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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로아 평화유지단 단장/유엔,한국 민병석씨 임명/사무차장보 겸임

    【유엔본부=이건영 특파원】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3일 유엔 크로아티아 평화유지단(UNCRO)단장에 한국의 민병석 전 주체코대사를 임명했다. 민UNCRO단장은 유엔사무차장보를 겸임하는데 한국인으로서는 유엔사무국에 진출한 최고위인사이다. 민단장은 오는 17일 현지에 부임할 예정이다. 민단장은 UNCRO현황등 현지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20일부터 23일까지 크로아티아를 방문했었다. 민단장은 UNCRO의 임무수행을 위한 외교적·정치적 협상을 전개하고 UNCRO 군사요원 및 민간요원에 대한 업무조정역할등 전반적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지난 91년 6월 유고연방에서 분리독립한 크로아티아에서는 현재 정부군과 세르비아계 민병대간의 내전이 계속되고 있으며 유엔은 크로아티아를 포함,보스니아­헤르체고비아,마케도니아등 옛유고 연방에서 분리독립한 3개국에 각각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있다.이들 3개 평화유지군에 대한 총괄지휘는 일본인인 야스시 아카시 유엔사무총장특별대표(유엔사무차장)가 맡고있다. 유엔은 크로아티아에 지난 5월말 현재 평화유지군 1만4천8백25명을 포함,군사옵서버·민간경찰요원등 모두 1만5천8백39명을 파견하고 있다.
  • 일 통화량 증가추세/금리 더 내릴 가능성/경제기획청 전망

    【도쿄 AFP 연합】 고무라 마사히코(고촌정언) 일 경제기획청장관은 기록적인 저금리 상황에도 불구,앞으로 금리가 더욱 인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15일 전망했다. 고무라 장관은 정례 각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제 상황에 『우려될만한 문제점들』이 있지만 『금리 하락의 여지』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고무라 장관은 이어 마쓰시타 야스오(송하강웅) 일본은행 총재의 말을 인용,현재 『통화량이 완만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하면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지난 5월 중순 이후 개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은행은 지난 4월 재할금리를 1.75%에서 1%로 인하했다.
  • 나토기,두차례 세계 공습/중화기 사용에 대응

    ◎폭격기 6대 출격… 탄약고 폭파/세계,“유엔평화군 공격” 경고 【자그레브·워싱턴 외신 종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소속 전폭기 6대가 25일 보스니아내 사라예보 동남쪽 15㎞지점에 위치한 세르비아계 거점 팔레부근 탄약고 등에 공습을 두차례 감행,상당한 피해를 입혔다고 자그레브 주재 유엔 공보관이 밝혔다. 이날 하오4시(한국시간 하오11시)와 4시25분 두차례에 걸쳐 팔레부근 요호린스키 포톡과 라브나 플라니나 등 두곳에 실시된 제한공습은 성공적이었고 공습에 참여한 비행기들은 아무런 사고없이 이탈리아의 기지로 귀환했다고 이 공보관은 전했다.아카시 야스시 유엔특사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이번 공습에는 스페인기지에 있던 미군기도 참여했으며 전폭기 6대외에 정찰기 등도 포함돼 있다. 목격자들은 상공에 전폭기들이 보이더니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고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다고 말했다. 이번 공습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중화기 사용중지 및 인계를 요구하는 유엔의 최후통첩을 무시,통첩시한이 4시간 경과한 뒤 감행됐다. 이에 대해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는 이날 보스니아 북부 반야 루카에서 세르비아계 라디오와 가진 회견을 통해 유엔이 나토에 공습명령을 하달할 경우,유엔군을 「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해 사라예보 등 보스니아내 유엔평화유지요원을 공격할 것임을 시사했다.
  • 남·북 관계 실질개선 위한 전향조치/정부위 대북직접투자 승인 배경

    ◎투자보장협정 미비… 소액사업에 한정/경수로 교착속 본격 경협실험 큰 의미 17일 정부가 (주)대우와 고합 등 2개 대기업에 대해 남북협력사업등을 허용한 것은 본격적인 남북경협시대를 앞둔 실험적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마디로 이번 조치의 요지는 지금까지 물물교환수준에 머물던 남북경협을 합작투자,즉 대북 직접투자까지 가능하도록 길을 연 것이다.현재 남북경제교류는 제3국을 통한 간접교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다만 직교역과 위탁가공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그러나 (주)대우는 이번에 협력사업승인을 받아 북한의 남포공단에서 셔츠·재킷·가방 등 3개 사업에 대한 합영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또 협력사업자승인을 받은 (주)고합물산은 의류·봉제 등 4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이번 조치는 민간기업에 대해 대북진출의 첫발걸음을 떼도록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는 이번에 협력사업 내지 협력사업자승인조치를 취한 대상이 5백만달러 안팎의 소규모 시범사업에 국한되어 있다는 데서 쉽게 알 수 있다.더욱이 사회간접자본을 포함한 대규모 투자는 남북당국간 대화를 통해 투자보장협정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라야 한다는 정부의 방침에도 변화가 없다. 이처럼 제한을 둔 것은 우리 여건이 남북당국간 합작투자등 전면적인 경협시대로 진입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시각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8일 남북경협활성화조치로 핵·경협 연계고리를 풀고는 대북 투자타당성 조사수준의 기업인 방북을 거의 허용해왔다.이에 따라 지난 연말부터 대우·고합을 포함해 LG·쌍용·신원 등 10여개 기업이 1차 방북을 마쳤다. 때문에 이번에 협력사업자신청을 한 6개 기업중 고합 1개 기업만 승인을 받았고 특히 고합측이 신청한 6개 분야 사업내용중 투자규모가 1천달러가 넘는 2개 사업은 승인이 유보된 점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한국형경수로를 한사코 거부,북한핵문제가 교착되고 있는 미묘한 시점에서 이같은 전향적인 조치가 취해졌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나웅배 통일부총리등 당국자등은 이와 관련,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조치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단계적으로 경협을 확대,북한의 변화를 유도하자는 생각이 개재돼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그런 의미에서 2개 기업에 대해 선별적으로 사업(자)승인을 낸 것은 아직 북한핵문제해결의 전도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감안한 최소한의 조치로 풀이된다. ◎대북투자사업 어떻게/대우/시설 설치·감독권… 북선 부지·토목 공사/8월께 가동… 가방 등 연4백만개 생산/고합/봉제 등 4개분야 6백86만달러 투자 추진 정부가 17일 처음으로 (주)대우에 남북간 경제협력사업을 승인함에 따라 대우그룹의 남포공단이 빠르면 오는 8월 가동을 시작한다. 사업추진 3년4개월,사업자승인을 받은 지 2년6개월 만이다.남북경협에 관한 한 최초의 협력사업자승인과 최초의 사업승인을 받는 등 선발주자로서의 위상을 굳힌 셈이다. 대우는 정부로부터 셔츠·블라우스(2백83만달러)와 재킷(1백15만달러)·가방(1백14만달러) 등 3개 사업에 모두 5백12만달러의 투자승인을 받았다.이에 따라 3∼4개월의 준비기간을 갖고 8월이나 9월쯤 남포공단을 가동할 계획이다.정부의 승인을 받는대로 15∼20명의 기술자도 북한에 파견한다. 북한측 파트너는 삼천리총회사.합영방식으로 투자하며 사업기간은 무기한이다.대우가 공장의 생산설비의 설치 및 감독권을 행사하며 삼천리총회사는 부지조성과 토목공사 등 건설을 맡는다. 대우는 연간 셔츠와 블라우스가 3백15만장,재킷 60만장,가방 95만4천개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당초 대우는 3개 품목 이외에 ▲메리야스 ▲신발 ▲봉제완구 ▲면방 ▲양식기 등 9개 품목,8개 공장에 대한 투자를 정부에 신청했었다.사업이 진전되면 나머지 사업에도 투자가 가능할 전망이다. 업계는 대우가 이번에 사업승인을 받은 것은 치밀한 추진전략의 개가로 평가한다.지난 92년1월 김우중 회장이 북한을 공식방문,남포공단에 대한 협력사업을 처음으로 북한측과 합의했다.그후 92년10월 협력사업자승인,남포공단조사단 방북,92년11월 협력사업승인신청서 제출,95년1월 이경훈 부회장일행의 방북 등 조직적으로움직였다. 지난 3월25일 경수로문제로 한창 시끄러울 때 기습적으로 통일원에 남포공단 가동을 위한 협력사업승인신청서를 제출했다.이때 지난 92년10월 투자조사단 파견 및 지난 1월 방북결과 북한측과 합의한 남포공단 가동협의서와 ▲투자계획 ▲자금조달 및 인력관리 ▲추진일정 등이 기재된 협력사업신청서를 제출했다. 한편 고합물산도 사업자승인을 받고 본격적인 북한진출을 준비중이다.1백만달러규모의 수지병과 4백50만달러규모의 직물,70만달러규모의 의류·봉제,66만달러의 이불 등 4개 사업을 50년 기간(연장가능)으로 북한의 광명성총회사와 경협을 추진할 계획이다.
  • 숨은 봉사로 갱생 뒷받침/제 13회 교정대상 영광의 얼굴들

