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야장
    2026-02-22
    검색기록 지우기
  • 식당
    2026-02-22
    검색기록 지우기
  • 영대
    2026-02-22
    검색기록 지우기
  • 구청
    2026-02-22
    검색기록 지우기
  • 리플
    2026-02-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8
  • [단독] 140살 느티나무 마을 수호신 누가 죽였을까

    [단독] 140살 느티나무 마을 수호신 누가 죽였을까

    “이렇게 큰 느티나무가 완벽하게 죽어가는 건 처음 봤어요. 뿌리 깊숙이 구멍 14개를 뚫어 독극물을 투입한 것 같습니다.” 임근석 나무의사는 경기 김포시 통진읍 귀전3리 경자매마을에서 140살 마을 보호수가 고사된 현장을 보고 이렇게 진단했다. 느티나무 고사현상을 처음 신고한 마을 동네 주민 조모(68)씨는 경자매마을 뒷산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예전부터 우리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동네뒷산은 ‘영험한 산’으로 불렸다. 30여년 전 어느날 인근 하성사람이 죽었는데 그 시신을 이곳에 몰래 야장했다. 이후 청·장년들 서너명이 별 이유없이 잇따라 죽어 갔다. 그래서 동네회의를 소집해 영혼을 달래려고 쌀과 돈을 걷어 돼지 200근짜리 1마리를 잡아 3박4일 굿까지 했다. 예전에 동네어르신들은 ‘이 산 흙을 한 삽이라도 건드리거나 파내면 큰일 나는 산’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문제의 고사한 느티나무 자리 바로 앞에는 예전부터 민가 한 채가 있었다. 그 집은 위치상 수호신 느티나무 뿌리가 시작되는 곳인데, 이곳에서 집주인들이 잇따라 죽어 나갔다. 영험한 마을 수호신을 함부로 건드렸다는 얘기다. 한 사람은 농약을 먹고 자살했고 또 한 사람은 목을 매달아 죽었다. 이후 또다른 인천사람이 이 집에 와 살다가 멀쩡했던 부친이 뒷산에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또 그 어머니는 화장실에 가다 넘어져 사망했다. 그후 이 집을 허물고 바로 옆에 새로 주택을 지었는데 이상하게 들어오는 사람마다 특별한 이유없이 죽고 사업이 망해 이곳을 떠났다. 현재 집주인은 7년여 전 이사왔는데 어느날 무당을 서너명 데리고 와서 3~4일간 주야로 굿을 하기도 했다. 2년전쯤 아내가 돌연 사망했단다. 현재는 집주인이 발길을 끊고 동네에 거의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느티나무가 말라죽었다. 이 느티나무를 현장에서 확인한 임근석 나무의사는 인위적으로 독극물을 투여했다고 판단했다. 그는 “독극물 종류는 ‘글리포세트’ 약성분으로 전멸성 제초제인 ‘근삼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위적으로 외부에서 죽였다는 증거는 독극물 주사 구멍 14개를 뚫어 주입한 흔적”이라고 덧붙였다. “아마 범인은 해당 느티나무 자리의 토지와 관련된 이해관계인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다른 한 주민은 “김포에서 경관이 여기보다 좋은데가 없을 정도로 평안하게 살아왔던 마을이다. 그런데 이전 시장때 허가해 최근 영험한 동네 뒷산을 다 깎아버리고 공장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다”며, “누군지 모르지만 140살 된 마을보호수를 고사시킨 이후 동네사람들이 예전 일을 떠올리며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또 다른 주민은 “이번에 독극물 고사사건을 유야무야로 넘기면 훗날 김포시 전역에 있는 마을보호수들이 수난을 겪을 수 있다. 왜냐하면 보호수는 모두가 개인 소유지 땅에 있어 우리마을처럼 너도나도 보호수들을 없애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는 보호수의 점유토지를 보상해줘 개인재산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시에서 배려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이 주민은 “보호수 느티나무에 독극물 주입해 고사시킨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다른 지역 보호수들도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포시 도시녹화팀은 지난 4월 동네 주민들로부터 느티나무 보호수가 죽은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을 방문했다. 시 관계자는 “나무시료를 채취해 서울대학교에 잔류농약 검사를 의뢰했는데 농약성분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독극물을 주사했을 경우 6개월 내 잔류농약이 나타나는데 이 나무에서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잔류농약이 증발돤 것으로 추정된다. 시는 최종 사망 진단이 나오면 경기도 담당과에 보내 보호수 해제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현재 김포에는 월곶면 17그루, 하성면 15그루, 대곶면에 10그루 등 모두 66그루의 보호수가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김포경찰서 관계자는 서울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얼마전 김포시청 도시녹화팀에서 느티나무 고사와 관련해 수사 요청이 왔다”면서 “오늘 중 귀전리 현장에 나가 나무 상태를 확인보겠다”고 말했다. 현재 고사한 느티나무 일대에 주택과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집주인은 부동산을 매각하려고 매물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사진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이중섭·박수근 위작 유통, 매우 심각…검증 없는 레조네, 위작이 진품 둔갑하는 통로 우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이중섭·박수근 위작 유통, 매우 심각…검증 없는 레조네, 위작이 진품 둔갑하는 통로 우려”

