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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우익테러/황성기 논설위원

    일본 열도가 권총 테러로 술렁거린다. 나가사키 시장이 테러범에게 총탄 2발을 맞고 숨진 사건이 일어나서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 참사 직후 발생한 터라 충격이 더 크다고 한다. 미국과 달리 일본은 개인의 총기 소지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4선을 노리며 유세하던 시장이, 그것도 사람이 많이 다니는 역전 번화가에서 습격을 당했으니 열도가 어찌 경악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범인은 폭력조직 ‘야마구치’의 분파 회장 대행이다. 그래서 핵피폭 도시의 시장으로서 반핵을 외치다 테러를 당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다. 일본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주로 일왕, 야스쿠니 신사 참배, 북한 등 우익들이 집착하는 이슈를 둘러싸고 발생했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쇼와 일왕에 전쟁 책임이 있다고 발언한 이토 시장의 전임자가 우익단체 간부에게 총격을 받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한 가토 고이치 전 자민당 간사장 집에 불을 지른 것도 우익단체 회원이었다. 대북 유화정책의 소신을 폈던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도 총기테러를 당했다. 멀리는 1960년 아사누마 이네지로 사회당 위원장이 연설도중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까지 우익테러의 역사는 뿌리깊다. 일본 조직폭력배(야쿠자)들은 총 한자루씩은 갖고 있는 것으로 경찰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군기강이 허술해진 러시아를 통해서 몰래 들여온다고 한다. 치안 선진국이라곤 하지만 야쿠자들의 총기 단속에는 손이 미치지 않는 형편인 것이다. 선거운동 중에 유력후보에 대한 테러가 일어나 일본 경찰의 체면도 크게 구겨졌다. 경찰 수사로는 도로 공사현장을 지나던 범인의 승용차가 손상되자 무리한 보상을 요구했으나 시가 응하지 않자 책임자인 시장을 “죽일 셈”으로 범행한 것으로 돼 있다. 이권 배분에 불만을 품은 짓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익단체와 밀접한 거대 폭력조직원이 단순히 금전상의 이해관계 때문에 총질을 했겠느냐는 의문도 든다. 마이니치 신문이 어제 사설에서 “태연하게 사람을 쏜 대담함이 꺼림칙하다. 수사당국은 배후관계를 철저히 밝혀내라.”고 주문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정종욱 월드포커스] 中·日간 얼음이 녹으면 한국은?

    몇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베이징에는 동서 양쪽에 서로 대조되는 두개의 건물이 있었다. 서쪽에는 항일전쟁기념관이, 동쪽에는 21세기 중·일청년우호교류센터가 있었다. 항일전쟁기념관에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일본 군대가 자행했던 끔찍한 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국 사람들을 상대로 한 생체 실험과 임신부의 배를 칼로 찌르는 참혹한 장면들이 생생하게 재연되어 있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중국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버스를 타고 온 학생들이 성지 참배를 온 것처럼 숙연한 표정으로 한 시간 이상 각종 전시물들을 참관했다. 이에 비해 21세기 중·일청년우호센터에는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일본 정부가 양국 청소년들 간의 우호증진과 교류협력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해서 지은 현대식 건물들이지만 대개는 텅텅 비어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는 이렇게 메우기 힘든 공간이 있었다. 지난주에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일본 방문이 있었다. 그동안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여러 가지 문제들로 양국 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과연 그의 방문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런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원자바오 총리의 말을 빌리면 이번 방문은 양국 간에 ‘얼음을 녹이는 여행’(融氷之旅)이었다. 지난 10월 아베의 중국 방문이 ‘얼음을 깨는 여행’(破氷之旅)이었다면 원자바오의 방문으로 깨어진 얼음이 녹아버렸다는 것이다. 자민당 간사장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가 “이로써 중·일 간의 얼음이 완전히 녹았다.”고 말하자 원자바오는 “양국 관계에 겨울은 가고 봄날이 왔다.”고 화답했다. 그가 중국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국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제는 “역사를 직시하며 양국 간에 아름다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고 역설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일본과 중국의 언론들도 대체로 원자바오의 일본 방문이 양국 관계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물론 중·일 간에 얼음이 녹고 봄날이 오려면 많은 문제가 남아있다. 양국이 원자바오 방문을 계기로 하루아침에 불행한 과거의 참담한 기억을 잊고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항일전쟁기념관의 악몽이 갑자기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원자바오도 앞으로 일본 정부의 태도를 지켜볼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전략적 호혜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했고 경제각료회의를 매년 개최하기로 했지만 양국 관계는 협력보다 경쟁의 측면이 강하다. 앞으로 더욱 그러할 것이다. 국민투표법이 일본 중의원을 통과함에 따라 일본 헌법이 개정되고 일본이 본격적인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는 시점이 임박했다는 게 중국의 시각이다. 이미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시아 패권을 향한 숙명적 경쟁이 본격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처지이다. 이제 한국은 중국에 더 이상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중국에는 좋든 나쁘든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다. 처음부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일종의 자기최면에 빠져 있었다. 중국이 우리에게는 호의적이고 일본에는 적대적일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었다. 우리가 앞서가는 일본과 뒤에서 쫓아오는 중국 사이에 끼여 샌드위치가 될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저만치 앞서가는 중국과 일본 뒤에서 아무도 쳐다 보지 않는 외롭고 미운 오리의 신세가 될 가능성을 이제부터라도 직시해야 한다. 중국에 대해 보다 현실적 인식을 가져야 하며 일본과의 감정이나 기 싸움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보다 균형 잡힌 새로운 한·중·일 삼각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원자바오 中총리 “日, 역사문제 행동으로 보여달라”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을 공식 방문 중인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12일 역사문제에 대해 “실제 행동으로 보이길 진심으로 희망한다.”며 일본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원 총리는 이날 중의원 본회의장에서 전략적 호혜관계의 구축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역사문제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22년 만에 일본 국회에서 연설하는 중국 지도자이자 7년 만에 일본땅을 밟은 중국 총리라는 ‘상징성’으로 국제 사회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원 총리의 연설은 일본과 중국에 TV로 생중계됐다. 원 총리는 1937년의 중·일 전쟁과 관련,“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중국 인민은 중대한 재난을 당했다.”면서 “그러나 침략전쟁의 책임은 소수의 군국주의자가 져야 한다. 일본 국민도 전쟁의 피해자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측의 깊은 반성과 사과를 적극적으로 평가한다.”고 전제한 뒤 “일본은 태도 표명과 약속을 실제 행동으로 보이길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또 “역사를 귀감으로 삼는 것은 원한을 계속 안고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좋은 미래를 열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및 일본군 위안부 등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적극적인 행동 변화를 에둘러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다. 원 총리는 국회 연설에 이어 왕궁을 방문,30분 동안 아키히토 일왕과 면담한 자리에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초청 의사를 밝혔다. hkpark@seoul.co.kr
  • “日軍 위안소 설치 지시 네덜란드 판결문 발견”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뒤집는 증거가 네덜란드의 법원 판결문에서 발견됐다고 교도통신이 11일 베를린발로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자료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위안소를 운영했던 일본인 아오치 와시오(사망)가 2차 세계대전 후 체포돼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전범재판에서 증언한 판결문 내용이다. 아오치는 재판에서 점령지의 군정 당국인 군정감부(軍政監部)의 지시를 받고 민간 위안소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아오치는 지난달 일본 국회도서관의 야스쿠니신사 자료 공개에서 지난 1967년 전사자들과 합사됐던 것으로 드러난 당사자다. 독일에 체류 중인 언론인 가지무라 다이치로가 입수한 전범재판소 판결문은 “아오치는 1943년 6월2일 군정감부로부터 매춘업소를 개설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의를 제기했지만 재차 지시를 받은 뒤 수용했다.”고 기록, 군이 위안소 설치를 지시한 사실을 분명하게 입증했다. 또 아오치는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점령 중이던 1943년에 ‘사쿠라클럽’이란 위안소를 설치했다고 적고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아오치의 애인인 네덜란드 여성은 “헌병을 부르겠다.”며 협박, 소녀를 포함해 네덜란드인 여성들에게 매춘을 강요했다. 매춘을 거부하는 여성들은 관헌에 체포돼 감금당하기도 했다. 아오치는 1946년 10월 네덜란드군이 개설한 임시 군법회의에서 강제 매춘죄로 금고 10년의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숨졌다.hkpark@seoul.co.kr
  • 中-日 ‘해빙 여행’

