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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끊임없는 개혁으로 ‘부정’청산

    金大中대통령은 26일 취임 1주년을 기념해 정부와 세계은행(IBRD)이 공동주최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국제회의에 참석,기조연설을 통해 “개혁은 법과 제도를 고치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의식개혁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제2의 건국운동을 시작했다”고밝혔다. 서울 롯데호텔에서 제임스 올펜손 세계은행총재와 외국의 전직수반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의에서 金대통령은 또 “민주시민으로서 책임과 권리의식이 고조되고 공정한 경쟁에 의해서 성패가 좌우되는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확립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폐쇄적 민족주의 등 20세기로부터 물려받은 부정적 요소를 청산하기 위해 의식개혁 운동을 끊임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金대통령은 울펜손 총재와 공동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엔화가치 하락을 계속 방치할 것으로 보지않으며,우리도 타격이 발생하지않도록3월중 오부치 일본총리 방한때 적극 협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金대통령은 정치지도자 회의에참석해 “북한이 전쟁으로 문제를 풀지 않고 대화로 해결하려 한다면 한반도 평화는 오늘이라도 실현된다”고 전제하고 “북한에 대해 도울 수 있는 분야는 도울 것이며,식량이나 농업생산증대,전력문제 등 북한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북한 金正日과 회담이 이뤄지면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가라는질문에 “당장 할 일은 한반도 대화를 통해 남북이 공존하는 일”이라고 강조한 뒤 “북한의 안정된 노동력은 우리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울펜손 세계은행 총재는 기조연설에서 “한 나라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위해서는 사회적 포용과 부패근절,열린 정치구조와 투명한 경제체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총리는 정치지도자 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일본,중국,홍콩,아세안5개국,국제금융기관 등이 참가하는 동아시아 금융협의회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 용평통신-쇼트트랙선수들 식중독 자작극 의혹

    ▒강원도 보건환경연구원은 1일 식중독 의혹 환자들의 채변과 선수촌식당 음식재료,도마 등을 정밀검사한 결과 식중독 원인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또 환자들을 치료한 강릉 동인병원의 현상훈 내과과장도 식중독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설사증세로 보인다고 소견을 밝혔다.이로써 쇼트트랙 선수들의집단식중독 사건은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아 경쟁선수들의 마음을 풀어지게 하기 위한 자작극이 아니었느냐는 추측에 다시한번 무게가 실리고 있다.▒중국대표로 출전한 진광빈(26)이 모국 친척들을 만났다.진광빈은 1일 용평리조트내 선수촌을 찾아 온 당고모 김수연(50)씨와 당고모부 이용천(50)씨를 만났다.할아버지가 일제시대 만주로 넘어가 현재 하얼빈에서 살고 있는 진광빈은 97무주·전주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때도 중국대표로 출전했으나 당시는 안동에 살고 있던 고모에게 전화만 하고 만나지는 못했었다.▒2일부터 스피드스케이팅이 열릴 춘천 국제빙상장의 변화무쌍한 강풍에 각국 선수들이 긴장.춘천 국제빙상장은 오전에는 바람이 거의없지만 오후 1∼2시부터 방향과 속도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바람이 불어 오전에 레이스를펼치는 선수들은 제기량을 발휘할 수 있지만 오후에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바람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 지난해 12월 열린 월드컵시리즈대회에서도 남자 5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시미즈 히로야스(일본)가 4위를 기록,등외로 처지는 이변이 일어나기도 했었다.이에 따라 남녀 500m와 1,000m,1,500m에서 3∼4개의 금메달을 노리는 한국도 바람을 변덕이 부릴 경우 금메달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김운용 대한체육회장은 1일 99강원동계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딴 입상자들에게 금메달 50만원,은메달 30만원,동메달 20만원의 격려금을 전달했다.
  • 겉으론 우호증진 정치재개 의미도/全 前대통령 왜 일본갔나

    全斗煥전대통령이 31일 부인 李順子여사와 함께 6박7일간의 일정으로 일본 방문길에 올랐다.그의 방일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총리 등 정· 재계 인사 6명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全전대통령은 일본 각계 인사들과 만나 한·일 두 나라의 우호친선 증진 문 제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NTT연구개발센터 등 첨단시설과 연구소,고적 등 을 둘러볼 예정이다. 全전대통령은 3일에는 세계평화연구소가 주최하는 강연회에 초청연사로 참 석,‘21세기 동아시아의 안정과 한·일 관계’라는 주제로 강연할 계획이다. 全전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치재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제기하고 있다.실제로 자민련 朴泰俊총재가 全전대통령의 방일에 나름대로 막후역할을 하는 등 여권의 간접지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 졌다.연희동측은 그러나 “비정치적 일정 중심으로 짜여있다”며 이같은 해 석을 경계했다. 吳一萬 oilman@ [吳一萬 oilman@]
  • 지멘스코리아 사장등 10명 외국인 투자자문위원 위촉

    朴泰榮 산업자원부 장관은 18일 낮 서울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존스 회장과 베르너 그레슬레 주한EU상공회의소 회장,시니치 기무라 서울저팬클럽 회장 등 주한 외국기업인 10명과 오찬을 갖고,이들을 외국인투자자문위원으로위촉했다.왼쪽부터 군터 슈스터 지멘스코리아 사장,더글러스 에일워드 영국항공 한국지사장,베르너 EU상공회의소 회장,朴장관,존 보나시 프라이스워터하우스 쿠퍼스 사장,야스타카 에다히로 일본 미쓰비시은행 서울지점장,장 알퐁시 유니레버코리아 사장.
  • 정직한 역사 되찾기-민주열사 열전(20회)

