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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각료 9명 신사 참배

    [도쿄 연합] 일본의 55번째 패전 기념일인 15일 야스오카 오키하루(保岡興治) 법무상 등 각료 9명이 2차 대전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도쿄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했다. 이들 각료중 야스오카 법무상과 모리타 하지메(森田一) 운수상은 공인 자격으로 참배했으며,니시다 마모루(西田司) 자치상은 지난 11일신사 참배를 미리 마쳤다.이로써 모리 내각 각료 18명중 10명이 공인또는 개인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와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 관방 장관은 한국,중국 등 주변국 국민 감정을 고려해 참배를 단념했으나,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씨는 도쿄 도지사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신사를 공인 자격으로 참배했다.이시하라 지사는“공인으로 참배하는게 뭐가 나쁘냐.공인도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총리 등 초당파 의원들로 구성된‘야스쿠니 신사를 다같이 참배하는 국회 의원 모임’소속 의원 78명도이날 오전 신사를 참배했다.
  • 세계지리학대회 참석 학자들”DMZ 관광·첨단산업 균형 개발을”

    생태계 보고인 비무장지대(DMZ) 및 접경지역에 대한 개발은 관광산업과 첨단산업 소단지를 균형있게 배치하는 등의 방향으로 접근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4일 경기도 제2청에 따르면 ‘2000년 서울세계지리학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정치지리분과위원회 소속 학자 30명은 10∼11일 비무장지대에 대한 학술답사를 마친 뒤 12일 오후 경기도 제2청이 주최한 만찬에서 이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이날 미국 아이오와대의 렉스 허니 교수는 “비무장지대 및 접경지역에 관광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도로 뿐아니라 통신 인프라 구축,주거수준 향상을 위한 투자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또 일본 규슈대의 미야카와 야스오(宮川太夫) 교수는 “접경지역 전반에 첨단산업 소단지를 균형있게 배치하는 등 비무장지대 개발을 첨단산업,혁신도시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특히 남북한이 협력해 개발과 생태보존이 균형을 이루는 전략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말했다. 러시아 과학원의 블라디미르 코로소프 교수는 “비무장지대 및 접경지역을 분단으로 인한 상처지역에서 혁신과 발전의 중심지로 거듭날수 있는 전략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이탈리아 밀라노대의 파블리지오 에바 교수는 “밀라노의 경우 관광개발을 위한 도로건설 과정에서 역사적 장소들이 파괴되고 해안선의 사유화로 자연환경을 해쳐 관광여건이 악화되는 아픔을 겪고있다”며 “비무장지대도 통일에 대비한 토지이용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개발 촉진보다는 기존 자원을 잘 보존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경기도 제2청 김문규(金文圭)문화복지국장은 “휴전선 일대가 낙후된 것은 정책부재 보다는 토지이용 규제 등 제도적 환경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경의선 복구 등으로 여건이 개선되면 개발잠재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충분한 정책 입안및 집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정부 한만교기자 mghann@
  • 이시하라,군국주의 상징 야스쿠니신사 “도쿄都知事자격 참배”

    이시하라 신타로(石原 愼太郞) 도쿄(東京)도지사는 오는 15일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도쿄도지사 자격으로 참배하겠다고 11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그는 “내가 공인자격으로 참배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으냐”며 “이제일본은 착각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말했다.그는 “내 친척들과 장인의위패도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돼 있다”고 덧붙였다. 야스쿠니 신사가 주요 인사들의 방문을 기록하기 시작한 지난 67년 이후 도쿄도지사중 아무도 신사를 방문하지 않았다. 야스쿠니 신사는 2차대전 당시 총리를 지냈던 도조 히데키 등 7인의 전범을포함, 19세기 중반 이후 전쟁에서 사망한 일본인 240만명의 위패를 봉안하고있으며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꼽히고 있다. 각료들중 상당수도 오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계획이다. 한편 중국의 주방자오 외교부 대변인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 전에일본 군국주의에 희생됐던 이웃 아시아 국민감정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이를 비난했다. 도쿄 교도 AFP AP 연합
  • [대한광장] 日 우익 또 교과서 왜곡

