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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에서 뛰쳐나와 ‘하늘 나는 오징어’ 발견

    바다에서 뛰쳐나와 ‘하늘 나는 오징어’ 발견

    오징어가 수면 위를 날 수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최근 일본 대학의 한 연구팀이 바닷속에서 뛰쳐나와 활공하는 오징어떼 촬영해 성공해 관심을 끌고 있다. 그간 해양 전문가들 사이에서 전세계 300여종의 오징어 중 10여 종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으나 이같은 장면을 생생히 담아내는 데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를 이끈 홋카이도 대학 준 야마모토 연구팀은 “도쿄 동쪽 600km 해상에서 이같은 장면을 우연히 목격해 연속촬영했다.” 면서 “약 100마리의 오징어떼가 바닷속에서 튀어나와 믿을 수 없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장면을 지난 2011년 7월 촬영했으며 그간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연구팀이 밝힌 오징어의 크기는 대략 20cm 정도로 한번에 10초 간 약 30m를 비행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일부 오징어가 체내에서 해수를 분사해 수면으로 뛰쳐나오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면서 “이번 연구를 통해 오징어는 공중에서도 해수를 분사해 속도를 높여 비행 할 수 있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징어의 비행은 아마도 천적으로 부터 멀리 도망치기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닌가 추측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해양생물학지(Marine Biology) 최신호에 게재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日 아베총리, 독도문제 진두 지휘

    日 아베총리, 독도문제 진두 지휘

    일본과 중국의 최고 수장들이 영토 문제를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양국 간 갈등이 더욱 첨예화될 전망이다. 특히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직속 기관으로 설치하기로 한 영토문제 전담 부서에서 독도 문제까지 포괄할 계획이어서 우리 측과의 갈등도 예상된다. NHK는 5일 일본 정부가 독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문제를 다룰 ‘영토·주권대책 기획조정실’을 내각관방에 신설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말 내각관방에 설치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 문제 대책 준비팀’을 강화한 조직이다. 쿠릴 4개 섬 문제를 다루는 내각부의 ‘북방대책본부’를 합치고, 외무성이 맡고 있는 센카쿠 대책 기능을 흡수해 재편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일본 국내외를 상대로 독도와 쿠릴 4개 섬, 센카쿠열도가 모두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을 펴기 위해 일본 정부 내 정책을 조정하고 전략을 만드는 역할을 맡는다. 야마모토 이치타 오키나와·북방영토 담당상은 “일본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체제를 강화하겠다”고 새 조직 설치 의도를 설명했다. 내각관방은 총리를 직접 지원·보좌하는 부처로, 총리 관저의 일부로 분류된다. 특히 이 기구가 독도 문제를 다루게 된다는 점에서 한국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조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일본이 독도에 대한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를 아직도 반성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매우 유감스러운 행동”이라며 “우리 정부는 이에 강력히 항의하며 시대 역행적인 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중국도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가 영토분쟁을 직접 챙기고 있다. 일본의 센카쿠열도 국유화 조치 직후인 지난해 9월 14일 ‘중앙해양권익 유지공작 소조’를 만들어 시 총서기가 조장으로서 일본과의 센카쿠열도 분쟁의 대응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과 해양 당국 등 각 부문이 유기적인 대응을 못하고 혼선을 빚은 데 따른 것이다. 시 총서기가 기존의 외교안보 관련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중앙외사영도소조’ 외에 추가로 영토 문제까지 챙긴다는 점이 주목된다. 앞서 지난달 일부 중화권 언론들은 중국이 시 총서기를 단장으로 하는 ‘댜오위다오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으며 군, 정보, 외교, 해양감시 등 각 부문이 참여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한편 중국 군함이 사격 시 사용하는 레이더를 일본 구축함에 조준했다고 일본 측이 항의하는 등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은 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프리깃함이 지난달 30일 일본 구축함을 상대로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오노데라 방위상은 “지난달 19일에도 중국 함선 주변에 떠 있던 일본 헬리콥터에서 사격통제 레이더를 감지했을 때 작동하는 경보가 울렸다”고 말했다. 사격통제 레이더는 항해 시 사용하는 탐색용 레이더와 달리 함포나 미사일을 쏘기 전에 목표물까지 거리와 발사각도 등을 산출하기 위해 비추는 레이더다. 오노데라 방위상은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준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면서 “매우 위험한 사태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방위성은 이날 외교 경로를 통해 중국 측에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j@seoul.co.kr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울릉도 방문 강행’ 극우파도 각료로… 외교갈등 격화 예고

    ‘울릉도 방문 강행’ 극우파도 각료로… 외교갈등 격화 예고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26일 출범했다. 자민당의 아베 총재는 이날 오후 열린 특별국회에서 중의원과 참의원의 총리 선출 투표를 거쳐 제96대 총리에 지명됐다. 아베 총리는 2006년 9월 총리에 취임했다가 1년 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한 번 퇴진한 총리가 다시 집권한 것은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 이후 64년 만이다. 아베 총리가 조각에서 극우 성향의 측근 의원들을 대거 배치함에 따라 일본의 우경화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파벌의 영수들에게 자리를 주고 측근을 중용한 ‘친구 내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아베 총리는 총무상과 행정개혁담당상에 각각 신도 요시타카(54) 전 경제산업성 부대신(차관)과 이나다 도모미(53) 전 자민당 부간사장을 임명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8월 한국의 독도 지배 강화 실태를 보겠다며 울릉도 방문을 강행했다가 김포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된 극우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자민당이 야당 때 만든 ‘그림자 내각’에도 포함됐지만 실제로 각료로 기용된 것은 정치권에서도 상당히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독도 방문 소동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무명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방위상과 신설한 오키나와·북방상에도 영토 문제 강경론자인 오노데라 이쓰노리(52) 전 외무성 부대신과 우익인 야마모토 이치타(54) 전 외무성 부대신을 각각 임명했다. 아베 총리는 새 내각의 핵심인 부총리 겸 재무·금융상에 후원자인 아소 다로(72) 전 총리, 관방장관에 심복인 스가 요시히데(64) 간사장 대행을 배치했다. 교과서 검정제도 개편 등 ‘교육 개혁’을 주도할 문부과학상에 시모무라 하쿠분(58) 전 관방부장관, 외무상에는 당내 유력 파벌인 기시다파(전 고가파) 회장 기시다 후미오(55) 전 국회대책위원장을 기용했다. 기시다 외무상은 외교 경력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의외의 기용으로 꼽힌다. 아베 총리가 기시다를 주요 각료인 외무상에 임명한 것은 계파 중시 원칙을 지키면서 외교는 직접 챙기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아베 내각에 놓인 과제도 산적해 있다. 최우선 정책은 경기 부양이다. 이를 위해 10조엔(약 127조원) 규모의 추가 경정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 재정정책과 함께 일본은행을 통해 대담한 통화 완화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시중에 돈이 넘치게 하기로 했다. 그는 일본은행이 자민당의 총선 공약인 ‘인플레이션(물가) 2% 목표’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일본은행법을 고쳐서라도 강제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보냈다. 아베 정권은 외교 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들고 있다. 그는 내년 1월 말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동맹 관계를 심화하기로 했다. 한국과의 불편한 외교 관계 복원에도 애를 쓰고 있다.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 행사의 정부 개최를 유보하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특사 파견을 제안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내각에 영토 문제 강경파들을 포진시킨 점을 감안할 때 정권 초기 유화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 내내 한·일 간 빈번한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베 총리는 또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중의원과 참의원을 완벽하게 장악한 뒤 평화헌법 개정의 길을 튼다는 방침을 세웠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70년만에 고국 온 ‘이중섭 팔레트’

    70년만에 고국 온 ‘이중섭 팔레트’