    ◎교화외길 21년… 출소자 사회복귀 헌신/박철규 인천구치소 교사 ▷대상◁ 『더 열심히 일하라는 채찍으로 알겠습니다.재소자 교화에 힘을 쏟아 밝은 사회를 만드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올해 교정대상을 수상한 인천구치소 박철규(49·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삼환아파트 113동 405호)교사는 지난 74년 교도관에 임용된 뒤 줄곧 인천구치소에서만 근무했다.그래서 재소자들은 박교사를 「터줏대감」이나 「선생님」으로 부른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회에서 격리된 재소자들과 함께 보낸 세월이 자그만치 21년.형기를 마친 출소자의 취업알선,소년재소자 대학진학 주선등 헌신적인 교도관상을 실천한 공로로 인천시장과 인천지검장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따뜻한 눈으로 재소자들을 대하니 그들도 닫혀 있던 마음을 열더군요.소년수들을 상담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습니다.가정형편에 쫓겨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도 많습니다.전과자로 한번 낙인찍히면 무조건 외면하는 사회풍토가 범죄를 더 부추기지요』 박 교사는 그래서 「취업이 곧 재범방지」라고 생각한다.지금까지 사회에 나가도 오갈데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출소자 35명의 보증인이 되어 인천일대 직장에 취직시켰다.소년재소자를 고시반에 편입시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 15명을 대학에 보내기도 했다. 『며칠전이었어요.10년전 강도상해죄로 징역4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오모씨를 이웃 가게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중·고교생들을 상대로 과외교사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뻐 눈물이 나더군요』 오씨처럼 출소한 뒤 남못지 않게 사회인으로 떳떳하게 정착한 모습을 볼 때 박 교사는 보람을 느낀다. 그는 사회활동도 누구 못지않게 왕성히 하고 있다.8개 단체에 가입해 이름 석자 뒤에 따라붙는 호칭도 많다.헬스크럽회장,아파트자치회 회장,인천산악회 회장…. 『담 안쪽으로 한정된 테두리에서 생활하다 보면 마음도 작아지기 십상이지요.다양한 사회활동 경험을 쌓으면 자기뿐 아니라 재소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자기들이 겪어보지 못한 건전한 삶을 교도관을 통해간접체험하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 거지요』 말에서도 활력을 느끼게 하는 그는 91년 무의탁 소년소녀가장 돕기모임에 회원으로 가입,박봉에서도 달마다 2만원씩 후원금을 내고 있기도 하다. 2년 뒤면 정기승진 대상에 오르는 박교사는 『승진이 너무 더디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빙그레 웃기만 했다.71세의 노모를 모시며 부인 김영자(42)씨와 사이에 3녀를 두고 있다. ▷본상◁ ◎무의탁 소년범에 무료변론 주선/최종국 면려상/강릉교도소 교위 74년 5월 교도관으로 임명된 뒤 21년동안 줄곧 불우재소자의 교화와 그 가족의 뒷바라지에 힘써왔다. 작업과 직업훈련을 담당하던 84년9월부터 86년12월까지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재소자에게 머리깎는 기술 등을 가르쳐 20명이 자격증을 따게 했다. 소년재소자에게 한자교본 1백6권과 만능노트등을 지급해 한자공부를 시키고 효도편지쓰기와 독서를 권유,심성을 순화하고 교양을 쌓도록 했다. 특히 의지할 곳 없는 소년범에게 변호사의 무료변론을 주선하는등 소년재소자의 교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출소자 취업 알선… 자립기틀 마련/김재종 성실상/의정부교도소 교위 재소자 교화에 관심이 있는 지역 독지가들을 수시로 찾아 86년2월 교양도서및 학습교재 1천9백여권과 교화용 방송기자재,재소자용 악기등 1천6백여만원어치의 교육기자재를 기증받음으로써 재소자 교정교육의 효과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88년10월에는 교도소 안에서 나오는 빈상자 등 각종 재활용품을 수집,판매해 수익금 9백80만원을 무의탁재소자 38명에게 영치금으로 넣어주는가 하면 노모가 위독한데도 벌금을 내지 못한 재소자의 벌금 30만원을 대신 내줘 출소할 수 있도록 했다. 또 76년부터 17명의 출소자를 전자대리점·양복점 등에 취직시켜 자립갱생의 기틀을 마련해줬다. ◎명심보감 등 활용,정신교육 힘써/신현대 창의상/전주소년원 보도주사 69년부터 90년까지 광주·대전·제주소년원에 근무하면서 무의탁 소년원생 2백89명의 취업을 알선하고 독지가와 자매결연을 주선해 건전한 사회인으로 정착하는 일을 도왔다. 73년 광주소년원에 근무할 때 포크댄스·에어로빅을 특별활동 프로그램으로 도입,지도함으로써 수용생활의 딱딱한 분위기를 개선하는 한편 미술에 소질이 있는 소년원생이 퇴원한 뒤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학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지난해까지 광주소년분류심사원에 근무하면서 예절교육을 위한 각종 교재를 손수 만들어 보급했으며 「명심보감」의 주요내용을 발췌해 소년원생 정신교육교재로 활용하는등 창의적 업무를 수행해왔다. ◎1백11명 검정고시 합격 밑거름/박해국 교화상/광주지방교정청 교회관 74년부터 91년까지 광주및 목포교도소에 근무하면서 상담을 통해 문제수형자 3백57명의 고충을 신속히 해결해주고 종교위원과 자매결연을 주선,심성을 순화하고 수용생활에 적응하도록 선도했다. 79년부터 재소자 3백50명을 대상으로 검정고시반을 운영하면서 문제지를 자비로 구입,개별지도를 하는등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끝에 재소자 1백11명이 고입및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벌금을 내지 못해 출소하지 못하는 재소자를 위해 벌금 75만원을 대신 납부하기도 했으며 74년부터 텔레비전·교양도서등 1천3백여만원어치의 교화기자재를 기증받아 교정교육의 기반을 적극 조성했다. ▷특별상◁ ◎「한사람 한종교갖기」운동 펴/박은규 박애상/62·청주교도소 종교위원 청주서부교회 담임목사로 법무부 전국교화협의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68년 청주교도소 교화위원에 위촉된 뒤 27년동안 재소자의 교화선도에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사람 한종교 갖기운동을 벌여 7백80여명이 기독교신자로 귀의했고 무연고재소자 1백50여명과 자매결연을 하여 자주 교화상담을 하는 한편 5백여만원어치의 생활필수품을 지원해 안정된 수용생활을 도왔다. ◎198명과 결연맺고 고충상담/김수장 자비상/54·청송제2보호감호소 종교위원 보국불교 염불종 승려로 84년부터 11년동안 감호자의 신앙생활지도,무연고자 자매결연,출소자 취업알선에 힘써왔다. 특히 90년 11월부터 5회에 걸쳐 감호자 85명에게 수계식을 열어 수계증을 줌으로써 이들이 참된 불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왔다. 84년부터 법문과 교리를 지도하는 한편 재소자 독경대회를열어 삶의 바른 자세를 일깨워주고 신앙을 통한 심성순화에 기여했다. 특히 가정형편이 어려운 감호자 1백98명과 자매결연을 해 개별상담지도를 하며 고충을 처리해주고 이들에게 7백50여만원상당의 생활필수품을 지원하기도 했다. ◎신앙생활 인도… 갱생의욕 높여/이열우 자애상/68·청주교도소 종교위원 천주교 청주교구청 교도사목회장으로서 84년부터 청주교도소 종교위원에 위촉돼 자매결연 상담,불우재소자 지원,교화기자재 기증등 재소자 교화선도에 헌신적으로 봉사해 왔다. 재소자 1천8백여명에게 부활절 미사를 집전하고 1백62명을 천주교에 귀의시켜 신앙생활을 통해 갱생의욕을 높이도록 이바지했다. 88년1월 겨울철에 열린 각종 집회와 교화행사때 난방시설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 온풍기를 기증했다. ◎장기수 생활용품·영치금 지원/우수정 공로상/58·대구교도소 교화위원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남달서지구협회장으로 79년5월부터 재소자 교화사업에 뛰어들어 적극 활동한 공로로 92년에는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그동안무의탁 장기수 63명과 자매결연을 하여 개별상담을 하는 한편 생활용품과 영치금 7백여만원을 지원하는등 재소자의 심성순화및 수용생활안정에 기여했다.92년에는 장기수로 복역하고 있는 재소자가 옥중결혼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주선해주기도 했다. ▷장려상◁ ◎자격증 취득 도와/서정민 안동교도소 교위 22년동안 장기 근무하면서 재소자에게 목공과 인쇄·양재 등의 기술서적을 자비로 제공하고 실습까지 시켜 83명이 1·2급 기능사자격증을 따도록 했다.자격증취득자는 일반 증소기업등에 취업시켜 재범방지에 기여했다. 88년7월부터는 교도소 직원 52명에게 컴퓨터 사용방법을 직접 교육하고 있다. ◎출소자취업 지원/이손권 부산교도소 교사) 72년 교도관으로 임용된 뒤 78년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재소자 김모씨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자 김씨의 부인을 섬유회사에 취직시키는 한편 의지하거나 갈 곳이 없는 출소자들을 목공소등에 취업시키는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89년에는 한남교회와 자매결연을 하여 문제재소자를 신앙으로 교화시켰다. ◎환경개선에 솔선/현대환 제주교도소 교사 81년 출소자 16명을 제주자동차학원에서 무료로 운전교육을 받도록 주선,운전면허를 따게 한 뒤 자동차정비공장과 운수회사 등에 취직시켜며 재범방지에 힘을 기울였다. 86년2월에는 여직원 양모씨가 심장판막증으로 입원하자 모금운동을 벌이고 교도소 환경개선에도 솔선수범했다. ◎생필품 무상 공급/윤무현 순천교도소 교위 63년 교도관으로 들어와 31년10개월동안 재소자의 직업훈련과 취업알선 등으로 교화사업에 힘썼다. 87년3월 노동부 여수사무소 등과 협조,직업훈련 교재 2백45권을 받아 재소자의 직업훈련에 활용했으며 생필품을 지급,안정된 수형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벌금·영치금 대납/이대길 재송보세장치장 대표 74년 부산교도소 교화위원으로 위촉된 뒤 재소자 정신교육과 문제재소자의 개별상담및 자매결연,위안회,신앙간증집회등 재소자의 순화교육을 몸소 실천했다. 87년부터 지금까지 출소자 15명의 취직을 알선하고 불우재소자 가족 15명의 생활보조금을 지원했으며 무의탁 재소자의 벌금과 영치금을 대신 납부하는등 재소자가 안정된 수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법회 170회 열어/정정수 천지사 주지 안양교도소 종교위원으로 15년동안 활동하면서 80년이후 6만8천여명에게 설법을 하고 1백70여차례의 정기법회를 열어 재소자의 선도에 정성을 기울였다. 86년 장기형을 마치고 출소한 우모씨등 4명이 출가해 스님의 길을 걷게 하는가 하면 전과18범 김모씨의 결혼을 주선하고 취업도 시켜 단란한 가정을 이루도록 뒷바라지하고 있다. ◎장애자 숙식 제공/유양자 삼풍화학대표 전주교도소 종교위원으로 90년 3월부터 무의탁 출소자 26명을 취업할 때까지 삼풍화학공장에 데리고 있으면서 전주 백양메리야스공장등에 취업시키는등 출소자들을 돌보왔다.장애자와 무연고 출소자등 10명을 집에서 숙식시키며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사랑을 베풀기도 했다. 87년부터 모두 15차례에 걸쳐 연예인 1백50여명을 초청,재소자들에게 줄거운 오락을 제공,수형 생활의 분위기를 명랑하게 바꾸기도 했다. ◎재소자 악단 지도/김장룡 순천시 위생단체연합회회장 순천교도소 교화협의회회장으로 재소자 위문공연,자매결연 상담,불우재소자및 가족생활 지원등 재소자를 위해 17년10개월동안 봉사했다. 재소자 이모씨등 2명의 자녀 5명이 고아원에 들어간 소식을 듣고 이 어린이들과 자매결연을 하고 재소자 악대부를 지도해오며 이모씨등 4명이 악사자격증을 획득하도록 이끌었다.
  • 미·러·EU/크로아내전 긴급 진화나서/내일 제네바 「평화회담」제의