    일본의 우익 국수주의 세력이 추진해온 ‘역사교과서에서 일본의 아시아침략사를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성공 단계에 이른 모양이다.보도에 의하면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한 역사교과서가 문부성 검정에 통과돼 2002년 새 학기부터 사용될 전망이라고 한다.일본의 침략 패전국인 아시아 각 나라들은 일찍부터 일본 수구세력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반대해 왔다.여기서다시 그 이유를 살펴보자. 1980년 대일관계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일본 문부성 자체가 유도한 역사교과서 왜곡 시도였다.이에 대해 한국과 중국 등 당사국이 항의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여기서 남의 나라 교과서 내용에 대해 왜곡을 문제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일제 침략의 피해 당사국으로서 침략사실을 정당화나 합리화하는 것을 가만 두고 볼 수 없다.일제의 침략적 정신구조를 그대로 놓아 둔다면 그 해독이 식민주의·군국주의·인종차별주의·패권주의 나아가 침략 만행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과 반인륜성 방임으로 자리잡아 새로운 악과 불행을 가져올수 있기때문이다. 일본 우익은 왜 그토록 침략을 정당화하는 역사왜곡을 시도해 왔는가? 이점을 있는 그대로 폭로해야 한다.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은 서양제국의 식민주의 정책을 모방 추종했지만 한편으로 일본의 독자적 정신과 방략으로 황국사관(皇國史觀)을 날조했다.황국사관이란 일본왕은 태양신의 자손이고 일본은이 신이 다스리는 세계의 중심 지배국이라는 내용으로,터무니없이 무지한 신화의 날조다.이 신화는 국가종교로 자리잡아 일본인을 하나로 묶어 전쟁을해왔다.나카소네가 총리 재임시에 호국영령을 합사했다는 군국주의 정신의성역인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황국사관을 공식으로 인정하고 선양하는 의식이었다.현 총리 모리가 일본은 “천황(왕)중심의 신의 나라”라고 한것은 그러한 정신적 맥락을 공공연히 피력한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된 역사교과서는 일제침략이 아시아를 서양 제국주의에서 해방시키는 전쟁이었으며,일본군의 만행은 전쟁에서 으레 뒤따르는 부작용 정도로 자기 정당화를 공연히 한다.잘못된 것이 있다면 패전한 것이라는 논리다. 일본은 동일한 전쟁국가였던 독일과 왜 그토록 다른가? 여기에는 황국사관과 신권천황제(神權天皇制)의 신화가 있다.신의 자손이고 그 자체가 신이기도 한 천황(왕)의 명령으로 전쟁을 했기 때문에 전쟁의 침략성과 범죄성을사죄하면 신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더구나 패전후 전범재판에서조차 왕은면책을 해줬기 때문에 이 논리는 그럴 듯하게 먹힌다.사람이 아닌 신으로서절대 불가류(不可謬)의 신화를 고집하는 신앙과 사고방식이 일본 사람의 머리 속에 있는 한 침략을 마음으로부터 사죄할 수 없게 돼 있다. 어느 나라이건 원시 고대에는 왕을 신이나 신의 자손 등으로 맹종했다.그러한 정치신화의 시대는 서양에서는 시민혁명에서,왕권신수설의 타파로 청산됐다.그런데 일본의 1868년 명치유신이란 왕정복고는 왕 중심의 권력정비였고명치헌법의 1·4조는 신권주의 천황주권으로 왕을 절대화한 정치종교의 국가체제를 갖추게 했다.일본제국은 바로 제정(祭政)일치의 사이비 근대국가였던 것이다. 그런 일본제국이 2차대전에 패전함으로써 천황 신권주의는 ‘상징천황제’로 대체된 듯했다.그렇지만 일본인의 의식구조에 담긴 노예근성의 정치신앙은 뿌리뽑히지 않았다.일본의 지배세력은 바로 그 정치종교를 이용해 오고있다.민주와 평화의 가치관으로 정치적 리더십을 이끌어갈 능력도 없고 여건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패전후 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우익은 일본적 정신,동양정신이란 간판으로 위장한 봉건적 종속관계의 윤리를 그대로 이끌어갔다.사회에서 ‘오야붕-꼬붕’관계,기업과 경영에서 가족주의 경영체제,정치에서 의리와 연고를 따지는 인간관계로 구시대의 봉건윤리를 교묘하게 유지해 오고 있다.그런 정신구조는 일본인이나 이웃나라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 역사 왜곡은 바로 역사를 통해 노예정신을 정당화하는 것이다.이같은 정신적 독약이 이웃의 평화와 공존에 치명타를 가하는 화약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 日 도쿄대 ‘知시리즈’ 번역 출간

    ‘지의 기법’‘지의 논리’‘지의 윤리’‘지의 현장’등 4부작으로 이뤄진 지(知) 시리즈(고바야시 야스오 등 지음).지난 98년 일본 도쿄대 출판부에서 완간한 이 책은 대학 신입생 부교재로 만들어진 것임에도 사회 속으로파고들어 100만부가 팔리는 진기록을 낳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 시리즈 4권이 모두 번역돼 나왔다.도서출판 경당,이근우 등 옮김. 첫째권 ‘지의 기법’에서는 학문의 행위론,인식과 표현의 기술 등을 다룬다.특히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의 개념에 따른 ‘열려있는 학문’의 자세를 강조한다.‘지의 논리’에서는 인식론,현상학,구조주의,카오스이론 등20세기 인류가 이룩한 지적 업적 전반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서술한다.조셉 콘라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을 보면,서구는 계몽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 아프리카를 자신들의 빛과 대조적인 어둠으로 규정한다.이 책은 이런 서구중심의 오리엔탈리즘을 분석하는 한편 타인을 보는 시각의 오류가능성을 지적한다.영화 ‘쉰들러 리스트’와 유태인 학살을 다룬 9시간 30분짜리 프랑스 영화 ‘쇼아’(Shoah,재난을 뜻하는 히브리어)를 ‘현상학의 딜레머’란 관점에서 분석한 글도 이채롭다.‘지의 윤리’는 지의 책임을 묻고있는 책.일본 학교내의 이지메나 교사의 체벌,옴진리교 등 비윤리적 현상들은 일본식 전체주의의 영향이라고 진단한다.‘지의 현장’에서는 일본,언어,신체라는 세가지 주제를 통해 지의 최전선을 살핀다.특히 그동안 정면으로다루지 않았던 ‘일본’을 다섯 가지의 창을 통해 조망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순환논법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일본어에 대한 정의,일본적 집단주의와 미국적 개인주의,에테로토피(혼재향·混在鄕)의 정치학,포르노그래피의 정치학,아무로 나미에의 히트곡을 통해본 일본 대중음악 등이 그것이다. 김종면기자
  • 나카소네 일본 前총리등 전경련 국제자문단 임명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해부터 운영해온 국제자문단회의의 위원으로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전 총리와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회장,테오 좀머 독일'디 차이트’ 편집인 등 7명을 새로 임명했다고 31일 밝혔다.이에 따라 전경련 국제자문단회의 위원은 22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전경련은 오는 12월12∼13일 ‘새로운 시대의 도전과 기회’를 주제로 제2회 국제자문단회의를 갖고 신경제를 둘러싼 논란과 국제경제환경의 변화 등을 논의한다.의장인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과 미키 캔터 전 상무장관,세지마 류조 일본 이토추 상사 고문 등 10여명이 참가한다. 주병철기자
  • 다케시타 前일본총리 장례식