    천재 화가 이중섭(1916~1956) 화백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92·한국명 이남덕)가 1일 이 화백의 유품인 팔레트를 이중섭미술관에 기증했다. 야마모토는 서귀포시를 찾아 이중섭이 1943년 일본에서 미술창작가협회(자유미술가협회 전신)로부터 태양상을 수상했을 때 부상으로 받은 팔레트를 전달했다. 야마모토는 “서귀포시가 이중섭미술관을 건립해 이중섭의 예술혼을 기리고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유일한 유품인 팔레트를 기증하게 됐다.”면서 “이중섭미술관이 더 격조 높은 미술관으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에 건너가 미술공부를 하며 야마모토를 알게 된 이중섭은 1943년 고향 원산으로 혼자 귀국하면서 자신이 사용하던 팔레트를 프러포즈의 징표로 야마모토에게 맡겼다. 이후 둘은 1946년 한국에서 결혼했고 이중섭은 부인에게 이남덕이란 한국 이름을 지어주었다. 지독한 가난으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1953년 야마모토는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났고 이듬해 이중섭이 부인을 만나러 일본에 한 차례 갔다온 뒤 부부는 다시 만나지 못했고 이중섭은 1956년 병원에서 사망했다. 야마모토는 그동안 이 팔레트를 이중섭의 분신으로 생각하며 70여년간 소중히 보관해 왔다. 목재 팔레트에는 이중섭의 붓질 흔적과 그가 사용했던 물감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김재봉 서귀포시장은 “이중섭미술관에 그의 유품의 없던 터에 소중한 유품을 기증받게 돼 기쁘다.”면서 “미술 애호가들이 볼 수 있도록 팔레트를 상설 전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중섭은 한국전쟁인 한창이었던 1951년 1·4 후퇴 때 부산을 거쳐 서귀포시에 내려와 1년여간 피란 생활을 했다. 전쟁통에 모두가 궁핍하긴 했지만 그는 한 평짜리 셋방에서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에서 게를 잡아먹는 등 찢어지게 가난한 피란 생활을 했다. 빈곤 속에서도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다가 그해 12월 서귀포를 떠났다. 서귀포시는 이중섭과의 짧지만 소중한 인연을 놓치지 않고 1997년 그가 살았던 옛 삼일극장 일대를 ‘이중섭거리’로 명명했다. 시는 같은 해 이중섭이 세 들어 살았던 초가집을 복원했고 2002년 11월 이중섭미술관을 세웠다. 이중섭미술관에는 그가 서귀포 피란시절을 그린 ‘섶섬이 보이는 풍경’, ‘파도와 물고기’, 은지화인 ‘가족’, ‘물고기 아이들’ ,‘파란게와 어린이’ 등 원화 작품 12점이 전시돼 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2차대전 전범 참배하면서 “조상 기리는데 韓·中 난리”

    2차대전 전범 참배하면서 “조상 기리는데 韓·中 난리”

    18일 일본 도쿄 구단시타의 야스쿠니 신사에는 가을비가 내렸지만 이른 아침부터 참배객이 줄을 이어 우경화된 일본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2차대전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20일까지 추계대제(秋季大祭)가 이어진다. 전날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인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에 이어 이날도 일부 각료를 포함해 여야 정치인들이 연신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 8시를 넘어서자 하타 유이치로 국토교통상과 시모지 미키오 우정민영화 담당상이 와서 참배했다. 하타 국토교통상은 패전일인 8월 15일에도 참배했던 인물이다. 국민신당 소속의 시모지 우정민영화 담당상은 당당하게 “각료로서 야스쿠니를 찾았다.”고 밝혔다. 2009년에 출범한 민주당 정권은 한국, 중국 등의 반발을 고려해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금지했으나 지난 8월 15일 하타 국토교통상 등 2명이 이를 깼다. 초당파 의원연맹인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등 여야 정치인 67명은 연이틀 참배 행렬을 이어 갔다. 8월 15일의 50여명보다 참배자가 증가했다. 정치인들의 참배가 끝난 9시 이후부터는 일반 시민이 몰려들었다. 전세버스로 시가현 등의 지방에서 올라온 참배객도 눈에 많이 띄었다. 신사에는 2차대전 A급 전범 14명과 전몰 군인 등 246만 6000여명의 위패가 있다. 도쿄가스 등 일반 회사들도 버스를 전세 내 직원들의 참배를 지원했다. ‘영령에 보답하는 회’라는 띠를 두른 자원봉사자들이 참배객들을 안내했다. 신사 한쪽 구석에는 70, 80대 노인 20~30여명이 전통극 공연을 보고 있었다. 과거의 영광을 되새김하는 듯 지긋이 눈을 감은 사람들도 많았다. 신사 내 전쟁기념관인 ‘류슈칸’에서는 태평양전쟁 당시 해군 대장이던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육군 소장 가토 다케오를 추모하는 ‘대동아 전쟁 개전 70년 전시회’가 열려 야스쿠니 신사의 성격을 짐작하게 했다. 진주만 공격 당시 전사한 9명의 군인을 신격화한 초상화와 진주만 기습 성공 통신 문서 등도 전시돼 있다. 해군 복장으로 참배한 70대 노인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조상들의 넋을 기리는데 왜 한국과 중국이 야단이냐. 일본이 싫으면 절대 일본에 오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 사진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일본통신] ‘진검승부’ 퍼스트 스테이지 흥행은 저조

    [일본통신] ‘진검승부’ 퍼스트 스테이지 흥행은 저조

    일본 프로야구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 팀이 모두 가려졌다. 센트럴리그는 주니치 드래곤스가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퍼시픽리그는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세이부 라이온스를 각각 2승 1패로 물리치며 퍼스트 스테이지를 통과했다. 결국 큰 것 한방이 승패를 결정 지었다. 센트럴리그 정규시즌 2위인 주니치와 3위 야쿠르트는 전날 까지 1승 1패를 주고 받으며 15일 마지막 3차전경기를 펼쳤다. 나고야돔에서 열린 3차전은 8회초까지 야쿠르트가 1-0으로 앞섰다. 야쿠르트는 2회초 공격에서 미야모토 신야의 안타와 후쿠치 카즈키의 땅볼 등으로 만든 1사 3루에서 포수 아이카와 료지의 우전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이후 양팀은 지리한 투수전을 전개하며 점수를 얻는데는 실패했다. 주니치 입장에서는 전날 2차전에서 0-1 패배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타선의 침묵이 길었다. 하지만 정규시즌에서 3위 야쿠르트에 9.5경기 차로 2위를 차지한 주니치의 저력은 8회말 공격에서 화끈함을 보여줬다. 8회부터 불펜 에이스 아사오 타쿠야를 내세워 이 경기를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주니치는 8회말 공격에서 선두 타자 오시마 요헤이의 안타와 이바타 히로카즈, 와다 카즈히로가 연속으로 볼넷으로 출루하며 1사 만루의 황금 찬스를 잡았다. 이날 세번째 투수로 올라온 야쿠르트 불펜투수 야마모토 테츠야가 이바타에게 볼넷을 허용하자 야쿠르트는 곧바로 올 시즌 리그 세이브 1위를 차지 한 ‘수호신’ 토니 바넷을 마운드에 올렸다. 하지만 믿었던 바넷은 와다에게 볼넷을 내준 뒤 1사 만루에서 5번타자 토니 블랑코에게 역전 결승 만루홈런을 허용하며 다 잡은 승리를 날려 버렸다. 블랑코는 바넷의 5구째 포심 패스트볼(145km)이 몸쪽에서 살짝 가운데로 몰리자 기다렸다는 듯 잡아 당겼고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한 블랑코는 좌측으로 까마득히 날아가는 타구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번쩍 들며 승리를 확신했다. 경기 후 블랑코는 이날 홈런이 자신의 일본 생활 중 나온 베스트 홈런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야쿠르트는 선발 무라나카 쿄헤이가 호투를 펼치며 2차전 1-0 승리를 재현 하는듯 했지만 믿었던 마무리 투수 바넷이 모든 걸 날려 버리며 올 시즌을 종료했다. 퍼시픽리그에선 정규시즌 3위 소프트뱅크가 2위 세이부를 2승 1패로 꺾고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소프트뱅크는 4회초 공격에서 마츠다 노부히로의 안타와 우치카와 세이치의 볼넷으로 얻은 1사 1,2루 찬스에서 4번타자 윌리 모 페냐가 좌익수 방면 2타점 2루타를 터뜨리며 앞서갔다. 세이부의 와타나베 히사노부 감독은 이때까지 호투한 선발 이시이 카즈히사를 우치카와까지만 상대하게 한 후 페냐 타석에서 투수를 토가메 켄으로 바꿨다. 결국 이 투수 교체가 시리즈 향방을 결정 짓는 순간이기도 했다. 세이부는 곧바로 이어진 4회말 공격에서 선두타자 아키야마 쇼고가 안타를 치며 출루했지만 3번타자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3루 땅볼로 병살타를 치는 바람에 득점 찬스를 놓쳤다. 2사 주자 없는 가운데 타석에 선 나카무라 타케야는 소프트뱅크 선발 오토나리 켄지에게 중월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한점을 따라 붙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는 8회초 공격 2사 2루에서 우치카와가 적시타를 터뜨리며 추가점을 획득, 3-1로 앞서 간다. 한점이 반드시 필요했던 상황에서 2사 후 2루타를 치고 나간 혼다 유이치가 득점의 발판이 됐다. 8회말 세이부는 2사 2루의 찬스에서 4회말 홈런을 쳤던 나카무라가 또다시 홈런성 타구를 날렸지만 펜스 앞에서 잡히면서 동점 찬스를 놓쳤다. 세이부는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호세 오티즈가 바뀐 투수 오카지마 히데키에게 솔로 홈런을 터뜨렸지만 이것이 전부였다. 결국 소프트뱅크는 세이부를 3-2로 꺾고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을 확정 지었다. 3차전에서 8-0 대승을 거뒀던 세이부는 득점 찬스에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이 아쉬웠고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선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지 못하며 올 시즌을 끝마쳤다. 이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양 쪽 리그 모두 3차전까지 소화하며 진검승부를 펼쳤지만 흥행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주니치와 야쿠르트의 3차전이 열린 나고야돔 관중수는 2만 3264명으로 2007년부터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시작 된 센트럴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3만명을 밑도는 최소 관중수를 기록했다. 이제 일본 프로야구는 하루(16일)를 쉬고 17일부터 각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를 시작한다. 센트럴리그는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퍼스트 스테이지 승자 주니치 드래곤스가 퍼시픽리그 역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니혼햄 파이터스와 퍼스트 스테이지 승자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각각 6전 4선승제로 일본 시리즈 진출 팀을 가린다. 일본은 지난 2007년 파이널 스테이지(당시 명칭은 클라이맥스 스테이지2)에서 그해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한 요미우리가 2위 주니치에게 3연패(당시 5전 3선승제)를 당하며 일본 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자 이듬해인 2008년부터 포스트시즌 제도를 바꿨다. 파이널 스테이지는 6경기를 모두 1위팀 홈 구장에서 열리며 6전 4선승제는 정규시즌 1위팀에 미리 1승 어드벤티지를 부여하기에 1위팀은 사실상 3승만 하면 일본 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2007년 주니치는 정규시즌 우승은 놓쳤지만 1위 요미우리를 꺾고 일본 시리즈에 진출해 니혼햄 파이터스를 물리치고 일본 시리즈 패권을 차지한 바 있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작가와 함께 서귀포 산책하기

