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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나카소네 편지 16년만에 공개

    지난 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가 ‘21세기 총리’를 수신인으로 작성해 놨던 편지가 16년만에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모시 요시로(森喜朗) 총리는 1일 신년 기자회견을 시작하기에 앞서‘새천년의 일본 총리’에게 보내기 위해 나카소네 전 총리가 ‘포스트 캡슐’에 넣었던 편지를 개봉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이 2일 보도했다. 고(故)나카소네 전 총리의 서신에는 ▲핵무기를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일 ▲유전자 변환이나 바이오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인간의존엄을 훼손해서는 안되는 일 ▲노년·장년·청년 협력에 의한 활력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일 등 3가지를 특별히 강조했다. 모리 총리는 “정말로 내가 이 편지를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이 편지를 나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받아들여 가슴에새기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또 “새로운 세기를 이어나갈 사람으로서 일본과 세계의 평화,번영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도쿄 연합
  • 이규혁 월드컵 빙상 500m 5위

    이규혁(고려대)이 00∼01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4차대회 500m에서 5위에 올랐다. 이규혁은 17일 일본 나가노 M웨이브링크에서 열린 남자 500m 2차전에서 35초61을 기록,5위를 차지했다고 선수단이 알려왔다. 그러나 이규혁은 이어 열린 1,000m 2차전에서 1분11초15로 8위에 그쳤다.지난 9일 서울 월드컵 1,000m 1차전에서 금메달을 따 기대를 모았던 최재봉(단국대)은 500m와 1,000m에서 각각 9위와 21위로 부진했다. 한편 98나가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시미즈 히로야스는 500m에서 링크 최고기록인 35초10을 마크,이틀 연속 1위에 올라 세계 정상임을 입증했다.
  • 월드컵 빙상 최재봉 1,000m 2위 “아깝다”

    최재봉(단국대)이 00∼01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3차대회 1000m에서종합 2위를 차지,2002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높였다. 최재봉은 10일 태릉 국제빙상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1,000m 경기에서 1분11초82로 결승선을 통과,마이클 아일랜드(캐나다·1분11초62)와 아드네 손드랄(노르웨이·1분11초71) 제레미 워더스푼(캐나다·1분11초80)에게 차례로 밀려 4위에 그쳤다. 전날 1,000m에서 1분11초64로 1위를 차지한 최재봉은 이날 스타트부진으로 기록이 좋지 않았다. 최재봉은 그러나 전날 성적을 합산한 종합 점수에서 160점을 획득,180점을 기록한 아일랜드에 이어 1,000m 종합 2위가 됐다. 이날 1분11초84를 기록한 이규혁(고려대)은 5위에 올랐다. 앞서 열린 500m 경기에서는 98나가노동계올림픽 500m 금메달리스트인 시미즈 히로야스(일본)가 35초59로 1위를 차지했다. 이규혁과 최재봉은 36초31과 36초32로 각각 9·10위. 여자 500m에서는 카타리나 르메이돈(캐나다)이 38초80으로 전날에이어 또다시 정상에 올랐고 여자 1,000m에서는 산미야 에리코(일본)가 1분18초72로 1위가 됐다.
  • 전쟁 性범죄 재판 도쿄서 ‘개정’

    [도쿄 연합]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일제의 전쟁범죄 책임을 가리기위한 ‘여성 국제전범 법정’이 8일부터 5일간의 일정으로 도쿄(東京)에서 열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 위안부 피해자 78명 등 관련자 1,000여명과남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8개국과 일본의 민간단체 ‘국제실행위원회’가 참가해 히로히토(裕仁) 일황과 옛 일본군 주요 간부 등을 성 노예화 방조 및 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다음은 여성 국제전범 법정에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낸 기소장 요지. ◆형사 피고인(당시 직위)=히로히토 일황,도조 히데키(東條英機·총리 겸 육군대신),미나미 지로(南次郞·조선 총독),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郞·조선군 사령관),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중국 파견군 사령관),우메즈 요시지로(梅津美治郞·관동군 사령관),안도 리키치(安藤利吉·대만 총독),마쓰야마 유조(버마군 56사단 사령관) 등 8명. ◆범죄사실=일본군 위안소 시행(성 노예화),위안부 강제연행(감금,인질,강간,고문,노예화,박해),위안부 강제이송(불법 추방과 이송),위안소 범죄(강간,고문,상해,학대,살인),비인간적 행위(강요된 불임). ◆전쟁범죄 적용 여부=1910∼1945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더라도일본군의 성 노예화와 관련한 범죄는 일본이 도쿄 극동 군사재판에서인정한 전범 행위에 해당된다. ◆일본의 책임=일본은 전후 배상책임은 끝났다고 주장하나 전쟁에 관한 국제법과 부녀자 약취에 관한 조약 등은 해당 국가가 당시 행정기관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따라서 일본은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죄와 배상,책임자 처벌,피해자 명예회복,생존자 귀환,유골송환,일본군 성 노예 범죄 재발방지 등의 의무가 있다.
  • IT혁명 내건 모리 새 내각 IT점수 몇점?

