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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영화 볼까]

    ●로빈슨 가족/애니메이션(전체) 감독 스티븐 J 앤더슨 주연 안젤라 바셋(목소리)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천재소년 루이스와 미래 소년 로빈슨이 함께 미래로 날아가 벌이는 흥미진진한 모험담.3D 입체영상으로도 개봉된다 ●천년학/드라마(12세)감독 임권택 주연 조재현·오정해 유유히 흐르는 강, 완만한 산등성, 구불구불 굽이 진 오솔길, 아담한 돌담길.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거장의 100번째 노력에 찬사를! ●눈부신 날에/드라마(15세)감독 박광수 주연 박신양·서신애 야바위판을 전전하는 양아치 종대가 어느 날 갑자기 귀엽고 착한 딸 준을 만나 개과천선하는 이야기. 감독의 이름만 믿고 갔다간 진부하고 억지스러운 설정에 울고 나올 듯. ●굿 셰퍼드/미스터리(18세)감독 로버트 드 니로 주연 맷 데이먼·안젤리나 졸리 국익을 위해 인생을 바친 그에게 과연 남은 것은 무엇일까. 좋아하던 문학을 버리고 첩보원이 돼 나라를 위해 살아온 윌슨에게서 껍데기 뿐인 삶과 오만한 CIA의 실체를 본다. ●하나/코미디(12세)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오카다 준이치·미야자와 리에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찾아 도쿄로 온 사무라이 집안의 장남 소자. 일상이 주는 즐거움에서 깨달음을 얻은 그는 진짜보다 더 통쾌하고 유쾌한 복수극을 펼친다.“벚꽃이 지는 이유는 내년에 필 줄 알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열심히 사는 것, 그것이 복수다!
  • 이 세상 모든 아비지들께 바칩니다… ‘아버지 영화’ 봇물

    이 세상 모든 아비지들께 바칩니다… ‘아버지 영화’ 봇물

    갑자기 나타난 딸로 개과천선하는 양아치 종대(눈부신 날에), 아들과 잊을 수 없는 특별한 하루를 보내는 무기수 강식(아들),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의 졸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치킨집 사장 진규(날아라 허동구). 언뜻 봐도 평범하지 않은 이 아버지들이 삶에 찌든 조폭 가장 강인구(우아한 세계)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극장가에서 ‘아버지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영화도 유행을 타는지 짠한 부성애를 내세운 영화들이 앞다퉈 개봉되고 있다. 잘만 버무리면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놓기는 어렵지 않을 듯한데…. 과연 관객들이 이들과 함께 울어 줄 수 있을까. #1 ▶“죽음 앞둔 딸을 보며 새 삶 찾아” 슬퍼 보이긴 하는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 애틋한 부녀지간을 만들기 위해 너무 억지를 부리면 이런 부작용이 생긴다. 박광수 감독이 아주 오랜만에 들고 나온 영화 ‘눈부신 날에’가 그렇다. 물론 ‘신동’ 소리를 들으며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역배우 서신애의 나이답지 않은 열연은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뿐이다. 진한 감동을 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을까. 현실과 동떨어진 일부 무리한 설정은 상당히 거슬린다. 특히 영화에서 아이는 감동을 위한 희생양일 뿐 엄연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그걸 보고 울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이야기는 이렇다. 전과 3범으로 야바위판을 전전하는 삼류건달 종대(박신양) 앞에 어느날 친딸이라며 귀엽고 깜찍한 준(서신애)이 나타난다. 아이를 잃은 상처를 지닌 사회복지사 선영(예지원)이 친딸처럼 여기는 준을 위해 아빠를 찾아준 것이다. 선영은 눈물 섞인 호소와 약간의 돈으로 펄펄 뛰는 종대에게 준을 맡긴다. 아이의 마지막 소원이라며. 사실 준은 불치병 환아. 이를 몰랐던 종대는 준을 방치하게 되고 병은 악화된다. 그토록 소원하던 월드컵 거리응원을 나간 날, 준은 종대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막 살아온 대가로 실명 위기에 처한 그에게 마지막 선물까지 주고 말이다. 최루성의 강도를 높이려다 보니 영화는 이해하지 못할 일 투성이다. 부양자로서의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종대에게 맡기는 선영의 행동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현실에서 입양이 얼마나 엄격한 심사와 기준에 의해 이뤄지는지 모른단 말인 것인지…. 게다가 병든 아이를 허름한 컨테이너 박스(종대의 집)에 살도록 하는 것은 방치나 다름 없고, 또 아이에게 병을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장면은 오로지 비극적 결말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겠다는 뻔한 계산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10살짜리 아이가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가 비바람 속에 TV안테나를 부여잡고 있다가 쓰러지는 장면에 이르면 슬픔 때문이 아니라 답답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여기에 더해 준이 종대의 친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암시하는 원장 수녀의 태도는 나름 유쾌한 반전이라고 집어넣은 것이겠으나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어렵게 상봉한 부녀의 이별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말도 안되는 상황에 내몰린 준을 보고 있으면 억울해서 눈물이 나긴 난다.19일 개봉,15세 관람가. #2 ▶“15년 떨어져도 아들을 느낀다” ‘아들’은 살인강도로 무기수가 된 아버지 강식(차승원)이 15년 만에 24시간의 특별휴가를 받아 아들 준석(류덕환)을 만나며 일어나는 사건과 감정의 변화를 다뤘다. 관객들의 눈물샘을 터뜨리기로 작정하고 만든 것처럼 느껴질 만큼 슬픔과 안타까움이 영화 전반을 흐른다. 평생을 교도소에서 가족을 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강식의 미안함, 그리고 너무 오래 떨어져 산 탓인지 아버지를 보고도 선뜻 살갑게 대할 수 없는 아들의 안타까움이 잘 그려졌다. 하루의 만남으로 서로 화해를 이루는 장면은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조금은 억지스럽다는 인상이 든다. 강식과 준석이 나누는 대화를 듣다보면 아버지와 딸 같다는 느낌도 든다. 교도소에 수감되며 3살배기 아들과 헤어졌던 강식은 15년이 지난 지금 준석에 대해 추억할 만한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를 직접 찾아가 만난 준석은 자신과 달리 키도 작고 그리 닮지도 않았다. 어려서부터 아들이 왼손잡이여서 혼내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어느새 아들은 오른손잡이로 변해 있다. 그래서일까. 더욱 아들에게 다가가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둘은 함께 목욕을 하며 화해를 시도하고 강변에서 달을 바라보며 준석이 아버지에게 ‘죽을 때까지 날 사랑해 달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다. 아들 앞에서 한번도 울지 않던 강식은 다음날 아침 교도소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다 준석이 손을 잡자 통곡하고 만다. “호랑이 문신이 나이가 들다보니 얼룩말처럼 변했다.”는 등 영화 곳곳 등장하는 ‘장진식 코미디’가 활력을 준다. 하지만 영화 내내 너무 울음이 많다는 것은 아쉽다.5월3일 개봉. 전체 관람가. #3 ▶“아들아 초등학교만 졸업해다오” ‘날아라 허동구’는 타이완의 베스트셀러 소설 ‘나는 백치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원래 소설에서는 저능아 아들을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엄마가 주인공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정진영이 영화 제작초기 ‘엄마’를 ‘아빠’로 바꿔보자는 제안을 해 받아들여졌다고. 장애아의 힘겨운 ‘장애 극복과정’을 그린 기존 장애우 영화와 달리 단지 사회에 무사히 발을 딛기만 해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대다수 장애아 부모들의 심정을 대변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장애아’를 키우는 한 아빠의 사실적이면서도 소소한 일상을 통해 잔잔한 웃음을 선사한다. 주인공 동구를 연기한 아역배우 최우혁은 연기를 위해 체중도 8㎏이상 늘리고 정진장애학교에도 주 1∼2회씩 방문하는 등 어른 못지 않은 열정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학교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IQ 60의 11살 동구. 아들이 세상에서 전부인 치킨집 사장 진규(정진영). 학교에 가도 친구들에게 물 따라주는 일밖에 못하는 동구지만 엄마 없이도 밝게 자라는 동구를 보는 진규는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하지만 동구가 그렇게 좋아하는 학교에서는 특수학교로 전학가라고 종용하고, 난데없이 집주인은 이사를 가라며 진규의 등을 떠민다. 때마침 선수 부족으로 없어질 위기에 처한 야구부에 들어가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진규는 오직 동구의 초등학교 졸업을 위해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야구의 규칙을 알 리 없는 동구는 선생님의 차가운 눈빛과 집주인의 잔소리에 맞서며 초등학교 졸업을 위해 고군분투한다.26일 개봉. 전체 관람가. 박상숙 류지영기자 alex@seoul.co.kr ■ 왜? ▶영화계 불황과 소재 개척을 반영 이뿐만이 아니다. 오는 19일 개봉 예정인 ‘파란 자전거’(권용국 감독)를 필두로 ‘성난 펭귄’(박상준 감독),‘마이 파더’(황동혁 감독),‘귀휴’(김영준 감독·),‘이대근, 이댁은’(심광진 감독),‘가시고기’(유학주 감독), 일본영화 ‘내일의 기억’(쓰쓰미 유키히코 감독) 등도 아버지를 소재로 5월 이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한국 영화에 ‘아버지 영화’가 대거 등장한 데에는 지난해 후반부터 시작된 영화계의 불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규모 자본투자가 어려워지자 적은 비용으로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는 감성형 가족영화 제작이 늘고 있다는 것.30억원 정도의 순수제작비로 5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말아톤’(2005년 개봉·정윤철 감독)의 성공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모성애 위주로 흐르던 가족영화에 부성애라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인지 최근 아버지 영화 상당수는 감정에 호소하기 위한 흥행공식에 충실한 영화를 만든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날아라 허동구’를 배급하는 ‘쇼박스’의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가 노고를 잊고 살아온 아버지를 돌이켜볼 수 있는 계기로 삼기 위해 아버지에 관한 영화들이 기획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장르나 소재가 다양한 한국영화의 특성상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이라는 의미도 갖는다.”고 말했다.
  • 토플 ‘야바위 접수’

    국내 토플시험 응시생들이 두 번 울었다. 인터넷 토플(IBT·Internet-based TOEFL) 출제기관인 미국 교육평가원(ETS)의 ‘거짓말’ 때문이다. ETS는 지난 12일 홈페이지(www.ets.org)에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지역에서 7월 접수 창구를 개방한다.”고 공지했다. 당초 7월 시험 접수 시작일로 알려진 지난 10일 이후 3일째 접수가 되지 않아 수험생들의 불만이 일자 표시한 공식 입장이었다. 그러나 ETS는 공지와는 달리 13일 오전 제한적으로 시험을 접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ETS의 공지만 철석같이 믿고 접수를 시도하지 않았던 수험생들은 “또 속았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ETS는 이날 오전 11시10분쯤부터 1시간 정도 접수 창구를 ‘깜짝 개방’했다. 전화로 등록을 받는 톰슨 프로메트릭 콜센터 한 관계자는 “오전 11시 조금 넘어서부터 서울 한양대와 충남 천안 나사렛대 등 2곳에서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 등록을 받았고,1시간 만에 마감됐다.”고 밝혔다. 시험장 한 곳이 수용할 수 있는 응시자 인원이 평균 100명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오는 7월7·14·28일 세 차례 시험에 접수한 수험생은 고작 몇 백명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험생들은 이날 깜짝 접수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어이가 없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분노했다. 서울대 대학원생인 김모(28)씨는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접수를 시도했지만 로그인 자체가 안 됐는데, 공지도 안 하고 접수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토플 관련 사이트도 ETS에 대한 불만으로 하루 종일 뜨겁게 달아올랐다. 토플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한 유명 사이트에는 ETS를 질타하는 1000여건의 글이 올랐다. 한 네티즌은 “미국에서는 한국에 물어보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주관하니까 모른다고 하더라. 도대체 누가 책임을 지는 것이냐.”며 화를 참지 못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재수 없이 자리를 비웠다가 등록을 못했다. 지쳐서 포기하겠다.”고 글을 올렸다. 그러나 한미교육위원단 측은 “시험 장소를 4곳에서 25개대로 늘렸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면서 “공급보다 수요가 너무 많아서 이렇게 됐다. 지금은 등록할 자리가 없으니까 신청이 적게 되는 거지 아예 접수가 안 되는 상황이 아니다.”는 어설픈 해명만 되풀이했다. 이렇듯 토플 대란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되풀이되자 일부에서는 “더 이상 토플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서서히 나오고 있다. 국내 영어학원의 한 관계자는 “무조건 토플이나 토익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텝스나 토셀 등 국내에서 개발한 새로운 공신력 있는 토종 시험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토플의 당초 취지와는 달리 국내 중·특수목적고와 대학 진학을 위해 중·고등학생들이 대거 응시하는 국내 제도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캄보디아, 神들의 세상

