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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희소병 앓다가…5일 차로 남편 따라 세상 떠난 아내

    같은 희소병 앓다가…5일 차로 남편 따라 세상 떠난 아내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치명적인 유전성 폐질환에 시달려온 한 젊은 여성이 최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같은 유전병을 앓고 있던 동갑 남편을 잃은 지 불과 5일 만의 일이어서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같은 사연의 주인공은 미국 켄터키주(州) 플레밍스버그에 살았던 케이티 프레이저(26)다. 부부의 죽음은 너무 이른 것이었다. 낭포성 섬유증 환자의 ‘중앙 생존 기간’(100명의 환자가 있으면 생존 순위 50번째 환자 생존 기간)이 40세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도 십수 년을 충분히 더 살 수 있었다. 케이티와 남편 돌턴은 2011년 결혼했다. 이후 남편은 2014년 폐 이식 수술을 받게 되면서 간호를 받기 위해 친부모가 있는 세인트루이스 교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생이별을 하게 된 것.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지난 7월 결혼 5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이때 이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영상 통화로 결혼 기념일을 축하할 수밖에 없었다. 돌턴은 지난 주말 사망 전까지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아내를 만나길 원했다. 하지만 지난해 폐 이식 수술을 받은 케이티 역시 림프종이 생겨 플레밍스버그에 있는 한 호스피스 병원에서 지내야만 했다. 이때 케이티의 첫 번째 소원은 결코 이뤄질 수 없었던 남편의 방문이었다. 가족은 그런 케이티를 위해 17일 이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전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케이티 역시 자기 죽음을 직감한 듯 “곧 그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케이티의 어머니 데브라 도너번은 페이스북에 “22일 이른 아침, 그녀는 자신이 원하던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우리 가족과 반려견이 보는 가운데 평안하게 잠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돌턴은 물론 먼저 세상을 떠난 두 할머니와 여러 가족과 친구들이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티는 남편이 떠나는 날 페이스타임을 통해 작별 인사를 했다. 이때 그녀는 자기 죽음 역시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집에서 간호를 받고 있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케이티의 어머니는 내 딸은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생전에 케이티는 자신의 남편에 대해 오랫동안 힘든 싸움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질병과 용감하게 싸웠고 그의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턴의 병세는 악화됐고 사망하기 2주 전부터 산소호흡기에 배치된 중환자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케이티의 가족들은 돌턴이 켄터키로 날아와 케이티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회복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병세는 너무 심각해 이송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해서 부부는 지난 7월 16일 서로 다른 장소에서 영상 통화로 결혼 5주년을 기념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지난 2011년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 결혼에 골인한 사연으로 미국 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케이티는 낭포성 섬유증뿐만 아니라 ‘버크홀더리아 세파시아’라고 불리는 치명적인 세균에 감염돼 있었다. 이 세균은 폐에 부작용을 일으켜 심지어 치료했다고 해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녀와 만나게 된 또 다른 낭포성 섬유증 환자인 돌턴 역시 이 세균에 감염됐다. 사실, 의사들은 케이티가 그 세균에 감염된 것을 진단한 뒤부터 줄곧 다른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녀는 의사들의 권고를 무시했다. 그리고 연인 사이가 된 돌턴에게 켄터키에 살고 있는 자신에게 와달라고 말했다. 과거 케이티는 “돌턴에게 앞으로 20년 더 살면서 그저 그런 행복을 얻는 것보다 5년을 살더다도 정말로 행복하게 산 뒤 죽길 원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2011년 두 사람이 결혼할 당시 모두 20세였다. 의사들은 케이티에게 세균이 남편에게 옮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두 사람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돌턴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급기야 2014년 11월 폐 이식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림프종까지 생겼고 이를 치료한 뒤에는 그동안 우려했던 세균에 감염돼 결국 폐렴이 생겨 입원해야만 했다. 또한 케이티 역시 건강 문제가 악화돼 폐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켄터키주에서는 이식 수술이 가능한 병원의 수가 제한적이었다. 가까스로 피츠버그대 의료센터에서 이식 수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와 같은 보험이 되지 않는 커다란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이때 케이티의 건강은 지속해서 나빠졌다. 결국 그녀는 돌턴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돌턴은 병원 측에 “아내를 잃을 수 없다”면서 “이 때문에 우리의 사랑 이야기가 끝이 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모두 계속 싸워갈 준비가 돼 있지만 지금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제발 내 아내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결국, 피츠버그대 의료센터는 케이티의 사례에 한해서 폐 이식 수술을 승인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마침내 수술이 진행됐다. 그런데 불행히도 수술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의사들은 더는 그녀를 도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급기야 케이티는 신부전으로 인해 꼭 해야 하는 투석을 제외하고는 모든 의학적 치료를 거부했다. 그녀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단지 자연스럽게 죽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제 케이티는 자기 죽음 뒤 필요한 장례 비용을 모으기 위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유케어링’(youcaring)을 통해 모금을 시작했다. 그녀는 “단지 남겨진 모두가 걱정 없이 살길 원한다”면서 “내가 떠나더라도 가족들은 빚 걱정 없이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페이스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옥중화’ 진세연-고수-서하준, 기구해서 더 절절한 삼각 로맨스 “맴찢”

    ‘옥중화’ 진세연-고수-서하준, 기구해서 더 절절한 삼각 로맨스 “맴찢”

    ‘옥중화’ 진세연 고수 서하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삼각로맨스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쫄깃한 전개로 안방극장을 쥐락펴락하는 MBC 창사 55주년 특별기획 ‘옥중화’(연출 이병훈/극본 최완규)의 39회에서는 그야말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스펙터클한 전개가 펼쳐졌다. 옥녀(진세연 분)가 옹주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또한 정난정(박주미 분)이 옥녀가 중소상단을 규합해 자신의 상단을 노려왔다는 사실을 알고 옥녀의 살해를 지시, 그가 사경을 헤매게 되는 등 숨조차 쉴 수 없는 폭풍 전개가 몰아쳤다. 이 가운데 옥녀-태원(고수 분)-명종(서하준 분)의 삼각 로맨스 역시 절정으로 치달았다. 태원과 명종은 옥녀를 사이에 두고 날 선 신경전을 벌였다. 태원은 명종에게 “윤원형 대감이 전하와 옥녀가 만나는 것을 알았으니 이 이야기가 대비마마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옥녀의 안위에 우려를 표했고, 이에 명종이 “옥녀는 내가 어떻게든 지켜낼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장담한다. 이어 명종은 옥녀를 지키기 위해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옥녀에게 궁인이 될 생각이 없냐고 물은 것. 명종은 옥녀에게 “네가 만약 대전나인이 된다면 주상전하의 눈에 들어 후궁 첩지를 받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은근히 자신의 마음까지 고백한다. 하지만 옥녀는 “저는 오랫동안 마음에 둔 분이 있다”며 거절한다. 명종이 “그 자가 윤태원이냐”고 묻자 옥녀는 “제 심중에 있는 분은 윤태원 나으리가 맞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 제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태원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털어놓고, 명종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옥녀를 향한 태원과 명종의 마음이 거센 불길처럼 타오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옥녀가 정난정이 보낸 자객에게 칼을 맞고 사경을 헤매게 된 것. 태원은 한시도 옥녀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그를 병간호하며 애끓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 가운데 명종의 지시로 옥녀를 찾아온 재서(유승국 분)는 초 죽음이 된 옥녀의 모습을 보게 되고, 이에 태원은 재서를 향해 “전하께서 옥녀를 지키신다 하지 않았습니까? 살려내라 하십시오”라며 울분을 쏟아낸다. 이 소식을 들은 명종은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옥녀에게 후궁 첩지를 내릴 요량으로 대전 상궁인 한상궁(이승아 분)에게 “옥녀를 궁인으로 만들 방도를 찾아보라”고 명한 것. 한상궁과 재서는 옥녀의 미천한 신분으로 문제가 발생할 것을 염려했지만 명종은 “내가 관철하면 될 일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정치싸움에 죄 없는 그 아이가 휘말리는 것을 막는 것”이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명헌(박주영 분)의 증언으로 인해 옥녀의 어머니인 가비(배그린 분)가 승은을 입은 것이 사실이며 옥녀가 중종 임금의 딸, 즉 옹주로 명종과 배다른 남매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후궁 첩지를 내리고자 했던 명종의 계획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이에 태원과 명종, 그 어떤 남자와도 이루어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옥녀의 안타까운 로맨스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아릿하게 만드는 동시에 이들의 얽히고 설킨 운명의 실타래가 어떤 식으로 풀리게 될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삼각로맨스의 향방에 궁금증이 증폭된다. 한편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옥중화’ 39회의 전국 시청률은 20.8%, 수도권 시청률은 21.6%를 기록, 39회 연속 동시간 시청률 1위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가마솥처럼 은근히 달아오르는 ‘롱런 드라마’의 위용을 매회 확인시키고 있다. ‘옥중화’는 옥에서 태어난 천재 소녀 옥녀와 조선상단의 미스터리 인물 윤태원의 어드벤처 사극으로, 사극 거장 이병훈-최완규 콤비의 2016년 사극 결정판. 매주 토, 일 밤 10시에 방송된다. 사진=MBC ‘옥중화’ 영상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테헤란 여행기 3] 토찰산 트레킹과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다

