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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253)-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儒林(253)-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공자는 중궁을 다음과 같이 감싸고 있다. “약삭빠른 구변으로 남의 말을 막아서 자주 남에게 미움만 받을 뿐이니, 그가 어진지는 모르겠으나 말재주는 어디에다 쓰겠는가.” 그러고 나서 공자는 좌구명(左丘明)의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고 공손을 지나치게 함을 옛날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러워하노라. 원망을 감추고 그 사람과 사귀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러워하였는데, 나또한 이를 부끄럽게 여기노라.(巧言令色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匿怨而友其人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좌구명은 공자와 같은 무렵에 살던 노나라의 대부였다. 공자의 선배로서 공자는 평소에 그를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말년엔 눈이 멀어 장님이 된 좌구명은 이로 인해 맹좌(盲左)라고도 불리었다. 좌구명이 말하였던 ‘공손을 지나치게 한다.’는 주공(足恭)에는 두 가지의 해석이 있다. 하나는 그냥 추상적으로 지나치게 공손함을 말하는 것으로 이때는 ‘주공’이라 발음하고, 또 하나는 다리의 음직임을 지나치게 겸손하게 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때는 ‘족공’으로 발음하는데, 이 두 가지의 해석 모두 겸손이란 미덕을 넘어선 허위인 것이다. 겸손의 본질은 내면적이며 공손한 마음에 있는 것이지, 외면적으로 겸손을 위장하면 그것은 차라리 교만에 가까운 것이다. 과공비례(過恭非禮). ‘지나치게 공손하면 예에 어긋난다.’는 뜻과 일맥상통하는 말. 공자는 지나치게 겸손함을 아첨으로 보았으며 상대방이 사귀기 싫은 저열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싫어하는 원망의 감정을 감추고 그 사람과 사귀는 것은 위선이며 자기기만임을 분명하게 못박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변명과 번지르르한 말만 앞세우는 말재주꾼을 혐오하는 공자는 특히 재여(宰予)에게 보인 공자의 태도를 보면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재여의 자는 자아(子我)로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말을 잘 하는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공자는 재여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음에도 재여를 게으르고 말이나 화려하게 꾸미는 궤변론자로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논어에도 이러한 재여를 꾸짖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고 있는데, 이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애공이 재여에게 사(社)에 대해서 묻자 재여가 대답하였다. ‘하나라에서는 소나무를 심고, 은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를 심었고,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栗)를 심었습니다.’ ‘어째서 밤나무를 심었을까.’ 애공이 묻자 재여가 대답하였다. ‘백성들로 하여금 두려워 떨게(慄) 하려는 뜻이겠지요.’ 이 말을 듣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다된 일을 얘기하지 말고, 끝난 일을 간하지 말고, 지난 일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애공이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에 무슨 나무를 심는 게 좋겠는가 하고 물었을 때 재여는 주나라에서 밤나무를 심었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백성들이 무서움에 떨도록 위압정치를 펴야 한다는 논리를 교묘한 변술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밤나무‘율(栗)’자와 ‘두려워 떤다’는 뜻의 ‘율(慄)’자의 음이 같은 것을 이용한 교묘한 궤변으로 애공의 독재를 은근히 부추기고 있음인 것이다. 결국 재치 있는 수사는 되지만 독재자에게 아첨하는 교언이었던 것이었다. 논어의 공야장편에는 이러한 말재주꾼 재여에 대한 비난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 儒林(252)-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儒林(252)-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공자가 이처럼 강경하게 제자인 염유를 꾸짖고 있는 것은 염유가 그럴듯한 궤변으로 신하로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 자신의 상관인 계강자의 탓으로 돌리는 변명을 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공자는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을 싫어하고 있었다. 특히 변명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혐오감을 갖고 있었는데, 논어에 보면 자로가 나이어린 자고(子羔)를 정치에 나아가게 하자 공자는 아직 배움에 익숙지 못한 자고를 정치에 나아가게 한다고 자로를 심하게 꾸짖은 적이 있었다. 이때 자로가 ‘백성을 다스리고 국가에 사직을 돌보는 것도 배움이 아닙니까.’하고 변명을 하자 공자는 자로를 책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 때문에 말재주꾼을 싫어한다.” 이와 같이 변명을 싫어한 공자의 극언은 변명이 교묘한 회피에 불가하며 자신의 게으름을 감추는 교묘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음을 경책하는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20세기의 성자 슈바이처도 변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경계하고 있다. “타인이나 사실에 변명을 찾지 말고 모든 사건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문제로 환원하여 사물의 궁극적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슈바이처의 말처럼 변명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 본질의 문제를 남에게 전가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는 거짓인 것이다. 따라서 공자는 전유를 공격하려는 계강자의 잘못을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겠느냐.’하고 일차로 꾸짖고 다시 염유가 ‘그것은 계씨가 치르는 것이지 저희 두 사람은 원치 않은 일입니다.’라고 연이어 변명하자 ‘너의 말은 분명히 잘못이다.’라는 말로 꾸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자의 극언에도 염유는 다시 변명한다.‘지금 공격하여 빼앗지 않으면 반드시 후세에 화근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는 ‘군자는 그가 바라는 것은 버려둔 채 말하지 아니하고 또 그것을 변명하려는 것을 미워한다.(君子疾夫舍曰欲之而必爲之辭)’라고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공자는 말을 앞세우고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을 싫어하고 있었다. 말재주로 다른 사람에게 아첨하는 것은 사리를 얻기 위해 자신을 속이는 행위이며, 본심의 덕을 해치는 위선이기 때문이었다. 아첨꾼과 말만 잘하는 말재주꾼에 대해서 공자는 논어의 곳곳에서 다음과 같이 경책하고 있다. “말을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사람은 어진 이가 적다.(巧言令色鮮矣仁)” 공자의 이 말에서 ‘발라맞추는 말과 알랑거리는 낯빛’이라는 뜻의 ‘교언영색’이란 고사성어가 나온 것. 이는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아첨하는 말과 보기 좋게 꾸미는 표정을 말하는 것이다. 또 공자는 ‘말 잘하는 사람보다 어눌하나 말에 진실이 깃든 사람을 좋아하여 의지가 굳고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은 사람만이 인(仁)에 가깝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논어의 공야장편에는 이러한 공자의 사상을 나타내 보이는 중요한 장면이 나오고 있다. “공자의 제자 중에 중궁(仲弓)이란 사람이 있었다. 노나라사람으로 공자보다 29세나 아래였는데, 일찍이 공자 자신이 ‘염옹(雍:중궁의 이름)은 임금노릇을 하게 할만하다.’라고 칭찬할 수 있을 만큼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중궁은 말주변이 없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염옹은 어질지만 말재주가 없습니다.’이에 대해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도대체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
  • [Doctor & Disease] 서울대병원 신경과 노재규 박사

    [Doctor & Disease] 서울대병원 신경과 노재규 박사

    “뇌졸중이라는 질환은 자신의 삶을 투영하는 거울입니다. 병력은 물론 스트레스와 술, 담배, 운동 여부와 무슨 음식을 즐기는지 등 개인의 삶을 되짚어 볼 수 있는 흔적이 이 병증에 모두 함축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노재규(56) 박사. 우리나라에서 뇌졸중에 관한 한 그만큼 자신있게 말할 수 있고, 그 말에 그만큼 무게가 실리는 사람도 흔치 않다. 뇌졸중 분야의 수많은 전문의를 길러냈는가 하면 국내 첫 경두개초음파검사법을 도입했고, 역시 국내 의사로는 처음으로 미국두통연구회에 가입해 두통에 관한 학문적, 임상적 업적을 남겼으며, 지난 92년에는 서울대병원이 뇌사판정 기준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최형우씨를 치료했던 바로 그 의사다. 그를 만나 우리나라에서 단일 질환으로는 사망률이 가장 높은 뇌졸중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인사를 나눈 뒤 대뜸 “뇌졸중이 주로 겨울에 발생하는 질환이라서….”라고 운을 뗐더니 뜻밖에 그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병증의 발현에 있어 계절적인 요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얘기가 시작됐다. 뇌졸중이란 어떤 질환인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뇌 기능에 문제가 초래되는 질환을 말한다. 뇌는 혈액을 통해 산소와 포도당 등을 공급받는데 이게 손상되면 뇌의 해당 부위에 따라 다양한 병증이 나타나게 된다. 문제가 병증으로 나타나는 경로를 설명해 달라. -뇌 조직이 괴사하면 괴사 부분이 담당하는 신체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예컨대 뇌의 중심구 중 앞부분은 전신의 운동기능, 뒷부분은 시각정보를 담당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거나 감각 이상, 시각 및 시야장애가 나타나는 식이다. 발병 추세와 경향은 어떤가. -과거 우리나라에 많았던 뇌출혈은 주는 반면 동맥경화와 경동맥질환에 의한 허혈성 뇌졸중이 급증하고 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뇌졸중 환자의 30%가량은 이 경동맥질환을 가질 정도다. 유형에 따른 종류도 많을 텐데…. -뇌졸중은 혈관이 터지는 출혈성과 혈관이 막히는 허혈성(뇌경색)으로 나뉘는데, 출혈성은 다시 뇌내출혈인 뇌실질 출혈과 뇌를 감싼 지주막 밑의 혈관이 꽈리처럼 부풀었다가 터지는 지주막하출혈로 구분한다. 허혈성은 동맥경화로 아예 혈관이 꽉 막히는 뇌혈전증, 심장이나 동맥의 혈전이 혈관 속을 떠돌다가 뇌혈관을 막는 뇌색전증, 뇌의 모세혈관 격인 직경 0.2∼0.4㎜ 정도의 관통혈관이 막히는 열공성 뇌경색도 허혈성이다. 이밖에 혈관이 잠시 막혔다 풀리는 일과성 허혈증도 있다. 노 박사는 자칫 사소하게 여기기 쉬운 열공성뇌경색을 다시 거론했다.“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동맥경화성 뇌졸중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열공성이 많아 학자들이 그 경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또 일과성 허혈증은 중요한 뇌졸중의 예고증상이기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을 찾는 게 상책입니다.”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뇌졸중은 한 순간 증상이 나타나지만 그것은 오랜 기간 증상이 발전해 온 결과일 뿐이다. 여기에 작용하는 원인질환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혈압과 고지혈증, 당뇨병이다. 흡연과 과음, 비만, 운동부족도 중요한 위험인자다. 흡연도 문제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뇌졸중 발병 가능성이 최고 3배나 높다. 