    최명윤 이사장이 말하는 근현대 미술 거장의 ‘위작 감정’“이중섭, 박수근이 한국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이미 나와 있는 책을 정리하는 수준의 ‘카탈로그 레조네’(작고한 작가의 작품 전체를 사진으로 싣는 도록·이하 레조네)는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기왕에 나와 있는 수십권의 책을 단순 정리하는 레조네는 왜 거액을 들여서 만들어야 하느냐 말입니다. 특히 정부가 나서서 이들의 레조네를 만드는 것은 결단코 반대합니다. 그런 것은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 이중섭이나 박수근 작가의 기념재단이 할 일이지요.” 미술계에서 최근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의 카탈로그 레조네 제작 사업에 대해 미술 감정 및 문화재 복원 전문가인 최명윤(70) 한국미술과학연구원 이사장은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이중섭·박수근 뿐만 아니라 이우환(82) 등 한국 근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 위작 문제와 관련해 ‘과학적 감정’을 제시해 왔다. 이에 미술계 일부는 미운털이 박힌 것처럼 그를 탐탁잖게 본다. “레조네, 정부 아닌 기념재단 사업과거 출판 도록 작품, 진위 논란 많아레조네 게재작, 명확한 근거 입증해야”최 이사장은 “레조네가 자칫하면 위작을 진품으로 인정하는 통로가 되고, 정부가 만든 레조네에 실린 위작은 정부가 진품으로 보증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라며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레조네라고 하면 거기에 실린 그림들에 대해 명확한 근거와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먼저 출판된 자료가 있어서 게재한다는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먼저 출판된 자료의 그림이 박수근 진품이라는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지금도 진위 논란이 되는 그림도 많은데….” 수개월간 인터뷰를 조른 끝에 지난 24일 서울 성북구 개운사길에 있는 한국미술과학연구원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은 화학 실험실처럼 약품과 물감, 유리병으로 가득 차 있다. 다른 벽면엔 캔버스에 노랑 물감을 묻혀 걸어둔 게 보였다. “이게 뭐냐.”라고 물어보니 그는 “시장에 나온 물감을 종류별로 그림을 그려두고 먼지도 날아드는 일반적 실내에서 얼마나 빨리 굳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품 사진은 찍지 말라고 했다.그러면서 레조네 제작을 반대하는 이유를 계속 말했다.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 사이트에는 박수근, 이중섭 카탈로그 연구팀이 진행한 연구 결과물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공개된 박수근의 자료를 보면 1953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출품작으로 소개된 그림의 경우 국전에 출품됐다는 참고자료를 찾아볼 수 없고, 또한 박수근 사후 20주년, 30주년 전시기념으로 제작된 화집에 실린 기록만을 진품의 근거로 제시한 경우도 있습니다. 박수근 사후 만들어진 화집의 예를 들면 전시회 도록에는 200여 점이 실려 있지만, 실제 전시공간에는 불과 30~40점밖에 걸릴 수 없어 전시회 도록에 실린 그림들에 대한 검증절차가 꼭 필요합니다.” 그의 설명은 계속됐다. “현재 진행된 레조네 사업은 과거의 모든 전시화집에 실린 그림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선행 연구결과로 채택되어 있어 박수근의 진품으로 세탁하는 통로로 악용될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또 현재 카탈로그 레조네 사업은 공식적으로는 끝났으나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할지에 대한 답이 없는 상태입니다. 어디, 거장들의 작품이 보통 가격입니까. 레조네를 만들어야 한다고 기를 쓰고 주장하는 이들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레조네 용역비로 정부가 댄 돈도 세금인데….” “미술계 싸움닭?…먼저 시비 걸지 않아위작 감정에 ‘과학적 감정’…희비 엇갈려검경 감정의뢰에 답할 뿐…이게 나의 일”엄정한 위작 판별로 그에게 미술계의 ‘싸움닭’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그는 “쌈닭? 관심 없다”고 했다. “제가 먼저 어떤 작품에 대해 진위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화랑에서 가짜 그림을 팔고 있다고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그들이 뭘 팔든지 관심이 없어요. 검찰이나 경찰의 감정의뢰가 오면 제 나름의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검증한 결과를 수사기관에 넘겨줄 뿐입니다.” 그러면서 “나를 욕하고, 씹는 사람 절대 대다수는 한 번도 나를 만나 보지 않았고, 내가 어떻게 감정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내가 먼저 시비를 걸지 않는데 왜 싸움닭인가. 그러나 걸어오는 싸움(작품 진위 논쟁)에 대해선 물러서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의 책상 뒤에 죽도와 목도가 보였다. “이런 게 왜 여기 있느냐”라고 묻자 “건강을 위해 검도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어서 젊은 사람을 당할 수가 없어. 가만있다가 상대가 죽도를 치켜들고 들어올 때 재빨리 반격하지.” 검도 기술 설명에 위작 논란과의 싸움이 연상됐다. “작품 진위 판별에는 손해 보는 사람이 있고, 이익 보는 사람도 생기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 모두 다 나를 좋아하겠어요.”이중섭·박수근의 작품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다. 가히 ‘국민 화가’로 부를만하다. 최 이사장에게 위작 유통이 얼마나 심각하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는 한참을 말하지 않다가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매우 심각”이라고 짧게 말했다. ‘요즘 유통되는 작품 과반이 위작이냐.’라고 직설적으로 묻자 그는 “박수근은 더 심각하다”고 에둘러 답했다. 그리곤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며 입을 꾹 닫았다. 이중섭·박수근 화백 작품 2800여 점이 모두 위작이라는 대법원의 최종 결론이 2017년 났다. 이와 관련해 그는 2005년부터 12년 동안 지난한 싸움을 해왔다. 한국 미술계 사상 최대의 위작 스캔들이 밝혀지는 데에는 그의 감정결과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의 ‘과학적 검증’에 대해 물어봤다. “내가 가진 인문학 지식과 과학 기법을 합쳐서 가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판단해서 ‘진짜다’, ‘가짜다’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가짜라고 판단을 했으면 왜 이게 가짜인가에 대해 객관적인 이유를 대야 하는데 그럴 때 과학 기기의 도움을 받습니다. 눈으로 보고 말로 설명해도 충분하지만, 과학 기기를 써서 동질성을 확인시켜주면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잖아요. 언제까지나 ‘척 보니 좋아’, ‘척 보니 진품 맞아’ 이런 것 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가자는 것이고, 그렇게 노력하자는 겁니다.” “‘척 보면 좋아, 진품 맞아’ 하지 말고과학 기법 동원해 객관적 입증 노력감정 기법, 위조범 탓에 메모하지 마라”위작 감별에 동원되는 기기가 질량분석기, 원소분석기, 시편제작기, 고배율 현미경 등이라고 했다. 이런 고가의 기기를 갖출 수 없어 일부 전문기관과 협약을 맺고 있다고 했다. 설명이 계속됐다. “그림이 세월의 흐름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노후화와 진품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급속한 인위적 노후화에는 차이가 납니다. 액자의 변형과 스타일, 못에 쓴 녹, 캔버스에 낀 먼지, 물감의 상태 …. 그래도 첨예하게 대립하면 소장자와 이해 당사자의 동의 아래에 그림의 아주 일부를 떼어내 조사합니다. 그러면 캔버스 조사뿐만 아니라 작가 특유 습관이 나옵니다. 위작범은 바깥으로 드러난 색깔만 따라하니 적발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분석 기법이 새나가면 위작범에게 피해갈 길을 알려주는 것”이라며 메모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국과수가 위조 서명을 감별하듯 화가 특유의 필압(筆壓)도 분석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감정 기법을 설명하면서 쓰지 말아 달라고 세 번 이야기했다.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알려줘도, 일반인에겐 입도 벙긋하지 않습니다.” 그는 감정 결과를 수사기관에 “위작임” “위작으로 판단됨” “감정불가” “진품”으로 회신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박수근은 가난한 화가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수근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문짝에 거적때기만 있어도 집이라고 하던 시절에 서울 숭인동에 기와집을 샀고, 1963년 전농동에 2층 양옥집을 사서 이사했습니다. 이게 박수근이 가난했을 것이라는 위작범의 생각과 내가 보는 박수근에 대한 생각의 차이점이자 위작 감정의 시발점입니다.” 그는 쉼없이 말을 이었다. “이중섭도 마찬가지로 돈이 없어서 담뱃종이에 그림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표현을 위해 담뱃종이를 쓴 것이라고 봅니다. 종이 살 돈이 없어 장판지 찢어서, 아무 종이나 막 찢어서 주야장천 그렸다는 이야기는 웃기죠. 대부분의 담뱃종이 그림에는 이중섭이 서명하지 않았거든요. 다음에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소품 스케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요게 재미있으니깐 전시할 때 몇 개 담뱃종이에 그려낸 것이 있습니다만. 화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 겉모습만 보고 따라 그리니 위작이 금방 들통나지요.”사무실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한쪽 벽면에 가위, 펜치, 드릴, 핀셋, 줄톱 등의 공구가 빼곡히 걸려 있었다. 감정을 의뢰받은 그림의 액자를 해체할 때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책상 뒤 작은 서가에는 CD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동안 분석했거나 감정했던 미술, 복원했던 고미술품의 자료와 감정 및 복원 과정을 담아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위작 다툼 상대와 관련해 “매너가 좋은 최고의 화상에 유명 대학교수와 같은 일류 평론가, 예리하게 파고드는 변호사가 붙은 거대한 카르텔 같은 집단”이라고 평했다. “위조범, 작가에 대한 충분한 이해 부족자연적 노후화, 인위적 급속한 노후화 차이” 왜 그림 진위 감별 업무를 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게 나의 일”이라며 “대학원에서 작품평가방법론, 감정방법론 이런 것을 가르치는데, 그럼 난 뭘 해야 하나요.”라고 되물었다. “감정을 하지 말고, ‘입 닥치고 있으라’라는 것이겠지만 난 그들에게 오히려 ‘나쁜 짓을 하지 말든지, 걸리지 말든지 하라’고 역으로 말합니다. 경찰이나 검찰에 걸려 압수된 물품에 대해서는 검경은 진위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압수를 당하지 않았으면, 검경이 나한데 안 물어볼 거잖아요.” 그가 ‘과학적 감정’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박수근, 이중섭 대규모 위작사건’과 박수근의 ‘빨래터’ 작품이다. 박수근의 ‘빨래터’는 서울옥션이 2007년 5월 경매에서 판매한 작품으로 45억 2000만원에 낙찰됐다.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격주간지 미술잡지 ‘아트레이드’가 2008년 1월 창간호에서 ‘대한민국 최고가 그림이 짝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제의 작품이 위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빨래터’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의 20명 이상의 위원이 진품이라고 한 작품을 그는 과학검증을 통해 확인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법정까지 갔다. “법원의 주문은 ‘원고의 모든 청구는 기각한다. 피고의 재판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입니다. 또 대법원에 사건검색을 하면 사건 일반 내용에 원고 패소로 확인됩니다. 그런데 대다수 일반인은 문제의 빨래터가 법정에서 ‘진품이라고 추정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잘못 알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는 홍익대 미대를 졸업했다. 그의 부친은 1940~1960년대 서울에서 몇 곳 안 되는 화방 가운데 두 곳을 운영했다. 최 이사장은 어려서부터 화방 심부름을 많이 하면서 찢어지고 물감이 엉겨붙어 실려 온 ‘사고 작품’을 많이 봤다. 미대생이어서 작품 손보는 일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작가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보존과학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대학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 프랑스 8대학 조형미술대학원, 랄페르복원기술연구소에서 복원기술을, 고등장식미술학교인 아르데코에서 벽화를 청강생으로 접했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미술품이나 문화재 복원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 “훼손된 작품을 복원하는 것은 작품에 사용된 재료를 분석하고, 훼손 요인을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훼손 요인을 분석하는 상태조사 방법과 작품의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 진행하는 과학적 분석 방법은 일맥상통하기에 그림 감정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노련한 전문가 사후 감정 어렵다는 건 오해미술재료 기술사 정리 중…정확히 감정 가능”2016년 문제가 된 원로 작가인 이우환 작품 3점에 대해서도 그는 “위작”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정작 작가인 이우환은 “내 작품이 맞다”고 했다. 문제의 작품은 1978년, 1979년에 그린 것으로 돼 있다. 법원도 모사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최 이사장은 문제 그림의 캔버스 재료의 제작기술을 토대로 2010년대 제작된 것임을 입증해 보여줬다. 이런 최 이사장에게도 난감할 때가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어떤 그림의 진위를 밝혀달라고 합니다. 그 작가에 대한 비교 대상의 그림도 없이 말입니다. 저도 답답합니다. 그래서 ‘미술 재료 기술사’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서양화가 도입된 지 100년 남짓합니다. 초기의 30~40년은 작품 수도 적고 하니 다음으로 미루고, 5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60~70년 정도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두꺼운 바인딩 파일을 가져와서 쑥 내밀었다. 열어보니 물감, 캔버스 등의 실물 일부가 표본으로 붙어 있었고, 연도 작가 등이 쓰여 있었다. 작가들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시작한 연도, 재료를 구입하는 곳, 어떤 미술 재료를 사용하는지를 취재해 모은단다. “재료기술사는 개인이 하기에는 버겁지만 시작한 일이니 앞으로 10~20년쯤 뒤에는 완성될 것으로 봅니다. 일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소장자들은 현재 위작 감정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죽고 나면, 감정이 어려울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재료 변천에 대한 작가별 과학재료 기술사가 정립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감정할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니 저녁 시간이 되었다. 감정 뒷이야기를 더 들을까 해서 같이 저녁을 하자고 했더니 최 이사장은 “검도 승단 심사에 참석해야 한다”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6시간의 핵실험장 폐기 퍼포먼스... 외신 기자들 “폭발에 나무 관측소 산산조각”

    6시간의 핵실험장 폐기 퍼포먼스... 외신 기자들 “폭발에 나무 관측소 산산조각”

