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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전원일기] 성지농원 김응선 대표

    [新전원일기] 성지농원 김응선 대표

    막장 속에서 꿈꾼 양계장 죽을 고비 두어번 넘기고 닭 7만 마리, 年매출 15억 닭의 알, 달걀의 어원이다. 어제 아침에 달걀찜을 먹었고 오늘은 달걀프라이를 먹었다. 내일은 달걀말이를 먹을지도.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노인까지,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위생적이고, 완벽하고, 흔하며, 빈자라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최상의 식품 달걀. 어찌 보면 지상의 동물이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인 달걀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 달걀 로드 탄광서 1년 반, 900만원 모아 손수 축사 짓고 양계 사업 올인 닭 폐사·계란값 폭락으로 도산 경기 포천시 성지농원에서 만난 김응선(56) 대표는 어려서부터 양계사업을 해 보겠다는 꿈 이외에 다른 꿈을 가져 보지 않았다. 양계업을 하던 부친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닭을 만지고 모이 주는 것이 좋았다고 하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의 첫인상은 정직하고 성실한 느낌이었다. 아버지를 도와 닭 1000마리가량을 키우며 대전 계룡공고 기계과를 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친이 빌려준 전 재산의 돈 갚음으로 외삼촌에게서 공장을 넘겨받아 1년 정도 프레스 공장을 했다. 여러 사정 때문에 프레스 공장은 폐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덩달아 집안 경제도 엉망이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군대를 갔고 제대 직후 목돈을 쥘 수 있는 강원 태백의 한 탄광촌으로 돈벌이를 떠났다. 그는 지하 500m 깊이의 아득한 갱 속에서 양계사업의 꿈을 키웠다. “석탄을 끌어내기 위해 갱도 안에 컨베이어벨트를 놔야 하는데 그 기술자로 탄광에서 일했죠.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요. 버팀목이 부실해서 혹은 가스가 나와서 그러기도 하고 어느 땐 수맥을 잘못 건드려서 갱에 물이 차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하죠. 저도 갇힌 적이 있었는데 살면서 잘못한 것들만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떠오르더군요. 살아서 나가면 죄짓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죠.” 수백m 깊이의 땅속에서 두어 차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본 그 경험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탄광에서 1년 반을 보낸 후 손에 쥔 목돈을 들고 드디어 양계장을 하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 당시 일반적인 샐러리맨 월급이 25만원 내외이던 시절이라 그가 벌어서 나온 900만원은 거금이었다. 그때 김 대표의 나이가 26세였다. 그가 처음 양계장을 시작한 곳은 김포시 마송이었다. 처음엔 매형의 양계장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초에 독립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양계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때 김 대표는 최은희(53) 공동대표를 만나 결혼했다. 대학까지 나온 최 대표는 김 대표의 성실함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첫 양계사업은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닭의 배설물은 삽으로 직접 처리해야 했고, 어깨에 통을 메고 오가며 닭 모이를 손으로 흩뿌려 주는 방식이었다. 사료 한 포대가 25㎏이었는데 그걸 어깨에 걸머메고 모이를 주다 보니 일을 끝내고 나면 어깨가 빠지는 듯한 통증이 오곤 했다. 당시 무엇보다 힘들었던 점은 양계장에 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물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 않은가. “거의 매일 물을 길어 와서 썼어요. 닭의 첫 모이를 새벽 4시에 주는데 모이 주고, 닭똥 치우고, 물 길어 오고, 혼자서는 도저히 힘들어서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는 조금이라도 시설이 좋은 곳으로 옮기고자 김포시 구례리로 양계장을 옮겼다. 역시 자본이 부족하니 닭 키울 축사와 알 낳을 산란장을 직접 지었다. 그렇게 4개 동을 지었는데 하우스 한 동에 닭 2000마리를 넣었다. 대부분의 시설물을 직접 지어 올려 어느 곳보다 애정이 가는 곳이었지만 닭이 늘면서 계분 처리할 기계가 필요해 2년 후 다시 당하리로 양계장을 옮기게 됐다. 가는 곳마다 컨테이너를 두거나 간단하게 집을 올려 생활을 했다. 그렇게 당하리로 온 게 1993년의 일이다. 그곳에서 2만 마리의 닭을 키웠다. 제법 돈도 벌었다. 그 무렵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인천에 집을 사는 바람에 양계장에 사람을 두었는데 내 일처럼 돌보지 않다 보니 한번은 1만 2000마리의 닭 중 절반인 6000마리가 폐사하는 일이 터졌다. 당시 김 대표뿐 아니라 대다수의 양계업자들은 ‘알금’(계란값)이 좋을 때 산란계를 많이 들이고 알금이 낮으면 규모를 줄이는 통에 알금이 좋다는 말이 돌면 양계장을 하는 농민들이 너도나도 닭을 많이 들이면서 결과적으로 알금을 낮췄다. 김포에서 처음 양계장을 시작하고 두 차례 장소를 옮겨 가며 사업을 했지만 닭 절반을 폐사시키고 달걀값이 폭락하면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잠시 닭들의 곁을 떠났다. # 양계는 나의 인생 화물차 몰다 다시 양계장으로 곡절 끝에 축사 현대화 지원받아죽을 힘을 다해 닭 키워 재기 삶은 유지돼야 했다. 김 대표는 대리운전도 하고 마을버스도 몰았다. 벌이가 크게 나아지지 않아 화물차를 매입해 화물 배달을 하기도 했지만 그의 심중에는 닭과 달걀만 있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10년 조류독감이 퍼져 우리나라 종계 생산량의 35%를 차지하던 한 메이저 업체가 엄청난 수의 닭을 매장하게 됐던 것이다. “분명 계란 부족 사태가 올 거라고 본 거죠.” 그때 김 대표가 찾은 곳이 바로 지금의 양계장이 있는 포천시다. 얼마 되지 않은 전 재산을 모두 투자하고 대출받을 수 있는 돈도 전부 끌어다 쓰면서 양계사업을 다시 시작한 터라 양계장을 증축하거나 설비를 개선하는 일 등 모든 노동을 부부가 해결했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 달리 산란계가 알을 생산하기 시작한 가을 즈음 계란값이 또다시 폭락했다. “생활비도 없더라고요.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거 같아요. 지출 비용을 줄이려고 컨테이너에서 살았는데 여긴 북쪽이어서 겨울에 영하 20도는 기본이었죠.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 수 없을 정도로 추웠죠. 무엇보다 양계장의 난방비가 너무 많이 들어 점점 고민이 깊어졌죠.” 그 무렵 많은 양계장이 기계화, 자동화되는 추세였다. 낡은 재래식 양계시설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다시 양계사업으로 돌아왔으니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다. 그러나 손에 쥔 돈이 없어 지원받을 수 있는 곳들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당시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자유무역협정(FTA)에 대비해 농가들에 현대화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도 포천시에 신청을 했는데 경력이 짧다는 이유와 당시 김 대표가 사들인 양계장 건물들 중에 무허가가 몇 채 있는 바람에 지원을 받지 못했다. “막막하더라고요. 이대로 주저앉는구나 싶어서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몰라요.” 그런데 한 길만 생각하며 달려온 그의 노력이 가상했던 것일까. 포천시에서 연락이 왔다. “축사 현대화 자금이 조금 남았으니 받아 보시겠냐는 겁니다. 그래서 달려갔죠.” 그렇게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이 1억 2000만원이었다. 하지만 그 돈으로 양계장의 사육장 전체를 자동화하기에는 부족했다. 무허가 건물 여섯 동을 뜯어내고 그 자리에 새롭게 축사를 올려야만 했다. 매일 새벽 4시부터 밤 9시까지 바닥 공사에 매달렸다. 그때부터 일을 함께 한 외국인 노동자와 둘이서 무허가 건물을 뜯어내고 합법적으로 허가받을 수 있는 건물을 올렸다. 그 시절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때의 각오와 설움을 담아 김 대표가 축사 바닥에 적어 놓은 글귀가 있다. ‘응선, 죽을 힘 다해.’ 그의 양계장에서는 ‘하이라인’과 ‘이사브라운’ 품종의 닭들이 알을 생산하고 있다. 그 닭들의 90% 이상이 6개월 이상씩 알을 낳아 주기 시작했다. 그 덕에 지난해는 매출액이 15억원에 이르렀다. 양계장의 닭도 7만 마리까지 올라왔다. “비로소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서 이문이 좀 생기고 있습니다. 앞으로 닭 10만 마리 규모까지 키우는 게 목표죠.”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명품 계란에 대해 물었다. “사실 가장 싱싱한 계란은 닭이 막 낳은 계란입니다. 다들 시중에 파는 계란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양계 농가 99% 이상이 알을 생산하면서 항생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요.” 품질 관리도 철저한 편이라고 한다. 분기마다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계란을 강제 수거해 검사를 하는데, 항생제나 살모넬라균 등이 알에 포함돼 있는 걸로 판정이 나면 벌금은 물론 양계장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라 양계사업을 하는 사업자들 스스로 무항생제로 알을 생산하고 철저하게 청결을 유지하도록 노력한다고 한다. “양계는 다른 축산업에 비해 시스템이 낙후된 편이에요. 달걀 집하장 등을 조성하기 위해 예산이 책정돼 있다는데 국가가 나서서 유통을 관리해 줬으면 해요.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한 사람이 대형화해서 하는 것도 제재를 좀 해 주고요. 또 무항생제란이니 유정란이니 청정란이니 해서 계란을 구분하고 가격을 달리해서 판매하고 있지만 양계장에서 나가는 계란값은 똑같은데 그것도 좀 조정해 주고요. 깨진 달걀이나 ‘오란’(오염된 달걀)만 해도 우리 양계장에서 월 60만원어치가 나오는데 그런 달걀들도 정부에서 관리하면 손해도 조정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달걀 생산을 조정해서 알금 폭락을 막으려면 정부의 관리 시스템이 필요한 거죠.” #명품 달걀청정란·유정란이니 하는 말로가격 올려 파는 일 없어지기를닭 방목 땐 진짜 명품 달걀 될 것 김 대표와 최 대표에게 양계 귀농에 대해 물었다. “양계업은 과거와 달리 필요한 자본의 규모가 꽤 큽니다. 사료값도 엄청나고요. 그리고 양계에 관한 한 수의사 수준으로 노하우를 쌓아야 그나마 수월하게 양계장을 꾸려 나갈 수 있죠.” 그러나 큰 자본을 댈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명품 달걀을 만드는 거죠. 양계장에서 닭을 키우는 게 아니라 방목하는 겁니다. 산에 들에 놓아 기르는 거죠. 일반 달걀보다 좀 비싼 달걀이 시장에 나와 있는데, 그걸 사 가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많은 수를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1000~2000마리 정도면 적당할 겁니다. 그럼 그리 큰 자본이 들지 않지요. 머잖아 그런 시장이 형성될 거라고 봐요.” 하지만 그 역시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을 사람들과의 소통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과 관계의 교류를 원활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면 양계업으로의 귀농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설명했다. 여행을 가거나 소풍 갈 때 삶은 달걀을 가져가곤 했다. 달걀은 식품으로서의 기능만 했던 게 아니라 걸어서 소풍을 다녔던 세대에겐 추억이기도 했다. 그래, 오늘 저녁에는 삶은 달걀과 오믈렛을 먹어야겠다. 글쓴이 소설가 전민식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으로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불의 기억’ ‘13월’ ‘9일의 묘’ 등.
  • ‘제주판 유엔빌리지’ 화이트디어 해안, 모델하우스 미리 가보니

