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야스
    2026-07-14
    검색기록 지우기
  • 부업
    2026-07-14
    검색기록 지우기
  • 갱도
    2026-07-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335
  • 16강에서 한일전? “일본과 비교되니까 슬퍼, 화난다” 기성용의 한탄

    16강에서 한일전? “일본과 비교되니까 슬퍼, 화난다” 기성용의 한탄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죽음의 조’에 속한 일본(피파랭킹 18위)이 첫 경기에서 네덜란드와 극적 무승부를 거둔 가운데, 토너먼트에서 한일전이 성사될 가능성에 축구계가 주목하고 있다. 15일 축구계에 따르면 한국이 A조 2위로 32강에 진출할 경우 오는 29일 B조 2위와 맞붙는다. 만약 일본이 F조 1위로 32강에 진출해 한국과 일본이 모두 32강전에서 승리하면 16강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앞서 일본은 2022 카타르 대회에서도 독일·스페인을 꺾고 조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한 바 있어 이번 대회에서도 일본의 조1위 통과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한국이 A조 1위로 32강에 진출하면 C·E·F·H·I조 3위와 맞붙게 돼, 일본이 3위로 통과할 경우 한국과 격돌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과 일본이 둘 다 3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경우에도 16강에서 격돌할 수 있다. 2014 영국 가디언이 ‘세계 5대 라이벌전’으로 꼽은 한일전은 정작 지난 10여년 간 제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맞붙은 적이 없다. 아시아 최고 권위의 대회인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도 2011년 카타르 대회 준결승에서 격돌한 게 마지막이다. 박지성이 주장 완장을 찼던 당시 대표팀은 일본과 연장 승부 끝에 2대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명이 내리 실축하며 패했다. 당시 대표팀 막내였던 손흥민(LA FC)은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고, 박지성은 승부차기 키커로 나서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며 4강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또 2021년 3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평가전에서는 3대0으로 패배하는 등, 그동안 일본과의 통산 전적에서 42승 23무 17패로 앞선 한국은 최근 일본을 상대로 3연패에 놓이는 등 열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10여년간 A매치 3연패손흥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등 ‘정예 멤버’로 일본과 맞붙어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1군’끼리 격돌하면 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다만 축구계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전력 차가 상당한 폭으로 벌어졌다는 한탄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이날 일본과 네덜란드의 경기를 지켜본 기성용(포항 스틸러스)은 JTBC ‘빼박 월클쇼’에 출연해 일본과의 격차를 인정했다. 기성용은 “전지훈련에서 일본팀들과 경기를 하거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경기해보면 차이가 많이 난다”면서 “지금 (대표팀이) 경기하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스쿼드는 좋지만, 일본의 성장세나 분위기가 너무 좋다”면서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오랫동안 팀을 만들었다. 비교가 안 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기성용은 “비교가 자꾸 되니까 슬프다. 일본과 경기해보면 알면서도 당하니까 화가 난다”면서 “기술이나 피지컬, 기동력 등이 좋아지다 보니 우리가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탄했다. 한편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끄는 일본은 이날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후반 들어 2골씩 주고받으며 2대2로 비겼다. 후반 막판 2대1로 앞선 네덜란드가 크리센시오 서머빌(웨스트햄 유나이티드)과 코디 각포(리버풀)를 빼고 ‘잠그기’에 들어갔지만, 막판까지 파상공세를 펼친 끝에 가마다 다이치(크리스털 팰리스)의 동점골로 승점 1점을 따냈다. 일본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대표팀의 ‘에이스’인 미토마 카오루(브라이튼)와 미나미노 타쿠미(AS모나코)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어 개막 직전 주장인 엔도 와타루(리버풀)마저 발등 부상이 악화돼 낙마했다. 그럼에도 쿠보 다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 도안 리츠(프랑크푸르트), 이토 히로키(바이에른 뮌헨), 가마다 다이치(크리스털 팰리스) 등 유럽파가 대부분을 차지해 전력은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일본 축구, 이미 한국 넘었다…올해 아시아 최고팀 될 것” 전망 이유는? [월드컵+]

    “일본 축구, 이미 한국 넘었다…올해 아시아 최고팀 될 것” 전망 이유는? [월드컵+]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와의 첫 경기를 앞둔 일본에 대한 외신의 기대가 쏟아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14일(현지시간) “일본은 핵심 선수들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선수층의 깊이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매체는 한국과 일본의 경기력과 성과를 비교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이 기회를 놓쳤다는 느낌이 있었다. 당시 한국은 유리한 심판 판정의 도움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경기력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고 전했다. 당시 우리 대표팀은 뛰어난 경기력을 바탕으로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일본은 16강에 그치고 말았다. 공동 개최국인 일본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한일 월드컵 이후 선수들의 활약에도 차이가 있었다. 한국의 박지성과 이영표는 이 대회 활약을 바탕으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고, 이후 각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 홋스퍼에 합류했다. 반면 일본 선수들은 해외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한일월드컵 이후 24년, 한·일 축구는 어떻게 달라졌나가디언은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에 밀린 일본이 올해는 달라진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가디언은 “네덜란드를 상대로 월드컵 여정을 시작하는 일본은 올해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며 “일본 대표팀은 월드컵 무대 역대 최고 성적의 아시아 팀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 근거로 일본 축구 선수들의 현재 위치를 언급했다. 많은 일본 선수가 유럽 리그에 진출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모리야스 감독에 대한 기대도 상당히 높다. 그는 지난 2018년부터 일본 대표팀 감독직을 맡고 있으며 이는 역대 일본 대표팀 감독 중 가장 긴 재임 기간이다. 평소 이번 월드컵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 온 모리야스 감독은 월드컵을 앞두고 치러진 평가전에서 잉글랜드와 브라질을 꺾어내는 저력을 보여줬다. 다만 여전히 변수는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선수들의 부상이다. 주장 엔도 와타루는 부상을 이유로 경기 출전 취소는 물론이고 국가대표 자리를 내놓았다. 에이스인 미토마 가오루와 미나미노 다쿠미 역시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가디언은 일본 축구가 한일 월드컵과는 다른 성과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체는 “미토마가 빠져도 마에다 다이젠이나 이토 준야 등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자원들이 많다”고 평가했다. 이어 “16강을 넘어선 적 없는 팀이 우승을 이야기하는 것은 성급해 보일 수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일본이 한국을 넘어섰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은 지난 11일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월드컵 A조 1차전 체코와의 경기에서 황인범과 오현규의 연속 골에 힘입어 2-1 역전승을 거뒀다. 이로써 승점 3을 챙긴 한국은 멕시코에 이어 조 2위에 자리했고, 체코는 1패로 3위에 머물렀다. 한국은 한국 시간으로 오는 19일 오전 10시 멕시코와 2차전을 치른다.
  • “이 정도면 일본 전통 맞네”…日팬들, 경기 끝난 뒤 끝까지 ‘쓰레기 줍줍’[포착]

    “이 정도면 일본 전통 맞네”…日팬들, 경기 끝난 뒤 끝까지 ‘쓰레기 줍줍’[포착]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자국 축구대표팀의 극적인 무승부를 지켜본 일본 팬들은 경기가 끝난 뒤 전통처럼 굳어진 ‘경기장 청소’를 역시나 빠뜨리지 않았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끄는 일본 축구대표팀은 15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후반 43분 가마다 다이치(크리스털 팰리스)의 동점 골 덕분에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일본은 후반 네덜란드의 피르힐 판데이크(리버풀)에게 선제골을 내준 뒤 나카무라 게이토(스트다 드 랭스)의 동점 골로 균형을 되찾았다. 이후 크리센시오 서머빌(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이 한 골을 더 넣으며 일본의 패색이 짙었으나 정규시간 종료 2분을 남기고 가마다의 행운의 득점으로 패배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일본 팬들은 어김없이 청소에 나섰다. 이들은 파란색 쓰레기봉투를 나눠 가진 다음 좌석 아래 남겨진 쓰레기를 수거하고 정리했다. 일본 관중의 경기장 청소는 ‘전통’이라고 불릴 만큼 잘 알려져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의 에콰도르와 개최국 카타르의 개막전에서 일본 관중은 자국 대표팀이 개막전에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자리에 남아있던 병과 비닐봉지 등을 치우며 가장 늦게 경기장을 떠나 화제를 모았다. 글로벌 스포츠 ESPN은 “완벽한 손님”이라 칭했고, 미국 폭스스포츠는 “스포츠에서 최고의 전통”이라고 치켜세웠다. ● “떠나는 새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日속담ESPN은 이날 ‘2026 월드컵: 일본 팬들은 왜 경기장을 청소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본 경기가 끝난 후 일본 관중들이 경기장을 청소하는 이유와 역사적, 문화적 배경 등을 분석했다. 매체에 따르면 일본 팬들의 경기장 청소 문화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었다. 당시 일본 축구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무대를 처음 밟았는데, 팬들이 경기장을 정리한 뒤 퇴장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고 이후 주요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일본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됐다. 특히 매체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당시 일본과 독일의 경기에서 보여준 일본 팬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꼽았다. 당시 일본은 우승 후보 독일을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뒀다. 팬들은 흥분하고 열광했지만, 경기장을 나갈 때는 잊지 않고 머무른 자리를 깨끗하게 청소했다. 일본 관중뿐만이 아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독일과의 조별리그 E조 1차전이 끝난 뒤 일본 대표팀은 라커룸을 깨끗하게 청소한 뒤 책상에 “고맙다”는 글과 함께 곱게 접은 종이학을 남겨 화제를 모았다. 매체는 이러한 청소 문화를 일본의 속담 ‘立つ鳥跡を濁さず’에서 찾았다. 이 속담을 직역하면 ‘떠나는 새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이 머물렀던 자리를 원래 있던 그대로 깨끗하게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화가 일본의 독특한 ‘학교 교육’에서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스콧 노스 오사카대학교 사회학 교수는 과거 BBC와의 인터뷰에서 “축구 경기가 끝난 뒤 청소를 하는 것은 학교 교실과 복도를 직접 청소하도록 가르치는 학교 교육의 연장선”이라고 밝혔다. 이어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이러한 행동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대다수 일본인에게 습관으로 굳어진다”며 “월드컵에서의 청소는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나카노 코이치 조치대학교 정치역사학 교수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학교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법을 배울 때의 행동 방식이 성인이 돼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라며 “일본의 체육 교육은 단순히 신체 단련에만 그치지 않고 ‘도덕 교육’을 중요하게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 내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문화’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 스콧 매킨타이어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단순한 축구 문화가 아닌 일본 문화의 일부”라며 “일본 사회는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데, 축구는 그 문화를 거울처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바라 홀서스 도쿄 독일 일본학 연구소 부소장은 AP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학술적으로 타당한 설명은 일본 사람들의 사회화하는 방식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서양에서는 공공장소 쓰레기는 청소해주는 공공 서비스(청소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스스로 치울 필요가 없다고 배우며 자란다”며 “하지만 일본인들은 어릴 때부터 타인에게 불편을 주거나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배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경기장 청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네덜란드에 ‘코드 오렌지’ 주의보…일본과 네덜란드 대결 댈러스의 더운 날씨가 변수

