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야산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 119 출동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 산소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 수염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 점사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505
  • 36. 그땐 그랬지(6) 용변보다 엉덩이에 불…전치 12주 중화상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6. 그땐 그랬지(6) 용변보다 엉덩이에 불…전치 12주 중화상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독자들의 성원 속에 연재되고 있는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은 1960~70년대 독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생활 속의 사건 기사들을 모아 <그땐 그랬지>라는 코너로 소개합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사건 소품 기사들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부 표현은 요즘 상황에 맞게 수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36.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그땐 그랬지(6) 용변보다 엉덩이에 불…전치 12주 중화상 용변보다 엉덩이에 불…전치 12주 중화상 소독을 위해 변소 안에 뿌려 두었던 휘발유에 불이 붙어 앉아 있던 사람의 엉덩이에 전치 12주 화상을 입혔는데. 부산에 사는 윤모(21)군은 7월 16일 아침 8시쯤 이웃에 사는 박모(24)씨의 변소에 용변을 보러 가 바지를 벗고 쭈그리고 앉으며 피우고 있던 담배꽁초를 버리는 순간 아래에 뿌려 놓았던 휘발유에 불이 붙어 그만 엉덩이 전면에 화상을 입고 만 것. 봉변을 당한 윤군은 변소 주인 박씨에 대해 중과실 상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고. -1970년 8월 2일자 ▒▒▒▒▒▒▒▒▒▒▒▒▒▒▒▒▒▒▒▒ 소매치기인 줄도 모르고 차에 태워 못된 짓 하려다… 길가는 여인에게 엉큼한 마음을 먹었던 회사원이 돈 잃고 봉변까지 톡톡히 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25일 길가던 여인을 자신의 승용차로 유인, 욕을 보이려던 나모씨(32•회사원•서울 강동구 둔촌동)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는데.... 경찰에 따르면 나씨는 23일 새벽 1시쯤 용산구 한남동 H국교 앞길에서 길을 가고있던 20대여인의 옆에 차를 세우고 “내 차로 가는 데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유인해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동부 이촌동에 이르러 여인을 차안에서 욕보이려 했다는 것. 여인이 반항하며 지른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동네사람들에게 멱살을 잡힌 그는 경찰서로 끌려갔는데-. 경찰에서 조사를 받던 나씨가 주머니를 뒤지다 현금 5만원이 든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뒤늦게 이 여인을 찾았지만 여인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 뒤. 20대 여인은 나씨를 끌고 가는 주민들에게 “자신의 연락처이니 필요하면 연락해달라.”고 전화번호를 적어준 뒤 사라졌는데 경찰수사에서 그 전화번호는 가짜로 밝혀졌다. 나씨는 “오너드라이버의 주머니를 노리는 미인계인줄 모르고 차안에서 접근해 오기에 순순히 따를 줄 알고 몸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그 시기를 교묘히 이용해 소란을 피우며 소매치기를 해갔으니 진짜 피해자는 내가 아니냐.”며 투덜투덜. 경찰은 이 여인이 오너드라이버들에게 접근, 차를 타라는 청에 못이기는 체하며 동승해 엉큼한 남자가 다가오면 옥신각신하면서 지갑을 슬쩍하는 상습적인 여인으로 보고 주책없는 오너드라이버들에게 주의를 당부. 이렇게 되자 경찰은 피해자 입장인 나씨의 처리문제가 난처하게 됐다. 결국 계획적으로 지나던 여자를 유인해 욕을 보이려 했다는 점만은 사실이니 이를 문제삼아 입건하는 선에서 수사를 일단락 지었다. 그리고 수사경찰은 “목적한 것을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 돈뺏기고, 형사입건까지 당했으니 나씨의 망신살이 가련할 정도”라고. -1985년 7월7일자 ▒▒▒▒▒▒▒▒▒▒▒▒▒▒▒▒▒▒▒▒ 간통혐의 문초받던 아가씨 맞춤법 강의…조서 쓰던 경관 머리만 긁적 부산시 동래 경찰서 수사과에서 간통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던 이모(25)양이 진술서를 쓰고 있는 담당형사 L(38)씨에게 맞춤법이 틀렸다고 호통을 치면서 맞춤법 강의를 한바탕 해서 모두들 어리둥절. 이양은 진술조서를 받던 중 L형사가 조서에 ‘올키’라고 쓰자 ‘옳게’라고, ‘부엌’이라고 쓰자 ‘부엌’이라고 고쳐주면서 “그것도 모르냐”고 일침과 동시에 L씨를 붙잡고 맞춤법 강의를 친절하게 해주었다는 것. 친절한 선생님을 만난 L형사는 그저 머리만 긁적거리고. -1970년 5월 3일자 ▒▒▒▒▒▒▒▒▒▒▒▒▒▒▒▒▒▒▒▒ 도둑일망정 나도 의리의 사나이 며칠 전 부산의 한 경찰서를 찾아온 K(41)씨는 ‘의리있는 강도님’을 잡아달라는 색다른 신고를 했는데…. K씨는 전날 밤 집안에 침입한 강도에게 “다른 것은 다 가져가도 좋지만 단벌신사이니 양복만은 좀 봐달라”고 사정했더니 딱한 사정에 감동한 강도씨가 “날씨가 더워졌으니 저고리만 가져 가겠다”면서 바지는 남겨 주더라는 것. -1970년 5월 31일자 ▒▒▒▒▒▒▒▒▒▒▒▒▒▒▒▒▒▒▒▒ 죽는 약과 사는 약을 섞어 먹은 아가씨 9월 22일 오후 6시쯤 광주의 한 야산에서 약을 먹고 신음 중인 이모(20)을 칡덩굴을 걷으러 갔던 사람이 발견, 대학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구했는데…. 알고 보니 이양은 수면제 25알과 잠 안오는 약 15알을 함께 먹었다고. 왜 그렇게 섞어서 먹었느냐고 의사가 물어보자 “차마 죽기는 싫어서 그렇게 섞어 먹었다”는 황당한 답변. -1970년 10월 4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어딨지?”… 눈사태로 파묻힌 사람 ‘극적 구조’ 동영상 화제

    “어딨지?”… 눈사태로 파묻힌 사람 ‘극적 구조’ 동영상 화제

    스노모빌을 즐기다 눈사태를 만나 눈 속에 파묻힌 사람을 극적으로 구조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에 유튜브에 올라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미 현지 언론들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7일 자로 유튜브에 올라온 이 동영상은 그 전날 미국 와이오밍주의 한 눈이 덮힌 야산에서 스노모빌을 즐기던 동호회 회원이 촬영했다. 먼저 스노모빌을 몰고 야심차게 산을 향해 달려나가던 회원이 그만 눈사태 속에서 넘어지면서 눈에 파묻히고 말았다.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aGUQC5k3dFM#t=66 이에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동호회 회원들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면서 각자 자신의 스노모빌을 몰고 구조에 나서는 장면이 담겨있다. 하지만 구조에 나선 회원들은 눈 속에 파묻힌 회원을 찾을 수 없었으나, 그가 사용하던 스틱이 떨어진 장소를 발견하고 그 일대의 눈을 파내면서 사고가 난 회원을 극적으로 구조했다. 연이어 도착한 회원들이 힘을 합쳐 눈을 파내자 사고를 당한 회원은 자신의 머리를 드러내며 기침을 해 그가 살아있음을 알렸다. 이 동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신속하게 구조해서 천만다행이지만, 스노모빌이 얼마나 위험한 레저인가를 실감했다”는 댓글을 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사진=산사태 눈 속에 파묻혀 구조되고 있는 장면 (해당 유튜브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新국토기행] 경남 진주시

