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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임앞둔 주한 일대사 야나기 겐이치(인터뷰)

    ◎“「교포3세」문제 원만한 타결 확신”/“과거의 불행한 역사 깊이 반성”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한국 주재대사로 임명받아 서울에 가게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한일 양국의 우호를 증진시키기 위해 미력이나마 노력할 생각입니다』­야나기 겐이치(유건일)신임 주한 일본대사의 한국말은 대단히 유창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사말 뿐이었고 사실은 지난 2월 주한대사로 발령받으면서부터 1주일에 2번씩 부인과 함께 외무성 어학연수소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부임을 앞두고 4일낮 일본외무성에서 주일한국특파원들과 만난 야나기 대사의 관심도 역시 노태우대통령의 방일과 재일한국인3세의 법적지위 보장문제에 쏠려있는 듯,대단히 진지하고 성의있게 답변했다. 『노태통령의 방일은 일본측 사정으로 과거 2번이나 연기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빠른 시일내에 꼭 실현되도록 두 나라 정부당국이 현재 일정을 조정 중이나 아직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몇년간 한국과 일본은 좋은 협력관계를 이루어 왔습니다. 이를 밑바탕으로 한일 두 나라가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함께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대통령의 일본방문은 중요한 뜻을 갖는 것입니다』 현재 한일 양국에 최대 현안이 되어 있는 3세 문제에 대해서도 야나기대사는 『그 역사적 특성과 정주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내에서 충분히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성의를 갖고 노력중이며 양국이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원폭피해자 보상,사할린 잔류동포 처우,무역적자의 해소,불법 반출 문화재 반환문제 등 각 부문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성심성의껏」이라는 어휘를 7∼8번이나 반복했다. 동경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지난 52년 외무성에 들어가 주영대사관1등서기관,주시애틀총영사,경제협력국장,파키스탄 및 호주대사를 역임한 그는 지난 83년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중회근강홍)당시 총리의 한국방문 때 공식수행원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등 72년이후 12년동안 한국과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일본의 방위력 증강문제에 대해서도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깊이 반성하면서 헌법의 규정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민 모두가 군사국가가 되지 않도록 결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도쿄=강수웅특파원〉
  • 「징용 한인묘」 돌보며 후손찾기 12년(특파원코너)

    ◎일 사무가와 향토연,현해탄 넘나들기 16차례/연고지 춘천ㆍ창원 오가며 직접 수소문/한해 두번씩 벌초ㆍ분향 등 묘관리 정성 3월이라고는 하지만 잔뜩 찌푸린 사무가와(한천)의 봄은 아직 냉기를 품고 있다. 도쿄(동경)에서 도카이도(동해도)선 전철로 55분쯤 달려 7번째 역,치카사키에서도 자동차로 20분쯤 더 들어간 사무가와 마을 공동묘지에 한인묘 2기는 잠들어 있었다. 지난 18일 일요일인데도 이곳 묘지를 찾은 마을 일본인들은 10명이 넘었다. 사무가와마치(한천정) 향토연구회 히로다 도미지(광전부치ㆍ73)회장을 비롯,이케다 사히치(사전금칠ㆍ76),교육위원회 고바야시 다카시(소림륭ㆍ62),정사 편찬과장 미자와 마코도(삼택성ㆍ51),주부인 무라다 유키에(촌전행지ㆍ53),가와사키 기쿠에,건설회사 상무 요시다 마사야스(길전정강),구스야 시게마사(남곡무정ㆍ77)씨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향토문화 연구회원들로 연고가 없는 이 한인 분묘를 돌보는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인구 4만정도의 사무가와에 향토문화연구회가 발족된 것은 12년전으로 지금은1백40여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이 무연 한인 분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연구회발족보다 훨씬 오래전 일이었다. 