    민주열사열전 시리즈가 20회로 막을 내린다.어두웠던 시대에 조국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고 고단한 싸움을 벌이다 생을 마감한 이들의 진실은 무엇이었을 까.그들은 굴절된 현대사에서 희망의 빛이었고 그들의 희생적 투쟁이 밀알이 되어 오늘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그들의 진실 밝히기가 현재와 미래를 더 욱 의미있게 하기 위한 과거의 재창조 행위라는 인식에서 시리즈를 이어갔다 .그동안 독재정권에 의해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이들을 제자리로 돌려야 한다는 작은 소망의 표현이기도 했다.시리즈를 마무리하며 그 의미와 성과 를 짚어보는 좌담을 마련한다.가톨릭대 安秉旭교수와 李相勳변호사,전국민족 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金學喆사무국장,대한매일 金三雄주필이 자리를 같이했다. 金三雄주필:8월7일 장준하선생편을 첫 회로 시작된 시리즈가 5개월만에 마 무리하게 됐습니다.제도언론 매체로서는 처음으로 반독재투쟁에 몸을 불사른 인물들의 행적과 사상,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역사적 의미,유족과 동지들의 근황 등을 총체적으로 담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安秉旭교수:언론뿐만이 아니라 유관단체를 포함해서도 처음이라고 봅니다. 민주화투쟁을 하다 희생된 분들의 증거로 그분들의 업적은 중요합니다.이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뒤늦은 감은 있지만 대한매일이 어려운 여건 에서 이러한 작업을 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金學喆국장:이번 시리즈는 하나의 사변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진실이 뒤집어진 상태에서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과감히 밝힌 것이 언론 계의 ‘사변적 사건’이란 의미입니다. 李相勳변호사:한 건의 의문사를 해결한 것만큼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과거 군사독재에 의해 저질러진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법 률 제정 등에 가장 강력한 압력수단의 역할을 했습니다. 安교수:더 이상 잘못된 50년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중요합 니다.과거역사를 청산하고 정리해 새로운 역사를 위한 디딤돌의 의미가 깊다 고 봅니다. 金주필:‘항일운동을 하다 산화한 이들에게 붙였던 ‘열사’라는호칭이 부 적절하다,과거지향적인 것을 꺼내어 국민분열을 부추기는 행위다’라는 지적 이 있었습니다.하지만 민주화를 위해 몸을 불사른 사람들은 열사로 불리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봅니다.또 역사적으로도 두번 다시 잘못됨을 되 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에 연재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金국장:보훈처 관계자의 열사호칭에 문제가 있다는 기고를 보고 제가 반론 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항일정신이나 반독재의 민주화 정신은 구국의 의미 에서 맥을 같이합니다.과거를 덮어두고 어떻게 제대로된 미래가 나오겠습니 까.밝은 미래와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올바른 청산이 꼭 필요 합니다. 安교수:민주화 정신은 항일정신만큼 높이를 같이한다고 봅니다.아직 민주화 에 대한 인식이 덜 보편화되어 있어 항일정신과 민주화정신을 구분하려는 것 같습니다.더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이러한 논란이 나오 지 않을 것입니다.과거에 대한 진실이 허심탄회하게 밝혀졌을 때 미래지향적 인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金주필:우리 역사를 보면 가장 투철했던 시대정신이 있습니다.신라의 화랑, 조선시대의 의병·승병,한말의 의병,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들이 그 정신을 주도했습니다.해방 후 그 대를 잇는 것이 바로 민주화투쟁과 통일운동이라고 봅니다.그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지탱될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아직 그들 에 대해 의미부여가 덜 되어 있습니다.현 정부도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세 워졌는데 그들을 홀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李변호사:민주열사 예우와 보상 관련 법안 작성에 민족민주운동의 개념문제 가 불거졌습니다.보상과 명예회복을 전제로 한 민족민주운동 개념의 실례가 부족하고 사회적 일치점도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金주필:해방후 반민족행위자 규정처럼 민주화운동 유공·희생자들과 관련해 역사·사회학계 등의 주도로 전 국민적인 토론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또 활발한 학술토론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安교수:민족민주운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밀렸던 숙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입니다.개념 설정과 인물의 구체적 선정과정에서 큰 논란이뒤따를 것입 니다.하지만 우리 민주화에는 큰 희생이 있었다는 큰 틀에서 볼 때 그러한 논란은 지엽적인 문제일 뿐입니다.공개적인 논의과정에서 문제를 하나씩 충 분히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金국장:열사들이 유공자 대우를 바라고 민주화투쟁을 한 것은 아닐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결국 그 혜택이 돌아가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독재정 권에 맞섰던 민주화투쟁의 정당성 획득의 의미입니다.폭압적 공안기구와 정 권의 부도덕성이 낱낱이 파헤쳐져 그러한 행태가 줄어들고,장기적으로 없어 져서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데 법 제정의 의미가 있습니다. 金주필:나치 치하에서 함께 저항하던 사람들과 함께 죽지 않고 살아남은 죄 를 야스퍼스는 ‘형이상학적 죄’라고 했습니다.군사독재 치하에서 살아남은 우리들도 야스퍼스가 말한 ‘형이상학적 죄인’에 해당될 것입니다.마땅히 희생된 이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관련 법률안을 만 들어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실을 규명해야 합니다.기념관을 세워 그들의 뜻을 기려야 하고 묘역을 조성해 민주성지로 만들어야겠지요.또 어렵게 살 고 있는 그 유족들을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조선왕조시대에도 병자·정묘 호란 희생자들의 자손들을 7·8대까지 돌봐준 예가 있습니다. 安교수:민주열사 관련 법안은 다음 세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더이상 독재하에서 저질러진 반민주적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징 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둘째는 그들의 행적을 조사·정리해 기념관 등을 조성해 모아놓고 학교와 국민교육에 적절히 활용하게 하는 것입니다.셋째는 그 유족들에 대한 적절한 배상과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李변호사:현재 국민회의가 내놓은 최종 법률안인 ‘민주유공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법사위에 상정돼 있습니다.이 법안이 통과되면 가해자 측면에서는 진상규명,피해자 측면에선 명예회복과 예우 및 보상에 직접 당사자가 될 것입니다.하지만 시기와 적용대상이 처음 작성할 당시의 원안에서 많이 축소됐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安교수:정당별로 이해관계에 따라 이견을 보이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항력 적인 면이 있습니다.보훈대상자 선정이 아직도 계속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 주유공자 선정문제도 장기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역사속으로 사라져간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장차는 이런 분들까지 발굴해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金주필:이승만정권 이후 최근까지를 포괄하는 법률안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이번 기회에 촉구해야하지 않을까요. 金국장:처음엔 1945년 이후로 잡아 법안 작성을 추진했습니다.하지만 집권 여당에서도 부담을 갖고 반대했습니다.보수 기득권층의 반발을 감당하기 힘 들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그래서 절충한 것이 3선 개헌을 기준으로 잡은 6 9년 8월7일 이후입니다.하지만 이 문제는 법안 개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개선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安교수:전거가 없어 법률안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법률안이 다른 나라에도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는,자랑이 될 수도 있습니다.국회의원들도 자신이 국회의원일 때 역사적인 법률을 만들 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눈앞의 위기 탈출에만 급급하지 말고 한달이 아닌 1 0년 앞을 내다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金주필:일각에서는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로 생각하고 위기감을 갖는 사람들 이 많은 것 같습니다.하지만 진실규명 차원에서 참여기회를 주고 적절한 배 상과 보상을 통해 화해의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金국장:유가족도 진상규명을 원합니다.처벌이 아니라 진상규명을 통해 진정 한 고백과 사과를 받으면 용서한다는 입장이지요. 李변호사:예우·보상은 진상규명의 전제 위에서 가능합니다.결코 떨어질 수 없는 문젭니다.진상규명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출발점입니다. 金국장:국회에 상정된 법안은 늦었지만 의미 있습니다.‘형이상학적 죄’를 짓고 있는 우리들이 열사들의 뜻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대한매일은 이 러한 것이 가능하도록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습니다. 安교수:민주열사들에 대한 공적인 자리매김을 대한매일이 했습니다.시리즈 에서 다룬 인물들은 우리 자랑스런 역사의 출발점이고 굴절된 50년 역사를 그나마 빛나게 한 분들입니다. 金주필:필리핀의 호세 리잘은 스페인 침략시절에 ‘나는 조국의 밝은 새벽 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그러나 밝은 세상의 사람들은 밤사이 스러져간 사람 들을 잊지 말라’라고 했습니다.우리는 바로 밤사이 스러져간 열사들의 희생 위에 지금의 민주화를 누리고 있습니다.그들의 뜻을 기리고 희생을 생각하 는 것은 우리 전부의 의무입니다. 金在暎·任昌龍 kjykjy@daehanmaeil.com [金在暎·任昌龍 kjykjy@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日 할머니 정신대 사죄/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한 일본 할머니가 여성을 성의 노예로 삼은 일제의 만행을 사죄하는 편지와 함께 500만엔의 돈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보내왔다 한다.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 사과와 국가배상을 한사코 거부하는 일본 정부나 망언을 일삼는 관료들과는 달리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반가운 소식이다. 미키하라라는 성(姓)만 밝힌 이 75세의 할머니는 17세때 일제의 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김학순 할머니가 지난 91년 증언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면서 “만행을 저지르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일본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작은 성의지만 진실을 되찾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고 편지에 썼다. 김학순 할머니는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처음으로 용기있게 밝혀 위안부문제에 관한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지난해 작고한 분이다.일본을 방문해 “나를 17세때로 돌아가게 해주오.당신네 일본사람들이 나의 청춘을 망쳐놓았소”라고 절규했다. 미키하라 할머니는 자신과 같은 또래인 김학순할머니의 절규에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했던 것 같다.일본 전통시 단가를 짓는 시인으로서 남들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 위안부할머니의 고통을 함께 느꼈을 법도 하다.김학순 할머니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두 할머니가 손을 맞잡고 사죄를 청하고 용서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베에 살고 있는 미키하라 할머니는 “좀더 빨리 돈을 보내고 싶었지만 몇년전 지진으로 집이 무너져 돈 모으는게 늦어졌다”고 말해 더욱 우리를 감동시킨다. 이 할머니처럼 양심적인 일본인들은 많다.일본의 대표적 출판사인 이와나미 서점 사장으로 지난 1월 별세한 야스에 료스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배상을 촉구한 진보적 지식인이었다.도쓰카 에쓰로 변호사는 지난 92년 유엔 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처음으로 호소한 일본인으로 그의 열성적인 유엔 활동에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지난 96년 ‘올해의 여성상’을 수여하기도 했다.그밖에도 일본 대사관 앞의 수요정신대 시위에 참석한 일본여성,정신대 기념관건립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일본인,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을 낸 일본인 사진작가,일제의 정신대 만행을 참회하며 성금을 거두어 전달한 일본인 개신교 신자와 목회자들도 있다.망언을 일삼아 이웃 국가들의 묵은 상처를 덧내는 일본 정치가들이 이들의 도덕성을 배운다면 21세기의 한·일 관계는 진정한 선린우호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 日 자민당 대대적 세대교체 예고