    [新국토기행] 경남 진주시

    ■ 남강변 따라 볼거리 한가득 ●김시민 장군이 왜군에 맞서 싸운 ‘진주성’ 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진주 8경 가운데 하나다. 진주성은 본성동과 남성동 일대 남강변을 따라 조성됐다. 언제 쌓았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토성이었던 것을 왜구들의 침입에 대비해 1379년(고려 우왕 5년) 석성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 직전(1591년)에 외성을 쌓았으나 흔적이 없고 현재는 내성만 복원됐다. 내성 둘레는 1760여m, 외성 둘레는 4㎞가량이다.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로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이 1592년 10월 3800여명의 군사로 왜군 2만여명을 물리친 진주대첩이 벌어졌던 곳이다. 이듬해 6월 왜군과 2차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민·관·군 7만여명이 끝까지 항쟁하다 순절한 아픈 역사도 서려 있다. 1972년 촉석문을 복원한 데 이어 1975년에는 허물어졌던 서쪽 외성 일부와 내성 성곽을 복원했다. 1979년 성 안팎에 있던 민가를 철거하고 2002년 공북문을 복원했다. 1963년 사적 제118호로 지정됐다. ●절벽 위 우뚝, 빼어난 절경 뽐내는 ‘촉석루’ 진주성 안 남쪽 남강변 경치가 빼어난 절벽 위에 솟아 있다. 남장대나 장원루라고도 부른다. 전쟁 때 지휘본부, 평화 시절에는 관리들의 놀이터와 과거시험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했다. 1241년(고종 28년)에 목사 김지대가 처음 지은 뒤 8차례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 1365년(공민왕 14년) 처음 건립됐다는 주장도 있다. 벼랑과 강 주변 풍경이 절경이다. 우리나라 3대 누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북쪽에서는 평양의 부벽루, 남쪽에서는 촉석루를 꼽을 만큼 영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각이다. 1948년 국보 제276호로 지정됐으나 6·25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돼 1960년 다시 지었다.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누각 돌기둥은 창원시 촉석산 돌이다. 대들보는 오대산에서 벌목해 만들었다. 북쪽 현판 글씨는 영조 때 송하 조윤형이 썼다. 남쪽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것이었으나 민주당이 집권한 뒤 판을 깎고 유당 정현복의 글씨로 바꿨다. ●논개가 임진왜란 때 몸 바쳐 뛰어내린 ‘의암’ 임진왜란 때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몸을 던졌던 바위다. 촉석루 아래 남강 가장자리에 있다. 윗면은 편평하며 크기는 가로 3.65m, 세로 3.3m다.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성이 함락되자 1593년 6월 29일 논개가 촉석루에서 벌어진 연회에 참석해 왜장을 이 바위로 유인한 뒤 두 팔로 끌어안고 남강으로 뛰어들어 순국했다. 논개는 왜장을 껴안은 손가락이 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10개 손가락에 가락지를 꼈다고 전해진다.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지역 사람들이 이 바위를 ‘의암’(義巖)이라고 부르게 됐다. 1629년(인조 7년) 정대륭이 바위 벽에 ‘의암’이란 글씨를 새겼다. 2001년 9월 27일 경남도 기념물 제235호로 지정됐다. ●남강댐 건설 때 만들어진 인공 호수 ‘진양호’ 우리나라 다목적댐 1호인 남강댐이 건설되면서 만들어진 인공 호수다. 진주시 판문동과 대평면, 내동면, 수곡면 등에 걸쳐 있다. 덕천강과 경호강이 만나 호수를 이룬다. 1936년 착공한 뒤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1970년 7월 길이 975m, 높이 21m로 완공됐다. 그 뒤 길이 1126m, 높이 34m로 보강 공사해 1999년 완공했다. 댐 유역 면적은 2293.42㎢, 둘레는 328.01㎞다.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좋아 일년 내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호수 주변에 2000여 그루의 벚나무가 우거져 있고 물홍보전시관, 동물원, 365계단, 전망대, 소싸움장 등이 있다. ●각양각색 유등 띄워 소원 비는 ‘남강유등축제’ 해마다 10월 남강과 진주성 일대에 각양각색의 화려한 유등 조형물을 설치, 전시해 소원을 비는 유등 놀이 축제다. 물, 불, 빛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경관이 연출돼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몰린다. 개천예술제 행사의 하나로 열리다가 2000년부터 진주남강유등축제로 개최되고 있다. 진주 유등은 1592년 진주대첩 당시 김시민 장군을 비롯한 군사들이 남강에 유등을 띄워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 전술과 성 밖에 있는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 등으로 활용했다. 1593년 진주성이 함락돼 성을 지키던 병사와 백성 7만여명이 숨진 뒤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유등을 띄우는 행사가 축제로 계승됐다. 역사와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과 유등을 창의적으로 결합해 성공한 축제다. 2006~2010년 5년 연속 최우수축제, 2011~2013년 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됐다. 지난해 명예대표축제에 오른 데 이어 올해는 글로벌육성축제로 선정됐다.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의 1만 7930.66㎡ 부지에 있는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이다. 한국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탑의 선을 고건축 양식으로 조화시켜 현대식 2층 건물로 지었다. 1984년 11월 개관했다. 전시실은 상설(임진왜란실)과 기획(두암실)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현자총통(보물 제1233호) 등 3500여점의 소장 유물 가운데 460여점을 전시했다. 특히 국내외 여러 곳에 분산된 임진왜란 관련 전적·서화류, 도자류 등 많은 유물을 모았다. 두암실(김용두실)에는 재일교포 김용두씨가 1997년부터 3차례 기증한 유물 179점 가운데 100여점을 전시해 놨다. ●2700여종 식물과 4개 온실 갖춘 ‘경남수목원’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 야산 58㏊에 조성됐다. 산림 학술연구와 나무 유전자 보존, 주민들의 자연 학습 및 휴식 공간을 위해 만들었다. 1993년 4월 5일 문을 열었다. 전문 수목원, 화목원, 열대식물원, 무궁화공원 등 우리나라 온대 남부 지역 수목 위주로 국내외 식물 2700여종을 수집, 보전하고 있다. 열대식물원과 난대식물원, 선인장온실, 생태온실 등 4개 온실이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산림박물관과 야생동물관찰원이 있다. 호수와 계곡, 언덕을 따라 수목원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도록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숲 속에서 자연 학습을 하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녹색 휴식 공원으로 소문이 나면서 겨울철을 제외하고 평일 1000여명, 휴일에는 5000여명이 방문한다. ●진주성 북장대 아래 ‘인사동 골동품 거리’ 진주성 북장대 아래 남성동·인사동 일대 거리에 골동품을 거래하는 상점 20여곳이 늘어서 있다. 600m에 이르는 인사동 골동품 거리는 197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해 관광 명소가 됐다. 고문서를 비롯해 전적, 서화, 탁본류, 민속자료, 도자기, 조각품, 공예품, 석등 등 다양한 종류의 골동품을 사고판다. 경남 진주시는 도시 한복판에 맑은 남강이 흐르는 1000년 고도다. 임진왜란 때 온 시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군에 맞서 싸웠던 구국, 충절의 고장이다. 1000년이 넘는 도시 역사만큼 명소와 사적지가 많고 문화예술도 번성했다. 1949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개천예술제는 한국 향토문화예술제 가운데 가장 오래된 행사다. ■ 눈과 입이 호강하는 먹거리 ●사골국으로 밥을 지어 독특한 진주비빔밥 진주의 대표 향토음식으로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전투를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군인과 시민들이 전투 중 영양 보충을 하기 위해 소를 잡아 곰국으로 밥을 지어 먹었던 게 진주비빔밥의 시초다. 밥 위에는 육회와 숙주, 고추, 근대나물 등을 얹는다. 바지락을 다져 넣어 끓인 보탕국과 선지국이 비빔밥과 함께 나온다. 진주비빔밥의 독특한 맛의 비결은 사골국으로 밥을 짓는 데 있다. 장작불로 전통 무쇠솥에 밥을 짓는다. 밥에 얹는 나물 요리는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신선한 제철 나물로 만든다. 놋그릇에 담은 하얀 밥과 다섯 가지 나물이 어우러져 일곱 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꽃 모양을 나타낸다고 해서 꽃밥 또는 칠보화반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정승들이 진주비빔밥을 먹기 위해 1000리나 되는 진주를 자주 찾았을 만큼 유명하다. 해마다 5월 진주성 일대에서 진주비빔밥축제도 열린다. ●조선시대 관찰사에 대접하던 진주교방음식 조선시대 중앙에서 내려온 관찰사를 비롯한 관리들을 접대하기 위해 진주교방청 연회장에서 차렸던 진주의 전통 한정식이다. 당시 연회장에는 술과 기생들의 노래, 춤이 곁들여졌다. 재료는 지리산 일대 청정한 농산물과 남해의 싱싱한 수산물을 사용한다. 술안주 위주의 음식으로 술과 함께 먹기 때문에 밥보다는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국물 음식이 많다. 갖가지 해물로 만든 해물찜과 해물전을 비롯해 조개구이, 백합탕, 갈비찜, 나물 요리 등 수십 가지 요리로 3~4차례 상을 푸짐하게 차린다. 진주냉면, 진주밀면 등 여러 가지 국물 음식과 조선잡채, 전복김치도 나온다. 겨자에 무치는 조선잡채는 발효돼 깊은 맛이 나도록 하룻밤 숙성시킨 뒤 먹는다. 음식물 보관이 어려웠던 시절에 지혜로운 요리법이었다. ●비린내 없고 담백하며 부드러운 장어구이 바다나 민물에서 나는 장어에 양념을 발라 구워 먹는 진주 지역 향토음식이다. 비린내가 없고 담백하며 맛이 부드럽고 고소해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진주 장어구이는 석쇠에 올려 5분쯤 노릇노릇하게 초벌구이 한 뒤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대형 냉장고에 넣어 이틀 정도 급랭시킨다. 이 장어에 양념을 발라 다시 구워 내놓는다. 깻잎이나 상추에 싸서 먹는다. 양념구이는 장어 머리와 큰 멸치, 양파, 계피, 감초 등의 한약재를 넣어 푹 삶아 우려낸 육수에 간장, 고춧가루, 생강, 마늘, 참깨 등을 다져 넣어 만든 양념장을 발라 석쇠에서 5~7분쯤 굽는다. 양념을 3~5차례 발라 장어 살 속까지 스며들게 한다. 소금구이는 육수에 참기름, 마늘, 참깨 등을 넣어 만든 양념장을 발라 굽는다. 진주성 근처 성북동 일대에 장어구이 전문 음식점들이 모여 있다. 진주 장어구이를 먹어 본 관광객들은 “독특하게 만든 양념과 장어구이가 잘 어우러져 느끼한 맛이 없고 구수하다”고 말한다. 진주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30. 벼락부자 노익장 생과부에 “맴맴”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0. 벼락부자 노익장 생과부에 “맴맴”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성관계 동영상을 빌미로 대기업 사장에게 거액을 요구한 오모(48)씨에 대해 폭력행위처벌법상 공갈 혐의 등으로 28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오씨는 여자친구인 지역 미인대회 출신 김모(30)씨와 함께 지난해 6월부터 “30억원을 주지 않으면 여성과의 성관계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대기업 사장 A씨를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성관계 동영상 찍어 재벌 3세에 30억 요구…미인대회 출신 여성 체포’라는 제목의 올 1월 29일자 서울신문 기사입니다. ‘성’(性)을 무기로 한 협박과 갈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오래된 범죄 중 하나일 것입니다. 자기보다 27세나 어린 여성과 잘못된 만남을 가졌다가 톡톡히 망신을 당한 70대 노인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1971년의 일입니다. ▒▒▒▒▒▒▒▒▒▒▒▒▒▒▒▒▒▒▒▒ 30. 벼락부자 노익장 생과부에 “맴맴” (선데이서울 1971년 10월 24일자) 노익장(老益壯)이라던가. 토지개발 붐을 타고 하룻밤 사이에 억대의 갑부가 된 70노인이 40대의 생과부와 불장난을 하다 결국 돈 잃고 망신 당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술내기 도박판에서 첫 대면 “어쩐지 좋아” 호텔로 직행 망신살이 뻗친 노인은 올해 70세의 박모(서울 상도동)씨.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상도동 야산이 주택지로 각광을 받아 벼락부자가 된 그는 슬하에 아들, 며느리, 손자 등을 줄줄이 거느린 다복한 할아버지였다. 그의 애인은 스물일곱살이나 어린 43세의 임모(서울 봉천동). 남편이 있는 몸이지만 자식을 낳지 못한다 하여 남편이 첩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오랫동안 별거 중인 생과부였다. 두 남녀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봄, 상도동의 어느 술집에서였다. 시내 여러 기관에 구내 이발소를 별여놓긴 했지만 아들들에게 맡겨두고 동네 늙은이들과 어울려 술내기 섰다판을 벌이며 소일하는 게 박 노인의 유일한 일과였는데, 바로 이 섰다판에서 임 여인을 만나게 됐던 것. 독수공방이 서러워 친구집을 전전하며 외로움을 달래던 임 여인이 친구가 하는 술집에 들렀다가 노인네들의 섰다판에 끼어들게 됐다. 무료함을 주체할 길 없던 두 남녀는 판이 끝나 다른 노인네들이 돌아가자 이심전심이라고 할까, 다방으로 갔다. 제법 아기자기한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내일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그날은 그대로 헤어졌다. 다음날 다시 만난 아버지와 딸 뻘의 남녀는 다방에서 영화관, 식당을 거쳐 결국에는 여관으로 가게 됐는데. 동네에서는 지독한 구두쇠 영감으로 소문난 박 노인이지만 임 여인에게만큼은 아낌없이 돈을 썼다. 그래서 둘이 든 곳도 도봉유원지 한 호텔의 화려한 특실이었다. 이렇게 하여 40대 생과부의 달아오른 뜨거운 몸을 안아버린 박 노인은 다음날부터 정력에 좋다면 무엇이든지 먹어대며 늘그막의 사랑을 즐겼다. 생과부 연인된 뒤 매일 보신탕집 찾아 냄새를 맡기조차 싫어하던 보신탕 집을 찾아 다니는가 하면 염소탕 집을 찾아 몇십리 길을 마다않고 청계천까지 가는 극성을 부리기도 했다. 둘은 그럭저럭 1년 동안의 밀회를 끌어 왔다. 그러나 달궈진 쇠는 언젠가는 식기 마련. 둘의 사이는 올 봄에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박 노인 입장에서는 나이 70이라 정력에 한계를 느끼게 되자 그동안 임 여인에게 준 돈이랑 각종 경비 등 50여만원이 아까운 생각이 들게 됐다. 임 여인도 그 나름대로 연애의 만족감도 주지 못하면서 갈수록 돈에 인색해져 싫어지게 됐다는 것. 그러던 중 지난 8월 어느날, 헤어진 지 반년도 지나 박 노인에게 임 여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뵙고 싶어요. 오늘 저녁 7시까지 ○○다방으로 나와주시겠어요?” 둘이 다시 만난지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박 노인과 임 여인은 인근 여관 구석방에서 벗다시피한 상태로 무드를 돋구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한 여인이 방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엉겁결에 당한 두 사람은 몸을 가릴 생각도 못하고 꼭 껴안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흥”하는 코웃음 소리와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임 여인의 손아래 시누이인 김모(40)씨가 정사의 현장을 덮친 것이다. 남편이 전직 경찰관이어선지 ‘눈치와 계산 빠르기로 알아주는 아낙네’라는 임 여인의 귀띔이고 보니 그렇지 않아도 눈앞이 캄캄해 진 박 노인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누라보다도 다 큰 자식과 며느리를 볼 낯이 없었다. 가족이 알까 “쉬쉬”하며 혼자 애태웠는데… 궁리 끝에 박 노인은 사업 관계로 알게 된 ‘눈치 빠르고 수완 좋은’ 황모(48)씨에게 사실을 털어 놓고 “말썽나지 않게 중간에서 수고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수고의 댓가로 땅 40평을 주기로 했다. 결국 황씨와 김 여인의 담판이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김 여인은 황씨에게 역제안을 한다. “박 노인에게서 눈감아주는 대가로 300만원만 받아 주면 10%의 커미션을 드리겠어요. 제 오빠(임 여인의 남편)와도 이미 얘기가 된 상황이에요.” 약삭빠르기로 이름 난 황씨. 흥정 끝에 합의 금액은 200만원으로 낙착됐다. 그 공으로 황씨는 40평의 땅을 얻었다. 김 여인에게 전해 주라는 200만원도 받았지만 이중 40만원을 자기 몫으로 챙기고 160만원만 넘겨줬다. 제 멋대로 받은 돈의 20%를 떼낸 황씨에게 화가 난 김 여인은 “약속대로 10%만 커미션으로 떼고 나머지 20만원을 더 내 놓으라”고 다그쳤다. 황씨는 “그까짓것 남의 사랑에 끼어 들어 생긴 공돈 좀 떼어 먹기로서니 무슨죄가 되느냐”며 배짱을 부렸고 결국 김 여인은 황씨를 상대로 문제의 20만원을 받게 해달라 경찰에 고소를 했다. 엉뚱한 곳에서 말썽이 생겨 참고인으로 경찰에 불려온 박 노인은 “처음부터 젊은 유부녀를 욕심낸 게 잘못이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들이 짜고 한 짓에 단단히 걸려든 것 같다”면서 “여관에 든지 10분도 안돼 시누이가 나타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라고 입맛을 다셨다. “임 여인의 남편에게 위자료를 주었는데 돈을 또 줘야합니까?” 어디가서 탁 터놓고 얘기할 수도 없는 처지인 박 노인의 심정은 고추를 먹은것보다 더 쓰리고 따가운 처지가 됐다.
  • [인사]