    지난 24일 오전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북한 핵실험장 관계자가 소리쳤다. “촬영 준비됐나.” “3, 2, 1…” 굉음과 함께 2번 갱도가 폭파됐다. 이어 안쪽에서 두 번 정도 폭음이 울렸다. 15초 뒤 관측소가 폭발하면서 짙은 연기가 계곡을 뒤덮더니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 참관을 보러 모인 국제기자단 30명 눈앞에서 북한의 핵실험장이 사라졌다.◈기차 내려 1시간 가량 이동 기자단은 지난 23일 원산을 출발한 지 약 12시간만인 24일 오전 6시 15분 길주군 재덕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안내원을 따라 버스에 올라타 한시간을 달린 끝에 풍계리 2번갱도 입구에 도착했다. 재덕역부터 풍계리까지는 고작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듯한 길이였고, 핵실험장으로 가는 초입에 1층짜리 흰색 페인트된 집이 수십채 있었지만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오전 8시 19분쯤 2번 갱도입구에 도착하자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을 포함해 약 20여명의 북측 관계자가 취재진을 맞이했다.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은 폭파전 브리핑을 통해 “시험장에 있는 모든 시험 갱도들을 폭발의 방법으로 붕락시키고 갱도 입구들을 완전 폐쇄하며 모든 관측소들과 지상 구조물들을 철거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고 소개했다.그러면서 1번으로 표기한 동쪽 갱도는 2006년 첫 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후 폐기시켰다고 전했다. 기자단은 2번과 4번갱도를 각각 둘러본 후 2번갱도 폭파 장면을 보기위해 서쪽산 중턱(해발 약 1300m)에 위치한 간이 관측소로 올라가 왼쪽 45도 각도에서 2번 갱도를 바라봤다. 11시쯤 북측 관계자의 카운트다운 후 굉음이 울렸다. 2번 갱도가 폭발하는 순간이다. 안쪽에서 두 번 더 폭음이 울리고, 이어 관측소가 푹발했다. 폭파가 끝난 후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는 “오전에 예견했던 북쪽갱도 입구와 측정실 폭파가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다”며 “전문가에 따르면 폭발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갱도 입구는 완전히 막혔다”고 소개했다. 폭파 직후 일부 기자들은 갱도를 답사했는데, 흙, 바위조각 더미가 무너져 내리면서 입구가 완전히 봉쇄된 것을 확인했다. 다만 2번 갱도 관측소 뒤편 기자단을 위해 특별히 만들었다는 화장실은 건재했다.◈사용한 폭약은 다이너마이트 8개 관계자는 “벽에 다이너마이트를 박고 무너지도록 했다”며 “총 8개의 폭약을 심었다”고 전했다. 이 행사가 오후에 폭파예정인 건물 앞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이 때 폭파대상인 군 막사 처마 밑에 제비집이 발견되자, 한 기자가 “제비가 방사능에 민감하다”고 얘기하자 북측 관계자는 “그만큼 방사능이 없다는 얘기로 개미도 방사능에 민감한데 엄청 많다”고 말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기자단은 3번(남쪽)갱도를 참관했다. 내부 콘크리트 벽두께는 약 20㎝ 정도였으며 폭탄 설치를 위한 케이블이 보였다. 이 때, 북한 측의 조선중앙TV 기자는 3번갱도 옆 3번 관측소 앞에는 개울을 보자 국제기자단에 이를 마셔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북측 기자는 “파는 신덕 샘물 PH(농도)는 7.4 인데 이 물은 PH 7.15로 마시기 더 좋아. 방사능 오염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후 1시 47분쯤 4번 갱도와 약 300m 떨어진 두번째 관측소에 도착했으며 이로부터 30분뒤인 오후 2시 17분 4번갱도와 단야장을 각각 폭파했다.이어 2시 45분부터 생활건물 5개동을 폭파했다. 1개동이 1초간격으로 폭파되면서 연속적으로 큰 굉음과 함께 거대한 구름이 일었다. 오후 4시 2분 3번갱도와 관측소가 폭파됐는데 ‘꽝’하는 소리와 함께 흙과 바위파편이 쏟아져내렸다. 입구쪽 소리는 컸지만 화강암지대 깊은 곳에서 나는 폭발소리는 상대적으로 작았으며 30분이 넘도록 돌들이 흘러내렸다.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3번 관측소도 폭파 후 목재 잔해만 남았다. ◈외신 기자 “폭발에 나무 관측소 산산조각” 마지막으로 오후 4시 17분 두번째 관측소로 이동해 미쳐 폭파하지 못한 생활건물 2개의 추가 폭파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무전으로 “모두 성과적으로 끝났다”며 축하한다의 말이 들려왔다.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은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있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완전히 폐기하는 의식을 진행했다”며 핵시험장 폐기의식 종료를 선언했다. 이렇게 6시간에 걸친 핵실험장 폐기의식이 마무리됐다.그곳에 있었던 외신 기자들도 핵실험장 폐기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트위터를 통해 전했다. 톰 체셔 영국 스카이뉴스 아시아 기자도 “산을 올라가 약 500m 거리에서 폭파 장면을 지켜봤으며 ‘3, 2, 1’이라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며 “먼지와 열기가 취재진을 덮쳤고 폭발음도 매우 컸으며 나무로 만든 관측소를 산산조각 냈다”고 했다. 북한도 같은 날 핵무기연구소 성명을 통해 “핵시험장 폐기는 핵시험장의 모든 갱도를 폭발의 방법으로 붕락시키고 갱도 입구들을 완전히 폐쇄하는 동시에 현지에 있던 일부 경비시설들과 관측소들을 폭파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며 “방사성 물질 누출 현상이 전혀 없었고 주위 생태환경에 그 어떤 부정적 영향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상의 모든 관측 설비들과 연구소들, 경비 구분대들의 구조물들이 순차적으로 철거되고 해당 성원들이 철수하는 데 따라 핵시험장 주변을 완전 폐쇄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툭하면 끊기던 北제공 휴대전화 기어이 ‘20시간 깜깜이’…南기자단, 또 끊길라 짧은 단어로 기사 부르며 조마조마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소식이 24일 저녁에 알려지기까지 북한을 제외한 전 세계는 아침부터 ‘깜깜이’ 신세였다. 풍계리 핵실험장이 워낙 오지여서 휴대전화가 연결되지 않았고, 북한 당국에서 기자들이 준비했던 위성전화 등의 반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이 현장 기자에게 제공한 휴대전화는 자주 끊겨서 애를 먹었다. 남측 기자단의 마지막 연락은 전날 밤 10시 40분쯤 북측에서 개통한 휴대전화를 통해 가진 국제전화였다. 이들은 열차로 이동 중이며 24일 오전 6시쯤 도착해 4시간 버스 이동과 1~2시간 등산을 거쳐 풍계리 핵시설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24일 저녁 7~8시쯤 기차를 타고 25일 아침 원산에 돌아올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차 안에서 만찬을 가졌다는 소식을 전하던 이들과의 통화는 북측의 통신 시설 불비 탓인지 이후 끊겼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내외신 언론은 북측이 24일 정오쯤 갱도 폭파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예측 속에서도 방북 중인 취재진과 연락이 닿지 않는 ‘깜깜이 시간’ 동안 일절 상황을 알 수 없었다. 일각에선 북측이 미국을 의식해 워싱턴 시각으로 오전 시간대인 저녁쯤 관련 소식을 발표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남측 기자단과 다시 연락이 닿은 건 마지막 전화연결을 한 이후로 20여 시간이 지난 24일 저녁 7시 20분쯤이었다. 이들은 휴대전화를 통해 겨우 연결된 국제통화에서 ‘오전 11시 2번 갱도와 관측소 폭파’, ‘오후 2시 17분 4번 갱도와 단야장 폭파’, ‘오후 2시 45분 생활건물 등 5개 건물 폭파’, ‘오후 4시 2분 3번 갱도와 관측소 폭파’, ‘오후 4시 17분 남은 2개동 군 건물 막사 폭파’ 등 짤막한 시간과 폭파 순서만을 입으로 전했다. 2번 갱도는 북쪽, 4번 갱도는 서쪽, 3번 갱도는 남쪽을 의미한다는 설명 외에 이들의 소식은 전화가 자꾸 끊겨 더 이어지지 못했다. 통화 연결 상태가 불량한 상황에서 간헐적으로 연결된 통화에선 공동취재단이 25일 오전 6~7시쯤 원산역에 도착할 예정이며 10분 거리에 있는 갈마호텔로 가서 폭파와 관련한 영상을 송출할 예정이라는 소식만을 전달했다. 저녁 8시 10분쯤 다시 연결된 통화에선 2번 갱도를 폭파하는 과정의 생생한 모습이 전달됐다. 2번 갱도 오른쪽으로 200여m 떨어진 곳에서 군인 4명이 갱도와 관측소를 폭파할 준비를 했고, 폭발 전 북한 핵무기연구소 강경호 부소장이 사전 브리핑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남측 기자단은 이날 진행된 2번 갱도와 관측소 폭파 당시의 굉음과 이들이 목격했던 짙은 연기와 파편 모습을 생생한 목소리로 전달했다. 이들이 목격했던 풍계리의 폭음과 계곡을 가득 메운 어마어마하게 짙은 연기의 모습은 25일 아침 이들이 원산의 갈마호텔 프레스센터에 도착한 후 전 세계에 영상으로도 전달될 예정이다. 풍계리 외교부 공동취재단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北 풍계리 폭파한 날… 트럼프, 북미회담 전격 취소

    北 풍계리 폭파한 날… 트럼프, 북미회담 전격 취소

    “北 분노·적대감 때문에 부적절” 핵실험장 갱도 3개 파괴 빛 바래 文, 한밤 NSC 상임위 긴급 소집 “유감… 정상간 직접 대화로 해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다음달 12일로 계획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백악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 앞으로 쓴 이런 내용의 공개서한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편지에서 “당신(김 위원장)과 만나길 고대했지만 최근 당신들이 밝힌 극도의 분노와 공공연한 적대감 때문에 애석하게도 현 시점에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준비해 온 회담을 갖는 게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며 “싱가포르 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신은 당신의 핵 능력에 대해 말하지만 우리의 핵 능력은 매우 강력하고 막대해서 나는 그것이 결코 사용돼선 안 된다고 신께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향후 김 위원장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는 회담을 가질 수도 있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쳤다. 그는 “언젠가 나는 당신을 만나기를 고대한다”면서 “만약 너무나도 중요한 이 정상회담에 대한 당신의 마음이 바뀐다면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를 보내 달라”고 했다. 이어 “회담이 불발된 것은 역사에 정말로 슬픈 순간”이라는 말로 편지를 맺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밤 12시부터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정원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을 청와대 관저로 긴급 소집,1시간동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긴급회의를 가졌다.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된 6월 12일에 열리지 않게 된데 대해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다”라고 밝힌 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포기할수도,미룰수도 없는 역사적 과제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면서 “지금의 소통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정상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은 이날 판문점 선언에서 명시한 ‘완전한 비핵화’의 첫걸음으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북부핵시험장)을 폭파해 폐기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실험장 폐기를 언급한 지 34일 만이다. 북한은 이날 핵무기연구소 성명을 통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핵무기연구소에서는 5월 24일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핵시험장을 완전히 폐기하는 의식을 진행하였다”고 밝혔다. 풍계리 현지 폐기 장면을 참관한 한국 기자단이 전화로 알려온 내용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에 풍계리 핵실험장의 4개 갱도 중 2번 갱도 및 관측소가 처음으로 폭파됐다. 오후 2시 17분에는 4번 갱도와 단야장(금속을 불에 달궈 작업하는 장소)을, 2시 45분에는 생활건물 본부 등 5개 건물을, 4시 2분에는 3번 갱도 및 관측소를 각각 폭파했다. 이어 4시 17분에 군 건물인 막사 2개동을 폭파하는 것으로 폐기 행사를 마쳤다. 1번 갱도는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때 방사능 오염으로 이미 폐쇄돼 이날은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2∼6차 핵실험은 2번 갱도에서 이뤄졌다. 3번과 4번 갱도는 향후 핵실험을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곳에서 지난해 9월까지 6번의 핵실험을 했고 2개월 후인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풍계리 외교부 공동취재단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완전한 비핵화’ 문 열다…北, 풍계리 갱도 3개 폭파