    [테헤란 여행기 3] 토찰산 트레킹과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다

    ◆12일 토찰산 다라케 계곡으로의 짤막한 나들이 새벽 3시부턴가 시작한 허재 감독 인터뷰 기사를 끙끙대며 결국 낮 12시 조금 못돼 마쳤다. 약간 시장끼는 있는데 그렇다고 딱히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 택시 서비스로 가 말렉 라이브러리 앤드 뮤지엄 가겠다고 했더니 국경일이라 쉰단다. 이 나라 박물관은 오전이나 오후 한 차례만 열거나 아니면 쉬는 날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대안이 뭐냐고 했더니 산에 가란다. 케이블카도 있고 좋댄다. 시간은 44분 걸린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터무니없는 얘기였다. 결코 44분 걸릴 거리가 아니었으며 케이블카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사실 가동한다고 해도 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위험해 보였다. 택시가 멈출 때까지 1시간30분쯤 걸렸던 것 같다. 신호만 제대로 지키면 안 그럴텐데 서로 빨리 가겠다고 우겨대니 생기는 현상이다. 또 목적지 근처에 이르자 양쪽에 차를 모두 주차해 길이 좁아 옴짝달싹 못했다. 여튼 택시에서 내렸다. 이 자리에 서 있어 안 그러면 내 손전화로 전화해 어쩌구저쩌구. 기사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고 난 페르시아어를 하나도 못하니 이런 바보들이 없다. 택시 서비스 아자씨가 헤어질 경우에 대비해 내게 기사 전번을 적어 건넸다. 페르시아의 주인답게 아라비아 숫자 따위는 쓰지 않는데 일일이 숫자를 입으로 세면서 또박또박 ‘09126336256’이라고 써줬다. 처음 편도에 40만리라라고 하더니 내가 왕복한다고 하자 잠깐 머리속으로 계산기를 돌리더니 대기시간 2시간 포함해 100만리라라고 했다. 30달러 정도의 왕복 차비에 2시간 대기가 포함됐으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괜찮은 흥정이었다. 택시에서 내렸는데 100m쯤 나아갔을까. 선글래스를 뒷좌석에 놔두고 내렸다는 것을 알았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땡볕이 쏟아졌다. 헐레벌떡 달려가 움직이는 차를 붙잡았더니 이 기사는 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뒷자리에서 선글래스를 꺼냈더니 그제야 ‘투 아워스, 히어’라고 한다. 토찰산이다. 해발 고도 3972m로 카스피해를 넘은 구름이 부딪쳐 11월만 돼도 흰눈이 쌓인다. 스키장이 여러 군데 있는 것 같다. 내가 간 곳은 다라케 계곡인데 분명 택시 서비스 아자씨는 ‘다르반’이라고 했다.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다. 땡볕 아래를 열심히 걸었다. 초반에 조금 무리를 했는지 숨이 차오르는 게 심상치가 않다. 제법 고산증세가 오는 듯 미식거리는 것도 같고 욕지기 같은 것도 올라오는 것 같다. 해발 2000쯤 되는 것 같았다. 여튼 간간이 하릴없는 청춘 남녀나 오래된 부부 같은 이들이 내국인 반, 외국인 반의 비율로 산을 오르내린다. 우리로 얘기하면 설악산 비선대산장과 비슷하게 절의 요사채처럼 꾸며놓은 공간에 톱질 소리가 요란하다. 그 위로는 길이 흐릿하고 더군다나 푹푹 미끄러지는 자갈길이라 자칫 큰일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택시 내릴 때가 오후 2시였는데 이 마을에서 시게를 보니 3시다. 얼추 됐다. 내려간다. 내려왔다. 기사가 탄 차가 안 보인다. 선글래스를 되찾은 지점에 있나 싶어 갔더니 없어 계속 내려가다 한 호텔 앞에서 남자 둘이 노닥거리고 있길래 사정을 설명했더니 친절하게도 전화를 걸어줬다. 기사는 아마도 전화기 건너편에서 자기도 내려온 지 얼마 안된다는 얘기를 하는 듯했다. 그 젊은이는 기사가 나보고 원래 내렸던 자리에 가있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맙다고 말하고는 그 자리로 힙겹게 돌아 올라갔는데 또 없다. 그렇게 건너편으로 건너가 아까 호텔 앞보다 조금 더 내려간 다른 호텔 앞에서 이번에는 남녀 커플에게 염치 불구하고 부탁했다. 첫눈에 보기에도 남의 청 거절 못하게 생긴 녀석이 아 짜증나 하는 것이 분명한 여친을 달래며 전화를 건다. 여자는 내가 기분나빠 할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눈을 내리깔았다. 엄청 더운 날씨에 선 채로 전화를 걸어 기사 아저씨와 통화하니 나로선 대단히 미안한 일이라 어쩔줄 몰라 했다. 10분인가 20분쯤 뒤에 감격의 상봉을 했는데 이 기사는 또 2시간 전에 헤어진 내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것이 틀림없다. 연신 자기가 딱 두 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조금 늦었다고 미안해 한다. 아니 웬걸, 난 괜찮은데. 오케이 소리를 열번 이상 외친 것 같은데 그는 호텔에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쏘리쏘리를 해댄다. 속으로 난,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으니 팁이라도 좀 내놔 할까봐 나름 조마조마했는데 그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날 돌아보며 손을 꼭 잡으며 굿데이를 외쳐댔다. 씻고 침대에 누워 개기작거리다 오후 7시 식당에 갔더니 중국인 셋이 저녁을 먹고 있다. 내가 자리에 앉고 조금 이따 일본인 심판들이 들어와 한중일 삼국지가 다시 펼쳐졌다. 동료에게 문자를 보내 함께 먹자고 했지만 그는 일하면서 먹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며 나중에 먹겠다고 했다. 오후 8시 시작한 카타르와의 경기를 그와 함께 취재했다. 마침 한국인 응원단이 옆 자리에 있길래 경기장 이름이 왜 ‘1만 2000’이냐고 물었다. 교민 네 분이 계셨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고 옆의 이란인 친구가 더듬거리는 우리말로 그만한 숫자가 들어와서 그런다고 답했다. 내가 어떻게 이 좌석에 그많은 숫자가 앉을 수 있느냐고 캐물었더니 교민들은 “이 나라에서 그렇게 따지면 안됩니다. 이 사람들이 그렇다면 그런 겁니다”라고 설명해 “아 네”라고 답했다. 호텔에 돌아오니 10시 30분쯤이었다. 동료 혼자 식사하겠다고 해 헤어져 기분좋게 잠에 들었다. 오늘은 잠깐이나마 이란의 척박하지만 나름 매력있는 산자락을 밟아본 행복한 하루였다. ◆13일 돌아오는 날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아보다 새벽 4시 눈을 떴다. 양호하다. 어제 밤 10시 50분쯤 잠든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충분히 잤다. 발제하고 기사 쓰고 간간이 카톡 주고받으니 6시반쯤 됐다. 동료와 마지막 아침을 함께 먹는다. 택시 서비스 아자씨가 말렉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 간다고 하니까 한참 검색한다. 결론적으로 여기는 아주 찾기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근처에 볼만한 라이브러리나 뮤지엄이 너무 많아서다. 모두 그게 그거고 비슷한 수준이라고 길 물어본 어느 인간이 얘기해준다. 택시는 부러 내리기 좋은 곳을 찾아 뱅뱅 돌며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방향 감각 없는 듯 이 사람 저 사람 라이브러리 안내하는 게 달라 혼란스럽다. 말을 끝까지 안 듣고 특정 단어만 꽂혀 안내하는 듯햇다. 예를 들어 라이브러리면 라이브러리, 뮤지엄이면 뮤지엄 한 단어에만 꽂히는 듯. 결국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 남자가 따라오라고 해 내셔널 뮤지엄 오브 이란 티켓 창구 바로 앞 라이브러리를 알려준다. 한 중늙은이, 3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셋이 앉아 수다 떨다가 웬 동양 떨거지가 이런 데도 다 오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엔사이클로피디아 등 장서의 다양함이나 섹션 분류가 모두 훌륭하다. 사람의 손길을 잘 탔다. 특히 2층은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데 첫눈에 봐도 오래된 책들이어서 호기심은 발동했지만 궁금증을 풀 길이 없었다. 이런 때 써먹게 영어를 잘해야 하는데 싶었다. 책의 향기를 그리워 하는 사람이며 이왕 내셔널 뮤지엄에 들를 계획이라면 공짜이고 이슬람 책 사랑의 편린을 들여다볼 수 있어 강추할 만했다. 티켓 창구에서 20만리라-이슬람 시대, 30만리라-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두 종류가 있길래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뭐 이런 바보같은 놈이 다 있냐 하는 표정으로 당연히 30만리라를 추천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 다음에 테헤란 들를 일 있으면 당연히 이슬람시대를 추가로 보겠지만. 선사 유적지 발굴 현장과 비화 등을 사진과 상상도 등으로 흥미롭게 꾸며놓았고 전시된 물품의 다양성이 뛰어나다. 페르시아 문명의 독창성, 풍부함을 느끼기에 손색 없었고 특히 이 뮤지엄의 1호 보물이라고 자랑하는 다리우스 황제 즉위식을 묘사한 부조 ‘알현’은 정말 한번은 꼭 볼만하다. 1층과 2층으로 나뉘는데 1층이 조금 나중, 다시 말해 청동기와 철기이고 2층이 선사시대라 2층 먼저 보고 1층 내려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푹 빠져볼 만했다. 뮤지엄 나와 길 건너편 분수대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것도 좋았다. 이어 방향도 모른 채 의자상가, 전자기기 상가 등을 헤매며 과자 사고 과일 샀다. 과자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과자였는데 나중에 먹어보니 꽤 괜찮았다. 과일 장수는 고대 페르시아와 신라, 고려의 문물 교류에 대해 흥미있다며 한국인과의 만남, 특히 농구대회를 취재하러 온 한국 기자와 얘기를 나눈다는 데 대해 많이 들떠 했다. 그의 도움으로 즐거운 쇼핑을 했다. 슈퍼 바로 나와 택시를 탔다. 타고 나니 이 동네가 완전 청과상 골목이다. 꼭 뭐를 찾다가 어쩔 수 없이 하급품으로 만족하면 좋은 것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역시 올림픽 호텔 하니 못 알아듣고 올람픽 호텔이라고 하니까 급반색, 40만리라쯤 나올 거라고 말한 것 같았는데 나중에 한 번 길을 묻고 도착한 뒤 미터기를 보니 31만리라쯤이었다. 10만 짜리 석 장 건네고 소액권 찾았더니 관두란다, 나름 길을 돌았다며 미안하다는 표시를 한 것 같았다. 낮 12시 15분쯤 호텔에 도착해 일행에게 과자랑 과일 한 보따리 넘기고 작별 인사하고 체크아웃, 택시 서비스로 가 신청했더니 80만리라, 엄청 비싸다니까 공항이 완전 외곽에 있어서라고 했다. 실제로 가보니 정말 멀었다. 한도 끝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는 느낌, 그렇다고 사막은 아니고, 황무지도 그런 황무지가 없다. 테헤란에 불어오는 모래바람, 전날 밤 호텔에 돌아가면서 봤던 다운타운 상공을 뒤덮은 연무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1시 조금 넘어 공항 도착해 체크하고 짐 부치고 과자 사고 캐셔는 유로로 계산해 신용카드 결제하려다 여의치않아힘들어 하길래 달러로 하겠다고 했더니 급반색, 100만리라가 넘었던 것 같은데 35달러라고 해서 50달러와 5달러 건네고 20달러 돌려달라고 했더니 계산 해보고 또 해보고, 애들 참 암산 같은 것 못한다. 카페 가면 와이파이 쓸 수 있을까 해서 커피 사먹으려는데 4달러란다. 웬 과자 봉지 둘을 건네길래 커피는 어디있느냐, 이래갖고 커피를 어떻게 먹느냐고 하니까 씩 웃으며 저쪽 가면 커피준댄다. 진작 얘기했으면 그렇게 정색하고 따지지 않았을텐데. 와이파이 비번 물어보니 다 모른댄다. 이 가게 종업원들인데 그런다. 누가 아느냐니까 밑에 어느 항공사 비즈니스 라운지 가보랜다. 그야말로 구걸을 하라는 얘긴데 커피맛이 좋고 과자맛도 좋아 용서해준다. 과자는 하이바이-HIBYE, 세상에 과자 이름이 독창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게 과연 무슨 뜻에서 붙인 이름일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데 투박한 모양치고는 적당히 달고 맛있었다. 시간은 정말 후딱 흘렀다. 어느 순간 불현듯 시계를 보니 얼추 보딩 시간이 가까워온다. 서둘러 비행기를 탔더니 에어버스인데 거진 사람들이 다 앉아, 네가 늦게 오는 바람에 우리가 못 가지 않느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게중에는 정말 태어나서 동양인 50대 남자를 처음 본다는 표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중동 촌놈들이 상당수 있다. 내가 앉고도 20명 정도, 특히 맨 마지막 나타난 190cm에 100kg는 돼 보이는 잘 생긴 40대-이 녀석은 도대체 국적을 가늠할 수가 없다. 생긴 건 할리우드 톱클래스인데 늦어서 마구 뛰었는지 땀을 연신 훔치며 숨을 거칠게 몰아 쉬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5분쯤 지나자 그제야 비행기가 움직인다. 점심도 안 먹고 커피 한 잔에 과자 두 개 주워 삼키고 비행기에 올랐는데 기내식이 너무 늦게 나온다. 정말 이란 떠난 기념으로 와인이나 맥주 있냐고, 없는 줄 뻔히 알면서 또 물었다. 역시나 없단다. 그냥 물달라고 해서 반쯤 남겼다가 양치에 쓰려고 아꼈다. 이스탄불에 오후 6시 내려 나갈까 말까 고민 한참 했다. 문제는 석양이었다. 낮시간이라면 황홀한 이스탄불 풍광을 즐기기 위해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수속 받고 나가면 6시반, 어두워지기까지 90분, 이동하면 끝, 보스포러스 크루즈 탈까 했는데 그것도 너무나 많은 변수-예를 들어 쉬는 날일 수도 있고, 예약자가 너무 많아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 테러나 강도당하거나 아니면 봉변 당할 수도 있으니 그냥 공항에 있기로 했다. 공항 내리니 역시나 사람 천지다. 휴대폰 충전하고 약 1시간 남짓 이 여행기를 대충 적었다. 와이파이 연결하려 했더니 위클리 120분이었단다. 7일 새벽에 사용했는데 13일 오후니 기간 만료라는 얘기다. 당시는 분명 원데이 120분이라고만 했던 것 같은데. 불편한 대합실 의자에 길게 누워 잠을 청했는데 환승 공항으로 유명한 이곳에서는 도대체 잠이 들 수가 없다. 어디나 사람이 많다. 저녁 시간 이 공항에 도착해 6시간 이상 환승해야 한다면 반드시 바깥 바람을 코에 불어넣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렇게 이란 여행기를 갈무리한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취재 틈틈이 엿본 이 나라도 모순 투성이다. 반미 운동의 기지와 같은 곳이었지만 길거리에 영어 좀 하는 여성들이 넘쳐난다. 유럽 어느 여인네 못지 않게 명품 선글래스를 차도르나 히잡과 함께 보여주는 여성들이 많다. 그녀들이 운전하는 모습은 왜 그리 멋져 보이는지 모른다. 호텔 로비의 카페에서 남자와 찰싹 달라붙어 대화를 나누는 여성도 쉽게 눈에 띈다. 그런데 어렵지 않게 앞 자동차와 추돌하며 주차한 차들을 볼 수 있다. 사막으로 둘러싸인 나라에 멋진 분수와 나무들 사이로 지하수들이 흐른다. 길 한복판에서 달러화를 중개하느라 목청껏 소리지르는, 마치 뉴욕 증권거래소를 옮겨놓은 듯한 풍경도 충격적이었다. 한대 맞을까봐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지 못했는데 적잖이 후회된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향기를 품은 많은 박물관들, 나중에 세계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테헤란 근교의 토찰산 너머 카스피해 쪽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데 돌아봐야겠다. 출장이라 아스파한이나 페르세폴리스 같은 고대 유적 도시들을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분명 색다른 매력으로 반짝이는 이란을 다시 찾을 날이 올 것이다. 글·사진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北 매체 “50년 전 남한에 홍수 피해 지원했다”… 對北 지원 우회 촉구

