유행가’, ‘네박자’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1970년대 경제 발전 시기에 서민의 마음을 다독이는 노래로 희망을 안겨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5년 ‘해 뜰 날’로 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이듬해 국내 방송 3사의 가요대상을 석권하고 가수왕까지 올랐다. 1980년 미국 이민 길에 오른 그는 1988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이듬해 발표한 ‘정 때문에’를 시작으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차표 한 장’, ‘인생은 생방송’,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 히트곡을 잇달아 내면서 명실상부한 국민가수 반열에 올랐다. 1980년대 후반엔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부활을 이끌면서 ‘트로트 4대 천왕’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고인은 경기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영면에 들었다.
  • 故 김호진 도의원 전남도의회葬 엄수

    故 김호진 도의원 전남도의회葬 엄수

    전남도의회가 6일 나주 소재 빛가람종합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김호진 의원의 전남도의회장을 엄수했다. 신정훈 국회의원, 윤병태 나주시장, 명창환 전남도 행정부지사, 황성환 전남교육청 부교육감 등도 함께했다. 영결식은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개식,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 소개, 조사, 추도사, 고인의 육성녹음 방송, 헌화 및 분향, 폐식 순으로 50여분간 이어졌다. 장의위원장인 김태균 전남도의장은 조사를 통해 김 의원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그의 헌신적인 의정활동을 기렸다. 김 의장은 “마음을 다해 의정을 펼친 고인의 삶은 참 아름다웠다”며 “함께 이뤄가고 싶었던 많은 일들이 아직 남아있지만, 허락된 시간이 무심히도 짧았음에 비통함을 느낀다”고 애석함을 보냈다. 이어 “고 김호진 의원님이 보여주셨던 지역발전에 대한 열망과 의지, 도민에 대한 헌신을 가슴속에 새겨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며 “의원님이 밟아오신 의정의 곧은 길이 끝까지 잘 완성될 수 있도록 전남도의회 또한 지혜와 역량을 모아나가겠다”고 고인의 뜻을 기렸다. 고 김호진 의원은 1977년생으로 나주시와 전남도 발전에 헌신한 정치인이다. 제12대 전라남도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제12대 전반기에는 보건복지환경위원회와 예산결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후반기에는 기획행정위원회와 의회운영위원회 위원을 맡아 도민의 복리증진과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청년 정치인으로서 지역 청년의 복리 향상에 힘써왔다. 전남의 신 성장산업 육성에도 최선을 다하는 등 좋은 품성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정치인으로 평가를 받았다. 한편 전남도의회는 ‘전라남도의회장에 관한 규정’에 근거해 장의위원회와 장의 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번 전라남도의회장을 거행했다.
  • 영남대 박정희 동상 ‘전액 기부’로 건립… LA 폭동 때 전 재산 잃었던 ‘73학번’

    영남대 박정희 동상 ‘전액 기부’로 건립… LA 폭동 때 전 재산 잃었던 ‘73학번’