    ‘완전한 비핵화’ 문 열다…北, 풍계리 갱도 3개 폭파

    북한이 판문점 선언에서 명시한 ‘완전한 비핵화’의 첫 발걸음으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북부핵시험장)을 폭파해 폐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실험장 폐기를 언급한 지 34일 만이다. 북한이 핵실험장 폐기를 통해 비핵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 대화의 입구’로 언급했던 핵동결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와 달리 미국의 보상 조치가 없는 선제적 폐기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 정상회담’의 청신호인 셈이다. 북한은 24일 오전 11시에 풍계리 핵실험장의 4개 갱도 중 2번 갱도 및 관측소를 폭파했다. 오후 2시 17분에는 4번 갱도와 단야장을, 2시 45분에는 생활건물 본부 등 5개의 건물을, 4시 2분에는 3번 갱도 및 관측소를 각각 폭파했다. 4시 17분에 군 건물인 막사 2개동을 폭파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날 폐기 행사를 마쳤다.  1번 갱도는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때 방사능에 오염돼 이미 폐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2∼6차 핵실험은 2번 갱도에서 이뤄졌다. 3번과 4번 갱도는 향후 핵실험을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곳에서 2006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6번의 핵실험을 했고 2개월 후인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폭파가 순차적으로 진행된 것은 이미 6차례 핵실험으로 약해진 지반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 북측이 시각적 효과를 노렸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CNN, 중앙(CC)TV, APTN 등 5개국(한국,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30명의 기자가 현장을 참관했다. 이들은 이날 풍계리를 출발해 25일 아침 6~7시 정도에 원산 갈마초대소 프레스센터에 도착한 뒤 세부 현장 취재 결과를 전 세계에 타전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첫 방미길에서 “핵동결은 대화의 입구이고 그 대화의 출구는 완전한 핵폐기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풍계리 핵시설 폐기로 비핵화 대화의 입구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또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대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초기 조치로서 비핵화가 시작됐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청와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한 뒤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첫 번째 조치임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최근 리비아식 모델 등 비핵화 방법론을 두고 북·미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북한이 해당 조치를 예정대로 진행했다는 데 의미를 뒀다. 장철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무엇보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 여건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풍계리 외교부 공동취재단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문화마당] 슈퍼맨보다 스파이더맨/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문화마당] 슈퍼맨보다 스파이더맨/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조지프 퓰리처(퓰리처상을 만든 언론인)는 자신이 발행한 신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조지 럭스의 만화 ‘옐로 키드’를 언론 재벌인 윌리엄 허스트의 신문에 빼앗기자 다른 작가를 기용해 ‘옐로 키드’의 연재를 이어 간다. 같은 제목의 만화가 두 개의 신문에서 동시에 연재된 것이다. ‘옐로 저널리즘’의 효시가 된 촌극이 말해 주듯 일간지에 인쇄된 만화의 영향력은 대중들이 ‘만화를 보기 위해 신문을 구독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막강했다. 다만 “상업주의의 도구로서 출발했기에 창작자들이 발전의 방향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미국에서의) 만화는 주류 예술의 언저리에도 끼지 못했다”고 김기홍 교수는 ‘만화로 보는 미국’에 적고 있다. 만화가 독립적인 매체로서 자리매김한 것은 DC 코믹스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디텍티브 코믹스’ 앞으로 ‘빨간 팬티를 입은 히어로’가 도착하면서부터다. 때는 1938년, 대공항으로 무너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뉴딜 정책이 실시된 이후 미국인들은 가혹한 생활고를 견디며 고투하는 중이었다. 거기에 파렴치한 범죄자와 탐욕스러운 자본가를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하는 슈퍼맨이 나타났으니 대중들의 환호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간다. 새로운 시대의 영웅을 만나기 위해 독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어젖혔다. 이에 힘입어 어둠의 기사로 불리는 배트맨, 우주 경찰 그린랜턴, 아마존 부족의 여왕이었던 원더우먼이 차례로 등장한다. 하지만 미국 내 청소년 범죄의 증가가 만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대대적인 검열이 시작됐고 만화산업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회사가 마블이었다. 그동안 2인자로 시류에 편승해 온 마블은 ‘저스티스 리그’(슈퍼맨, 배트맨, 그린 랜턴, 원더우먼 등이 힘을 합쳐 싸우는 슈퍼 히어로 팀)에 버금가는 떼거리 슈퍼 영웅들의 집합체 ‘판타스틱 4’를 창설한다. 이어서 감마선에 노출되는 바람에 화가 나면 괴력의 녹색 거인으로 변신하는 헐크, 방사능 거미에 물려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된 스파이더맨, 방탕한 재벌 2세로 살다가 자신이 개발한 무기가 어떻게 쓰이는지 목도한 후 개과천선한 아이언맨이 등장하며 마블은 전성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DC의 캐릭터가 힘을 잃어 간 그 시기에 마블의 캐릭터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전자가 말 그대로 슈퍼 히어로였던 데 반해 후자는 안티 히어로(영화나 소설에서 비영웅적이고 나약하고 소외된 인물로 그려지는 주인공)였기 때문이다. 즉 무결점의 전지전능하고 바른생활 사나이였던 슈퍼맨보다 악당들과 싸울 때 이외에는 어딘가 모자라 보이고 교우관계에도 꽤나 문제가 있었던 스파이더맨 쪽이 관객들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최근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의 개봉을 맞이하여 케이블 채널에서 날이면 날마다 틀어 주는 마블 영화들을 주야장천 관람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다들 남 잘난 꼴 보기 싫어하는 소셜 미디어 채널에서야말로 ‘나는 정의롭다’, ‘정의의 이름으로 진실을 요구한다’는 식의 DC 캐릭터적 허세 마인드보다는 ‘나에게는 뭔가 문제(geek)가 있어’, ‘나는 정말 소심(nerd)하구나’라는 식의 마블 캐릭터적 겸손 마인드를 갖는 것이 세계 평화에 일말의 힘이나마 보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바야흐로 세계 평화에 동참하기 좋을 때 아닌가.
  • [부고]

    ●정원식(한국은행 아태협력팀장)원영(한화에너지 상무)원경(한국건설품질시험연구원 대표이사)씨 부친상 안윤민(미국 플레그스타은행 지점장)씨 장인상 1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4일 오전 6시 30분 (02)2258-5940 ●김용하(양주소방서 소방교)동하(문화일보 정치부 기자)씨 조부상 2일 경북 포항의료원, 발인 4일 오전 9시 (054)245-0423 ●박성권(KB증권 투자운용부 이사대우)씨 부친상 2일 경북 고령 대가야장례식장, 발인 4일 오전 6시 30분 (054)955-1667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꽃들이 파랗더라/최승자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꽃들이 파랗더라/최승자

    꽃들이 파랗더라/최승자 꽃들이 파랗더라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정말일까꽃들이 파랗더라 이 주야장천 긴 날에꽃들이 파랗더라 파란색은 자연에서 흔히 발견되는 색이다. 인류는 빨강이나 검정의 아름다움을 먼저 알고 썼지만 파란색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해 무시했다. 미셸 파스투로의 ‘파랑의 역사’에 보면 파란색은 12~13세기에 비로소 미술과 성상(聖像)과 의복들에 파란색 염료를 쓰면서 대유행을 했다. 그 뒤 파란색이 품은 매력과 신비에 빠진 화가와 시인들과 학자들이 나타나며 파란색은 빨간색과 색의 여왕 자리를 두고 다툰다. 그런데 시인은 “꽃들이 파랗더라”라고 외친다. 파란색은 아름답다. 하지만 파란 꽃은 그렇지 못하다. 시인은 파란색에서 공포, 기피, 저주의 기미들을 읽어 낸다. 그러니 삶에 진절머리를 치며 “주야장천 긴 날” 파랗기만 한 꽃들 앞에서 돌연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정말일까”라고 의심을 품는 것이다. 장석주 시인
  • [월드피플+] 中 12세 아들과 아빠…4000m 고산 1700㎞ 도보여행

