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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자호란 다시 읽기] (42) 일본의 氣가 살아나다 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42) 일본의 氣가 살아나다 Ⅰ

    정묘호란의 발생은 조선과 일본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쓰시마(對馬島)와 도쿠가와(德川) 바쿠후(幕府)는 동원할 수 있는 채널을 모두 가동하여 전쟁의 추이와 승패를 파악하려 했다. 그들은 조선과 후금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전쟁이 자신들에게 미칠 파장을 따져보았다. 그런데 분명한 것이 하나 있었다. 후금의 침략 때문에 곤경에 처한 조선의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점이다. 그것은 우선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완강한 거부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던 왜사(倭使)의 상경(上京)을 관철시키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 사람들의 대일 감정은 격앙되었다. 무고하게 침략하여 처참한 살육과 약탈을 자행한 데 대한 원한과 적개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특히 선릉(宣陵)과 정릉(靖陵) 등 왕릉을 파헤쳤던 일본군의 행위에 격분했다. 왜란 직후의 기록에는 일본을 가리켜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원수(萬世不共之讐)’라는 표현이 공공연히 등장한다. 심지어 1607년(선조 40) 일본에 갔던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가 소지했던 국서 속에도 ‘의리상 귀국과는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日은 같은 하늘 이고 살 수 없는 나라” 이 같은 적개심을 고려하면 임진왜란 직후 조선이 일본과 국교를 재개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쓰시마는 절박했다. 경제적으로 자활할 수 없었던 그들은 조선과의 교역이 생명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국교를 다시 열고 교역을 재개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599년 쓰시마는 국교 재개를 요청하기 위해 가케하시 시치다유(梯七太夫)와 요시조에 사콘(吉副左近) 등의 사절을 조선에 보냈다.1600년에는 유타니 야스케(柚谷彌介)를 다시 보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살아서 귀환하지 못했다. 쓰시마는 한편으로는 왜란 당시 잡아간 조선인 포로들을 돌려보내는 등 ‘성의’를 표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이 국교 재개 요청을 계속 거부하면 다시 침략이 있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실제 1603년, 사쓰마(薩摩)에 억류되어 있다가 송환되었던 하동(河東) 출신의 유학(幼學) 김광(金光)의 보고 내용은 심상치 않았다.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조선과 다시 화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과 ‘화친 요청을 거부할 경우 재침이 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조선은 긴장 속에서 승려 유정(惟政)을 탐적사(探賊使)란 명칭으로 파견하여 일본의 정세를 살피도록 했다.1605년 4월, 유정은 후시미성(伏見城)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화친에 대한 그의 의도를 탐지하고 조선인 포로들을 데리고 귀국했다. 조선은 이어 ‘일본이 먼저 화친을 요청하는 국서(國書)를 보낼 것’,‘선릉과 정릉을 파헤친 범인(犯陵賊)을 묶어 보낼 것’,‘조선인 포로들을 돌려보낼 것’ 등을 국교 재개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쓰시마는 조선이 제시한 요구에 신속히 응답했다. 그들은 1606년 9월, 이에야스 명의의 국서와 범릉적을 조선에 보냈다. 국서는 위조된 것이었고, 범릉적 또한 날조된 인물들이었다. 조선은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문제를 덮어두었다. 이윽고 1607년 조선은 강화(講和)를 위해 회답겸쇄환사라는 명칭으로 통신사(通信使)를 일본에 파견했다. 임진왜란으로 단절된 양국의 국교가 회복되는 출발점이었다.1609년(광해군 1)에는 기유약조(己酉約條)를 맺어 쓰시마와의 교역을 허락했다.1617년에는 2차 회답겸쇄환사를 보내 도쿠가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잔당 세력을 소탕한 것을 축하했다. 조선이 이렇게 적개심을 억누르면서 일본과 국교를 재개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일본측의 간청과 협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더하여 북방에서 날로 고조되고 있던 누르하치의 위협을 염두에 둔 조처이기도 했다. 누르하치의 위협에 대처하려면 일본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서북방과 동남방 양쪽 모두를 적으로 만들 수 없는 지정학적 조건이 작용했던 것이다. ●누르하치 세력 커지자 일본과 국교재개 국교를 재개하고 교역을 허용했지만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의식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았다. 조선 정부는, 쓰시마에서 왕래하는 교역선의 숫자를 왜란 이전에 비해 대폭 줄였고 일본인들에 대한 감시도 강화했다. 특히 왜사들이 서울로 올라오는 것은 엄격히 금지했다. 과거 그들에게 상경을 허용함으로써 부산에서 서울에 이르는 산천 형세와 지리 정보가 모두 유출되었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조처였다. 쓰시마는 상경을 불허한 조선의 조처에 답답해했다. 그러나 조선은 요지부동이었다. 정묘호란의 발생은 상황에 변화를 몰고 왔다. 조선은 후금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서북방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가고 있을 때부터 그 사실을 왜관(倭館)의 일본인들이 알지 못하도록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전쟁이 일어난 판국에 언제까지나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선은 1627년 2월, 정묘호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왜관에 통보하고 전란이 끝날 때까지 사선(使船)의 파견을 중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묘호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쓰시마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쓰시마 도주(島主) 소오 요시나리(宗義成)는 조선에 사람을 보내 ‘이미 파견한 선박을 회항(回航)시키는 것은 어렵고, 그럴 경우 조선이 훨씬 더 많은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또한 조선을 돕기 위해 병력을 보내고 조총(鳥銃) 등의 무기를 원조할 수 있다고 제의했다. 쓰시마는 정묘란을, 위기에 처한 조선으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얻어내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일본은 여진을 달단()이라 불렀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집권 무렵부터 만주의 정세와 여진의 동향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이미 1592년 여름, 함경도를 점령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두만강을 건너 여진 마을에 침입하여 그들과 군사적으로 접촉했던 경험이 있었다. 이후 달단이 더욱 강성해져 후금을 건국하고 요동을 점령하자 일본의 위기의식은 높아갔다. 도쿠가와 바쿠후는, 후금이 1621년 요동을 점령했다는 정보를 당시 나가사키(長崎)에 왕래했던 중국상인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1623년 새로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는, 후금 관련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여 보고하지 않았다고 쓰시마의 야나가와 시게오키(柳川調興)를 질책했다. 다급해진 소오 요시나리와 야나가와 시게오키는 조선에 조총 등을 보내는 한편, 요동 사정을 탐문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이 여전히 상경을 허용하지 않자 쓰시마 측의 조바심은 높아갔다. ●“상경길 안 열면 문제 생길 것” 공갈치는 일본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쓰시마 측은 위의 전례를 흘려 조선을 압박했다. 즉 ‘전에도 바쿠후가 요동 사정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질책했는데, 만일 이번에 야나가와가 잘 주선하지 않으면 바쿠후가 요동을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킬 것이고 그러면 조선과 쓰시마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1627년 11월, 소오 요시나리는 에도(江戶)로 가서 정묘호란과 관련된 전후 상황을 바쿠후에 보고했다. 조선과 대륙 정세 변화에 민감했던 바쿠후는 요시나리에게 조선과 대륙 정세를 상세히 조사하여 다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1628년 11월, 쓰시마로 돌아온 요시나리는 승려 겐포(玄方)를 차출했다. 1629년 윤 2월, 겐포는 ‘조선과 대륙 정세 파악’이라는 중책을 안고 부산에 상륙했다. 요시나리는 이미 조선에 서계(書契)를 보내 겐포 일행의 상경을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조선은 여전히 거부했지만 이번에는 겐포 일행도 물러서지 않았다. 상경을 허용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공갈을 쳤다. 정묘호란으로 수세(守勢)에 처한 조선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후쿠다 새달16일 訪美 부시와 정상회담 예정