    23일 북한의 한 선전 매체가 남한에 50여년 전 홍수피해가 났을 때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다고 주장하면서 우회적으로 대북 지원을 촉구했다. 북한 매체 ‘내나라’는 이날 “주체48(1959)년 9월, 예년에 없던 비바람과 큰물이 온 남녘땅을 휩쓸었다”며 1959년 9월 23일 채택된 대남 홍수피해 지원을 위한 ‘내각 결정 60호’를 상세히 전했다. 이 매체는 “눈비가 조금만 내려도 판자집에서 고생하는 남반부 인민들을 걱정하시고 강물이 조금만 불어도 남반부 인민들이 애써 지은 농사에 피해가 있을까 심려하신 위대한 김일성 대원수님께서는 남반부 이재민들을 한시바삐 구원하시기 위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결정 60호를 채택하도록 하시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선 1차적으로 쌀 3만석, 직물 100만마, 신발 10만컬레, 시멘트 10만포대, 목재 150만재…. 이렇게 결정서 초안에 구호물자의 수량을 한자한자 적어나가시던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쓰라린 마음을 억제하시는 듯 잠시 펜을 멈추시였다”고 전했다. 또 “어버이 수령님께서 운명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자기들에게 이처럼 뜨거운 구원의 손길을 펼쳐주시였다는 소식에 접한 남녘땅 인민들은 수령님이시야말로 자기들을 구원해주시는 민족의 태양이시고 생명의 은인이시라고 하면서 어버이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였다”는 황당한 주장도 내놨다. 북한 선전 매체가 느닷없이 반세기 훨씬 전의 일화를 공개한 것은 최근 함경북도에서 발생한 홍수피해에 대한 지원을 우회적으로 요구하면서 ‘지원 불가’ 입장을 밝힌 우리 정부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지난 20일 대북 수해지원을 목적으로 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의 북한 당국 접촉 신청을 불허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 9월 태풍 ‘사라’가 전국을 강타해 모두 849명이 숨지고 2533명이 실종됐으며, 37만 345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퇴계가 사랑한 기생…그의 순애보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퇴계가 사랑한 기생…그의 순애보

    두향의 남자, 퇴계의 여자 중국 개화기의 대표적인 사상가 양계초(梁啓超)가 “아득하셔라, 이부자(李夫子) 님이시여”라며 거리낌없이 성인이라 칭한 퇴계 이황. 이 근엄 무쌍한 도학자에게 실로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것도 이팔 청춘 한창때가 아니라, 불혹(不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맞닥뜨렸던 가슴 아픈 사랑이었다. 그 상대 여성은 그럼 누구였던가? 되도록이면 팩트에만 근거하여 퇴계의 러브 스토리를 재구성해보도록 하자. 내가 더듬어본 자료에 의하면, 퇴계의 사랑과 그 상대 여성이 일반에게 알려진 계기는 정비석의 '명기열전'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두향(杜香)이라는 단양 기생과 퇴계 사이에 있었던 러브 스토리를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단양기 두향’편을 씀으로써 퇴계와 두향의 슬픈 사랑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 단양에 두향이라는 명기의 슬픈 사랑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정비석이 안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그 상대 남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작가가 단양에 내려갈 때마다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보고 자료를 뒤져봤지만, 종내 그들의 사연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고서를 뒤적이다가 우연찮게 두향의 무덤에 관한 한시 두 수를 발견하게 된다. 그중 한 수는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에 고구마를 처음으로 전파시킨 이광려(李匡呂)라는 실학자의 작품으로, 그가 두향묘를 참배하고 지은 시라 한다. 孤墳臨官道 국도변에 외로운 무덤 하나 頹沙暎紅萼 물가 모래에 어리는 붉은 꽃 杜香名盡時 두향이란 이름 잊혀질 때야 仙臺石應落 강선대 바위도 사라지리라 이로써 ‘두향’이 ‘전설’이 아니라 ‘실화’임을 확신할 수 있었을 뿐더러, 시편에서 풍기는 가락으로 보아 두 사람의 사랑이 예사롭지 않은 거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니면, 한낱 기생의 무덤을 두고 대시인들이 이런 시를 남겼을 리 만무한 노릇 아닌가. 그뿐 아니다. 400년도 더된 무덤이 아직까지도 보존되고 있어, 한때 이 무덤을 찾은 노산 이은상이 다음과 같은 소회를 그의 기행문 속에 남겼던 것이다. '내 비록 풍류랑은 아닐망정, 그 무덤 앞에 꽃 한 송이 못 놓고 가는 것이 어떻게나 서운한지 모르겠다.' 이 무덤의 주인 두향의 남자는 누구일까? 작가는 우연찮은 기회에 마침내 ‘그 남자’를 알아내게 됐는데, 정말 이럴 수가? 입이 딱 벌어지는 사실이었다. 작가가 전하는 전말은 다음과 같다. 퇴계학 관련자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안동 도산서원으로 내려가던 중 기차가 단양을 지날 때, 작가가 단양 명기 두향의 남자를 몇 해째나 찾아봤지만 알아내지 못했노라고 푸념처럼 말하자, 동행하던 한문학자 이가원(李家源) 교수가 불쑥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두향의 상대 남자는 바로 퇴계 아니오.” 이 교수는 퇴계학의 권위일 뿐 아니라 퇴계 14대 후손이기도 하다. 어찌 믿지 못하리오. 알고 보니 이미 오래 전부터 퇴계 문중에서 두향묘를 관리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 역시 몇 년 전에 두향묘를 찾아, 무덤 한가운데 소나무 한 그루가 나 있는 걸 보고는 마을 사람에게 베어달라고 하면서 돈까지 주고 왔다는 것이다. 이로써 퇴계와 두향과의 관계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정비석은 안동에서 올라오던 길에 우정 단양에서 내려 강선암 아래 쑥대밭 속에 누워 있는 두향의 묘를 주민의 도움으로 찾았다. 과연 무덤 한가운데는 이가원 교수가 말한 대로 소나무 그루터기 하나가 박혀 있었다. 의심할 바 없는 퇴계의 여자 두향의 묘였다. 작가는 한 길 넘는 쑥대밭 속에 누워 있는 두향에 대해 창연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 주머니돈을 털어 촌민에게 건네며 표석 하나만이라도 세워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귀로에 올랐다고 한다. 매화, 시, 음률로 맺어지다 퇴계가 단양 군수로 온 것은 명종 3년(1548년) 정월, 그의 나이 48살 때였다. 그때 단양 관기인 두향의 나이는 18살, 30년이란 세월이 두 사람 사이를 흐르고 있었지만, 둘 사이에는 공유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세 가지였다. 첫째가 매화, 둘째가 시, 셋째가 음률이었다. 퇴계는 대철학자이지만, 동시에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 매화를 깊이 사랑하여 생전에 백 수가 넘는 매화시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매화시만으로 ‘매화시첩’을 만들기도 한, 그야말로 매화 마니아였다. 아래의 시는 그가 얼마나 감각적인 시인인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가작이다. 步躡中庭月趁人 뜰을 거닐으니 달이 사람 좇아오네 梅邊行遼幾回巡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夜深坐久渾忘起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길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 꽃내음 옷에 스미고 그림자 몸에 가득하네 또한 퇴계는 일종의 음악론인 ‘금보가(琴譜歌)’를 쓰기도 할 만큼 음률에도 밝았다. 그렇다면 두향이 사정은 어떤가? 일단 미모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미인급에는 못 미치는 듯하지만, 아주 귀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름아닌 양매(養梅)와 거문고의 고수였던 것이다. 게다가 시에도 밝았다. 그러니 퇴계와 두향은 유효 거리 내에서는 언제든지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 원소와 다름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시 퇴계는 두 번째 부인 권씨를 잃은 지 2년이 지난 홀아비 신세였음에랴. 퇴계가 두향을 만났을 때는 권씨가 세상을 떠난 지 이태가 지난 뒤였다. 이래저래 활성 기체 같았던 두 남녀의 첫 얽힘에 대해서는 상상으로나 그려볼 수 있을 뿐, 어차피 기록은 없다. 그러나 매화와 음률, 시 등으로 두 사람이 30년 세월과 신분을 훌쩍 뛰어넘어 서로에게 침잠했을 거라고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다. 교양과 기예, 재능과 학문을 갖춘 젊은 여인의 향기 속에 퇴계는 속절없이 빠져들었을 것이다.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양매의 고수인 두향이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30년 묵은 백매와 청매 두 분(盆)을 퇴계의 거처에 옮겨두었다고 한다. 퇴계가 특히 매화를 혹애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백매와 청매는 참으로 기품 높은 나무로, 고수는 서로 한눈에 알아본다고, 퇴계는 한눈에 그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챘을 것이다. 그 무렵 매화를 읊은 퇴계의 시가 여러 편 전하는데, 다음의 시가 두향의 매화를 보고 지은 것으로 보인다. 獨倚山窓夜色寒 홀로 산창에 기대니 밤기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 매화나무 가지 끝에 둥근 달이 걸렸구나 不須更喚微風至 구태여 소슬바람 다시 불러 무엇하리 自有淸香滿院間 맑은 향기 저절로 온 뜰에 가득한데 퇴계는 두향이 어린 나이임에도 깊은 인품과 내명(內明)한 자질을 지닌 여인임을 알고는 여러 번 감탄했다고 한다. 더욱이 퇴계는 남녀상열지사에 대해서는 상당히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청상이 된 며느리를 재혼하라면서 친정으로 돌려보내기까지 한 휴머니스트였다. 단양은 벽지이지만 산수가 빼어나기로 이름 높은 고장이다. 예로부터 단양에 부임해오는 원님들은 모두 울며 왔다가 울며 간다는 말이 전해진다. 올 때는 궁벽한 곳으로 간다고 눈물짓지만 갈 때는 아름다운 고장을 떠나기 못내 아쉬워 운다는 것이다. 명승으로 꼽히는 곳을 들자면, 먼저 정도전의 전설이 얽혀 있는 도담삼봉을 비롯해, 석문(石門), 사인암(舍人巖), 상·중·하선암(下仙岩), 구담봉(龜潭峰) 그리고 옥순봉(玉筍峰) 등 팔경을 앞세울 수 있고, 그밖에도 기암괴석, 옥류가 곳곳에 널려 있다. 퇴계와 두향은 이 절경들을 둘러보면서 꿈결 같은 생의 한때를 보냈을 것이다. 지금 흔히 말하는 ‘단양팔경’은 퇴계의 아이디어로, 그때 두향과 같이 다니면서 퇴계가 스스로 이름 붙이고 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퇴계가 공무를 뒤로 하고 매양 놀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성(誠)’이라면 둘째 가기 서러워할 퇴계 아니던가. 그는 단양이 물이 많은 고장임에도 자주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사실을 직시하고는 최초로 물을 가두는 보를 쌓는 등, 뛰어난 치적을 올린 지방관이었다. 이 보가 생긴 이후로 단양에서는 굶는 사람이 없어졌다 한다. 지금 충주호를 보면 4백 년 전 퇴계의 선견지명을 능히 알 수 있다. 이 보의 이름은 복도소(複道沼)라고 한다. 이 보가 완공되었을 때 퇴계는 준공기념으로 ‘복도별업(複道別業)’이라는 네 글자를 크게 써서 부근의 바위에 새기게 했는데, 그 각자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또 남아 있는 퇴계의 글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퇴계가 아침마다 세수를 한 곳에 새겨져 있는 ‘탁오대(濯吾臺)’ 세 글자다. 퇴계와 두향은 특히 남한강 가 강선대(降仙臺) 위에서 자주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으며 노닐었다. 강선대는 백 명이 올라가 놀 수 있을 만큼 너른 너럭바위로, 지금은 충주호에 잠겨 있지만, 갈수기에는 가끔 그 모습을 물 위로 드러내기도 한다. 두 사람은 단양팔경 속을 거닐며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았다. 그러나 퇴계와 두향의 단양 시절은 가을이 미처 다 가기도 전인 시월에 갑자기 막이 내린다. 불과 아홉 달 만에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은 퇴계의 넷째 형 이해(李瀣)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된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형이 자기의 직속상사로 온 것이다. 공사가 엄격했던 퇴계는 이를 피하기 위해 인근 고을인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게 되었다. 두향과의 이별은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감정이 얼마나 절절했을 것인가는 미루어 짐작할 수밖엔 없다. 단양을 떠날 때 퇴계의 짐은 책 두어 궤짝과 괴석(怪石) 두 개뿐이었다고 한다. 단양을 떠나 한 나절쯤 가면 풍기와의 경계인 죽령에 이른다. 두 사람은 아마 거기에서 작별한 듯하다. 그리고 그로부터 21년 후 퇴계가 70살로 눈을 감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편지 왕래는 있었던 모양이다. 두향에게 보낸 다음의 시를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黃卷中間對聖賢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만나보며 虛明一室坐超然 빈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으로 봄소식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 마주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마라 퇴계의 나이 52세 되는 해(1552년)의 작품이다. 그러니까 두향과 헤어진 지 4년째 봄을 맞아 쓴 시이다. 시문의 끝 구절에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마라"는 두향의 마음을 위로하는 내용임이 분명해 보인다. 두향은 이 시 한 편을 받고 평생을 거문고 가락에 실어 노래로 불렀으리라. 퇴계와 헤어진 후 두향은 기적에서 몸을 빼내 이듬해 봄, 강선대가 눈 아래 굽어보이는 적성산 기슭에 움집을 짓고는 평생 홀로 살았다고 한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두 번씩이나 보낸 두향이 이 초당을 떠나게 된 것은 퇴계의 부음을 들었을 때였다. 두향은 바로 집을 나서 죽령을 넘어가는 험란한 200릿길을 단신으로 걸어 나흘 만에 안동 도산서당이 있는 도산면 토계리에 도착했다. 그러나 빈소에는 찾아가지 못하고 멀리 상가가 보이는 산기슭에서 소복한 차림으로 망곡하며 하룻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두향과 헤어진 후 퇴계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풍기군수를 일년 남짓한 퇴계는 병을 이유로 사직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조정에서는 계속 퇴계를 불러,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지만, 이미 벼슬에는 뜻이 없는데다 병약한 퇴계는 번번이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가 평생 동안 사직서를 쓴 것만도 80여 회나 된다고 한다. 말년엔 안동에 서당을 지어 은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퇴계의 학문적 성취는 대개 두향과의 이별 이후인 50대~60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자연과 학문 속에서 위안을 찾으며 살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의 명산인 청량산을 특히 자주 찾았고, 때로는 며칠씩 산에 있다가 내려오기도 했다.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 그의 명시조 '청량산 육륙봉'은 그래서 태어난 것이다. 청량산 육륙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헌사하랴 못 믿을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지지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 퇴계에게 또 하나의 큰 위안은 매화였다. 죽을 때까지 매화를 가까이하며 뜰에도 심고 방안에서도 가꾸던 퇴계는 마치 매화 대하기를 사람 대하듯 했다고 한다. 매선(梅仙)이라 하기도 하고 매형(梅兄)이라 부르기도 했다. 병으로 몰골이 심히 초췌할 때엔 매화 보기가 부끄러우니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도 했다. 세상을 떠날 때 퇴계의 마지막 말은 자신이 사랑하던 매화를 보며 ‘저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물녘이 되자 누워 있던 자리를 정리하게 한 후, 제자들이 일으켜 앉히자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1570년 음력 12월, 향년 70세.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죽기 전 퇴계가 손수 지어놓은 묘비명 끝 구절은 다음과 같은 글이었다. 근심 속에 낙이 있었고, 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었네(憂中有樂 樂中有憂) 조화를 좇아 사라짐이여,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乘化歸盡 復何求兮) 이보다 더 아름답고 완벽한 종결이 있을까. 강선대 위 초막으로 돌아온 두향은 이듬해 봄 거문고와 서책 등을 모두 태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퇴계의 뒤를 따랐다. 자료에 따라서는 강물에 뛰어들었다고도 하고 부자차를 끓여 마시고 죽었다고도 하는데, 증거는 없지만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싶다. 깔끔한 성품의 두향이 강물에 빠진 시신을 수습하는 폐를 남에게 끼치고 싶진 않았으리라. 유언은 그녀가 생전 퇴계와 노닐었던 강선대 아래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무덤은 전 충주호가 생겨나면서 수몰을 피해 200m쯤 위로 묘가 옮겨졌다. 두향이 죽은 뒤 퇴계의 제자인 이산해가 해마다 제사를 지내주었고 한다. 지금도 퇴계의 후손들과 유학자들은 퇴계의 제례를 지내고 나면 충북 단양의 강선대로 와 두향의 묘를 참배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두향을 향한 퇴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시 한 편을 읽는 것으로 퇴계와 두향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끝내기로 하자. 前身應是明月 내 전생은 응당 밝은 달이었으리 幾生修到梅花 몇 생애나 더 닦아야 매화가 될까. 글·사진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관광산업 발전 위한 릴레이 제언] 한국의 미소와 친절, ‘K스마일’/정창수 한국관광공사 사장