    [월드피플+] 中 12세 아들과 아빠…4000m 고산 1700㎞ 도보여행

    중국 최고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위험 요소를 모두 지닌 국도로 유명한 ‘318국도’, 전국 각지의 여행객과 자동차 마니아들의 도전이 끊이지 않는 이 도로에 한 30대 가장이 12살 아들과 함께 도전에 나섰다. 길이 1700㎞, 해발 4000m 이상의 고산 12봉우리를 넘어 도로 끝자락에 있는 라싸(拉萨)에 이르는 여정을 마무리한 부자(父子)의 사연을 청두상보(成都商报)가 전했다. 지난 7월 8일, 장웨이(张伟·36)씨는 12살 아들 투투(图图)와 함께 쓰촨성 캉딩(康定)을 기점으로 장장 50일간의 도보 여행길에 올랐다. 장씨는 이번 여행을 1년 전부터 계획했고, 한 달 전부터 철저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아들과 함께 그날그날의 여행길, 복장, 장비, 숙소 등 세세한 부분까지 검토했다. 또한 아들의 폐활량을 늘리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날마다 도보 훈련을 병행했다. 큰 포부로 대장정에 올랐지만 위기는 단 이틀 만에 찾아왔다. 애초의 계획은 해발 4200m 이상인 저뚜어산(折多山)을 넘는 것이었지만, 실제 저뚜어산은 여러 고산 중 가장 낮은 측에 속했다. 37㎞의 여정 중 24㎞가 높은 산을 오르는 길이었다. 해발 낙차도 크고, 굽은 길투성이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샛길을 찾다가 결국 시간도 버리고, 에너지 소모도 심했다. 이날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해 출발했지만,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산병 증세가 나타났다. 어두워지기 전 다음 야영지에 도착하기 위해 약으로 버티며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다음 야영지에 도착했다. 이날 장씨는 예상보다 험난한 여정을 어린 아들이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아들은 “지금 포기하면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 헛되이 돼 버리잖아요?”라면서 여정을 이어갈 것을 고집했다. 장씨는 “이번 여행길은 아주 아주 힘들 거야. 그래도 아빠를 원망하지 않을 거니?”라고 물었고, 아들은 “절대 원망하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장씨는 순간 아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왈칵 쏟았다. 해발고도가 높아 짊어진 배낭의 무게는 더 세게 어깨를 짓눌렀다. 아들은 12㎏의 배낭을 메고 매일 30㎞ 이상의 험난한 길을 걸어야 했다. 318국도는 하루에 4계절을 모두 선사했다. 아침에는 봄과 가을, 오후에는 강렬한 태양 빛이 내리 쐬는 여름, 저녁에는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겨울이었다. 길을 걸으면서 옷을 수시로 갈아입어야 했다. 발바닥에는 매일 물집이 생기고, 터지기를 반복했고, 진물이 나고 쓰라렸지만 견디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장씨는 “매일 잠자리에 들면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단어는 ‘포기’였고,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인내’였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부자는 매일매일 ‘포기’와 ‘인내’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면서도 험난한 여정을 이어갔다. 야장(雅江)에서는 다른 도보 여행자 2명과 동행 길에 올랐다. 하지만 이들은 가장 험준하기로 유명한 모퉈(墨脱) 노선을 택했다. 장씨는 다른 길을 가고자 했지만, 이들 일행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들의 요청으로 결국 노선을 바꿨다. 총 78㎞ 여정에 꼬박 3일이 걸렸다. 해발 4200m가 넘는 산을 넘고, 울창한 원시림을 통과했다. 호랑이와 거머리가 나타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언제 산사태가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지역이었다. 이 위험천만한 여정을 마친 장씨는 일기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고통이 있었지만, 아름다운 자연이 동행해 주었다. 설산, 초원, 우림, 폭포, 계곡, 그리고 푸른 하늘이 있었다. 오직 용기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고 적었다. 마침내 8월 17일 부자는 최종 목적지 ‘세계의 지붕’이라 일컫는 라싸에 도착했다. 투투는 “아빠, 드디어 사명을 완수했어요!”라고 외치며 격앙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부자는 라싸에서 열흘을 머물렀다. 라싸의 포탈라궁, 세라 사원 등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고, 티베트 문화 체험에 나섰다. 또한 장씨는 아들과 함께 나흘간 길거리 장사를 하기도 했다. 바닥에 여러 물건을 펼쳐놓고, 행인들에게 물건을 파는 행위를 했다. 처음에는 꺼리던 투투도 이내 제법 훌륭한 장사꾼 노릇을 해냈다. 50일간의 여정을 마친 부자는 비행기를 타고 고향인 쓰촨성 쯔궁(自贡)으로 돌아왔다. 투투는 더 강인하고 단단해져 있었다. 장씨는 9월 초 아들과의 추억을 짧은 동영상으로 만들어 SNS에 올렸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았다면서 ‘엄지 척’을 올렸지만, 일부에서는 “아들의 생명을 가지고 이게 무슨 짓이냐”면서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씨는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다. 그는 “아들에게 고난과 도전 속에서 진정한 용기를 배우게 하고 싶었다”면서 “이번 여행을 아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결정 내린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아들이 우등생은 아니지만, 바른 인성과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아이라는 점이 그저 자랑스럽다. 그는 “아이에게 학교와 가정에서 배우는 것 이외의 환경과 기회를 주고 싶었고, 아이가 미래의 인생을 용기 있게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모든 아이의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의 특성에 맞게 기회를 주고, 체험하도록 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부모와의) 동행’이라고 전했다. 이종실 상하이(중국) 통신원 jongsil74@naver.com
  • ‘한밤’ 이상호 감독 “故 김광석, 자살 아닌 타살”

    ‘한밤’ 이상호 감독 “故 김광석, 자살 아닌 타살”

    영화 ‘김광석’ 이상호 감독이 故 김광석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고 언급했다.지난 5일 방송된 SBS ‘본격연예 한밤’에서는 영화 ‘김광석’에 출연하는 인물들과 인터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영화를 만든 이상호 감독은 “김광석 씨와 안면도 없었고, 열렬한 팬도 아니었다. 그런데 과거 수습기자 시절 ‘김광석 자살’이 톱뉴스로 떴다. 그래서 3일 동안 주야장천 취재하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상호 감독은 취재를 하던 중 최초 목격자인 아내의 진술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 서 씨의 진술이 인터뷰할 때마다 바뀌더라. 그래서 (고인의 자살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서 씨가 남편의 자살로 내세운 팩트가 ‘우울증’과 ‘여자 관계’였다. 하지만 취재 결과 여자 문제도 없었고, 부검 당시 (우울증 치료) 약물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언론들은 故 김광석이 계단 난간에서 전깃줄을 목에 감아 자살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현장 사진을 본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너무 어설프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 남겨진 사진, 사체에 대한 상흔만 봐도 자살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30일 개봉한 영화 ‘김광석’에는 고인의 미공개 일기장과 그의 타살 의혹을 둘러싼 미공개 테이프 등이 공개된다. 이상호 감독은 “저는 영화를 통해 최선을 다해 공개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힘을 실어주셨으면 좋겠다”며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SBS ‘본격연예 한밤’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메디컬 인사이드] 술로 버틴 ‘두통’…제대로 알아야 이긴다

    [메디컬 인사이드] 술로 버틴 ‘두통’…제대로 알아야 이긴다

    편두통은 에스트로겐 변화 때문가임기 여성에 많고 심하면 구토스트레스·수면부족 땐 통증 심화과도한 야근 피하고 충분히 자야지긋지긋한 두통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 인구의 90%가량이 1년에 1회 이상 두통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뇌에는 감각세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뇌 자체는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마치 뇌를 갉아 먹는 것처럼 지끈거리는 고통이 계속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두통 때문에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가 78만 9304명이나 됐습니다. 여성이 61.4%로 남성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환자 연령대는 다양했습니다. 50대가 19.2%로 가장 많았지만 40대 16.0%, 30대 13.4%, 70세 이상 13.2%, 60대 13.1%, 10대 10.7%로 특별히 젊은층이나 노년층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9일 전문가들에게 두통 치료법에 대해 물었습니다. 두통을 극복하려면 우선 두통의 종류부터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검진 결과에 따라 치료법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가장 흔한 것은 특별한 원인이 없는 ‘1차성 두통’입니다. 주로 ‘편두통’과 ‘긴장성 두통’, ‘군발성 두통’이 해당됩니다. ‘편두통’은 대개 생리가 시작되는 사춘기부터 시작됩니다. 주로 가임기 여성에서 환자가 많이 생기는데,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의 급격한 변화 때문입니다. 심해지면 발작적인 두통과 함께 식욕부진, 오심, 구토, 빛·소리에 민감해지는 증상을 느낍니다. 한쪽만 아픈 것이 특징이고 마치 혈관의 맥박이 뛰는 듯한 지끈거리는 통증이 나타납니다. 김현영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3일 전에는 왼쪽 관자놀이가 아프다가 오늘은 오른쪽이 아픈 것처럼 두통 부위가 이동한다”며 “치료하지 않아 만성이 되면 머리 전체가 깨질 듯 아프고 오심과 구토 때문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통증 해소 위한 음주는 ‘편두통의 적’ 편두통은 가족력에 일부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생활습관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재의 생활패턴을 체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선 스트레스가 심하고 수면이 부족할 때, 우울할 때 통증이 심해집니다. 다이어트와 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주로 통증을 이기려는 분이 있는데 술은 ‘편두통의 적(敵)’이라고 합니다. 김 교수는 “과도한 야근은 되도록 피하고 주중, 주말에 상관없이 7시간 이상 일정하게 잠을 자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젊은층에서 많이 마시는 카페인 음료도 편두통을 일으킵니다. 심지어 박스채로 사다 놓고 먹는 분도 있는데 이것은 만성 편두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코골이가 심해질 때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뱃살과 비만은 수면무호흡증을 일으키고 숙면을 방해해 편두통을 악화시킵니다. 결국 ‘바른 생활’이 편두통을 극복하는 데 가장 좋은 치료제라는 의미입니다. 치료는 약물치료를 기본으로 합니다. 초기에는 ‘타이레놀’이나 ‘아스피린’ 같은 일반적인 두통약을 사용하지만 치료효과가 없으면 ‘트립탄’ 계열 약물 등 편두통 치료제를 처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약물 과용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의의 설명에 따라야 합니다. 혈관질환이나 고혈압, 간기능 이상 환자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두통이 너무 잦아서 1주일에 2회 이상 아프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때, 진통제를 너무 많이 복용할 때는 두통 예방약제와 생활습관 개선 등의 방법을 병행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환자가 가장 많은 ‘긴장성 두통’은 손오공의 머리테처럼 꽉 조이는 듯한 증상이 대표적입니다. 목 근육의 긴장과 척추질환, 바르지 않은 자세가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환자의 절반은 일반 진통제로 치료할 수 있지만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도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있어 편두통과 마찬가지로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군발성 두통’도 있습니다. 눈물, 코막힘, 콧물, 땀이 두통과 함께 나타나고 주로 눈썹이나 관자놀이에서 통증이 시작됩니다. 20대 후반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뇌혈관 장애와 뇌수술 여부, 과음 등에 의해 증상이 심해집니다. ●언어·행동장애 동반되면 뇌검사 필요 다른 질환에 의한 ‘2차성 두통’은 훨씬 더 위험하며 정밀검사가 필요합니다. 김범준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운동·감각마비, 언어장애, 시야장애, 균형감 상실 증상이 함께 나타나면 바로 뇌영상 검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쪽 팔·다리와 얼굴의 마비가 동반된 두통 ▲고열·오심·구토를 동반한 두통 ▲머리를 수그리거나 배변처럼 힘을 줄 때 생기는 두통 ▲언어 구사나 계산 능력 저하 ▲50세 이상의 고혈압·당뇨병 환자가 처음 경험한 두통 등은 치명적인 질환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통해 출혈성 뇌졸중이나 뇌종양, 뇌정맥혈전증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뇌척수액검사’로 출혈 여부나 뇌수막염을 검사하기도 합니다. 김범준 교수는 “뇌 질환에 의한 두통은 뇌를 싸는 뇌막이 자극될 때, 두통 전에 다른 신경학적 이상이 나타날 때 의심할 수 있다”며 “검사를 통해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110년 전 날씨 관측 기록 되살린다