    네덜란드에 ‘코드 오렌지’ 주의보…일본과 네덜란드 대결 댈러스의 더운 날씨가 변수

    A조의 한국, D조의 호주가 각각 조별리그 첫 승을 거두며 승점 3점을 얻고 쾌조의 출발을 올린 가운데 아시아의 또 다른 강호인 일본이 15일(한국시간) 오전 5시 유럽의 강호 네덜란드와 피할 수 없는 정면 승부를 벌인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8위로 아시아에서 이란(20위), 한국(22위) 등을 넘어 가장 높은 순위를 자랑하는 일본은 모두 네 차례(2002 한일, 2010 남아공, 2018 러시아, 2022 카타르) 16강에 진출했으나 그 이상을 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를 상대한다. 특히 일본은 최근 월드컵에서 조직력을 바탕으로 ‘유럽 킬러’의 모습을 선보인 바 있어 어떤 경기력을 선보일지 관심이다. 일본은 지난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죽음의 조에 편성됐지만 ‘전차 군단’ 독일과 ‘무적 함대’ 스페인을 각각 2-1로 침몰시켰고 16강에서도 선전했지만 크로아티아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밀리면서 아쉽게 탈락했다. 지난 3월에는 우승 후보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출정식에서도 아이슬란드에 1-0으로 승리하며 유럽 팀 상대 3연승을 챙겼다. 이 때문인지 네덜란드도 비상사태를 의미하는 ‘코드 레드’ 대신 ‘코드 오렌지’ 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이다. 경기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로날드 쿠만 네덜란드 감독은 “일본의 강점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으며 그에 맞춘 경기 플랜이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네덜란드 미드필드의 핵심인 프렝키 더용은 “일본전을 승리로 장식하겠다”고 강조했다. 축구 통계 모델에서는 네덜란드의 승리를 47.8%, 무승부 26.2%, 일본 승리 26%로 예측된 가운데 양팀 간의 역대 A매치 전적은 3승1무로 네덜란드가 우위에 있다. 네덜란드 언론은 “일본에는 기술을 배우고 흡수해 갈고 닦는 문화가 있다”며 유럽 명문 구단에서 활약하는 일본 선수들이 대표팀 성장을 이끌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댈러스의 더운 날씨가 일본에 다소 유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일본에도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브라이튼에서 뛰는 윙어 미토마 가오루가 부상으로 인해 최종 명단에서 낙마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2월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던 주장 엔도 와타루도 월드컵 첫 경기를 사흘 앞두고 통증이 재발해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공격진에는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다수다. 이강인의 절친으로 알려진 구보 다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 스즈키 유토(프라이부르크), 도안 리쓰(프랑크푸르트), 중원에는 사노 가이슈(마인츠), 가마다 다이치(크리스탈 팰리스) 등이 버티고 있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5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나설 나가토모 유토(FC도쿄)도 눈길을 끈다. 일본 언론들은 엔도 등의 이탈로 인해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중원의 조합을 어떻게 만들어낼지가 첫 승을 위한 중요한 과제라고 보도했다.
  • 한국은 이겼는데…일본 축구 날벼락, 주장 선수가 돌연 은퇴 선언 ‘발칵’ [월드컵+]

    한국은 이겼는데…일본 축구 날벼락, 주장 선수가 돌연 은퇴 선언 ‘발칵’ [월드컵+]

    북중미 월드컵 출격을 앞둔 일본 축구대표팀이 초대형 악재를 맞았다. 미국 ESPN 등 주요 외신은 12일(현지시간) “일본 대표팀 주장이자 미드필더인 엔도 와타루가 결국 엔트리에서 빠졌다”면서 “엔도는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대표팀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엔도는 앞서 지난 2월 경기 도중 왼발 부상을 입었다. 당시 인대가 끊어졌다는 진단을 받은 그는 3개월 가량 공백기를 보낸 뒤 최근 회복세를 보였지만 지난달 31일 아이슬란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또다시 불편함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엔도는 아이슬란드와의 경기 이후 회복 훈련을 소화했지만 결국 경기를 소화할 만한 몸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국가대표 자리를 반납했다. 그는 “일본의 모든 역량을 하나로 뭉쳐 이번 대회에서 멋진 순간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일본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순간은 반드시 올 것”이라며 “모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마지막 응원을 남겼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마치노 슈토를 대체 발탁한 가운데, 일본 대표팀은 엔도 없이 오는 15일 네덜란드와 첫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일본 대표팀이 포함된 F조에는 튀니지, 스웨덴 등이 있다. 일본은 15일 네덜란드와의 승부를 시작으로 21일 튀니지, 26일 스웨덴과 조별 경기를 치른다. 한편 한국은 이날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월드컵 A조 1차전 체코와의 경기에서 황인범과 오현규의 연속 골에 힘입어 2-1 역전승을 거뒀다. 이로써 승점 3을 챙긴 한국은 멕시코에 이어 조 2위에 자리했고, 체코는 1패로 3위에 머물렀다. ESPN은 DTAI 분석 연구소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북중미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와 토너먼트를 분석하면서 한국은 1승 2무의 성적으로 32강에 진출한 뒤 토너먼트에서 탈락한다고 내다봤다. 일본은 32강에 오른 뒤 브라질과 승부차기 끝에 16강에 오르지만 한국을 꺾고 올라온 캐나다에 패한다고 전망했다. 홈경기의 이점에 따라 미국-캐나다가 8강에 오르며 노르웨이가 4강, 스페인이 우승한다고 예상했다.
  • 日축구 ‘대형 악재’ 터졌다…“주장 엔도, 월드컵 못 나간다” 초비상 [월드컵]

    日축구 ‘대형 악재’ 터졌다…“주장 엔도, 월드컵 못 나간다” 초비상 [월드컵]

    2026 북중미 월드컵 개막을 앞둔 일본 축구 대표팀에 대형 악재가 터졌다. 중원의 핵심이자 주장으로 팀을 이끌어온 엔도 와타루(33·리버풀)가 왼발 부상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됐다. 엔도는 대표팀 은퇴까지 선언했다. 일본축구협회 야마모토 마사쿠니 기술위원장은 11일(현지시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 차려진 일본 대표팀 베이스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엔도가 부상으로 대표팀을 떠나게 됐다”고 발표했다. 야마모토 위원장의 발표에 앞서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의료진의 보고를 바탕으로 엔도의 대표팀 낙마를 결정했고, 엔도는 곧바로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엔도의 대체 선수로는 마치노 슈토(묀헨글라트바흐)가 발탁됐다. 주장 완장은 수비수 이타쿠라 고(아약스)가 이어받는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모두 맡을 수 있는 엔도는 2010년 J리그 쇼난 벨마레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후 우라와 레즈를 거쳐 2018년 신트트라위던(벨기에)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2019년 슈투트가르트(독일)로 이적하며 빅리그에 입성한 엔도는 2023년 8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 유니폼을 입은 뒤 3시즌 동안 활약하고 있다. 엔도의 갑작스러운 대표팀 하차의 결정적 원인은 왼발 부상 재발이다. 앞서 엔도는 지난 2월 소속팀 경기에서 왼쪽 발등을 다쳐 수술대에 올랐다. 이후 재활을 거쳐 대표팀에 복귀해 지난달 31일 아이슬란드와의 평가전에 나섰지만, 전반전만 소화한 뒤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됐다. 일본 닛칸스포츠에 따르면 엔도는 지난 2일부터 시작된 멕시코 몬테레이 사전 캠프에서도 개인 훈련을 이어왔고, 베이스캠프인 미국 내슈빌에 와서도 팀 훈련에 부분적으로 합류하다 11일 훈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엔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심경을 전하며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다친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와서 후회는 없다”며 “카타르 월드컵 이후 주장으로서 대표팀을 이끌며 월드컵 우승이라는 목표를 입에 올릴 수 있는 팀으로 성장한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소집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한 명의 팬으로서 대표팀을 응원하겠다. 모두 후회 없이 쏟아붓기를!”이라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일본은 네덜란드, 튀니지, 스웨덴과 함께 F조에 편성됐다. 일본의 월드컵 역대 최고 성적은 16강이다.
  • 일본 여행 예약했는데…태풍 14개 상륙 ‘최악 시나리오’ 나왔다