    5일 출범한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의 새 내각은 ‘IT(정보기술)혁명’을 21세기의 중요한 국가전략으로 내세웠다.그러면 이를담당할 새 내각의 각료들은 실제 IT를 얼마나 사용하고 있을까?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6일 새 각료들의 IT 사용정도를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는가 ▲E메일을 주고받는가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는가 등 3가지를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각료들이 IT에 적응하기 위해 특별강습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새 내각에서 IT에 가장 익숙한 사람은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행정개혁담당상. 그는 무라야마(村山) 총리 시절 컴퓨터에 입문,매일아침 E메일을 체크하고 홈페이지에도 매일 자신의 소감을 싣는 등 컴퓨터 사용을 생활화하고 있다. 하시모토 다음으로는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환경청장관이 3부문 모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산토리사 상무를 지낸 바 있는 가와구치 장관은 기업체에서 컴퓨터 사용이 생활화돼 지금도 컴퓨터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하시모토와 가와구치 외에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법무상,야나기사와 하쿠오(柳澤伯夫) 금융재생위원장이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나머지 각료들은 IT 사용을 위해 특별강습을 받아야 할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특히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IT담당상은“스스로 E메일도 교환하고 인터넷도 검색한다”고 자신있게 밝혔지만 지난 6월 중의원 선거 때 처음 홈페이지를 개설했으며 한달 뒤 단한차례 홈페이지를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밝혀졌다. 모리 총리는 7월처음으로 컴퓨터 강습을 받기 시작했지만 이제 겨우 ‘컴맹’을 면한수준에 그치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
  • 日 2차 모리내각 출범

    내년 1월 중앙 성·청 재편에 따른 제2차 모리내각이 5일 출범했다. 새 내각에는 행정개혁 담당 겸 오키나와·북방영토 대책 담당 특명상을 맡아달라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의 요청을 받아들인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총리가 입각,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재무상과 함께 2명의 전총리가 참여했다. 기구 개편 뒤 재무상이 될 미야자와 대장상,고노 요헤이(河野洋平)외상,국토교통상이 될 오기 지카게(扇千景) 건설상,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환경상이 될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환경청장관 등은 유임됐다. 금융담당상에는 야나기사와 하쿠오(柳澤伯夫) 전 금융재생위원장이기용됐고 경제산업상에는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 통산산업상이유임됐다.경제재정·IT 담당상으로 바뀌게 될 기획청장관에는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전 방위청장관이,문부과학상에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전 문부상,방위청장관에 사이토 도시쓰구(齋藤斗志二) 전 우정성 차관,종합과학기술회의 담당상에는 사사가와 다카시(笹川堯) 우정성 차관이각각 기용됐다. 초대 총무상에는 가타야마 도라노스케(片山虎之助) 참의원 의원이,후생노동상에는 공명당의 사카구치 지가라(坂口力) 부대표,농수산상에 야쓰 요시오(谷津義男) 전 농수산 차관이 각각 발탁됐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日 5일 개각 단행

