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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족집게 같은 해설로 야구팬 즐겁게 할 것”

    “족집게 같은 해설로 야구팬 즐겁게 할 것”

    “다른 이들이 더그아웃이나 스탠드 상단에서 경기를 지켜봤다면 전 줄곧 포수 바로 뒤에서 2000경기 이상을 관전했습니다. 보는 느낌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요.” 지난 18년 동안 프로야구 LG와 SK에서 전력분석가로 일해온 김정준(42)씨가 SBS-ESPN 해설위원으로 올 시즌부터 마이크를 잡는다. 지금까지 국내 야구 해설계는 화려한 선수 경력이나 입담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김씨는 탁월한 전력분석 능력으로 방송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어쩌면 김씨에게 팬들의 눈길이 더 쏠리는 건 ‘야신’ 김성근(70) 고양 원더스 감독의 외아들이란 ‘타이틀’. ●LG·SK서 18년간 전력분석가 김 위원은 18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기자와 만나 “해 보고 싶었던 일이다. 색다른 관점의 해설을 통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데뷔 시즌 준비로 바쁘고 흥분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스피치 학원에 다니며 모의 해설에 몰두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두 차례, 지난해 경기 중 볼만한 경기를 골라 오프닝 멘트, 3이닝 해설, 클로징 멘트, 그리고 모니터링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방송 메커니즘은 잘 모르지만 경기 도중 언제 치고들어가야 할지 타이밍을 잡는 게 가장 어렵다.”고 토로했다. 부친을 닮아 말수 적은 그가 마이크를 잡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니 “그런 성격과 해설은 전혀 별개”라고 일축했다. ●“삼성·KIA가 2강” 김 위원은 “전력분석 경험이 해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방송사에서도 이런 이유로 스카우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력분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했더니 “미리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답했다. 미팅을 통해 상대 타자와 투수 공략법 등을 상세히 일러 준다. 상대 투수가 최근 많이 던지는 공과 투구 패턴 등을 간파해 알려주는데 특히 투수의 자잘한 버릇을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것이 그의 특기다. 올 시즌 판도도 점쳤다. 삼성·KIA를 2강, 한화·두산을 2중으로 지목했다. 삼성은 전력 누수가 없는 상태에서 거포 이승엽이 가세했다는 점을 높게 쳤다. KIA는 기존 선수가 튼실한 데다 ‘선동열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준우승한 롯데는 거포 이대호와 에이스 장원준의 공백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내 생각으로 해설… 아버지 조언” 김 위원은 집안 분위기 덕에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해 충암중학교에서 선수로 뛰다 갑자기 공부가 하고 싶어 충암고 1학년 때 글러브를 던졌다. 하지만 미련이 남아 2학년 때부터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워 나갔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1992년 LG에 입단해 내야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부상에 발목이 잡히면서 구단 프런트(전력분석)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2003년 SK로 옮기며 18년 동안 전력분석의 외길을 걸었다. 그는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SK가 홈에서 두산에 2연패를 당하자 삭발한 적이 있다. 부친의 생각을 느끼고 정리하기 위해서였단다. 여느 부자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대화가 없을 부자지간. 아들이 방송 해설가로 나선다는 소식에 부친은 “선수들의 얘기를 빌려 해설하기보다 네 생각을 얘기하라.”고 주문했다고 했다. 김 위원은 ‘야신’의 야구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이기는 야구”라고 딱 잘랐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김 감독은 선발 투수 3명을 중시한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변화를 준다. 쌍방울 감독 시절 중간계투 김현욱을 십분 활용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는 부친의 야구 키워드로 ‘준비-열정-정성’을 꼽았다. 김 위원은 “그동안 한 팀에서만 생활해 단편적인 면을 많이 봤다.”면서 “방송 매체를 통해 다른 팀 선수들과도 소통하고 많은 관계자들을 만나 더 많이 배우고 해설에 반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다음 달 11일 국내 팀들의 전지훈련지 일본 오키나와로 떠나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팀의 짜임새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일본통신] 미국, 일본 거쳐 돌아온 ‘풍운아’ 김병현

    [일본통신] 미국, 일본 거쳐 돌아온 ‘풍운아’ 김병현

    긴 시간을 돌아왔다. 18일 넥센 히어로즈가 전직 메이저리거 김병현(33)을 전격 영입했다. 1년간 총 16억원(계약금 10억원, 연봉 5억원, 옵션 1억원)의 조건으로 넥센 유니폼을 입게 될 김병현은 오랜 방황을 끝내고 국내 팀으로 안착된듯한 느낌이다. 지난해 김병현은 뜻하지 않게 일본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하며 제2의 도약을 노렸지만 1군 무대에서 한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채 2군에서만 머물렀다. 2군 성적은 18경기에 나와 20.1이닝(18탈삼진, 19피안타)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2.66을 기록했다. 표면적으로는 괜찮은 성적이지만 세이브가 없었고 생각보다 등판 횟수와 이닝수도 적었다. 이 수치로만 보면 2군 감독과의 불화설에 휩싸이는 등 정상적인 상태에서 운동을 하지 못했다는 걸 증명해준다. 김병현이 실전에서 공을 던진 것은 지난해 8월 라쿠텐에서가 마지막이다. 그리고 1군에서 활약한 것은 2007년 메이저리그 시절로 당시 콜로라도, 플로리다 등을 거치며 10승 8패의 성적을 남긴 후 5년만이다. 공백기와 몸상태에 대한 의문점이 있을법 하다. 하지만 그동안 김병현은 꾸준히 개인 훈련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시즌 후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따뜻한 미국 남부지역에서 몸 만들기를 하기 위한 것으로 아직 33살의 나이를 감안하면 얼마든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김병현은 한국적 야구 정서를 파괴하는 장난스러움과 미국에서 겪었던 우여곡절 등으로 국내에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던 선수중 한명이다. 마이크 피아자(은퇴)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빅리그에 화려하게 데뷔한 후 2001년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선 4차전에서 동점 홈런과 연장 끝내기 홈런, 그리고 5차전에서도 9회말 2사후 동점 홈런을 얻어 맞으며 국내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하지만 당시 소속팀 애리조나가 6,7차전을 잡으며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르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2003년 보스턴으로 이적하지만 손가락 욕설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이후 콜로라도 플로리다 피츠버그 샌프란시스코 등을 거치며 2007년 빅리그 생활을 마감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54승 60패 86세이브, 평균자책점은 4.42이다. 김병현이 넥센에 합류함으로써 올해 넥센은 성적향상은 물론, 관중 동원에 있어서도 큰 보탬이 될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올해 700만 관중을 목표로 하는 프로야구 흥행에 있어서도 김병현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김병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야구 밖에 모르는 선수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상당부분 잘못 전달된 것들이 많았고 이것 역시 부풀려진 이야기들이 대다수다. 그리고 그의 털털한 성격은 또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지난해 라쿠텐에 있을 당시 자신이 맡고자 하는 보직에 대한 모 언론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 던질 거니까 후회 없이 던지고 싶고, 보직은 솔직히 제가 감독이라면 절 안 써요.” 라는 김병현만의 특이한 카리스마를 마음껏 과시(?)하기도 했다. 김병현이 국내로 돌아오면서 올 시즌 한국프로야구는 그야말로 스타선수들의 경연장이 됐다. 이미 국내로 돌아온 김선우(두산) 봉중근(LG) 서재응(KIA)이 각팀에서 활약하고 있고 올 시즌엔 박찬호(한화) 이승엽(삼성) 김태균(한화)이 일본에서 돌아온 상태다. 그동안 해외파 선수들이라 불렸던 스타선수들이 국내로 돌아오면서 팀 순위 못지 않게 이들이 펼칠 맞대결역시 볼만해 졌다. 또한 일본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보여주지 못한 선수들이 과연 그동안 발전된 한국야구에서 또 어떠한 플레이를 보여줄지도 기대가 된다. 특히 김병현은 2007년을 끝으로 1군에서 얼굴을 볼수 없었기에 누구보다 관심이 집중돼 있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뿌렸던 ‘업슛’과 ‘프리즈비 슬라이더’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야구팬들이라면 어쩌면 김병현의 복귀는 소속팀 넥센 뿐만 아니라 모든 구단팬들의 관심 대상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김병현은 고향팀 KIA 타이거즈에서 뛰길 원했었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약상 이건 불가능에 가깝다. 해외파 특별지명은 선수가 국내 복귀를 원할때 구제할수 있는 제도였고(이 제도로 롯데 송승준, KIA 최희섭이 국내 구단 입단) 이 법이 실행됐던 2007년 당시 김병현을 특별지명한 구단은 현대 유니콘스였다. 이후 한국야구위원회는 현대의 김병현에 대한 지명권이 넥센이 승계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린바 있다. 즉 김병현은 KIA가 아닌 이제부터는 넥센 히어로즈의 선수가 된 것이다. 흔히 김병현을 ‘풍운아’라고 부른다. 사전에서는 풍운아의 의미를 ‘좋은 기회를 타고 활약하여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으로 풀이한다. 이제 진정한 ‘풍운아’로 돌아온 김병현, 그리고 또다른 유형의 ‘천재투수’로 불렸던 그가 또 어떻게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해 스스로를 이끌어갈지 팬들의 마음은 벌써부터 그라운드에 가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일본통신] ‘야구계의 이단아’ 신조 츠요시