증상은 어떤가. -증상은 뇌의 손상 부위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는 반신 운동 및 감각마비, 언어장애, 시야장애, 어지럼증, 물체가 둘로 보이는 복시와 걸음걸이 이상, 갑작스러운 두통과 구토, 의식장애,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연하장애 등이 대표적이다. 진단이 특별히 어렵지 않은가. -예전에는 병력과 신경학적 검사만으로 진단했지만 최근에는 신경학적 검사나 신체검사 말고도 컴퓨터 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기술이 발전해 빠르고 정확한 진단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노 박사는 진단을 얘기하면서 적잖은 일선 의사들이 뇌졸중의 유형에 무관심해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개탄했다.“뇌졸중은 병인과 병소에 따라 증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의사라면 반드시 어떤 경로를 거쳐 발병한 뇌졸중인지를 알아내는 진단을 해야 합니다. 그걸 모르면 치료가 안되는데도 의사들이 그걸 간과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치료법에 대해서도 얘기해 달라. -뇌졸중 치료의 핵심은 얼마나 빨리 의료조치를 취하느냐이다. 뇌출혈의 경우 출혈과 혈압, 뇌압을 통제하면서 혈액이 저절로 흡수되도록 하거나 출혈이 심해 뇌사상태에 이른 경우는 수술로 혈종을 제거하기도 한다. 허혈성은 증상 정도와 최초 발병 이후 처치 때까지의 시간을 따져 혈관을 뚫거나 혈전용해제, 항응고제 등을 투여한다. 이런 급성기 치료를 끝내면 2차로 위험인자에 대한 치료를 시작해 합병증을 예방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뇌졸중 치료와 관련, 중요한 연구 과제를 수행중이며 이르면 1년 이내에 가시적 성과를 밝힐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소개한 그는 기존 연구에 대해, 성급한 성과 발표에 앞서 사례 연구를 더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줄기세포를 이용한 뇌졸중 치료는 임상적으로 아직 검증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아직 가능성 단계이므로 섣부르게 결과를 제시하기보다 더 깊이있는 탐구가 필요하겠지요.”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 노재규 박사 ▲서울대의대 및 대학원(박사)▲미국 하버드의대 교환교수▲대한신경과학회 수련고시위원·총무이사·교육위원장·감사 등 역임▲대한뇌졸중연구회장▲대한신경과학회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건립본부장▲청와대의무실 신경과 자문의▲경찰병원 신경과 자문의▲현, 서울대의대 신경과학교실 교수
  • 儒林(214)-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儒林(214)-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이로써 공자는 황하를 건너지 못하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처량한 모습을 사기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그냥 돌아오는 길에 추향(鄕)에서 휴식하면서 ‘추향의 노래’란 거문고 곡을 작곡하며 슬퍼하였다.” 이때 공자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거백옥이 보낸 사자였다. 거백옥은 위나라의 대부로 유일한 공자의 후원자였다. 공자도 거백옥에 대해서 ‘참 군자’란 평가를 내린 일이 있을 만큼 두 사람은 서로를 신뢰하고 있었는데, 공자의 딱한 신세를 전해들은 거백옥은 전에도 자신의 집에서 묵었던 공자를 다시 초청하기 위해서 사자를 보낸 것이다. 거백옥의 사자에게 공자가 물었다. “대부께서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고 계시나요.” 그러자 사자가 대답하였다. “어른께서는 허물을 적게 하려고 애를 쓰십니다만 아직 허물을 적게 하는 일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夫子欲寡其過而未能也)” 사자가 돌아가자 공자는 그를 칭찬해 마지 않았다. 거백옥의 근황을 가감 없이 정확하게 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도 공자가 감탄한 것은 허물을 고치려고 부단하게 애를 쓰는 거백옥의 태도였다. 이는 공자가 평소에 말하였던 다음과 같은 내용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군자는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학문을 해도 견고하지 못하다. 우러나는 마음과 믿음있는 말을 주로 하며, 나보다 못한 사람과 벗하지 말며, 잘못을 깨달았을 때에는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다.” 공자의 이 가르침에서 ‘잘못이 있으면 즉시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란 고사성어와 ‘잘못을 고친다.’는 ‘개과(改過)’가 나온 것. 공자는 논어의 위령공편에서 잘못을 고치는 행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잘못을 하고서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말한다.(過而不改 是謂過矣)” 과실에 대한 자신의 반성은 선으로 옮겨가는 천선(遷善)과 덕으로 나아가는 진덕(進德)의 가장 중요한 수양의 수단인 것이다. 자기의 잘못을 잘 알고 이를 인정하는 일도 어렵지만 그것을 깨닫고 고쳐나가는 과단성과 솔직성이야말로 공자가 강조한 덕목이었다. 자기반성의 중요성을 공자는 ‘공야장(公冶長)’에서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아직 자신의 허물을 보고서 내심으로 자책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구나.” 거백옥의 초청을 받은 공자는 다시 위나라로 돌아와서 거백옥의 집에서 묵는다. 공자로부터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이를 고치는 데 부지런한 참 군자’란 평가를 받은 거백옥.‘장자(莊子)’에는 거백옥의 ‘세상을 사는 지혜’, 즉 처세술(處世術)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안합(顔闔)이 거백옥을 찾아간다. 안합은 원래 태자 괴외의 스승이었다. 그러나 괴외는 음탕한 왕비였던 남자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진나라로 망명하여서 그의 아들인 첩(輒)이 대신 태자를 이어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안합은 태자의 스승으로서 난처한 입장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고민 끝에 안합은 거백옥을 찾아가 다음과 같이 물어 말하였다.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덕은 천성적으로 경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무도한 짓을 하면 곧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그의 지혜는 남의 잘못을 알기에 알맞을 정도이고,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도 못합니다. 이러한 사람에 대하여 저는 어떻게 행동했으면 좋겠습니까.’” 안합이 말하였던 ‘경박하고 무도한 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지 않다. 위나라의 주군이었던 우유부단한 영공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영공을 둘러싼 간신배들을 가리키는지는 모르지만 이에 대답한 거백옥의 충고는 난세를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좋은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儒林(156)-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儒林(156)-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공자가 찾아가고 있는 사람은 이렇듯 바로 라오시오스 즉 노자인 것이다.전설에 의하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80년간이나 들어있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백발로 그래서 이름도 ‘늙은 자식’이라 불렸다는 노자.이 노자를 공자는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대충 헤아려보면 공자가 노자를 만나러 갈 무렵에는 노자가 공자보다 나이가 20∼30세가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 무렵 노자의 나이는 80세에 가까운 노인이었을 것이다. 노자는 공자와는 달리 ‘유가’를 형성하여 제자를 키우거나 학문을 가르치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하였으므로 공자가 노자에게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 주나라로 구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마음속으로 노자를 존경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사마천은 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공자가 존경하였던 인물로는 주의 노자,위(衛)의 거백옥,제의 안평중,초(楚)의 노래자(老萊子) 등이다.” 공자가 위대한 정치가인 안평중,즉 안영을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기록한 바가 있다. 그러나 공자가 존경하였던 인물 중 첫 번째로 노자가 등장하고 있음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인 것이다.사기에 의하면 노자가 평생 동안 공식적인 벼슬을 했던 것은 주나라의 수장실(守藏室)의 기록관인 사(史)가 고작이었다.수장실이라 하면 왕실 서고를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중앙도서관을 지키는 사서였던 것이다.아마도 노자의 그 웅대하고 심오한 사상은 수장실을 지키면서 수많은 책을 읽고 사색함으로써 완성되었겠지만 이미 그때 전국시대 최고의 대학자이자 사상가였던 공자가 수천 수만리의 먼 길을 무시하고 오직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은자(隱者)를 찾아가는 것만 보더라도 공자의 열정적인 학구열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배움에 있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공자의 태도로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들에게서 좋은 점을 가려서 따르고 좋지 못한 점은 거울삼아 고치기 때문이다.(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라고 말함으로써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일이 그가 배울 스승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어진 이를 보면 그와 같이 되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자를 보면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반성한다.(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라고 말함으로써 배움에 있어서 몰두하는 태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논어의 첫 장도‘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기쁘지 아니하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하고 있는 공자였으므로 공자가 ‘공야장’편에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은 공자가 얼마나 배움에 철두철미하였던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열 집이 있는 고을이라면 반드시 충성과 신의에 있어서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겠지만,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공자는 죽을 때까지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웠다.이는 조금 안다고 해서 자신의 학문이 완성되었다고 착각하는 오늘날의 변설가들이 심각하게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덕목이다.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는 노자의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알지도 못하면서 잘 아는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은 사람을 속이는 죄악이며 무서운 범죄행위인 것이다.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 노자를 만나러 간 공자는 노자에게 특히 예에 대해 묻고 싶었던 것 같다.왜냐하면 사마천은 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으므로. “남궁 경숙과 함께 주나라로 간 공자는 노자를 만나 예에 대해서 물었다.”