    [도쿄연합] 내년 1월 중앙 성·청 재편에 따른 제2차 모리 개편내각이 5일 출범한다. 모리 요시로 총리는 4일 자민당 각 파벌과 연립의 축인 공명, 보수당의 추천명단을 받아 조정작업을 계속한 끝에 새로운 내각의 골격을 거의 굳혔다. 총리실 주변 소식통에 따르면 모리총리는 히라누마 다케오 통산상의 유임을 내정하고 야쓰 요시오 중의원 의원의 농수산상 기용을 결정했다. 또 문부과학상에는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고모토파의 회장인 고무라 마사히코 전 외상의 입각이 유력시 되고 있다. 사카이야 다이치 경제기획청장관은 유임 고사의지를 굽히지 않아 신내각에 합류할 지 여부가 불투명하며 국민적 인기도가 높은 다나카 마키코 전 과기청장관의 입각도 하시모토파가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조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모리 총리는 5일 오전 당 5역회의를 통해 당내조정을 마무리 짓고 오후에 고가 마코토 신 간사장과 공명,보수 양 당수 등과 협의, 각료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조정 결과 미야자와 기이치 대장상(성·청 재편후 재무상),고노 요헤이 외상, 보수당의 오기 치카게 건설상(국토교통상), 추쿠다 야스오 관방장관, 가와구치 노리코 환경청 장관의 유임이 결정됐다. 이밖에 초대 총무상에는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참의원 의원, 후생노동상에는 사카구치 치가라 공명당 부대표의 기용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리총리는 이날 자민당 간부회의에서 ▲경제신성,경기회복 ▲IT(정보기술)혁명 ▲교육개혁 ▲행정개혁·규제완화 등에 중점을 두고 내각 개편을 단행할 방침이라고 표명했다.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8)러시아 하바로프스크·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침대열차를 타고 밤새 15시간을 달려 새벽녘에하바로프스크에 내렸다.800㎞를 북상한 까닭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입김이 허옇게 퍼져나갔다.어디 따뜻한 수프라도 먹을 곳이 있을까하고 몸을 움츠린 채 두리번거리는데 역전 광장에 동상 하나가 아침햇살을 받으며 우뚝 서 있다.17세기 중반 이곳을 탐험한 하바로프였다.그래서 지명도 그렇게 붙여진 모양이다. 하바로프스크는 우수리강과 아무르강의 합류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예스런 건축물들이 훌륭하고 강변을 따라 만들어진 공원의 산책길도아름답기 그지없다.인구가 60만명밖에 안 되지만 러시아의 극동 경영중심지로서 대통령 대리가 상주하고 있다.이 도시 곳곳에 우리의 항일투쟁 자취가 남아 있다. 만주와 러시아를 오가며 투쟁하던 이동휘(李東輝)는 1918년 2월 하바로프스크로 와서 볼셰비키 혁명의 완수를 다짐하는 한인혁명가회의에 참석했다.이 자리에서 볼셰비키 측으로부터,한인들이 러시아 혁명투쟁에 참가한다면 그 대가로 독립운동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그리하여 그는 3월28일 유동열(柳東說)·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등과 더불어 한인사회당을 창당하고 위원장에 취임했다. 한인사회당은 연해주 내 한인 유격대를 통합하고 힘을 집중시켰다.이동휘가 이른바 상해파 공산당의 거두로서 이르쿠츠크파와의 알력을 조정하지못했고 그 결과로 자유시 참변이라는 비극을 가져왔지만 한인사회당이 항일투쟁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김알렉산드라는 러시아 혁명의 완성이 조국 독립의 첩경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열정적인 여성투사였다.1918년 2월 한인혁명가회의를 발기하여 성사시켰고 그것을 발전시켜 한인사회당을 결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그해 4월 일본이 무장간섭군이라는 명분으로 연해주에출병하자 적위군 편에 서서 무장투쟁에 나섰다. 하바로프스크가 적에게 포위되자 300∼400명의 대원을 이끌고 탈출하다가 러시아 백군에체포당했다.“혁명군의 승리만이 조국 독립을 돕는다는 확신 때문에수많은 조선인이 적위군에 가담해 일본군과 백군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다.내가 이제 13보 걷는 것은 조선의 13도를 의미한다.곧 조국 13도에 자유와 행복이 깃들일 것이다.” 최후 발언을 하고 열세 걸음을걸은 그녀는 절벽 위에서 총살되어 벼랑 아래 아무르강으로 떨어졌다. 취재팀은 이 곳 주재 한국교육원(원장 양형렬)을 찾아가 컵라면과커피로 아침을 때웠다.그런 다음 처음 찾아간 곳이 한인사회당 창당현장이었다.무라브요바 아무르스크 22번지에 있는 그 건물 외벽에 김알렉산드라의 얼굴 부조가 붙어 있었다.원동('遠東)중앙은행이 들어있었다는데 내부 수리중이었다.차를 몰아 그녀가 처형된 ‘우쩌스(절벽)’로 갔다.시립 문화휴식공원의 한 쪽으로 거무튀튀한 바위 절벽이었는데, 처형 현장에는 그녀를 추모하는 듯한 순백색의 전망대가서 있다.김알렉산드라가 유언을 남기고 떨어진 벼랑 아래는 아무르강의 파도가 힘차게 꿈틀거리고 있다.멀리 강 대안에 중국 땅이 보인다.취재팀이 숙소로 잡은 인투리스트 호텔 앞에 있는 역사박물관에 김알렉산드라의 유물을 찾으러 갔다.나나이·야쿠트·에벤키 등 시베리아 소수민족 자료와 동식물 표본,러시아 혁명 투쟁에 관한 사료가 충실히 전시된 이 박물관에 사진 몇 점과 일기,편지 등이 있었다.취재팀은 1937년 강제이주 직전 반발을 막기 위해 한인지도자들을 처형해매장한 묘지 자리(칼 마르크스 거리 입구), 정찰대를 이끌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김유경(러시아 표기법 때문에 김유천으로도 읽힌다) 거리,조명희(趙明熙) 시인이 살았던 집을 돌아보았다.하바로프스크에는 그밖에 70㎞ 북쪽 야스코에 마을의 ‘붉은군대 제88저격여단’에 배속되었던 김일성과 만주 항일유격대의 유적이 있다. 취재팀은 이튿날 러시아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 마지막 목적지 이르쿠츠크로 떠났다.비행시간이 3시간이 넘는 먼 거리였다.이르쿠츠크는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에 이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중간지점이다.제정 러시아 때 데카브리스트의 폭동 주동자들을 실어 보낸이후로 유배지 구실을 했는데, 우리의 항일 운동가들도 유배되거나이 곳 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다.그 감옥은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이해하는 사람은 ‘이르쿠츠크 공산당’을떠올리게 마련인데,이동휘가대표하는 상해파 공산당과 주도권을 다툰 일파를 말한다.이 도시에는 그들과 관련된 현장이 있다.그리고 이르쿠츠크파의 편을 들어,상해파에 동조하는 우리 독립군단을 압살하여 이른바 ‘자유시 참변’을 연출하고 동조세력과 투항자들을 이끌고 이 도시로 온 갈란데시베리 장군이 주둔한 5군단 거리도 있다.이르쿠츠크 공항 청사 밖으로 나가자 기온은 빙초산처럼 차가웠다.더구나 공항청사를 촬영하다가 공안요원의 경고를 받아 마음은 더 추웠다.마음씨 좋아 보이는 60대 초반의 택시기사를 골라잡아 취재에 나섰다.처음 찾아간 곳은 고려공산당 1차 대회장소.레닌가(街) 23번지에있는 옛 ‘인민의 집’ 극장은 붉은 벽돌로 된 3층 건물인데 아직도장려한 아름다움을 갖고 서 있었다.이 곳에서 1921년 5월에 오하묵·최고려 등의 주도로 열린 대회는 상해파를 제외하고 이르쿠츠크파가요직을 독점함으로써 한 달 뒤의 자유시 참변을 예비하는 불씨를 만들고 말았다. 늙은 택시 기사는 취재팀을 5∼6㎞쯤 떨어진 도시 외곽 바리깟 거리의 교도소로 데려다 주었다.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이 곳에는 1921년 자유시 참변 때 포로가 된 수이푼지역 유격대장최영(崔英)을 포함해 400여명의 항일투사들이 갇혀 신음했다. 기록을보면 한인 수감자들이 너무 많아 감방이 넘쳤다고 한다. 1910년 한·일합방 강제체결 직후 이상설(李相卨)과 이범윤(李範允)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체포되어 이 도시로 유배되었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 감옥에 머물렀는지는 알 수가 없다.건물이 낡고 우중충했지만 망루에경비병이 있고 지상에도 동초(動哨)가 보였다.촬영이 문제였다.감옥정면은 달리는 차 안에서,뒷면은 민가 고샅으로 가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시내로 돌아가는 길에 문화휴식공원에 있는 그 원망스러운 갈란데시베리 장군의 기념비를 돌아보고 그의 군대가 주둔했던 5군단 거리로 갔다.1873년에 준공되었다는, 찬란하면서도 우아한 아흐로브고프 극장 사거리 길목이었다.이르쿠츠크파에 동조함으로써 갈란데시베리 장군에게 일찌감치 복속한 우리 독립군 부대원과 투항자들 1,745명이 이 거리로 실려와 한인연대로 재편성되었다.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洪範圖)는 이 곳에서 러시아 적위군 연대장군복을 입었다. 자유시에서 이르쿠츠크파 편에 섬으로써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구했지만 결과는 무엇인가.북만주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혁혁하게 싸운 수많은 투사들, 그들은 도와주겠다는 볼셰비키 측의 약속을 믿고 이동해 왔다가 무수히 죽거나 생포당해 이 도시의 감옥에 갇혔다.복속한 사람들도 러시아 적위군이 되어 버렸다.모두 독립전쟁과는 먼 운명을 안게 되었던 것이다.홍범도의 감정이 어찌했을까 상상하며 쓸쓸히 이 거리를 걷는데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했다.취재팀은 시베리아의 평원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러시아 지역 답사의 수첩을 덮었다. 이르쿠츠크 이원규(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 신간 맛보기

