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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윤조 “독도·위안부는 일본 자신의 문제 새 정부 출범부터는 파트너십 회복하길”

    심윤조 “독도·위안부는 일본 자신의 문제 새 정부 출범부터는 파트너십 회복하길”

    심윤조 새누리당 의원은 14일 한·일 국제 포럼에서 “독도 영토 분쟁, 역사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은 매년 반복되다 보니 이제 쿨하게 듣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면서 “국민들은 과민 반응을 보이지 말고 피해의식을 갖기보다 자신감을 갖고 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이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한·일 양국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가진 특별 강연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며 외교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그런 차원에서 당당하게 일본을 바라보자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과거사를 덮는다든지 무시하자는 의미는 아니다”라면서 “상수화(常數化)된 것에 일희일비하면 더 큰 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 의원은 이어 “한·일 관계 문제는 정부가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면서 “차세대가 중요한데, 정확한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치기 위한 ‘한·일 청소년 역사 공동 연구’ 등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이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인정하면 좋겠다”면서 “일본이 이 부분만 인정한다면 한·일 양국이 협력할 부분이 정말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또 “과거사 문제는 한·일 양자만의 문제라기보다 일본 스스로의 문제, 일본과 국제사회 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스스로 답을 해야 하는 문제라고 인식하고 인정하면 지금 당장은 괴로워도 중장기적으로 보면 국제사회에서 높은 위상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견해도 내놨다. 심 의원은 최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특사를 보내 친서를 전달한 내용을 언급하며 새 정부에서 한·일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아베 총리가 친서를 통해 한·일 관계 개선을 희망했고 박 당선인은 역사를 직시하면서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심 의원은 우려의 뜻도 함께 전했다. 그는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 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양국 관계는 장밋빛이었지만 그 이후 상황은 기대와 다르게 진행됐다”면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현 이명박 대통령이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심 의원은 아베 총리의 우익적 성향도 꼬집었다. 그는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고노 담화문’을 시정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발언도 했다”면서 “총리 취임 이후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진정성이 있는지, 전술적 차원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심 의원은 북한의 3차 핵실험 등으로 인해 조그마한 갈등도 자칫 잘못하면 국제사회 간 물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지도부가 교체되거나 집권 2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이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고노 “한일기본조약, 청구권 의거한 배상 규정 없어”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공식 인정한 ‘고노 담화’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은 14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2001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밝힌,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국립위령시설 건립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노 전 의장은 이날 서울신문, 일본 도쿄신문·주니치신문이 공동으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2013 한·일 미래의 길을 묻는다’라는 주제의 한·일 국제 포럼에서 특별강연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당시 고이즈미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일반 국민과 외국 국빈이 참배할 수 있는 새로운 국립위령시설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일본 정부는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인의에 반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1년 8월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한 후 국내외의 비판이 거세지자 그해 10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위령시설 건설을 약속했다. 그러나 일본 내 보수 진영이 새 위령시설이 야스쿠니 신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발하자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 건립을 유보하고 있다. 고노 전 의장은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에 대해 “군사력을 배경으로 일본의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독립을 빼앗은 역사적 사실”로 규정하며 “한·일 양국의 상호 신뢰 관계 구축은 일본의 확실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일 국교정상화를 이룬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대해 “청구권에 의거한 ‘배상’이 규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인의 식민지 피해 배상 요구에 대해 모든 대일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해 온 일본 정부의 입장과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고노 전 의장은 1977년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선언한 일본의 항구적인 군사대국화 포기 및 아시아 국가와의 연대를 담은 ‘후쿠다 독트린’을 거론하며 “일본 외교의 대단히 중요한 기본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현 아베 신조 총리의 평화헌법 개정 및 군사적 보통국가론 기조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노 전 의장은 향후 한·일 관계에 대해 “외교 안보와 경제적 협력 관계 구축뿐 아니라 대등한 협력자로서의 상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새로운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40여년 야철도검 제작 이상선 명인

    40여년 야철도검 제작 이상선 명인

    “내가 만든 물건을 자랑하는 것은 내 얼굴에 침 뱉는 일이다. 내가 만든 물건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소장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국내 유일의 야철도검 기능 전승자 이상선(57)씨의 말이다. 15일 밤 8시,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로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기록을 위해 ‘기록 36.5℃’를 시작한다. 첫째 순서로 국내 유일의 야철도검 기능 전승자 이상선씨를 만났다. 경북 문경시에 있는 이씨의 작업장인 고려검 연구소는 폐교를 개조해 만들었다. 작업장 한편에 있는 가마에서는 시뻘건 불이 타오르고 연신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체감온도 영하의 날씨에도 작업 열기로 주변 공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길쭉한 막대에 불과했던 쇠는 연마 작업을 통해 칼의 모습을 갖춰 갔다. 칼에 종이를 대니 싹싹 소리를 내며 잘렸다. 이씨는 세상의 외면 속에서도 오로지 전통 검을 되살려 보겠다고 40년 이상 쇠와 씨름해 왔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제는 별다른 욕심이 없다. 아들이 이 기술을 전수받으면 좋겠지만 욕심을 부린다고 다 가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묵묵히 작업을 이어 갔다. 이 밖에 ‘TV 쏙 서울신문’은 한국과 일본의 미래를 점검하는 행사에도 다녀왔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는 ‘2013 한일 미래의 길을 묻는다’라는 주제의 국제 포럼이 열렸다. 이철휘 서울신문 사장은 “올해로 창간 109주년을 맞은 서울신문과 도쿄신문, 주니치신문이 함께 마련한 이번 포럼에서 생산적이고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 창출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은 행사 특별강연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새로운 국립 위령시설로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는데도 아직 진척이 없는 것은 인의에 반하는 처사다”라고 일본 정부의 실천을 촉구했다. 또한 ‘TV 쏙 서울신문’은 최근 북한의 실상을 담은 동영상도 입수해 방영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 하루 뒤인 13일 오후, 김태훈 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위원장과 김성은 목사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이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국경에서 은밀히 물품을 거래하는 장면, 북한 가정 속 한류, 북한의 다양한 일상 모습 등이 담겨 있다. 또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 아래에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보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톡톡 SNS’에서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명박 대통령 무궁화대훈장 수여 논란 등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전한다. 성민수 PD globalsms@seoul.co.kr
  • 심윤조 “日 과거사 문제 선택이 한·일협력 장래 결정”

    심윤조 “日 과거사 문제 선택이 한·일협력 장래 결정”

