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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철수, ‘실용적 중도’ 비판 겨냥 “그야말로 무식한 주장”

    안철수, ‘실용적 중도’ 비판 겨냥 “그야말로 무식한 주장”

    ‘작은정당·공유정당·혁신정당’ 3대 지향점“새로 만드는게 더 바른 방법” 4번째 창당바른미래당을 탈당한 안철수 전 의원이 2일 ‘안철수의 신당 비전 발표’ 기자간담회를 갖고 ‘실용적 중도’ 노선의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그는 특히 “신당 이념에 대해 모호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식하거나 기득권 정치를 보호하려는 궤변에 불가하다”며 비판세력에 직설적으로 날을 세웠다. 안 전 의원은 “이번에 만들려고 하는 신당은 다른 정당들과 같은 또 하나의 정당이 절대로 아니다”라며 ‘작은정당·공유정당·혁신정당’을 3대 지향점으로 내세웠다. 그는 “대한민국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소명의식으로 신당을 다른 정당과는 완전히 다르게 만들고 싶다”며 “이 정당을 통해 이념과 진영 정치를 극복하고, 기존 정당의 틀과 관성도 앞장서서 파괴하며 무책임한 정치를 구출시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안 전 의원은 우선 ‘작은 정당’과 관련해 정당 규모와 국고 보조금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21대 국회에서 교섭단체 위주로 많이 배정되는 국고 보조금을 의석수 기준으로 배분하도록 정당법 개정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작지만 유능한 정당을 만들고자 한다”며 당 밖의 민간 연구소나 정책현장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정책을 만들어내는 ‘네트워크 정당’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안 전 의원은 ‘공유정당’은 모바일플랫폼을 통해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모바일플랫폼을 통해 당원들이 당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국민 사이에 이견이 있는 쟁점이나 이슈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중요한 이슈이다. 이런 이슈가 생겼을 때 여러 시민이 모여 해결, 해소하는 것이 이슈크라시 정당”이라며 “한번 만들어서 잘 동작하면 다른 정당에서도 따라 하기 바쁠 것”이라고 했다. 안 전 의원은 또 회계시스템을 투명하게 하는 ‘블록체인’을 예로 들며 국고 보조금의 예산과 결산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혁신정당’을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에스토니아를 언급하며 “국가 전반적으로 행정시스템을 블록체인 기반 아래 설계했다”며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려 한다. 제대로 먼저 도입하는 것도 저희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래야 정당이 개혁되고 정치가 바뀌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신당의 비전으로 ‘탈이념’과 ‘탈진영’, ‘탈지역’을, 정치노선으로 ‘실용적 중도’를 내세웠다. 이에 대해 “옛날 생각에 사로잡히고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 그것은 수구진보, 수구보수, 또는 이념팔이, 진보팔이, 보수팔이 등 실제로 그런 모습들로 나타나는 것”이라며 “이런 것을 두고 모호하다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식하거나 기득권 정치를 보호하려는 궤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도는 중간에 서는 게 아니다. 중심을 잡는 것”이라며 “자기 정치세력을 세금으로 먹여 살리기에만 관심 있는 그런 세력들에서 끊임없는 공격이 들어온다. 그래서 반드시 투쟁하는 중도를 하겠다”고 밝혔다.아울러 안 전 의원은 21대 국회에서는 정치개혁 인프라 구축, 정당법 개혁, 국회법 개혁 등을 통해 ‘일하는 정치, 일하는 국회, 일하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자유한국당을 겨냥해 “신당의 국회의원들은 장외집회, 장외투쟁에 참여하기보다는 국회 내에서 열심히 투쟁하는 정당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안 전 의원은 신당 창당 시기와 당명에 대해서는 “내일쯤 신당창당추진위원회를 맡을 분을 발표할 계획”이라 “그러면 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하나씩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4번째 창당 배경을 묻자 “기존 낡은 정당에서 새로운 길을 하기가 불가능해 보였다”며 “지금은 시간이 없다.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바르고 제대로 할 수 있고 제대로 정치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안 전 의원의 정치적 멘토로 꼽히는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수민, 권은희, 이태규, 신용현, 김중로, 김삼화 등 안철수계 의원들이 참여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英 펑크록 밴드 ‘갱 오브 포’ 원년 멤버 앤디 질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英 펑크록 밴드 ‘갱 오브 포’ 원년 멤버 앤디 질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영국의 포스트 펑크록 밴드 ‘갱 오브 포’ 원년 멤버이자 기타리스트인 앤디 질이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의 스크래치 강하고 스타카토 기타 리프 연주는 밴드의 상징과도 같았으며 너바나, 푸가지(Fugazi), 프란츠 퍼디난드 같은 밴드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밴드 멤버들은 1일(현지시간) 성명을 내 “대단한 친구이자 빼어난 지도자가 오늘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고 BBC가 전했다. 밴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아시아 순회공연을 다녀온 뒤 “순환계 질환”과 투병해왔다. 아내 캐서린 메이어는 트위터에 “이 고통은 엄청난 기쁨의 대가다. 30년 가까이 세상 최고의 남성과 함께 지냈다”고 작별을 아쉬워했다. 밴드의 현재 멤버는 토머스 맥니스, 존 스테리, 토비아스 험블인데 “앤디의 마지막 투어는 그가 손을 떼고 싶어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목에 둘러대고 관중의 피드백에 소리를 질러대 앞좌석은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고 적었다. 이어 “가장 좋았던 일 중의 하나는 기타 음악과 창조 과정에 미친 그의 영향력이 그의 주변에서 일하고 그의 음악을 들어준 모든 이들 뿐만아니라 우리에게도 영감을 줬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1976년 리즈 대학 동창생인 질과 보컬리스트 존 킹 등이 어울려 결성해 첫 싱글 ‘Damaged Goods’부터 지난해 스튜디오 앨범 ‘Happy Now’까지 44년 한우물을 팠다. 1979년 ‘At Home He‘s A Tourist’로 톱 60에 들었는데 콘돔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BBC 방송금지가 된 일이 있었다. 같은 해 9월 데뷔 앨범 ‘Entertainment!’를 발매했는데 많은 음악인들에게 영감을 안겼다는 평가와 함께 롤링스톤 잡지의 역대 5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렸다. 잡지의 평가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을 펑크와 디스코에 녹여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 극찬을 했다.고르지 못하고 펑키하며 엄청난 노이즈가 폭발하는 그의 독특한 기타 리프는 지미 헨드릭스, 윌코 존슨, 팔리아먼트-펑카델릭의 에디 해이즐 같은 다양한 범주의 기타리스트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2015년 잡지 더스키니 인터뷰를 통해 “윌코와 닥터 필굿의 연주를 본 것은 형광등이 반짝인 것 같았다”며 “내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그는 관중을 보지도 않고 많은 시간을 들여 자신의 기타를 보지도 않았다. 난 늘 기타를 더 큰 악기, 예를 들어 밴드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왔다. 항상 바람직하지 않게 여기는 것이 기타리스트가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밴드의 나머지를 마치 배경처럼 다루는 일”이라고 밝혔다. 갱 오브 포는 히트 싱글 하나 만들어내지 못했다. 1982년 ‘I Love A Man In Uniform’이 거의 근접했는데 마침 발발한 포클랜드 전쟁 때문에 방송 금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의 초기 세 장의 앨범들은 모두 대체 불가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984년 원년 멤버는 뿔뿔이 흩어져 여러 해 동안 여러 멤버가 들락거리게 됐고, 질 혼자만 44년 가까이 몸담았다. 맨체스터 출신인 그는 존경받는 프로듀서이기도 해 스트랭글러스, 킬링 조크, 레드핫 칠리 페퍼스 같은 밴드들과 작업을 함께 했다. REM의 마이클 스티프는 갱 오브 포의 음악에서 많은 것을 훔쳐 썼다고 털어놓았고 갱 오브 포야말로 “내가 진짜로 연결짓고 싶어하는 첫 록 밴드”라고 말했다. U2의 보노는 “똑똑한 문자 폭탄”이라고 표현했고,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머신의 톰 모렐로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통해 질이 “내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이 가운데 한 명”이라며 “반영웅적인 음향공학과 날카롭고 시적이며 급진적인 지성이 내게 일러준 바가 많았다”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캐서린과 동생 마틴, 그를 끔찍히 그리워할 가족들을 남겼다. 밴드는 나아가 새로운 스튜디오 앨범 작업도 마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진중권, 김의겸 공천 읍소에 “저렴하게 산다…너절하게 굴지마”

    진중권, 김의겸 공천 읍소에 “저렴하게 산다…너절하게 굴지마”