  • [集安 역사현장을 가다] ‘고구려 빼앗기’ 中정부가 나섰다

    최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구려 유적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중국의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은 요즘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신의주 접경도시인 단둥(丹東)에서 압록강을 따라 220㎞를 달려 도착한 지안시는 첫눈에도 활기가 가득했다.인구 23만명에 불과한,지안시는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 국내성(國內城)이 위치했던 지역으로 시내 곳곳에 1만 3000여개의 고구려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거리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알리는 붉은색 경축 현수막들을 요란하게 내걸었다.최근 국내외 관광객들도 호텔마다 밀려드는 상황이다. |지안(集安·중국 지린성) 오일만특파원|작년 3월부터 금지됐던 외국인 관광이 세계 문화유산 지정과 함께 지난 3일부터 재개됐고 19일 저녁부터 3일동안 지안시에는 대대적인 ‘세계 문화유산 경축행사’가 열리고 있다. 중국 국가관광국과 지린(吉林)성 정부 주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중국의 내로라하는 유명 가수들의 축하 콘서트와 각종 문화행사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전국에서 1000여명이 초청된 이번 행사는 중앙TV(CCTV)로 전국에 방송,국가적 축제 분위기로 몰아가려는 계산이 깔려있는 듯하다. ●중국정부의 치밀한 문화유산 보호 중국 정부가 제2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회의(WHC) 총회에서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지안의 고구려 유적들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까지 급조된 것처럼 보이지만 치밀한 준비가 있었음이 확인됐다.지안시는 지난해 초 북한이 동명왕릉 주변 고분군 등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하자 곧바로 ‘정지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AD 3년부터 427년(장수왕 15년) 평양성 천도까지 역대 고구려 왕들의 황궁터에 건설된 지안시 정부청사를 지난해 4월 철거한 것으로 확인됐다.세계문화유산 신청 후 유네스코의 실사에 대비한 것으로,고구려 유적 보전에 대한 중국측의 노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시내 도심인 야장루(鴨江路)에 방치됐던 성곽 유적도 지난해 4월부터 부랴부랴 녹색 철책을 세워 보호에 나섰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전언이다. 한 주민은 “지안 시내에 있던 성곽의 높이가 10년전만 해도 3∼4m로 높았으나 주민들이 성곽을 쌓았던 화강암을 건축 자재로 마음대로 사용해 지금은 1∼2m로 낮아졌다.”고 증언했다.종전 중국 정부의 고구려 유적 보호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시 정부는 유적 보호를 위해 성곽 주변에 난립한 아파트들을 내년 6월까지 철거할 것으로 알려졌다.중국 정부가 고구려 문화유적을 자신의 역사에 편입한 뒤,세계 문화유산 지정이란 형식으로 기정사실화시키려는 의도를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인근 민가도 강제 철거시켜 지안 시내에서 동북 방향으로 자동차로 10분을 가면 그 유명한 광개토대왕비(廣開土王碑)를 볼 수 있다.중국인들은 이 비석을 하오타이왕베이(好太王碑)로 부른다.서기 414년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잔디밭으로 곱게 단장된 매표소 정문 옆에는 ‘강한 경제도시를 목표로 관광 경제를 일으키자(以建設經濟强市爲目標 做强做優旅游經濟)’는 현수막이 보인다.지안시와 중국 정부가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높이 6.39m,무게 37t의 비석에 모두 1775자가 빼곡히 적혀있지만 주위 4면을 방탄유리가 에워싸고 있어 가뜩이나 판독이 어려운 비문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붉은색 4각 기와지붕 아래에 보전된 광개토대왕비 주변엔 중국인과 한국인 관광객들이 뒤섞여 안내원들의 설명을 듣느라 여념이 없었다.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고구려 역사가 중국사의 일부”라고 강변하는 중국 안내원들을 지켜보면서 ‘동북아 역사 전쟁’이 막이 올랐음을 새삼 실감했다. 광개토대왕비에서 자동차로 5분거리에 ‘동방의 피라미드’로 불리는 장군총(將軍塚)이 우뚝 솟아있다.용산(龍山) 기슭에 위치한 장군총은 수려한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경외감마저 자아낼 정도다. 높이 12.4m의 계단식 피라미드형 7층무덤으로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양식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한다.장군총 부근에 광개토대왕 비석이 있어 광개토대왕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장군총은 대다수 고구려 유적과 달리 접근이 가능했고 5층에 있는 묘실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사진 촬영은 금지됐다.7층 꼭대기에 올라서자 광개토대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태왕릉(太王陵)과 광개토대왕비가 한눈에 들어왔고 압록강을 사이에 둔 북한의 만포(滿浦)도 보였다. 왕과 귀족들이 거주했던 국내성(國內城)과 달리 지안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5㎞ 정도 떨어진 환도(丸都)산성은 삼성산 기슭에 자리잡은 천혜의 요지였다.외적 침입에 대비,군사들이 거주했다는 환도산성은 당시 성곽이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시 정부는 지난해 외부인 공개 금지 기간 동안 장군총 주변의 민가 500여채를 강제로 철거시켰다.이곳의 관광 안내원은 “지난해 4월부터 장군총 주변 타이왕춘(太王村)에 난립했던 민가들이 지안시 정부의 지시로 시 인근으로 옮겨졌고 대신 잔디와 나무를 심어 유적 주변을 깨끗이 정돈했다.”고 전했다. 지안시 정부 청사 앞에서도 100여명의 시위 군중들이 모여있었다.세계문화유산 지정과 함께 지안시에서 환경 오염을 이유로 삼륜 모터차 운행을 전면 금지하자 생계가 막연한 운전사들이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이다.세계문화유산 지정에 따른 후유증이 곳곳에 남아있는 셈이다. ●역사 왜곡현장 지안시 박물관 중국 정부가 8000만위안(120억원)의 예산을 들여 보수한 지안시 박물관은 지난 3일 세계문화유산 지정과 함께 다시 문을 열었다.단층으로 이뤄진 이 박물관은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 중 350여점이 전시 중이다. 박물관 머릿돌에는 ‘고구려가 중국고대 소수민족이며 지방정권의 하나(中國東北少數民族與地方政權之一)’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바로 역사 왜곡의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이 머릿돌의 글귀는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가 중국 역사학계 일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중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박물관에서 일부 학계의 주장을 버젓이 명문화시킨 의도는 분명 고구려 역사의 자국 역사 편입 이외에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배치된 안내원들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고구려는 과거 동북지역의 고대 문명 국가이기 때문에 고구려 역사는 중국의 고대사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 안내원은 당시 고구려에서 통용되던 동전 등을 가리키며 “고구려는 자체적으로 제조한 돈이 없어 당시 중국 왕조의 것을 사용했다.”며 “이는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의 하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세계적 관광도시 기대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국측 고구려 유적의 정식명칭은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와 무덤군’이다.랴오닝(遼寧)성 환런(桓仁)현의 오녀(五女)산성,지린(吉林)성 지안(集安)의 환도산성,둥거우(洞溝) 고분군,광개토대왕비와 태왕릉,장군총,오회분 및 산성 주변의 왕자묘(王字墓) 등이 들어있다. 고구려 유산의 집합지 지안시는 세계 문화유산 지정과 함께 국제 관광도시가 될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시내 곳곳에는 벌써부터 호텔 신축과 도로 포장 공사가 한창이다.현재 2∼3성급 호텔 2개를 포함,10개의 호텔을 보유한 지안시는 내년까지 20개로 늘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거리 곳곳에 내걸린 ‘고구려 문명을 널리 알려 관광산업을 일으키자(弘揚古城文明 發展旅游經濟)’는 현수막이 지안시 주민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지안의 한 여행사 관계자는 “지난해는 사스와 고구려 유적의 외부공개 금지로 3000명에 불과한 관광객이 올해는 1만명,내년에는 2만∼3만명으로 급증할 것”이라며 “고구려 유적과 백두산 관광을 묶는 상품을 개발하면 지안시가 동북지방 최고의 관광도시가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oilman@seoul.co.kr
  • [集安 역사현장을 가다] ‘고구려 빼앗기’ 中정부가 나섰다

    [集安 역사현장을 가다] ‘고구려 빼앗기’ 中정부가 나섰다

    최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구려 유적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중국의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은 요즘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신의주 접경도시인 단둥(丹東)에서 압록강을 따라 220㎞를 달려 도착한 지안시는 첫눈에도 활기가 가득했다.인구 23만명에 불과한,지안시는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 국내성(國內城)이 위치했던 지역으로 시내 곳곳에 1만 3000여개의 고구려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거리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알리는 붉은색 경축 현수막들을 요란하게 내걸었다.최근 국내외 관광객들도 호텔마다 밀려드는 상황이다. |지안(集安·중국 지린성) 오일만특파원|작년 3월부터 금지됐던 외국인 관광이 세계 문화유산 지정과 함께 지난 3일부터 재개됐고 19일 저녁부터 3일동안 지안시에는 대대적인 ‘세계 문화유산 경축행사’가 열리고 있다. 중국 국가관광국과 지린(吉林)성 정부 주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중국의 내로라하는 유명 가수들의 축하 콘서트와 각종 문화행사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전국에서 1000여명이 초청된 이번 행사는 중앙TV(CCTV)로 전국에 방송,국가적 축제 분위기로 몰아가려는 계산이 깔려있는 듯하다. ●중국정부의 치밀한 문화유산 보호 중국 정부가 제2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회의(WHC) 총회에서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지안의 고구려 유적들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까지 급조된 것처럼 보이지만 치밀한 준비가 있었음이 확인됐다.지안시는 지난해 초 북한이 동명왕릉 주변 고분군 등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하자 곧바로 ‘정지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AD 3년부터 427년(장수왕 15년) 평양성 천도까지 역대 고구려 왕들의 황궁터에 건설된 지안시 정부청사를 지난해 4월 철거한 것으로 확인됐다.