    작가와 함께 서귀포 산책하기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 펜더는 프랑스 여행 중 살바도르 달리,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스콧 피츠제럴드 등과 만나는 환상적인 경험을 한다. 길 펜더를 부러워할 필요 없다. 제주도 ‘작가의 산책길’을 거닐면 한국의 유명 예술인인 이중섭, 변시지, 현중화 세 사람을 느낄 수 있으니까. ‘작가의 산책길’은 서귀포시가 이중섭 미술관, 기당 미술관, 자구리 해안, 서복 전시관, 소암 기념관과 같은 문화 관광지를 엮어 만든 4.9km의 걷기 코스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 길은 이중섭 거리에서 시작한다. 일직선으로 뻗은 길 중간에는 이중섭 미술관과 이중섭 거주지가 마주보고 들어서 있다. 화가 이중섭은 참으로 ‘짠’한 사람이다. 그의 일생을 따라다닌 건 지독한 가난과 지리멸렬한 그리움이었다. 일본인 아내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과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자신은 뜨내기처럼 떠돌았다. 생의 마감도 처절하다. 말년에는 정신분열증을 앓을 정도로 신경이 쇠약해졌으며 결국 서대문의 어느 병원에서 돌보는 이 하나 없이 싸늘하게 눈을 감았다. 그러나 산책길에선 이중섭 선생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평생 생이별에 시달렸던 그였지만 서귀포에서만큼은 가족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1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가족과 사랑을 나누고 서귀포의 바다를 벗 삼아 작품 활동을 했다. 칠십리시 공원과 이어진 자구리 해안 앞에도 그의 행복한 시절이 묻어나는 작품 <그리운 제주도 풍경>이 세워져 있다. 평안남도 출신인 이중섭과 달리 ‘폭풍의 화가’로 불리는 변시지 선생과 서예가 소암 현중화 선생은 제주도 서귀포시가 고향이다. 그들이 태어나 뛰놀던 고향인지라 산책길에서 만나는 두 사람의 흔적은 더 반갑다. 특히 변시지 선생은 ‘제주화’라는 화풍을 만든 장본인이다. 황톳빛 자욱한 바탕에 먹색의 선이 묘기를 부리는 현대적인 수묵화를 선보인다. 바람, 조랑말, 소년 등 작품 속 등장하는 소재만 봐도 제주도가 훤히 그려진다. 변시지 선생의 작품은 산책길의 주요 거점인 기당 미술관에서 상시로 만날 수 있다. 소암 현중화 선생의 작품이 전시된 소암 기념관은 산책길에 방점을 찍는다. 1년간 바닥에서 천장까지 얇은 종이가 쌓일 정도로 글씨를 썼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그는 평생 글씨를 다듬었다. ‘우리 고향이 제일 좋아’라고 써 내려간 글씨 앞에선 서귀포를 향한 소암 선생의 마음이 느껴진다. 작품을 떠나 소암 기념관은 건물 자체가 아름답다. 꼭대기 층에 서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travie info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작가의 산책길’ 탐방┃일시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주요 코스 이중섭 공원→이중섭 미술관→기당 미술관→칠십리시 공원→서복 전시관→소암 기념관 소요시간 약 3시간 20분 참가비 무료 문의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064-769-2481~6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일본통신] 日 WBC 대표팀 감독 누가 선임될까?

    [일본통신] 日 WBC 대표팀 감독 누가 선임될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을 바라보는 각국의 시선은 제각각이다. 한국과 일본이 국가적인 자존심까지 내세우며 월드컵 경기 이상의 관심을 보이는 반면 그 외 나라에서는 대회가 열리는지도 모르는 국가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일본이 생각하는 WBC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국가적인 차원으로 접근한다. 내년 3월이 되면 야구에 대한 열기는 보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수 있을 정도인데 그만큼 대회를 준비하는데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할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대표팀을 맡을 감독 선임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두번씩이나 우승을 차지한 일본은 3회 대회 역시 우승을 목표로 한다. 일본 야구팬들의 엄청난 관심이 집중 될 WBC는 그래서 누가 감독을 맡더라도 그 부담감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기대대로 좋은 성적을 올린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우승을 차지 하지 못한다면 자국 국민들로부터 쏟아질 그 엄청난 비판을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WBC 참가를 선언한 일본은 아직 대표팀 감독이 선임 되지 않았다. 카토 료조 NPB(일본야구기구) 커미셔너는 감독 임명권을 오 사다하루(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에 일임했다. 제 1회 WBC 대회 감독을 맡아 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 오 사다하루 회장은 일본 야구계에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오 사다하루 역시 감독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일본 언론에서 감독 후보감으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시시각각으로 다르다. 5일에는 아키야마 코지(소프트뱅크 감독)가 대표팀 감독으로 유력하다는 기사를 쏟아내는 가 하면, 6일에는 전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이었던 야마모토 코지, 그리고 7일엔 전 주니치 드래곤스 감독이었던 오치아이 히로미츠와 하라 타츠노리(요미우리 감독)까지 날이 바뀌면 감독 유력 후보의 이름이 바뀌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대표팀 감독 선임이 쉽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일단 오 사다하루는 현직 감독이든 전직 감독이든 정해져 있는건 없다고 밝혔다. 8일 야후돔을 찾은 오 사다하루는 그러나 수면 아래에서는 아키야마 코지 감독을 최우선 후보로 생각하고 있는듯 싶다. 아키야마는 오 사다하루가 회장으로 있는 소프트뱅크 호크스 팀의 감독이기에 설득할수 있는 시간이 많고 대화할수 있는 기회 역시 많다. 하지만 이미 아키야마 감독은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한 바 있다. 내년 시즌 개막 직전 WBC가 열리기에 아무래도 시즌 준비에 있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오 사다하루 역시 이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프로 12개팀 감독은 대표팀 감독직을 거절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그의 답변에서도 현역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기란 쉽지 않음을 뜻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역 감독이 배제되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2회 대회 당시 요미우리 감독을 맡으면서도 대표팀 감독이 돼 우승까지 거머쥔 하라 타츠노리가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다. 하라는 그해(2009년) WBC 우승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정규시즌 우승, 그리고 일본시리즈까지 제패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시즌 후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KIA 타이거즈와 맞붙은 한일 챔피언쉽도 요미우리가 승리하며 하라 감독은 그해 열린 모든 대회를 싹쓸이 했던 전례가 있다. 현역 프로 팀 감독을 대표팀 감독에 임명하더라도 소속팀 성적과는 별 차이가 없었다는 과거의 예를 들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하라 감독은 대표팀 감독을 맡아 달라는 NPB의 요구에 망설임 없이 곧바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이번과는 상황이 다르다. 지금은 그때와는 달리 선수회의 대회 참가 여부 결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시간이 촉박하다. 4일 선수회의 WBC 참가 결정이 난 후 일본 언론에서 곧바로 하라 타츠노리 감독을 대표팀 감독 후보군으로 언급했던 것도 이때문이다. 오치아이는 와타나베 쓰네오(85) 요미우리 회장이 일찌감치 감독감으로 점 찍은 인물이다. 와타나베 회장이 지닌 야구계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오치아이가 금방이라도 대표팀 감독에 선임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오치아이가 대표팀 감독을 맡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현장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기에 부담스럽다면 오치아이만한 인물이 없다. 하지만 오치아이 그 자신이 대표팀 감독 제의를 거절하고 있다. 오치아이는 일본야구계와 그렇게 친한 인물이 아니다. ‘독고다이’와 같은 스타일로 오레류(オレ流) 즉 타협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는 독불장군 스타일이다. 그리고 자신이 주니치 감독 시절에 열린 제2회 WBC 대회에서는 소속팀 선수의 대표팀 차출을 거부했던 것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데 이러한 오치아이 성품을 감안할때 그가 대표팀 감독직을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급부상 한 인물이 바로 야마모토 코지 전 히로시마 감독이다. 야마모토는 두번에 거쳐 히로시마 감독(1989-1993, 2001-2005)을 역임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대표팀 코치로 참가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현장을 오랫동안 떠나 있었고 히로시마 감독 2기 시절엔 한 단번도 팀을 A클래스(포스트시즌)에 올려 놓은 적이 없을 정도로 대표팀 감독을 맡기엔 역량에 아쉬움이 남는다. 베이징 올림픽 역시 코치로 참가했지만 당시 일본 대표팀 성적을 감안하면 안심하고 WBC 감독을 맡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처럼 일본은 WBC 대회 참가 확정까지 한 고비를 넘겼지만, 대표팀 감독은 누가 맡게 될 것인가 또다른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부담이 큰 대회에 감독을 맡아 우승을 차지한다면 개인으로서는 최고의 영광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될시엔 폭탄으로 되돌아 온다는 걸 지금 거론되고 있는 감독 후보군들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대표팀 감독 선임이 쉽지 않은 이유다. 일본은 이달 안에 대표팀 감독과 코칭스태프 구성을 마무리하고 1차 예비 엔트리 50-60명의 후보군을 확정한 후 본격적인 옥석가리기에 들어 간다는 계획이다. 사진=오 사다하루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日여기자, 시리아 취재 중 총격 사망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에서 일본인 여기자가 사망하는 등 종군 기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21일 AP·AFP 등에 따르면 재팬 프레스사의 베테랑 종군 특파원인 야마모토 미카(45) 기자가 시리아 반군의 본거지인 북서부 도시 알레포에서 취재 도중 총격으로 숨졌다고 일본 외무성이 밝혔다. 영국에 본부를 둔 민간단체인 시리아인권관측소도 정부군과 반군이 충돌하고 있는 알레포 동쪽 술레이만 알 할라 비에서 일본 여기자 1명이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여기자의 시신은 일본 영사 담당 관리들이 있는 터키로 옮겨졌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는 일본 여기자의 시신을 담았다고 주장하는 반군의 동영상이 공개됐다. 동영상 속 여성 시신의 오른팔에는 큰 상처가 보였고, 동료로 보이는 아시아계 남성이 의료진의 도움을 청하는 장면도 있었다. 야마모토 기자와 일했던 AP 기자는 동영상을 본 뒤 이 여성이 야마모토 기자임을 확인했다. 동영상에서 반군 관계자는 친정부 민병대가 여기자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기자의 죽음이 국제사회의 행동을 촉진하기를 희망한다.”며 시리아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백화점들 한여름에 겨울상품전