    ◎세계,자그레브도심 재포격… 40여명 사상/아카시 특사 “적대행위 중단 구두합의” 【자그레브·사라예보·워싱턴·모스크바 AP AFP 로이터 연합】 크로아티아 정부군이 세르비아계 반군에 대해 공습을 감행한데 대한 보복으로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 반군이 크로아티아내 수도 자그레브에 로켓포 공격을 감행,부상자가 속출하는등 옛 유고 연방지역의 내전은 확전기미를 보이고 있다. 세르비아계 반군은 3일 크로아티아 정부군의 전략요충지인 오쿠카니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자그레브시내에 로켓포 공격을 감행,1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부상당했다. 지난 2일에도 세르비아계가 장악하고 있는 자그레브 남쪽지역에서 집속탄이 든 오르칸 로켓이 발사돼 5명이 숨지고 1백34명이 부상당했다. 한편 크로아티아에서 세르비아계와 정부군간의 충돌이 격화되는등 옛 유고의 내전이 확대 양상을 보이자 미국과 러시아 등은 2일 긴장완화를 위한 공동 외교 노력에 긴급히 나섰다.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전화통화를 갖고 영국,프랑스,독일등 보스니아 사태 중재를 위한 이른바 5대 접촉국 그룹이 크로아티아의 평화 조성을 위해서도 적극 노력키로 했다고 니콜러스 번스 국무부대변인이 전했다. 또한 데이비드 오웬 유럽연합(EU)특사와 토르발트 슈톨텐베르크 유엔 특사도 3일 크로아티아 정부와 세르비아계 세력 지도자들에게 오는 5일 제네바에서 긴급 회의를 갖자고 제의했다. 【자그레브 AFP 연합 특약】 크로아티아 정부군과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 반군은 크로아티아 동부지역에서 적대행위를 중단키로 합의했으며 이는 하오 4시(현지시간)부터 발효된다고 3일 아카시 야스시 유엔특별대사가 밝혔다. 아카시 대사는 기자회견에서 자그레브와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의 카라지나 공화국 지도자간의 구두합의는 곧 조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확전 치닫는 유고 내분/세계 반정부 연합 구축… 유엔 통제력 상실 전면전 발발을 예고하는 먹구름이 발칸반도 상공을 짙게 덮었다.오랜 보스니아내전으로 발칸반도는 이미 「세계의 화약고」로 지칭돼온 지 오래지만 이번 먹구름은 이제까지보다 훨씬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돼 심각한 우려를 부르고 있다. 4개월간의 보스니아휴전이 만료된 1일 전격단행된 세르비아계 반군에 대한 크로아티아정부군의 기습공격에 세르비아계 반군은 즉각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와 공동전선을 펴는 등 옛 유고연방전역으로 전쟁이 확산될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된 때문.보스니아내전이 인근 공화국으로 확산되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보려던 국제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한편 유고전역에 전쟁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될 것이란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 직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 주재 외교관들은 크로아티아정부군이 지난 91년 세르비아계가 분리독립,자치공화국으로 선포한 「크라이나」의 일부를 탈환한 이번 공세에 대해 여러가지 이유에서 위험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라고 진단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2일 작전완료를 선언하면서 공세는 이틀에 국한된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일단 전투가 시작된 이상 재개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특히 자그레브에 대한 세르비아계의 대규모 보복폭격에서 볼 수 있듯 대도시들에 대한 공격은 보복의 악순환을 불러 전쟁확산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전확산위기를 고조시킨 것은 크로아티아가 반군과의 분쟁지역인 「오쿠카니」를 협상과 외교가 아닌 무력수단을 통해 장악한데 대해 유엔평화유지군 등 국제사회가 아무 제지도 하지 못한 점이다.유엔 안보리는 1일 긴급회의를 열고 크로아티아군의 공격을 즉각중단하라고 촉구했을 뿐 크로아티아의 공격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라도반 카라지치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지도자는 이번 공세와 관련,『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아무도 말릴 수 없다』며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에 대한 지원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그의 의지여하에 따라 보스니아내전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여겨진 카라지치가 이같은 강경입장을 표명한 것도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프랑스·영국 등 유럽국가는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계가 전면전을 벌이면 자국 소속의 유엔평화유지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히고있어 대규모전쟁이 재발하면 싸움을 말릴 중재자조차 없게 되는 발칸반도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살육전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보스니아 휴전 만료/불가침협정 추진/UN