    [도쿄 연합]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전 일본총리의 장례식이 29일 오후 고향인 시마네(島根)현 가케야조(掛合町)체육관에서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와 국회의원,각료,주민등 4,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모리 총리와 각료 11명을 포함,여야당 국회의원 140명은 도쿄(東京)에서 전세기편으로 시마네현에 도착,참례하고 생전의 ‘통 큰 정치인’ 다케시타씨의 덕을 기렸다. 가케야조와 자민당 시마네현렌(連),다케시타가(家)의 합동장으로 치러진 이날 장례식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등 총리 경험자 4명 이외에 다케시타씨가 생전에 일한의원연맹 회장으로 있으면서 교분이 두터웠던 김종필(金鍾泌),박태준(朴泰俊) 전 한국총리도 참석했다. 다케시타의 비서출신으로 장례위원장인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전 관방장관은 고별사에서 “20세기의 정치사에서 정확한 평가가 내려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2)’청산리전투’ 현장

    ◈ 독립군 최대 勝捷 '청산리전투' 현장. ‘청산리대첩’은 우리 독립군이 정식 전투를 통해 일본군을 대파,가장 혁혁한 전과를 올린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이는 개인 차원의 의열투쟁과는 달리 독립군의 조직적·정규적 무장투쟁이었다는 점에서 항일투쟁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청산리전투’는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가 이끄는대한독립군 등을 주력으로 한 독립군 부대가 독립군 토벌을 위해 간도에 출병한 일본군을 청산리 일대에서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 새벽까지 10여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대파한 전투를 말한다.첫 전투는 21일 청산리 백운평(白雲坪)계곡에서 북로군정서군이,마지막 전투는 26일 홍범도부대가 고동하(古洞河) 골짜기 전투에서 각각 승리로 장식하였다. 1910년 8월 국권이 상실되자 의병진영은 간도·연해주지역으로 활동무대를옮겨 독립운동 단체를 결성하는 한편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여 다가올 독립전쟁에 대비했다.1919년 3·1의거와 뒤이은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계기로 김좌진 등이 조직한 북로군정서군과 ‘봉오동전투’의 주인공인 홍범도부대는 간도 일대에서 활발한 항일투쟁을 벌이고 있었다.독립군의 활동에 위협을 느낀일본군은 간도지방의 독립군을 소탕하기 위해 ‘훈춘(琿春)사건’을 조작,이를 구실로 간도에 대규모 병력을 출병하였다.따라서 간도지역에서 독립군과 일본군과의 결전은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되었다. ‘청산리전투’는 항일투쟁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그동안 제대로 평가를 받지못한 면이 있다.이는 관련자료의 부족으로 인한 학계의 연구가 부족했던 데다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현지답사가 곤란했던 탓도 있다.광복회는 금년 6월 현지 당국의 협조를 얻어 청산리전적지에서 기념비 건립 기공식을 가진 바 있다. 청산리전적지는 길림성 용정(龍井)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화룡(和龍)에서 시작된다.화룡시내를 빠져나와 비포장 길로 2km를 달리면 송화평 마을이 나타나는데 마을 뒤에는 청산리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을 모아 저수지를 만드는 댐 공사장이 나타난다.송화평 마을은 원래 김좌진장군이 북로군정서군을 이끌고 장정길에 잠시 체류했던 곳으로 김좌진부대는일본군 대부대가 이곳으로 진격해오자 청산리 계곡으로 부대를 옮겼다. 당초 중국측은 댐 공사장 어귀에 청산리대첩 기념비를 세울 것을 주장했으나 우리 측에서 “역사적 현장이 아니다”며 반대해 무산됐다고 한다.중국측은 댐 아래쪽에 위락시설을 만들 계획인데 이곳에 기념비를 세우면 한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던 모양이다. 송화평 마을에서 10리(중국은 10리가 5km임) 가량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청산(靑山)소학교와 함께 10여 채의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이 마을이 바로 청산리 마을이다.마을 끝부분 뒷산 언덕배기 일부가 파헤쳐져 있는데 이곳이광복회가 청산리대첩 기념비를 세우려는 곳이다.가파른 언덕길을 50m가량 올라가 기념비를 세울 자리에 서면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건너편으로백두산 가는 길이 숲 사이로 보인다.기념비 건립 주최측은 이곳이 청산리전투 현장의 초입인데다 백두산가는 관광객들이 한 눈에 기념비를 볼 수 있도록 이곳을 비석 건립지로정했다고 한다.기념비 건립지 아래는 청산리전투전람관과 주차장 등 부대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청산리 계곡은 이곳에서 본격 시작된다.트럭 한 대가 거뜬히 다닐 수 있도록 잘 닦은 이 길은 목재나 대리석 운반을 위해 닦은 신작로다.과거 독립군이 다니던 샛길은 골짜기 가운데를 흐르는 계곡 물가를 따라 나 있다.청산리마을에서 계곡의 중심부를 향해 올라가면 중국측에서 세운 ‘청산리 항일전적지’ 나무비석이 풀숲에서 얼굴을 내민다.계속 올라가면 지금은 흔적만 남은 집터자리가 더러 나타난다. 동행한 연변대 민족연구소 박창욱(朴昌昱) 교수는 “과거 이곳에는 평양촌이 있던 자리로 1930년대 일본군은 이곳에 집단부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나타나는 평지가 바로 백운평 마을자리로 이곳이 바로 청산리전투의첫 총성이 울린 유서깊은 곳이다.당시 이 마을에는 20여 호가 살고 있었고교회당도 있었다고 한다.박 교수는 “전투후 일본군은 마을에 들이닥쳐 남자는 어린애까지 모두 살해하고 마을 전체를 불태웠는데 그 연기가 3일간이나계곡전체에 가득했다”고 증언했다.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이 조선군(조선에 파견된 일본군) 제19사단 산하 야마다(山田)연대의 전위부대인,야스카와(安川) 소좌의 부대를 섬멸한 청산리전투의 첫 전투현장은 이곳 백운평마을에서 1,200m 위쪽에 위치한 직소(直沼)부근이었다.이곳은 청산리계곡에서 가장 높은 지대로 원래는 목재를 하류로운반하기 위해 물을 막아두던 곳이었다. 10월21일 새벽 북로군정서군은 이곳에 매복,계곡의 좁은 길을 따라 올라오는 야스카와부대를 공격,200여명을 사살했다.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북로군정서군은 적을 추격하지 않고 이도구(二道溝)방면으로 이동작전을 전개했다. 김좌진부대가 갑산촌을 지나 밤을 새워 행군한 끝에 22일 새벽에 도착한 곳은 백운평에서 120리 떨어진 천수평(泉水坪)마을이었다.김좌진부대는 다시이곳에서 일본군 기병 27연대 산하 1개 중대를 섬멸하였다.이를 계기로 시작된 것이 청산리전투의 최대의 격전인 어랑촌(漁郞村)전투였다.김좌진부대와홍범도부대가 연합하여 일본군 5,000여명과 접전,일본군 ‘수백명’을 살상시켰다.당시 독립군 연합부대는 천수평전투에서 승리후 일본군이 반격해올것에 대비,야지골 인근 874고지를 점령해 유리한 상황이었다. 백두산가는 길가에 있는 어랑촌은 한일병합후 함북 경성군 어랑면 농민들이이주해 개척한 마을로 아직도 2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마을입구에는 ‘어랑촌 13용사 기념비’가 서 있다.천수평은 어랑촌에서 백두산가는 길로 가다가오른쪽 길로 빠져 10리 정도를 올라가면 나타난다.천수평마을 입구에는 세운지 오래되지 않은 듯한 교회 하나가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청산리전투에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쌍벽을 이룬 부대는 의병장 출신의 홍범도 장군이 지휘한 대한독립군이었다.대한독립군은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어랑촌 인근 완루구(完樓溝)에서 일본군 끼리의 ‘자투자멸(自鬪自滅)’전략을 펴 400여명의 일본군을 몰살시켰으며(임시정부 군무부 발표),26일 고동하 골짜기에서 추격하는 일본군을 마지막으로 격퇴시켰다.당시일본측 자료에 따르면,일본군은 홍범도장군이 부하들로부터 ‘하느님과 같은숭배를 받고 있다’고 평한 것으로 나와있다.한국 독립투쟁사에서 찬란한 승전보로 기록되고 있는 ‘청산리전투’는 김좌진(북로군정서군)의 백운평전투첫 승리를 시작으로 홍범도(대한독립군 등)의 고동하전투의 승리로 대단원의막을 내렸다. 화룡 정운현기자 jwh59@
  • [외언내언] 독일과 일본의 차이