    [관광산업 발전 위한 릴레이 제언] 한국의 미소와 친절, ‘K스마일’/정창수 한국관광공사 사장

    리우올림픽에 이어 패럴림픽의 성화도 꺼졌다. 사실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이벤트를 통해 국가적으로 거둬야 할 최종 효과는 결국 관광이란 점에서 과연 전 세계에 ‘다시 찾고 싶은 브라질, 리우’의 이미지를 남겼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찬란한 문화유산 등 방문객들이 다시 오고 싶도록 만드는 콘텐츠는 많다. 나는 그중 ‘친절’이야말로 가장 궁극적인 관광 콘텐츠라고 믿는다. 사람이 가장 반하는 대상은 결국 진심과 선의를 선사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더욱이 이제는 개별 여행의 시대다. 여행자들은 중동 등 내전 지역까지 여행하려 들 정도로 자신만의 여행 스타일과 독특한 경험을 추구한다. 게다가 예전처럼 유명 관광지를 구경하고 가기보다 직접적이고 입체적인 체험을 위해 현지 일상 속으로 더 들어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여행 트렌드에서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와 방문객 간의 깊은 공감과 소통이고, 방문객에 대한 호의와 환대는 그 필요조건임이 틀림없다. 이 대목에서 지난해 8월부터 한국방문위원회와 한국관광공사가 40여개 민관 단체와 함께 추진 중인 K스마일 캠페인을 우리는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K스마일 캠페인은 미소와 친절을 넘어 2016~2018 한국 방문의 해와 평창동계올림픽을 발판으로 한국 관광산업의 선진적 전환을 기하자는 사업이다. 덤핑·저가 관광상품 유통, 불친절과 바가지, 외래객들의 수도권 집중 현상 등은 한국 관광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반드시 개선돼야 할 구조적 문제들이며, 이를 위한 제도 개선, 인프라 보강은 꾸준히 실천돼야 할 과제다. 이런 노력들은 해외 관광 선진국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2003년부터 ‘일본 방문 캠페인’을 개시했고, 이를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연장 추진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01년에 시작돼 오늘까지 이르고 있는 ‘싱가포르 친절운동’은 이제는 관광 차원을 넘어 ‘품위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범국민적 사회문화 운동으로 진화했다. 특히 이들 캠페인이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적 추진, 다양한 민관 협조체제 구성, 정부·공공 주도에서 점차 민간의 자율성에 기반한 캠페인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 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는 27일이면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딱 500일 전이다. 리우를 반면교사 삼아 대회 준비는 물론 관광입국으로의 큰 전환점을 이룰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잘 마련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때다. 아울러 한국을 찾은 손님들에 대한 환대와 정을 베풀고, 그를 위한 서비스 품질과 신뢰를 높이는 데 사회 전반이 깊은 관심을 가져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 [김기중 기자의 교육 talk] 커지는 학종 공정성 불신…기름 부은 교육부·대교협

    “기자님에게만 특별히 보여주는 겁니다.” 3년 전 A고교를 취재할 때였습니다. A고 교감이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제게 내밀었습니다. 스프링으로 묶은 책 5권이었습니다. 권당 300쪽이나 됐습니다. 교감은 “이게 바로 우리 학교 비밀병기”라며 씩 웃었습니다. 자료에는 이 학교 학생들이 3년 동안 어떤 활동을 했는지 빼곡히 담겨 있었습니다. 어떤 동아리 활동을 하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감상문을 써냈는지, 어떤 강사를 불러 특강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소논문을 썼는지 등입니다. 특히 영어로 작성된 30쪽 분량의 소논문 모음을 보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는 이 자료를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일부 상위권 대학에만 보냅니다. 고교 정보가 담긴 책자 또는 파일 형태 자료를 ‘고교 프로파일’이라 부릅니다. 대부분 고교는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을 시행하는 대학에 이 프로파일을 전달합니다. 프로파일은 한 장짜리 브로슈어부터 책까지, 다양한 형태입니다. 당시 제가 방문했던 A고교 프로파일은 대학에 가는 수천개 프로파일 가운데 눈에 띄는, 그야말로 ‘비밀병기’였던 셈입니다. 매년 수십여명을 서울대에 보내는 비결을 묻자 교감은 이 프로파일을 가리키며 “우린 학생부 종합전형이 대세가 되리라 예측하고 이렇게 준비를 해 왔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최근 대입전형의 ‘대세’가 되는 학종은 학생부와 함께 수험생의 비교과 활동을 주로 따집니다. 하지만 1500여곳이 넘는 고교가 비교과 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속속들이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2011년 ‘고교정보 시스템’을 만든 것도 이를 해소하려는 의도에서였습니다. 전국 고교가 학생 수, 교육 현황, 특기 사항 등 대입과 관련한 항목을 기재하면 각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이를 내려받아 각 고교를 비교합니다. 하지만 대교협은 올해 수시모집 원서접수 시작을 3주 앞두고 돌연 “교육부가 예산 2억원을 주지 않아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다”고 공지했습니다. 대학과 고교 모두 황당했습니다. 다급해진 서울대 등 16개 대학이 급기야 고교에 정보를 내놓으라 하자 진학 담당 교사들은 “대학이 입학 정보를 고교에 직접 요구 말라”는 성명까지 내놨습니다. 교사들은 그러면서 “교육부와 대교협은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고 학종 취지에 맞는 고교 소개자료 공통양식을 개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이 초·중·고교생과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804명에게 물었더니 75.4%가 학종을 ‘부모와 학교, 담임, 입학사정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불공정한 전형’이라고 답했습니다. 점수와 순위가 나오는 교과와 달리 비교과를 주로 보는 학종의 아킬레스건은 당연히 공정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 입장에서 1500쪽짜리 고교 정보를 보낸 학교와 한 장짜리 학교 소개 자료를 보내는 학교를 같은 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는 없겠죠. 학종 성공의 핵심은 불공정성을 없애는 일에 달렸다는 겁니다. 최근 광주의 한 고교에서 학생부 조작 문제가 불거지자 교육부는 “모든 고교의 학생부를 전수조사하겠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한창 바쁜 입시철에 뉴스가 나오자 난리를 칠 게 아니라 이미 했어야 할 일입니다. 학종 공정성 논란에 기름을 쏟아붓는 꼴을 보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gjkim@seoul.co.kr
  • 조윤선 “올림픽 노하우 공유… 韓 中日 우애 다져야”

    조윤선 “올림픽 노하우 공유… 韓 中日 우애 다져야”

    “올림픽을 매개로 한·중·일 3국이 서로 우애를 다졌으면 좋겠습니다.” 제1회 한·중·일 스포츠 장관 회의에 참석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동북아 3국에서 4년 동안 차례로 올림픽이 열리는데 (한·중·일 스포츠 장관 회의를 통해) 올림픽 노하우에 대해 공유하고 서로 도울 점이 있는지 이야기하겠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조 장관은 “각종 현안이 많음에도 한·중·일 스포츠 장관이 마다하지 않고 모인 것 자체가 이미 성공”이라며 “이번 회의를 통해 3국의 스포츠 장관이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협력의 물꼬를 튼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 장관과 류펑 중국 국가체육총국장, 마쓰노 히로카쓰 일본 문부과학성 대신 등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2020년 도쿄하계올림픽-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연달아 치르는 세 나라의 스포츠 장관은 이날 강원 평창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 모여 제1회 한·중·일 스포츠 장관회의를 개최했다. 문화나 관광 분야의 3국 장관급 회의는 그동안 여러 번 개최됐지만 스포츠 분야에서의 장관급 회의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 장관은 “1988년 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지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한 세대 만에 다시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며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세계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솔깃하게 될 것이다. 한국이 가진 문화와 기술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장관은 이날 3국 스포츠 장관을 만나기 위해 내한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언급하며 “처음 만나게 됐다. 앞으로 성공적인 올림픽을 만들기 위해서 의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림픽의 평화정신을 (동북아 3국에) 구현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3국 스포츠 장관은 이날 양자회담과 알펜시아 스키점프대 시찰을 순차적으로 진행한 뒤 저녁 만찬을 끝으로 첫날 일정을 마쳤다. 마쓰노 대신은 만찬 건배사에서 “스포츠는 국가를 서로 이어주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며 “세 개의 올림픽이 개최되는 이때야말로 스포츠를 이용한 3국의 힘을 강화해 나갈 시기다. 이번 회담은 이를 향한 킥오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 총국장은 “3국이 함께 노력해 국민들 간의 우애를 증진하고 올림픽 발전을 위해 기여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평창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가파도 & 마라도’ 닮은 듯 다른 제주 남쪽 ‘섬 속의 섬’

    ‘가파도 & 마라도’ 닮은 듯 다른 제주 남쪽 ‘섬 속의 섬’