본래는 금은제련기술자였으나 향토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이케다 사히치씨를 중심으로 한 몇 사람이 공동묘지를 한구석에 쌓여 있는 비석더미에서 대단히 훌륭한 비석 2개를 찾아냈다. 하나는 1927년 9월22일 작고한 황인필의 묘비였고 다른 하나는 26년 3월1일 작고한 권인출의 묘비였다. 이들 묘비에는 사방에 명문이 새겨져 있었으며 모두 사무가와 일대에 살던 「조선인 일동」이 건립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작고한 이들은 모두 이 일대 한인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사무가와 마을 주민들의 지금까지 조사결과에 따르면 60여년전 이 마을에는 한 부락을 형성할 정도로 많은 1백50여명의 한인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한반도에서 건너온 기술자들이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사가미(상모)선등 철도부설공사를 위해 기술자가 필요한 상태였으며 사리채취를 위해서도 많은 인부가필요했다. 이같은 일에 한국에서 건너온 많은 사람들이 동원됐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서는 이곳 일인들이 지역발전에 공헌한 사람들이라며 존경하고 있다. 사무가와 향토문화연구의 멤버들의 소망은 현재 무연 묘로 거의 방치되어 있는 이들 분묘의 후손을 찾아 성묘하도록 해 주자는 것이다. 현재 이곳 마을사람들은 1년중 3월과 9월 두번에 거쳐 분묘를 손질하고 향불을 피우지만 그렇게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고 후루야 도쿠코씨(고실도구자ㆍ33)는 설명한다. 한인 분묘 2기중 황인필씨의 묘는 본적이 경남 창원군 창원면 거용리라고 적혀있으나,권인출의 비문에는 춘천이라는 글귀만 나올 뿐 자세한 사항은 적혀있지 않다. 이들 향토문화연구회 회장 히로다 도미지씨는 『이들 분묘의 연고자가 나타나 잘 관리해 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케다 사히치씨는 그동안 16번이나 한국을 방문,춘천과 창원까지 갔었으나 현지의 사정에 밝지못해 자손을 찾지 못했다며 아쉬워 했다. 이와는 별도로 부근의 유명한 사찰 고젠지(흥전사)에는 또 하나의 분묘가 있다. 진양 정씨의 묘로 단기 4290년 부 이현칠씨가 세웠다는 비명이 남아 있으며 치호ㆍ지호ㆍ준호ㆍ영호 등 아들 이름도 새겨져 있다. 이 분묘도 현재는 무연분묘로서 사무가와 마을 사람들이 돌보고 있다. 현해탄의 높은 파고를 넘은 이 마을 사람들의 인정탓에 냉랭한 사무가와의 날씨도 따뜻하게만 느껴졌다.
  • 나카소네 오늘 내한/노대통령ㆍ전경련 예방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전일본총리가 서울 잠실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23일 하오 내한한다. 나카소네 전총리는 오는 25일까지 머물면서 노태우대통령을 예방하는 한편 전경련 회장단및 기업인들과도 만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4개 중기 조합장에 “공명선거” 협조공문/대구서갑 선관위

    【대구 연합】 대구서갑구 지역선관위(위원장 우의형 대구지법 민사8부장)는 18일 대구ㆍ경북지역 견직물ㆍ메리야스ㆍ직물ㆍ염색업등 4개 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들에게 「공명선거 실현을 위한 협조공문」을 보냈다.
  • 「불황 늪」서 허덕이는 대구 섬유업계(지역경제)

    ◎상의서 분석한 현황ㆍ실태/인건비ㆍ원자재 상승등 “3중고” 몸살/중국등 후발국 추격… 경쟁력도 약화/신제품 개발ㆍ해외진출등 원가절감 안간힘 국내 최대섬유산업지역인 대구ㆍ경북지역의 섬유업계가 계속된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불황의 원인은 원화절상ㆍ원자재가격상승ㆍ임금인상등 이른바 3고현상에 겹친 노사분규 및 선진국의 수입규제강화,그리고 중국ㆍ태국등 후발개도국들의 추격으로 국제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건비상승은 업종이나 규모에 관계없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대구상의가 분석한 지역제조업계의 실태와 전망에 따르면 생산성향상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수준에도 못미치고 있으며 1ㆍ4분기의 경기실사지수가 67.7로 기준치 100을 크게 밑도는가 하면 지난해 4ㆍ4분기의 74.6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의관계자는 이같은 현상이 1ㆍ4분기에도 호전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오히려 미ㆍ일ㆍEC 등의 보호무역강화와 후발개도국의 추격으로 수출여건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대구ㆍ경북지역 1천8백여개의 섬유업체 연간 생산고는 줄잡아 2조5천억원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섬유생산고의 80%,지역전체 제조업의 49%를 차지하는 규모이다. 