    독일과 일본은 닮은 데가 많다.두 나라가 공히 2차대전 전범으로 유럽과 동남아에서 여러 이웃국가를 침탈했다.유대인 대학살과 731부대의 생체실험,그리고 난징 대학살 등 만행도 비슷하다.1945년 패전하고 전쟁책임자들이 국제재판에 회부된 운명도 유사하다. 그 후 이들은 좌절과 혼란을 딛고 일어나 경제대국이 되었다.그리고 독일은 유럽연합(EU)을 통해 프랑스와 함께 유럽에서의 영향력 확대 경쟁을 하고있고 일본은 아시아 패권을 놓고 중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그뿐인가.두나라 모두 유엔 상임이사국을 꿈꾸고 있는 것까지 닮았다. 이렇게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유럽과 아시아의 두 전범국가는 그러나 세계 여론으로부터 정반대의 평가를 받고 있다.그것은 전쟁에 대한 반성과 책임,보상 및 배상에 있어서 두 나라가 보인 정반대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독일과 일본의 과거 죄과에 대한 상반된 태도는 전후 40년을 기념하는 1985년 극명하게 나타났다.당시 독일 바이츠체커 대통령의 연설과 일본 나카소네 총리의 연설이 그것이다.일본 아사히저널 85년 송년호는 ‘역사를 배운 자’와 ‘역사를 왜곡한 자’라는 제하에 두 사람의 연설 내용을 이렇게 소개했다.‘과거에 대해 눈을 감은 자는 결국 현재에도 눈이 멀게 된다-바이츠체커’ ‘국가·국민은 오욕을 버리고 영광을 추구하여 나가자-나카소네’ 그 후 독일은 기회있을 때마다 스스로 과거와의 단절의지가 담긴 반성을 거듭했다.반대로 일본은 필요에 따라 사과와 망언을 반복하면서 행동으로는 1급 전범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참배를 계속하고 있다.배상 및 보상도 마찬가지다.독일은 그동안 피해국이나 민간인들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최대한의 성의를 보였다.그 결과 지금까지 독일정부가 배상한 금액은 600억달러.그런데 독일은 이번에 또 나치에 의한 민간인 강제노역의 배상협정에 서명했다.배상금액은 50억달러,독일정부와 민간기업이 공동모금할 예정이라고 한다.이번 배상에는 귄터 그라스 노벨문학상 수상자 등 지식인들도 동참,전국민에게 1인당 20마르크(1만1,000원) 기부를 호소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어떠한가.1965년한·일협정때 무상 3억달러,재정차관 2억달러가 일본이 유일하게 국가차원에서 인정한 배상이다.“과거에 눈을 감은 자는 현재에도 눈이 먼다”는 바이츠체커 대통령의 말이 지금 일본에 그대로 적용된다면 어떻게 될까.불안하다.그리고 측은하다. 金在晟 논설위원 jskim@
  • JP 28일 일본 방문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가 다케시다 노보루(竹下登) 전 일본총리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28일부터 3박4일간 일본을 방문한다. 김 명예총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등 일본 정계 지도자들과 만나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아키히토(明仁) 일황의 조속한방한을 희망하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뜻도 전달한다.
  • 스필버그, 홀로코스트 국제다큐 제작

