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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分家정리…올 두번째 北行길

    왕회장이 제가(齊家)뒤 평천하(平天下)의 길을 떠났다.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올들어 2번째 북행(北行)길은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다.비서의 부축을 받았지만 거인의 풍모가 확연했다.동생(鄭世永회장)의 퇴진과 분가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과연 왕회장’이라는 말을 실감케 해주었다. 아무도 풀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숙질(鄭世永회장과 鄭夢九회장)간의 재산분할 문제가 왕회장의 한마디로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노구를 이끌고 대북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왕회장의 나이는 84세.이날도 “앞으로 매달 방북하겠다.울산에 가는 것보다 오히려 가깝다”며 지칠줄 모르는 의욕을 보였다. 왕회장은 요즘도 매일 새벽 6시30분쯤 계동사옥에 출근한다.구내이발소에서 이발을 하고 15층 집무실로 올라가 鄭夢九(애칭 MK) 鄭夢憲(애칭 MH)회장,李益治·朴世勇회장 등 그룹 최고위관계자들로부터 현안보고를 받고 지시를한뒤 오전중 퇴근하는 일상을 되풀이하고 있다 왕회장의 집안단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동생과 아들사이의 분쟁에서 아들의손을 들어줬지만 아들과 아들사이의 교통정리를 남겨놓고 있다. MK와 MH 중 누구를 세자로 책봉할 것이냐의 문제다.그룹의 5개 주력사업중전자,건설,금융·서비스 등 3개 사업을 장악하고 있는 MH쪽으로 기울어 있던 세자책봉이 최근 MK쪽으로 힘이 쏠리는 느낌이다. 왕회장은 연초 2001년까지 현대자동차를 독립소그룹으로 분리하겠다는 큰틀을 제시했지만 현대자동차가 그룹안에서 갖고 있는 상징성과 MK가 사실상 장자(長子)라는 점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듯하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대권에의 꿈을 鄭夢準의원(현대중공업회장)이 풀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할 것이다. 이날 ‘평양 07-915’번호판을 단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타고 평양으로 향하는 왕회장 곁에는 李益治 현대증권 회장과 金潤圭 현대건설사장이 따랐다.일본출장중인 鄭夢憲회장은 빠졌다.
  • 현대家 인사빅딜 “보스따라 헤쳐모여”