    ◆만민법(존 롤스 지음,장동진 등 옮김,이끌리오 펴냄)현대 미국 사회윤리철학의 이념적 대부로 꼽히는 하버드대 교수인 저자가 지난해출간한 신작.71년 ‘정의론’,93년 ‘정치적 자유주의’ 등 이미 현대정치학 고전이 된 책들을 통해 개인들간의 관계원리로 합당성,공적이성 등을 도출해냈던 저자가 그 이념체계를 국제관계 전체로 확대했다.1부는 자유주의 사회 상호간의,2부는 자유주의 사회와 다소 위계적 사회간의 사회적 합의(만민법) 도출 가능성을,3부는 이에 따르기를 거부하는 무법국가 또는 불리한 여건으로 고통받는 사회의 만민법 편입 가능성을 따졌다.2만원. ◆뭉크뭉크(에드바르드 뭉크 지음,이충순 옮김,다빈치 펴냄)“심하게정신병을 앓고 있는 누이(…) 등으로 인해 나는 자연속에 전쟁이 잠복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삶의 심연에 똬리 튼 불안,공포 등을 형상화,현대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화가 뭉크의 글 모음집. 미공개 일기,후원자에게 보낸 편지 등은 불우했던 뭉크의 유년·개인사 등을 들여다볼 단서가 되어준다.아담과 이브이야기를 섬뜩하게비꼰 ‘알파와 오메가’ 등 석판화를 곁들인 우화에서는 광기가 아니고는 견딜수 없었던 천재 예술가의 도저한 세계인식을 엿볼수 있다.1만5000원. ◆똑같은 것은 싫다(조홍식 지음,창작과비평사 펴냄)10년 현지 거주경험을 토대로 한 프랑스문화 에세이집.사랑 놀이 일 믿음 무대 등 5가지로 나눠 프랑스 사회를 분석.다양성을 인정하며 적절한 에너지로전환할 줄 아는 능력이 프랑스의 저력이라고 강조. 프랑스 사회가 성에 개방적이긴 하지만 프리섹스의 나라는 아니라는 등 프랑스에 관한한국인의 오해를 불식하려 함.학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엘리트주의등을 비판하면서도,한국이 물신주의에 기초한 체면사회라면 프랑스는상대적으로 인본주의적 가치가 살아 있는 양심사회라고 진단.7,500원◆도쿠가와 이에야스(야마오카 소하치 지음,이길진 옮김,솔 펴냄) 일본 전국시대를 평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그 시대 영웅들을 그린 대하소설.‘대망’등의 이름으로 국내에 소개된 지 한세대지났으나 저작권 계약을 맺은 정규판은 이번이처음이다. 제대로 된번역에 전국시대 연보 등 풍부한 자료도 첨부.경영과 처세의 지침서로도 활용가치가 높다.1950년 3월부터 17년동안 일본 3개 신문에 동시 연재된 초대작이자 1억부 이상 단행본 판매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전32권(원작은 26권)중 제1부 9권이 먼저 나왔다.내년 5월까지 순차적으로 완간할 계획.각권 8,000원
  • 日 여자골프 美 제압

    미·일 여자프로 대항전인 시스코월드여자챌린지골프대회(총상금 70만2,000달러)에서 일본이 16년만에 정상에 올랐다. 일본은 29일 일본 지바현 나리타의 소세이골프장(파72·6,404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 1대1 매치플레이에서 8승1무3패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종합점수 13대10으로 우승했다. 79년 대회 창설 이래 양국간 역대 전적에서 2승19패로 절대 열세를보인 일본은 이로써 84년 이후 16년만에 대회 우승컵을 되찾았다.우승팀 일본은 선수당 4만500달러,패자인 미국은 2만3,250달러를 받았다. 전날까지 5-7로 끌려가던 일본은 첫 주자인 쳉 시우펭(대만)이 78타를 쳐 베키 아이버슨(75타)에게 졌지만 야스이 준코,나카노 아키,후지노 오리에가 연승했고 후쿠시마 아키코도 66타로 박세리(73타)를 7타차로 제압했다.일본대표인 구옥희는 71타로 수피 구스타프손(스웨덴)을 5타차로 물리쳐 승리에 한몫했다.
  • 日 새 관방장관에 후쿠다 前장관은 잇단 스캔들 사임