    제주 주변엔 유인도가 여럿이다. 그야말로 섬 속의 섬이다. 제주 남쪽엔 가파도와 마라도가 있다. 이웃해 있어 얼핏 닮았을 것도 같지만 이란성 쌍생아처럼 다른 구석이 더 많다. 가파도는 바다 위에 뜬 조개 같은 서정적인 풍경이, 마라도는 한국 최남단이라는 상징성이 돋보인다. ●가깝지만 가파도 찍고 마라도 갈 수 없는 섬 애초 원했던 건 가파도 ‘찍고’ 마라도 다녀오기였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여객선이 두 섬을 따로따로 운항하기 때문이다. 두 섬은 같은 항로에 있다. 따라서 가파도에 들렀다 마라도까지 가는 게 주민이나 여행객 모두에게 이로울 듯하다. 한데도 굳이 선편을 나누는 건 선사의 이익에만 부합하는 것 아닐까 싶다. 가파도는 제주 본섬과 국토 최남단 마라도 사이에 놓인 섬이다. 면적은 0.85㎢(26만평). 2.94㎢인 서울 여의도(89만평)의 3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서귀포 모슬포항에선 5.5㎞ 정도 떨어졌다. 통통배 타고 흘러흘러 가도 20분 안팎이면 닿을 거리다. 섬은 바다와 거의 나란하다. 가운데가 그나마 뾰족 솟았는데 그래 봐야 해발 20.5m다. 가랑잎처럼 작디 작은 섬이 거센 바람과 사나운 파도에 쓸려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섬엔 전깃줄이 없다. 지중화 공사로 전깃줄은 땅에 묻혔고, 풍경을 망치던 전봇대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단순하면서도 정갈한 옛 모습 그대로다. 가파도는 상동과 하동, 두 마을로 이뤄졌다. 섬 전체를 걸어서 둘러보려면 2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상동 선착장에서 왼쪽 방향, 그러니까 섬 동쪽을 향해 자박자박 걷다보면 ‘6개의 산’이란 이정표와 만난다. 제주의 산 7개 가운데 영주산을 제외한 한라산, 산방산 등 6개의 산을 볼 수 있다는 곳이다. 동쪽 끝의 해안가엔 ‘제단집’이 있다. 둥글게 돌담을 쌓고 가운데 작은 돌 두 개를 받친 뒤 위에 평평한 반석을 얹어 제단처럼 만든 형태다. 이를 ‘춘포제단’이라 부르기도 한다. 춘포제는 음력 정월에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다. 안내판에 따르면 가파도는 대정읍에서 유일하게 춘포제를 봉행하는 곳이다. 그 역사가 무려 150년을 헤아린다고 한다. ●물이 솟는 섬 가파도엔 해녀들 안전 비는 할망당 가파도는 제주도 내 유인도 가운데 드물게 물이 솟는다. 사투리로 ‘고망울’이라 불리는 우물이 섬 내 두 곳에 있다. 마을을 상, 하동으로 나눈 것도 따지고 보면 우물이 있던 곳을 기준 삼은 것이다. 풍족한 양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실 물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었을 터다. 주민들이 물 긷고 빨래하던 ‘동항개물’, 물질 끝낸 해녀들이 곁불을 쬐던 ‘불턱’ 등을 줄줄이 지나면 ‘하동 할망당’이다. 제단이 남성들이 주도하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축제 성격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면, 당은 여자들이 주도해 어부와 해녀의 안전과 풍어를 빌던 곳이다. 가파도 주민들은 당을 흔히 ‘할망당’이라 부른다. 상동과 하동에 각각 하나씩 있다. 상동 할망당이 ‘매부리당’, 하동 할망당은 ‘뒷서낭당’이다. 차곡차곡 돌을 쌓아 만든 할망당은 얼핏 보기에도 수십년은 족히 넘는 시간을 건너온 듯하다. 바깥세상은 팽이처럼 팽팽 돌아가는데, 여태 옛 습속을 기억하는 공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놀랍다. 마라도는 섬을 빙 둘러 가파른 절벽이다. 조개껍데기를 엎어놓은 듯한 가파도와 퍽 다른 모습이다. 해안 절벽은 동쪽이 다소 높고 서쪽이 낮은데, 이 때문에 제주 쪽에서 보면 꼭 한쪽 면만 파먹은 케이크를 닮았다. 동쪽 해안선은 기암절벽, 서쪽 해안선엔 해식동굴이 발달했다. 크기로 보면 마라도는 가파도의 동생뻘이다. 남북 길이 약 1.3㎞, 동서 길이는 약 0.5㎞ 정도다. 가장 높은 곳은 해발 36m. 여기에 마라도의 상징인 등대가 서 있다. 1915년 처음 불을 밝힌 등대다. 섬의 남쪽 끝엔 ‘대한민국 최남단비’가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 ‘땅끝’이라는 상징성 외에도 아름다운 풍광과 다양한 해양생태계 덕에 2000년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제423호)로 지정됐다. 가파도에서 마라도에 이르는 뱃길은 조류가 빠르고 거칠다. 지금이야 강력한 엔진을 가진 배들 덕에 어렵지 않게 오가지만, 배가 바람과 사람의 힘으로만 움직였던 예전엔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뱃길이 끊기기 일쑤였다. ‘마라도에서 진 빚은 갚아도(가파도) 되고 말아도(마라도) 된다’는, 다소 과장된 우스갯소리는 그래서 나왔을 터다. 그만큼 만나기가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위험한 뱃길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전한다. 아기 돌봐주는 여자아이, ‘애기업개’ 이야기다. 오래전 마라도는 금단의 땅이었다. 주민들은 섬 주변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면 바다의 신이 노해 화를 입는다고 여겨 출입을 삼갔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모슬포 해녀들이 마라도 해안에서 물질을 벌였다. 소라, 전복 등을 엄청나게 채취한 뒤 돌아가려 하자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거칠어졌다. 떠나려 하면 파도가 일고, 배에서 내리면 잔잔해지는 현상이 며칠째 이어졌다. 물도, 양식도 바닥난 어느날 해녀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배를 몰아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날 아침, 가장 나이 많은 해녀가 선주에게 꿈 이야기를 꺼냈다. 꿈 속에 나타난 이가 ‘애기업개’를 두고 가면 산다고 했다는 것이다. 선주도 같은 꿈을 꾸었다며 ‘애기업개’를 제물 삼자고 뜻을 모았다. 해녀들이 배에 오르자 아기 엄마는 ‘애기업개’에게 기저귀를 걷어 오라며 심부름을 보냈다. 그 사이 배는 떠났고, ‘애기업개’는 마라도에 홀로 남겨졌다. 3년 뒤 해녀들이 다시 마라도를 찾았을 때, 배 떠난 자리에 소녀의 하얀 뼈가 남아 있었다. 실화가 뒤섞인 전설 같은 이야기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당을 짓고 제를 지냈다. 그곳이 바로 ‘애기업개당’이라고도 불리는 ‘마라도 할망당’이다. 예전엔 때와 사람을 가려 제사를 지냈지만 요즘은 누구라도 아무 때나 제를 올릴 수 있다. ‘애기업개’ 이야기를 아는 이라면 잠깐이라도 머리 숙여 해녀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도 좋겠다. ●해산물 닮은 마라도 성당… 그 안에 힐링의 빛 마라도 남단에 성당이 있다. 2000년 세워진 달팽이 모양의 ‘미니’ 성당이다. 설계 당시 전복, 소라, 문어 등 마라도에서 나는 해산물을 반영했다고 한다. 무엇을 닮았다 한들 그깟 외모야 ‘뭣이 중헐까’. 내부에서 맞는 치유의 순간이 훨씬 값질 터다. 성당의 정식 명칭은 ‘마라도 뽀르지웅꿀라’다. 이탈리아 프란치스코 성인이 손수 벽돌을 쌓아 만든 작은 성당 ‘뽀르지웅꿀라’를 차용한 이름이다. 한데 관광객 대부분은 그저 스쳐지날 뿐 정작 안으로 드는 이는 많지 않다. 성당 문은 열려 있다. 막는 이는 자신뿐이다. 안에 들면 포근한 건축 설계에 절로 마음이 놓인다. 달팽이 등짝의 채광창을 통해 몇 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촛불 켜진 강대 위엔 성경책이 펼쳐져 있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신발끈 풀고 쉬어갈 만한 풍경이다. 글 사진 제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64 →가는 길:마라도와 가파도 가는 배는 모두 서귀포 모슬포항에서 출항한다. 가파도는 하루 네 차례, 마라도는 다섯 차례 각각 오간다. 가파도 왕복 요금은 1만 1400원, 마라도는 1만 6000원이다. 두 섬 모두 입도료 1000원을 별도로 받는다. 매표소는 한곳이지만 선착장은 나뉘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아울러 신분증은 승선객 모두 반드시 지참해야 하고, 승선에 앞서 모슬포여객터미널(794-5490~3)에 좌석을 예약해야 한다. 가파도 안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음식점도 몇 곳 있다. 해물짬뽕은 ‘가성비’가 떨어지는 편. 바다 향 가득한 짜장면이 낫다. 해물비빔국수는 조리에 다소 시간이 걸린다. 송악산항에서도 마라도를 오갈 수 있다. 요금은 같다. 794-6661. →먹거리: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는 레스토랑 ‘밀리우’에서 가을 해산물과 제주 향토 음식을 활용한 ‘가을 특선 메뉴’를 선보인다. 가을철 제주에서 나는 잿방어, 돌문어 등이 주재료다. 대표 메뉴로는 잿방어 회에 고소한 미소 드레싱과 사워크림을 곁들인 차가운 전식, 돌문어 콩피(오일에 저온 조리)에 매콤하게 조리한 당근 퓨레와 한라봉 살사를 곁들인 따뜻한 전식이 있다. 제주 향토 음식인 고기 국수에서 영감을 얻어 저온에서 조리한 흑돼지에 걸쭉한 벨루테 소스를 곁들인 따뜻한 전식도 눈길을 끈다. 양 요리도 준비했다. 찜과 비슷한 브레이징 조리법으로 한층 부드러운 식감을 살린 양 어깨살에 렌틸콩과 다양한 제철 채소를 넣어 가을의 풍미까지 살렸다. 밀리우를 총괄하고 있는 박무현 셰프는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레스토랑 ‘더 테스트 키친’의 수석 부주방장을 지낸 실력파 셰프다. 지난 6월 영입 이후 제주산 식재료와 향토 음식을 양식 테크닉으로 풀어낸 수준 높은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780-8328.
  •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3. “더치 하실래요” 데이트통장, 연애 공식을 뒤집다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3. “더치 하실래요” 데이트통장, 연애 공식을 뒤집다

    소개팅에 나갔다. 청계천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패밀리 레스토랑. 돌판에 치익- 지글지글 익어가는 스테이크에 왕새우가 들어간 크림 스파게티.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다 마시고 나올 때 즈음 명세서를 가져가는 그 남자의 손이 떨렸던 것도 같다. 명세서에 적힌 금액은 도합 5만원 남짓. 카운터 앞에서 “할인되는 거 뭐 없나요?” 하는 남자의 뒷태를 쳐다보는 일이 정말이지 너무 민망하다. 그렇다고 선뜻 “더치 하실래요?” 하기엔 남자가 어떻게 생각할지 머릿속이 복작복작해진다. 그이가 계산하는 양을 쓸쓸히 바라보다, 그만 먼저 나와 버렸다. 나도 돈 있는데, 생면부지의 사람한테 이렇게 불편하게 얻어 먹어야 하나.   ◆ 양념이냐, 후라이드냐…그것은 가진 자의 특권 연애를 하면서, 혹은 소개팅을 하면서 나도 계산대 앞에서 고루한(?) 여자였다. 남자가 밥을 사면, 디저트는 내가 산다, 딱 그 정도 선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 그러나 스물 초반의 어느 연애를 겪은 후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대학 다닐 때, 나이 차가 좀 나는 직장인 남친을 사귄 적이 있었다. 자연히 없는 살림에, 돈 씀씀이는 한 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었는데 기운 것은 돈 씀씀이 뿐만이 아니었다. 가령 내가 죽고 못 사는 치킨에 관해서, 내가 ‘양념치킨’을 먹자하면 그는 ‘후라이드’를 주장하는 식으로 그와 나의 입맛은 조금씩 어긋났다. 그때마다 그는 혀를 쏙 내밀며 “내가 돈 내니까 내가 먹고 싶은 거 먹어도 되지?”라고 했다. 꼭 돈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그 연애에서 대체로 그의 의견이 내 의견에 앞섰다. ‘돈=권력’이라는 지엄한 현실을 온몸으로 체감한 나는 이후에는 소개팅을 하건, 연애를 하건 가급적 ‘더치페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돈의 무서움을 알게 된 나는 그 뒤로 돈에 더욱 철두철미해졌다. 소개팅에 나가면 가령 이런 식이다. 남자한테 밥을 얻어 먹는다→그러나 남자가 맘에 안 든다→그렇담 2차로는 이자카야나 호프 같은델 가서 호기롭게 메뉴를 주문한다→내가 사는 루틴을 거쳤다. ‘다시는 볼 일이 없으므로 얻어 먹지 않겠다’ 주의다. 그러나 남자가 내 맘에 들면 사정은 다르다. 밥을 크게 얻어 먹는다→ 커피 정도만 산다→헤어지고 카톡으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실래요? 제가 살게요~”하며 호기롭게 애프터를 신청하는 루틴을 거쳤다. 맘에 드니 크게 얻어 먹고, 다음에 만날 건덕지를 남겨두는 거다. (그러나 이 경우 상대가 나를 맘에 안 들어해 다시 만날 기회가 봉쇄되면 좀 애매해진다.) ◆ “자기, 우리 데이트 통장 만들까?” “???” 더치페이에 관한 인식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일간베스트에서 많이 회자된 ‘김치녀’라는 말을 필두로, 남자도 더치페이에 민감한 한편으로 여자도 더 이상 밥값을 계산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기가 민망해졌다. ‘남자는 밥, 여자는 커피’ 하는 식의 공식도 흐려질 태세다. 최근 돈도잃고사랑도잃고광광우럭따(29·女·이하 광광)는 칼 같은 더치페이 끝, 이별을 경험했다. 지난 여름, 남자친구와 강원도로 2박 3일 여행을 떠난 광광 커플. 삼척과 정선 등을 누비며 산도 보고 바다도 보고 카지노도 보고 그야말로 알찬 여행을 즐겼다. 사회 초년생인 광광 커플은 출발 전 남자친구가 차 렌트비 15만원을 결제하고, 숙박비로 15만원을 선 결제했다. 여행 출발일은 17일로 25일이 월급날인 광광은 벌써부터 살림살이가 빠듯했던 반면 10일이 월급날이라 비교적 곳간이 꽉 차 있던 남자친구는 “우선 내가 먼저 돈을 쓰고 나중에 나누자”고 했단다. 산도 보고 바다도 보고 카지노도 보고 잘 놀다 온 이후, 남자친구는 카톡으로 긴 내역서를 보내왔다. 회 53,000원 족발 42,000원 숙소 150,000원, 카지노 입장료 18,000원…도합 66만 6320원이 나왔는데 그 금액을 딱 반으로 나눈 금액이 광광에게 청구돼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정밀하게, 반띵 딱 해서 돈 달라고 할 줄은 몰랐어. 60만원 정도 나왔으니, 20만원 정도 내라고 할 줄 알았는데 …” 광광은 25일이 되자마자 웃돈 얹은 34만원을 그의 계좌로 넣었고, 26일 이별했다. (그녀가 찬 것은 아니다.) 더치페이에 관한한 보다 진화된 형태는 ‘데이트 통장’이다. 연인이 각각 정해진 액수를 계좌로 입금, 그걸로 데이트 비용을 충당하는 식이다. 2년째 연애를 이어가고 있는 월요병없는보검복지부(28·女·이하 복지부)는 역시나 2년째 데이트 통장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왜 (만들었니)?” 라는 질문에 복지부는 “같이 밥 먹을 일이 많은데 데통이 없으면 ‘오늘은 누가 내지?’ 하며 속으로 불편한 경우가 왕왕 생기잖아. 그러기 싫어서.” 라는 대답을 내놨다. 취업 후 첫 연애 세 달만에 ‘데통’을 만든 복지부는 일찍이 데통을 만든 선배 커플들의 의견을 참고, 매달 각각 15만원씩 계좌에 넣고 있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계산할 때마다 눈치볼 필요 없고, 내가 먹고싶은 비싼거 먹자고 당당히 말할 수 있고 ㅋㅋㅋ 데이트에 쓰는 비용이 눈에 딱 보이고 등등등…매우 좋습니당. 만족 대만족!” 일련 정 없어 보이는 데이트 통장은 그러나 다른 말로 서로를 오래 만나자는 다짐이기도 하다. 복지부는 “오래 사귈 거였다면 어떻게든 (데이트 통장 만들자고) 말했을 듯”이라고 덧붙였는데, 굳이 귀찮게 입출금 통장 계좌를 만들고 관리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모두 ‘함께 오래 만나자’는 각오를 의미한다는 것. 대학 선배와 7년째 연애 중인 O양(29·女)도 비슷한 생각이다. “오래 만나다 보니 오빠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오빠 돈인데, 피차 돈 많이 쓰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잖아 …데통 같은 거 만들어서 돈 안 새어 나가게 관리해야지.” 소싯적 엄마들이 “글쎄, 너희 아빠가 만난 지 한 달 만에 월급 통장을 턱 맡기지 뭐니~” 하던 투박한 프러포즈의 달라진 요즘 버전이 ‘데통’일지도 모를 일이다. ◆ 그깟 치킨, ‘반반 무 많이’로 먹으면 되지! 사랑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여러 형태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돈을 많이 쓰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걸 사주고 싶고, 그걸로 말미암아 더 잘 보이고 싶은 게 사람이니까. 그러나 더 이상은 “남자니까 당연히…” 내지는 “여자니까 당연히…” 식의 태도는 곤란하다. 성별을 떠나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내는 게 평등이야”라고, ‘디어 마이 프렌즈’에 나오는 윤여정 언니처럼 쿨하게 말한다면 모르겠지만, 어느 쪽으로든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돈으로 증명해봐!” 라는 태도는 피차 피곤하다. 그깟 양념치킨과 후라이드에 매몰돼 있을 때는 사실 ‘반반’이라는 걸 생각할 수가 없을 정도로 시야가 좁았음을 지금에 와서 자인한다. 그냥 ‘반반 무 많이’를 했으면 될 일인 것을. 돈 반반, 사랑 많이.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스무 살, 갓 상경한 꼬맹이는 십여 년 전 나온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로 연애를 배웠다. 드라마 속 ‘캐리’처럼 프라다 VIP가 된다거나, 마놀로 블라닉은 못 신고 살지만 뉴욕 맨하튼이나 서울이나 사람 사는 모양새가 별 반 다르지 않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다. 서른 즈음에 쓰는 좌충우돌 여자 이야기, ‘러브 앤 더 시티’다.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도심형 최고급 주상복합 원조…美 종교재단 파워 담긴 당당함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도심형 최고급 주상복합 원조…美 종교재단 파워 담긴 당당함