    中-日 ‘해빙 여행’

    |도쿄 박홍기특파원|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일본 방문을 ‘해빙의 여행’이라고 표현했다. 또 “상호 신뢰와 우정을 증진시키고 싶다.”는 의중을 밝혔다. 일본 역시 6년 6개월 만에 방문하는 중국 총리에 대한 접대가 여느 때와 다르다.11일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12일 중국 총리로서는 처음 국회에서 연설하는 데다 일본 왕도 접견할 예정이다.13일에는 오사카와 교도를 방문해 농촌을 둘러보고, 현지 대학생들과도 대화를 나눈다.‘우호 무드’를 강화하기 위한 중국측의 행보이자 일본측의 배려인 셈이다. 지난해 10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기 전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정치 문제와 얽혀 냉랭하기 짝이 없던 양국 관계가 아니다. 중국과 일본은 민감한 정치문제보다 경제관계에 가급적 비중을 뒀다. 양국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정치 현안은 미루고 실리를 담보할 수 있는 경제 쪽을 택한 것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중·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전략적 호혜관계’의 본격적인 구축에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로 해마다 한 차례씩 열릴 ‘중·일 고위급 경제대화’라고 일컫는 경제각료회의체의 구성을 꼽을 수 있다. 또 일본의 에너지 절약 기술을 지원하는 ‘에너지 정책대화’ 개최도 마찬가지다. 양국이 갖가지 경제정책을 톱다운 방식으로 추진하는 경제대화는 12일 첫 회의를 갖는다. 일본 아소 다로 외무상과 중국의 쩡페이옌 국무원 부총리가 대표로 나설 계획이다. 대화에서는 에너지 분야의 협력뿐 아니라 지적재산권 보호와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의 보장 등이 집중 논의될 예정이다. 특히 중국은 2003년 병해충 반입을 우려, 금지해온 일본 쌀의 수입을 4년 만에 받아들였다. 일본측은 중국의 경제발전에 힘입어 커지는 쌀소비 시장에 줄곧 눈독을 들여왔었다. 마쓰오카 도시카쓰 농림수산상은 “일본 농산물의 상징인 쌀이 2억t의 시장인 중국에 들어가는 데 의의가 크다.”고 밝혔을 정도다. 나아가 일본 하네다와 상하이 훙차오 공항 간의 전세기 직항노선도 개설돼 양국 사이의 경제교류가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양국은 범죄수사 공조체제도 갖추기로 했다. 물론 중·일 정상은 양국 사이에 마찰을 빚고 있는 동중국해의 가스개발과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강도가 그다지 높지 않았을 뿐이다.‘정치적 수사’만 오갔을 뿐 확고한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역사 문제에 대해 “일본은 평화국가로서 걷고 있다.”는 등의 답변으로 얼버무렸다.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이나 북핵 대응에 있어서는 적잖은 온도차를 확인했다.‘해빙’의 ‘불안정 요소’인 셈이다. 어쨌든 원 총리의 답방에 이어 아베 총리가 가을에 중국을 다시 방문할 의향을 가진 만큼 중·일 관계는 분명 새로운 궤도에 진입하고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hkpark@seoul.co.kr
  • [한·미 FTA 시대] 日, 한·일FTA 교섭재개 시사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시오자키 야스히사 관방장관은 3일 한·일 양국간의 중단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대해 “구체적인 문제는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면서 “언제라도 교섭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교섭 재개 의사를 내비쳤다. 아베 신조 총리도 이날 “(한·일 양국의 FTA 협상 재개를 위해) 서로가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시오자키 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정상 레벨을 포함해 협상 재개를 한국측에 요청해 왔으며, 앞으로도 성의를 갖고 조기 협상재개를 위해 한국측에 촉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한·미 FTA 합의와 관련,“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한 단계 발전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번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평가한 뒤 “일본의 미국이나 한국으로의 수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한·미 협정의 내용을 잘 보고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FTA 협상은 2004년 11월 이후 중단됐다. 한국의 대일 농산물 시장개방 요구에 일본측의 반대가 극심했다.반면 한국 중소기업들이 일본의 공산품 수입관세 철폐에 반발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둘러싼 외교적 마찰까지 겹쳐 협상이 진행되지 못했다. 한편 아베 총리는 이날 미·일 양국의 FTA 협상 가능성에 대해 “양국의 경제규모를 염두에 두면서 (협정을) 장래의 과제로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hkpark@seoul.co.kr
  • 日 “고노담화 계승하겠다” 韓 “잘못된 발언 하지말라”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외상이 일제 군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일본 정부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아소 외상은 지난 31일부터 1일까지 제주도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만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난 26일 국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답변한 바와 같이 일본은 고노 담화를 계승하며 위안부 당사자들에 대해 사과하는 정부의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고노 담화’는 지난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晋三) 당시 관방장관이 태평양전쟁 당시 종군 위안부를 동원하는 과정에서 일본군과 일본 관리들이 관여했음을 인정하고 사과를 표시한 것이다. 회담에서 양국은 외교·국방부 국장급 당국자들간 실무협의체인 한·일 안전보장대화를 5월 중 재개, 북한문제 및 동북아 정세 변화 등에 공동으로 대응키로 했으며 오는 6월3일 제주에서 한·중·일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 동북아 지역협력 등을 논의키로 했다. ●아직도 갈 길 먼 역사인식문제 송 장관은 모두발언에서부터 역사인식 문제를 지적하며 일본측을 압박했다.2시간가량 진행된 공식 회담에서 양측은 군대 위안부·독도·교과서 검정·야스쿠니신사 문제 등에 대해 설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대 위안부 문제와 관련, 일본측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에 따라 더 이상 거론하기 꺼려했지만 우리측은 일본 지도자들의 잘못된 발언에 유감을 표하며 재발 방지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는 “아소 외상은 고노 담화 계승만 확인했을 뿐 지도자들의 발언에 대해서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송 장관과 아소 외상은 독도 문제와 고교 교과서 검정, 야스쿠니신사 문제 등에서도 이견을 드러냈다. 독도에 대한 고교 교과서 검정에 대해 “어떤 영유권 주장도 용납할 수 없다.”는 우리측 입장에 일본측은 “다케시마(독도)에 대해서는 일본도 일본측의 입장이 있으며, 대국적인 관점에서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맞섰다. ●FTA,6자회담도 미묘한 시각차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는 일본측이 필요성을 강조하며 먼저 제안했다. 그러나 우리측은 한·미 FTA가 막바지인 만큼 당장은 한·일 FTA에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높은 수준의 FTA가 체결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먼저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전달했다. 아소 외상은 “한국측이 한·미 FTA를 하는 상황에서 사람이 부족하고 물리적으로 힘들어서 한·일 FTA까지 할 인력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6자회담 ‘2·13합의’에 대한 의견도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우리측은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측 입장을 이해한다고 밝히면서도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에 일본측이 참여해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귀포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사설] 한일관계서 뒷걸음질만 하는 日정부