종업원 역시 11만여명으로 지역전체 제조업분야 종업원의 62%를 차지하고 수출비중은 73%에달해 섬유경기가 곧 지역경제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섬유업의 불황은 지역사회에 엄청난 쇼크가 아닐수 없다. 대구지역 섬유업계의 지난 연말 현재 가동률은 직물의 경우 68.9%로 전년도 71.2%에 비해 2.3%포인트가,메리야스는 70.3%로 1.7%포인트,염색은 68.7%로 2.9%포인트가 각각 떨어졌다. 섬유류 수출실적은 지난 연말 현재 14억5천만달러로 전년도에비해 8.7%가량 증가했으나 화섬업계의 재고는 전년에 비해 3배를 넘고 있다. 또 수출가격마저 지난해 연초 계약된 가격대로 수출물량을 선적한데 불과해 실속은 거의 없다는 것이 업자들의 주장이다. 임금 또한 지난해 평균 13∼15%가 인상된데다 일부 업체에서는 노사분규로 다시 10%선을 올리는등 전반적으로 큰 부담을 안고 있다. 게다가 3교대 근무제 실시로 업계의 실지 임금부담은 평균 20%를 넘어 채산성악화를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지역내 일부직물 업계에서는 인건비가 싼 스리랑카 진출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갑을방적(대표 박재을)의 경우 지난연말 스리랑카 최대국영 면방업체인 툴릴리야사를 인수했으며 삼환직물(대표 도상기)등 8개 직물업체는 공동으로 스리랑카에 3백만달러 상당을 투자,수출 자유지역인 카투나이케 등지에 부지 8천평을 마련,직물단지를 조성키로 하고 스리랑카측과 협의중에 있다. 스리랑카는 인건비가 국내의 30% 선으로 노동집약적인 직물업체에 유리하고 원면생산국인 파키스탄ㆍ인도 등과 인접해 원자재 조달이 용이한 이점이 있다. 또 현지정부는 법적인 보호와 함께 세금면제 혜택을 주고 있는 데다 미국ㆍ유럽 등으로 부터 쿼타제한을 받지 않고 기후도 직물제조에 적당한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대구시는 올해 업종의 다양화 및 지역경기부양책으로 성서공단에 첨단산업을 유치하는 한편 첨단산업 연구단지도 조성할 계획이다. 시는 성서ㆍ검단ㆍ서대구 공단과 비산염색공단 등에 입주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취득세 10%,등록세 15%,재산세 1.5% 등을 감해주고 중소기업 육성지원자금도 지난해보다 50%늘린 1백50억원을 책정,1개 업체당 최고 5천만원까지 융자 지원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섬유업계의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선 지금까지 정부의존적 성향에서 탈피해 업체 스스로가 품질향상ㆍ신제품 및 신기술개발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경영자측은 노사화합에 의한 노동의 질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하며 원자재 가격상승을 공동구매로 대처하고 섬유유통센터를 설립,대구가 섬유무역의 중심지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 「본격 정권」재출발… 가이후팀의 특징과 조각 배경

    ◎일 새내각 경험자 중심의 실무형/와타나베파,록히드관련 사토 입각 고집/한밤까지 진통 거듭,통산상 할애로 타협/“정치개혁”내세워 각파요구 눌러 새로 출범한 제2차 가이후(해부)내각은 철저한 「실무형」내각이다. 일본국내외에 산적한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각료경험자를 중심으로 조각했다. 지난해 7월 참의원선거에서의 「여야역전」의 주인이었으며,아직도 국민적 불만의 표적이 되고 있는 소비세 제도를 수정하기 위해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대장상을 유임시키지 않을 수 없었으며,미일 무역마찰의 해소,소련과의 관계개선등을 위해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랑)외상역시 바꾸지 못했다. 지난해 8월 다케시타(죽하),우노(우야)내각에 이어 3번째 「대타」로 등장했던 가이후 내각은 지난 18일 중의원선거에서 안정다수를 넘는 2백86석(추가공인 11명포함)의 의석을 획득함으로써 이제는 본격정권으로서 재출범하게 됐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자신의 재신임을 얻을 만큼 자생력이 붙은 이상 국내외의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실무내각을 구성,국민적 불만을 해소함으로써 자신의 집권기간을 더욱 연장하려는 정치적 포석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같은 구상속에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리크루트사건과 록히드사건의 관련자들을 철저히 배제하기 위해 힘썼다. 