세계문화유산 신청 후 유네스코의 실사에 대비한 것으로,고구려 유적 보전에 대한 중국측의 노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시내 도심인 야장루(鴨江路)에 방치됐던 성곽 유적도 지난해 4월부터 부랴부랴 녹색 철책을 세워 보호에 나섰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전언이다. 한 주민은 “지안 시내에 있던 성곽의 높이가 10년전만 해도 3∼4m로 높았으나 주민들이 성곽을 쌓았던 화강암을 건축 자재로 마음대로 사용해 지금은 1∼2m로 낮아졌다.”고 증언했다.종전 중국 정부의 고구려 유적 보호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시 정부는 유적 보호를 위해 성곽 주변에 난립한 아파트들을 내년 6월까지 철거할 것으로 알려졌다.중국 정부가 고구려 문화유적을 자신의 역사에 편입한 뒤,세계 문화유산 지정이란 형식으로 기정사실화시키려는 의도를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인근 민가도 강제 철거시켜 지안 시내에서 동북 방향으로 자동차로 10분을 가면 그 유명한 광개토대왕비(廣開土王碑)를 볼 수 있다.중국인들은 이 비석을 하오타이왕베이(好太王碑)로 부른다.서기 414년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잔디밭으로 곱게 단장된 매표소 정문 옆에는 ‘강한 경제도시를 목표로 관광 경제를 일으키자(以建設經濟强市爲目標 做强做優旅游經濟)’는 현수막이 보인다.지안시와 중국 정부가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높이 6.39m,무게 37t의 비석에 모두 1775자가 빼곡히 적혀있지만 주위 4면을 방탄유리가 에워싸고 있어 가뜩이나 판독이 어려운 비문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붉은색 4각 기와지붕 아래에 보전된 광개토대왕비 주변엔 중국인과 한국인 관광객들이 뒤섞여 안내원들의 설명을 듣느라 여념이 없었다.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고구려 역사가 중국사의 일부”라고 강변하는 중국 안내원들을 지켜보면서 ‘동북아 역사 전쟁’이 막이 올랐음을 새삼 실감했다. 광개토대왕비에서 자동차로 5분거리에 ‘동방의 피라미드’로 불리는 장군총(將軍塚)이 우뚝 솟아있다.용산(龍山) 기슭에 위치한 장군총은 수려한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경외감마저 자아낼 정도다. 높이 12.4m의 계단식 피라미드형 7층무덤으로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양식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한다.장군총 부근에 광개토대왕 비석이 있어 광개토대왕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장군총은 대다수 고구려 유적과 달리 접근이 가능했고 5층에 있는 묘실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사진 촬영은 금지됐다.7층 꼭대기에 올라서자 광개토대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태왕릉(太王陵)과 광개토대왕비가 한눈에 들어왔고 압록강을 사이에 둔 북한의 만포(滿浦)도 보였다. 왕과 귀족들이 거주했던 국내성(國內城)과 달리 지안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5㎞ 정도 떨어진 환도(丸都)산성은 삼성산 기슭에 자리잡은 천혜의 요지였다.외적 침입에 대비,군사들이 거주했다는 환도산성은 당시 성곽이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시 정부는 지난해 외부인 공개 금지 기간 동안 장군총 주변의 민가 500여채를 강제로 철거시켰다.이곳의 관광 안내원은 “지난해 4월부터 장군총 주변 타이왕춘(太王村)에 난립했던 민가들이 지안시 정부의 지시로 시 인근으로 옮겨졌고 대신 잔디와 나무를 심어 유적 주변을 깨끗이 정돈했다.”고 전했다. 지안시 정부 청사 앞에서도 100여명의 시위 군중들이 모여있었다.세계문화유산 지정과 함께 지안시에서 환경 오염을 이유로 삼륜 모터차 운행을 전면 금지하자 생계가 막연한 운전사들이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이다.세계문화유산 지정에 따른 후유증이 곳곳에 남아있는 셈이다. ●역사 왜곡현장 지안시 박물관 중국 정부가 8000만위안(120억원)의 예산을 들여 보수한 지안시 박물관은 지난 3일 세계문화유산 지정과 함께 다시 문을 열었다.단층으로 이뤄진 이 박물관은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 중 350여점이 전시 중이다. 박물관 머릿돌에는 ‘고구려가 중국고대 소수민족이며 지방정권의 하나(中國東北少數民族與地方政權之一)’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바로 역사 왜곡의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이 머릿돌의 글귀는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가 중국 역사학계 일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중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박물관에서 일부 학계의 주장을 버젓이 명문화시킨 의도는 분명 고구려 역사의 자국 역사 편입 이외에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배치된 안내원들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고구려는 과거 동북지역의 고대 문명 국가이기 때문에 고구려 역사는 중국의 고대사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 안내원은 당시 고구려에서 통용되던 동전 등을 가리키며 “고구려는 자체적으로 제조한 돈이 없어 당시 중국 왕조의 것을 사용했다.”며 “이는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의 하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세계적 관광도시 기대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국측 고구려 유적의 정식명칭은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와 무덤군’이다.랴오닝(遼寧)성 환런(桓仁)현의 오녀(五女)산성,지린(吉林)성 지안(集安)의 환도산성,둥거우(洞溝) 고분군,광개토대왕비와 태왕릉,장군총,오회분 및 산성 주변의 왕자묘(王字墓) 등이 들어있다. 고구려 유산의 집합지 지안시는 세계 문화유산 지정과 함께 국제 관광도시가 될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시내 곳곳에는 벌써부터 호텔 신축과 도로 포장 공사가 한창이다.현재 2∼3성급 호텔 2개를 포함,10개의 호텔을 보유한 지안시는 내년까지 20개로 늘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거리 곳곳에 내걸린 ‘고구려 문명을 널리 알려 관광산업을 일으키자(弘揚古城文明 發展旅游經濟)’는 현수막이 지안시 주민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지안의 한 여행사 관계자는 “지난해는 사스와 고구려 유적의 외부공개 금지로 3000명에 불과한 관광객이 올해는 1만명,내년에는 2만∼3만명으로 급증할 것”이라며 “고구려 유적과 백두산 관광을 묶는 상품을 개발하면 지안시가 동북지방 최고의 관광도시가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oilman@seoul.co.kr
  • [Doctor & Disease] 서울 상계백병원 박상근 원장

    아직도 뇌는 신(神)의 영역이 넓다.그만큼 뇌 질환은 치명적이다.특히 ‘중풍’으로 불리는 뇌졸중은 죽음에 가장 근접한 질환이거니와 다행히 죽음의 터널을 벗어나더라도 남은 삶이 오로지 힘겨워서 더욱 무서운 질환이다.오죽했으면 다른 병처럼 ‘걸린다.’는 말 대신 ‘중풍을 맞았다.’거나 ‘중풍이 왔다.’고 할까. 뇌졸중에 관해 국내 최고의 임상 사례와 치료이론을 축적한 서울 상계백병원 원장인 신경외과 박상근(56) 박사는 “뇌졸중이야말로 개인과 사회가 함께 병을 부르는 대표적 질환”이라고 말한다.‘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식의 무차별 육식과 운동기피 등 분별없는 생활습관,병원더러 환자의 장기입원을 꺼리게 하는 보험 수가,중환자 요양시설 하나 없는 복지정책이 어우러져 ‘뇌졸중의 시대’를 열었다는 뜻이다. 뇌졸중의 의학적 정의는 무엇인가. -뇌졸중은 뇌 혈류장애에 의한 의식소실,반신마비,언어장애 등 신경장애를 유발한 상태를 뜻한다.운좋게 회복되어도 대부분 행동·언어장애 등 치명적인 후유증을 겪는다.크게 뇌혈관이 막히는 허혈성(뇌경색)과 뇌혈관이 터지는 출혈성(뇌출혈)으로 나누는데,허혈성은 동맥경화증으로 인한 뇌동맥 및 경동맥의 혈전 및 색전과 심인성 색전류,출혈성은 고혈압에 의한 뇌출혈과 혈관 기형,뇌동맥류 파열 등 혈관 질환이 주요 원인이다. ●98년 이후 국내 사망원인 1위 우리나라의 발병 추세는 어떤가. -최근들어 국내에서 허혈성 뇌졸중이 급증,서구 패턴을 보이고 있다.서구형 식생활과 고령화가 원인이다.국내 유병률은 인구 1000명당 5명으로 해마다 6만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현재 20만명이 넘는 환자가 영구적인 뇌손상으로 고통받고 있다.98년 이후 국내 사망원인 1위다.무서운 질병이다.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역시 생활습관이 중요하다.육류 및 가공식품의 무절제한 섭취와 이에 따른 비만,음주와 흡연,과로와 운동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원인질환도 짚어 달라. -고혈압과 심장병이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다.뇌경색 환자의 50% 이상,뇌출혈 환자의 60∼90%는 고혈압이 동반된다.또 뇌졸중 환자의 75%는 심장병을 갖고 있다.당뇨병과 고지혈증,비만도 간과할 수 없다. ●전조증상 무시… 더 큰 위험 초래 증상은 주로 어떻게 나타나나. -사실,증상을 체감할 정도면 늦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증상마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고혈압,동맥경화 등 원인질환이 있지만 이것도 환자 자신이 모르는 경우가 많다.또 증상이 있더라도 평소에는 ‘이게 무슨 문제가 될까?’하고 여기기 십상이다.그러다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더 구체적으로 보면,뇌출혈은 갑자기 두통,현기,구토 등으로 시작해 뇌의 병변 위치에 따라 시력 및 시야장애,반신 혹은 신체 일부의 마비나 언어장애,안면신경장애,운동장애와 경련,의식장애 등을 보인다.뇌경색은 뇌의 일과성 허혈 발작을 빼면 뇌출혈과 비슷한데,이걸 방치하면 40% 정도가 뇌졸중으로 진행한다. 진단은 어떻게 하나. -크게 문진과 이학 및 신경학적검사,특수검사법이 있다.최근에는 CT(컴퓨터 단층촬영),MRI(자기공명영상장치),SPECT(단일광자방출 전산촬영),PET(양전자 단층촬영) 등 첨단 진단장비가 많이 보급돼 병증의 위치와 상태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자가진단도 가능한가. -뇌졸중은 뇌혈관 장애가 원인이기 때문에 미처 감지하지 못하더라도 발병 전에 신체 특정부위의 부자연스러움이나 시력장애,두통과 언어장애 등 다양한 조짐이 나타난다.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전조 증상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치료 방법도 함께 소개해 달라. -발병 원인이나 병기,증상에 따라 약물치료냐,수술치료냐를 결정하는데,판단 기준이 다양해 일률적인 설명이 어렵다.중요한 것은 약물이든,수술이든 적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최근 효과가 좋고 부작용을 줄인 약제가 많으나,근본적인 치료는 수술이다.간혹 뇌수술이 위험하다며 그릇된 치료나 민간요법에 의존해 병을 키우기도 하는데,그건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다. ●국가차원 중증환자 관리대책 절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뇌졸중 환자를 관리하는 국가 차원의 복지시책 부재를 꼬집었다.“위험도에 비해 의료수가가 턱없이 낮아 전공의도 많지 않습니다.게다가 질환 특성상 장기입원 환자가 많아 병원 고충도 말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이 정도면 이제 국가에서 중증환자 관리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직도 일반의 뇌졸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예방책을 소개해 달라. -위험인자의 조절이 중요하다.비만관리와 함께 고혈압,심장병,당뇨병,고지혈증 등의 착실한 치료가 필요하다.금연은 필수고,폭음도 경계해야 한다.필요하다면 약물 사용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적절하게 항응고제 등을 사용하되 규칙적인 운동과 싱거운 섭생 등 생활요법을 곁들이면 좋을 것이다. ●“평가는 신의 몫 아니겠습니까” 박 박사는 인터뷰 도중 스스로 오래 살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고 푸념했다.“뇌혈관 질환을 다루는 의사들은 평생 긴장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응급상황이 많아서죠.혼신을 다해 수술을 마치고 나면 마치 혼이 빠져나간 듯 탈진하곤 하는데,평생 이 일을 하면서 어떻게 오래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 얼핏 우수가 어렸다.항상 병증과 그 병이 주는 고통을 열린 가슴으로 품어 온 그였지만,어느덧 초로에 접어든 지금 어찌 일말의 소회가 없을까.“누군가 해야 될 일이라면 내가 하자고 다그치며 열심히 살아왔고,평가는 신의 몫 아니겠습니까?” ■ 박상근 박사 ▲연대의대 및 대학원,고대의대 대학원(박사) ▲연대의대 및 인제의대 교수 ▲미국미네소타의대 신경외과 연구강사 ▲대한뇌종양학회 회장,대한뇌종양연구회 회장,대한의학레이저학회 학술이사 및 이사장,대한 신경외과학회 상임이사 등 역임 ▲대한신경외과 학회,대한뇌혈관질환연구회,대한 뇌종양연구회,미국신경외과학회 및 미국뇌종양·뇌혈관질환 분과학회 정회원 ▲현,상계백병원장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오정식기자 oosing@seoul.co.kr ˝