    110년 전 날씨 관측 기록 되살린다

    극심한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로 기상관측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가운데 국가기록원이 110년 역사의 근대 기상관측 기록 복원에 나선다. 국가기록원은 23일 기상의 날을 맞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근대식 일기도의 황변, 바스라짐 등을 없애고 원래 상태로 복원한다고 22일 밝혔다. 1905년 11월 1일자로 제작된 일기도는 오늘날의 일기도와 마찬가지로 한반도를 둘러싼 기압선 등이 표시되어 한눈에 날씨를 파악할 수 있다. 근대 기상관측은 1882년 관세 업무를 보기 위한 조선해관(세관)이 창설되면서 기상관측기기를 설치해 시작되었다. 1904년부터 본격적인 기상업무는 부산, 목포, 인천, 원산, 용암포(신의주)에 임시관측소를 설치하면서 이루어졌다. 국가기록원은 1905년 제작된 가장 오래된 근대식 일기도를 포함해 기상관측야장 등 46권의 근대 기상 기록물 436장을 내년 상반기까지 복원하게 된다. 이상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장은 “근대 기상 110여년의 역사를 기록물 복원을 통해 살려내고 보존하는 작업은 앞으로 기상 예측연구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서울 종로구 서울기상관측소에는 기상박물관이 세워질 예정으로 기록원의 복원작업이 박물관 건립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기고]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반대 논리의 허점/송승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원봉사자

    [기고]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반대 논리의 허점/송승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원봉사자

    정신보건법이 20년 만에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됐고 오는 6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법이 시행되기도 전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비롯한 정신의료계가 조직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정법이 시행되면 그전까지 너무나 쉬웠던 강제 입원은 조금 어려워지고, 너무나 어려웠던 퇴원은 조금 더 쉬워진다. 이로 인해 가족은 피해를 받고, 정신과 의사는 환자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주장 속에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빠져 있다. 바로 강제 입원당하는 주체,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이다. 왜 당사자의 의견을 묻지 않는가. 그들은 생각할 권리도, 결정할 권리도 없는 존재인가. 강제 입원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최초부터 6개월이라는 장기 입원에 대해 치료의 목적보다는 격리의 목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크다고 보았으며, 강제 입원은 정신장애인의 신체의 자유를 인신 구속에 버금하는 수준으로 제한하는데, 그 과정에서 당사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절차의 마련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결정적으로 입원부터 퇴원까지 모든 과정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자기 결정권이 배제되는 상황에 대해 지적한다. 나의 주장은 단순하다. 강제 입원을 폐지하고, 탈원화를 촉진하라는 것이다. 정신의료계는 정신장애인이 정신병원에서 나와 지역사회로 가도 인프라가 없으므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정신병원에서의 폐쇄·격리된 삶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걸핏하면 약에 취하게 하고, 격리시키고, 묶고, 사회와 단절시키는 것이 과연 좋은 삶인가? 누구에게 풍요로운 삶인가? 정신과 의사인가. 아니면 정신장애인 당사자인가. 그들은 지역사회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고 지역사회로 복귀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자, 그렇다면 지금처럼 주야장천 병원에만 있으면 그 언젠가 인프라가 구축될 것인가. 지금까지 20년 동안 지역사회 인프라를 구축해 달라고 요청해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급작스럽게 변화될 것인가. 반대로 인프라를 만들어서 내보낼 생각은 왜 안 했는가. 이것은 결국 환자 많이 만들어서 병동을 채우자는 것밖에 더 되는가. 지금처럼 가만히 있다고 인프라가 저절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모래 속에 얼굴을 묻는 타조처럼 정신장애인을 폐쇄의 공간에 집어넣어 놓고, 보이지 않는다고 외치지만, 모두가 그것을 못 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도적 외면일 뿐이다. 정신장애인이 이 세계와 단절돼 있으면 문제의 중요성은 그 누구도 인식할 수 없다. 우선 나와서 외쳐야 하고, 사회가 정신장애인 인프라를 만들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이 상황은 단순한 정신의료계와 당사자 집단 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이며, 인권과 비인권의 문제다. 대한민국의 상식과 인권은 헌법에 기반한다. 강제로 입원시켜 놓고 퇴원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정신병원의 현실은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헌법을 위반하고 있는 비상식적인 상황이다. 진정으로 정신장애인을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탈원화 촉진에 앞장서 주길 바라며 당사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자의 입원을 우선적으로 시행해 주길 바란다.
  • [새 영화]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

    [새 영화]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

    기술 진보가 멈추거나 문명이 퇴보한 세상은 공상과학(SF) 장르에 자주 사용되는 세계관이다. 흔히 제3차 세계대전이나 핵전쟁을 거친 인류가 맞닥뜨리는 세상으로 나온다. 특히 20세기 산업 혁명을 이끈 기술 대신 19세기 증기기관 같은 옛 기술이 크게 발달한 과거나 그러한 과거에 뿌리를 둔 현재, 미래를 그린 작품을 스팀 펑크(Steam Punk)라고 하는 데 대표적인 작품이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출세작 ‘미래소년 코난’이다. 하야오는 이후에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에서 스팀 펑크의 세계를 보여준 바 있다. ●기술 발전없는 과거 그린 스팀펑크물 15일 개봉하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도 스팀 펑크물이다. 그런데, 미래가 아닌 과거의 역사를 바꾼 가상의 역사를 만들어 기술의 진보가 멈춘 상황을 설정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원래 역사에서는 1870년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며 제2제정이 무너지고 제3공화국이 들어서지만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에서는 전쟁은 결국 일어나지 않고 제국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나온다. 전쟁 전날 밤 나폴레옹 3세가 비밀병기를 의뢰한 과학자의 연구실을 방문했다가 폭발 사고를 당한 이후 수십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브랑리, 아인슈타인, 헤르츠, 마르코니, 노벨, 파스퇴르 등 수많은 과학자들이 거푸 실종된다. 그렇게 다다르게 된 1941년의 파리는 우리가 익히 알던 것과는 다른 세상이다. 에펠탑은 쌍둥이처럼 우뚝 서 있다. 전기나 텔레비전, 라디오는 발명되지 못했다. 새로운 에너지는 개발되지 못한 채 석탄만 주야장천 쓰는 바람에 공기는 심하게 오염됐고, 그나마 석탄도 바닥 나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날 판이다. 증기기관은 크게 발달해 자동차들은 증기의 힘으로 달리고, 거대한 증기 케이블카가 도시를 오간다.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는 소녀 아브릴이 자신이 어렸을 때 실종된 과학자 부모를 찾아나서며 벌어지는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佛독특한 그림·설국열차 작가의 결합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는 고전적인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프랑스 국민 만화가 자크 타르디가 그린 그림은 우리가 익숙한 할리우드나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색다른 맛을 준다. 타르디의 작품 가운데 ‘포로수용소’, ‘파리 코뮌’ 등이 국내 출간됐다. 타르디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설국열차’의 작가인 뱅자맹 르그랑 등이 이야기를 빚었다. 2007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인 ‘페르세폴리스’의 제작사 JSBC 등이 제작에 나서는 등 프랑스 만화 드림팀이 합작한 이 작품은 지난해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다. 12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중국인도 혀를 내두르는 中 혐오음식