    # 사무실 같은 아파트 구도심의 유서 깊은 중심 상업가로인 종로는 세종대로 사거리를 건너면서 새문안로로 이름이 바뀐다. 이전에는 신문로(新門路)라고 불렸는데 아직 이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인다. 조선 초기에 서대문, 즉 돈의문이 폐쇄되었다가 다시 대대적인 수리 끝에 재사용되는 과정에서 ‘새문’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 그 유래다. 한양 도성의 동서 방향 중심은 지금의 탑골공원 부근이지만, 지형적인 이유 때문에 실제 중심인 세종대로는 이보다 훨씬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 결과 새문안로의 도성 내 구간은 770m 정도로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이 구간에는 흥국생명, 포시즌즈 호텔, 대우건설, 금호아시아나 그룹 등 한국의 중요한 대기업과 국제적 호텔 등이 밀집해 있다. 게다가 길의 북쪽에 경희궁과 서울시립역사박물관 등이 자리잡고 있으니 공공적인 성격 또한 매우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매우 인지도가 높은 길이라고 할 것이다. 지금은 없어진 새문, 즉 돈의문 조금 못 미친 곳의 새문안로 남쪽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보인다. 콘크리트에 시멘트 미장을 하고 거기에 페인트를 바른, 사실상 이보다 더 저렴할 수 없는 외부 마감 덕분에 존재감이 더욱 없어 보인다. 하지만 ‘피어선 아파트’라는 건물의 이름을 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피어선은 도대체 어떤 의미이며, 사무실처럼 생긴 건물이 아파트라니? 아서 태펀 피어선은 근대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이론가로서 미국 장로교의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연희전문학교와 새문안교회를 세운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박사와의 인연으로 병약한 중에도 1910년 12월 조선에 입국,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인도했다. 그러나 불과 6주 만인 1911년 1월 다시 조선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고, 같은 해 6월 3일에 세상을 떠났다. 조선에 성경학교를 세우라는 유언을 남겨 그 이듬해인 1912년에 현재 평택대학교의 전신인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이 설립되었다. 이후 1968년 피어선기념성서신학교로 개명한 후 재단의 자금 마련을 위해 진행한 사업이 바로 피어선 아파트다. 중림동 천주교 약현성당이 성요셉 아파트를 지은 것과 사업의 목적이나 시기 면에서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건축물 관리대장에 의하면 피어선 아파트는 1971년 11월 10일에 사용승인을 받았다. 경희궁 터에 있던 서울고등학교가 아직 서초동으로 이전하기 전이었다. 그 당시 교정을 드나들던 학생들에게 길 건너편의 최신식 도심 맨션은 매우 색다른 풍경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위치부터가 독보적이었다. 일단 사대문 안, 그것도 궁궐과 명문 고등학교 바로 맞은편이라는 입지는 이 연재에 자주 등장하는 서대문 바로 너머의 충정로나 홍제동 등 신개발지들이 견주기 어려운 것이었다. 같은 사대문 안이지만 도로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세워진 낙원상가나, 태평양 전쟁 후반기에 폭격을 대비한 소개공지대에 들어선 세운상가 등과도 확연히 다르다. 그야말로 구도심의 가장 핵심적이고 상징적인 위치의 하나에 자리잡은 것이다. 미국계 종교 재단의 파워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시기의 다른 여러 아파트들이 다 그러했듯이 피어선 아파트도 건립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 심지어 ‘서울에도 선진국 도시처럼 도심에 주상복합건축이 들어섰으니 한번 살아 봐야겠다’는 이유로 입주한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다. 1974년 7월 9일자 매일경제신문의 기사를 보면, 도심의 업무지구가 확대되고 한강변에 맨션아파트가 계속 들어서는 와중에 도심의 업무지구를 중심으로 ‘비원 근처의 가든 타워 아파트, 신문로의 피어선 아파트, 삼익건설(?)이 지은 사직 아파트, 남산에 솟은 외국인 전용 아파트 등 초고급 아파트’ 등이 들어섰음을 알리고 있다. 한마디로 피어선 아파트는 그 당시 가장 앞선 아파트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다. 지금의 피어선 아파트는 과거의 그런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더 이상 아파트도 아니다. 건축물 관리대장을 보면 분명히 대부분의 층에 아직 아파트라는 용도가 적혀 있고, 심지어 건물 1층에 아직도 ‘피어선 아파트’라는 명패가 남아 있지만 주거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건물 성격의 변화를 잘 알려주는 자료가 하나 있다. 1990년 9월 14일자 대법원 판결문이다. 다름 아닌 상수도 사용료 부과처분에 대한 내용이다.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는 점포 및 사무실로, 4층부터 11층까지는 79세대의 아파트로 건축되어 개인에게 분양된 복합건물인데, 그 후 세대별 아파트의 소유자 및 그로부터 임차한 사람들이 개인사무실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최근에 이르러서는 79세대 중 75세대가 주거용 아파트가 아닌 회사사무실, 건축사 또는 법률사무소, 치과병원 등 개인사무실 및 영업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사실….’ 이후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게 건물의 용도가 당초와 완전히 달라졌으므로 상수도 요금 산정을 위한 요율 또한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건물을 ‘피어선 아파트’가 아닌 ‘피어선 빌딩’이라고 부르고 심지어 건물 내에서도 두 가지 이름이 혼재되어 있는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오히려 이 건물은 위치적 장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대료 덕분에 각종 시민단체들이 대거 둥지를 틀고 있는, 이른바 ‘비정부기구(NGO)의 메카’로 더 잘 알려졌다. 1층 입구에 붙어 있는 안내판을 보면 원조 시민단체의 하나인 소비자시민의모임을 비롯해서 한국투명성기구, 에너지시민연대 등의 이름이 보인다. # 도심 공동 주거의 선구자적 역할 새문안로 맞은편에서 바라본 피어선 아파트는 좌우 대칭의 반듯한 건물이다. 정면 네 칸에 양쪽에 좁은 칸이 하나씩 더 붙어 있다. 대충 나누어 그린 입면 같지만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있다. 일단 정면 네 칸의 간격이 다르다. 가운데 두 칸이 넓고 양쪽 두 칸이 다소 좁다. 그래서 건물 가운데가 조금 앞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생긴다.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보는 이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분명히 정면에서 보면 11층 건물인데 건축물 관리대장에는 지하 1층 지상 10층으로 되어 있다. 즉 육안상 1층으로 보이는, 가로에 면한 부분이 알고 보면 법적으로 지하 1층이다. 그 이유는 건물 뒤로 돌아가 보면 알 수 있다. 뒷부분이 땅에 묻혀 있는 것이다. 건축법상 지하층 산정 기준에 따른 결과다. 위에서 언급한 대법원 판결문 또한 법적인 층수가 아닌 육안상의 층수를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이 글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육안상 층수를 기준으로 한다). 양쪽 측면의 좁은 칸에는 역시 콘크리트로 만든 차양 같은 것이 붙어 있는데 3층 이하는 없고 그 위부터 꼭대기 층까지는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법원 판결문에 나오는 것처럼 저층부 3개 층의 사무실과 그 위의 아파트가 나뉘는 부분을 정확하게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두 부분은 층고도 서로 다르다. 이렇게 건물을 ‘읽으면’ 그 연혁과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건축 답사가 주는 즐거움의 하나다. 지하 1층, 즉 가로에 면한 층에는 좌측부터 볼링장, 맥도날드, 하나은행 현금 코너 등이 입주해 있고 차량 통로를 지나 작은 꽃집이 하나 있다. 볼링장은 한 층 아래로 내려가는데 그렇다면 법적 지하 2층이 되는 셈이지만 건축물 관리대장에 언급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그 좌측에는 마치 달아낸 것처럼 아주 작은 김밥집이 있다. 김밥도 맛있고 주인이 재미있는 분이어서 꽤 알려진 집인데 평일에는 오전 11시쯤부터 길게 줄을 선다. 건물 정면에 로비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하나은행 현금 코너를 통해 내부로 들어갈 수는 있으나 정작 주출입구는 차량 통로의 중간에 측면으로 나 있다. 가로변 상가와 건물의 출입 동선을 분리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평소에는 이상할지 모르지만 비가 올 때 차에서 내리거나 차를 탈 때 편리할 것이다. 이 역시 자동차를 중시하는 미국식 사고의 영향으로 생각한다. 뒤로 돌아가면 꽤 널찍한 주차장이 있는 등 당시 건물치고는 자동차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쓴 것을 알 수 있다. 건축물 관리대장에는 주차대수가 0으로 나와 있는데 주차장법 제정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라서 그렇거나, 아니면 주차장이 나중에 추가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피어선 아파트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면 엘리베이터가 2층부터 있다는 등의 기록이 나온다. 이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1층까지 연결되어 있다. 기록이 맞는다면 역시 당초 1층 상가에 출입하는 동선과 그 위 입주자들의 동선을 분리하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있다. 새문안로가 북쪽에 있으므로 피어선 아파트는 북향 건물이다. 그런데 주차장 쪽으로 가서 남쪽을 보면 드디어 이 건물의 원래 정체가 잘 드러난다. 주거 기능은 상실했지만 아직도 발코니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주거 세대의 용도가 다른 것으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하드웨어로서 건축이 갖는 끈질김이 느껴진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상상을 해 본다. 피어선 아파트가 공동 주거로서의 본래의 기능을 되찾으면 어떨까?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아직도 건축물 관리대장에 ‘아파트’가 명기되어 있고 저렇게 발코니까지 남아 있다. 필요하다면, 그리고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그렇게 되는 것에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서울 구도심의 주거 기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요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만 건물 남쪽의 지형이 높고 (정동은 의외로 지형의 고저차가 심한 곳이다. 그런 이유로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이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인 정동 1번지에서 첫 방송을 시작했다) 높은 건물이 많아 남쪽으로의 채광과 경관은 사실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 피어선 아파트 바로 남쪽의 경향신문사 사옥은 구 문화방송 사옥인데 김수근이 설계하여 1967년에 완공되었다. 전면부와 후면부 모두 상당히 고층인 데다가 피어선 아파트 건립 당시에 이미 그 자리에 있었으므로 피어선 아파트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남쪽이 매우 답답했을 것이다. 당시 도심형 최고급 주상복합건축으로서의 피어선 아파트의 선구적인 역할은 주목할 만하다. 정작 그 자신은 공동 주거 기능을 상실했지만 길 건너 광화문 일대, 특히 세종문화회관 주변 지역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대단지형 주상복합인 경희궁의 아침, 스페이스본 등은 물론이고 거리에 면한 단독 건물 중에서도 주상복합이 많다. 세종 아파트, 신문로 주상복합, 세종로 대우 아파트 등이 그것이다. 이 건물들은 모두 겉에서 보면 일반 사무용 건물인지 아파트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세종로 대우 아파트는 특이하게도 중정형인데, 개인적으로 청년 시절 첫 직장에서 참여했던 프로젝트라서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렇게 일반 건물과 주거가 별다른 구별 없이 섞여 있는 것이 주거가 도심에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피어선 아파트가 남긴 도시적 유전자다.
  • “사무실에 좋아하는 화초 두면 생산성 20% ↑”(연구)