    [일본통신] ‘야구계의 이단아’ 신조 츠요시

    2009년 일본시리즈 2차전. 니혼햄 홈인 삿포로돔에 전 일본 야구팬들의 시선이 집중돼 있었다. 당시 일본시리즈에서 격돌한 팀은 센트럴리그 우승팀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퍼시픽리그 우승팀인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대결이었다. 1차전을 요미우리에게 내준 니혼햄은 당시 부상 등의 이유로 출전이 불투명했던 에이스 다르빗슈 유(25)를 2차전 선발로 내세우는 배수진을 쳤다. 이에 요미우리는 좌완 우츠미 테츠야를 선발로 내정하며 니혼햄의 기를 꺾을 기세였다. 하지만 이날 2차전은 다르빗슈의 출전 유무와는 별개로 팬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이 다분했다. 해설을 맡은 인물들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에서 후지TV는 ‘카리스마의 대명사’인 기요하라 카즈히로(전 세이부)와 ‘야구계의 노홍철’ 신조 츠요시(전 한신)에게 경기 해설을 맡겼다. 당시 요미우리 소속의 이승엽은 스타팅 멤버로 8번 타순에 배치됐다. 3회초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서자 신조는 “이승엽이 8번타순에 들어선 것은 놀랍다. 그만큼 요미우리 타선의 강함을 엿볼수 있다.” 며 “이승엽의 프리배팅은 돈을 내고서라도 보고 싶다. 그의 프리배팅은 엄청나다.”며 이승엽을 극찬했다. 이 타석에서 이승엽이 다르빗슈를 상대로 우전안타를 때려내자 또다시 신조는 “이승엽의 프리배팅을 보노라면 배리 본즈인지 이승엽인지...” 라는 멘트와 함께 중계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신조 츠요시는 야구계의 이단아다. 현역 시절 그가 보여준 엽기적인 카리스마(?)는 아직도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의 가슴속엔 웃음꽃을 먼저 피우게 한다. 흔히 일본야구의 ‘3대 돌아이’를 가리켜 신조와 더불어 모리모토 히쵸리(히쵸리는 ‘희철’ 즉 모리모토는 한국계 선수다) 이가와 케이(뉴욕 양키스)를 일컫는데 모리모토가 독특하고도 엽기스런 퍼포먼스로 유명하다면 신조의 야구는 그 자체가 개그의 미학을 담고 있다. 외야수인 신조는 평범한 플라이도 점프캐치로 잡으며 일명 ‘신조캐치’로 명명된 플레이를 보여줬던 선수다. 1989년 전체 드래프트 5위로 한신 타이거즈에 입단한 신조는 훗날 메이저리그 진출과 마지막 니혼햄에서의 선수 생활을 끝으로 은퇴했다. 현역시절 타격은 내세울게 없는 평범한(일본 통산 타율 .254)이었지만 수비력만큼은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며 야구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야구 명언중 ‘타격이 좋은 선수는 팬들이 좋아하지만 수비가 뛰어난 선수는 감독이 좋아 한다.’라는 말이 있지만 신조의 수비만큼은 오히려 팬들이 더 열광할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타격에서 워낙 내세울게 없다는 점에서 신조의 가치는 일본야구계에서도 별다른 메리트가 없다. 하지만 현역 시절 보여준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만큼은 아직도 그를 그리워 해야 할 이유가 충분할만큼 매력적인 선수임엔 틀림없다. 신조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극도로 혐오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시구때 초등학생이 던진 초구도 대형타구로 만들어낸 적이 있다. 그의 엽기 행각은 이뿐만이 아니라 야구 외적인 부분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2004년에 신조는 일본의 모 퀴즈프로그램에 출현해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다. 당시 우승 상금은 한화로 약 1억원. 웃긴 사실은 연필을 굴려서 퀴즈 정답을 맞췄는데 당시 우승상금의 사용처는 홈구장에 있는 자신의 광고판을 만드는데 사용했다. 외야석 100석을 자신의 돈으로 사들렸는데 그 자리를 야구 꿈나무들을 위해 무료로 초대했고 그 좌석은 일명 ‘신조 시트’가 됐다. 니혼햄 시절 신조는 어느날 갑자기 파워레인저 복면을 쓰고 경기장에 등장하는가 하면(팀원들에게 까지 복면을 착용하게 하는) 한신 시절이던 1992년 시즌 말미에 히어로 인터뷰에서 ‘우승입니다’를 외쳤지만 한신은 우승에 실패했고,1999년 요미우리와의 경기(6월 12일)에선 상대의 고의사구 작전을 좌전 적시타로 연결하기도 했다. 이러한 신조의 엽기행각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도 그치지 않았다. 신조는 한신이 제시한 12억엔이란 거액의 계약을 뿌리친 후 일본돈으로 약 2,200만엔을 받고 뉴욕 메츠에 입단한다. 이후 샌프란스시코를 거쳐 메이저리그 마지막 해였던 2003년 다시 뉴욕 메츠로 돌아온 신조는 스프링캠프에서 빅리그 진출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던 마이너리그 선수를 보고 “나 대신 저 사람에게 개막전의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바람에 구단에 찍혔고 공교롭게도 그해를 마지막으로 다시 일본으로 유턴하게 된다. 일본 복귀 후 모 언론과의 인터뷰중 영어에 관한 질문을 받자 “나는 미국시절 영어를 하나도 못배웠다. 하지만 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고 말하는 등 끊임없는 개그 본능과 보편적 정서를 파괴하는 말과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신조는 자신을 야구선수로 불리는 걸 싫어했지만 일본의 야구팬들은 이러한 신조를 사랑했다. 어느 순간에 괴짜와 같은 모습을 보여줄지 예측할수 없었고 이러한 신조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은 승패와 상관없이 웃는 얼굴로 야구장을 떠날수 있었을 정도로 야구팬들에게 신조가 끼친 영향력은 이루 다 말할수가 없을 정도였다. 2006년 신조는 당시 소속팀이었던 니혼햄에서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당시 니혼햄은 에이스 다르빗슈 유를 앞세워 44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이란 감격을 맛봤지만 한편으론 신조의 마지막이란 사실에 팬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을 정도였다. 마지막 타석에 등장한 신조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3구 삼진을 당했는데 주니치 포수 타니시게는 “울지마라. 모두 직구만 던지게 할거야.”라는 말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훗날 전해지고 있다. 신조는 야구의 본질성, 즉 온전히 야구에만 미쳐있던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팬들을 사랑했고, 자신의 기량을 스스로 인정했으며 팬들이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실천한 선수다. 아직도 신조 츠요시 하면 ‘괴짜’ 이미지가 뿌리깊이 박혀 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스포엔터테인먼트를 최초로 보여준 선수가 아니였나 싶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일본통신] 日서 이대호의 몸값이 폭등한 이유

    [일본통신] 日서 이대호의 몸값이 폭등한 이유

    이례적인 일이었다. 오릭스 버팔로스의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그리고 무라야마 요시오 구단 본부장이 한국을 직접 찾아 이대호의 입단을 확정지었다. 전례를 찾아봐도 이와 같은 파격적인 선수 영입은 없었다. 그만큼 이대호에 대한 기대치를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이대호가 2년간 총액 7억엔(105억원)의 초대형 계약을 맺고 오릭스 선수가 됐다. 오카다 감독은 6일 부산 웨스틴조선비치호텔에서 진행된 이대호의 기자회견에 직접 참석했다. 오카다 감독은 이자리에서 “우타자를 영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올해는 실패했다. 가장 훌륭한 선수인 이대호를 영입하게 되었으니 우리 팀은 내년시즌 우승할수 있다고 구단에 공언할수 있게 됐다.”며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일본프로야구는 오릭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우타거포형 선수가 드문 편이다. 오른손잡이 선수를 우투좌타로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다 보니 펀치력 있는 우타자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알렉스 라미레즈(전 요미우리), 아롬 발디리스(오릭스), 호세 페르난데스(세이부), 알렉스 카브레라(소프트뱅크)와 같이 한방 능력을 갖춘 외국인 타자들이 모두 우타자인 것은 그만큼 일본 토종 선수들 가운데 거포형 우타자가 드물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비록 올 시즌엔 공인구 문제로 인해 투고타저 바람이 거세 예년처럼 30홈런 타자가 거의 사라졌지만 외국인 타자들이 홈런과 같은 장타력 부문에선 늘 상위권을 차지했었다. 그 선수들이 바로 우타자들이다. 일본 토종 선수들이라 해도 우타거포가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무라타 슈이치(31. 요코하마)나 쿠리하라 켄타(29. 히로시마)가 그나마 우타 거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평가하면 최근 몇년간 기대 이하의 홈런 생산 능력을 보여준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올해 건진 수확이라면 마츠다 노부히로(소프트뱅크)가 25개의 홈런으로 리그 2위에 오른 것이 가뭄에 단비와 같은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대호에 대한 값어치는 자연적으로 폭등할수 밖에 없다. 오카다 감독의 말처럼 특히 오릭스는 올해 우타자 부족으로 중요 고비고비 때마다 경기를 어렵게 풀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중심타자 T-오카다를 비롯해 주장인 고토 미츠타카, 사카구치 토모타카 등 팀의 간판타자들이 모두 좌타자들이다. 올해 한점차 승부가 빈번했던 리그 특성상 박빙의 상황에서 좌타자가 등장하면 상대팀에서 좌투수를 마운드에 올리는 패턴으로 위기를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오릭스 팀 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항간에선 이대호의 일본 도전이 긍정적인 요소만 있는게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특히 일본 야구팬들은 이대호가 일본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들 가운데 역대 최고 계약조건으로 오릭스에 입단하게 된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대호 이전에 일본에 진출했던 이범호(KIA), 이병규(LG), 김태균(한화)처럼 한국을 대표하던 간판타자들이 별다른 성적을 손에 쥐지 못한채 쓸쓸히 귀국했던 전례를 거론하고 있다. 특히 이대호는 타격 외에는 수비나 주루에서 별다른 메리트가 없다는 것도 불안한 시선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이대호가 보여줄 것은 방망이 뿐이기에 이전에 진출했던 한국인 타자들 보다 훨씬 뛰어난 공격력을 보여줘야 할 이유가 있는 셈이다. 특히 오릭스가 소속된 퍼시픽리그는 센트럴리그에 비해 수준 높은 투수들이 많고 전체적인 리그 수준 역시 더 낫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떻게 보면 이대호의 일본진출은 한국 최고의 타자라는 타이틀을 안고 도전하는 것이기에 그만큼 어깨가 무겁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만약 이대호마저 실패한다면 앞으로 한국타자들의 일본진출은 힘들어 질수 밖에 없기에 일본에서 바라보는 한국타자들의 기준점은 이대호가 마지막이 될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대호의 포지션은 1루가 유력하다. 전문가들은 이대호를 가리켜 타격 매커니즘이 완벽하다고 평가한다. 약점이 거의 없는 타격폼을 지녔기에 일본에서의 성공 역시 이전에 진출했던 한국인 선수들 보다 나을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으로 많다. 하지만 완벽한 타격 매커니즘과 타격폼은 상위리그인 일본에서는 또다른 문제다. 도전한다는 마음 가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도중에 힘들면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그리고 이제 전성기에 접어든 그의 나이대를 감안하면 희망을 가져도 충분할듯 싶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일본통신] 삼성 아시아시리즈 우승의 역사적 의미