    일부 재학생들과 진보 성향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도 영남대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세워진 가운데 동상 건립 비용은 이 학교 출신 이돈(건축 73학번) 액티브 USA 회장의 전액 기부로 충당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로 개교 77주년을 맞은 영남대는 지난 23일 경북 경산시 영남대 천마아너스파크에서 영남대 설립자 박정희 선생 동상 제막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박 전 대통령의 동상은 가로·세로 2m·높이 0.3m의 화강석 좌대 위에 가로·세로 0.8m·높이 2.5m 크기로 제작됐다. 동상 왼쪽에는 ‘국민교육헌장’ 전문이 새겨진 비석을 세웠고, 오른쪽에는 박 전 대통령 약력을 새겨넣었다. 동상 건립은 영남대 미주연합총동창회장이기도 한 이 회장이 지난해 최외출 총장과 설립자 동상 건립에 대해 논의하고 4억원을 기탁하면서 시작됐다. 이 회장은 1986년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해 현재의 액티브 USA를 일군 재미동포 기업인이다. 그는 1992년 발생한 로스앤젤레스(LA) 폭동으로 전 재산을 잃는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사업가로서 쌓아온 신용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이 회장은 해외에 거주하면서도 모국에 지속적인 기부 활동을 펼쳐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3호 해외 ‘아너 소사이어티’로 선정된 바 있다. 2012년엔 모교인 영남대에 장학금을 기탁해 월산장학회를 만들어 후배들을 지원해왔다. 설립 이후 지금까지 기탁한 장학금은 400만 달러(약 55억원)에 이른다. 지난해엔 대한민국 교육 분야 발전에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이 회장은 축사에서 “모교의 설립자이자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을 모교 교정에 세우는 일에 보탬이 될 수 있어서 기쁘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천마의 기상이 우뚝 선 영남대 캠퍼스에 자랑스러운 설립자 박정희 선생의 동상을 건립하는 일은 북미주에 있는 영남대 미주총연합동창회 동문들의 염원이었다”며 “동문들은 대한민국을 경제 강국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을 만들어준 박정희 대통령의 고마움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이 회장을 비롯해 최 총장과 한재숙 학교법인 영남학원 이사장, 박근혜 대통령 시절 초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김기춘 전 박정희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이광식 명예교수회 회장, 정재학 교수회의장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박 전 대통령이 영남대를 설립했다며 칭송했지만,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박 전 대통령은 영남대 설립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앞서 대학생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박정희는 영남대 설립자가 아니다”, “강탈자 기념은 안 된다” 등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의견이 여러 건 올라왔다. 영남대 민주동문회도 “독재 권력을 이용한 강탈자 동상 건립은 잘못된 일”이라는 입장을 냈다. 영남대는 박 전 대통령이 1947년 건립된 대구대학과 1950년 개교한 청구대학을 1967년에 통합하면서 세워졌다. 영남대의 77주년 역사는 대구대학 건립일을 기준으로 한다.
  • “이견 없던 한강 등단작 ‘붉은 닻’… 오랫동안 자신의 세계 넓혀 가길”

    “이견 없던 한강 등단작 ‘붉은 닻’… 오랫동안 자신의 세계 넓혀 가길”

    “우연한 인연”겸손으로 답했지만“인간존재 사유 계속해야 할 의무”상의 무게 견딜 작가에게 조언도“필명 한강현, 처음엔 남자인 줄…”오빠 한동림도 다음해 본지 당선 ●당시 심사평 내용 중 발췌“‘붉은 닻’은 매우 서정적인 작품이어서 육체적인 병과 마음의 병을 앓아 온 형과 동생과 그들 간의 미묘한 갈등, 사라진 남편 대신 그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안쓰러운 모습이 섬세한 문장 속에 깊이 박혀 잔잔한 긴장과 화해의 밝은 전망을 유발시킨다. 한강현씨에게 정진을 당부하는 축하를 보낸다.” “소설가 서기원(1930~2005) 선생과 이견 없이 쉽게 당선작을 골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 작가가 소설가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것은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부터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병익(86) 문학평론가는 13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전화 인터뷰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굴해 낸 주인공’이라고 말을 건네자 “우연히 운이 닿아 (한 작가와) 인연을 맺은 것뿐”이라면서도 앞으로 상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작가에 대한 격려와 조언을 잊지 않았다. 김 평론가는 “상을 받는다는 건 어떤 의무감이 주어지는 것”이라며 “세계와 인간존재에 대한 사유를 계속해야 하는 의무를 짊어지게 된 한 작가가 오랫동안 자신의 세계를 넓혀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1994년 신춘문예 심사 당시 기억을 묻자 김 평론가는 “당선작을 뽑은 뒤 당선자 약력을 보니 한씨에 남자 이름인 데다 주소지를 보고 혹시 소설가 한승원의 아들이 아닐까 추측했다”며 “나중에 당선자가 여자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한승원 선생 딸이 앞서 잡지 ‘문학과사회’에서 시로 등단한 것으로 알고 있어 그 딸이 시와 소설을 모두 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강은 ‘한강현’이라는 필명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등단 후 한강이 그의 집으로 인사 왔던 일도 기억했다. 김 평론가는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나서 인사차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우리 집에 왔었다”며 “당시 오갔던 이야기는 다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차를 마시고 2층 창밖으로 마당을 한참 내려다보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가족 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남편은 물론 자녀 셋(아들 둘, 딸 하나)까지 온 가족이 작품을 쓴다고 방마다 밤새 불이 켜져 있다고 한승원씨 부인이 신세한탄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웃었다. 한강의 오빠인 한동림 작가 역시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이다. 한강이 먼저 1994년 등단했고 한동림 작가는 그다음 해인 1995년 소설 ‘변태시대’로 등단했다. 한강은 1994년 당선 소감에서 “주저앉고 싶던 순간마다 집요하게 등단을 격려해 주곤 하던 오라버님”이라며 오빠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김 평론가는 내로라하는 문인들은 물론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까지 배출해 낸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대한 당부도 전했다. 그는 “계속 작가 지망생들의 힘이 돼 훌륭한 작가를 배출하고 그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문학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인 김 평론가는 1975년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를 세워 대표로 재직했으며 2000년 퇴임해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으로 있다.
  • 한강 발굴한 김병익 평론가 “우연한 인연” 일축, “오랫동안 자신의 세계 넓혀가길”…오빠 한동림도 본지 신춘문예 출신