    [로스앤젤레스 연합] 미국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다큐멘터리 제작자 제임스 몰이 국제적 영화 감독들을 동원,5개국을 배경으로 한 홀로코스트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고 쇼아 시각역사 재단이 16일 발표했다.스필버그 감독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을 담은 아카이브를 보존하고 있는 쇼아 재단의 이사장겸 창설자이다. 이 1시간짜리 TV용 다큐멘터리는 쇼아재단의 후원 아래 폴란드,아르헨티나,체코공화국,러시아,헝가리 등 5개국의 명 영화감독이 참여,제작된다.제작후이 다큐는 5개국에서 상영되며,내년에는 5개국의 TV 및 교육용 비디오 시장에 배포될 계획이다. 나치 독일에 대항해서 레지스탕스로 싸웠던 폴란드 출신 아카데미상 수상감독인 안드레이 바이다가 이 영화의 폴란드편을 감독하며,아카데미 수상작 ‘오피셜 스토리’를 감독한 루이스 푸엔소가 아르헨티나편을 맡는다. 또 아버지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후 나치와 싸웠던 보이테크야스미가 체코편을,아카데미상 후보작이었던 ‘도둑’의 감독 파벨 추크라이가 러시아편을,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들인 야노스 사스가 헝가리편을 각각감독한다.
  • 나카소네 전 日총리 책 발간

    [도쿄 연합] 올해 82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총리가 ‘21세기 일본의 국가전략’이라는 저서를 내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가 5월 연휴를 반납하면서 시간나는 대로 틈틈이 썼다는 이 책은 총리공선제(公選制) 도입,헌법 및 기본법의 개정,동아시아 집단안전보장기구의 확립 등을 담고 있다.그 가운데 4월의 제1차 모리(森)내각의 발족과 관련해 “밀실에서 몇사람이 결정하고 말았다”며 힐책하는가 하면 “투명성이 없어 70점을 줄 수 없고 아쉬운대로 모리씨가 됐기 때문에 65점을 매긴다”고 논평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특히 “요즘 정치가는 매일매일 너무 바뻐 중장기적인전략이 없다”고 한탄하고 자신의 저서가 “총리를 꿈꾸고 있는 정치가의 교과서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중의원 선거 이모저모

    25일의 일본 총선은 안정쪽에 무게중심이 주어지긴 했지만 변화에 대한 유권자들의 욕구도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전현직 관료와 당간부 등 거물 정치인들이 줄줄이 낙선한 한편으로 세습후보들이 맹위를 떨쳐 일본 정치판의 풍토를 그대로 재연했다. ◆이번 선거 최대 특징은 중진 거물급 정치인의 대거 탈락.통산상 후카야 다카시(深谷隆司·64·8선)가 민주당의 나카야마 요시카스(中山義活·55)에 패한 것을 비롯,농수산상 다마자와 도쿠이치로(玉澤德一郞·62·7선),전 통산상 요사노 가오루(餘謝野馨·61·7선),전 관방장관 다케무라 마사요시(武村正義·65·4선) 등이 고배. ◆총 202명의 여성후보가 출마,관심을 모은 이번 선거에서 35명의 당선자가나와 일본 여성계가 희색이 만연.96년 총선보다 12명이 증가한 수치로 전후개정된 헌법체제에서 치러진 선거사상 최대 여성의원 탄생. 당별로는 사민당이 10명,자민당 8명,민주당 6명,공산당 4명,공명당 3명 순. 여성의원 가운데 카나가와현의 하라 요코(原陽子·25) 후보가 일 정치사에서 최연소 의원에당선돼 여성계는 겹경사.사민당 출신인 하라는 이날 투표에서는 사실 탈락했으나 비례대표 순위에 포함돼 최연소 의원 기록 보유자의영광을 획득. ◆고(故)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총리의 둘째딸 유코(優子·26),고(故)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관방장관의 장남 히로시(弘志),고(故)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총리의 동생 와타루(亘) 등 거물 정치인의 일가들이압도적 표차로 당선돼 눈길. 이번 선거에서 가족들의 후광을 업고 당선된 세습정치인 수는 모두 121명. 출마자 수는 174명으로 당선률이 70%에 육박한다.해산 전 의석 수보다 22명이 는 수치.이 가운데 자민당은 민주당(24명),자유당(5명)을 크게 앞선 84명으로 ‘패밀리 정치’의 요람임을 입증.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81)전 총리는 비례대표에서 당선돼 20선을 기록.지난번 중의원 선거에서 하라 겐자부로(原健三郞·92)전 중의원의장이 세운 역대 최다선기록과 같지만 하라 전의장의 은퇴로 현역 최다선 기록을보유. 김수정기자 crystal@
  • 정상회담 보는 외국기자 시각