    ‘제주판 유엔빌리지’ 화이트디어 해안, 모델하우스 미리 가보니

    제주도의 부동산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레지던스 오피스텔과 분양형 호텔이 인기를 끌어오다 별장형 타운하우스에 바톤을 넘겨주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아예 제주로 주거지를 옮기는 경우가 늘면서 아파트나 고급주택 등 거주형 주택 수요가 많아졌다. 제주도의 순이동(전입-전출) 인구는 2010년 437명에서 2014년 1만1,112명, 2015년 1만 4,257명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 64만1,355명에 달한다. 뛰어난 자연환경에 더해 교육·문화·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지고 있는데다, 개발호재까지 집중되면서 주택을 구입해 살만한 곳으로 인식이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제주의 개발호재는 영어교육도시, 드림타워, 진해안리조트, 신공항, 서귀포혁신도시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제주가 ‘삶의 터’로 각광받으면서 부동산 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제주도 주택가격은 지난해 12월 대비 3.51% 상승했으며, 아파트의 경우 5.02%나 올랐다. 최근 전국 주택가격이 보합 및 소폭 하락세를 기록하는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나홀로’ 활황을 이어가는 중이다. 고급주택 수요자들의 주거문화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존 제주의 고가주택은 노형동이나 아라동의 아파트가 꼽혔으나, 최근 10억이 넘는 최고급주택이 제주시 해안동에 분양을 앞두고 있어, 서울 한남동의 ‘유엔빌리지’처럼 신흥 부촌이 형성될 전망이다. 제주시 해안동 무수천 인근에 들어서는 최고급 주거단지 ‘화이트디어 해안’은 지하 1층~지상 4층, 7개 동 규모, 전용면적 83~245㎡로 구성되며, 사생활 보호와 도심 접근성을 동시에 갖춘 최적의 입지에 들어선다. 특히, 이 단지는 ‘듀플렉스 펜트하우스’라는 새로운 형태의 설계방식을 도입해 전 세대가 2~3층에 달하는 복층과 테라스로 설계 되며, 일반 아파트보다 40cm 이상 높은 2.7~2.8M의 층고로 설계되어 쾌적함을 더했다. ‘화이트디어 해안’에는 전용 테라스와 개인 정원, 개인 풀장, 개인 스튜디오 등 최고급 시설이 들어서게 되며, 럭셔리한 가구와 웅장하고 중후한 인테리어, 최고급 마감재로 품격을 높였다. 주방은 트라움하우스, 헤렌하우스 등 최고급 주택에 공급돼온 독일 명품 주방가구 ‘지메틱(SieMatic)’을 비롯해 냉장고, 김치냉장고, 시스템 냉난방기 등 다양한 빌트인 가구와 가전으로 꾸며진다. 또한, 적외선 감지 시스템, 경비원 출동 시스템, 고화질 HD CCTV 등 최상의 보안서비스도 제공되며, 단지 중앙에 조각공원, 잔디광장 등으로 구성된 대형 중앙광장 및 커뮤니티 공간과 근린생활시설도 들어설 예정이다. ‘화이트디어 해안’의 분양가는 주력 평형대인 245㎡ 기준, 12억 원 대(3.3㎡ 당 1,400만 원)이며, 모델하우스는 오는 3일 제주시 오라2동 3165번지에 문을 연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해외여행 | [Surprising China] 안후이성-천하절경 황산으로 떠나는 환상 여행

    해외여행 | [Surprising China] 안후이성-천하절경 황산으로 떠나는 환상 여행

    천하절경 황산으로 떠나는 환상 여행안후이성(안휘성, 安徽省) 끝없이 펼쳐진 구름바다 위로 뾰족 올라온 봉우리, 봉우리 사이에 꼿꼿이 솟은 소나무. 케이블카를 탄 지 10분 만에 다른 세상으로 진입했다. 그곳에는 신선들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이 풍경을 두고 어떤 시인이 시 한 수 읊지 않을 수 있을까. 황산은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 자연 앞에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해준다. 솜사탕 같은 구름 위에 세상만사 고민들을 던져놓고 나니, 왜 그리 많은 이들이 황산을 찾는 지 알 것 같다. 후이저우의 전통마을, 홍춘 황산이 자리하고 있는 안후이성의 이름은 정치의 중심지였던 안칭(안경, 安庆)과 경제중심지였던 후이저우(휘주, 徽州)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들어졌다. 후이저우 문화를 담고 있는 곳은 여러 곳 있지만, 그중에서 14~19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홍춘굉촌, 宏村이 널리 알려져 있다. 홍춘은 남송 시대 왕씨 집안의 집성촌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마을이다. 오랜 역사의 숨결을 잘 간직하고 있어, 주윤발 주연의 영화 <와호장룡>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홍춘에 들어가면 수묵화 속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홍춘을 찾은 이유는 그림 같은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은 티베트학, 돈황학과 함께 중국의 3대 지역학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독특한 지역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홍춘에 가면 독특한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후이저우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다. 이 지역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하얀 색의 높은 벽에 까만 기와를 올린다. 하얀 집 벽과 까만 색 기와는 말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마두벽’이라고 불린다. 후이저우 건축의 또 다른 특징은 ‘천정’에 있다. 집의 윗부분을 뚫어서 집 안으로 빛이 들어오게 만드는 것인데, 하늘에서 봤을 때 빛이 들어가는 우물 같다고 하여 천정天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월패방군에서 본 충효예지신 후이저우는 상업과 유학으로도 유명했고 중국의 내로라하는 거상 중에는 후이저우 출신이 적지 않았다. 후이저우는 성리학의 본산으로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도 후이저우 사람이다. 한때 중국 과거시험 합격자의 3분의 1을 배출했던 고장이라 그런지 후이저우는 붓과 먹, 벼루, 종이가 특산품이다. 특히 후이저우에서 만드는 휘묵徽墨은 중국에서 가장 좋은 먹으로 꼽힌다. 후이저우의 유교문화를 잘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당월패방군棠越牌坊群이다. 이곳에 가면 명청 시대 400여 년 간 포씨 가문에서 나온 충신과 효자, 효녀의 행적을 볼 수 있다. 마을 동쪽에서 들어가면 명대에 만들어진 패방 3개와 청대의 패방 4개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수년간 종기로 고생한 어머니를 위해 입으로 고름을 빨아낸 효자의 이야기를 비롯해 7가지의 마음 따뜻해지는 사연이 패방에 쓰여 있다. 홍춘에서 후이저우의 전통을 보고 패방에서 후이저우의 유교정신을 만났다면, 둔계노가屯溪老街에서 오늘날의 후이저우 문화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둔계노가는 1,000년 전 송나라 때 형성된 거리로 명청시대의 건축물들이 잘 남아있다. 지금은 거리 양쪽으로 기념품과 식료품을 파는 재래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역시 황산이다 역시 황산이었다. 기대를 져 버리지 않았다. 황산은 중국인들이 죽기 전에 꼭 가고 싶어 할 만큼 웅장했고, 산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등산 애호가들을 설레게 할 만큼 황홀했다. 공기 가득 물기가 있어 온 산은 촉촉했고, 산꼭대기를 휘감은 구름은 산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산수화 속을 걷다 안후이성 남동부에 자리하고 있는 황산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중국 최고의 명산이다. 중국 10대 명승지 가운데 유일한 산일 뿐만 아니라, 1990년 세계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등록돼 보호를 받고 있다. 또 황산은 중국문명을 낳은 황하강,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인 양자강, 그리고 만리장성과 함께 중국의 4대 얼굴 중 하나로 꼽힌다. 황산이 특별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기기묘묘한 소나무奇松와 바다 같은 구름雲海, 특이하게 생긴 바위怪石가 유명하다.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기기묘묘한 황산의 바위와 봉우리들이다. 황산에는 수만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중 1,600m 이상의 봉우리가 72개나 된다. 다른 산과 비교할 수 없는 웅장함이 압도적이다. 황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1,864m의 연화봉莲花峰. 하늘을 향해 핀 연꽃처럼 생겼다 해서 연화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황산의 대표적인 3대 봉우리로는 연화봉을 비롯해 가장 평평한 봉우리인 1,860m의 광명정光明顶, 가장 험하다는 해발 1,810m의 천도봉天都峰이 꼽힌다. 광명정에는 기상청이 서 있고, 신선이 모여 살던 곳이라는 천도봉 주변에는 천연석실이 있다. 세 봉우리 주변은 황산의 비경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황산에서 인기 있는 바위 중 하나는 손오공이 먹다가 던진 복숭아가 떨어져서 생겼다는 ‘비래석飞来石’이다. 비래석은 높이 7.5m에 너비 2m 정도의 바위로, 보는 위치에 따라 복숭아처럼 보이기도 하고 칼처럼 보이기도 한다. 설악산의 흔들바위처럼 약간 들떠서 움직이는데 돌이 있는 곳이 좁아 많은 이들이 한 번에 오르기는 힘들다. 하지만 여자가 세 번 만지면 아들을 낳고 남자가 두 번 만지면 입신양명한다는 전설 때문에, 너도나도 바위를 만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바위와 소나무, 그리고 구름 황산의 두 번째 주인공은 소나무다. ‘봉우리 없이는 바위 없고 바위가 없으면 소나무가 없고 소나무 없으면 황산의 매력이 덜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나무는 황산을 이야기할 때 빠트리면 안 된다. 1,800m의 험준한 바위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를 보면 자연의 신비와 생명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이곳에는 수령 1,000여 년 이상 된 소나무도 많다. 수많은 소나무 중에서는 이름을 가진 소나무들도 있다. 연화봉과 천도봉 사이에서 황산을 찾는 손님을 환영하고 있는 영객송迎客松을 비롯해 배객송, 송객송, 공장송, 연리송 등 10그루의 소나무가 ‘황산의 10대 명송’으로 꼽힌다. 이중에서도 단결송团结松은 중국인의 재치를 느끼게 해주는 소나무다. 가지 수가 56개로, 한뿌리에서 56개의 가지가 나온 모습이 56개의 민족으로 이뤄진 중국과 같다고 해서 ‘단결송’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서해대협곡, 비경에 홀리다 황산은 1년에 200일 이상 구름에 가려져 있어 운산이라고도 불린다. 그래서 맑은 날 여행하면 운이 좋은 것 같지만, 정작 그렇지도 않다. 바다처럼 펼쳐진 구름이야말로 황산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구름이 가득 메운 황산 봉우리에 산들바람이라도 불면, 진짜 파도가 치는 것처럼 보인다. 서쪽에는 서해가 시작되는 ‘서해문西海门’, 동해가 시작되는 ’동해문東海门’이 있다 또 구름 사이로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일출도 꼭 지켜봐야 할 장관으로 유명하다. 귀신도 홀리는 신비로운 풍경이라는 뜻으로 ‘마환경구魔幻景区’라고 불리는 서해대협곡 루트는 환상적인 황산의 풍경을 선물한다. 아찔한 절벽과 웅장한 기암괴석 사이로 좁은 길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 든다. 한 사람 내려갈 정도의 너비로 만들어진 아슬아슬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현기증이 난다. 그러면서도 입은 끝없이 감탄사를 터트리고 손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분주하다. 서해대협곡을 트레킹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주로불간경 간경불주로走路不看景 看景不走路’라는 문구다. 길을 걸으면서 경치 구경하지 말고 경치 구경하면서 걷지 말라는 것. 절경에 빠져 무아지경 상태가 되면 갑자기 위험한 순간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산의 등산로는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더 주의가 필요하다. 황산에 있는 계단만 해도 수십만개. 어떤 코스로 돌아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황산을 여행하면 1만여 개의 계단을 오르내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험한 봉우리 사이에 난 계단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일단 계단을 따라 경치를 감상하면서 내려가기만 하면, 아래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올 수 있다. 서해대협곡 모노레일은 남쪽 석상石床봉 협곡 밑에서 출발해, 892.6m 거리를 올라간다. 2013년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모노레일 덕분에 무릎이 걱정인 어르신들도 얼마든지 서해대협곡의 절경을 품에 안을 수 있다. 황산 여행의 마무리는 따끈한 물에 지친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 수 있는 온천이 좋다. 황산 아래에 온천지역이 있어, 쉽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 황산의 대표적인 휴양온천인 ‘취온천’은 5성급 호텔 시설을 갖춘 리조트형 온천장으로, 녹차탕을 비롯해 각종 약재를 넣은 탕과 장미와 라벤더 등 꽃을 넣은 탕 등 60여 개의 노천탕을 갖추고 있다. 키즈 스파도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글·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 에디터 트래비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www.visitchina.or.kr *본문에 나오는 중국의 지명은 중국어 발음으로 적고 한자 음과 한자를 동시에 표시했다. 관광지, 사람 이름, 산 등 지명 이외의 것은 한자 음을 적고 한문을 병행 표기했다. ▶travel info 安徽省 Airline인천에서 황산공항까지 가는 직항편이 있어 편리하게 황산여행을 즐길 수 있다. 안후이성을 둘러보고 싶다면, 인천-허페이합비, 合肥 직항편을 이용해도 된다. 또 인천-상하이상해, 上海 직항편을 이용해, 상하이로 들어가 상하이와 항저우항주, 抗州와 함께 황산을 여행하는 경우도 많다. 상하이-허페이는 고속철로 3시간 걸린다. TIP숙소┃황산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황산 위에서 머물러야 한다. 백운호텔을 비롯해 황산 위에도 숙소들이 있으니 미리 예약할 것. 황산에 오르는 케이블카는 운곡케이블카와 옥병케이블카, 태평케이블카 등 3개다. 미리 지도를 보고 어떤 루트로 여행할 것인지 계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휘운가무쇼┃황산을 대표하는 공연으로 유서 깊은 후이저우 문화를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아름다운 황산을 새로운 각도로 만날 수 있어 추천할 만하다. 참고 웹사이트┃안후이성 www.ah.gov.cn 황산 www.huangshan.gov.cn 함께 가볼 만한 곳┃안후이성의 성도는 허페이다. 허페이는 중국의 대표적인 청백리인 판관 포청천의 고향으로, 포청천의 일대기를 볼 수 있는 포공사가 있다. 이곳에서는 포청천 사당과 함께 당시 상황을 밀랍인형으로 전시해 놓은 전시실,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세운 청풍각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또 허페이 시내에는 태평천국을 진압한 청나라 말기 정치가인 리홍장의 생가도 있다. 또한 안후이성에는 4대 불교 명산 중 하나인 구화산이 있는데 신라 김교각 스님이 지장보살로 추대된 곳으로 우리나라 불자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음악의 낙원, 영화의 낙원, 종로의 낙원… ‘낙원삘딍’이 말하길, 도시 속 도시 되리라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음악의 낙원, 영화의 낙원, 종로의 낙원… ‘낙원삘딍’이 말하길, 도시 속 도시 되리라