    |도쿄 박홍기특파원|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다음달 16일 미국을 방문,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질 전망이다. 21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후쿠다 총리는 취임 이후 첫 해외 순방지로 다음달 16일 미국을 방문,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한 최종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후쿠다 총리는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해상자위대의 인도양 철수에 따른 새로운 법안인 `보급지원특별법´의 추진 등에 대해 설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hkpark@seoul.co.kr
  • 도쿄대 로스쿨 하세베 야스오 학장 인터뷰

    도쿄대 로스쿨 하세베 야스오 학장 인터뷰

    |도쿄 박홍기특파원|“로스쿨의 설립은 정부가 규정한 준칙주의를 충족시키면 가능하다. 최소 조건이다. 때문에 로스쿨의 정원이 30명인 대학도 있는 반면 300명인 대학도 있다. 그만큼 다양하다.” 일본의 74개 로스쿨 가운데 최다 정원인 300명을 둔 데다 최고수준인 일본 도쿄대 로스쿨 하세베 야스오(51) 학장은 “로스쿨 설립이 대학의 자율에 맡겨진 만큼 정부는 엄격한 평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서 “대학은 자율에 따른 질 좋은 교육이라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 로스쿨은 지난 2004년 64개교로 출발, 현재 74개교(정원 5825명)에 이른다. ▶로스쿨의 총정원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데. -정부는 오는 2010년부터 연간 3000명씩의 변호사를 배출할 방침이다.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여전히 1500명선을 주장하고 있다. 사회적 수용이 어렵다는 이유를 댄다. 변호사 양성은 수요자의 법률 서비스 측면에서 접근하는 게 옳다. 변호사가 적으면 경쟁도 적어진다. 자리에 안주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질도 낮아진다. 변호사 수의 증가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유명한 로펌의 취업은 언제나 힘들다. 취업난은 불가피하다. ▶당초 일본은 30∼40개의 로스쿨을 구상했었는데. -로스쿨이 갖는 위상 때문이다. 로스쿨을 설립한 대학이 ‘주요 대학’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영난을 겪는 대학들이 로스쿨을 설립하려는 이유로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로스쿨은 설립준칙을 맞추고 있다. 대학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합격자 수와 합격률을 겨냥, 편법을 쓰는 대학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도쿄대 로스쿨의 정원은 300명이다. 별다른 문제는 없나.(로스쿨 정원이 300명인 곳은 3곳,30∼80명인 곳도 54개교나 된다.) -교원 수를 비롯, 시설·설비 등의 준칙에 따른 결정이다. 전임교원이 최소한 12명은 돼야 한다. 또 전임교원 가운데 20% 정도는 실무경험을 가진 교원에게 할애해야 한다. 도쿄대 로스쿨의 교원은 전임교수 83명과 비상근강사 21명 등 모두 104명이다. 학생의 교육·지도에 문제가 없다. ▶한국에서는 로스쿨 정원에 대한 논란이 크다. -사회적 구조와 실정이 다르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대학 측과 변호사 측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 로스쿨 설립에는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일본의 대학 가운데는 로스쿨의 정원을 경영에 대비해 따지려는 경향도 없지 않다.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주된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일본 로스쿨의 평가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로스쿨 출신들이 연수를 마치고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않았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고서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법학 교육의 패턴이 바뀌는 등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과거 사법시험의 문제는 암기만으로도 풀 수 있었지만 신사법시험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상황 판단력 등 종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로스쿨 수업은 암기가 아닌 문답 위주의 소크라테스식 교육법을 쓰고 있다. ▶도쿄대를 비롯, 로스쿨을 도입한 대학들이 법학부를 폐지하지 않았는데. -법학부의 역할이 남아 있다. 대학은 법조인만 양성하는 곳이 아니다. 사회에는 법지식과 법학 출신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많다. 공무원도, 매스컴도, 기업도 한 사례다. ▶한국의 로스쿨에 한마디 한다면. -원론적이지만 질 좋은 교육을 착실하게 해나가는 것밖에 없다. 좋은 교재 및 교육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로스쿨 이전과는 전혀 다르다. 다소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합격률과 합격자 수에 집착하는 교육은 법지식은 물론 소양과 정의 등을 겸비한 법조인을 키우려는 로스쿨의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 hkpark@seoul.co.kr ●하세베 학장 도쿄대 법대 출신으로 1979년 가쿠슈인대 법대 조교수를 거쳐 95년부터 도쿄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신사법시험 출제위원이다.
  • 北·日수교 실무회의 사전 조율

