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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가이샤쿠(介錯)/우득정 논설위원

    1995년에 개봉된 멜 깁슨 주연의 ‘브레이브 하트’는 스코틀랜드의 전설적인 독립 영웅 윌리엄 월레스의 생애를 영화화한 것이다. 월레스는 13세기 말 농민군을 이끌고 영국 에드워드 1세의 폭정에 맞섰다가 사로잡혀 영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된다. 형틀에 묶여 사지 관절이 뽑혀지고 의식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내장이 불태워진다. 그리고 머리는 런던다리에 효수(梟首)되고 팔과 다리는 영국의 네 곳에 내걸린다. 하지만 그의 불굴의 정신은 1314년 스코틀랜드 독립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지난 8일 차관급 인사에서 물러난 유진룡 문화관광부차관의 경질 배경과 관련, 갖가지 주장과 소문이 무성하다. 그중 유 전 차관이 낙하산 인사의 부당성을 들어 인사청탁을 거부하자 청와대 관계자가 “배를 째달라는 말씀이시죠. 예, 그럼 째드리죠.”라고 한 말이 경질로 이어졌다며 통화내용이 그럴싸하게 포장돼 유포되고 있다고 한다.‘배 째’는 죽었으면 죽었지 못하겠다는 가장 적극적인 의지를 표현한 속어다.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다소 얕잡아보거나 멸시하는 듯한 뉘앙스도 함유하고 있다. 술 김에 배를 잘못 내밀었다가 진짜 찔려 인생의 종을 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나 농민운동가 이경해씨처럼 할복하는 사례가 있었다. 고려 무신정권 시절에는 주군에 대한 충절 또는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배를 갈라 죽는 ‘유교형 할복’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할복은 일본 사무라이문화의 전형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야마오카 소하치가 쓴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일명 대망,大望)에는 다양한 형태의 할복이 등장한다. 이에야스의 아들 노부야스는 적과 내통한 것으로 의심받아 장인 오다 노부나가로부터 할복자살을 명 받는다. 그런가 하면 패장들은 한결같이 무사로서 마지막으로 명예를 지키는 방편으로 할복을 택한다. 이때 할복의 고통을 덜어주려 목을 치는 역할을 맡는 무사가 가이샤쿠진(介錯人)이다. 할복에 앞서 인생무상의 내용을 담은 와카(和歌) 한 구절을 읊는 것이 대체로 정해진 수순이다. 유 전 차관에게 ‘소오강호(笑傲江湖)’가 와카였다면 가이샤쿠를 한 사람은 누구일까.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日 ‘다케후지’ 창업자 다케이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최고 부호였던 대형 소비자 금융업체 ‘다케후지(武富士)’의 창업자 다케이 야스오(武井保雄) 전 회장이 11일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고인은 1993년 일본 고액납세자 1위였으며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지난 6월 발표했던 ‘일본 부호’ 2위(56억 달러)로 뽑혔던 인물이다.‘다케후지’는 고인에 의해 1966년 ‘후지상사’로 창업했으며,‘소비자금융의 제왕’으로 번창해 1998년 도쿄 증권거래소 1부 종목으로 상장됐다.고인은 2003년말 자사에 비판적 기사를 쓴 자유기고가의 전화도청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으며 이후 일선에서 퇴임했다.고인은 2004년 11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의 유죄판결을 확정받았다.taein@seoul.co.kr
  • 고이즈미총리 신사참배 반대 한국단체 日서 원정 촛불집회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저지하기 위한 촛불집회 등 한국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11일 도쿄에서 닷새간의 일정으로 시작됐다. ‘야스쿠니반대 공동행동한국위원회’ 소속 시민단체 회원 등 150여명은 이날 총리관저 앞에 모여 참배반대를 촉구한 데 이어 밤에는 관청가인 가스미가세키를 돌며 촛불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은 날인 15일까지 도쿄 전역을 순회하며 촛불집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아울러 유기홍, 임종인, 문학진 등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10명이 이날 일본을 찾아 오후에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taein@seoul.co.kr
  • [Book Review] ‘단도와 활-지한(知韓)과 혐한(嫌韓) 사이’ /채명석 지음

    일본 후소샤판 역사교과서에는 “조선반도는 일본 열도를 향해 돌출된 흉기”라고 씌어져 있다. 그렇듯 일본인들은 663년 백촌강 전투에서 패배한 이래 한반도가 일본 열도의 옆구리를 겨누는 ‘단도’라는 피해망상에 젖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활’처럼 구부러진 열도의 나라 일본이 백촌강 전투 이후 1300여년 동안 끊임없이 한반도를 공격했다. 약자일 때는 전수방어 운운하다가도 강자로 바뀌면 이익선, 생명선, 주권선 등 온갖 명분을 내세워 반도에 대한 전진방어, 즉 선제공격을 감행해 온 것이다. 최근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단도와 활-지한(知韓)과 혐한(嫌韓) 사이’(채명석 지음, 미래M&B 펴냄)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일본분석서다. 저자는 시사저널 도쿄 주재 편집위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한 일본통. 스스로를 반일도 친일도 아닌 ‘숙일파(熟日派)’라고 부른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 정치는 지금 ‘혼네(본심)의 정치’ 즉 ‘강자의 정치’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일본의 네오콘’으로 불리는 세습 정치가들은 이제 주변국의 눈치를 봐가며 과거사를 사죄하는 척하는 ‘다테마에(표면상의 방침)의 정치’ 즉 ‘약자의 정치’의 간판을 내리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일본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저자는 먼저 ‘극장국가(theatre state)’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로서의 일본이 어떤 습성을 갖고 있는가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극장국가는 문명국가의 반대 개념으로, 국가운영의 시나리오를 제 힘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극장국가에는 반드시 ‘모범적 중앙’이 존재한다.1982년 ‘극장국가’라는 책을 펴낸 야노 도오루(矢野暢) 전 교토대 교수는 일찍이 일본이야말로 일왕, 즉 모범적인 중앙을 정점으로 한 극장국가라고 갈파했다. 한국과 중국의 정치 문화를 모방해 율령제 국가를 이룬 것이 제1기 극장국가 시대라면, 메이지 유신 전후 서양문명을 모방해 근대화를 이룩한 시기는 제2기 극장국가 시대다. 