    백화점들 한여름에 겨울상품전

    주요 백화점들이 때 아니게 겨울상품전을 일제히 마련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백화점을 찾는 고객이 늘어나자 단가 높은 겨울 상품을 한데 모은 대형 행사를 열고 매출 극대화에 나선 것이다. 롯데 백화점은 10일부터 23일까지 본점을 비롯해 잠실 등 전 지점에서 겨울상품을 할인 판매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 행사를 개최한다고 8일 밝혔다. 행사 기간 진도, 근화 등 모피 브랜드가 주요 제품을 가격 인하해 판매하고, 쉬즈미스, 아이잗바바 등 100여개 브랜드가 참여하는 ‘여성 패션 사계절 상품전’도 열린다. 여성 속옷 브랜드 비너스 균일가전, 스포츠 대전 행사 등도 진행된다. 현대백화점도 전국 13개 점포에서 총 250억원 규모의 ‘한여름 모피대전’ 행사를 연다. 26일까지는 코오롱, 아이더 등 아웃도어 브랜드의 신상품 다운재킷을 모아 소개하는 ‘한여름에 만나는 다운 페스티벌’ 행사도 개최한다. 신세계 백화점은 10일 본점을 시작으로 강남(17~19일), 센텀시티점(24~26일) 등을 돌며 해외명품대전과 모피대전을 개최한다. 특히 올해 행사에선 단가가 높은 겨울 상품 비중을 대폭 늘려 총 물량은 200억원어치에 달한다. 아르마니, 돌체앤가바나, 비비안 웨스트우드, 마르틴 마르지엘라, 알렉산더 왕, 요지 야마모토 등 주요 수입 브랜드를 비롯해 폴스미스, 더 로우, 에밀리오 푸치 등의 상품을 60~70% 할인된 가격에 선보인다. 진도, 동우, 디에스 등 5개 브랜드가 참여하는 모피 대전 행사도 함께 열린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부고]

    ●김형학(전 서울신문 제작국 기술부 부장)씨 모친상 7일 인천 산재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32)518-5907 ●김민석(국방부 대변인)씨 형님상 7일 서울의료원, 발인 9일 오전 9시 (02)2276-7691 ●장재준(GM코리아 대표이사)씨 모친상 야마모토 히로후미(이사다코리아 대표이사)씨 장모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3010-2295 ●김태석(한국은행 기획협력국 부국장)씨 부친상 김기중(이오에너지 대표)씨 장인상 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 (02)2227-7500 ●유성진(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차장)씨 별세 7일 보라매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841-7652 ●오용해(전 용인축협조합장)씨 별세 갑성(삼성서울병원 성형외과 주임교수 겸 홍보실장)씨 부친상 박선옥(장스여성병원 소아과 원장)씨 시부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5시 30분 (02)3410-6915 ●김강기(성전&화성프린원 회장)씨 장모상 7일 전북 정읍 유림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7시 (063)532-4444 ●서영갑(고려대 명예교수·전 대한토목학회장)씨 별세 량(미국 거주)재하(전 경남기업 이사)씨 부친상 김원찬(전 서울대 전자과 교수)김영준(서울시립대 음대 교수)씨 장인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 (02)3010-2236 ●주태산(이코노믹리뷰 편집인)씨 모친상 7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 (031)787-1501 ●정범진(한국연구재단 원자력단장·제주대 에너지공학과 교수)씨 부친상 7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2258-5940 ●최희순(수원시 복지여성국장)옥순(수원 조원2동장)씨 부친상 7일 수원 연화장, 발인 9일 오전 6시 (031)218-8781 ●함명남(지택개발 대표)유재철(대륭건설 사장)씨 장모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3410-6903
  • [일본통신] 강정호, 주니치 우승공신 ‘우노’와 평행이론?

    [일본통신] 강정호, 주니치 우승공신 ‘우노’와 평행이론?