    ●도심 한 복판 건물 지하에 반찬가게·국밥집 말끔하게 단장된 입구를 따라 지하로 들어가자 완연히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포목상과 과일가게, 반찬가게 바로 옆에 간단한 안주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는 국밥집이 있다. 마치 동네 시장 같은 느낌이다. 조명이 침침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시장의 활기 있는 분위기가 잘 살지 않는 것은 아쉽다. 그러나 도시 한복판의 건물 지하에 이런 장소가 있으리라고 누가 예상할까. 그 위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 아니 다른 세상 여럿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1층 대부분은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와 주차장이고 여기서부터 2, 3, 4층은 자칭 ‘세계에서 가장 큰’ 악기상가다. 특이하게도 4층은 영화의 세계다. 원래는 허리우드 극장이었으나 이후 노인 전용 영화관과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가 공존했다. 2015년 서울아트시네마는 이전했지만 노인 전용 영화관은 아직 남아서 나름 성업 중이다. 꽤 넓은 옥상마당도 있어서 그 일부가 야외 공연장으로 사용된다. 그 주변으로 역시 악기상가와 관련된 공간들이 보인다. 그 위 5층에는 사무공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에서 굽어보는 것은 다름아닌 아파트다. 6층부터 15층까지, 모두 10개 층 149가구의 낙원아파트다. 9층부터 15층까지의 아파트는 무려 7개 층을 관통하는 수직 중정을 둘러싸고 있다. 아마도 서울 도심 내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공간의 하나일 것이다.  재래식 시장에서 시작해서 악기상가와 영화관, 사무실, 거기에 아파트까지 한 건물에 다 들어가 있는 도시 속의 도시, 이 건물의 원래 이름은 ‘낙원삘딍’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통상 낙원상가로 불린다. 건물 높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는 마치 여기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이렇게 이 건물이 갖는 고도의 복합성을 애써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낙원상가’도 ‘낙원아파트’도 아닌 ‘낙원빌딩’으로 통칭한다.   ●구도심 상주인구의 한 거점  2016년 3월 기존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 25개 구 중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구 1, 2위가 바로 중구와 종로구다. 이 두 구의 인구를 합쳐 봐야 28만 907명에 불과하다. 반면 서울 외곽인 송파구는 혼자서 무려 65만 6830명의 인구를 거느리고 있다. 사대문 안이 결국 종로구와 중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 구도심에 얼마나 사람이 살지 않는지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한양 인구가 약 30만명이었다고 하니 그때로 돌아간 것인가. 한편, 낙원아파트의 가구수인 149에 종로구의 가구당 인구인 2.12명을 곱하면 약 315.88명이다. 이 셈법이 맞는다면 사대문 안 상주인구의 0.1%가 넘는 사람들이 낙원아파트 단 한 동에 살고 있는 셈이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이다. 가히 구도심 상주인구의 한 거점이라고 할 만하다. 그들의 삶은 어떤 것일까. 여러 이야기들을 모아 보면 이렇다. -생활하기에 정말 편하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가까이 있다. 책을 사고 싶으면 교보라는 동네 서점에 간다. 아프면 서울대학병원이 가깝다. 산책하고 싶으면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가 지척이다. 택시와 버스, 지하철은 온 사방에 널려 있다. 근처에 교동, 재동, 운현 등 유서 깊은 초등학교도 여럿 있다. 장은 어디서 보냐고? 건물 지하가 시장이다. 그러니 내 집 냉장고가 클 필요도 없다. 근처에 먹을 곳, 마실 곳은 차고 넘친다.  -주민 중 일부는 건물 내, 혹은 인근에서 일한다. 따라서 직주근접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어지간한 시내 중심부의 직장은 걸어서 출퇴근한다.  -건물이 동서로 길어서 아파트는 중정을 중심으로 남향과 북향이 선명하게 나뉜다. 대체로 노인들은 남향을 선호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경관이 좋은 북향을 마다하지 않는다. 남쪽으로는 빌딩 사이로 남산이 보이는 정도지만 북쪽으로는 북한산과 궁궐이 눈앞에 펼쳐진다.  -9층의 중정은 일종의 마을 광장 역할을 한다. 가끔 주민 회의가 열린다는데 상당히 장관일 듯하다. 아이들이 뛰거나 공을 가지고 놀기도 해서 이를 자제해 달라는 ‘동네스러운’ 안내문이 붙어 있기도 하다. ●설계자 김수근 설·일본인 건축가 설 등 난무  낙원빌딩의 건립 과정은 비교적 소상히 알려져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시장이 있었다. 여기에 도로를 내야 했는데 시장 상인들이 갈 데가 없어서 그들에게 지하 공간을 마련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비용을 민자로 충당하기 위해서는 건설회사를 끌어들여야 했고, 그들에게 이익구조를 만들어 줘야 했다. 결국 대규모의 상가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상인들이 다른 곳으로 쫓겨나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남아 개발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것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오히려 뼈아프게 배워야 할 점이다. 서울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불도저 시장’ 김현옥이 어김없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건물 완성 직후인 1970년 4월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으로 물러난 사람이지만, 이 건물만큼은 워낙 튼튼하게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결과적으로는 도로 위에 지은 건물인 셈이 되어 지금도 아파트 소유자들이 토지세가 아닌 도로세를 내는 등 특이한 점이 많다.  애초에 이런 건물은 누가 구상했으며 그 배경에는 어떤 생각이 있었을까. 이론적으로 보자면 고밀도의 복합건축을 통해 직주근접을 가능케 하고 더 많은 인구를 도심으로 유입시켜야 한다는 등, 새로운 도시에 대한 꿈이 있지 않고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건물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와 사뭇 다른 듯하다. 설계자만 해도 김수근 설, 일본인 건축가 설, 김만성(연합건축) 설 등이 난무한다. 설계자가 누구였던지 간에 이 정도의 대규모 복합건축물을 지으면서 당연히 가졌을 생각의 기록과 흔적은 아쉽게도 그리 전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커다란 청사진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다소 섬뜩한 의혹도 갖게 된다. 손정목 교수가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서 토로한 것처럼 ‘오늘날에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정말 그랬다면 그들은 어쩌다 이 건물을 지은 것일까. ●9층 중정에서 만나는 고요함과 경건함  건물이 놓인 삼일대로는 가회동에서 도심을 거쳐 한남동과 강남 일대를 지나 경부고속도로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간선도로다. 왜 이 지점에 있던 시장을 철거해가면서까지 도로를 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된다. 안국동 쪽에서 보면 건물이 놓인 방향이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종로 쪽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둘 다 삼일대로의 완만한 곡선 때문인데, 결과적으로 이 큰 건물은 어디에서 봐도 뭔가 불편한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건물이 상당히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그 하부의 도로를 달리는 차량으로 인해서 더욱 그렇다. 처음 가는 사람들은 어디가 어딘지 알기 어렵지만 동선은 나름 신경 써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지하의 낙원시장으로 가는 몇 개의 출입구가 있다. 그리고 역시 상부의 악기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여럿 보인다. 건물 주변에도 악기상들이 많은데 자료에 의하면 이 인근 지역에 먼저 악기상들이 있었고 낙원상가로 대거 입점한 것이 오히려 나중이다. 건물 하부에 신호등까지 갖춰진 사거리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엘리베이터와 실내 계단이 놓여 있어서 동선의 중심을 이룬다. 악기상가 및 영화관으로 가는 동선과 아파트로 가는 동선은 나름 섬세하게 구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영화관이 있는 4층에는 아파트로 가는 엘리베이터의 조작 버튼이 아예 없다. 서로 다른 기능을 수직으로 구성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고민한 결과다. 복합건축의 현실적 측면이다.  흥미로운 것은 건물의 관리 상태다. 먼 거리에서 본 낙원빌딩은 낡은 모습에 에어컨 실외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남루한 모습이지만 의외로 건물 내부로 들어갈수록 건물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파트의 주 입구 주변에는 건립 당시의 정초석(‘1967. 10’)과 건물명패(‘낙원삘딍’), 그리고 벽 마감재가 매우 정성스럽게 유리벽 안에 보존되어 있다. 지하의 낙원 시장으로 들어가는 주 입구도 새로 손을 본 듯 잘 정비되어 있는 모습이다. 계단의 황동 난간은 아직 윤기가 잘잘 흐르고 바닥의 테라조(‘도키다시’)의 상태도 별다른 흠집이 없을 정도다. 여기저기에 있는 비상구 안내 사인들도 아마도 이전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에 내리면 중정이 있다. 특이하게도 소음이 거의 없다. 혼잡한 도시 한복판에서 그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위를 올려다보면 햇볕이 부옇게 걸러져 들어온다. 비싸거나 화려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건물이지만 이 공간만큼은 매우 품위가 있다. 양쪽 벽면의 거대한 부조는 만든 솜씨가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이곳이 소중한 삶의 터전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 중정은 밝고 포근하다. 그리고 자전거가 몇 대 있을 뿐 쓰레기 하나 없다. 아파트 주민들이 이 중정을 마을의 중심으로서 매우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 멀리 천장 높은 곳에 아주 희미하지만 상량문이 보인다. 한자로 쓰여 있지만 해독하면 1969년 3월 28일이다. 검색해 보면 김수환 추기경이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 서품을 받은 날이다. 우연이겠지만 왠지 이 공간에서 종교적인 경건함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한국서 가장 복합적 성격 강한 건물의 사례  결과만을 놓고 보았을 때 낙원빌딩은 아직도 한국에서 가장 복합적 성격이 강한 건물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건물의 입지와 형태, 기능을 둘러싼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도시 속의 도시’라는 주제가 한 건물 안에 집약된 경우로는 그 직전에 완성된 세운상가와 더불어 여전히 독보적이다. 도시에 대한 생각 자체가 일천했던 1960년대 후반에 이런 개념의 건물을 지었다는 것은 실로 놀랍다. 비록 그 과정의 상당 부분이 우연이었다고 해도 그 결과물의 중요성은 떨어지지 않는다. 이 건물이 제시하는 삶의 풍경은 여전히 철두철미하게 ‘반전원적’이고, 그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도시적’이다. 한국 도시의 밀도와 복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낙원빌딩이라는 ‘우발적’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트럼프의 딸, 자식 사진 공개…美대선은 가족들의 전쟁?