제3기 극장국가는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후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내건 ‘경무장, 경제우선´이란 기치 아래 미국을 모방,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한 시기. 일본은 지금 평화헌법의 족쇄를 풀고 일왕을 정식 국가원수로,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한 ‘제4기 극장국가´로 전환하기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 책은 부제가 암시하듯 지한의 얼굴을 한 혐한의 계보를 밝히는 데 적잖은 지면을 내준다. 한국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 저자는 에도시대 유학자로 조선 멸시에 앞장 선 아라이 하쿠세키와 후쿠자와 유키치의 지시로 경성에서 한성순보를 발행한 이노우에 스미고로의 행적을 좇으며 구로다가 그들 혐한파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밝힌다. 오늘의 한류(韓流)에 대한 진단도 주목할 만하다. 고대 일본의 도래인(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 붐,17세기 조선통신사 행차에 몰려든 ‘군왜(群倭, 왜나라 군중)’에 이어 최근의 한류는 역사상 세 번째 한류라는 게 저자의 말. 이 지점에서 저자는 다시 한번 반한파와 혐한파의 도발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거 일본은 편의에 따라 정한론(征韓論, 임진왜란, 일제의 식민통치)과 대한론(帶韓論, 삼한과의 교류, 조선통신사 환대)을 구사하며 우리를 괴롭혀 온 만큼 현재의 한류 붐이 멸한론과 정한론의 종언을 고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뿌리 깊은 탈아론적 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아시아의 평화는 요원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관점에서 아시아 침략과 태평양 전쟁의 이론적 토대인 탈아론을 주창한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주문한다. 침략주의자보다는 조선문명화론자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듯한 후쿠자와는 “시나·조선 같은 악우(惡友)와는 사귀지 말라.”“돈 문제로 조선인을 상대해선 안된다.”고 한 인물. 저자는 섣부른 낙관이나 비관을 모두 경계하며 500년전 신숙주가 남긴 유언을 결론으로 삼는다.“왜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되 우호친선을 끊지 말라.”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 seoul.co.kr
  • “고이즈미 야심이 민족주의 키워”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민족주의는 고이즈미의 야심(野心)이 불을 지폈다.” 마이니치신문이 11일 기명 사설을 통해 이례적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정치적 야심이 일본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민족주의 불을 지폈다고 지적하고 우려를 표시했다. 사설은 북·일국교정상화를 이룬다는 고이즈미의 야심은 납치피해자 가운데 ‘8명 사망’이라는 북한측의 통고에 따라 무산됐다고 지적했다.‘깜짝외교’를 하려다 오히려 ‘북한 반감’을 불러일으켜, 오산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이어 납치피해자의 사망 통고는 일본국민들을 격분시켜 민족주의를 자극한 부작용을 낳아 결국 ‘대화와 압력’이란 일본 정부의 기본자세도 압력 중시로 변하게 됐다는 것이다. 북한에 압력을 우선하는 여론이 끓어올라 일본 정권 내부의 역학에도 변화를 초래, 대화를 중시했던 후쿠다 야스오 당시 관방장관과 압력을 중시한 아베 신조 당시 관방부장관과의 줄다리기가 발생해 후쿠다씨가 관방장관직서 물러나고, 결국 자민당총재 선거 불출마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고도 해석했다.taein@seoul.co.kr
  • SBS스페셜 ‘日극우주의 실상은’

    광복절이 다가오면서, 또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만료가 다가오면서 관심은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이뤄질지에 쏠리고 있다. 과연 주변국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는 참배를 강행할까.13일 오후 11시5분 방송되는 ‘SBS스페셜’은 ‘대일본민족주의자동맹’을 이끌고 있는 극우주의자 아오키 신이치와 동행취재했다. 평범한 가장이기도 한 그를 통해 일본 극우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 日 교수 조언 “靑-日총리 잇는 인맥 필수적”

    日 교수 조언 “靑-日총리 잇는 인맥 필수적”

    |도쿄 황성기특파원|오는 9월20일 일본 총리를 결정짓는 자민당 총재선거가 열린다. 선거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을 비롯,3∼4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일찌감치 ‘아베 압승’으로 성적표가 나온 상태다.5년간의 고이즈미 시대가 끝나고 아베 시대가 개막되는 것이다. 아베는 대북 강경파 정도로만 알려져 있을 뿐 우리에게는 미지의 정치인이다. 아베는 누구이고, 아베 정권은 한국과 동북아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고바야시 요시아키 게이오대 정치학과 교수에게 들어봤다. 고바야시 교수는 “아베가 총리가 되기 전, 머릿속에 한·일관계의 틀을 만들기 전에 제대로 된 한국 이해를 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일관계가 좋지 않다. 아베의 등장으로 개선될 것 같은가. -아베는 안티 공산주의, 안티 사회주의다. 그래서 중국과 북한은 안된다. 한국은 괜찮다. 그렇지만 지금의 한국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 한국에 대한 프레임이 형성돼 있지 않다. 부인이 한류 팬이라는 것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몇번이나 한국에 함께 갔으니까. 그렇다고 한국에 대해서 호의적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안티로는 보고 있지 않다. 지금 자기 내부에서 프레임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한국대사관의 문제인지, 청와대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베측과 파이프를 만들어 접근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고이즈미 정권 때 한국은 너무 늦었다.2001년 4월 초순(고이즈미는 4월26일 총리 취임)에 한국의 움직임이 있긴 했어도 충분하게 접근이 이뤄지지 않았다. 접근하는 쪽이 아래이고 접근을 받는 쪽이 위는 아니잖은가.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빨랐다. 그렇다고 미국이 (일본에 대해서)아래가 아니듯이 말이다. ▶대북 선제공격론이라든가 아베의 발언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먼저 어프로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고이즈미 정권 때 김대중 정권이 실패했지만, 한·일관계 패러다임의 아이디어를 총리가 될 사람(고이즈미)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같은 일을 (노무현 정권이)아베에 대해서 되풀이하는 게 아닌가. 