    심윤조 새누리당 의원은 14일 “과거사 문제는 한·일 양국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일본 자신과 국제사회간의 문제”라면서 일본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심 의원은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제포럼 ‘2013 한일 미래의 길을 묻다’ 특별초청강연에서 한·일 관계 발전의 발목을 잡아온 원인으로 과거사 문제를 들면서 “과거의 질곡에서 헤어나오기 위한 일본의 선택이 한·일 협력의 장래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일본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자고 역설해 왔지만 결국 기대와 다른 상황으로 진행돼 왔다”면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도 집권 초기에는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한 의욕을 보였지만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 때문에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심 의원은 지난달 4일 아베 일본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특사를 보내 관계개선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과 관련, “출발은 역대 정부와 다를 바 없지만 또 다시 역사 문제의 덫에 걸리지 않을 지 걱정된다”고 평가했다. 특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역대 어느 총리보다 우익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취임 이후 위안부 문제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의 문제에 대해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진정성 측면에서는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의 국제 정세는 격변의 시기”라면서 “세계 주요국가들의 지도부가 교체되는가 하면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 중국의 지속적인 성장 등 국제질서의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지속적으로 증강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조그마한 갈등이 커다란 대립, 물리적 충돌로 비화될 위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심 의원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한·일 양국의 협력이 중요하다면서 “두 나라 지도자가 한·미·일, 한·중·일, 역내 다자안보 협력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같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 고노 요헤이 “한·일 상호간 존중·존경이 중요”

    고노 요헤이 “한·일 상호간 존중·존경이 중요”

    “한일 양국이 안보와 경제 문제에 있어서 공동 이익을 추구해야 하지만, 그 바탕에는 서로 존경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확실하게 구축돼 있어야 한다.”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은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제포럼 ‘2013 한일 미래의 길을 묻는다’에서 “북한 문제 대처는 물론,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향후 중미 관계를 고려할 때 한일 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는 게 유익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고노 전 의장은 1977년 후쿠다 다케오 일본 총리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제시한 ‘후쿠다 독트린’이 오늘 날에도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일 관계에 있어서 안보와 경제적 이익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며 “서로 대등한 협력자로서 존중하고 사회·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진정한 친구로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상호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일간 신뢰 관계가 구축되기 위해서 일본이,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일본식 가치관을 강요했던 역사적 사실을 진지하게 직시하고 확실하게 반성하는 게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이 그나마 한일 상호 신뢰 관계의 기초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한일파트너십 공동 선언까지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대해 명문화한 사죄를 하지 않았던 것은 부당한 처사였다고 돌이켰다. 1998년에야 ‘인의’라는 바탕에 한일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됐다는 이야기다. 고노 전 의장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되풀이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누구나 참배할 수 있는 새로운 국립 위령시설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일본 정부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은 인의에 반하는 처사”라며 약속 이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끝으로 “일본이 역사 문제를 진지하게 마주하고 반성해야 할 점을 반성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진정한 친구로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상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매우 유리한 관계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고노 전 의장은 강연 말미에 일본 유학중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 사람을 구하다 숨진 고(故) 이수현씨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12년 전 외무대신을 지낼 당시 다양한 일이 있었지만 (이수현 사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수현은 많은 일본 사람의 마음에 남았고, 일본 사람들은 그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청년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갖게 된 근거가 됐을 정도로 대단히 큰 사건이었다”며 “양국이 진정한 친구로서 상호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답을 찾는 것이 한국과 일본 젊은 세대의 책무”라고 덧붙였다. 일본의 원로 정치인으로 관방장관, 자민당 총재, 외무대신 등을 거친 고노 전 의장은 관방장관 시절이던 1993년 8월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와 반성의 뜻을 담은 이른바 ‘고노 담화’를 발표한 바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韓·日 과거사·독도문제, 역사의 당사자인 美·中과 함께 풀어야”

    “韓·日 과거사·독도문제, 역사의 당사자인 美·中과 함께 풀어야”