    일본 여행 예약했는데…태풍 14개 상륙 ‘최악 시나리오’ 나왔다

    일본이 올해 역대급 태풍 시즌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관광·교통 업계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1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일본 민간 기상업체 웨더뉴스는 올해 일본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이 최대 28개, 이 가운데 최대 14개가 일본에 상륙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평년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서북태평양에서는 통상 연간 25개 안팎의 태풍이 발생하지만 일본 본토에 상륙하는 태풍은 평균 3개 미만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연간 상륙 태풍 최다 기록은 2004년의 10개다. 예보가 현실화할 경우 일본은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반복적인 폭우와 강풍, 홍수, 산사태 등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달 초 태풍 장미가 일본에 상륙하면서 항공편 수백 편이 결항했고 신칸센과 철도 운행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일부 지역에는 최고 수준의 홍수 경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웨더뉴스는 올해 들어 현재까지 발생한 태풍이 6개로 평년 수준을 웃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태풍 시즌은 통상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진다. 요코하마국립대의 기상학자 히로노리 후데야스 교수는 “현재까지 발생한 태풍 수는 월평균의 약 두 배 수준”이라며 “올해는 엘니뇨와 해수면 온도 상승 등의 영향으로 태풍 활동이 활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관광객이 집중된 지역에서 대형 태풍이 발생할 경우 항공·철도 운행 차질과 숙박 문제 등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다만 일본은 최근 경보·대피 체계를 강화해 과거보다 재난 대응 능력은 크게 향상됐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 박지성 “일본 부러워, 8강 갈것”…“조1위 한다” 英 레전드 전망도

    박지성 “일본 부러워, 8강 갈것”…“조1위 한다” 英 레전드 전망도

    12일(현지시간) 개막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이 강팀을 꺾고 토너먼트에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FIFA랭킹 18위인 일본은 한국(25위)과 이란(20위)를 제치고 아시아 1위다. 박지성 JTBC 해설위원은 지난 8일 JTBC스포츠 ‘빼박 월클쇼’에 출연해 한국과 일본 축구의 격차에 대해 “이제는 우리가 추격하는 입장이 됐다”며 “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일본이 이번 월드컵에서 거둘 성적에 대해 “8강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끄는 일본 대표팀은 네덜란드(8위), 스웨덴(38위), 튀니지(45위)와 함께 F조에 속해 있으며 15일 네덜란드와 조별예선 1차전을 치른다. 영국의 전문가는 일본이 네덜란드를 꺾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놔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으로 영국 공영방송 BBC의 해설위원인 크리스 서튼은 10일(현지시간) BBC의 월드컵 특집 방송에 출연해 F조 1차전 경기에서 일본이 네덜란드를 2대1로 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튼은 앞서 2022년 카타르 대회에서 일본이 독일을 2대1로 꺾을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해 이목을 끈 바 있다. 서튼은 “지난 월드컵 때 일본의 승리를 맞춰 일본 방송에 출연하는 등 유명인사가 됐다”면서 “일본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이 포진해 있어, 어떤 상대를 만나든 위협적인 존재”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F조에서 일본이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대회에서 독일과 스페인을 제압하고 조1위로 16강에 진출했던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도 돌풍을 자신하고 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지난해부터 브라질(3대2), 가나(2대0), 잉글랜드(1대0) 등 강팀을 줄줄이 격파하며 실력을 과시했다. 대표팀의 ‘에이스’인 미토마 카오루(브라이튼)와 미나미노 타쿠미(AS모나코)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 우려를 자아내지만, 쿠보 다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 엔도 와타루(리버풀), 도안 리츠(프랑크푸르트), 이토 히로키(바이에른 뮌헨), 카마다 다이치(크리스털 팰리스) 등 유럽파가 대부분으로 전력은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암살 두려워 딸들까지?”…푸틴 가족, 발다이 관저 은둔설 확산 [핫이슈]

    “암살 두려워 딸들까지?”…푸틴 가족, 발다이 관저 은둔설 확산 [핫이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두 딸이 발다이 숲속 대통령 관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주장이 나왔다. 영국 매체들은 이 보도를 근거로 푸틴 대통령이 암살 우려 속에 가족을 더 안전한 곳으로 모으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영국 데일리 익스프레스와 더선은 8일(현지시간) 러시아 텔레그램 기반 독립 매체 ‘모젬 오브야스니트’(We Can Explain)가 7일 공개한 보도를 인용해 푸틴 대통령의 두 딸 마리아 보론초바와 카테리나 티호노바가 발다이 대통령 관저 단지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모젬 오브야스니트는 푸틴 대통령의 두 딸이 최근 공개 무대에 나서는 빈도를 높이고 러시아 정치·경제 엘리트층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소식통을 인용해 두 사람이 대부분의 시간을 발다이에 있는 대통령 관저 ‘돌기예 보로디’에서 보낸다고 주장했다. 발다이 관저는 러시아 북서부 노브고로드주 발다이 호수 인근 숲속에 있는 푸틴 대통령의 주요 거처로 알려져 있다. 모젬 오브야스니트는 이곳에 푸틴 대통령의 오랜 연인으로 거론돼 온 전 리듬체조 선수 알리나 카바예바와 다른 자녀들도 머무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덧붙였다. 다만 크렘린은 관련 의혹을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공개 무대 나온 두 딸, 실제 거처는 발다이? 푸틴 대통령은 오랫동안 두 딸의 신원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공식 석상에서도 딸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두 사람은 러시아 주요 행사와 산업 분야에서 점차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장녀 마리아 보론초바는 의학·유전학 분야에서 활동해 왔고 차녀 카테리나 티호노바는 기술·혁신 분야에서 영향력을 넓혀 온 인물로 알려졌다. 모젬 오브야스니트는 두 사람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 등 정권 핵심 행사에 등장하며 ‘혁신’과 ‘미래 산업’의 얼굴로 포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익스프레스와 더선은 두 딸의 공개 행보와 발다이 관저 체류 의혹이 푸틴 대통령의 신변 우려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드론 공격 위협이 이어지면서 푸틴 대통령이 가족 보호에 더 신경 쓰고 있다는 해석이다. 영국 매체들은 푸틴 대통령이 암살 가능성을 우려해 두 딸과 손주들을 고도로 경비되는 관저 단지로 옮긴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나 원출처인 모젬 오브야스니트 보도는 “두 딸이 대부분의 시간을 발다이 관저에서 보낸다”는 취지에 가깝다. “암살 우려 때문에 가족을 불러들였다”는 표현은 영국 대중지들이 더 강하게 해석한 대목으로 보인다. 전쟁 장기화 속 커지는 ‘푸틴 가족’ 관심 푸틴 대통령 가족을 둘러싼 관심은 러시아 내부 정치와도 맞물린다. 푸틴 대통령이 장기 집권 체제를 이어가는 가운데 두 딸이 공개 행사와 기업 활동에서 존재감을 키우자 후계 구도와 권력 주변부 변화 가능성을 둘러싼 관측도 나온다. 모젬 오브야스니트는 푸틴 대통령이 과거 딸들을 철저히 숨겼지만, 이제 두 사람이 러시아 주요 포럼에 등장하고 수십억 루블 규모 사업과 연결된 인물로 떠올랐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전쟁 기간이 오히려 두 딸에게 더 많은 기회와 이익을 안겼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다만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가족 관련 정보를 극도로 제한해 공개한다. 크렘린은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가족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독립 매체의 관련 보도에도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번 보도 역시 러시아 독립 텔레그램 매체와 영국 대중지를 통해 제기된 의혹에 가깝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의 두 딸이 공개 행보를 넓히는 시점에 발다이 관저 체류 의혹까지 나오면서 전쟁 장기화 속 러시아 권력 핵심부의 가족 문제가 다시 국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 “야스쿠니서 무단 합사… 외종조부 이름 빼달라”

    재일한국인 3세인 30대 여성 A씨는 지난 2월 외할머니의 오빠 2명의 전사 기록이 담긴 공문서를 받아들고 충격에 빠졌다. 80여 년 전 태평양전쟁에서 숨진 두 사람의 마지막 행적과 함께 ‘야스쿠니신사 합사 완료’라는 붉은 글씨를 처음 확인했기 때문이다. A씨는 당시 충격의 심정을 “내 세계가 무너졌다”고 표현했다. 7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간사이 지역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외종조부 2명의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에 참여하기로 했다. 2001년 시작된 야스쿠니 합사 취소 소송에 일본 거주 재일동포가 원고로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 A씨의 외종조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와 생활했다. 형은 아오모리현 오미나토 시설부 소속 공원으로 동원됐다가 1944년 북방 쿠릴열도 인근 해상에서 수송선이 침몰하며 28세에 숨졌다. 동생은 히로시마 구레에서 편성된 제217설영대 소속으로 괌에서 비행장 건설 작업 등에 투입됐다가 같은 해 지상전 중 24세로 전사했다. 가족들은 전후 사망 통보만 받았을 뿐 정확한 경위는 알지 못했다. A씨는 올해 한국 민족문제연구소의 도움으로 일본 정부가 작성한 전사자 기록을 확보했고, 두 형제가 1959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됐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약 246만명의 전몰자가 합사돼 있으며 이 가운데 약 2만1000명은 한반도 출신으로 추정된다. 상당수는 유족 동의 없이 일본식 이름으로 합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씨는 “강제로 전쟁에 동원된 식민지 조선인이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전몰자들과 함께 모셔져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재일동포인 내가 원고가 돼 더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알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외종조부가 야스쿠니에”… 재일동포 3세 첫 합사 취소 소송