    제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이틀간의 일정을 어제 끝마쳤다. 양국 외교수뇌 회담에서는 2003년 이후 중단된 안보대화를 재개하고 두 외교부의 북·미국장간 협의를 갖기로 합의했다. 미·일 동맹이 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약해진 한·일 안보대화를 복원함으로써, 동북아 중장기 정세에 대해 허심탄회한 속내를 주고받는 채널이 다시 열린 점은 평가할 만하다. 북·미국장간 협의도 6자회담과 북·미관계를 지원하고 논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2·13 합의’에서 납치문제에 진전이 없는 한 대북 지원은 없다는 일본 입장을, 우리측이 비판하지 않고 존중한다며 체면을 세워준 것도 대국적 견지에서 옳은 방향이다. 이처럼 안보 면에서는 양국이 협력에 동의했으나 정작 현안인 군위안부와 일본 교과서검정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입장만 강조한 채 끝났다. 예상대로 과거사에 대해서는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아소 다로 외상은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계승한다는 일본 정부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 총리의 ‘3·1 망언’, 시모무라 하쿠분 관방부장관의 망언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고노담화를 계승한다면서도 한쪽에서는 망언을 해대는 일본의 이중적인 태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 정부의 이중성은 특히 교과서 검정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독도 영유권 주장은 넣고, 군위안부 기술은 뺀 교과서가 문부과학성 검정에서 대거 통과한 점에 대해 일본은 종래 입장을 되풀이했다. 아소 외상은 “국정교과서가 아니라 관여할 수 없다.”고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일 관계는 고이즈미 정권때 야스쿠니 참배로 상당히 꼬였다가 아베 정권 들어 실마리가 풀리는가 했다. 이런 퇴행적 과거사 인식으로 양국 관계가 더욱 악화한다면 그 책임은 일본에 있다는 점을 우리는 거듭 강조해 둔다.
  • 日교과서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