    캄보디아, 神들의 세상

    킬링필드, 앙코르와트, 크메르루주….‘캄보디아’ 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그만큼 현대사의 숱한 아픔과 고통을 겪은 나라이다. 또한 위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나라이면서 대부분 방치됐거나 버려졌다. 15세기에 ‘앙코르’라는 왕도(王都)와 100만 인구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전설 아닌 전설만 보더라도 캄보디아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가득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단절의 역사가 반복된 셈이다. 앙코르와트의 경우만 하더라도 1862년 프랑스의 탐험가이자 생물학자에 의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그 베일의 두께는 한층 더했을 터. 깊숙한 정글 속에 500년 넘게 잠자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발견된 후에도 130여년이 지난 1994년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 시작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훼손이 많았던 세월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 일대의 유적이 제대로 복원되려면 최소 100년은 더 걸릴 것으로 진단한다. 그만큼 캄보디아는 여전히, 태고의 비밀을 간직한 나라이다. 오늘날 캄보디아 사람들은 국기와 지폐에 앙코르와트를 그려 넣을 만큼 캄보디아의 상징으로 여긴다. 최근들어 국내는 물론 세계인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모으는 캄보디아 현지를 다녀왔다. 주요 관광지를 소개한다. 글 사진 앙코르와트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9~13세기 고대사원 유적도시 시엠립(siem reap) 캄보디아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수도 프놈펜보다 시엠립를 선호한다. 캄보디아 서북부에 위치해 앙코르 유적을 가장 가까이 두고 있는 이 도시에는 9∼13세기에 이르는 고대 사원들이 산재해 있다. 시엠립의 앙코르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들은 종교와 역사에 대한 사전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를 할 수도 없거니와 감동도 반감되고 혹자는 더운 날씨에 보는 것마저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 54개 탑과 관음상 200여개 앙코르톰(Angkor Thom) ‘거대한(톰) 도시’라는 뜻을 가진 고대 크메르왕국의 수도.9세기경 크메르를 통일한 수리야바르만 2세가 건설을 시작해 300년 뒤인 13세기초 자야바르만 7세가 완성했다. 1.5㎞ 남쪽에 위치한 앙코르와트와 함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다. 성벽 한변이 3㎞, 높이 8m인 정사각형 모양이며 넓이는 45만평. 주변은 적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파 놓은 약 100m 폭의 해자(수로)로 둘러싸여 있다. 지름 25m, 높이 45m의 중앙탑을 중심으로 54개의 탑과 관음상 200여개가 새겨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원나라 사신 주달관의 기행문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를 보면 이곳의 수많은 탑과 불상이 황금도금을 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당시 왕국의 웅장함을 가늠케 한다. 사원에 쓰인 돌은 무려 60만개. 놀랍게도 한 개당 무게가 1t에 달한다. 부처님 얼굴의 거대한 4면 석상이 중앙사원인 바욘(Bayon)과 고푸라(23m에 달하는 성문 입구 구조물)에 얹혀 있다. 앙코르와트가 힌두교 사원이라면 앙코르톰은 힌두교 위에 전파된 불교 색채가 짙다. 10만에 달하는 왕족과 하인들이 이곳에, 일반 백성들은 성 밖에 살았는데 그 수가 100만명이 달해 매우 융성했던 고대 도시였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거대왕국은 15세기 말에 갑자기 사라진다. # 조각예술품으로 가득찬 앙코르와트(Angkor Wat) 우리나라에도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앙코르와트는 시엠립에 분포되어 있는 여러 사원 중 하나. 또한 크메르 미술을 대표하는 탑과 부조 등의 조각들로 가득 차 있다.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가진 중앙사당은 힌두교 신으로부터 부처님에 이르는 절대자에 대한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앙코르톰처럼 한 변이 1.6㎞인 정사각형 꼴이며 역시 해자로 둘러싸여 있지만 전체 규모는 앙코르톰의 4분의1 정도다. 앙코르와트는 1972년 이후 베트남군과 크메르루주 게릴라가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는 바람에 많이 파괴되었다.2000개에 달하던 불상이 겨우 37개 남았다. # ‘스펑´ 나무에 짓눌린 성벽 따프롬(Ta Prohm) 자야바르만 7세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사원. 영화 ‘툼레이더’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엄청나게 큰 나무가 성벽 위에서 자라나 벽을 타고 내려오며 땅으로 뿌리를 박고 있는 모습은 마치 나무가 성벽을 집어 삼키고 있는 듯한 괴기스러운 모습이다. 나무뿌리의 굵기만 한 아름이 넘는다. 언뜻 보면 몇 천년은 흘러간 폐허 같지만 나무의 수령은 500년이 채 안된다.‘스펑’이라는 이름의 이 나무의 생장속도가 무척 빠르기 때문이다. 사원건축에 쓰인 재료는 사암(sand stone)으로 수분을 함유한 다공성의 이 암석이 스펑나무의 씨를 받아들여 기르는 토양 역할을 했다. 왕조가 몰락하고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동안 싹을 틔운 나무는 이 성벽이 제공해주는 수분을 빨아먹고 급속히 성장, 성벽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은 앙코르의 유적 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 일몰이 장관인 호수 톤레삽(Tonle Sap) 메콩강이 역류해 생겨난 호수. 시엠립 남쪽 교외에 위치해 일몰로 유명한 곳이다. 시엠립 시내를 빠져나와 남쪽으로 달리면 탁 트인 평야에 끝없이 펼쳐진 논과 습지들을 만난다. 소들이 유유히 풀을 뜯어 먹고 있고, 수로를 따라 낚싯대를 드리우는 이도 있다.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려 당도한 톤레삽 호수는 우리나라의 작은 어촌의 포구를 연상케 한다. 여기서부터 호수까지는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선착장에는 20∼30명의 관광객을 태울 수 있게 개조된 작은 어선급 규모의 배들이 수십척 정박해 있다. 호수로 향하는 폭이 10m가 넘는 큰 강가에 수상가옥들이 줄지어 있다. 수평선이 보이고 집들이 물위에 다닥다닥 떠 있다. 일몰이 장관이다. # 크메르루주 고문기구 전시 톨슬랭(Toul slang) 크메르루주가 제21보안대 건물로 사용하면서 반정부 인사 및 지식인, 그들의 자녀들을 수용하고 고문했던 곳이다. 지금은 당시 시설을 보존해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주의 점령기간인 1975년 4월부터 1979년 1월까지 이곳에 끌려 온 1만여명 중 살아 나간 사람은 7명뿐이라고 한다. 감옥 내부에는 고문기구 등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고, 당시 희생자들이 이곳에 끌려와 찍은 얼굴 사진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 80여개 해골 위령탑 킬링필드(Killing Field) 크메르루주 집권 이전인 1969년∼1973년 사이에 40∼8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미국의 폭격으로 죽었다. 그 고통은 반미 마오이즘을 표방하며 1975년 캄보디아 혁명에 성공한 크메르루주의 집권기에 악순환이 됐다. 크메르루주는 친미 정권에 봉사한 이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10만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시민들을 프놈펜 근교인 이곳에서 처형했다. 8900구의 시신이 집단매장 되어 있는 이곳을 발견한 것은 1980년. 총알이 아까워 쇠막대기로 때려 죽이거나 갓난 아기들을 팜나무의 날카로운 잎에 던져 죽이는 만행을 자행했던 곳이다. 훈센정부가 해골만 모아 높이 80여m의 위령탑을 만들었다. # 여행정보 인천공항에서 5시간 정도 날아가 밤에 내려다 본 ‘고대도시’는 불빛이 거의 없이 깜깜하다. 전력부족 탓이다. 호텔에 도착하면 최소한의 조명만 켜져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숙박시설은 충분하다. 깔끔한 1급 호텔이 50여개 정도 있고 배낭여행족들을 위한 하루 20달러 정도의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호텔입구는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한 3륜차)’ 기사들로 늘 북적인다. 툭툭을 이용하면 저렴하고 낭만도 있지만 더운 날씨와 흙먼지, 매연을 각오해야 한다. 캄보디아 관광산업은 지난 한해 170만명의 관광객 유치라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이 중 한국인 관광이 가장 많다. 캄보디아 여행은 인천-프놈펜, 시엠리아프 직항이 생기면서 3박5일 정도의 일정이 가장 많아졌다. 노인들과 아이들을 동반한다면 건기로 접어들고 날씨도 무덥지 않은 10월부터 3월 사이가 여행에 좋은 시기다.
  • [길섶에서] 3월 종달새/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종로통은 늘 살아 있다. 활기가 넘친다. 청계천, 을지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개인적으론 종묘 건너편 4가 거리가 푸근하다. 지금도 아날로그다. 풍광, 그리고 오가는 사람 마찬가지다. 어설픈 약장수가 구경꾼을 모으고, 주변 야바위꾼도 덩달아 신이 난다. 만능 세척제, 다기능 공구의 묘기꾼 역시 십수년 전 그대로다. 이렇게 정지된 공간이 4대문 안에 또 있을까. 한땐 꽤 큰 레코드 가게가 줄지어 있었다. 구하기 힘든 LP음반도 어딘가에 박혀 있었다. 가요, 클래식 가리지 않는다. 위일청 유가화 명혜원의 초기 음반을 여기서 만났다. 라벨, 사라사테, 파가니니의 다양한 버전도 이 곳에선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제 음반 가게는 거의 없다. 음반시장 쇠락 때문이다. 디지털의 그림자다.LP판 바늘을 구하러 자주 찾았던 가게도 한참 전 문을 닫았다. 판은 꽤 모았는데, 이따금 바늘 걱정이다. 홀로 남은 S가게의 간판이 오히려 어색하다. 그래도 거리는 지난날을 아쉬워 않는다. 봄비 뒤의 모습이 청명하다. 차이코프스키의 ‘3월 종달새’를 듣고 싶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정치 낭인’ 박찬종 前의원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정치 낭인’ 박찬종 前의원

    ‘정치 낭인’ 박찬종(68) 전 의원이 눈 앞에 나타났다. 작년 하반기 ‘후광 김대중 선생께 드리는 글’부터 시작해서 전두환 전대통령, 이용훈 대법원장,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들에게 차례로 공개서한을 날렸다.2월 말에는 서울 구치소에 18시간 감금됐다 풀려나는 일로 신문에 나기도 했다. 정치의 계절이 돼서일까. 그러나 정작 본인은 ‘구체적인 야심은 뚜껑 덮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누가 후보가 되는지, 대통령이 될지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자신은 무당파, 자유인으로서 오직 나라를 위해 ‘360도 돌려차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의 ‘발차기’는 한 곳만을 겨냥하지 않았다. 당원에 의한 대선후보 경선을 ‘야바위 사기극’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서는 차분했던 노신사의 모습도 간 데 없었다. 서울 세종로의 한 카페에서 이 로맨티시스트 정치인을 만났다. ▶한동안 안 나오다가 활동을 재개한 이유가 뭔가요. “97년 후보 경선 포기를 하고 이인제 후보를 지지한 상황이 빌미가 돼 지난 10년을 내 스스로 자책하고 국민으로부터 매도 맞고 지내 왔어요. 그러나 아무것도 안한 게 아닙니다.98년 11월부터 1년 반 동안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한국경제를 연구했어요. 그 성과물로 책을 두 권 썼고, 귀국한 후에는 주로 경제특강을 다녔습니다. 내가 정치를 해서 그렇지 원래 전공이 경제학이에요. 그러다 어느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목포에 가서 말씀을 하시는데 맘에 안들더라고요. 아는 이들에게 얘기를 했더니, 요즘은 인터넷에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으니 쓰라고 해요. 그래서 시작한 게 사건이 있을 때마다 이어지고 그게 종이신문에 난 거지요. 나는 구체적 야심은 뚜껑 덮은 사람이라 걸릴 게 없습니다.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들에게도 다음 총선과 대선 경선 불출마 선언하라, 그러면 길이 생긴다고 쓴소리 했지요. 앞으로 한나라당 소장파들에게 쓸 편지 초도 잡아 놨어요.” 어떤 내용인지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우리당과 비슷한 강도의 글이라며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를 주문할 것이라 했다. 특히 그의 지론인 천심론을 거론하며 국민적 지지를 받는 개혁없이는 천심을 못 얻는데 한나라당이 변한 것 뭐 있냐고 반문했다. 예로 5·31 지방선거 때 전국적인 돈공천을 하고도 공천개혁을 요구하는 정풍 주창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며 특히 소장파라는 게 젊은피가 끓고 먼지가 덜 묻고, 박력이 있다고 붙여준 이름인데, 이게 더 노회해져서 말로만 비전과 개혁을 들먹이고 앙증맞기 짝이 없다고 혀를 찼다. ▶구치소에서 풀려나면서 사법개혁 말씀을 하셨던데요. “그동안 공인으로서 뭘 잘못해 왔던가, 반성하며 하룻밤을 지냈어요. 내가 작년에 법관들에게 억강부약(抑强扶弱)하는 사법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관후해 다소 억울한 판결을 내릴지라도 국민이 승복하는 사법부가 되라는 공개서한을 보냈잖아요. 그 생각을 하며 석궁사건 김명호 교수를 떠올렸어요.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면회를 갔는데 과연 억울한 사연이 있더군요. 그를 위해 법정에 설 것입니다.” ▶야심을 접었다는 건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원하는 등의 역할은 안하겠다는 말씀이신지요. “현재는 고려 안하고 있어요. 그보다는 경선틀에 대해 대안을 제시할 거예요. 한나라당이 1997년,2002년 두번이나 실패한 경선방식을 갖고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것은 반국민적 행태예요. 당원 경선을 한다는데 우리나라 정당에 당원이 어디 있습니까. 그게 다 의원 패거리지. 압도적으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경선이 돼야 합니다. 당원 뜻은 많아야 5% 반영할까. 그리고 6월 경선은 너무 빨라요. 미국도 선거 두달 반 전에 선출합니다.” ▶선거연초 국민지지율 1위가 당선된 적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97년 대선 때 박 전의원 이름이 거론됩니다. 이 명박씨는 1위를 지킬까요. “디지털 시대에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올지는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다만 내 얘기 나올 때마다 ‘박찬종의 볼멘 소리’란 제목으로 글이라도 쓰고 싶었어요.97년 당시, 말이 1만 3000명 대의원 경선이지, 야바위사기극이었어요. 지구당위원장 줄세우기였는데 게다가 이회창씨는 대표까지 됐잖아요. 지금처럼,50당심·50민심 구조만 됐더라도 얘기는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한나라당 후보검증 공방에 대해서는. “검증은 국민 이름으로, 무제한으로 해야죠. 하자, 말자, 몇사람만 모여서 하자, 분당 염려되니 우리끼리는 하지 말자, 이건 성숙하지 못한 자셉니다. 검증 기준도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대통령은 그레이드를 달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여비서 익사사건 때문에 대선 출마를 못했습니다. 그 경력으로 상원의원은 해도 좋지만 대통령은 안되겠다, 그렇게 기준이 다른 겁니다.” ▶‘꼬마민주당’ 때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한 적이 있는데 노 대통령 4년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노 대통령이나 나나 돈키호테 형이라 실패를 했지요. 가장 큰 실패는 국가원수로서 국민통합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87개헌때 국가원수란 표현이 헌법에 적절한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어요. 하지만 오랜 역경의 역사에서 국가의 통합의 실천자로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해서 그냥 두었던 것인데 노 대통령은 국민을 소득, 지역, 학연, 친미·반미 등으로 분열시켰어요. 둘째가 경제 실패인데 앞으로 2년 안에 큰 위기로 나타날 것으로 봅니다.” ▶연임제 개헌 발의는 어떻게 보십니까. “87개헌으로 탄생한 단임제 대통령 4명이 모두 실패를 하고 보니 미국식 연임제가 만병통치약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연임제를 하면 단임제 폐해라는 레임덕, 정책일관성, 책임정치 문제가 모두 해결됩니까.‘5년 무책임제’가 ‘8년 무책임제’로 바뀔 뿐이에요.87개헌의 실수 하나는 부통령제와 결선투표제를 도입 안한 것입니다. 도입됐다면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은 안 나왔겠지요. 개헌을 한다면 단임제 강화로 나가야겠지만, 지금 개헌이 급한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대통령이 결단해 정치개혁을 해야지요. 국회법, 정당법을 고쳐 국회를 정당대표자 회의가 아니라 국민대표자 회의로 돌려놔야 합니다.” ▶정치 역정이 잘 안풀렸는데 무엇이 잘못됐습니까. “97년 외톨이가 돼서 게이오 대학에 갔을 때는 죽을까해서 1주일간 독한 양주를 퍼마시기도 했어요. 그러나 나는 깨끗한 정치, 국민 대의를 찾아 혼자 결단하고 행동해 왔습니다. 양지를 찾아 왔다갔다 한 일이 없습니다.YS때 신한국당에 들어갔지만 전국구도, 장관직도 마다했어요. 관용차를 한번도 탄 일 없습니다. 온가족이 사후시신기증 서약을 해서 어머님이 1호기증자가 됐습니다. 지금 걱정은 내 시신이 의과대 해부대에 올라갔을 때 썩은 냄새가 나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깨끗한 이름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 그게 내 최종 목표입니다.” “그런데 감방에 다녀왔으니 어떡하지?”라며 웃는 모습에 쓸쓸함이 묻어 나왔다. ■ 박찬종 그는… 1939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만 68세).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고등고시 사법과와 행정과, 공인회계사 시험에 모두 합격. 검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활동을 하다 1979년 10대 때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됐다.5선의원 경력. 지적인 외모와 유창한 언변, 깨끗한 정치 이미지로 ‘대쪽’‘무균질’ 정치가로 불렸다. 그러나 스스로도 인정하는 돈키호테형 언행으로 독자노선을 추구, 외톨이가 되곤 했다. 공화당 정풍운동(1980), 야권분열반대 삭발단식(1987),3당 합당(1990) 반대 단식이 그가 벌인 일들.1997년에는 신한국당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불공정 게임을 이유로 중도 포기했다.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 특별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고교 때 존 에프 케네디 당시 상원의원의 퓰리처상 수상 저작 ‘용감한 의원의 투쟁사’를 읽고 감명을 받은 게 용감무쌍한 인생 역정의 단초가 됐다. yshin@seoul.co.kr
  • 판사(判事)님도 검사(檢事)님도 몽땅 가짜 였네