    |도쿄 박홍기특파원|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교섭 담당 실무책임자들이 지난 13일부터 중국 선양에서 올해 안에 국교정상화 실무회의를 열기 위한 비공식 협의에 들어갔다. 14일 일본의 언론에 따르면 북한의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담당대사와 일본의 야마다 시게오 외무성 동북아 과장이 실무회의를 위한 일정과 의제 등을 사전 조율하고 있다. 6자회담의 장소가 아닌 곳에서 북·일 실무 책임자들이 접촉을 하기는 후쿠다 야스오 정권 들어 처음이다. 특히 후쿠다 총리는 대북 관계에서 대화를 중시하는 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일본의 대응을 지켜본다는 자세를 내보인 만큼 관계 개선의 걸림돌인 납치문제를 둘러싼 대화의 진전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일본 측은 북한이 요구하는 일제 강점기의 ‘과거 청산’뿐만 아니라 북·일의 납치문제 합동조사 또는 북한의 납치문제 재조사 등에 대해서도 협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이날 “북·미 협의에서도 핵시설의 연내 불능화를 목표로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북·일 실무회의에서도 구체적인 성과가 요구된다.”며 실무회의 재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이 일본과의 비공식 협의에 나선 배경에는 6자회담에서 합의한 비핵화 프로세스를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해 한국과 미국, 중국 등 3국이 강력히 거들고 나섰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북한 역시 일본을 따돌릴 경우, 비핵화 프로세스가 늦어져 경제지원은 물론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도 영향을 준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일 실무회의는 지난 9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렸지만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가능한 한 자주 대화를 계속한다.”는 데만 의견을 일치를 봤다. hkpark@seoul.co.kr
  • [특파원 칼럼] 일본 로스쿨 타산지석으로/박홍기 도쿄 특파원

    일본에서 로스쿨을 시행한 지 4년째인데도 말들이 많다. 합격률 저조에다 문제 유출의혹, 취업난 등 예상치 않았던 부작용과 폐해가 속속 터져 나오는 까닭에서다. 일본은 2004년 ‘법조에 다채롭고 우수한 인재를 등용한다.’는 취지 아래 야심차게 로스쿨을 도입했다. 현재 로스쿨은 74개교에 정원이 5825명이다. 당초 30∼40개교에 4000명 정도를 구상했다. 그렇지만 ‘정치적 입김’속에 설립준칙주의를 채택했다.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로스쿨 유치가 가능해져 난립현상을 낳았다. 로스쿨 출신들의 신사법시험 합격률도 법무성의 예상치인 70∼80%에 크게 못 미쳤다. 지난해 법학을 전공한 2년과정 로스쿨 출신의 합격률은 46.0%, 올해 법학을 이수하지 않은 3년과정의 로스쿨 출신은 32.3%를 기록했다. 로스쿨 출신들은 5년 동안 3차례만 응시할 수 있다. 해마다 응시자가 누적돼 높은 경쟁률만큼이나 ‘법조인 낭인’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구조다. 대학별 합격률은 0∼60%대로 격차가 크다. 합격률이 낮은 대학들은 비상이 걸렸다.‘합격률=대학 위상’이라는 등식에서다. 한국에서도 통용될 수밖에 없는 등식이다. 편법도 등장했다. 지난 7월 신사법시험의 출제에 참여한 고사위원인 게이오대 교수가 학생들에게 본시험에 나올 문제 유형을 미리 알려준 사실이 적발됐다. 물의를 빚고 사직한 교수의 “합격자수를 유지하길 원했다.”는 말처럼 대학이나 교수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전체의 70%가 넘는 54개교가 시험에 대비, 답안지 작성을 위한 테크닉 연습까지 했다. 고사위원도 7명이나 끼어있었다. 시험부정 여부는 가려내지 못한 채 마무리됐지만 시험에 대한 불신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게다가 사법개혁의 기치와는 달리 암기식 교육체제로 회귀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 처지다. 로스쿨 학생들은 별도의 전문학원마저 찾고 있다. ‘법조인 양산’에 따른 법조인의 취업난도 심각하다. 해마다 2500∼3000명씩 배출될 변호사들을 수용할 사회적 준비가 부족한 탓이다. 최근 일본변호사협회가 새내기 변호사들의 취업 창구를 마련, 기업이나 지자체 등에 채용 홍보에 나서고 있다. 일본 로스쿨은 분명 크고 작은 문제점들을 드러냈다. 한편에서 ‘실패’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판단은 이르다. 야스오 하세베 도쿄대 로스쿨학장은 “시행 초기”라면서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고쳐나가면 된다.”며 진행형임을 강조했다. 실제 로스쿨 교수들의 출제위원 참여 배제와 함께 로스쿨의 평가 강화 등 다양한 보완책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은 2009년 로스쿨에 첫발을 디딘다. 로스쿨의 논의를 시작한 지 무려 15년만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한국의 로스쿨 잠정안을 벤치마킹한 일본에 비해서도 6년이나 늦다. 그러면서 무척이나 시끄럽다. 로스쿨의 정원을 놓고도 갈팡질팡하는 꼴이다. 더욱이 정부는 로스쿨 정원 배정권에다 설치·인가권까지 쥐고 자로 재듯 분배할 작정인 듯싶다.47개 대학들은 로스쿨만 유치하면 금세 ‘특출난’ 대학으로 탈바꿈되는 것처럼 달려들고 있다. 변호사협회는 아예 로스쿨 정원의 축소를 주장한다. 일본 로스쿨을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다. 정부는 로스쿨의 방향성을 확실히 바로잡아야 한다. 또 가능한 한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 경쟁원리를 유도하는 게 옳다. 로스쿨의 성패는 합격자수나 합격률이 아니라 질좋은 교육을 통해 실력을 물론 폭넓은 교양과 도덕성을 제대로 갖춘 법률가를 얼마나 육성, 배출하느냐에 달렸다. 그래야 실질적인 사법개혁도 가능하다. 이해 당사자들은 로스쿨의 취지를 살리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박홍기 도쿄 특파원 hkpark@seoul.co.kr
  • 후쿠다 총리 “대북문제 포괄적 해결”