    올 시즌 한국프로야구는 강정호(25. 넥센)의 초반 페이스가 무섭다. 강정호는 현재(16일 기준) 타율 .343 홈런12개 28타점으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특히 이제 30경기를 치른 시점이기에 그의 홈런 숫자 12개가 가리키는 것은 실로 대단하다고 볼수 있다. 특히 지난해 홈런왕인 최형우가 부진에 빠져 있고 돌아온 홈런타자 이승엽(삼성) 김태균(한화)의 홈런 페이스가 주춤한 가운데 강정호 혼자 치고 나가고 있는 형국이기에 더욱 돋보인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이러한 강정호의 홈런 추이를 놓고 볼때 일각에선 유격수 홈런왕이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강정호가 지금의 페이스를 시즌 끝까지 유지해 홈런왕에 등극한다면 1990년 장종훈(당시 빙그레) 이후 22년만에 ‘유격수 홈런왕’에 오르게 된다. 일본에서도 유격수 홈런왕은 흔한 일이 아니다. 현역시절 ‘괴짜 선수’로 불렸던 우노 마사루(현 주니치 타격코치)가 1984년 37개의 홈런으로 유격수 홈런왕에 올랐고 이듬해인 1985년엔 41개의 홈런으로 역대 유격수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갖고 있다. 우노는 18년의 현역 생활동안 1,620개 안타 338홈런 936타점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강타자다. 하지만 우노의 방망이 실력은 역대 최고의 유격수로 불릴만 했지만 수비는 형편 없는 선수였다. 우노는 1979년 주니치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첫 해 27개의 실책으로 첫 실책왕에 올랐고 이후 내리 4년연속 실책 1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현역 시절 총 7번의 실책 1위와 더불어 통산 그가 기록한 실책은 무려 270개나 된다. 평범한 타구를 놓치는 어이없는 실책은 물론 안타성 타구를 잡고 1루로 송구한다는 것이 우익수에게 던지는 등 수비로만 놓고 보면 최악의 선수 중 한명이었다. 우노가 현역 시절에 홈런을 많이 쳐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골든글러브 상을 수상하지 못했던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노의 진가(?)는 수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주루사의 귀재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주자추월사건’은 아직도 일본야구팬들의 기억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우노는 1984년 5월 5일 다이요 훼일즈(현 요코하마)전에서 팀이 1-4로 뒤지고 있는 가운데 3회초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섰다. 한방이면 역전이 가능했지만 우노는 평범한 우익수 플라이에 그쳤고 루상의 주자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다이요 우익수인 타카기 요시카즈는 이 공을 떨어뜨렸고 타카기가 공을 놓치는 순간 주자들은 일제히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타자주자였던 우노는 타카기가 공을 떨어뜨린 순간부터 전력질주해 1루주자를 추월하는 엽기스런 플레이로 관중들의 배꼽을 빠지게 했다. 당시 경기가 ‘어린이 날’ 이였던 관계로 어린 야구팬들에게 우노란 이름 석자는 확실히 각인됐던 것은 물론이다. 이후 우노의 주자추월사건은 텔레비젼의 ‘진기명기’ 프로에 단골이 됐다. 우노는 현역시절 통산 78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하지만 도루자는 무려 96개였다. 우노가 출루를 하면 제발 뛰지 마라는 덕아웃의 사인을 무시하고 자신의 도루능력(?)을 과시하곤 했는데 1992년 개막 직전 인터뷰에서 그해 목표를 3할 30홈런 3도루 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우노에게 있어 잊을수 없는 경기가 또 있다. 프로 입단 후 주전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었을 무렵인 1981년 8월 2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전설의 헤딩사건 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시 주니치 투수는 호시노 센이치(현 라쿠텐 감독)였고 호시노는 6회까지 무실점으로 막강 요미우리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주니치가 2-0으로 앞선 7회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어이없는 사건이 우노에게서 일어났다. 2사 1루 상황에서 야마모토 코지가 친 타구는 내야와 외야의 중간에 떴고 우노는 자신이 타구를 처리하겠다고 사인을 보내며 높이 뜬 타구의 낙하지점에 미리 가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야마모토가 친 타구는 우노의 글러브 속이 아닌 그대로 우노의 머리를 강타하고 말았다. 타구에 헤딩을 한 우노는 그자리에서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러워했고 우노의 머리를 강타한 타구는 왼쪽 펜스까지 굴러가며 1루주자는 홈까지 여유있게 안착할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타자주자였던 야마모토가 홈까지 파고 들었지만 아웃, 결국 호시노는 3피안타 1실점(비자책)으로 2-1 완투승을 거둘수 있었다. 당시 이 경기가 얼마나 중요했냐면 ‘안티 요미우리’의 선두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호시노는 요미우리가 1980년부터 이어오던 158경기 연속득점 기록을 깨겠다고 장담하며 마운드에 올랐던 경기였다. 만약 7회말 우노의 헤딩사건이 없었다면 자신의 손으로 요미우리의 연속경기득점 기록을 저지할수 있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우노의 헤딩사건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 사건이 있고 난 후 일본의 야구관련 프로그램에서는 너나할것 없이 진기명기의 단골 레파토리로 소개됐고 벌써 30년이 넘게 흘렀지만 지금도 유투브와 같은 곳에서는 그의 헤딩 플레이를 쉽게 볼수 있을 정도다. 우노는 자신의 헤딩사건으로 인해 전국구 스타가 됐지만 텔레비젼에서 그 당시 플레이가 재반복되는 걸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시즌에 소년야구교실에 참가해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난 일본프로야구에서 최초로 타구를 헤딩한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엉뚱한 발언도 했다고 하니 그의 개그 본능은 삼성의 박석민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일설에 의하면 어린이들이 우노에게 “아저씨 야구공에 헤딩하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라며 우노를 곤욕스럽게 했던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수비가 불안했던 우노에겐 한가지 징크스가 있었는데 코칭스탭들이 유격수 수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우노를 3루나 외야수로 기용했지만 그럴때면 타격이 침체돼 어쩔수 없이 우노를 유격수로 기용할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유격수를 보지 않으면 화끈한 장타가 종적을 감춰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노의 현역시절 기록을 보면 41홈런을 쳤던 이듬해인 1986년엔 3루수로 기용됐지만 타율 .211 홈런10개로 성적이 급추락 했지만 1987년 유격수로 다시 돌아와서는 타율 .270 홈런30개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온 적도 있다. 거포는 삼진이 많다는 걸 증명하듯 2년연속(1983-1984) 삼진왕, 그리고 우노의 통산 삼진갯수는 무려 1,306개나 된다. 1994년 지바 롯데에서 은퇴한 우노는 야구평론과 TV 해설 등을 하다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주니치 타격코치로 현장에 복귀했다. 이후 다시 야구평론과 TV 해설로 돌아갔던 우노는 올 시즌 주니치의 타격코치로 다시 돌아와 주니치의 3년연속 리그 우승에 힘을 보태고 있는 중이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일본통신] 日프로야구 ‘날지 않는 공인구’ 속앓이

    [일본통신] 日프로야구 ‘날지 않는 공인구’ 속앓이

    올 시즌 새로운 공인구 도입 2년째인 일본프로야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투고타저’ 현상을 보이고 있다. 비록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1점대 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고 있는 팀만 해도 2팀(주니치 1.55, 니혼햄 1.72)나 된다. 현재 각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주니치와 니혼햄 외에도 2점대 팀 평균자책점을 기록중인 팀은 6팀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달라진게 거의 없다. 사정이 이쯤에 이르자 일본프로야구 선수협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지난달 24일 일본프로야구 선수협 회장인 아라이 타카히로(35. 한신)는 “선수들의 통일구에 대한 재검토 요청이 높아지고 있다. 재미 없는 야구, 그리고 국제 경쟁력을 감안하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며 일본야구기구(NPB)에 정식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선수협의 이러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통일구 교체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아라이 회장의 요청에 가토 료조 커미셔너는 “메이저리그보다 일본의 공인구 제작 기술이 더 높다.”며 다소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투고타저’ 현상에 있어 날지 않은 공인구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뜬금없이 공인구 제작 기술 타령을 언급했으니 어이가 없을만 하다. 일본프로야구가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지금과 같은 ‘투고타저’ 현상이 지속 될 경우 팬들의 외면을 피할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그 조짐은 이미 관중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2010년과 비교해 지난해 관중수는 2.6%가 줄어들었다. 덧붙여 지난해 4월에 비해 올해 4월 관중수 역시 경기당 평균 약 3,000명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렇게 가다간 해마다 2,000만명 이상의 총 관중수를 유지했던 일본프로야구가 어쩌면 1,000만명대로 떨어질수도 있다. 올 시즌 역시 이대로 가면 지난해에 비해 10%정도의 관중수 감소가 예상된다. 일본의 투고타저 현상은 일반적인 현상이라 치부하기엔 그 현상이 극심하다. 거의 모든 경기가 투수전 양상을 띠면서 타자들의 불만, 더 나아가 투타 밸런스가 어긋나면서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는 하위급 투수가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센트럴리그의 평균자책점 1위는 2.21을 기록한 마에다 켄타(히로시마)였다. 그 뒤를 당시 주니치의 첸 웨인(2.87), 야쿠르트의 타테야마 쇼헤이(2.93) 순이었고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들 중 최하위(12위)를 기록한 선수는 요코하마의 시미즈 나오유키(5.40)다. 이 부문 10위권엔 3점대의 평균자책점 선수들이 대부분 포진했었다. 하지만 올 시즌엔 비록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중인 투수 가운데 10위권 안에 든 투수는 한명도 없다. 야마모토 마사(0.55), 노무라 유스케(0.77) 이 2명의 0점대 평균자책점을 비롯해 1점대 평균자책점 투수들이 대부분이고 평균자책점 1.98의 사와무라 히로카즈(요미우리)가 이 부문 리그 13위에 랭크될 정도다. 퍼시픽리그 역시 별반 다를바가 없다. 투수들의 득세는 곧 타자들의 빈타로 이어졌다. 새로 바뀐 공인구가 ‘날지 않은 공’ 이란 기준에서 볼때 특히 홈런수 감소가 두드러졌는데 2010년 센트럴리그에서 2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모두 10명, 퍼시픽리그는 7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엔 센트럴리그 4명, 퍼시픽리그는 단 2명에 불과했다. 올 시즌 30여 경기 가까이 치뤄진 현재, 지난해 센트럴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던 야쿠르트의 블라디미르 발렌티엔이 9개의 홈런, 퍼시픽리그는 소프트뱅크의 윌리 모 페냐가 6개의 홈런으로 각각 1위에 올라와 있지만 양 리그 모두 일본인 선수들 가운데 올 시즌 20홈런 이상을 기록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2010년 센트럴리그 6개 팀 평균 타율이 .267였지만 지난해엔 2푼 이상 하락한 .242에 그쳤고, 주니치가 팀 타율 .228로 최악의 빈타에도 불구하고 리그 우승을 차지할수 있었던 건 역시 2.46에 불과한 팀 평균자책점 덕분이다. 이렇듯 일본프로야구는 그 어떤 것을 비교해 봐도 공인구가 바뀐 이후 ‘투고타저’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볼수 있다. 일률적으로 조정할수는 없겠지만 그 변화가 이른 시일에 빨리 찾아왔기에 재미 없는 야구 역시 팬들의 피부에 빨리 스며든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날지 않은 공을 사용하다 보니 투수들은 자신의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기가 어렵고 자칫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될수도 있다. 그들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투수전이 계속되면 투수 스스로 자신의 구위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수 없기에 국제대회를 통해 전력 평가 역시 베일에 쌓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프로야구에서 사용하는 공인구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NPB의 주장도 반드시 수긍해야 할 이유도 없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하는 투수들에 비해 커브를 주무기로 하는 투수들의 성적 하락폭이 굉장히 컸다. 일본야구 전문가들은 공의 솔기 부분이 이 차이를 결정한다고 언급했는데 전 요미우리 감독을 지냈던 호리우치 츠네오는 “커브는 솔기에 손가락을 걸쳐 회전을 주는 방법과 손목을 써서 공을 빠지게 해 던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손가락을 걸치는 경우는 솔기가 커져 회전을 걸기 쉬워진 이점이 있으나, 손목을 써서 던지는 투수는 그만큼 불리하다. 통일구는 솔기가 큰데다가 표면이 미끄러워 공을 빼기 어렵다.”고 새로 바뀐 공에 대한 평가를 한 바 있다. 또한 너무나 넓은 스트라이크 존도 ‘투고타저’ 현상을 부채질 하고 있는데 공인구 교체도 필요하지만 이것 역시 한번쯤 생각 해봐야 할 문제다. 날지 않은 공에 더해 스트라이크 존까지 넓으니 축구 스코어가 빈번하게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일본통신] 오가사와라-이나바 엇갈린 행보