    새누리당 심윤조 의원은 13일 “일본은 적어도 단기간에는 큰 틀에서 정세를 살필 여력도, 과거사를 사과하고 독도를 포기할 (정치적) 능력도 없는 상태”라면서 “과거사나 독도 문제를 한·일 양국 간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말고 일본 스스로의 문제, 일본과 국제사회의 문제로 이끌어 일본 스스로 선택하도록 여건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14일 열리는 한·일 국제포럼에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한·일 양국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초청 강연을 하는 심 의원은 13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를 위해 ‘역사의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이 나서도록 해야 하며 그럴 때 더 빠르고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 의원은 주일·주미대사관에서 각각 1등 서기관과 참사관을 지냈으며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차관보, 청와대 외교통상비서관 등을 역임하고 주오스트리아 대사를 지냈다. 지난해 4·11 총선 때 서울 강남갑에서 당선된 심 의원은 외교부 장관에 내정된 윤병세 인수위원 등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외교 정책의 주요 조언자 가운데 하나다. 다음은 심 의원과의 일문일답. →새 정부가 출범한다. 되돌아보면 김영삼 정권이래 김대중 정부를 제외하고는 대일관계가 시작은 좋다가 끝이 안 좋았다. 한번 점검을 해달라. -김영삼 대통령 임기 말년인 98년 1월 일본이 한·일 어업협정을 파기했다. 김 대통령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까지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대중 정권이 출범, 신어업협정을 교섭하면서 그해 말 한·일 공동파트너십을 선언하고, 새 어업협정도 발효됐다. 그 즈음 일본 대중문화도 개방이 되고, 한·일 관계는 상당히 좋았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오고 처음에는 한·일 관계를 상당히 잘하려고 했다. 노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에서 “과거사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그러나 광복 60주년, 한·일 국교수립 40주년을 맞은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를 편입시키면서부터 관계가 냉각됐다. 이후 노 대통령이 ‘국민에게 보내는 글’도 쓰고 ‘외교 전쟁’이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는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오는 등 서로 잘해보려고 했는데 교과서 왜곡에 동해 지도, 위안부 문제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악화일로를 걸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는 위안부 문제로 대화시간의 4분의3을 썼을 정도였다. →늘 문제는 반복되면서 악화됐다. 근본책은 없나. -일본이 과거사를 사과하고, 독도를 포기하면 된다. 한·일 갈등은 모든 것이 여기서 출발한다. 그러나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바라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위안부 문제나 교과서 문제 등 어느 하나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독도문제는 다뤄지는 빈도나 무게감이 달라진 끝에 ‘일상화’가 돼버렸다. 일본은 과거에 독도는 언감생심 외무장관 회담에서 꺼낼 수도 없던 문제였다. 지금은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운운할 정도다. 일상적인 문제가 된 것이다. →일본은 왜 사과하고 포기하지 못할 것으로 보나. -지금 일본은 큰 틀 속에서 보는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과 관계가 있다. 경제는 답보하고 국제적으로는 중국에 점점 밀리는 처지에서 군사력의 회복을 통한 ‘보통국가’를 꿈꾸고 있다. 그러면서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민족주의가 대두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에 양보를 요구해 왔지만, 그럴 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이런 갈등과 긴장 관계가 계속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가. -우리도 이 문제를 ‘상수(常數)’로 보고 대응할 때가 됐다.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덮고 가자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다른 것은 놓아두고 같은 점을 찾아가자는 ‘구존동이(求存同異)’를 의미하나. -대일관계에 있어 피해의식이 아닌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는 한·일 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일본 스스로의 문제다. 또는 일본과 국제사회의 문제다. 일본이 과연 국제사회에서 어떠한 국가가 될 것이냐. 독일처럼 사과하고 국제사회에서 지도자 국가로 행세할 것이냐. 아니면 몸집만 비대하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국가가 될 것이냐는 일본이 선택할 문제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과거사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본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일을 다뤄나가야 한다는 얘기이다. 옛날처럼 이슈 하나가 터질 때마다 언론이나 국민이나 과도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 다케시마의 날 제정이나 일본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 일이 상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한·일 관계를 더욱 크고 대국적인 관점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 →과거사는 그렇다쳐도, 독도를 영토문제화하려는 시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이 역시 역사 문제로 인식하고, 역사문제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면 된다. 실제로 일본이 독도를 한반도 침략의 전초 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큰 틀에서는 과거사의 일부이다. 동북아의 역사 문제로는 미국도, 중국도 당사자이다. 유엔 등을 통한 여론조성에 영향력이 상당하다. 위안부 문제에 미국 사회가 약간이나마 거들고 나선 것에 상당한 도움을 받은 것도 확인하고 있지 않나.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도 쉽지 않을 테고. -물론 쉽지 않다. 관계의 근본적인 취약성과 강한 휘발성 때문이다. 그래서 한·일 관계에서는 무엇보다 지도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한·일 갈등은 양국의 지도자를 통해 더욱 증폭되고 확산된 측면도 없지 않다. 과거 정권에서 대일 관계가 막판에 틀어진 이유 중 하나는 처음에 너무 잘하려다 보니 기대치가 높아져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나쁜 상황에서 시작한 김대중 정부는 그 상황을 관리해 나간 덕분에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기대치를 너무 높이 갖지 말되,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다루면서 이를 일본 스스로의 문제, 국제사회 속의 문제로 이끌어 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오히려 이것이 일본에 훨씬 어렵고 무거운 외교적 짐을 지우게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일 관계는 한·일 관계로만 끝나지 않는다. 동북아 정세가 전반적으로 5년 전보다 많이 악화된 것 같다. 진단을 좀 해달라. -전반적으로 악화됐다. 한·일도, 중·일도 훨씬 나빠졌다. 미·중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으로 갈등 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을 둘러싼 관계도 그렇다. 미국이 북한을 신뢰하는 수준은 마이너스 이하로 떨어졌다. 북·일도 나아질 것이 없었다. 남북은 누구나 아는 대로다. 다만 북·중은 나빠졌다고 할 수 없다. 2009년 2차 북핵 실험,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있었지만 중국에 있어 북한의 가치가 높아진 측면이 있다. →한·일 관계도, 대외여건도 좋지 않은데, 무엇을 단초로 한·일 관계의 개선을 도모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선제적 행동의 여지가 있나. -쉽지 않다. 선제적 내지는 능동적이라는 것은 국민의 기대감과 맞물려 있다. 적극적으로 대일관계 개선에 나서다 보면 국민들이 볼 때 믿음이 안갈 수 있다. 당장 오는 20일 다케시마의 날이 있고, 3~4월에 교과서, 외교청서·국방백서,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의 문제가 지뢰밭을 이루고 있다. 섣불리 발을 내딛기 어렵다. →그럼 어디서부터 풀 수 있다는 얘기인가. -역시 민간 영역이다. 엔저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경제협력의 여지는 많다. 정치 때문에 한류가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 또한 회복해야 할 일이다. 경제와 문화가 활성화되다 보면 정치와 외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한편으로는 외교적으로도 계속 냉각만 되던 한·일, 중·일 관계에도 약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들이 들어오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박근혜 당선인에게 특사를 보내오고, 얼마전 한·일 의원 대표단을 면담하는 등 유화적인 모습을 취하려 하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도 그렇다. 서로 극단을 피하려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간이다. 여기에서 외교의 영역도 생겨난다. 한·미·일, 한·미·중, 한·중·일 등 한국과 주변국 사이에서 크게 세 개의 삼각 구도가 만들어지는데 각각의 틀에서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다 보면 한·일 문제뿐 아니라, 남북문제, 역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국력 증진,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한·일 미래의 길을 묻는다] MB 독도방문 뒤 최악 상황으로

    [한·일 미래의 길을 묻는다] MB 독도방문 뒤 최악 상황으로

    지난 5년간 한·일 관계는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외교에서의 ‘실용주의’를 내세운 현 정부는 당초 일본과의 관계에서 미래지향적인 기조를 유지했으나 결국 뿌리 깊은 과거사의 벽과 전략적 판단 실수로 한·일 양국 국민의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현 정부는 2008년 2월 25일 취임식 직후 첫 정상회담의 상대로 후쿠다 야스오 당시 일본 총리를 선택할 정도로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일본에 우호적이었고,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2010년 8월 10일 민주당 출신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이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한국인의 뜻에 반한 것”이었음을 인정함으로써 양국 관계는 긍정적인 국면을 맞는 듯 했다. 양국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시 우리 정부의 지원, 한·일 간 통화스와프 확대에 이어 지난해 6월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 시도 등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임기 5년차인 지난해 3·1절을 맞아 일본의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것은 과거사 문제에 미온적인 노다 정부에 대한 뒤늦은 경고로 풀이된다. 과거사와 영토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과잉대응 등 전략적 판단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12일 “기본적으로 양국 관계 악화의 책임은 노다 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인식에 있다”면서도 “대통령이 독도 방문이후 일왕의 사과를 거론하는 등 일본 국민의 과민반응을 일으킨 점은 향후 관계개선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좀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한·일 미래의 길을 묻는다] 日, 8월까지 우경화 스케줄… “양국 미래 위해 대화 계속해야”

    [한·일 미래의 길을 묻는다] 日, 8월까지 우경화 스케줄… “양국 미래 위해 대화 계속해야”