    【사라예보 로이터 AFP 연합】 1일로 시효가 끝나는 보스니아 정부군과 세르비아계간 휴전협정 연장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유엔은 양측간의 한시적인 불가침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고 유엔 관리들이 지난달 29일 밝혔다. 사라예보의 유엔 관리들은 지금 현재로선 휴전협정 연장은 거의 절망적인 상태이며 아카시 야스시 유엔 특사가 30일 양측 지도자를 만날 예정이지만 그가 휴전협정을 연장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다만 낮은 수준에서나 전쟁 억지효력을 지닐 수 있는 합의 도출을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사라예보 로이터 AFP 연합】 보스니아 정부는 1일로 만료되는 휴전을 연장하라는 유엔의 요청을 거부한채 대신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공식적으로 다짐했다고 아카시 야스시 유엔 특사가 30일 말했다. 아카시특사는 그러나 휴전 연장 희망을 포기하지않을 것이며 알리아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 대통령과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와의 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계속 논의할것이라고 덧붙였다.
  • 도쿄 현대미술관/문 열자마자 “구설수”

    ◎“만화” 「머리 리본을 단 소녀」 거액구입 말썽/“현대 아시아미술 무시했다” 비난 드높아 도쿄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세계적인 도시로 인정받기 위한 야심작으로 최근 개관한 도쿄현대미술관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흔히 세계적인 도시라고 하면 뉴욕 런던 파리를 일컫는다.이들 도시는 문화적으로 뭔가 대단한 듯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파리하면 루브르박물관,런던은 테이트 미술관,뉴욕은 시립미술박물관이 자동적으로 연상된다. 도쿄도 세계적인 도시의 반열에 끼기를 원하지만 문화적으로 이렇다하게 내세울게 별로 없었다.우에노공원에 국립박물관이 있어 귀중한 일본예술품을 보관하고 있지만 초라해 보이고,그 옆에 국립서양미술관이 있으나 전시작품을 다 합해야 루브르박물관의 전시실 한두개를 겨우 채울 정도다.시립미술관이 있지만 전시용으로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장소로 주로 사용된다. 그래서 지난 63년부터 은밀히 준비하고 87년부터 건물설계에 들어간 끝에 도쿄현대미술관이 지난달 18일 문을 열었다.일본작품 외에도 주요 외국작품 4백80점을 과시하면서. 그러나 몇가지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우선 간판작품으로 삼기 위해 6백만달러(약47억원)를 주고 구입한 미국 대중미술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머리리본을 단 소녀」를 놓고 『시민들의 돈을 이같은 「만화」하나 구입하는데 그렇게 엄청나게 써도 되는냐』하는 반발여론이 제기된 것.6백만달러는 물론 일본이 구입한 단일작품 최고가는 아니다.오사카가 모딜리아니 작품을 1천9백만달러에,아이치현이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1천7백만달러에 구입했고,군마현도 모네작품에 1천1백만달러를 쏟아부었다.사기업이지만 야스다 해상화재보험은 반 고흐 작품인 「해바라기」를 3천9백만달러에 사들였다.그러나 모두 사치가 당연시됐던 80년대 거품경제 시대에 이뤄졌던 일들이다. 두번째로 현대 아시아미술을 무시했다는 지적이다.앤디 워홀,데이비드 호크니,프랭크 스텔라,케네스 놀랜드,마크 로스코 등 서구 기성화가들의 작품을 배면 대부분이 일본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장소 선정문제다.쓰레기 매립지인 「꿈의 섬」과공장지대로 더 잘 알려져 문화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고토구에 위치해 있다.매립지여서 지진에 약하다는 얘기다.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작품까지 합해 4억3천만달러가 투입된 화강암 건물의 도쿄현대미술관은 도쿄의 새로운 명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미술관측은 연간 관람객이 70만명 수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 보스니아,“휴전연장 반대”/실라지치 총리,유엔특사에 밝혀

    【사라예보 AF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회교정부의 하리스 실라지치 총리는 이달말로 시한이 끝나는 휴전 연장제의를 거절했다고 사라예보를 방문중인 아카시 야스시(명석 강) 유엔특사가 20일 말했다. 아카시 특사는 이날 실라지치 총리와의 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실라지치총리가 휴전 연장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한편 유엔이 휴전연장을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는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에게 접촉그룹의 제안을 수용토록 압력을 가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다고 외교관들이 전했다.
  • 일 나카소네 정치생명 “풍전등화”/4등당선 지역구 오부치와 결합