    한강 발굴한 김병익 평론가 “우연한 인연” 일축, “오랫동안 자신의 세계 넓혀가길”…오빠 한동림도 본지 신춘문예 출신

    “소설가 서기원(1930~2005) 선생과 이견 없이 쉽게 당선작을 골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인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 작가가 소설가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것은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부터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병익(86) 문학평론가는 13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전화인터뷰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굴해 낸 주인공’이라고 말을 건네자 “우연히 운이 닿아서 (한강 작가와) 인연을 맺은 것뿐”이라면서도 앞으로 상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작가에 대한 격려와 조언을 잊지 않았다. 김 평론가는 “상을 받는다는 건 어떤 의무감이 주어지는 것”이라며 “세계와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를 계속해야 하는 의무를 짊어지게 된 한강 작가가 오랫동안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1994년 신춘문예 심사 당시 기억을 묻자 김 평론가는 “당선작을 뽑은 뒤 당선자 약력을 보니 한씨에 남자 이름인 데다 주소지를 보고 혹시 소설가 한승원의 아들이 아닐까 추측했다”며 “나중에 당선자가 여자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한승원 선생 딸이 앞서 잡지 ‘문학과사회’에서 시로 등단한 것으로 알고 있어 그 딸이 시와 소설을 모두 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당시 한강은 ‘한강현’이라는 필명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당시 심사평에는 “‘붉은 닻’은 그 제목이 암시하듯 매우 서정적인 작품이어서, 육체적인 병과 마음의 병을 앓아온 형과 동생과 그들 간의 미묘한 갈등, 사라진 남편 대신 그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안쓰러운 모습이 섬세한 문장 속에 깊이 박혀 잔잔한 긴장과 화해의 밝은 전망을 유발시킨다”고 했다. 등단 후 한강 작가가 그의 집으로 인사 왔던 일도 기억했다. 김 평론가는 “신춘문예 당선되고 나서 인사차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우리 집에 왔었다”며 “당시 오갔던 이야기는 다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차를 마시고 2층 창밖으로 마당을 한참 내려다보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가족 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남편은 물론 자녀 셋(아들 둘 딸 하나)까지 온 가족이 작품을 쓴다고 방마다 밤새 불이 켜져 있다고 한승원씨 부인이 신세한탄 했다는 이야길 들었다”며 웃었다. 한강 작가의 오빠인 한동림 작가 역시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이다. 한강 작가가 먼저 1994년 등단했고 한동림 작가는 그다음 해인 1995년 소설 ‘변태시대’로 등단했다. 한강 작가는 1994년 당선 소감에서 “주저앉고 싶던 순간마다 집요하게 등단을 격려해 주곤 하던 오라버님”이라며 오빠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한동림 작가는 등단 후 소설집 ‘유령’과 장편 ‘달꽃과 늑대’ 등을 펴냈으며 한규호라는 이름으로 동생 한강인과 함께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받침 없는 동화’를 출간했다. 김 평론가는 내로라하는 문인들은 물론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까지 배출해낸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대한 당부도 전했다. 그는 “계속 작가 지망생들의 힘이 돼서 훌륭한 작가를 배출하고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한국 문학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김 평론가는 1965년 동아일보 문화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1974년 한국기자협회장을 맡으며 중앙정보부에 연행, 이듬해인 1975년 해직됐다. 1975년 김현, 김치수, 김주연 문학평론가와 함께 문학과지성사를 만들어 대표로 재직했으며 2000년 퇴임했다. 현재는 문학과지성사의 상임고문으로 있다.
  • 백남기 농민 8주기 추모제 광주서 열렸다