이상한 고집이 있다. 청와대든 한나라당이든 좋지만 제대로 된 파이프가 중요하다. 한국의 외교통상부와 일본의 외무성이 아무리 합의해도 의미가 없잖은가. 청와대와 일본 총리 사이에 제대로 된 개인적 인맥이라도 좋으니 양쪽을 잇는 파이프가 필요하다. ▶아베 장관의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7월20일 출간)에는 미국, 호주, 인도, 일본 4개국의 연대를 강조하면서도 한국을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은 전혀 어프로치가 없었지 않은가. 아베의 머리에 한국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단히 관심이 있다. 단지 아직 프레임을 만들지 않았다. 아베는 뉴질랜드에 흥미가 많다. 인도,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은 작년부터 어프로치를 많이 했다. 아마도 뉴질랜드까지 넣은 5개국 연대가 될 것이다. ▶북한에는 더욱 강경해질 것으로 보는가. -물론이다.(미사일과 납치문제 해결이 없는 한)절대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일본 국민도 나아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지금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원하는 일본인이 몇명이나 있는가. 아베는 납치피해자와 직무상 죽 일을 해왔다. 자식을 납치당한 사람의 슬픔을 죽 들어왔다. 북한에 대해서는 절대로 ‘노’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프레임이 생겼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아베는 한차례도 이웃나라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 단지 대국이라고 할 뿐이다. 그렇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이웃나라라는 표현을 쓴다. ▶전쟁을 모르고 태어난 아베의 등장은 일본에서 평화헌법을 지키자는 호헌파의 퇴조와도 연관성이 있다. 집단적자위권이나 교전권, 군대의 인정을 주장하는 아베가 적극 헌법개정에 나설 것인가. -고이즈미는 헌법에 흥미가 없었다. 아베가 헌법과 관련한 발언을 하지 않고 있으나 그것으로 개헌에 적극적이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는 없다. ▶아베의 정치적 유전자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외할아버지인 기시 신스케(총리 역임)의 영향이 크다. 아동심리학에 따르면 사람의 정치적인 사회화는 13,14세에 이뤄진다. 그 나이면 아버지는 그렇게 훌륭하게 보이지 않지만 할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 나이때 여론이나 언론은 미·일안보조약에 반대하며 기시를 엄청나게 비판했다. 그렇지만 누가 뭐라 해도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았던 정치가 기시를 몇 십년이 흘러서 일본이 재평가해 주는 것을 아베는 보고 배웠다. 기시와 전혀 캐릭터가 다르지만 아버지 아베 신타로(외상 역임)는 사람 좋은 사람이다. 협력관계였던 다케시타 노보루에게 배신을 당했어도 친구사이를 유지하고 총리까지 양보했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게 있다면 (총리가)될 수 있을 때 되어야 하고, 사람 좋은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일본 국민에게 아베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총체적인 것이다. 아베 말고 총리가 될 사람을 꼽자면 그 말고 달리 없다. 자민당 내에서도 그렇지만 나쁜 이미지가 없고, 스캔들도 없고, 예의바르고 일견 온화해 보인다. 차기 총리로 누가 좋으냐고 조사하면 높지만, 아베가 총리가 된 후에 지지율을 조사한다면 고이즈미처럼 80%정도 될까 하면 그건 아니다. 고이즈미 같은 카리스마가 있는가 하면 그 역시 아니다. ▶일본인들은 아베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뭐든 확대하고 성장하고 공공사업을 늘리는 종래형 일본을 고이즈미가 바꿨다. 과거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할 것은 우리가 할테니 공정한 룰은 국가가 만들어 달라든가, 종래와 같은 국가의 역할을 바라지 않는 게 유권자의 3분의2 정도라면 나머지 3분의1은 하층이니까, 뭔가 국가가 해줘야 하고, 돌봐달라 그런 정도 아니겠나. ▶아베 등장의 일본 국내정치적 의미라면. -역대 총리들은 자민당 총재 60∼70%, 일본 총리 30∼40%였던 것을 고이즈미는 총리의 역할을 90%까지 높였다. 자민당 총재로서의 인식은 10%밖에 없었던 예외적인 인물이다. 아베는 그것을 원래대로 돌릴 것이다. marry04@seoul.co.kr ■ “아베 총리되면 야스쿠니 참배할것” |도쿄 황성기특파원|여느 해와 다름없이 ‘야스쿠니의 계절’,8월 들어 일본은 현 총리와 총리 후계자들의 신사참배를 놓고 떠들썩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총리는 오는 15일 참배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의 3대 공약 중 ‘우정개혁’과 ‘자민당 부수기’를 이룬 만큼 남은 ‘8월15일 참배’ 공약도 지킬 것이라는 예상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은 “총리는 연 1회의 참배를 계속해왔고 이번에는 자민당 총재선거의 공약대로 15일에 참배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이나 중국 등의 맹반발이 예상되지만 어차피 9월이면 물러나는 만큼 강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로 생기는 국내외적인 부담은 차기 총기의 자리를 굳힌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안아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바야시 요시아키 게이오대 교수는 “총리가 되더라도 아베는 8월에는 참배하지 않을테지만 4월 같은 시기를 택해 참배는 할 것”으로 내다봤다. 4월 참배 사실이 보도된 지난 4일 이후 아베 장관은 야스쿠니에 대한 지론을 되풀이했을 뿐 자민당 총재선거의 쟁점으로 야스쿠니가 부각되는 것을 꺼렸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다른 후보들보다 야스쿠니 참배에 강경한 그가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대학원 교수는 야스쿠니 문제의 해결책은 총리가 참배를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지난 4일자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한국이 말해서가 아니라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을 지키면 외교문제도 없어진다. 나라가 야스쿠니신사를 이용하고 국민의 정신을 동원하는 일을 막기 위해 (헌법에)정교분리 원칙이 있다.”고 말했다. marry04@seoul.co.kr ●고바야시 교수는 유권자의식과 선거, 지방자치 문제에 정통한 51세의 정치학자. 게이오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땄다. 한국에도 관심이 많아 ‘일본과 한국에 있어서 정치와 거버넌스’라는 책을 냈으며 ‘현대일본의 정치과정 연구’(한울),‘공공선택’(오름)의 번역본을 출간했다. 회원 1600명의 일본정치학회 회장에 뽑혀 오는 10월 취임한다.