    판사(判事)님도 검사(檢事)님도 몽땅 가짜 였네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동 37번지. 하루 평균 2만명의 사람들이 억울한 사연, 골치 아픈 사연을 갖고 찾아드는 곳이다. 대법(大法) 고법(高法) 지법(地法), 대검(大檢) 고검(高檢) 지검(地檢)이 자리잡고 있는 이 곳은 언제나 사람과 법(法)이 씨름하는 장소. 이 서소문동 37번지엔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야바위꾼들도 많다. 가짜판사, 가짜검사에서 가짜입회 서기, 심지어는 가짜 사동까지. 걱정하는 제소인(提訴人)을 만나자 “사촌은 검사, 매부는 판사” 5월 7일 서울지검 수사과는 검사를 사칭, 소송 중에 있는 사건을 잘 처리해 준다고 속여 14만원을 받아먹은 최경섭(崔庚燮·36)을 법률사무 취급 단속법 위반과 공무원자격 사칭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최를 수사하던 수사관들은 최와 공모한 자 중에 가짜판사 박몽규(朴夢圭·43·도주) 가짜 입회서기 양(楊)모(44·도주) 심지어는 가짜 법원 사동 이(李)모양(19·D여고생)까지 있는 것을 알아내고 깜짝 놀랐다. 이들 가짜 4인조는 가짜 「이동법정」을 만들어 법을 잘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을 등쳐왔던 것. 이들의 끄나불로서 「건(件)」을 물어오는 「브로커」역에는 주범 최의 일가인 최원영(53)이 앞장섰다. 지난 2월부터 법원주변의 사건「브로커」 소탕작전을 벌여오던 수사관들도 이처럼 치밀, 완전 무결한 가짜 5인조를 잡아내기는 이번이 처음. 자기 할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땅 3천90평(싯가 6천만원 상당)을 사기 당한 장(長)모씨(48·서울영등포구 신림동 85)는 민사소송 3년에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런 어느 날 명동 어귀에서 친구 L씨를 만났다. 장씨는 L씨에게 자기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했다. 그러자 L씨와 동행중이던 최원영은 『그런 일이라면 우리 사촌이 검사고 매부가 판사니까 걱정말라』며 장씨앞으로 바싹 다가 앉았다. 최는 장씨에게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의 비용은 내가 댈 터이니 끝나거든 50만원만 내라』고 제의. 6천만원짜리 재산을 날리게 된 장씨는 구세주를 만난듯 최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다음날 장씨는 최의 소개로 검사라고 사칭하는 최경섭을 법원주변 다방에서 만났다. 최경섭은 장씨의 하소연을 점잖게 다 듣고 나더니 『그런 일 같으면 걱정 마시오. 우리 매부가 박몽규판사니 이따 저녁때 술이나 한잔 사면 잘 해결될 거요』했다. 자기 이름 석자도 제대로 쓸줄 모르는 장씨는 이 가짜검사를 연방 『영감님, 영감님』하며 굳게 믿었다. 이 날 저녁 서울 청진동에 있는 「백양관」이란 술집엔 술상이 벌어졌다. 가짜검사 최경섭이 가짜판사 박몽규를 데리고 나타나 연방 『영감님』하고 받드는가 하면 가짜 입회서기 양은 최를 보고 『검사영감』이라고 불렀다. 최일당의 「쇼」는 어찌나 완벽했던지 장씨에게 『판사영감이 사건당사자와 함께 술마시는걸 좋아 안하니 옆방에 가 있으라』고 하며 「브로커」최와 함께 옆방에서 따로 술상을 받게 했다. 장씨가 가만히 들으니 가짜 최검사가 가짜 박판사에게 자기 소송사건을 얘기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 판사 역시 『좀 어렵겠지만 최검사 하고 같이 하면 안되겠소?』하며 너털웃음. 장씨는 술값이 몇10만원이 되어도 억울하지 않을 기분이었다. 최 일당은 한수 더떴다. 술좌석이 한창 무르익고 「호스테스」들의 웃음소리가 낭자할 무렵 여고학생복을 입은 이양이 장씨방에 나타났다. 도장찍은 백지 주었더니 상대방 돈받고 소송취하 『여기 저희 박판사님 계시지요?』 장씨가 웃방에 있다고 알려주니 이양은 그 방으로 건너가 지방법원장이 밤에 댁으로 전화해 달란다고 전했다. 장씨는 이말을 듣자 『행여… 』하던 의심까지 깨끗이 없어져 버렸다. 이들은 이 날밤 「백양관」을 나오며 『기분이 그렇지 않으니 2차 해야겠다』고 해서 장씨는 또 1만원을 주었다. 이래서 이 날 술값 지출은 4만원. 이런 술 좌석이 대여섯번 계속되었다. 그 때마다 『공탁금을 걸고 시작하자』느니, 『사기로 형사소송부터 걸자』느니 장씨로선 알아 듣지도 못할 소리를 지껄였다. 마침내 가짜 최검사는 박에게 주어야겠다며 14만원을 요구. 장씨는 돈을 얻어다 최에게 주었다. 그러자 최는 백지 두장을 내어 놓으며 『이제 다 되었으니 도장만 찍으라』고했다. 장씨는 그대로 도장을 눌렀다. 며칠뒤 법원에 간 장씨는 깜짝 놀랐다. 3년째 계류중이던 자기의 민사소송이 자기 이름으로 깨끗이 취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덜컥 의심이 난 장씨가 검사, 판사명단을 뒤져보았을때 이들 일당의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가짜에 속아 돈뺏기고 소송까지 취하당했으니 꿩잃고 알 잃은 셈. 장씨에게서 백지도장을 받은 최일당은 장씨의 민사소송 상대방을 찾아가 소송취하를 조건으로 또 돈을 받아먹고 소송을 취하해 버렸던 것. 결국 장씨의 고발로 주범인 가짜검사 최는 쇠고랑을 차게 되었지만 공범인 박, 양등은 도망가고 말았다. 이들 가짜 5인조는 모두 사법서사 사무소의 사무원 출신들. 그래서 까다롭고 알기 어려운 법의 맹점을 이용, 선량하고 법을 잘 모르는 소송 당사자들을 등쳐온 것이다. 사법서사 사무소 출신 등 법률 좀 아는 것을 기화로 법원주변을 돌아다니는 이런 법원야바위꾼들중엔 전직 경찰관, 전직 변호사사무소, 사법서사사무소의 사무원, 전직 법원직원이 대부분이다. 5월 9일 구속된 김동주(金銅柱·58)는 현직 S변호사회 사무장으로서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구속된 박모씨를 석방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10만원을 받어먹고 덜컥. 그런가 하면 역시 구속된 허복만(許福滿·37·서울 성북구 중곡동 150)은 전국을 무대로 지난 4월에도 이모씨를 석방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45만원을 우려먹다가 구속. 5월 9일 구속된 윤석문(尹錫文·44·서울 용산구 보광동 산6) 역시 허와 같은 사법서사 사무원출신으로 사문서위조로 구속된 김모를 적부심에서 풀어 준다고 15만원을 받아 먹고 피해자의 고발로 잡혀 들었다. 이들은 모두 법원주변을 무대로 선량한 사람들을 등쳐 오던 법원기생충들. 결국은 법에 의해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이밖에도 억울하게 이들 기생충에게 피해를 입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법원주변에서 서성거리다가 가까이 다가와 친절을 보이며 사건내용을 묻는 사람은 1백명이면 1백명 모두 이런 유의 악덕 「브로커」란게 서울지검 수사관들의 얘기.
  • 여자에겐 관심없는 총각 배우재벌(俳優財閥)

    여자에겐 관심없는 총각 배우재벌(俳優財閥)