    ◎소장파의원 목청 커져 파벌들 후계구도 서둘러/미야자와파­가토 前 관방 새달 회장직 인수/와타나베파­야마사키 등 32명 모레 분가/미쓰즈카파­모리간사장이 총수승계 넘봐 【도쿄 黃性淇 특파원】 일본 집권 자민당내 제 2파벌인 미야자와파 회장인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대장상이 물러난다. 그는 26일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중의원·9선) 전 관방장관에게 연말쯤 회장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임시국회가 끝나는 내달 14일 이후 대장상직에서도 사퇴할 뜻을 비췄다. 미야자와 대장상이 후계구도를 서둘러 밝힌 것은 가토 의원을 따르는 젊은 의원들의 성화 때문. 당내 젊은 층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선거를 겨냥한 ‘새 깃발 꽂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내 파벌 간의 지각 변동도 예상된다. 의석 86석인 미야자와파를 인수받는 가토 의원은 ‘가토파’로 깃발을 바꿔달고 내년 총재선거에 출마할 예정. 파벌내 최대 정적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가 가토 후계구도에 반발하고 있다. 그도 20명 안팎의 의원을 끌고 독립할 가능성이 높다. ‘근대미래연구회’의 수장인 와타나베(渡邊)파의 야마사키 타쿠(山崎拓·중의원·9선)의원도 30일 야마사키파를 발족한다. 62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와타나베파에서 야마사키파로 분가할 의원은 4∼5선 안팎의 소장파 32명가량. 야마사키 의원은 젊은 층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원로들의 반발로 회장진출이 번번히 무산되자 당권 도전을 위해 분가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와타나베파는 명예회장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파와 야마사키파로 분리된다. 의석 62석의 미쓰츠카(三塚)파도 모리 요시로(森喜郞·중의원·10선) 간사장이 회장 승계를 넘보고 뛰고 있다. 그러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92년 다케시타(竹下)파를 물려받았다. 의석 91석으로 자민당내 최대인 오부치파 회장이 된 뒤 비교적 안정적으로 파벌을 이끌고 있다.
  • 한국 언론에 바란다­駐韓 특파원의 충고

    ◎“속보지양­정치중립 지켜야” 대한매일은 재창간을 계기로 한국언론을 잠시 뒤돌아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한국에 상주하면서 취재 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 언론사 특파원들이 보는 우리 언론의 현주소를 들어 봤다.같은 언론인이면서 한편으론 우리 언론 풍토로부터는 한발치 떨어져 있는 그들.상업성을 탈피해 속보 경쟁보다는 정확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는가 하면 매체 경영자들에게는 정치적 중립성을 주문하기도 했다. ◎고스게 코이치 조일신문 서울지국장/어려울수록 원점을 소중히 한국의 고귀한 언론투쟁의 역사는 일본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그리고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도 가장 자유롭게 언론을 전개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이런 축적은 소중하게 여겨져야 할 것이다.어려운 상황일수록 원점을 짚어보는 것이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신문사’ 간판만으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조직의 일원이기 이전에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독립한 저널리스트’이어야 하지 않은가.출입처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이는 물론 이는 필자의 자계(自戒)다. 취재대상에 파고들면서도 권력과의 거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무엇보다 인간이고 싶다.그리고 겸허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편견’과는 차원이 다른 좋은 의미의 내셔널리즘에 바탕한 인터내셔널리즘을 추구하고 싶다.신문에서 우선 요구되는 것은 정확한 정보의 제공이다.무엇이 사실인가를 독자에게 제시하고,거기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그런 원점을 소중히 하고 싶다. ◎키시 토시로 NHK 서울지국장/공익에 목적둔 정치견제를 외국인 기자로서 한국 사회를 오랜 기간 관찰하며 느끼는 것은 준(準) 선진국중에서 한국만큼 정치적,사회적으로 갈등이 많은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체포되고,정권에 협력했다 또는 적대했다라는 이유로 재벌 총수가 구속된다.그리고 안기부를 비롯한 국가기관과 언론기관이 그러한 ‘마녀 사냥’에 앞장 서온 것이 한국의 역사이다.그래서 한국 미디어의 경영자들은 항시 권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라는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워왔다.그 결과 권력에 영합하건적대하건 간에 한국의 미디어의 입장은 항상 어떠한 당파성을 띠게 돼 미국이나 일본의 미디어와 같이 취재와 보도에 있어서 정치로부터 독립한 국익과 시민의 이익이 고려되는 기회를 잃어 왔다. 하지만 미디어에 의한 정치의 견제는 바야흐로 국익과 시민의 이익획득에 목적이 있다.한국의 미디어가 이러한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정치가 보다 성숙해지고 안정을 찾는 것이 요구되지만 동시에 기자 한사람 한사람에게 독립된 가치기준으로 정치를 냉정하게 비판하는 능력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케다 야스히로 東京新聞 서울지국장/미래 지향적 영향력 기대 한국 신문은 ‘정보의 보고(寶庫)’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일본인 기자의 눈으로 보면 한국 신문의 영향력도 부러울 정도다.한국 정부 당국자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것은 신문이 반대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말이 종종 튀어나온다.“우리나라의 신문은 힘이 세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인다.정계재계에 신문사 출신이 많이 활약하고 있을 정도다. 金大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뒤 새로운 한일우호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한국 신문의 전향적인 평가가 여론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이번에 거듭 태어난 대한매일을 선두로,한국 각 신문이 풍부한 영향력을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구축을 위해 써주었으면 한다. ◎존 버튼 파이낸셜 타임스 서울지국장/추측·루머 의존경향 버리길 한국의 언론 보도는 신문사의 숫자가 많고 경쟁이 치열한 탓인지 추측과 과장,루머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요즘 언론사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이념논쟁이나 휴전선 무력시위 요청사건 보도가 좋은 사례다.기자들의 경우 수동적인 경향이 있어 보인다.경제나 기업 관련 기사를 쓸 때 주는 자료를 받아 쓸 뿐 사실 확인이나 추가 취재에 ‘소극적’이다.비판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또 의도적으로 정치인이나 관료를 화나게 하거나 당혹하게 하는 기사를 쓰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느끼고 있다.이는 언론과 정치권력이 지나치게 밀착된 관계를 유지한 데서 비롯된다는 생각이다.따라서 한국 언론은 먼저 그것이어떤 것이든 먼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게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리드 G.밀러 AP통신 서울지국장/공정 등 보편원칙 충실해야 한글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사람으로서 한국 언론의 공정보도를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론은 정확한 사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점이다.AP통신의 경우 보도의 신속성보다는 정확성을 강조한다.때문에 취재 기자든 기고자이든 AP통신은 정확할 것을 주문한다.오보를 낸 기자라면 AP에 오래 일하기 힘들다.정확한 보도는 한국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 어떤 회사의 기자든 간에 지켜야 할 의무다.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는 보편적 원칙인 셈이다. 특정인을 둘러싼 논쟁이 진행된다면 언론은 그가 쓴 글이나 발표,과거 행적을 철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그런검토는 자연스럽게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밝혀줄 것이기 때문이다.재차 강조하거니와 언론은 취재원이 요청한 엠바고도 존중하하고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할 의무를 지켜야 한다.
  • 金 대통령 “오와비→사죄로 표현 잘된일”/訪日 뒷얘기