    사실상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69)의 큰 딸 이반카(35)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식들 사진을 공개해 화제에 올랐다.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간) 이반카는 딸 아라벨라(4)와 아들 조셉(2)이 갓 태어난 시어도어를 안고있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반카가 '내 심장을 녹인다'라고 표현할 만큼 이 사진은 남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미 언론들이 개인 SNS 계정에 공개된 이 사진에 주목하는 이유는 역시 할아버지가 트럼프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대로 트럼프는 3번의 결혼을 해 가족 구성이 복잡하다. 먼저 트럼프는 1977년 체코 출신 모델 이바나와 결혼한 후 1992년 이혼했으며 이듬해 미인대회 출신인 메이플스와 결혼했다. 그러나 6년 후인 1999년 메이플스와 이혼한 트럼프는 현재까지 슬로베이니아 출신의 모델 멜라니아(45)와 살고있다. 이처럼 3번의 결혼을 통해 트럼프는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를 비롯해 총 다섯 명의 자녀를 두고있다. 이중 미디어의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은 역시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 이반카(35)다. 빼어난 외모와 몸매로 모델로도 활동한 바 있는 이반카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을 졸업해 그야말로 미모와 지성을 겸비했다. 아버지의 대선 출마와 더불어 더욱 큰 주목을 받은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도 열정적으로 선거 지원에 나서 시민들의 큰 호응을 이끌었다. 트럼프 선거캠프 측도 이반카를 주요 마케팅 수단으로 삼아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최종병기'라고 평가할 정도. 이같은 이유로 이반카가 자신의 SNS 계정에 아이들의 모습을 올리는 것을 단순한 '자랑질'로 보는 사람은 없다. 특히 여성에 대한 '막말'로 잦은 구설에 올랐던 트럼프 입장에서는 이반카의 활동이 반 여성적 이미지를 완화시켜주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이반카는 29일에도 시어도어의 독사진까지 올리며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차기 대통령 경쟁자인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측도 남편 빌 클린턴은 물론, 외동딸 첼시(36)까지 캠프에 합류시켜 맞불을 놓고있다. 첼시 역시 임신한 몸으로 어머니의 유세현장에 동행, 지지를 호소했으며 힐러리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도 손수 관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뉴욕 맨해튼 거리를 산책하는 일가족의 모습이 사진과 함께 보도된 바 있다. 이 사진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미 민주당 대선후보, 그리고 딸 첼시와 사위 마크 메즈빈스키의 모습이 모두 담겨있다. 특히 첼시는 딸 샬럿이 타고있는 유모차를 끌고 있으며 그녀의 배 속에는 올해 여름 태어날 둘째가 자라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부모들끼리는 서로 물어뜯고 싸우지만 이반카와 첼시는 알고 보면 '절친'이라는 사실이다. CNN에 따르면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후원회장을 맡을 정도로 친하다고 전했다. 또한 두 사람 모두 맨해튼에 살며 남편도 유대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글로벌 시대] 지구온난화와 더운 인도/이옥순 인도문화연구원장

    [글로벌 시대] 지구온난화와 더운 인도/이옥순 인도문화연구원장

    “찜질방의 불가마에 들어갔을 때와 똑같아요.” 젊은 날에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오랫동안 유학한 내게 누가 델리의 날씨가 얼마나 덥냐고 물을 때마다 답하는 말이다. 연중 가장 더운 시기인 5~6월에는 수은주의 눈금이 섭씨 45도를 가볍게 넘긴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이 무렵엔 하루 중의 최저온도가 섭씨 3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지가 식을 사이가 없이 종일 끓어오르는 것이다. “비구름이 벌판 위로 밀려오면 내 가슴은 뛰노라.” 19세기에 델리에서 활동한 유명 시인 갈리브가 이렇게 노래한 것은 정신까지 혼미하게 만드는 여름날에 빗방울을 선물로 데리고 오는 비구름의 출현이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대대륙성기후를 가진 델리와 갠지스 평원에서는 비가 내리거나 비가 올 듯이 하늘이 잔뜩 찌푸린 날이 ‘좋은 날씨’로 여겨진다. 당연히 몬순은 신의 축복이다. 지난 19일 델리에서 멀지 않은 서북부 사막지대 라자스탄에서 기온이 섭씨 51도를 기록, 인도 기후관측 사상 최고를 경신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내가 인도에서 보낸 참을 수 없는 불볕더위, 수많은 사람이 더위로 사망하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더위’가 떠올랐다. 마침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역사상 가장 더운 5월이 이어져서 인도의 더위에 대한 나의 추억은 지구온난화의 생각으로 흘러갔다. 지구 곳곳에서 들려오는 각종 기상이변이 점점 심해지고 잦아지는 느낌이다. 다가올 2100년, 즉 지금부터 약 100년 뒤에는 지구의 기온이 현재보다 섭씨 1도에서 섭씨 3.5도까지 오를 것이라는 나쁜 전망이 오래전에 제기됐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여러 가지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기록적 폭염’, ‘국지적 호우’, ‘최악의 가뭄’이라는 제목을 단 기상 이변의 뉴스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 영토의 3면이 바다이고 북쪽에 눈 덮인 장대한 히말라야를 가진 대륙 크기의 인도도 기상 이변에선 예외 지역이 아니다. 인도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이미 충분히 더운 열대지방 인도의 평균기온이 섭씨 0.6도가량 더 더워졌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으로 안다만 제도의 여러 섬과 동해안과 서해안의 낮은 지대가 조만간 물속에 잠길 거라는 예측도 나왔다. 가장 큰 문제는 세계의 지붕이자 인도의 지붕인 히말라야의 빙하가 빠르게 녹는다는 사실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눈의 거처’라는 뜻을 가진 히말라야는 이름처럼 높은 봉우리마다 만년설을, 골짜기마다 거대한 빙하를 품고 있다. 빙하의 주요한 역할은 인도의 갠지스강, 파키스탄 영토의 인더스강, 인도를 거쳐 방글라데시로 흐르는 브라마푸트라강, 중국의 양쯔강 상류에 물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 히말라야 빙하가 지구온난화로 줄어들면서 눈과 빙하를 강의 발원지로 둔 지역과 나라의 많은 주민들이 물 부족으로 고통을 받는다. 거대한 빙하가 녹은 많은 양의 물이 바다로 흘러가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홍수가 지는 결과도 생긴다. 그렇게 되면 인근 주민은 물론 일대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의 존재도 위태롭다. 슬프게도 그 징후는 도처에서 이미 시작됐다. 인도뿐만 아니라 전 지구의 미래가 걸린 지구온난화의 문제에 개인과 국가가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시간이 넉넉하지만은 않다.
  • [In&Out] 프로축구, 리그보다 승부조작 뿌리뽑는 게 우선이다/박지훈 스포츠문화연구소 사무국장·변호사

    [In&Out] 프로축구, 리그보다 승부조작 뿌리뽑는 게 우선이다/박지훈 스포츠문화연구소 사무국장·변호사

    프로축구 전북 소속 스카우터가 2013년 시즌 중 심판에게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말 경남FC 사태에 연이어 심판 매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전북은 이번 사건이 개인적 일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 한다. 아울러 심판에게 건넨 금액이 500만원으로 그다지 크지 않다는 설명도 빠트리지 않는다. 사죄의 진정성도 의심스럽지만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프로축구에서 처음 승부조작 사건이 불거진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승부조작에 대한 안이한 인식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 사법부는 승부조작을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혹은 ‘업무방해죄’로 처벌한다. 그러나 심판 매수를 비롯한 승부조작은 본질적으로 ‘사기죄’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경기장을 찾아 입장료를 지불하고 경기를 관전하는 관중들에게 사기를 친 죄는 물론이고, 중계방송으로 경기를 시청하는 팬들에게 사기를 친 죄도 성립한다. 프로축구연맹에 거액의 중계권료를 지불하고 중계권을 구매한 방송사 역시 직접적인 피해자에 해당한다. 각본대로 진행될 축구경기 중계권을 구매할 방송사는 없다. 또한 승부조작 대상 경기에 베팅해 손실을 본 ‘스포츠토토’ 구매자 역시 피해자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승부조작이라는 ‘범죄’로 인한 피해는 확정하기 힘들 정도로 광범위하다. 피해액은 도무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이는 심판에게 건넨 금액이 많고 적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전북의 기대(?)와는 달리 “심판에게 건넨 금액이 크지 않다”는 항변이 면죄부 내지 정상 참작 사유로 작용할 여지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전북이 ‘적은 금액’을 항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법리적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지상정상 그러한 항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스카우터의 개인적 비리라고 ‘해명’하는 대목에 이르면 전북은 아직도 이번 사건의 본질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명이 궁색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비상식적이다.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며 5·18 학살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스카우터가 자신의 업무 영역을 한참 벗어나는 일을,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감행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할 만한 설명도 전혀 내놓지 못했다. 만일 정말로 스카우터가 개인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면 이건 또 다른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다. 이는 전북이 프로구단으로서 기본적인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했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다. 경험으로부터 깨닫지 못하는 자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다. 2011년 선수 수십 명이 연루된 대형 승부조작 사건 당시 리그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급급해 서둘러 사태를 봉합하고 리그를 강행한 프로축구연맹이야말로 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는 사이 승부조작은 근절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판 매수’라는 형태로 진화를 거듭했다. 썩은 환부를 도려내지 못한 의사에게 또다시 메스를 쥐게 할 사람은 없다. 스스로 직분을 저버린 프로축구연맹은 이번 사건의 관련자들을 단죄할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스포츠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공동체의 작동 원리를 체험하고 익힐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혼탁함이 그대로 재현되는 스포츠는 부정(不正)과 부조리의 학습 도구에 지나지 않아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전북은 구단을 해체할 각오로 반성하고 수사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프로축구연맹은 즉시 리그를 중단하고 오로지 승부조작의 뿌리를 뽑아내는 데에만 전념해야 한다. 더이상 스포츠를 수단 삼아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끝도 없이 흐르는 콧물…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끝도 없이 흐르는 콧물…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만일 당신이 감기에 걸렸거나 알레르기가 있다면 이따금 콧물이 끝없이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 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코를 풀어도 코만 헐 뿐 콧물이 흐르는 것을 막지 못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콧물은 대체 어느 부위에서 나오길래 끝이 없는 것일까. 미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닷컴의 인기 코너 ‘라이프스 리틀 미스터리스’(삶의 작은 미스터리들)가 최근 전문가의 조언을 인용해 그 이유를 공개했다. 미 뉴욕대병원 이비인후과 전문의 리처드 레보위츠 박사는 “실제로 우리 몸은 끊임없이 점액(콧물)을 만들어낸다”면서 “코를 풀면 즉시 몸에서는 더 많은 점액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점액은 대체 어디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레보위츠 박사는 “점액은 코와 목, 폐를 포함한 기도를 두르고 있는 점막샘에서 생성된다”면서도 “우리가 풀어낸 대부분 점액은 코안(비강)을 두르고 있는 점막샘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종종 점액이 코곁굴(부비강)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코안에서 그 많은 콧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참고로 코곁굴은 콧구멍이 인접해 있는 뼛속 공간으로, 총 4개가 있으며 굴처럼 만들어져 공기로 차 있다. 하지만 레보위츠 박사는 “실제로 부비강에서 만들어지는 점액의 양은 매우 적다”고 말한다. 박사의 말로는 우리 몸에서 콧물 즉 점액은 대부분 기도에서 만들어지며 하루 1ℓ 이상이 생성된다. 그야말로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지만, 평상시 몸 상태라면 점액은 알아서 제거되므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코안에 있는 점액은 비강 뒤로 이동한 뒤 섬모(cilia)로 불리는 솜털 같은 세포에 의해 다시 목 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나면 점액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매일 온종일 점액을 삼키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프면 이런 점액은 더 진해지거나 이를 제거하는 정상적인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으며, 우리 몸은 좀 더 점액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이 일어나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콧물이 우리 몸에서 나오는지 느끼기 시작하고 정말로 끝없이 콧물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또한 코를 풀어도 효과 없이 여전히 코가 막혀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경우 문제는 점액 그 자체는 아닐 수도 있지만, 비강 내벽이 부어올라 결국 코가 막히는 것이라고 레보위츠 박사는 설명했다. 코가 계속 나오는데 안 풀 수 없겠지만, 되도록 휴지보다는 화장실에서 해결해야 코가 헐지 않을 것이다. 콧물이 너무 심하게 나온다면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거나 주사를 맞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안일지도 모르겠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알쏭달쏭+] 콧물은 대체 어디서 나오길래 끝이 없나?