    |도쿄 박홍기특파원|북한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 담당대사는 11일 후쿠다 야스오 정권의 대북 노선에 대해 “압력보다는 대화를 중시하는 자세를 명확히 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때마침 후쿠다 총리가 그동안 일본이 펼쳤던 대북 압력노선의 수정 가능성을 내비침에 따라 북·일 국교 정상화에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아베 신조 정권과 달리 대화 의지가 짙어졌기 때문이다. 송 대사는 이날 평양에서 교도통신과 가진 회견에서 “우리는 (후쿠다 정권의 대북정책을)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고위급이 지난달 25일 출범한 후쿠다 정권의 대북 노선에 대해 의견을 밝히기는 처음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3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후쿠다 총리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지켜보겠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송 대사는 또 “상대가 대화를 하자고 하는데 우리가 피할 생각은 없다.”면서 일본과의 대화 의욕도 나타냈다. 개인적 견해를 전제로 “이웃 나라와 관계를 좋게 하는 게 양 국민의 기대이기도 하다.”면서 “그에 걸맞은 일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도 강조했다. 납치문제와 관련,“입장 차이를 메우기 위해 협의가 필요하다.”면서 6자회담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를 통해 과거청산과 함께 납치문제도 계속 다뤄나갈 방침을 내비쳤다. 후쿠다 총리는 10일 중의원 예산위에서 대북 정책에 대해 “포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핵·납치·미사일 등의 현안을 함께 묶은 ‘포괄적 접근 방식’을 제시했다. 아베 전 총리의 “납치문제의 해결없이 국교정상화는 없다.”는 압력노선에 대한 분명한 궤도 수정이다. 한편 야마사키 다쿠 전 자민당 부총재가 후쿠다 총리의 대북특사 자격으로 곧 방북할 것이라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은 신빙성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일본의 한 외교소식통은 “후쿠다 총리가 대북 유화정책을 견지하고 있지만 현 자민당의 역학관계에서 비주류에 속한 야마사키 전 부총재를 대북특사로 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면서 “야마사키 전 부총재도 당분간 방북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hkpark@seoul.co.kr
  • 2007 큐브퍼즐 맞추기 최강자는 누구?

    2007년 루빅스 큐브퍼즐의 최강자는 누구일까? 색색의 플라스틱 주사위들로 이루어진 정육면체의 각 면을 같은 빛깔로 맞추는 큐브퍼즐 맞추기. 올해에도 루빅스 큐브(Rubik’s Cube)퍼즐의 최강자를 가려내기 위한 2007세계 타이틀전이 열려 퍼즐마니아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난 5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 루빅스 큐브 챔피언전’(World Rubik’s Cube Championship 2007)에서는 33개국에서 모여든 300여명의 선수들이 신기록을 위한 접전을 펼쳤다. 선수들은 ‘클래식 3x3·4x4·5x5’부문, 한 손으로만 맞추는 부문, 눈 가리고 맞추는 부문 등 다양한 형식의 시합에서 그동안 갈고 닦아온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눈 가리고 퍼즐 맞추기 부문에서는 모든 참가자들이 각각의 큐브의 위치를 암기한 채 퍼즐을 맞춰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눈을 가리고 맞추는 ‘4x4’부문에서는 헝가리의 마타야스 쿠티(Matayas Kuti)가 6분 12초 32로 세계신기록을 달성했으며 폴란드의 그르즈고즈 프루삭(Grzegorz Prusak)은 ‘스퀘어-1’부문에서 20.40초로 우승했다. 또 메가밍크스(Megaminx)부문에서는 네덜란드의 에릭 액커스디쥑(Erik Akkersdijk)이 1분 17초 46으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한편 지난 5월에는 3x3 큐브 싱글 부문에서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스페인의 프렌크만 장퀘뇨(Frenchman Jacquinot)가 9.86초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으며, 한국의 유정민은 올 1월에 3x3큐브 양손부문과 한 손 부문에서 11.76초와 19.34초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해 전세계 큐브마니아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번 ‘세계 루빅스 큐브 챔피온전’의 다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 2x2 큐브 부문: 폴란드의 루카스 시알론 3.91초 (세계신기록) 루빅스 매직 부문: 헝가리의 로버트 위켄 1.19초 루빅스 마스터 매직 부문: 헝가리의 마테 홀베스 2.24초 피라밍크스 부문: 폴란드의 그레즈고즈 루크자이나 7.74초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메디컬 라운지] 경구용 피임약 ‘야스민’ 출시

    다국적제약사인 바이엘헬스케어는 지루성 피부와 월경증후군 증상을 개선하는 경구용 피임약 ‘야스민’을 최근 출시했다. 회사측은 “여성호르몬인 ‘에치닐에스트라디올’과 ‘드로스피레논’을 주성분으로 하는 야스민은 체중 증가를 억제하고, 피지를 줄여 여드름 등 지루성 피부를 개선하며, 생리 전후에 몸이 붓는 증상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며 “야스민은 세계반도핑기구(WADA)로부터 여성 운동선수의 도핑검사 제외 약물로 인정받은 유일한 피임약”이라고 말했다. 전문의약품.
  • [2007 남북정상선언 이후] 美·中·日 반응