    ◎인기도 뒤져 비례대표 전락위기 관록의 정치인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77)전총리가 최근 정치생명을 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80년대 국제무대에서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나카소네지만 선거제도가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지역구를 내놓으라는 압력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 47년부터 일본 중부의 군마현 제3선거구에서 18번 당선했다.지난 선거까지 군마3구에서는 자민당에서 나카소네 전총리 말고도 후쿠다 야스오(복전강부·48·재선·후쿠다 다케오 전총리의 장남),오부치 게이조(소연혜삼·58·11선·자민당부총재)등이 당선해 왔다.이 가운데 후쿠다 의원의 아버지인 후쿠다 전총리와는 선거때마다 득표율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져 「복·중전쟁」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나카소네 전총리는 하지만 중앙무대에서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거구에서는 후쿠다와 오부치에게 뒤져 왔다.지난 선거에서는 사회당의 야마구치 쓰루오의원에도 뒤져 4등으로 당선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더 험난하다.지난해 선거제도가 바뀌면서 4명을 뽑던 선거구가 둘로 나뉘고 정원이 2명 줄었다.자민당내에서 누군가 한명은 탈락이 불가피하다.후쿠다 집안은 떼놓은 당상격이고 오부치부총재는 선거구조정 소위원회를 맡고 있는 실력자.오부치 부총재는 신군마5구를 택하고 어디서 나와도 당선가능한 후쿠다는 남부인 신군마4구를 주며 역시 신군마4구가 기반인 나카소네를 비례대표로 밀어내기로 복안을 마련했다.이러면 신군마4구에서 다시 「복·중전쟁」이 일어나고 자신은 여유있게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오부치가 지난달 23일 나카소네를 찾았다.『총리를 거친 원로들은 비례대표로 나가주셔야죠』하고 운을 뗐다.나카소네는 『나는 이제 일개 병졸일뿐.당간부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정면으로 거부했다. 여기에 후쿠다씨는 득표율등을 감안해 신군마5구를 택하겠다고 선언했다.50년 벌여온 복·중전쟁이 1백년 지속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졸지에 오부치와 나카소네의 「중·소전쟁」으로 돼 버렸다. 하지만 오부치가 좌장인 소위는 나카소네를 비례대표로 하는 조정안을 마련했다.비례대표가 되면 「뿌리없는 풀」신세가 될 것은 뻔한 일.의원직을 물려주기도 어렵고 영향력도 낮아진다.비례대표를 기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제 조정안은 고노 총재의 손에 넘어가 있다. 정계원로인 나카소네는 군마의 산길을 홀로 걸으며 고군분투할 것인지 비례대표라도 누릴 것인지 어려운 선택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일 부전결의 반대 청원의원/친한파인산 다수 포함

    ◎다케시타 등 한일 의원연맹 간부도 【도쿄 연합】 일본 국회의 부전·사죄 결의에 반대하는 우익단체의 청원을 소개한 국회의원중에는 과거사를 반성했던 전직 외상은 물론 친한·지한파로 알려진 인물들이 망라돼 있어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부전결의에 반대하는 우익단체인 「종전 50주년 국민위원회」(회장 가뢰준일)는 16일 하오 긴급 집회를 갖고 부전결의 반대 서명록을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하고 이 서명록에 찬성해 국회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국회의원 명단 2백75명을 발표했다. 이 명단에 따르면 한일국회의원연맹 회장인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자민) 전총리를 비롯해 이시바시 가즈야(석교일미·자민)의원연맹 간사장,하라다 겐(원전헌·자민)전 우정상,후나다 하지메(선전원·신진)전과학기술청장관 등 상당수가 들어 있다. 또한 외상으로 재임하면서 과거역사를 반성하고 아시아 국가들에 사죄했던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낭·자민),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자민),무토 가분(무등가문·자민),가키자와 고지(폐택 홍치·무소속)의원 등도포함돼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자민)전총리와 고토다 마사하루(후등전정청·자민)전부총리겸 법상 등도 청원 소개명단에 들어 있다.
  • 유엔특사 탑승기 피격/세계 총격 빗나가 위기 모면/사라예보 공항

    【사라예보 로이터 AFP 연합】 아카시 야스시(명석강)유엔특사를 태운 비행기가 12일 상오 사라예보 공항에 착륙하던중 기관총 공격을 받았으나 부상자는 없었다고 유엔 관계자들이 전했다. 유엔관리들은 휴전 준수를 촉구하기 위해 사라예보를 방문하던 아카시 특사를 태운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던중 총격이 가해졌으며 총탄은 한 탑승객의 머리위를 지나쳐 동체를 관통했다고 전했다. 현장의 유엔 관리들은 최소한 3발의 총탄이 발사됐으며 활주로 동남쪽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진지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보스니아 내전 발발이래 고위 유엔 관계자에게 가해진 가장 심각한 공격으로 피격직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공군기들이 출동,공항 상공을 비행하면서 레이더 교란 물체를 뿌리며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나카소네/“부전·사죄 결의 불필요”/“천황이 이미 유감 표명”

    ◎산케이 회견/정확한 역사교육 강조 【도쿄=강석진 특파원】 나카소네 야스히로(중회근강홍) 전일본총리는 24일 보수·우익세력들의 부전·사죄결의 반대운동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종전 50주년을 맞아 국회결의 형태로 과거를 다시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나카소네 전총리는 이날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회당등이 추진하는 국회의 부전결의와 관련 『독일과 일본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전제하고 『역대총리들이 각국을 방문했을때 공식연설에서 사죄를 했고 「천황」이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으며 이제와서 국회결의를 한다고 해도 외국이 이를 평가하지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결의보다는 정부가 실질적으로 정확한 역사교육을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사회당의 구보 와타루 서기장은 『국회의 부전결의는 연립정권 구성때 합의한 것』이라며 자민당의 부전결의 반대 움직임을 강력히 비난했다.
  • 점포 80개 전소… 재산피해 30억대/부산 국제시장 불

    ◎이동식난로 과열/인화성 물질 많아 삽시간에 번져/인명피해 없어… 2시간만에 진화 【부산=김정한·이기철 기자】 11일 하오 5시5분쯤 부산시 중구 신창동 2가 국제시장 2공구 B동 1층 전방타월대리점 현대상사(주인 강범중·49)에서 불이 나 이 건물 입주점포 80개(1층 7개,2층 73개)를 모두 태우고 2시간만에 진화됐다. 이 불로 점포안에 있던 의류와 타월·핸드백·액세서리·공예품·메리야스가게 등의 상품이 불에 타 30여억원(상인 주장)의 피해를 냈으며 현대상사 주인 강씨가 화상을 입었다. 이날 불은 현대상사 주인 강씨가 과열된 이동식 난로의 불을 끄려는 과정에서 불길이 난로위에 걸려있는 타월에 옮겨 붙어 일어났다. 불이 난 순간 이 건물에는 상인들과 물건을 사러 온 손님 등 2백여명이 있었으나 긴급히 대피해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불이 나자 소방헬기 2대와 부산중부소방서 소방차 40여대가 긴급 출동,진화에 나섰으나 왕복2차선 도로변에 불법 주차한 1백여대의 차량들 때문에 현장접근이 늦어져 초기진화에 실패,많은 재산피해를냈다. 또 시장 점포내에 인화성이 강한 상품들이 많아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상가건물에 입주한 점포들은 대부분 화재보험에 가입치 않아 이번 불로 큰 피해를 입게 됐다. 국제시장은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모두 6공구 12동의 건물에 1천2백50여개 점포가 입주해 있다. 그러나 건물이 모두 노후된데다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상인들이 겨울철에는 대부분 이동식 난로를 사용해 화재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이번에 화재가 난 2공구 B동은 35년전에도 큰불이 났으며 4공구에서는 3년전에 대형화재가 발생,수십억원의 재산피해를 냈었다. 경찰은 김씨를 실화혐의로 입건,정확한 화인과 재산피해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 보스니아 내전/크로아로 확산 위기/세계,침공 가능성 시사