    백남기 농민 8주기 추모제 광주서 열렸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숨진 백남기 농민의 8주기 추모제가 지난 21일 광주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개최됐다. (사)백남기농민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추모제는 추모 미사·지역 노래운동가의 추모 공연·민중 의례·백남기 농민 약력 소개·추모 시 낭독 등으로 진행됐다. 이날 추모제에 백남기 농민 생전 함께 활동했던 문금주 국회의원·장휘국 이사장·문경식 진보연대 상임 공동의장·김영호 전국 농민총연맹 전 의장 등 지역 시민사회·종교 단체 관계자 13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백남기 농민을 추억하면서 그의 정신을 이어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장휘국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차별·소외가 없는 공평한 세상을 위해 독재와 불의에 맞선 고인을 추모한다”며 “모든 국민이 또 하나의 백남기가 돼 그의 정신을 실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317일간 투병 끝에 2016년 9월 25일 숨졌다. 1947년 8월 전남 보성군 웅치면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해 독재정권에 맞서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서 왔다.
  • 김지섭 의사 편지·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 보존처리 마쳐

    김지섭 의사 편지·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 보존처리 마쳐

    독립기념관은 오랜 시간을 겪으며 오염되고 손상 등이 발생한 ‘김지섭 의사 편지’ 4점과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 1점을 보존처리했다고 22일 밝혔다. ‘김지섭 의사 편지’는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 단원 김지섭 의사(1884~1928)가 일본 도쿄 왕궁 입구 이중교에 수류탄을 던져 투옥된 후 옥중에서 동생과 아내에게 보낸 편지다. 동생 김희섭에게 보낸 편지 4점에는 판결 선고일을 앞둔 상황에서 김 의사의 의연한 태도, 투옥된 동지 안부, 아들에 대한 부정 등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편지는 오랜 시간으로 오염되고, 후대에 부착한 테이프 접착제로 인한 변색, 바스러짐 등 손상이 발생했다. 보존처리는 클리닝 작업을 통해 변색과 오염을 제거하고 과학적 분석으로 결실된 부위의 지질과 색상을 원형에 맞춰 복원했다.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는 1933년 1월 24일 만주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1889~1930)의 사회장 당시 낭독됐던 약력서다. 출생·사망·사상·가족관계 등을 포함한 생애를 기록하고 있다. 낭독자와 작성자 신원의 기록 가능성이 높은 부분이 의도적으로 잘려 나간 흔적이 있지만, 오히려 당대 탄압과 갈등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약력서는 길이가 205cm에 달하는 크기로 뒷면에 보강지와 배접지를 덧대어 연결돼 있었다. 배접지에는 후손이 후대에 장군의 사망 일자와 오일장을 치렀다는 사실, 사회장 거행 당시 낭독됐다는 내용을 기록했다.
  • [포토] “안녕히 가십시오” 고 현철에 마지막 인사

    [포토] “안녕히 가십시오” 고 현철에 마지막 인사

    반세기 넘게 국민들의 슬픔을 노래로 달랜 가수 현철이 18일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고(故) 현철의 영결식이 이날 오전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 진행된 영결식에는 유족과 동료 가수 등 약 70명이 참석했다. 대한민국가수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은 고인을 향한 묵념과 가수 배일호의 약력 소개로 시작됐다. 박상철은 고인의 히트곡 ‘봉선화 연정’ 첫 소절을 인용하면서 조사를 낭독했다. 박상철은 “항상 연예인이 가져야 할 자존심과 깨끗함을 강조하시고, 주변 분위기를 즐겁게 해주시려 노력하셨던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이어 추도사를 낭독한 태진아는 “다정다감했던 모습과 이름을 남기시고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기억될 가수로 큰 별로 남아계실 것”이라며 “안녕히 가십시오. 현철이 형 사랑했어요”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 설운도, 이자연도 ‘눈물바다’…현철, 동료가수 배웅 속 떠났다