    여자처럼 예쁜 이런 얼굴이 그런 사나이다운 일을 할 수 있었구나-생각하자마자 「마론·브란도」의 그 단단하고 거친 얼굴이 이성훈(李星勳·29)씨의 여상(女相) 위에 겹친다. 과묵한 점에서도 그렇다. 1백50㎞로 「오토바이」를 모든 「드릴」을 비롯, 모든 「드릴」있는 일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제임즈·딘」이다. 자동차 부속품의 기름을 온통 손과 가슴에 칠해온 또하나의 「자이언트」의 주인공. 고(高)3때 부친(父親) 돌아가시자 학교다니며 차부속(車部屬)팔아 고교 3년때부터 자동차 부속품이라는 쇳덩어리를 자기의 삶처럼 어루만지고, 주무르고, 들어 올리고, 짊어진 이야기는 아닌게 아니라 선명한 영화 「신」처럼 「리얼」하다. 3남4녀중 장남이고 중앙(中央)고 3년때 아버지를 여의고 그래서 아버지가 하던 자동차 부속품상 「만흥상회」를 떠맡고 서강대(西江大) 독문(獨文)학과를 마칠 때까지 줄곧 쇳덩어리와 공부를 짊어 지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막막하더군요』 그러나 계속 막막해 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그렇죠, 고등학교때부터 기술적인 걸 배웠어요. 상품의 가치를 판별하는 법도 배웠지요. 갑자기 돌아가셨으니까 유언도 못하셨는데 평소에 저한테 죽 일러오셨읍니다. 사람은 노력해야 한다고요. 돈은 들어오면 놓치지 말아라. 조금 한눈을 팔면 다른 데로 샌다. 돈은 자기가 버는 게 아니라 남이 벌어준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어려서는 몸이 약했으므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육상 야구 축구 배구 등 운동이라면 거의 다하게 되었고, 거의 「프로」에 가까운 실력이어서 선수권을 가진 종목도 있고 그리고 합기도가 3단.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무역해 놓은 물건이 있어서 바탕은 허약한 편이 아니었어요. GMC 회사에서 「베베루비뇽」「샤도우」같은 부속을 수입해서 7~8배 남겼죠』 대학 2년때 미8군으로부터 부속품을 불하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쇠와 땀에 얽힌 싸움의 「드라머」가 보인다. 당시 미8군에서 고철을 불하한다고 하면 거기에 미친 사람들은 머리를 싸매고 몰려들었다. 불하라고 하지만 실은 중간 업자들의 농간에 의해서 버리다시피 하는 고철의 매매행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야바위 입찰경매라는 것으로 떠들썩하기도했다. 『저는 중간 상인을 피하고 미군과 직접 상대했어요.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대령이었어요. 외국인과 사귀려면 역시 머리에 좀 든게 있어야겠더군요』 미군(美軍) 고철 불하(拂下)받으려고 두달동안 설득끝에 성공 『그때 그 대령은 제가 학생으로서 뭘 해보겠다고 애쓰는데 대해 무척 감동했어요. 잘보였죠. 두달동안을 매일 쫓아 다녔읍니다. 불하 면장을 받아 가지고 어머니와 같이 동두천 미군부대로 갔어요』 불하 받은 부속은 GMC「데우」 2백대분. GMC 20대로 운반해야 할 양이었다. 10대씩 두번 날라다가 창고에 쌓았다. 『처음에 GMC 10대를 끌고 어머니와 함께 맨 앞차의 운전석에 앉아 나오는데 검문소에서 차를 세워요. 무조건 다 내려 놓으라는 거예요. 일단 내려놓고 조사하자는 거죠. 그때는 모두 먹자판이었거든요. 처음에는 몰라서 돈 많이 버렸어요. 돈 뭉치를 창 밖으로 던지고 떠나오니까 아무 말도 못하고 멀거니 서서 바라보고 있더군요』 두번째 10대를 끄고 나올때는 꾀를 냈다. 『돈 안 아까운 사람 어디 있어요? 더구나 피땀 흘려 번돈인데 말이죠. 누구나 땀 흘려 번 돈은 막 뿌리지 못해요.두번째는 앞차에 다른 사람을 태웠어요. 10대에 모두 다른 사람을 태우고 맨 앞 사람이 이렇게 말하도록 했죠. 주인이 맨 뒤에서 돈을 뿌리며 온다. 주인과 상의해라. 10대가 다 통과하고 나서 나는 다른 차를 타고 지나왔죠. 검문소에서는 허, 하고 입만 벌리고 있더군요』 창고에 쌓아놓고 상점에는 「샘플」만 몇 개 갖다놓았다. 『그때 미제 「데우」라면 수요에 따르지 못했어요. 「샘플」본 사람들이 몇 대분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을 차에 태워 창고있는 데로 갔죠. 2백대분을 1년에 다 팔았어요. 그 뒤로는 큰 몫이 없었죠. 대기업들이 치고 들어오니 당해낼 도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직접 전방 미군부대 폐차장으로 나갔죠』 벌떼처럼 달려드는 깡패 쫓으려다 수 없이 몸다쳐 중간 「브로커」를 이용했다. 어떤 물건이 있는데 값은 얼마고 어떤 줄을 타야 된다는 등의 정보를 얻는 것이다. 대학 3학년때. 『「트럭」에다 싣고 나오면 그곳 깡패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어요. 차가 떴다 하면 2백~3백명이 몰려들어 길을 막는 거예요. 기계 하나 뽑아서 떨어뜨려봤자 그 많은 사람들의 배를 채울 수는 없지 않아요? 그 사람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러는 거였으니까… 차를 세워 놓고는 사방에서 차 위로 기어오르는 거예요』 그 벌떼를 막기 위해 이씨는 쇳덩어리 위에 앉아서 왔고 기어오기 시작하면 쇠뭉치를 들고 「트럭」위 울퉁불퉁 제멋대로 실려 있는 쇳덩어리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이 쪽을 막으면 저 쪽에서 기어 오르고 걷잡을 수 없었어요. 제 다리에 상처가 많은데 그때 쇠에 부딪히고 까지고 한거죠. 다리 살이 칼로 찔러도 안 들어가요』 쇳덩이에 부딪히고 깨어지다가 쇳덩어리가 된 다리의 살. 그 때 상점에서 손수레를 끄는 영감님이 차 위에서 같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는데 상점에 도착해서 쇠를 운반하다가 머리가 깨져 입원뒤 일을 못하고 있다. 충분히 보살펴 주지못해 마음 아프단다. 학교 공부가 궁금하다. 『지금도 책상 서랍 열어보면 빙긋이 웃어요. 독일 「괴테·유니버시티」에서 온 초청장이 거기 들어 있거든요. 곽복록 선생이 거기 가 계실때 보내주신 거예요. 초청장 보고 빙긋 웃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잘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 때문이죠』 독일유학 제철기술 배우고 싶었는데 경영학과 법학을 집에서 혼자 공부하기도 했는데 한양대(漢陽大) 법과에 2년 다니기도 했다. 『독일 간다면 철의 강도를 조절하는 기술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녹인 쇠를 약품 처리해서 굽는 과정의 온도 조절이 제일 중요해요』 『일본의 「도요다」같은 회사에서 무역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나는 일본놈들 하고는 장사 안하기로 했어요. 차라리 「양키」 것을 훔쳐낼 지언정 일본놈들 하고 할 생각은 없어요. 우리나라도 미군들 폐차된 부속품 훔쳐내는거 권장 했으면 합니다. 권장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일본놈들은 「오끼나와」의 미군부대에서 훔쳐내는 거 권장할 뿐만 아니라 「에스코트」까지 해준대요. 훔쳐낸 물건 쓰면서 자기네 것은 외국에 수출합니다. 일본놈들 돈 벌기위한 계략은 치사할 정도예요. 「덤프·트럭」만 해도 67연도 형 부속은 68년에 안만듭니다. 1년 지나면 부속품 형을 바꿔버려요. 그러니까 67년에 산 차는 1년만에 못쓰게 되는 거죠. 폐차 시키지 않으면 새로운 형의 부속을 다시 사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부속을 계속 팔아먹어요. 저는 그게 메스꺼워서 형이 바뀌는데 따라 내가 개조해요. 그래서 새「트럭」이 나와도 쓸 수 있도록 합니다. 구형 부속으로 못쓰고 버릴 바에야 개조해서 쓰도록 하는 것이 「달러」를 버는 길입니다. 요새 거리에 「기모노」차림의 일본인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띄는데, 그 사람들 보면 침뱉어 주고 싶을 정도로 미워요』 현재 금강상회는 신진6「톤」반, 쌍(雙)「덤프」5「톤」반, 「이스트·덤프」등의 「덤프·트럭」부속품을 주로 취급한다. 연간 유통자금은 1억원. 무교동에 미도 「빌딩」(6층)도 가지고 있다. 공장도 세울 계획. 새영화에서 문희(文姬)와 주연(主演) 밑바닥부터 배워 제작(製作)도 최근에는 『그여자에게 옷을 입혀라』라는 영화에 문희와 함께 주연으로 등장, 촬영을 끝마쳤는데 5월15일께 개봉할 예정이다. 『「액션」물을 하고 싶어요. 영화의 밑바닥부터 배워서 차차 제작에도 손을 대고 싶습니다』 이번 『그 여자…』에서도 「오토바이」를 십분 활용했는데, 이씨는 「오토바이」선수권을 가지고 있고 요즈음에도 김포가도를 1백50「킬로」로 달리는 「엑스퍼트」. 앞으로는 「스카이·다이빙」도 하고 싶은데 그런 「드릴」있는 것과는 전혀 먼 낚시도 한다. 오늘이 있기까지 어머니의 힘이 컸다고 강조하는 이성훈씨는 「가톨릭」신자. 일이 바쁘다 보니까 지금은 성당에 못나가고 있지만. 총각인데,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단다. 『정말 관심이 없어요, 정말』 불고기 15인분을 먹는 대식가. [선데이서울 70년 5월 3일호 제3권 18호 통권 제 83호]
  • [이경형칼럼] 짝짓기 잘해 정권 잡는다?

    [이경형칼럼] 짝짓기 잘해 정권 잡는다?

    내년 대통령선거가 363일 앞으로 다가왔다. 새해는 현행 권력 구조인 ‘87헌법’체제 출범 20년을 맞는 해로, 그동안 시행한 4차례의 대선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대통령 선거 문화를 형성해야 할 시기다. 1987년의 대선은 ‘1노3김’경쟁이었다. 노태우(TK), 김영삼(PK), 김대중(호남), 김종필(충청)의 4자 경쟁은 철저한 인적·지역적 분할 구도였다. 노태우 후보는 3김을 분할하는 전략으로 당선되었다.1992년은 김영삼(YS)의 김대중(DJ)호남 포위 전략이 주효했다. 이른바 3당 합당이라는 야합 짝짓기의 성공이었다. 1997년은 DJ+JP(김종필)연합 소위 호남·충청의 DJP 짝짓기의 결과로 ‘국민의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반독재 투쟁·진보 노선의 DJ와 개발 독재의 주체·보수 노선의 JP가 권력분점이라는 밀실 협상으로 짝짓기를 하여 정권을 잡았다. 지금의 노무현 정부도 노선·색깔이 서로 다른 노무현과 정몽준이 일단 짝짓기로 연대한 뒤, 여론조사 주사위로 단일화에 성공, 참여정부를 출범시킬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대선 경쟁과 정권 쟁취 과정은 한마디로 정치 공학적 게임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대권 후보들이 내세운 국가 운영 철학이나 지도 이념 등은 선거 벽보용에 그쳤다. 지역 분할 전략 혹은 절묘한 짝짓기 등 정치 술수와 고도의 선거 계략을 구사함으로써 정권을 잡았다. 겉으로는 거창한 국가 비전과 정책 노선과 공약을 내걸고 국민들에게 표를 호소하지만, 막판에 가서는 정강이고 정책이고 관계없이 오로지 표 계산에 따른 짝짓기를 통해 대권을 차지하는 것이다. 야바위 같은 짝짓기를 무슨 ‘정책 연합’으로 포장하여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지만 실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앞으로 각 당마다 무수한 ‘잠룡’들이 수면 위로 오르면서 과거 한나라당의 ‘9룡 경선’을 방불케 하는 이벤트들이 속출할 것이다. 이들 주자들 가운데는 향후 당내 혹은 정권 내 지분을 사전에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선에 나서거나 대권에 도전하는 이들도 적잖이 있을 것이다. 기존 정당의 경선자들은 지난 4년간 소속 정당이 뭘 잘못했는지를 솔직히 밝히는 자기 성찰적 고백부터 하고 출사표를 던져야 한다. 신장 개업하는 정당이라면 콘텐츠가 기성 정당과 왜 달라야 하고, 어떻게 다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과연 언제까지 ‘정치9단’들과 그 아류들이 벌이는 도박판 같은 선거 문화를 지속해야 하나. 이벤트성 정치 집회와 바람몰이식 세(勢)과시, 상대방에 대한 네커티브 선전으로 유권자들을 현혹시키는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은 적어도 2010년대 한국의 국가발전 비전과 정책 노선을 제시하고 왜 그렇게 가야 하는지를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정정당당하고 명분 있는 경쟁을 벌여야 한다. 유권자들도 각 후보들의 국가운영 철학과 지도자로서 자질을 꼼꼼히 살펴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찍고 나서 손가락을 아무리 원망한들, 대통령 임기 5년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 나라 정권의 수준은 국민의 선거 문화 수준과 높이를 같이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비록 승자가 권력의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게임 같은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품격있는 경쟁, 논리가 있는 경쟁으로 이뤄져야 한다. 차기 정권의 향배가 천박한 득표 전술과 명분 없는 합종연횡으로 결정된다면 21세기 한국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본사 고문 khlee@seoul.co.kr
  • [길섶에서] 수표교 풍경/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몇해 전 김성환 화백이 작품전을 가졌다. 연재만화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했던 그다. 청계천변 풍경이 주제였다.50·60년대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던 판자촌, 빨래터 아낙들, 드럼통에서 막대로 염색바지를 건져내는 노인, 야바위꾼에 홀린 구경꾼들의 무심한 표정. 복개 이전 천변풍경과 우리 형제, 부모의 삶의 속살을 그의 애잔한 기억으로 살려냈다. 담백한 펜 스케치 위의 오일 파스텔이 따뜻함을 더했다. 며칠 전 출근하다 ‘다시 탄생한’ 청계천에서 각설이패를 만났다. 수표교 입구에서다. 거지왕 김춘삼의 노제(路祭)패거리였다. 유족과 김씨를 따르던 사람들인 모양이다.“낯설은 타향땅에 그날 밤 그 처녀가, 나를 나를 못잊게 하네….” 거지 차림이 고인의 애창곡이었다며 ‘울어라 기타줄’을 구슬프게 불렀다. 유랑걸식한 ‘자유인’에게 붙박이 거처가 있었으랴만, 수표교는 그래도 포근한 아지트였다고 한다. 추억 속의 그가 떠나는 길에 구슬픈 비가 내렸다.“기타 줄에 실은 사랑, 뜨네기 사랑…” 어찌 사랑만 뜨네기랴. 뜨네기 삶을 마감한 고인의 잔잔했던 영정이 노랫말과 함께 머릿속을 맴돈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자궁속 코끼리, 3차원 초음파로 ‘찰칵’

    자궁속 코끼리, 3차원 초음파로 ‘찰칵’

    행복한 표정으로 잠에 취해 있는 저희 모습 뒤의 벨벳 커튼 같은 것 보이세요?뭐라고 생각하세요? 여긴 다름 아닌 저희 엄마 자궁 속이에요. 깜짝 놀라셨죠? 이 속을 이처럼 선명하게 찍은 사진을 보신 적, 아마 없을걸요. 저희들 소개부터 해드릴까요. 야바르 아바스 PD와 데이비드 발로 박사팀이 이끄는 영국의 파이어니어 프로덕션 팀이 2년간 세계 곳곳의 동물원과 보호시설들을 돌며 촬영한 코끼리와 돌고래, 골든 레트리버 태아랍니다. 각각 세상에 나오기 몇주 전, 자궁에서 52일째,29주째 모습이고요. 저희들을 찍기 위해 3차원 초음파 스캔, 초미니 카메라들이 동원됐고 저희 엄마들은 얌전히 앉아 있는 법을 훈련받느라 무척 고생하셨다고 해요. 코끼리 형을 찍을 때는 엄마 직장(直腸)을 통해 카메라를 들여 넣느라 엄청 고생했고요. 이런 노력 끝에 촬영팀은 코끼리 형이 자궁 속에서 16주만 되면 의젓한 코끼리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14개월 뒤 길다란 귀가 발달하기 시작한다는 점을 알게 됐어요. 막내 골든 레트리버는 자궁 안에서도 혀를 쑥 내밀고 있다는 것도요. 눈치채셨겠지만 저희 셋의 서열은 덩치 순인데 가운데인 저, 돌고래는 8주만 되면 자궁에서 헤엄친다는 사실을 촬영팀에게 알려드렸지요. 이렇게 헤엄을 자궁에서 배웠기 때문에 태어나기 몇주 전에야 물갈퀴와 꼬리, 물뿜는 구멍 등이 생기는데도 세상에 나오자마자 유연한 헤엄 솜씨를 뽐내는 거지요. 또 24일만 지나면 발처럼 생긴 돌기가 나왔다가 2주 뒤 감쪽 같이 사라진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요. 더 놀라운 건,11주 뒤 지느러미가 마치 사람 손과 같은 뼈 구조를 갖게 된다는 거지요. 우리네 조상이 지상에서 머물렀던 건 아닐까 과학자들은 보고 있대요. 저희의 자궁속 생활 모습을 더 구경하고 싶은 분은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www.dailymail.co.uk)을 들러보세요. 그래도 성에 안 차면 다음달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과 내년 영국 BBC 채널4에서 방영하는 2시간 다큐를 주시하시면 되고요. 그럼 그때까지 안녕!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앙코르+경주 21일 열린다