    1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마련된 남북 정상회담 프레스센터 상주를 시작한 외국 취재진들은 “남북 정상회담은 두 정상의 만남 그 자체에 의미가있으며 통일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로저 윌키슨 ‘미국의 소리’(VOA) 중국 베이징 지사장. 남북간 긴장을 해소하고 대립이 아닌 대화와 협력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남북은 이산가족상봉과 주한미군 철수 등 가시적인 요구사항을 관철하려고 애쓰기보다 남북의 만남 그 자체에 중점을 둬야 한다.특히 남북 경제협력을 성사시키고 통일로 향하는 초석을 다지기 시작했다는 데에 의미를 둬야겠다.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조성된 남북간 대화 분위기로 한반도의 긴장이완화되길 바라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평양방문이 하루 늦춰졌지만 55년을 기다렸는데 하루를 더 기다리는 것은 큰 일이 아니다. ◆시로우치 야스노부(城內康伸)일본 도쿄신문 기자. 남북 두 정상의 만남이한반도 정세에 플러스로 작용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수교협상을 진행중인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에도큰 영향을 줄 것이다.북한은 향후 대일 협상에서 과거보다 유연하게 나오면서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려 할 것이다. 반면 일본으로선 걱정되는 면이 없는 게 아니다.남북 경제교류가 진전되면서 남북 모두 일본에 부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경협에 대한 일본의 부담은 일본 국민여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 미사일,일본인 납치의혹 등 대북 현안 등과 일본의 경협이 조정돼야 할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모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우정충(吳政忠) 타이완 FTV 기자 .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북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북한이 회담을 하루 연기한 것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남북 정상회담 의제에 대해 시간벌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남북양측이 서로의 요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협상은 이미 끝난상태라고 본다.따라서 이번 회담은 55년간 단절됐던 남북정상이 만난다는 데의미를 둬야 한다. 특히 회담은 남북한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기때문에 앞으로도 남북이 대화와 협력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길 바란다. 한반도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 정부도 이번 회담에서 보듯이 타이완과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노력을시도하기 바란다. 황성기 주현진기자 marry01@
  • [대한시론] 일본의 위험한 복고주의

    일본 정치를 상징하는 두 얼굴은 일본의 총리와 도쿄도 지사이다.총리는 국회에서 뽑은 행정수반격이고,도쿄도 지사는 도민이 직접 뽑은 민선 공직자다.이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발언을해서 말썽이다.이시하라 신타로 지사는 재일동포를 위험집단으로 모욕하는발언을 하더니,모리 총리는 “왕(천왕)중심의 신의 나라”란 발언의 파문이가라 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국체(國體)수호의 발언으로 일본에서 조차 반발을 사고 있다.왜 일본의 대표적 정치적 인물이 군국주의 시대의 편견과 독단에 불을 붙이고 있는가.잘 살펴보면 그런 일은 돌발적 개인의 실수는 결코아니란 점이다. 이제까지 일본을 지배해 오는 보수세력은 패전 전이나 후나 그 본체에선 변함이 없다.자민당의 구성은 결코 자유주의자나 민주주의자가 아니다.그들 대개는 국수주의자나 보수기득권세력의 대변자나 천황제 신권주의자로부터 토건업자의 후견을 받는 정상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잡다한 수구세력의 연합체일뿐이다.일본의 지배층은 침략전쟁의 범죄에 대해 스스로 단죄해 과거를청산하려고 한 적이 없다.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게 패전한 것만이 잘못이라는 망집에 사로잡혀 있다.결국 그들은 왕(천황)이 신의 자손이고 자기 나라가 신의 나라로서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황국사관(皇國史觀)에의 집착에서 깨어난 것이 아니다.명치헌법(1889년)의 국가관이 그대로 존속되고있다.일본의 지식인조차 일본수구세력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항의해 오고 최근 국기국가법의 제정에 반대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일본이 우경반동화, 국수주의화해서 침략주의적 복고풍조로 되돌아가는 현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너무나 미미하고 무관심하다고 할까.아니그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한다고 할까?현실인식의 빈곤을 본다.경제대국이 된 것에서 자신을 가지게 된 일본의 국수주의 세력이 일관되게 추진해오는 것은 패전전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실현이다.그들로선 이미경제적으로 성취했다고 보고,정치 군사적으로 마무리 단계에서 방위지침법으로 일본군대(자위대)의 해외출동의 길을 열었다. 아울러 국기국가법으로 황국사관의 기점인 왕(천황)의 숭배와 찬양의 노래를 국가로 공인시켰다.그간에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침략전쟁의 전몰자를 제사지내는 야스쿠니신사에 총리의 자격으로 참배함으로써 반동복고의 관례를 기정사실화했다. 모리는 총리로서 좀더 노골적 구체적으로 왕의 국법상의 지위를 패전전의수준으로 복고시키려고 국체(國體)수호의 발언을 하고 있다.일본 자민당이시도하는 개헌의 내역에는 왕의 국가원수로서 지위부여와 재무장의 허용 및방종(?)의 자유주의 폐풍(?)을 시정하는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의 강조 등이 올라 있다. 이미 국회의 헌법조사회는 가동하고 있다.패전후 50여년이 지나 경제적 풍요와 우경(右傾)무드에 물든 세대는 침략의 과거청산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이 분위기가 절호의 기회로 우익 보수반동세력에 의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사회의 우경 반동화가 의미하는 위험성을 실감치 못하고 있다. 일본의 친한파 인사가 어떠한 인물인가를 잘 모르고 있다.그들이 박정희를높이 평가하는 저의는 박정희나 그 행적을 자기들의 식민통치의 산물로서 보기 때문이란 점을 모르고 있다. 친일파가 주도한 군사정권은 일본의 국수주의 보수세력과 유착관계를 지속해 왔다.전 관동군 참모 세지마 유조가 박정희로부터 전두환,노태우에 이르기 까지 유착 연결되었고,그는 현재도 한국의 전경련의 고문이다.세지마는한일협정의 막후 교섭 창구역을 해내고,그 후 한일협정에 따른 일본상품발주의 이권에 개입해 온 흑막의 인물이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박선원 교수의연구에 따르면 신군부는 12·12쿠데타 당시로부터 일본당국과 사전교신이 있었고,또 그들의 지원도 받아왔다는 보도다.이런 보도가 있었지만 우리의 반응은 시큰둥하다.여기서 우리는 시민의 정치교육과 역사인식에 대해 얼마나허술히 해 왔는가를 반성해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똑바르게 알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이 되고서는 자기나나라를 지켜낼 수 없다.우리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일본사정이 정치적 반동복고로 되어간다고 할 때엔 그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한상범 동국대교수법학.
  • 페루선 선사시대 도시 찾아…