    [일본통신] 삼성 아시아시리즈 우승의 역사적 의미

    삼성 라이온즈가 2011 아시아시리즈 결승에서 일본의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5-3으로 꺾고 한국팀으로는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예선전에서 0-9 영봉패를 당했던 팀이 맞느냐 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결승에서 보여준 삼성의 저력은 대단했다. 선취점은 소프트뱅크의 몫이었다. 소프트뱅크는 1회말 공격에서 이날 4번타자로 나선 마츠다 노부히로가 1타점 2루타를 치며 선취점을 뽑았다. 하지만 이날 선발로 나온 장원삼은 비록 1회부터 실점을 허용하긴 했지만 이후 안정감 있는 피칭으로 마운드를 지켰고 삼성 타선은 기다렸다는 듯 5회초에 방망이가 폭발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5회초 삼성은 1사후 이정식이 안타를 치며 물꼬를 텄다. 김상수의 몸에 맞는 공으로 1사 1,2루 찬스를 잡은 삼성은 배영섭의 볼넷으로 1사 만루의 황금 찬스를 잡았다. 이후 정형식이 역전 2타점 적시타, 박석민의 좌중간 1타점 2루타와 강봉규의 2타점 좌전안타로 단숨에 5-1 스코어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소프트뱅크는 8회말 공격에서 삼성의 바뀐 투수 권혁에게 카와사키 무네노리와 혼다 유이치가 연속안타를 쳐내며 반격의 실마리를 잡는다. 이 순간이 승부처라고 판단한 류중일 감독은 곧바로 ‘끝판대장’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리는 초강수로 맞불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오승환은 올라오자 마자 올 시즌 퍼시픽리그 타격 1위에 오른 우치카와 세이치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무사 만루의 위기를 자초했다. 오승환은 다음타자 마츠다를 병살타로 처리하며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았지만 1실점을 허용했고 하세가와 유야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며 한점을 더 내줬다. 스코어 5-3. 9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오승환은 이마미야와 호소카와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마지막 타자 카와사키를 내야 땅볼로 처리하며 치열했던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삼성은 선발 장원삼이 6.1이닝동안 1실점(5피안타, 3탈삼진)으로 호투했고 타선이 5회초에 집중력을 발휘하며 5점을 얻은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한편 삼성 박석민은 평소 국내에서 보여준 720도 트리플악셀 ‘발레스윙’을 국제대회에서까지 유감없이 선보이며 야구팬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시즌이 끝난 야구팬들에게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한 셈이다. 삼성 우승의 역사적인 의미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삼성은 그동안 난공불락과 같았던 일본 프로야구 챔피언팀을 최초로 물리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대회였다. 올해 압도적인 투타전력을 자랑했던 소프트뱅크는 이번 대회가 시작 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승은 떼논 당상이란 평가를 들을 정도로 최강의 팀이었다. 하지만 야구는 역시 의외성과 함께 해봐야 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준 대회였을 뿐이다. 그동안 아시아시리즈에서 한국은 2005년 첫 대회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에게 삼성이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고 2006년에는 대만의 라뉴 베어스(현 라미고 몽키스)와 니혼햄에게 패하며 3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었다. 2년연속 이 대회에 참가했던 팀은 삼성이었다. 이어 2007년 SK의 준우승, 2008년 3위(SK)의 성적을 기록한 한국은 다섯번째 출전 끝에 드디어 삼성이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특히 이번 삼성의 우승은 예선에서 소프트뱅크에게 0-9 참패를 당했던 걸 멋지게 설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우승이다. 예선전때만 하더라도 한일 양국의 야구수준 차이는 논외로 치더라도 전력 자체가 상당히 크다고 느껴졌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단기전은 아무도 모른다는 걸 여실히 증명하며 타선의 집중력과 선발 장원삼의 호투로 아시아 정상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다소 맥빠진 대회라는 평가와 함께 시기상의 문제점 역시 도출된 대회임엔 분명했다. 이번 대회에서 삼성과 소프트뱅크는 사실상 1.5군 정도의 팀 전력으로 대회에 임했다. 삼성은 차우찬, 윤성환을 비롯해 외국인 선수 2명이 대회에 불참했고 소프트뱅크는 좌완 원투펀치인 와다 츠요시와 스기우치 토시야를 비롯, 베테랑 코쿠보 히로키와 주포 마츠나카 노부히코 등이 빠졌다. 특히 철벽불펜을 자랑했던 브라이언 파르켄보그와 같은 선수들이 불참하며 베스트 멤버로 맞대결을 원했던 한일 양국의 야구팬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주전 선수 몇명이 빠지긴 했지만 타선 만큼은 양팀 모두 올 시즌 1군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 대부분 참가했다는 점에선 결코 부족함이 없는 대회이긴 했다. 아시아시리즈에 대해 일각에서 거론되는 시기상의 문제점 역시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정규시즌을 모두 끝내고 포스트시즌까지 치른 상황에서 대회가 열리다 보니 외국인 선수들은 일찌감치 짐을 싸 본국으로 출국하는, 그러다 보니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들이 불참을 선언하며 1군vs1군 끼리의 맞대결이 이뤄질수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아시아시리즈가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의 대회가 되려면 전년도 우승팀끼리 다음 시즌이 열리기 전에 맞붙어 자웅을 겨뤄 보는 것도 한 방편일수도 있다. 동계훈련을 통해 몸을 만든 팀끼리 시즌이 시작되기전 맞붙는다면 최상의 몸상태와 컨디션으로 1군 주전들의 이탈없이 대회를 치를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 우승을 차지한 삼성은 어느 팀이 참가하더라도 우승 할수 있다는 일본의 콧대를 꺾었다는 점에서 뜻깊은 대회였다. 야구뿐만 아니라 어느 종목을 막론하고 우승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손쉽게 얻을수 있는 우승컵은 없다는 뜻으로 삼성 라이온즈는 아시아 챔피언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한편 이번 대회 MVP는 25일 호주(퍼스 히트)와의 예선, 그리고 소프트뱅크와의 결승전에서 호투를 보여준 장원삼이 수상했고 삼성은 우승 상금으로 1500만 대만달러(약 5억 5천만원)를 거머 쥐며 치열하게 달려왔던 올 시즌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일본통신] 오릭스, 이대호 영입 신중모드 돌입 이유

    [일본통신] 오릭스, 이대호 영입 신중모드 돌입 이유

    올 시즌을 끝으로 FA(자유계약선수)가 된 이대호는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로의 이적이 거의 확정된 상황이다. 2년간 73억원 수준의 몸값이 예상됐던 이대호는 2년간 7억엔(한화 105억원)의 계약을 오릭스로부터 전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균의 전례(3년간 90억원)와 비춰보면 파격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오릭스는 이대호 영입에 있어서 상당히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 데일리스포츠는 “이대호 영입에 있어 신중함을 유지, 하지만 계약을 진행 하는데에는 변함이 없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오릭스 구단 본부장인 무라야마의 입을 통해서 나온 말이다. 오릭스는 이대호가 롯데와의 협상이 결렬 될 때가지만 해도 당장이라도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현재는 신중모드로 돌입하고 있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첫째는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오릭스가 이대호의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그가 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오릭스 타선은 좌타자 일색으로 한점차 승부가 많았던 올 시즌 찬스에서 상대팀의 좌완 투수에게 번번히 고전했다. 주장인 고토 미츠타카를 위시해 4번타자 T-오카다 등 중심타선에 좌타선이 즐비하다. 올 시즌 전력 보강의 첫번째 과제로 우타자 영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오카다 아키노부(59) 감독의 의중은 확고하다. 하지만 이대호나 구단 입장에선 이대호와의 몸값 협상 과정 중 만약 영입이 무산된다면 돌이킬수 없는 상황이 된다. 국내 언론에서는 이대호의 오릭스 입단이 확정된 것처럼 보도를 하지만 오릭스 입장에선 만약의 사태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오릭스, 특히 일본야구는 선수를 영입하는데 있어 세부사항은 비밀로 하는 경우가 많아 특히 더 신중할수 밖에 없다. 두번째는 국내에서 일본프로야구를 중계하는 텔레비젼 시청률과 방송사와의 계약 문제 때문이다. 올해 이승엽과 박찬호의 중계를 맡았던 SBSCNBC는 이 두선수의 부진으로 인해 당초 기대했던 시청률에 미치지 못했다. 케이블 TV의 국내프로야구 시청률이 최고 3%를 넘는 경기가 많았던 올해 한국프로야구에 비해 1%대에도 미치지 못했던 일본프로야구 중계를 맡았던 SBSCNBC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고민이 될수 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지난해 이승엽과 박찬호의 중계는 국내팬들에게 외면을 받았던게 사실이다. 이대호의 몸값은 오릭스 구단에서 모두 지불하지 않는다는 건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아직 국내에서 발송될 중계 채널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오릭스 역시 중계를 할 채널이 있어야 이대호와의 협상이 좀 더 수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대호는 이승엽과 박찬호와는 경우가 달라 중계권 협상에 있어선 별다른 문제가 없을거란 전망도 있다. 이승엽은 요미우리 시절 마지막 3년동안 매우 부진했다. 요미우리와의 계약이 끝난 후 오갈데가 없어진 이승엽을 선택한 건 오릭스였고, 부활을 기대했던 팬들에겐 시즌 초반부터 부진했던 것이 이후 시청률 확보가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다. 박찬호 역시 5월말 부진으로 2군으로 강등됐었고 이후 1군 진입을 노렸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 끝까지 얼굴을 볼수 없었던 것도 시청률 부진에 있어 한몫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대호는 경우가 다르다. 김태균이 실패하고 돌아온 시점에서 이제 이대호마저 실패를 하게 된다면 앞으로 일본에서 한국타자들을 선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기에 팬들은 이대호라면 과연 일본에서 어느정도 통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수 밖에 없어 올해 보다는 시청률은 더 확보될것이란 예상은 충분하다. 이대호가 오릭스와의 계약이 확정된다면 그것은 곧 국내 케이블 TV와의 협상도 무난히 타결됐다는 방증이기에 오릭스 입장에선 좀 더 신중을 기할수 밖에 없다는 뜻으로도 풀이할수 있다. 오릭스가 제시한 이대호의 몸값을 계산하면, 이대호는 연간 최대 3억 5천만엔(52억 4000만원)을 받는다. 오릭스로부터 2년간 7억엔(105억원)을 제시 받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순수연봉은 2억엔이다. 계약금이 1억 5천만엔이기에 최소 2년간 일본에서 5억 5천만엔을 벌수 있다. 나머지 옵션은 이대호의 성적 여하에 따라 금액이 결정되기에 이대호 입장에서도 최선을 다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이대호의 3억 5천만엔은 일본선수들의 몸값과 비교해 봐도 높은 금액이다. 시즌이 끝나 유동적이긴 하지만 올 시즌을 기준으로 하면 일본내 11위에 해당된다. 또한 이 금액을 일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와 비교하면 이대호 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는 알렉스 라미레즈(전 요미우리)와 임창용(야쿠르트) 단 두명 뿐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광주 2만 2000석 규모 새 야구장 24일 착공

    광주 2만 2000석 규모 새 야구장 24일 착공

    광주 무등경기장에 새 야구장(조감도)이 건립된다. 1965년 설치된 축구장이 헐리고, 그 자리에 들어서는 2만 2000석 규모의 개방형 야구장이다. 광주시는 24일 오후 2시 무등경기장 종합경기장에서 강운태 시장과 기관단체장, 기아자동차, KBO 관계자,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야구장 기공식을 갖는다고 22일 밝혔다. 국비 298억원과 시비 396억원, 프로야구 KIA 구단이 내 놓은 300억원 등 모두 994억원이 투입돼 2013년 말 완공된다. 현대건설이 턴키(설계·시공 일괄) 방식으로 건설을 맡았다. 외야석 일부에는 스탠드를 설치하지 않고 땅에 잔디를 깔아 야구팬들이 편안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됐다. 주차장은 경기장 구역 1150면과 주변 566면이다. 새 야구장은 광주가 2015년 개최 예정인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이하 U-대회)를 앞두고 체육시설 개·보수를 명분으로 국비 지원을 이끌어내면서 속도를 더했다. 강 시장은 지난해 11월 브뤼셀의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을 방문해 야구를 2015년 유니버시아드 시범종목으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고, FISU 측이 이를 받아들였다. 강 시장은 이어 정부에 U-대회용 야구장에 대한 지원을 요구, 정부는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 토토복권) 기금 298억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기존 야구장(1만 2000석)은 새 야구장이 들어서는 2014년 이후부터 생활체육 공간으로 활용된다. 광주시민들의 애환이 서린 무등경기장 주 경기장은 46년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야구장 기공식 때 주경기장(축구장) 철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무등경기장은 1965년 제46회 전국체전을 앞두고 시민성금과 국비 등 당시 1억 2000여만원을 들여 축구장과 야구장 등이 건립되면서 탄생했다. 당초 광주공설운동장으로 불렸으나, 1977년 제58회 전국체전 때부터 현재의 이름이 사용됐다. 준공 첫 해 전국체전 개회식 때는 10만여명의 구름 관중이 몰리면서 14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의 대규모 군중 집회와 반공 궐기대회, 고교생들의 집단체조(매스게임) 시연장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 시민은 “광주의 역사와 정치, 체육 등 역사가 깃든 무등경기장이 헐리게 돼 아쉽다.”며 “새로 짓는 야구장은 광주를 상징하는 명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새 야구장의 명칭은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구단이 짓기도록 합의됐다. 시는 새 야구장 정문에 성금 기탁자의 이름과 소망 등이 새겨진 바닥 기념돌을 설치하기로 했다. KIA 구단 야구박물관도 만들어진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일본통신] 다리빗슈 뒤잇는 日에이스 타나카 마사히로