    중국인도 혀를 내두르는 中 혐오음식

    자고로 중국의 음식문화는 다양하고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독특한 재료, 희한한 요리법, 요리사의 상상력이 더해져 상상을 초월하는 ‘음식’을 창조해 내곤 한다. 가끔은 이해 불가능한 재료들로 만들어 낸 ‘별종 음식’들도 눈에 띄는데, 최근 중국 온라인 매체‘미식미언(美食美言)’에 보도된 ‘별난 재료, 별난 음식’들을 소개한다. 1. 자혈육(紫血肉) 첸동난(黔东南) 동족(同族) 음식인 ‘자혈육’의 주재료는 돼지고기와 돼지피다. 여기서 쓰이는 돼지피는 반드시 복강혈(腹腔血)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요리시 피가 쉽게 응고되기 때문이다. 요리법은 매우 간단하다. 익힌 돼지고기에 돼지피를 섞어 먹는다. 우리나라에도 소나 돼지 피로 만든 선지 음식이 있지만, 고체 상태라 먹기에 그다지 역겹지가 않다 그러나 자혈육은 돼지피를 액체 상태 그대로 돼지고기에 부어 먹는다. 2. 변변어(便便鱼) ‘변(便)’은 대변(大便)의 ‘변’으로 배설물을 의미한다. 어려서부터 인간의 배설물을 먹고 자란 물고기를 뜻한다. 첸동난(黔东南) 지역에서 주로 먹는다. 3. 량반계혈(凉拌鸡血) 꾸이양(贵阳)의 유명한 간식으로 명칭 그대로 닭피에 조미료, 야채, 땅콩 등을 넣어 버무려 먹는다. 현지 훠궈(火锅·중국식 샤브샤브) 음식점에서 판매되며, 양혈작용 및 항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닭피는 반드시 깨끗하게 세척해야 하며, 청결하지 않은 경우 인체에 해롭다. 4. 찹쌀생고기(糯米生肉) 꾸이저우성(贵州省) 창순현(长顺县)의 별식요리다. 찹쌀에 생고기와 조미료를 섞어 항아리에 넣어 한달 간 밀봉한 뒤 꺼내 먹는다. 일반적으로 술안주로 즐겨 먹는다. 5. 취산(臭酸) 과거 냉장고가 없던 시절 먹다 남은 음식을 모아 밀봉한 뒤 효모로 만들었다. 한달 뒤 음식을 꺼내 다시 먹었다. 음식 모양새는 물론이요, 냄새 또한 심한 악취를 풍겨 중국인들조차 먹기를 꺼려하는 음식이다. 6. 자오씽 쥐구이(肇兴烤鼠) 꾸이양(貴陽) 자오씽(肇兴)에서는 가을 수확기가 되면 들에 나가 들쥐를 잡아 구워 먹었다. 들쥐를 불에 굽거나, 기름에 튀기거나, 간장에 삶는 등의 방식으로 요리해 먹는다. 7. 소똥훠궈(牛粪火锅) 이름만 보고 소의 분비물을 먹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음식은 소의 위에서 소화된 약초를 꺼내 훠궈(火锅)에 조미료로 사용해 먹는다. 8. 구붕장(狗蹦肠) ‘개고기 소시지’로 꾸이저우(贵州) 소수민족의 가정식 별미요리다. 9. 방귀벌레 볶음(炒放屁虫) 곤충을 먹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방귀벌레는 좀 특이하다. 그러나 ‘본초강목’에는 ‘구향충’이라 하여 신경성 위병, 신경우울증, 기력부족 등의 병에 큰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우선 방귀벌레는 온수물에 담궈 ‘냄새’를 제거한 뒤 말려 기름에 튀겨낸다. 여기에 고추, 산초열매, 미나리, 생강채, 박하채 등을 곁들여 먹는다. 중국 최고 잔인한 음식 한편 현재 중국에서는 금지된 ‘잔혹 음식’들도 있다. 동물들을 식재료로 삼는데, 동물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해서 현재는 금지된 음식이다. 중국에서 가장 잔인하기로 손꼽히는 음식은 싼쯔얼(三吱儿), 원숭이뇌(猴脑), 탄카오루양(炭烤乳羊), 카오야장(烤鸭掌) 등이 있다. ‘싼쯔얼’은 갓 태어난 새끼쥐를 산 채로 먹는 요리다. ‘쯔얼(吱儿)’은 새끼쥐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다. ‘싼쯔얼’이니 새끼쥐가 세번 ‘찍’하며 운다는 의미다. 막 세상에 태어난 새끼쥐가 접시에 담겨 나온다. 젓가락으로 살아있는 쥐를 잡아 올리는 순간 ‘쯔얼(吱儿)’, 쥐를 들어 조미료에 담그는 순간 ‘쯔얼’, 마지막으로 사람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쯔얼’, 이렇게 세번 운다고 해서 ‘싼쯔얼’이다. ‘원숭이뇌’ 요리는 중간에 구멍이 뚫린 탁자에 2~4명이 둘러 앉아 구멍을 통해 원숭이 뇌를 들어올려 금속 테두리로 결박한다. 날카로운 칼로 두개골을 자르면 연두부 같은 원숭이 뇌가 보인다. 여기에 펄펄끓는 기름을 붓고, 다진 파를 얹어 수저로 젓는다. 계속해서 뜨거운 기름을 부으며 먹는다. 요리를 먹는 내내 원숭이의 참혹한 비명이 들린다. ‘탄카오루양’의 ‘루양(乳羊)’은 말 그대로 젖먹이 양을 뜻한다. 껍질은 바삭하고 고기는 부드러워 맛좋기로 유명한 음식이다. 그러나 이 음식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끔찍하고, 잔인하다. 우선 출산에 임박한 어미양을 숯불에 올려 굽는다. 숯불이 어미양의 전신에 붙으면 칼로 배를 갈라 어미양을 꺼낸다. 이렇게 자궁에서 막 꺼내든 어린양으로 만든 요리다. 말은 젖먹이 양이지만 어미젖을 맛보기도 전에 인간의 식탁 위에 올라오는 것이다. 카오야장(烤鸭掌)은 오리발바닥 요리다. 조미료를 칠한 철판에 열을 가한 뒤 산 오리를 올려둔다. 오리는 뜨거운 열기에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오리 발바닥이 불에 익으면 오리는 산 채로 발목이 잘린다. 잘린 오리 발바닥이 식탁 위에 오른다. ‘미식’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라지만, 생명을 지닌 동물을 이토록 잔인하게 희생해 가며 만들어낸 음식이 과연 얼마나 ‘맛’과 ‘영양’을 주는지 의문이다. 지금은 ‘금지된 음식’이지만, 애초에 존재해선 안되는 음식이었지 않나 싶다. 사진=미식미언(美食美言), 바이두바이커(百度百克)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머슴 리더십 가져라” “누구 사람 되지 말라”…고참들의 당부

    “머슴 리더십 가져라” “누구 사람 되지 말라”…고참들의 당부

    김형오 前국회의장 “與 참패는 윗선 탓 지역구 붙박이 하려면 도의원이나 하라” 초선들 “비대위원장 내부 인사가 맡아야” 휴가 중인 더민주 김종인 대표도 참석 “공천 불이익 생각지 말고 소신껏 하라” 우상호 “불성실땐 상임위 배치 불이익” 10일 나란히 열린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초선 당선자 연찬회에서는 ‘새내기’들을 위한 따끔한 충고가 쏟아졌다. 특히 지역구에 올인하지 말고 헌법기관으로서 국회 활동에 충실하라는 선배들의 조언과 함께 계파정치의 폐해에 대한 경고가 이어졌다. 새누리당 초선 연찬회에 강연자로 나선 5선 의원 출신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호통과 모욕이 국회 불신의 근원”이라면서 “옛날에 마포대교가 ‘견자교’라 불린 이유는 국회에서 모진 질책을 당한 장관들이 마포대교를 건너 돌아가며 개 ‘견’에 놈 ‘자’ 자를 내뱉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경계해야 할 행태로 ‘무조건 튀는 행동’과 ‘오직 지역구 활동에만 몰두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주야장천 지역구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분은 한마디로 국회에 잘못 들어온 것이다. 지역구 붙박이를 하려면 도의원이나 군의원을 하라”고 지적했다. 김 전 의장은 총선 공천 과정과 최근 비상대책위원회 논의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참 괜찮은 사람들이 무능하고, 무력하고, 국민을 우습게 보는 당 지도부 때문에 또는 그 윗선 때문에 낙마했다”고 비판했다. 비대위에 대해선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안 하려면 아예 안 하는 것이 낫다”고 일갈했다. 이정현 전 최고위원은 ‘선배와의 대화’에서 “지역에서는 선거 때 자신이 했던 공약대로 철저하게 머슴이 돼야 한다”며 “서울에서는 국회의원, 지역에서는 심부름꾼”이라는 ‘철저한 이중생활’을 권고했다. 김정재 신임 원내대변인은 이날 연찬회를 마치고 “초선 당선자들 사이에 원내대표를 포함한 내부 인사가 비대위원장을 맡았으면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더민주의 초선 워크숍 또한 다르지 않았다. 휴가 마지막날 국회를 찾은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인사말에서 “‘나는 누구의 사람’이라는 소리를 초선 의원 때부터 절대로 듣지 말라”며 “자기가 확신하고 점검한 사안에 대해서는 소신껏 발언하라”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이어 “초선 시절에 다선 의원 눈치 보면서 ‘혹시나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음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지 않느냐’면서 자기가 확신을 가진 이야기도 못 하는 분이 너무 많다”며 “인간관계에 의해 공천받는 시대는 지났다. 확신을 갖고 의원 생활을 하며 일반 유권자들이 확인해 주고 그러면 정당도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이 선출되도록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 결석하거나 당 활동에 불성실한 분들은 상임위원회 배치 때부터 불이익을 드리겠다”며 ‘군기 잡기’에 나섰다. 그는 “국회의원의 첫째 책무는 성실성으로, 한 분 한 분이 헌법기관”이라면서 “첫 워크숍부터 지각하거나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습은 국회의원의 첫발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앞으로 4년간 당 행사와 지역구 사이에서 갈등을 겪겠지만 지역구 행사보다 의총이나 본회의 상임위 사안이 중요한 국가적 사안이라면 무조건 국회 일을 우선하는 태도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초선 시절 한 2년간은 특정 세력에 줄 서지 마라. 그런다고 도움받는 것 없다”며 “대통령 후보 경선 때는 어떤 후보를 선택해 돕는 게 미덕이고 그 자체가 민주주의에 부합되는 일이지만 지금은 초선 의원으로서 업무를 시작할 때이기 때문에 이 세력 저 세력 기웃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손성진 칼럼] 아듀, 2015