    日교과서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

    |도쿄 박홍기특파원 서울 김미경 기자| 일본 정부가 내년부터 사용될 고교 2·3학년의 교과서에 독도의 일본 영유권 주장을 한층 강화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 부분은 아예 뺀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30일 2008년도의 지리·역사 등 205종의 고교 교과서에 대한 검정결과를 발표했다. 문부성은 검정과정에서 한국과 북한·중국에 관한 역사 내용에 강하게 수정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정부가 역사의 왜곡·축소를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독도를 일본 영토로 기술한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킨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했다. 또 교과서 내용을 철저히 검증한 뒤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문부성은 일본사 A·B과목 교과서를 검정하면서 독도와 관련, 검정 신청본의 ‘1693년 조선과의 사이에 다케시마 문제 발생’이라는 표현이 ‘오해를 야기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는 이유로 문제 삼아 삭제했다. 독도의 일본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것이다. 문부성은 ‘센카쿠열도나 다케시마의 영유권 문제 등 미해결 문제가 있다.’는 부분도 같은 이유를 들어 ‘한국과는 다케시마를 둘러싼 문제가 있으며, 중국은 센카쿠 열도의 영토를 주장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바꾸게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독도 관련 표현은 16군데에서 발견됐다.”면서 “그 흐름은 일본 영유권을 강화 쪽에 맞춰졌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난징대학살과 관련, 검정신청본은 ‘희생자수가 후일 극동군사재판에서 20만명으로 나오는 등 일본의 책임이 엄격히 추궁됨’이라고 표현돼있으나 통과본은 ‘20만명’에 각주를 달아 ‘희생자수에 대해서는 십 수만명,4만명 전후 등 다양한 설이 있으나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중국은 30만명이라고 주장함’이라며 얼버무렸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지금까지 합헌이라는 판결은 없음’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지금까지 공식참배를 합헌으로 인정한 판결은 없음’으로 고쳤다. 동해 명칭의 경우, 당초 검정신청본에 ‘우리들이 부르는 일본해라는 명칭은 한국에서는 동해라고도 불리우고 있음’이라고 돼 있었지만 ‘세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일본해는 한국에서는 동해라고 불리워짐’으로 기술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경우, 신청본에 ‘과거 일본이 행한 강제연행, 종군위안부 관련 문제에서 현재 개인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되어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되고 있음. 정부는 전후보상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갖고 있으나 위안부의 다수는 국가에 의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음’으로 실렸었으나 통과본에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되고 있음’이 빠졌다. 교도통신은 이날 대부분의 일본사와 세계사 교과서에는 군대 위안부의 모집 과정에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는 표현은 검정을 신청하는 단계에서부터 제외됐다고 보도했다. 군대 위안부 문제는 세계사와 일본사 11권의 21곳에 기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부성은 일본사 A,B과목에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오키나와 주민들의 집단자결을 강제했다고 쓴 7곳에 대해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져 심각한 과거사 왜곡이라는 내부 비판에 직면했다. hkpark@seoul.co.kr
  • [특파원 칼럼] 진정성 없는 아베총리 사과/박홍기 도쿄 특파원

    1945년 3월10일 일본 도쿄에 미군 B29 폭격기의 대대적인 폭격이 있었다. 도쿄는 삽시간에 불바다가 됐다. 사상자만 10만명에 달했다.62년 전에 일어난 이른바 ‘도쿄 대공습’이다. 일본 관공서들은 올해도 로비에 불에 탄 시신들과 폐허가 된 시가지를 담은 사진들을 전시했다. 곳곳에서 위령제도 거행했다. 대다수 언론들은 ‘잊지말자.’고 주문을 외는 듯 유족이나 부상자들의 삶을 추적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8월6일의 상황도 엇비슷하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곳에도 ‘왜’가 없다는 사실이다. 왜 대공습이 있었고, 왜 원폭이 투하됐는지는 간데없고 참상만을 부각시키는 형국이다. 실제 일본의 일각에선 자신들이 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양 떠들어 대고 있다. 그러면서도 야스쿠니 신사에 딸린 전쟁기념관 유슈칸(遊就館)을 통해 노골적으로 침략과 전쟁의 정당성을 내세운다. 분명 역사의 왜곡이지만, 그리 간단찮다. 그만큼 뿌리가 깊어지는 탓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5일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 사실을 부인했다. 협의니 광의니 하는 용어까지 동원해 자신있게 ‘증거타령’을 늘어놓았다. 어찌보면 뜬금없어 보인다.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군대위안부 문제를 ‘민족주의’에 호소, 추락하는 자신의 지지율 반등을 겨냥했다. 군 위안부들의 아픔과 한을 ‘비열한 계산’ 아래 건드린 것이다. 강점의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질서마저 무시해 버렸다. 망언의 역풍은 예전같지 않다. 인권을 무참하게 유린한 가해자로서의 뻔뻔함에 질려서다. 지고지선으로 여긴 미국의 움직임이 가장 강력하다. 의회뿐만 아니라 언론, 정부까지 나서 ‘민주국가 지도자로서의 수치’ 등의 비난을 가하며,‘솔직하고 책임있는 태도’를 주문했다. 독일도, 네덜란드도, 호주도, 캐나다도 분노했다. 아베 총리는 망언한 지 21일 만인 지난 26일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총리로서 지금 당장 사과한다.”라는 짧디짧은 말이 전부다.‘진정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아베 총리는 전후 세대 첫 젊은 총리다. 총리가 되기 전인 97년에 만들어진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의 사무국장까지 맡아 ‘자학성 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던 장본인이다. 식민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사죄한 패전 50주년 국회 결의문과 1995년 ‘무라야마 담화’도 못마땅해했다. 1998년 5월 ‘고노 담화’에 대해서는 “강제연행에 관련 근거가 없는 데도 관헌 등이 직접 가담하고, 의사에 반해 연행됐다는 점을 인정한 것은 큰 문제”라고 따졌을 정도다. 그런 아베 총리가 “총리로서”라는 전제를 붙이고 “고노 담화에 쓰여 있는 그대로다.”라고 밝혔다. 진심에서 우러났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망언이 망언이 아닌 본심일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따져 보면 아베 총리만의 사과로 풀릴 군 위안부 문제가 아니다. 아베 총리의 주변에는 현재의 역사를 ‘자학성 사관’이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정치인이 한둘이 아닌 까닭에서다.“일부 부모들이 딸을 팔았던 것”이라는 막가파식 발언을 서슴지 않은 시모무라 관방부장관도 그 ‘의원 모임’의 멤버다. 일본은 다시금 역사를 똑바로 봐야 한다. 특히 전후 세대 정치인들의 올바른 역사인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렇기에 아베 총리는 전후 세대의 첫 리더로서 가해자의 역사를 올바로 인식, 인정해야 한다. 군 위안부들의 피맺힌 목소리를 경청, 진정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대세에 밀려 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던지는 사과가 아니다. 아베 총리는 지금 세계가 군 위안부 문제의 해법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hkpark@seoul.co.kr
  • 日 정부가 전범 합사주도 ‘사실로’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부가 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들을 포함, 전몰자들의 야스쿠니신사 합사 과정에 깊이 관여한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또 전범의 합사와 관련,‘눈에 띄지 않게’ 보안 유지에 신경을 쓰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지금껏 A급 전범의 야스쿠니신사 합사는 종교기관인 신사 쪽의 독자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야스쿠니신사에는 일본군 위안부들을 관리·감독한 위안소 민간 운영자도 함께 둔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같은 사실은 일본 국립 국회도서관이 전날 국회에 제출한 ‘신편 야스쿠니신사 문제 자료집’을 통해 드러났다. 자료집은 야스쿠니신사의 비공개 자료와 후생성·신사측의 협의 내용 등 모두 808건 1200쪽 분량이다. 자료집에는 일본 후생성과 야스쿠니신사측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긴밀한 협조 아래 이뤄진 합사 과정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지난 1956년 당시 후생성은 전몰자의 야스쿠니신사 합사와 관련,“3년간 완료하도록 협력해 달라.”는 내용의 지침을 만들었다. 이후 후생성 측은 신사를 방문해 협의, 합사 기준을 결정했다. 58년 4월 4차 협의 때에는 후생성이 신사 측에 “전몰자는 B·C급을 개별 심사해 지장이 없는 정도에서 눈에 띄지 않도록 합사하는 방안을 연구해 달라.”고 제안했다. 같은 해 9월 7차 협의에서 후생성은 전범에 대해 “직무상 희생된 자 또는 사실에 반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규정된 사람 등 합사에 부적격한 사람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더욱이 후생성은 “우선 외지에서 사형을 당한 B급 전범을 눈에 띄지 않는 범위에서 허락해 주길 바란다.”는 등 자세한 기준도 제시했다. 후생성과 야스쿠니신사 측은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A급 전범 합사와 관련,69년 1월 협의한 것으로 기록됐다. 신사 측이 작성한 자료에는 “A급 전범(12명) 합사가 가능하다.”고 기재됐다. 신사 측 문서에는 “눈에 띄므로 외부 발표는 삼간다.”고 적어 일본 안팎의 반발에 대한 우려도 표시했다. 결국 A급 전범 합사는 78년 10월 이뤄졌지만 후생성이 9년 전인 69년부터 신사 측과 협의한 결과물인 것이다. 후생성이 1966년 2월 야스쿠니신사 측에 ‘합사를 보류하고 있던 전범 관계 사망자’라는 명목으로 A급 전범을 포함한 대상자의 이름을 보낸 사실은 알려졌지만 실제 A급 전범이 합사되는 과정은 확인되지 않았었다. 자료집에는 또 43년 9월부터 2년 동안 자카르타에서 군대 위안소를 운영하다 패전 뒤 네덜란드군에 의한 전범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 중 46년 11월 사망한 민간인도 포함됐다. 이 때문에 군대 위안소 경영자가 전쟁에 공헌했다는 점을 일본이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hkpark@seoul.co.kr
  • [씨줄날줄] 후나바시 요이치/황성기 논설위원