    “사무실에 좋아하는 화초 두면 생산성 20% ↑”(연구)

    사무실에 자신이 좋아하는 화초를 두면 아무것도 없을 때보다 생산성이 약 20% 더 높아진다고 과학자들이 밝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18일(현지시간) “한 연구에 따르면, 근로자들이 일하는 책상 근처에 둔 작은 화초는 업무 성과는 물론 직업 만족도와 건강을 향상해준다”고 전했다. 이 연구를 이끈 영국 엑서터대의 심리학자 크레이그 나이트 박사는 “경영진은 단조로운 사무실을 좋아하는 미니멀리스트적인 성향이 있다. 하지만 이처럼 단조로운 사무실은 오히려 직원들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런 사무실에 화초를 놔두면 직원들은 더 생산적이고 행복하게 되지만, 실제로 이런 효과는 이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근로자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얼마나 많은 성과를 내는지 측정한 것이다. 연구진은 먼저 핀란드에 있는 서로 다른 세 직장에 다니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이들이 일하는 사무실은 불필요한 것을 모두 뺀 그야말로 황량한 곳이었다. 이어 연구자들은 먼저 한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을 화초를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회사에는 직원들을 위해 여러 화초를 배치해 녹지화시켰다. 나머지 한 회사는 대조군으로 어떤 변화도 주지 않았다. 그 결과, 스스로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을 화초를 선택한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가장 많이 향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무려 12년간 직장 환경의 심리학을 연구한 나이트 박사는 “근로자 근처에 식물을 배치해 생산성이 향상하는 것은 주목할만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사진=ⓒ YakobchukOlena / Fotoli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소녀의 간절한 기도’ …하늘나라 아빠 들리세요?

    ‘소녀의 간절한 기도’ …하늘나라 아빠 들리세요?

    사진 속 꼬마는 헐렁한 보안관 제복을 입고 있습니다. 한눈에 딱 봐도 어른의 옷입니다. 꼬마는 무릎을 꿇고 깍지를 꽉 낀 채 고개를 숙이고서 뭔가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진지한 만큼은 어느 순결하고 열정적인 기도자의 자세도 비할 수 없습니다. 귀엽긴한데 어린아이 답지 않게 진지하기만 한 모습에 어딘가 처연한 느낌이 듭니다. 사진작가 매리 리가 지난 11일(이하 현지시간) 찍은 사진입니다. 매리가 자신의 SNS에 사진을 올린 뒤 누리꾼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며 널리 공유됐습니다. 영국 매체 투데이는 15일 매리 리가 찍은 사진 속 꼬마의 사연을 보도했습니다. 꼬마는 3살 소녀 탈리야 토마스. 보안관 유니폼은 토마스가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숨진 그의 아빠 크루즈 토마스의 것이었습니다. 매리 리는 투데이와 인터뷰에서 "탈리야의 할머니가 '자, 9·11 희생자와 네 아빠를 위해 기도하자꾸나'라고 말하자 아이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늘 손에 쥐고 있던 카메라로 탈리야를 찍었습니다. 탈리야야말로 사진을 찍기 위한 포즈가 아니라 진정성을 담은 기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탈리야는 지난 13일 세 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탈리야 아빠는 미국 조지아주 프랭클린 카운티와 잭슨 카운티 두 곳에서 보안관 대리(deputy sheriff)로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5월 자동차 사고로 순직하고 말았습니다. 고작 26세 젊은 나이였습니다. 탈리야는 아빠 얼굴을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늘 사랑과 그리움을 전한다고 합니다. 자식 잃은, 탈리야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요. 탈리야의 할아버지인 스티비 토마스도 현재 프랭클린 카운티의 보안관입니다. 스티비는 "탈리야는 늘 아빠를 그리워하고 있죠. 그리고, 아빠가 하늘나라에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죠"라며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손녀에 대한 뿌듯함을 함께 드러냈습니다. 탈리야의 절실한 기도가 이미 하늘나라 아빠에게 닿았겠죠?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누떼의 목숨 건 대이동

    누떼의 목숨 건 대이동

    동물의 대이동은 사파리 관광의 백미다. 특히 케냐와 탄자니아의 경계인 마라강에서 펼쳐지는 누떼 이동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매해 케냐 마사이마라로 이동한 누떼는 8월에서 10월 사이 탄자니아 세렝게티로 돌아온다. 이때 이동하는 녀석들의 숫자는 수백만 마리에 달한다. 평생 3만 킬로미터를 달리는 녀석들은 물과 풀을 찾기 위해 이동하는 이 생존 여정에서 갈증과 배고픔, 피로감을 견디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굶주린 포식자들의 습격을 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렇듯 누떼의 험난한 여정이 담긴 영상이 최근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영상은 누떼가 줄을 지어 강으로 쏟아지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숨 가쁘게 들판을 달려온 녀석들은 마라강의 거친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전진한다. 하지만 그런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던 악어의 습격으로부터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장면이 발생한다. 이렇게 고난의 여정을 거쳐 세렝게티로 돌아온 누 떼는 건기가 시작될 무렵인 4월, 다시 케냐의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으로 돌아간다. 한편 누떼를 필두로 펼쳐지는 초식동물의 대이동 순간은 케냐 최고의 장관은 물론 세계 7대 경관으로 선정될 만큼,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모여든다. 사진 영상=유튜브/Call of The Wild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새 영화] ‘칠드런 오브 맨’, 2027년 불임의 세상…‘새 생명’을 지켜라

    [새 영화] ‘칠드런 오브 맨’, 2027년 불임의 세상…‘새 생명’을 지켜라

    영화 ‘그래비티’(2013)에서 질식할 것 같은 우주 공간을 생생하게 연출했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문제작 ‘칠드런 오브 맨’(2006)이 뒤늦게 국내 개봉한다. 가까운 미래(2027년)가 배경인 SF 영화다. 전 세계가 무정부 상태로 혼돈에 휩쓸려 있다. 곳곳에서 폭동과 테러가 빈번한다. 삶은 피폐하다. 유일하게 군대가 건재한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피시단’이라는 반체제 저항 세력이 암약한다. 영국은 8년째 이민 봉쇄 정책을 펼치고 있다. ‘푸지’라 불리는 불법 이민자들도 넘쳐난다. 붙잡히면 열악한 환경의 집단 수용소에 강제 수용된다. 이 시대가 가장 절망적인 지점은, 20년 가까이 신생아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불임의 시대다.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나이 어린 19살 디에고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더이상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는 인류는 조용히 멸종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영화 바탕에 깔려 있는 세계관은 복잡하지만, 스크린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한때 운동권이었으나 공무원으로 살고 있는 테오(클라이브 오언)에게 전 부인이 접근한다. 피시단 리더인 줄리언(줄리언 무어)이다. 둘은 아이를 잃은 아픈 기억이 있다. 줄리언은 푸지 신분인 흑인 소녀 키(클레어-홉 애시티)를 해안가까지 데려갈 수 있게 여행증 발급을 도와달라고 제안한다. 알고 보니 이 흑인 소녀는 임신한 상태다. 줄리언은 과학자들이 인류 문명 복원을 위해 꾸리고 있다는 휴먼 프로젝트에 키를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피시단의 내부 분열로 흑인 소녀의 앞날은 테오에게 맡겨진다. ‘칠드런 오브 맨’은 우리 현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와 비교되기도 한다. ‘그래비티’ 도입부에서 17분가량의 압도적인 롱테이크 장면을 선사했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롱테이크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영화 중반 줄리언이 총격을 받아 숨지는 장면에서 5분가량 롱테이크가 맛보기 격으로 등장한 뒤 영화 말미에 10분이 넘는 장엄한 롱테이크가 이어진다. 테오가 키를 구하기 위해 총알이 빗발치는 시가지를 헤치고 다닌다. 테오와 키가 아이를 안고 폐허의 건물을 나서며 총성이 멎는 장면에선 그야말로 가슴 뭉클한 인류애를 느낄 수 있다. ‘그래비티’에서 ‘버드맨’, ‘레버넌트’까지 3년 내리 오스카 촬영상을 수상한 에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함께 빚어낸 놀라운 장면이다. SF지만 화려하지 않고, 기독교적인 종교관을 비트는 등 심오하기까지 하다. 관객에 따라서는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막판 롱테이크 장면 하나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하다. 22일 개봉. 15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더민주, 원외 민주당과 통합 공식선언…약칭 ‘민주당’ 사용할 듯

    더민주, 원외 민주당과 통합 공식선언…약칭 ‘민주당’ 사용할 듯

    더불어민주당과 원외 정당인 민주당이 통합됐다. 당 이름은 더불어민주당을 그대로 쓰기로 했지만 약칭은 ‘더민주’가 아닌 ‘민주당’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민주가 야권의 상징성을 띤 당명을 지닌 민주당과 통합을 선언한 것을 두고 추미애 더민주 대표가 본격화하는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제2야당인 국민의당과의 야권 적통 경쟁에서 주도권을 선점하고 범야권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추 대표는 18일 경기 광주의 해공 신익희 선생 생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두 당의 통합을 선언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추 대표는 “우리의 통합은 삶의 벼랑 끝에서 희망을 잃어가는 국민을 위한 희망 선언이며, 분열과 좌절을 딛고 일어나 정권교체로 나아가는 희망의 대장정 출발 선언”이라고 말했다. 이어 “통합은 집권을 위한 시대적 요구”라며 “하나의 민주당으로 민주세력의 역사성을 분명히 하고 국민 마음과 희망을 담는 큰 그릇이 되겠다”고 했다. 이날은 신익희 선생이 민주당을 창당한 지 꼭 61주년이 되는 날로, 이 자리에는 민주당 김민석 대표도 참석했다. 민주당은 2014년 9월 창당된 원외 정당이다. 추 대표는 “해공 선생은 우리 당의 뿌리로, 우리는 신익희 선생이 창당한 민주당의 후예”라며 “모든 민주개혁세력의 단결로 난국을 헤쳐나가자”고 말했다. 그는 “1956년 해공 자신이 후보로 나선 정·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내건 공약이 ‘못살겠다 갈아보자’이다. 민심을 휘어잡은 그 구호가 6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된다”며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또 “북핵외교에 무능한 정부, 지진 위기에서도 시스템이 먹통인 정부, 메르스·세월호 재난 겪는 국민에게 각자도생하라는 무능한 정부는 이 나라의 큰 재난이 됐다”며 “60년 전 성난 민심이나 지금 민심이나 똑같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무능 정부를 고칠 유일한 처방전이 통합이다. 조각난 국민의 통합, 흩어진 민주세력의 통합”이라며 “통합된 민주개혁세력이 집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추 대표는 “우리는 수없이 많은 분화와 분열을 겪었다. 2003년 큰 분열을 ,올해도 분열을 겪었다”며 “분열로 위기의 한국을 구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김민석 동지도 백의종군의 자세로 참여했다. 민주개혁세력이 더 큰 통합을 위해 함께 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란 이름이야말로 야당의 상징이고 모태이고 정체성이라고 했다”며 “저를 비롯한 몇 명이 민주당을 고수한 이유는 민주당 역사 노선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민주를 지켜가면서 약칭을 전통이 있는 민주당으로 쓰자는 게 작은 합의 같지만, 민주당을 지켜오던 사람들에겐 굉장히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SSEN이슈] ‘아육대’ 성소, 손연재 놀랄만한 리듬체조돌