    [도쿄 연합]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총리는 27일 우익단체 간부와의 교제의혹과 여성문제로 논란을 빚은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관방장관의 사표를 수리,후임에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64.모리파)자민당 정조부회장을 임명했다.나카가와 전장관은 일부 주간지에서애인으로 알려진 여성과의 교제와 우익단체간부와의 회식 장면이 다루어지는 등 여론의 악화로 전격 사표를 제출했다.
  • 노벨상 수상자 日 벌써 9명째

    시라카와 히데키(白川英樹)가 쓰쿠바(筑波)대학 명예교수가 10일 노벨 화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돼 일본은 모두 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배출하게 됐다. 일본은 특히 노벨상 6개 부문중 경제학상을 제외한 5개 분야에서 모두 수상자를 배출했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물리학상을 수상,일본에 첫 노벨상을 안겨준 이후 도모나가 신이치로와 에사키 레오가 각각 65년과 73년에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화학상은 시라카와 교수 외에 1981년 후쿠이 겐니치가 수상했으며 의학상은 87년 도네가와 스스무가 최초로 받았다. 이밖에 문학상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각각 68년과 94년에 탔으며 평화상은 74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가 수상했다. 스톡홀름 AFP 연합
  • 노벨상 주간…돋보이는 외국소설 3편

    세편의 외국 장편소설이 눈길을 끈다.그 중에 노벨문학상 수상작도있고 수상후보로 거론된 작가의 최근작도 있어 ‘노벨상’ 주간에 어울리는 관심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이 작품들은 노벨상과 연관되기전에 각기 다른 대륙의 한 모퉁이를 무대로 하고 있고,창작 시기 또한 한 세대 간에 걸친 가운데서도 우리 소설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공유하고 있다.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만연원년(万延元年)의 풋볼’(고려원)은 이 작가의 9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35년생의 오에는 23세때 아쿠타가와상을 받았고 67년,32세 때 쓴 이 소설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후 일본 작가로서는 두번 째,아시아로선 세번 째 노벨문학상을 탔었다.오에가 노벨상을 타기 전엔 국내에 그의 대표작으로 ‘이름만’ 소개되다 노벨상 수상과 함께 첫 번역본이 나왔으나 곧 절판되고 말았다.스무권이 넘는 고려원의 오에 전집 중 하나로 나온 이소설은 두껍고 다소 난해하지만 사소설 풍의 일본 소설과는 다른 오에 문학의 진면목을 잘 드러낸다.등단한 대학시절부터 인간의 실존주의적 한계상황에 포커스를 맞추었던 오에는 결혼후 장남이 장애자로태어나는 불우함 속에서도 진보적 지식인으로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했다.제목의 만연원년은 1860년을 가리키나 풋볼이 암시하듯 미일 안보투쟁 등 미국에서 정신적으로 벗어나려는 전후일본 지식인운동이활발했던 1960년 무렵이 배경이다.20대 후반의 주인공은 문학전공 지식인이나 한쪽 눈을 잃어 용모가 추해진 데다 뇌장애의 어린 아들,그리고 이로 인해 알콜중독에 빠진 아내가 있다.가장 친한 친구는 이해하기 어려운 의식과 함께 자살했다.이 주인공의 절망과 구원을 통해소비시대 진입 직전의 전후 일본의 정체성이 모색된다.주어진 여건이우리와는 사뭇 다르지만 외적 환경을 딛고 인간 삶의 실존적 의미를뽑아올리는 작가의식이 형형하게 느껴진다. 한편 ‘H서류’(문학동네)는 중부 유럽의 빈국 알바니아 출신으로단골 노벨상 후보인 이스마일 카다레 작품.공산정권 시절인 80년대에알바니아 잡지에 연재되다 카다레가 프랑스로 온 뒤인 96년에 불어판으로 출간됐으며 대표작은 아니나대작가의 역량을 충분히 맛볼 수있다.1930년대 두 외국인이 그리스 호메로스 서사시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그리스 북부 인접국으로서 마지막 서사시의 땅이라는 알바니아를 찾아온다.상호감시의 전제적 관료주의,삼류 공상의 쁘티 부르조아,살인적인 민족간 반목 등을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이 희극적 소재들을 인간 삶의 비극적 실체의 구슬로 꿰어내는 솜씨가 탁월하기만 하다. 칠레 작가 폴리 델라노의 ‘이 성스러운 장소에서’(책이있는 마을)는 앞 작품들에 다소 격이 떨어지지만 우리 문학과 대비할 수 있는특징은 더 많이 지니고 있다.선거로 뽑힌 세계 최초의 마르크시스트정권인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암살한 73년의 칠레 군부쿠데타가일어나던 날,주인공이 극장의 화장실에서 3일간 갇혀 있으면서 15년여의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다.젊은 날의 방황과 정치참여를 통한열렬한 사회주의자로의 의식화 과정이 회고된다.작가는 74년부터 10년간 망명생활을 했으며 77년작이다.정치 시대인 우리의 70,80년대를연상시키지만 비슷한 점은 거기고 끝나고 ‘라틴적인’ 풍속,삶을 보는 작가의 눈은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우리 독자들은 이 다른점을 어이없어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한다. 김재영기자 kjykjy@
  • 나카소네 전총리 日외교 최고고문에