  • 儒林(121)-제2부 주유열국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주유열국 제1장 첫 번째 출국 공자는 계씨가 팔일무를 자신의 묘정에서 춤추게 한 일과 삼환씨의 집안에서 제사를 지낼 때 천자처럼 옹을 노래한 사실을 두고 다음과 같이 한탄하였던 것이다.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다면 예는 무엇 할 것이며,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다면 음악은 무엇 할 것이냐.” 이때 공자는 젊은 시절 승전리(承田吏)라는 하찮은 벼슬에만 잠깐 몸담고 있었을 뿐,이미 그의 명망이 커짐에 따라 제자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하여 제자들과 더불어 유가(儒家)를 이룩하기 시작하고 있었다.공자는 ‘스스로 자립하였다.’고 말한 30대로 접어들면서 공자의 학문과 경륜은 더욱 원숙해져서 명망은 이웃나라로 널리 퍼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노나라에서는 대사건이 벌어진다.곧 노나라의 임금인 소공은 세력이 강했던 계평자가 지나치게 방자한 것을 참지 못하고 궁중쿠데타로 계씨를 제거하려 하였다.처음에는 성공할 듯도 보였지만 ‘계손씨 없이는 숙손씨도 있을 수 없다.’는 자각아래 삼환씨들이 힘을 합쳐 소공에게 일대반격을 가했던 것이다.왜냐하면 삼환씨들은 모두 16대왕인 환공의 후손들로 서로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전쟁에서 진 소공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제나라로 도망친다.제나라에서는 소공을 도와 노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갖은 방법을 강구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소공은 결국 7년이란 세월을 외국에서 보낸 후 객사하게 되지만 어쨌든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려고 결심하고 첫 번째 출국을 단행했을 때에는 소공이 전쟁에서 패퇴한 후 제나라로 도망쳤던 바로 그 내전이 있은 직후였던 것이다. 소공을 쫓아낸 뒤에 계씨의 세도는 더 강력해졌다.공자는 임금까지도 쫓아내는 귀족들의 권력투쟁과 그 사이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안전만을 노리며 날파리처럼 날아 다니는 관리들에 극도로 실망한 후 이미 노나라에서는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출국하였던 것이다.그러므로 공자가 가는 도중에 만난 한 여인의 눈물을 통해 “잘 명심토록 하여라.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도 더 사나운 것이다.”란 말을 남긴 것은 여인의 경우를 빗대어 자신이 떠나온 가혹한 정치로 도탄에 빠져 있는 노나라를 질타하기 위한 일성이었던 것이다. 공자가 자신의 망명지로 제나라로 택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이미 노나라의 임금이었던 소공이 노나라를 도망쳐 제나라로 망명하였던 때문이고,또 하나는 제나라에는 경공(景公)과 안영(晏)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특히 공자는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정치가로 인정받고 있는 안영에게 깊은 호의를 갖고 있었다. 논어의 공야장(公冶長)편에서도 공자는 안영을 평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을 정도였다. “안평중(안영)은 남과 잘 사귀었고 오래도록 남을 잘 공경하였다.” 공자는 뛰어난 안영을 재상으로 등용할 수 있다면 경공은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진 명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미 그들과는 구면이었던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5년 전,그러니깐 소공 20년 공자의 나이 30세 때 경공이 재상 안영과 함께 노나라를 방문하여 예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공자세가’에는 이때 경공과 나눈 공자의 대화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경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옛날 진나라의 목공은 작은 나라로서 편벽한 위치에 있었는데도 패업을 이룬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 질문에 공자는 대답한다. ‘진나라는 비록 작은 나라였지만 목공의 뜻이 컸고,위치는 편벽하였지만 그의 행동은 발랐습니다.몸소 백리해(百里奚)를 등용하여 대부의 벼슬을 주었는데,죄인으로 묶여있는 중에 등용하여 사흘 동안 얘기해본 끝에 그에게 정사를 맡겼던 것입니다.이런 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비록 왕자가 되어도 마땅하며,그가 패업을 이루었다는 것은 오히려 작은 것입니다.’ 경공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 儒林(121)-제2부 주유열국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21)-제2부 주유열국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주유열국 제1장 첫 번째 출국 공자는 계씨가 팔일무를 자신의 묘정에서 춤추게 한 일과 삼환씨의 집안에서 제사를 지낼 때 천자처럼 옹을 노래한 사실을 두고 다음과 같이 한탄하였던 것이다.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다면 예는 무엇 할 것이며,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다면 음악은 무엇 할 것이냐.” 이때 공자는 젊은 시절 승전리(承田吏)라는 하찮은 벼슬에만 잠깐 몸담고 있었을 뿐,이미 그의 명망이 커짐에 따라 제자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하여 제자들과 더불어 유가(儒家)를 이룩하기 시작하고 있었다.공자는 ‘스스로 자립하였다.’고 말한 30대로 접어들면서 공자의 학문과 경륜은 더욱 원숙해져서 명망은 이웃나라로 널리 퍼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노나라에서는 대사건이 벌어진다.곧 노나라의 임금인 소공은 세력이 강했던 계평자가 지나치게 방자한 것을 참지 못하고 궁중쿠데타로 계씨를 제거하려 하였다.처음에는 성공할 듯도 보였지만 ‘계손씨 없이는 숙손씨도 있을 수 없다.’는 자각아래 삼환씨들이 힘을 합쳐 소공에게 일대반격을 가했던 것이다.왜냐하면 삼환씨들은 모두 16대왕인 환공의 후손들로 서로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전쟁에서 진 소공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제나라로 도망친다.제나라에서는 소공을 도와 노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갖은 방법을 강구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소공은 결국 7년이란 세월을 외국에서 보낸 후 객사하게 되지만 어쨌든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려고 결심하고 첫 번째 출국을 단행했을 때에는 소공이 전쟁에서 패퇴한 후 제나라로 도망쳤던 바로 그 내전이 있은 직후였던 것이다. 소공을 쫓아낸 뒤에 계씨의 세도는 더 강력해졌다.공자는 임금까지도 쫓아내는 귀족들의 권력투쟁과 그 사이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안전만을 노리며 날파리처럼 날아 다니는 관리들에 극도로 실망한 후 이미 노나라에서는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출국하였던 것이다.그러므로 공자가 가는 도중에 만난 한 여인의 눈물을 통해 “잘 명심토록 하여라.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도 더 사나운 것이다.”란 말을 남긴 것은 여인의 경우를 빗대어 자신이 떠나온 가혹한 정치로 도탄에 빠져 있는 노나라를 질타하기 위한 일성이었던 것이다. 공자가 자신의 망명지로 제나라로 택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이미 노나라의 임금이었던 소공이 노나라를 도망쳐 제나라로 망명하였던 때문이고,또 하나는 제나라에는 경공(景公)과 안영(晏)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특히 공자는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정치가로 인정받고 있는 안영에게 깊은 호의를 갖고 있었다. 논어의 공야장(公冶長)편에서도 공자는 안영을 평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을 정도였다. “안평중(안영)은 남과 잘 사귀었고 오래도록 남을 잘 공경하였다.” 공자는 뛰어난 안영을 재상으로 등용할 수 있다면 경공은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진 명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미 그들과는 구면이었던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5년 전,그러니깐 소공 20년 공자의 나이 30세 때 경공이 재상 안영과 함께 노나라를 방문하여 예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공자세가’에는 이때 경공과 나눈 공자의 대화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경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옛날 진나라의 목공은 작은 나라로서 편벽한 위치에 있었는데도 패업을 이룬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 질문에 공자는 대답한다. ‘진나라는 비록 작은 나라였지만 목공의 뜻이 컸고,위치는 편벽하였지만 그의 행동은 발랐습니다.몸소 백리해(百里奚)를 등용하여 대부의 벼슬을 주었는데,죄인으로 묶여있는 중에 등용하여 사흘 동안 얘기해본 끝에 그에게 정사를 맡겼던 것입니다.이런 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비록 왕자가 되어도 마땅하며,그가 패업을 이루었다는 것은 오히려 작은 것입니다.’ 경공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 ‘아이다’ 오늘부터 올림픽경기장 공연/ 야외 오페라붐 계속될까