    ◎국회 연설때 의원 527명 참석 대성황 이뤄/청와대측 “申鉉碻 전 총리 활동 큰힘 됐다” 3박4일간에 걸친 일본 국빈방문을 마치고 10일 귀국한 金大中대통령이 남긴 뒷얘기는 이번 방일의 성과와 의미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단초이다.그속에서 金대통령의 노력,그리고 일본 정계지도자를 포함,조야(朝野)의 반응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金 대통령 지지대회 방불 ○…金대통령이 이번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행사로 여기고 있는 것은 지난 9일 도쿄를 떠나기 직전 일본 전직총리 및 주요 정당대표들과 가진 오찬 모임이었다는 전언이다.朴智元 공보수석도 “이 모임은 마치 金대통령의 한·일 파트너십 제안에 대한 일본 여야지도자의 지지대회 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金대통령은 나카소네 야스히로,다케시다 노보루 전총리 등이 서로 발언에 나서 공동선언과 행동계획을 높이 평가하자 매우 흡족해 했다는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金대통령은 10일 귀국전 수행원들과의 조찬자리에서 외교통상부가 일본어의 ‘오와비’를 우리말로 ‘사죄’로표현토록 한 노력을 두고 “아주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고 朴공보수석이 전했다.이어 “일본이 앞으로 잘해보자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실리에 비중을 둔 외교스타일을 가늠케 했다. ○…金대통령의 지난 8일 국회 연설에는 중의원 500명,참의원 251명 등 전체 751명 가운데 527명이 참석해 일부는 서있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이는 레이건 전미국대통령과 함께 일본 국회사상 가장 많은 의원들이 참석한 기록이다. 이날 방청석에 오부치총리 부인을 비롯해 전직총리 부인 5명과 여야의원 부인들과 대학생들이 다수 참석,눈길을 끌었다. ○…申鉉碻 전 총리는 이번 방일기간동안 金대통령이 일본 정·재계 인사들과 만나는 자리나 재일동포 간담회에 모두 참석했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도 “한·일관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申전총리의 활동이 金대통령의 방일성과에 큰 힘이 됐다”고 평가할 정도다.申전총리는 특히 “그동안 많은 일을 해봤지만 일본 국민이 이처럼 한국대통령을 진심으로 환영한 일이 없었다”고 격찬했다. 한편 金대통령은 일본어를 할 수 있음에도 공식통역을 통해 대화를 나눴으나 마지막 날이었던 10일 오전 일본 문화계 인사와 간담회에서는 출발시간이 촉박,통역없이 직접 일본어로 연설했다고. ○北 발사체 평가 엇갈려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한·일 양국은 북한이 지난 8월31일 쏘아올린 발사체에 대해 평가가 엇갈렸다. 일본측은 미사일 발사로 표현할 것을 주장했으나 한국측은 인공위성을 발사했으나 궤도진입에는 실패했다는 공식 입장을 고수했다고.金대통령은 발사체 명칭에 외교조정이 필요없는 8일 일본 국회연설에서 ‘인공위성 발사’라고 언급했다.
  • 눈길 끈 친분인사 다과회/과거 인연 知人들 ‘감회어린 만남’

    ◎납치사건 구명·민주화 지원 70여명 초청/金九·張俊河 선생 의문사 규명 의지 밝혀 【도쿄=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의 방일 행사 가운데 눈길을 끌었던 것은 도쿄를 떠나기 앞서 9일 오전 일본내 친분인사들과의 만남이었다. 지난 70년대 유신 당시 金대통령이 일본에 체류하고 있을 때 음양으로 도왔던 인사들이다. 초청된 지인(知人)은 70여명. 일본 중·참의원과 교수,언론인,목사 등으로 金대통령의 일본 인맥으로 통한다. ‘DJ 도쿄납치사건’,구명활동,민주화 지원 운동으로 인연을 맺어왔다. 이 가운데 덴 히데오(田英夫) 참의원은 납치사건의 진상규명위원장,사사키 히데노리(佐木秀典) 중의원은 실무책임자로 활동했던 인사들이다. 재일동포인 趙活俊씨는 납치사건 당시 金대통령의 비서. 초등학교 친구 金鍾忠씨는 金대통령이 일본 망명 때 자신의 집을 피신처로 제공했다. AP통신 기자인 洪健杓씨는 납치사건의 진상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렸다. 지난 95년 金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납치사건기획물을 제작했던 호타 긴코(堀田謹吾) NHK프로듀서와 월간지 세카이(世界)를 발행했던 고(故) 야스에 료스케(安江良江) 사장 미망인과 오카모토 아쓰시(岡本厚) 편집장도 보였다. 또 도이(土井) 사민당당수를 비롯,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자민당총재,차기총리감으로 꼽히는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중의원 등 金대통령의 일본 정계인맥도 눈에 띄었다. 金대통령이 야당 지도자였던 시절,감시의 눈을 피해 꾸준히 지원한 사람들도 적지않다. 이를 감안한 듯 金대통령은 연설 전 먼저 사회자용 마이크에 서서 깍듯한 예우를 갖췄다. 참석자들을 ‘친구’라고 불렀다. 특히 金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신대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한편 국내문제에도 언급,“金九 선생,張俊河 선생 등 국내에서 의문사한 사건의 진상도 가려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에 무사코시 긴히테(武者小路公秀) 훼리스여자대 교수는 환영사에서 “여기 모인 우리는 일본정부가 피해가고 金대통령이 관용으로 넘어가려는 문제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金대통령의 도쿄 납치사건 진상규명 운동을 계속할 뜻을 밝혔다.
  • 日 단체·교포들에 韓國 투자 당부/訪日 사흘째 이모저모