    ‘경영권 빅딜’이 이뤄진 현대자동차와 현대산업개발간의 ‘인사빅딜’이보스를 따라가는 ‘헤쳐 모여’식으로 매듭지어졌다. 8일 현대그룹이 단행한 인사에서 鄭夢九 현대그룹 회장(애칭 MK)의 사람들이 현대자동차와 인천제철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반대로 鄭世永 현대자동차명예회장(애칭 포니鄭)측근들은 현대산업개발로 이동하는 ‘측근인사 맞바꾸기’가 이뤄졌다. 오너의 이동에 따라 현대자동차와 인천제철,현대산업개발 등 3개 회사의 최고위층이 한꺼번에 자리를 바꾼 양상이다. ▒MK라인의 대집결 MK쪽 사람들은 포니鄭이 접수한 현대산업개발을 떠나 현대자동차와 인천제철로 진입했다. 인천제철 盧瓘鎬사장과 朴完基부사장이 주력사인 현대자동차 사장과 부사장으로 각각 옮겨왔으며 MK몫의 계열사인 인천제철에는 현대산업개발 柳仁均사장과 尹柱益부사장이 나란히 사장과 부사장으로 수평이동했다.또 합병되는현대자동차써비스 趙洋來사장도 현대자동차 비상임고문으로 옮겨 왔다.鄭世永명예회장이 32년동안 현대자동차에 남긴 흔적을 지워내는 인사이다. 현대자동차는 鄭회장을 정점으로 朴炳載부회장과 盧瓘鎬,李啓安,李裕一,李忠九사장 등 6인 경영체제를 갖췄다.9일 鄭회장의 취임식과 함께 이번주중열리는 이사회에서 鄭회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는 등 완벽한 MK친정체제를 구축한다. 이번 인사로 인천제철의 盧瓘鎬사장이 현대자동차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옴에따라 현대자동차에는‘경복고 3인방’이 수뇌부를 구축했다.MK와 지난해말 사장으로 승진한 李啓安사장 및 盧사장 등 3명이다. 鄭회장과 盧사장은 입학동기.함께 다니다가 鄭회장이 1년 유급,盧사장이 58년 먼저 졸업했다.鄭회장은 운동중 다쳐 고교를 한해 더 다녔다.李사장은 71년 졸업생으로 두사람보다 한참 후배이다. 인천제철 사장으로 옮긴 柳仁均사장도 鄭회장보다 고교는 한해 늦게 들어갔으나 졸업은 함께 한 ‘경복고사단’이다. ▒포니鄭라인은 현대산업개발에서 새살림 鄭夢奎 회장과 李邦柱 현대산업개발사장,金判坤부사장 등 鄭世永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쪽 사람들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산업개발사옥에 새살림을 차렸다.현대자동차에서 재무회계통으로 잔뼈가 굵은 李邦柱사장은 이번에 건설맨으로 새롭게 변신했다.포니鄭부자를 도와 안살림을 맡는다. 鄭世永 명예회장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수족 역할을 해온 金判坤부사장은 현대산업개발에서도 같은 일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추가인사를 통해 현대산업개발에 몸담고 있는 MK쪽 중역들의 이동도점쳐진다.柳仁均전사장의 오른팔로 알려진 金翼桓상무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현대산업개발은 빠르면 6월말까지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해 독립할 예정이다.또 현대산업개발이 갖고 있는 인천제철(15·11%),고려산업개발(21·18%),현대엔지니어링(42·82%) 등 현대그룹 계열사의 지분도 또 한차례의 맞바꾸기를 통해 정리할 방침이다.
  • 현대車 ‘夢九체제’ 굳히기 가속화

    현대자동차의 ‘鄭夢九(MK)체체’ 굳히기가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2일 鄭夢九회장이 鄭世永명예회장의 퇴진시키고 경영권을 완전 장악한데 이어 4일에는 재경본부장,홍보실장 등 핵심요직까지 ‘MK사단’으로 물갈이함으로써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鄭世永 명예회장쪽 인사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가아자동차 인수와 현대자동차써비스 합병 등 계속된구조개편 과정을 거치면서 어수선해진 사내 분위기를 다잡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4일 인사에서 가장 눈의 띄는 것은 MK사단의 대표격인 李銓甲 부사장과 金元甲 전무의 급부상이다.李부사장은 ‘왕회장’(鄭周永 명예회장의 애칭)과MK의 최측근.지난 1월,현대건설 통합구매실장에서 현대·기아차 기획조정실부사장으로 승진 발령됐다가 이번에 홍보실장과 지원본부장·전략구매본부장 등을 동시에 맡으며 경영의 전면에 등장했다. 자동차 재경본부장에 임명된 金전무는 李啓安 자동차부문 기획조정실장(사장)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MK사단의 재무통.이로써 현대의 자동차부문은 鄭夢九회장-李啓安사장-李銓甲부사장-金전무의 핵심라인업으로 재편됐다.현재 공석인 국내영업본부장도 조만간 현대차써비스나 정공 출신 인사로 채워질 것이라는게 자동차 내부의 전망이다. 현대차는 빠르면 오는 12일쯤 정기주주총회 이후 첫 이사회를 열어 鄭회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할 계획이다.당초 16일 이후 이사회를 열려고 했지만 경영권의 조기안정 필요에 따라 판단해 시기를 앞당겼다. 현대차 고위관계자는 “鄭世永 명예회장쪽 인사들의 반발을 신속히 마무리하고 최대한 빨리 업무를 장악하라는 내부 지시가 내려온 상태”라면서 “사태를 신속히 마무리하기 위해 오는 5월로 예정된 현대정공 자동차부문의 합병추진도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金泰均 windsea@
  • 공정위 “재벌개혁 차질없다”