    ■기획재정부 ◇국장급 전보△국제금융협력국장 김회정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 △광주우편집중국장 임영일 ■고용노동부 ◇전보<정책관>△고령사회인력 문기섭△근로기준 정지원<청장>지방고용노동청 이주일△대전지방고용노동청 김영국<상임위원>△최저임금위원회 류경희 <협력관>△국제 박성희◇파견△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이태희 ■국토교통부 ◇과장급 전보△간선도로과장 김인△서울지방국토관리청 도로시설국장 김광덕◇과장급 파견△국민안전처 장구중 ■통계청 ◇부처 간 전보△통계청 통계정책국장 이상원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기획조정과장 류성렬 ■국립공원관리공단 ◇1급승진△성과관리실장 박기연△안전방재처장 최승운◇2급승진△정보지원실장 주홍준△환경관리부장 최병기△환경기술부장 정정권△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장 손영임◇전보<실장>△감사실 최봉석△미래전략실(TF) 나공주<부장>△총무부 송형철△인재개발부 김철수△공원계획부 허영범△탐방문화부 이용민△방재관리부 이승찬△공원시설부 김두한△감사부장 김진태<단장>△청사건립단장(TF) 박진우◇공원사무소장급 전보△오대산 손동호△월악산 신종두△북한산도봉 이수식△무등산 이영석△지리산북부 안유환△지리산남부 양기식△경주 이수형△한려해상동부 김종희△가야산 윤용환△다도해해상 김승희△소백산북부 권철환△월출산 김학붕△무등산동부 김용무△종복원기술원 송동주<연수원장>△북한산생태탐방연수원 정용상△지리산생태탐방연수원 안시영 ◇교육·파견△국방대학교 김영래△국민안전처(중앙재난안전상황실) 김상식 ■대한건설협회 ◇실장급 전보<실장>△총무지원실 조준현△계약제도실 이재식 ◇파견<실장>△국방대 최상근△세종연구소 진장욱△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임종구 ■대구경북연구원 ◇연구본부장·실장대구연구본부 장재호△경북연구본부 오창균△상생협력연구실 류형철 ◇본부<실장>△창조경제실 최재원△사회문화실 박은희△도시환경실 최영은◇경북연구본부<실장>△창조산업실 김병태△지역발전실 김중표△농림수산실 석태문◇센터<소장>△대구경북학센터 이춘근△대경SOC센터 권태범 ■전주대 ◇대학장△인문대 박균철△사회과학대 윤찬영△경영대 김승곤(이부대학장·한중경제통상연구소장 겸임△의과학대 김종훈△공과대 정명채△문화산업대 권수태(예술체육대 겸임)△문화관광대 심상욱△사범대 유평수(교육대 겸임)△선교신학대 김형길△특수대 심동희◇소장△인문과학종합연구소 최희섭△문화산업연구소 한동숭(스마트공간문화기술공동연구센터장·X-edu영상미디어센터장 겸임)◇센터장△사회봉사센터 김광혁(e-복지관장 겸임)△카운슬링센터 이호준(인적자원개발센터장 겸임)△보조공학센터장 신현욱◇창조경제지원센터 최용욱(LINC사업부단장·EM연구개발단장 겸임)◇연수원장△교육연수원장 서재복(교직지원부장 겸임)◇부처장△기획부 심영국 ■계명문화대 △국제교육원장 이상석△산학협력연구소장 이원갑
  • 세월호 여파에… 작년 국립공원 방문객 52만명 ↓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해 전국 21개 국립공원을 찾은 탐방객이 4640만명으로 집계됐다고 25일 밝혔다. 국립공원 방문객은 2010년 연간 방문객이 4000만명을 넘어선 이후 해마다 증가세를 유지했으나 지난해에는 세월호 사고 여파 등으로 전년 대비 1.1%(52만명) 감소했다. 세월호 사고 발생 전인 1~4월 방문객은 전년 동기 대비 11.0% 증가했지만, 사고 이후(5~12월) 4.6% 감소했다. 탐방객의 60% 이상이 여름과 가을에 집중되는 것을 고려할 때 수학여행 취소 등으로 단체탐방객이 줄고 잦은 비로 행사 등이 열리지 못하면서 방문객 감소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월출산은 ‘왕인박사 유적지 국화축제’가 취소되면서 탐방객이 2013년에 비해 15.5% 줄었고 가야산도 27.5% 감소했다. 국립공원 가운데 탐방객이 가장 많은 곳은 북한산으로 728만명에 이르렀다. 이어 한려해상(616만명), 무등산(381만명), 설악산(362만명), 경주(319만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계절별로는 가을 탐방객이 33.0%로 가장 많았다. 여름과 봄은 각각 27.0%, 25.0%, 겨울은 15.0%로 집계됐다. 스키장이 인접한 덕유산은 겨울철, 단풍이 유명한 내장산은 가을철, 한려해상과 태안해안은 여름철 탐방객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月10만원이라도 저축 쪽방의 재테크는 희망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절대 빈곤층의 재산 관리

    月10만원이라도 저축 쪽방의 재테크는 희망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절대 빈곤층의 재산 관리