    ‘아이다’가 대성공을 거두어 야외 오페라 열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잠실 서울올림픽경기장에서 18일부터 20일까지 펼쳐지는 ‘아이다’는 지난 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된 ‘투란도트’에 이어 야외 오페라 붐을 일으켰다.‘아이다’에는 연출에 스테파노 몬티,무대감독에 안토니오 마스트로마테이 등 이탈리아 파르마극장의 스태프가 대거 참여했고,테너 주세페 자코미니,소프라노 마리아 굴레기나 등 실력파 성악가들이 캐스팅됐다. 특히 80억원 수준의 제작비는 국내 오페라 사상 최대 규모.100m에 이르는 무대부터 압도적인데다,1500명의 출연진에 코끼리 10마리와 낙타 6마리,말 55마리 등 70여 마리의 동물이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아이다’가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져 야외 오페라가 계속 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이번 공연에 마련된 객석은 한 차례에 5만여석.18일분 좌석은 17일 오전 현재 1만5000여석이 남아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공연전에 벌써 3만5000여석이 팔려나간 셈이니,놀랄만한 매표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성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상 초유의 60만원 짜리 VIP석이 1300여석,40만원 짜리 R석이 600여석,30만원 짜리 G석이 아직 2000여석이나 남아있는 것은 고민이다.객석 판매율은 19일과 20일도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견한 주최측은 내년 봄 같은 장소에서 더 큰 규모로 오페라 ‘카르멘’을 공연하겠다며 지난 7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제작발표회를 스페인에서 가졌다.그런가하면 9월 들어서는 원금의 70%를 보장하겠다며 두 차례에 걸쳐 ‘네티즌 펀드’를 모집했으나 모두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으로 ‘아이다’의 매표상황은 ‘한국적 야외 오페라’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18일 공연의 경우 5만원 짜리 B석은 9000여장이나 남았지만,3만원 짜리 C석은 일찌감치 매진됐다.그럼에도 C석이 없느냐는 문의가 줄을 잇자 주최측은 시야장애가 있을 수 있어 비워놓았던 스탠드의 일부도 판매하고 있다. 결국 오페라 팬들은 화려하지만,경제적으로 부담없는 야외무대를 원하고 있는 셈이다.사실 오페라가 화려하면서 값싸다는 것은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거품’ 혹은 ‘과장’을 제거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파르마극장의 거품을 한국인 유망주로 대체하고,코끼리·낙타를 앞세운 과장을 자제했을 때 야외 오페라도 우리 음악계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야외 오페라에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도 야외 오페라 지원세력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한편 기상청이 18일 서울·경기지방에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하고 있는 가운데 주최측은 이날 오후 4시 현재 비가 오면 공연을 21일로 순연한다고 밝혔다. 서동철기자 dcsuh@
  • [癌없는 세상]뇌암

    인구 통계자료에 따르면 뇌종양은 원발성의 경우 인구 10만명당 5∼15명,전이성은 8∼9명의 발생률을 보이는 질환이나,발생률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뇌종양은 두개골 안에서 발생하므로 다른 종양과 달리 조금만 커져도 뇌압을 상승시켜 생명을 위협하는 특징이 있어 조기 진단과 치료가 무척 중요하다.남녀간 발생률 차이는 없으나 수막종은 여성,수모세포종은 남성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뇌종양의 종류 뇌종양은 뇌조직이나 주변 구조물에서 발생하는 원발성과 폐암 등 다른 장기에서 발생했다가 혈류를 타고 뇌로 전파된 전이성으로 나뉜다.다른 장기로 거의 전이되지 않는 원발성은 양성과 악성으로 구분되나,전이성은 모두 암이다.단,수모세포종은 림프절,골수,폐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특성을 보인다. 양성 종양은 통상 수술로 완치할 수 있다.그러나 성장 속도가 느려 종양이 큰 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뇌수막종,신경초종,뇌하수체종양 등이 여기에 속한다.그러나 양성 종양도 뇌간(숨골)처럼 수술할 수 없는 부위에서 발생한 경우는 임상적으로악성으로 분류한다.종양세포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재발하기 쉽고 더러는 악성으로 변하기도 한다. 악성 뇌종양은 성장이 빠르고 주변 뇌조직을 침투해 자란다.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치료도 부작용없이 성장을 지연시키는 것이다.그러나 새로운 수술·치료기법이 많이 개발돼 일부 악성 뇌종양은 완치도 가능하다. ●원인과 증상 유전자 손상으로 세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진다.유전자는 선천적으로 손상받은 것일 수도 있고 환경인자가 손상을 유발하기도 한다.세포가 너무 빠르게 분열하고 이를 조절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종양이 발생한다.종양은 성장하면서 많은 산소와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데,종양세포가 스스로 주변에 새로운 혈관을 만들고,이 혈관이 종양을 더 빨리 성장시킨다. 흔한 증상은 두통으로 특히 아침에 심하며 구토를 동반하기도 한다.또 30세 이후의 간질 발작은 뇌종양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이밖에 성격 변화,시력 약화,울렁거림과 구토,언어장애,기억력 감퇴 등을 보이기도 한다.이런 증상을 보이지만 정신과,안과,소화기내과 등을 돌아다니느라 조기진단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또 운동중추에 종양이 발생하면 반신마비가 오며 뇌하수체종양은 갑자기 젖이 나오거나 생리불순,불임,성욕감퇴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진단에는 CT,MRI,PET 등이 필수적이다.최근에는 PET와 CT를 동시에 시행하는 ‘PET-CT’가 개발돼 더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치료 보통 수술,방사선,항암화학요법을 통해 치료한다.수술은 종양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이지만,종양에 접근하기 위해 두개골을 열고 탐색 수술을 했던 과거의 방법은 합병증이 많은 문제가 있었다.그러나 최근에는 종양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는 첨단 항법장치가 개발돼 탐색수술의 필요성이 줄었으며,따라서 합병증의 위험도 크게 줄었다. 스테로이드와 항경련제를 주로 사용하는 약물치료도 중요한 과정이다.스테로이드는 종양을 뇌의 부종과 염증을 치료해 수술 전후에 많이 사용하는데,장기간 사용할 경우 당뇨,비만,고혈압 등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하는 것이 문제다.항경련제는 간질 발작을 예방,치료하기 위해 사용한다. 암세포에 직접 작용하는 항암화학요법은 특히 소아 뇌종양과 임파종,희돌기교종에 효과가 있다.그러나 원발성 뇌암의 30% 정도만 효과를 나타내며,치료 전에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많은 환자들이 이 치료법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뇌종양은 항암제에 내성을 보이는데,최근에는 종양의 성장을 억제하는 타목시펜 같은 약물을 항암제에 내성을 가진 종양에 투여해 내성을 극복하기도 한다.그런가 하면 항암제를 함유한 웨이퍼를 종양부위에 삽입,천천히 약물이 작용하도록 하는 최신 치료법이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승인을 얻기도 했다.물론 이론적으로는 유전적 결함을 고치는 유전자 치료가 가장 탁월한 치료법일 수 있다.예컨대 암세포의 성장촉진 유전자는 끄는 대신 성장억제 유전자를 켜며,결함이 있는 감시체계를 정상화하고,면역기능을 강화하는데 획기적인 치료법이다.이런 치료법들이 동물실험에서는 효과가 입증됐으나 현실적으로 유전자를 종양세포에 전달하지 못해 실제로 환자 치료에는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 면역치료,목표독소치료,혈관신생억제치료,유전자치료,분화치료 등 실험적 치료법들이 선보이고 있으나 아직은 효과를 입증하지 못한 단계다. 이승훈 부원장 유헌 전문의 ■소아 뇌종양은 어떤병 신상훈 전문의 15세 이하의 소아기에 있어 뇌종양은 백혈병 다음으로 흔하다.다른 장기에서 전이된 경우를 제외한 원발성 뇌종양은 전체 소아 종양의 15∼20%를 차지하며,암으로 사망한 소아의 2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소아 뇌종양의 연간 발생률은 소아기 전체로 보면 100만명당 24.5명 정도이나,나이에 따라 발생률에 차이가 있어 5∼9세 때 빈발하다가 이후 점차 줄어든다.환자의 남녀 성비는 1.2∼1.6대 1 정도이나 정상적인 소아 인구의 성별 구성비와 차이가 없어 남자의 발병률이 더 높다고는 볼 수 없다. 소아 뇌종양은 주로 신경축을 따라 발생하기 때문에 뇌 척수액의 경로가 종양으로 폐쇄되면 두개골 내부의 압력이 올라가 두통,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대부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두통의 위치가 종양의 위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2세 미만의 아이는 두개골이 열려 있어 내압이 상승하기 보다 머리가 커지는 거두증을 보인다. 증상은 종양의 위치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예컨대 전두엽 종양은 반대측 팔의 운동장애나 반신마비,학습장애를,양측 전두엽 종양은 반신부전마비,지능저하,정서불안을,측두엽 종양은 기억·시야장애와 간질증상을 보이며,우성 측두엽 종양은 언어장애를 나타내는 식이다.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최근 염색체 이상이 주목받고 있다.진단은 대부분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으로 종양의 크기,위치와 주변 구조물과의 관계 등을 파악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아직까지 유효한 치료법은 수술이다.깊게 자리잡아 접근이 어려운 경우를 제외하면 치료의 첫 단계는 수술이며,수술을 통해 얻은 병리학적 진단을 토대로 항암 및 방사선치료를 시행한다.뇌종양을 가진 소아의 평균 생존기간은 53개월로 보고되고 있으나 최근 컴퓨터 공학을 응용한 정위적 수술기법과 부작용이 적은 항암치료제 등으로 생존기간이 늘어나고 있다.예컨대 악성 수모세포종의 경우 5년 생존율이 70%에 이를 정도로 치료 경과가 좋아지고 있다. ■도움말 조관호 박사 많은 사람들이 방사선치료를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마지 못해 한번 해보는 치료’쯤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방사선치료가 얼마나 발전했으며,별 부작용도 없이 종양 정복에 기여하는지를 안다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없다.최근에는 3차원 입체조형방사선치료법 등이 새로 등장했다.전산화 단층촬영이나 자기공명영상 등 첨단 영상과 컴퓨터를 동원,종양의 위치와 크기,모양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뒤 정상 조직을 피해 가면서 종양에 집중적으로 방사선을 투사하는 방법이다. 우리에게 ‘감마나이프 치료’로 알려진 정위방사선치료법도 주목할 만하다.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장 조관호 박사는 “뇌수술을 할 때 전신마취에 의한 부작용은 물론 수술 감염증,출혈이나 뇌 및 뇌신경 손상을 피할 수 있는 치료법”이라며 “이 치료법은 80% 이상의 뇌종양 환자에 대한 국소 제어에 활용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의료보험이 적용돼 저렴한 비용으로 시술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최근에 개발된 강도변조 방사선치료법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여러 방향에서 방사선을 투사하면서도 정상조직에는 강도를 줄이는 반면 치료해야 하는 종양에는 방사선 강도를 높여,이전의 어떤 방법보다 효과적으로 종양을 공격할 수 있다.조 박사는 “이 치료법은 종양이 중요한 조직에 가까이 있을 때 매우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수소핵(양성자)을 종양 치료에 이용하는 양성자치료도 있다.