    “외종조부가 야스쿠니에”… 재일동포 3세 첫 합사 취소 소송

    재일동포 3세, 야스쿠니 소송 첫 참여 “내 세계가 무너졌다.” 재일한국인 3세인 30대 여성 A씨는 올해 2월 외할머니의 오빠 2명의 전사 기록이 담긴 낡은 공문서를 받아들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80여 년 전 태평양전쟁에서 숨진 두 사람의 사망 경위를 처음 확인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의 눈길을 붙든 건 문서 한쪽에 찍힌 ‘야스쿠니신사 합사 완료’라는 붉은 글씨였다. 7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간사이 지역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외종조부 2명의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2001년부터 이어져 온 야스쿠니 합사 취소 소송에 일본 거주 재일동포가 원고로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다. A씨의 외종조부는 각각 1916년생과 1920년생으로 일제강점기 조선 남부에서 태어났다. 이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와 생활했으며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사실상 가장 역할을 했다. 형은 아오모리현 오미나토 시설부 소속 공원(工員)으로 동원됐다. 전사 기록에는 1944년 10월 북방 쿠릴열도 인근 해상에서 수송선 ‘하쿠요마루’에 탑승 중 잠수함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고 적혀 있었다. 당시 나이 28세였다. 동생은 히로시마 구레에서 편성된 제217설영대 소속이었다. 괌에서 비행장 건설 작업 등에 투입됐다가 24세인 1944년 8월 지상전 중 숨졌다. 전후 가족들은 두 형제의 죽음을 통보받았지만 정확히 어디에서 어떻게 숨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동생들은 생전에 한국까지 찾아가 자료를 수소문했지만 끝내 진실을 확인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A씨는 어린 시절부터 외할머니와 가족들로부터 두 형제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전사 경위를 알고 싶어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가족들의 바람은 자연스럽게 A씨에게 이어졌다. 그는 올해 한국의 민족문제연구소 도움을 받아 일본 정부가 작성한 전사자 개인 기록표를 입수했다. 80여 년 만에 처음 확인한 기록에는 두 형제의 마지막 행적과 함께 1959년 10월 17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됐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A씨는 도쿄신문에 “강제로 전쟁에 끌려간 식민지 조선인 희생자가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전몰자들과 함께 모셔져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누군가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태평양전쟁 전몰자 등 약 246만명이 합사돼 있다. 이 가운데 약 2만1000명은 조선반도 출신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신분으로 동원됐다가 해방 후 한국 국적을 회복했지만 상당수가 일본식 이름으로 유족 동의 없이 합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 유족들은 2001년부터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합사 취소 소송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원고는 한국 거주 유족 43명과 미국 거주 유족 1명뿐이었다.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가 원고로 나서는 것은 A씨가 처음이다. 지난해 일본 최고재판소는 시효를 이유로 원고 패소를 확정했다. 다만 미우라 마모루 재판관은 “합사 사실조차 통보받지 못한 유족에게 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A씨는 “재일동포 사회에는 합사 문제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재일동포인 내가 원고가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비석이 땀을 흘릴 때…밀양 표충비와 사명대사 [한ZOOM]

    비석이 땀을 흘릴 때…밀양 표충비와 사명대사 [한ZOOM]

    경상남도 밀양. 이 이름을 들으면 아직도 송강호, 전도연 주연의 영화 ‘밀양(이창동 감독, 2007)’ 속 강렬한 햇살이 떠오른다. 그런데 사실 밀양에는 이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수백 년간 이어온 신비로운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재약산 기슭에 자리 잡은 사찰 표충사 인근에는 1742년에 세워진 비석이 있다. ‘표충비(表忠碑)’라고 불리는 이 비석은 우리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표면에 땀처럼 물방울이 맺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1945년 광복, 1950년 한국전쟁, 최근에는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10년 천안함 사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굵직한 변곡점마다 이 비석에는 땀처럼 물방울이 맺혔다. 학계에서는 이 현상을 대기 중에 있는 수분이 온도 차가 있는 물체의 표면에 맺히는 결로 현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사물에는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심지어 나라에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어 단순히 결로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신비한 현상이 왜 시작된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1592년 임진왜란의 포화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손에 칼을 든 스님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을 표방하던 나라였다. 이로 인해 스님은 신분이 가장 낮은 천민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스님들은 한양 도성의 사대문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것조차 금지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궁궐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른 무능한 조정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이들은 천민 취급을 받던 스님들이었다. 이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근본 계율마저 내려놓고 기꺼이 손에 무기를 들었다. 스승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전국에 있는 스님들에게 격문을 보내 승병의 기틀을 잡았다. 그리고 제자 ‘사명대사(四溟大師)’가 그 뜻을 이어받아 승병을 이끌고 직접 전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약 2000명의 승병을 이끌고 평양성 탈환 전투에 참여했고, 적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만난 담판 자리에서는 “조선의 보물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신의 머리가 바로 조선의 보물이다”라고 되받아치기까지 했다. ●홀로 적진에 건너가 백성을 구한 스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났다. 조선은 일본이 다시 침략할 가능성이 있는지 정탐하고, 조선인 포로를 데려와야 했지만 조정 대신들은 말로만 나라를 위할 뿐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사명대사가 무거운 책임을 안고 1604년 ‘탐적사(探賊使)’가 되어 홀로 적진인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일본의 실권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당당히 강화 협상을 벌였고, 다음 해인 1605년 전쟁포로로 끌려가 고통받던 조선인 3000여 명을 데리고 귀국했다. ●비석이 땀을 흘리는 진짜 이유 원래 표충사는 사명대사의 고향인 무안면에 세워진 사당이었다. 그러다가 1839년 월파 선사가 이 사당을 영정사(靈井寺)가 있던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절의 이름까지 ‘표충사’로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당은 옮겨졌지만 표충비는 사명대사의 고향인 무안면에 그대로 남겨졌다. 약 4m 높이의 검은 빛을 띠는 이 비석에는 사명대사의 승병 활동과 포로 구출 공적이 빽빽이 새겨져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비석이 세워진 후 약 150년 동안은 아무 일이 없다가 19세기 말 국운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관리들이 이 비석이 땀을 흘린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표충비가 흘리는 눈물이 고통받던 민초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표충비가 왜 땀을 흘리는지, 하필이면 150년이나 지난 다음에서야 땀을 흘리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이 비석만이 그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이든 전설이든, 이 비석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낮은 신분으로 태어나 백성을 위해 싸우고, 아무도 가려 하지 않던 사지로 홀로 뛰어들었던 사명대사. 권력이 아니라 오직 사람을 위해 살았던 그를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이, 차가운 돌 속에 온기를 불어넣어 비석을 수백 년째 살아 있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日자민당 ‘의원 그룹’ 다시 꿈틀… 총리 주무르는 ‘파벌’ 부활인가[글로벌 인사이트]

    日자민당 ‘의원 그룹’ 다시 꿈틀… 총리 주무르는 ‘파벌’ 부활인가[글로벌 인사이트]

    2023년 비자금 스캔들로 계파 해산 옛 니카이파·아베파 등 모임 재등장당 기반 약한 다카이치 지원 그룹도‘다카이치 이후’ 권력재편 준비 분석“과거식 킹메이커 정치 어렵다” 반론파벌 해체 이후 잠잠했던 일본 집권 자민당 내부에서 최근 ‘의원 모임’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한때 정치자금과 인사, 총리 선출까지 좌우했던 거대 파벌은 사라졌지만 내년 총재 선거를 앞두고 의원들 사이에서는 ‘세 모으기’ 움직임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다만 1960~70년대 사토파·다나카파처럼 수십 명 규모 의원들을 강하게 묶어 움직이던 거대 계파의 부활로 보기는 이르다는 평가다. 내각제인 일본에서 자민당 파벌은 수십 년간 사실상 총리를 결정해온 핵심 권력이었다. 그러나 정치자금과 인사 독점에 따른 폐쇄적 구조는 꾸준히 비판의 대상이었고, 2023년 말 기시다 후미오 정권 당시 불거진 아베파의 비자금 스캔들로 거센 비판에 직면하면서 아소파를 제외한 대부분 계파가 해산을 선언했다. 하지만 최근 자민당에서는 ‘파벌 부활’을 떠올리게 하는 의원 모임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옛 니카이파 출신인 다케다 료타 전 총무상이 만든 ‘종합안전보장연구회’에 20명 넘는 의원이 참여했고, 옛 아베파 인사들도 별도 모임을 통해 다시 결집하고 있다. 하기우다 고이치·니시무라 야스토시 측 그룹에도 중견·젊은 의원 약 20명이 합류했으며, 이나다 도모미 전 방위상과 후쿠다 다쓰오 전 총무회장도 각각 독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참의원에서도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시이 준이치 참의원 간사장이 주도한 횡단형 모임에는 참의원 의원 절반 가까이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기반이 약한 다카이치 총리를 중심으로 한 세 결집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2025년 자민당 총재선에서 다카이치의 경쟁 상대였던 후보들 가운데 하야시 요시마사를 제외한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 고바야시 다카유키 정조회장,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국력연구회’(JiB)가 대표적이다. 현재 417명의 자민당 의원 가운데 347명, 83%가 가입한 상태다. 잇따르는 의원 모임 배경에는 ‘다카이치 이후’ 권력재편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과거 파벌이 사실상 총리 선출을 위한 ‘표의 집합체’였다면 지금 의원 그룹은 향후 권력 지형 변화에 대비해 미리 입지를 확보하는 ‘예비 파벌’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자민당 안팎에서는 다카이치 총리 체제가 예상보다 길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높은 지지율에도 관저 중심 운영에 대한 당내 피로감이 쌓이고 있고, 정책적으로도 존재감을 보여줄 만한 성과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다카이치 총리의 ‘건강 이상설’까지 겹치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두고 일본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파벌 부활론’을 제기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정책 연구나 의원 교류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보 공유, 차기 권력 구도 탐색, 인사 네트워크 구축 등 과거 파벌의 핵심 기능이 일부 되살아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사히신문은 “많은 의원 모임이 정책 연구 성격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과거 파벌 관행처럼 목요일마다 모인다는 점은 파벌 부활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자민당에서는 국회 회기 중 각 파벌 의원들이 목요일 점심을 함께하며 결속을 다지는 관례가 있었다. 다만 이를 곧바로 과거식 파벌 정치의 부활로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겉으로는 파벌이 돌아오는 듯 보이지만 예전처럼 정치자금과 인사, 선거 지원을 묶어 ‘총리 만들기’를 주도하던 조직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의원들을 강하게 끌어당길 ‘포스트 다카이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로 꼽힌다. 자민당 선거 전략을 30년 넘게 담당해온 ‘일본 선거의 신’ 구메 아키라 선거 어드바이저는 지난 21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최근 자민당 내 의원 그룹 재편 움직임에 대해 “예전처럼 총리를 만들기 위한 조직과는 거리가 멀다”고 진단했다. 구메 어드바이저는 “예전 파벌처럼 정치자금을 모으거나 인사 자리를 요구할 정도의 힘은 아직 없다”며 “지금은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술 마시고 정보를 교환하는 수준에 가깝다”고 했다. 내년 총재선에서 의원 모임이 과거 파벌처럼 성장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구메 어드바이저는 이를 어렵게 봤다. 그는 “예전 파벌은 모두가 총리를 목표로 전력 질주하는 조직이었지만 지금 자민당에는 의원들을 끌어당길 중심축이 보이지 않는다”며 “과거처럼 권력과 인사를 움직이는 강한 파벌이 다시 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지금 의원 그룹이 늘어나는 현상 자체가 자민당 리더십 공백의 증거”라고 덧붙였다.
  • “대구, 첨단 로봇 인프라 글로벌 표준 도시로 탈바꿈시키겠다”