    [손성진 칼럼] 아듀, 2015

    주야장천(晝夜長川) 이어지는 싸움질을 보자니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정치인들 이야기다. 뭐 하나라도 풀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치고 박기만 하고 있으니 앞이 캄캄하다. 국회만 본다면 천하무도(天下無道·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행해지지 않음)의 난국이다. ‘헬조선’이니 ‘둠조선’이니 하는 은어들이 판을 쳐도 적어도 정치인들만은 나무랄 자격이 없다. 선진국들도 제로 성장,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판국이니 3%도 되지 않는 성장을 해도 자족해야 할 것인가. 외환위기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탄식도 한두 번 들은 게 아닌 올해였다. 국회 때문에 이 모양이라고, 그래서 삼권분립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 국회를 맹비난해도 반박할 수 없는 게 당연지사로 여겨진다. 참 힘들었던 2015년이 간다. 지겨우니 어서 가라고 손짓들마저 하는 것 같다. 세월호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메르스가 덮쳐서 온 국민이 시름시름 앓는 듯했던 시간이었다. 뇌물 파동은 올해도 비켜가지 못해 국정의 2인자가 쫓겨나서 수사를 받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처음으로 기업 매출이 감소한, 일찍이 없던 경제적 사건도 있었고 ‘무역 한국’의 명성과 걸맞지 않은 수출의 감소도 우리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런 와중에 ‘먹고사는 데는 쓸모없는’ 이념 대립은 극에 이르러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먹잇감을 놓고 아귀다툼을 했다. 어느 재벌의 상속 다툼도 토악질을 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최선을 다 하는데 여건이 받쳐 주지 않는다면 도리가 없지 않으냐는 것을 무책임하다 할 수만도 없다. 어떤 것은 고질적인 ‘한국병’ 탓이라지만 어떤 것은 외인(外因)에 책임을 돌릴 수 있으니 한탄만 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닐 것이다. 다만 여건이 어떻든 오늘도 내일도 최선을 다해야 하고 거기서 희망의 싹이 틀 수 있다. 수십 년 전 주린 배를 쥐고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희망을 품고 살았기 때문이다. 오늘 힘들다고 희망마저 버린다면 우리에게 장래는 없다. 어렵다, 어렵다 하면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새해에는 긍정적으로 살자. 희망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중국의 사상가 양계초는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첫째 힘은 희망이라고 했다. 희망은 더 나은 미래를 예상하고 기대하는 마음이라고도 했다. 이 시간에도 골방에 틀어박혀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이 있다. 끼니 걱정을 하며 비탄에 잠긴 독거노인들도 있다. 그러나 절망과 비탄만으론 현실을 이겨 낼 수 없다.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맞겠다는 밝은 마음과, 그와 더불어 힘든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하겠다는 노력을 병행할 때 비로소 행복은 우리 곁에 다가온다. 새해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어려울수록 뭉쳐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혼자 잘살겠다고 해서 잘살 수 있는 게 세상은 아니다. 경기도 군포의 77세 허위덕 할머니를 반의반만 본받아도 사회는 훨씬 더 따뜻해질 터이다. 20년이란 세월에 김밥을 팔아 한 푼 두 푼 모은 1억원을 선뜻 내놓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는 전진과 퇴보의 갈림길에 서 있다. 자칫하면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우리 경제의 근간은 괜찮다 해도 세계경제의 침체 여파가 도미노처럼 우리에게 들이닥칠 수도 있다. 그런 고난을 이겨 내지 못한다면 선진국 진입 또한 요원하다. 분열, 갈등, 폭력, 대립, 투쟁은 영원히 추방하자. 그 대신 통합, 화해, 대화, 평화, 상생 같은 단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자. ‘헬조선’은 더 입에 올리지 말고 ‘천국 한국’이라는 말이 유행하도록 해야 한다. 싫어서 떠나는 한국보다는 살기 좋아 오겠다는 한국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아듀, 2015. 회한이 남는 한 해였다. 아쉬움은 늘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도 하루가 지나면 새해, 새 아침이 찾아오지 않는가. 그러기에 희망의 끈은 이어진다. 부족한 것은 채우고 잘못한 것은 고치면 될 일이다. 다시 희망을 노래하자. sonsj@seoul.co.kr
  • [부고]

    ●고창운(전 정읍시의회 부의장)씨 별세 영환(고창소방서 센터장)씨 부친상 신완철(한화도시개발 마케팅본부장)유만영(전 익산시의회 의원)김종성(전 KT 소장)유석희(전주대 교수)씨 장인상 6일 정읍 호남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8시 (063)533-4500 ●윤경수(전 삼성전자 고문)씨 별세 용권(삼성전자 과장)씨 부친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02)3410-6919 ●유봉심씨 별세 김기현(삼탄그룹 해외법인 SIMS 이사)·영업·영숙·영자·영희·영순씨 모친상 7일 광양시 광양읍 가야장례식장, 발인 9일 (061)763-4444
  •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우리 선조들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대장간이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읍·면마다 한곳 이상 있었으나 1980년대 들어 기계화 영농이 보편화되면서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다. 한강·임진강·한탄강 등이 흘러 비옥한 농토가 산재한 한수 이북(경기 북부)에도 풀무질을 해가며 직접 손으로 두드려 낫·호미를 만드는 대장간이 고을마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근수(70)씨의 ‘파주대장간’이 유일하다. 파주 광탄시장 부근에 있다. 대장간 안은 매우 좁다. 겨우 38㎡(약 12평) 한쪽에 화덕이 있고 그 옆으로 모루와 각종 집게 등 작업도구들이 걸려 있다. 호미·낫·쇠스랑 등도 시렁에 쭉 걸려 있다. 마치 옛 농기구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한씨는 평생 해온 대장장이 일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대장장이 길로 들어서게 한 ‘곽산대장간’ 시절을 잊지 못한다. 요즘 만드는 물건에도 곽산대장간을 의미하는 ‘山’(산)자를 새겨 그 정신과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옛날 대장간의 모습과 지금 대장간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예전에는 낫 한 자루를 만들려면 철근을 잘라 화덕에 수십 번 담금질하고 모루에 대고 망치로 두들겨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은 기계가 두들김질을 대신하죠.” 이로 인해 낫 한 자루를 만드는 데 30분 정도가 걸린다. 화덕에 담금질을 12번 정도 하고 마지막에 물에 담가 강도를 높이면 완성된다. 한수 이북 마지막 대장간의 문을 차마 닫지 못하고 야장(冶匠)의 맥을 지키는 한씨는 1945년 파주 장단의 진동면 초리에서 태어났다. 6세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 폭격으로 부모를 잃고 1·4 후퇴 때 누이, 남동생, 여동생 등 4남매와 정든 고향을 떠나 금촌 수용소 마을(현 금촌초등학교 근처)에 정착했다. 그러나 젖먹이였던 남동생이 죽고 뒤를 이어 여동생마저 굶주림으로 숨지고 말았다. 그는 금촌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서울 문래동에 사는 큰 아버지 댁으로 들어가게 된다. 큰아버지의 소개로 인근 영일동 곽산대장간에서 일을 배우게 됐다. 당시 14살의 어린 나이었지만 평생을 ‘업’으로 여기며 살게 된 대장장이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건축자재를 전문으로 생산하던 곽산대장간은 주로 건축에 필요한 꺾쇠 등을 만들었다. 20여명의 직원들 속에서 가장 어렸던 한씨에게 주어진 일은 풍구질. 화덕에 불을 지피며 눈치껏 다른 일들을 배워 나갔다. “한 10년 하니까, 대장장이가 갖춰야 할 웬만한 기술은 다 할 수 있겠더라고요.” 당시 곽산대장간 주인 김지명씨는 고향인 평안도 곽산을 대장간 이름으로 썼다. 곽산대장간에서 만든 물건에는 모두 ‘山’을 새겼는데 당시 서울에서는 꽤 소문나 있었다. 한씨의 대장장이 기술은 김지명씨로부터 전수받았다. 이 때문에 한씨는 지금도 ‘山’이란 로고를 쓰고 있다. 한씨는 유일한 피붙이인 누이가 혼인해 파주 용주골에 정착하자 1970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파주 법원리에 있는 ‘법원리대장간’으로 일터를 옮겼다. 당시 25살 청년의 눈에 비친 법원리대장간은 서울의 곽산대장간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시골이라 농기구 만드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손에 익숙지 않은 일들이었으나 눈치껏 일을 배워 나갔다. 첫 월급은 22㎏짜리 밀가루 4포를 살 수 있는 3000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씨의 눈에 동료들이 낫자루 끝을 마무리하는 낫 당개미(나무로 된 낫 손잡이가 쪼개지지 않도록 자루 끝에 끼우는 고리 모양의 쇠붙이)를 몹시 어렵게 많은 시간을 허비해가며 만드는 것을 보게 됐다. 한씨는 당개미의 재료인 두꺼운 쇠판을 오릴 수 있는 가위를 만들면 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주인의 허락을 받아 낫 당개미 전용 가위를 만들자 작업이 한결 수월해지고 낫을 생산하는 속도 역시 매우 빨라졌다. 대장간 주인은 월급을 1만 5000원으로 5배 올려줬다. 그로부터 5년 후 한씨는 인접 마을인 광탄면 신산리 ‘파주대장간’으로 자리를 옮겼고, 3년이 지나자 이곳의 주인이 됐다. 1970년대 중반 당시 파주에도 새마을운동 바람이 거셌다. 농사일에 필요한 농기구 수요 역시 급증했다. 닷새마다 열리는 광탄 장날은 대목 중 대목이었다. 장날 하루에만 호미를 2만개나 팔았다.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직원 5명을 두고 일을 했지만 물량을 맞출 수 없어 다른 곳에서 구입하다 팔기까지 했다. 낫도 연간 1만개가량 팔려나갔으며 당시 인근 군부대에 도끼를 비롯한 여러 도구를 납품하기도 했다. “그때가 가장 호황을 누렸지요. 자녀 다섯을 대장간에서 번 돈으로 공부시켰으니까.” 그러나 호황도 잠시. 1980년대 들어서면서 기계화 영농이 시작되고 농약(제초제)이 보급되면서 호미·낫을 비롯한 농기구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더욱이 큰 기업들이 기계로 찍어 내더니 5년여 전부터는 값싼 중국산까지 밀려들어 오면서 8000원짜리 호미는 연간 20개, 1만 5000원 하는 낫은 200개 정도만이 팔리고 있다. “중국산 호미가 3000원, 낫이 5000~7000원 합니다. 어쩌다 한 번 사용하는 호미와 낫을 5배, 2배씩 더 주고 사겠어요? 그렇다고 가격을 내릴 수도 없죠.” 요즘도 대장간을 찾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예전에 문전성시를 이뤘던 30~40년 전과 달리 한가롭기만 하다. 워낙 수입이 없어 기계로 만든 다른 철물들도 구색을 갖춰놓고 팔고는 있으나 한 달 수입이 고작 100만원도 안된다. 현실은 이래도 한씨는 한 번도 대장간 문을 닫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매일 같이 불을 지폈던 화덕은 이제 주문이 있거나 광탄 장날에만 가끔 불을 지피곤 한다. “나까지 돈 안된다고 문을 닫으면 한수 이북에 대장간은 아예 씨가 마르게 되는 거예요.” 글 사진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