  • 하이드 美하원 국제관계위원장 9일 내한

    헨리 하이드(82·공화·일리노이)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미 하원 의원단이 9∼11일 방한한다고 외교통상부가 7일 밝혔다. 미 정계의 원로급 거물인 하이드 위원장은 방한 기간 중 노무현 대통령도 예방할 예정이다. 그가 참여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대미 정책과 반미 성향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여 왔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무려 16선의 명망높은 현역 의원으로 의회내 한·미 관계와 관련한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하이드 위원장은 지난해 말 맥아더 동상 철거논란 당시 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차라리 미국인들에게 동상을 양도해 달라.”고 밝혔다. 또 북한은 ‘범죄정권’이라는 발언으로 국내에서 곤경에 처한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에겐 ‘북한을 변명하는 자는 미국의 친구가 아니다.’는 내용의 격려 서한을 보냈고 그 해 초 한국 국방부가 국방백서의 주적개념을 없애자,“한국은 누가 주적인지 분명히 하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번 방한은 2차세계 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하이드 위원장이 정계 은퇴를 앞두고 한국, 필리핀,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방문을 희망한 데 따른 것이다. 동행하는 데이너 로라바커(9선·공화·캘리포니아) 의원도 맥아더 동상 관련 서한에 서명한 인물이다. 하이드 위원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강하게 비판해 왔다.8·15에 앞서 방한하는 하이드 위원장이 일본에 대해서도 어떤 쓴소리를 쏟아낼지 주목된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반외교, 아베관방에 전할 메시지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대일 조문외교가 주목된다. 반 장관은 8일 열리는 고 하시모토 류타로 전 일본 총리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7일 도쿄를 방문한다. 카운터파트인 아소 다로 외상을 만나는 외에, 아베 신조 관방 장관을 만날 예정이다. 아베 장관은 오는 9월 총리 선거에서 이변이 없는 한 새 총리로 선출될 게 유력시 되는 인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재임 중 뒤틀릴 대로 뒤틀린 한·일 관계의 복원, 즉 포스트 고이즈미 시대의 신 한·일 관계 정립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란 점에서 의미가 큰 만남이다. 핵심 메시지는 야스쿠니 참배 등 역사인식 문제. 정부 고위 당국자는 6일 “반 장관은 ‘일본 지도자들이 정확한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한·일 관계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한·일관계 악화의 도화선이 되었던 만큼 ‘야스쿠니 신사 참배’ 입장 재고가 향후 한·일 관계 복원·발전의 기본이라는 직설적 언급을 할 가능성도 높다. 정부 안팎에선 최근 수개월 독도 영유권 문제까지 포함해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치닫자 ‘고이즈미는 포기하고 새로운 정권이 등장하는 계기를 포착할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확산돼 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퇴임을 앞두고 8·15 광복절 때도 야스쿠니를 참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베 장관은 일본 자민당내 ‘강경 우파’로 분류된다. 지난 4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던 사실이 지난주 뒤늦게 언론에 보도됐지만 정작 본인은 현재까지 시인도 부정도 않는 엔시엔디(NCND)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 재임시 과거사 문제로 한국·중국과 냉랭해지고 지나친 미국 중심의 외교를 펴면서 국내외적으로 동북아의 ‘외톨이’ 국가란 비난을 들어왔다. 현 시점에서 아베 장관이 총리에 취임할 경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한국은 반 장관의 아베 장관 면담을 통해 “우리는 갈등을 넘어서, 잘해 보고자 한다. 일본이 ‘행동’을 어떻게 할지 선택하라.”고 공을 던질 듯한 분위기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포스트 고이즈미’ 아베 지난4월 신사참배 파문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가장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자민당 총재선거전에서 다른 경쟁후보를 압도하고 있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지난 4월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일본 언론이 4일 보도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자민당 총재선거전 출마를 선언한 다니가키 사다카즈 재무상과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의 차기 총리후보 대안으로 떠오른 누카가 후쿠시로 방위청 장관, 간자키 다케노리 공명당 대표가 비판과 우려를 쏟아내는 등 벌써부터 이 문제가 쟁점화될 조짐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는 아베 장관이 야스쿠니신사의 봄 대제 직전인 지난 4월15일(토) 아침에 신사를 참배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31일 관방장관이 된 뒤 처음이다.아베 장관은 관용차를 쓰지는 않았지만 연미복을 입었고 방명록에 ‘내각 관방장관 아베 신조’라고 기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이라고 적었지만 아베 장관은 이날 개인적인 참배라고 주장했다.아베 장관은 자민당 간사장이던 2004년과 간사장 대리이던 2005년 각각 일본의 패전일인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아베 장관이 올해는 4월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앞당긴 것은 8월15일 참배하면 한국과 중국의 비판이 거세져 9월20일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지 언론은 ‘포스트 고이즈미’의 유력후보인 아베 장관이 올해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한국과 중국의 강한 반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총리에 당선돼 취임할 경우 야스쿠니를 참배할지, 아닐지에 대해서도 태도를 명확히 밝히라는 압박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아베 장관은 이날 자신의 4월 참배가 파문을 일으키자 기자들과 만나 참배 여부에 대해 “갔다거나, 가지 않는다거나, 간다거나를 말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총리나 그 외의 각료도 개인으로서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고 주장, 당선시 총리 취임 이후에도 야스쿠니를 참배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앞서 아베 장관은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에서는 “국가를 위해 싸운 분들에게 합장하고 명복을 빌며 존숭의 뜻을 표하기 위해 참배해 왔다.”면서 “참배할지 안 할지, 언제 할지, 말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가 공약인 8·15 참배에 나설 경우 ‘개인 참배’ 형식을 띠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참배 전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참배를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이들의 이러한 행보로 인해 야스쿠니 문제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taein@seoul.co.kr