    [일본통신] 다리빗슈 뒤잇는 日에이스 타나카 마사히로

    일본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에이스 타나카 마사히로(23)가 2011 시즌 최고 투수의 영예인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수상했다. 타나카는 14일 열린 사와무라상 발표에서 5명의 심사위원 투표에서 3표를 획득하며 라이벌 다르빗슈 유(25. 니혼햄)를 근소하게 따돌리고 투수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타나카의 이번 사와무라상 수상은 일찌감치 예정돼 있던 일이었다. 올해 프로데뷔 후 최고의 시즌과 압도적인 성적은 소속팀의 부진(리그 5위)에도 불구하고 단연 돋보였기 때문이다. 올 시즌 타나카는 27경기에 출전해 다승 1위(19승) 평균자책점 1위(1.27) 승률 1위(.792)를 비롯해 완투 1위(14회) 완봉 1위(6회) 무사사구 경기 1위(4회), 그리고 사와무라상까지 수상하며 비공식 타이틀 포함 7관왕을 차지했다. 사와무라상은 매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친 투수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사와무라상을 받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기준은 7가지다. 경기 출전수 25경기 이상, 15승 이상, 평균자책점 2.50 이하, 투구 이닝수 200이닝 이상, 10완투 이상, 150탈삼진 이상, 승률 6할 이상이다. 타나카는 7가지의 수상 자격을 모두 채웠다. 반면 타나카와 치열한 경쟁을 펼친 다르빗슈는 수상 자격을 모두 채웠지만 이닝(232이닝)과 탈삼진(276개) 타이틀만 획득한채 사와무라상 수상에는 실패했다. 올해 타나카의 사와무라상은 메이저리그 진출이 예상되는 다르빗슈 뒤를 잇는 ‘일본최고 에이스’가 누구인가를 여실히 증명해줬다. 이미 2007년 퍼시픽리그 신인왕을 차지한 바 있는 타나카는 프로 입단때부터 ‘될성 부른 떡잎’이었다. 타나카하면 2006년 코시엔 대회를 먼저 떠올리는 팬들이 많다. 당시 코시엔 결승전은 타나카가 소속된 토마코마이 고교와 사이토 유키의 와세다 실업고의 대결. 3회부터 출격한 타나카는 연장 15회까지 1실점 호투를 기록하지만 사이토는 15회 동안 1실점의 괴력투를 선보이며 결국 1-1 무승부 기록해 다음날 재경기가 펼쳐진다. 재경기에서 타나카는 1회부터 마운드에 오르지만 결국 3-4로 패하며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이날 경기 마지막 타자 타나카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투수가 사이토였기에 더더욱 화제를 모았던 경기였는데 당시 이 경기는 2006년 일본최고의 명승부로 불려졌음은 물론 아직까지도 많은 야구팬들은 88회 코시엔 결승전을 잊지 못하고 있다. 타나카는 마쓰자카가 가지고 있던 고교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429개로 늘리며 그해 말 4개팀의 치열한 입단 경쟁 끝에 라쿠텐 유니폼을 입게된다. 2007년 타나카는 고졸신인으로서는 역대 15번째로 완봉승(대 주니치전)을 기록하는 선수가 됐으며 11승 7패 평균자책점 3.82의 성적으로 퍼시픽리그 신인왕에 올랐다. 186.1이닝을 던지면서 볼넷을 단 68개만을 허용할 정도로 신인답지 않는 빼어난 제구력과 배짱을 과시한 루키시즌이기도 했다. 이해 타나카의 두자리수 승리는 고졸루키로서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당시 세이부) 이후 두번째 기록이다. 노무라 카츠야 전 라쿠텐 감독은 타나카를 ‘신의 아이’로 불렀다. 위기상황에서 절대로 얼굴빛이 변하지 않는 마인드와 두둑한 배짱, 전타석에서 안타를 허용했던 타자에게 똑같은 코스로 공을 던져 삼진으로 돌려 세울 정도로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자랑한다. 150km를 상회하는 포심 패스트볼과 세로로 떨어지는 칼날같은 슬라이더는 그의 전매특허중 하나다. 타나카는 2009년 열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당시 최연소(21세)로 국가대표로 뽑혔는데 언젠가는 일본최고 투수가 될것이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올 시즌 그 정점을 찍었다. 수상 소감에서 타나카는 올해 자신의 달라진 원인중 하나를 ‘컨트롤’로 꼽았다. 물론 저 반발력 공인구의 혜택도 있었지만 올해 타나카는 226.1이닝을 던지며 4사구(볼넷+몸에 맞는 공)를 단 32개만 허용할 정도로 빼어난 제구력을 과시했다. 이것은 평균 7이닝당 1개꼴 밖에 되지 않은 수치로 프로 1년차때 리그 최다 4사구(68개) 기록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다. 타나카는 올해가 겨우 프로 5년차다. 이미 팀 선배 이와쿠마 히사시(30)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고 지난해와는 달리 이와쿠마의 빅리그 입성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올 시즌 실질적인 팀 에이스 역할을 했던 타나카는 이제 소속팀 뿐만 아니라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로도 우뚝서며 앞으로 그의 손으로 써내려 갈 기록들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일본통신] 와타나베 둘러싼 요미우리 최악의 내분 왜?

    [일본통신] 와타나베 둘러싼 요미우리 최악의 내분 왜?

    올해 3월,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사회가 한바탕 홍역을 치른바 있다. 대지진의 피해는 아직도 방사능 문제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기에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안할수 밖에 없다. 당초 올 시즌 일본프로야구 개막일은 3월 25일이었다. 하지만 3월 11일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개막일은 4월로 미뤄졌고 당시 일본프로야구 선수회의 강력한 요청으로 양리그 모두 4월 12일에 개막 경기를 치를수 있었다. 그렇지만 3월 25일로 예정됐던 개막일을 앞두고 지진때문에 개막일을 연기하자는 선수회와 마찰을 일으킨 인물이 있다. 바로 요미우리 신문의 와타나베 쓰네오(85) 회장이다. 당시 와타나베는 퍼시픽리그는 개막일을 연기 하되 센트럴리그는 예정대로(3월 25일) 개막전을 치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에 반기를 든 일본프로야구 선수회 회장인 아라이 타카히로(한신)는 “지진 피해가 확산 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막일을 예정대로 치르는게 합당한 일인지 의구심이 든다.” 며 ”선수회가 개막일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받아 들이지 않는 점은 유감” 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만약 일본이 아닌 한국이었다면 아라이 회장처럼 ‘유감’ 정도의 아쉬운 입장표명으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가 일본야구를 손에 쥔채 좌지우지 하는 와타나베 회장이었기에 아라이의 유감표명은 어떠한 의미에서 굉장한 반기(?)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와타나베를 상대로 이정도의 유감표명도 전례를 감안하면 큰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와타나베가 주장한 센트럴리그의 3월 25일 개막전은 야구팬들의 여론에 힘입어 4월 12일로 확정 발표되며 논란은 일단락됐다. 만약 한국 프로야구 팀 가운데 어느 구단 수뇌부가 ‘지금 감독이 5년간 감독직을 수행하고 지금 현역에 있는 모 선수가 은퇴 후 그 자리(감독)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 팀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정서로 봤을때 쉽게 납득할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거침없이 내뱉는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와타나베 회장이다. 실제로 와타나베는 2008 시즌 전 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라 타츠노리 현 감독이 5-6년 정도 감독을 하고 그 이후에는 1번타자(당시) 타카하시 요시노부가 그 대통을 잇기 바란다.”며 아직 현역선수인 타카하시의 미래 보장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 발언이 농담이 아닌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와타나베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와타나베의 말 한마디는 일본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꿔 버릴 정도의 대단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요미우리 구단으로만 한정한다면 타카하시의 차기 감독 언급은 ‘순혈주의’에 입각한 발언중 하나다. 요미우리는 양리그가 시행된 1950년부터 지금까지 순수 요미우리 혈통이 아닌 사람이 감독직을 맡은 경우가 단 한차례도 없는 구단이다. 타카하시의 차기 감독 발언 역시 타카하시가 도쿄 명문인 게이오 대학 출신이고 지금 감독인 하라가 두번씩이나(2002-2003, 2006-현재) 감독직을 수행할수 있었던 것도 요미우리의 프랜차이즈 스타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와타나베 회장의 영향력이 요미우리 구단에만 미치는게 아니다. 요미우리는 2007년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작 일본시리즈는 정규시즌 2위팀인 주니치가 올라갔다. 일본의 포스트시즌(CS)제도가 낳은 모순이 현실이 되자 곧바로 요미우리는 2008 시즌을 앞두고 포스트시즌 제도를 손본다. CS 파이널 스테이지는 무조건 1위(정규시즌 우승팀)팀 홈에서 경기를 치뤄야 하며 1위팀에게 1승 어드밴티지(6전 4선승제)를 줘 실질적으로 1위팀은 3승만 하면 일본시리즈에 올라가게끔 제도를 바꾼 것이다. 이것은 센트럴리그의 영원한 우승후보 그리고 항상 우승권 전력인 요미우리가 2007년 파이널 스테이지(당시 명칭은 클라이맥스 스테이지2)에서 주니치에게 3연패(당시 5전 3선승제)를 당하며 일본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자 이미 전 시즌에 확정된 포스트시즌 제도를 1년만에 또다시 바꾼 것이다. 이러한 포스트시즌 제도는 일본야구에서 요미우리가 차지하는 영향력, 그리고 깊이 들어가면 와타나베 회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와타나베 회장은 ‘우익의 거두’ ‘밤의 대통령’과 같은 수식어는 물론 2007년에 자민당의 후쿠다와 민주당의 오자와의 밀실야합 추진했던 인물이다. 이러한 사람이 수십년동안 일본야구를 자신의 발 아래 두며 아직까지도 건재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할뿐이다. 올해 요미우리는 간신히 정규시즌 3위를 차지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야쿠르트와의 클라이맥스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패하며 시즌을 종료했다. 우승이 아니면 실패한 시즌으로 규정하는 와타나베 회장의 심기가 편할리 없다. 와타나베 입에서 뭔가 특단의 조치가 떨어질 것이란 예상은 자명한 사실. 하지만 와타나베 회장에게 반기를 든 인물이 나타났다. 다름 아닌 키요타케 히데토시 요미우리 구단 대표겸 단장이다. 사건은 11일 키요타케 대표의 단독 기자회견장이었다. 키요타케 대표는 “내년시즌 1군 코치를 선정하는데 있어 이미 와타나베 회장에게 시즌 중 보고를 했지만 이제와서 나는(와타나베) 그런 보고를 받은일이 없다라고 한다.” 며 회장 마음대로 구단을 좌지우지 하는 것에 울분을 토했다. 키요타케 대표의 기자회견 내용중엔 와타나베를 가리켜 ‘부당한 권력자’ ‘프로야구와 요미우리를 사유화 한다’ 등 거침없는 발언도 쏟아졌다. 이번 키요타케 대표의 기자회견은 보기에 따라서는 구단 대표로서 할수 있는게 거의 없다는 개인의 억울함(?)과 오랫동안 권력을 누려온 그리고 현장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와타나베 회장에 대한 따끔한 일침으로도 볼수 있다. 이미 요미우리는 내분이 본격화 됐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간에 한바탕 홍역속에서 자유롭지 못할듯 싶다. 현장은 감독이 지휘하고 단장은 모자란 부분에 있어 지원하는 역할이 기본이다. 하지만 요미우리는 시즌이 끝나면 와타나베 회장에게 감독이 직접 찾아가 시즌 보고를 한다거나 선수수급에 있어서도(외국인 선수 영입에 관해선 키요타케 대표) 대표에게 일임하지 않고 와타나베 회장이 간섭하는 일이 빈번하다. 얼마전 와타나베 회장은 요미우리에서 탈퇴 한 외국인 선수 알렉스 라미레즈에게 “수비가 나쁘다.” 며 결별을 통보했다. 물론 이러한 말은 누구라도 할수 있다. 하지만 선수에 대한 평가를 언론을 통해, 그것도 회장이란 사람이 선수의 기량을 직접 거론하는 것은 우리 기준으론 보기 힘든 일이다. 와타나베 회장이 1군 주임코치로 영입하고자 하는 인물은 에가와 타카시(58)다. 일부에선 에가와가 훗날 감독직에 오를것이란 의견을 내비치는 곳도 있다. 하라 감독이 물러나기엔 타카하시가 아직 현역에서 은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2년간 기대이하의 성적을 남긴 요미우리는 주전타자들의 노쇠화가 새로운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 터진 키요타케 대표의 반기가 뭘 의미하는지 그리고 정말로 세대교체가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했으면 싶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야구도 비즈니스 오직 승리를 향한 ‘머니볼’