    ‘앙코르-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06’이 캄보디아 시엠립의 앙코르와트 유적지 일대에서 21일 막이 오른다. 내년 1월9일까지 50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가는 앙코르-경주엑스포는 한·캄보디아와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경북도와 캄보디아 정부가 공동 주최한다. 개막식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훈센 캄보디아 총리를 비롯,3000여명이 참석한다. 김관용 경북지사의 개막선언과 양국 정상의 축하리본 커팅, 노 대통령 축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캄보디아는 코끼리 퍼레이드로 손님에게 환영인사를 하고 공연단이 동양의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이어 한국공연단은 전통 춤사위로 엑스포의 개막을 고하게 된다. 개막식을 하루 앞둔 20일에는 특설무대에서 엑스포 개막을 축하하는 전야제가 열렸다.1500여명의 관람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과 캄보디아 예술단의 합동 공연이 펼쳐졌다. 소우피린 시엠립주지사의 축사, 이필동 한국측 단장과 통큰 캄보디아측 단장의 인사가 이어졌다. 이번 엑스포에는 한국과 캄보디아를 비롯,28개국이 참가해 다양한 전통과 문화의 향연을 펼친다. 3D영상관에서는 신라의 설화를 소재로 한 3D영상 ‘천마의 꿈-화랑영웅 기파랑전’과 캄보디아 크메르제국의 자야바르만 7세가 펼치는 영웅적인 삶을 다룬 ‘위대한 황제’가 행사기간에 매일 5회씩 교차 상영된다. 또 한국의 사계, 한글, 신라 황금문화, 한복 등을 선보이는 ‘한국 이미지전’과 크메르 제국의 유물, 전통 민속품을 전시하는 ‘크메르 문화전’ 등 볼거리가 풍부한 전시행사도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대공연장에서는 세계공연예술축제가 하루 4회씩 열리며 소공연장에서는 한국과 캄보디아 특별공연이 매일 펼쳐진다. 이밖에도 앙코르와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앙드레김 패션쇼와 한국-캄보디아 전통의상쇼 등이 마련돼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한지붕 밑에 살고 있는’1男 2女’의 종착역은

    ‘한 지붕 아래 1남(男)2녀(女)가 함께 오순도순 동거했다.그러나 사내는 매일 억병으로 취하거나 야바위판을 기웃거리는 그런 양아치와 같은 부류였다.두 여자는 힘을 합해 그 사내를 열명길로 보내려고 했으나 실패하는 바람에 살인 미수에 그쳤다.’ 중국 대륙에 두 아내가 짜고 합심해 노름하고 술에 취해 괴롭히기만 하는 백수건달 남편을 살해했으나 요행히 살아남는 바람에 미수에 그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중국 동부 장쑤(江蘇)성 창저우(常州) 진탄(金壇)시 진청(金城)진에 살고 있는 20대 중반의 남성은 최근 큰 아내와 작은 아내가 각각 칼로 찌르고 몽둥이를 때리는 것을 그대로 맞아 목숨을 잃어버릴 뻔했다고 광주일보(廣州日報) 인터넷 신문인 대양(大洋)망이 9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두 아내에게 살해당할 뻔한 장(蔣)씨는 올해 25살로 놈팡이와 같은 생활을 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백수건달이었다.하지만 여자 낚는 솜씨만은 대단해 한 지붕 아래 두여자와 함께 동거하는 ‘출중한’ 실력을 가졌다. ‘1남2녀’의 황당한 동거생활을 해온 이들 세 사람이 만나 악연이 시작된 것은 2003년 8월,남부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시 한 완구공장에서 같이 일을 하면서부터. 그당시 ‘큰 아내’로 통하는 장메이(張美)씨는 17살로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 구이저우(貴州)성을 떠나 이곳에 와 돈을 벌고 있었다.‘작은 아내’로 불린 저우훙(周紅)씨는 16살로 장씨와 같은 구이저우성 출신이다.이들은 고향을 떠나 우연히 기찻간에서 만나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었다. 같은 직장에서 생활하던 이들은 장씨와 그가 먼저 사귀었다.서로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곧바로 동거생활에 들어갔다.얼마되지 않아 장씨는 아이를 가졌다.저우씨는 당시 장씨에게 ‘큰 언니’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장씨가 임신을 하자 그는 저우씨에게 눈을 돌렸다.그는 저우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 공세를 폈다.결국 저우씨도 선물 공세에 무너져 동거에 들어갔다.두 지붕 한 남자-두 여자의 동거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조금 지나 장씨는 아이를 낳았다.딸이었다.장씨는 기분이 내키지 않았지만 저우씨를 친동생처럼 생각해 그와 저우씨의 동거를 눈감아주기로 했다.하지만 장씨는 참을 수가 없었다.저우씨가 그의 사랑을 빼앗아버릴 것같았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한 지붕 아래에 한 남자-두 여자가 동거하는 것.장씨의 제의에 그와 저우씨도 동의를 해 세상에서 보기 드문 ‘한 지붕 아래 한 남자-두 여자’가 동거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저우씨도 아이를 낳았다.아들이었다.아이를 낳은 순서에 따라 장씨는 ‘큰 아내’,저우씨는 ‘작은 아내’로 불리게 된 소종래이다. 이들은 동거를 하면서 각자 자신의 역할을 분담했다.‘큰 아내’ 장씨는 집안에서 두 아이를 맡아 기르고,저우씨는 의류공장에 취업해 생활비를 벌었다. 그런데 장씨는 놈팡이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마작을 하거나 억병으로 취해 주정을 하거나,야바위판에 끼어들어 돈을 잃어 두 여자를 괴롭혔다. 두 여자는 그가 없을 때마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하고 통곡을 하곤 했다.그를 버리고 집을 떠나려고 여러번 결심을 했지만,재롱을 떠는 두 아이의 모습이 눈에 밟혀 떠날래야 떠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지난 1월 5일 저우씨가 속옷을 사와 장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잔뜩 술에 취한 그가 들어오자마자 저우씨의 귀싸대기를 십수차례나 때렸다.그녀는 그자리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이때 이들 두 여자는 그를 죽이려고 결심했다. 두 여자는 차에 독을 탄 뒤 먹이려고 생각했으나,겁이 많아 그리 쉽지 않았다.그래서 비교적 쉬운 방법으로 생각되는 칼과 몽둥이로 해결하려고 기회를 엿봤다.이를 위해 먼저 두 아이를 구이저우 고향으로 보냈다.만일 실패하면 장씨가 모두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가고 저우씨는 남아 두 아이를 맡아 키우기로 하고서…. 1월 11일,그가 술에 곤드레만드레가 돼서 집으로 돌아왔다.이때를 놓치지 않고 장씨는 몽둥이로 때리고 저우씨는 칼로 찔렀다.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인지 중상을 입히는데 그쳤다. 술에서 깨어난 그는 곧바로 도망을 가 죽음은 모면했다.두 여자는 공안에 붙잡혔다.지난 4월말 장씨는 고의살인죄(미수)로 5년 6개월,저우씨는 5년형을 선고받고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부적절한 관계는 불행만 자초할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준다. 온라인뉴스부
  • 요절한 설치작가 박이소 유작전

    요절한 설치작가 박이소 유작전

    요절한 예술가들은 공교롭게도 공통점이 적지 않다. 삶의 부조리함이나 이면성에 대한 천착, 예술활동과 구분이 안되는 일상, 파격성 등등. 작품을 통해 삶에 대해 끊없는 질문을 던졌던 설치작가 박이소(1957∼2004)도 마찬가지다. 대중들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현대 한국 작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박이소의 유작전 ‘탈속(脫俗)의 코미디’전이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서 열린다.10일부터 5월14일까지. 박이소는 평면과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 현대미술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다. 뉴욕 체류시 브루클린 그린포인트 지역에 비영리적 대안공간인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를 창립, 미국내 비주류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가 하면, 스스로는 한국과 미국 사이의 문화적 경계의 현실을 직시하며 품었던 정체성 고민을 인간적 따스함과 유머속에 녹여내는 탁월함을 보여준다. 1995년 귀국후엔 이같은 정체성 이슈보다는 인간의 무력감, 불확실성 등에 더 관심을 두면서 일종의 미술의 ‘무용성’ 자체를 중심적인 주제로 삼는 작업들을 한다. 이번 전시는 미국 뉴욕에서 한국으로 이어졌던 박이소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첫번째 회고전이다. 전시를 기획한 객원 큐레이터 이영철 계원조형예술대학 교수는 “박이소의 20년 예술행위는 세상의 상대적 가치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내재와 초월을 동시에 추구했다.”며 “삶의 부조리함과 이면성을 작가의 폭넓은 놀이와 유머각감으로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관람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예술인생이 마치 퍼포먼스로 재현돼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전시장 입구 광장엔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를 떠도는, 항해하지 못하는 콘크리트 배, 그리고 소통의 불가능성을 빗대어 제작한 작품 ‘정직성’(Honesty)이 놓여 있다. 고개를 들면 전시장A로 들어가는 문 위로 밥솥을 목에 매달아 질질 끌면서 브루클린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박이소의 초기 퍼포먼스 이미지가 걸려 있다. 전시공간A에는 국가관 간의 정체성 경쟁과 미술계 권력 경쟁의 허망함을 고발했던 작품 ‘베니스비엔날레’(1994),‘마이너 인저리’시절의 기록들,21권에 이르는 작가 노트와 그가 작품을 위해 제작했던 설계도면들, 작가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초기 회화들이 걸려 있다. 전시공간B에 설치된 작품 ‘팔라야바다’는 박이소가 작품계획서 형태로 남기고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친구와 제자들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비디오카메라를 낙하산에 매달아 공중에서 투하한 뒤, 카메라가 떨어지면서 찍은 이미지를 타원형 콜로세움 내부에 투사하여 보게 한 작품이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영상에서 작가는 외부세계와 연결된 틈, 우주로 통하는 작은 우물을 보려고 했다. 22일 오후 2시엔 삼성생명 국제회의실에서 박이소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심포지엄도 열린다. 관람료 일반 3000원, 초중고생 2000원.(02)2259-7781.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儒林(529)-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9)

    儒林(529)-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9)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9) 따라서 율곡의 시에는 노승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내 말에 노승은 긍정하지 않은 채 한참을 말이 없었다.” 침묵을 지키던 노승이 다시 화제를 바꾸어 율곡에게 묻는다.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다.’란 말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노승의 질문은 ‘반야바라밀다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에서 인용하였던 말. 부처가 제자인 사리불에게 ‘사리불이여, 물질(色)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니,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다.’라고 설법한 내용에서 유래된 유명한 구절이었다. 즉 불가에서는 ‘유형의 만물을 색이라 칭하고, 만물은 모두 인연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본래 실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공과 다름이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이었던 것이다. 이에 율곡은 대답한다. “이것 역시 앞의 경계일 뿐입니다.” 율곡의 대답은 색이니, 공이니 따지는 것도 앞에서 말하였던 실리(實利)가 아니라 공허한 말장난, 즉 경계를 따지는 일이라는 공격이었다. 율곡의 이 말을 들은 노승은 다만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을 본 순간 젊은 율곡은 다시 투지를 불러일으켜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스님께 내가 묻겠습니다.‘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닿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란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색입니까, 공입니까.” 율곡의 말은 시경에 나오는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닿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鳶飛戾天 魚躍于淵)’란 말에서 인용한 것. 이 시를 두고 공자의 제자인 자사(子思)는 중용에서 ‘솔개는 하늘을 날고 있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놀고 있지만 하늘과 연못의 상하는 결국 하나로 이것을 구분하는 것은 다만 말에 지나지 않는다.(言其上下察也)’고 설명하였던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노승은 다시 묻는다.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것이 진여(眞如)의 본체라오. 이 오묘한 진리를 어찌 유교의 시경에 비교할 수 있겠소이까.” 노승이 말하였던 진여(眞如). 불교의 진실여상(眞實如常)에서 나온 말로 곧 우주만유(宇宙萬有)의 실체로서 평등하고 무차별한 절대 불교진리를 감히 유가의 시경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노승의 준엄한 질책이었던 것이다. 즉 색은 형상과 색채를 가진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현상계를 가리키고, 공은 일반적으로 현상계에서 서로 관계하며 변화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불변의 어떤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현상계란 모두 색과 공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참된 진리인 진여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상계를 초월해 있다. 그것은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어서 말이나 글로 경계 지어 표현할 수 없는 진여(眞如), 그 자체인 것이다. 그 진여를 어찌 유교로서 감히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노승이 갈긴 한 방망이였던 것이다.
  • [데스크시각] 두 얼굴의 사회… 가면을 벗자/ 백문일 경제부 차장