    설운도, 이자연도 ‘눈물바다’…현철, 동료가수 배웅 속 떠났다

    반세기 넘게 국민들의 슬픔을 노래로 달랜 가수 현철이 18일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설운도, 태진아 등 동료가수들은 눈물을 훔치며 현철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현철의 영결식이 이날 오전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 진행된 영결식에는 유족과 동료 가수 등 약 70명이 참석했다. 대한민국가수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은 고인을 향한 묵념과 가수 배일호의 약력 소개로 시작됐다. 박상철은 현철의 히트곡 ‘봉선화 연정’ 첫 소절을 인용하면서 조사를 낭독했다. 박상철은 “항상 연예인이 가져야 할 자존심과 깨끗함을 강조하시고, 주변 분위기를 즐겁게 해주시려 노력하셨던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고인을 기억했다.이어 추도사를 낭독한 태진아는 “다정다감했던 모습과 이름을 남기시고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기억될 가수로 큰 별로 남아게실 것”이라며 “안녕히 가십시오. 현철이 형 사랑했어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설운도는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흐느끼며 추도사를 낭독했다. 그는 “형님 웃으며 가시게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난다”며 “국민들의 애환과 아픔을 노래로 위로해준 애국자시다. 형님 사랑 잊지 않고 오롯이 모든 분이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고인을 기렸다.이자연 대한가수협회 회장은 현철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같이 술을 마시던 날 쏟아진 함박눈에 급히 자리를 마무리하며 다음에 만나면 술을 사겠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며 “함박눈이 올 때마다 그날이 생각날 것이다. 오빠가 하늘에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나길 바라며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가를 부른 가수 박구윤은 현철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앉으나 서나 현철 생각’으로 개사해 눈물을 자아냈다. 박구윤이 “가지 말라고 애원했건만, 못 본 채 떠나버린 너”, “소리쳐 불러도 아무 소용이 없어라”라는 대목을 부를 땐 영결식장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현철을 ‘큰아버지’로 부르곤 했다는 박구윤은 “생전 현철 큰아버지 성대모사와 모창을 할 때면 그렇게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며 “앞으로 제가 더 많이 큰아버지 목소리로 많은 분께 즐거움과 기쁨을 드리겠다. 하늘나라에서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즐겁게 계셔야 한다”라며 안식을 기원했다.이후 현철이 생전 ‘아미새’를 부르는 무대 영상을 상영한 뒤 헌화식이 진행됐다. 현철은 유족과 동료 가수들의 배웅을 받으며 식장을 떠났다. 현철은 지난 15일 8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1966년 ‘태현철’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해 ‘사랑은 나비인가봐’, ‘사랑의 이름표’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20여년간 무명 생활을 겪었으나 1989∼1990년 2년 연속 KBS ‘가요대상’을 받으며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과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가요계에 남긴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현철은 경기도 분당추모공원 휴에 안치된다. 장례 기간 가수 태진아, 설운도, 박상철, 현숙, 김흥국, 장윤정, 방송인 이상벽 등 동료 가수와 연예인들이 빈소를 찾아 현철을 추모했다.
  • 서울시의회, 지방의회 최초 ‘네이버와 협약 체결’, 네이버에서 시의원 의정활동 한눈에 확인

    서울시의회, 지방의회 최초 ‘네이버와 협약 체결’, 네이버에서 시의원 의정활동 한눈에 확인

    전국 지방의회(광역의회 17개 시·도, 기초의회 226개 시·군·구) 최초 서울시의회가 네이버(주)와 협약을 맺고, 소속 의원 의정활동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네이버에 의정활동 정보 제공 서비스를 시작한다. 김규남 서울시의원(국민의힘, 송파1)은 지난해 9월 열린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서울시의회 사무처를 대상으로 서울시의원의 입법, 행정감사, 민원·대민활동 등 의정활동 전반에 대한 서울시민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네이버 등 대형 포털사이트에 정보공개를 위한 협약 노력을 제안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2024년도 기준 서울시 예산은 45조원 규모로, 해당 예산을 심의·의결하는 서울시의회의 역할과 1천만 서울시민에 의해 선출된 서울시의원 의정활동의 중요성 대비 정보 접근 편리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전했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홈페이지와 유튜브 등에서 관련 자료 등을 공개하고 있지만, 서울시민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구 의원 개개인에 대한 정보 탐색을 원할 경우 회의록을 일일이 찾아보거나 발의 의안, 상임위·본회의 발언, 보도자료 등을 각각 별도로 찾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편, 네이버 등에서 국회의원을 검색할 경우 약력, 학력 이외 ‘의정활동’란이 별도로 존재해 원한다면 발의 법률안이나 상임위원회 활동을 손쉽게 확인하고, 관련 링크가 연동되어있어 클릭 한 번으로 심화된 정보 접근이 가능하다.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와의 협약을 통해 시민의 서울시의원 의정활동 접근성을 높이라는 김 의원의 제안성 질의에 따라 지난 4월 30일 서울시의회는 네이버와 업무 협약을 체결, 6월 중 네이버 인물정보에 의정활동 정보 표출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의정활동 정보 표출 서비스는 업무 협약 형태로 진행됨에 따라 초기 의회 시스템 구축 비용 외에 큰 예산 소요 없이 의원 의정활동 접근성을 제고함과 동시에 시의회에 관한 관심을 고취하는 홍보 효과까지 기대된다는 평가다. 김 의원은 “이번 네이버 협약은 서울시의회 사무처의 적극 행정의 결과이다. 서울시민의 고귀한 선택으로 선출된 서울시의원의 의정활동을 시민들께서 손쉽게 확인하실 수 있도록 방법을 고민하고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노력이 의회 홍보이자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의정활동에 임하겠다”라며 협약 소감을 밝혔다.
  • 비서실장 정진석·정무수석 홍철호… 하루 두 번 인선 직접 발표한 尹