    야구도 비즈니스 오직 승리를 향한 ‘머니볼’

    미국 월스트리트 채권중개인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이 영화화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의아했다. 미 프로야구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만년 꼴찌에서 가을 야구의 단골손님으로 끌어올린 빌리 빈 단장의 야구철학을 꼼꼼하게 취재한 ‘머니볼’은 야구광에게는 바이블(성경)이나 다름없다. 단장과 감독의 힘겨루기, 단장의 전화 한 통으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거나 짐을 꾸리는 선수들, 산전수전 다 겪은 스카우트들의 맥빠진 농담 속에 진행되는 신인 드래프트의 이면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한 보따리다. 하지만 영화화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경제·경영서로 분류되는 원작 자체가 스포츠 영화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 전성기를 훌쩍 지난 노장의 눈물겨운 도전(‘로키’)도 없고, 비인기 종목·비주류 인생의 감동 실화(‘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국가대표’)도 없다. ‘머니볼’에는 한 해 1억 달러 이상을 쏟아붓는 재벌구단 뉴욕 양키스에 맞서 4000만 달러 남짓한 돈으로 팀을 꾸려야 하는 영세구단 오클랜드의 단장 빌리 빈과 어딘가 부족한 선수들이 존재한다. 빈은 경기기록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하고, 평가절하된 선수들을 싼값에 모으는 저비용·고효율의 ‘머니볼 이론’을 리그에 처음 도입한 인물이다. 빈 이전의 단장들은 홈런타자와 강속구 투수, 도루왕에 혹했다. 반면 빈은 볼넷을 골라내는 선구안과 상대 투수로부터 많은 공을 던지도록 유도하는 인내심에 더 점수를 줬다. 확률적으로 득점 가능성이 크기 때문. 거들떠보지 않던 선수들을 발탁한다고 해서 빈과 선수 사이에 감동적인 관계를 기대하면 오산이다. 승리를 위한 비즈니스일 뿐. 실제로 빈은 선수들과 사적인 만남을 극도로 꺼렸고, 코치진이나 선수들과 충돌도 잦았다. ‘머니볼’을 영화로 만들 때 또 하나의 위험요인은 기승전결이 없다는 것. 421쪽짜리(번역본 기준) 원작은 야구팬에겐 흥미진진할지 모르지만, 일반 독자들이 몰입하기에는 까다롭다. 빈의 야구철학에 영감을 불어넣은 빌 제임스의 야구통계 이론은 제쳐놓더라도 출루율(혹은 장타율)과 타율, 득점과 타점, 수비 등 야구통계의 허와 실에 대한 논쟁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제작사의 전략은 영리했다. 까다롭고, 높낮이가 평탄한 이야기를 엮는데 능수능란한 아론 소킨(‘소셜 네트워크’ ‘어 퓨 굿맨’)과 스티븐 자일리언(‘쉰들러리스트’ ‘갱스 오브 뉴욕’ ‘아메리칸 갱스터’)의 탄탄한 각본을 데뷔작 ‘카포티’(2005)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베넷 밀러에게 맡겼다. 복잡한 야구통계·이론을 걷어내는 대신, 야구판의 ‘꼰대’들에 맞서 구단 운영의 룰을 바꿔놓은 혁신가 빈에게 철저하게 초점을 맞춘 것이 주효했다. 야구 룰을 모르더라도 영화에 빠져들기란 어렵지 않다. 영화는 2002년 시즌을 앞두고 절망에 빠진 오클랜드에서 시작된다. 제이슨 지암비와 자니 데이먼, 제이슨 이스링하우젠 등 투타의 핵을 부자 구단에 빼앗긴 것. 빈 단장과 예일대 출신 분석가 피터 브랜드(오클랜드에서 빈을 보좌한 실제 인물은 하버드대 경제학과 출신 폴 디포디스타다. 훗날 LA 다저스 단장을 지냈다)는 자신들의 이론에 맞춰 빠져나간 선수들을 메울 대체재를 물색한다. 사생활이 문란해서, 폼이 우스꽝스러워, 나이가 많거나 부상 탓에 버려진 선수들을 싼값에 모은 빈 단장에게 언론과 팬들은 비난을 퍼붓는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난관을 뚫고 메이저리그 사상 누구도 이루지 못한 20연승 신화를 쌓아올린다. 선수로는 실패했지만, ‘야구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릴 만큼 역사를 바꿔놓은 빈 단장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브래드 피트의 카리스마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일부 평론가들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감이라고도 칭송했다. 브랜드 역을 맡은 요나 힐과 아트 하우 감독으로 분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역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옥에 티도 눈에 띈다. 전문가 감수를 거치지 않은 탓인지 ‘대주자’를 ‘구원주자’로 어이없게 번역했다. 북미에서는 지난 9월에 개봉해 6796만 달러를 벌었다. 제작비가 5000만 달러이니 본전은 뽑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피트의 대사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돈다.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17일 개봉.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이승엽 “내년 국내로”

    이승엽 “내년 국내로”

    이승엽(35·오릭스)이 8년 일본 생활을 마치고 국내로 복귀한다. 이승엽은 19일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8년 동안 일본 생활을 돌아보며 이제는 됐다고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도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같은 날 일본 데일리스포츠는 인터넷판에서 “이승엽이 올 시즌을 끝으로 퇴단한다. 대신 오릭스는 한국 오른손 거포 이대호를 영입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승엽은 지난해 12월 오릭스와 1년 동안 연봉 1억 5000만 엔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 계약은 2년이었다. 내년 시즌까지 일본 잔류가 보장된 상황이었지만 한국행을 택했다. 이미 전조는 있었다. 오릭스와 계약하던 당시부터 “언젠가 삼성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었다. 스프링캠프를 시작하면서도 “더 늦기 전에 삼성 유니폼을 다시 입고 싶다.”고 말했다. 올 시즌 초 삼성 류중일 감독도 “이승엽 자리를 비워놓고 있겠다.”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국내 복귀를 결심할 거라곤 아무도 생각 못했다. 모두 오릭스와 계약이 끝나는 내년 시즌 이후를 복귀 시기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승엽은 이미 시즌 도중 국내 복귀를 마음먹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심을 굳힌 뒤 오래 기다렸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실행했다. 이승엽은 지난 18일 오릭스가 시즌 마지막 경기 소프트뱅크전에서 패해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뒤 곧바로 구단에 퇴단 의사를 밝혔다. 이승엽은 “시즌 중반, 피곤하다는 생각을 했다. 계약기간이 남았지만 오릭스가 이해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국내로 복귀하면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원칙적으로 이승엽은 프리에이전트(FA) 자격으로 일본에 진출했기 때문에 국내 모든 구단과 계약할 수 있다. 삼성은 우선협상권이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승엽을 받아들일 수 있는 팀은 삼성밖에 없어 보인다. 일단 몸값이 비싸다. 이승엽의 2003년 연봉은 6억 3000만원이었다. 이승엽을 영입하면 최대 28억 3500만원 보상금을 삼성에 지급해야 한다. 이승엽이 일본에서 10억원 이상 연봉을 받았다는 걸 감안하면 계약금과 연봉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줘야 한다. 30대 중반 이승엽에게 이 정도 투자를 할 구단은 삼성 말고는 없다. 이승엽 스스로도 친정팀 삼성 외에 다른 팀은 생각하지 않고 않다. 이승엽이 입고 싶어하는 건 ‘푸른 유니폼’이다. 삼성은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삼성 송삼봉 단장은 “이승엽은 당연히 우리 선수다. 때가 되면 협상 테이블을 차릴 것”이라고 했다. 이제 야구팬들은 곧 이승엽이 한국에서 뛰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프로야구] 윤석민·최형우 ‘스타탄생’… 600만 ‘관중시대’

    [프로야구] 윤석민·최형우 ‘스타탄생’… 600만 ‘관중시대’