    [일본통신] 오가사와라-이나바 엇갈린 행보

    야구에서 3할-30홈런은 흔한게 아니다. 3할 타율을 기록하기도 어려운데 30홈런을 기록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덧붙여 몇년 연속 3할-30홈런을 쳐내기란 더더욱 불가능 한 일이다. 미국에선 알버트 푸홀스(32. 에인절스)가 10년연속 이 기록을 수립해 한때는 야구의 ‘아이콘’으로 불렸지만 올 시즌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이 기록은 실로 대단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것 역시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푸홀스가 그러하듯 일본프로야구에서도 3할-30홈런을 수차례 이어왔던 타자의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바로 한국팬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오가사와라 미치히로(38. 요미우리)다. 오가사와라는 일본을 대표하던 강타자 중에 한명이었다. 풀타임 주전 13년동안 10번의 3할 타율과 30홈런은 물론 니혼햄(2000-2003)과 요미우리(2007-2010)에서 각각 4년연속 3할-30홈런을 기록했던 오가사와라는 아오키 노리치카(밀워키) 떠난 현재 4,000타수 이상을 기준으로 현역 타율 1위(.313)에 올라와 있다.(2011년 기준) 오가사와라는 일본에선 보기 드물게 정교함과 장타력을 동시에 겸비한 타자다. 니혼햄 시절 멋들어진 콧수염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갓츠(근성)’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도 했던 선수로도 유명하다. 니혼햄 시절 공에 맞아 갈비뼈 부상을 입고도 다음 날 경기에서 홈런을 쏘아 올린 것, 그리고 투수가 집요하게 몸쪽 공을 공략할지 알면서도 배터박스에 가깝게 서서 ‘맞출테면 맞춰봐라’ 라는 식으로 상대 했던 배짱은 오가사와라가 지닌 근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일화다. 특히 몸쪽 공을 공략해 홈런으로 연결하는 타격기술은 일본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오가사와라는 과거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그를 괴롭혔던 무릎 부상도 그 원인중 하나였고 ‘투고타저’ 영향에서도 자유롭지 못했지만 올 시즌 역시 그 부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오가사와라의 성적은 규정 타석에 미달되며 타율 .207(58타수 12안타) 3타점 그리고 홈런은 아직까지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경기에선 선발로 출전하지 못하고 대타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오가사와라의 명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방증이다. 오가사와라의 부진을 놓고 그의 나이에 따른 노쇠화를 거론한다. 올해 한국나이로 40살(1973년생)이 되는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이제 정점에서 내려올 시점이 됐다는 평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가사와라의 부진은 나이로만 판단 할수 없는 뭔가가 있다. 다름 아닌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은 선수들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어서다. 그 대표적인 선수가 이나바 아츠노리(39. 니혼햄)다. 가네모토 토모아키(한신, 만44세)나 시모야나기 츠요시(라쿠텐, 만 43세)는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으며 비록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현재 센트럴리그 평균자책점 1위(26이닝, 0.69)를 달리고 있는 야마모토 마사(주니치)는 우리나이로 무려 48세(1965년생)다. 하지만 올 시즌 이나바 처럼 리그를 압도하고 있는 베테랑 선수는 없다. 이나바의 성적은 타율 .379(1위) 4홈런(1위) 23타점(1위) 장타율 1위(.611)다. 리그에서 유일하게 6할이 넘는 장타율과 ‘1’ 넘는 OPS(1.023)는 회춘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대 이상의 모습이다. 이나바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큰 경기에 강한 타자 중 한명이었지만 냉정히 평가하면 일본을 대표할만한 선수는 아니었다. 올해로 프로 18년차의 베테랑이지만 2007년 타율 1위(.334)의 타이틀을 얻었을뿐 그 외 홈런왕이나 타점왕과 같은 굵직한 타이틀은 획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30홈런을 기록한 해도 없었으며 세자리수 타점 역시 기록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나바는 올 시즌 거의 모든 공격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팀 타선을 이끌고 있다. 소속 팀 니혼햄이 2위 소프트뱅크에 3경기 차이로 앞서며 초반 질주를 달리고 있는 것도 이나바의 활약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때리면 안타라는 인상이 짙을 정도로 그의 이름은 성적 상위권에 모두 배치돼 있을 정도다. 한때 오가사와라와 이나바는 니혼햄에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오가사와라가 홋카이도 지역 팬 뿐만 아니라 전국구 인기를 얻으며 구단을 대표하는 타자였지만 이나바는 그 정도의 성적과 인기는 아니었다. 트레이 힐만 감독(현 LA 다저스 코치) 시절인 2006년 일본시리즈를 제패하던 해 퍼시픽리그 MVP는 오가사와라의 몫이었고 니혼햄이 도쿄 도 지역 연고지에서 2004년 삿포로 시로 연고지를 이적해 인기를 걱정 할때 오가사와라의 역할 역시 결코 빼놓을수 없다. 비록 오가사와라가 이듬해 FA(자유계약선수)자격을 얻어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지만 이적 첫해(2007) 센트럴리그 MVP를 수상하며 2년연속 양 리그에서 MVP를 받은 유일한 선수로 남아 있다. 오가사와라의 부진은 이나바와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다른 팀이라면 초반 부진을 딛고 일어설 기회를 주겠지만 지금 현재 요미우리 사정은 베테랑 선수를 신경 써줄 여유도 없을뿐더러 자칫 하라 타츠노리 감독이 시즌 중 경질 될 정도로 성적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가사와라의 부진은 최근 경기에서 대타로 출전하고 있는 것에서도 볼수 있듯 선수 자신은 물론 팀 역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비록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오가사와라와 이나바는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 뜻밖의 성적을 기록중에 있다. 너무나 빨리(?) 성적이 추락한 오가사와라, 그리고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이나바는 베테랑 타자의 엇갈린 행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일본 최고의 타자 중 한명이었던 오가사와라의 부진이 뼈 아프게 다가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프로야구] 세 남자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프로야구] 세 남자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나이는 잊었다. 선수 생명이 다하는 한 최선을 다해 던질 뿐이다.” 한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최고참 투수들이 불꽃 투혼으로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타자를 윽박지르는 위력은 사라졌다. 하지만 다양한 변화구와 의표를 찌르는 수읽기, 위기관리 능력으로 내로라하는 현역 타자들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 ●다양한 구종과 노련미 장착 50세 노장 제이미 모이어(콜로라도)가 25일 피츠버그 PNC파크에서 열린 미프로야구 피츠버그와의 경기에 시즌 네 번째 선발 등판, 6이닝 동안 6안타 3볼넷 1실점으로 승리 요건을 갖췄다. 하지만 구원진의 난조로 4-5로 역전패, 시즌 2승째를 날렸다. 지난 18일 샌디에이고전에서 7이닝을 6안타 2실점으로 막아 5-3 승리를 이끌며 1932년 잭 퀸이 세운 49세 74일의 메이저리그 최고령 승리 기록을 80년 만에 49세 151일로 새로 쓴 모이어가 이겼다면 49세 158일로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2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에 평균자책점도 2.28로 낮췄다. 최고 구속이 129㎞를 못 넘겼지만 체인지업과 싱커 등 다양한 구종으로 타자들을 요리했다. 일본에도 전설이 떴다. 한때 선동열 KIA 감독과 한솥밥을 먹어 낯익은 야마모토 마사히로(47·주니치)가 주인공.1984년 데뷔한 야마모토는 지금껏 211승을 수확했다. 특히 지난 15일 한신전에서 8이닝을 2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시즌 첫 승을 최고령 선발승(46세 8개월 4일)으로 장식했다. 1948년 하마사키 신지(한큐)가 작성한 최고령 선발승(46세 8개월) 기록을 64년 만에 깼다. 지난해 부상으로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한 그가 부상과 나이를 극복하고 집념으로 일군 승리여서 ‘전설’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22일 히로시마전에서는 7이닝 4안타 1실점, 4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지만 아쉽게 승패 없이 물러났다. ●지독한 부상 이겨내 더 박수 받아 국내에선 류택현(41·LG)이 투수 최다 출장 기록을 연일 경신하며 817경기에 등판했다. 그러나 25일 왼쪽 갈비뼈에 실금이 생겨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KIA 이종범의 은퇴로 현역 최고령이 된 그는 지난 13일 잠실 KIA전에 등판, 조웅천의 종전 기록(813경기)을 갈아치우는 등 올 시즌 6경기(6과 3분의1이닝)에 나서 삼진 5개를 낚으며 5안타 2실점하며 3구원승(다승 공동 1위)에 평균자책점 2.84의 역투를 펼쳤다. 2년 전 팔꿈치 인대가 끊어져 수술대에 올랐다가 눈물겨운 재활을 거쳐 신화를 쓴 그가 2~3주 뒤 다시 마운드에 오르길 기대한다. 한편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5일 예정됐던 4경기 모두 비 때문에 취소했다. 경기들은 9월 이후 다시 편성된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특파원 칼럼] 박찬호가 위대한 이유/이종락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박찬호가 위대한 이유/이종락 도쿄 특파원