    [SSEN이슈] ‘아육대’ 성소, 손연재 놀랄만한 리듬체조돌

    ‘아육대’ 성소가 시청률을 견인하며 추석 예능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 걸그룹 우주소녀 성소가 15일 방송된 MBC ‘아이돌스타육상리듬체조풋살양궁선수권대회’(이하 ‘아육대’)의 리듬체조 종목에 출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16일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는 MBC였다. ‘아육대’는 오후 5시22분 방송된 1부 시청률(이하 전국)이 7%, 2부 시청률이 8.9%로 집계됐다. 지난 2010년 추석특집으로 방송된 후 벌써 5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아육대. 올해 10회째를 맞은 MBC의 대표 효자 콘텐츠, ‘아육대’에서 또 한 명의 아이돌 스타가 탄생했다. 올해 첫 선을 보인 ‘리듬체조’ 종목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선보인 우주소녀 성소가 그 주인공. ‘아육대’는 많은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출전하는 프로그램이다.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면 그 만큼 대중의 눈도장을 받기에 충분하다. 특히 성소가 출연한 리듬체조 종목은 이번 추석부터 ‘아육대’에 신설된 종목으로, 음악에 맞춰 화려한 동작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다른 스포츠 종목들과 다를 뿐 아니라 걸그룹 멤버들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였다. 베일을 벗은 리듬체조 경기는 그야말로 올림픽을 방불케 했다. 당초 다른 종목에 비해 연습 시간, 고난도 동작 등이 필수였던 종목이었던 만큼 걸그룹들은 진정성 있는 자세로 임했다. 모두 단 1분30초를 위해 약 5주간 국가대표 선수 출신의 코치에게 레슨을 받으며 땀을 쏟았다는 후문. 성소의 경기는 마치 올림픽 예선전을 보는 듯했다. 유연성을 바탕으로 자연스러운 동작을 구사하고, 온화하면서도 침착한 표정연기로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특히 성소는 매스터리 난도에서 큰 점수를 얻었다. 매스터리(마스터리) 난도란 독창성 요소를 평가하는 방식이며 모든 선수에게 0.3의 가치가 주어진다. 독창적인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유연성을 앞세운 화려한 동작들을 선보여 볼거리를 제공한 것. 성소는 중국에서 전통무용을 전공한 무용학도로 10년간 중국무용을 배운 바 있다. 무용으로 다져진 표현력과 유연성으로 완벽한 무대를 만든 것. 경기를 중계한 전현무, 이수근, 혜리 등은 “예능에서 나올 무대가 아니다. 선수의 연기를 보는 것 같았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차상은 해설위원도 “최고의 연기를 했다. 과연 내가 탐낼만한 선수”라 평했다. 압도적인 점수로 다른 도전자들을 제치고 1위에 오른 성소는 경기를 마친 뒤 눈물을 보였다. 우주소녀 멤버들 또한 성소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지난 2010년 9월, 추석 파일럿을 시작으로 첫 발을 내디딘 ‘아육대’는 아이돌이 육상부터 축구, 양궁, 풋살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에 도전해 승부를 가리는 프로그램이다. 명절 특집으로 방송된 지상파 3사 중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자랑하며 MBC 대표 장수 예능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육상 단일 종목으로 시작한 ‘아육대’는 첫 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체육돌’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이로 인해 주목을 받는 아이돌들이 생겨났다. 또 ‘아육대’는 회를 거듭할수록 진화된 모습을 보였다. 수영과 양궁, 컬링과 농구 등의 흥미로운 종목들을 신설하며 변화를 꾀했다. 그간 일부 종목을 신설, 폐지하며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 ‘아육대’가 야심차게 준비한 리듬체조는 ‘아육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우주소녀 성소가 있다. 성소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며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키고 있다. 벌써부터 방송가에는 “이번 추석 방송 최대 수혜자는 성소”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예능에서의 활약으로 눈도장을 찍은 성소가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 대중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서울 여자 햄릿… 밴드 만난 햄릿

    서울 여자 햄릿… 밴드 만난 햄릿

    유인촌, 김성녀 등 원로배우들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햄릿’, 배우 김강우의 열연이 돋보인 ‘햄릿-더 플레이’ 등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다양한 버전의 ‘햄릿’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기존 작품과는 차원이 다른 독특한 ‘햄릿’이 관객들을 찾아온다.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서울시극단의 창작극 ‘함익’(왼쪽)과 다음달 12~14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덴마크의 음악극 ‘햄릿’(오른쪽)이다. ‘함익’은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을 모티브로 했지만 원작과 전혀 다르다. 남성적인 복수극 뒤에 숨어 있는 햄릿의 섬세한 심리와 그가 가진 여성성에 착안, 현재의 서울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여자 햄릿’ 함익을 창조했다. 올해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한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 겸 연출가와 재창작의 귀재로 불리는 김은성 작가의 합작품이다. 김은성은 “햄릿이 희곡에 등장하지 않는 부분에 주목했는데, 골방에 웅크리고 앉아 고민하는 섬세한 햄릿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햄릿이 지닌 여성성을 보게 됐다”며 “복수 드라마를 뒤로 밀어내고 햄릿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여성 햄릿이 탄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거창한 이야기인 ‘햄릿’을 갖고 되바라진 반역을 시도한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고 덧붙였다. 극은 마하그룹 외동딸 함익이 영국에서 비극을 전공하고 귀국하면서 시작된다. ‘금수저’인 그녀의 일상은 남부럽지 않지만 내면은 복수심으로 병들어 있다. 자살한 엄마가 아버지와 새엄마에 의해 살해됐다는 의심을 20년 가까이 품고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수를 꿈꾸면서도 아버지의 폭력적인 권위에 맞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런 그녀가 그룹 산하 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부임, 복학생 연우를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내면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김은성은 “‘함익’은 이상한 러브 스토리”라며 “마음에 병이 든 여성이 건강한 젊은 남성을 만나면서 꿈을 갖게 되는데, 그 꿈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펼쳐나가지 못하고 주춤거리다 슬픔으로 내몰리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함익 역은 최나라, 함익의 분신 익 역은 이지연, 함익의 고독한 내면을 흔드는 열혈 연극 청년 연우 역은 윤나무가 맡았다. 2만~5만원. (02)399-1794. 음악극 ‘햄릿’은 셰익스피어 고향인 영국의 컬트 밴드 ‘타이거 릴리스’와 ‘햄릿’ 배경인 덴마크의 극단 ‘리퍼블리크’가 제작한 작품이다. 대사가 아니라 음악과 이미지가 중심이 돼 극을 이끌어 간다. 음악이 주축을 이루는 만큼 극 전체를 견인하는 타이거 릴리스의 음악이 단연 돋보인다. 타이거 릴리스는 보컬 마틴 자크, 드러머 요나스 골란드, 더블 베이스 아드리안 스타우트 등 3명으로 이뤄진 밴드다. 마틴 자크는 이 작품의 19곡을 모두 작사·작곡했다. 오필리아의 심정을 그린 처연한 발라드 ‘얼론’(Alone), ‘햄릿’ 속 명대사인 ‘죽느냐 사느냐’를 섬뜩한 카바레 음악으로 바꾼 ‘투 비 오어 낫 투비’(To Be or Not to Be), 햄릿이 죽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부르는 ‘웜스’(worms) 등이 수작으로 꼽힌다. 연출을 맡은 마틴 툴리니우스는 “‘햄릿’의 작품화를 결정하자마자 타이거 릴리스가 떠올랐다”며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시적인 방법으로, 아름다운 가사로 표현해내는 타이거 릴리스야말로 햄릿의 세계를 형상화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타이거 릴리스는 2013년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음악극 ‘늙은 뱃사람의 노래’에서 중독성 강한 음악과 이색적인 무대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무대 연출도 뛰어나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왕족들을 줄에 매달린 인형으로 묘사하고, 햄릿과 거트루드가 다투는 장면에선 운명의 무게에 짓눌리는 두 사람의 내면을 대변하기 위해 무대 세트를 쓰러뜨려 둘을 덮치게 한다. 오필리아의 죽음 장면에선 무대 위에 투사된 거대한 강물이 그녀를 통째로 집어삼키게 해 ‘지금껏 본 가장 아름다운 오필리아의 죽음’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2012년 덴마크 초연 이후 영국, 스웨덴, 캐나다, 네덜란드, 스위스, 폴란드 등 세계 유수의 극장과 페스티벌에서 공연됐다. 4만~8만원. (02)2005-0114.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北 “한반도 정세, 최악의 폭발 직전으로 치닫고 있다…마지막 한계점”

    北 “한반도 정세, 최악의 폭발 직전으로 치닫고 있다…마지막 한계점”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국무회의에서 북한 정권이 자멸로 이어질 수 있도록 확고한 응징태세를 유지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북한이 박 대통령에게 “마지막 한계점을 넘고 있다”고 경고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대변인이 이날 담화를 통해 한국의 B-1B 배치 등을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아태평화위 대변인은 “최근 우리의 핵탄두폭발시험을 걸고 감행되는 적대세력들의 극악무도한 특대형 도발 광란으로 조선반도(한반도)정세는 각일각 최악의 폭발 직전에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또 “우리로 하여금 그토록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핵 무력의 최종완성을 위한 배가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떠민 미국과 괴뢰패당을 비롯한 추종세력들은 오늘의 극적인 사태발전 앞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우리 공화국이 쥘 것은 다 쥐고 국가 핵 무력완성을 위한 최종관문까지 통과한 오늘에 와서까지 우리를 함부로 건드리며 힘으로 압살해보겠다고 덤벼드는 것이야말로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자멸적 망동”이라며 “사태는 험악하게 번져지고 있으며 말로써는 수습하기 어려운 마지막 한계점을 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도 지난 12일 “일심단결의 정치 강국, 지구를 뒤흔드는 동방의 핵 강국으로 날로 승승장구하는 우리 공화국의 위용에 완전히 얼이 나간 박근혜 역적 패당은 정신통제불능상태에서 헛소리를 마구 줴쳐대고(지껄이고) 있다”고 막말 비난을 쏟아낸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차선 바꾸는 차 많으면 체증 커져… 정체 시작되면 없애는 건 불가능

    또 한번의 전쟁을 치를 때가 됐습니다. 매년 설과 추석 때마다 치르는 ‘교통전쟁’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사람들에게 추석 도로 상황은 그야말로 ‘악몽’입니다. 한국도로공사가 최근 발간한 ‘2015년 교통량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고속도로 길이는 4194㎞, 2015년 추석 연휴 사흘간 고속도로 이용 차량 대수는 약 1380만대였습니다. 산술적으로만도 고속도로 1㎞에 자동차가 약 1096대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방향지시등을 켜지도 않고 앞차와 조금 틈이 벌어진 사이를 끼어드는 얌체 차량까지 만나면 좋은 기분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추석이나 설 명절 때가 아니라도 뻥 뚫려 있던 도로가 이유 없이 꽉 막혀 움직이지 않는 경험을 한번쯤 해본 적 있을 겁니다. 옆 차로의 차들이 잘 달리는 것 같아 차선을 바꾸면 도리어 원래 있던 차로의 차들이 더 잘 빠지는 것 같아 속상한 적도 있을 겁니다. 교통 정체 없는 도로는 없는 것일까요. 교통공학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물리학자, 수학자들도 교통 체증의 비밀을 풀어내는 데 골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로가 막힌다고 이리저리 차로를 바꿔가며 운전하는 것은 차선을 유지하며 가는 것과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캐나다와 미국 과학자들은 블랙박스 카메라를 이용해 교통 정체가 심한 2차로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들의 운전 행태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운전자들은 자신이 차로를 바꿔 다른 차를 앞서 간 것보다 옆 차로에서 자기를 앞질러 간 차들이 더 많다고 인식했다고 합니다. 꽉 막힌 도로에서는 그렇지 않은 도로를 운전할 때보다 옆 차로에서 앞질러 가는 차들에 더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남들보다 밑지는 것은 절대 참을 수 없어 하는 ‘손실 혐오’ 심리까지 더해진다는군요. 이런 심리 때문에 이리저리 차선을 바꾸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없던 막힘 현상까지 생겨 교통 체증은 더 심해진다는 분석입니다. 교통 체증은 한정된 도로에 수많은 차량이 밀려들면서 생기기도 하지만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에 깜빡이를 켜지도 않고 차선을 종횡무진 바꾸는 차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손실 혐오 심리로 인한 차선 바꾸기와 끼어들기는 뻥 뚫린 도로를 갑자기 막히게 만드는 ‘유령 정체’(phantom jams)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물리학과 연구진은 유령 정체가 폭탄의 연쇄반응과 비슷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폭탄의 폭발이 일단 시작되면 멈추기 어려운 것처럼 교통 체증도 일단 시작되면 없애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유령 정체 현상을 없애기 위해 수학자들은 파동방정식을 이용한 수학적 모델을 연구하고 교통공학자들은 도로 형태나 신호등 체계 변화를 고민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교통 체증을 완화시키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도로는 차를 위한 서비스 상품입니다. 서비스의 질은 사용자가 결정합니다. 가뜩이나 막혀 모두가 신경이 곤두서 있는 명절 귀성·귀경길에서 5분 정도 빨리 가겠다고 이리저리 차선을 바꾸는 것은 도로를 더 막히게 하고, 도로라는 서비스 질을 낮추는 한편 사고 위험성까지 높입니다. 모두가 기분 좋게 고향 가는 길을 즐기도록 느긋하게, 양보하는 마음을 갖는 건 어떨까요.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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