    동전만큼 쓰임새가 많은 것도 없다. 거스름돈이나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꺼내는 코인 같은 화폐적 기능 이외에 축구 등에서 동전을 던져 순서를 정하는 심판 역할까지 한다. 초등학교에선 원을 그리는 수업자재로 활용되고, 마술쇼에선 눈 앞에서 사라졌다 나타나는 마술도구로 변신한다. 뒤엎은 그릇 속에 동전을 넣고 빙빙 돌리는 야바위꾼에겐 밥벌이의 수단이고 철없는 학생들에겐 동무들의 돈을 딸 수 있는 이른바 ‘짤짤이’의 기구다. 그러나 정치판이나 외교가로 건너오면 ‘동전의 양면’이라는 문학적 표현으로 바뀐다. 고상한 것 같지만 사실은 변명을 위한 들러리다. 얼마전 국내 첫 애니메이션 영화 ‘로보트 태권V’의 필름이 복원됐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 영화의 원조는 일본이 만든, 기운센 천하장사 ‘마징가Z’이다. 여기에 아수라 백작이 나온다. 당시에는 ‘남녀동체(男女同體)’의 악인이었으나 최근에는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의 대립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인물로 재평가되고 있다. 양면성을 따지자면 우리 사회는 1등급이다. 아수라 백작이나 두얼굴의 사나이 ‘헐크’를 찾을 필요가 없다. 대학을 졸업한 큰딸이 삼성에 들어갔다고 기뻐하는 부모를 최근에 만났다. 의사나 교사보다 장래가 훨씬 밝은 게 아니냐고 했다.5∼6년전 재벌개혁이 도마위에 올랐을 때 우리나라를 망친 게 재벌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부모였다. 내 자식이 ‘1등기업’에 들어가면 재벌타파는 뒷전인 게 어디 이들 부부뿐이겠는가. 기러기 아빠들의 상당수는 ‘386세대’다. 이들은 대학시절 민주화 열풍에서 ‘반미전선’의 핵심에 섰다. 그리고 참여정부에선 다시 반미·친미 논쟁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미국행 비행기에 어린 자녀들을 태웠다.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이들을 ‘변절자’라며 손가락질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자녀유학을 마다하겠는가. 외국의 인종차별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흑백 갈등이나 아시아인 차별대우를 반미 감정의 연결고리로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 보자. 구릿빛 피부에 어눌한 한국말을 쓰는 동남아인들이 어디 한둘인가. 목욕탕에서 이들을 만나면 아예 탕속에 발을 담그지 않는 게 한국인이다. 미국 언론이 황인종을 빗대 ‘옐로 도그(dog)’로 부르면 발끈하면서도 동남아인들을 ‘종’처럼 부리는 데에는 눈을 딱 감는 게 과연 누구인가. 한국인 10명 중 9명은 겉으로 부동산 투기에 반대한다. 그러면서 땅 많고 집 많은 사람들을 부정한 사람으로 몬다. 그들이 마치 자기 집을 빼앗고 땅을 가로챈 듯 배아파한다. 하지만 여윳돈이 생겨서 돈을 불려야 한다면 어디를 먼저 두드리게 될까. 내가 하는 것은 ‘투자’이고 남이 하면 ‘투기’라는 생각은 지워야 한다. 강남부자처럼 될 수 없는 현실과 제도를 탓해야지 이들이 흘린 땀과 노력마저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골프는 매너 스포츠라고 한다. 하지만 앞서 치는 팀이 늦을 때에는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씩 한다. 특히 여성 골퍼일 경우에는 “집에서 밥이나 지을 것이지.”하고 곱씹는다. 그린을 조금만 벗어났다 싶으면 냅다 공을 때린다. 그러다가도 뒤에서 오는 팀이 공을 조금만 빨리 치면 눈을 부라리며 욕설을 내뱉는다. 머리가 둘 달린 ‘야누스’는 결코 신화속의 주인공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가면’을 쓰고 매일 나타난다. 참여정부는 양극화의 문제로 본다. 그러나 돈의 많고 적음에서 빚어진 게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빈부의 격차가 날 수밖에 없으며 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자본주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양극화의 해소는 필요하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다. 최상위 10%의 소득이 최하위 10%의 몇배인지를 따지기 이전에 삶을 버거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연간 소득이 500만원이 안 되는 농가도 숱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코 ‘활빈당’이 아니다. 선진사회로 가는 길은 소득증대나 부(富)의 재분배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가치판단의 이중적인 잣대를 없애는 게 우선이다. 가면을 쓰고 있는 한 그늘진 곳을 영원히 치유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양면성을 숨긴 ‘헐크’보다 솔직히 드러낸 ‘아수라 백작’에게 점수를 주고 싶다. 백문일 경제부 차장 mip@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2)-2세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2)-2세경영

    효성가(家)의 2세 경영이 닻을 올린 지 30여년. 선친인 만우 조홍제 회장의 ‘유훈 경영’ 방침대로 효성은 내실과 외양을 조화시키며 튼튼한 중견 그룹으로 커왔다. 대신 2세들의 분가와 맞물리면서 상대적으로 축소된 사세(社勢)는 아직 옛 영광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3세들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면서 효성도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안정 지향의 경영 색깔에서 도전과 진취가 ‘경영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 효성은 올해를 ‘뉴스타트의 해’로 삼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 선두주자에 효성의 3세 경영인들이 포진해 있으며, 이들의 성공적인 착근이 ‘신(新) 효성’의 성공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2세 분가 효성가(家)의 2세 분가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만우 회장이 3형제(조석래-양래-욱래)에게 일찍이 효성의 주력 기업을 하나씩 떠맡기면서 독립 경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만우 회장은 “3형제가 장성했고, 기업의 경영책임자로서 제몫을 다하는 만큼 앞으로 지켜볼 따름”이라며 1978년 사실상 기업경영에서 손을 뗐다. 장남인 조석래(70) 회장은 70년대부터 주력 기업인 효성물산과 동양나이론,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4개사 모두 ㈜효성으로 통합) 등을 맡았다. 차남인 조양래(68) 회장은 자동차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한국타이어를 물려받았다. 성격이 활달한 3남 조욱래(56)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대전피혁 사장에 올랐다.3형제는 이후 분리 경영을 해오다가 1980년부터 주거래 은행까지 달리할 정도로 철저한 독립경영을 하고 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83년 그룹을 대대적으로 손질해 ‘제2의 창업’을 선언, 화섬과 중전기, 화학, 건설, 정보통신 등으로 효성을 키워오고 있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은 한국타이어와 한국전지, 한타M&B 등을 통해 타이어사업의 수직 계열화에 성공했다. 반면 3남 조욱래 동성개발 회장은 외환위기 시절 효성기계 부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권토중래를 모색 중이다. ●만우 회장과 4자성어 2세 경영의 특징은 선친의 ‘유훈 경영’과 밀접하다. 만우 회장이 197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다. 그는 세 아들에게 ‘항상 가까이 두고 뜻을 새기라.’는 차원에서 각각 휘호를 하나씩 줬다. 장남인 효성 조 회장에겐 ‘덕을 숭상하면 사업이 번창한다’라는 뜻에서 ‘숭덕광업(崇德廣業)’이란 글귀를 남겼다. 차남 한국타이어 조 회장은 ‘쉬지 말고 힘을 길러라’라는 뜻에서 ‘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글귀를 받았다. 막내인 동성개발 조 회장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4자성어를 받았다. 자식들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우 회장의 일종의 ‘자식 사랑’인 셈이었다. 2세들도 선친의 뜻에 따라 지금껏 경영을 해오고 있다. 효성 조 회장은 화학과 정보통신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갔고, 특히 타이어코드와 스판덱스 등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타이어 조 회장은 문어발식 기업 확장 대신에 타이어 ‘한우물 경영’에 충실했다. ●학자풍의 조석래 회장 조 회장은 학구적이며 논리적이다. 유행에 편승하거나 의욕만을 앞세운 경영보다 윤리적이고, 원칙적인 경영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가끔은 융통성이 없다거나 보수적이라는 평도 나온다. 조 회장은 조씨가(家)의 학자풍 스타일 면에서 선친을 가장 많이 닮았다. 만우 회장과 조 회장 모두 젊은 시절엔 기업인보다 대학 교수에 관심이 더 많았다. 조 회장의 이런 학자적 소양은 경영에 발을 내디딘 초기부터 많은 빛을 봤다.74년 초 오일쇼크의 여파로 나일론 원자재가 품귀 현상을 빚었을 때 슬기롭게 넘긴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 회장은 나일론의 원자재인 ‘카프로락탐’ 구입난에 직면하자,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완성품인 카프로락탐의 직접 구입보다 매입이 더 쉬운 기초 원자재를 구입해 카프로락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조 회장의 광범위한 정보 획득과 주도 면밀한 연구가 없었다면 기대할 수 없었던 착상이었다. 조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다.56세의 늦은 나이에 창업해 홀로 고군분투를 하던 선친의 부름을 받고,1966년 효성 경영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후 나일론 원사사업을 세계 4위까지 육성시켰으며,1975년엔 폴리에스터 공장을 준공해 효성을 명실상부한 화섬업계의 리더로 이끌었다. 또 한·미 재계회의와 한·일 경제인 회의, 태평양 경제협의회(PBEC) 등의 리더로서 국제 협력 증진에 이바지하고 있다. ●‘한길경영’과 ‘권토중래’ 조양래(67) 한국타이어 회장은 나서기를 꺼려하고, 검소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조 회장은 5년 전에 산 국산 브랜드의 구두를 여태껏 신고 다닌다. 아직 쓸 만하다는 것이다. 조 회장이 하루는 직원들과 식당에 밥먹으러 갔는데 너무 구두가 낡아서, 직원들이 회장 구두를 찾지 못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언론에 얼굴 내밀기를 싫어하는 조 회장은 한국타이어 사장 시절에 딱 한 번 인터뷰에 응했다. 당시 사진 기자가 인터뷰용 사진을 여러 장 찍는 것을 본 조 회장은 “무슨 전문가가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는가. 전문가이면 사진을 한 번만 찍으면 되는 것을. 필름만 그저 아깝게….”했다고 한다. 조 회장은 해외 출장에 수행원을 두지 않고 다닌다. 또 숙소도 일반 출장자들이 주로 머무르는 2급호텔에 투숙한다. 그의 이런 검소함과 치밀함은 한국타이어 경영에서도 잘 드러난다. 선친에게 물려받은 이후 조 회장은 줄곧 타이어사업 하나만 매진해 세계 9대 타이어 메이커로 성장시켰다. 조 회장은 1988년 “경영은 전문가가 해야 한다.”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조 회장은 현재 한국타이어 복지재단 회장직을 맡아 ‘미신고 복지시설’ 지원 등에 앞장서고 있다. 3남인 조욱래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로 대전피혁 사장에 취임,10년만에 대성과 효성알미늄, 효성금속, 효성기계, 동성, 동성개발 등 총 8개 계열사로 늘리는 경영 수완을 보였다. 특히 일본 스즈키사와 제휴해 오토바이 생산업체인 효성기계를 설립, 한때 대림산업과 함께 국내 오토바이시장을 양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 회장의 책임·내실 경영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한파는 효성기계를 어렵게 했다. ●효성가 3세 효성가 3세(조현준-현문-현상)들은 경영수업의 첫발을 모두 외국 회사에서 내디뎠다. 장남인 조 부사장은 모건스탠리를 거쳐 97년 부친인 조 회장의 부름을 받고,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효성에 입사했다. 차남 조 전무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99년 효성 경영전략 2팀장으로 합류했다. 막내 조 상무는 세계적 경영컨설팅사인 베인&컴퍼니와 일본의 세계적인 통신사인 NTT도코모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효성에 입사했다. 장남인 조 부사장은 미국의 명문고인 세인트 폴 고교를 나와 예일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땄다. 그는 영어와 일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도 자유롭게 구사한다. 형제 가운데 가장 먼저 ‘효성맨’이 된 조 부사장은 효성의 독특한 사업구조인 퍼포먼스유닛(PU) 경영시스템을 도입했다. 또 섬유·산업자재·무역·정보통신 등 주요 사업군을 ㈜효성의 우산 아래로 모으면서 효성T&C(옛 동양나이론)·효성물산·효성생활산업·효성중공업을 합병시키는 등 굵직한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차남인 조 전무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했다. 고교 시절 조 전무의 별명은 ‘바야바’. 큰 키에 모범생인 그를 친구들은 이렇게 불렀다. 그는 98년 하버드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99년 효성으로 출근하기 전까지 미국 뉴욕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조 전무는 국제 변호사로서 큰 역할을 해냈다. 효성 도메인(www.hyosung.com)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되찾아온 것.99년 닷컴 도메인을 선점한 사이버 ‘스쿼터(도메인 매점매석 행위자)’가 수억원을 요구해 왔지만, 미국 도메인등록협회와 미 법원에 제소,‘효성닷컴’을 찾아왔다. 미국 브라운대 출신인 3남인 조현상 상무는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오랜 직장 경험을 쌓았다. 그는 사내에서 손꼽히는 일본통으로 알려져 있다. 조 상무는 현재 그룹의 핵심 현안인 성장엔진 발굴을 위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으며, 그룹 장기전략 수립과 기업이미지 개선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3세들의 역할이 날로 확대되고 있지만 3세들의 경영 승계 시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조 회장이 아직 정정한 데다 3세들이 배울 것이 많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국타이어의 3세 경영도 관심이 쏠린다. 조양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업무 권한을 팀장들에게 대폭 위임, 역량을 발휘하게 하는 덕장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차남인 조현범 상무는 치밀한 분석력과 폭넓은 사고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스타일.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이다. ●3세 혼맥 조씨가(家)의 3세 혼맥도 국내 명망가와 혈연으로 잘 엮여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두환 전 대통령가(家)와 ‘사돈의 사돈’이라는 것과 이명박 서울시장과 사돈이라는 점이다. 또 권노갑 전 의원과도 ‘사돈의 사돈’이다.2세 혼맥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家)와 통혼으로 이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조씨가는 국내 내로라하는 정치 가문과 적지 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만우 회장이 일부러 정치권을 기피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이는 매우 뜻밖의 사실이다. 조석래 회장과 송광자(61) 여사는 슬하에 3남을 뒀다. 장남인 조현준(37) 효성 부사장은 2001년 11월 한국제분 이희상 회장의 3녀인 미경(29)씨와 결혼했다. 양가가 서로 안면이 있는 데다 미경씨의 형부가 적극 나서면서 서로 인연을 맺게 됐다. 두 사람은 연애 시절 테니스와 연주회 등을 관람하면서 사랑을 키웠다고 한다. 결혼식은 조 부사장의 모교인 세인트 폴 고교에서 했다. 현재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조 부사장의 처가인 이희상가(家)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사돈간이다. 한국제분 이 회장(60)은 부인 정영화(59)씨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인 윤혜(34)씨가 전 전 대통령의 3남인 재만씨와 혼례를 치렀다. 조 부사장과 재만씨는 동서간이다. 차남 조현문(36) 효성 전무는 이부식 전 해운항만청장의 장녀 여진(31)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여진씨는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거쳐 뉴욕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한 재원. 노무현 대통령의 영어 통역을 맡다가 지금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조 회장과 송 여사가 이어줬다. 시부모와 며느리간 첫 만남은 2001년 6월 한·미 재계회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진씨는 당시 미국 로펌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로, 한·미 재계회의엔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다. 연례회의에서 조 회장 부부와 여진씨는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서로 안면을 트는 사이가 됐다. 인연은 다음해에 또 이어졌다.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 재계회의에 세 사람은 같은 일정을 보내게 됐다. 당시 장남인 조 부사장이 막 결혼을 한 시기여서 주변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던 송 여사는 이렇게 화답했다고 한다.“아직 두명을 더 보내야 한다.”고. 이후 조 회장은 조 전무에게 여진씨를 소개해줬고, 두 사람은 3개월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조 회장과 여진씨의 부친인 이 전 청장과는 서로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으며, 조 전무의 동생인 조현상 상무와 여진씨의 오빠는 미국 브라운대의 선후배 사이일 정도로 양가는 사돈으로 맺어지기 전부터 가까웠다.3남 조 상무(34)는 아직 미혼이다. 효성가의 방계 3세들의 혼맥도 화려함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과 홍문자(64) 여사는 2남2녀를 뒀다. 미국 뉴욕의 FDU대 수학과 교수인 맏딸 희경(39)씨는 연세대 법대 교수인 노정호(43)씨와 혼례를 치렀다. 차녀 희원(38)씨는 재미교포와 결혼했다. 장남 조현식(35)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차동완 카이스트 교수의 딸인 진영(28)씨와 인연을 맺었다. 진영씨의 모친은 고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의 차녀인 설영자씨다. 차남 조현범(33) 상무는 2001년 9월 이명박 서울시장의 3녀인 수연(30)씨와 결혼했다. 최근에 보기 드문 정치인과 재벌의 혼사였다. 조욱래(56) 동성개발 회장의 자제는 모두 2남 1녀. 장남인 현강(30)씨는 삼정KPMG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차남 현우(22)씨는 미국 TUFTS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장녀인 윤경(27)씨는 홍준기 삼공개발 회장의 아들인 석융씨와 혼인했다. 홍 회장의 딸인 지연씨가 권노갑 전 의원의 아들인 정민(35)씨와 결혼해 조씨가는 권 전 의원 가문과 한다리 건너 사돈간이다. ●효성호를 이끄는 전문경영인 이상운(53) ㈜효성 사장은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전문경영인. 경기고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76년 효성물산에 입사했다. 중동 등에서 ‘섬유수출의 귀재’라는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효성물산 기획실과 시장개척실, 사업개발실 등을 거치며 업무경험을 쌓아왔다. 특히 외환위기 때에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효성그룹의 주력 4개사를 통합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송형진(62) ㈜효성 건설PG장은 건설 경력 35년이 넘는 전문 경영인이다. 건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가장 강조한다. 특히 사람을 관리하는 팀워크를 중요시해 건설PU장 시절, 사업이 진행중인 현장을 한 번 이상은 방문해 현장 직원들과 어울리곤 했다. 경기고와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나왔다. 김재학(57) ㈜효성 중공업 PG장 겸 전력PU장 사장은 기계공학 전공자답게 정확함과 세밀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경영은 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구성원의 조직력 결속을 중시한다. 경기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최병인(44) ㈜효성 정보통신PG장 겸 노틸러스효성㈜ 사장은 효성의 전문경영인(CEO)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리다.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며,2000년 효성에 합류했다.2002년 그룹 정보통신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업체인 효성데이타시스템과 효성컴퓨터를 합병해 노틸러스효성㈜을 출범시켰다. 우신고와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를 나왔다. 유효식(58) ㈜효성 지원본부장 부사장은 1974년 동양나이론에 입사한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외환위기 때에는 ‘책임 경영’ 체제 구축을 위해 경영 시스템을 ‘PU체제’로 전환시켰다. 인천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정윤택(50) ㈜효성 재무본부장 전무는 종합조정실과 재무본부 등에서 근무한 베테랑급 재무 전문가다. 추진력이 탁월하고, 금융 및 산업계의 인적 네트워크가 뛰어나다. 서울 사대부고와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류필구(60)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겸 노틸러스효성㈜ 사장은 95년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의 최고경영자(CEO)에 올라 10년째 경영하는 국내 IT업계 최장수 CEO다. 사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이 고객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현장 경영을 강조한다. 안동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조충환(63) 한국타이어 사장은 샐러리맨 출신으로 말단 사원에서 사장까지 오른 전형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조 사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64년 삼성물산에 입사, 도쿄 지사장 등을 거친 ‘상사 수출맨’이다.83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이후 기획과 재무 등을 거친 뒤 97년 12월 한국타이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golders@seoul.co.kr ■ 바깥활동 활발한 며느리들 효성가(家) 며느리들은 세련되고, 자기 일에 충실한 ‘커리어 우먼’쪽에 가깝다. 경영수업을 쌓고 있지는 않지만 바깥 활동엔 꽤 적극적이다. 흔히 며느리들은 안으로 돌리고, 딸들은 출가외인으로 치부하는 국내 재벌가(家) 문화와 거리가 있다. 딸이 귀한 가문이어서 시아버지를 비롯한 남자들의 여성 후원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조석래 회장의 부인으로 경기여고와 서울대 미대를 나온 송광자(61) 여사는 시어머니로서 며느리들의 사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여성도 일을 할 수 있을 때 실컷 해야 후회가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심지어 며느리들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보약을 다려줄 정도다. 아들만 있는 송 여사는 며느리가 모두 딸 같다고 한다. 장남인 조현준 부사장의 얘기다.“지난달 제수씨가 북핵 6자회담 때문에 중국 베이징에 출장을 가게 됐는데 어머니께서 열심히 하고, 꼭 좋은 결과를 갖고 오라고 북돋워주더라고요.” 송 여사가 그렇다고 며느리 뒷바라지나 집안 살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적십자사와 종교 활동을 통해 이웃돕기에 나서고 있다. 주한 외국대사 부인들의 모임인 서울 가든클럽에서 봉사 활동도 한다. 또 미대 출신으로 국내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미술관 지원사업이나 일반인에 대한 현대미술 교육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3세 며느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시어머니께서 무척 배려를 해주신다.”면서 “일이나 공부 때문에 늦게 귀가하면 어깨도 주물러주고, 저녁도 대신해 때로는 당황스럽고, 몸둘 바를 모를 때가 적지 않다.”고 했다. 송 여사의 이런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인 고 만우 조홍제 회장의 영향이 크다. 당시 재계에서 엘리트였던 만우 회장은 며느리들에게 평생 교육을 강조했다. 예컨대 며느리들에게 앞으로 자가용 시대가 온다며 면허증을 따도록 했으며, 연료로 연탄을 주로 쓰던 시절 차세대 연료인 LPG(액화석유가스)에 관한 공부를 주문하기도 했다. 또 미술을 전공한 맏며느리인 송 여사에겐 신혼 초에 살림만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전시회를 열어 줄 정도로 미술 공부를 독려하곤 했다. 며느리 건강을 위해 보약을 챙겨주기도 했으며, 훗날 맏며느리가 그림 공부를 그만두자 만우 회장이 이를 가장 애석해했다. 조석래(70) 회장의 맏며느리인 이미경(29·조현준 부사장 부인)씨는 서울대 음악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식품영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조 부사장은 “대학에서 음악(피아노)을 전공했지만 다른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 같다.”면서 “이번엔 한국 전통음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한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고 했다. 둘째 며느리 이여진(31·조현문 전무 부인)씨는 1997년 외무고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을 거쳐 현재 국가안전보장회(NSC)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다. 조 전무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면서 “자기 절제가 뛰어난 것이 와이프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golders@seoul.co.kr ■ 재주꾼인 3세들 효성가(家)의 3세들은 재주가 다양하다. 취미와 스포츠, 외국어 모두 수준급이다. 공부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딴따라’ 기질도 있어 보인다. 장남 조현준(37) 부사장의 설명은 이렇다.“부친과 조부는 뭐든 하려면 제대로, 일정 수준 이상까지 요구했었습니다. 덕분에 운동도 종목을 바꿔가며 취미 이상으로 실력을 키웠고, 다른 분야도 비슷했었습니다. 특히 외국어는 영어, 일본어는 기본이었고, 제3외국어도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조 부사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는 미국의 세인트 폴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야구부 주장을 맡았다. 미식 축구 대표선수로도 활약했다. 지금은 경영수업 틈틈이 사내 야구팀과 직장인 리그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 스키와 스쿼시, 테니스는 선수급 기량이다. 그는 한때 건축학과 교수가 꿈이어서 건축과 미술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탈리아의 바티칸박물관 복구 작업에 참가한 특이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지금은 한옥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화재 보호단체인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운영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공부할 때에는 소믈리에(와인감별사) 자격증을 따로 취득할 정도로 와인 전문가이다. 차남 조현문(36) 전무는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다. 대학 시절엔 가수 신해철 등을 비롯한 중·고교 동창들과 어울려 보컬그룹 ‘무한궤도’를 결성,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피아노 뿐 아니라 작곡과 가창력도 수준급이다. 그의 곡들은 ‘무한궤도’ 1집에 수록돼 있다. 조 전무는 또 축구 마니아다. 미국 유학 시절에 축구클럽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스키와 테니스 실력은 형인 조 부사장에 못지 않다. 3남 조현상(34) 상무도 스포츠와 음악에 관심이 많다. 그는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축구팀 선수로 활동했으며, 브라운대 아카펠라 그룹에 가입해 밴드 리더로 활동했다. 아카펠라 해외 공연을 추진하기도 했다. 조 상무도 형들과 마찬가지로 ‘공 운동’은 모두 좋아한다. 축구와 스키, 스케이트 등은 한때 교내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럭셔리 리조트 허니문