  • [책꽂이]

    ●황금섬의 비밀(홍윤서 지음, 지식더미 펴냄) 대한민국과 일본이 독도를 놓고 벌이는 무력충돌을 그린 가상소설. 일본의 극우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독도를 점령당한 대한민국이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고군분투 끝에 독도를 탈환하게 된다는 내용이다.1권 ‘백악관을 도청하다’,2권 ‘일본이 항복하다’. 미 육군 호크미사일과정을 졸업한 저자는 소설 ‘UEO파일’ 등을 낸 밀리터리 픽션작가. 각권 1만원. ●목근통신(김소운 지음, 아롬미디어 펴냄) ‘삼오당잡필’‘물 한 그릇의 행복’ 등의 에세이집으로 유명한 저자가 1951년에 쓴 서간체 수필집. 일본인의 모멸과 학대에 대한 민족적 항의가 담겼다.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을 ‘구린내 나는 나라’로 표현한 ‘선데이 마이니치’의 기사에 대한 분노에서 씌어졌다.‘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개로 ‘주오고론’지에 번역·소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1973년 삼성문화문고에서 발행된 판본을 재발간했다.9500원. ●거장과 마르가리타(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박형규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권력의 폭압에 굴하지 않는 예술정신을 그린 환상적 사실주의 소설.20세기초 모스크바가 무대다.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와 그 애인 마르가리타, 모스크바를 파괴하려는 검은 마술의 악마 볼란드, 거장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본디오 빌라도가 주요 인물이다.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가운데 구소련에 대한 비판을 녹여냈다. 전2권, 각권 9500원. ●문학적 현실의 전개(구중서 지음, 창비 펴냄) 1963년 ‘신사조’에 ‘역사를 사는 작가의 책임’을 발표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한 저자의 자선 평론집. 연암 박지원과 국초 이인직의 소설세계를 비교한 ‘중흥과 타락의 문학’, 이상국 도종환 김기택 정양 등의 시세계를 다룬 ‘사회적 상상력의 회복을 위하여’ 등 20여편의 글이 실렸다. 저자는 일관되게 ‘작가의 역사적 지성’과 ‘현실의식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가치창조’라는 비평척도를 유지해 왔다.2만 3000원. ●원행(오세영 지음, 예담 펴냄) 조선 왕 정조는 스스로 높이 떠서 온 천하를 훤히 비치는 달이 되고자 했다. 그는 군주란 신하와 백성을 이끄는 스승이 돼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정조는 1800년 49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고, 개혁의 꽃도 지고 말았다. 책은 1795년 조선 정조 19년의 수원화성 행차 ‘을묘원행’을 소재로 한 역사추리소설. 천도를 주장하는 개혁파와 한양 잔류를 주장하는 수구파가 대립하는 가운데 병조판서 심환지, 병조참지 정약용의 갈등을 주축으로 당시의 시대상황을 풀어냈다.9800원.
  • [씨줄날줄] 이 사마사마/이용원 수석논설위원

    요미우리 자이언츠 팀에서 4번 타자로 뛰는 이승엽 선수가 일본 야구팬들에게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선수는 지난 1·2일 계속된 라이벌 한신 타이거스와의 두차례 대결에서 2점 홈런 세방을 터뜨렸다. 첫번째는 개인 통산 ‘400 홈런’을 달성한 기록적인 홈런이고, 두번·세번째는 각각의 경기에 승부를 결정지은 결승 홈런이다. 이같은 맹활약에 힘 입어 이 선수에 대한 호칭도 바뀌었다. 한동안 ‘승짱’으로 불리다가 얼마 전부터 ‘승사마’‘이사마’로 격상되더니 2일자 요미우리 신문에는 ‘이사마사마’란 표현이 등장했다.‘사마’가 대단한 존칭인데도, 하나만으로는 이승엽에 대한 애정과 경의를 표하기에 부족하다는 뜻일 게다. 국가간의 공식 관계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갈수록 긴장이 높아져 간다. 독도 영유권,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 왜곡, 종군위안부 문제 등 현안 하나하나가 근본적인 해결이 힘든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간 차원에서 보면 일본 국민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히 호전되었다.‘겨울 연가’의 주인공 배용준(욘사마)에서 비롯된 한류는 처음 TV드라마·영화·가요 등 연예 부문에서 소용돌이를 이루더니 지금은 한국어·한국음식 등 다양한 ‘한국 것’을 즐기고 사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뿐이 아니다. 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한 대신 자신은 목숨을 잃은 고 이수현씨의 살신성인,5년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한 이씨의 학교 후배 신현구씨 등의 사례는 일본 국민을 크게 감동케 한 바 있다. 이같은 일들이 누적된 결과 일본 내각부가 연말이면 발표하는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호감을 갖는 일본 국민은 수년째 50%를 웃돈다. 그런데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식은 여전히 냉랭하다. 여론조사 호감도는 늘 10∼20%에 머무는 데다, 월드컵 축구 같은 국제경기라도 열리면 대부분은 일본의 상대팀을 응원한다. 피해자로서의 기억이 아직 일본·일본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일 양국은 어차피 등지고 살기에는 너무 가까이 붙은 이웃나라이다. 현안 해결은 양국 정부에 맡기더라도 국민끼리는 더욱 친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시너지 효과를 얻어 양국이 동반 발전하는 길이 열리리라 본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평생 모은 작품과 고향에 묻혔으면…”

    “평생 모은 작품과 고향에 묻혔으면…”

    “고향을 위해 뭔가 뜻깊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3일 광주를 방문한 재일교포 사업가 하정웅(河正雄·66)씨는 “나의 영혼이 미술작품들과 함께 광주에 영원히 묻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시립미술관이 개관한 이듬해인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미술관측에 자신이 평생 모아 소장하고 있던 세계 유명작가의 미술작품 1800여점을 기증했다. 이 중에는 20세기 서구미술사 거장들인 루오, 뭉크, 샤갈, 달리, 피카소, 아르망, 로랑생 등의 그림과 판화·조각 등이 들어 있다. 사토 구라지, 야스유키 등 일본의 유명작가와 재일교포 화가 전화황·송영옥 등의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다. 그가 30여년 동안 수집한 ‘컬렉션’을 기증하면서 광주시립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으로 자리잡았다. 이들 작품은 전국 유명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대여 품목’으로 대접받고 있을 정도이다. 