    경기 하남시에 사는 싱글맘 A(39)씨는 세 자녀 명의로 한 달에 총 10만원의 생명보험료를 내고 있다. 저축성 보험이라 비상시에 대비하면서도 돈까지 모을 수 있다. 여기에 가급적 매달 10만원씩 저축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팍팍한 살림 탓에 아직까지 100만원밖에 모으지 못했다. 그러나 A씨는 아라비아 숫자 ‘0’이 6개 일렬로 찍힌 통장 잔고를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보험료와 저축액을 합해 매달 많아야 20만원이 나가는 정도지만 A씨에게는 쥐꼬리만 한 수입의 6분의1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큰돈이다. A씨의 한 달 수입은 월 130만여원의 기초생활보장수급비가 전부다. 이 중 지금 살고 있는 15평 빌라 월세로 41만원이 나간다. 여기에 생후 8개월인 막내딸이 쓰는 기저귀 등 육아용품으로 20만원, 본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쓰는 휴대전화 요금으로 10만원, 아들의 태권도 학원비 12만원, 큰딸(4살)의 어린이집 특별활동비 8만원 등이 더해진다. 식비로는 20만원 정도 쓴다. 수급권자로서 전기나 수도 등 각종 공과금 할인 혜택을 받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A씨는 “가족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저축을 하지만 ‘그 돈이면 큰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도 있는데’ 하는 고민이 떠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사는 간호조무사 B(45·여)씨도 매달 15만원의 정기 적금을 붓는다. 간호조무사 월급 135만원에 주말 일본어 과외로 버는 24만원, 정부에서 극빈층 모자 가정의 초등학생 이하 자녀에게 한 명당 5만원씩 지급하는 지원금까지 합쳐 B씨의 한달 총수입은 174만원이다. B씨는 “고등학생을 포함한 자녀 4명과 함께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 매일 전쟁을 벌이지만 저축마저 안 하면 살아갈 의욕을 잃을 것 같다”고 했다. B씨의 간호조무사 업무 시간은 오전 7시 20분부터 오후 7시까지다. 출퇴근 시간까지 합치면 하루 14시간 넘게 일에 쏟아붓고 있다. 토요일은 쉬지만 일요일에는 격주로 출근한다. 이렇게 해서 매달 30만원의 월세 외에도 전기비, 수도비 등으로 30만원을 낸다. 한창 크는 아이들은 무섭게 먹는다. 아무리 못해도 식비로 60만원은 써야 한다. 둘째와 셋째 태권도 학원비로 19만원, 막내 어린이집 독서교실 비용으로 5만원을 쓴다. 중계동의 판자촌 ‘백사마을’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C(73)씨도 없는 살림 가운데서도 조금씩을 쪼개 저축하고 있다. 매달 부부가 받는 노령연금 40만원과 조금씩 나오는 국민연금이 수입의 전부다. 이 중 20만원을 매달 은행에 넣고 있다. 좀 더 괜찮은 곳으로 집을 옮기고 싶어서다. C씨는 “우리도 이제 제대로 된 전세를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돈을 조금씩 비축하는 중”이라며 “서울을 벗어나면 전세가 좀 싸니까 꾸준히 모으면 이사를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그는 “여기 사는 사람들이 다 어렵게 살지만 그래도 좋은 곳으로 전세를 얻어갈 꿈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했다. C씨는 현재 살고 있는 판잣집에 1500만원의 보증금을 집주인한테 주고 들어왔다. 전세 보증금 격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보통의 전세 개념은 아니다. 비가 새고 무너질듯한 낡은 집에 집주인이 1500만원만 받고 사실상 무한정 살도록 한 것이다. 그러니 일반 전세와 달리 집 수리도 다 C씨의 돈으로 해야 한다. 그는 “그래도 다른 데 가면 못해도 7000만~8000만원은 줘야 전세를 얻는데 여기는 이렇게 (구호단체에서) 연탄도 날라 주고 하니 당장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이런 데가 없다”고 했다. C씨는 매달 두 부부 휴대전화(폴더폰) 요금과 식비 등을 빼면 특별히 나가는 돈이 없어 저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앞에서 소개한 세 사람의 경우와 같이 하루하루 먹고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절대빈곤층 중에서도 없는 돈을 쪼개 저축하는 가구가 서울신문 취재 결과 아주 적게나마 있었다. 내일에 대한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빈곤층 중에서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저축을 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부천시오정노인복지관 관계자는 “할머니들은 기초생활수급자라도 수급비를 통장에 알뜰하게 모아 두지만 할아버지들은 며칠 만에 다 써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서대문구에 사는 극빈층 남성 D(44)씨는 한때 지방 공사현장이나 양계장 등에서 일할 때는 한 달에 400만원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주머니에 일단 돈이 들어오면 남김 없이 쓰는 습성 탓에 돈을 모으지 못했다. 한 달 수입이 90만원에 불과한 요즘도 그는 주머니 사정이 좀 괜찮다 싶으면 한 그릇에 3만원이 넘는 ‘전복 삼계탕’을 사먹는다. 배우자가 없는 D씨는 돈을 관리해 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을 뿐 아니라 돈에 대한 개념도 익히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건강이 안 좋아져 일을 못할 때를 대비해 돈을 쌓아 둬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저축 습관이 들지 않아 주머니에 일단 돈이 들어오면 쓰는 편”이라고 했다. D씨는 한 달 평균 10일 정도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한다. 날씨가 나쁘거나 일자리가 바로 나타나지 않아 더 많은 날을 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일당 10만원에서 직업소개소 소개비로 1만원을 뗀 9만원이 그의 하루 수입이다. 매달 생활비는 40만~50만원 정도 들어간다. 현재 살고 있는 빌라 임대료는 월 17만원. 지난해 11월에 전기비 3만 1050원, 수도비 1만 2950원, 디지털TV 요금 3만 2890원, 도시가스 요금 3100원을 썼다. 이를 함께 사는 지인과 나눠 낸다. 식료품과 각종 용품 등을 사면 남는 돈은 매달 10만원 정도인데 이 돈은 PC방 요금 등 여가 비용으로 쓴다. 하지만 남녀를 막론하고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이어가느라 허덕이는 다수의 빈곤층에게 저축은 ‘사치’에 가깝다. 경기 부천시 원미구에 사는 E(65·여)씨의 최근 한 달 수입은 50만원이 채 안 된다. 이 돈으로 초등학교 6학년과 2학년인 손자 2명과 연명하는 처지다. 노령연금 20만원과 복지단체의 조손가정 지원금 24만원이 전부다. 노령연금이 나오기 전에는 한 달에 10만원으로 생활한 적도 있다. E씨는 한겨울에도 가스 난방을 하지 않는다. 대신 잘 때만 전기장판을 잠시 튼다. 가스비는 1000원 이하, 전기비와 수도비도 각각 1만원 남짓만 나온다. 식비는 아무리 안 먹어도 한 달에 20만원은 써야 한다. 동네 마트의 ‘떨이 상품’을 주로 산다. 그나마 주변의 도움이 있어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지역 복지관에서 밑반찬을 지원받고 10㎏에 2만 2900원 하는 정부미를 동사무소 등에서 구매할 수 있다.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ADHD) 증세를 보이는 큰손자는 초등학교 교사의 지원으로 매달 8만원을 내야 하는 태권도를 무료로 다닌다. 작은손자는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이 철마다 옷을 사준다. E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2010년 이전에는 매달 20만원 정도 저축을 했지만 이젠 다 까먹고 남의 얘기가 돼 버렸다”고 했다. E씨의 현재 생활형편만 보면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되고도 남지만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에 땅이 조금 있기 때문이다. E씨는 “남편이 사망하면서 유산으로 나하고 두 아들한테 공동 명의로 땅이 상속됐다”며 “그러나 아들들이 사이가 안 좋은 데다 작은아들은 감옥에 들어가 있어 땅을 처분하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했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F(91·여)씨도 노령연금 20만원에 공장에 다니는 손녀딸이 보내주는 30만원 등 50만원으로 근근이 생활한다. 이 돈으로 인근에 사는 수양딸이 F씨를 봉양한다. 매달 각종 약값만 10만원이 나간다. F씨는 “젊었을 때 장사하러 돌아다니느라 하도 고생을 해서 골다공증에 걸려 파스 없이는 한시도 못 견딘다”면서 “여기에 우울증약과 우황청심환 등을 사면 남는 돈이 없다”고 했다. 빈곤층의 경우 상속은 꿈도 못 꾼다.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현실은 이를 종종 배반한다. 부천에 사는 독거노인 G(82)씨는 자식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60대인 두 아들이 변변한 직업이 없는데도 매달 그에게 10만원씩 부쳐 준다. 음식은 주말마다 집에 들르는 둘째 며느리 몫이다. 의복 역시 복지관에서 얻어 입거나 며느리가 가져온 옷을 입는다. G씨의 한 달 수입은 노령연금 20만원과 아들들이 부쳐 주는 돈을 합해 30만원이 전부다. 한때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10여평의 집도 갖고 있었지만 부인 병치레 등으로 다 날렸다. G씨는 “노령연금으로 가스비 등 각종 공과금을 내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어렵게 사는 와중에 자식들로부터 부양은 못 받을망정 시달림을 받는 노인들도 보인다. 강남구 개포동의 판자촌 ‘구룡마을’에 사는 70대 후반의 H씨는 “가끔씩 자식들이 찾아와서 (그나마 있는 돈을) 싹 뒤져서 가져간다”면서 “그래봤자 워낙 가진 돈이 없으니 가져가는 돈도 별로 없다”고 했다.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기자 douzirl@seoul.co.kr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사는 300억원대 자산가 H(92)씨는 구순(九旬)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새벽 빠짐없이 일어나 외신을 꼼꼼히 챙겨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CNN 등 방송은 물론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 등 경제 전문지도 태블릿PC로 살핀다. 속칭 ‘슈퍼 개미’인 그는 오전 9시 본인 소유의 강북 지역 빌딩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해 국내 금융시장을 꼼꼼히 체크한다. 오후 6시 퇴근 시간 전까지 투자 전략을 짜고 투자를 단행한다. 개미 투자자들이 속절없이 나가떨어졌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장기 투자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그의 성공가도에서 가장 위력적인 ‘무기’는 영어였다. 그는 그 나이 또래에 몇 안 되는 ‘미국 유학파’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는 미군을 상대로 사업을 벌여 큰돈을 벌었다. 영어를 통해 얻은 정보가 ‘일확천금’으로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이를 토대로 부동산과 주식으로 투자 범위를 넓혀 본격적으로 재산을 축적했다. 그는 요즘 연 10억원 가까운 빌딩 임대료 수익을 얻지만 여전히 영어를 토대로 한 국제 감각을 활용해 돈을 번다. 그의 투자 대상은 우리나라를 벗어난다. 해외 금융시장뿐 아니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부동산 투자를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종종 탄다. 체력 유지도 필수적이다. 매일 새벽 일어나 맨손 체조를 한 뒤 인근 야산을 오르내린다. 여간해서는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는다. 과다한 운동으로 얼마 전에는 발목 수술을 받았을 정도다. H씨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전 세계에서 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각을 유지하니 돈이 수중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H씨의 경우 100% ‘개천에서 용 난’ 사례로 볼 수는 없지만 본인의 노력이 상당 부분 작용한 자수성가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H씨 이후 세대 중에서는 부모로부터 직접적으로 받는 상속이 부를 형성하는 추세가 짙어지고 있다. 경기 고양에 사는 I(41)씨는 1년 전 부모로부터 시가 30여억원의 공장 부지를 물려받았다. 부모가 손주들 교육비에 보태 쓰라면서 증여를 시작한 것이다. 부동산 증여는 고소득으로 이어졌다. 그는 부지 내 5곳의 공장으로부터 매달 750만원의 임대료를 받는다. 가만히 앉아서 올리는 임대 수입만 한 해 9000만원으로 웬만한 고액 연봉자 수준이다. 돈이 돈을 버는 ‘행운아’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의 부모는 공직 생활 도중 틈틈이 땅을 사 모은 덕에 100억원대의 재산을 모았다. 그가 부모의 도움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여러 차례 사업 밑천을 대준 것은 물론 사업이 망했을 때 뒷감당도 부모 몫이었다. 일반인에게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패자부활전’을 그는 부모 덕에 여러 차례 치른 셈이다. 강남구 압구정동에 사는 J(38·여)씨는 최근 2년간 증여세만 2억원 넘게 냈다. 시댁으로부터 10억원 이상을 물려받았다. 주식과 토지, 현금 등 형태도 다양하다. 패션 업종 중견 업체를 경영하는 시댁은 앞으로도 틈틈이 증여해 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살고 있는 압구정동의 상가 건물 역시 J씨 부부의 소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지 않는 한 꿈도 꿀 수 없는 금액이다. J씨는 증여받은 재산을 시댁에서 소개해 준 시중은행 프라이빗 뱅커(PB)에게 맡겨 관리한다. 금융상품의 수익률은 연 5% 정도다. 10%가 넘었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최근 불경기와 저금리 상황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적지 않다. 월급 말고도 연 5000만원은 통장에 꼬박꼬박 들어온다. J씨는 “시부모께서 과거에 세금 문제 때문에 곤란했던 경험이 있는 데다 자식들이 일찌감치 돈을 굴리는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재산을 미리 나눠 주고 있다”고 했다. 전직 대학교수인 K(68)씨는 3년 전 정년퇴직을 하면서 100억원대 재산 중 70억원 정도를 2남 1녀인 자식들에게 나눠 줬다. 서울 반포 특급호텔 헬스 회원권과 K씨 부부의 실버타운 생활비, 1년에 한 번 정도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비용 등 총 30억원이 그에게 남은 전부다. K씨는 “셋 중 형편이 좀 안 좋은 아들 한 명에게 증여를 더 하려고 했지만 딸이나 사위 눈치가 보여 똑같이 재산을 나눠 줬다”면서 “그래도 죽기 전에 ‘숙제’를 마친 것 같아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외국계 기업 한국지사장인 L(44)씨의 사례는 부모의 재산과 개인의 능력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그의 연봉은 10억원이 넘는다. 미국 본사에 근무할 당시에는 성과급까지 합쳐 연 200만 달러를 넘게 번 적도 있다. 현재 그의 자산은 100억원대다. 그러나 이를 모두 연봉만으로 모은 건 아니다. 부모의 증여가 큰 뒷받침이 됐다. 그의 부친은 한때 국내 굴지의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칠순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관련 기업의 CEO로 재직 중이다. L씨의 부친은 아직까지 그에게 본격적인 상속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예금과 보험 등을 활용해 20억원 가깝게 물려준 상태다. L씨는 자신의 연봉과 이를 종잣돈 삼아 금융상품에 직접 투자한다. 미국과 싱가포르, 홍콩 등의 금융시장이 주 무대다. 현재 거주 중인 서울 용산의 15억원대 아파트와 함께 싱가포르에 주상복합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그가 미국의 유명 사립고와 명문대를 졸업한 뒤 소위 ‘잘나갈 수’ 있었던 것도 부모의 막대한 교육비 투자가 ‘마중물’이 됐다. L씨는 “몇 년 전에는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선물옵션에서도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면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부친과 투자 정보를 교환한다”고 말했다. L씨의 경우처럼 단순히 돈을 주는 것뿐 아니라 ‘노하우’를 전수하는 부자도 보인다. ‘물고기’ 대신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부모 세대가 물려준 부를 효과적으로 늘리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중소 제조업체 사장 M(64)씨는 아들이 미국에 유학 중일 때는 학비와 생활비를 전액 지원해 줬다. 그러나 방학 때 한국으로 들어오면 용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네 유흥비는 네가 벌어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식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아들은 방학 기간에는 화장품 공장 등에서 틈틈이 일해 용돈을 벌었다. M씨는 “외환위기 직후 서울 강남이나 대전 등으로 땅을 보러 갈 때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아들을 꼭 데리고 갔다”면서 “부동산뿐 아니라 좋은 ‘물건’을 어떻게 판별하는지 현장에서 직접 알려준다는 취지였다”고 했다. 재산 관리를 위해 ‘정치판’에 뛰어드는 부유층도 발견된다. 특히 ‘상위 0.1% 부자’들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는 사회적 영향력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500억원대 자산가인 N(44)씨는 불과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은행맨’이었다. 대학 졸업 뒤 15년 가까이 국내 대형 시중은행에서 근무했다. 본점에서 쭉 일할 정도로 능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초 직장을 제 발로 걸어나갔다. 부동산 관리업을 하던 부친에게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서다. 마침 당시 금융권의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요즘엔 수도권 지역의 여당 당원협의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명예직’에 가깝지만 산하 위원회 위원장 자리도 맡았다. N씨는 “경제력을 갖췄으니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우리 집안의 부를 지키기 위한 ‘방패’를 얻는 게 정치 활동의 일차적 목표”라며 “재산이 일정 정도 넘어서면 정치적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부의 대물림’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상위 1% 부자도 많다. 돈은 무엇보다 강력한 ‘권력’인 만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손에 쥐려는 심리가 강하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PB는 “부자들은 돈의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데다 자식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를 권하기도 쉽지 않아 미리 증여를 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증여 시점이 늦어질수록 그리고 분산하지 않고 한꺼번에 할수록 증여세 부담은 커진다. 그는 “고객 중 한 명이 얼마 전에 시가 130억원짜리 빌딩을 매각했지만 증여세 등을 떼고 나니 결국 자식에게는 50억원 정도밖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기부를 선택하는 자산가도 없지 않다. 명품 패션 브랜드 업체 대표인 O(59)씨는 얼마 전 두 명의 자식들에게 “재산의 20%만 상속하겠다”고 천명했다. 자식이 물려준 재산을 관리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자식을 망치는 일인 만큼 본인 스스로 돈 버는 재미를 느끼고 성공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일정 금액 이상은 악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O씨는 “재산의 20% 정도면 20여년 전 8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나보다 훨씬 여유 있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 기자 douzirl@seoul.co.kr
  • 해마다 5억원 이상 상속 압구정 재테크는 대물림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富’] 상위 1%의 재산 관리