정치개혁을 이룩하겠다는 그의 명분은 각 파벌의 끈질긴 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었다. 아베(안배)파에서는 추천각료후보 명단에 리크루트사건 관련자인 모리 요시로(삼희랑)전 문부상의 이름을 넣었으나 가이후 총리가 처음부터 완강히 반대,모리의원자신이 고사하도록 만들었다. 와타나베(도변)파에서도 록히드사건으로 유죄확정판결을 받았으나 집행유예기간이 끝난 사토 고코(좌등효행)전 운수성정무차관을 강력히 천거했다. 그러나 가이후총리는 「정치개혁을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을 고집,그의 입각도 거절했다. 이번 조각에서 특히 관심을 끈것은 와타나베파의 비중과 역할이었다. 27일 조각을 위해 사카모토 미소지(반본삼십차)관방장관 내정자가 총리공관에 들어간 것이 하오4시 직전이었으나 조각본부는 하오10시50분,7시간이 넘어서야겨우 설치될만큼 난항을 겪었다. 그것은 와타나베파에서 사토의원의 입각을 강력히 주장한 때문이었다. 각료임명권자인 가이후 총리와 자민당의 한 파벌과의 대립양상마저 빚었다. 심야 오자와 이치로간사장은 2번씩이나 와타나베파의 사무실을 방문,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회장 및 야마구치 도시오(산구민부)사무총장과 담판을 벌였다. 가이후총리는 오자와 간사장을 통해 『27일중 조각을 완료하고 싶으니 와타나베파에서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와타나베회장은 끝까지 버티다 하오9시50분 『사토의원의 입각문제를 오자와 간사장에게 일임하겠다』고 양보,극적인 타결을 보았다. 이 문제로 조각이 늦어져 밤12시가 넘어서야 겨우 가능할 수 있었다. 와타나베파에서 록히드사건 관련자인 사토의원의 입각을 끝까지 고집했던 것은 그가 9선의 관록있는 의원이며 록히드사건은 이미 집행유예기간이 끝나 국민의 심판까지 받았다는 점,그가 지난해 여름 자민당에 복당해 파벌간부로서 공이 컸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러나 실질적 이유는 가이후­아베의 수순을 밟아 「차기의 차기」를 노리고 있는 와타나베회장의 정치적 발판을 굳히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가 나카소네 야스히로(중회근강홍)전 총리의 파벌을 물려받아 파벌회장이 된 이후 처음으로 내각인선에 관여하는 것이어서 이의 좌절은 큰 타격이 된다. 따라서 와타나베회장은 이번 조각에 사토의원의 입각문제를 양보한 대신 큰「조건」을 내걸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은 대장상ㆍ외상자리와 더불어 내각의 주요 포스트인 통산상의 자리를 자파에서 차지하는 것이었다. 와타나베회장의 의도는 관철됐다. 현재 자민당내의 파벌은 다케시타파가 1백4명(중69ㆍ참35)으로 가장 세력이 크며 그뒤를 아베파 86명(중62ㆍ참24),미야자와파 83명(중62ㆍ참21)이 잇고 있다 와타나베파는 중의원 51명ㆍ참의원17명등 68명으로 고모토파 33명(중26ㆍ참7)보다 앞서 있을 뿐 당내 제4위에 처해있다. □제2차 가이후 내각 직위:법상 이름:하세가와 신(장곡천신) 나이:71 파벌:죽하 신ㆍ유:신 직위:외상 이름:나카야마 다로(중산태랑) 나이:65 파벌:안배 신ㆍ유:유 직위:대장상 이름: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나이:52 파벌:죽하 신ㆍ유:유 직위:문부상 이름:호리 고스케(보리경포) 나이:55 파벌:죽하 신ㆍ유:신 직위:후생상 이름:쓰시마 유지(진도웅이) 나이:60 파벌:궁택 신ㆍ유:신 직위:농수상 이름:야마모토 도미오(산본부웅) 나이:61 파벌:안배 신ㆍ유:신 직위:통산상 이름:무토가분(무등가문) 나이:63 파벌:도변 신ㆍ유:신 직위:운수상 이름:오노 아키라(대야명) 나이:61 파벌:안배 신ㆍ유:신 직위:우정상 이름:후카야 다카시(심곡융사) 나이:54 파벌:도변 신ㆍ유:신 직위:노동상 이름:스카하라 슈ㄴ페(총원준평) 나이:42 파벌:안배 신ㆍ유:신 직위:건설상 이름:와다누키 다미스케(면관민보) 나이:62 파벌:죽하 신ㆍ유:신 직위:자치상 이름:오쿠다 게이와(오전경화) 나이:62 파벌:죽하 신ㆍ유:신 직위:관방장관 이름:사카모토 미소지(판본삼십차) 나이:67 파벌:하본 신ㆍ유:신 직위:총무청장관 이름:시오자키 준(염기윤) 나이:72 파벌:궁택 신ㆍ유:신 직위:북해도장관 이름:스나다 시게다미(사전중민) 나이:72 파벌:도변 신ㆍ유:신 직위:방위청장관 이름:이시가와 요조(석천요삼) 나이:64 파벌:궁택 신ㆍ유:신 직위:경기청장관 이름:아이자와 히데유키(상택영지) 나이:70 파벌:궁택 신ㆍ유:신 직위:과기청장관 이름:오시마 도모지(대도우치) 나이:73 파벌:도변 신ㆍ유:신 직위:환경청장관 이름:기타가와 이시마쏘(북천석송) 나이:71 파벌:하본 신ㆍ유:신 직위:국토청장관 이름:사토 모리요시(좌등수량) 나이:67 파벌:죽하 신ㆍ유:신
  • 수권능력 불투명…안정보수 선택(일본 「보혁 새정국」:상)