    ◎유엔특사/“평화협상 결렬땐 분쟁 격화” 경고 【사라예보 AP AF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크로아티아에서 정부군과 세르비아계 간의 전쟁이 재발될 경우 자신들도 그 전쟁에 개입할 것이라고 위협한 가운데 보스니아사태와 관련,내전 당사자들이 평화협상을 합의하지 못할 경우 발칸반도의 분쟁이 격화될 것이라고 유엔의 고위관리가 3일 경고했다. 아카시 야스시(명석강) 유엔특사는 이날 보스니아 회교정부군의 거점인 비하치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역에 걸쳐 적대세력들이 매우 근접한 상태로 전선을 형성하고 있으며 양측 모두 광범위한 분쟁에 대한 대비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즉각적인 휴전강화 방안이 제시되지 않으면 새로운 전쟁의 우려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휴전 정착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비타협적 태도로 시작부터 흔들리는 가운데 유엔의 전투중지 노력에 회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보스니아 회교정부도 휴전의 완전한 붕괴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한편 라도반 카라지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는 이날 AP­TV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크로아티아가 세르비아계의 영토를 공격한다면 우리의 영토를 방어할 것이며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를 몰아내려 한다면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계와 연합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 새로운 군사전략(일본 「21세기 야망」:6)

    ◎자위대 행동반경 전세계로 확대/전수방위전략 탈피… PKO명분 적극 파병/군비 계속 증강… 93년 방위비 지출 세계 2위/“미안보그늘 벗고 독자노선 걷자” 보수·우익 세력 꿈틀 1992년 9월17일.일본 히로시마 하늘에 옛일본 해군이 애창하던 「군함행진곡」이 울려퍼졌다.그 장엄한 군함행진곡을 울리며 일장기의 물결속에 3척의 자위대 함정이 히로시마현에 있는 구레기지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교쿠지쓰(욱일)기를 휘날리며 떠난 자위대 함정에는 4백20여명의 자위대원들이 타고 있었다.캄보디아로 파견되는 자위대원 제1진이었다.일본군이 47년만에 아시아대륙에 다시 상륙하기 위해 발진하던 역사의 현장 구레기지.미야시타 소헤이(궁하창평)당시 방위청장관은 출정식에서 『자위대의 캄보디아 파견은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라고 격려했다.미야시타 전방위청장관의 말대로 자위대의 캄보디아 파견은 일본의 군사전략이 전통적인 전수방위(전수방위) 개념에서 세계전략으로 대전환하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일본은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을 바탕으로 캄보디아의 재건과 평화유지를 위해 자위대를 파견했다.국내의 많은 논란과 당시 야당이었던 사회당등의 강력한 반대속에 92년6월 만들어진 PKO협력법은 일본군이 다시 해외에 파견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평화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이 세계 곳곳에 파견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자위대가 파견된 캄보디아 남부 다케오 기지에도 일장기와 함께 평화의 상징인 유엔기가 나란히 게양돼 있었다.PKO협력법은 유엔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함으로써 일본의 과거 침략자적인 이미지를 약화시킴과 동시에 군비증강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침략자 이미지 제거 일본의 군비증강과 군사적 대외전략의 확대는 7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은 집단자위권과 교전권을 인정하지않는 평화헌법아래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 전략과 평화주의를 유지해왔다.1969년 사토 에이사쿠(좌등영작) 총리는 자위대의 행동반경을 일본 영토에 한정시키겠다는 「전수방위」개념을 도입했다.그러나 일본은 옛소련이 75년 통일된베트남을 후원하고 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등 아시아에서 군사적 팽창주의노선을 강화하자 미·일안보조약을 바탕으로 군사력 증강전략으로 전환했다. 군사전략의 전환은 군사력및 국방예산의 증가와 자위대의 행동반경 확대를 축으로 하고 있다.스즈키 젠코(영목선행)총리는 81년5월 미국을 방문,레이건 당시 대통령에게 「1천해리 해역」의 방위를 일본이 맡겠다고 약속했다.과거의 전수방위 개념이 지역방위전략으로 확대된 것이다.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총리도 83년 미국을 방문,「1천해리 방위」를 재확인하고 일본열도의 「불침 항모론」을 공언하며 군사력 증강을 역설했다.그는 그동안 유지돼온 군사비의 GNP 1% 한계론을 깼다.87년부터 89년까지 방위비 예산은 GNP의 1%를 넘어섰다.그후 방위비는 다시 GNP의 1%이하로 낮아졌지만 방위비의 증가는 멈추지않고 있다. ○세계 군축조류 역행 일본의 방위비 증가는 냉전후 미국과 러시아·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국방비를 줄이고 있는 가운데 계속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일본은 군축의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93년10월에 발표한 「군사균형(1993∼94)」에 따르면 일본의 93년 방위예산은 약4백억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나타났다.일본은 더욱이 앞으로도 방위예산을 계속 증가시킬 예정이다. 일본은 군사력의 증강과 함께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적극화하고 있다.자위대의 캄보디아 파견이 성공적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는 일본은 자위대를 아프리카 대륙에 파견한 데 이어 골란공원등 중동과 다른 지역의 파견도 검토하고 있다.일본은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통해 군사대국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미국과 유엔과의 협조체제를 바탕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일본은 냉전이 끝났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위협적이며 중국의 계속되는 군비증강및 북한의 핵개발등 주변의 안보위협 때문에 미국과의 협조체제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일본은 또 아시아 주변국가들의 불안을 없애고 정치적 신뢰를 얻기위해서도 미·일안보조약및 유엔의 틀안에서 군비증강을 하지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연 방위비 4백억불 일본의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국익에도 맞는 일이다.미국은 세계전략 차원에서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고 동아시아지역에서의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하지만 그 역할이 미국의 국익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증강되는 것은 원치않고 있다.미국의 이러한 전략은 그러나 일본사회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강경 보수·우익세력의 「미국으로 부터의 독자노선」과 21세기 어느날 심각한 마찰을 불러일으킬지 모르며 지금과 같은 미·일안보체제가 언제까지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다. 미·일안보조약의 수정속도나 그 방향은 아직 미지수다.그러나 미국이 일본이나 아시아에서 안보부담을 덜기 위해 미군을 감축한다면 이 지역의 안보균형이 깨질지도 모른다.그럴 경우 일본·중국등이 군비증강을 가속화하여 동북아시아에 불안한 긴장이 조성될 위험성이 있다. 일본은 물론 독자적인 군사대국화는 한동안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역사는 오늘로 끝나지 않는다.역사는 많은 변수를 안고 영속하며 중요한 것은 시대흐름의 방향이다.군사력 없는 경제대국의 실험을 끝낸 일본.그 일본이 전후 50년을 계기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동시에 갖춘 대국으로의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 변화시대의 덕목/통찰력·조정력에 전문성 갖춰야(신지도자론:6)