    ◎예상밖 환영인파에 “일서 선거해도 자신” 농담 【오사카=梁承賢 특파원】 방일 사흘째인 9일 金大中 대통령은 도쿄와 오사카를 오가며 바쁜 일정을 보냈다. ▷오사카 도착 표정◁ ○…金대통령은 오후 오사카에 도착,숙소인 시민·학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金대통령이 탄 차량 행렬이 숙소인 데이코쿠호텔 인근에 이르자 기다리던 시민과 학생들이 태극기와 일장기를 흔들며 환호했고,길가던 시민들도 손을 흔들었다. 뜻밖의 환영인파를 만난 金대통령은 일본 경호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를 세우고 이들에게 다가가 흐뭇한 표정으로 10여분간 악수를 나누기도. ▷동포간담회◁ ○…한·일 정상회담 후 金대통령은 오사카(大阪)를 방문,동포들과 간담회를 가졌다.金대통령은 방일 성과에 고무된 듯 편안한 모습으로 유머가 섞인 인사말로 간담회장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金대통령은 오사카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은 사실을 지적,“이 정도 인기면 일본에 와서 선거해도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농담을 던져 폭소가 터졌다.이어 ‘천황’ 호칭을 예로 들면서 “따질 것은 따지되 대범하게 넘어갈 것은 그렇게 하는게 세계속에서 인정받는 길”이라며 자신의 정치관을 소개. 金대통령은 재일동포들이 국내의 외환위기에 3억여달러를 송금하고 수재구호금을 보낸 것에 감사하면서 “사실 그동안 정부가 교포들의 투자를 유치하지 못한 것은 해외에 보물단지를 놓고도 못 써먹은 것”이라며 활발한 투자유치 의사를 피력했다.이어 재일동포들의 모국 투자를 요청한 뒤 “여러분이 고국에 투자하려면 공무원들이 규칙을 핑계로 지치게 했다는 것을 잘 안다”며 행정개혁에 대한 의지를 피력. ▷관서지역 주요단체 만찬◁ ○…金대통령은 오사카 데이코쿠호텔에서 관서지역 주요단체가 공동주최한 만찬에 참석,적극적 ‘세일즈 외교’에 나섰다. 金대통령은 만찬사에서 “이번에 제정된 ‘외국인 투자촉진법’으로 외국인에 대한 투자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고 운을 뗀 뒤 “한국이 투자대상으로서 관서 경제계에 큰 매력을 줄수 있으리라 확신한다”고 강조. ▷정계지도자 초청오찬◁ ○…金대통령은 이날 낮 일본의 전직 총리 7명과 각당 대표 5명 등 정계 지도자들을 오찬에 초청했다. 金대통령은 “양국 국민들이 바라는 우호와 협력을 증진해 나갈 수 있도록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앞장서 힘써 달라”고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총리는 “20세기에 일어난 일을 20세기 안에 마무리 짓고 21세기를 맞이하자는 金대통령의 결의에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다.도이 다카코 사민당당수는 “기적은 기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씀에 감명받았다”고 말했고 다케시타 노보루 전총리는 “대통령이 돼 일본에 오신 것은 정말 감동스럽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류타로 전총리가 “국회 연설때 여야의원 부인들이 참석해 경청한 것은 과거에 없던 일”이라고 말하자 申鉉碻 한·일 협력위원장은 “일본 국민이 이처럼 진심으로 우리 대통령을 환영한 것은 처음”이라고 받았다.
  • 포르투갈 첫 노벨문학상 작가 사라마구 작품세계

    ◎우화형식 빌려 현실 폭로/신문기자 출신… 시·희곡 등 여러 장르 섭렵/‘돌 뗏목’ ‘밤’ 등 대표작… 소외계층 입장 대변/단락 없애고 쉼표·마침표만 사용 문체 독특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작가인 주세 사라마구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사이의 교차로에 위치한 작가로,마술적 리얼리즘(magical realism)의 살아있는 교과서 같은 작품을 쓰고 있다.그의 작품은 우화의 형식을 빌리고 있는 것이 특징.출세작인 ‘돌뗏목’‘발타사르와 블리문다’‘리카르도 레이스가 죽던 해’‘예수 그리스도 찬가’ 등은 바로 그런 유의 작품들이다.사라마구는 1947년 ‘죄악의 땅’으로 문단에 나왔다.그후 20년 가까이 침묵을 지키다 66년 ‘가능한 시’라는 시집을 내며 문학활동을 재개했다.문학을 다시 시작하기 전 사라마구는 번역자,신문기자,자유기고가 등 여러 직업들을 거쳤다.그때 ‘세아라 노바’에 문학비평을 쓰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그러나 1966년 이후 그는 시 이외에 수필,희곡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쏟아냈다.그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80년 ‘바닥에서 일어서서’란 소설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사라마구는 “80년대 초 포르투갈 문학은 시나 다른 장르의 문학이 아니라 소설이 주를 이루는 문학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실제 80년대로 접어들자 포르투갈 문학계에서는 수많은 소설이 발표됐다.그 역시 문학성 높은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하며 포르투갈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인정받는 작가가 됐다. 그의 문학세계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추구하는 혁신적 문학정신이다.그는 문장부호로서 단지 쉼표와 마침표만 사용할뿐 아니라 직접·간접화법을 구분하지도 않는다.때문에 그의 텍스트는 일반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독자들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외국어대 송필환 교수(포르투칼어과)는 “사라마구 문체의 특징은 한마디로 ‘언어의 부주의성’ 즉 부주의한 일상적 대화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80년대 사라마구는 주로 포르투갈의 소시민이나 소외계층에 관한 소설을 썼다.이를 통해 그는 유럽과 이베리아반도에 예속돼 있는 포르투갈의 모순을 일깨워준다. 그의 소설 ‘돌뗏목’은 그 좋은 예다. 이베리아 반도가 초자연적인 이유로 인해 유럽대륙에서 떨어져 나와 대서양으로 떠내려간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줄거리.사라마구는 여기서 포르투갈이 EC(유럽공동체)에 가입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이는 포르투갈 정부당국과 정치인들 특히 권력정치의 주역들에 대한 문제제기로,일종의 서사적 문학제안이라 할만하다. 사라마구의 작품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돼 있다.그는 또한 숱한 문학상을 받았다.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79년 포르투갈 비평가협회가 뽑은 올해의 희곡상을 받은 ‘밤’,1980년 리스본시 문학상을 받은 ‘바닥에서 일어서서’,1982년 포르투갈 펜클럽상과 리스본시 문학상을 받은 ‘수도원 비망록’,등을 들 수 있다.최근에 발표한 소설로는 ‘모든 이름들’(97년)이 있다. ◎주세 사라마구 연보 △22년 리스본 근교 아지냐가 마을에서 출생 △47년 ‘죄악의 땅’이란 소설로 등단 △66년 시집 ‘가능한 시’ △70년 시집 ‘아마도 행복인가’ △75년 시집 ‘1993년’ △77년 ‘회화와 서예에 관한 매뉴얼’ △79년 희곡 ‘밤’ △80년 희곡 ‘이 책으로 무엇을 할까요’·소설 ‘바닥에서 일어서서’ △82년 ‘발타사르와 블리문다’‘수도원 비망록’ △84년 ‘리카르토 레이스가 죽던 해’ △86년 ‘돌뗏목’ △87년 희곡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두번째 삶’ △89년 ‘리스본 포위의 역사’ △91년 ‘예수그리스도 복음’ △95년 ‘무지에 관한 에세이’ ◎나라별 역대 수상자/프랑스 12명으로 최다/미국·영국·스웨덴 등 순 아시아권 작가 4명뿐 1901년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이 첫 수상한 이래 98년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까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은 모두 95명.1차대전과 2차대전중 모두 일곱해를 제외하고는 수상자를 냈으며,2인 공동수상이 네번 있었다. 가장 많은 수상자를 낸 국가는 프랑스로 12명이고,다음은 미국이 10명,영국과 스웨덴이 7명,이탈리아와 독일이 6명씩을 차지해 이른바 노벨문학상 대국으로 꼽히고 있다. 다음으로는 스페인이 5명,폴란드·아일랜드·구소련이 4명,덴마크·노르웨이가 3명,일본·그리스·칠레·스위스 등이 2명을 차지했다.그밖에 1명씩 배출한 국가는 16개국으로 모두 32개국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2명(94년 오에 겐자부로,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인도 1명(13년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이스라엘 1명(66년 요세프 아그논)을 배출했을 뿐 여전히 노벨문학상 불모지대로 남아 있다. 한편 이 상은 장 폴 사르트르(64년),윈스턴 처칠(53년),버트런트 러셀(50년),앙리 베르그송(27년)과 같은 비문학인에게도 수여된 바 있으나 70년대이후 들어서는 순수 문학인들로 국한되고 있다.
  • 親日의 군상:8/월북무용가 崔承喜(정직한 역사 되찾기)