    ‘우경화 행보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거나, 혹은 과거를 치유하며 관계 복원을 시도하거나….’ 25일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와 지난해 말 집권 여당이 된 아베 신조 정부 간의 올해 한·일 관계 전망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이렇다. 그동안 얼음장 같던 양국 관계에 기회와 위기 요인이 모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극단적인 대립 구도로 가면 양국 관계는 ‘양패구상’(兩敗俱傷·서로 싸우다 양쪽 모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상처만 입음)격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올해 국내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양국 관계는 특히 아베 총리의 ‘우익 본능’이 어떤 식으로 표출될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첫 1년의 한·일 관계는 한·일 국교정상화를 이룬 한·일 기본조약(1965년) 체결 50주년인 2015년 박근혜 임기 중반까지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당선인은 자서전인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다른 어느 나라와의 관계보다 인내심이 더 필요한 게 일본과의 외교이고, 양국 모두 서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일본과 진심을 털어놓는 대화를 계속한다면 조금씩 풀려갈 것으로 믿는다”고도 했다. 역사와의 화해를 위해서는 독도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첫 변수로는 22일 일본 시마네현이 여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행사 수위가 꼽힌다. 아베 총리 등 주요 각료들이 불참을 표명했지만 자민당은 다케시마의 날을 정부 행사로 승격하겠다는 총선 공약을 실행하려는 기류가 짙다. 일본 정부는 독도 등 자국의 영토분쟁 전담 부서인 ‘영토·주권대책 기획조정실’을 신설하며 우익·보수 세력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다. 총리 산하에 조직을 신설한 건, 독도 문제 등을 정권 차원의 핵심 과제로 격상시켰다는 의미인 동시에 아베 내각이 우익 공약 실천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짙게 한다. 3월에는 독도 영유권 기술 및 과거사 왜곡을 강화한 내용이 포함될 수 있는 일본 고교 교과서 검정 결과가 발표된다. 곧 이어 아베 총리가 4월에 열리는 야스쿠니신사 춘계 예대제에 참배할지도 주목된다. 자민당과 2차 세계대전 전몰자 유족 모임인 일본유족회는 아베의 참배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06년 첫 집권 때는 야스쿠니 신사를 찾지 않았지만 자민당 총재였던 지난해 10월 참배한 후 “임기 중 야스쿠니 참배를 못한 게 통한의 극한”이라고 밝힌 바 있다. 4~5월에는 일본 외교정책 기조인 외교청서가 발간된다. 7월 참의원 선거와 8월 이내 발표되는 방위백서는 양국 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마저 승리할 경우 아베의 우익 기조도 강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우리 정부 당국자는 12일 “아베 총리가 참의원 선거 때까지는 경기 부양 등 내치에 집중하며 대외 강경 정책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선거에 승리하면 아베 기조를 본격 추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베 총리는 임기 중 일본 평화헌법을 개정해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격상하고 집단 자위권 행사를 용인해야 한다는 기조를 보여 왔다. 참의원 선거 결과와 맞물려 방위백서가 우경화 전략을 어떤 식으로 드러낼지 주목된다. 일본 정부의 경제 기조인 ‘엔저 정책’도 변수로 여겨진다. 한국 경제의 체감 피해가 확대되면 반일 기류가 퍼질 수도 있다. 환율 효과가 국내 경제 실적에 본격 반영되면 우리 주력 산업의 수출에 현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양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지만 한·일 관계뿐 아니라 중·일 관계와 미·일 관계 속에서 일본의 유동성이 커 한·일 양국의 새로운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엔저 문제는 우리 경제에 대한 직접적인 ‘보디 블로’(Body Blow·몸통 공격)로 한국 경제가 일본 때문에 더 힘들어진다는 국민 감정을 자극하는 긴장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우경화 흐름에 대화를 차단하거나 협력을 기피하는 건 우리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제언하고 있다. 역내 안정을 위해서도 양국 간 갈등을 관리하며, 내실 있는 조용한 외교를 통한 신뢰 회복에 양국이 힘써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사설] 한국형 NASA 만들어 자력 우주시대 앞당기자

    과학위성인 나로호(KSLV-1)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스페이스 클럽’(우주클럽)에 가입했지만 우주개발 기술의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이제 우주를 향한 여정의 출발점에 섰다. 우리의 우주개발 도전사는 1992년 과학실험 위성인 ‘우리별 1호’의 발사 이후 20년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 기술이 접목된 나로호 1단 로켓 발사체는 러시아가 만든 것을 그대로 가져와 탑재한 형편이다. 독자 우주개발 사업의 어려운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나로호 발사의 성공은 우리가 자력으로 위성을 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환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비록 1단 로켓 발사체는 러시아 기술에 의존했지만 위성과 위성을 탑재한 상단부는 우리의 기술로 만들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2021년까지 우리 기술로 개발한 3단 분리형 한국형 로켓(KSLV-2)을 쏘는 계획에 기대를 거는 것도 이런 근거에서다. 우주개발 사업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에 속한다. 전후방 연관 산업으로의 파급 효과도 커 자동차 산업의 2~3배 기술 효과가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우리가 나로호 발사 성공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주개발 사업에는 20만개의 첨단 부품이 들어간다고 한다. 나로호 발사에도 536개의 국내 특허기술이 적용됐다. 골프채에 쓰이는 탄소합금, 자동차 내비게이션 등 일반 민수산업에도 이들 기술이 두루 적용된다. 이 같은 파급 효과가 선순환적으로 나타나려면 예산과 인력의 뒷받침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우주개발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0.02%에 불과하다. 우주개발 전체 예산도 최근 5년간 30% 넘게 삭감된 실정이다. 미국의 200분의 1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비교하기조차 무색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차기 정부에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어 첨단과학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전방위 과학기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일본과 중국의 경우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와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독려로 1970년대에 벌써 독자 우주 로켓을 쏘아 올렸다. 우리도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에 버금가는 한국판 우주기구를 만들어야 할 때다. 러시아에 200억원이란 거액을 주고 우주선을 빌려 탄 우리 기술자가 ‘여행’만 하고 돌아온 민망한 경험을 다시 해서는 안 되겠다.
  • [커버스토리] 정권운명은 증세가 좌우?

    세금을 늘리는 일은 정치권에서 ‘악마와의 키스’에 비유된다. 필요한 재원을 확실하게 늘릴 수 있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조세저항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특히 부가가치세처럼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내는 세금은 서민들로부터 “왜 우리 주머니를 터는가”라는 반발을 살 수 있다. 차기 정부가 막대한 복지재원 조달 방법을 놓고 고심하면서도 섣불리 증세 카드를 꺼내들지 못하는 이유다. 1978년 총선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은 신민당에 득표율 1.1% 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바로 직전 해인 1977년 박정희 정권은 세율 10%의 부가세를 도입했다. 민심이 들끓었다. 1980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항소이유 보충서’에서 박 대통령을 시해한 동기로 1979년 10월 부산·마산 항쟁(부마항쟁)과 이에 대처하는 정권 태도를 문제 삼았다. 그는 부마항쟁을 “불순세력의 사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에 의한 민중 봉기”라고 규정한 뒤 “체제에 대한 반항, 정책에 대한 불신, 물가고 및 조세 저항이 복합된 문자 그대로 민란이었다”고 진술했다. 1979년에는 제2차 오일 쇼크(석유 파동)까지 겹쳐 소비자 물가가 18.3%나 치솟았다. 결국 부가세에서 시작된 민심 이탈이 부마항쟁을 촉발했고 이것이 유신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다는 주장이 지금도 학계 일각에 존재한다. 부마항쟁이 조세 저항 성격도 띠었다는 사실은 ‘부가세를 철폐하라’ ‘잘 먹고 잘살아라’ 등의 당시 시위대 구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무서와 부유층도 공격당했다. 당시 언론들은 박종규 마산 국회의원의 호화주택과 샹들리에가 켜진 도로변 고급주택 등이 시위대의 돌팔매질을 당했다고 전했다. 증세 때문에 정권이 바뀐 사례는 일본에도 있다. 1987년 일본 자민당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부가세의 일종인 ‘매상세’(賣上稅)를 도입하려고 했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해소하고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법인세·소득세는 줄이면서 모든 국민에게 매상세 부담을 지운다는 발상은 거센 저항을 야기했다. 결국 나카소네 총리의 5년 장기집권은 종지부를 찍었다. 최근의 정권교체도 부가세가 좌우했다. 일본 민주당은 2009년 중의원 308석(64%)을 얻어 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지난해 12월 총선에서는 100석도 얻지 못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도 원인이었지만 소비세(부가세) 동결 공약을 파기한 것이 결정타였다. 230%에 이르는 정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세수 확대가 절실하다고 설득했지만 정권 지지율은 10% 밑으로 수직낙하했다.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한국 철도역사 첫 여성 서울역장 김양숙 씨