    “누가 환원에 진정성 있다 하겠느냐”“죽을 때 잘 죽어야 다시 살아날 수 있어”“공천 달라 질질 짜는 삼류 신파극”김의겸, 페북에 “예비후보 달라” 공개 호소金 “가혹…검증위서 물러나면 두 번 죽어”“공천위서 정무적 배제시 토 달지 않겠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일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더불어민주당에게 4·15 국회의원 선거의 예비후보 자격을 달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 읍소한 데 대해 “김의겸, 참 저렴하게 산다”면서 “너절하게 굴지 말고 이쯤에서 깔끔하게 내려놓으라”고 비판했다. 김 전 대변인은 청와대 대변인 재임 당시인 2018년 7월 서울 흑석동 재개발 상가주택을 25억 7000만원에 매입해 ‘부동산 투기 의혹’이 일었다. 이후 청와대 대변인직에서 하차한 김 전 대변인은 주택을 매입한지 1년 5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8억 8000만원의 시세 차익을 올리며 34억 5000만원에 집을 매각했다. 진 전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동산 투기를 해놓고 이제 와서 환원할 테니 공천 달라고 하면 누가 그 환원에 진정성이 있다고 하겠느냐”면서 “정치인에게는 ‘삶의 기술’ 못지 않게 ‘죽음의 기술’이 필요하다. 죽을 때 잘 죽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어 “이 나라 정치는 왜 이렇게 멋이 없냐”면서 “어쩌다 공천 달라고 질질 짜는 삼류 신파극만 남았는지 정말 눈물 없이는 못 봐 주겠다”고 일갈했다. 김 전 대변인이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해찬 대표님께’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에서 “지난해 12월 19일 출마선언을 했지만 민주당이 예비후보로 받아들여주지 않아 45일째 군산 바닥을 표류하고 있다”면서 “그저 예비후보로 뛸 수만 있게 해달라”고 읍소했다. 김 대변인은 4·15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 군산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이는 예비후보 자격을 검증하는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검증위)가 김 전 대변인에 대해 3차례 ‘계속 심사’라는 보류 결정을 내리며 적격 여부 결정을 미룬데 따른 것이다. 검증위가 ‘적격’ 판정을 내리더라도 이후 공천관리위원회에서 정무적인 사항까지 고려해 공천 여부를 판단한다. 김 전 대변인은 “다 제 부동산 문제 때문이다. 민망하고 송구하기 그지없다”면서도 “법적인 문제를 다루는 검증위 단계에서 제가 스스로 물러난다면 저는 두 번 죽는 셈이다. 청와대에서도 물러나고 당에서도 버림받는 것이니 한 사건으로 두 번 교수형 당하는 꼴이 되고 만다”고 호소했다.이어 “당이 저에게 가혹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나름대로 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약속대로 집을 팔았고 매각 차익 3억 7000만원을 어느 재단에 기부했다”고 해명했다. 김 전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1일 부동산 투기 의혹 논란이 일었던 흑석동 상가 건물을 매각하겠다고 밝히면서 매각 차익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혔었다. 이 가운데 일부를 기부했다는 의미다. 김 전 대변인은 당이 자신에게 가혹하게 하는 이유를 언론 탓으로 돌렸다. 김 전 대변인은 “아마도 언론, 특히 조중동과 종편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본다”면서 “저는 기자 시절 ‘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을 열어 수구세력의 미움을 샀고, 대변인 때는 몸을 사리지 않고 대통령을 방어하다 보수언론과 척을 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3일 열리는 (검증위) 회의에서는 최종 결정을 내려달라고 촉구하면서 “공천관리위원회에서 영 부담이 돼 저를 경선에서 배제하고자 정무적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때는 한마디도 토를 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한국, 金에 “지긋지긋한 피해자 코스프레”새보수, 조국 빗대 “조뻔뻔에 김뻔뻔되려 하나” 이에 대해 보수 야당도 비판의 대열에 합류했다. 황규환 자유한국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부동산 투기 혐의로 국민들의 공분을 산 김 전 대변인이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항변한 꼴”이라면서 “자신이 좋아서 출마하는 마당에 지긋지긋한 피해자 코스프레야말로 오히려 국민에게 가혹하다”고 비판했다. 황 부대변인은 “아무도 김 전 대변인에게 출마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면서 “그렇게 예비후보로 뛰고 싶고, 그렇게 고향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면 당당히 무소속으로 출마하시라”고 지적했다. 이종철 새로운보수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겸손과 반성이라는 DNA가 없는 것 같다”면서 “김 전 대변인이 조국 교수의 ‘조뻔뻔’에 이은 ‘김뻔뻔’이 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변인은 김 전 대변인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편지글을 보낸 것을 언급하면서 “‘조국 편지’에 이어 ‘이해찬 편지’도 크게 보도됐으니 김 전 대변인이 오히려 선거운동을 독점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법서라] 추미애-윤석열 휴전?…불씨는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

    [법서라] 추미애-윤석열 휴전?…불씨는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

    [편집자주] 전국 최대 법원과 최대 검찰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눈으로 보는 법조계는 이상한 일이 참 많습니다. 법조의 뒷이야기와 속이야기를 풀어드리는 ‘법조기자의 서리풀 라이프’, 약칭 ‘법서라’를 토요일에 선보입니다. “법과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한 저항도 있기 마련이므로 그걸 뚫고 나가는 데 큰 어려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 헤쳐 나가면서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저희들의 사명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3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사 전출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달 23일 중간간부 및 평검사 인사로 전보조치 된 검사들에게 “검사의 일이라는 것은 늘 힘들다”며 한 말입니다. 또 “어느 위치, 어느 임지에 가나 검사는 검사동일체 원칙에 입각해서 운영되는 조직”이라면서 “여러분들의 책상을 바꾼 것에 불과하고, 본질적인 책무는 바뀌는 것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나 역시 많은 인사이동을 거쳐 지방으로 또 서울로 다녔지만 모든 검사에게 새 임지에 부임하는 것은 도전”이라며 “도전을 겪어가면서 검사는 역량과 안목을 키우고 능력과 리더십도 키우게 되는 것”이라고도 강조를 했는데요.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한 뒤 대구고검, 대전고검 등 이른바 좌천성 인사조치 된 윤 총장의 경험으로도 읽힙니다. 지난 1월 한 달은 검찰에 그야말로 혼돈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해 8월 말부터 본격화한 조국(55·불구속 기소) 전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로 계속된 혼란과 갈등이 마무리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화됐고 연일 ‘초유의’, ‘전례없는’ 상황들이 이어졌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뒤 첫 고위간부 인사(1월 8일)→직제 개편안 발표(1월 13일)→중간간부 및 평검사 인사(1월 23일)로 검찰 조직은 그 자체로 큰 변화를 겪었는데 진행 중이던 수사를 마무리짓는 과정에서 더욱 충돌이 커진 것입니다. 고위간부 인사에서 윤 총장이 지난해 7월 앉힌 핵심 참모진들을 대거 ‘물갈이’했고 윤 총장이 집중했던 반부패수사(특수수사) 등 직접수사를 대폭 줄였죠. 이를 두고 검찰에선 “윤석열의 손발을 잘랐다”, “총장의 힘을 뺐다”는 반응이 검찰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반면 법무부는 이전의 윤 총장이 특수수사 위주의 검사들을 자신의 측근으로 둔 인사가 ‘비정상’이었다면서 이번 인사는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직접수사 축소는 검찰개혁을 위한 방향이라고도 반박했죠. ●‘최강욱 기소’ 두고 “날치기 기소” vs “지시 불이행” 대충돌 그런데 이처럼 변화가 생긴 검찰 조직에서 또 다른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른바 ‘패싱’ 논란인데요. 조 전 장관 가족 수사를 해온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고형곤)가 지난달 23일 최강욱(52)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전격 기소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승인을 하지 않자 윤 총장의 지시와 승인으로 기소가 이뤄진 것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불구속 피의자를 기소하는 것은 차장검사에 전결 권한이 있다”고 설명해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최 비서관 기소를 결재한 것이 절차상으론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추 장관은 “날치기 기소”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며 수사팀에 대한 감찰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송 차장검사와 고 부장검사가 일단 감찰 검토 대상이겠지만 윤 총장까지도 얼마든지 감찰 대상으로 넓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반대로 검찰에선 수사팀의 의견을 받아들여 최 비서관을 기소하라고 윤 총장이 세 차례 지시했는데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윤 지검장에게 잘못이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감찰이라는 초강수 카드가 언급되자 추 장관과 윤 총장 측은 더욱 서로를 벼랑 끝으로 몰았습니다. 사건의 당사자인 최 비서관도 변호인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 “검찰총장에 의한 검사장 결재권 박탈이 이뤄진 것은 단순한 절차 위반을 넘어 불법행위”라면서 “명백한 직권남용”이라고 했고, “윤 총장과 관련 수사진을 고발하겠다”, “법무부와 대검의 감찰조사는 물론 향후 출범하게 될 공수처 수사를 통해 저들의 범죄 행위가 낱낱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히며 충돌을 부추겼습니다. 수사 과정이 부당했다는 이유로 향후 윤 총장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여서 추 장관이 언급한 감찰 가능성과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이런 가운데 검찰은 지난달 29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으로 백원우(54)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박형철(52)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송철호(71) 울산시장, 황운하(58)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등 13명을 무더기로 기소했습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과 측근들의 비위 의혹 수사에서 불거진 하명수사 의혹이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으로 보내진 뒤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가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송 시장의 당선을 위해 선거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는 수사까지 번졌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 김태은)는 청와대가 당시 선거에 관여했다고 결론을 내고 결국 핵심 피의자들을 재판에 넘기기로 결론을 냈는데요. 기소 전날인 지난달 28일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신봉수 2차장과 김태은 부장검사 등이 이 지검장을 찾아가 여러 차례 수사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최 비서관에 대한 기소 의견을 밝혔던 상황과 거의 비슷했죠. 이 지검장은 최 비서관 때와 마찬가지로 수사팀의 오랜 설득을 듣고도 결론을 내리지 않고 저녁 10시 30분이 다 되어서 퇴근을 했습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으로 13명 무더기 기소…말 아끼는 추 장관 그리고 다음날 윤 총장은 이 지검장과 수사팀, 대검 간부들을 다같이 불러 모아 13명에 대한 기소를 두고 논의를 벌였습니다. 이 지검장은 이 자리에서도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유일하게 기소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고 합니다. 결국 이번에도 윤 총장의 지시로 이 지검장이 아닌 신 차장검사의 전결로 13명을 재판에 넘기게 된 것입니다. 다같이 한 자리에 모여 회의하는 자리가 있었던 것만 제외하면 대부분 최 비서관을 기소한 과정과 같았습니다. 하루 전날 추 장관은 중요사건을 처리할 때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거치라며 검찰 안팎의 기구들을 통해 의견수렴을 한 뒤 기소나 구속영장 청구 등의 결정을 하라고 당부해 윤 총장이 직접 수사팀에 지시하는 절차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검찰 인사로 다음달 3일부터 수사팀 간부들이 확 바뀌게 되니 그 전에 수사를 서둘러 마무리지으려는 수사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으로도 해석됐습니다. 그런데 추 장관은 “날치기 기소”라며 화를 냈던 최 비서관 때와 달리 지난달 29일 13명을 기소한 뒤엔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백원우·박형철 전 비서관은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이정섭)에서 수사했던 유재수(56·구속 기소)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무마 의혹 사건으로 그날 오후 또 다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런데도 추 장관은 어떤 일인지 말을 아꼈습니다. 법무부에서도 “오늘은 별도로 의견을 내진 않을 것”이라고 알렸는데요. 문득 추 장관이 13명 기소에 대한 의견을 밝히지 않고 넘어가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오늘‘은’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것인지 궁금해졌는데 일단 법무부에선 ‘오늘은’에 방점이 있지 않겠냐는 답을 들었습니다. 1월 내내 바빴던 저녁시간과 달리 여권 관계자 13명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진 날 오히려 조용하게, 별일 없이 지나간 것이 어색할 정도였습니다. 추 장관은 지금까지 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무더기 기소 이후 추 장관이 생각을 밝힌 것은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권력기관 개혁 후속조치 추진계획 브리핑과 질의응답을 통해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를 했을 뿐입니다. 이날 추 장관은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을 축소해 나가고 인권 보호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면서 취임 일성으로 밝혔던 검찰개혁의 방향들을 검찰 인사발령이 끝나는 다음달 3일 이후 본격적으로 후속작업으로 본격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질의응답에서 최근 윤 총장과 불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고 일축했고, 또 검찰개혁 작업들에 대해 윤 총장도 동참하기로 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조 전 장관 가족 수사를 시작으로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사건, 하명수사·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 청와대를 향한 수사들로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의 갈등이 폭발했는데 이제 이 수사들은 거의 마무리가 됐습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으로 13명이 무더기 기소됐지만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지난달 30일, 29일 각각 처음 조사를 받았는데 검찰은 두 사람에 대해선 4월 총선이 지난 뒤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약간의 시간을 남겼습니다. 당장은 수사를 두고 충돌할 사건은 잦아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추 장관과 윤 총장 사이의 긴장감은 여전하고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여권 인사들이 거론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는 우리들병원 대출 특혜 의혹이나 신라젠 사건 등의 수사와 추 장관의 청문회 과정에서 추 장관의 아들 군부대 미복귀 의혹 등 여전히 여권을 향한 수사는 계속 진행이 될 전망입니다. 자유한국당이나 새로운보수당 등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추 장관과 이 지검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한 사건도 있습니다. 추 장관은 그동안 진행된 수사 과정에서 항명이나 패싱 논란 등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해 수사팀을 감찰하거나 징계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이 불씨가 다시 커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여전히 검찰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금요칼럼] 허균의 우정/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금요칼럼] 허균의 우정/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허균을 모를 사람이 없다. 허성, 허봉이란 두 형과 누이 난설헌까지 모두가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 가운데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이가 바로 허균이었다. 한번 스친 글도 잊지 않고 모두 외울 정도로 대단한 수재였다.(한치윤의 ‘해동역사’) 그의 기억력이 얼마나 훌륭했던지 실학자 이익도 ‘성호사설’에 기록했다. 어느 날 사람들이 붓을 한 줌 움켜쥐고 붓끝을 허균에게 보였다. 그런 다음 붓을 치우고 몇 개인지 물어보았다. 허균은 잠시 생각하더니 붓의 모양을 일일이 다 기억해 내고는 붓이 몇 개였는지를 헤아리는 것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길은 흡사 사진기와도 같았나 보다. 천하의 수재라서 그랬을까. 허균은 살면서 외로움을 탔다. 그가 쓴 ‘사우재기’(四友齋記)란 글을 읽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성소부부고’, 제6권). 허균은 자신의 거처를 사우재라고 했는데, 그 자신과 세 명의 벗이 함께하는 공간이란 뜻이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중국의 명사들이었다. 진나라 시절의 도사 도원량, 당나라 시인 이태백 그리고 송나라의 문장가 소자첨이었다. “나는 성격이 소탈하고 호탕하여 세상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나를 꾸짖고 무리를 지어 배척하니, 집에 찾아오는 벗이 없고 밖에 나가도 뜻에 맞는 곳이 없다.” 허균이 벗으로 선택한 고인들은 비범했다. 한가하고 고요한 자연을 사랑하며 우주를 집으로 삼아 인간 세상을 가볍게 여긴 현자들이었다. 또 그들은 모두가 탁월한 문장가였다. 허균은 당대의 이름난 화가 이정에게 부탁해 세 벗의 초상을 그리게 했다. 그러고는 그림마다 직접 추모의 글을 지어, 명필 한석봉에게 글씨를 부탁했다. 안타깝게도 이 그림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물론 허균의 생전에는 달랐다. 그는 여행 중에도 그림을 휴대해 머무는 곳 어디서든 방 한쪽에 걸어두었다. 그가 머무는 곳은 항상 네 사람의 선비가 웃으며 담소하는 분위기였다. 허균은 이 그림만 있으면 “내 처지가 외롭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회상했다. 그로서는 세속의 친구는 사귈 필요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허균에게는 정말 친구가 없었을까. 세 군자의 초상을 그려준 화가 이정이야말로 그가 아끼는 벗이 아니었던가. 화가가 별세했을 때 그는 몹시도 슬퍼했다. 애사(哀辭)를 지어 이정의 풍모를 이렇게 묘사하지 않았던가. “그는 술을 즐겼고 마음이 활달하였다. 글씨도 잘 쓰고 시도 잘 알았다. 무슨 일을 하든지 속기(俗氣)가 없고 비범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생활이 곤궁하여 남에게 의지했으나, 의(義)가 아니면 한 번도 취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아무리 권력이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더럽게 여겨 사이를 끊었다.” 허균은 나이고 벼슬이고 그 무엇도 따지지 않고 이정을 깊이 사랑했노라고 고백했다. 알고 보면 그들은 두터운 우정을 키우며 산 것이었다. 이 밖에도 허균에게는 수명의 심우(心友)가 있었다. 조지세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에는 그들의 우정을 말해 주는 글이 적지 않다.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어 얼마나 좋아했던지 마음에 거슬림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서로를 찾았고 잠시도 헤어지지 못했다. 날마다 풍아(風雅)를 비평하고 고금의 문장가를 존숭하며 세월을 보냈다. 세상 풍파와 무관하게 이렇게 지낸 것이 여러 해였다.” 이해관계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이합집산이 되풀이되는 오늘날이다. 얼마 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더없이 친해 보이던 두 사람의 유명 인사가 갑자기 갈라섰고, 그중 한 사람은 옛 친구를 완전히 매장하려는 듯 온갖 비방을 일삼는다. 오늘날 우리에게 우정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소중한 것일까.
  • 사인 훔치기로 위기 몰린 휴스턴, 70대 아날로그 감독 불러들였다