    ◎日帝에 국방헌금 내고 ‘舞踊報國’ 맹세/15세때 日 유학… 귀국후 세계순회공연하며 대활약/1942년 6개월간 만주 돌며 130여회 日軍 위문공연/해방후 前歷 비난 피해 남편과 월북… 北韓정권 참여 □엇갈리는 親日 평가 “예술위해 불가피” “자의적 친일 활동” 근대 이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중에서 ‘스타중의 스타’는 누구일까? 1930년대 당시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무용가 崔承喜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崔承喜는 세계적인 무용가라는 찬사를 받은 ‘전설적 예술가’였다. 바로 그 崔承喜가 최근 우리사회에서 ‘부활’하고 있다. 지난 6월 북한국적의 재일교포 무용수 白香珠씨가 내한공연을 통해 崔承喜의 춤사위를 완벽에 가깝게 복원한데 이어 한달 뒤인 7월에는 그의 이름이 국내 한 일간지에 대서특필되었다. 崔承喜(1911∼?). 언제적 이름인가. 그의 이름 앞에 ‘월북무용가’란 수식어가 필요할만큼 우리 귀에 낯선 이름 崔承喜. 해방후 남편을 따라 월북,북한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는 반세기 가까이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왔다.그가 ‘최모(某)’에서 ‘崔承喜’라는 이름 석자를 되찾은 것도 90년대 들어서다. 암울한 일제하 미국과 유럽·중남미 등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식민지 조선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던 ‘조선의 꽃’ 崔承喜. 그러나 그는 남한에서는 ‘월북예술가’라는 이유로,북한에서는 ‘반(反)혁명분자’로 낙인찍혀 남북한 모두에서 외면당해 왔다. 격동의 우리 현대사가 지하창고에 가둬 뒀던 한 천재 예술가를 ‘역사의 양지녘’으로 이끌어내 보자. 崔承喜는 한일병합 이듬해인 1911년 서울 종로에서 양반집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26년 숙명여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당초 도쿄음악학교에 진학할 작정이었으나 연령미달로 입학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던중 큰 오빠 崔承一의 권유로 당시 일본 최고의 무용수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을 관람한 것이 계기가 돼 그의 문하에 입문했다. 해방후 그에게 쏟아진 ‘친일파’라는 비난은 그의 출생시점과 그가 일본으로 무용공부를 떠나면서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열여섯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3년간이시이 문하에서 무용공부를 한 崔承喜는 29년 귀국,서울 적선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차렸다. 이듬해 2월 그는 경성(京城)공회당에서 제1회 신작발표회를 가졌는데 첫 공연 치고는 성공작이었다. 이 때 공연한 한국무용 ‘영산춤’ 등은 한국인이 춘 최초의 독자적 춤공연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무용사에 한 획을 그은 일로 기록되고 있다. 이듬해인 1931년 그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가이자 당시 와세다대학 재학생이던 安漠(본명 安弼承)과 결혼,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최승희연구가 鄭昞浩(중앙대·무용과) 명예교수는 그들의 결혼배경을 두고 “崔承喜는 공연기획 분야에서 천재적인 安漠의 능력을,安漠은 崔承喜의 인기를 사회주의 건설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 분석했다. 해방후 崔承喜의 월북은 그의 남편 安漠의 권유가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安漠은 북한정권에서 평양음악학교장·문화선전부 부부장(차관)을 지냈으나 58년 숙청의 비운을 맞았다. 한편 崔承喜는 33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이 문하로 들어갔다. 남편 安漠이 ‘조선독립음모사건’으로 구속되자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곤란까지 겹쳐 더이상 국내에서는 활동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두번째 일본행은 의외로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쿄로 돌아온지 두 달만에 그는 한 잡지사 주최 여류무용대회에서 ‘신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 때 그가 춘 춤은 ‘에하라 노아라’라는 전통 조선무용으로 술에 취한 자기 아버지의 굿거리 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1934년 도쿄에서 개최된 그의 제1회 신작발표회를 통해 그는 명실공히 ‘톱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는 “崔여사가 추는 조선무용을 보면 일본의 서양무용가들에게 민족의 전통에 뿌리박으라는 강력한 가르침을 볼 수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인 최초의 무용가’라는 점이 의외로 일본사회를 강타하여 그에게 광고모델 요청이 쇄도했다. 하늘을 찌를듯한 그의 인기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여세를 몰아 그는 마침내 해외공연을 추진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이듬해인 38년 2월 그는미국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시작으로 해외공연길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프랑스 파리 공연에 이어 스위스·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 등 유럽공연을 마쳤다. 이무렵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40년 브라질 공연을 시작으로 우루과이·아르헨티나·페루·칠레·멕시코 등 중남미지역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40년말 2년여 해외공연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오자 일제 당국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인기를 군국주의 전쟁에 활용할 속셈이었다. 결국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친일대열에 들어서게 된다.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崔承喜 부부는 궁성(宮城),메이지신궁(神宮),야스쿠니신사(神社)을 참배하고는 ‘무용보국(報國)’을 맹세하였다.(‘報知新聞’40년 12월7일) 며칠 뒤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구미(歐美)공연 때 마음이 든든한 것은 위대한 일본의 국력 덕분이었는데 새삼 조국에 감사하는 마음을 강하게 가졌다”며 친일성향을 드러냈다. 그의 친일과 관련,빼놓을 수 없는 일화 한토막.아사히신문 41년 2월5일자에는 ‘일독(日獨)헌금 교환,독일인 기사와 崔承喜씨’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내용인즉 일본회사에 근무하던 한 독일인 기사가 귀국하면서 여비의 일부를 국방헌금으로 써달라고 이 신문사에 기탁한 일이 있은 후 이번에는 유럽공연을 다녀온 崔承喜가 두 차례의 독일공연에서 생긴 수입금을 독일육군병원에 헌금하려고 가져왔다는 것. 이 무렵 崔承喜는 일본을 ‘조국’이라고 불렀다. 또 춤을 통해서도 그의 친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일본춤의 비중이 점차 증가한데다 춤동작에서도 일본 전통춤인 ‘노(能)’가 차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공연 수익금의 일부,혹은 전부를 국방헌금으로 바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부터다. 그는 수 차례에 걸쳐 일본군부와 조선군사령부 등에 국방헌금을 바쳤다. 41년말 ‘대동아전쟁’(소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예술가들까지도 전선(戰線)으로 내몰았다.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42년 2월초 그는 일본군 위문공연차 만주·중국으로 향했다. 8월까지 6개월 동안에 무려 130여 차례의 위문공연을 하였는데 당시 그의신분은 일본 육해공군 촉탁이었다. 해방때까지 그의 일본군 위문공연은 계속됐다.그는 상하이 주둔 한 일본군 부대에서 위문공연을 하다가 일본패망 소식을 접했다. 해방이 되자 그에게는 중국 현지에서부터 ‘친일파’란 비난이 쏟아졌다. 이듬해 5월 귀국해 보니 사정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일전력(前歷) 때문에 그는 남한 땅에서는 설 땅이 없었다. 결국 그는 귀국한지 두 달도 채 안돼 남편을 따라 월북하였다.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공과(功過)가 교차된 崔承喜의 일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여기에는 변호와 비판이 엇갈리기 마련이다. 무용학자 鄭昞浩 교수는 崔承喜의 친일행적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는 예술을 위해 친일을 했을 뿐”이라며 그가 한국무용사에 남긴 업적에 무게를 실어준다. 반면 金鍾旭(서지연구가·60)씨는 “崔承喜는 도일 직후부터 본명 대신 일본식 이름(崔承子,사이쇼코)으로 활동한 열성 친일파”라며 그의 친일성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전성기 시절 ‘반도의 무희(舞姬)’‘민족의 꽃’으로 불리며 조선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崔承喜. 식민지시대와 분단기를 거치면서 그에게 씌워진 ‘친일(親日),친공(親共)’의 굴레가 ‘역사의 화해’를 볼 날은 과연 언제일까. ◎崔承喜의 知人들/동서양 명사들과 골고루 교분/美 소설가 존 스타인벡/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화가 피카소·시인 장콕토/周恩來 등과도 친교 전성기 당시 崔承喜는 ‘톱스타’답게 각국의 최정상급 명사·예술인들과 교류를 맺고 있었다. 우선 일본 체류시절 그를 후원해준 사람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와 민예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등 당대 일본 최고의 지성인들이었다. 그와 교류한 서양인으로는 미국공연 시절 사귄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소설가 존 스타인백·루이스 레에나·존 그로프,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화가 피카소를 비롯하여 시인 장 콕토,소설가 로맹 롤랑·미셀 지몽,영화배우 샬 보아에이 등이 그와 친교를 맺고 있었다. 또 중국인으로는 周恩來 총리,무용가 梅蘭芳 등이그의 후원자이자 벗이었다. 국내에서는 呂運亨·宋鎭禹 등 민족진영 인사와 남편의 동지이기도 한 朴英熙·韓雪野 등 카프계열 작가들이 그와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 파리공연 때 그는 피카소로부터 그림 한 점을 선사받은 적이 있다. 시가로 수억대를 호가하는 이 그림의 행방을 두고 安씨집안(시댁)과 崔씨집안(친정)간에 한 때 불화가 있었던 적도 있다.
  • 러시아發 쇼크/세계 경제 휘청