    [알쏭달쏭+] 콧물은 대체 어디서 나오길래 끝이 없나?

    만일 당신이 감기에 걸렸거나 알레르기가 있다면 이따금 콧물이 끝없이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 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코를 풀어도 코만 헐 뿐 콧물이 흐르는 것을 막지 못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콧물은 대체 어느 부위에서 나오길래 끝이 없는 것일까. 미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닷컴의 인기 코너 ‘라이프스 리틀 미스터리스’(삶의 작은 미스터리들)가 최근 전문가의 조언을 인용해 그 이유를 공개했다. 미 뉴욕대병원 이비인후과 전문의 리처드 레보위츠 박사는 “실제로 우리 몸은 끊임없이 점액(콧물)을 만들어낸다”면서 “코를 풀면 즉시 몸에서는 더 많은 점액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점액은 대체 어디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레보위츠 박사는 “점액은 코와 목, 폐를 포함한 기도를 두르고 있는 점막샘에서 생성된다”면서도 “우리가 풀어낸 대부분 점액은 코안(비강)을 두르고 있는 점막샘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종종 점액이 코곁굴(부비강)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코안에서 그 많은 콧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참고로 코곁굴은 콧구멍이 인접해 있는 뼛속 공간으로, 총 4개가 있으며 굴처럼 만들어져 공기로 차 있다. 하지만 레보위츠 박사는 “실제로 부비강에서 만들어지는 점액의 양은 매우 적다”고 말한다. 박사의 말로는 우리 몸에서 콧물 즉 점액은 대부분 기도에서 만들어지며 하루 1ℓ 이상이 생성된다. 그야말로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지만, 평상시 몸 상태라면 점액은 알아서 제거되므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코안에 있는 점액은 비강 뒤로 이동한 뒤 섬모(cilia)로 불리는 솜털 같은 세포에 의해 다시 목 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나면 점액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매일 온종일 점액을 삼키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프면 이런 점액은 더 진해지거나 이를 제거하는 정상적인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으며, 우리 몸은 좀 더 점액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이 일어나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콧물이 우리 몸에서 나오는지 느끼기 시작하고 정말로 끝없이 콧물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또한 코를 풀어도 효과 없이 여전히 코가 막혀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경우 문제는 점액 그 자체는 아닐 수도 있지만, 비강 내벽이 부어올라 결국 코가 막히는 것이라고 레보위츠 박사는 설명했다. 코가 계속 나오는데 안 풀 수 없겠지만, 되도록 휴지보다는 화장실에서 해결해야 코가 헐지 않을 것이다. 콧물이 너무 심하게 나온다면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거나 주사를 맞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안일지도 모르겠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서울광장]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할 목표가 아니다/강동형 논설위원

    [서울광장]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할 목표가 아니다/강동형 논설위원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고귀한 즐거움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라고 했지만 ‘고귀한 즐거움’부터 머리를 아프게 한다. 사전에는 행복을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라 정의하고 있지만 모호하기만 하다. 행복이란 단어가 추상적이면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개념인 탓이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꾸뻬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책을 찾아봤다. 이 책의 주인공이 여행을 통해 찾아낸 행복의 조건은 모두 23가지다. 행복조건의 첫 번째 비밀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몇 개를 더 소개하면 ‘아름다운 산길을 걷는 것’,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 ‘좋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 등 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것과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라는 것도 행복의 조건이다. 행복의 조건들은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며, 대부분 비물질적이고 마음먹기에 달렸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는 점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발표하는 각종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행복 관련 지수는 대체로 낮다. 낮다는 표현보다는 꼴찌 수준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유엔에서 지난 3월 내놓은 ‘2016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조사 대상 157개국 가운데 58위였다. 전체적으로는 중상위 그룹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서는 29위였다. 전체 순위에서 2015년 47위였던 것이 11위나 떨어졌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외형적으로 수출 규모 세계 6위,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행복지수가 상대적으로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는 GDP가 증가한다고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에 대해 미국의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이하일 때는 행복지수도 올라가지만 그 이상이 되면 정체 상태를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경제성장 효용체감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조사하고 있는 OECD의 ‘보다 나은 삶의 지수’에서도 만년 꼴찌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 72%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남성과 여성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초등학교 졸업자(53%)와 대졸자(83%)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 조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우리 국민의 약 28%가 고립무원의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람이 어려움에 부닥쳐 도움을 청할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없다는 건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성인뿐만 아니라 아동의 삶의 질도 매한가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복지포럼 5월호에 게재된 OECD 아동복지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이들은 학업 성취는 뛰어나지만 아동의 권리인 삶의 질은 최하위였다. 아동이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48분으로 OECD 국가 평균 2시간 30분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1시간 이하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아동 교육이 현재의 삶의 질 개선에 있지 않고 아동 발달 교육에 치우쳐 있는 게 문제다. 아동들이 나이가 들면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을까. 한국노동연구원의 우리나라 연령별 행복도를 보면 암울하기만 하다. 연령별 행복도는 보통 청소년기에는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다가 40대나 은퇴 시기가 다가오는 50대 후반에 가장 낮고, 65세 이상 노년층이 되면 높아지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행복도가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노인 빈곤율 1위와 노인 자살률 1위라는 우울한 지표가 이를 방증한다. 각종 국내외 지표는 우리나라가 잘사는 나라지만 국민은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헬조선이나 흑수저니, 양극화니 하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우리의 자화상이다. 지금부터라도 정치권은 물론이고 모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종합적인 처방전이 나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개인적인 목표가 아니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 목표가 돼야 할 것이다. yunbin@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오래된 아름다움(김치호 지음, 아트북스 펴냄) 고미술 컬렉터이자 경제학자인 저자가 고미술이란 무엇이며 고미술 컬렉션은 어떠한 속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 한국미의 원형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면서 ‘컬렉션’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본업이 경제학자인 저자가 들여다본 고미술 컬렉션 시장은 꼭 경제학 이론대로 움직이지는 않는 독특한 곳이다. 특히 컬렉션 발전사를 보면 비이성적이고 즉흥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으며, 자본과 미가 컬렉션의 장에서 소통하고 화해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를 ‘차가운 자본의 논리를 넘어 따뜻한 감성과 열정으로, 때로는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으면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라고 표현한다. 360쪽. 3만원. 기억 속의 보좌신부님(안병영 지음, 흰물결 펴냄) 대학에서 35년여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육부 장관을 두 차례나 역임하며 국정에 참여했던 안병영 전 연세대 교수의 에세이집이다. 10여년 전 강원도 고성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면서 쓴 지난날 삶의 기록을 묶었다. 해방과 6·25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세계화 등 한국 현대사의 가장 격동적인 시간을 지내 온 그가 어린 시절부터 대학 시절, 제철공장에서 일하며 노동과 공부를 병행했던 오스트리아 유학 시절 등 세월 속에 묻혀 있던 각별한 인연들과 사유, 삶의 단상들을 올올이 엮어 냈다. 그의 따뜻하고 담백한 글을 따라가다 보면 자기 내부로 눈을 돌려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을 만들어 가는 지성을 만날 수 있다. 191쪽. 1만 3000원. 옛날 책도 가끔은 쓸모가 있지(엘리자베스 아치볼드 지음, 서민아 옮김, 스윙밴드 펴냄) 11세기 몬테카시노의 수도사로 아랍 문헌들을 라틴어로 번역했던 콘스탄티누스 아프리카누스는 양파씨와 금불초, 참새 뇌, 야자 수나무 꽃, 백향목으로 만든 ‘정력 강화제’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에서 널리 읽히고 전파됐던 각종 문헌 자료를 연구해 물 위를 걷는 법, 투명인간 되는 법, 예쁜 아이 잉태하는 법 등 각종 처세술과 노하우, 요리법, 연금술 등을 선별해 엉뚱 발랄한 유머스러움으로 전한다. 다양한 문헌에서 발췌한 178개의 실용적인 조언들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이다. 352쪽. 1만 5000원. 전쟁이 만든 나라, 미국(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저자의 전작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미국은 드라마다’에 이은 ‘주제가 있는 미국사’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역사학자인 이언 모리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저서 ‘전쟁의 역설’에서 전쟁은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류가 찾아낸 유일한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강준만 교수는 이 책에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 대해 ‘전쟁의 축복’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설명한다. 미국은 독립전쟁, 미국·멕시코 전쟁, 남북전쟁 등을 거치면서 정체성이 형성됐고, 이후에도 전쟁을 통해 제국으로 거듭났다.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는 188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의 70년간을 다뤘다. 360쪽. 1만 6000원. 삶과 나이(로마노 과르디니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독일 철학자이자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1885~1968)의 삶에 대한 통찰을 담은 강연록이다. 저자는 삶의 특정 시기를 찬양하는 통념에 반대한다. 청춘의 가치가 절대화되고, 노년의 가치가 잊혀 가고 있는 오늘날의 상식을 비판한다. 노년기야말로 죽음의 의미를 진정으로 성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하루하루, 모든 한 해 한 해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생생한 시기들”이라면서 “모든 삶의 시기가 전례 없이 새롭고 유일하며 또한 영원히 사라져 가는 것이라는 사실, 바로 이 점에서 인간 삶의 긴장, 즉 바로 그때 그 시기의 삶을 살려는 아주 내밀한 충동이 나온다”고 일깨운다. 192쪽. 1만 2000원.
  • 정의화 국회의장 “국회법 거부권 행사, 대의민주주의에 도전”

    정의화 국회의장 “국회법 거부권 행사, 대의민주주의에 도전”

    정의화 국회의장은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상시청문회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과 관련해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정 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제68주년 국회 개원 기념식’ 기념사에서 “이것은 국회 운영에 관한 법률에 대해 행정부가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붙여 재의를 요구한 것”이라며 “아주 비통하다. 참담하다”는 심정을 밝혔다. 이어 “물론 재의 요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긴 하지만 국회 운영에 관한 것은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야말로 국회의 효율성을 높이고 일 잘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법이었다”며 “이 법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국회 운영에 관한 국회의 자율성을 극히 존중해야 한다”면서 “국회 운영에 관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삼권분립의 기본 구조에 대한 지대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또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런 일로 또다시 정부와 국회 간 대립과 갈등이 벌어져 참으로 유감이고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정치 전반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며 “국민이 열망하는 정치혁신을 위한 논의는 20대 국회에서 곧바로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26년 만에 태극마크 단 아파치, 한국 상륙!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26년 만에 태극마크 단 아파치, 한국 상륙!