    ■ 미국 |워싱턴 이도운특파원|4일 끝난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인 ‘10·4 선언’에 대해 미국에서는 다양한 반응과 평가가 나왔다. 우선 미 정부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이었으나 선언의 이행보다는 북한의 비핵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5일 “남북 정상의 한반도 평화체제 추진 합의는 미국 등 6자회담 당사국들의 기존 입장과 일치하는 것으로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남북대화를 권장해 왔으나 6자회담의 맥락에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고든 존드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평화협정 체결과 북한의 테러지원국 제외, 북·미관계 정상화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관련한 ‘행동 대 행동’의 진전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며 북한의 선 비핵화를 강조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미 한반도 전문가들의 평가는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 등에 따라 편차가 컸다. 특히 앞으로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에 대해서는 시각차가 뚜렷했다.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소장은 “의회의 반대 때문에 테러지원국 해제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는 행정부의 고유 권한”이라면서 “조지 부시 행정부가 매우 이른 시기에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남북 국방장관 회담 개최에 대해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은 “북한군이 한국군과의 대화를 꺼려했던 점에 비춰볼 때 매우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브루스 벡톨 해병참모대학 교수는 “서해 평화수역 등 북한측의 이해관계를 뒷받침하기 위한 회담”이라며 경계심을 표시했다. 이밖에 ‘10·4선언’에서 북핵 6자회담에서 체결된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이행을 강조한 것과 관련,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은 “양측이 남북간 회담과 6자회담이 상호 보완적임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마르커스 놀랜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0·4 선언에서 핵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은 것이나 우선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고 지적했다. dawn@seoul.co.kr ■ 중국 |베이징 이지운특파원|‘풍부한 내용, 중요한 성과.’ 신화통신은 5일 ‘남북선언 해석’이라는 제목을 달고 남북정상회담을 이렇게 요약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첫 분석 및 해설보도다. 지금까지는 사실 전달 위주로 보도해 왔었다. 중국 외교부가 4일 오후가 돼서야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얻어진 적극적인 성과에 환영을 표시한다.”고 공식 입장을 표명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신화통신은 평화, 군사 신뢰 수립, 경제협력과 문화교류 측면에서 회담이 상당히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7년 전의 선언보다 실질적이며 실천가능한 일들을 담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선언이 현재 한반도가 당면한 각종 현안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담고 있는 만큼 실천을 위해 가야할 길도 그만큼 멀다.”고 덧붙였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간의 논의’에 대해서는 해석을 달지 않았다. 다만 “선언은 남북간 협력의 범위를 양자관계에서 국제문제까지 확대시켰다.”는 표현이 주목된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풍부한 성과”라면서도 “실현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말로 변화의 의지가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평했다. 신문은 그 일례로 “서울 방문에 대해 확언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남북 경협과 관련,“남쪽이 많은 지원을 하겠지만 이에 대한 대가가 어떻게 돌아올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분석했다.“서해 해역의 조정은 군사적 문제여서 앞으로 많은 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두 등 중국의 일부 인터넷 매체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 이상 문제를 부인했다.’는 등 가십성 화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앞서 중국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이 적극적인 성과를 거둔 것을 환영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류젠차오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성명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 구축에 도움이 되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유리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국영 CCTV 뉴스채널은 이날 선언이 발표되기 직전인 낮 12시(한국시간 오후 1시) 뉴스 머리 기사에서 ‘10·4 선언’이 곧 발표될 것이라고 보도한데 이어 발표 후 자세한 내용을 소개했다. jj@seoul.co.kr ■ 일본 |도쿄 박홍기특파원|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5일 남북정상회담 및 공동선언과 관련,“긴장관계가 없어지는 것은 좋은 것이다.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평가했다. 또 남북 및 북·미 관계의 진전 상황에서 일본이 소외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핵 문제가 진전되는 가운데 북한과 일본간의 관계, 납치 문제의 해결을 위해 더욱 심혈을 기울여 협상해야 한다.”며 북·일간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의 테러 지원국 해제 문제와 관련,“(납치와 핵문제) 다 잘 해결되면 해제되어도 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면서 “그러나 진전 상황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전체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무라 마사히코 외무상도 “6자회담 합의 이행 및 한국전쟁 종전선언도 포함돼 전체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된 것 같다.”고 환영했다. 6자회담 수석대표인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이날 자민당 외교관계 회의에 참석, 북·일 국교정상화 등을 협의할 북·일 실무그룹 회의가 연내에 조속히 개최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일본 언론은 남북정상회담 성과에 대해 북한의 핵폐기를 전제로,‘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논조를 폈다. 평가는 그다지 후하지 않은 편이다. 아사히신문은 5일 ‘말은 많이 포함됐지만’이라는 제목 사설에서 “갖가지 아이디어가 포함됐다. 어떻게 실현시킬지 걱정된다. 전개에 주목한다.”고 주장했다. 또 “7년 전의 공동선언은 짧고 추상적인 표현이 많았는데 이번 선언은 보다 구체적이었다.”면서 “선언을 실행해 나갈 시스템을 만들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핵폐기 없이는 평화와 번영도 없다.’는 사설을 통해 “평화도 통일도 북한 핵폐기 없이는 실현되지 않는다. 핵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일본은 용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6자 회담의 틀 밖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대규모 지원을 실시한다면 핵문제 해결은 오히려 멀어진다.”면서 “차기 정권도 명심해야 할 중대한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마이니치신문은 ‘선언을 핵폐기로 살려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남북의 평화번영은 핵폐기가 전제다.’도쿄신문은 ‘평화번영이라고 말한다면’이라는 사설을 통해 “북한은 핵불능화와 함께 모든 핵 계획을 완전히 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hkpark@seoul.co.kr
  • [6자회담 합의 이후] 힐 “별도 양해사항 있어… 내주 세부협의”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 등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미국과 북한간의 협상이 6자회담 공동합의문 채택 이후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위해 북한측과 다음주 일련의 회담을 열어 세부 협의를 벌일 예정이라고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3일(현지시간) 밝혔다. 미국 정부는 아울러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위한 미 의회와의 협의를 4일 개시, 국내 절차 밟기에도 착수했다. 이는 미국이 실질적으로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작업에 들어간 것을 의미한다.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힐 차관보는 북핵의 연내 불능화를 명시한 ‘10·3’ 합의와 관련, 북한과 미국간에 공개되지 않은 ‘일련의 별도 양해사항’이 있다고 밝혔다. 북·미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시기 등 주요 내용에 대해 ‘이면 합의’를 했음을 시사한 것이다. 힐 차관보는 이날 회견을 통해 북·미 사이에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해 “아주 분명한 이해가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단히 신속하게 움직이려 한다.”고 설명했다. 시기와 의회 설득 방안 등에 대한 두 나라의 구체적 이면 합의를 지적한 것이다. 또 다음주 북·미간 협의에선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와 양자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6자회담 합의문에 명시된 신뢰 구축 증진의 일환으로 북한과의 상호 문화교류도 늘려나갈 것이라고 힐 차관보는 덧붙였다. 조지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미 행정부 고위관계자들이 한 목소리로 6자 북핵 ‘10·3합의’가 “중대한 진전”이라고 환영하고 나선 것도 이면합의설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 전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 반대한다는 강경입장을 보였던 일본 정부가 납치문제 해결 방안이 빠져 있는 ‘10·3합의’를 적극 환영하고 나선 것도 이면합의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북·미관계가 급진전될 경우 북·일관계 발전도 기대된다. 최근 후쿠다 야스오 총리 취임 뒤 대북한 관계에 유연성을 보이기 시작한 일본 정부는 외교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 등에 유연하게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북·미간의 별도 양해사항이 하나씩 실체를 드러낼 경우 ‘10·3합의’의 성격과 의미를 둘러싼 논란이 일 가능성도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dawn@seoul.co.kr
  • 이명박 ‘4강 순방’ 꼬이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의 ‘4강 외교’ 전략이 실제로 결실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방문 일정이 꼬이고, 추진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도 나오는 까닭이다. 우선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의 면담이 핵심이었던 미국 방문이 불투명하다. 한나라당은 2일 “현재까지는 달라진 게 전혀 없다.”고 거듭 확인했지만, 주한 미대사관은 “부시 대통령과 이 후보의 면담계획이 없다는 게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못박았다.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 계획이 확정되기 전에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외교 당국이 불쾌감을 표시하는 등 논란을 빚은 것부터 이 후보에겐 부담이다. 야당 대선후보로서 외교부 등 공식 라인이 아닌 사적 라인을 통해 면담을 추진하다 보니 의견 조율이 매끄럽지 못했다.‘실용’을 중시하는 이 후보 스타일을 ‘의전’,‘관례’를 중시하는 외교가에선 곤혹스럽게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 방문은 신임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일단 노무현 대통령과 새달 면담을 마친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신임 총리가 대통령보다 야당 대선후보를 먼저 만나는 것 자체가 외교적 결례여서 그렇다.새달 중순 이후에 일본을 방문한다고 해도 대선이 임박한 시점이라 돌발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지난달 말로 예정돼 있던 러시아 방문도 총리 사퇴와 내각교체로 어수선한 현지 사정으로 일단은 보류 상태다. 대통합민주신당 전민용 부대변인은 “이 후보가 비공식 개인선을 이용해 면담을 성사시키려다 물의를 빚은 것은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과거 구태의연했던 시절 기업의 비즈니스 방식을 보는 듯했다.”면서 “이 후보의 구태와 무능이 드러난 한 편의 드라마를 본 것 같다.”고 꼬집었다.박지연 한상우기자 anne02@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日“납치문제 해결땐 국교정상화 노력”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은 2일부터 열릴 남북정상회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상회담의 성과에 따라 강경 대북정책을 나름대로 다듬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은 일본 측에 일·북 관계의 분수령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1일 취임한 뒤 처음 가진 국회 연설에서 북한의 납치문제와 관련,“중대한 인권문제”라고 규정한 뒤 “모든 납치 피해자를 하루 빨리 귀국시키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 북·일 국교정상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을 다하겠다.”며 대북 정책의 방향을 분명히 제시했다. 후쿠다 총리의 발언은 남북정상회담을 겨냥한 메시지로도 분석되고 있다. 물론 압력보다 대화를 중시하겠다는 평소 소신에 대한 공표이기도 하다. 후쿠다 총리는 앞서 지난달 28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문제를 잘 부탁한다.”고 직접 당부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북·일 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특히 평화구축과 경제협력 강화 등의 합의가 이뤄질 경우,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무엇보다 납치문제에서 다소 진전만 이뤄진다면 일본 정부측에서는 정상회담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면서 “북한도 경제 회생을 위해 일본과의 경제협력을 필요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즈미 하지메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미 관계가 좋아지고 있는 가운데 남북관계가 더 나아지면 북한은 일본과의 협상에도 적극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종원 릿쿄대 교수는 “후쿠다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북한과의 교착된 관계를 풀려는 의지를 내비쳤다.”면서 “정상회담의 결과가 좋으면 최근 6자회담의 진전과 맞물려 북·일 관계도 선순환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또 “후쿠다 총리도 대북 정책의 변화를 꾀할 명분을 갖게 된다.”면서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어떤 형식으로 ‘인도적 차원의 문제’를 거론할지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hkpark@seoul.co.kr
  • 노대통령·후쿠다 일본 총리 11월 싱가포르서 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신임총리와 전화통화를 갖고 총리 취임 축하의 뜻을 전했다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후쿠다 총리의 요청으로 오전 11시부터 10분 동안 이뤄진 통화에서 두 정상은 한·일 관계가 두 나라는 물론 동북아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오는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세안+3국(한·중·일) 정상회의 때 양국 정상회담을 갖고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기로 했다.후쿠다 총리는 지난 26일 노 대통령이 총리 선출을 축하하는 축전을 보낸 데 사의를 표하고,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협조를 노 대통령에게 당부했다.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미얀마 유혈사태 확산] 中, 국익과 국제여론 사이 고민