    사인 훔치기로 위기 몰린 휴스턴, 70대 아날로그 감독 불러들였다

    전임 40대 감독, 첨단 장비로 사인 훔쳐 “젊은 사람이 더 도덕적이라는 편견 깨”전자장비를 이용한 사인 훔치기가 발각돼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새 사령탑으로 백전노장 더스티 베이커(71) 감독이 임명됐다. 베이커는 LA 에인절스 조 매든(65) 감독보다도 나이가 많은 메이저리그 현역 최고령 감독으로 사실상 은퇴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사인 훔치기를 주도해 해고된 에스트로스 AJ 힌치(46) 감독과 보스턴 레드삭스 알렉스 코라(45) 감독 등 40대 젊은 감독들의 비행으로 도덕성에 큰 흠집이 난 메이저리그에 70대 감독이 구원투수로 투입된 격이다. 베이커 감독은 그야말로 아날로그 스타일이다. 그의 책상에는 컴퓨터 한 대 없다. 수기로 일일이 기록지를 쓰고 상대팀에 대해 분석한다. ‘세이버 매트릭스’를 무시하는 베이커 감독은 데이터 야구 팬들의 공공연한 타깃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단점으로 여겨지던 그의 ‘올드 스쿨’ 스타일이 지금은 오히려 도덕성을 과시할 수 있는 장점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휴스턴과 보스턴의 사인 훔치기는 비디오 판독기 등 첨단 장비를 이용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국내 체육계 인사는 “메이저리그의 사인 훔치기 스캔들은 나이가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보다 더 도덕적일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을 깨는 측면이 있다”며 “사실 도덕성은 나이가 젊으냐 많으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달렸다고 보는 게 맞지 않으냐”고 했다. 베이커 감독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1993∼2002년), 시카고 컵스(2003∼2006년), 신시내티 레즈(2008∼2013년), 워싱턴 내셔널스(2016∼2017년)의 감독을 맡아 통산 1863승 1636패(승률 0.532)의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2017년 워싱턴 내셔널스의 지휘봉을 내려놓을 때까지 월드시리즈에서 한 번도 팀을 우승시키지 못했다. 미완의 꿈을 안고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70대 감독을 다시 그라운드로 불러들인 건 역설적으로 그의 아날로그 스타일이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여성 한명 한명, 이야기 움트는 책방의 봄