    [김문이 만난 사람] 한국 철도역사 첫 여성 서울역장 김양숙 씨

    새하얀 눈이 펄펄 내린다. 무작정 산골의 조용한 곳을 향해 기차를 타고 떠나 본다. 기다리는 이 없어도 그곳에 가면 누군가 꼭 반갑게 마중 나올 것만 같다. 시간이 갈수록 그렇게 기대와 설렘은 내리는 함박눈과 함께 더욱 쌓여만 간다. 그곳에는 예쁜 눈사람이 있을 것 같고, 앙증맞은 인형을 든 귀여운 소녀가 있을 것만 같다. 이런 날 영화 한 편을 떠올린다. ‘철도원’(후루하타 야스오 감독, 오토마쓰 주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2월 설연휴를 앞두고 개봉됐다. 철도원 오토마쓰는 아무리 눈이 내려도, 아무리 이용객이 없어도 오로지 성실 하나로 살아간다. 여느 때처럼 새해 아침이다. 역에 쌓인 눈을 치우던 오토마쓰, 그 앞에 인형을 든 낯선 여자아이가 찾아오면서 고독하고 외로운 철도원의 인생은 놀랍게 전환된다. 누구나 철도 여행에 대한 추억이 있을 터. 그렇다면 철도원을 얘기할 때 어떤 생각을 먼저 하게 될까. 여러 가지 이미지로 다가오겠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늘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는 고마운 사람으로 여겨진다. 설날 연휴에는 더욱 그러하겠다. 우리는 그리운 고향으로 가지만 철도원들은 그러지 못하니 말이다. 철도인 인생 25년 김양숙(45) 서울역장. 그는 철도가 생긴 이후 113년 만에 첫 여성 서울역장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다. 여성으로서 최초라는 수식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최대의 중앙역인 서울역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역은 하루 이용객이 30만명이 넘는다. 외국인만 해도 하루 3000여명이다. 이쯤 되면 국제적인 기차역인 셈이다.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만 100여명인 데다 연간 코레일 수입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서울역장은 전국 역장 중 가장 중요한 자리로 여긴다. 9급 철도공무원에서 출발해 25년 만에 1급 서울역장이 되기까지 그의 철도인 인생은 어떠했을까. 또 그가 부임한 이후 서울역은 어떻게 변모해 가고 있을까. 지난 10일 오후 서울역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수더분한 모습에 인터뷰할 것까지 뭐 있겠느냐며 웃는다. 자리에 앉으면서 서울역장으로 부임한 지 두 달쯤 됐다고 인사를 건넸더니 “벌써 그렇게 됐네요”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요즘 어떤 일로 바쁜지 먼저 물었다. “알다시피 서울역은 한국의 대표 역입니다. 외국인도 많아 국경의 역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때문에 그 위상을 활기차게 업그레이드시켜야 합니다.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그리고 한국적인 역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지요” 물론 그동안 많은 서울역장들이 거쳐가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겠지만 신임 김 역장은 여성으로서의 다부진 의욕이 간단치 않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하여 서울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물었다. “디자인이 한국적으로 달라집니다. 현대적 세련미와 한국적 전통의 모습이 함께 잘 조화된 모습을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서울역은 외국인들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한국적인 느낌을 주려고 합니다.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서 서울역이 참 인상적이었다는 것을 생각나게 해 주는 것이지요. 그런 차원에서 문화와 예술이 함께 펼쳐지는 상설공연 무대, 고객들을 위한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김 역장은 외부 디자인 전문가에게 의뢰해 구체적인 그림을 완성했으며 올 상반기에 달라진 서울역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서울역 재창조 작업에 역점을 두는 것은 공항철도와 연계되면서 서울역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관문이 됐고 이에 따라 서비스의 품격도 성숙해져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문화와 디자인이 있는 서울역을 표방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져서인지 벌써 재즈협회 등 몇몇 예술단체에서 공연을 하겠다는 문의가 온다고 귀띔했다. 그는 2011년 5월 문화홍보처장을 맡았을 때부터 춘천역 재건설 계획에 합류해 디자인 공모 등을 통해 새로운 춘천역 탄생에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다. 역 매장과 주변 광고물을 재정비하고 천편일률적인 역사 대합실에 색다른 변화를 주어 이용객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이끌어 냈다. 또한 ‘제1회 철도문화체험전’을 성황리에 개최한 것도 김 역장의 작품이었다. 이어 서울역장 부임 두 달 동안의 소감을 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외부 귀빈(VIP)들이 이곳을 많이 이용하더군요. 때마침 대선 기간이어서 대선 후보들도 여러 번 왔습니다. 직원들은 물론 서울역을 이용하는 고객들과 자주 만나 대화도 했고 많이 바빴습니다. 지난 1일에는 직원들과 함께 서울역 2층 대합실에서 고객들에게 무료로 커피, 녹차, 생강차 등을 대접했습니다. 평창 스페셜올림픽 홍보 전단지도 나눠 드렸지요. 감동 있는 서비스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누구나 서울역장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오로지 열심히 할 뿐”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서울역장이 됐을까. 이 질문에 “누구나 자기 조직을 사랑하고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굳이 말한다면 성실과 열심으로 일해 온 것이 쌓여 인정을 받은 것 같다고 대답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혜택받을 일도 없고 또한 어떤 거창한 능력이 있어서 서울역장이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철도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87년 10월이었다. 전남 고흥의 바닷가에서 태어난 그는 순천여고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던 중 아버지의 권유로 9급 공무원 시험을 보고 합격한다. 발령지는 철도청 소속 순천기관차 사무소였다. 당시 김 역장을 제외하곤 직원 300명이 전부 남자였다. 또한 기차를 움직이는 기관사나 철도를 관리하는 현장직 업무여서 노동강도 또한 셌다. 김 역장은 그들과 함께 성실하게 일을 해 나가면서 차츰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여자라서 근무여건이 달랐던 점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남자들보다 더 꼼꼼하게 일을 챙겼다. 좀 힘들긴 했지만 그렇게 부지런히 11년 동안 기관차 사무소에서 일했다. 1998년 9월 순천지방철도청 재산과 직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평소 몸에 밴 ‘성실철학’으로 더욱 열심히 일을 했다. 