    미얀마 반정부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지면서 최우방인 중국의 대응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국가 이익과 국제 여론을 저울질하며 미적거리는 형국이다. 중국은 미얀마 20여곳에서 해저유전과 가스전 개발사업을 벌이고, 군사정권 출범 이후 14억달러어치 이상의 무기를 제공하는 등 미얀마 최대 교역국이자 오랜 동맹국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미얀마 군부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도 중국이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애초 “미얀마 사태의 조속한 안정을 희망하지만 이번 일에는 간섭하지 않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 논의에 대해서도 “현지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가 27일 시위대에 발포를 가해 일본인 사진기자 등 10명이 사망하면서 국제 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중국도 당혹스러운 눈치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28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미얀마 사태 해결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같은 변화의 조짐을 뒷받침한다. 중국 정부는 미얀마에 외교부 당국자를 중심으로 한 대표단을 파견, 군부 핵심인사들과 만나 더 이상 희생자를 내지 않도록 자제를 촉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중국으로선 미얀마 군부의 강제진압으로 인한 주변 정세 불안과 국제적 비난을 모른 척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가뜩이나 중국은 수단 다르푸르 사태로 인권문제에 대해 국제사회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베이징의 한 전문가는 이날 “중국이 회유를 할 수는 있겠지만, 구체적인 압박을 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회의적으로 전망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미얀마의 민주항쟁 여파가 중국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중국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자외선을 쏘면 색깔이 나타나는 특수잉크 개발