    여성 한명 한명, 이야기 움트는 책방의 봄

    가족이지만 몰랐던 ‘엄마’의 역사 주목 여성 자서전 출판사 ‘허스토리’로 시작 더 자유롭게 생각 나눌 공간 ‘책방’ 꾸려 다양한 사람들 만나며 ‘이어진다’ 느껴 4월부터 회원제로 운영 ‘또다른 봄’으로 편하면서도 때론 급진적인 이야기 기대“모든 여성의 이야기는 역사다.” 시작은 세상 모든 여성들의 자서전을 만드는 거였다. 주변에서는 아버지의 자서전은 왜 안 만드냐고 했다. ‘시각이 협소하다’는 충고를 들었다. 답답했다. 남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더 보탤 생각이었다면 출판사의 이름도 ‘허스토리’(herstory)라고 짓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기존 역사에서 배제돼 좀처럼 드러나지 않은 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은 단단해졌다.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는 일을 하는 동안 여성의 서사에 대한 관심은 커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서점도 차리게 됐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각을 키워 주는 책방’, ‘지금과는 다른 봄이 움트는 책방’이라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달리, 봄’이라 지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자리잡은 작은 책방 ‘달리, 봄’을 이끄는 류소연 대표와 주승리 팀장의 이야기다.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 모두 거시적인 역사보다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의미를 찾는 쪽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학교에서 따로 구술사를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강좌를 듣고 직접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공부를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구술 인터뷰를 통해 기록한 자서전을 출판하거나 자서전 교육을 하는 ‘허스토리’는 2016년 그렇게 탄생했다. 이듬해 여성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손으로 만지고 눈과 입으로 읽을 수 있도록 책방 ‘달리, 봄’의 문도 열었다. 두 사람의 표현에 따르면 출판사와 책방을 운영하는 건 “여성들의 각기 다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모으고 드러내는 일”이다. 두 사람이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봄을 기다리며 지난해와는 또 다른 새로운 ‘달리, 봄’을 꿈꾸고 있는 두 책방지기를 만났다. -‘페미니즘 서점’을 표방하고 책방 문을 열게 된 이유는요. 주승리 저희가 하던 일이 구술사와 관련한 자서전 작업이었으니까 처음엔 ‘생애사 서점’ 혹은 ‘구술사 서점’을 해볼까 했었어요. 류소연 ‘여성 생애사 서점’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어렵고 와닿지가 않더라고요. 주승리 생각해 보면 저희가 하는 전반적인 일들이 페미니즘의 한 활동이라고 생각했어요. 더군다나 저희가 책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보니 서점이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고요.-출판사 ‘허스토리’에서는 주로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류소연 초반에 집중적으로 하려고 했던 작업은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 인터뷰를 통해 주로 어머니들의 생애사를 출판물로 제작하는 거였어요.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될 것을 요구받잖아요. 사람들이 보통 나이든 여성을 보면 자연스럽게 ‘어머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문득 의문이 들었어요. 왜 여성들은 다 어머니라고 불려야 할까. 왜 어머니가 되기를 강요받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역사를 쓰는 일을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여성들의 역사가 좀더 구체적인 범위에서 쓰이기를 바랐는데, 사람들의 말을 기록하지 않으면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게 매력적이더라고요. 류 대표와 주 팀장은 각각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여성의 생애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지만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야기를 마주한 순간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겪은 구체적인 감정이 와닿았다고. 특히 때를 놓치면 그 세세한 역사들이 공중으로 흩어진다는 사실에 자서전의 중요성을 남다르게 여기게 됐다. -여성의 생애사를 남기는 일은 어떤 점에서 중요한가요. 주승리 여성 어르신들을 인터뷰할 때 가장 먼저 듣는 말이 ‘나는 할 말이 없어’예요. 이 말이 이분들에게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생각해요. 저희 어머니만 해도 제가 여쭤 보기 전에 누군가 어머니에게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을까 싶어요. 저는 저희 아버지의 역사는 이상하리만큼 다 알고 있거든요. 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지냈는지도 다 아는데 어머니의 이야기는 왜 몰랐을까요. 그게 어떻게 보면 보편적으로 누가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그들에게 발언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으로 남기는 게 언어의 권력을 갖게 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류소연 저는 여성들의 경험이 언어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지금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많이 부각되고 있는데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여성들이 다 같지 않잖아요. 세대도 다르고 계층도 다르고요. 다른 것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한명 한명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많이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특히 자기가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장년층과 노년층의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의 경험을 듣고 기록하는 일이 그분들의 경험을 언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과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사회가 여성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할 때가 많다고 느낍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서사가 중요한 이유를 짚는다면요. 류소연 ‘여성의 서사가 중요하다’는 말은 사실 그동안 얼마나 여성이 부차적인 존재로 취급됐는지를 드러냅니다. 이전까지 ‘남성 서사’라는 말은 존재한 적이 없는데,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여성의 서사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기 이전에 이미 여성들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존재하고 말하기를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의 언어를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는 이미 터져 나오고 있고, 이미 세상에 나온 이야기를 없게 만들 수는 없어요. 그것이 더 많은 각기 다른 여성의 이야기가 드러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달리, 봄’은 책을 판매하는 일뿐 아니라 여성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드러내는 여러 모임을 기획하는 데도 노력을 쏟고 있다. 저자 특강을 비롯해 자신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글쓰기 워크숍, 여성주의 교육, 여성 가수들의 공연까지 여성들이 연대할 수 있는 시간을 꾸준히 마련하고 있다. 최근에는 2015년 페미니즘 붐이 일어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달라진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메갈리아 비포 애프터 경연대회’를 열어 참석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메갈리아 비포 애프터 경연대회’라는 행사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 참석자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류소연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나’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하면 좌절감이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특히 지난해 설리씨와 구하라씨가 세상을 떠난 뒤 더욱 그랬죠. 그래도 (페미니즘 붐이 일어난 지) 4년 정도 지났는데 길게 보면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서로 그 점에 대해 말해 보면서 다독이는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중간중간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터지는 순간들도 있었는데 서로 위로하면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건 참석자 중 한 분이 ‘내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승리했다고 느낀 순간과 패배했다고 느낀 순간’에 대해 각각 ‘친구가 줄었다’, ‘친구가 줄었다’라고 답변하셨는데 그 말에 많이 공감했어요. 저도 책방을 한 이후로 내가 너무 소모된다고 느껴지거나 불편한 인연은 정리하게 됐거든요(웃음). 한편으로는 책방과 출판사를 통해 다시 연결되는 사람이 생겨났고요. -책방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여성 단체나 모임, 활동가들과 협업을 많이 할 것 같아요. 류소연 정말 기뻐요. 평소 존경하던 분들을 모시고 행사를 함께할 수 있어서 마치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 느낌이에요(웃음). 다른 페미니스트 여성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는 건 저희가 일을 하면서 얻게 되는 가장 큰 자산이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책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 공간을 운영하고 있기에 다양한 협업이 가능한 구조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의미 있는 연대 활동과 협업을 해 나가고 싶어요. 주승리 그리고 새로운 분들을 만나면서 ‘이어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저희가 출판사를 처음 시작했을 땐 사무실에서만 저희들끼리 이야기하고 뭔가 갇혀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책방을 하고 나서는 연결된다고 느껴져요. 그럴 때마다 책방 잘했다는 생각 많이 들죠. ‘여성들이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 ‘내가 내 자신으로 온전히 설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달리, 봄’이 추구하는 목표다. 지난 2년간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을 선보여 온 두 사람은 그간의 여정을 체계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틀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는 새로운 일들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달리, 봄’과 ‘허스토리’가 올해 기획하고 있는 주요 행사가 있다면요. 주승리 책방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저희가 기획한 행사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런 자리를 많이 마련하려고 해요. 사람들이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무언가를 같이 배우는 공간은 어떨까 싶어서 4월부터 회원제를 운영하려고요. 3개월 단위로 9개 정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취미 활동이나 모임을 하면서 이 공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하려고요. 또 여성 뮤지션 다섯 명의 곡으로 구성된 컴필레이션 앨범을 제작하려고 합니다. 앨범 작업에 참여한 여성 뮤지션 다섯 명의 인터뷰가 담긴 책도 함께 내려고 해요. 류소연 싱어송라이터 이랑, 슬릭, 신승은, 이호, 성진영씨가 참여했어요. 앨범 주제가 ‘이 사람들 각각의 역사’예요.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을 만든 사람들의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지 파헤치는 일종의 생애사 인터뷰입니다. 매거진도 발행하려고 하는데요. 읽고 쓰고 사유하는 여성들의 글들을 모으는 페미니스트 큐레이션 잡지예요. 여성 명사의 서재에 대한 인터뷰도 함께 실리는데 이 명사가 추천한 책을 추려서 회원들한테 보내드리려고 해요. -‘달리, 봄’이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남길 바라나요. 주승리 이 책방은 저희가 만든 공간이지만 저희만의 공간은 아니에요. 누군가의 ‘달리, 봄’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달리, 봄’의 의미를 만드는 것보다 오시는 분들이 생각하는 각각의 의미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류소연 저희가 ‘허스토리’도 운영하고 있지만 다들 ‘달리, 봄’을 더 많이 기억해 주시더라고요. 책방에 오시는 분들도 이 공간이 편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구요. 그걸 보면서 공간이 갖는 힘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편안하지만 급진적이고 한편으로 엄청 편파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 시대 문학이 필요한 이유 알아서 기지 않는 장르니까”

    “이 시대 문학이 필요한 이유 알아서 기지 않는 장르니까”

    양경언(35). 2011년 ‘현대문학’에 평론을 발표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한 이래 이 젊은 평론가의 이름은 문학이 목소리를 내는 곳이면 어김없이 있었다. 2014년 9월 20일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시작된 ‘304낭독회’에도, 2016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공론화 된 ‘문단 내 성폭력’ 운동 때에도 예외없이 등장했다. 그가 첫 평론집 ‘안녕을 묻는 방식’(창비)을 냈다. 2010년대 초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던 ‘안녕 대자보’ 현상과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연결해서 살핀 자신의 평론 ‘작은 것들의 정치성’에서 가져온 표현이다. 삶에서든 문학에서든 안부를 묻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평론가를 최근 서울 마포구 서교동 까페창비에서 만났다. ●“비평이야말로 기억 투쟁의 장” ‘안녕을 묻는 방식’은 2010년대의 한국 시를 필두로 이 시기 사회를 뒤흔든 여러 사건들 속에서 문학의 역할을 되짚는 책이다. 그는 2010년대를 일컬어 “2009년 용산 참사, 이명박 정권 초기 등을 거치며 시의 미학에 대한 고려가 정치성 역시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의 ‘미래파 논쟁’이 전에 없던 화법과 형식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이러한 고민들의 현실 속 역할을 숙고하던 시절이라는 거다. ‘안녕 대자보’가 기존 정치의 바깥에서 정치의 범위를 확장하듯, 이 시기의 시도 ‘누군가를 대리하려는 욕망 없이 ‘너’를 요청하는 발화를 이어간다는 것’, ‘고독과 다정함이 혼종적으로 묻어나는 희한한 분위기’(21쪽, ‘작은 것들의 정치성’)를 자아낸다는 것이 양 평론가의 분석이다. 2010년대는 세월호, 촛불 혁명, 문단 내 성폭력, 페미니즘 등의 이슈를 거치며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받던 시대다. 바로 그 지점에서 비평이 중요하다고 양 평론가는 말한다. 비평이야말로 기억 투쟁의 장이기 때문이다. ●문학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참사 앞에서 문학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하다고 의미화할 것이냐, 말의 무력과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고 그 한계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역할을 할지 분투하는 과정으로 의미화할 것이냐는 다른 입장이에요.” 그래서 그는 작가와 시민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세월호 희생자를 추념하는 한 줄 문장을 읽는 ‘304낭독회’의 일꾼으로 활동하고, ‘문단 내 성폭력’ 운동 때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알아서 기지 않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을 읽었을 때 새삼 그냥 지나쳤던 것도 고양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돼요. 지난해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황정은·박상영·장류진 작가의 소설이 그런 것처럼 모르고 있던 걸 가르쳐준다기보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걸 다시 일깨우는 것이 요즘의 문학이고요. 그렇게 작품을 읽고 고양된 순간을 그냥 넘기는 게 아니라 의견을 표출하고 힘을 실으면서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게 2010년대의 모습이에요.” 일상의 언어를 쓰지만 행간은 더욱 깊어진 요즘의 시. 마지막으로 아직도 ‘시가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더니 “지금 시대가 요청하는 확실하게 정리되는 것, 단정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비켜가는 자리에 시가 있다”는 말을 꺼냈다. “시를 읽는 건 사회에서 사람들이 관성화된 움직임으로는 감각할 수 없는 부분들을 느끼는 과정이거든요. 대놓고 사람들이 난감하기를 바라는 것이고요. ‘시가 어렵다’고 얘기하는 건 시를 잘 겪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요.”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호준의 시간여행] 썰매 타던 아이들