고향에 대한 남다른 사랑은 그의 삶의 이력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그는 1939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전남 영암이 고향인 그의 부모는 당시 ‘핏덩이’를 안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산골 오지였던 아키타현으로 이주했다. 수력발전소가 많아 노동강도는 셌지만 일거리는 많았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1945년 그의 가족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사카로 되돌아 왔다.2년 동안 기다렸으나 배표를 구하지 못한 그들의 고향행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그의 가족은 또다시 아키타현으로 향했다. 호구지책 때문이었다. 그는 소학교 2학년부터 고교를 그곳에서 졸업했다. 조선인이란 이유로 냉내와 차별을 받기 일쑤였다. 일본인 동기생들은 모두 일자리를 구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는 졸업식날 바로 무작정 동경으로 향했다. 재일교포가 운영하던 전기제품 생산회사에 일당 250엔을 받고 가까스로 취업했다. 점심은 빵 한조각으로 때우며 돈을 절약, 야간에는 ‘디자인 스쿨’을 다녔다.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그는 부모를 졸랐다. 그림공부를 할 요량에서였다. 어머니는 “미쳤느냐.”며 만류했다. 스스로 “꿈을 이루겠다.”며 야간학교에 다녔으나 이 과정에서 영양실조로 두눈의 시력을 잃고 만다. “병도 고쳐주고 그림공부도 시켜준다.”는 말에 한 때 북송선을 탈까도 고민했단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조총련에서 일할 것을 권유받았다. 조총련은 당시 동포들의 인권운동과 상공회, 납세조합 건립 등에 열중하고 있었다. 차별과 설움을 가슴 한쪽에 안고 살아온 터라 열심히 일했다. 당시 스물네살이었다. 그는 결혼과 함께 동경의 한 전자상가에서 전자제품을 구입했다. 그러나 주인의 말에 속아 돈을 모두 털리고, 그를 계기로 그 전자제품 상가를 떠맡게 됐다.1964년 동경 올림픽 직전이었다. 올림픽과 함께 일본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했고, 그 특수로 인해 TV, 냉장고 등 전자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당시 월급으로 1만 3000엔을 받았던 그는 하루에 2000만엔을 넘게 벌어들였다. 단기간에 천문학적인 돈을 손에 쥔 그는 자연히 ‘어릴 적 꿈’ 실현에 나섰다. 닥치는 대로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사모았다. 유명전시회는 빠짐없이 찾아가고, 교포 및 일본 화가들과 두터운 교류를 했다. 그의 그림 실력도 아마추어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키타현 다자와코(田澤湖町)에 ‘기도의 미술관’을 짓기로 하고 설계까지 마쳤다. 위령·기도·진혼의 뜻을 담고 차별과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기원의 뜻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일간 위안부 배상 등 정치적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자와코 읍측으로부터 미술관 기증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이 작품들은 결국 광주에 영원히 둥지를 틀게 됐다. 그는 “기증한 작품들이 ‘광주 문화중심도시’ 육성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日총리후보 3인방 “군사대국화” 목청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재임 5년 동안 미국 편중의 외교를 펴면서 ‘군사대국화 노선’ 등으로 한국·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 불편한 관계를 맺어왔으나 오는 9월 출범할 차기 정권에서도 군사 대국화에 제동이 걸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의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 3인방은 일제히 군사대국화 노선의 상징적인 쟁점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용인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진 나라가 제3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이를 자국에 대한 무력 공격으로 간주, 반격할 수 있는 권리로 일본 정부는 평화헌법의 제약에 따라 “보유하고 있지만 행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자민당 속에도, 국민 속에도 개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의와, 헌법해석을 통해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도 늘 그런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해 집단적 자위권 용인론이 9월20일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사실상의 차기 총리를 뽑는 선거)의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이 총재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뒤 여러 주자 중에서 가장 먼저 공식 출마를 선언, 급격히 주목을 끌고 있는 다니가키 사타카즈 재무상도 집단적 자위권 용인론에 가세했다. 아소 다로 외상도 각료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논쟁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 견해를 말해도 큰 의미가 없다.”면서도 “법률을 지키다가 국가가 부서지고 만다면 곤란하다는 느낌이 있다.”며 용인론에 가담했다. 이와 관련, 요미우리신문은 2일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논의가 9월 자민당 총재선거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면서 “아베 장관이 정부의 헌법 해석 변경에 긍정적인 반면 다니가키 재무상과 아소 외상은 해석 변경에는 신중, 개헌시의 과제로 여기고 있다.”고 보도했다.taein@seoul.co.kr
  • [K-1] 최홍만, 아케보노에 또 KO승

    삭발을 했다. 몸무게도 30㎏가량 뺐다. 스스로 ‘게걸음 작전’이라고 이름 붙인 사이드스텝도 집중 연마했다. 하지만 씨름 천하장사 출신 ‘테크노 파이터’ 최홍만(26)에게 스모 요코즈나 출신 아케보노(37·미국)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최홍만은 30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니아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K-1 월드그랑프리(WGP) 삿포로’ 대회에서 아케보노를 2라운드 57초 만에 KO로 제압했다. 이로써 최홍만은 3연승을 달리며 9승(3KO·2TKO)1패를 기록했다. 반면 아케보노는 최홍만에게 3차례나 KO패(2TKO 포함) 당한 것을 포함, 통산 1승9패에 머물렀다. 리벤지 매치(복수전)로 펼쳐진 이날 경기에서 최홍만은 한 수 아래의 아케보노를 여유 있게 요리했다. 펀치 속도는 한층 빨라졌고, 로킥에 미들킥, 심지어 플라잉니킥(?)까지 선보이며 한 단계 도약한 모습을 보였다. 최홍만은 1라운드에서는 체력안배를 하며 좌우 연타로 아케보노를 주춤거리게 했다.2회 아케보노가 저돌적으로 나오자 니킥에 이은 좌우 펀치로 막아냈다.1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강력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아케보노의 안면에 적중시켰고, 천천히 허물어지는 아케보노를 왼손 펀치로 침몰시켰다. 리벤지 슈퍼파이트에서 복수에 성공한 선수는 ‘플라잉 젠틀맨’ 레미 본야스키(30·네덜란드)가 유일했다. 지난해 4월 마이티 모(33·미국)에게 판정패한 본야스키는 이날 집요한 로킥에 이어 수차례 하이킥을 적중시킨 끝에 3-0, 판정승을 거뒀다. 가라테 양대산맥인 극진회관과 정도회관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은 ‘메인매치’ 글라우베 페이토자(33·브라질)-무사시(34·일본)전은 팽팽하게 맞선 3라운드, 페이토자가 거푸 무사시의 안면을 두들긴 뒤 오른손 펀치로 다운을 빼앗아 지난해에 이어 또 승리했다. ‘20세기 최강의 킥복서’ 피터 아츠(36·네덜란드)는 팔씨름 챔피언 게리 굿리지(40·트리니다드 토바고)를 2004년 6월 KO승에 이어 판정(3-0)으로 재차 제압했다. 아츠는 하이킥, 로킥, 니킥에 이은 좌우 콤비네이션 등 화려한 타격 종합선물세트를 앞세웠고, 굿리지는 강한 맷집으로 버티며 카운터를 노렸지만 실패했다. 한편 K-1 최다 우승(4회)을 자랑하는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후스트(40·네덜란드)는 이날 링위에 올라 토너먼트 은퇴선언을 번복, 오는 9월 ‘K-1 WGP 오사카’ 개막전에 출전하겠다고 밝혔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독도는 한국땅… 일본이 찾을 순 없어”