    아파치(Apache). 원래는 북미 대륙 인디언의 이름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단어를 들으면 인디언보다는 헬리콥터를 떠올릴 것이다. 1990년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가 흥행하기도 했고, 비슷한 시기 걸프전에서 아파치의 눈부신 승전보가 연일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영화와 게임, 장난감 등을 통해 너무도 친숙한 이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쟁과 영화를 통해 그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이 아파치 헬기는 단숨에 세계 각국 군대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되어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우리 육군도 1990년대 초반부터 아파치 헬기를 도입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육군은 아파치 공격헬기 소요를 제기한지 26년 만에 드디어 아파치 공격헬기의 최신 버전인 AH-64E 아파치 가디언(Apache Guardian)을 인도받게 됐다. 도대체 무슨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소요제기부터 인도까지 26년이나 걸렸을까? 아파치를 향한 일편단심 우리 군이 공격헬기라는 물건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 베트남전에 참전해 미군의 헬리본(Heliborne) 작전을 지켜보면서부터였다. 대부분의 국토가 울창한 열대우림이었던 베트남에는 전차와 장갑차가 움직일 수 있는 도로가 많지 않았다. 정찰기가 숲 속을 이동하는 베트콩을 발견하더라도 숲에서는 전차나 장갑차로 속도를 낼 수 없어 놓치기 일쑤였고,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대안이 바로 헬리콥터였다. 헬기는 전차나 장갑차와 달리 3차원 공간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헬리본 작전은 바로 이러한 헬기의 3차원 고속 기동 능력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헬리본 작전은 일명 건쉽(Gunship)과 슬릭(Slick)의 콤비로 이루어졌다. 밀림 상공을 비행하던 편대가 숲 속의 적을 발견하면 즉시 개틀링 기관포와 로켓탄, 중기관총 등으로 중무장한 건쉽이 날아가 지상을 초토화시킨다. 뒤이어 병력을 태운 슬릭이 날아가 지상에 전투병력을 내려 잔적을 소탕하는 개념이 일반적인 헬리본 작전의 유형이었다. 이 헬리본 작전에서 화력지원을 담당하던 건쉽 헬기는 좀 더 많은 무장을 싣고 적의 사격에도 견딜 수 있는 방탄 소재를 갖추는 개량을 거듭하며 최초의 공격헬기 AH-1 코브라(Cobra)로 발전했고, 코브라 헬기는 베트남전이 끝날 때까지 밀림 상공을 종횡무진 휘저으며 위력을 발휘했다. 베트남전이 끝난 후 공격헬기의 상대는 베트콩에서 바르샤바조약기구(WTO)군의 전차부대로 옮겨갔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 국가들의 동맹기구인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동유럽 지역에 무려 8만여 대의 전차를 배치하고 서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위협했다. 당시 NATO의 전차 전력은 3만여 대에 불과했기 때문에 2.6배나 차이나는 공산권과의 전차 전력 격차를 줄여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공격헬기였다. 기관포와 미사일, 로켓탄 등의 무장을 갖춘 공격헬기는 NATO의 시뮬레이션 결과 1대가 추락할 때까지 16~18대 이상의 전차를 파괴할 수 있다고 평가됐다. 그러나 1982년 이스라엘이 AH-1S 공격헬기를 이용, 1대의 공격헬기가 추락할 때까지 무려 80대의 전차와 장갑차를 격파한 기록이 공개되면서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공격헬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T-34 전차에 짓밟힌 아픈 기억이 있고, 항상 북한에 비해 전차 전력이 열세였던 우리나라에게 공격헬기라는 무기는 반드시 가져야 하는 무기였다. 남베트남의 패망과 주한미군 7사단의 철수 등으로 안보 정국이 불안해진 상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AH-1 공격헬기를 판매해줄 것을 미국에 강력히 요구했고, 1978년 AH-1J 씨-코브라(Sea Cobra) 공격헬기 8대를 도입, 극비리에 운용을 개시했으며, 1988년부터 AH-1S/F 기종 70여 대가 추가로 도입됐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1991년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이 아파치 등 공격헬기 전력에 큰 피해를 입은 것을 심각하게 인식한 북한이 보병 휴대용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과 대공포 전력을 급속도로 증강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에 집중 배치된 일명 ‘화승총’ 보병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은 유효 사정거리 4.5km 수준의 적외선 추적 방식 미사일인데, AH-1S 공격헬기가 운용하는 주력 무장인 토우(TOW) 대전차 미사일보다 사정거리가 길었다. 즉, 공격헬기가 표적에 접근하기 전에 미사일 공격을 받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숲속에 숨어 갑자기 발사하면 공격당하는 입장에서는 대처할 방법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우리 군 공격헬기 부대의 생존성이 크게 취약해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군 내부에서는 신형 공격헬기 도입 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가장 먼저 물망에 오른 것이 아파치였다. 걸프전에서 아파치는 이라크군의 밀집 방공망을 휘저으며 1000여 대의 전차와 장갑차는 물론 야포와 대공포 진지 150개소 이상을 초토화시키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으며, 종종 한국에 전개되어 연합훈련을 통해 한국군 관계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가격이었다. 1988년부터 도입된 AH-1S 공격헬기의 가격은 대당 110억 원 수준이었지만, 1990년대 초반 AH-64A 공격헬기의 대당 가격은 옵션에 따라 AH-1S의 2~3배 이상을 호가했다. 더욱이 1990년대 중반에는 노후화가 심각한 500MD 헬기의 대체를 위한 한국형 경헬기사업(KLH)에 모든 예산이 집중되었던 시기였고, 설상가상으로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육군은 아파치 도입의 꿈을 접어야 했다. 아파치여야 하는 이유 육군은 지난 30여 년간 아파치를 원했고, 다른 여러 대안을 제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결국 아파치를 손에 넣게 되었다. 그렇다면 아파치의 그 무엇이 육군을 이렇게도 집착하게 만들었을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아파치의 압도적인 성능을 꼽는다. 아파치 36대가 도입되면 서부전선의 전장 판도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AH-64E 공격헬기의 메인로터 위에는 초코파이(?)처럼 생긴 둥근 물체가 설치되어 있다. 이것이 일명 롱보우 레이더(Longbow Radar)라고 불리는 AN/APG-78 레이더이다. 이 레이더를 갖춤으로써 AH-64E는 공격헬기를 뛰어 넘어 ‘미니 조기경보기’ 수준의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 레이더를 갖춘 아파치 헬기는 반경 8km 내의 지상 및 공중 표적 1000개를 탐지, 이 가운데 256개의 표적을 추적하여 가장 위협도가 높다고 식별된 16개의 표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 또한 이 레이더를 통해 탐지한 표적 정보를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아군에게 전파해줄 수 있다. 즉, 전장 상공에 롱보우 레이더를 탑재한 AH-64E 1대만 떠 있으면 인접한 아군은 강력한 공중 화력 지원은 물론 적이 어느 건물, 어느 바위 뒤에 숨어 있는지 정보를 제공 받으며 일방적인 전투를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를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지도 전체를 볼 수 있는 불법 프로그램인 맵핵(Map hack)에 비교하기도 할 정도다. 옵션으로 선택해야 하는 사항이지만, AH-64E는 무인기와의 연동 작전 능력도 가지고 있다. 적의 대공포 위협 정도가 심각한 지역은 직접 들어가서 전투하는 대신 2~4기의 무인기를 직접 통제해 정찰 및 공격 임무를 수행할 수 있고, 필요할 경우 2~4대의 공격헬기와 8~16대의 무인기를 하나의 공격편대군으로 묶어 목표물에 막대한 화력을 퍼붓는 공습 작전 수행도 가능하다. 하지만 AH-64E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능은 역시 다른 경쟁 기종들을 압도하는 강력한 공격 능력이다. AH-64E는 현존하는 모든 전차나 장갑차량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건물과 벙커 등에 대해서도 강력한 파괴 효과를 갖는 대형 대전차 미사일인 헬파이어(Hellfire) 미사일을 무려 16발이나 탑재할 수 있다. 이것은 AH-1Z나 타이거, T-129 등 경쟁 기종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AH-64E는 이 미사일을 이용해 8~12km 떨어진 표적 16개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 헬파이어 미사일 외에도 북한군이 보유한 대부분의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30mm 체인건과 광역 제압이 가능한 2.75인치 로켓 발사기, 적 헬기를 요격할 수 있는 스팅어 공대공 미사일도 운용 가능해 경쟁 모델들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강력한 공격 능력을 갖추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GFAS(Ground Fire Acquisition System)라는 장비다. 이 장비는 360도 전 방향을 감시하며 헬기에 위협이 되는 대공포나 지대공 미사일, 심지어 소총과 기관총의 발사 화염까지 탐지한다. 발사 화염이 감지되면 어느 지점에서 어떤 무기가 헬기를 위협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조종사 헬멧의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계기판에 표시해주고, 필요할 경우 채프나 플레어를 발사해 헬기를 보호한다. 또한 탐지된 발사 원점을 향해 자동으로 기관포탑과 미사일 조준장치를 락온(Lock-on)시켜 놓는다. 조종사는 방아쇠만 당기면 된다. 적의 공격과 거의 동시에 반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춘 공격헬기는 전술적인 의미를 넘어 전장의 판도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는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이번에 도입되는 36대의 AH-64E 아파치 가디언은 2개 대대분에 불과하지만, 북한군 1개 기계화군단 이상의 전력 효과를 냄으로써 서부전선에서의 전차 전력 열세를 일거에 역전시킬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취약점으로 지적되어 오던 서해 해안을 통한 공기부양정 파상 공격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바로 이러한 능력 때문에 육군은 그토록 아파치를 원했던 것이다. 우여곡절의 도입과정 하지만 육군에게 있어 아파치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형 공격헬기 도입 소요를 제기하고 실제로 몇 차례 입찰공고까지 냈지만 언제나 예산이 발목을 잡았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경쟁자도 여러 차례 세웠다. 우리 군도 대량으로 운용하고 있는 UH-60 헬기의 공격헬기 개조 버전인 AUH-60 암드 블랙호크(Armed Black hawk), 미 해병대가 사용하고 있는 AH-1Z 바이퍼(Viper), 터키의 T-129 ATAK, 유럽의 EC-665 타이거(Tiger), 심지어 남아공의 AH-2 루이벌크(Rooivalk)와 러시아의 Ka-52 엘리게이터(Alligator)까지 경쟁에 참여했다. 각 제조사들은 한국육군의 아파치에 대한 일편단심의 열망이 얼마나 대단한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파격적인 조건들을 제시했다. 한국 내 공장에서의 면허생산이나 기술이전, 절충교역 등에서 한국의 구미가 당길만한 미끼들이 던져졌는데 특히 루이벌크를 제시한 남아공의 데넬(Denel)의 제시 조건은 파격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아파치 헬기의 반값에 기체는 물론 부품과 생산라인, 관련 기술의 지적재산권까지 넘기겠다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루이벌크는 기술적 신뢰도와 후속 군수지원 등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고, 후보 기종에서 탈락했다. 가장 마지막까지 후보로 살아남았던 기종은 미 해병대가 사용하는 AH-1Z 바이퍼와 터키의 T-129 ATAK이었다. 2012년 경쟁 당시 아파치의 최신 개량형 AH-64E와 경쟁했던 이들 두 기종은 아파치보다 싼 가격을 메리트로 적극적인 구애를 벌였다. 대당 1억 달러(약 1180억원)를 호가하던 AH-64E와 달리 AH-1Z의 가격은 대당 7200만 달러(약 850억원), T-129의 가격은 대당 약 3800만 달러(약 448억원)였기 때문에 최저가 낙찰 방식을 적용하면 T-129의 선정이 유력해보였다. 특히 터키는 당시 이명박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던 약 20조원 규모의 터키 원전 사업을 미끼로 T-129 기종 선정을 강하게 요구했다. T-129은 저렴하기는 했지만 육군의 작전요구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소형 공격헬기였기 때문에 T-129 도입이 유력해지자 군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2년 말에 기적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육군이 도입을 추진하던 AH-64D 블록 3(Block III)가 AH-64E로 새롭게 명명되어 미 육군의 대량구입이 결정되고, 대만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도입을 결정하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여기에 주한미군 아파치 대대 철수에 따른 대체 전력 요구 등 우리 군이 협상을 유리하게 주도하면서 최초 제시 가격의 절반 수준까지 가격을 떨어뜨리는데 성공했다. 아파치의 일반적인 해외 판매 가격이 700억~1000억원을 호가하고 바다 건너 일본이 구형인 AH-64D 블록 2 기종을 대당 18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구입한 것을 감안하면 제조사 보잉(Boeing)이 제시한 대당 500억 원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이렇게 되자 각 후보기종들의 대당 가격은 AH-64E 약 500억 원, AH-1Z 약 600억 원, T-129 약 400억 원 수준에서 형성되었고, 다른 두 후보기종보다 압도적인 성능 우위에 있는 AH-64E가 최종 선정되면서 육군은 오랜 숙원이던 아파치 도입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파치의 핵심 장비라 할 수 있는 롱보우 레이더를 장착한 기체는 전체 도입 물량 가운데 1/6에 불과해 레이더 추가 도입을 위한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6년 만에 태극마크를 다는데 성공한 AH-64E 아파치 가디언은 이번에 첫 번째 기체가 육군에 인도되는 것을 시작으로 오는 2018년까지 육군항공작전사령부에 36대가 배치되어 그동안 지적되던 전략적 취약점들을 상당부분 커버하는 히든카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사설] 새누리 의원들 계파 이름표부터 완전히 떼라