    ◎국제조류 꿰뚫고 세계화 과제 해결 힘써야/시대상황 감안,옛지도자 용퇴선택 바람직/나카소네 전총리,미국 모르면 일본발전 없다”갈파 12년전인 83년1월 어느날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일본총리에 취임한지 두달 밖에 안된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를 위해 부시부통령이 만찬을 베풀고 있었다.만찬도중 나카소네는 지난날을 회상하다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그는 『27살의 병사로 미국과의 전쟁에 참전했다가 패전하고 반드시 고국을 부흥시키겠다고 결심했습니다.그러나 나는 둘째딸이 11살 되던 해 홀로 미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내 딸을 맡아준 미국인 역시 2차대전에 참전한 사람이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다 끝내 목이 메고만 것이었다.부시부통령도,배석한 슐츠국무장관과 와인버거국방장관도 눈시울이 붉어졌다.다음날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레이건대통령은 크게 감동한 나머지 나카소네를 만나자 서로 「론」 「야스」라고 스스럼 없이 부르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나카소네의 정치리더십이 최선은 아니다.그러나 「미국을 모르고서 일본의발전은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꿰뚫은 통찰력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그가 총리가 된 뒤의 캐치프레이즈는 「전후정치의 총결산」이었다.50년대에 둘째딸을 미국에 보낼 때는 80년대를 내다본 것이고 총리에 올라서는 「미국의 그늘을 벗어난 새 일본」을 외친 것이다.그의 생각은 아직도 일본 정계를 지배한다.일본 정계의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의 「일본개조계획」으로 이어지며 일본열도에 공감대를 얻고 있다. 국민 다수가 21세기형 지도자의 대두를 기다리는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정치학자는 물론 정치인 스스로도 세계화시대의 가장 큰 덕목으로 「미래에 대한 통찰력(비전)」을 첫손으로 꼽는다.20∼30년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이 없는 지도자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알맞는 국가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가 없다. 서울신문이 여론조사기관인 미디어 리서치사와 공동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서울신문 28일자 시리즈5 참조)도 새로운 정치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미래지향적 비전」을 꼽은 이가 45.8%로 가장 많았다.경희대 오세덕교수는 『비전제시 능력은 앞을 내다보는 직관력과 함께 과거와 현재,미래를 관통하는 분별력을 의미한다』고 했다.외국어대 김인철,단국대 강태훈교수도 『세계화라는 시대과제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꿰뚫고 그것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가 새 정치지도자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시대과제가 무엇인지는 대통령자문기구인 21세기위원회가 잘 요약한 바 있다.「생명으로 인식해야 할 자원과 환경,미지의 문명을 열어갈 과학기술 정보,지역주의와 다자주의가 혼합된 국제경제 질서」가 그것이다.여기에 분단 반세기를 넘기는 우리로서는 「통일」이라는 민족적 지상명제를 하나 더 안고 있다.이러한 미래의 명제 가운데 한두분야 이상에서 전문가에 버금가는 지식을 갖추지 않고는 대통령은 물론,국회의원이 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박종웅의원(민자당)은 말한다. 전문지식을 갖추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정치인의 전형으로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이 꼽힌다.그는 부통령 취임후 초고속정보화계획과 행정개혁을 주도했다.「환경지도자」 하면 그가 떠오를 정도가 됐다.지난해 한때 우리 정계에서는 「고어를 배우자」라는 바람이 일기도 했다.그런 고어도 최선의 대통령감이냐 하는데는 사람마다 견해가 갈린다.현실정치를 모른다는 지적이 있다.전문능력은 좀 뒤떨어지지만 조정력과 협상력이 뛰어나 독일통일의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콜총리도 훌륭한 지도자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미래의 우리 정치지도자도 통찰력,전문성과 함께 조정력을 지녀야 한다.권위주의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손학규의원(민자당)은 『앞으로는 지도자가 권력분산을 수용하는 정치개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권력을 공유하면서도 전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인하대 이영희교수도 『새 리더십은 개인적 카리스마 보다는 그룹리더십을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적인 면에서 우리의 새 지도자에게 또하나 필요한 덕목은 지역감정의 타파와 분명한 진퇴라고 할 수 있다.한림대 김재한교수는 『냉전적 대결구도,지역당 구도를 해결하는 사람이 21세기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이화여대 김석준교수는 「기존 지도자들의 솔선」을 요구한다.『급변하는 시대상황을 감안하면 옛 지도자가 새 유형의 지도자들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만 바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무리』라는 것이 김교수의 진단이다.
  • 「시대흐름 읽은 통찰력」일 부흥 일궜다(신 지도자론:4)

    ◎21세기 선진한국 이끌 리더십/새진로 찾는 일본/「군사력없는 경제대국」 국가목표 설정/요시다/보수화 국제조류 타고 “정치대국”발진/나카소네/「록히드」등 정치자금 스캔들 사회자정 계기로 일본은 역사의 적응력이 가장 뛰어난 국가중의 하나이다.시대의 흐름을 국가발전에 활용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그러한 능력은 세계정세의 변화를 읽는 지도자의 통찰력과 국민의 단합된 힘의 합작품이다. 일본이 전후 반세기만에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원동력도 시대변화에 대응한 지도자의 정책과 그것을 충실히 실행한 국민의 힘이었다.그 대표적인 지도자가 요시다 시게루.요시다는 참담한 패전의 절망속에서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탁월한 지도자였다.46년부터 54년까지 5차례의 총리를 역임한 요시다는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이라는 국가목표를 설정했다. 그는 국가의 모든 에너지를 경제건설에 집중 투자했다.요시다는 전후 일본이 필요한 것은 경제부흥이라는 비전을 제시했으며 그의 전략적 선택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은 올바른 판단으로 평가받고 있다.요시다는 미·소냉전속에서 미국과 안보조약을 체결,안보는 미국의 맡기고 오로지 경제발전에 전념했다. 요시다는 그러나 경제지상주의자는 아니었다.그는 열렬한 천황숭배주의자였으며 그의 저서 「세계와 일본」에서 『당시 일본이 재무장하는 것은 경제적·사상적·사회적으로 불가능했다.그러나 국가의 안보를 언제까지라도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요시다는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 가를 냉철하게 읽고 경제지상주의 전략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그의 선택은 결국 주어진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통찰력 있는 선택이었으며 전후 전혀 새로운 상황은 통찰력과 뚝심있는 요시다 같은 지도자를 필요로 했다. 요시다의 뒤를 이어 기시 노부스케,사토 에이사쿠총리 등도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 전략을 충실히 실행해왔다.국가주의 신본자인 기시총리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일안보조약을 개정했다.일본지도자들은 전후 기술과 시장을 함께 제공한 미국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요시다이후 70년대 가장 강력한 정치지도력을 발휘한 지도자는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였다.그는 「결단과 실행」의 정치인 답게 「일본개조론」을 내세우며 전 국토의 개발이라는 과감한 성장정책을 추진했다.그의 개발론은 부동산 폭등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일본경제를 더욱 부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다나카는 또 외교에도 과감했다.미국이 중국과 국교정상화 움직임을 보이자 「컴퓨터가 장착된 불도저」라는 별명에 걸맞게 84일만에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룩했다.다나카는 중국의 중요성을 잘알고 있었다.물론 다른 지도자들도 아시아에 있어서 중국이 차지하는 무거운 비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다나카는 그러나 과거사문제등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었지만 과감하게 정상화를 이루어 지도자의 결단력의 중요함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는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인 청렴성이 부족했다.그는 개발이익을 정치자금과 연결시켰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더욱이 「록히드 사건」으로 기소되는 불행을 맞았다.많은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쓸쓸히 사라진 그의 비극은 정치가에게 도덕성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세계정치에 보수화물결이 나타나자 일본에서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한다.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일본이 세계적 경제대국이 되며 민족적 자신감이 되살아나는 사회분위기속에서 나카소네는 일본의 보수정치를 선도했다.나카소네는 레이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국제무대에서 정치력을 높혔다.나카소네는 전후 일본이 고수해왔던 평화주의를 부분적으로 거부하고 군비증강을 시도했다.그의 정책은 내외에 적지않은 비판을 받았으나 그는 지금의 일본의 정치대국화를 위해 발진할 때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일본정치에는 고질적인 정치자금 스캔들이 반복됐다.다나카 뿐만아니라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도 정치자금 스캔들로 사임했고 마야자와 기이치 총리도 스캔들에 연루됐다.정치자금 스캔들은 그러나 일본사회를 정화하는 중요한 자정의 계기가 됐다.일본인들도 고도성장기에는 정치자금 스캔들을 어느정도 묵인했지만 21세기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깨끗한 정치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배경으로 나타난 지도자가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였다.그는 참신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국민들의 높은 인기속에 정치개혁을 적극 추진했다.그러나 호소카와도 정치자금의혹에 연루되며 8개월 만에 총리를 사임하지 않으면 안됐다.그러나 호소카와가 추진한 정치개혁은 단순히 깨끗한 정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더욱 중요한 것은 21세기 일본이 급변하는 세계정세속에 살아남기위한 국가개조의 시작인 것이다.일본은 지금 정치적 혼돈속에서 새로운 국가진로를 모색하고 있다.일본은 전후 경제제일주의라는 전략적 선택으로 경제신화를 이룩하고 지금은 경제력을 정치력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그러나 정치적 혼돈은 그러한 실험이 아직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일본은 새로운 국가진로를 위해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낼수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일본의 새로운 지도자는 다양한 국민의 욕구를 잘 조화시킬수 있는 인물이어야 할 것 같다.
  • 한국·일본의 과거·미래점검/크리스천아케데미 창립30돌기념 심포지엄