    자외선을 쏘면 색깔이 나타나는 특수잉크 개발

    자외선을 비추면 색깔을 드러내는 특수잉크가 개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특수잉크로 덧발라진 유리판에 가시광선보다 짧은 파장인 자외선을 비추면 다양한 색채를 띤 형상이 나타나는 것. 자외선을 제거하면 다시 원래 상태의 색깔로 돌아오는 이 특수잉크는 앞으로 ID카드나 실내장식 등에 유용히 쓰여질 전망이다. 이 특수잉크를 개발한 일본 나라첨단과학기술대학원(奈良先端科学技術大学院大学)대학의 하세가와 야스치카(長谷川靖哉)교수팀은 “보라색 LED(발광다이오드)나 블랙라이트(일종의 자외선라이트) 등으로 자외선을 쏘면 파랑색, 녹색을 내는 무색 잉크는 비교적 쉽게 개발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이번연구에서 빨강색을 내는 무색 잉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연구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다양한 색깔을 내려면 빛의 3원색(빨강·파랑·초록)이 필요한데 빨강색 무색잉크가 개발돼 비로소 천연색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하세가와 교수는 ”빨강색을 띠는 ‘유로퓸’(europium)이라는 원소 주변에 집광(集光)능력을 가진 유기화합물을 둘러싸게 해 발광도를 높임으로써 가능했다.”며 빨강색 투명잉크의 제조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유리나 비닐 등에도 특수잉크가 그려질 수 있다.”며 “그림 자체가 발광하므로 일루미네이션(전구나 네온관을 이용해서 조명한 장식이나 광고)에 쓰이면 더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아사히신문 인터넷판(자외선을 비춘 후 색깔이 드러난 그림)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8일 TV 하이라이트]

    ●내 곁에 있어!(MBC 오전 7시50분) 정자의 칠순잔치가 벌어지자 민 회장을 비롯해 금녀와 홍시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정자에게 축하인사를 건낸다. 이 자리에서 정자는 다시 한 번 은주에게 동건과 함께 아프리카로 떠날 것을 부탁한다. 또 은주에게 그곳에서 자신에게 전수받은 실력을 맘껏 뽐내고 돌아와 동건과 결혼하라고 말한다.   ●라이프 n 조이(YTN 오후 8시35분) 가을 분위기가 가득 담겨있는 예술과 문화의 도시, 경기도 파주로 낭만 여행을 떠나본다. 예술인 마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전시회로 마음의 양식을 채우고 동화 속에서 나올 듯한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시간을 갖는다. 가족, 연인과 함께 하는 지상낙원 파주에는 가을 향기 물씬 풍긴다.   ●로봇파워(EBS 오후 7시20분) 왕좌를 다시 차지한 제38대 배틀제왕 ‘런지’의 2연승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로봇파워 배틀로봇 막강 팀들이 대거 출전한다. 폴리페무스, 대박이, 붕붕이, 홍길동 등 4주일동안의 우승자들이 펼치는 제16대 미션 ‘휴머노이드 하키 챔피언’ 최강전. 제16대 최강 휴머노이드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60분 부모 ‘부모 행복찾기-아이 공부시킬 때마다 울화가 치밀어요’(EBS 오전 10시)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가 늘 걱정인 안현씨. 또래와도 잘 어울리고, 엄마·아빠를 먼저 생각하는 예쁜 아이지만 “공부하자.”는 말이 들리는 순간부터 짜증을 낸다. 기본적인 공부만 하라는 데도 책상 앞에만 앉으면 멍해져 엄마는 울화가 치민다.   ●김치 치즈 스마일(MBC 오후 8시20분) 병진은 기준과 수영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증거들이 속속들이 드러나자 의심은 점점 증폭되어만 간다. 한편, 대학연맹전 계영 본선 경기를 앞둔 수영부원들은 라이벌 팀이 자전거 무전여행을 다녀온 뒤 기록을 단축했다는 신문 기사에 자극을 받아 자신들도 자전거 무전여행을 떠나는데….   ●아시아의 창 `아프가니스탄, 잊혀진 진실´(KBS1 밤 1시25분) 세계를 경악게 했던 2001년의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테러의 본거지로 주목을 받는다.2002년 4월, 이란 출신의 여성감독 야스민 말렉나스르는 아프가니스탄 곳곳을 누볐다. 총 연장 5000km를 카메라와 함께 다니며 전후의 아프가니스탄과 사람들을 기록했다.
  • [박홍기특파원 도쿄 이야기] 후쿠다 총리 관망하는 日 국민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후하지 않다. 일단 냉정하게 관망하는 시점인 듯하다. 27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자체 조사한 후쿠다 내각의 지지율은 53%이다. 아베 신조 내각의 막판 지지율 33%선과 비교하면 올랐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출범 초기 지지율 78%, 아베 전 총리의 63%에 비하면 확실히 낮다. 초기 고이즈미나 아베 전 총리와 같은 인기가 없을뿐더러 후쿠다 총리에 대한 신선감이 떨어지는 탓이다. 특히 56%는 ‘낡은 자민당으로의 회귀’를 비꼬았다. 무려 65%는 자민당의 변화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자민당 주요당직을 비롯, 내각에 파벌의 우두머리들을 앉힌 후쿠다 총리를 겨냥한 비판이다.‘거당 체제’를 통한 당의 결속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겠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자신들만을 위한 정치’로 비쳐지는 이유에서다. 파벌정치와 함께 세습정치에 대한 시선도 예전같지 않다. 당장 후쿠다 총리가 장남인 다쓰오(40)를 총리 정무비서관으로 기용하자 “3대 총리를 만들기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비아냥섞인 지적도 적지 않다.2대에 걸친 ‘부자 총리 비서관’이라는 기록도 낳았다. 나아가 다쓰오는 이미 후쿠다 총리의 취임 이전부터 부친의 지역구 관리를 총괄하는 등 ‘지역구 상속 절차’를 밟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분명 고착화된 파벌 및 세습정치에 둔감하다. 당연시하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정작 정치에서 멀어지고 있다. 후쿠다 내각의 최우선 과제로 국민들의 67%가 ‘연금문제’를 꼽았다. 강점인 안정감·균형감을 지지한 만큼 연금 문제에서도 납득할 만한 해법의 제시를 요구하고 나선 셈이다. 따라서 후쿠다 총리가 ‘과도기 총리’,‘중계 총리’로 끝날지는 실질적인 정책을 얼마나 수행, 국민들의 신뢰와 평가를 얻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달렸다. hkpark@seoul.co.kr
  • [日 후쿠다 총리 시대 개막] “과거로의 회귀” 비판 해결해야