    [이호준의 시간여행] 썰매 타던 아이들

    겨울이 오면 아이들은 썰매 만들 준비에 바빴다. 문제는 재료를 구하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보면 나무야 그럭저럭 구한다고 해도 썰매의 날로 쓸 굵은 철사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철사의 질은 썰매의 속도를 좌우했다. 간이 큰 아이들은 곧잘 학교 유리창의 가이드레일에 군침을 흘렸다. 썰매의 날로는 그만한 게 없기 때문이었다. 헌 스케이트 날로 썰매를 만드는 아이도 있었지만, 시골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에서나 만나는 ‘귀물’(貴物)이었다. 아이들은 너나없이 ‘철사병’에 걸려서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 썰매 만들기는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과정은 비교적 간단했다. 다리로 쓰는 각목이나 적당한 통나무에 철사를 대어 고정시킨 뒤, 그 위에 판자를 대고 못질하면 끝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가 되면 스스로 썰매를 만들어서 탔다. 머리가 굵어질수록 썰매는 작아졌다. 작을수록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아이들은 외발썰매를 만들어 탔다. 말 그대로 다리를 가운데에 하나만 대서 만드는 것이었다. 균형 감각이 뛰어나지 않으면 올라설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얼음에 닿는 면적이 적은 만큼 저항이 적어져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얼음판에서 살았다. 공부 따위는 까마득하게 잊고 놀았다. 썰매는 강이나 내에서 타기도 했지만, 대개는 논에 물을 대어 썰매장을 만들었다. 겨울 초입에 큰 논에 물을 적당히 가둬 놓으면 얼어서 너른 썰매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아침밥을 먹으면 썰매를 들고 집을 나섰다. 요즘처럼 방한이 잘되는 옷은 구경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찬바람이 가슴을 헤치고 볼은 빨갛게 얼었다. 그래도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는 아이들은 드물었다. 날마다 그렇게 신나게 타건만 얼음판에 썰매를 올려놓고 송곳을 불끈 쥘 때마다 가슴은 두근거렸다. 아이들은 세상 끝까지 갈 듯 씽씽 달렸다. 논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누가 먼저 가나, 혹은 몇 바퀴를 누가 먼저 도나 경주도 했다. 그러다 지치면 얼음판 한쪽에서 팽이를 치기도 하고 논둑에 올라 연을 날리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 보면 금세 점심때가 되었다.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내처 노는 아이들도 많았다. 모닥불에 고구마나 가래떡을 구워 먹는 재미도 남달랐다. 논가에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고 집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묻어 놓으면 조금 뒤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호호 불며 껍질을 벗기다 보면 손이니 얼굴이니 온통 까매졌지만 잘 익은 속살 한 입 베물면 꿀맛이 따로 없었다. 가끔 얼음이 녹아 꺼지기도 했다. 그러면 양말이나 옷을 흠뻑 적신 아이들이 모닥불가로 모여들었다. 말린다고 널어둔 양말을 불길이 날름 삼키기도 하고 나일론 점퍼에 불티가 튀어 구멍이 숭숭 뚫리기도 했다. 손발에 얼음이 박히거나 살갗이 툭툭 갈라지는 게 다반사였지만 아이들은 얼음판을 떠날 줄 몰랐다. 겨우내 그렇게 놀다 새 학기가 되어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냇가의 미루나무만큼 훌쩍 자라 있었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썰매 타는 아이들을 보기 어렵다. 시골에 아이들도 드물거니와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아이들 역시 학원 가랴 공부하랴 바쁘기 때문이다.그게 아니라도 컴퓨터 속의 게임은 바깥 세상을 잊을 만큼 자극적이다. 그러니 찬바람 씽씽 부는 들판에 나가서 볼이 빨개지도록 놀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 부모의 손을 잡고 가서 타는 스키나 눈썰매가 겨울놀이의 전부인 줄 아는 아이들에게, 아빠나 삼촌이 들려주는 썰매 타던 이야기는 전설만큼이나 아득히 멀 것이다.
  • 孫대표, 安의 사퇴 촉구 공식 거부… ‘제2 분당 열차’ 앞에 선 바른미래

    孫대표, 安의 사퇴 촉구 공식 거부… ‘제2 분당 열차’ 앞에 선 바른미래

    손학규, 안철수의 비대위 전환 거절 “오너가 CEO 해고 통보하듯 최후통첩” 안철수 창당 언급 안 해… 당의원들과 오찬 당권파, 분당 막게 ‘젊은 얼굴’ 대안 검토채이배 “孫·安에 실망”… 정책위의장 사퇴박형준 오늘 문병호 등 옛 안철수계 만나 안철수 전 의원의 지도부 교체 요구에 대해 손학규 대표가 거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바른미래당이 다시 분당 사태로 치닫게 됐다. 유승민계 의원들의 탈당에 이은 제2의 분당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손 대표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안 전 대표가 어제 ‘비대위를 구성하자, 전 당원 투표하자’고 한 것은 그동안 유승민계 그리고 안 전 의원과 친하다는 의원들이 저를 내쫓으려고 한 얘기와 같다”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대표직 퇴진을 요구받은 전날 면담에 대해서는 “안 전 대표가 말한 건 ‘너는 물러나고 내가 당권 잡겠다’였다”며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많은 기자·카메라를 불러 놓고 제게 물러나라는 최후통첩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개인회사 오너가 최고경영자를 해고 통보하듯”이라고도 했다. 안 전 의원이 돌아오면 ‘전권을 내려놓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말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안 전 대표가 당권 투쟁에 나설 걸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손 대표가 ▲비대위 전환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새 지도부 선출 ▲손 대표 재신임 전 당원 투표 등 안 전 의원 측 제안을 모두 거부하면서 공은 다시 안 전 의원에게 넘어갔다. 신당 창당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다. 안 전 의원은 “초심으로 돌아가 당원들의 뜻을 묻자고 한 제안을 왜 계속 회피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당이 위기 상황이니 이런 때야말로 당원들의 의사를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동섭 원내대표 권한대행이 이날 오전 “손 대표가 거절하면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달리 창당 계획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총선 전 신당 창당을 완료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적지 않다. 안 전 의원은 손 대표의 기자회견에 앞서 바른미래당 의원들과 오찬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는 권은희·김삼화·김수민·김중로·신용현·이동섭·이태규 등 안철수계 의원 전원과 김동철·박주선·주승용·이찬열·임재훈·최도자 등 당권파 의원들이 참석했다. 손 대표를 제외한 당 의원 대부분을 모아 손 대표를 압박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당권파의 입장은 또 다르다. 손 대표와 안 전 의원 모두 2선으로 물러나고 ‘젊은 얼굴’을 앞세우는 대안을 검토하며 분당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승용 의원은 “손 대표에게 (사퇴) 결단을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 안 전 대표와도 29일 만나 (2선 후퇴 제안을) 이야기해 보겠다”고 말했다. 다만 양측 모두 현재까지 이런 제안에 동의하지 않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정책위의장인 채이배 의원은 “오늘 손 대표와 안 전 의원의 입장을 보고 실망감에 정책위의장 사퇴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한편 혁신통합추진위원회 박형준 위원장은 29일 문병호 전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김영환 전 의원 등 과거 안철수계로 분류됐던 인사들을 만난다. 혁통위가 추진하는 통합신당의 이념 범위를 중도까지 확장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우한폐렴 근원지는 中 바이러스 실험실” 주장…과거 유출 경고도

    “우한폐렴 근원지는 中 바이러스 실험실” 주장…과거 유출 경고도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우한 폐렴)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의 근원지가 따로 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미국 워싱턴타임스는 24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우한의 한 연구시설에서 퍼졌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27일 중국 보건당국이 후베이성 우한시 화난수산물도매시장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로 공식 확인한 것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워싱턴타임스가 주목한 연구시설은 화난수산물도매시장과 약 32㎞ 거리에 위치한 ‘우한바이러스연구소’(Wuhan Institute of Virology, WIV). 2018년 1월 문을 연 이곳은 중국 유일의 생물안전 4등급(Biological Safety level-4, BSL-4) 연구시설로, 에볼라바이러스와 한타바이러스 등 감염 위험도가 높은 미생물을 다루고 있다. 2003년 전 세계적으로 774명의 목숨을 앗아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SARS) 바이러스는 이보다 한 단계 낮은 3단계 실험시설에서도 다룰 수 있는 병원체다.이스라엘 생화학전 전문가 대니 쇼햄 박사는 관련 의혹에 대해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최고 등급 미생물연구시설인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쇼햄 박사는 앞서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연구소가 화난시장과 근거리에 있는 점을 들어 이번 사태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다. 사스 바이러스가 베이징의 한 연구시설에서 유출됐던 전례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우한연구소의 바이러스 유출에 대한 우려는 2017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이미 한 차례 언급되기도 했다. ‘중국합격평정국가인가위원회’(China National Accreditation Service for Conformity Assessment, CNAS)가 우한연구소의 생물안전 4등급 인가를 내준 직후 미국 뉴저지 럿거스대학교 분자생물학자인 리처드 에브라이트는 “4등급 실험실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열린 문화가 중요한데, 위계를 강조하는 중국이 이런 시설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실험을 했는지 혹은 하지 않았는지를 보고하는 것”이라면서 “정보의 개방성이 핵심이다. 투명성이야말로 실험실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바이러스 연구에 필요한 원숭이 등 영장류는 물고 긁을 수 있다”라면서 바이러스 외부 유출 위험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고했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는 2003년 건설 승인을 받고 3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2015년 1월 완공됐다. 당시 중국은 2025년까지 하얼빈과 베이징, 쿤밍 등 전역에 5~7개의 ‘생물안전 4등급’ 연구시설을 갖추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쇼햄 박사를 비롯한 일부 전문가는 우한바이러스연구소가 중국 방위시설과 함께 생화학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어디까지나 가설이긴 하지만, 이 같은 추측은 우한 폐렴이 중국 생화학무기 연구시설에서 유출된 바이러스에서 비롯됐다는 음모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한편 중국 보건당국은 27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화난수산물도매시장에서 시작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1일부터 진행된 역학 조사 결과 585개 표본 중 33개 표본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으며, 33개 중 21개는 화난시장 내에서 나왔다. 다만 바이러스를 옮긴 야생동물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 과학자들은 박쥐에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다른 동물을 숙주로 삼아 변이되면서 인간에게 전염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28일 0시 현재 중국 전역 30개성 기준, 우한폐렴 확진자는 4515명이며, 사망자는 106명에 달한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은 4만7833명이며 이 중 4만4132명은 의료 관찰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재까지 4명이 우한 폐렴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 중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느낌표 효도소년’ 원종건 “파렴치한으로 몰려 참담”

    ‘느낌표 효도소년’ 원종건 “파렴치한으로 몰려 참담”