    ‘98년 5월8일 5대그룹에 대한 1차 부당내부거래조사 실시.6월20일 조사마무리,과징금 722억원 부과.6월29일 5대그룹에 대한 2차 부당내부거래조사 시작.7월24일 과징금 209억원 부과.10월19일 6대 이하 그룹에 대한 3차 부당내부거래조사 실시.12월2일 조사마무리,99년 2월11일 현재 과징금 산정중.오는 4월 5대그룹에 대한 4차 부당내부거래조사 예정.’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국 직원 30명이 지난 9개월 동안 숨가쁘게 걸어온 족적(足蹟)이다. 田允喆 공정거래위원장이 올해를 재벌개혁을 완성하는 해로 설정함에 따라실제 조사를 전담하는 조사국 직원들의 활약상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흔히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 조직 중에서도 조사국은 실제 ‘칼’을 휘두르는 곳이다.조사기획과와 조사1·2과 등 업종별로 모두 3개과로 구성돼있다.조사기간에는 지휘관인 국장과 여직원을 빼고는 과장에서부터 7급직원까지 모두 현장으로 출동한다. IMF체제 전에는 하도급비리 등 일반 불공정거래행위 조사가 주업무였지만,지난해 5월부터는 부당내부거래조사가본업이 되다시피 했다.덕분에 이들의‘라이프 스타일’도 180도 바뀌었다. 직원들 대부분이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맡은 이후 밤 10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 본 기억이 없다.일요일 가운데 3번 중 2번은 평일처럼 일한다.퇴근을 못하고 사무실에서 새우잠을 자는 경우도 적지 않다.추석연휴나 여름휴가 때는 돌아가면서 하루 이틀 쉰 게 고작이다. 97년 8월부터 조사국에서 일하고 있는 白昇奇 조사기획과장(53)은 “조사시작 전에는 준비하느라,조사가 끝나면 과징금을 산정하느라 바쁘다”며 “이번 설에도 4차부당내부거래조사 준비로 이틀밖에 쉬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핵심조직으로 떠오르면서 갖는 자부심은 남다르다.최근 엘리트 직원들도 속속 몰려들고 있다.순환인사로 다른 부서에 발령이 났던 직원까지도자질이 확인되면 바로 차출되고 있다.공정위 내에서 ‘드림팀’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달 기업집단과장에서 자리를 바꾼 鄭秉驥 조사1과장(46)만 하더라도 6년 가까이 독점국에서 실무와 이론을 닦은 실력파다.金吉泰조사2과장(47)은 줄곧 조사국에서 일해오다 잠시 대전사무소로 전출됐었으나 지난해 4월 다시 불려온 케이스. 鄭秉驥과장은 “올해는 계좌추적권까지 주어진 만큼 재벌개혁을 기필코 마무리한다는 각오로 뛰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金相淵 carlos@
  • 축구용병 뚜레 국내스포츠계 첫 귀화의사