여러번 위기를 맞은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기회로 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역할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 나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나섰던 것. ‘여자라서’ 또는 ‘직급이 낮아서’라는 생각은 떠올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일을 해 나갔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나 자리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일해 본 적은 별로 없어요.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조건 불평 없이 일을 했습니다. 제가 인정받았다면 아마 그런 근무 열정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는 2001년 지방청에서 본사로 자리를 옮겼다. 본사로 근무지를 이전한다는 게 그때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주변의 좋은 평가가 한몫했다. 2007년 서대전역장이 된 것도 그의 성실성 덕분이었다. 서대전역장 시절 전단지를 직접 들고 열차 관광지 홍보에 앞장선 일화는 지금도 코레일 내부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때 여행상품을 3개나 기획해 판매에 성공했다. 당시를 떠올린 그는 “힘들었지만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이후 인사노무실 노경지원처장, 홍보문화실 문화홍보처장 등 본사 발령 당시 6급에서 1급으로 승승장구했다. 서울역장에 발탁된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능력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웃는다. 그러면서 서울역장은 책임이 막중한 자리인 만큼 수익 증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여행상품 얘기를 꺼낸다.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에 KTX처럼 빨리 가는 열차를 좋아하지만 요즘 주말에는 느림을 즐기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와인시네마 열차, 숙식이 가능한 관광열차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요. 얼마 후 선보일 중부내륙권, 남도해양권 순환 관광열차는 철도여행에 새로운 문화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많이 홍보해 주세요(웃음).” 그는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남편도 공무원이다. 그가 회사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과 도움에서 비롯됐다. 아무런 불평 없이 성장해 준 아이들, 또 집안일을 거들어 준 고마운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쁜 와중에도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영화 ‘철도원’을 봤느냐고 물었더니 “주인공이 무척 성실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대답한다. “자랑스럽고 성실한 철도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며 웃는 그를 보니 전국의 철도역 대부분을 다녀왔다는 기찻길 인생의 발자취가 잠시 그려진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김양숙 서울역장은 1968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순천여고를 졸업한 뒤 재수 준비 도중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철도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철도청 순천기관차사무소 사무원(1987년), 순천지방철도청 재산과 과원(1998), 순천지방철도청 재산과 매각계장(1999), 조달본부 물자관리과 과원(2001), 전략기획실 평가2팀장(2004), 철도공사 경영혁신실 경영혁신부장(2005), 대전충남본부 서대전역장(2007), 인사노무실 노경지원처장(2010), 홍보문화실 문화홍보처장(2012) 등을 거쳐 지난해 11월 서울본부 서울역장에 부임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슬하에 1남1녀를 두었으며 남편도 공무원이다.
  • 日 아베·하시모토 ‘극우 회담’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우익공약 실행을 가속화하고 있다.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같은 우익 성향의 하시모토 도루 일본유신회 대표대행과 연대를 모색하는 등 ‘우익 지원군’을 규합하는 양상이다. 일부 우익인사들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서두르라”며 아베의 우익 공약 실행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아베 총리는 11일 오사카를 방문, 하시모토 시장과 공조 방안을 논의한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는 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 국방력 강화, 교육개혁 등에서 비슷한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말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294석을 얻어 집권했고, 일본유신회는 54석을 확보해 민주당(57석)에 이어 제3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양당의 의석수를 합하면 중의원 의석의 3분의2(320석)가 넘는다. 참의원 선거에서 양당이 3분의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면 개헌을 발의할 수 있게 된다. 아베 정권은 먼저 헌법 96조를 고쳐 ‘중의원과 참의원 3분의2 찬성’으로 규정한 현행 헌법개정 발의 요건을 ‘중의원과 참의원 2분의1 찬성’으로 완화한 뒤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헌법 9조)을 개정해 국방군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다음 주부터 미국과 ‘미·일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이하 방위협력지침) 개정 작업을 시작한다. 오는 16일 도쿄에서 양국의 외교·국방 담당자가 참석한 가운데 방위협력지침 개정 협의에 나선다. 방위협력지침은 일본이 공격받는 경우 자위대와 미군의 역할 분담을 명시한 문서로 유사 시 양국군의 협력 ‘매뉴얼’이다. 최대 관심사는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용인 문제이다. 아베 총리는 동맹국인 미국이 공격 받을 경우 일본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미국과의 동맹을 심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역시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동북아 억지력 강화를 위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국내 분위기도 아베로서는 고무적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이끄는 세계평화연구소는 ‘긴급 정책제언’을 통해 국방비 증액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의 변경,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창설 등을 아베 총리에게 건의했다. 세계평화연구소의 정책 제언은 아베 총리의 정책 방향과 일치해 대부분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朴, 日 아베총리 특사단 접견… “역사 직시하면서 미래로 가야”