    총선 참패 이후에도 계파 갈등으로 혼돈에 휩싸여 있던 새누리당이 비로소 정상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집권 여당의 막중한 책무에 비춰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제 정진석 원내대표와 비박계 수장인 김무성 전 대표,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 의원은 3자 회동을 통해 단일성 집단지도체제 도입, 혁신비대위원장 외부 영입, 계파 청산 등 당 정상화 방안에 합의했다. 이로써 총선 후 확산일로로 치닫던 새누리당 내홍 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시급히 당을 수습해 책임 있는 집권당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하길 기대한다. 이번 합의가 그야말로 ‘완전체’는 아닌 만큼 넘어야 할 산이 산재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 전 대표와 최 의원 간의 이른바 당권·대권 밀약설이 나오는가 하면 밀실합의 등의 비판도 계파를 불문하고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직전 당 대표로서 자문에 응했을 뿐”이라며 ‘합의’라는 표현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속히 혁신비대위를 구성해 현재의 집단지도체제를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바꾸는 당헌 개정안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지만 혁신비대위원장 영입부터 계파 간 합의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세 사람은 그제 회동에서 “계파 청산 방안을 마련해 조속히 시행한다”는 데에도 뜻을 같이했다고 한다. 양대 계파의 실력자들이 ‘계파 청산’을 시급한 과제로 인식할 만큼 계파 갈등은 새누리당을 지금의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은 주범이다.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도 새누리당은 계파 갈등을 거듭했고, 이로 인해 당무까지 마비됐다. 당의 공식 결정보다 계파의 이익이 앞서는 등 새누리당은 계파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댔다. 친박계와 비박계로 나뉘어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이다 못해 서로 “네가 떠나라”며 상대방을 극단적으로 배척했다. 이번 합의가 이행되기 위해서는 당선인 총회와 전국위원회 등을 거쳐야만 한다. 고비마다 양대 계파가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지난번 비박계 위주의 비대위·혁신위 구성에 친박계가 전국위 무산 등 실력 과시로 강하게 반발한 것과 마찬가지로 권한이 집중되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에는 비박계 쪽에서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계파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어느 때고 내분이 재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쇄신의 걸음을 떼기 위해서라도 계파 청산은 필수적이다. 새누리당은 사즉생 각오로 계파 청산에 매진해야만 한다. 새누리당은 특정 계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집권 여당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안보와 경제의 국가적 중첩 위기에 직면한 지금 계파 이익에 함몰돼 여당으로서의 책무를 망각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할 수 있다. 주류인 친박계가 주도적으로 나서고, 소속 의원 전원이 탈계파를 선언함으로써 새로운 각오를 보여 주길 바란다. 이번 합의가 또다시 계파 갈등으로 무산돼 쇄신과 담을 쌓는다면 국민들은 더이상 새누리당에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소속 의원 전원이 계파 이름표를 떼어 내야만 한다.
  • 정의화 의장 “미래지향적 중도세력의 빅텐트 펼칠 것”

    정의화 의장 “미래지향적 중도세력의 빅텐트 펼칠 것”

     정의화 국회의장은 25일 국회법 개정안 논란과 관련해 “상임위 청문회 활성화 부분을 두고 일부에서 ‘행정부 마비법’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우리나라 정치에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는 ‘빅 텐트’를 펼치겠다”면서 퇴임 이후에도 정치적 행보를 이어갈 뜻을 강조했다.  정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 집무실에서 한 퇴임 기자회견에서 “국민을 대신해 국정을 감시하고 특정한 국정 사안을 조사하는 것은 헌법 61조에 규정돼 있는 국회의 당연한 책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특히 “지금 우리 국민은 일 잘하는 국회, 정부를 제대로 감독하고 견제하는 국회를 원하고 있다”면서 “행정부가 국민의 편에 서서 올바르게 일하라고 만든 법에 대해 ‘귀찮다’, ‘바쁘다’는 이유로 반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과거 일부 청문회에서 나타났던 부정적 측면만 강조해 정책 청문회 활성화 자체에 반대하는 것 또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다’는 식의 회피성 주장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검토 중인 상황에 대한 입장을 묻자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대통령이 국회 운영에 관계된 문제는 국회에 맡겨두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거부권 행사는 가능한 한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상임위에서의 청문회를 활성화하고 대신 국정감사를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 의장은 “그동안 국정감사는 상임위에서 일어난 얘기를 재탕, 삼탕하거나 1년에 걸쳐 일어난 일을 한 번에 묶어 국감을 하려다 보니 시의적절성도 떨어지는 폐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는 오히려 국감을 없애고 이런 형태(상임위에서)의 청문회를 활성화하는 게 국익에 훨씬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날 정 의장은 20대 국회 출범 직후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가 즉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새로운 정치질서 ‘협치의 플랫폼’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할 구조적 전환기로, 역사가 바뀌고 시대의 요구가 바뀌면 헌법을 그에 맞게 바꿔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또 “현행 소선거구 제도는 다수의 사표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고질적 지역구도를 깨기 어려운 심각한 단점이 있다”며 “국회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사회적 합의와 생산적 타협의 정치를 이루기 위해 지역패권주의와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혁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 의장은 현 정치권에 대해 “지역과 이념의 기득권 질서에 안주하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능과 나태 속에 빠져있다”며 “날이 갈수록 국민이 아니라 권력자를 바라보는 정치, 국익과 민생이 아니라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정치가 되어 가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국회의장 퇴임 후에도 정파를 뛰어넘어 미래지향적인 중도세력의 빅 텐트를 펼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또 오는 26일 자신이 이사장을 맡은 사단법인 ‘새한국의 비전’을 출범하는 것이 향후 신당 창당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묻는 말에는 “10월 정도까지 고민해 보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의화 국회의장 “청문회 활성화 국회법 반발은 민주주의 원칙 훼손”

    정의화 국회의장 “청문회 활성화 국회법 반발은 민주주의 원칙 훼손”

     정의화 국회의장이 25일 국회법 개정안 논란과 관련해 “상임위 청문회 활성화 부분을 두고 일부에서 ‘행정부 마비법’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 집무실에서 열린 퇴임 기자회견에서 “국민을 대신해 국정을 감시하고 특정한 국정 사안을 조사하는 것은 헌법 61조에 규정돼 있는 국회의 당연한 책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특히 “지금 우리 국민은 일 잘하는 국회, 정부를 제대로 감독하고 견제하는 국회를 원하고 있다”면서 “행정부가 국민의 편에 서서 올바르게 일하라고 만든 법을 ‘귀찮다’ ‘바쁘다’는 이유로 반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과거 일부 청문회에서 나타났던 부정적 측면만 강조해 정책 청문회 활성화 자체에 반대하는 것 또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다’는 식의 회피성 주장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 의장은 국회법 개정안 통과 이후 국정감사 폐지에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국회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20대 국회에서 국감 폐지하는 법안을 바로 제출해서 올해부터는 하지 않도록 해야한다”면서 “상임위원회에서 했던 이야기를 재탕 삼탕하는 등 여러가지 폐해가 있다. 국감을 없애고 청문회를 활성화 하는 것이 국익에 훨씬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의장은 20대 국회 출범 직후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가 즉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새로운 정치질서 ‘협치의 플랫폼’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할 구조적 전환기로, 역사가 바뀌고 시대의 요구가 바뀌면 헌법을 그에 맞게 바꿔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또 “현행 소선거구 제도는 다수의 사표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고질적인 지역구도를 깨기 어려운 심각한 단점이 있다”며 “국회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사회적 합의와 생산적 타협의 정치를 이루기 위해 지역패권주의와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혁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 의장은 현 정치권에 대해 “지역과 이념의 기득권 질서에 안주하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능과 나태 속에 빠져 있다”며 “날이 갈수록 국민이 아니라 권력자를 바라보는 정치, 국익과 민생이 아니라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정치가 되어 가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치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며 “협치와 연대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는 26일 자신이 이사장을 맡은 사단법인 ‘새한국의 비전’ 출범을 하루 앞둔 정 의장은 “저는 이제 국회를 떠나지만 낡은 정치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열어나가는 길에 작은 밀알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단체의 성격에 대해서는 “외곽에서 정치 건강을 위해 조언을 하는 정치 원로 집단이 될수도 있고 새로운 정당으로 태어날 수 있는 정치결사체로 볼 수도 있다”면서 “오는 10월까지 고민한다고 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건전하고 미래 지향적인 중도세력을 규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복당 문제에 대해서는 전날 정진석, 최경환, 김무성 의원의 3자 회동을 언급하며 “당을 다시한 번 추스르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새누리당이 정말 대오각성하지 않고 권위주의적인 보수의 모습으로 제게 인식이 된다면 자동입당이 된다하더라도 다시 탈당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3년차를 맞이한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정말 조국과 국민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좀더 탕평인사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흔히 소통(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는데 미흡했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러시아, 음주운전 경고 그림 붙인 술병 나와…

    러시아, 음주운전 경고 그림 붙인 술병 나와…

    외국에선 이미 흔해진 담뱃갑 경고그림. 그렇다면 음주운전 경고그림이 붙은 술병도 있을까? 러시아에서 이런 라벨을 단 와인이 판매되고 있어 화제다. 체인형 레스토랑 장쟈끄에서 판매되고 있는 이 와인은 언뜻 보면 와인엔 특별한 게 없어 보인다. 병 모양도 평범하고 무채색 풍경화를 담고 있는 라벨도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고풍의 주택과 그 앞으로 넓게 깔려 있는 포도밭 등 섬세하게 연필로 그려낸 풍경이 와인잔을 기울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으응?"하고 눈을 크게 뜨게 된다. 그림엔 포도밭 앞에 큰 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그리고 옆엔 나무를 들이받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쭈그러든 자동차가 보인다. 이 와인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간 이렇게 되기 십상이니 음주운전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다. "와인회사가 이런 라벨을 병에 붙이다니 엄청난 전략상의 실수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무릎을 치게 된다. 교통사고 와인라벨은 러시아에 진출한 우버 택시가 전개하고 있는 캠페인이다. 음주운전으로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안전하게 우버 택시를 이용하라는 시각 메시지인 셈이다. 그림만으론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라벨에는 "이 와인의 섬세한 맛은 자동차 조수석에서 훨씬 더 즐길 수 있습니다"라는 친절한 문구도 적혀 있다. 라벨에는 우버택시를 일정 구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무료이용권 코드도 인쇄돼 있다. 캠페인은 성공할까? 라벨에 대한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와인을 주문한 사람 중 우버 택시 이용률을 보면 그야말로 대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라벨이 부착된 와인을 주문한 사람 중 86%가 무료이용권을 이용해 우버택시를 타고 귀가한 것. 한 번 우버 택시를 타본 고객이 다시 서비스를 이용할 가능성도 높아 우버 택시로선 이름과 서비스를 알리는 데 톡톡한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사진=우버 택시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서울시의회 이신혜의원, 생명문화학회 2016 춘계학술대회 참석

    서울시의회 이신혜의원, 생명문화학회 2016 춘계학술대회 참석

    서울시의회 이신혜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과대학 예배실에서 생명문화학회(회장 유영권 연세대교수)의 주최로 열린 ‘우리나라 생명존중 교육의 실태와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2016 춘계학술대회에 참석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는 박형민 박사(한국형사정책연구원)가 사회를 맡았고, 오승근 교수(명지전문대 청소년교육복지과)가 ‘학교 현장에서 생명존중 교육의 실태와 개선방안’, 하상훈 원장(한국생명의전화)이 ‘시민사회에서 생명존중 교육의 방향’, 이정원 교수(서울사이버대 군경 상담학과)가 ‘군에서의 생명존중 교육과 프로그램의 실태’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유영권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 이 학술대회를 통해 우리는 생명존중과 관련된 교육이 학교현장, 시민사회, 군대에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며 “교육의 현장에서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일깨워주는데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승근 교수는 “생명존중 및 자살예방 프로그램이 생명력 있게 학교 현장에서 운영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학교측의 적극적 참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하상훈 원장은 일상생활에서의 효과적인 대처능력을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발표했으며, 이정원 교수는 군에서의 생명존중을 언급하면서 지휘자의 관심과 대처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신혜 의원은 축사를 통해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그 어떤 사회보다도 진정으로 희망이 있으며 행복한 선진사회라고 할 수 있다”라며 “생명존중 교육이 실질적인 자살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 의원은 청소년층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하여 생명문화버스를 제안하여 전국 최초로 출범했다. 또한 서울시 최초로 아동학대예방조례를 1인 발의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익적인 의정활동을 해왔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재건축 앞둔 구반포 노선상가 아파트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재건축 앞둔 구반포 노선상가 아파트