    해마다 5억원 이상 상속 압구정 재테크는 대물림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富’] 상위 1%의 재산 관리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사는 300억원대 자산가 A(92)씨는 구순(九旬)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새벽 빠짐없이 일어나 외신을 꼼꼼히 챙겨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CNN 등 방송은 물론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 등 경제 전문지도 태블릿PC로 살핀다. 속칭 ‘슈퍼 개미’인 그는 오전 9시 본인 소유의 강북 지역 빌딩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해 국내 금융시장을 꼼꼼히 체크한다. 오후 6시 퇴근 시간 전까지 투자 전략을 짜고 투자를 단행한다. 개미 투자자들이 속절없이 나가떨어졌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장기 투자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그의 성공가도에서 가장 위력적인 ‘무기’는 영어였다. 그는 그 나이 또래에 몇 안 되는 ‘미국 유학파’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는 미군을 상대로 사업을 벌여 큰돈을 벌었다. 영어를 통해 얻은 정보가 ‘일확천금’으로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이를 토대로 부동산과 주식으로 투자 범위를 넓혀 본격적으로 재산을 축적했다. 그는 요즘 연 10억원 가까운 빌딩 임대료 수익을 얻지만 여전히 영어를 토대로 한 국제 감각을 활용해 돈을 번다. 그의 투자 대상은 우리나라를 벗어난다. 해외 금융시장뿐 아니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부동산 투자를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종종 탄다. 체력 유지도 필수적이다. 매일 새벽 일어나 맨손 체조를 한 뒤 인근 야산을 오르내린다. 여간해서는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는다. 과다한 운동으로 얼마 전에는 발목 수술을 받았을 정도다. A씨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전 세계에서 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각을 유지하니 돈이 수중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A씨의 경우 100% ‘개천에서 용 난’ 사례로 볼 수는 없지만 본인의 노력이 상당 부분 작용한 자수성가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A씨 이후 세대 중에서는 부모로부터 직접적으로 받는 상속이 부를 형성하는 추세가 짙어지고 있다. 경기 고양에 사는 B(41)씨는 1년 전 부모로부터 시가 30여억원의 공장 부지를 물려받았다. 부모가 손주들 교육비에 보태 쓰라면서 증여를 시작한 것이다. 부동산 증여는 고소득으로 이어졌다. 그는 부지 내 5곳의 공장으로부터 매달 750만원의 임대료를 받는다. 가만히 앉아서 올리는 임대 수입만 한 해 9000만원으로 웬만한 고액 연봉자 수준이다. 돈이 돈을 버는 ‘행운아’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의 부모는 공직 생활 도중 틈틈이 땅을 사 모은 덕에 100억원대의 재산을 모았다. 그가 부모의 도움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여러 차례 사업 밑천을 대준 것은 물론 사업이 망했을 때 뒷감당도 부모 몫이었다. 일반인에게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패자부활전’을 그는 부모 덕에 여러 차례 치른 셈이다. 강남구 압구정동에 사는 C(38·여)씨는 최근 2년간 증여세만 2억원 넘게 냈다. 시댁으로부터 10억원 이상을 물려받았다. 주식과 토지, 현금 등 형태도 다양하다. 패션 업종 중견 업체를 경영하는 시댁은 앞으로도 틈틈이 증여해 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살고 있는 압구정동의 상가 건물 역시 C씨 부부의 소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지 않는 한 꿈도 꿀 수 없는 금액이다. C씨는 증여받은 재산을 시댁에서 소개해 준 시중은행 프라이빗 뱅커(PB)에게 맡겨 관리한다. 금융상품의 수익률은 연 5% 정도다. 10%가 넘었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최근 불경기와 저금리 상황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적지 않다. 월급 말고도 연 5000만원은 통장에 꼬박꼬박 들어온다. C씨는 “시부모께서 과거에 세금 문제 때문에 곤란했던 경험이 있는 데다 자식들이 일찌감치 돈을 굴리는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재산을 미리 나눠 주고 있다”고 했다. 전직 대학교수인 D(68)씨는 3년 전 정년퇴직을 하면서 100억원대 재산 중 70억원 정도를 2남 1녀인 자식들에게 나눠 줬다. 서울 반포 특급호텔 헬스 회원권과 D씨 부부의 실버타운 생활비, 1년에 한 번 정도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비용 등 총 30억원이 그에게 남은 전부다. D씨는 “셋 중 형편이 좀 안 좋은 아들 한 명에게 증여를 더 하려고 했지만 딸이나 사위 눈치가 보여 똑같이 재산을 나눠 줬다”면서 “그래도 죽기 전에 ‘숙제’를 마친 것 같아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외국계 기업 한국지사장인 E(44)씨의 사례는 부모의 재산과 개인의 능력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그의 연봉은 10억원이 넘는다. 미국 본사에 근무할 당시에는 성과급까지 합쳐 연 200만 달러를 넘게 번 적도 있다. 현재 그의 자산은 100억원대다. 그러나 이를 모두 연봉만으로 모은 건 아니다. 부모의 증여가 큰 뒷받침이 됐다. 그의 부친은 한때 국내 굴지의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칠순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관련 기업의 CEO로 재직 중이다. E씨의 부친은 아직까지 그에게 본격적인 상속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예금과 보험 등을 활용해 20억원 가깝게 물려준 상태다. E씨는 자신의 연봉과 이를 종잣돈 삼아 금융상품에 직접 투자한다. 미국과 싱가포르, 홍콩 등의 금융시장이 주 무대다. 현재 거주 중인 서울 용산의 15억원대 아파트와 함께 싱가포르에 주상복합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그가 미국의 유명 사립고와 명문대를 졸업한 뒤 소위 ‘잘나갈 수’ 있었던 것도 부모의 막대한 교육비 투자가 ‘마중물’이 됐다. E씨는 “몇 년 전에는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선물옵션에서도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면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부친과 투자 정보를 교환한다”고 말했다. E씨의 경우처럼 단순히 돈을 주는 것뿐 아니라 ‘노하우’를 전수하는 부자도 보인다. ‘물고기’ 대신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부모 세대가 물려준 부를 효과적으로 늘리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중소 제조업체 사장 F(64)씨는 아들이 미국에 유학 중일 때는 학비와 생활비를 전액 지원해 줬다. 그러나 방학 때 한국으로 들어오면 용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네 유흥비는 네가 벌어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식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아들은 방학 기간에는 화장품 공장 등에서 틈틈이 일해 용돈을 벌었다. F씨는 “외환위기 직후 서울 강남이나 대전 등으로 땅을 보러 갈 때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아들을 꼭 데리고 갔다”면서 “부동산뿐 아니라 좋은 ‘물건’을 어떻게 판별하는지 현장에서 직접 알려준다는 취지였다”고 했다. 재산 관리를 위해 ‘정치판’에 뛰어드는 부유층도 발견된다. 특히 ‘상위 0.1% 부자’들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는 사회적 영향력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500억원대 자산가인 G(44)씨는 불과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은행맨’이었다. 대학 졸업 뒤 15년 가까이 국내 대형 시중은행에서 근무했다. 본점에서 쭉 일할 정도로 능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초 직장을 제 발로 걸어나갔다. 부동산 관리업을 하던 부친에게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서다. 마침 당시 금융권의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요즘엔 수도권 지역의 여당 당원협의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명예직’에 가깝지만 산하 위원회 위원장 자리도 맡았다. G씨는 “경제력을 갖췄으니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우리 집안의 부를 지키기 위한 ‘방패’를 얻는 게 정치 활동의 일차적 목표”라며 “재산이 일정 정도 넘어서면 정치적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부의 대물림’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상위 1% 부자도 많다. 돈은 무엇보다 강력한 ‘권력’인 만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손에 쥐려는 심리가 강하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PB는 “부자들은 돈의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데다 자식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를 권하기도 쉽지 않아 미리 증여를 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증여 시점이 늦어질수록 그리고 분산하지 않고 한꺼번에 할수록 증여세 부담은 커진다. 그는 “고객 중 한 명이 얼마 전에 시가 130억원짜리 빌딩을 매각했지만 증여세 등을 떼고 나니 결국 자식에게는 50억원 정도밖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기부를 선택하는 자산가도 없지 않다. 명품 패션 브랜드 업체 대표인 H(59)씨는 얼마 전 두 명의 자식들에게 “재산의 20%만 상속하겠다”고 천명했다. 자식이 물려준 재산을 관리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자식을 망치는 일인 만큼 본인 스스로 돈 버는 재미를 느끼고 성공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일정 금액 이상은 악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H씨는 “재산의 20% 정도면 20여년 전 8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나보다 훨씬 여유 있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 기자 douzirl@seoul.co.kr
  • [커버스토리] 영상제작팀이 가장 선호하는 부산… 직접 경제효과만 최대 145억 ‘쏠쏠’

    [커버스토리] 영상제작팀이 가장 선호하는 부산… 직접 경제효과만 최대 145억 ‘쏠쏠’