    2011시즌 프로야구 정규시즌이 6일 막을 내렸다. 풍성하고 흥미로운 시즌이었다. 투타에서 새로운 스타가 최고 자리에 올랐다. KIA 윤석민이 투수 부문 4관왕에 등극했고 삼성 최형우가 홈런왕 등 3관왕을 차지했다. 초보 감독이 이끈 삼성과 롯데가 1위와 2위에 올랐다. 아무도 예상 못 했던 일이다. 사상 최초 600만 관중 시대도 열렸다. 지난해의 592만 8626명을 가볍게 넘겼고, 올 시즌 목표였던 663만명도 뛰어넘어 680만 9965명을 기록했다. 완연한 프로야구 전성기다. ●윤석민과 최형우 최고가 되다 그동안 윤석민은 2인자 위치였다. 한화 류현진과 SK 김광현에게 가렸다. 프로 데뷔 뒤 개인 타이틀은 지난 2008년 방어율(2.33)이 유일했다. 재능은 있었지만 항상 최고에 조금 못 미치는 투수였다. 2007년엔 잘 던졌지만 그해 최다 패(18패)를 기록했다. 지난 시즌엔 자해 소동 뒤 팀의 추락을 지켜봐야 했다. 시즌 막판, 연이은 사구로 공황장애를 겪기도 했다. 대체로 운이 없었고 가진 기량보다 성적이 안 나왔다. 올 시즌에 달라졌다. 다승(17승)-방어율(2.45)-삼진(178개)-승률(.773) 등 4부문을 휩쓸었다. 150㎞대 직구와 140㎞대 고속 슬라이더로 타자를 압도했다. 트리플크라운(다승·방어율·삼진)을 포함한 투수 4관왕은 20년 만의 기록이다. 해태 시절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이 1989~1991년 3년 연속 달성했다. 공격에선 최형우가 빛났다. 사연이 깊은 선수다. 2002년 삼성 입단 뒤 2005년 방출됐다. 2008년 삼성에 재입단했고 올 시즌 최고 타자 자리에 올랐다. 홈런(30개)-타점(118개)-장타율(.617) 등 3개 타이틀을 가져갔다. 지난 시즌, 공격 7관왕 롯데 이대호와 도루·득점을 제외한 공격 부문 타이틀을 양분했다. ●초보 감독과 기존 감독 명암이 엇갈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다. 삼성이 2006년 뒤 5년 만에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시즌 전, 전문가들 누구도 삼성을 우승 후보로 보지 않았다. 가까스로 4강에 오를 걸로 봤다. 그럴 만했다. 선동열 전 감독의 갑작스러운 낙마와 초보 류중일 감독의 부임. 불안 요소는 많았고 특별한 전력 보강은 없었다. 그러나 빗나갔다. 5월 한때 5위까지 내려갔지만 6월 초반 6연승했다. 그달 28일, 1위가 됐고, 후반기 초반에 선두자리를 굳혔다. 류 감독 특유의 ‘형님 리더십’이 통했다. 선수단 분위기가 끈끈해졌다. 기동력과 작전을 적절히 섞으면서 팀 타선의 효율성도 좋아졌다. 오승환의 부활도 보탬이 됐다. 롯데 양승호 감독도 시즌 초반 불안했다. 로이스터 전 감독을 잃은 롯데 팬들은 새 감독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6월까지 성적이 안 나면서 무관중 운동 시도까지 있었다. 초보 양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실책을 수정하고 팀을 제 궤도에 올렸다. 7~8월 대약진했고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반면 기존 SK 김성근 감독-두산 김경문 감독-LG 박종훈 감독은 그라운드를 떠났다. 재계약 문제로 구단과 엇갈리던 SK 김 감독은 8월 17일 시즌 종료 뒤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구단은 하루 뒤 김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6월 13일 성적 부진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LG 박 감독은 6일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프로야구 최고 스타는 야구팬 올 시즌 삼성 오승환은 아시아 최고기록 시즌 48세이브에 도전했다. 팬들은 6일 마지막 경기까지 스타의 새 기록 달성을 기원했다. 그러나 이날 세이브 기회는 오지 않았고 끝내 47세이브에 그쳤다. 오승환은 “세이브라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뭐니뭐니 해도 올 시즌 최고 스타는 팬들이었다. 올해 여름 날씨는 비와 무더위로 역대 최악이었다. 우천 취소 경기가 많았고, 제대로 경기를 즐길 환경이 안 됐다. 그런데도 600만을 넘어 700만 가까이 관중이 들어찼다. 프로야구의 새 역사를 열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선데이기자가 본 호므런왕 행크 아론

    선데이기자가 본 호므런왕 행크 아론

     위대한 백인(白人)의 신화는 과연 흑인에 의해 깨질까? 지금 미국은 호므런(홈런) 7백개를 친「행크·아론」얘기로 온통 들끓고 있다. 선수생활 21년 동안 모두 7백14개의 호므런을 날린 전설적인 선수「베이브·루드」의 위대한 기록이 조용하고 겸손한 한 흑인 선수에 의해 도전받고 있기 때문. 뜨거운 한여름의 스타디움을 더욱 뜨겁게 만든「행크·아론」이란 과연 어떤 사내일까?   지난 7월2일 밤 3시, 기자는 외야석까지 빽빽이 들어 찬 2만3천여명의 관중에 섞여 어틀랜터 스타디움에서 갑자기 터져 나오는 요란한 함성을 들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고작 3천명의 관중밖에 모이지 않던 어틀랜터 스타디움이지만 올해는 꼬박 2만 가까운 관중이 몰려든다. 실상 이 구장의 주인인「내셔널·리그」소속 프로야구 팀「어틀랜터·브레이브즈」는 12팀 중 8위로 그리 인기가 없는 팀. 2만여명의 관중은 오직「행크」흑인 선수 한 사람만을 보려고 모여드는 것.  관중의 함성은 두 종류다.『해머링·행크!』(쇠망치 행크) 하며 새로운 호므런을 기대하는 축이 있는가 하면『배드·행크』(악당 행크)라고 소리 지르며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지-』하는 야유를 보내는 축도 있다.  당자인「행크」는 말없이 조용히 타석에 들어선다. 6회말,「브레이브즈」는「마이크·럼」의「드리·런·호머」로「로스앤젤리스·다저스」를 5대4로 리드하고 있다. 1루엔 에러로 나간「에반스」가 서 있다.  「행크」는 열광하는 관중엔 아랑곳 없이 조용히 볼을 기다린다. 투 스트라익 원 볼에서 맞은 제4구는 인코스로 들어오는 드롭성의 약간 낮은 공.『와-』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일어섰다. 공은「레프트·펜스」를 넘고「브레이브즈」는 7대4로 리드. 이 호므런이「행크」의 선수 생활 통산 6백93번째였고 울해 들어 20번째의 것.  「행크」는 열광하는 관중들에게 두어번 점잖게 인사한 뒤 그대로 덕 아웃에 들어갔다. 매너가 점잖기로 소문난「행크」다왔다.  「헨리·루이스·아론」. 올해 39살인 이 흑인선수는 앨러배머주「모빌」이란 작은 마을 태생으로 키 6척, 몸무게 82kg의 알맞은 체구다.  「행크」란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선수는 올해로 프로야구 선수생활 20년째. 72년부터 74년까지 3년동안 60만불을 받기로 계약한 미국 프로야구계의 최고액 소득자이며 생애 통산 타율 3할1푼1리. 호므런 7백개, 장타(長打·2루타 이상)에선 1천3백72개로「루드」의 기록인 1천3백77개에 불과 5개 처져 있을 뿐이다.  신화적 영웅인「루드」는 선수 생활 21년 동안 모두 7백14개의 호므런을 때렸는데 이것은 한해 평균 34개의 홈런을 때렸다는 얘기다.  「행크」가 매스컴을 타기 시작한 건 70년 5월17일 통산 3천개의 안타를 기록하면서부터 였다. 다음 해 4월27일엔 호므런 6백개를 기록했고 72년 6월10일엔 앞서가던「윌리·메이스」를 앞지르고 홈런 6백49개를 기록,「루드」의 기록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리곤 지난 7월21일 어틀랜터 스타디움에서 다시 7백개째의 호므런을 날림으로써 이제 14개만 더 때리면『위대한 백인의 신화』를 깨어버릴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되자『검둥이』가『위대한 백인』을 뛰어 넘는 것을 싫어하는 일부 백인 야구팬들은「행크」가 배터 복스에 들어서면 야유를 보내기도 하고 심지어『죽여버린다』는 협박편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이런 일에 대해「행크」는 태연하다.  『나는 팬들의 협박편지보다는 상대방 투수와 신문 기자들에 더 신경을 쓴다. 투수가 내게 사구(四球)를 주어 걸려 보내면 호므런을 칠 수가 없고 신문 기자들은 공평하기 때문이다』고.  또 그는『내가 결코「루드」보다 더 위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을 따라 잡을 수 있을 뿐』이라고 겸손해 한다.  실제로 일부 야구 팬들은「행크」가 7백14개의 호므런을 때려도「루드」보다는 못하다고 얘기하고들 있는데 그 까닭인즉「루드」가 선수 생활의 첫 4년을「보스턴·레드·속스」의 투수로 보내 이동안 호므런 9개밖에 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만약 투수가 아니고 이때부터 타자로 나섰더라면 기록은 8백대에 가까와졌으리라는 얘기들이다.  어쨌든 야구 사상『가장 위대한 선수』이고『야구 기록사상 캐딜락』이라고 불리는 호므런 7백14개는「행크」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건 사실. 남은 관심은 올해 시즌에「행크」가 과연 이 목표를 이룰 것인가 하는 것.  『올해에 30개만 치면 만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내년에 11개만 더 치면 되니까』  「행크」가 올 시즌 오픈때 한 얘긴데 이미 7백개를 돌파, 14개를 남겼을 뿐이니까「행크」자신의 계획을 훨씬 앞지르고 있는 셈이다.「루드」는 34년에 7백7개를 기록했고 그 다음 해에 6개를 추가했다. 재미있는 것은 기록상의 비교다.「루드」가 7백개째의 호므런을 친 것이 34년 7월13일이고 「행크」는 73년 7월21일. 불과 7일이 늦었고 나이로는「행크」가 6개월 더 늙었다.  문제는「행크」의 건강인데 70~71년엔 무릎의 상처로 고전했으나 지금은 말끔히 나았고 체중도 71년에 89kg이던 것이 지금은 82kg으로 줄었다.  이 체중은「행크」가 처음「메이저·리그」에 출전하던 54년과 똑 같은 상태. 적어도 앞으로 2~3년은 더 현역 선수로 뛸 수 있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얘기다. 이런 건강 상태면「루드」의 기록을 깨는 것은 문제없고 과연 올 시즌에 깨느냐? 못깨느냐만 남았을 뿐.  검둥이 선수에 의해 남편의 기록이 도전받고 있는데 대해「루드」의 미망인은 태연하다.  『「행크」나 다른 사람이 남편의 기록을 뛰어넘어도 기억되는 건「베이브·루드」뿐예요. 첫번째니까요』  <어틀랜터=김창웅(金昌雄)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8월5일 제6권 31호 통권 제25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일본통신]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 올시즌 성적은?

    [일본통신]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 올시즌 성적은?