    러시아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든 일본 금융시장 동요는 세계를 긴장케 하기에 충분했다. 주가는 12년만에 최저치로 폭락했고 환율은 미화 1달러당 140엔에서 144엔까지 등락을 거듭, 극히 불안 장세를 연출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아시아,심지어 중남미 증시에서조차 주가가 일제히 추락해 취약한 세계 금융기반을 그대로 드러냈다. 세계 금융공황 우려는 러시아의 정정마저 혼미해지면서 증폭됐다. 옐친 대통령의 사임설과 관련,대변인 세르게이 야스트르젬스키는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옐친 대통령의 사임설은 전적으로 근거없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도 CBS의 사임보도를 확인할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며 9월1일부터 예정된 클린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예정대로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 러 야당과 연정 전격 합의/체르노미르딘 총리대행

    ◎옐친 후계 지명 받고 새 경제정책 추진 【모스크바 외신 종합】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 대행은 24일 위기에 빠진 금융 체제의 붕괴를 막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새 경제 정책을 약속했다고 크렘린궁 세르게이 야스트르젬스키 대변인이 밝혔다. 체르노미르딘 총리 대행은 이와 관련 새 내각은 전임 내각의 긴축 기조에서 벗어날 것이라면서 의회에 긴축 패키지 법안 심사를 보류해 주도록 요청했다. 또 겐나디 셀레즈뇨프 하원의장은 그가 야당과 연정을 구성키로 합의했다고 밝혀 새 내각의 구성과 정책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이에 앞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 대행을 오는 2000년 대통령 선거 후계자로 지명할 것임을 전격 표명했다. 그는 이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체르노미르딘을 총리에 지명한 이유는 “오는 2000년 정권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이같은 의사를 시사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 대행은 또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경제 전권’을 부여받았다고 크렘린궁의 한 고위 보좌관이 이날 밝혔다.
  • 무디스 日 손보사 신용 하향/최고등급 금융기관 없어져

    【도쿄 연합】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사는 21일 도쿄해상화재를 비롯, 야스다화재해상,미쓰이해상화재,스미토모해상화재 등 일본의 대형 손해보험 4개사의 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1∼2단계 하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무디스사의 신용등급에서 최고 등급을 지닌 일본의 금융기관은 한 곳도 없게 됐다. 무디스사는 도쿄해상 등급을 1단계, 야스다화재 등 3개사는 2단계 내렸다.
  • 러 공산당 “옐친 사임해야”/대통령 경제고문 리프시츠 사임

    【모스크바 AP AFP 연합】 러시아 공산당은 사실상의 루블화 평가절하와 관련,국가두마(하원) 차기 회의에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할 것이라고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가 18일 밝혔다. 주가노프 당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렸다”면서 “17일의 루블화 평가절하조치 발표 등 오랜 기간 실정을 거듭해온 옐친 대통령은 사임해야 하며 국민들은 시위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위기의 주요 원인은 대통령”이라고 강조하고 “현재 정부는 부재상황이며 두마의 지원을 받아 새 정부를 구성해야 할 것”라고 말했다. 의원들은 옐친 대통령이 회의 참석 요구를 거절했지만 오는 21일 긴급회의를 갖고 대통령 사임 문제를 논의키로 합의했다. 한편 경제실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통령 행정실 부실장이자 경제담당 고문을 역임해온 알렉산드르 리프시츠가 사직서를 제출,수리됐으며 일부 고위직 인사의 경질도 예상되고 있다.세르게이 야스트르젬스키 크레린궁 대변인은 이날 인테르팍스 통신과의회견에서 “내각 교체가 가능하나 긴급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 세계 금융시장 또 ‘곡예’