    14년 전 시각장애인 어머니와의 이야기로 방송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원종건(27)에 대한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당원들의 퇴출 요구가 거세졌고 원종건은 28일 오전 당 영입인재 자격을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원종건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자신과 관련한 미투 폭로 글에 대해 “올라온 글은 사실이 아니다. 파렴치한으로 몰려 참담하다”고 부인한 뒤 “그 자체로 죄송하다. 민주당 21대 총선 영입인재 자격을 스스로 당에 반납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억울해도 진실공방 자체가 부담이다. 더구나 (폭로자는) 제가 한때 사랑했던 여성으로, 함께했던 과거에 대해 함께 고통받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라면서 “감투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고 부연했다. 원 씨의 옛 여자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A씨는 지난 27일 인터넷 사이트에 ‘느낌표 눈을 떠요에 출연했던 민주당 인재영입 2호 원종건의 실체를 폭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A씨는 “원씨는 여자친구였던 저를 지속적으로 성노리개 취급해 왔고, 여혐(여성혐오)과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으로 저를 괴롭혀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폭로를 뒷받침할 증거라며 폭행 피해 사진, 카카오톡 대화 캡처 등을 첨부했다. 해당 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했고, 당원 게시판에는 원씨 영입을 재검토하라는 글이 쏟아졌다. 한 당원은 “피해자가 용기를 내서 나온 이상 민주당은 피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당 이미지 전체가 훼손되는 일이다. 빠르게 처리 부탁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원종건은 지난해 12월29일 민주당의 ‘2호 영입인재’로 입당했다. MBC ‘느낌표’ 방송에서 시청각 장애인인 어머니가 각막을 기증받은 사연으로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 23일 “20대는 정치할 수 없다는 생각이야말로 고정관념”이라며 21대 총선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여기는 남미] 단돈 5000원에 신생아 팔아넘긴 부부, 이유 알고보니...

    [여기는 남미] 단돈 5000원에 신생아 팔아넘긴 부부, 이유 알고보니...

    중독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 보다. 마약을 사기 위해 신생아를 길에서 팔아버린 부부가 경찰에 체포됐다. 싸구려 마약에 중독된 부부는 그야말로 푼돈에 신생아를 넘겼다. 아르헨티나 지방 그란 로사리오에서 벌어진 일이다. 27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문제의 부부는 그란 로사리오의 한 공원에서 말다툼을 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지독한 마약중독자인 부부는 마약을 살 돈이 떨어지자 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부부는 아기를 팔아 돈을 마련하자는 말을 주고받았다. 부부에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들이 있다. 황당한 이유로 팔릴 운명에 처한 아기를 극적으로 구한 건 길을 걷다 우연히 부부의 말을 듣게 된 행인이다. 깜짝 놀란 행인에 부부에게 아기를 팔려고 하냐고 묻자 부부는 "그렇다"고 답했다. 부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이렇게 말하며 "아기를 팔아 돈을 받으면 마약을 사겠다"고 친절하게(?) 덧붙였다. 행인은 자신이 아기를 사겠다면서 부부에게 300페소를 주겠다고 했다. 지금의 환율로 300페소면 약 5500원이다. 제안을 받은 부부는 주저하지 않고 행인에게 아기를 넘겼다. 돈을 받은 부부가 총총 걸음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본 행인은 아기를 안고 경찰을 찾아갔다. 행인은 경찰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기를 건넸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서기로 했지만 사건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아기를 판 부부가 뒤늦게 후회하면서 행인을 만나기 위해 공원 주변을 배회하다 현장을 확인하던 경찰에 붙잡히면서다. 경찰은 인신매매 혐의로 부부를 긴급체포했다. 행인으로부터 부부의 인상착의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경찰은 부부를 단번에 알아봤다고 한다. 관계자는 "부부가 아기를 판 사실을 후회한 것인지, 돈을 더 받아내려고 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부부가 사려고 한 마약은 현지에서 '파코'라는 불리는 싸구려 마약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자료사진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야당의 저항·방해” “이 정권 못 믿어”… 듣고 싶은 민심만 들었다

    “야당의 저항·방해” “이 정권 못 믿어”… 듣고 싶은 민심만 들었다

    4·15 총선 전 마지막 명절인 설 연휴를 보내고 돌아온 여야가 27일 전혀 다른 민심을 전하며 저마다 총선 승리를 자신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설 직전 단행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2차 검찰 인사,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둘러싼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에 대한 국민 여론을 정반대로 평가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일부 야당과 기득권 세력의 온갖 저항과 방해에도 선거제도와 검찰개혁 그리고 유치원 3법 등의 입법을 완수해낸 데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정부 여당이 주도해야 한다는 뜻도 재확인했다”고 총평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설 명절 민심보고’ 간담회를 열어 “설 민심은 한마디로 민생 먼저였다”며 2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170여개 법안을 포함한 민생법안을 처리하자고 촉구했다. 이 원내대표는 “민심은 검찰의 일은 정부에 맡기고 국회는 민생에 집중하란 것”이라며 “이제는 검찰과 법무부가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도록 정치권도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한 입법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감염병의 위험도에 기반한 검역관리, 지역사회 연계를 통한 해외 감염병 통합관리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검역법 개정안은 현재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아울러 검찰 개혁 입법의 후속 작업인 경찰 개혁, 국가정보원 개혁 작업도 총선 전에 마무리할 계획이다.반면 한국당은 “국민들은 더이상 이 정권만 믿고서는 살 수 없다고 했다”고 총평했다. 한국당 이창수 대변인은 “설 연휴 하루 전, 정권의 2차 인사 폭거를 보며 국민들은 정권의 숱한 의혹이 정말 이렇게 묻히는 것은 아닌지, 이대로 법치와 정의가 무너지는 것인지 분통을 터뜨렸다”며 “경제성장률 2%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들고서도 선방했다는 정부를 보며, 올해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고 민심을 전했다. 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도 국회 간담회에서 “도저히 안 되겠다, 이번 4월 반드시 정권 심판하겠다, 그야말로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말씀을 들었다”며 정권 심판론을 내세웠다. 한국당은 최 비서관 기소를 둘러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윤석열 패싱’ 논란 등을 파헤칠 당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특검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29일 법사위 긴급현안질의를 추진하고, 특검법도 발의할 계획이다. 심 원내대표는 “우리가 현재 숫자가 부족해 저쪽(여당)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4월 총선에서 반드시 이겨 특검을 제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새로운보수당의 하태경 책임대표는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번 설에는 ‘문’자가 들어간 사자성어가 많이 회자된다”며 “대표적으로 전대미문과 동문서답이다. 전대미문은 역대에 문재인 같은 대통령 없었다, 동문서답은 문이 동쪽이라면 답은 서쪽이다는 뜻”이라고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했다. 정의당 김종대 수석대변인은 “이번 설에는 민생 해결을 요구하는 민심이 높았다. 정치의 역할을 소환한 3대 민심은 주택, 취업, 소상공인 문제 해결이었다”며 정의당의 4·15 총선 공약에 이를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심재철 “4월 총선에서 이겨 ‘검찰학살’ 특검 하겠다”

    심재철 “4월 총선에서 이겨 ‘검찰학살’ 특검 하겠다”

    ‘검찰학살 TF’ 구성…위원장은 권성동 의원 자유한국당은 27일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기소를 둘러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윤석열 패싱’ 논란 등을 파헤칠 당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특별검사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검찰학살 TF’를 만든다고 밝혔다. 권성동 의원이 TF 위원장을 맡고,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참여한다. 또 법사위 차원의 긴급 현안질의를 오는 29일 열고 특검법도 발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심 원내대표는 “우리가 현재 숫자가 부족해 저쪽(여당)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4월 총선에서 반드시 이겨 특검을 제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성윤 지검장에게 최강욱을 기소하라고 지시했는데도 이 지검장은 묵살했다”며 “법무부에는 보고하면서 상급기관인 고검장과 검찰총장에겐 보고하지 않았다. 이거야말로 명백한 항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더 가관인 건 최 비서관이 자신에 대한 기소를 ‘쿠데타’ 운운하며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거론해 협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왜 이 정권이 그토록 공수처법을 밀어붙였는지 그 속내가 제대로 드러난 것”이라며 “자신들을 수사하려는 검사들을 공수처를 통해 잡아넣고, 모든 비리와 범죄를 은폐하겠다는 것이다. 공수처가 문 정권 비리 은폐처임을 실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설 연휴 직전 청와대 및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를 지휘한 차장검사들을 모두 교체한 데 대해서도 “윤 총장이 전원 유임시켜달라고 의견을 냈지만 철저하게 묵살당했다. 검찰청법에는 ‘총장의 의견을 들어 인사한다’라고 돼 있지만 이 조항 역시 묵살됐다.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고 수사방해”라고 비판했다. 심 원내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국내 확산 우려와 관련해 “정부는 지금이라도 중국 여행객의(우리나라) 입국 금지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은 이 사안을 다룰 TF를 신상진 위원장을 비롯해 보건복지·외교통일 등 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들과 외부 전문가들로 꾸린다. 또 보건복지위 차원의 긴급 현안질의를 추진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美 MLB, 로봇 심판 도입의 찬반 논란 거세

    美 MLB, 로봇 심판 도입의 찬반 논란 거세

    “스트라이크~아웃~” 한국이든 미국 이든 야구를 보는 재미 중 하나가 심판(주심)의 화려한 액션이다. 또 심판과 감독의 설전, 신경전 또한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부터 미국의 메이저리그(MLB)에서 이런 재미가 반감될 것으로 보인다. MLB가 일부 마이너리그 경기이긴 하지만 로봇 심판을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가 “자동 스트라이크존이 대폭 늘어날 것이며 로봇심판이 올해 마이너리그에도 도입될 것”이라고 예고한 가운데 미국의 스포츠전문 매체인 디 애슬레틱이 26일(현지시간) “지난해 독립리그인 애틀랜틱 리그와 메이저리그가 운영하는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자동 스트라이크존은 시범 운영됐다”면서 “올해 마이너리그 일부 구장에도 자동 스트라이크존이 도입될 것”이라며 논란의 불씨를 당겼다. 이미 지난해 MLB 사무국 주도 아래 독립리그인 애틀랜틱리그와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로봇 심판’이 등장했다. 레이더 추적기술을 이용한 ‘트랙맨 시스템’이 투구를 판단해 스트라이크 여부를 이어폰을 통해 주심에게 전달하면, 주심이 이를 ‘발표’하는 방식이다. ESPN은 “여러 가지 수정·보완이 필요하지만 이를 통해 야구가 발전한다”면서 “스트라이크를 스트라이크로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그동안 심판 스트라이크 존 판정에 불만을 느꼈던 일부 팬들과 감독, 선수들도 반기는 분위기다. MLB 광팬인 해리 앤더슨(35)은 자신의 트위터에 “지난해 뉴욕 양키즈가 몇 번의 심판 판정 오류로 패한 적이 있다”면서 “로봇이 정확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판정한다면 불필요한 오류와 갈등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로봇 심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인간의 오류가 야구의 불확실성을 키우며 재미를 더했고, 화려한 심판의 몸짓이 사라진다면 ‘인터넷 게임’과 다르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휴스턴의 토마스 잭슨은 “인간의 범할 수 있는 오류도 야구 게임의 일부”라면서 “기계가 야구를 지배한다면 결국 인터넷 게임과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잭슨은 “이미 인간의 오류를 보완하기 위해 비디오 판독 등 다양한 대안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의 한 구단 관계자는 “비록 오심이 나온다고 해도 그러한 인간적인 요소야말로 야구를 설명하는 중요한 일면”이라면서 “로봇 심판은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사통팔달 수원시, 철도·도로 촘촘한 격자형 교통인프라 구축한다