    ◎사회당,「비전」 제시못해 추격 주춤/군소정당 대패… 양당체제로 진입/“동구변혁등 능동대응” 국민의식도 작용 일본국민은 최후의 순간 보수안정을 선택했다. 불리한 상황속에 스타트한 집권자민당이 안정다수 의석을 획득,대승속에 막내린 제39회 일본 중의원선거결과는 한마디로 일본국민들의 「위기감의 표현」으로 집약될 수 있다. 지난해 7월 참의원선거에서의 「여야역전」이래 일본정국은 구심점을 잃고 있던 상태였다. 야당측은 「악법 소비세폐지」를 내세워 정부ㆍ여당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으며,미일무역마찰,농정실패,정치개혁,토지ㆍ주택문제등을 이슈로 국민속에 파고 들었다.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 사회당위원장이 리드해 온 야당측의 「추격바람」은 거셌던 반면,참의원에서의 여소야대현상은 계속 자민당의 정국운영에 제약요소로 작용해왔다. 가이후(해부)정권은 취약한 당내기반으로 인하여 정국을 주도하지 못했다. 중의원 해산ㆍ총선거일정 결정및 앞으로의 정국운영 방향도 다케시타(죽하)전총리ㆍ가네마루(김환) 전부총리등 당내 실력자에 의해 결정되었으며,국민적 불만의 표적인 소비세개선안 작성때도 주도권을 갖지 못했었다. 더구나 그의 불분명한 대외정책으로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어려울것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가이후총리의 외교역량에 대한 의문과 불안은 대단했다. 참의원에서의 여소야대현상을 해소하기에는 향후 6∼12년이 소요되며,그동안에는 야당과의 타협과 협조가 불가피하다. 더구나 지난 연말이래의 국제정세는 동구의 민주화개혁,몰타 미소정상회담을 통한 동서화해구축등 급변이 계속됐으나 일본은 국내정국에 얽매여 국제정세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따라서 일본 국민들의 위기감은 팽배해갔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체제선택문제」를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의 자민당의 승인이 체제선택문제가 유권자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시대감각에 뒤진 선거 슬로건이었다는 지적도 없지않았다. 최대의 승인은 역시 위기상황 아래서의 일본 국민들의 단결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측은 비전있는 뚜렷한 정책을 국민들에게 제시하지 못했으며 야당간의 선거협력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 최대의 노동단체 「신운합」(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의 정치적 영향력도 일본국민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전총리를 낙선시키기 위해 신운합이 (군마) 3구에 내세웠던 시라이시(백석건일)후보는 낙선됐다. 신운합은 당선이 불확실한 야당후보를 연합후보로 내세워 당선시킨뒤 본래의 소속 정당으로 복귀시킨다는 전략을 추진하려 했으나 각당의 반응이 여의치 않았으며 마땅한 인물도 없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신운합은 군마3구 이외에도 오사카(대판) 1ㆍ6구,효고(병고)5구 등에서 후보를 내세웠으나 효고5구의 요시오카(길강현치)후보만이 당선하는데 그쳤다. 야당간의 선거협력이 부진했던것은 사회당의 후보 대량공천(공인 1백48명,추천 10명)으로 야당간 경합이 격화되었으며 종래 선거협력의 중심추진체 역할을 맡아왔던 공명당이 일련의 의혹사건 관련으로 소극적인 자세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도이위원장의 개인적인 인기에 힘입은 사회당은 종전 의석 83석을 크게 늘린 1백36석을 획득한 반면,공명당은 54석에서 45석으로 부진했으며 공산당도 26석에서 16석으로 10석이나 줄었다. 해산당시 25석을 확보하고 있던 민사당은 14것으로 대패,창당이래 30년만의 최대 위기를 맞아 나가스에(영말영일)위원장의 진퇴 문제로까지 발전했다. 사회당을 제외한 일본야당이 이처럼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것은 사회당이외의 야당은 야당으로서의 메리트를 잃었다는 의미이며 앞으로의 일본 정국이 양대2당 체제로 접근,운영되리라는 것을 뜻한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해산당시의 의석 2백95석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당초 예상보다는 훨씬 많은 2백75석을 얻음으로써 「복조의 현상」을 나타냈다. 여기에 자민계 보수 무소속의원 15명을 합치면 당분간 안정된 단독정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전후35년간 지속돼온 자민당 일당지배체제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전망은 사회당을 비롯한 야당측의 정책부재에 기인한다. 