    # ‘강남 토박이’ 나고 자란 추억의 고향 -고등학교 시절 다녔던 상가 학원의 방이 아늑했던 기억. -초등학교 때 버스 갈아타던 동네로서 남다른 애착. -이곳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 -언제 돌아와도 같은, 고향 같은 느낌. -상가 3층을 주택형 사무실로 몇 달간 사용했던 기억. -00치킨은 인문학자들의 아지트. 강북 사대문 안 어느 오래된 동네 출신들의 추억담이 아니다. 강남하고도 신반포로 양쪽, 낡고 어수선하고 모양 없이 길쭉한 몇 개의 건물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박한 건물군과 그 길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이 이런 정도다. 소위 ‘강남 토박이’들의 정서다. 1974년에 완공됐으니 나이로 보면 이제 40년이 조금 넘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한 사람의 추억을 오롯이 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꼭 수백년 나이를 먹어야 역사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꽃피는 산골’만 내 고향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 ‘강남 스타일’이 유쾌하게 희화화했던 그 강남도 알고 보면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정든 고향이다. 그 무시할 수 없는 일부인 추억의 구반포 노선상가 아파트는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이 일대의 재건축 분위기 속에 이제 기억 너머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또 다른 고향이 사라지려는 참이다. # 5층 이하 ‘워크업 유형’… 전형적인 근대건축 한국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대규모 단지를 이룬 것은 1970년대부터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 단지는 과도기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 이전의 아파트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나 홀로’ 유형이 많았다. 길에 바짝 붙어 있는 경우도 흔했다. 이후 아파트는 점점 더 폐쇄적인 성격을 띠게 돼 지금은 ‘빗장 공동체’(gated community)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1970년대만 해도 길이나 주변 지역에 대해 비교적 열려 있었다. 아파트 단지가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길과의 관계를 거의 차단하는 방식으로 전환된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이러한 1970년대 아파트 단지의 느슨한 과도기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구반포 노선상가 아파트가 속해 있는 반포주공1단지다. 1972년에서 1974년 사이 건립된 이 단지는 무려 3786가구의 대단지다. 지금도 구반포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한다. 5층 이하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소위 워크업 유형이며 전형적인 근대건축의 미학을 보여준다. 좋게 말해서 간결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무미건조하다. 유럽의 초기 근대주의 건축을 보러 간 사람들이 농담조로 ‘여기까지 와서 반포주공1단지를 보다니’ 할 정도다. 지금은 워낙 수목이 울창하게 자라 어딘가 북유럽을 연상케 하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생겼다. 아파트 단지 주변에 담장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통행을 제한하지 않는다. 동마다 수위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누구의 제지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신반포로를 따라 양쪽에 있는 몇 동의 노선상가 아파트다. 최대 424m에 달하는, 상당히 긴 건물군이다. 안타깝지만 시각적으로는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간판이 혼란스럽게 붙어 있고 말이 상가 아파트지, 당초 주거였던 2층과 3층은 이미 용도 변경돼 주로 학원들이 들어서 있다. 건립 후 10년 정도가 지났을 때부터 생긴 변화라고 한다. 역시 사람들은 큰 길가에 사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일까. 특이하게도 단지 내 다른 건물들이 5층인데 유독 거리에 면한 상가 아파트는 3층으로 오히려 더 낮다. 상가가 저 정도로 활성화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주거도 큰 길가라서 인기가 없으리라 생각했던 결과일 것이다. 만약에 5층이어서 아래 2개 층이 상가이고 그 위 3개 층이 주거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다.(이 연재를 통해 후에 소개할 동부 이촌동 한강맨션의 노선상가 아파트가 그런 경우다.) 이 건물군은 아파트 주민들만을 상대하지 않는다. 수많은 버스 노선이 지나가는 신반포로의 특성상 유동인구가 상당하며 이들 또한 상가를 찾는 고객들이다. 9호선 구반포역이 들어서면서 그 성격은 더욱 강화됐다. 그야말로 지역의 거점이다. 덕분에 몇몇 장소가 상당한 지명도를 얻었다. 위에서 언급한 치킨집은 인문학자들의 발길이 하도 잦아서 재건축을 해도 ‘한국 인문학의 성지’로 보존해야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수제비나 떡볶이로 유명세가 따르는 곳도 있다. 단지 주민들만 이용하는 상가라면 이런 현상이 생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건물군이 전면 도로와 후면의 단지를 대하는 태도다. 전면에만 상가가 있을 것 같으나 뒤로 돌아가 보면 단지 쪽으로도 열려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노선상가 아파트가 애초에 어떤 의도로 계획됐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즉 엄연히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속해 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도 열려 있다. 바로 이 개방성이 이 건물에 대한 많은 사람의 애정과 추억을 가능하게 한다. # 설계자들의 고민 ‘가능한 한 많은 상가 넣기’ 주공이라는 거대 조직이 지은 건물이므로 설계자들의 존재가 따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나름대로 치밀하고 섬세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2, 3층의 주거는 36평이라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대형 평수다. 나름 고급 주거였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채광을 위해 비교적 가로 폭을 넓게 했다. 이에 반해 그 아래의 상가는 주거를 반으로 자른 형태다. 즉 폭이 좁고 깊은 평면을 갖는다. 이것은 상업 가로를 만드는 기본 원칙, 즉 주어진 거리에 가능한 한 많은 상가를 집어넣는다는 개념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그 결과 정면의 폭(‘프런티지’라 한다)은 좁지만 내부 공간에 깊이가 있고 게다가 양쪽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이렇게 좁고 긴 평면 형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업 가로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유형이다. 유럽의 상인 주거가 그렇고, 일본의 나가야(長屋)가 그렇고, 베트남의 보편적 도시 건축들도 그렇다. 한편으로 주거로 올라가는 계단을 후면, 즉 단지에 면한 쪽에 놓음으로써 주거는 엄연히 단지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설계자들의 섬세함은 건물의 방위를 다루는 데서도 드러난다. 신반포로를 중심으로 남쪽에 H, J, L동이, 북쪽에 G, I, K, M동이 있다. 언뜻 생각하면 같은 평면을 데칼코마니처럼 마주 보도록 뒤집어 적용했을 것 같지만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향을 선호하는 문화를 고려해 모든 거실이 남쪽을 향하게 했다. 그 결과 남쪽 건물군은 거실과 계단실이 남향으로 붙어 있고, 북쪽 건물군은 계단실은 북쪽에, 거실은 남쪽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발코니, 주방의 위치 등 수많은 세부적 변화를 만들어 낸다. 즉 유사하지만 같은 평면은 아닌 것이다. 신반포로가 동서로 달리고 있어서 그렇지 만약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서 주거가 동향이나 서향이어야 하는 상황이 됐으면 과연 어땠을까 자못 궁금해지기도 한다.(주방에 딸린 작은 침실이 있는데 요즘 용어로 하면 ‘재택 가사 도우미’를 위한 방이어서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신반포로 양쪽의 건물 입면이 매우 다를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또한 이 설계의 묘미다. 워낙 간판으로 뒤덮여 있기는 해도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실 창도 시원하게 열린 통창이 아니라 가로로 긴 창이다. 일반 방의 창과 높이는 같으나 길이만 다르다. 즉 거리에 직접 면하고 있음을 고려해 주거 부분 창의 크기와 형태를 조절한 것이다. 단지 내부의 일반 아파트 거실 창이 통창인 것을 보면 이것은 매우 의도적인 결과다. 동시에 이것은 거리의 통일적인 분위기를 위해서도 매우 적절하고 사려 깊은 조치다. 지금의 다소 초라한 모습에 가려 만만치 않은 생각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 압구정과는 다른 편안함… 미래에도 남겨질까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이 일대의 재건축 사업이 시작되면 갓 불혹을 넘긴 이 노선상가 아파트의 운명도 결정될 것이다. 물리적인 실체가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100%다. 다만 그 유형적 개념이 유지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가로변에 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인터넷에서 찾아본 조감도에 의하면 단지 내부는 상당히 고층화되지만 신반포로를 따라서는 여전히 길게 늘어선 저층 건물군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애초에 한꺼번에 개발됐던 주공1단지와는 달리 재건축은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진행된다고 한다. 따라서 반포로 양쪽 가로변의 경관이나 도시 구조가 서로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상황이 매우 유동적이므로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욕심을 내 보자면 이 노선상가 아파트의 개념이 좀 더 발전된 형태로 다시 구현되는 것, 그리고 사회적 논의와 합의의 과정을 통해 반포로의 양쪽이 어느 정도의 통일성을 갖는 것, 이렇게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건물은 변해도 그 장소의 성격은 유지되기를 바라면서, 마침 이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재미 건축가 지정우의 증언을 옮겨 본다. “(…) 양쪽에 상가가 길게 있었기 때문에 가운데의 신반포로는 도로임에도 어떤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형성했습니다. 몇 군데의 횡단보도들이 그런 커뮤니티 장의 역할을 했고 보도 양쪽에서 서로 지인들과 동네 주민, 친구들을 발견하고 부르며 ‘내가 건너갈게’ 등의 손짓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한편 안쪽에 한신종합상가와 그 더 안쪽에 반포 상가열이 하나 더 있어서 ‘없는 게 없는’,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는’ 동네가 됐지요. 아파트나 상가나 형태적으로는 중성적인 모더니즘이어서 더 이 지역 주민들의 정서에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후의 압구정이나 청담의 트렌디한 변화들과는 다른, 언제 돌아와도 같은, 마치 고향 같은 느낌을 갖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 [알쏭달쏭+] 커플과 싱글의 행복감, 누가 더 클까

    [알쏭달쏭+] 커플과 싱글의 행복감, 누가 더 클까

    혼자는 혼자라서 고달프고, 함께는 함께라서 힘들다.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혼자는 혼자라서 즐겁고, 함께는 함께라서 행복하다. 세계 곳곳의 '모태솔로'들은 괴롭다. 하지만 싱글로도 인생을 기꺼이 즐기고 있는 사람은 많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싱글인 사람 중에는 ‘스스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입증됐다. 막연한 분노와 증오, 자책을 일삼는 일부 싱글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가질 수 있는 행복을 알려주며 위로하는 연구인 셈이다. 누군가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상대로부터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당신은 상대방과 의견을 대립하고 심지어 다툴 때도 있다. 그런 다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행복’하게 느낀다. 국제 학술지 ‘사회심리학과 인성과학’(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싱글도 커플도 모두 비슷한 만족도를 얻고 있다. 싱글과 커플의 행복감에 관한 이 연구논문을 미국 과학전문매체 사이언스데일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 “싱글은 불행하지 않다” 심리학자 주장 뉴질랜드 오클랜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유티카 기르메 박사과정 주임 연구원에 따르면, 사람에 따라서는 싱글이나 커플도 행복도가 같다. 싱글인 사람은 커플보다 행복을 얻기 힘들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사실이 아니다. 파트너가 없어도 인생을 충실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 기르메 연구원을 비롯한 오클랜드대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위해 뉴질랜드인 4000여 명을 대상으로 22년간에 걸쳐 대규모 추적 조사를 시행했다. 이 연구에서는 의견의 불일치와 충돌을 피하는 회피하는 것이 사회 목표인 사람을 이른바 ‘회피형’으로, 친밀감을 강화하고 파트너와 함께 성장해 관계를 유지하는 접근하는 것이 사회 목표인 사람은 ‘접근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 결과,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과 의견이 불일치해 충돌을 피하는 ‘회피형’은 싱글로도 커플로도 행복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면 ‘접근형’은 혼자 사는 것보다 커플로 있을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유형에 따라 행복에 관한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 미국서는 성인 51%가 싱글 전세계적으로 싱글이 느는 추세인데, 미국의 경우 싱글이 결혼한 인구를 넘어서 성인의 51%인 1억 2800만 명에 달한다. 높은 이혼율과 미혼모 혹은 미혼부의 증가, 경력을 추구하는 성향에 따른 만혼화 등 이유는 다양하다. 또 사람들이 싱글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전 연구에서는 싱글인 사람은 커플보다 만족도가 낮은 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다거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이번 연구로 사람의 유형에 따라서는 싱글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싱글을 주장(?)하는 이들에겐 좀더 힘이 실릴 수 있겠다. 하지만 싱글인 ‘회피형’과 커플인 ‘접근형’ 모두 행복한 것은 틀림없지만, 두 유형을 비교하면 커플인 ‘접근형’이 좀 더 큰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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