    비서실장 정진석·정무수석 홍철호… 하루 두 번 인선 직접 발표한 尹

    5선 정무형 비서실장, 기업인 출신 정무수석… 용산 소통 구원투수로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신임 비서실장에 국민의힘 5선 중진인 정진석 의원을, 정무수석에 홍철호(사진)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을 임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전과 오후 각각 브리핑을 열고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인선을 차례로 발표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인사를 발표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2022년 11월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 이후 1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취재진과의 질의응답도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언론인 출신으로 청와대 정무수석과 당 비상대책위원장, 국회부의장 등을 지낸 정 신임 비서실장의 약력을 소개하며 “비서실장으로서 용산 참모진뿐 아니라 내각, 여당, 야당, 또 언론과 시민사회 모든 부분에 원만한 소통을 함으로써 직무를 아주 잘 수행해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이어 홍 신임 정무수석에 대해선 ‘정치인이기 이전에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소개하며 “무엇보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로서 민생 현장의 목소리도 잘 경청할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인선은 4·10 총선 다음날인 지난 11일 이관섭 비서실장을 비롯해 대통령실 주요 참모들이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한 지 11일 만에 이뤄졌다. 당초 인적 쇄신이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윤 대통령은 인선 지연에 따른 국정 운영의 혼선을 잠재우고 새 참모들을 중심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첫 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이날 인선을 발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비서실장과 홍 정무수석은 이날 임명 후 곧바로 영수회담 준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인선은 대통령실의 정무 기능 및 야당과의 협치를 동시에 강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특히 비서실장의 경우 고위 관료 출신인 전임 김대기·이관섭 실장은 안정적이기는 했지만 정무적 판단에선 다소 아쉽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이들과 달리 정 비서실장은 여당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 국회부의장, 국회 사무총장, 정무수석 등을 거치며 정무적 감각과 경륜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충청 출신으로 여당 내 최다선(5선)이기도 한 그는 현 국회에서 부의장을 맡아 여야 조율에서도 역할을 해 왔다. 국회부의장으로 거대 야당을 상대해 온 정 비서실장의 경륜이 윤 대통령 임기 내내 계속될 여소야대의 ‘파고’를 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더불어 그간 비서실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던 인물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친윤’(친윤석열) 색채가 그나마 옅다는 점도 고려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정치권과 언론계에서 두루 발이 넓은 정 비서실장은 이번 총선 참패 배경으로까지 지목된 용산의 ‘불통’ 이미지를 불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인사말에서 “(윤 대통령이) 더 소통하고 통섭하고 또 통합의 정치를 이끄는 데 제가 미력이나마 잘 보좌해 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치킨 프랜차이즈 ‘굽네치킨’ 창업주로 경기 김포에서 재선 의원을 지낸 홍 정무수석을 발탁한 것은 총선 이후 당정 관계와 야당과의 소통 등을 두루 염두에 둔 인선으로 풀이된다. 홍 정무수석은 탄핵 정국이었던 2017년 바른정당에서 유승민 당시 대선후보의 비서실장을, 김병준 비대위원장 시절 비서실장을, 이준석 당대표 때 전략기획부총장을 지내는 등 계파를 넘나들며 요직을 맡았다. 특히 유승민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계파에 상관없이 인재를 구하겠다는 메시지를 여당에 전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윤 대통령은 홍 정무수석에 대해 “당의 많은 분 얘기를 들으니 소통과 친화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추천받았다”고 소개했다. 더불어 홍 정무수석이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집권 3년차를 앞두고 민생과 경제에 힘을 쏟을 대통령실의 국정 기조와 맞물린 인선으로도 풀이된다. 홍 정무수석은 이날 인사말에서 “이번 선거는 민심을 확인하는 선거였다”며 “결과값은 정부 쪽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비서실장 정진석·정무수석 홍철호… 하루 두 번 인선 직접 발표한 尹