    “대구, 첨단 로봇 인프라 글로벌 표준 도시로 탈바꿈시키겠다”

    “대구가 ‘인공지능(AI) 로봇 수도’를 지향하는 건 정량적 데이터와 국가적 인프라 집적도로 증명되는 객관적 사실입니다.” 정의관 대구시 미래혁신성장실장은 17일 대구 로봇 산업의 위상과 비전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로봇 기업이 비수도권 최대 규모로 집적해 있고 국가적 인프라를 갖춘 만큼 이제는 대구가 첨단 로봇 생태계를 이끌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구의 로봇 산업은 지난 10여 년 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다. 2010년쯤 20여개에 불과했던 로봇 기업은 현재 250여개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관련 산업 매출액은 이미 1조원을 넘어섰고 고용 인력도 3000명을 넘어서며 비수도권 최대 로봇 집적 도시로 성장했다. 정 실장은 “HD현대로보틱스를 비롯해 야스카와전기, ABB, 쿠카(KUKA) 등 국내외 최상위 로봇 기업들이 대구에 거점을 마련했다”며 “최근에는 성림첨단산업, 옵티머스시스템 등 AI 로봇 선도 기업들의 투자가 잇따르며 앵커 기업 밀집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가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가장 큰 강점은 ‘실증 인프라’와 ‘제조 뿌리’의 결합이라고 정 실장은 강조했다. 대구는 국내 유일의 로봇 실증 기반인 국가로봇테스트필드를 달성군 테크노폴리스에 유치해 조성하고 있다. 2024년부터 2028년까지 약 2000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로봇 상용화의 핵심 거점이 될 전망이다. 국내 최초로 건립되는 휴머노이드 로봇 안전인증센터는 관련 산업 고도화에 방점을 찍을 예정이다. 정 실장은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고도의 안전 기준이 요구된다”며 “이 센터를 통해 국제 표준(ISO) 주도권을 확보하고 국가로봇테스트필드와 연계해 제품 개발부터 최종 안전 승인까지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지역 전통 주력 산업으로 꼽히는 기계·부품 기업 1만여곳도 든든한 버팀목이다. 정 실장은 “핵심 부품 가공부터 완제품 조립, AI 소프트웨어 융합, 현장 실증으로 이어지는 ‘로봇 산업 전주기 밸류체인’이 대구에는 이미 형성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미래 신산업의 또 다른 축인 수성알파시티는 제2단지 조성을 통해 확장을 앞두고 있다. 정 실장은 판교 테크노밸리와의 차별점으로 ‘제조업 디지털화의 엔진’ 역할을 꼽았다. 그는 “판교가 정보통신(IT) 서비스에 특화되어 있다면 수성알파시티는 자동차 부품, 로봇 등 영남권의 탄탄한 제조 기반을 AI 중심으로 혁신하는 AX(AI 전환) 연구개발 허브를 지향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제2수성알파시티가 완공되는 2032년에는 1000개 기업과 2만명의 인력이 상주하는 비수도권 최대 규모의 디지털 생태계가 완성될 예정이다. 특히 직장·주거·학교·여가가 결합한 도심형 클러스터를 통해 청년 인재들이 정착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게 대구시의 구상이다. 정 실장은 고령화와 인건비 상승으로 한계에 부딪힌 전통 제조업의 체질을 고부가가치 스마트 제조로 전환하면 장기적인 침체를 겪고 있는 지역 경제를 되살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대구가 수십년간 축적해 온 제조 현장의 데이터와 숙련된 기술력은 로봇과 AI가 접목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토양”이라며 “전통적인 제조 도시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마트 제조 및 로봇·AI 중심 도시로 거듭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 [특파원 칼럼] 주변국의 日 개헌 불신

    [특파원 칼럼] 주변국의 日 개헌 불신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자는 게 아니다.” 일본에서 ‘개헌’ 이야기를 꺼내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전쟁 포기’ 조항을 고치자는 것도 아닌데 한국 언론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취지다.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자는 건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반영한 정비일 뿐이고, 북한과 중국을 고려하면 ‘보통 국가’의 안보 체제를 갖추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설명도 뒤따른다.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이 임기 내 개헌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내부에서도 관련 논의가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쟁점은 ‘헌법 9조’다. 전쟁 포기와 전력 불보유, 교전권 부인을 명시한 이른바 ‘평화헌법’이다. 개헌은 일본 보수 진영의 오랜 숙원에 가깝다. 일본 보수 진영이 주장하는 ‘보통 국가’에는 단순한 군사력 강화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현행 일본 헌법은 패전 후 미국 주도의 점령 정책 속에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개헌을 ‘자립’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패전 이후 이어져 온 ‘제약된 국가’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80년이 흐르는 동안 안보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런 흐름이 일본 사회 전체의 분위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 ‘전쟁 포기’를 규정한 헌법 9조 1항 개정에 찬성하는 일본 여론은 제한적이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3일 헌법기념일을 앞두고 전국 유권자 2030명을 대상으로 지난 3~4월 실시한 우편 여론조사에 따르면 9조 1항에 대해선 80%가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9조 2항(전력 불보유) 역시 개정 불필요 의견이 48%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주변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평화 국가’를 지키려는 일본 사회의 감각과 정치권 사이에 적지 않은 온도차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연립여당인 일본유신회는 9조 2항 삭제와 국방군 명기, 집단적 자위권의 전면 행사를 공공연히 꺼내 들고 있다. 취임 후 다소 표현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다카이치 총리도 과거 2항 삭제와 국방군 창설 필요성에 공감하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여기에 다카이치 총리가 반복적으로 드러내 온 야스쿠니신사 참배 의지와 독도 영유권 관련 강경 메시지, 최근 현실화한 살상 무기 수출 허용과 방위정책 강화 움직임까지. 일본 내부에서는 “현실 안보에 맞춘 조정”이라는 인식도 강하다. 그러나 주변국 입장에서는 일본이 전후 체제 아래 스스로 억제해 온 군사·안보의 경계선을 조금씩 넓혀 가는 흐름처럼 비칠 수밖에 없다. 일본이 바꾸려는 것은 단지 헌법 문구만이 아니라 전후 체제 속에 규정돼 온 국가의 역할과 자기 인식 자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본의 개헌 논쟁은 전쟁과 군사력의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일본이 앞으로 어떤 국가가 되려 하는지와 맞닿아 있다. 식민 지배와 전쟁을 경험한 주변국이 일본의 개헌 논의를 ‘지나치게 민감하게’ 주시하는 이유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명희진 도쿄 특파원
  • 야스쿠니 참배 포석인가...日다카이치 ‘전쟁 희생자 추모 외교’ 강화

    야스쿠니 참배 포석인가...日다카이치 ‘전쟁 희생자 추모 외교’ 강화

    각료 해외 출장 위령비 방문 방침도“전몰자 추도 보편적” 분위기 조성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해외 순방 때마다 전몰자 추모시설 방문을 이어가며 이른바 ‘전쟁 희생자 추모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각료들의 해외 위령비 참배 방침까지 마련했다. 장기적으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위한 국제 여론 조성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10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직후인 지난해 10월 말레이시아 방문 당시 제1·2차 세계대전 전사자를 기리는 국가기념비를 찾아 헌화했다. 지난 3월 미국 방문 때는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았고, 이달 초 베트남과 호주 순방에서도 전몰 병사 추모 일정을 소화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각료들이 해외 순방 때 일본 정부 건립 전몰자 위령비를 방문하도록 하는 방침도 정했다. 교도통신은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해외 전몰자 추모시설 방문을 통해 ‘전몰자 추도 자체는 국제적으로 보편적인 행위’라는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장기적으로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국제사회의 거부감을 낮추려는 계산이라는 분석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월 민영방송 프로그램에서 재임 중 야스쿠니신사 참배 의향을 묻는 질문에 “동맹국인 미국과 주변국의 이해가 필요하다”며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사례로 알링턴 국립묘지 방문도 언급했다.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인 다카이치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다만 총리 취임 이후에는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직접 참배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총리 측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잃은 병사들에게 서로 경의를 표할 수 있는 국제 환경을 만들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스쿠니신사에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다. 일본 지도부의 참배 때마다 한국과 중국 등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 검은 모래, 푸른 바다, 흰 산… 자연이 쌓아올린 성취