    사통팔달 수원시, 철도·도로 촘촘한 격자형 교통인프라 구축한다

    수원시가 ‘경기 남부의 교통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신분당선 연장 사업이 확정된데다 수인선 수원 구간과 장안구 이목동과 영통구 이의동을 잇는 수원외곽순환(북부) 고속도로가 올해 개통한다. 또 인덕원에서 수원과 동탄을 잇는 복선전철인 ‘신수원선’ 조성사업의 실시설계 용역을 진행하고 GTX C노선 건설과 KTX 직결사업 등도 본격화 한다. 25일 수원시에 따르면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구간 연장 사업’의 경우 지난 15일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면서 수원시는 ‘격자형 광역 철도망 구축’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신분당선 연장 사업은 광교에서 호매실로 이어지는 9.7㎞ 구간을 연장하는 것으로 해당 구간에 정거장 4개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신분당선 연장선이 개통되면 호매실에서 강남까지 47분 만에 갈 수 있게 된다. 광역버스로 100분 정도 걸리는데, 절반가량 시간이 단축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주민들이 오랫동안 기다린 사업인 만큼 기본계획 수립 등 후속 절차를 신속하게 추진해 사업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르면 2023년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수원역과 인천 송도역을 잇는 수인선은 8월 개통 예정이다. 수원 구간(5.35㎞)에는 고색동과 오목천동에 2개 역이 들어선다. 수인선 수원 구간은 지하에 건설되고, 상부 공간은 산책로 등 주민 편익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산책로, 자전거도로, 숲 등 3㎞ 길이의 선(線) 형태 친환경 공간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수인선이 분당선과 연결되면 수원역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 남부 순환철도망이 완성된다. 인덕원(안양)에서 수원, 동탄을 잇는 복선전철인 ‘신수원선’은 올해 실시설계 용역을 진행한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신수원선은 인덕원·의왕·수원·동탄으로 이어지는 37.1㎞ 구간에 건설되는 데 수원 구간(13.7㎞)에는 6개 역이 들어선다. 내년 공사를 시작해 2026년 개통할 계획이다. 수원시를 가로지르는 신수원선이 개통되면 출·퇴근 시간대 경수대로 차량정체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2018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C노선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기본계획 용역을 진행 중이다. GTX C노선이 개통되면 수원역에서 서울 삼성역까지 22분, 의정부까지 40여 분 만에 갈 수 있다. 서정리역과 지제역을 연결하는 철로를 건설해 수원역을 KTX 출발 거점으로 만드는 ‘수원발 KTX 직결사업’은 올해 실시설계 용역을 진행한다.진행 중인 모든 광역철도 구축 사업이 완료되면 수원역은 그야말로 ‘경기 남부 교통의 중심’으로 거듭난다. 수원역에서 KTX, GTX, 수인선, 분당선, 국철 1호선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8년 전만 해도 수원시 관내 전철역은 성균관대·화서·수원·세류역(국철 1호선) 등 4개에 불과했지만 분당선, 신분당선이 잇달아 개통하면서 전철역 수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수인선, 인덕원선,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연장 구간이 모두 개통되면 수원시 전철역은 20여 개로 늘어나게 된다. 올해는 도로망도 확충된다. 장안구 이목동과 영통구 이의동을 잇는, 총연장 7.7㎞ 수원외곽순환(북부) 고속도로가 9월 개통할 예정이다. 수원외곽순환고속도로를 통행하는 차량은 하루에 4만 5000여 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목동과 광교·상현 나들목을 오가는 차량이 수원외곽순환도로를 이용하면 국도 1호선 등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30분가량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지난 15일에는 권선구 행정타운교차로 고가차도를 임시개통했다. 고가차도 개통으로 호매실 나들목에서 수원역에 이르는 구간의 차량정체가 눈에 띄게 줄었다. 총연장 940m의 고가차도는 2월 말 준공 예정이다. 또 입북동 벌터에서 강남아파트(금곡동)에 이르는 도로를 개설하는 등 올 한 해 동안 35개 도로 개설·확충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수원시 관계자는 “신분당선 연장 사업이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광역철도망을 중심으로 대중교통을 활성화해 ‘사람 중심 도시교통 체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켜켜이 쌓인 시간들, 레트로 감성 물들다

    켜켜이 쌓인 시간들, 레트로 감성 물들다

    그날은 하루종일 날씨가 흐렸다. 하늘은 우중충했고 햇빛 한 줌 들지 않아 낮에도 어두컴컴했다. 길은 어수선했다. 좁은 골목 안에 장이 섰기 때문이다. 검거나 잿빛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장터 사이를 마네킹처럼 오갔다. 스산한 갯바람, 굳은 표정의 사람들, 음울한 풍경들. 시골 소읍 장항을 돌아보기에 이보다 좋은 날씨가 또 있을까. 근대의 기억이 도시 곳곳에 DNA처럼 새겨진 장항은 스산한 겨울 날씨라야 더 잘 어울릴 듯했다.충남 장항은 서천군에 딸린 소읍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본격 형성됐다. 도시 중흥을 이끌었던 장항제련소가 세워진 것도 이맘때다. 이후 장항은 광복과 장항제련소 폐쇄 등 두 번의 쇠퇴기와 두 번의 중흥기를 거쳤다. 지금은 도시재생을 통해 다시 한 번 비상을 꿈꾸는, 세 번째 중흥기가 진행 중이다. 그 역사의 나이테가 도시 곳곳에 새겨져 있다. 가장 먼저 찾을 곳은 도시탐험역이다. 오래전 폐쇄된 장항역이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관광 명소로 새로 태어났다. 도시탐험역은 외관이 독특하다. 보는 각도와 빛의 양에 따라 건물색이 변한다. ‘카멜레온 필름’이란 별명을 가진 다이크로익 필름 덕이다. 필름을 떼서 창문이나 유리에 붙이기만 하면 단조로운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모더니즘풍의 멋진 건물로 변신한다. 도시탐험역은 소통의 공간인 ‘맞이홀’, 장항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장항이야기뮤지엄’,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시공간’, 여행자와 주민에게 휴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도시탐험카페’, 장항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장항선셋’(도시탐험전망대) 등 5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자전거도 무료로 빌려준다. 기벌포 영화관 등 인근의 도시재생 공간들을 둘러보는 데 유용하다. 이용시간은 오전 11시~오후 8시다.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도시탐험역 앞에 맛집이 많다. 역 앞 음식점은 맛이 없다는 통념과 다르다. 그래서 거리 이름도 ‘맛나로’다. 요즘 계절 별미는 박대 요리다. 박대는 가자미처럼 바다 바닥에 사는 물고기로, 소의 혀처럼 타원형으로 생겼다. 말려서 찜이나 구이로 낸다. 아귀, 코다리 등을 전문적으로 내는 집도 있다. 역 주변에 다방도 많다. 다국적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한 집 건너 들어찬 대도시 풍경과 무척 다른 모습이다. 눈으로 센 것만 일곱 집이었으니 장항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훨씬 많은 다방이 영업 중일 것이다. 이 일대 다방을 먹여 살린 이들은 옛 장항제련소 노동자들과 뱃사람들이었다. 수십년 전, 이들의 아침식사 대용으로 만들었던 이른바 ‘모닝 세트’가 일부 다방에서 여태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커피값은 예전과 비슷하다. 삶은 계란, 죽 등을 내주는 모닝세트가 2000원, 달달한 커피가 1000원 정도다. 그래서야 장사가 될까, 손님이 오히려 걱정할 만큼 저렴하다. 이런 집들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들어가서 차 한잔 팔아 줄 일이다.장항 읍내에는 이른바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소품들이 가득하다. ‘인증샷’ 즐기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천국이겠다. 도시 내에 다양한 설치미술 작품들이 조성된 건 ‘장항역 가는 길’, ‘골목정원 프로젝트’ 등 도시재생 사업 덕분이다. 이름은 달라도 이들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음울했던 도시 외관이 제법 상큼하게 바뀌었다. 다만 오래전 진행된 프로젝트인 탓인지, 이들 역시 시간의 나이테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눈을 돌리면 뭐가 현실이고 뭐가 작품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다. 미곡 창고를 리모델링한 서천창작문화공간처럼 문을 닫아 걸고 또다시 긴 재생의 시간을 보내는 곳도 있다. 그야말로 이 구역 자체가 작품인 듯하다. 장항제련소의 음울한 풍경도 압권이다. 바닷가 거대한 갯바위 위로 공장 굴뚝이 오벨리스크처럼 솟았다. 인간의 한없는 욕망을 보여 주는 듯하다. 장항제련소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 세워졌다. 제련의 불꽃이 꺼진 지는 오래지만 아직 공장 내부가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고 있다. 주변 환경정화를 끝낸 뒤 환경테마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게 지방정부의 복안인데, 언제 실행에 옮겨질지는 미지수다. 바위산 뒤편의 포구에서 제련소 전체가 잘 보인다.장항제련소 너머에 장항송림이 있다. 얼추 20m에 달하는 키 큰 소나무들이 1㎞ 정도 이어져 있다. 솔숲 위로는 높이 15m의 스카이워크가 들어섰다. 소나무 우듬지 언저리를 따라 걷는 느낌이 제법 짜릿하다. 스카이워크 끝자락에 서면 금강하구와 서해, 장항제련소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보는 해넘이 풍경도 예쁘다. 도시탐험역의 ‘장항 선셋’에 견줄 만하다. 장항과 군산이 경계를 이루는 금강 하구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서천조류생태전시관 주변에서 다양한 겨울 철새를 관찰할 수 있다. 학생을 동반한 가족이라면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나 국립생태원을 찾는 것도 좋겠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다양한 해양생물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4600여종에 달한다는 우리 바다생물의 표본을 모은 ‘생명의 탑’, 고래와 쥐가오리 등 거대 해양동물 전시물 등 볼거리가 많다. 장항송림 인근에 있다. 국립생태원은 나라 안팎의 동식물을 수집, 보존, 전시하는 공간이다. ‘작은 지구’로 불리는 에코리움을 비롯해 하다람놀이터, 습지생태원 등 다양한 전시·교육시설들이 들어차 있다. 글 장항(서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여행수첩 -맛나로(위) 일대에 맛집이 많다. ‘서해안식당’에서는 계절 별미 박대 요리(아래)를 맛볼 수 있다. 보통 2인분 이상 파는데, 혼밥족들도 맛은 볼 수 있다. 다만 제공량은 적다. 식당 주인에 따르면 조리 방식 때문에 2인분 이상 주문해야 제맛을 낸다고 한다. 바로 옆 ‘얼큰코다리’는 코다리 요리 전문집이다. 맵고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다. 1인분도 판다. 건너편의 ‘할매온정집’은 아귀찜, 탕으로 이름났다. 가격은 다소 비싸도 재료가 신선하고 양도 푸짐하다. 1인분은 팔지 않는다. -왕자다방, 금희다방 등에서 모닝세트를 낸다. 모닝세트 체험(?) 여행을 즐기는 젊은이도 조금씩 늘고 있다. 요즘 젊은층을 중심으로 옛 다방에서 사진 찍기가 유행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소곡주는 애주가들 사이에서 ‘앉은뱅이 술’로 통하는 지역 명주다. 술을 만드는 집마다 맛이 조금씩 다른 것이 독특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한산모시전수관 맞은편의 ‘한산소곡주’지만, 삼화양조장 등 외려 다른 집이 낫다는 이들도 있다. ‘한산소곡주 갤러리’에서 여러 소곡주를 시음해 보고 입맛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 합당? 영입?…‘정치권 청년’ 어디까지 왔나요