    ‘동화속 궁전같은 예쁜 파빌리온, 에메랄드 빛 바다와 야자수, 석양을 바라보며 즐기는 로맨틱한 저녁 식사’올 가을 허니문의 새로운 트렌드는 ‘럭셔리 리조트’. 관광보다는 고급 리조트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려는 추세다. 이 때문에 ‘어느 나라로’ 보다는 ‘어떤 리조트로’가 오히려 중요한 선택 요소로 바뀌었다. 호텔과 달리 독립 별장형인 리조트에는 간섭받지 않는 자유가 있고, 안락한 쉼이 있다. 한적한 열대 해변에서 휴양을 즐길 수 있고 스노클링과 카누, 낚시 등 다양한 해양레포츠와 피로를 풀 수 있는 스파(spa)가 준비돼 있다. 이런 점에서 태국 크라비의 라야바디 리조트는 새롭게 떠오르는 허니문 명소다. 하룻밤 숙박료가 100만원에 이르지만 전세계 수많은 허니무너들이 라야바디의 매력에 이끌려 이 곳을 찾는다.‘공주의 땅’이라는 의미가 담긴 라야바디는 둘만의 로맨틱한 첫날밤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크라비(태국)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버섯지붕 그네소파 공주병은 이곳 풍토병 재스민 향기 넘치는 ‘공주의 땅’ ‘사와디 캅!’(안녕하세요!) 라야바디 리조트(www.rayavadee.com)와의 첫 만남은 상큼한 재스민 향기로 시작한다. 리조트 직원들이 환영 인사와 함께 건넨 ‘갈렌’(재스민 꽃으로 만든 화환)은 쌓인 여독을 한꺼번에 풀어준다. 간단한 체크인을 거쳐 만난 곳은 독립 별장형 ‘파빌리온’(papilion). 해변 안쪽 야자수 숲속에 육각형 모자를 쓴 방갈로인 파빌리온은 동화 마을을 연상시키는 예쁜 궁전이다. 그야말로 ‘공주의 땅’임을 실감케 했다. 리조트내에는 104개 파빌리온이 있다. 구조는 1층 거실과 2층 침실로 이뤄진 단독 빌라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빌라 곳곳에는 조각품과 미술품들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더해 준다.1층에 있는 그네 소파가 인상적이다. 외부와 내부 인테리어는 태국 전통양식과 현대적인 디자인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 더없이 아름답다. 내부는 고급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는데 2층 욕실에는 아담한 욕탕에 리조트에서 직접 만든 비누와 보디로션 등이 갖춰져 있다. 건물은 시암건축학회로부터 건축상을 받고 태국관광청으로부터 남부지방 최고의 숙박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동남아 최고의 리조트로 1996년에는 ‘엑설런트 어워드’도 수상했다. 허니무너들이 즐겨 사용하는 딜럭스 파빌리온(77개)은 개인적으로 예약할 경우 공시 가격이 1박에 3만 5000바트(91만원 정도)로 태국은 물론 세계 다른 휴양지에서도 손꼽히는 톱클래스 리조트다. 철저한 사생활이 보장돼 있어 공개하지는 않지만 해외 유명 연예인들도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라야바디의 가장 큰 장점은 이처럼 한적한 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리조트 지역은 섬이 아닌 육지지만 석회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크라비 공항이 있는 시내에서 들어올 때 보트로만 출입할 수 있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공항에서 타라 부두까지 리조트 전용 밴을 타고 온 뒤 다시 전용 보트를 타고 10∼15분쯤 걸린다. 로맨틱한 프라낭 비치의 일몰 라야바디는 남마오·라일레이·프라낭 등 3개의 해변을 끼고 있다. 해변의 길이가 1㎞ 남짓해 해수욕은 물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즐기기도 좋다. 리조트는 한바퀴 도는데 30분 정도. 걷는 게 귀찮다면 파빌리온에서 전화 ‘0’을 누르고 ‘버기(Buggy) 플리즈’라고 하면 버기(리조트내를 오가는 소형차)가 문 앞까지 온다. 주로 선착장 등으로 이용하는 남마오 비치는 주변 절경이 아름답다. 해변을 끼고 펼쳐진 주변 경관은 중국의 계림을 연상시키는 석회암으로 된 기암괴석들이 짙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낸다. 이런 기암괴석들이 라야바디를 아무도 육로로 접근할 수 없는 은밀한 낙원으로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 압권은 프라낭 비치. 대부분의 허니무너들은 프라낭 비치를 좋아한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의 절경을 감상하며 즐기는 해수욕은 색다른 재미다. 특히 비치에 있는 석회암 동굴 그라토(Grotto) 안에서 식사를 하며 바라보는 석양은 잊지 못할 감동으로 다가온다. 식사 메뉴는 해산물과 바비큐 등 리조트 일류 요리사들이 직접 나와 조리를 하는데 맛이 일품이다. 동굴 안이라서 모기가 많은 것이 흠. 하지만 직원들이 친절하게 몸에 뿌리는 모기약을 뿌려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해변에서 보이는 ‘해피 아일랜드’는 영화 타이타닉 주제곡을 불렀던 셀린 디옹이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는 곳이다. 썰물때는 걸어서 섬까지 다녀올 수 있다.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 문을 여는 전통 타이식당인 크루아(Krua)에서는 먹기가 아까울 만큼 예쁜 ‘비혹’(Vi Hok)이라는 요리와 게요리를 즐길 수 있다. 로맨틱한 쪽빛바다 라야바디 리조트 앞바다는 하늘 빛을 그대로 담았다. 리조트와 인접한 바다는 평범한 바닷물 빛이지만 이곳에서 조금만 나가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물빛이 아름답다. 그래서 대부분 허니무너들은 리조트에서 제공한 전용 보트를 타고 앞바다로 향한다. 이 곳에서 피피섬까지는 배로 1시간 남짓 걸리는데 그 곳까지 갈 필요없이 30분 거리에 있는 코씨섬과 텁 아일랜드만 가도 ‘아이스 블루’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물빛을 만난다. 목적지는 바닷물이 유리알처럼 투명한 코씨섬의 샤크 포인트. 가는 길에 ‘르오야오’라 불리는 롱테일보트들이 속속 예쁜 섬들을 찾아 모여 든다. 스피드 보트는 하루 대여료가 30만원을 호가하지만 6명이 탈 수 있는 롱테일보트는 하루 4만 5000원 정도(1500바트)로 저렴하다. 샤크 포인트에는 미리 호주, 일본 관광객들이 호핑을 즐기고 있다. 바닷물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이 맑다. 물에 준비해 간 빵을 던지자 열대어들이 몰려든다. 장비를 착용하고 물에 들어가 빵을 손에 들고 있자 고기가 손에 달려든다. 물 아래에는 산호가 하늘빛에 아름답게 비친다. 1시간의 호핑을 마치고 도착한 곳은 크라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텁(Tup) 아일랜드. 크라비를 소개하는 안내책자나 엽서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이 섬은 썰물때면 인근 모어섬과 치킨 아일랜드와 연결이 되는데 푸른 바닷물 사이로 걸어서 다녀올 수 있다. 해변에서의 점심은 또 한번의 감동이다. 대부분 1회용 플라스틱 도시락에 점심을 먹는데 라야바디는 직원들이 해변에 접시며 포크, 나이프 등을 세팅해 놓고 점심을 제공한다. 아이스박스에 얼려온 시원한 음료도 갈증을 충분히 날려준다. 호핑투어를 마친 뒤 스파 파빌리온에서 즐기는 스파 마사지는 하루의 피로를 말끔하게 풀어준다. 고급스러운 데크에서 즐기는 스파는 호사스럽기까지 하다. 또 저녁 10시까지 운영되는 게스트 서비스 라운지에 들르면 무료로 책과 각종 DVD 등을 빌려 볼 수 있으며, 한국어가 가능한 인터넷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여행 메모 크라비까지는 직항편이 없어 방콕에서 국내선을 타고 들어간다. 인천에서 방콕까지 5시간, 방콕에서 크라비까지 1시간20분 정도 걸린다. 푸껫에서 크라비까지 버스가 운행되는데 2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타이항공이 하루 3차례 운항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 늦다. 환율은 1바트에 25원(매매기준율). 건기인 10월에서 다음해 5월까지 여행하기 가좋다. 허니문 상품은 전문여행사인 가야여행사(www.kayatour.co.kr)에서 판매한다.3박5일에 159만 9000원. 쓰나미로 10만∼20만원 정도 낮아진 값이다. 서울에서 오전에 출발하면 라야바디에서 3박을 하며, 밤 비행기로 출발할 경우 방콕 콘라드 호텔에서 1박을 하게 된다. 그라토 저녁 식사를 비롯해 전일정 최고급 리조트 식사가 포함된다. 여행사 직원이 리조트에 상주하고 있어 여행에 불편이 없다.(02)536-4200. ■신혼부부들이 뽑은 럭셔리 리조트 Best 허니문 전문여행사인 가야여행사에 따르면 올가을 허니문 트렌드는 ‘해변이 아름다운 동남아 지역의 럭셔리한 리조트에서 오붓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허니무너들은 70∼80%가 비행시간을 고려해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호주 등지를 여행지로 택하고, 숙소는 고급 리조트를 선호한다. 관광보다는 리조트에서의 휴양과 해양레포츠, 스파 등을 즐기며, 일정은 5∼6일 일정을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허니무너들이 선호하는 허니문 명소 4곳을 뽑아 소개한다. (1) 개인풀서 석양보며 그녀와 수영을 세계적인 휴양지 발리섬에서 석양으로 유명한 짐바란 해변의 부키트 페르마이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7개의 빌라마을에 위치한 총 147개의 단독빌라와 환상적인 개인풀이 있다. 짚으로 장식된 발리 전통 스타일의 인테리어, 환상적인 발리의 공예품, 화려한 색채와 무늬의 직물들로 한껏 사치를 부린 빌라에서 포시즌만의 호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짐바란 베이를 바라볼 수 있는 개인풀은 마치 바다의 한 조각을 떼어 놓은 듯 반짝인다. 유럽풍 욕조와 샤워시설이 갖춰져 대리석으로 마감된 개별 욕조 안에서는 향기로운 꽃잎들과 허브로 피로를 씻을 수 있다.1박에 550달러(약 55만원)부터. 홈페이지 www.fourseasons.com (2) 진주같은 바다서 그이와 해저산책을 ‘진주조개 농원’이라는 뜻의 펄팜 리조트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지역 사말섬에 둥지를 틀고 있다. 무인도처럼 조용한 리조트는 다바오에서 배로 45분 거리이다. 남중국해를 바라보고 있는 코티지는 필리핀 전통 양식에 따라 대나무 등 재활용이 가능한 천연재료로 만들어졌다. 아쿠아스포츠센터에는 스노클링을 비롯해 카누와 카약,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윈드 서핑 등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장비가 갖춰져 있다. 다트와 당구, 테니스, 농구, 배드민턴 등을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완비돼 있다.1박에 185달러(약 18만원)부터. 홈페이지 www.pearlfarmresort.com (3) 광활한 모래사장 저편에 우리 미래가…말레이시아 동부 해안에 위치한 채러팅은 문명을 떠나 자연 속에서 휴식을 즐기고자 하는 허니무너에게 제격이다. 광활한 모래사장 저편으로 아름다운 남중국해가 펼쳐지는 판타이 해변과, 울창한 열대의 정글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해변은 수십m를 걸어나가도 허리 정도밖에 차지 않을 정도로 수심이 얕아 스노클링과 윈드서핑, 세일링, 카약 등 각종 해양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지난해 4월에는 5백만 유로를 투자해 개보수를 마치고 트라이던트 4개급 빌리지로 재탄생하였고, 세계 최고의 스파 체인 만다라가 운영하는 스파 빌리지를 강화했다.5박6일(항공포함) 딜럭스 패키지의 요금이 1인 144만 6000원부터. 홈페이지 www.clubmed.co.kr (4) 케빈 코스트너도 빠져버린 태고의 자연태고의 자연과 현대의 문명이 어우러진 호주 최고의 리조트. 호주 북부 퀸즐랜드 해안의 동쪽에서 33㎞ 떨어진 헤이만 섬에 있다. 시설이 워낙 고급이라 호주에서도 부유층들이 선호하는 귀족 리조트다. 영화배우 케빈 코스트너도 이 곳의 단골로 알려져 있다.1987년에 문을 연 리조트는 미국 여행잡지인 트래블 앤드 레저에서 실시한 리서치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좋은 호텔’,‘태평양 지역에서는 제일 좋은 호텔’ 등으로 선정됐다. 고운 모래 해변과 울창한 열대숲, 쾌적한 기후, 프랑스 이탈리아 아시아요리 등 각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음식문화가 발달한 리조트로 첫손에 꼽히는 곳이다. 요금은 620 호주달러(약 48만원)부터. 홈페이지 www.hayman.com.au
  • [CEO 칼럼] 앙코르와트/기옥 금호폴리켐 사장