    비서실장 정진석·정무수석 홍철호… 하루 두 번 인선 직접 발표한 尹

    야당과 협치·정무기능 강화 방점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신임 비서실장에 국민의힘 5선 중진인 정진석 의원을, 정무수석에 홍철호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을 임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전과 오후 각각 브리핑을 열고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인선을 차례로 발표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인사를 발표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2022년 11월 출근길문답(도어스테핑) 이후 1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취재진과의 질의응답도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언론인 출신으로 청와대 정무수석과 당 비상대책위원장, 국회부의장 등을 지낸 정 신임 비서실장의 약력을 소개하며 “비서실장으로서 용산 참모진뿐 아니라 내각, 여당, 야당, 또 언론과 시민사회 모든 부분에 원만한 소통을 함으로써 직무를 아주 잘 수행해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이어 홍 신임 정무수석에 대해선 ‘정치인이기 이전에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소개하며 “무엇보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로서 민생 현장의 목소리도 잘 경청할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인선은 4·10 총선 다음날인 지난 11일 이관섭 비서실장을 비롯해 대통령실 주요 참모들이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한 지 11일 만에 이뤄졌다. 당초 인적 쇄신이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윤 대통령은 인선 지연에 따른 국정 운영의 혼선을 잠재우고 새 참모들을 중심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첫 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이날 인선을 발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비서실장과 홍 정무수석은 이날 임명 후 곧바로 영수회담 준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이번 인선은 대통령실의 정무 기능과 야당과의 협치를 동시에 강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특히 비서실장의 경우 고위 관료 출신인 전임 김대기·이관섭 실장은 안정적이기는 했지만, 정무적 판단에선 다소 아쉽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이들과 달리 정 비서실장은 여당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 국회부의장, 국회 사무총장, 정무수석 등 국회와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며 정무적 감각과 조율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당 내 최다선(5선)이기도 한 그는 현 국회에서 부의장을 맡아 여야 조율에서도 역할을 해 왔다. 국회부의장으로 거대 야당을 상대해 온 정 비서실장의 경륜이 윤 대통령 임기 내내 계속될 여소야대의 ‘파고’를 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더불어 그간 비서실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던 인물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친윤’(친윤석열) 색채가 그나마 옅다는 점도 고려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정 비서실장은 이번 총선 참패 배경으로까지 지목된 용산의 ‘불통’ 이미지를 불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인사말에서 “더 소통하고 통섭하고 또 통합의 정치를 이끄는 데 제가 미력이나마 잘 보좌해 드리도록 그렇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치킨 프랜차이즈 ‘굽네치킨’ 창업주로 경기 김포에서 재선 의원을 지낸 홍 정무수석을 발탁한 것은 총선 이후 당정 관계와 야당과의 소통 등을 두루 염두에 둔 인선으로 풀이된다. 홍 정무수석은 탄핵 정국이었던 2017년 바른정당에서 유승민 당시 대선후보의 비서실장을, 김병준 비대위원장 시절 비서실장을, 이준석 당대표 때 전략기획부총장을 지내는 등 계파를 넘나들며 요직을 맡았다. 특히 유승민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계파에 상관없이 인재를 구하겠다는 메시지를 여당에 전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윤 대통령은 홍 정무수석에 대해 “당의 많은 분 얘기를 들으니 소통과 친화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추천받았다”고 소개했다. 더불어 홍 정무수석이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집권 3년차를 앞두고 민생과 경제에 힘을 쏟을 대통령실의 국정 기조와 맞물린 인선으로도 풀이된다. 홍 정무수석은 이날 인사말에서 “이번 선거는 민심을 확인하는 선거였다. 결과값은 정무 쪽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반은 배우면서 반은 의회 경험을 갖고 일하겠다”고 말했다.
  • 독립운동가 이종훈 선생 기리는 ‘정암로’를 아시나요