    합당? 영입?…‘정치권 청년’ 어디까지 왔나요

    청년의 정치 참여가 4·15 총선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민주당과 정의당 등 진보진영의 ‘청년 정치인 육성’ 경쟁에 불이 붙었다. 각 당은 청년 정치 결사체와의 합당·연대, 당내 청년당의 개설, 젊고 참신한 정치신인 영입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젊은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애쓰고 있다. 총선이 3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정치권은 실제로 얼마만큼의 자리를 청년과 함께하고 있을까.●“통합합시다” 정의당 청년 정치세력에 제안 ‘청년’에 가장 강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곳은 정의당이다. 정의당은 설 이후 청년정당인 우리미래를 비롯한 청년정치결사체에 합당하는 방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정의당은 오는 28일 범진보세력 및 시민사회세력과 선거 연대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태스크포스(TF)에서 첫 회의를 열어 우리미래 등 청년 정치 단체와 연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정의당은 청년정당과의 통합으로 당내 청년의 목소리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의당 김종민 부대표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정의당은 우리미래 등 청년 정당에게 통합 등 청년정치 세대교체를 주도하자는 정치적 연합을 공식적으로 제안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의당은 과거부터 총선에 앞서 통합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20대 총선을 5개월여 앞둔 2015년 11월 정의당은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 더하기와 4자 통합을 이루면서 정치적 외형확대를 이룬 바 있다. 21대 총선에 앞서서도 정의당은 청년세력과의 통합으로 당내에서 청년의 위상을 하나의 주요한 세력으로 만들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10% 할당? 20%할당? 각 당 청년할당 범위는 정당들은 당직과 선출직 공무원 후보자 비율 등을 청년에게 할당하는 ‘청년할당제’ 도입하고 있다. 특정한 기준을 설정해 선거 때마다 청년정치신인을 배출하고자 하는 목적에서다. 민주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자를 추천할 때 청년을 10% 이상 추천하도록 당규에 명시하고 있다. 광역의회의원 후보자는 20% 이상, 기초의회의원 후보자는 30% 이상 추천해야 한다. 기초의회에서부터 청년 정치인이 성장해 국회로 들어오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민주당 관계자는 “청년 정치인이 기초의회에서부터 성장하면 상당히 탄탄한 실력을 가지게 된다”며 “오랜 시간 총선에 도전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성장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민주당은 선거에서 청년 후보자가 경선에 임할 때 나이에 따라 차등해 추가점을 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청년후보자의 경우 29세 이하는 25%, 만 30세 이상부터 35세 이하는 20%, 만 26세 이상부터 만 42세까지는 15%, 만 43세 이상부터 만 45세 이하는 10% 가산한다. 또한 대의원에는 청년 당원이 30% 이상 포함되고, 중앙당과 시도당 주요 당직을 비롯한 각급 위원회를 구성할 때 청년 당원이 10% 이상 되도록 강제하고 있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 비례대표 명부 당선권에 만 35살 이하 청년 5명을 할당하기로 했다. 비례대표 1번을 포함해 당선권 경쟁명부의 20%(5명)를 청년에게 할당하는 게 핵심이다. 또한 지역구 출마자에게 40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고, 35세 이하 청년과 여성·장애인 후보에게는 추가 지원을 하기로 했다.●21대 새로 들어올 청년 정치인들 청년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정치권에서도 청년 정치인 영입을 서두르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인재영입 2호로 영입한 원종건(27)씨가 가장 화제다. 원씨는 지난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지역구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청년이라서 안 된다, 가진 것이 없어서 안 된다. 이 두 가지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원씨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5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각막 기증으로 눈을 뜬 어머니와 함께 소개돼 전국의 시청자를 눈물바다로 만든 사연의 주인공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영입 발표 후 정말 많은 기자분들을 만났다. 그런데 만나는 분들마다 공통적으로 물어 오는 질문이 꼭 있다”며 “첫째는 ‘20대인데 왜 정치를 하려는� ?굡箚� 밝혔다. 이어 “저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반드시 성공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야 제 뒤를 잇는 20대 청년 정치인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라며 “20대는 정치할 수 없다는 생각이야말로 고정관념이다. 제가 보란 듯이 청년의 패기로 뚫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민주당은 81년생 최기일 전 방위사업청 육군 소령, 청년소방관 오영환씨 등을 청년 정치인으로 영입했다. 정의당은 영입 청년인사와 당내 청년인사가 고르게 출마한다. 외부 영입 인재로는 장혜영 감독이 대표적이다. 장 감독은 1987년생으로 지난 2011년 연세대를 중퇴하며 ‘공개 이별 선언문’이라는 대자보를 붙여 김예슬·유윤종씨에 이어 ‘명문대’ 자퇴를 선택한 3번째 대학생으로 주목받았다. 장 감독은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출마할 예정이다. 당내에서는 젠더 문제에 힘써온 조혜민 여성본부장이 출마할 예정이다. ●청년을 ‘독립시키자’…청년당만드는 정당들 궁극적으로 당내에서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각당은 청년당을 만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9일 전국청년당 전진대회를 열었다.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는 최근 청년당 창당했다. 지난 11일 충북청년당을 시작으로 12일 강원 청년당, 15일 대구 청년당, 18일 광주 청년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지난 19일 전국청년당 전진대회를 통해 기존 청년위원회 구조에서 벗어나 청년당원의 권리와 권한이 실질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첫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당으로 개편을 시작했다. 특히 이번 전진대회에서는 전국청년당 내 청소년분과가 발족하고 청소년이 직접 분과위원 당직을 임명받아 활동을 시작했다. 정의당은 한발 더 나아가 35세 이하 모든 당원을 청년당의 구성원으로 포함하는 방안을 제4차 전국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정의당은 청년정의당을 청년 자체적인 정치활동과 독립된 예산, 정책수립을 통해 ‘자치기구’로 만들 계획이다. 이에 따라 만 35세 이하 모든 당원과 예비당원을 청년정의당의 회원으로 하고, 정의당 전체 당원 당비에 600원씩 할당해 청년정의당 기금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정의당은 내년 사안기까지 청년 정의당 창당을 마친다는 생각이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이용주 “민주당 입당해 출마” 與 “음주운전으로 불가능”

    이용주 “민주당 입당해 출마” 與 “음주운전으로 불가능”

    이용주 “정권 재창출 위해 민주당 입당”“파란옷 깜박 잊고 안 입었다” 언급도윤호중 “음주운전 전력 부적격 대상자”이용주 무소속 의원이 22일 여수시청 브리핑룸에서 “진보 진영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민주당에 입당해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은 “중앙당과 전혀 협의가 없었다”며 선을 그었다. 이 의원은 이날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의 여론이 조속히 민주당에 입당해 힘을 보태라는 게 주된 권유 사항이었다”며 “그 뜻이 저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 시·도의원으로부터 입당 권유도 받았고 중앙당 차원에서 입당 가능성을 타진해봤다”며 “(입당) 진행 과정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정치적 노선이 민주당의 이념과 맞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무소속으로 당선돼 민주당에 복당한 권오봉 여수시장의 예를 들며 “입당 여부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통합신당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호남의 민심을 반영해 설사 통합신당이 성사된다고 해도 함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음주 운전 논란과 관련해 “저의 잘못으로 인해 시민 여러분께 많은 실망을 드린 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다시는 과오는 범하지 않겠다”고 사과했다. 그는 이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더 큰 여수, 더 좋은 여수를 위해 필요하다”며 “21대 국회에 입성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 완수와 진보 진영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더 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오늘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 옷을 가지고 왔는데 깜박 잊고 안 입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의원의 입당 의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윤호중 사무총장은 이날 총선 출마 전·현직 의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연수가 열린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들어본 적이 없다”며 “입당하려면 심사를 해야 하는데 음주운전 전력 때문에 검증에서 부적격 판정 대상자가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정말 입당한다고 하면 복당 원서를 내고 받아들여달라고 저희한테도 연락할 텐데 (없었다)”라며 “그야말로 언론플레이를 한 것인데 그런 것에 여수 시민들이 쉽게 넘어가겠느냐”고 반문했다. 홍익표 수석대변인도 “우리 당 검증 기준에 따르면 음주운전 자체만으로도 출마 자체가 어려운 것”이라며 “중앙당과는 전혀 협의가 없었다. 검증의 권한은 실제로 중앙당이 갖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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