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올림픽과 경제력/곽태헌 산업부장
기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말레이시아가 주최하는 메르데카컵이라는 축구대회가 있었다. 태국이 주최하는 킹스컵도 있었다. 한국은 메르데카컵과 킹스컵을 모방해 박 대통령의 성(姓)을 딴 박스컵을 만들었다.
메르데카컵이나 킹스컵, 박스컵에 출전하는 나라들은 대체로 동남아시아의 버마(현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을 포함해 6∼8개국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북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한 출전 멤버였다. 요즘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경쟁상대가 되지 않지만 당시 한국은 이런 대회에서도 우승하기가 버거웠다.
1970년대까지는 학교에서 혼식(混食)검사를 했다. 쌀이 전반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이라 박정희 정부는 쌀밥만 먹지 말고 보리밥을 섞어 먹으라면서 혼식을 장려했다. 담임선생님들은 쌀밥만 싸온 것은 아닌지 점심시간에 형식적인 검사를 했다.
한국은 1948년 영국 런던올림픽에 첫 출전했을 때 동메달만 2개를 따 종합순위로는 32위에 그쳤다.1972년 서독 뮌헨올림픽때까지 종합순위는 30위 안팎이었다. 보통 그때까지는 올림픽에 출전한 나라는 100개국을 넘지 않았다. 북한은 뮌헨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땄지만 한국 국민들은 4년 뒤인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올림픽에서야 애국가를 들을 수 있었다. 레슬링에서 딴 금메달 한개 덕분으로 19위로 껑충 뛰었고, 그 뒤에는 올림픽때마다 대체로 10위 안팎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얼마 전 끝난 중국 베이징올림픽에서는 200개국이 넘는 나라가 참가했으나 한국은 ‘기대´보다도 훨씬 좋은 7위에 올랐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북한은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이후 12년만에 금메달을 따는 등 선전했으나 순위는 33위에 그쳤다.
기자는 한국의 올림픽 메달과 순위를 보면서 경제력을 생각한다. 한국이 경제력에서 북한을 앞선 게 1970년대 초반이었으니 북한보다 첫 금메달을 늦게 딴 게 경제력 측면에서만 보면 당연해 보인다.1960∼70년대 기초를 다진 중화학공업을 바탕으로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을 밑바탕으로 우리의 올림픽성적도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선배 선수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나 요즘 우리 선수들은 없어서 먹지 못하지는 않는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지도와 관리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경제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과거에는 복싱, 레슬링 등 격투기종목에서 주로 메달을 땄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메달을 따는 종목이 다양해진 것도 경제력의 힘이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톱10’에 포함된 국가들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미국, 러시아, 영국, 독일, 호주,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다. 모두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15위내에 있는 국가들이다.
전면적인 전쟁이 없는 요즘에는 군사력보다는 경제력이 힘이다. 물론 군사력도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강해질 수 있다. 중국이 큰소리를 치는 것은 군사력 때문이 아니다. 앞으로 10년쯤 뒤에는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는 게 중국의 힘이다. 독도문제가 불거지거나 일본의 극우인사들이 역사왜곡을 할 때 큰 목소리를 내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조용히 실력(경제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의 GDP는 일본의 22%에 불과하다. 일본과의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허구한날 여야가 민생과는 관계없는 불필요한 싸움이나 할 게 아니다. 관료들은 ‘정권코드’나 맞추려고 하지 말고 제대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감세(減稅)는 필요없다.’고 했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감세가 필요하다.’고 말을 바꾸는 관료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영혼과 소신 없는 관료는 경제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곽태헌 산업부장 tiger@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