    [日 후쿠다 총리 시대 개막] “과거로의 회귀” 비판 해결해야

    |도쿄 박홍기특파원|자민당 총재이자 총리인 후쿠다 야스오의 어깨는 무겁다. 아베 신조 정권에 등을 돌린 민심을 회복, 정권 교체의 위기에 놓인 자민당을 다시 세워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탓이다. 여소야대의 현재 정국을 뚫기 위해 치러야 할 ‘중의원 해산·총선거’라는 새 게임에서 패하면 ‘구원투수’가 아닌 ‘패전투수’라는 최악의 오명을 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후쿠다 총리의 초점은 민주당의 파상 공세를 막아 정권을 유지하는 쪽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불안을 잠재워야 그의 당선 요인은 트레이드 마크인 안정·균형감이었다. 정권 공약으로 내건 ‘희망과 안심의 나라’에서 보듯 국민의 실생활을 겨냥했다. 아베 정권이 몰아붙인 ‘아름다운 나라’,‘전후체제의 탈피’와 같은 이념성이 강한 색채는 아예 빼냈다. 이반된 민심을 겨냥한 전략이다. 앞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참의원 선거의 참패를 가져온 연금관리부실 문제를 비롯해 정치자금의 투명화 제고, 지방과 도시 등의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한 해답을 시급히 내놓아야 한다. 국민들을 납득시켜야 할 처지다.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연장 문제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첫 시험대다. 인도양에서 해상자위대가 실시하는 다국적군 함정에 대한 급유지원의 근거법인 이 법은 오는 11월1일 시한이 만료되지만 민주당의 연장 반대로 벽에 부딪쳐 있다. 그는 법의 연장보다 해상자위대를 일단 철수시킨 뒤 민주당과 협의해 새 법을 제정, 다시 파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어설프게 연장을 강행하다 부결됐을 때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파벌정치’ 극복도 숙제 후쿠다 정권은 태생적 한계인 ‘파벌’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과거로의 회귀’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파벌 안배의 당직 및 내각 인사로 벌써 ‘파벌정치의 부활’,‘담합형 인사’라는 등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당의 간사장을 포함, 정책조정회장, 총무회장, 차기 중의원 선거를 대비해 신설한 선거대책총국장 등 당 4역을 ‘거당체제’의 결속이라는 명분 아래 파벌 영수로 채웠기 때문이다. 최대 파벌이자 총리가 속한 마치무라파의 회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는 외무상에서 각료들의 조정역할을 담당하는 관방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총선거 내년 3월 이후에 교도통신은 “파벌 총동원 인사라는 비판을 자초했다.”면서 “결국 조기 중의원 해산, 총선거를 위한 중계내각이라는 성격이 짙다.”고 지적했다. 후쿠다 총리는 25일 총재 선거과정에서 ‘(민주당과의) 합의 해산’이라고 언급한 중의원 해산 시점과 관련,“2008년도 예산안이 통과된 뒤”라고 거듭 밝혀 내년 3∼4월 이후를 검토 중임을 내비쳤다. hkpark@seoul.co.kr
  • “한일관계 발전 긴밀협력” 노대통령 후쿠다 총리에 축전

    노무현 대통령은 26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신임 총리의 선출을 축하하는 축전을 보냈다고 외교통상부가 밝혔다. 노 대통령은 축전에서 “후쿠다 총리의 선출을 축하하고, 한·일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日 후쿠다 총리 시대 개막] 후쿠다 새 총리는 누구

    [日 후쿠다 총리 시대 개막] 후쿠다 새 총리는 누구

    |도쿄 박홍기특파원|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선거 때 “나는 스페어(Spare·예비)다.”라며 출마 자체를 포기했었다. 또 “총리에 야심이 없다.70세가 돼 기력도 체력도 쇠약해지고 있다. 총리는 행동력이 없으면 감당해 낼 수 없다.”고도 했다. 그는 지난 14일 총재선거에 등록하면서 “평상시라면 출마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안됐다.”고 밝혔다. 상황을 비상사태로 규정, 불과 1년 전과 전혀 다른 상황을 연출할 수밖에 없었던 논리를 폈다. 결국 자민당 내의 9개의 파벌 중 8개파의 전폭적인 지지,‘파벌의 힘’을 등에 업고 총리에 올랐다. 그는 관방장관 시절 ‘그림자 장관’이라는 별칭처럼 튀지 않으면서도 국정을 조정해온 ‘균형감’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지난해 총재선거 당시 “본인의 능력, 인간성, 인격 등 모든 것을 감안해, 지금의 시점에서 제일 적임”이라며 후쿠다 전 장관을 추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71세에 ‘늦깎이 총리’에 취임하면서 최초의 ‘부자(父子) 총리’를 비롯, 일본 정치사에 적잖은 공식 기록을 남기게 됐다.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의 장남인 그는 17년 동안 마루젠 석유회사에서 근무하다 1976년 부친의 비서로 뒤늦게 정치에 발을 디뎠다. 승무원을 꿈꾸던 부인 기요코와 결혼할 때 “정치가는 되지 않는다.”라는 약속도 했지만 90년 2월 중의원에 나와 첫 당선된 이래 지금껏 6차례 의원에 선출됐다. 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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