    일본 아사히신문의 명 칼럼니스트 후나바시 요이치가 이달 30일자 주간 아사히에 쓴 칼럼은 군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다.‘일본고립의 내적인 구조에 눈을 돌릴 때이다’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미국 지도층들이 일본을 보는 냉랭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위안부문제와 더불어 6자회담에서 북핵 해결보다는 납치문제를 우선시하며 고립해 가는 일본 외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칼럼 서두에서 “(미국의)지일파가 일본에 대한 위화감을 표명하기 시작했다.”면서 “(워싱턴에서)누구라도 위안부문제를 먼저 제기한다.”고 쓰고 있다. 그가 만난 미 행정부, 의회, 싱크탱크 관계자의 말을 옮겨보자.“일본 정치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일본인 납치문제에 동정적인 공화당 의원조차도 위안부 결의안에 반대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야스쿠니신사 문제로 그렇게 외교적으로 점수를 잃었는데도 위안부문제로 더 실점할 셈인가. 일본이 이런 상태라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전략문제에 대해 중국을 파트너로 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후나바시는 부시 행정부가 “위안부문제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와는 다르다. 누구도 일본을 변호해줄 수 없다. 일본이 고립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는 얘기도 아울러 전했다. 후나바시는 이라크전쟁의 전우로서 돈독했던 부시·고이즈미 시대에는 리처드 아미티지, 마이클 그린 같은 지일파가 정권의 핵심에 있어서 대일 관계가 전략적으로 행해졌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부시·아베 시대에는 서로의 이해·관심을 각자 쏟아내고만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전후세대의 정치지도층을 중심으로 납치나 군위안부 같은 단일 이슈로 외교에 임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야스쿠니 문제로 아시아에서 외면당하고 미국 일변도 외교를 펼쳤던 고이즈미 시대의 혼란스러움이 아베 신조 정권에도 이어져 동북아 협력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는 후나바시의 식견은 탁월하다. 군위안부 문제로 미국마저 등을 돌리며 국제고립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이 지금 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 칼럼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日 위안부문제 사과·배상해야” 캐나다 의회도 ‘위안부 결의안’ 추진