    “독도는 한국땅이다.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절대불가다. 한국인 강제 노역은 반드시 배상해야 한다.” ‘양심적인 일본인’으로 통하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한·일간 미묘한 외교 사안에 대해 일본을 향한 거침없는 쓴 소리를 뱉어냈다. 와다 하루키는 28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2006 제주 하계포럼’에서 “상생의 한·일관계는 가해국의 사과와 참회가 우선돼야 이뤄진다.”며 일본의 반성을 촉구했다. 그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일본 침략과 식민지배로 희생된 아시아 국가들과 암묵적인 합의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아야 한·중·일 정상 회담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독도 분쟁과 관련해서도 한국의 주장을 옹호했다. 와다 교수는 “일본 정부는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이 독도를 다시 찾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자신감을 갖고 독도가 왜 한국 땅인지를 설명하고, 일본 정부로 하여금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하도록 현명하게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서귀포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아베, 유세 스타트

    |도쿄 이춘규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관방장관이 차기 총리 선거전에서 독주체제에 돌입하면서 사실상 ‘아베 시대’가 개막된 분위기다. 언론은 이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보다 아베 장관의 일정에 관심이 더 높다. 이미 아소 다로 외상, 다니가키 사다카즈 재무상 등 다른 주자들의 추격전은 의미가 없다는 관측이 팽배했지만, 그래도 일본 차기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선거가 27일 막을 올렸다. 아베 장관은 이날 실패 경험자에게 재도전 기회를 늘리겠다는 취지의 ‘재도전 밀착대화’라는 전국 유세에 돌입했다. 아베 장관은 혼슈 북부 이와테현을 시작으로 도쿄와 오사카, 사이타마 등 대도시와 수도권의 농촌지역을 돌면서 자신의 집권구상에 반영하기 위한 밑바닥 민심 듣기에 들어갔다. 아베 장관은 유세에서 “고이즈미 개혁이 진행되면서 일본의 경기가 좋아졌지만 어려워진 곳도 있다.”고 인정하면서 현장에서 들은 민심을 앞으로 자신의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베 장관은 고이즈미 개혁의 후유증으로 지적되는 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선거전의 쟁점이 될 것이라고 보고 유세에서 실업자와 아르바이트족, 서민 등을 위한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아울러 아베 장관을 지지하는 ‘재도전지원 의원연맹’은 각지에서 집회를 여는 한편 ‘니혼게이단렌’ 등 경제단체와도 간담회를 갖고 기업이 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출산·육아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다니가키 사타카즈 재무상도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총재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회견에서 그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악화된 한국·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 개선과 재정 재건 및 사회보장제도 보완을 위한 소비세율 인상 계획을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천명했다. 역시 총재 출마 의사를 밝힌 아소 다로 외상 등은 아직 공식 출마 회견은 갖지 않았지만 표밭 다지기에 이미 돌입한 상태다. 하지만 출마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누카가 후쿠시로 방위청 장관은 소속 파벌인 쓰시마파 내부에서 그를 지지하느냐에 대한 의견통일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애를 태우고 있다. 그는 이미 불출마 의사를 밝힌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의 대타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자민당도 28일부터는 도쿄를 시작으로 전국 10개 권역에서 총재선거 후보들이 나서 정책토론을 벌이는 ‘권역대회´를 시작한다. 사실상 총재선거 유세의 전초전이다. 권역별 대회에는 아베 장관을 비롯해 다니가키 재무상, 아소 다로 외상, 요사노 가오루 경제재정상 등 출마 예상자들이 토론자로 참석한다. 아베 시대 도래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정치권에서는 득실계산이 분주하다. 고이즈미 총리는 킹메이커 역할을 하려던 계획이 아베 시대 조기 개막으로 무산되는 등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51세인 아베 시대는 세대교체도 뒤따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야마사키 다쿠 전 자민당 부총재 등 중진들의 역할 축소가 예상된다. 반면 아시아 외교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에서 아베 장관과 확실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에게는 정권교체를 위해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젊은 정치인들의 득세도 예상된다. taein@seoul.co.kr