    ◎양국 작가·교수 등 지식인 참석 한국과 일본의 작가·대학교수 등 지식인들이 한데 모여 양국의 과거와 미래를 점검하는 심포지엄이 열린다. 크리스천아카데미(원장 강원용)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일본 이와나미(암파)서점과 함께 서울 아카데미하우스(2월1∼3일)와 도쿄 아사히스퀘어(4월7∼8일)에서 한차례씩 심포지엄을 갖기로 했다. 「해방50년과 패전50년­화해와 미래를 위하여」를 주제로 내건 이 심포지엄 서울모임에는 사카모토 요시카즈 도쿄대 명예교수,이정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야스에 료스케 이와나미서점 대표,지명관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들이 참석해 사상적·정신적 과제를 주로 다룰 예정이다.특히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방한,김지하시인과 대담할 계획이다.. 또 일본 행사에는 소설가 이데 마구로쿠,김용덕 서울대교수,미야진키 이사무 대화총련 이사장,조순 전 부총리,가모 다케이코 도쿄대교수,김영호 경북대교수,하라 도시오 전 교토통신사장,이헌조 금성사회장들이 참여해 역사청산과 미래구상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의견을 나눈다. 강원룡원장은 심포지엄 개최와 관련,『국교 정상화 30년을 맞아 한일관계의 근본문제를 파고들어감으로써 협력의 새 방향을 찾아야 한다』면서 이번 대회를 통해 과거청산의 해결책과 미래지향의 과제를 함께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 항일투쟁 본거지(연변 조선족 1백년:12)

    ◎독립군 사기 높인 봉오동­청산리 전투/삼둔자 첫교전 대승… 독립운동 본격화 계기로 연변이라는 곳이 독립운동의 산실이었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이중에 한국독립군전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세곳 있는데 삼둔자전투,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가 그것이다.이 3개지역은 우리의 피를 말리던 당시의 일본측으로 보면 몹시도 상처 받은 아픈 상흔으로 남을 것이고,우리 입장으로서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고 울부짖음이었다. ○한인이 개척한 신천지 당시 한국이주정착민들의 거주지역은 크게 서간도와 북간도로 나누는데 서간도는 백두산서남과 압록강대안의 남만주를 일컬으며 북간도는 서간도를 제외한 나머지지역을 말한다.이밖에 두만강 하류에서 우수리강 동쪽의 러시아땅에도 이주민들이 살던 곳으로 이곳을 연해주라고 불렀다.해도간이란 연해주의 「해」와 간도의 「도」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이를테면 한국이주민들이 구한말 이래 새로 개척한 신천지를 총칭하는 말이다. 삼둔자는 현재 연변 제2의 도시인 도문시 월청향 간평이란 마을이다.이지역 일대가 산악이며 일본수비대의 눈을 피해 국내로 잠입할 중요거점으로 알려진 곳이다.삼둔자사건의 전말은 이렇다.1920년6월4일 새벽이었다.30여명의 독립군이 국내로 진입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종성 북방 2㎞지점의 강양동으로 진격하여 일본헌병 후쿠가와 조장이 인솔하는 헌병순찰소대를 격파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귀환하는 임무였다.이날도 여느 때처럼 성공리에 무사 귀환했다. 그러나 왜군은 참패의 복수를 위해 니이미중위로 하여금 남양수비대 병력 1개중대와 헌병경찰중대를 인솔하게 하여 독립군을 추격하게 하였다.낌새를 챈 독립군은 요소에 잠복하고 있었다.삼둔자에 이르러 뜻을 이루지 못한 일본군은 억울한 양민만 대량 학살하고 퇴각하는 길이었다.이 때 놓칠세라 독립군이 일시에 습격하여 섬멸시켰다.소수의 병력으로 왜군을 섬멸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곳 지형에 익숙한 독립군이 협곡으로 왜군을 몰아 일시에 포위하여 공격한 탓이었다.이 사건은 일본군이 강을 건너 중국땅에서 독립군과 싸운 처음 기록이 되었으며다음 봉오동승첩의 서전이 되었다. 1920년 6월7일 봉오동승첩의 전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두만강 국경수비대는 국내 진입작전의 독립군 본영이 있는 봉오동을 일격에 섬멸하여 그 기능을 봉쇄하려고 공격부대를 편성했다.결국 야스카와 소좌는 보병2개중대,기관총소대,헌병경찰대를 합친 혼성대대로 편성했다.그리고 며칠전 삼둔자에서 패전한 니이미 중대가 가세하여 신예무기로 무장한 전투대대병력으로 공격이 시작되었다.새벽3시가 지나 해란강이 두만강과 합류하는 온성 하탄동 부근에서 두만강을 건너 봉오동을 향해 진격해 온 것이다. 봉오동은 사면이 야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길쭉한 삿갓을 뒤집어 놓은 지형의 요새라 할 수 있다.남쪽 입구로부터 북쪽까지는 25리가 넘는 골짜기로 되어 있고 두 세곳의 한국인 이주민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한편 봉오동 독립군을 지휘하던 사령관은 홍범도였으며 왜군을 대치한 아군작전은 치밀했다.마을 주민들은 모두 대피시켰고 사령관이 직접 지휘하는 2개중대는 서산남단에 자리잡고 그밖의 중대들은 사방으로 매복시켰다. ○홍범도장군 맹활약 아침8시가 지나 일본군은 봉오동 초입에 당도했다.마을을 습격하면서 미처 피하지 못한 노약자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점차 깊이 수색해 들어온 일본군은 독립군이 매복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도주한 줄만 알았다.때가 왔을 때 홍범도사령관의 신호로 삼면으로부터 일제히 공격이 시작되었다.일본군은 결사 반격을 했으나 워낙 갑자기 당한 습격이라 수습할 길이 없었다.결국 패퇴하고 말았다.이 전투의 개선은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조금은 위로해 주었다.그리고 중국조선족의 정신적 힘이 되어 주었다. ○위군 1천2백명 궤멸 청산리대첩은 1920년10월 김좌진·나중소·이범석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이 합세한 독립군부대가 독립군 토벌을 위해 간도로 진격한 일본군을 맞아 청산리일대에서 싸워 일본군을 대파시킨 것을 말한다.청산리 계곡은 동서로 약25㎞나 되며 교통이 거의 불가능한 지세였다.10월21일 상오9시경 야스카와가 이끄는 추격대가 이곳에 당도했을 때 이범석의 지휘로 매복해 있던 독립군이 일제히 엄습하여 전멸시켰다. 이어 야마타가 이끄는 본대가 당도했지만 아군에게 유리한 지형과 매복작전에 속수무책,2백여명의 일본군이 사살되고 패퇴했다.한편 홍범도부대는 완루구에서 일본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끝에 4백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피해를 입혔다.22일에는 김좌진부대가 마을주민의 제보를 받아 어랑촌에 주둔하고 있던 기병대를 습격했다.청산리전투는 10월21일부터 시작되어 26일까지 약10여회 전투를 한 끝에 일본군 1천2백여명을 사살한데 비해 독립군은 1백여명이 전사했을 뿐이었다. 삼둔자전투는 일본군이 중국땅에서 독립군과 최초로 싸운 기록이 되었으며 봉오동전투는 독립군의 주력부대를 파멸시키려는 일본군의 복수전이었으나 결국 패퇴했고 청산리전투는 규모면에서는 가장 큰 전투였다.군인의 수나 무기의 수등 병력이 약세임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것은 유리한 지형과 치밀한 전략 때문이라는 점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조국 독립을 위한 정신력 때문이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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