    ‘나는 한국이 좋아요’-.프로축구 부산 대우에서 활약중인 크로아티아 국적의 뚜레(27·본명 드제바드 투르코비치)가 한국 귀화의사를 밝혀 관심을끌고 있다. 중국 중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안클럽컵 축구대회 동아시아 4강전에 출전 중인 대우구단의 안종복 단장은 12일 “뚜레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싶다는 의사를 정식으로 밝혔다”며 “귀화에 따르는 절차 등을 밟아 그의 의사를 적극 수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96년 8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클럽에서 대우에 임대된 이후 한국에서활동중인 뚜레는 크로아티아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를 거쳤고 94∼95년 크로아티아 프로축구 MVP를 수상한 공격형 미드필더다.‘뚜레’라는 애칭도 이때 얻은 것.그는 97년 대우의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그해 대우의프로축구 3관왕 달성에 크게 기여했다.68㎏,172㎝의 단단한 체구를 지닌 그는 지구력과 패싱력,볼배급력 등 미드필더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춘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뚜레가 귀화를 생각한 것은 한국에 온지 얼마 안돼서다.타고난 근성으로 객지인 한국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그는 유고에서 독립한 이후 불안정한 크로아티아의 내정으로 인해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던 중 귀화를 결심하게 된것.뚜레의 귀화가 성사될 경우 국내 프로스포츠 무대에서는 유일한 사례로기록되게 된다.아마의 경우 배구의 후인정(현대자동차서비스)이 있으나 그의 경우는 부모 대부터 한국을 생활터전으로 해온 화교로 뚜레의 경우와는 다르다.8남매의 차남인 그의 부모 등 가족은 모두 크로아티아에 거주하고 있다.그러나 뚜레가 실제 한국국적을 얻기 위해서는 2년을 기다려야 한다.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5년이상 한국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 빨라야 2001년 8월에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뚜레는 “제2의 축구 인생을 한국에서 맞이하고 싶다”며 “가능하다면 2002년 월드컵에도 한국대표로 출전,국위를 선양한 뒤 은퇴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고 말했다.
  • 李昌鎬 삼성화재배 우승 뒷얘기

    세계바둑계의 최강자인 李昌鎬가 지난 8일 막을 내린 제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대회에서 풍성한 화제거리를 남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우선 덤을 얼마로 할 것인가라는 해묵은 논제에 불을 지핀 것. 이번 대회에서는 흑을 쥔 사람이 승리한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있다.1,3국은 마샤오춘(馬曉春) 9단이 이겼고 2,4국은 李 9단이 따냈다.2대2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맞은 5국에서 흑은 李 9단에게 돌아갔다.연장자인 馬 9단이 먼저 백돌을 수북히 올려 놓자 李 9단이 흑돌 두개를 올려 놓아 짝수를 맞춘 것.평소 돌을 하나만 올려놓던 李 9단으로선 뜻밖의 행동.그러나 이는 행운의 여신이 돌부처(李昌鎬의 애칭)에게 미소를 지은 것이나 다름없었다.엎치락 뒤치락 했지만 李 9단의 승리로 끝나 흑번필승의 신화가 다시 확인된 것. 바둑은 실력이 비슷할 경우 흑을 쥔 사람이 절대 유리하다.이른바 먼저 두는 ‘선착의 효’ 때문이다.그래서 백에게 5집반을 덤으로 준다.그러나 덤을 줘도 흑의 승률이 55∼6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李昌鎬와 劉昌赫은 지난해 13차례 맞붙어 李 9단이 8번 이기고 劉 9단이 다섯번 승리했다.劉 9단은 5승 가운데 4번을 흑으로 이겼다.기량차가 거의 없는 정상급 기사간의대국에서 흑의 무게를 느낄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과연 덤은 얼마가 적당할까. 李 9단은 대국이 끝난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평소와 달리 흑,백을 가릴 때 돌 두개를 올려놓은 것은 흑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오늘은 왠지 돌을 2개 올려 놓고 싶었을 뿐”이라며 “결승 다섯판에서 모두 백에게 기회가 있었다”고 말해 흑에 집착하지 않았음을 내비췄다.이어 개인적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덤은 6집반이 적당하다”고 말해 현재의 5호반 공제가 흑에게 유리함을 시사했다. 이번 대국에서 이창호는 새로운 바둑의 길을 가려는 구도자적 자세와 강심장을 선보였다.상금 2억원이 걸린 세계대회 타이틀에서 李 9단은 신수(新手)를 실험했다.특히 결승 5국에서 신수를 구사한 것은 물론 종국을 앞둔 유리한 상황에서도 馬 9단의 패싸움을 받아줘 기를 질리게 했다. 아뭏튼 이번 대회의 결과로 馬 9단은다시 ‘李昌鎬 신드롬’에 시달려야할 것으로 보인다.두사람은 LG배 세계대회에서도 5번 승부를 앞두고 있다.任泰淳
  • 金대통령 이름 영문표기 정정요구 묵살