    독립운동가 이종훈 선생 기리는 ‘정암로’를 아시나요

    독립운동가 이종훈 선생 기리는 ‘정암로’를 아시나요. 경기 광주시가 독립운동가 정암 이종훈 선생의 삶을 기리기 위해 부여한 시의 첫 명예도로 ‘정암로’ 홍보에 나섰다. 8일 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 정암 선생의 생가가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곤지암읍 만삼로 전 구간인 만삼로3에서 만삼로 385까지의 약 3.8㎞를 선생의 호를 따서 ‘정암로’라는 명예도로명을 부여했다. 명예도로명은 법정 도로명과 다르게 실제 주소로는 사용하지 않지만 지역사회 헌신도와 공익성 등을 따져 법정 도로명과 병기해 사용할 수 있도록지자체가 정한 별칭이다. 시는 시민들이 정암 선생의 삶을 기억할 수 있도록 ‘정암로’ 명예도로명 안내표지판을 시점과 종점 2개소에 설치하고 앞면에는 명예도로명 ‘정암로’ 뒷면에는 선생의 약력과 어록을 새겨 폭 1.1m, 높이 2.4m로 야간에도 잘 보일 수 있도록 태양광 LED로 제작할 예정이다. 다가오는 제105주년 3·1절 기념행사에서도 3·1 만세운동 거리 행진과 연계해 ‘정암로’ 명예도로명 안내표지판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 방세환 시장은 “정암로 명예도로명은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 바친 이종훈 선생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광주시민들에게는 자긍심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정암로를 지날 때마다 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생각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강서구 ‘2·8 독립선언’ 이끈 김도연 선생 기념행사

    강서구 ‘2·8 독립선언’ 이끈 김도연 선생 기념행사

    “모든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000만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을 이루기를 선언하노라.”(2·8 독립선언서 일부) 서울 강서구가 8일 오전 11시 가양동 2·8 공원에서 상산 김도연 선생 공훈 선양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독립운동가인 김도연 선생은 강서구 염창동(당시 양편군) 출신으로 도쿄 유학 시절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고 1919년 2·8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미국 유학 당시에도 한인사회의 발전과 해외동포 구제를 위해 노력했다.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초대 재무부 장관을 지냈고, 이런 공로로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행사는 ▲기념사 ▲약력 소개 ▲2·8 독립선언서 및 결의서 낭독 ▲독립선언가 및 독립군가 공연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된다. 유족 대표로 참가하는 김도연 선생의 증손자인 김기용씨는 2·8 독립선언가를 독창한다. 행사에는 진교훈 강서구청장을 비롯해 상산 김도연 박사 숭모회장, 유족 등 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진 구청장은 “상산 김도연 선생은 강서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후손들의 귀감이 되는 인물임에도 그동안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며 “이번 기념행사가 김도연 선생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알리고 우리 지역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애국혼 기억하는 강서구… 상산 김도연 선생 기념행사

    애국혼 기억하는 강서구… 상산 김도연 선생 기념행사

    “모든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000만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을 이루기를 선언하노라.”(2·8 독립선언서 일부) 서울 강서구가 8일 오전 11시 가양동 2·8 공원에서 ‘상산’ 김도연 선생 공훈 선양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독립운동가인 김도연 선생은 강서구 염창동(당시 양편군) 출신으로 도쿄 유학 시절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고 1919년 2·8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미국 유학 당시에도 한인사회의 발전과 해외동포 구제를 위해 노력했다.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초대 재무부장관을 지냈고, 이런 공로로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됐다. 행사는 ▲기념사 ▲약력 소개 ▲2·8 독립선언서 및 결의서 낭독 ▲독립선언가 및 독립군가 공연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된다. 유족 대표로 참가하는 김도연 선생의 증손자인 김기용씨는 2.8 독립선언가를 독창한다. 이날 행사에는 진교훈 구청장을 비롯해 상산 김도연 박사 숭모회장, 유족 등 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진교훈 구청장은 “상산 김도연 선생은 강서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후손들의 귀감이 되는 인물임에도 그동안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라며 “이번 기념행사가 김도연 선생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알리고 우리 지역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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