야당측의 최대 공격목표였던 소비세는 국민생활에 어느정도 정착되어 수정작업만이 남았으며,리크루트 스캔들은 이미 「풍화」되었음을 이번 선거는 실증했다. 새로운 정책의 제시없이 소비세 폐지ㆍ리크루트 비판만으로는 선거에 승리할 수 없었다. 가이후 도시키 자민당총재는 선거결과가 밝혀진 19일하오 NHK­TV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국민들이 자민당의 정책을 지지하고 장래를 충분히 인식한 가운데 다시 정권을 담당하도록 맡겨준 것』이라는 소감을 피력했다. 비전의 제시가 없는 정치구호,비판을 위한 비판만으로는 사회당 도이위원장의 말처럼 산은 움직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 「리크루트 추문」 14명중 13명 당선/일 2ㆍ18 총선 이모저모

    ◎여후보 최다득표 영광… “마돈나 선풍” 여전/거물 2세 17명도 금배지… “정치세습” 입증 ○…지역적 기반이 중시된 이번 중의원선거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전직 총리등이 포함된 리크루트사건관련 입후보자들의 당락여부였다. 그러나 결과는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전총리를 비롯,아베 신타로(안배진태랑) 전자민당 간사장,미야자와 기이치(관택희일) 전대장상,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정조회장 등 14명의 리크루트관련자들 가운데 13명이 당선됨으로써 거물급정치인의 뿌리깊은 지지를 다시한번 확인. 이밖에 여성스캔들로 권좌에서 물러났던 우노(우야)전총리도 사가(자하)현에서 당선됐다. ○나카소네 “이젠 속죄” ○…군마 3구에서 출마,고전을 면치 못하다 3위로 당선,17선을 기록하게된 나카소네 전총리는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이것으로 속죄했다』며 감개어린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민당은 가이후(해부) 총리와 다무라(전촌) 전중의원의장,오자와간사장,가네마루(금환) 전부총리 등당 실력자들이 개표시작 직후부터 속속 당선이 확정되기 시작,순조로운 스타트. 아이치(애지) 3구가 선거구인 가이후 총리는 개표시작 1시간후인 하오8시께 당선 확실시 소식이 전해져 「총리의 관록」을 과시했는데 가이후총리는 선거운동 기간중 자당 후보지원 때문에 자신의 선거구에는 한번도 들르지 못한채 부인과 장남ㆍ장녀ㆍ실제인 비서등 가족들에게 일체를 맏겼었다. ○28표차로 당락희비 ○…이번 선거에서 가장 근소한 당락표차는 28표차이었다. 가고시마(록아도) 3구에서 출마했던 자민당의 야마나카 사다노리(산중정즉) 전세조회장(68)은 18일밤 민족의 「당선확실」 뉴스를 듣고 환호를 올렸으나 최종 계표결과 사회당이 신인 아리가와 세이지(유천청차) 후보의 6만2천4백88표보다 28표 적은 6만2천4백60표로 낙선. ○최고령자 꼴찌 당선 ○…현직 의원중 83세의 최고령으로 5명의 의원을 뽑는 효고(병고) 2구에서 접전끝에 5위로 간신히 당선된 하라 켄사브로(원건삼랑ㆍ자민당) 위원은 『18선중 이번으로 꼴찌당선은 13번째이지만 당선만되면 됐지 1위나 5위를 굳이 따질건 없다』고 말해 꼴찌 당선이라고 낙선보다는 나음을 되풀이 강조해 눈길. ○…일본정계의 「정치세습」은 세계적으로 이미 정평이 나있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신인 2세후보」 43명 가운데 당일 개표 선거구의 40명중 17명이 개표시작 3시간만인 18일 밤 10시쯤 일찌감치 당선이 확정돼 소문의 「진가」를 입증. ○여자후보 12명 등원 ○…「마돈나 선풍」은 이번 선거에서도 잠들지 않았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1명의 여성후보도 내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는 66명의 후보가 나서 12명이 당선됐다. 소속 정당별로는 사회당 7명,공명당 1명,공산당 2명,무소속 2명이었다. 이 가운데 홋카이도(북해도) 1구에서 처음 출마한 사회당의 이토 히데코(이동수자 46) 후보는 중의원 선거사상 최다득표인 26만1천1백70표를 얻어 1등으로 당선,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남편을 「배신」(?)하고 사이다마 5구에서 무소속으로 입후보,「부부출마」로 화제를 모았던 미모의 하마다마키코(47) 후보는 최하위로 낙선. 남편 하마다 타쿠지로 (병전탁이랑) 자민당의원은 리크루트사건 관련자라는 불명에에도 불구,사이다마 1구에서 거뜬이 당선됐다. ○부자의원 탄생도 ○…「NO라고 말할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으로 화제를 뿌렸으며 가이후 총리에 대항,자민당총재 후보선거에 출마했던 이시하라 신타로(석원신태랑) 전 운수상의 장남 이시하라 노부데루(석원신황) 후보가 도쿄 4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부자의원으로 탄생했다. 아들 이시하라의원은 방송기자출신으로 곧 자민당에 입당할 것으로 보인다.