    ┑워싱턴 崔哲昊특파원┑“한국 대통령의 이름은 ‘김태충’입니다.” 세계 제일의 정보기관이라고 자랑하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 만드는 인터넷웹사이트인 World Factbook에는 한국의 대통령 이름을 김대중(Kim,Dae-Jung)이 아닌 ‘김태충(kim Tae-Chung)’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CIA는 주미대사관이 2∼3차례에 걸쳐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Dae-Jung으로 정정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절했다. 현재 외교문서상이나 각국의 모든 언론에서는 Dae-Jung으로 표기하고 있다. 미 언론에서도 김대통령의 애칭은 ‘DJ’이다. CIA가 지난 14일 주미대사관에 보낸 정정요구에 대한 회신에는 ▒맥퀸-라이샤워 표기법상 Tae-Chung이 올바르며 ▒김대통령 자신이 예전에 그렇게 써달라고 요구했다고 얼토당토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CIA는 이외에도 한국 독립연도가 정부수립해인 1948년이라고 써놓는가 하면,지난해 5월에 바뀐 주미대사의 이름을 李洪九대사가 아닌 朴健雨 전대사로그대로 두다가 최근에야 이를 정정하는 등 오류 정정에 인색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hay@
  • 김미현 美데뷔무대 ‘합격’…공동 34위로 예선 통과

    │올랜도(미 플로리다주)외신종합연합│ ‘슈퍼땅콩’김미현(22)이 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첫 대회인 99헬스사우스이너규럴대회에서 여유있게예선을 통과,박세리에 이어 한국 여자골프 돌풍의 주역으로 기대감을 높였다. 지난 시즌 국내 상금랭킹 1위인 김미현은 17일 새벽(한국시간) 플로리다주올랜도의 그랜드 사이프레스골프장(파 72)에서 열린 대회 2라운드에서 이븐파로 홀아웃,1라운드서 1언더파를 쳐 합계 1언더파 143타로 공동 34위에 올랐다.김미현은 특히 153㎝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250∼260야드에 달하는장타를 날려 갤리러들로부터 탄성을 불러내고 있다.김미현은 이같은 플레이로 캘러리들로 부터 ‘마이티 미니(Mighty Mini)란 애칭을 얻었다.또 많은갤러리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다녀 관심을 모았다. 박세리(22)는 이틀 연속 2오버파로 부진,합계 4오버파 148타로 공동 83위에그쳐 예선탈락,‘2년생 징크스’가 우려되고 있다.재미교포 펄 신은 이틀 연속 이븐파를 쳐 공동 41위를 달리고 있다. 첫날 노장 낸시 로페스와 함께 선두에 나섰던스코틀랜드출신 캐트리오나매튜가 3언더파 69타를 쳐 합계 9언더파로 ‘10년 무관’의 티나 배럿과 공동선두를 지켰다.캐리 웹과 패티 시한은 선두그룹에 1타 뒤진 합계 8언더파로 공동 3위를 달리고 있다.한편 이번대회는 71명의 선수가 컷트오프를 통과,마지막 3라운드에 나섰다.
  • “현대家 좌장은 역시 MK”