    검은 모래, 푸른 바다, 흰 산… 자연이 쌓아올린 성취

    일본 혼슈 중부, 후지산과 스루가만의 품에 안긴 도시가 있다.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다. 동쪽의 도쿄와 서쪽 나고야 등 일본을 대표하는 두 거대 도시 사이에서, 시즈오카는 양쪽 주민 모두의 탈출구가 돼 왔다. 겨울에도 온화한 기후, 북풍을 막아주는 남알프스 산맥, 태평양과 맞닿은 드넓은 해안선 덕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후지산의 존재감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밥을 먹다가도, 차를 마시다가도, 무심코 고개를 들면 그 산이 하늘을 채운다.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온 자가 선택한 땅도 시즈오카였다.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말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의 유년의 기억이 깃든 땅이었고, 권력의 심장인 에도(도쿄)에서 가까웠기 때문이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일본 한류의 원조’라 할 조선통신사가 최소 10번 이 도시에 발걸음했다. 지금도 시즈오카를 돌다 보면 조선의 선진 문물을 전하던 조선통신사의 흔적과 마주할 수 있다. 새벽녘, 미호노 마쓰바라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시즈오카 남쪽의 7㎞에 걸친 해안선을 따라 흑송 5만 4000여 그루가 검은 모래 위에 빽빽하게 들어찬 솔숲이다. 순위 매기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이를 ‘일본 3대 솔숲’ 중 하나로 꼽는다. ‘후지산 구성 자산’으로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미호노 마쓰바라의 풍모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곳은 사실 도심 건너의 니혼다이라 일대다. 후지산이 그렇듯, 미호노 마쓰바라 역시 조금 떨어져서 봐야 제대로 보인다. 우리 금강송 솔숲에 견줘 웅장한 느낌이 덜한 이 솔숲을 부러 새벽에 찾은 이유는 단 하나다. 검은 모래 해변 너머로 솟은 후지산이 동틀녘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드는 광경과 마주하기 위해서다. 이쯤 돼야 시즈오카 여정의 시작으로 제격이라 할 수 있겠다. 日 관광지 1위 니혼다이라솔밭 끝에 서면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검은 모래 해변이 펼쳐진다. 바다 너머로는 흰 눈을 인 후지산이 홀연히 솟았다. 검은 모래, 검푸른 바다, 흰 산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새벽 풍경은 어떤 그림보다 선명하게 눈에 새겨진다. 미호노 마쓰바라가 8세기부터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경승지였다는 사실이 이 순간만큼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솔숲 인근의 니혼다이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즈오카시 해안에 솟은 300m 높이의 야트막한 구릉이다. 현지 안내판은 “일본 관광지 100선 콘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시즈오카시의 대표 경승지”라 적고 있다. 승용차로 5분이면 정상까지 오를 곳이지만, 땅 아래 깃든 역사의 지층은 무척 깊다. 일본이 대부분 그렇듯, 시즈오카 일대도 4개의 지각판이 경계를 맞대고 있다. 북아메리카판과 태평양판, 필리핀해판, 유라시아판이다. 이 가운데 필리핀해판이 누르는 힘에 의해 유라시아판이 서서히 솟구친다. 이 때문에 니혼다이라는 지금도 1년에 3㎜씩 융기하고 있다. 역산하면 현재의 해발 300m는 10만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자연의 성취인 셈이다. 지각의 융기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100만 년이 지나면 이 완만한 구릉은 일본의 명산 지대인 남알프스에 버금가는 3000m급 산으로 우뚝 서 있을 것이다. 니혼다이라의 핵심 관광시설은 유메테라스다. 꿈같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는 테라스라는 의미다. 건물을 설계한 이는 쿠마 켄고(72)다.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2020 도쿄 올림픽 메인 경기장 등을 설계했다. 시즈오카현에서 생산되는 목재를 사용해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3층짜리 목조 건축물로 만들어 냈다. 전망층은 3층이다. 사방이 360도 형태의 유리 전망대다. 아래로 시즈미항과 스루가만이 펼쳐지고, 푸른 구릉 너머로는 후지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멀리 이즈 반도까지 아우르는 파노라마 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3층 회랑은 낮, 밤, 휴관 등과 관계없이 언제든 입장할 수 있다. 야간에 방문하면 2016년 일본 야경유산에 등재된 니혼다이라의 야경도 즐길 수 있다. 유메테라스에서 구노산(久能山)까지 로프웨이(케이블카)가 놓였다. 이 덕에 구노산 정상의 도쇼궁(국보)을 쉽게 돌아볼 수 있다. 도쇼궁은 원래 서기 600년경 백제계 도래인이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자신을 이곳에 묻어달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언에 따라 신사로 변했다. 도치기현의 닛코로 이장하기 전까지 도쿠가와가 묻혔던 묘역이 신사 뒤편에 남아 있다. 니혼다이라 호텔에서 보는 풍경도 놓쳐서는 안 된다. 거의 호텔 한 면에 달하는 거대한 유리 통창 너머로 후지산과 시즈오카 일대가 오롯이 담긴다. 조금만 입소문 나면 문 걸어 잠그고 돈 받는 우리 몇몇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과 달리 호텔 투숙객이 아니어도 누구나 아무 거리낌 없이 자연이 만든 풍경을 공유할 수 있다. 후지산을 그대로 품은 테라스이웃한 후지시에도 볼거리가 많다. 니혼다이라를 기준으로 좀 더 북쪽으로, 후지산에 가까운 지역이다. 그중 후지산 세계유산센터는 원픽이라 할 만하다. 후지산을 향한 일본인들의 경외심을 만나는 공간이다. 후지산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외관의 건축물로, 세계적인 건축가 반 시게루(69)가 2017년 설계했다. 내부 전시동은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천천히 오르도록 설계됐다. 벽면 가득 펼쳐지는 타임랩스 영상으로 후지산의 사계를 감상할 수 있다. 후지산의 진면목을 담은 고서적과 미술 작품, 수백 년에 걸쳐 이 산을 올랐던 순례자들의 기록까지 촘촘히 담겨 있다. 화려한 볼거리보다 깊은 울림을 주는 공간이다. 최상층에 후지산을 조망하는 전망대가 있다. 테라스 안쪽에서 보면 후지산이 건물 안으로 들어온 듯한 차경(借景) 효과를 느낄 수 있다. 후지산을 향해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절경이 숨어 있다. 일본 폭포 100선에 선정된 시라이토(白糸) 폭포다. 후지산의 눈이 녹아 만들었다. 높이 20m, 폭 150m의 말발굽 모양 절벽 곳곳에서 크고 작은 수백 개의 물줄기가 흰 실처럼 흘러내린다. 2013년 후지산의 구성 자산으로 세계문화유산에 함께 등재됐다. 폭포 초입에 찻집 치도리야가 있다. 1910년 문을 연 노포다. 커피와 소프트아이스크림으로 피로를 씻기 맞춤하다. 후지시 북쪽 경계엔 오부치 사사바가 있다. 2ha가 넘는 광활한 계단식 녹차밭 너머로 후지산이 솟아오르는, 시즈오카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을 품은 곳이다. 이른바 ‘오선지’로 시야를 방해하는 전선 하나 없이 탁 트인 뷰가 자랑이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한국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연중 개방된다. 현장에서 녹차 시음도 즐길 수 있다. 시즈오카 북쪽의 후지산 기슭에서 내려와 다시 남쪽 해안으로 향한다. 미호노 마쓰바라에서 해안을 짚어 올라가면 꽤 많은 볼거리와 만난다. 시미즈항은 스루가완 페리의 출항지다. 멀리 이즈 반도의 토이항을 잇는 페리다. 수심 2500m로 일본에서 가장 깊다는 스루가만 위에서 후지산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 맛집과 놀거리가 널린 시미즈항을 지나 해안선을 따라 오르면 세이켄지(淸見寺)가 나온다. 옛 한일 교류의 상징과도 같은 오래된 절집이다. 조선통신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남긴 흔적과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유이항(由比港)이 멀지 않다. ‘벚꽃 새우’ 사쿠라에비의 고향 같은 곳이다. 우리 섬진강 하구의 벚굴처럼 선홍빛 투명한 몸체가 벚꽃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쁜 외모처럼 맛도 섬세하다는 것이 일본 식객들의 상찬인데, 글쎄 한국 여행자의 식감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사쿠라에비는 유이항 근해에서만 나온다. 봄(3~6월)과 가을(10~12월)이 제철로 꼽힌다. 항구 인근 식당에서 갓 잡은 사쿠라에비를 바삭한 가키아게(작은 어패류에 반죽을 묻혀 기름에 튀긴 음식) 형태로 즐길 수 있다. 유이항 주차장에서 조금 떨어진 이스츠야가 맛집이다. 창업 100년을 넘긴 노포다. 최강 전투력 뽐내는 ‘스시 장인’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전망 포인트인 삿타토게 고개를 지나 더 올라가면 타고노우라항과 타고노우라 공원이 기다린다. 이른 아침 어선이 출항하는 풍경과 후지산이 어우러지는 그림 같은 조합으로 유명한 장소다. 무수한 연관 작품으로 이어진 괴수 영화 ‘고질라’가 최초로 명성을 얻은 장소이기도 하다. 1971년 공해 괴수 영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된 ‘고질라 대 헤도라’의 무대가 바로 이 타고노우라항이다. 당시 항구 주변 제지 공장에서 배출된 오염물질이 공해 괴수 헤도라를 만들어냈다는 설정으로, 당대 일본에 충격파를 안겼다. 그간 꾸준한 환경 정화 노력이 이어져 현재는 주민 가족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됐다. 산책로와 놀이터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섰다. ‘후지산 드래건’, ‘하지마리의 종(始まりの鐘)’ 등 조형물도 있다. 특히 ‘하지마리의 종’은 ‘후지산 루트 3776’ 등정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성지와도 같다. ‘루트 3776’은 해발 0m에서 후지산 3776m 정상까지 오직 자신의 발로 오르는 코스를 일컫는다. ‘하지마리의 종’ 소리는 그 여정의 출발과 응원을 알리는 소리로 여겨진다. 시즈오카 최고의 핫플은 사실 ‘인스타그램에 나왔던 곳’이다. 그중 하나가 ‘후지산 꿈의 대교’다. 이웃한 야마나시현의 ‘로손 편의점’과 더불어 외국인 관광객이 줄을 선다. TV 외신 등에서도 화제가 됐던 곳으로, 육교 위에 올라 후지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물론 날씨 탓에 후지산이 가릴 경우 ‘폭망’하는 장소다. 후지산 세계유산센터에서 멀지 않다. 이제 바다와 땅이 차려낸 밥상 이야기를 할 차례다. 시미즈항 가시노이치 어시장은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해산물의 성지다. 냉동 참치 하적량 부문의 일본 1위 항구답게, 1500~2000엔대에 그릇 넘치도록 담긴 참치 덮밥을 맛볼 수 있다. 시즈오카 현민의 솔 푸드는 구로한펜이다. 색이 유난히 검은 빛이어서 ‘구로’다. 생선 뼈까지 통째 갈아 만든 오뎅으로,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시즈오카 도심에 두 곳의 ‘오뎅 거리’가 형성돼 있다. ‘거리’라기보다는 작은 ‘요코초’ 정도의 골목이다. 구로한펜이 안주로 쓰이는 술집들이 밀집한 거리여서 우리가 생각하는 ‘어묵’ 값보다는 훨씬 비싼 편이다. 어떤 관광 명소보다 시즈오카를 깊고 오래 기억하게 만든 곳은, 치열한 구글링 끝에 우연히 찾은 초밥집 스시야스(寿し安)다. 동향의 동갑내기 70대 노부부가 결혼 뒤 50년 넘게 지켜온 노포다. ‘영업력’에서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이는 역시 안주인이다. ‘특상’(特上) 초밥 세트를 앞세워 손님에게 끈질기게 잽을 넣는다. 무수한 잔펀치에 그로기(비틀거림) 상태까지 몰리지 않으려면 적당할 때 ‘상(上)급 스시’를 힘줘 주문해야 한다. 사실 이 정도로도 초밥 장인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스시야스는 니혼다이라와 시미즈항 사이쯤에 있다. 일단 문을 열기로 결심했다면, 지갑 털릴 각오는 하는 게 좋다. 상급 스시의 경우 1인 5만원 정도다.
  • 다카이치가 또… 야스쿠니에 이틀 연속 공물 봉납