    [도쿄 연합]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총리는 3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총리를 외교 최고고문으로 기용했다. 모리 총리는 이날 오후 도쿄의 개인사무실에서 나카소네 전총리를만나 최고고문 취임을 요청했으며 나카소네씨도 “일본 외교의 발전을 위해 매진하겠다”며 수락했다. 이로써 모리 총리의 외교 최고고문은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전총리와 더불어 2인 체제가 됐다. 하시모토 전총리는 98년5월 오부치 내각 때부터 외교 최고고문을 맡고 있다.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 관방장관은 이와 관련, “21세기의 외교 과제들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풍부한 외교 경험이 있는 전총리 두사람의 힘을 빌리는 것이 일본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게 모리 총리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나카소네 전총리는 북일 관계개선에 적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어 북일 수교교섭을 정치적으로 타결하는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정치 뉴스라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최근 자민련의 ‘일탈 행보’에 대해 자민련 총재인 이한동(李漢東)총리에게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26일 전해졌다. 김대통령은 지난 21일 이총리의 주례보고 자리에서 자민련의 특검제발언에 대해,“이럴 수가 있느냐”며 유감을 표했다고 총리 측근이전했다.이에 이총리는 김대통령에게 “교섭단체 구성이 안돼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고 이해를 구한 뒤,자민련 이양희(李良熙)원내총무를 집무실로 불러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도시 러브호텔 난립이 한나라당으로 불똥이 튀었다. 한나라당 난개발대책특위(위원장 李富榮)는 26일 최근 논란을 빚고있는 일산 신도시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일산 입주자 대표회의 임원 등 40∼50명의 주민들은 이위원장에게 “한나라당 소속인 황교선 시장을 제명하라”고 요구했다.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황시장을 당기위에서 처리하라”고 지시했으나 징계를 위해서는 해당행위가 입증돼야 하기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총리가 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의 초청으로 오는 30일부터 3박4일간 제주도를 방문한다. 나카소네 전 총리가 제주도를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부인과 함께 장남 및 딸내외 등 5명의 가족이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초청자인 전 전대통령도 가급적 수행원을 줄이고 부인 이순자(李順子)여사를 비롯,장·차남 내외 등 가족 위주로 제주도를 찾아 나카소네 전 총리를 맞이할 것이라고 전 전 대통령의 민정기(閔正基) 비서관이 26일 전했다.
  • 김대통령 訪日 이모저모

    [도쿄 양승현특파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일본 방문 첫날인 22일 밤늦게까지 ‘문화·세일즈 외교’를 펼쳤다. ●한·일 문화인 간담회 김 대통령은 숙소인 뉴오타니호텔에서 국악인 김성녀씨 사회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150여명의 한·일 문화계 인사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고 입장,연설을 통해 “긴자(銀座)의 최신 유행이 불과 며칠안에 서울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고 동대문시장 패션이 매일 일본으로 직수입되고 있다”면서 양국 대중문화 교류의 현주소를 적시했다.이어 “한국영화 ‘쉬리’가 일본에서 1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일본의 인기 듀엣 ‘차게와 아스카’는 서울공연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고 소개했다. 간담회에는 우리측에서 연극인 손숙·시인 고은·소설가 황석영씨,일본측에서 문화청 장관을 지낸 미우라 슈몬 일·한 문화교류회의위원장,에비사와 가쓰지 NHK 회장,가수 아무로 나미에,도리이 야스히코게이오대 총장, 일본 다도 문화의 원조격인 ‘우라센케’의 15대 전수자 센 소우시쓰씨 등 문화계 대표 인사 90여명이 참석했다. 하스미 시게히코 도쿄대총장이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지지한다”며 한국어 강좌 개설 등 교류의사를 밝히자 김 대통령은 “대학간 교류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대답했다. 김 대통령은 또 히라야마 이쿠오 유네스코 친선대사의 ‘북·일관계개선을 정치와 문화를 분리해 진행하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에 “한·일 문화교류가 남북을 포함한 삼각 문화교류로 발전돼야 한다”고대답했다. ●한·일 경제인 만찬 김 대통령은 이어 오쿠다 히로시 일경련 회장,후지무라 마사야 일·한경제협회 회장,미야하라 겐지 일본 무역협회회장 등 일본 경제계 대표 200여명과 간담회 및 만찬을 함께 하며 대한(對韓)투자 유치활동을 폈다. 김 대통령은 만찬연설에서 “지금이야말로 일본 기업들도 더욱 적극적으로 한국에 투자해야 할 최적기”라며 투자를 유도했다.이어 질의응답에서 미야하라 겐지 스미모토회장이 ‘자유무역협정 체결 필요성’을 제기하자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며 “그러나 단기적으로 적자가 늘어날 우려가 있으니 수지균형에 노력하고 일본의 더 많은 대한투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이이지마 히데타네 도레이부사장이 ‘안정된 노사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자 “한국의 노동운동이 안정되어 있다”면서 99년과 2000년 최루탄이 없었던 한국의 노사문화와 합법적 시위,집회,파업을 허용하고 있는 정부정책을 소상히 설명했다. ●재일동포 간담회 김 대통령은 재일교포 대표 40여명과 간담회를 갖고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일본외상에게도 재일 한국인의 지방참정권에 대해 얘기했다”며 23일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논의할 뜻임을 밝혀 박수를 받았다.
  • 中·日 ‘냉기류’ 걷힐까