    최근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이어지면서 영화의 무대와 촬영지도 덩달아 뜨고 있다. 지자체는 대박이 예상되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유치하려고 안간힘이다. 관광산업 활성화뿐 아니라 낙후된 지역 문화산업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도시 부산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 유치를 통해 연간 145억원가량의 직접적인 경제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에 힘입어 부산의 명물 국제시장은 영남권을 넘어 전국구 시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부산시민과, 일본·중국 관광객들이 주로 찾던 국제시장에는 전국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덩달아 상인들도 때아닌 관광특수에 즐거운 비명이다. 부산은 1999년 발족한 부산영상위원회를 통해 국내외 영화, 드라마 등 영상물 촬영을 유치하고 있다. 영상물 지원사업도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활발하다. 영화 로케이션 지원사업은 작품별로 담당자를 지정해 촬영 장소 추천 및 동영상 자료를 제공하고 관계 기관의 인허가 섭외와 도로 통제·민원 방지 등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제작진 숙소 지원과 장비 임대, 디지털편집실 대여 등도 꼼꼼히 처리한다. 이를 통해 부산은 영상촬영제작팀이 선호하는 로케이션 장소로 꼽히고 있다. ●‘문화특별시’ 부천 국제영화제로 차별화 성공 ‘문화특별시’를 표방하는 경기도 부천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난개발과 공해로 찌든 도시’였지만, 요즘은 문화도시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 같은 변화의 일등공신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다. 부천국제영화제가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국제영화제 가운데 가장 성공작으로 평가되는 것은 차별성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다른 지자체의 국제영화제가 일반 작품을 다루는 영화제인 것과는 달리 부천은 모험·환상·사랑을 주제로 한 ‘판타스틱’으로 특화, 영화의 주요 고객인 젊은 층에게 어필했다. 영화제 집행위원을 영화전문가들로 구성하는 등 인적 인프라의 우수성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부천은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주민들의 접근성이 높아 관객 동원이 수월하다는 이점이 있다. 특히 상동·중동신도시는 유동성도 좋고 거주민이 많아 영상단지를 관광화시키는 데도 성공할 수 있었다. ●‘명량’ 회오리 물살 보러… 전남 울돌목 인기 전남 울돌목은 영화 ‘명량’에서 일본 전함을 수장시킨 빠른 회오리 물살을 직접 보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관광명소가 됐다. 진도대교 일원을 조망할 수 있는 진도타워는 유료 관광객이 2000여명 남짓 했으나 영화가 상영된 지난해 7월 4051명을 시작으로 8월 9671명, 9월 9848명, 10월에는 1만 39명이나 찾았다. 또 2006년 63억원을 투자해 만든 순천 드라마촬영장은 지난해 37만여명이 찾아 5억 6000여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관광객 유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내 도심 인근의 야산 언덕바지 자연 경사면을 살려 만든 세트장에서는 1960∼1970년대 향수에 흠뻑 젖을 수 있다. 1960년대 순천읍내, 서울 달동네, 태백 탄광촌 등이 재현돼 있다. 이곳에서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님은 먼 곳에’, ‘자이언트’, ‘제빵왕 김탁구’, ‘빛과 그림자’, ‘늑대소년’, ‘피 끓는 청춘’ 등이 촬영됐다. 최근에는 영화 ‘강남블루스’가 40여일, ‘허삼관매혈기’가 2개월 동안 머무르며 촬영을 마쳤다. 순천시는 앞으로 단순 관람이 아닌 새로운 콘텐츠와 프로그램 개발 등 문화공간 조성을 위해 16억원을 들여 추억테마 체험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전주 종합촬영소·경남 영상테마파크 호황 전북 전주시는 2001년 전주영상위원회를 구성해 일찌감치 영화와 드라마 촬영에 나섰다. 전주 상림동에는 영화종합촬영소를 만들고 제작자들이 촬영 뒤 후처리를 할 수 있는 영화제작소를 설치해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주영상위원회는 매년 50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주시가 매년 영화와 드라마를 유치해 얻는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직접 효과 50억~60억원, 생산유발 60억~70억원, 고용유발 200여명에 이른다. 경남 합천영상테마파크는 성공한 국내 대표적인 영상테마파크로 꼽힌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2003년 10개월여에 걸쳐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촬영되면서 조성됐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흥행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합천군은 영화와 드라마, CF 촬영을 위한 영구적인 세트장인 영상테마파크를 조성했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할 때마다 상황에 맞게 간판 등 간단한 시설물만 바꾸면 될 만큼 기본 시설이 잘 조성돼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모던보이’를 비롯해 드라마 ‘서울 1945’, ‘경성 스캔들’, ‘에덴의 동쪽’ 등 각각 10여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됐다. 합천영상테마파크 오픈 세트장을 이용해 제작된 영화·드라마·CF는 모두 150여편에 이른다. 광주시는 2013년부터 도시 마케팅 차원에서 영화·드라마 제작지원사업을 벌여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영상문화 콘텐츠가 영향력이 높은 만큼 영화와 드라마 제작과 촬영장 유치 등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고목이 된 총? 美국립공원 야산 ‘132년된 소총’ 발견 화제

    고목이 된 총? 美국립공원 야산 ‘132년된 소총’ 발견 화제

    미국 국립공원 내의 한 산 중턱에서 무려 132년 전에 제작된 소총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15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더구나 이 소총은 고사한 나무와 나란히 놓여 있었던 관계로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는 발견할 수가 없어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네바다주의 그레이트 베이신 국립공원 관계자들은 운 좋게도 이 오래된 소총을 발견하고 발견 당시의 사진을 국립공원 페이스북에 공개하면서 마치 숨은 그림찾기처럼 소총이 어디에 있는지를 맞춰보라는 글귀를 올렸다. 발견된 이 소총은 1873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당시 유명했던 윈체스터 소총인 것으로 밝혀졌다. 고고학자 등 관계자들이 발견된 소총의 일련번호를 조회한 결과, 이 소총은 지금부터 132년 전인 1882년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국립공원 관계자는 말했다. `윈체스터 모델 1873'은 현재 총기수집가들 사이에서 최고 1만 달러(약 1080만 원)까지 호가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이 소총이 누구에게 판매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공원 관계자는 지금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이 소총이 오랫동안 이곳에 방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시 누군가가 이 소총을 나무에 걸쳐 놓은 다음 그만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하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이 소총은 1873년부터 1916년까지 약 72만 610자루가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서부 카우보이 시절을 주름잡던 최고의 소총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레이트 베이신 국립공원 관계자는 해당 소총을 미국 국립공원 박물관에 보관 및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에 앞서 해당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이번 주 안에는 해당 소총을 현지 국립공원 시설에서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쉽게 발견하기 힘들만큼 나무와 나란히 놓인 소총과 이를 발굴하는 장면 (해당 국립공원 제공)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2015년이 좋은 해가 되려면’ 남을 위해 선(善)한 일 실천/ 김인규 전 오정구청장

    ‘2015년이 좋은 해가 되려면’ 남을 위해 선(善)한 일 실천/ 김인규 전 오정구청장

    ‘2015년이 좋은 해가 되려면’ 남을 위해 ‘선(善)한 일’ 실천/ 김인규 전 오정구청장 희망찬 2015년 을미년이 시작됐지만 아직도 다사다난했던 2014년의 잔상(殘像)들이 남아 있다. 새해 벽두인 만큼 우리 모두가 2015년을 좋은 한 해로 장식하기 위해 어떠한 마음을 먹고 실천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바람직할 것같다. 필자도 새해 첫날 일출을 보기 위해 인적이 뜸한 인근 야산을 찾았는데, 어느 여자분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주문을 외듯 ‘올 한해 우리 가정이 잘 되고 자녀들은 직장을 얻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비는 모습을 보았다.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저마다의 이런저런 소망을 담아 기원하는 것은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과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해서일 것이고, 또한 사람들마다 그만큼 갖가지 사연을 갖고 살아가고, 소망하는 일도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 역시 2015년을 좋은 해로 만들기 위한 마음가짐의 하나로 ‘선(善)한 일’을 하자는 제언을 하고자 한다. 거의 모든 종교의 가르침을 보면 선(善)을 행하라고 한다. 성경에서는 악을 행하는 자는 풀과 같이 베임을 당하고 채소와 같이 쇠잔해질 것이기에 그들의 성공을 불평하거나 시기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주역에서도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적불선지가필유여앙(積不善之家 必有餘殃)’이라고 했다. 즉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좋은 일이 생기지만 그렇지 않은 집안에는 재앙이 온다는 뜻이다. 정치권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의 행태나 요즘 우리사회의 화두가 된 갑(甲)이라는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나아가 소시민들까지 진정으로 ‘선(善)한 일’을 한다면 가정과 마을,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가 잘 될 것이다. 그러면 ‘선(善)한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일까? 남을 위해 잘 되라고 마음을 쓰는 일이다. 어려울 듯하지만 일테면 이런 일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이웃을 위해 작으나마 기부하는 일, 다중집합장소에서 줄을 서는 일, 차가운 길바닥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동전 하나 주는 일, 길거리 휴지를 휴지통에 넣는 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인사하는 일,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일 등등… 마음만 먹는다면 실천할 일이 수없이 많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선(善)한 일’들이 얼마든지 많지만, 그런 마음을 먹는다 해도 실천이 따라주지 않으면 좀처럼 하기 어려운 일들일 수밖에 없다. 필자도 아직 제대로 ‘선(善)한 일’을 못해서 바라는 일이 잘 안 된다고 느끼곤 한다. 그래서 ‘선(善)한 일’ 하나를 하면 잘못한 일 열 개를 상계해 주실런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가져보기도 한다. 20여 년 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명당을 원하는데 죽어서의 명당은 살아서 선한 일 하나 한 것만 못하다고 했다. 2015년에는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선(善)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실천에 옮겨보면 어떨까? 영국인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사회단체 2~3곳에 가입해서 활동한다고 한다. 우리의 지갑에는 여러 장의 카드가 꽂혀 있다. 신용카드를 시작으로 빵집, 커피점, 영화관, 백화점, 대형마트 포인트 카드까지 빽빽하게 꽂힌 지갑 안에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위해 가입한 카드 한 장 소중하게 넣어 을미년 새해를 좋은 해로 만들기를 바란다. ============================================================== ※‘자정고 발언대’는 필자들이 보내 온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따라서 글의 내용은 서울신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의 내용에 대한 권한 및 책임은 서울신문이 아닌, 필자 개인에게 있습니다. 필자의 직업, 학력 등은 서울신문에서 별도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보내온 그대로 싣습니다.
  • 올 첫 대북전단 살포… 남북관계 ‘촉각’

    탈북자단체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북한 체제를 비방하는 전단을 살포한 것이 남북 당국 간 대화 재개 움직임에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는 지난 5일 경기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야산에서 북한 정권 3대 세습 등 체제를 비판하는 대북전단 130만장을 풍선에 매달아 날려 보냈다. 정부는 민간단체가 자율적으로 하는 일에 대해서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북전단 살포에 따른 북한의 반응을 살피면서 우리가 제안한 남북 당국 간 대화에 미칠 영향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6일 “탈북자 단체가 사전 공지 없이 비공개로 전단을 살포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이 이에 대해 어떻게 나올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지난해 10월 제2차 고위급 접촉을 거부하는 등 그동안 이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해 왔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난 1일 신년사에도 “상대방의 체제를 모독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대북전단 살포를 겨냥한 언급을 한 바 있다. 일단 북한이 이번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시하며 우리 정부가 제안한 당국 간 대화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북한이 여전히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대화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여기고 있다면 설사 남북대화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어차피 큰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편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남북 당국 간 상호 비방·중상 중단 합의의 이행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외통위는 특히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에 대해 정부의 필요한 조치를 요구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경북 공룡 화석 보존가치 낮아