    한국과 일본의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되면서 저녁마다 챙기는 일이 있다. 오릭스 버펄로스의 이대호 선수의 성적을 매일 체크하는 것 이외에 한화 박찬호 선수 관련 소식을 검색하는 버릇이 생겼다. 지난해 오릭스에서 부진한 성적을 남기고 고국으로 돌아간 박찬호를 응원하기 위해서다. 기자가 박찬호의 ‘광팬’이 된 건 18년 전이다. 박찬호가 1994년 1월 11일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에 입단하면서부터다. 기자와 같은 486세대들 중에는 박찬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가 시작되면서 이 나라에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박찬호에게 많은 위안을 받고 다시 희망을 꿈꿨기 때문이다. 전날 아무리 과음을 해도 박찬호 경기가 있는 새벽 4~5시에는 놀랍게도 벌떡 일어나 경기를 함께했다. 이기면 덩달아 신나고, 타자들에게 뭇매를 맞으면 하루 종일 찜찜함을 떨치지 못했다. 1997년과 2000년에는 미국 출장 길에 LA 스타디움도 들렀다. LA 특파원 선배 소개로 로열박스에 있는 기자석에 앉아 박찬호의 쾌투를 지켜본 건 영원히 간직할 소중한 추억이다. 그런 박찬호가 지난해 메이저리그 생활을 정리하고 오릭스 구단에 입단했을 땐 날 듯이 기뻤다. 오사카를 홈으로 하는 퍼시픽리그의 오릭스 경기를 자주 볼 수 없지만 도쿄에서 만나길 간절히 원했다. 도쿄에는 센트럴리그에 속하는 요미우리와 야쿠르트가 있어 양대 리그 교류전에는 박찬호가 등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즌 초반 1승 5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2군에 내려간 뒤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을 마쳐 도쿄에서 박찬호와의 조우는 이뤄지지 않았다. 아시아 최다승인 124승을 기록한 박찬호에 대한 일본 프로야구계와 언론의 시선은 싸늘했다. 노모 히데오가 세웠던 123승의 기록을 갈아치워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기 때문이리라. 지난해 4월 현역 일본 최고투수인 라쿠텐의 다나카 마사히로와의 두 차례 대결에서 박찬호가 패하자 ‘다나카가 메이저리거를 케이오시켰다.”고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박찬호는 일본 야구 선수 누구보다 위대하다. 6년간 6000만 달러(약 682억원)의 연봉을 받고 올해 텍사스에 입단한 다르빗슈 유가 시즌 초반 두 경기에서 난타를 당한 걸 보더라도 박찬호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다. 다르빗슈는 니혼햄에서 7시즌 동안 93승, 평균자책점 1.99를 기록했다. 지난 10일 다르빗슈의 데뷔전 때 NHK가 생중계하는 것은 물론 모든 민영 TV가 정규 방송 중에 경기상보를 여러 번 전할 정도로 그는 ‘일본의 자존심’으로 통한다. 다르빗슈가 박찬호의 기록을 넘으려면 12년 내리 10승 이상을 거둬야 한다. 올해 26세인 다르빗슈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박찬호가 위대한 또 다른 이유는 끝없는 도전정신 때문이다. 1000억원대의 재산과 메이저리거로서 높은 명성을 쌓았음에도 오늘도 도전한다. 일본에서 겪었던 수모도 아랑곳하지 않고 20년이나 어린 후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12일 두산전에서 6과 1이닝 동안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반면 18일에는 LG전에서 6과 3분의 1이닝 동안 3실점해 패전의 멍에를 썼다. 박찬호가 이기든 지든 역사가 만들어진다. 이기면 미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 프로야구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다. 지더라도 후배들에게 ‘메이저리그 124승 투수’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기자는 40세인 박찬호가 앞으로 4~5년을 현역으로 뛰어주길 바란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는 콜로라도의 제이미 모이어가 18일 49세 151일의 나이로 최고령 승리투수가 됐다. 일본에서도 주니치의 야마모토 마사히로가 15일 46세 244일째에 선발승을 거뒀다. 미국과 일본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마운드에서 몸소 보여주며 한국 프로야구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으면 하는 게 ‘박찬호 폐인’인 기자의 바람이다. jrlee@seoul.co.kr
  • “살아남으려 일본 순사가 됐다”… 친일파의 서글픈 변명

    “살아남으려 일본 순사가 됐다”… 친일파의 서글픈 변명

    “지나고 나면 흐름이 보이지만, 그 시대 속에 푹 파묻혀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시대를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만으로 힘겨울 수도 있지 않겠나.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지 못한 우리는 친일파라면 매장하는 분위기다. 그들을 변호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과 고통이 있지 않았겠느냐, 함께 생각해보자고 쓴 것이다.” 장편 역사소설 ‘북성로의 밤’(한겨레출판 펴냄)을 최근에 펴낸 조두진(45)씨는 잘 팔리지도 않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 소설을 써낸 이유를 22일 전화로 이렇게 설명했다. 대구 출신으로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성로는 대구 도심 한복판에는 있는 조선시대 대구성의 흔적을 말한다. 남성로, 동성로, 서성로 등과 한 묶음이다. 대구성은 1590년 왜구의 침략을 우려해 흙으로 축성했다가 임진왜란 때 허물어지자 1736년 돌로 성을 다시 쌓았다.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던 흥선대원군이 1870년 대구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는데, 불과 40여년만인 1906년 경상도 관찰사 서리 박중양의 묵인 아래 일본 상인들이 이 성을 허물었다. 그 성을 허물어뜨린 대표적인 일본 상인이 ‘북성로의 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미나카이 백화점의 창업주 나카에 도미주로였다. 나카에 도미주로는 일본 시가현 곤도에서 반농·반상인의 아들로 1903년에 조선 땅을 밟았다. 1905년 1월 대구에 잡화와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포목점을 열었고, 경부선 열차와 함께 전국으로 지점을 넓혀가던 중 1933년 미나카이 백화점 대구 본점과 경성점을 개장했다. 1941년 중국 남경점까지 연 그는 1945년 해방 직전까지 18개 지점, 종업원 4000명, 연매출 1억엔을 자랑하는 백화점 그룹으로 성장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40년대 일본이 미국에 선전포고한 전후다. 주인공은 미나카이 백화점의 성실한 조선인 배달부인 노정주와 창업주의 딸이자 의전에 진학한 똑똑하고 아름다운 아나코로 설정돼 있다. 마치 청춘소설 같다. 하지만 독자들은 ‘개천의 용’으로 똑똑하지만 일본 순사로 전락한 노태영, 야마모토 쇼시에 더 주목할 것 같다. 소작인의 아들로 일등을 해도 일등 자리를 양반 지주에게 내줘야 했던 태영에게는 설움이 많다. 신분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 설움, 가난의 설움, 고문에 이골이 난 악질적인 순사지만 물렁한 일본인 동료에게 승진에서 밀리는 설움 등이다. 가족의 주린 배를 책임져야 할 가장 태영에게 나라 잃은 설움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태영은 독립운동에 나선 친동생 치영을 거론하며, 사촌 동생인 노정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금 그어진 대로 살아라. 치영은 세상에 금이 잘못 그어졌다고 말하는데, 금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세월에 따라 이렇게도 그어지고, 저렇게도 그어진다.”라고. 또 태영은 “조선 농민은 종일 뼈가 빠지도록 일해도 멀건 죽으로 연명해야 하고, 일본 농민은 쉬어가면서 일해도 쌀밥을 먹는다. 농민의 잘못이 아니라 나라의 잘못이다.”라고. 그는 또한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태평양전쟁으로 조선인 징용과 징병에 열을 올리자 “쓸모가 없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야 쓸모가 있는 것이다.”고 말한다. 치영이 “신념을 팔아서 배를 채우는 것이 부끄럽지 않느냐.”고 추궁할 때도 태영은 “배를 채우는 것이 내 신념이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식민지에서 생활인으로 살아야 하는 태영의 모습은 독재시대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살아온 1970·80년대 산업역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두진씨는 “북성로에 가끔 70~80세가 된 백발의 일본인들이 찾아오는데, 다가가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보면 몹시 두려워한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거쳐 중년까지 살았던 일본인들인데, 고향을 잃어버린 불행한 사람들이다.”라고 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뤄지고 나서 아나코는 대구에 찾아와 이렇게 독백한다. “나는 조선에서 22년을 살았고, 일본에서 22년을 살았다. 지금쯤 하얀 찔레가 한창이겠지요. 나는 사쿠라 향기를 몰라요. 어른이 돼서 사쿠라를 접한 사람은 그 꽃향기를 알 수가 없다고 해요.” 이 책은 독일 법학자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와 오버랩되는 지점이 있다. 나치 전범이 될 수밖에 없었던 문맹의 한나와 그녀를 사랑한 법학도 마이클의 이야기는 단순 연애담이 아니다. 현대 독일(마이클)이 유대인 학살 등 전쟁범죄를 저지른 구(舊)독일(한나)과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과거와 화해가 필요하다. 어떤 방식으로 과거와 화해할 것인가는 과거를 청산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북성로의 밤’은 말하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학교·사회의 경쟁주의가 학교폭력 불러”