    [리마 AFP 연합] 페루 동부 처녀우림지대서 선사시대의 도시가 발견됐으며가옥과 사원 매장지 등이 완벽한 채로 남아 있다고 페루 일간지 엘 코메르시오가 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 선사시대 도시가 산 마르틴주(州)에 위치해 있으며 미국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인 진 서버이와 다른 페루 고고학자 4명에 의해 발굴되고 있다고 밝혔다. 발굴조사단은 아직 상당부분이 발굴되지 않은 이 도시가 16세기 스페인 탐험가들이 찾아 헤맸던 도시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스페인 탐험가들은 그들이 찾던 도시를 ‘엘도라도’라고 불렀는데 스페인말로는 ‘황금도시’라는 뜻이다.발굴조사단은 이 도시 거류지가 700년경 이 지역에 정착한 차차포야스인들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믿고 있다. 발굴단원인 알베르토 부에노는 “이 도시가 지방 전설과 우림지대의 황금도시들에 관해 쓴 연대기 작가들의 저작물들에만 존재했다”면서 “16세기의많은 스페인 저작물들에는 ‘엘도라도’라고 불리는 잃어버린 도시가 언급됐다”고 밝혔다. 차차포야스인들(아마소나스주의 주도 차차포야스는 차차포야스인들에서 따온 것임)은 스페인인들이 도착하기 직전인 15세기 말 잉카인들에 의해 정복됐다.이들은 마을들과 매장지들을 남겨 놓았다.발굴조사단은 약탈자들을 우려해 이 선사시대 도시의 정확한 위치를 밝히길 거부하면서 다만 산마르틴주의 사포소아 강 연안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 러, 아프간 공습 가능성 경고

    [모스크바 AP AFP 연합 특약] 체첸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아프가니스탄의 지원이 계속된다면 러시아는 아프간에 대한 공습을 재개할 수도 있다고 크렘린고위 관리가 22일 경고했다. 세르게이 야스트르젬스키 체첸전쟁 담당 대통령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 정보부가 아프간 집권 탈레반이 체첸 특사와 체첸반군에 무기와 병력을 지원키로 협정을 체결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야스트르젬스키는 아슬란 마스하도프 체첸 대통령의 특사와 탈레반 관계자,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이 2주전 아프간의 마자르-이-샤리프에서 만나 탈레반이 70∼100명의 용병을 체첸에 파병하고 무기와 탄약을 체첸반군에 지원하는 한편 마자르-이-샤리프 인근에 체첸과 우즈베키스탄,타지크스탄의 이슬람반군들을 위한 훈련캠프를 설치한다는 의정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러시아 전투기들이 탈레반 용병들을 태운 트럭들을 공습했다는러시아 통신들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야스트르젬스키는 또 체첸반군 야전 지휘관 샤밀 바사예프가 괴저병으로 숨졌다는 보도 내용도 부인하면서 “유감스럽게도 아직 살아있다”고 말했다.
  • 오부치 前총리 생전 유언 “장례 간소하게 치러달라”

    [도쿄 연합]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14일 오후 서거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총리의 합동 장례식을 6월 8일 도쿄(東京)의 일본무도관(武道館)에서 거행하기로 결정했다.장례위원장은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가 맡는다. 가족과 친지 등이 모여 고인을 추모하는 '통야(通夜)'는 15일 오후 7시부터,가족끼리 모여 일단 장례를 치르는 '밀장(密葬)'은 16일 오후 2시반부터 도쿄의 한 장의사에서 있을 예정이다. 한편 오부치 전총리는 생전에 장례를 간소하게 치를 것을 원하는 유언을 책상서랍에 남겨놓은 것으로 알려졌다.상주인 치즈코(千鶴子) 여사는 자민당관계자들과 장례 문제를 상의하면서 고인의 이같은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정부는 또한 이날 각의에서 고 오부치 전총리에게 최고위급 훈장인 대훈위국화대수장(大勳位菊花大綬章)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이 훈장은 1997년 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총리가 받았으며 앞서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미키 다케오(三木武夫),기시 노부스케(岸信介),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전총리등에게 수여된 바 있다.
  • 오부치, 日불황 타개 ‘성공한 총리’