    朴, 日 아베총리 특사단 접견… “역사 직시하면서 미래로 가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특사단을 접견하며 한반도 주변 4강 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박 당선인은 오는 10일 중국 정부 특사인 장즈쥔 외교부 상무부부장을 만날 계획이다. 미국 하원의 에드 로이스(공화·캘리포니아) 신임 외교위원장도 이달 말 우리나라를 방문해 박 당선인과의 면담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하원 외교정책을 총괄하게 된 로이스 위원장은 미 의회 내 대표적 지한파이자 대북 강경론자로 분류된다. 이날 특사단 접견은 당선인 신분으로 이뤄진 첫 번째 외교 행보이자,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에서 가진 첫 공식 업무였다. 새해 첫날 현충원 참배와 새누리당 신년인사회 참석 이후 외부 일정을 삼간 채 대통령직 인수위 인선 작업에 몰두해오다 사흘 만에 공식 일정을 재개한 것이기도 하다. 박 당선인은 오후 집무실에서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 의원연맹 간사장 등 자민당 소속 의원 3명과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 등 특사단 4명의 예방을 받고 면담했다. 당선인 측에선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김태환·심윤조 의원, 윤병세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조윤선 대변인 등이 배석했다. 이번 특사단 접견은 지난달 20일 박 당선인이 벳쇼 대사와 만났을 때 일본 측의 공식 요청에 따라 성사된 것이다. 누카가 특사는 박 당선인에게 아베 총리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한·일 양국의 새 정부 출범이 양국 관계에 좋은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조 대변인이 전했다. 박 당선인은 “역사를 직시하면서 화해와 협력의 미래를 지향하고, 이를 위해 양국 간에 꾸준히 신뢰를 쌓아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성세대가 의지를 갖고 상처를 치유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미래세대에게 올바른 길을 열어주는 데 기성세대가 장애가 돼서는 안 된다”면서 “동북아와 세계 평화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갈 동반자로서 양국의 긴밀한 협력이 동북아 경제공동체 비전 실현의 구심적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누카가 특사는 “아베 총리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박 당선인을 만나뵙기를 희망한다”면서 일본 방문을 공식 초청했고, 이에 박 당선인은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일본 특사단은 또 이날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예방한 자리에서 야스쿠니 신사 방화범 류창에 대한 한국 법원의 범죄인 인도 청구 거절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다음 달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를 기다리고 있는 한·일 관계는 한반도 주변 상황과 맞물려 유동성이 한층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이어 북한의 3차 핵실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데다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토 분쟁과 과거사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일본 아베 정권이 자위대 해외 파병 상시화 등 우경화 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한·일 관계는 또다시 경색될 수 있다. 올해 한·미 동맹 60주년이 되는 상황에서 한·미·일 3각 동맹에도 미묘한 균열이 커질 수 있다. 박 당선인이 미국과 중국, 일본과 실용적이면서도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접근에도 불구하고,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아베 정권 인식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 게다가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과 미·일 동맹이 강화될수록 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증폭된다. 김 장관이 이날 한국외교협회 신년하례식에서 올해 외교 분야의 큰 과제로 일본과의 관계를 적시한 점도 그만큼 한·일 관계에 험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이 꼬일 수 있는 난관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서울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야스쿠니 신사 방화’ 류창, 中 출국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화염병을 던진 중국인 류창(38)이 4일 고국인 중국으로 출국했다. 류창은 오전 8시 55분 인천공항에서 중국 동방항공편을 타고 상하이 푸둥 공항으로 떠났다. 법무부는 지난 3일 저녁 범죄인 인도법 제32조에 따라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류창을 석방했다.<서울신문 1월 4일 자 1면> 류창은 불법체류자 신분이 됐으나 중국이 곧바로 신병을 인수하겠다는 입장을 전해 와 이날 자진출국 형식으로 한국을 떠났다. 앞서 3일 류창에 대한 범죄인 인도 재판을 해 온 서울고법 형사20부(부장 황한식)는 류창을 정치범으로 판단, 일본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거절하고 그의 신병을 중국으로 인도하기로 결정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사설] 동북아 안정, 아베 총리의 선택에 달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특사 일행을 접견했다. 일본 측 요청에 따라 접견이 이뤄지긴 했으나 당선인으로서 첫 외교 대상이 일본이라는 상징적 의미는 적잖다. 박 당선인이 특사 일행과 한·일 관계 등에 대해 주고받은 외교적 수사의 밑바닥에는 동북아 정세에 대한 당선인의 깊은 우려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 한·중·일의 동북아 정세는 위태롭다.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 지배 및 침략의 역사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하면서 역사 뒤집기를 시도하려 한다. 일본은 우경화 분위기에 편승해 앞으로 독도에 대한 도발과 망언의 수위도 한층 높여 나갈 것으로 우려된다. 일본 자민당과 극우 성향의 유신회는 평화헌법 제9조를 수정하고 자위대를 수시로 해외에 파병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국방군’ 창설로 이어져 군사력을 증강하고 전쟁을 일으키거나 전쟁에 참가할 수도 있게 될 개연성을 높일 것이다. 지난 연말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상공에는 중국과 일본의 전투기가 날아다니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빚어졌다. 동북아 정세를 뒤흔드는 핵심 원인은 일본의 과거사 부인에 있다. 물론 중화 부흥을 내건 중국의 영토 확장 움직임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지만 일본의 과거사 부인에 비할 바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역사를 부정하려는 일본의 또 다른 시도’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보다 아시아의 안정에 더 중요한 관계는 없다”고 전제하고 “아베 총리는 한·일 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협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 ‘중대한 실수’로 자신의 임기를 시작하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과거사를 왜곡하지 말라는 충고인 셈이다. 중국인 류창의 도쿄 야스쿠니 신사 방화 사건도 일본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려는 정치적 이유에서 나왔다는 게 그제 서울고법이 내린 판단이다. 일본은 자국 사법부 판결에 승복하듯 우리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기 바란다. 일본은 특사 파견으로 관계를 추스르려는 시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한국·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면 그 첫 단추는 과거사 반성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장기 불황과 동일본 대지진으로 침체된 민심 수습용으로 국수주의에 빠져들어 주변국과 충돌을 일으켜선 곤란하다. 동북아 평화와 안정은 전적으로 아베 총리의 결단에 달렸다.
  • “류창 인도 거부는 조약 무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 법원의 야스쿠니 방화범 인도 거부 결정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아베 총리는 4일 미에현 이세시에서 취재진에게 “사실상 조약을 무시한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며 “항의하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연말연시 연휴를 끝낸 뒤 일본 신사인 이세 신궁에 참배하러 갔다가 취재진의 질문에 이같이 응답했다. 이와 관련, 일본 외무성의 가와이 지카오 사무차관은 이날 신각수 주일 한국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가와이 사무차관은 “야스쿠니 방화 시도는 범죄인 인도조약상 인도 거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의한 뒤 한국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다. 전날 법원 결정 직후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유감을 표명한 데 이어 항의 수위를 한 단계 높인 것으로 추가 조치 여부가 주목된다. 가이에다 반리 민주당 대표도 오전 이세 신궁 참배길에 취재진에게 “정치범은 정치적인 사상·신념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을 가리킨다”며 “(야스쿠니 방화범은) 정치범과 달리 방화라는 형사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느냐”며 한국 측 결정을 비판했다. 일본 언론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아사히·마이니치·도쿄신문 등 진보 성향 매체들은 한국 법원의 판결을 담담하게 보도하거나 양국 정부의 외교 전략 수정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와 산케이신문 등은 한국 정부와 법원을 강력 비난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한국 정부에는 당초 ‘(류창의 범죄가) 한·일 범죄인 인도조약의 대상인 만큼 일본 측에 신병을 넘겨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면서 “하지만 지난해 7월 중국의 멍젠주(孟建柱) 공안부장이 한국을 방문해 중국 송환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을 계기로 태도가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한국이 중국의 경제 보복을 우려한 반면 일본에 류창을 넘겨줘도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산케이신문도 “한국과 일본이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했고, 류창이 엄연한 형법상 피의자인데도 한국 정부나 법원이 반일 단체 주장에 휩쓸렸다”면서 “헌법재판소가 2011년 8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정부의 외교 노력을 촉구하는 판단을 내리는 등 한국 사법부가 ‘반일 무죄’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억지주장했다. 반면 도쿄신문은 “한국 법원의 결정으로 한·중·일 간에 새로운 응어리가 생겼다”며 “한·일 간에 상호 불신이 더욱 고조될 경우 양국 정권이 외교 전략을 수정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日특사, 朴당선인 4일 면담… 항의메시지 나오나