    냉기류에 휩싸인 중국·일본관계가 해빙될까.고노 요헤이(河野洋平)일본 외상이 최근 위기국면으로 치닫는 중 ·일관계를 복원하기 위해28일 중국 방문길에 오른다. 고노 일본 외상은 이번 방문기간 동안 중국 지도부와 만나 악화된중·일관계와 중국의 서부개발 사업 참여여부 등에 대해 집중 논의함으로써 두나라 관계를 예전 수준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의중을 가진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일관계는 지난 72년 국교정상화 이후 사상 최악의 상황을맞고 있다.중국의 지질조사·과학탐사선들이 일본 근해에서 조사활동을 벌이는데 대해 일본이 맞대응하고 나선 게 발단.중국은 지난해 노르웨이 선적의 지질조사선 ‘노르딕호’를 임대,두나라가 EEZ(배타적경제수역) 경계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대륙붕 해역에서조사작업을 벌이며,“일본 선박이 노르딕호 5㎞내 접근하지 못하도록하라”고 일본에 통보했다. 그런데 중국이 통보한 접근금지구역중 30% 정도는 일본이 주장하는EEZ에 해당되는 지역이어서 일본의 심기가 불편해졌다.이 상황에서중국은 임의로 조사지역을 확대하며 일본을 자극했다.특히 7월초 중국 과학탐사선이 두나라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디아오위타이(釣魚臺)부근에서 탐사활동을 벌이는 것을 일본 군함이 저지하자,중국 전투기가 출동해 군사충돌 위기로 확대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본 자민당은 대(對)중국 엔특별차관을 172억엔(약 1,720억원)으로 늘리려는 정부계획의 승인을 유보하는 등 초강수로 뒀다. 중국도 모리타 하지메(森田一)일본 운수상이 야스쿠니(靖國)신사를참배했다고 방중(訪中)을 거부하는 등 맞불을 놓으면서 중·일관계는크게 악화됐다. 전문가들은 고노 외상이 베이징 방문에서 큰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두나라 관계 악화의 기저에는 무엇보다 동북아질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측면이 깔려 있어 냉기류가 쉽게 걷히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일본의 보수 우경화

    일본의 우경화 바람이 심상치 않다.일본 우익단체가 태평양 전쟁을철저히 미화한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검정 신청하고 패전 55주년을 맞아 10명의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우경화의 길을 걷고있는 것이다.일본은 지난해부터 국기·국가를 법제화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등 보수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있어 주변국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교과서 문제 일본 우파 학자들의 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지난 4월 문부성에 검정을 신청한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근·현대사를 철저히 왜곡하고 있다.핵심은 일본의 침략전쟁 미화. 문제의 교과서는 한일합방을 강점이 아닌 구미열강의 지지를 받은합법적 조치로 묘사하고 있다.또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大東亞)전쟁으로 기술하고 있으며,일제의 한반도 식민지화에 관해서만 간단히 언급할 뿐 한국인들에게 강제로 일본어 교육을 받게 하고 일황에게 충성을 바치도록 강요한 사실은 슬그머니 빼버렸다. 이 교과서는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과 관련,일본이 그곳에 진출한서방 강대국들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동남아 국가들의 전후 독립 달성을 가능하게 했다며 침략을 정당화하고 있다. 또한 가미카제 공격으로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의 편지를 인용하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사참배 우익단체는 매년 8월15일이면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군의‘위대함’을 알리는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패전 55주년을 맞은지난 15일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우익들로발디딜틈이 없었다.태평양 전쟁에 대한 향수와 일황 숭배주의,역사미화의 복고풍 구호가 신사 안팎에서 물결쳤던 것이다.그러나 이날의 신사참배는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만의 잔치가 아니었다.야스오카 오키하루(保岡興治) 법무상을 비롯한 10명의 각료와 78명의 중·참의원이 참배하는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도 신사에서 머리를 숙였다.도지사로는 처음으로 신사를 참배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는 “도민의 80%가 참배에 찬성하고 있다”면서 “공인으로서 참배하는게 뭐가 잘못됐냐”고 반문했다. 우익단체들은 가미카제 특공대가 자폭하고 진주만이 불타는 그림들을 신사를 찾은 중고생들의 교육자료로 이용하고 있다.특히 이날 신사곳곳에서는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하는 자는 반일(反日) 조센징(朝鮮人)이다.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인을 몰아내자”라는 우익단체들의 구호가 울려퍼지기도 했다. 지난해 제정된 법률에 따라 공식 식순에 들어간 ‘기미가요’제창은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처럼 여겨졌다. ◆우익단체 활동 4년전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댜오위타이(釣魚台) 군도(일본명 尖閣列島)에 등대를 설치해 외교분쟁을 일으켰던 우익단체 청년사(靑年社)가 지난 4월 이곳에 다시 50㎝ 높이의 목재로 된 신사를 설치,양국간 갈등을 다시 재연시켰다.중국은 중·일관계를훼손하는 도발적인 행동이라고 성토했음은 물론이다. 홍콩의 댜오위타이군도 수호행동위원회는 이번 사건이 일본 군국주의의 도래를 상징하는 것이며 일본정부가 과거 침략행위에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청년사 대변인은 이 조형물이 2차 대전 당시 무명의 작은 섬들에서 숨진 주민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아키타(秋田)현 가나자와(金澤)시의 이시카와(石川) 호국신사에지난 4월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미하는 ‘대동아 성전대비(聖戰大碑)’가 건립됐다.높이 12m의 이 석비는 전 광동군 작전참모가 중심이돼 1억엔을 들여 설립했으며,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전 농수상도 기부금을 냈다는 후문이다.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는 지난 4월9일 육상자위대 네리마(練馬) 주둔지의 부대창설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통해 재일 한국인과 타이완출신중국인을 겨냥,“3국인,외국인의 흉악한 범죄가 계속되고 있어 지진이 일어날 경우 소요사건이 예상된다”면서 자위대의 대응을 강조,물의를 빚었다. 이처럼 일본 우익단체나 우익인사는 거침없는 언행을 일삼으며 우경화를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최근 2년 日 우경화 일지. ◆1999년 6월23일 가메이 시즈카 의원,“일본은 2차대전때 주변국 침략안했다”고 주장◆ 〃 8월9일 일장기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하는 법 제정◆ 〃 8월15일 일본 정부가 주최한 ‘전국 전몰자추도식’에서 기미가요 공식 제창◆ 〃 11월 니시오 간지 전기통신대 교수,한반도 식민통치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부인하는 ‘국민의 역사’ 발간◆2000년 1월12일 보수-우익 성향의 잡지 ‘사피오’,일본의 핵무장론 거론◆ 〃 1월23일 일본 우익단체,‘20세기 최대 허구 난징 대학살 철저검증’ 집회 개최◆ 〃 4월 ▲우익단체 태평양전쟁 미화하는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신청 ▲우익단체 ‘청년사’,댜오위타이에 신사 설치 ▲아키타현에일본의 침략전쟁 미화하는 비석 건립◆ 〃 5월15일 모리 요시로 총리,‘신의 나라’ 발언 파문◆ 〃 6월 청년사 회원,일본 황실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한 월간지 사무실에서 난동◆ 〃 8월15일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와 야스오카 오키하루 법무상 등 일본 정치인 80여명 야스쿠니 신사 참배
  • 中·日 ‘신사참배’ 외교 갈등