    ‘인품의 오부치’도 병마 앞에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일본총리는 지난 4월 2일 하오 7시30분 혼수상태에 빠진지 43일만에 타계했다. 98년 7월30일 대망의 총리 자리에 올라 내각이 총사퇴한 4일까지의 총리 재임일수는 616일로 역대 총리중 ‘장수’부문 14위.부드러운 인상과 온유한인품,자리를 같이 하면 누구라도 빨아들이는 듯한 겸허한 성품 덕분에 ‘블랙홀’이란 별명을 지녔던 그는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침체된 경제를 회복궤도에 올려놓은 ‘성공한 총리’로 평가받았다. 1937년 군마(群馬)현에서 출생한 오부치는 아버지 오부치 고헤이(小淵光平)의원의 2남으로 2세 정치인이었다.와세다(早稻田) 대학원 재학중이던 63년 26세의 나이로 첫 출마해 당선된 옛 군마3구는 오부치의 정치색을 결정지은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후쿠다 다케오,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같은 거물 정객들의힘겨루기 씨름판이었다.이들과 함께 출마하면 오부치는 언제나 3,4위였다.그래서 어느 일본 정치인은 이런 오부치를 ‘미국과 소련 양대국 사이의 골짜기에 핀 한송이 백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정치적 스승인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와 비슷하게 ‘참을성 많고 적을 만들지 않는 인품’을 키워왔다고 할 수 있다.파벌내 분열로 군소파벌로 전락했던 옛 다케시타파를 물려받아 오부치파 회장이 되면서 그는특유의 ‘인품’으로 다른 파벌의원들을 끌어들여 최대 파벌로 키웠다. 사토(佐藤)파를 거쳐 다나카(田中)파 회원이었던 79년 그는 오히라(大平)내각때 총무장관겸 오키나와(沖繩) 개발청장관으로 첫 입각했다.87년 다케시타 내각에서 관방장관으로 기용됐다. 그는 다케시타 총리의 최측근이자 중간보스로서 다케시타와 ‘2인3각’의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91년에는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하면서 ‘대망’을키웠다.‘관방장관과 간사장을 거친 사람의 절반은 총리가 된다’는 통념에따라 총리감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1년8개월의 총리 재임중 10년 불황과 낮은 지지율로 사면초가에 빠진자민당을 수렁에서 건져올렸다.뿐만 아니라 취임초기 ‘경제회생 내각’이라 이름을 붙이고 경제회복에 전력을 기울여 99회계년도의 경우 공약대로 플러스 성장으로 되돌려놓았다.연립정권을 통해 정권의 기반도 안정시키고 외교에도 적극적이었던 그에게 그러나 마냥 ‘행운’만 따라주지는 않았다.50%대가 넘던 지지율이 지난해 10월을 고비로 하락세로 돌아선데다 최근 비서관의 수뢰의혹,경찰비리,금융재생위원장의 망언 등 악재(惡材)가 겹치면서 정치적 수세에 몰렸었다.더욱이 쓰러지기 하루 전날 자유당의 연정 탈퇴는 극도로 쌓인 심신의 피로함에 결정타를 안겼다. 오부치는 일본 정계에서 널리 알려진 친한(親韓) 성향이었다.일한 의원연맹 창립 멤버이자 사망전까지 이 연맹 부회장이었다.총리취임후 98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고 이듬해 그가 한국을 방문,한국과 우호를쌓았다.양국이 서로 인정하듯 한일관계는 오부치 총리 시대에 가장 탄탄대로를 걸었다.한국으로선 듬직한 ‘우군’을 하나 잃은 셈이다. ■1937년 군마현 출생. ■58년 와세다대 문학부 입학. ■63년 최연소 중의원 의원 당선. ■70년 우정성 정무차관. ■79년 총무장관 겸 오키나와 개발청장관. ■87년 다케시타 내각 관방장관. ■91년 자민당 간사장. ■92년 다케시타(이후 오부치파) 회장. ■97년 하시모토 내각 외상. ■98년 7월 총리 취임. ■99년 1월 자민·자유당 연정수립. ■〃 10월 자민·자유·공명 연정수립. ■2000년 4월2일 뇌경색 긴급입원. ■〃 5월 14일 사망. 황성기기자 marry01@. *오부치 총리 타계 이모저모. ●자택 안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총리의 유해는 이날 병원에서 수습된 뒤 오후 7시쯤 병원을 나와 빈소가 마련된 도쿄 시내 자택에 안치됐다. 유해를 실은 차량은 경찰 호위를 받으며 그가 40년 가까이 지냈던 국회의사당과 쓰러지기 전까지 집무했던 총리 관저를 한바퀴 돌아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오부치 전총리의 타계로 공석이 된 중의원 군마(群馬) 5구는 둘째딸인 유코(優子·26)씨가 물려받아 6월25일 실시될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 일본 정부·여당은 장례를 ‘내각·자민당 합동장’으로 치를 것을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역대 총리중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장례는 국장,7년여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는 국민장,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등은 자민당장,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등은 내각·자민당 합동장으로 치렀다. ●조문 및 애도 오부치 전 총리의 타계소식이 알려진 직후 최측근인 노나카히로무(野中廣務) 자민당 간사장과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관방장관 등이병원을 찾아 미망인 지즈코 여사 등 유족을 위로했다.오부치 전총리의 타계소식을 접한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는 “어려운 시대에 훌륭한 지도자를잃어 슬픔을 참기 어렵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오부치 전 총리의 정치적스승인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76) 전 총리는 “오부치군과는 40여년간 고락을 같이 해왔다”면서 “이제 편안히 쉬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클린턴 미국 대통령 부부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도 성명을 발표,오부치 전 총리의 타계를 애도하고 지도자로서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향후 정국 모리 총리가 이날 6월25일 중의원 선거 방침을 확인하면서 일본은 본격적인 총선 정국에 돌입.일본 여야는 오부치 전 총리의 타계가 총선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면서도 자민당쪽으로 ‘동정표’가 움직여 다소 여권이유리할 것으로 전망.특히 오부치 전 총리가 쓰러진 이후 다케시타 전총리 등 원로 정치인들이 대거 은퇴의사를 밝혀 이번 총선에는 세대교체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황성기기자
  • “모리총리등 日 정계거물 낙선대상”

    오는 6월 25일 총선거를 앞두고 낙선운동을 전개해온 일본의시민단체 가운데 도쿄(東京)의 ‘시민연대 물결 21’은 11일 제1차 명단 22명을 발표했다. 이들 가운데 자민당 의원이 전체의 70%인 16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무소속(3명),자유당(2명),공명당(1명) 순이었다. 지난 4월 초순부터 말까지 우편엽서와 e-메일 등을 통해 모집한 1,126표의실명투표를 집계한 결과 229명의 국회의원 이름이 올랐다. 부적격 1위는 220표를 받은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로 나타났으며▲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자민당 간사장·151표)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전 건설상·111표) ▲시로가와 가쓰히코(白川勝彦·전 자치상·89표)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67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 총리·65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대장상·42표) 등의 순이었다. 또 공명당 대표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32표)씨가 10위,자유당 당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31표)씨는 12위에 올랐다. 이 단체는 정경유착,금권체질,반헌법적 행동 등 6개항을 기준으로 종합평가했으며 익명 투표는 참고만 했을뿐 집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이 단체는 5월말까지 낙선투표를 계속해 총선거 공고 전까지 2차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일본에서 낙선운동은 오사카(大阪)부와 시즈오카(靜岡)현 시민단체도 전개하는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도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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