    |워싱턴 이도운 특파원·외신 종합|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군대 위안부 동원 부정 발언이 국제사회로부터 된서리를 맞고 있다. 피해국 정부·언론은 물론 미국의 유력지들이 연일 비판하고 있고, 캐나다 의회도 미 의회에 이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결의안 채택을 추진 중이다. 같은 전범 국가로 이웃 피해국과 과거사 정리를 철저히 한 독일도 목소리를 높였다. 캐나다 신민당 소속 웨인 마스턴 의원이 발의한 이 결의안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캐나다 하원 외교·국제개발위원회 산하 인권 소위 표결에서 찬성 4, 반대 3표로 가결돼 상임위에 회부됐다. 결의안은 위안부 만행에 대한 사과는 물론 피해여성에 대한 ‘합당하고 명예로운’ 배상까지 요구하고 있다. 또 피터 매케이 외무장관에게 일본 총리와 의회에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데 필요한 모든 가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결의안을 발의한 마스턴 의원은 “2차 대전 당시 일제 위안소에서 성노예로 학대당한 수만명의 여성들에게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사죄하고 배상 프로그램을 마련하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 발의자인 돈 블랙 의원은 “역사를 부인하는 건 정의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28일 ‘역사적 태만’이란 제목의 기명 칼럼에서 “아베는 능력이 부족한 총리”라고 혹평하고, 과거 성노예였던 70,80대 할머니들에게는 상처를 주지만 일본 국민의 절반에게는 민족주의적인 발언이 호응을 얻을 것이라는 비열한 계산으로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위안의 말’(Words of Comfort)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일본이 또다시 진실을 우롱하고 있다.”면서 “놀라운 것은 지난해 9월 취임 후 한국과 중국을 잇따라 방문, 전임자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문제로 악화된 주변국들과의 관개 개선에 나섰던 아베 총리가 이런 터무니없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전문가로 꼽히는 제럴드 커티스 미 컬럼비아대 정치학 교수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의 위안부 강제동원 부인 발언은 총리 자신의 위상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외교 관계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dawn@seoul.co.kr
  • “日에 야스쿠니 합사취하 요청” 정부, 韓人생존자 12명 확인

    멀쩡하게 생존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 야스쿠니 신사 명부에 합사(合祀)된 한국인이 최소한 12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을 포함해 명부에 합사된 것으로 파악된 한국인은 6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국무총리실 산하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지원단 관계자는 6일 이같은 사실을 밝힌 뒤 “생존자와 유족들로부터 합사취하요청서를 취합해 일본측에 이들의 이름을 명부에서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일제 침략·위안부 동원 상세 기술

    일제 침략·위안부 동원 상세 기술

    ‘미래를 여는 역사’(2005년)→‘마주 보는 한일사’(2006년)→‘한일 교류의 역사’(2007년). 한·중·일과 한·일간 역사인식의 심각한 차이는 상대국 역사교과서에 대해 ‘왜곡’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게 만든다. 이런 현실은 또 정치적으로도 동아시아의 긴장 심화라는 형태로 확대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중·일과 한·일 역사학자나 역사교사들의 ‘역사공감’ 노력은 10여년전부터 본격화됐다. 화해와 공존을 명분으로 내건 그 결과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한일공통 역사교재’를 표방하면서 지난 1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간된 ‘한일 교류의 역사’도 이같은 종류의 책이다. ‘미래를 여는 역사’(2005년)→‘마주 보는 한일사’(2006년)→‘한일 교류의 역사’(2007년). 한·중·일과 한·일간 역사인식의 심각한 차이는 상대국 역사교과서에 대해 ‘왜곡’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게 만든다. 이런 현실은 또 정치적으로도 동아시아의 긴장 심화라는 형태로 확대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중·일과 한·일 역사학자나 역사교사들의 ‘역사공감’ 노력은 10여년전부터 본격화됐다. 화해와 공존을 명분으로 내건 그 결과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한일공통 역사교재’를 표방하면서 지난 1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간된 ‘한일 교류의 역사’도 이같은 종류의 책이다. ●공동교재 최초의 통사 ‘한일 교류의 역사’(혜안 펴냄)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시대를 다루고 있다. 공통교재 최초의 통사(通史)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서울시립대 교수들이 중심이 된 역사교과서연구회, 일본은 도쿄 가쿠게이(學藝)대학 연구진 중심의 역사교육연구회가 10년에 걸친 토론과 합의를 통해 공동으로 집필했다. 이 책의 통사적 의미는 남다르다. 실제 2006년 출간된 ‘마주 보는 한일사’(사계절 펴냄)는 선사시대부터 개항기까지를 다뤘고,2005년 한·중·일 3국 연구자들이 집필한 최초의 한·중·일 공동역사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한겨레출판 펴냄)는 근현대사만을 대상으로 했다. ‘한일 교류의 역사’는 전 시대에 걸쳐 문화의 일방적 전파가 아닌 상호교류를 강조하고 있다. 신석기시대 한국의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토기가 일본에서도 발견되고, 일본의 소바타식 토기가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된다는 점 등을 자세히 밝혔다. 또 일본 특유의 묘제인 전방후원분(앞쪽은 사각형, 뒷부분은 둥근 무덤형태)이 한반도 남쪽에서 발견되는 등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활발한 주민교류가 있었다는 점도 비중있게 서술했다. 근현대사에서 재일한국인과 재조선일본인의 역사도 크게 다루고 있다. 임진왜란은 일본의 조선침략이라는 성격을 명확히 했다. 일본내 ‘정한론’의 등장과정 등도 비교적 자세하게 다뤘지만,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한 대목은 ‘한국병합’으로 다소 애매하게 처리했다.‘위안부 강제동원’ ‘패전직후 재조선 일본인의 참상’ 등도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기술했다. ●한·중역사서는 일본 비판 그렇다면 이전의 공동연구 결과물은 비슷한 내용을 어떻게 서술했을까. 선사시대부터 개항기까지 다룬 ‘마주 보는 한일사’는 ‘한일 교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문화교류를 강조하면서도 각각의 역사를 모두 기술하고 있다. 특히 ‘일본서기’와 ‘삼국사기’ 부분은 관련내용을 해석의 문제점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마주 보는 한일사’는 시대순으로 정리하면서도 불교 등 주제별로 양국의 문화를 설명하는 데 많은 주안점을 뒀다. 한·중·일 공통교재를 표방한 ‘미래를 여는 역사’는 민감한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지만 상당부분 한국과 중국쪽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일본의 동양침략을 합리화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일본의 한국 ‘강점’,‘문화정치’의 실상, 일본의 침략전쟁 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위안부’ 문제와 야스쿠니 신사문제 등 현재 한·일간 민감한 문제도 가감없이 거론하고 있다. ●주류 학계 “객관성·실증성 미흡” 그럼에도 공동의 역사연구 및 교재출간은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번 ‘한일 교류의 역사’에서도 한·일학계에 민감한 ‘임나일본부설’ 등은 아예 기술대상에서 제외했다. ‘한국병합’은 따옴표로 처리하고, 별도로 ‘불법적인 강제점령이라는 것이 한국의 견해’라고 지적했다. ‘마주 보는 한일사’는 아예 논란이 큰 근현대사는 논의에서 제외했다. 주류 학계에서는 이런 종류의 공동연구 결과물들에 대해 “객관적이며 실증적이어야 할 역사를 외교협상 하듯이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극단적인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한일 교류의 역사’ 저자들은 “아직 완성된 공통의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역사의 공통인식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곤란한 일인지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일정부분 수용하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책꽂이]