    경북 공룡 화석 보존가치 낮아

    경북도 내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작 화석의 상당수는 보존 가치 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도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영천시 화남면 죽곡리 한 계곡에서 1억 2000여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초식 공룡 발자국 화석 100여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들 화석은 길이 10여m, 폭 3m의 구간에 걸쳐 지름 10~30㎝ 크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10년에는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퇴계오솔길(예던길) 계곡에서 1억년 전 중생대 전기 백악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 20여개가, 2009년엔 군위군 군위읍 야산 계곡 중생대 백악기 전기(9000만년 전∼1억 1000만년 전) 지층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되는 익룡(翼龍) 발자국 화석(길이 354㎜, 폭 173㎜)이 각각 발견됐다. 지금까지 도내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곳은 모두 50여곳으로 국내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하지만 대부분 희귀성과 보존 가능성, 학술성 등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재청으로부터 보존가치 등을 인정받은 것은 단 1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990년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도로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316개)은 문화재청으로부터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1993년 천연기념물 제373호로 지정됐다. 나머지 대부분은 학술자료로 활용되거나 방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의 공룡(익룡) 관련 화석 가운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모두 12곳에 있다. 공룡 발자국 등이 발견될 경우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재청에 매장문화재 발견 신고서를 제출하게 되며, 문화재청은 현장답사 등을 거쳐 보존 가치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임종덕(46)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공룡알, 공룡 알둥지 포함) 화석은 최소한 100여곳, 1만개가 훨씬 넘을 정도로 흔하다”면서 “그중에서 보존가치 등이 가장 좋은 것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악마’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악마’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살인마는 눈물을 흘리거나 죄책감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 피의자 박춘봉(56·중국)에 대한 현장검증이 17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일대에서 4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이날 오전 양손에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결박된 상태로 매교동 단독주택에 나타난 박춘봉은 동거녀 김모(48·중국)씨를 살해하고 토막낸 뒤 팔달산 및 수원천변에 유기하는 과정을 태연히 재연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춘봉은 주택 안에서 스스로 범행 과정을 설명해 가며 담담하게 재연했다. 죄책감을 느끼거나 흐느끼는 등의 행동은 엿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춘봉은 오목천동 야산에서 시신의 머리 등을 유기하는 장면을 재연한 뒤 취재진에게 “죽이려는 마음은 없었다. 우연히 발생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시신 훼손 이유에 대해서는 “정신이 없었다. 김씨에게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살해 현장과 유기 장소에는 20~60명의 시민들이 ‘악마’의 얼굴을 보려고 일찍부터 모여 있었다. 저마다 동네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충격과 공포에 빠진 듯했다. 주민들은 박춘봉이 나타나자 일제히 “사형시켜라”,“짐승만도 못한 놈” 등 욕설을 쏟아냈다. 한 주민은 “내가 사는 집 바로 옆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 끔찍하다”며 “저런 사람은 무조건 사형시켜서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춘봉이 수원천변에서 시신이 담긴 비닐봉지를 풀숲에 던지는 장면을 재연할 때에는 60여명의 시민들이 “같이 산 여자를 그렇게 해서 좋으냐”,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만드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반응 없이 태연하게 범행을 재연했다. 경찰은 박춘봉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한 뒤 19일 검찰에 사건을 송치할 예정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이제 밥값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성철 스님이 살아계시면 뭐라 말씀하실지….” 성철(1912~1993) 스님을 평생 시봉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70) 스님은 어쩔 수 없는 ‘가야산 호랑이’의 상좌(제자)였다. 바람이 코끝을 에는 듯한 찬 날씨에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는 스님. 신도들이 연신 합장하며 인사를 건네자 일일이 맞인사를 한다. 이른 아침 ‘한국 불교 1번지’ 조계사 대웅전 앞 만남에선 좀 생뚱맞은 질문일까. 더군다나 총무원이 들어 있는 조계사는 성철 스님과는 인연이 없는 곳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최근 나온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 개정증보판 소감을 물었더니 망설임 없는 답이 돌아온다. “돌이켜 보면 감회가 새롭지요. 큰스님이 설법한 지 반세기인 47년 만에 이렇게 대중에게 온전한 법 보시를 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성철 스님이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方丈)에 추대된 뒤 첫 동안거를 맞아 대중에게 백일간 불교 전반에 대해 강설한 법문이 백일법문이다. 불교의 핵심 내용을 경론과 조사어록 등을 인용해 알기 쉽게 풀어낸, 한국 불교의 퇴색하지 않는 대중 교과서다. 선(禪)과 교(敎)를 불교의 핵심인 중도사상으로 회통해 일갈한, 성철 스님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법문이다. 그 법문을 일반 대중에게 처음 소개한 책이 성철 스님 열반 한 해 전인 1992년 세상에 나온 ‘백일법문’(장경각)이다. 이번 개정 증보판은 첫 판에서 빠진 법문 내용 중 테이프 14개 분량을 보완한 것이다. 처음 나온 초판 ‘백일법문’ 책을 보곤 시큰둥했다는 성철 스님이 살아 있다면 이번 백일법문에는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그때의 백일법문은 말할 것도 없고 22년 만의 개정 증보판 출간은 전적으로 상좌 원택 스님의 공이다. 억센 사투리 억양에 말까지 빨라 알아들을 수조차 없고, 녹음 상태도 썩 좋지 않은 그 법문을 일일이 풀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이었을까. 2004년 원택 스님이 이끄는 성철선사상연구원에서 낸 CD가 첫 판 백일법문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증보판을 내기로 작심했단다. 스님의 백일법문 내용을 전한 책이 빈약했다는 자책과 스승에 대한 죄송함 때문이었다. 2007년부터 다시 시작해 탄신 100주년인 재작년, 그리고 열반 20주기인 지난해에 개정판 출간을 맞추려 했지만 작업이 너무 어려워 늦어졌다. 찬바람을 피해 총총걸음으로 인근 백련불교문화재단 사무실로 옮겨 ‘개정판에 만족하느냐’고 묻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불쑥 법정 스님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저를 법정 스님에게 보낸 게 필생의 길이 되었군요.” 바로 성철 스님 법문집 ‘선문정로’(1981년)와 ‘본지풍광’(1982년)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이야기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은 묘한 관계였어요. 경쟁자이면서 서로가 가장 인정하는 도반이랄까. 원고 뭉치를 꺼내더니 법정 스님에게 가져가라고 했지요. 그래도 글은 법정이 최고라면서….” 자신의 글에 대한 윤문을 부탁했으니 성철이 법정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법정 스님도 글자 하나, 토 하나, 받침 하나도 그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면서 최소한의 교정으로 성철 스님 글의 윤문을 마쳤어요. 그 스님에 그 스님이지요. 더군다나 법정 스님은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에 대해 비판을 가장 많이 했던 스님이었는데….” 원고 뭉치가 든 걸망을 메고 법정 스님을 찾아가 불일암과 유스호스텔을 돌며 윤문 작업을 한 끝에 ‘선문정로’ ‘본지풍광’을 냈고, ‘백일법문’도 그 바탕에서 시작해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선종 소의어록 ‘고경’ 시리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한다. 원택 스님이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 공부를 하던 무렵 고향 친구와 함께 경남 합천 해인사를 찾은 건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71년의 일이다. ‘성철 스님이라는 큰스님이 있으니 한번 만나 보자’는 친구의 권유에 그저 평생의 지남이라도 받아 볼 요량으로 방문했는데 그게 평생의 인연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쏙이지 말그래이.” 기대 속 첫 대면에 받은 지남치곤 허접했을까. 대실망이었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속이지 말라’는 그 말이 가슴에 켕겼고 결국 자신의 몸이 화장당하는 꿈을 꾼 뒤 해인사를 찾아 ‘삼서근’(麻三斤) 화두를 받아 ‘가야산 호랑이’의 상좌가 됐다. ‘살아서 20년, 죽어서 20년.’ 스승 성철 스님을 시봉한 햇수를 담아 영원한 시자 원택 스님이 즐겨 하고 즐겨 듣는 말이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괴팍한(?) 스승을 모시느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변함없이 성철 스님을 모셨고, ‘가야산 호랑이’의 마지막 임종을 지킨 것도 원택이었음을 알 만한 이는 다 안다. 성철 스님 입적 후 경남 산청 출생지에 겁외사를 세었고, 그곳에 다시 기념관을 지어 얼마 전 회향식을 했다. 힘겹게 지은 사리탑이며 연꽃 봉오리 모양의 연화대에 법구를 모신 관을 넣고 불을 넣은 파격적인 다비식을 치른 일 말고도 스승을 향한 그의 정성과 시봉 일화는 숱하다. ‘성철 스님 상좌.’ 자신에게 언제나 따라붙는 이 말이 질리지 않을까. 그래도 큰 소식 한번 하겠다며 출가한 납자인데 성철 스님을 뺀 ‘스님 원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야산 호랑이’ 스님에게 받은 화두 풀이는 잘됐을까.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었나 보다. 무거운 침묵 끝에 돌아온 말은 역시 스승을 향한 자책이었다. “속이지 말라 하셨는데 여전히 속이고 살지요. 죽을 때까지의 숙제겠지요. 법정 스님과 함께하라며 보냈던 그 일은 일찌감치 성철 스님이 제게 내준 길이었어요. 그 길 뜻을 더 일찍 알고 풀었어야 하는데….” 그래서 원택 스님의 ‘백일법문’을 향한 집념은 그렇게 질겼나 보다. “큰스님은 제게 첫 대면에서부터 글을 보지 말라 하셨어요. 글 모르는 무식쟁이인 육조 스님(혜능)도 진리를 깨우쳤는데 대학까지 나온 녀석이 뭐하러 글을 보느냐며 글을 보는 저를 항상 나무라셨지요.” 크게 맘을 먹고 ‘스님 법문을 책으로 내야 스님 뜻이 온 세상에 퍼질 것 아니냐’는 직언을 드렸는데 그게 받아들여졌단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글 보지 말라’던 성철 스님의 지론과는 딴판이었다. “백일법문은 불교의 핵심이 잘 설명된 책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진리를 알려주는,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삼척동자에게도 친숙할 법한 이 말처럼 성철 스님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거인이다. ‘왜 달을 안 보고 달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느냐’고 세상을 혼내던 쩌렁쩌렁한 목소리, 절집을 찾는 이에게 어김없이 삼천 배를 시키던 그 무서운 호령은 여전히 ‘먼저 나를 낮춰 내려놓으라’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다른 매다. 그 거인의 외침은 왜 열반한 지 21년이 지난 지금도 울림이 여전할까. 기다렸다는 듯이 상좌가 돌려주는 한마디. “세상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고집이지요. 스님이라고 왜 유혹과 회유가 없었겠습니까. 흔들리지 않고 본분을 지킨 것이 그 답이 아닐까 합니다.” 그 ‘가야산 호랑이’는 ‘세상의 고통을 외면한 스님’이라는 세상 한편의 비판도 받았었다. 군사독재 시절 ‘보편의 정의’를 몸으로 보여줬던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과 왜 다르냐는 물음이기도 했다. “스님은 항상 자기를 바로 보라고 하셨지요. 남을 위해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중은 논두렁 베고 잠들다 죽어야 한다’는 성철 스님은 출가자의 속가 출입을 절대 용납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집을 찾지 않아 상좌가 문상을 대신 했다. 원택 스님도 그 스승을 따랐다. “출가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성철 스님이 시좌를 시켜 ‘느그 아부지 돌아갔다’는 말만 전해준 기억이 생생합니다. 결국 장례를 잘 못 치렀어요.(웃음)” ‘내 상좌는 죽어도 해인사 본말사 주지가 될 수 없다’는 성철 스님 유지도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절집 표현대로라면 ‘친인척 간 다툼과 알력’을 미리 막았다고나 할까. 상좌 36명 가운데 해인사 본말사 주지는 단 1명도 없다. 상좌들은 주로 선방을 지켰고 열 군데 사암 주지를 맡고 있을 뿐이다. 원택 스님도 해인사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 고심정사의 주지다. 성철 스님이 주석하던 해인사 백련암은 스승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자주 찾아 머무는 편이다. “형제간 다툼이나 알력도 피하고 폭넓게 퍼져 산 셈이니 일석이조 아닌가요.” ‘도망가지 말고 중노릇 잘해라.’ 출가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상좌가 안쓰러웠던지 성철 스님이 툭 던졌다는 말씀이다. ‘희한한 놈’ ‘곰새끼’라 부르면서도 ‘아무한테나 중 되란 소리 안 한다’던 스승의 말 한마디가 요즘 부쩍 가슴에 박힌단다. ‘참선 잘하그래이.’ 성철 스님이 임종 때 곁을 지킨 원택 상좌에게 남긴 유언이다. 그 유언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이제 자신만의 만행을 떠나고 싶은 건 아닐까. 세상 사람들은 흔히 ‘원택이 없었으면 성철이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상좌 원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찰나의 틈도 없이 손사래가 허공을 휘젓는다. “스님 뜻을 제대로 전하기나 한 건지 걱정인데….” 한국 불교계에 이름난 ‘절집 효자’, 원택이다. 옷깃을 여민 ‘절집 효자’가 인터뷰 말미에 얹은 마지막 말은 역시나 ‘스님 뜻을 완전하게 전하고 죽고 싶다’였다. 백련암 이름을 딴 백련불교문화재단은 그 희망의 텃밭이다. 30년쯤 전 ‘한국엔 왜 남방불교를 잘 아는 범어 전문가가 없느냐’는 스님의 질타에 ‘그럼 우리가 백련암에서 범어학자들을 키우자’고 원택 스님이 제안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그 재단을 토대로 스님의 정신을 올곧게 세우겠단다. 지난 11일부터 석달 일정으로 백일법문 강좌를 진행 중이다. 해마다 이맘때쯤 열어 왔지만 47년 만의 개정판 출간으로 올해엔 더 신경이 쓰일까. “백일법문 개정판이 나왔다고 스님 뜻이 바뀌는 건 아니지요. 항상 해 온 대로 하고 있습니다.” 타협 모르는 ‘괴각쟁이’ 수행자 성철 스님,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크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선불교 거두 성철의 그림자 원택 원택 스님은 근현대 한국 선불교의 거두인 성철 스님의 상좌(제자). 경남 해인사에 주석하던 성철 스님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챙긴 성철 스님 삶의 산증인이다.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중 고향 친구와 함께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을 만났고 이듬해 출가했다. 일만 배를 올려 첫 대면한 성철 스님에게 들은 ‘쏙이지 말그래이’ 한마디가 가슴에 박혀 떠나왔던 백련암을 다시 찾아 제자가 된 인연담이 유명하다. 당초 ‘성철 스님 뺨이라도 한 대 올리겠다’며 호기 있게 찾았지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니 고마 중 되라’는 한마디에 머리를 깎았다. 성철 스님 생전 20년간 꼬박 시봉한 유일한 상좌다. 입적 후에도 ‘큰스님’ 뜻을 따라 20여년간 온몸을 바쳐 살고 있다. 성철 스님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챙겼고 입적 후에는 유지 받들기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사리탑과 새 형식의 다비장으로 스승을 기려 불교계를 놀라게 한 ‘소문난 효자’다. 늘 “마음을 다해 시봉한다 했건만 돌아보니 큰스님을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고, 만나도 만나지 못한 것 같다”며 존경과 그리움을 감추지 않는다. 성철 스님 생가터에 성철 스님 친딸이자 출가자인 불필 스님과 뜻을 모아 겁외사를 세웠고, 그곳에 기념관을 다시 지어 최근 개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고 성철 스님의 뜻에 따라 1987년 설립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해인사 백련암 감원, 부산 고심정사 주지를 겸한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성철 스님 입적 전해인 1992년 출간한 성철 스님 법문집 ‘백일법문’이 대업으로 평가되며 22년 만인 최근 그 개정증보판을 내 화제가 되고 있다.
  • 박춘봉 “토막살인 설명해가며 현장검증, 죄책감 없어보여” 경악