  • “혁명 포기”… 일 사회당 미소작전/도이위원장 선거유세 동행취재기

    ◎총선 사흘 앞두고 이미지 개선 총력/“급진변혁 없다”유권자 무마 안간힘 13일 상오7시38분 도쿄 우에노(상야)역을 출발,나가타(신석)로 향하는 조에쓰 신칸센(상월신간선)「아사히 1호」의 10,11호 객차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특파원들로 초만원이었다. TV카메라는 출발전부터 플래시를 밝히고 차내 표정을 스케치했다. 일본 포린프레스센터가 주선한 일본사회당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위원장의 선거지원유세를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이었다. 목적지 나가오카(장강)는 추웠다.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자 설국이었다』라고 시작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천단강성)의 명작 「설국」의 무대인 나가오카에 눈은 없었으나 2월의 냉기가 몸을 떨게했다. 그러나 18일 투표를 앞둔 일본 중의원선거의 종반열기는 뜨거웠다. 도이위원장의 유세는 이날 12시15분 나가오카 역앞 오데도리(대수통리)히구치야(통구옥) 근처에 몰린 1천여명의 청중들을 상대로 시작되었다. 흰 투피스에 파란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큰 꽃을 가슴에 단 도이위원장은 언제나처럼 기운차게,그러나조금은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특히 외국의 많은 특파원들이 니가타3구의 선거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이것은 일본의 정치변화를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난해 7월 참의원선거에서의 여야 역전은 니가타로부터 시작됐다. 나는 그때 산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또하나 움직여야할 산은 이번 중의원선거이다. 국민을 배신하지 않는 정치,거짓말하지 않는 정치의 실현을 위해 사회당을 중심으로 야당은 힘을 합칠 것이다. 이번 선거는 국민투표의 성격을 갖는다. 정치를 개혁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다. 정권도 아니며 여당도 아니다. 이번 동유럽의 격동이 실증해준 바와 같이 시민의 힘이며 여러분 개개인 유권자의 힘이다』 도이위원장의 유세 중간중간 「필승」이라는 빨간 글씨의 머리띠를 두르고 빨간바탕에 흰글씨로 「일본 사회당」이라고 새긴 완장을 찬 당원과 가두연설 종사원들은 함성과 박수로 환호했다. 일반시민들도 간간이 박수를 보냈다. 도이위원장의 선거구는 효고(병고)2구이며 이날의 유세는 사회당 공천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의석정원 5명인 니가타3구에는 모두 9명의 후보자가 나섰다. 이곳은 본래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전 일본총리의 아성이었으나 그의 은퇴로 인해 다나카 지지세력인 에쓰잔가이(월산회)표의 행방이 당락을 가름하는 대격전지의 하나이다. 현재 상태에서 사쿠라이 신(앵정신) 전 정무차관(자민),사카가미 도미오(판상부남)변호사(사),무라야마 다쓰오(촌산달웅) 전 대장상(자민),와타나베 히데오(도변수앙)전 관방부장관(자민)등 4명의 전직의원이 유리하며 나머지 1석을 높고 신진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회당에서는 사카가미 전의원 이외에 메구로 기치노스케(목흑길지조)후보를 내세워 2명 동시당선을 노린다. 이번 일본 중의원선거는 지난해 참의원선거에 이어 또다시 여야역전이 이루어질 것인가가 최대의 초점이 되고 있다. 집권자민당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체제선택」을 슬로건으로 삼고 있으며,야당측은 「악법」인 소비세법 폐지를 필두로 국민생활의 질향상ㆍ리크루트문제ㆍ농정실패ㆍ미일무역마찰 등을이슈로 정부여당을 공격한다. 이날 나가오카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한결같이 소비세법의 개정 또는 폐지ㆍ물가고ㆍ교육비ㆍ35년간에 걸친 자민당 일당지배체제등을 들어 정치의 변화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여성총리의 등장에 관해서…』라고 물으면 『글쎄,아직은 좀…』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도이위원장도 사회당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듯했다. 