    [CEO 칼럼] 앙코르와트/기옥 금호폴리켐 사장

    올해 초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앙코르와트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에 직항로가 없어 방콕이나 하노이를 경유해서 가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러나 앙코르와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달 초 국내 한 항공사가 직항로를 개설해 보다 편리한 방문길이 됐다. 앙코르와트는 ‘도읍’이라는 뜻의 앙코르(Angkor)와 ‘사원’을 의미하는 와트(Wat)의 조합어로,8세기 말부터 15세기 중반까지 약 600년간 캄보디아 전역을 지배했던 크메르 왕국이 이룩한 거대한 사원을 일컫는다. 아직도 발굴 중이지만 복원된 사원의 일부만 봐도 당시 크메르 왕국이 얼마나 번성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초 수르야바르만 2세가 즉위한 해부터 무려 3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자신이 묻힐 영생의 집으로 건축했다고 한다. 힌두사원은 건축 구조상 생명을 의미하는 동쪽을 인간의 출입구로, 서쪽을 영혼들의 출입구로 여겼다. 앙코르와트는 그 유일한 출구가 서쪽으로 나 있다. 수르야바르만 2세의 의도를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쿠푸왕의 피라미드,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등대, 바빌론의 세미라미스 공중정원,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러스 영묘, 로도스 항구의 크로이소스 거상이 꼽힌다. 이 중에서 현존하는 것은 쿠푸왕의 피라미드뿐이고 나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현존하는 유적이나 건축물 위주로 선정할 경우에는 앙코르와트도 인도의 타지마할, 로마의 콜로세움 등과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이전에 지어진 어떤 건축물보다도 치밀한 구조와 섬세한 장식을 가지고 있고 배치, 구조, 조화 등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건축적 완성도를 자랑한다고 한다. 이렇게 뛰어난 완성도가 앙코르와트를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올려놓는 데 전혀 손색이 없게 하는 것이다. 앙코르와트라는 힌두문화의 결정체를 남긴 대제국 크메르 왕국은 14세기쯤 과중한 토목공사와 집권층의 부패로 점차 국력이 쇠퇴하여 주변 국가들의 잦은 침략을 받게 되고 결국 19세기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 후,19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으나 캄보디아는 파벌간의 이념 대립으로 인하여 전쟁과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급기야는 1975년에 폴포트가 주도하는 급진 공산주의 세력인 크메르루주군이 수도 프놈펜을 장악하고 정권을 쥐게 된다. 이 때, 악명 높은 ‘킬링필드’라는 대학살이 자행되는데, 공산주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지식인, 자본가, 기업인, 승려 등 약 200만명이 처형되었다. 당시의 캄보디아 인구가 약 800만명이었다고 하니 인구의 4분의1이 이때 학살된 셈이다. 지금 캄보디아는 방글라데시, 아이티공화국과 함께 세계 3대 빈국 중 하나로 전락했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크메르 왕국의 후손인 캄보디아인들이 왜 지금은 이렇게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던 크메르 왕국 조상들의 유전인자(DNA)가 오늘날 캄보디아인들에게 전해질 때 돌연변이라도 일으킨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국가 정체성의 혼돈, 체제의 불안정, 지도자의 리더십 부족, 집권층의 부패, 이러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오늘날의 쇠락을 초래했을 것이다. 흔히들 역사의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그 가정을 실험해 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앙코르와트에 가보면 인류 역사에 있어 최악의 가정 중 하나를 실험해 본 결과를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앙코르와트는 현존하는 가장 유용한 역사의 산 교육장, 경제의 실험교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옥 금호폴리켐 사장
  • [황장석기자의 아시아 창] 태국, 인권 무시한 마약 전쟁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약 복용자가 인구의 5%에 이르는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것이지만 벌써부터 인권 침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2003년 첫번째로 치른 마약 전쟁에서 그는 “마약밀매상이 갈 곳은 감옥이나 무덤뿐”이라고 말하며 경찰의 무자비한 인권 침해를 용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정부는 6월까지 마약 복용자를 6만명 이하로 줄이고 연말까지 ‘마약 청정국가’로 만들겠다고 지난 11일 공표했다.2003년 1차 마약 전쟁, 지난해 2차 전쟁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태국의 마약 문제는 ‘전쟁’이란 단어를 사용할 만큼 심각하다. 유엔 자문기구인 국제마약통제부(INCB)에 따르면, 태국 인구의 5%가량인 300만여명이 필로폰 알약인 ‘야바’를 복용한다. 마약은 대부분 미얀마에서 제조돼 곧바로 태국 국경을 거쳐 밀수되거나 라오스, 캄보디아 등을 통해 반입되고 있다. 태국과 라오스, 미얀마의 국경지대는 ‘마약왕’ 쿤사가 악명을 떨치던 ‘골든 트라이앵글’. 마약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인권 침해 우려가 나오는 것은 과거 마약 전쟁에서 피의자들이 재판과정도 없이 경찰에 의해 사살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2002년 태국에서 살인사건 사망자 수가 한달 평균 200명이었던데 비해 2003년 2∼4월 1차 마약 전쟁 기간 중 2월 한달에만 1100여명이 숨지는 등 3개월간 3000여명이 숨졌다. 경찰은 당시 7월까지 경찰의 총격으로 숨진 피의자는 129명이었고 마약상들이 서로 총격전을 벌이다 숨졌다고 밝히고 있지만 국제사면위원회와 언론 등은 사망자 대부분이 정부의 용인하에 경찰에 의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경찰이 당시 검거 자료로 사용한 블랙리스트에는 마약과 관련없는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됐다고 인권단체와 언론 등은 지적하고 있다. suron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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