    박춘봉 “토막살인 설명해가며 현장검증, 죄책감 없어보여” 경악

    박춘봉 현장검증 “토막살인 재연, 죄책감 없어보여” 경악  박춘봉 현장검증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 피의자 박춘봉(56·중국 국적)에 대한 현장검증이 17일 수원시 팔달구 일원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박춘봉이 동거녀 김모(48·중국 국적)씨를 살해한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단독주택 앞은 주민 20여명이 모여 있었다. 박춘봉은 지난 11일 검거될 당시 입고 있던 패딩점퍼 차림으로 양손에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결박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박은 주택 안에서 스스로 범행 과정을 설명해 가며 담담하게 재연했다”며 “죄책감을 느끼며 흐느끼는 등의 행동은 엿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첫 번째 장소로부터 200여m 떨어진 교동 반지하방에서의 현장검증이 이어졌다. 이곳은 박이 시신 훼손용 장소로 쓰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경찰은 곧바로 박을 데리고 수원천변으로 이동했다. 주민들의 산책로인 수원천변에서는 피해 여성의 살점 등이 든 비닐봉지 6개가 발견됐다. 이날 오후 현장검증은 박이 시신을 유기한 팔달산(2곳), 오목천동 야산 등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춘봉 현장검증 “토막살인 재연, 죄책감 없어보여” 경악

    박춘봉 현장검증 “토막살인 재연, 죄책감 없어보여” 경악

    박춘봉 현장검증 “토막살인 재연, 죄책감 없어보여” 경악  박춘봉 현장검증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 피의자 박춘봉(56·중국 국적)에 대한 현장검증이 17일 수원시 팔달구 일원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박춘봉이 동거녀 김모(48·중국 국적)씨를 살해한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단독주택 앞은 주민 20여명이 모여 있었다. 박춘봉은 지난 11일 검거될 당시 입고 있던 패딩점퍼 차림으로 양손에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결박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박은 주택 안에서 스스로 범행 과정을 설명해 가며 담담하게 재연했다”며 “죄책감을 느끼며 흐느끼는 등의 행동은 엿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첫 번째 장소로부터 200여m 떨어진 교동 반지하방에서의 현장검증이 이어졌다. 이곳은 박이 시신 훼손용 장소로 쓰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경찰은 곧바로 박을 데리고 수원천변으로 이동했다. 주민들의 산책로인 수원천변에서는 피해 여성의 살점 등이 든 비닐봉지 6개가 발견됐다. 이날 오후 현장검증은 박이 시신을 유기한 팔달산(2곳), 오목천동 야산 등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춘봉 “토막살인 현장검증, 죄책감 없어보여”…“짐승만도 못한 놈” 주민들 분노

    박춘봉 “토막살인 현장검증, 죄책감 없어보여”…“짐승만도 못한 놈” 주민들 분노

    박춘봉 현장검증 “토막살인 재연, 죄책감 없어보여” 경악  박춘봉 현장검증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 피의자 박춘봉(56·중국 국적)에 대한 현장검증이 17일 수원시 팔달구 일원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박춘봉이 동거녀 김모(48·중국 국적)씨를 살해한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단독주택 앞은 주민 20여명이 모여 있었다. 주민들은 “짐승만도 못한 XXX”, “사형시켜라” 등 욕설을 쏟아냈다. 박춘봉은 지난 11일 검거될 당시 입고 있던 패딩점퍼 차림으로 양손에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결박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박은 주택 안에서 스스로 범행 과정을 설명해 가며 담담하게 재연했다”며 “죄책감을 느끼며 흐느끼는 등의 행동은 엿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첫 번째 장소로부터 200여m 떨어진 교동 반지하방에서의 현장검증이 이어졌다. 이곳은 박이 시신 훼손용 장소로 쓰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경찰은 곧바로 박을 데리고 수원천변으로 이동했다. 주민들의 산책로인 수원천변에서는 피해 여성의 살점 등이 든 비닐봉지 6개가 발견됐다. 이날 오후 현장검증은 박이 시신을 유기한 팔달산(2곳), 오목천동 야산 등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춘봉 현장검증 “토막살인 재연, 죄책감 없어…” 경악

    박춘봉 현장검증 “토막살인 재연, 죄책감 없어…” 경악

    박춘봉 현장검증 “토막살인 재연, 죄책감 없어보여” 경악  박춘봉 현장검증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 피의자 박춘봉(56·중국 국적)에 대한 현장검증이 17일 수원시 팔달구 일원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박춘봉이 동거녀 김모(48·중국 국적)씨를 살해한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단독주택 앞은 주민 20여명이 모여 있었다. 박춘봉은 지난 11일 검거될 당시 입고 있던 패딩점퍼 차림으로 양손에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결박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박은 주택 안에서 스스로 범행 과정을 설명해 가며 담담하게 재연했다”며 “죄책감을 느끼며 흐느끼는 등의 행동은 엿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첫 번째 장소로부터 200여m 떨어진 교동 반지하방에서의 현장검증이 이어졌다. 이곳은 박이 시신 훼손용 장소로 쓰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경찰은 곧바로 박을 데리고 수원천변으로 이동했다. 주민들의 산책로인 수원천변에서는 피해 여성의 살점 등이 든 비닐봉지 6개가 발견됐다. 이날 오후 현장검증은 박이 시신을 유기한 팔달산(2곳), 오목천동 야산 등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토막살해’ 박춘봉 구속… 시신 훼손 이유는 못 밝혀

    ‘토막살해’ 박춘봉 구속… 시신 훼손 이유는 못 밝혀

    수원 토막살인 사건의 피의자 박춘봉(55·중국)이 구속됐다. 수원서부경찰서는 14일 오후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주택에서 한때 동거했던 김모(48·중국)씨를 살해한 박춘봉을 살인과 사체손괴, 시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이날 밝혔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수원지법 천지성 판사는 “도주가 우려되고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검찰이 청구한 영장에는 범행 시기와 수법, 경위 등이 ‘불상’으로 기재됐지만, 법원은 박춘봉이 범행을 시인한 데다 증거가 충분해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고 판단했다. 박춘봉은 김씨가 벽에 부딪히면서 넘어져 사망했다며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박춘봉의 진술과 달리 목이 졸려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부검의 소견을 내놨다. 따라서 박춘봉이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하기 위해 거짓 진술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범행 동기와 수법 등에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또 시신 유기 장소 가운데 한 곳으로 지목한 수원과 화성 경계 야산이 시신 훼손 장소인 수원 팔달구 교동 임시계약 월세방에서 8㎞ 떨어져 도보로 2시간 이상 소요되는 만큼 조력자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하고 있지만 아직 추가 범행이나 조력자 정황은 나오지 않았다. 박춘봉이 2008년 12월 2일 가명으로 여권을 위조해 입국한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추가 범행 여부 등을 수사하기 위해 입국 이후 행적을 캐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살인이나 시신 훼손 이유는 여자나 돈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며 “앞으로 추가 조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한편 박춘봉은 이날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수원서부경찰서를 나서면서 굳은 표정으로 “피해자 가족에게 죄송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러나 시신 훼손 이유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이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