    2011 시즌, 일본 전역을 강타하며 프로에 입단했던 사이토 유키(23.니혼햄) 열풍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사이토에 대한 관심은 도를 넘어 집착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의 입단식엔 무려 8,000명의 팬들이 운집했음은 물론 현지방송은 무려 5시간 동안 생중계로 이 선수를 집중조명했을 정도다. 이뿐만 아니라 시즌 전 니혼햄의 동계훈련지인 오키나와엔 전국의 아줌마 팬들이 몰려드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다름 아닌 사이토를 보기 위해서였다. 사이토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니혼햄의 연고지인 홋카이도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 걸쳐 나타난 일종의 신드롬이었다. 특히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손수건 왕자’는 매스미디어가 좋아할만한 이슈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올 시즌 사이토의 성적은 인기와 비교해 어느 정도였을까. 루키시즌이란 점을 감안하면 실패도 성공도 아닌 그냥 평범한 수준이다. 사이토는 올 시즌 현재 5승 6패(평균자책점 2.86)를 기록 중이다. 16경기에 출전하며 88이닝을 소화했는데 규정이닝 미달, 그리고 최근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 4연패를 기록중에 있다. 사이토 하면 아마시절 라이벌이었던 타나카 마사히로(23. 라쿠텐)가 떠오른다. 누가 봐도 타나카의 실력이 월등했지만 미디어의 습성이 그러하듯 이들을 가리켜 ‘사이토 세대’ 라는 모순된 말을 붙여 평가하곤 했다. 타나카는 토마코마이 고교를 졸업 후 곧바로 프로에 데뷔 했지만 사이토는 대학진학(와세다)을 거쳐 올해 니혼햄 파이터스에 입단했다. 올해가 프로 데뷔 첫 시즌란 점에서 지금 사이토의 성적이 폄하 될 정도는 아니지만 타나카의 프로 첫 시즌때와 비교해 보면 그 수준차이가 확실하다. 사이토는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시즌을 종료할 가능성이 커졌고 평균자책점 2.86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평범한 기록이다. 올해 퍼시픽리그 전체 평균자책점은 2.93에 불과하다. ‘투고타저’ 가 어느정도인지를 대변해주는 수치로써 사이토의 평균자책점과 비교해 보면 정말로 평이한 성적이다. 반면 2007년 당시 타나카는 11승 7패(평균자책점 3.82)의 성적으로 퍼시픽리그 신인왕을 차지했었다. 선발 투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중 하나인 이닝(186.1이닝)은 사이토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며 그 당시는 올해처럼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도 아니었다. 당시 타나카가 거둔 두자리수 승수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당시 세이부) 이후 신인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고, 신인왕 역시 마쓰자카 이후 고졸출신으로 처음 수상한 기록이다. 사이토와 타나카의 데뷔 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타나카의 압승이라 할만 하다. 사이토가 유명해진 건 2006 고시엔 대회에서다. 당시 고시엔 결승전은 타나카가 소속된 토마코마이 고교와 사이토 유키의 와세다 실업고의 대결. 3회부터 출격한 타나카는 연장 15회까지 1실점 호투를 기록하지만 사이토는 15회 동안 1실점의 괴력투를 선보이며 결국 1-1 무승부 기록해 다음날 재경기가 펼쳐진다. 재경기에서 타나카는 1회부터 마운드에 오르지만 결국 3-4로 패하며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이날 경기 마지막 타자 타나카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투수가 사이토였기에 더더욱 화제를 모았던 경기었는데 당시 이 경기는 2006년 일본최고의 명승부로 불려졌음은 물론 아직까지도 많은 야구팬들은 88회 고시엔 결승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가 손수건 왕자로 불리게 된 것도 경기중 마운드에서 파란색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던 것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올해 사이토가 보여주고 있는 투구내용은 한번 더 검증 절차가 필요하단 느낌이다. 기존의 포심 패스트볼과 더불어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와 횡으로 휘는 슬라이더, 그리고 포크볼이 전부다. 아마시절 때는 다양한 구종을 던질수 있다고 선전돼 왔지만 프로에서는 확실히 자신이 자신있게 던지는 구종이 한정 돼 있다. 또한 사이토를 비롯, 타나카, 그리고 지난해 사와무라 에이지상에 빛나는 마에다 켄타(히로시마)를 지칭해 ‘사이토 세대’라고 일컫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미 신인티를 벗고 일본프로야구를 정복하고 있는 타나카는 올 시즌 다르빗슈와 함께 다승 공동 1위(16승), 그리고 평균자책점 (1.35) 부문에서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젠 다르빗슈 유(니혼햄)의 ‘트리플 크라운’의 유력한 대항마가 된 타나카가 결코 사이토의 라이벌이 될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젠 ‘타나카 세대’라고 부르는게 현명하다. 다시 말하지만 거품 꺼진 사이토에 대한 평가는 좀 더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이토 세대’라고 말하는 것은 지양돼야 할 가장 큰 모순이 아닐까 싶다. 이미 타나카는 일본 최정상급 선발 투수가 된지 오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전국 정전사태 최고 화제 ‘무쇠팔’ 최동원 별세 충격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전국 정전사태 최고 화제 ‘무쇠팔’ 최동원 별세 충격

    추석 연휴가 끝난 9월 셋째 주 인터넷을 달군 최고의 화제는 전국 정전 사태였다. 지난 15일 한국전력은 늦더위 탓에 전력수요가 폭주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정전사태가 벌어졌다고 밝혔다. 이날 정전으로 엘리베이터에 갇힌 시민들의 구조 요청이 수백 건 접수되었고, 신호등도 멈춰 한전의 안이한 판단이 큰 비판을 샀다. 검색어 순위 2위에 오른 것은 성추행 의대생 보석 기각이었다. 13일 서울중앙지법은 동기 여대생을 집단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고려대 의대생 배모씨가 보석신청을 냈으나 기각했다고 밝혔다. 앞서 고려대의 출교조치를 받은 3명의 학생 가운데 배씨는 유일하게 혐의를 부인하며 보석 신청을 했다. 3위는 곽노현 접견 금지. 검찰은 13일 후보자 매수 등의 혐의로 구속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변호인과 가족을 제외한 일반인 접견 금지 조치를 내렸으나, 서울시교육청의 반발로 교육청 간부들의 공무상 접견을 허용했다. 옥중 집무를 하게 된 곽 교육감은 “오해의 가시가 내 몸에 박혀 있지만 나는 오해인 줄 알기 때문에 스스로는 당당하다.”고 말했다. 4위에는 카다피 항복시한 만료가 올랐다. 리비아 시민군이 카다피군에 제시한 항복 시한이 10일(현지시간) 만료됐으나 카다피군은 반군의 공격에 격렬히 저항하며 항복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5위는 프랑스 원전 폭발 사고. 12일 오전 11시 37분쯤 프랑스 남부 랑그독 루실롱 지역 마르쿨 원자력 발전소의 핵폐기물 용광로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쳐 새삼 방사능의 위험성을 상기시켰다. 6위는 군 예산낭비. 14일 군이 1만원대에 구매 가능한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무려 95만원이나 주고 납품받은 것으로 드러나 예산낭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방위사업청은 군용 USB는 영하 32도에서 영상 50도까지 사용 가능하며 충격과 진동에 대비해 모든 제작 과정을 자체 설계해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으나 시중의 일반 상품도 동일 성능으로 밝혀져 비웃음을 샀다. 7위는 최동원 별세. ‘무쇠팔’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14일 새벽 지병으로 별세했다. ‘타격 천재’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의 죽음이 가시기도 전에 한국 프로야구를 이끈 큰 별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 야구팬뿐 아니라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8위는 중국 유로본드 구매. 15일 스위스 다보스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유럽 지원을 위해 유로본드 매입에 나설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9위는 강심장 암호. 13일 방송된 SBS 토크쇼 ‘강심장’에서 보름달이 등장했는데 이 안에는 ‘힘내라 강호동’이란 글자가 한 글자씩 차례로 등장했다. 2년간 프로그램을 이끈 강호동에 대한 제작진의 의리로 해석됐다. 10위는 부인 살해 유명 블로거 자살. 지난 7월 경기 수원에서 이혼한 전 부인을 살해하고 달아난 파워 블로거 황덕하씨가 13일 경기 화성시 칠보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주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일본통신] 이승엽 11호 홈런…팀내 최다포 칠까?

    [일본통신] 이승엽 11호 홈런…팀내 최다포 칠까?

    이승엽(35. 오릭스)이 시즌 11호 홈런을 터뜨렸다. 이승엽은 15일 고베 홋토모토 구장에서 펼쳐진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 6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우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포를 쏘아올리며 팀을 수렁에서 구해냈다. 오릭스가 2-4로 뒤진 상황에서 동점 홈런이 된 이 홈런은 결국 연장 접전 끝에 아카다 쇼고의 끝내기 안타로 팀이 승리함으로써 귀중한 한방이 됐다. 이로써 이승엽은 개인 통산 500홈런에 21개를 남겨둔, 그리고 오릭스 입장에선 이번 라쿠텐과의 3연전에서 위닝 시리즈를 만들어 내며 4위 라쿠텐에 1경기 차 앞선 3위를 유지했다. 이날 이승엽은 상대 투수 시오미 타카히로의 초구 포심 패스트볼(135km)을 공략해 홈런을 만들었다. 맞는 순간 누구나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만큼 라이너성으로 제대로 넘어갔다. 이승엽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홈런이다. 이번 홈런으로 인해 이승엽은 팀내 주포 아롬 발디리스(14홈런)와 지난해 홈런왕이자 4번타자인 T-오카다(13홈런)에 이어 팀내 홈런수 3위를 굳건히 했다. 몰아치기에 능한 이승엽의 타격성향으로 봤을때 남은 경기에서 충분히 팀내 최다홈런을 기록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승엽이 비록 홈런대비(투고타저) 타율은 매우 떨어지지만(.209) 한방능력은 여전하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말하듯 이승엽의 홈런 타구에는 뭔가 특별한게 숨겨져 있다. 바로 ‘맞는 순간 넘어갔구나’라고 바로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타구에 힘을 싣는 능력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공을 띄우는 기술 역시 여타 선수들에 비해 특출난 이승엽이다. 일반적으로 이상적으로 홈런이 나오기 위한 타구 각도를 45도라고 한다. 그 이하의 타구는 라이너성이라고 하는데 이승엽은 특히 접점지점(컨택트 지점)에서 이후 팔로우 스루까지 가는 과정이 상당히 매끄럽다. 몸이 회전하는 과정에서 이승엽 특유의 이러한 피니쉬는 여타 타자들의 홈런장면에선 쉽게 볼수 없으며 결코 아무나 흉내낼수 있는게 아니다. 최근 이승엽의 홈런에 관한 우스개 소리들이 들리고 있다. 과거 요미우리 시절 이승엽의 홈런을 보고 당시 중계를 맡았던 백인천 해설위원의 멘트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백인천 해설위원은 이승엽이 홈런을 칠때마다 ‘요시 그란도 시즌이야’ 나 ‘아주 라지에타가 터졌어’라는 멘트로 야구팬들의 귀를 사로 잡았다. 그런데 요시 그란도 시즌이야가 정확히 무슨 뜻일까? 당시 이승엽에 대한 타격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백인천 위원은 타격에서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 타석에서 이승엽의 홈런이 터졌는데 ‘요시! 역시 그란도 시즌이야’는 “역시 하나둘셋이야”다. 백인천 위원이 흥분해서 말을 빨리 하긴 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역시 하나둘셋이야가 맞다. 이것은 이승엽 타석 때 타격에서 가장 중요한 타이밍을 재는 방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홈런이었기에 백인천 위원의 요시 그란도 시즌은 하나둘셋이야가 틀림없다. 그리고 또다른 백인천 위원의 명언인 ‘아주 라지에타가 터졌어’는 그동안 움츠렸던게 터졌다는 뜻을 담고 있다. 라지에타는 방열기인 ‘라디에이터’의 일본식 발음이다. 이 말뜻을 해석하자면 그동안 터지지 않았던 이승엽의 한방이 라지에타(라디에이터)처럼 터졌다는 의미다. 일본에서 현역생활을 했던 백인천 위원이 다소 방송에서 쓰기엔 부적절한 일본용어를 사용한 것도 화제지만 아직까지 야구팬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도 생소한 일이다. 그만큼 이승엽에 대한 기대를 거두지 못한 팬들이 많다는 뜻으로도 해석할수 있다. 이제 오릭스의 남은 경기수는 25경기(15일 기준, 119경기를 소화)다. 2위 니혼햄과는 10경기 차이로 벌어져 사실상 2위 싸움은 끝이 났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한 티켓 한장(3위)을 놓고 치열한 순위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한경기 차이로 오릭스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라쿠텐, 그리고 세이부와 지바 롯데 역시 아직은 마음을 놓을 단계는 아니다. 최근 이승엽의 타격상승세가 뒷심을 발휘해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있어 큰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프로야구] 2000경기 출장 -1