    “학교·사회의 경쟁주의가 학교폭력 불러”

    “학교와 사회에 만연한 경쟁주의가 한국에서 빚어지고 있는 학교폭력의 주요 원인이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전문가인 일본 리쓰메이칸대 산업사회학부 야마모토 고헤이 교수가 우리나라의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따끔한 지적을 내놨다. 현상 억제에만 신경 쓰지 말고 학교폭력을 유발하는 본질적 원인을 주시하라는 조언이다. 야마모토 교수는 15일 서울시립 하자센터에서 열린 한·일 교육포럼 ‘청소년 폭력과 부적응을 말하다’에 참석해 ‘이지메와 부등교(不登校)’라는 주제연구를 발표했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등교를 거부하고 자해와 자살을 시도한 청소년들의 사례를 통해 학교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는 내용이다. 야마모토 교수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히키코모리’ 전문가로 꼽힌다. ‘전국 히키코모리 지원자 연락회’ 사무국장을 맡아 히키코모리 문제 해결에 앞장서 왔다. 등교를 거부하고 집에만 머무르는 청소년과 사회로부터 고립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관찰해 이들의 사회 적응법을 모색하는 것이 그의 주된 연구 과제다. 야마모토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히키코모리와 학교폭력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는 “당사자들의 사례 연구를 통해 이들이 히키코모리가 돼 가는 과정을 관찰했는데, 상당수 청년이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면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 청소년들이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사회를 회피하면서 히키코모리가 된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서는 1986년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도쿄의 한 중학생이 자살하면서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을 심부름꾼으로 여겼고, 교실 안에서 피해 학생의 장례식 놀이까지 하며 괴롭혔다. 담임 교사는 사건을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 우리의 학교폭력 사례와 놀라운 유사성을 가졌다. 그가 바라보는 학교폭력의 주요 원인은 경쟁에 매몰된 학교와 사회의 분위기다. 청소년들이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도록 배우는 과정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경쟁주의는 청소년들의 마음에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인식시켜 남을 이긴 자신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약자에 대한 배려심을 갖지 못하는 청소년이 학교폭력의 가해자나 방관자가 된다.”는 견해를 내놨다. “최근의 한국 학교폭력 문제를 유심히 지켜봤다.”는 그는 ‘일진회 해체’ 등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 위주의 대책에 우려를 표했다. 선도의 대상인 가해 학생을 학교와 사회에서 대책 없이 배제하는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라는 지적이다. 야마모토 교수는 이런 학교폭력 해법으로 만연한 경쟁주의 극복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청소년들이 입시경쟁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대안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보듬어 준다면 학교폭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中 인민銀 “위안화 환율 변동폭 확대”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저우샤오촨(周小川) 행장이 위안화 환율의 변동폭을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그 폭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저우 행장은 5일 기자들과 만나 “산업구조의 변화와 무역흑자 감소 등을 감안할 때 현재 위안화 환율이 적정 수준을 잘 유지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위안화 환율의 변동폭을 적당히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6일 전했다.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도 전국인민대표대회에 대한 정부 업무보고에서 위안화 환율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안정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전제하면서 올해 위안화 환율 결정 체제를 개선해 환율 변동폭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저우 행장은 원 총리의 발언에 대해 “환율 결정에는 국내외 형세가 모두 영향을 미친다.”면서 종합적으로 볼 때 위안화 환율의 변동폭을 점진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환율이 결정되는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은 지난 2007년 5월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의 하루 환율 변동폭을 ±0.3%에서 ±0.5%로 확대한 바 있다. 바클레이스 캐피털 도쿄지사의 마사후미 야마모토 수석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의 하루 환율 변동폭을 현재 0.5%에서 1.0%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인터넷 매체인 시나닷컴 뉴스가 전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도랑

    [이용철의 영화만화경]도랑

    지난 7일부터 한국영상자료원에선 신도 가네토와 야마모토 사쓰오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26일까지 계속되는 회고전은 한국영상자료원과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가 공동 주최하는 ‘일본영화 거장 시리즈’의 네 번째 프로그램이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감독은 아니다. 그들의 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는 ‘일본 독립영화의 힘’을 목격하는 데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 감독들, 즉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등의 발자취는 대개 도호, 쇼치쿠 같은 스튜디오의 성쇠와 연결된다. 그들에 비해, 독립영화의 리더로 활약한 신도와 야마모토의 영화는 일본 영화의 또 다른 역사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특히 신도는 일본 독립영화의 역사를 쓴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튜디오 작업을 병행한 야마모토와 달리, 신도는 독립 제작사 ‘근대영화협회’를 세우고 지금껏 이끌어 왔다. 대표작들은 물론, 지난해 99살의 나이에 발표한 ‘한 장의 엽서’도 같은 제작사의 작품이다. 더욱이 1912년생으로 현역 최고령 감독인 신도가 발표한 영화들이 하나같이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어 놀랍다. 1990년대 이후 작품들인 ‘오후의 유언장’, ‘한 장의 엽서’는 저명한 영화지인 ‘키네마준보’가 그해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선정한 바 있다. 독립영화라고 해서 지루하고 딱딱한 영화를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생명력이 넘치는 신도의 영화는 여느 장르의 영화 못지않게 재미있다. 신도의 대표작은 1960년대 발표된 ‘오니바바’와 ‘벌거벗은 섬’이다. ‘오니바바’는 1960년대 일본 영화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집대성해 놓은 작품이다. 시대극과 괴기 드라마의 외피 아래로 사회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끔찍한 상황이 잊지 못할 충격을 안겨준다. 모스크바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벌거벗은 섬’에서 신도는 실험적인 양식과 사실주의를 결합한다. 외딴 불모의 섬을 일구는 일가족의 이야기인데, 영화는 몇 마디 자막 외에 어떤 대사도 없이 진행된다. 단순한 일상을 미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걸작이다. 두 영화만큼 유명하진 않으나 ‘도랑’(원제:どぶ)은 한국관객의 기호에 더 맞을 작품이다. 신도의 초기작으로 전후 궁핍한 일본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더러운 개천 옆에 형성된 판자촌으로 한 백치 여인이 흘러들어온다. 일본의 패전 후 만주에서 귀국한 그녀는 가는 곳마다 착취당한 끝에 굶어 죽기 직전이다. 끔찍한 건, 밑바닥 삶을 사는 판자촌 사람들조차 그녀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당장 현실이 아쉬운 그들은 그녀에게 손을 벌리고, 그때마다 그녀는 몸을 팔아 번 돈을 아끼지 않고 나눈다. 온갖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백치 여인을 보면 당장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에서 젤소미나라는 여인도 비슷한 삶을 살다 죽는다. 여인을 착취한 인물이 오열한다는 설정도 같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는 1954년에 대륙의 양끝에서 나란히 공개됐다. 어수룩한 얼굴의 천사가 패전한 두 나라의 하층민 앞으로 도착했던 셈이다. 비록 두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긴 했지만, 삶을 모조리 빼앗긴 민중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는 일. 신도와 펠리니는 영화를 통해 자기 나라의 민중이 선한 모습으로 살아남기를 기도했다. 지금으로부터 58년 전, 그런 감독들이 사는 세상이 있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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