    ●미국 비자 포커스(전종준 지음, 푸른솔 펴냄) 현재 미국 비자 면제국은 27개국으로, 대부분 유럽 국가이고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싱가포르뿐이다. 아르헨티나는 면제국이었으나 IMF가 터져 그 지위를 상실했다. 미국 비자 면제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먼저 비자 거부율이 3% 미만이어야 한다. 미국 비자 면제국이 되더라도 이같은 비자 거부율을 2년간 유지해야 취소되지 않는다. 미국 비자는 알파벳 순으로 A비자부터 V비자까지 있다. 이민전문 변호사인 저자가 들려주는 미국 비자 실제상황 가이드.1만 5000원.●시와 그림으로 읽는 중국 역사(이은상 지음, 시공사 펴냄) 문인들은 종종 자신의 그림에 그와 관련된 텍스트를 새겨 넣었다. 이런 글을 제화(題畵)라고 한다. 마치 상나라 때 정인(貞人)이란 지식인 집단이 거북의 뼈에 문자를 새겨 넣었듯이 문인들은 자신의 그림에 설명을 달아 놓은 것이다. 이 책은 상대(기원전 1600∼1045년) 갑골문부터 청대 괴짜화가 석도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사를 그림과 제화를 중심으로 살펴본다.‘명말의 그로테스크 화가 진홍수’ ‘문인 은사 심주(沈周)와 명대 쑤저우의 엘리트문화’ 등의 글이 실렸다.1만 4000원.●선조, 조선의 난세를 넘다(이한우 지음, 해냄 펴냄) 안으론 사림이 득세하고 밖으론 오랑캐 침입의 난리를 맞은 조선의 국왕 선조. 그는 흔히 유약하고 무능한 인물로만 인식돼 왔지만 이 책은 그런 관점을 거부한다. 사림을 등용해 훈구정치의 막을 내리게 한 용인술의 대가, 조선 최고의 명필이자 사서(四書)를 훈민정음으로 풀어쓴 최초의 군왕,10만 양병의 기획자이자 7년 전란 후에도 왕권을 지킨 통치자…. 혹자는 수도와 백성을 버리고 떠난 파천이 선조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하지만, 이 또한 군력이 약한 상황에서 택한 위기관리술의 하나라고 주장한다.1만 3000원.●영국사:보수와 개혁의 드라마(박지향 지음, 까치 펴냄) 영국은 18세기 후반부터 한 세기 이상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당시 영국 본토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세계 최초로 의회민주주의를 발달시키고 최초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뿌리내렸으며 최초로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또한 19세기 말에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제국을 거느리기도 했다. 한국 영국사학회 회장인 저자는 영국 역사를 “대규모 유혈혁명을 겪지 않은 채 근대 세계를 수백년 동안 선도해온 ‘모범생의 역사’”로 규정한다.2만원.●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정순태 지음, 김영사 펴냄) 13세기 천하정복을 꿈꾸며 세계의 7할을 복속시킨 몽골.40년간 그 야욕에 맞선 불굴의 고려. 이 막강 여몽연합군의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정벌은 태풍이란 천재지변으로 실패했다. 일본이 최초의 외침인 여몽연합군의 침략을 물리치고 ‘신이 보호하는 나라’라는 거대한 신화를 만들어낸 이면엔 어떤 진실이 숨어 있을까.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로를 따라가며 중세 동아시아 관계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전쟁이 2차 세계대전의 가미카제 특공대를 낳고,21세기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야스쿠니 신사참배까지 이어지는 일본 민족주의의 자궁이라고 일침을 가한다.9900원.
  • “日 역사적 진실 존중·실천 필요” 노대통령 3·1절 기념사

    노무현 대통령은 1일 ‘제88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참석, 기념사에서 “우리는 일본과 사이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한다.”면서 “경제·문화 등에서 이미 단절하기 어려운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3·1절 메시지는 예년처럼 일본을 겨냥한 원칙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완곡한 표현에서 보듯 비판 수위가 한층 낮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등 한·일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점을 감안한 수위 조절인 듯싶다. 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무엇보다 역사적 진실을 존중하는 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실천이 필요하다.”면서 “역사교과서, 일본군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참배 같은 문제는 성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양심과 국제사회에서 보편성을 인정받고 있는 선례를 따라 성의를 다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이것이 국제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길이 될 것”이라며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아직도 일본의 일부 자치단체는 러일전쟁 당시 무력으로 독도를 강탈한 날을 기념하고 있다.”면서 “일부에서는 지난날의 과오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나아가서는 역사를 그릇되게 가르치는 일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이제는 우리 국력과 역사의 대세에 대한 확신을 갖고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앞장서 이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멀쩡히 산 사람을 日전범과 합사하다니…”

    “멀쩡히 산 사람을 日전범과 합사하다니…”