    日특사, 朴당선인 4일 면담… 항의메시지 나오나

    법원이 3일 야스쿠니 신사에 화염병을 던진 중국인 류창(38)에 대한 일본의 범죄인 인도 요구를 거절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향후 한·중·일 간 외교적 파장이 주목된다. 중국은 류창의 중국 귀환을 대대적으로 전한 반면 일본은 한·일 관계 경색 가능성을 우려하는 등 명암이 엇갈렸다. 특히 일본 정부가 외교 경로를 통해 유감의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져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밤 늦게 긴급 성명을 내고 “한국 법원이 류창의 일본 인도 요구를 거부한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높은 국민적 관심사를 반영하듯 관영 신화통신을 비롯해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도 일제히 류창의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랴오닝(遼寧) 사회과학연구원 남북한연구센터 뤼차오(呂超) 소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일본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자신들의 과오를 부정하는 데 대해 한국이 정의로운 결정을 한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아직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은 가운데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한국 법원의 결정에 항의하고 류창의 인도를 재차 요구했다”면서 “(범죄인) 인도를 요구해 온 일본 측의 반발로 한·일 관계 긴장이 다시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4일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이 특사 자격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면담할 예정이서 이 문제 처리를 놓고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일각에선 법원의 판결이 박 당선인의 취임 전에 내려졌다는 점에서 향후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이 한정적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인터넷판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다음 달 박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한·일 관계 회복에 강한 의욕을 나타내고 있어 강력한 항의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관계국들이 법치주의 원칙과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서울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사설] 청년세대 간극 좁혀야 한·일 우호 미래 있다

    한국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일본 국민 10명 중 6명은 한국인의 그런 인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답했다. 서울신문이 일본 도쿄신문과 공동으로 지난해 12월 20~23일 양국 국민 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일 신년 공동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다. 양국 국민 간에 흐르는 냉랭한 기류는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한·일 관계의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스럽다. 특히 양국 국민들의 감정이 과거보다 더 나빠진 사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반성이 미흡하다고 응답한 이들이 94.1%로 2005년보다 9.8%포인트 높아졌다. 일본인 역시 한국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지난 2005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과거사 문제 등을 놓고 첨예하게 불협화음을 내던 때보다 더 높아졌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일왕 사과 요구, 위안부 문제 제기 등 일련의 대일 강공책과 일본 정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맞대응 등으로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데 따른 영향으로 분석된다. 미래의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전망도 어둡게 나왔다고 한다. 두 나라 국민들의 감정이 나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독도 해법 등을 둘러싸고 보여준 일본 20대들의 태도가 더욱 우려된다. 독도 해법으로 국제사법재판소( IJC) 해결을 주장하는 등 강경한 목소리가 다른 연령대보다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30대 미만의 젊은이들이 유연한 입장을 보이는 것과는 완전 딴판이다. 아베 정권 출범을 즈음해 일본 사회 전체가 우경화하고 있는 것도 큰 일인데 새파란 젊은이들에게까지 국수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니 안타깝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올해로 47년이 지났다. 그동안 두 나라는 과거사 문제와 독도 영유권 등의 문제에 발목이 잡혀 한 걸음 전진하는가 싶으면 두 걸음 뒤로 후퇴하는 양상을 보여온 게 사실이다. 두 나라가 이렇듯 과거의 역사에만 매달려 계속 반목과 질시로 지낼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일본이 과거 역사를 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때 한·일 관계는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양국 지도자, 특히 일본 정치인들은 역사 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도 경제 성장과 한류 확산 등으로 다소 우쭐해진 마음으로 일본을 비하하는 감정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양국이 보다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려면 우선 문화 교류 등 다양한 교류를 통해 청년 세대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두 나라를 이끌어갈 청년 세대 간 상호 신뢰를 탄탄하게 다져놓지 않는다면 양국 간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법원 ‘야스쿠니 방화범’ 中인도 결정

    법원이 야스쿠니 신사에 화염병을 던진 중국인 류창(38)을 정치범으로 인정해 그의 신병을 중국으로 인도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이 류창의 신병을 넘겨 달라고 요구했으나 범죄인 인도 청구를 거절해 외교적 파장이 일고 있다. 담당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20부(부장 황한식)는 3일 “일본의 류창 인도 청구를 거절한다”면서 “정치범인 류창을 일본으로 인도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 질서와 헌법 이념, 대다수 문명국가의 보편적 가치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상대적 정치 범죄’로 규정하고 “류창의 범행은 정치적인 대의를 위해 행해진 것으로 범행과 정치적 목적 사이의 유기적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범죄인인도법 제32조에는 법원의 인도 거절이 있는 경우 검사는 지체 없이 구속 중인 범죄인을 석방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류창은 이날 즉시 석방됐으며 본인 의사에 따라 중국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자신의 외할머니가 한국인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밝힌 류창은 지난해 1월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실형을 살았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2011년 12월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른 것도 자신이라고 주장했고 일본 정부는 ‘한·일 범죄인 인도협약’에 따라 류창의 신병을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씨줄날줄] 참배정치/함혜리 논설위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2007년 4월 유럽연합(EU) 순번의장 자격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당시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을 찾았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국기가 달린 조화를 바치고 희생된 유대인을 추모한 뒤 방명록에 “인간성은 과거를 책임지는 것에서 싹튼다”고 적었다. 가해국인 독일의 지도자로서 진정한 참회와 함께 향후 외교정책 방향을 모두 내포하는 이 글은 국제사회에 묘한 여운을 남겼다. 정치 지도자들의 참배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파장이 크게 달라진다. 누가 누구의 묘역을 참배했는지, 그곳에서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조문을 했는지에 따라 정치적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이 종전기념일이나 새해에 태평양 전쟁 때 A급 전범들이 일반 전몰자들과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이 참배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정치인들은 참배라는 의식을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회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른바 ‘참배정치’다. 대통령선거라는 메가톤급 이벤트가 있었던 지난해 참배정치가 자주 화제가 됐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후보의 행보와 메시지가 극명하게 엇갈렸기 때문이었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 선출 이후 박근혜 후보는 국립현충원의 이승만·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방문한 데 이어 경남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했다. 대선후보로서 공식일정의 하나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를 아는지라 국민대통합에 대한 강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뒤 방명록에 동일하게 “역사에서 배우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경우 현충원을 찾았지만 김대중 묘역만을 참배한 채 이승만·박정희 묘역은 참배하지 않았고 “가해자 측의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이 끝나고 계사년 새해는 밝았다. 1일 첫 일정으로, 박 당선인은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방명록엔 “국민 열망에 부응한 새 희망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대선후보는 새해 첫날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이런 엇갈린 행보로는 진정한 화해와 통합이 힘들어 보인다. 국민들은 이 기시감을 언제까지 느껴야 할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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