    [도쿄 연합] 중일 양국이 모리타 하지메(森田一) 일본 운수상의 방중 문제 등을 둘러싸고 노골적인 외교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와 여당은 18일 중국 정부가 다음달 6일로 예정된 모리타운수상의 중국 방문을 돌연 거부한데 대해 “중국측이 뭔가 착각하고 있다”며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모리타 운수상은 신칸센(新幹線) 건설과 중국인들의 일본 단체관광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9월6일부터 9일까지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중국측은 그러나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가 올 가을 일본을 방문하기 때문에 지금 운수상이 중국을 방문하더라도 내용있는 협의가이루어질 수 없다”며 일정까지 확정됐던 모리타 운수상의 방문을 이례적으로 거부했다. 일본측은 중국 정부의 이같은 조치가 모리타 운수상의 야스쿠니(靖國)신사 공식참배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으로 내부적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같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모리타 운수상은 일본의 55번째 패전 기념일인 8월15일 이전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공인 자격으로 참배하겠다고 공언했었다.이에 따라 자민당과 정부 일각에서는 중국의 모리타 방중 거부 사실이 17일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자 마자 중국에 대한 정부개발원조(ODA)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식의 보복성 강경 발언이 잇따라 나왔다. 한 정부 소식통은 “자민당이 승인하지 않으면 중국에 대한 ODA 예산은 통과되지 않는다”면서 오는 10월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가일본을 방문할 때 분위기가 냉각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 [외언내언] 일본의 二重플레이

    여의도 63빌딩 특별전시관에서는 한국전쟁 50주년 기념 ‘피카소와게르니카’전이 열리고 있다.게르니카는 스페인의 도시 이름이다.1937년 파리 국제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될 작품소재를 궁리하고 있던피카소에게 나치 독일이 고국의 소도시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이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전율했다.그는 분노를화폭에 옮기기 시작해 3주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전세계에 반향을 일으킨 걸작 ‘게르니카’다.그런데 피카소가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이 작품을 만들고 있을 때 일단의 게슈타포가 들이닥쳤다.그들은 ‘게르니카’ 밑그림들을 보더니 ‘이것은 당신이 그린 것이오?’라고 물었다.이에 피카소는 ‘아니오 당신들이그린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15일 서울과 평양에서 이산가족들이 보여준 눈물의 드라마는 세계를 울렸다.전세계 매스컴은 이를 경쟁적으로 전했고 장삿속에 강한 일본 언론들도 이 ‘좋은 볼거리’를 열심히 취재했다.그러나 어느 매스컴에도 비극의 단초,이 백성의 가슴에 한(恨)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보도는 없었다.프랑스 어느 TV가 심층보도를 하긴 했지만 그것도 겨우 6.25와 분단에 그치고 말았다. 한국의 20세기 100년은 피와 눈물로 점철된 비극의 역사였다.그렇다면 우리민족을 20세기 내내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 최초의 원인제공자는 누구일까.일본 하타 스토무(羽田孜) 전총리가 그 원죄는 일본에 있다고 자백했다.14일 스위스에서 열린 도덕재무장 국제회의에서 “불행한 상황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것은 2차대전 이전과그 기간 중 일본의 행위라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실토한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직 총리가 해외에서 사과발언을 한 바로 그날 일본의 현직 각료들은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靖國)신사에 공식으로 참배를 했다.그런가 하면 아키히토(明仁)일왕과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가 참석한 전몰 추도식에서 ‘천황의 성전’을 찬양하는 기미가요가 제창되고 아키타현에는 일제침략을 찬미하는 ‘대동아성전비’가 세워졌다.이 얼마나 얄미운 이중 플레이인가. 우리들에게는 망언 시리즈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도쿄 도지사가 “공인도 신앙의 자유는 있다”고 주장했다지만 연이은 망언과 최근 교과서 역사왜곡 등을 보면 그들은 지금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음이 분명하다.다행히 ‘평화 유족회’ 등시민단체에서 항의시위가 있었다고 하나 일본에서 이들의 외침은 아직은 모기소리에 불과한 모양이다. 김재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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