    [프로야구] 2000경기 출장 -1

    18시즌을 뛰면서 변변한 개인타이틀 하나 없었던 프로야구 선수가 있다. 그의 이름은 이숭용(40·넥센).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 타이틀을 갖게 됐다. 최고령 2000경기 출장 기록이다. 심지어 이적 없이 한 팀에서만 올린 기록. 프로야구 사상 처음이다. ●18시즌 한팀에서 뛰어… 사상 첫 기록 화려하지도 강하지도 않았지만 우직함 하나로 버텨 온 이숭용의 야구인생을 가장 적확하게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숭용은 15일 현재 개인통산 2000경기 출장에 단 한 경기만을 남겨 놓고 있다. 이날 목동 두산전에는 나오지 않았다. 2008년 전준호(전 SK 코치) 이후 통산 여섯 번째, 현역으로는 박경완(SK)에 이어 두 번째다. 40세 6개월 5일인 그는 넥센의 김동수 코치가 2008년 세웠던 최고령 2000경기 출장 기록도 경신한다. 경희대를 졸업하고 1994년 태평양에 입단한 뒤 팀이 현대에서 넥센으로 바뀌는 동안 한 팀에서만 활약하며 세운 기록이라 더욱 뜻이 있다. 이숭용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꾸준히 야구를 해 의미있는 대기록을 세우게 됐다. 가족의 헌신과 코칭스태프, 동료 선수, 구단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기록이다. 앞으로 몇 경기 안 되지만 은퇴까지 최선을 다해 플레이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40세 6개월 5일’ 최고령 출장 기록 사실 기록만 놓고 보면 이숭용은 불세출의 톱타자는 아니다. 통산 타율 .281, 안타 1727개에 홈런 162개다. 타율이 3할대를 넘은 것은 딱 세 번, 20개 이상 홈런을 친 적은 한 시즌도 없다. 하지만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불우한 팀으로 손꼽히는 현대에서 그가 헤쳐온 나날들을 돌아본다면 이숭용은 또 하나의 레전드로 기억될 자격이 충분하다. 1996년 현대는 태평양을 인수한 뒤 12년의 팀 역사 동안 네 차례 정상에 오르며 ‘현대 왕조’로 불렸다. 이숭용은 2003년부터 5년간 주장을 맡아 팀의 우승을 견인했다. 1998년 첫 우승 때, 2003~04년 2연패를 할 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그의 손으로 잡아냈다. 그러나 2007년 팀이 해체라는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불안해하는 선수들을 다독이는 것은 주장 이숭용의 몫이었다. 2008년 1월 기자회견에서 그가 보인 눈물은 아직도 많은 야구팬에게 기억되고 있다. 이후 현대는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에 의해 재창단되며 히어로즈로 바뀌었고 그동안 연봉 삭감 등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 묵묵히 팀을 이끌었던 것이 이숭용. “현대엔 잘하는 선수들이 많아 실력이 모자란 내가 어떻게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고, 내가 내린 답이 바로 리더로 선수단을 잘 이끌어가는 것이었다.”고 이숭용은 말한다. 그의 이름 앞에 ‘캡틴’이 붙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18일 삼성전에서 은퇴… 지도자 변신 18일 삼성전에서 은퇴식을 치르는 이숭용은 지도자로 야구인생 제2막을 시작한다. 구단의 지원으로 해외 지도자 연수를 마친 뒤 코치로 현장에 복귀할 예정이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 동료들을 이끌었던 ‘숭캡’ 이숭용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씨줄날줄] 장효조 타격상/이도운 논설위원

    지난 7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타격의 달인’ 장효조 선수를 기리는 ‘장효조 타격상’ 제정 문제가 야구계에서 논의되고 있다. 장효조는 1983년부터 1992년 시즌까지 프로야구팀 삼성 라이온스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평균타율 0.331이라는 깨지기 어려운 기록을 남겼다. 1983년과 1985~1987년 네 차례나 수위타자를 기록했고, 1997년에는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으며, 1983~1987년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이 밖에도 대구상고(현 상원고)와 한양대, 포항제철(현 포스코), 경리단 등 아마추어 야구 시절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타격 타이틀을 획득했다. 장효조가 고교 졸업후 곧바로 프로야구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면, 훨씬 더 많은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우리 고교야구에는 지난 1958년 제정된 이영민 타격상이 있다. 이영민은 1928년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경성의전 주최 야구대회에서 한국 최초로 홈런을 날리고 타격왕까지 차지했던 인물이다. 이영민 타격상은 매년 9개의 전국 고교야구대회 가운데 5개 대회 이상, 15경기, 60타석 이상을 기록한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선수에게 수여된다. 메이저 리그에도 타격왕에게 수여하는 상이 있다. 바로 야구 역사상 최다인 755개의 홈런을 날린 헨리 루이스 ‘행크’ 에런을 기리는 ‘행크 에런 상’이다. 1999년부터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의 최고 타자에게 각각 수여한다. 메이저 리그에서는 최고의 활약을 보인 투수에게는 ‘사이 영 상’을 주고 있다. 덴턴 트루 ‘사이(클론)’ 영은 1890년부터 1911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면서 906경기에 출전해 511경기 승리, 749경기 완투, 76경기 완봉이라는 불세출의 기록을 세웠다. 일본 프로야구에도 그해에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발투수에게 사와무라 상을 수여한다. 미에 현 출신으로 일본 프로야구 초창기 최고의 투수였던 사와무라 에이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47년 ‘열구’(熱球)라는 잡지가 제정했다. 장효조 타격상이 제정돼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매년 최고의 활약을 보인 투수들에게 주는 상도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야구팬 가운데는 선동열이나 최동원의 이름을 딴 투수상을 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장효조 타격상이나 선동열·최동원 투수상 제정은 단순히 야구계나 스포츠계의 이벤트로만 볼 수 없다. 사람을 키우기보다 죽이는 데 몰두했던 한국사회에서 영웅 만들기라는 새로운 흐름을 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프로야구] “막내팀 패기로 무장… 2013년엔 4강 진출”

    [프로야구] “막내팀 패기로 무장… 2013년엔 4강 진출”

    “형님을 괴롭히는 막내의 패기를 보여주겠다.” 프로야구 제9구단 NC 다이노스의 김경문(53) 초대 감독이 6일 경남 창원시 마산 사보이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막내 팀으로서 패기 있고 힘찬 모습으로 창원 팬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 2013년 1군 리그 첫해 목표는 4강”이라고 밝혔다. ●“2군 경기 5할 승률이 목표” 지난 6월 13일 두산 감독에서 물러난 뒤 미국에 머물다 귀국한 김 감독은 이태일 NC 구단 사장, 이상구 단장과 자리를 함께했다. NC 사령탑을 맡은 것에 대해 김 감독은 “일단 스포츠는 도전하는 데 의미가 크다. 두산에서 못 이룬 꿈을 새로운 팀에서 젊은 선수들과 새롭게 도전하고 싶어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산 구단과 팬들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창원에서 꿈을 펼치겠다.”고 덧붙였다. 내년부터 참여하는 2군 경기에 대해서는 “이기는 쪽보다 좋은 선수를 한 명이라도 발굴하는 경기를 하게 될 것”이라면서 “두 번째 해인 2013년 1군에 갔을 때 자주 지게 될 경우 선수단은 물론 팬이나 가족들의 마음이 아플 것이다. 승률 5할을 목표로 나서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화수분 야구’로 통하는 김 감독은 “기존의 야구 스타일이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도 “NC는 매력이 달라야 된다. 팀 컬러가 어리기 때문에 좀 더 발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일부 변화를 예고했다. ●“롯데가 쉽게 보지 못하게 할 것” 김 감독은 “창원에서는 선수 시절 캠프를 했고 경기도 자주 치렀다. 부산 못지않게 열혈 야구팬이 많다. 흡족한 경기를 하려면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긴장감을 표시했다. 창원 팬이 많은 롯데에 대해서는 “창원 팬이 롯데에는 더욱 지기 싫어할 것 같다.”면서 “라이벌이 있는 것이 경기력에 도움이 된다. 롯데가 막내를 쉽게 보지 못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코치진 선임과 관련, “다른 팀이 현재 시즌 중이어서 조심스럽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말하겠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기능 더 강화해 살아있는 조직 만들겠다”

    “기능 더 강화해 살아있는 조직 만들겠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태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구본능(62) KBO 신임 총재가 취임 일성으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예고해서다. 구본능 총재는 22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8개 구단 사장들과 사무처 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9대 KBO 총재 취임식을 가졌다. 구 총재는 취임사에서 “처음 총재직을 제의받고 망설였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과 애정으로 봉사하겠다는 자세로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구 총재는 취임식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30년이 됐다. KBO가 그동안 잘해왔지만 아직 어린이 조직 같다.”면서 “좀 더 기능을 강화해 살아있는 조직으로 개편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KBO가 나아갈 방향과 관련해 최대한 효율성을 추구할 뜻도 내비쳤다. ●“자연스럽게 제10구단 창단될 것” 구 총재는 우선 프로야구 최대 현안인 제10구단 창단에 대해 “아직 업무를 정식으로 보고받지 못했다. 현재 9구단이 만들어졌으니 자연스럽게 10구단도 창단될 것이다. 이미 지자체 2곳에서는 프로야구단을 창단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온 상태”라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열악한 야구장 시설 개선과 관련해서는 “유영구 전 총재가 시설 개선을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 대구와 광주에서 새 구장 건립을 추진 중이니 최대한 열매를 빨리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랜 야구팬으로서 프로야구를 지켜봤다는 그는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말한다면 기업은 미래를 위해 회사를 키워야 한다. 또 이익과 고용을 창출하며 납세와 사회 환원의 의무도 지고 있다. 이를 KBO에 적용해 야구의 저변을 더욱 확대하고 각 구단의 흑자 전환을 위해 노력하겠다. 또 10구단을 만들어 야구인들의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 환원 차원에서 팬 서비스도 더 강화할 수 있는 KBO 조직을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대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구 총재는 “이제 성년 조직이 돼야 한다. 업무가 파악되는 대로 하나하나 추진하겠다. 살아 있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급여·차량·비서 등 대부분 고사 구본무 LG 그룹 회장의 친동생이며 희성그룹회장인 구본능 총재는 지난 2일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차기 총재에 추대됐고 19일 구단주 서면 총회를 통해 공식 선출됐다. 구 총재의 임기는 유영구 전 총재의 잔여 임기인 올 12월 31일까지다. 하지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3년 임기의 20대 총재로 재추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곧바로 공식 업무에 들어간 구 총재는 KBO에서 지급하는 급여와 차량, 비서 등을 대부분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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