양성자는 질량을 가진 입자여서 신체 조직을 통과하면서 운동에너지를 잃고 멈추게 되는데,이 때 많은 방사선을 방출한다.바로 브래그 피크(Bragg’s peak)현상으로,이런 성질을 이용해 치료하는 기술이다. 조 박사는 “우리 암센터에서도 오는 2005년부터는 양성자치료법을 일반에 적용할 계획”이라며 “암 정복에 있어 방사선치료는 가장 넓고 깊게 활용되는 치료법”이라고 전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李.盧 집권능력 검증] ① 주요직책 인력운용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 등 주요 대선후보들에 대한 검증은 집권시 어느 정도의 역량을 발휘할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집권 청사진’이 정밀하게 유권자들에게 제시될 필요가 있다.이·노 후보의 집권시 주요 직책 인력운용의 밑그림과 리더십의 특색,그리고 정국운영의 방식 등을 미리 알아봄으로써 집권시 국정운용 역량과 스타일을 검검해본다. ★내각구성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지난 8일 소속 국회의원의 입각을 배제하겠다고 한 뒤로 기존에 나돌던 하마평이 쑥 들어갔다.당초부터 “이 후보의 스타일로 봐서는당내 인사보다는 외곽 인사들이 대거 기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터였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관심은 당 밖의 인물들에 쏠리지만,당내 인사들은 감을잡기 쉽지 않다고들 한다.한 당직자는 “이 후보의 인재풀이 워낙 방대한 데다 여러 그룹으로 나뉘었고,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탓에 당 사람들도 전체 규모나 면면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윤곽을 잡을 수 있다면당 국가혁신위원회나 국책자문위원,정책자문위원 그룹 등의 인물이다.여기에다 관련 분야의 당내 인사와 일부 현역 의원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이 후보 측근은 “내각 구성에 꼭 필요한 인물이있다면 의원 배지를 떼고 입각시키겠다는 뜻이지,정치인을 100% 배제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또한 “능력과 자질이 있다면 현 정부 인사도 중용한다.”는 원칙도 지켜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재 총리로는 박근혜·홍사덕·김용환 의원 등이 물망에 오른다.그러나 당밖의 참신한 인사의 전격 기용도 검토된다.국가정보원장에는 김기춘·윤여준 의원 등이 거론된다.외교통상부장관에는 이재춘 전 주 러시아대사,국방부장관은 최근 대거 입당한 예비역 장성들 가운데 한사람이 꼽히고 있다.통일부장관에는 송영대 전 통일원 차관과 이상우 전 서강대교수 등이 거론된다. 경제분야에서는 강만수 전 재경원차관,이영탁 전 총리실 행조실장,박영철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경제부총리 후보군에 올라 있으며,경제부처 장관에는 이한구 의원,김정국 전 예산실장,조일호 전 농림부차관,이희범 전 산자부차관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법무부장관으로는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차정일 전 특검 등이,문화관광부장관에는 신영균·이원창·강신성일 의원 등이대상이다.보건복지부장관에는 김종대 전 복지부 기획관리실장,여성부장관에는 이계경 미디어대책위 부위원장·손경희 최고위원 등이 물망에 오른다.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집권할 경우 조각(組閣) 때는 김대중 대통령 정부의문제점들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탕평 인사’에 주력할 것이란 게 노 후보측의 일치된 설명이다. 특히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구체적인 조각구상을 가다듬을 겨를이 없긴 하지만,노 후보는 틈틈이 조각에 대한 생각도 측근들에게 밝히고 있는 것으로 9일 알려졌다. 측근들이 전하는 노 후보의 조각 인선기준은 우선 능력이라고 한다.물론 정권 창출시 기여도를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지역 및 출신학교 안배 등이중요하게 고려될 전망이다.따라서 조각시엔 깜짝놀랄 인물들이 많이 포함될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조각 때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역시 국무총리다.노 후보도 책임총리 구상을 자주 밝히고 있다.공감대가 확산중인 ‘권력분산’에 대한 여론을 반영,현재의 총리보단 실질적 권한이 강화될 전망이다. 현재 민주당과 노 후보 주변에선 후보단일화의 용단을 내린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가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중이다.하지만 정 대표는 총리직 거론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따라서 이수성 전 국무총리도 대안으로 거론된다.의외의 인물 중용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경제부총리에는 노 후보의 신망이 두터운 민주당 강봉균 의원과 김진표 국무조정실장 등이 후보로 거론중이다.교육부총리에는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통일부 장관엔 조순승 전 의원이,외교통상부장관에는 유재건 의원 등이 각각 거론중이다. 이밖에 민주당 정세균 허운나 김효석 김택기 의원과 오종남 통계청장 등이경제부처 장관으로 거명중이다.또 김경재 임채정 추미애 조성준 김성순 이미경 박인상 의원 등은 본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유력한 사회·문화 분야장관후보직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춘규 이지운기자 taein@ ★당직인선 *한나라당 오는 19일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당분간 현행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선거 이후의 당 관리에도 효율적일 뿐 아니라 교체 요인 역시없을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우선 현재 최고위원들 가운데 선출직은 임기 2년짜리다.서청원 대표만이 1년 임기로 호선됐지만 무난하게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어쨌거나 내년 5∼8월 전당대회 이전까지 자리를 유지하게 된다.당에 변동 요인이 생긴다면 빨라도 5월 이후라는 얘기다. 어차피 새 정부의 출범이 2월말인 데다 당과 정부의 체제 정비의 필요성 등을 고려한다면,비선출직 최고위원들에 대한 인사도 굳이 당길 필요는 없지않느냐는 예상도 나온다. 이런 점에서 당직 개편의 필요성도 줄어든다.김영일 총장은 선거이후 당 살림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교체하기 어렵다.이규택 총무는 지난 5월 1년짜리 임기로 선출됐다.일각에서는 “여당이 되면 정책위의장직에 대한 교체요인이 생길 수 있다.”고도 하지만,‘일부 개편’을 단행할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거꾸로 얘기한다면 한나라당은 내년 5월 이후에는 급격한 세력 재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가설이 가능해진다.당의 많은 관계자들은 2003년 전당대회와 함께 당헌·당규가 바뀌어 집단지도체제에 일부 변형이 가해지고,지도부가 새로 선출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직에 당선될 경우라도 민주당은 차기 당권을 둘러싼격랑에 휘말려들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당안팎의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기때문이다.당내 역학관계 변화는 필연적으로 차기당권경쟁을 부채질할 전망이다.2004년 총선을 앞두고 있어 정치권 전체의 이합집산이 예상되고 있다.이와 함께 민주당이 올초 쇄신작업을 통해 당·정분리 원칙을 명문화했기 때문에 청와대의 당 장악력이 원천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주당은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차기 당권을 겨냥한 중진들의 치열한 세 및 명분싸움이 시작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한화갑 대표는 지난번 당내분과정에서 보여준 어정쩡한태도 때문에 책임론에 휘말릴 가능성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총선에 대비한 조기전당대회 주장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현 당권파와 노 후보 정권창출에 공을 세운 세력간의 일전이 예상된다.김원기 후보정치고문과 정대철 선대위원장 등이 한화갑 대표와 맞설 대항마로 유력하게거론중이다. 이와 함께 탈당파들이 노 후보를 흔들어댔을 때 중립적인 위치에서 중심잡이 역할을 한 한광옥 최고위원도 차기당권 유력경쟁자로 꼽힌다. 당권경쟁이 결론나면 그에 따른 당직의 전면개편이 예상되지만,정치권 전체가 정계개편에 휘말릴 수도 있다. 이춘규 이지운 기자 ★청와대비서진 *한나라당 초대 비서실장은 아무래도 정치인 출신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다.초기에 당과 정부간 원활한 조율의 필요성이 절실할 것이라는 점에서다. 신경식,윤여준 의원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서정우 고문의경우 후보를 워낙 잘 아는 데다 ‘정치색이 없으면서도 정치를 아는’ 까닭에 거명되는 듯하다. 당에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의 청와대 입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경제특보나 정책기획수석직이 예상된다.이 후보의 특보단 중에서도 상당수기용될 전망이다. 이종구·양휘부 특보는 공보수석에,금종래 특보는 정무수석 등에 거론된다.정보통인 이병기 특보는 이모저모로 쓰임새가 많아 보인다.이 후보의 ‘바깥 살림’을 맡아온 이흥주 특보는 총무관련 업무를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이한구 의원은 내각이든 청와대든 경제 분야에서 활용될 여지가 많다.세무전문가인 김호복 특보나 이성희 특보 역시 각각 경제분야와 정무분야에서 기용될 전망이다. 김영선 의원 등 일부 젊은 의원들도 의원 배지를 떼고 청와대로 불려갈 가능성이 높다.조윤선 대변인과 나경원 특보 등도 각각 공보쪽과 기획파트에서 일이 주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박호성 보좌역 등 젊은 보좌역들은비서관으로의 대거 이동이 유력해 보인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는지의 바로미터는 개혁성이라 할 수 있다.노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경우 개혁성이 청와대 비서진 인선의 잣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의 ‘손발’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 비서실장에는 신계륜 후보비서실장과 김종인 전 보사부 장관이 거론되고 있다.신 실장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와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3차례에 걸친 협상을 무난히 해결한 1등 공신이다.특히 협상과정에서 노 후보의 뜻을 정확히 반영하는 등 현재 노 후보와 호흡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 인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김 전 장관은 개혁적인 성향에 행정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이 초대 비서실장 후보로 꼽히는 이유다. 정책수석이나 공보수석으로는 김한길 선대위 미디어본부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이번 대선에서 TV토론 등 미디어 선거전을 총지휘하면서 ‘새로운 정치’의 면모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공보수석의 ‘0’순위로 꼽힌다.외교안보수석에는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경제수석에는 윤원배 숙명여대교수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 비서관이나 행정관급으로는 안희정,서갑원,이광재,김관수씨 등 젊은 개혁 성향의 인물들의 중용이 예상된다.노 후보와 오랫동안 동고동락,눈빛만 봐도서로를 아는 ‘젊은 동료’라는 점에서다.현 청와대팀 중 비정치적 분야나정무·민정 등 일부 비서관이나 행정관 등은 잔류할 가능성도 있다. 이지운 김재천 기자