이날 유세후 한국ㆍ미국ㆍ소련ㆍ중국등 18개국 66명의 외국특파원들과 회견하는 자리에서 『사회당이 정권을 잡으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며 망상』이라고 강조하고 『사회주의혁명의 실현을 지향하는 당규약을 오는 4월 당대회에서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외교문제ㆍ대외적 약속사항은 변경할 수 없으며 단절되어서도 안된다』고 말하고 『사회당 중심의 연합정권이 수립되더라도 미일안보조약등 대외관계는 자민당의 정책을 계속 추진한다』는 기본입장을 설명했다. 이번 선거결과에 관해 일본내의 예측은 여러가지이다. 자민당이 의원정수 5백12석의 과반수인 2백57석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에서 부터 2백60석은 무난하다는 예상,나아가 의외로 많은 2백80석까지 획득하지 않겠는가라는 낙관론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많다. 일본언론들은 「가까스로…」라는 표현을 빌려 과반수이상인 2백60석내외를 점친다. 지난해 참의원선거때와는 달리 자민우세론이 성한것은 현재의 일본국민은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을 더 희구하고 있다는 속성을 그근거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또 지역적 기반이 중시되는 중의원선거는 참의원의 경우보다는 「바람」을 덜 탄다는 사실도 꼽는다. 기자회견에서 시간관계로 질문을 다 받지 못한 도이위원장은 『오는 19일까지만 기다려달라』며 자리를 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역시 자신도 모르는 것이다.
  • 외언내언

    오늘의 일본인 가운데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92%나 된다고 한다. 일본신문이 5년마다 실시하는 국민 의식조사의 최근 결과에 따르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5%. 그리고 90%의 사람은 자신이 중류계층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81%의 사람이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년동안 별 변동이 없는 이 조사결과는 일본 국민생활의식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라 할 수 있다. ◆그 안정을 깨고 일본의 변화를 야기할지도 모르는 일본 총선이 3일 후인 18일로 다가왔으며 일본열도가 선거열기로 온통 달아 오르고 있다. 리크루트사건,성급한 소비세 도입,여성 스캔들 등으로 궁지에 몰린 자민당이 2백57석의 과반수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작년의 참의원 의원선거때와 같은 참패로 35년 장기집권의 권좌를 내어놓는 선거혁명이 일어날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 막판 회복세의 자민당은 소ㆍ동구 공산권 붕괴를 무기로 「체제선택」을 강요하고 있으며 사회당은 유권자에게 인기없는 소비세를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그러나 종반전의 선거유세에서 일본 유권자들의 관심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은 거창한 쟁점들보다는 정치세습이라든가 여성표 쟁탈,부부후보,나카소네(중증근) 전총리의 고전 등 사소하고 인간적인 것들. 자민당만 해도 이번 총선을 계기로 후쿠다(복전),스즈키(영목) 전총리 등 원로들이 대거 은퇴하고 아들들을 대신 내세운 세습 후보가 30여명이나 된다. 『이 나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 발전을 위해 충분히 도움이 될 나의 장남 야스오군을 부탁합니다』 후쿠다 전수상은 장남 지원유세에 여념이 없다. ◆후쿠다 전총리의 장남이 출마하고 있는 도쿄 북쪽 군마 3구는 리크루트 스캔들로 자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나카소네 전총리와 오부치 전관방장관 야마구치(산구) 사회당서기장 등 7명의 후보가 4석의 자리다툼을 벌이고 있는 격전지. ◆금권 스캔들로 옥중에 있으면서도 전국 최고득표를 올린 다나카(전중) 전총리의 기록도 있는 일본인 만큼 나카소네 전총리의 명에회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그를 낙선시키기 위한 야당연합 공세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소식. 일본 총선의 결과가 어떤 드라마로 전개될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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