    다카이치가 또… 야스쿠니에 이틀 연속 공물 봉납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이틀 연속 공물을 봉납했다. 같은 날 내각 각료의 참배도 확인됐다. 22일 교도통신과 NHK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오전 아리무라 하루코 자민당 총무회장을 통해 ‘다마구시료’(공물 대금)를 사비로 봉납했다. 아리무라 총무회장은 참배 후 “다카이치 총리의 마음과 함께 참배했다”며 “언젠가 참배하고자 하는 생각을 반드시 갖고 계실 것”이라고 밝혔다. 현직 총리가 공물과 공물 대금을 잇달아 봉납한 것은 이례적인 행보로 보인다. 직접 참배는 중국과 한국을 의식해 자제하면서도 보수층을 고려해 다른 방식으로 성의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정부 부대변인인 사토 게이 관방부장관은 이날 총리가 마사카키에 이어 다마구시 대금도 낸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 묻는 현지 언론의 질문에 “사인으로서 봉납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춘계 예대제(제사) 첫날인 전날 ‘내각총리대신 다카이치 사나에’ 명의로 ‘마사카키’(제사용 공물)를 봉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에 대해 “어느 나라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에 취임하더라도 야스쿠니를 참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지만 지난해 10월 취임 직후 가을 예대제부터는 참배를 피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날 기우치 미노루 경제재정담당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지난해 10월 다카이치 내각 출범 이후 각료의 참배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기우치 경제재정담당상은 참배 후 취재진을 만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에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고 말했다. ‘모두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여야 의원 120여명도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전쟁 사망자 약 246만명을 합사해 추모하는 시설이다. 상당수가 태평양전쟁 전사자이며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A급 전범도 포함돼 있다.
  • 다카이치, 야스쿠니신사에 공물 보내

    다카이치, 야스쿠니신사에 공물 보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1일 춘계예대제(정기 봄 제사)가 시작된 도쿄 야스쿠니신사에 보낸 공물 ‘마사카키’에 총리의 이름이 적힌 나무 명패가 달려 있다. 도쿄 로이터 연합뉴스
  • 수줍은 고백같은 ‘연인의 성지’ 불과 바람이 빚은 ‘신들의 그릇’

    수줍은 고백같은 ‘연인의 성지’ 불과 바람이 빚은 ‘신들의 그릇’