    “(야스쿠니 신사에서)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마음대로 합사시켰지. 빼달라고 했더니 유패에 ‘생존자’라고 붙여 놨더라고. 이번에 가면 차라리 ‘강제징용자’로 고쳐 달라고 할 거야.” 김희종(82) 할아버지는 최근 하루도 편안하게 잠을 못 이뤘다.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를 공동 피고로 한 ‘야스쿠니신사 합사철폐 재판’ 원고인단 가운데 생존자로는 유일하게 참여해 25일 일본땅을 밟기 때문이다.23일 서울 신림2동의 자택에서 만난 그는 귀가 조금 어두웠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꼭꼭 눌러왔던 한(恨)을 풀어냈다.50년 넘게 함께 산 유희훈(74) 할머니에게도 3년 전에야 징용 사실을 털어놓았을 만큼 일부러 잊고 지낸 그의 과거사는 불행했던 우리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었다. ●일본에서 미국, 다시 한국으로, 힘 없는 민족의 설움 황해도 황주 출신인 그가 제국주의의 망령이 드리워진 야스쿠니 신사에 ‘긴 기시오(金喜種)’란 이름으로 전범들과 함께 합사된 것은 지난 1944년 일본 군속으로 징용당한 뒤 전사한 것으로 잘못 기록된 탓. 그는 “개 끌고 다니듯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끌려갔어. 배를 탔을 때에야 남양군도로 간다는 것을 알았지.”라고 그때를 떠올렸다. 요코하마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뒤 사이판으로 옮겨갔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일본군 기지를 구축하던 그는 44년 6월 미군의 포로가 됐고, 이후 캘리포니아 목화 농장에서 노예처럼 노역을 했다. 광복을 맞았지만 돌아올 길이 마땅치 않아 1년을 더 기다린 끝에 46년 고국 땅을 밟았다. 48년 순경 시험에 합격해 73년 정년 퇴직한 그는 퇴직금으로 조그마한 문방구를 열었지만 신통치 않았고 구슬 꿰기를 하는 등 힘겹게 2남1녀를 키웠다. 지금은 자식들이 마련해준 35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살고 있다. 지난 세월 일본의 망언이 이어질 때마다 가슴을 후벼내듯 아팠지만 일부러 잊고 지낸 악몽들이 새삼 떠오른 것은 지난해 2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정부 조사가 이뤄지면서였다. 등록을 하라는 연락을 받고 여러 가지 서류를 떼서 해당 관청을 찾아간 할아버지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일본에서 사이판, 다시 미국까지 짐승처럼 끌려다녔어. 한 달에 50만원도 아닌 1년에 50만원이라니. 기도 안차. 죽은 사람에겐 2000만원이래. 쓴웃음만 나오더라고.” 지난해 5월에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자신이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다는 것. 관련 단체의 도움으로 일본을 찾아간 할아버지는 자신을 합사자에서 빼달라고 말했지만 야스쿠니 신사 측에선 묵묵부답이었다. “잘못을 감춰 보려는 것 아니겠어. 당시에 조선 사람들이 일본에 충성했다고 선전하기 위해서겠지. 정신대 문제의 방패막이로도 이용할 수 있을 테고”라며 애써 분을 감췄다. 그는 정부에 대해서도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고작 1년에 50만원 지원하겠다고 해놓고 그나마 정치인들끼리 치고받느라고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대. 내가 100살까지 살 것도 아닌데 이젠 줘도 안 받을 거야. 언제 힘없는 백성들을 생각한 적이 있나.”라고 힐책했다. ●야스쿠니신사 합사 철폐 재판 야스쿠니 신사에는 도조 히데키 등 14명의 A급 전범을 포함해 240여만명의 일본인 이외에도 약 2만 1000여명의 한국인이 강제 합사돼 있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야스쿠니 신사 합사자 가운데 13명은 현재까지 살아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국내 생존자와 유족들은 당사자나 유족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민족적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즉각 철폐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신사 측은 ‘한번 합사된 이상 취하할 수 없고 당시 일본인으로 희생됐고, 죽으면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다는 것을 알고 참전했기 때문에 합사는 유족들의 의사와 관계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번 소송은 한국인 합사자만을 원고로 해 제기되는 소송이다. 오는 26일 도쿄지방재판소에 정식으로 제소된다. 글 사진 임일영 김동현기자 argus@seoul.co.kr
  • ‘日軍위안부’ 美하원 첫 청문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하원에서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가 처음으로 청문회에 오른다. 미 의회 소식통은 6일 하원 외교위원회의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가 오는 15일쯤 한국과 네덜란드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증인으로 출석시켜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번 청문회는 지난달 하원에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과 관련,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제출한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캘리포니아 주) 의원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의회가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청문회를 개최한 적은 있지만 위안부 문제에 초점을 맞춘 청문회를 개최하고 피해자를 직접 증인으로 출석시키는 것은 처음이다.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외교위 전신)는 지난해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한 직후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관한 청문회를 열어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인한 한국 및 중국과 일본간의 역사 갈등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뤘었다. 당시의 위안부 결의안은 하원 본회의에는 상정되지 못했다. 한편 혼다 의원은 7일 오전(한국시간 8일 새벽) 기자간담회를 열고 새로운 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한 취지와 청문회 개최 배경 등에 대해 설명한다.dawn@seoul.co.kr
  • 4월 中총리가 7년만에 訪日하는 까닭

    |도쿄 이춘규특파원|중국과 일본간에 A급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둘러싼 신경전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이 영향으로 올해로 예정된 양국 정상의 상호방문 재개 방침이 무산될 조짐을 보이는 등 해빙무드를 타던 양국 관계가 다시 이상기류를 보이기 시작했다. 발단은 지난 14일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 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이 자리에서 원 총리는 4월 초·중순 일본 방문의 뜻을 밝혔다. 중국 수뇌의 방일은 7년 만이다. 원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올해는 역사적으로 민감한 해이며, 역사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고 싶다.”고 밝혔다. 중·일 전쟁의 발단이 된 노구교(盧溝橋)사건(1937년)이 70년을 맞은 사실을 염두에 둔 지적으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참배를 자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됐다. 그러자 일본은 원 총리의 4월 초·중순 방일 저의를 새삼 의심했다. 일 언론은 “4월21일부터 야스쿠니신사의 봄철 대제(大祭)를 염두에 두고 아베 총리가 참배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려는 속셈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원 총리는 가을께 아베 총리의 중국 방문을 요청했다. 그러면서도 오는 6월설이 유력시됐던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은 연말 이후로 미뤘다. 일본 언론은 후 주석의 방일 연기도 아베 총리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결과에 따라 야스쿠니신사의 가을 대제 때 신사를 전격 참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포기하기 전까지는 최고지도자의 방일 연기를 압력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의 방중 초청에 대해 중국측은 “원 총리의 방일 성과를 본 뒤 검토하고 싶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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