    ◎러 루블화 절하 영향 통화·주가 곤두박질/일 주가 심리적 마지노선 1만5천엔선 붕괴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과 루블화의 평가절하가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일본의 주가가 2달여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는가 하면 유럽 증시도 크게 하락했다.특히 엔화 환율은 147엔대를 넘보아 러시아 금융위기가 아시아 경제위기를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됐다. ○…일본 닛케이 평균 주가는 17일 지난 주말보다 2.2% 떨어진 1만4,794.66엔으로 폭락했다.종가는 지난달 31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정권이 출범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심리적 마지노선인 1만5,000엔 이하로 떨어지면서 한때는 올해 들어 최저 수준인 1만4,655.69엔을 기록하기도 했다. ○…엔화 환율도 도쿄 외환시장에서 지난 주말보다 1.58엔 오른 1달러당 146.45엔을 기록했다.엔화 가치가 1.09% 하락한 셈이다.루블화 평가 절하의 충격파가 전해지면서 순식간에 146.90엔까지 급락했다가 다시 146.45엔까지 반등하는 등 극심한 혼란 장세를 보였다.일본 후지은행의 외환 거래인인 나카타니 야스후미씨는 “이같은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예상했다”면서도 “절하 폭이 예상보다 크다”고 말했다. ○…아시아 각국의 주가와 통화도 루블화 평가절하 등으로 하락폭이 확대됐다.중국 상하이 주가는 양쯔강 홍수 피해에 대한 우려가 겹쳐 6.1%가 폭락했으며 말레이시아 주가는 3.6% ,태국은 3.4%,싱가포르 2.9%,타이완(臺灣)과 호주는 1.3%,필리핀은 0.2%가 각각 떨어졌다. 또 싱가포르 달러화는 0.7%,말레이시아 0/8%,필리핀 0.3%,타이완이 0.2% 하락하는 등 아시아 각국 통화도 일제히 가치가 낮아졌다. ○…유럽의 주가도 개장하자마자 일제히 급락세를 보였다.러시아에 대한 채권이 많은 독일 주가는 1.97% 하락했으며 프랑스 주가는 1.94%,영국 주가는 0.74% 각각 하락했다.독일의 주가 하락을 선도한 것은 대러시아 채권이 많은 은행주들로 도이체 방크가 2.3%,드레스드너 방크가 2.13%의 하락폭을 기록했다.
  • 日 차기총리 외교·역사관 ‘우려’/自民 총재 3후보 분석

    ◎오부치­신사참배 의원모임 회장 역임… 맹신자 수준/가지야마­한반도 통일 반대 시사… 미 인종차별 발언도/고이즈미­입각후 전범 사당에 제사… 셋중 진보적인 편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열도가 차기 총리가 될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로 달아 오르며 이웃나라의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24일 치러질 선거에 출마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상,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 관방장관,고이즈미 쥰이치로(小泉純一郞) 후생상 등 3명의 후보가 저마다 서로 다른 외교정책을 펼 것이기 때문이다. 세 후보들의 행적과 발언들은 향후 일본의 외교정책을 가늠케 해준다. 가장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후보는 고이즈미 후생상.‘후생 국무대신’ 자격으로 태평양전쟁 전범들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지만 입각 전에는 참배하지 않았다. 신사참배에 관한 한 오부치 외상은 맹신자격이다.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가 패전 50주년을 맞아 ‘반성과 사죄’의 뜻을 담은 총리 담화를 내던 95년 8월. 연립 정권이었던당시 자민당 부총재였던 오부치는 ‘모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의 회장에 취임했다. 그러다 97년 9월 외상에 임명되면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단지 ‘외국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무장 투쟁파’,‘강경 보수’로 불리는 가지야마 전 관방장관은 오부치 외상보다 한술 더 떠왔다. 최근의 사례로 97년 8월 관방장관이던 그는 ‘타이완(臺灣) 유사 사태는 가이드 라인이 말하는 주변사태’라고 말했다. 타이완 문제에 일본이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중국의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96년 8월에는 “남북한 통일되면 한국은 피폐해진다”,“(한반도가 통일되면) 일본에 영향이 없을 리 없다. 대량의 난민이 온다. 위장 난민도 있다. 거기에 무기가 공여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며 통일을 반대하는 듯한 발언을 내뱉었다. 급기야 당시 金太智 주일 대사에게 사죄했고 당시 한국의 집권당으로부터 ‘언동에 국제감각을 갖추라’라는 따끔한 질책을 받아야 했다. 특히 가이후 내각에서 법무상이었던 90년 9월에는 외국인의 불법 취업과 관련,“(미국에서) 검은 것(흑인)이 들어가 흰 것(백인)들이 쫓겨 나듯” 운운해 미국 언론의 혹독한 비판을 뒤집어 쓴 적도 있다.
  • 정계 새판짜기/자민 4개파 새 총리 옹립 다툼

    ◎의석 과반확보 위해 야에 손짓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정계가 새판짜기에 들어갔다.하시모도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의 다음을 노린 것으로 집권 자민당은 자민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수읽기’에 한창이다. 집권 자민당 내부에서는 후임 총리 인선을 둘러싸고 파벌별로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고 같은 파벌내에서도 지지하는 인물에 따라 공통분모를 찾기에 활발하다. 또 야당들은 자민당의 은근한 연정(聯政) 추파를 뿌리치고 ‘중의원 해산, 총선거 실시’를 요구하면서도 앞으로의 정국 향방을 관심있게 주시하고 있다. 자민당의 최대 파벌인 오부치파는 회장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상을 총리로 옹립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오부치 외상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앞장 서고 있는 정치인이면서도 한일어업협정 문제 등에 대해서는 파국을 피하려는 입장을 보이는 등 온건한 면도 겸비하고 있다. 오부치파에 이은 두번째 큰 파벌인 미쓰즈카파는 선거후 잇달아 모임을 가졌다.오부치 외상 또는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 관방장관 등 오부치파가 총리 물망에 올린 인물들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정리했다. 와타나베파도 ‘오부치 대세론’에 연일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이들은 오부치 외상보다는 가지야마 전 장관이 총리가 되는 것이 각료 배분,당 주요인사 면에서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비주류의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미쓰즈카파) 전 운수장관 등도 파벌에 관계없이 뜻을 같이하는 세력규합에 동분서주하고 있다.이들은 가지야마 전 장관을 염두에 두고 있는듯 하다.보수우파 인물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이 주도권을 쥘 경우 어업협정 문제 등 현안이 있는 한일관계는 다소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민주당 공산당 등 야당들은 참의원 선거후 ‘중의원 해산,총선거 실시’를 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다.선거 승리로 기세가 오른 이들은 7월말 소집될 임시국회에서부터 매운 맛을 보여 주겠다고 벼른다. 자민당은 이에 맞서 일부 야당을 끌어들여 부분 제휴 또는 연정을 구성함으로써 정국 안정을 꾀하려 할 전망이다.당장 자민당과 제휴에 나서겠다는 야당은 없다.다만 자유당 등이 연정에 나설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자민당은 참의원에서 전체 262석 가운데 102석에 불과해 이들 군소 야당과는 힘을 합해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게 돼 정국의 재편과 재재편을 끈질기게 추구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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