    ‘설국’ 작가의 데뷔작 ‘이즈의 무희’ 백석도 책 읽고 홀로 여행 갔을 듯그 시대 관통하는 정서 만나는 일흩어져 있는 일곱 폭포의 계곡 지나묵직한 일본의 근대사와 만나기도파도가 깎아 만든 해식 동굴 수두룩파괴와 창조의 신 머무는 오무로산오름 안에 ‘300m 평지형 바닥’ 유명 감탄사만 나오고 묘사할 방법 없어 ‘해발 0m 온천’ 등 아타미도 가 볼 만네 남자가 오래전 노르웨이로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 담당 업무만 같았을뿐, 속한 회사나 나이, 성격 등은 판이한 이들의 여행이었다. 당시엔 노르웨이에서 렌터카를 빌려 여행하는 것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좌충우돌하며 다니다 ‘어마무시한’ 장소를 발견해 버린 과정을 당시 동행한 후배가 글로 썼다. 그 재기발랄했던, 그러면서 묵직하기까지 했던 글을 지금 오마주하려 한다. 무대는 일본 시즈오카로 바뀌었고, 일행 역시 초로의 친구들로 변했다. 그래도 ‘원동기의 마력’에 기대 가없이 시원한 자유를 만끽했다는 것만은 그대로다. 일본 도쿄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 태평양을 향해 삐죽이 뻗어 내린 이즈반도는 오래전부터 문학과 낭만의 땅이었다. 소설 ‘설국’으로 196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가 소설의 무대로 삼은 적이 있고 조선 땅에서 건너온 청년 시인 백석이 홀로 걸었던 곳이다.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은 사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한 시대를 관통한 정서와 만나는 일이다. 그 길에 문학의 ‘문’ 자도 모르는 네 남자가 섰다.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영어가 능숙한 사람도 없다. 걸핏하면 휴대전화를 꺼내 번역기를 돌려야 했고, 밥 먹고 나면 “아리가토 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만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했다. ‘이타다키마스’(잘 먹겠습니다)라든가 ‘오이시캇타 데스’(맛있었습니다) 같은 인사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뇌를 지나 입 밖으로 나올 기미가 없었다. 거의 우격다짐이나 다름없는 1박 2일이었다. 이즈반도는 도쿄 사람들의 쉼터다. 승용차나 기차로 1~2시간 거리인 데다 무수히 많은 온천이 있어 근교 여행지로 딱이다. 시즈오카현에 약 2500개의 원천(源泉)이 있는데, 그중 약 2300개가 이즈반도에 집중돼 있다. 거기에 바다는 또 얼마나 푸른가. 도쿄 맞은편 거대 산업도시 나고야 사람들도 너댓 시간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는 곳이다. 이즈 여정의 초점은 (물론 목표는) 문학 기행이다. 가와바타가 걷고, 백석(1912~1996)이 뒤이어 방문했던 공간들을 찾는다. 그 코스가 다행히 이즈반도 여행의 모범 답안과 같다. 1930년대 도쿄 서점가는 가와바타의 데뷔작 ‘이즈의 무희’ 열풍이 불고 있었다. 당시 도쿄 유학 중이던 백석이 이 소설을 읽지 않았을 리 없다. 그는 1930년대 초 어느 겨울방학 때 혼자 이즈반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 여정의 배경에 ‘이즈의 무희’가 있었을 거란 추정은 자연스럽다. 당시 도쿄에선 기선(氣船)으로 이즈반도 최남단 시모다까지 오가는 것이 유행이었다. 물론 요즘처럼 기차로 오는 방법도 있었지만 백석이 택한 건 기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소설 속 무희의 연희패가 걸었던 코스를 돌아보려면, 그러니까 소설의 출발지였던 아마기 고개를 넘고, 금귤 익는 마을을 지나 시모다항에 이르려면 정서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배가 유리했기 때문이다. 시모다항에 내린 백석은 그러나 화려한 항구에 머물지 않았다. 그가 택한 곳은 인근의 작은 어촌 가키사키였다. 대나무 울타리 너머로 파도 소리와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포구와 가까운 민박이었다. “저녁밥때 비가 들어서/ 바다엔 배와 사람이 흥성하다// 참대창에 바다보다 푸른 고기가 께우며 섬돌에 곱조개가 붙는 집의 복도에서는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즉하니 물기에 누굿이 젖은 왕구새자리에서 저녁상을 받은 가슴앓는 사람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 어득한 기슭의 행길에 얼굴이 해쓱한 처녀가 새벽달같이/ 아 아즈내인데 병인(病人)은 미역 냄새 나는 덧문을 닫고 버러지같이 누웠다”(백석 ‘시기(柿崎)의 바다’) 1936년 출간된 백석의 시집 ‘사슴’에 실린 ‘가키사키의 바다’라는 시로, ‘시기’의 일본어 발음이 가키사키다. 그의 작품이 대체로 그렇듯, 평안도 사투리가 알알이 박혀 있는 이 시를 통해 백석은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 말리는 파란 고기와 왕골자리의 습기, 저녁 비 내리는 포구의 냄새를 그대로 담아냈다.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워하던 ‘가슴앓는 사람’은 시인이었을까, 병든 어부였을까. 백석의 이즈행을 이끌었을 ‘이즈의 무희’는 가와바타가 1927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스무 살의 도쿄 제국대 엘리트가 이즈 여행을 하다가 떠돌이 연희패와 우연히 동행하며 열네 살 무희 가오루와 순수하고 애틋한 교감을 나누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이 가슴 아픈 이별을 하는 곳이 장돌뱅이 연희패에게 고향과 같았던 시모다항이었다. 이른바 ‘문학기행’은 이즈반도 중심부의 가와즈에서 시작된다. ‘가와즈 나나다루’(河津七滝)라는 일곱 폭포가 약 1.5㎞ 구간에 흩어져 있는 계곡이다. ‘다루’는 폭포를 뜻하는 ‘타키’의 가와즈 지방 사투리다. 소설 속 연희패가 넘어온 아마기산은 오늘날에도 차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군데군데 위험한 비포장길이다. 주로 20㎞ 길이의 ‘오도리코(무희) 트레일’을 걷는 트레커나 아마기산 등산객이 걸어서 찾는다. 대한민국에서 온 네 명의 남자들 역시 여느 관광객처럼 잘 정비된 계곡길로만 다니기로 결정했다. 초로의 몸은 소중하니까. 첫 번째 폭포인 오다루 옆에 작은 노천온천이 있다. 아마기소라는 료칸에서 운영하는 온천이다. 폭포는 공공 지역, 온천은 사유지다. 여기서 ‘이즈의 무희’ 동경제대 학생이 주인공 가오루의 벌거벗은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는 장면이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온천 료칸 측이 ‘연인의 성지’라 공공연하게 홍보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관광객 대부분은 보통 네 번째 폭포인 쇼케이다루까지만 다녀온다. 소설 속 어린 무희와 함께한 시간들을 놓아보내고 아주 자연스럽게 제국의 중심부로 되돌아가는 학생의 청동상이 방문객을 이야기의 세계로 이끈다. 쇼케이 폭포 등 ‘나나다루’ 전경을 보기 위해 좀 더 위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갈 곳 많고 시간 없는 여행자에겐 언감생심이다. 이즈반도 남단, 시모다 일대의 풍경이 무척 곱다. 그리 진하지 않은 파란 바다와 화산이 만든 근사한 풍경이 어우러졌다. 이런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초로의 남자들 입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의 문장이란, 대개 이런 꼴이었다. “이야, 이 XX들, 잘해놨네! 으아… 진짜, 이건 뭐 XXX….” 이야, 으아, 진짜 등 감탄사에다 욕설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품은 풍경은 곱지만 짊어진 일본 근대사의 무게는 묵직하다. 시모다는 1854년 이른바 ‘검은 배’(구로후네)가 닻을 내린 항구다. 미일화친조약 이후 일본 최초로 서구에 문을 연 개항지로, 당시 들어온 미국 함대의 검은 배는 지금도 이 도시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포구 뒷골목에 ‘페리 로드’가 있다. 미국의 매튜 페리 제독이 협상 중에 걸었다는 700m 길이의 골목이다. 버드나무가 늘어서고 검은 벽에 흰 다이아몬드 무늬를 입힌 ‘나마코카베’ 양식의 전통 건물들이 즐비하다. 골목 끝에 미일 최초의 외교 관계를 상징하는 료센지 사원이 있다. 이즈반도 남단에는 해식동(海食洞)이 많다. 파도가 절벽의 연약한 지층을 오랜 세월 깎아 만든 동굴이다. 이 가운데 천장 일부가 무너져 하늘이 드러난 형태를 천창(天窓)이라 부른다. 류구쿠츠(龍宮窟)는 이즈반도에 산재한 천창동 가운데 최대 규모다. 우리 말로는 ‘용궁굴’인데, 안으로 내려서면 황갈색 화산재 지층이 층층이 드러난 벽면과 코발트블루 바닷물이 어우러지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깥 길로 돌아 위에서 내려다보면 바닥이 하트 모양으로 보인다. 여기도 으레 ‘연인의 성지’다. 동굴 옆 사구는 이른바 ‘샌드 스키장’으로 쓰인다. 동쪽 해안길을 따라 반도를 거슬러 오르면 이토시 어름에서 오무로산과 만난다. ‘신들이 사는 그릇’이라 불리는 곳. 마치 누군가 거대한 그릇을 뒤집어 이즈의 해안에 살며시 올려놓은 듯하다. 여기쯤에서 다시 시작된 육두문자 퍼레이드. 침과 욕을 감탄처럼 뿜어낸다. 네 남자의 어휘력으로는 도무지 오무로산의 자태를 온전히 묘사할 방법이 없었던 거다. 약 4000년 전, 오무로산은 화염을 토했다. 분화구 주변에 스코리아(화산분출물)가 산처럼 쌓였고, 용암은 이즈반도의 지형을 다시 그렸다. 이후 오무로산은 이즈 사람들에게 파괴와 창조의 신이 머무는 산으로 각인됐다. 오무로산은 제주도 아부오름과 같은 화산체다. 규모가 두 배가량 크다. 아부오름이 해발 301m, 오무로산은 580m이다. 화구 깊이는 각각 78m, 70m로 별 차이 없지만, 깔때기 형태인 아부오름에 견줘 오무로산은 지름 300m 정도의 평지형 바닥이 있는 시루 형태다. 이 안에 신사와 도리이, 활터 등이 있다. 국가 천연기념물이어서 등반은 불가하고 리프트로만 오를 수 있다. 초봄을 앞두고는 제주의 명소인 새별오름처럼 불을 놓는 행사가 오무로산에서 일종의 제의처럼 열린다. 시즈오카에선 이를 ‘야키야마’라 부른다. 멀리 떨어진 두 지역이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봄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묘하게 반갑다. 이즈반도에선 온천과 음식이 한 쌍이다.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35분이면 닿는 아타미는 복고풍 온천 마을이다. 1908년에 지어진 기운카쿠 옛 료칸 등 오래된 건물이 줄지어 있다. 이토는 일본에서 온천수가 가장 많이 솟는 도시다. 1928년 지어진 목조 3층 료칸 도카이칸 등에서 당일치기 온천을 즐길 수 있다. 홋카와 온천의 노천탕 구로네이와는 ‘해발 0m 온천’으로 불리며 태평양이 수평선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역시 당일치기 입욕이 가능하다. 가와즈, 아마기유가시마, 시모다 등에도 개성 있는 온천이 즐비하다. 이즈반도 음식의 중심에는 금눈돔(긴메다이·金目鯛)과 와사비가 있다. 시모다항은 일본 최대 금눈돔 어획지다. 금눈돔 조림이 대표 요리. 두툼하게 튀겨 빵 사이에 끼운 ‘시모다 버거’도 인기다. 와사비는 아마기산 기슭의 청정한 계곡물에서 재배된다. 갓 간 와사비를 얹은 아마기 와사비 덮밥, 와사비 소프트아이스크림이 명물이다. 아마기산 사슴 카레도 있다. [여행수첩] -백석(白石)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의 시인이다. ‘남에는 정지용, 북에는 백석’이라 불리는 한국 근현대시의 태두다. 1930~1934년 도쿄 유학 중 이즈반도를 여행해 ‘가키사키의 바다’, ‘이즈국의 가로를 달리다’ 등의 시와 산문 ‘해빈수첩’을 남겼다. 서울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다 법정 스님에게 맡겨 길상사로 재탄생시킨 김영한과의 애사로도 유명하다. -삼국시대 백제계 신을 모신 미시마 타이샤, 차와 로프웨이로 오를 수 있는 주코쿠 패스 등도 꼭 여정에 넣길 권한다. 이즈반도가 시즈오카시, 하코네시 등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있다. 반도 동쪽의 고무로야마 릿지워크 미소라는 태평양을 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 겸 전망대다. 로프웨이를 타고 간다. 도카이칸은 1928년에 문을 연 온천 여관이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온천, 커피 등을 즐길 수 있다. 오무로산 인근 카도와키 현수교도 이즈반도의 명소 중 하나다. 다만 최소 30~40분 정도 해안길을 걸어야 한다. 반도 서쪽에선 ‘연인의 절벽’이란 뜻의 고이비토 미사키가 유명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