  • [문화마당] 거꾸로 가는 일본의 역사시계/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패전이전 일본의 군국주의가 여성용 속옷 브래지어라면, 일본의 우파는 그 속에 든 찌그러뜨려도 원형으로 돌아가는 형상기억 합금이며, 일왕은 호크라고 할 수 있다. 좀 민망하지만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일본의 우경화 현상을 설명할 때 종종 드는 예화다. 군국주의의 사전적 정의는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을 중시하여, 전쟁과 그 준비를 위한 정책이나 제도를 국민생활에서 최상위에 두고 정치·문화·교육 등 모든 생활 영역을 이에 전면적으로 종속시키려는 사상과 행동양식”이다.“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일왕이 통치한다.” 대일본제국헌법(1889) 제1조이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세계 모든 나라의 헌법이 공통적으로 보장하는 국민주권과 이를 지킬 국민저항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타이완침략, 운요호사건, 청·일전쟁, 의화단 봉기 진압, 러·일전쟁, 제1차 대전시 대독 선전포고, 러시아혁명에 간섭한 시베리아 침략, 만주사변, 중·일전쟁, 소련과 충돌한 모몬한 사건, 그리고 태평양전쟁. 당시 이웃나라를 상대로 열 손가락도 모자랄 만큼 쉼 없이 전쟁을 일으킨 나라는 일본 이외에는 없다. 그 죗값으로 맞은 원자폭탄 두 발에 군국 일본은 무릎을 꿇었다. 침략전쟁의 두 주역 군부와 재벌이 해체되고(1945), 일왕은 살아 있는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앉았으며, 전쟁을 금지하는 평화헌법이 만들어졌다(1946). 미국은 일본인들의 가슴을 옥죄고 있던 브래지어를 풀어내려 하였다. 하나 이게 웬일인가? 1947년 중국 국민당이 공산당에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주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역코스(reverse course)라 부르는 점령정책의 전환이다.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선물을 일본 시민에게 주었다 포장도 뜯기 전에 다시 빼앗아갔다. 역사의 시곗바늘은 거꾸로 돌기 시작하였다. 1948년 재벌기업의 자회사 폐지계획이 축소되었으며, 극동 군사재판은 침략전쟁의 주역들 대다수에게 면죄부를 주었다.1949년 중국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쫓겨 가고 1950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자, 전범자는 죗값도 치르지 않고 정계에 복귀하였다. 이들은 1951년 미군주둔을 허용하고 미국의 전략체제 속에 일본을 종속시키는 미일안전보장조약을 맺는 대가로 1952년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립을 얻어 내었다. 반공의 이름으로 전범세력과 타협한 미국은 군국주의라는 때묻은 브래지어를 다시 일본 시민들에게 채웠다. 일왕이라는 호크와 침략전쟁의 주역인 형상기억 합금은 그대로 남았다.1954년 미·일 상호 방위원조협정에 따라 방위청이 세워지고 자위대라는 미명하에 다시 군대가 들어섰으며, 이듬해에는 평화헌법 개정을 당헌으로 내건 자민당이 집권하였다. 전후 집권세력의 뿌리는 군국주의 전범세력이다. 이들은 형상기억 합금처럼 미군정에 의해 구부러지기 이전 군국주의 시절로 되돌아가려 했으며,1991년 냉전의 해체는 그 복원력에 탄력을 더해주었다. 침략의 과거사를 미화하는 역사교과서 왜곡, 전범세력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쟁도 벌일 수 있는 ‘보통국가’ 만들기, 일장기 달기와 기미가요(일본국가) 부르기의 의무화나 ‘애국심’ 교육 강화를 통한 전체주의 되살리기, 독도 영유권 주장, 그리고 작금의 북한 선제공격론은 모두 일본 우익이 벌이는 원형찾기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처럼 지배 엘리트가 철저한 역사적 성찰을 하기는커녕 원폭을 핑계로 마치 전쟁의 피해국인 양 침략의 역사에 분칠을 하는 일본의 역사시계는 아직도 뒤로만 가려 한다. 하나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불빛을 본다.2001년과 2005년 일본 우익이 주도한 역사교과서 왜곡파동 때 역사의 기억을 둘러싼 내전에서 승리한 일본 시민사회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력으로 가슴을 옥죄는 브래지어를 벗어버리고 동아시아와 함께 사는 진정한 평화국가 일본을 이룰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기꺼이 연대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 총리 야스쿠니신사 참배 日유권자 54%가 “반대”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찬·반이 팽팽했던 일본내 여론이 쇼와 일왕이 A급 전범 합사를 불쾌하게 여겨 참배를 중단했음을 보여주는 메모가 발견되면서 뚜렷이 ‘반대’ 쪽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으로 24일 드러났다. 마이니치신문이 22∼23일 유권자 1065명을 상대로 전화조사한 결과 ‘차기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반대가 54%로 찬성(33%)여론을 크게 웃돌았다. 지난 1월 같은 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동일한 47%로 의견이 갈렸었다. 찬성여론이 14%포인트나 감소한 것이다. 신문은 쇼와 일왕 관련 메모가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유력한 ‘포스트 고이즈미’로 총리가 될 경우 참배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향후 대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고이즈미 총리의 ‘8·15 참배’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이 54%로 36%인 찬성을 크게 웃돌았다.고이즈미 총리의 취임 직후였던 2001년 5월 조사에서는 8·15 참배에 대한 반대가 7%에 그쳤었다taein@seoul.co.kr
  • 日 차기총리 굳힌 아베 “김정일은 논리적 지도자”

    |도쿄 이춘규특파원|총리직이 거의 손 안에 들어왔다고 판단한 때문일까.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관방장관의 불출마 선언으로 사실상 총리 경선 독주 체제를 굳힌 대북 강경파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이성적인 지도자’로 평가했다. 아베 장관은 23일 요코하마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따라 방북한 경험을 떠올리며 “난 김 위원장이 논리적으로 얘기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무엇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하지만 북한은 예측 가능한 국가”라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93년 핵문제는 모두 미국과 직접 대화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아베 장관은 또 일본이 전향적으로 생각한다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화학적 변화’ 운운하며 대북 압박을 강조했던 며칠 전과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앞서 후쿠다 전 장관은 21일 밤 도쿄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장 큰 문제는 나이(70세)”라며 불출마 의사를 확인했다.현지 언론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이후 아베 장관 주도로 대북 경제제재가 발동되는 등 강경론이 득세하자 ‘국익 우선’을 앞세워 출마 의사를 접은 것으로 분석했다. 야스쿠니 참배를 둘러싼 국론 분열도 우려했다는 해석도 있다. 당 안에선 아소 다로 외상과 다니가키 사타카즈 재무상 등이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총재로 선출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등 후쿠다와 비슷한 노선을 천명한 다니가키는 22일 후쿠다표 흡수를 겨냥한 듯 “총리에 취임하면 일단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아사히 신문은 23일 “총리가 되더라도 아베 장관은 8월15일 참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소 외상도 출마에 필요한 국회의원 20명의 추천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그는 아베 장관과 참배, 대북 강경 자세 등에서는 비슷하지만 한국과 중국 외교 복원이라는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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