  • 형제자매·사촌 동의 장기기증 할수있다

    내년 2월부터 형제·자매나 사촌의 동의만 있어도 장기기증이 가능해진다.또 각막의 경우 장기이식 병원에서 이식대상자를 직접 선정할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내년 2월부터 시행된다고 4일 밝혔다. 개정 법률에 따르면 배우자와 부모 등 선순위자 2명의 서면동의가 있어야장기를 기증할 수 있던 기존 규정을 완화해 선순위자가 행방불명 등 부득이한 사유로 동의할 수 없을 때는 차순위자(형제자매,4촌)의 동의만으로도 가능토록 했다. 또 신속한 뇌사판정을 위해 판정위원 3분의2가 출석해 만장일치로 판정이 이뤄지는 뇌사판정위원회의 위원수를 7∼10명에서 6∼10명으로조정,4명의 위원만 출석하면 뇌사판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노주석기자 joo@
  • 한평생 사회사업 몸바친 지역의 ‘큰별’

    경남 창녕 출신으로 평생 고향과 조국을 위해 사회사업과 육영사업에 몸바친 손무상(孫戊尙)옹이 93세를 일기로 별세하자 고향민들이 장례를 치른다. 고인이 지난 8일 고향집에서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민들은 ‘고암면민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장례추진위원회(金榮天 면장)를 구성했다. 면민들은 당초 군민장을 추진했으나 가족장을 고집하던 유족들을 어렵게 설득했다.장례식은 12일 오전. 손옹은 1909년 고암면 중대리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한학을 독학하다 24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공장 직공으로 일하다 부지런하고,성실한 생활태도를 눈여겨 본 일본인 사업가의 도움으로 6년 만에 교토(京都)에서 자그마한 염색공장을 운영하게 됐다.특유의 근면함과 신용으로 사업은 순풍에 돛단 듯날로 확장돼 50년에는 4개 회사를 거느린 중견 기업인으로 성장했다. 일본으로 건너간 지 28년 만인 지난 57년 귀국한 고인은 서울에 섬유회사와 염직공장을 설립,조국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이때 고향을 찾은 그는 한국전쟁의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아가는 고향민들의 참담한 생활상을 보고 고향돕기에 나섰다.손옹은 당시 ‘후생주택’100가구를 건립해 이들을 입주시키고,농경지 24만여㎡를 사들여 경작하게 했다. 또 농촌근대화에는 전기가 필수적이라고 생각,창녕읍에서 고암면까지 6㎞에 이르는 전기 가설비를 선뜻 내놓았다. 고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육영사업에 뛰어들어 많이 배우지 못한 한(恨)을 풀었다.69년 고향에 유치원을 설립한 데 이어 고암중학교와 창녕종고(현창녕공고의 전신)를 설립해 후진양성에 나섰다.78년에는 중야장학재단을 설립,우수 기술자에게 외국 연수기회를 주는 등 인재발굴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손옹은 이같은 공적을 인정받아 7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며,94년에는 창녕군민대상을 받았다. 고향 면민들은 “손옹이 별세한 것은 지역의 큰별이 떨어진 사건”이라며“자신에게는 엄격했지만 고향돕기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은 큰 어른이었다.”고 회고했다. 창녕 이정규기자 jeong@
  • 대구 3·4위전 시야장애석 오늘부터 6000여장 판매

    ‘달구벌에서 화려한 피날레를’ 29일 한국-터키의 월드컵 3,4위전 준비에 분주한 대구시는 이날 전 세계에 대구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초대형 태극기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펼치기로 했다.가로 60m,세로 40m 크기의 이 초대형 태극기는 지난 10일 대구에서 한국-미국전에 처음 선보인 이후 월드컵 응원전의 상징처럼 돼 왔다. 시는 또 대구야외음악당에서 대형 축하쇼와 외국인을 위한 특별잔치 등을 열기로했다. 월드컵조직위는 3,4위전 입장권이 지난 24일 완전 매진됨에 따라 시야장애석 6000여석을 확보,28일부터 인터넷이나 경기장 매표소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월드컵/8강전 3509장 오늘 판매

    광주에서 22일 열릴 한국-스페인 8강전 입장권 3509장이 21일 오전 9시30분부터 인터넷판매사이트(http:///ticket.2002worldcupkorea.org)와 전화(1588-0000)를 통해 추가 판매된다.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는 20일 입장권 추가 판매계획을 확정,해외 반환분 717장과 시야장애석 2792장 등을 추가 판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가격은 일반석 1등급 38만 4000원,2등급 25만 6000원,3등급 16만원이며,시야 장애석은 1등급 20만원,2등급 15만원,3등급 10만원이다. 임병선기자
  • 국내 최고 論語목간 발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논어(論語) 관련 사료로 추정되는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이 경남 김해에서 발견됐다. 부산대 박물관은 지난해 4,5월 시험발굴조사를 거쳐 지난5월부터 발굴조사중인 경남 김해시 봉황동 408일대 저습지에서 논어 목간을 발견했다고 6일 밝혔다. 길이 20.9㎝에 폭 1.5∼1.9㎝의 4면으로 이뤄진 목간의각 면엔 논어의 제5편 공야장(公冶長) 구절이 먹으로 쓰여있었다.국립중앙박물관의 적외선 촬영을 통해 53∼57개 글자가 확인됐다. 목간은 그동안 경주 안압지와 백제 궁남지터, 함안 성산산성 등에서 발견됐지만 대부분의 글자가 정확하게 판독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대 박물관측은 “이번에 발견된 목간은 함께 출토된토기로 미뤄 대략 6∼8세기 경으로 추정돼 국내에서 가장오래된 것”이라며 “국내 최초의 고문자 자료이며 당시의문화적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밝혔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씨줄날줄] ‘他虐史觀’

    2002년 일본 중학교용 역사·공민 교과서 검정문제가 국제여론의 도마에 올랐다.일본내 극우단체가 일제의 갖은 악행을 정당화하는 교과서로 검정 신청을 하면서부터다.‘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란 단체가 만든 교과서는 근린국가 침략과 식민지배 등을 합리화하고 있다.이른바 ‘자학사관(自虐史觀)’을 극복한다면서 국수주의적 역사관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셈이다.도대체 “‘대동아 전쟁’은 침략이 아니라 동아시아 안정을 위한 정책”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한국·중국 등 인접국의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도 일본정부엔 쇠귀에 경읽기라는 점이다.마이니치신문은 1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우익진영이 신청한 교과서 수정판을 이달말 검정에 합격시킬 방침이라고 보도했다.급기야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이같은 왜곡조짐에 우려를표명했고,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세계화는 세계가 동질화로 간다는 것만을 뜻하진 않는다.그 과정에서 국수주의가 곳곳에서 발호하는 경향도 있다는 게 석학들의 지적이다.세계화로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여러모로 선진화된 독일에서조차 네오(新)나치즘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게 현실이다.하지만 같은 패전국이면서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인식은 천양지차다.독일은 일본과 달리 교과서 왜곡 따위의 국수주의 득세를 막는 사회적 메커니즘,즉 여론주도층의 양식과 반(反)나치법 등 제어장치가 있다. 물론 일본내에도 양심은 살아 있다.엊그제 도쿄대 교수 16명이 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는 성명을 낸 사실이 그 징표다. 하지만 그런 외침은 ‘새역사를 만드는 교과서 모임’과 같은 ‘카인의 후예’들의 큰 목소리를 잠재우기에는 미미하다.일본 지도층은 “교과서에 거짓말을 쓰는 나라는 망한다”는,자국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경고’를되새겨야 한다. 일본 스스로 역사인식을 글로벌 기준에 맞추지 못한다면 주변국들이 이를 깨우쳐 줄 필요가 있다.이웃을 괴롭히고도 반성하지 않는 ‘타학사관(他虐史觀)’을 바로잡기 위해서 힘을 합쳐야 한다는 뜻이다.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의욕이나 문화 개방공세에 대해 인접국들이 공동대응하는것도 한 방법일 듯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
  • [사설] 北측 성실성 촉구한다

    이달 들어 각종 남북 회담 일정과 교류사업이 겉돌고 있다. 북한은이미 합의한 사항에 대해 납득할 만한 사유 설명도 없이 이행을 천연시키고 있다.내달 2일로 예정된 제2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에 앞서지난 13일 실시하기로 한 명단 교환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게 대표적사례다.또 시범적인 이산가족 생사 확인에도 불응하고 있다.급기야장충식(張忠植) 한적 총재가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까지 했으나 가타부타 반응조차 없다.때문에 11월말까지 남북관계가 소강국면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산가족 상봉 등이 지체되는 것은 인도적 견지에서 그 자체로도 안타까운 일이다.더욱 우려할 만한 일은 이에 대해 북측이 뚜렷한 해명이나 대체 회담 날짜 통보조차 없어 불신의 싹을 키우고 있는 점이다.물론 여러 경로로 이런저런 약속 불이행의 사유가 전해지고는 있다. 북한은 지난 18일 갖기로 했던 제2차 남북경협 실무접촉 하루 전날‘내부사정’으로 어렵다고 통보해 왔다고 한다.내부사정이란 아마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평양행 정지작업인 올브라이트 미 국무부장관의 방북 등 굵직한 대내외 일정을 가리키는 것같다. 우리는 남북관계가 일시적으로 지체될 때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남북 및 북·미 현안이 한꺼번에 폭주하면서 생기는 대남 또는 대외 분야 ‘대화 일꾼’ 부족이나 행정력 미비 현상 등 북한의 특수 사정을감안했을 경우다. 그러나 최근 남북관계의 지체를 이같은 북측의 ‘기술적’ 사정으로만 돌리는 것은 설득력이 적은 것같다.그래서 북측이 남북관계에 대해 의도적 속도조절에 나서고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은 26일 지난달 말 제3차 장관급회담에서남측의 각종 남북협력 사업 제안에 북측이 ‘감속’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자세가 기왕의 남북관계 개선을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미국·일본과의 협상에만 주력하려는 신호가 아니길 바란다.남북관계를우회하는 북·미, 북·일 관계의 진전은 한계가 있고,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음을 북측은 알아야 한다.그런 점에서 한·미·일 3국 외무장관이 25일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역이 남북한이라는점을 재확인한사실에 주목한다.우리는 이같은 한반도 문제의 남북 당사자 해결원칙이 극히 당연하다고 보며,앞으로 북한과 미·일의 관계 정상화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존중돼야 마땅하다고 판단한다. 북한은 남한 정부의 입지를 어렵게 하는 약속 불이행이 북측 스스로에게도 손해임을 인식하기 바란다.남북간 신뢰에 금이 가게 해 결과적으로 남북 협력이나 대북 지원을 지지하는 남쪽 국민들의 여론까지 나쁘게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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