    鄭夢九 현대회장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공격경영을 외치며 대외활동에도 적극적이다.鄭周永 명예회장의 ‘피’를 이어받고 있다는 평가다. 측근들조차 鄭회장의 변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鄭회장은 그동안 鄭周永 명예회장의 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96년 1월 그룹 회장직에 오른 이후에도 일상업무만 챙겼을 뿐 대외활동에는 소극적이 었다.97년 1월에는 아우인 夢憲회장에게 공동회장 자리를 내주기까지 했다. 그룹의 얼굴로서는 어딘가 어색함이 있었다.평소 언론과의 접촉도 꺼리고 말 도 어눌한 편이었다. 그러나 MK(鄭회장의 애칭)는 지난해 10월 기아자동차 인수를 계기로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인수작업도 숙부인 鄭世永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을 제치고 직접 진두지휘했다.그의 배짱이 낳은 작품이었다. 기아차 인수 뒤에는 직접 회생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소하리공장을 방문,기 아차 직원들을 격려했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을 때에는 鄭 명예회장을 대신해 사인했다. 이 자리에서 MK는 자신의 괄목할만한 변신을 말솜씨로 대변했다.이전에는 원고에 의존,인사말을 대신해왔던 터였다.기자들의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 하는가 하면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구랍 29일 표준협회장에 오른 건 그의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알리는 신호에 불과하다.MK는 4∼5일 용인 현대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올해 경영전략회의에 서 사장단을 모아놓고 구조조정의 가속화와 흑자경영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관계자는 鄭회장의 변신이 ‘책임감의 발로’라고 설명한다.가끔 ‘폭탄주’ 를 즐기는 MK는 소탈하나 뚝심이 대단하다.그의 저력이 올해 한보철강을 비 롯한 포항제철,한국중공업 등의 공기업 인수에도 발휘될 지 주목된다. [朴先和 psh@]
  • 현대그룹 ‘次期’는 누구?

    ◎MK,자동차 일원화 주장… 2∼3년내 분가 예상/MH,청와대 정·재계간담 참석… 후계 뒷받침 현대그룹 鄭周永 명예회장의 후계자는 누구일까. 鄭夢九 회장(애칭 MK)의 현대자동차 회장 등극이 곧 ‘왕세자 책봉’을 의미한다는 관측이 대두됐지만 아직은 불투명하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재계간담회에 鄭夢憲회장(애칭 MH)이 참석한 사실에 무게가 점차 실린다. MH는 청와대측의 참석자격 확인에 “현대그룹 경영자협의회 회장자격(공동회장이 아닌)”이라고 답해 마치 후계구도가 정리된 듯한 인상을 짙게 풍겼다. 이후 MK는 자동차그룹을 이끌며 2∼3년 내에 분가할 것이란 게 대세이다. 현대그룹의 대통을 이을 적자가 MH라는 얘기가 설득력있게 나돌고 있다. 朴世勇 구조조정본부장의 발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朴본부장은 최근 사석에서 “자동차 운영방안 발표는 자동차를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또 MK의 자동차회장 선임배경에 대해서도 “기아자동차를 인수할 때 자동차 사업부문의 일원화에 대한 수뇌부의 컨센서스가 있었으며,관련 계열사를 일원화하다 보니 현대정공 및 현대자동차써비스의 최대주주인 MK가 자연스럽게 회장에 앉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MK는 평소 일관되게 자동차 일원화를 주장해 왔다고 덧붙였다. 朴본부장의 발언은 왕회장(鄭周永 명예회장)의 심중을 꿰뚫고 하는 얘기다. 따라서 MK가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별도의 자동차그룹을 형성,2∼3년안에 독립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MK가 ‘걸어다니는 컴퓨터’로 불리는 핵심측근 李啓安 경영전략팀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자동차 기획조정실장으로 데려간 점도 결국 분가의 수순이라는 것이다. 포스트 鄭周永을 향해 불꽃튀는 ‘효도경쟁’을 벌이고 있는 MK와 MH의 ‘대권경쟁’이 어떻게 결말날 지 관심이다.
  • 현대 차세대 리더 ‘MK라인’ 급부상/40대 사장 李啓安씨 선두

    ◎박세용­유인균 사장 등 주목 MK(鄭夢九현대그룹회장의 애칭)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접수(?)함에 따라 鄭회장과 함께 현대그룹의 차세대를 이끌 핵심주자들에게 관심이 쏠린다. 선두주자는 단연 李啓安 자동차기획조정실 사장(46)이 꼽힌다.입사 22년,부사장 1년만에 사장자리에 오른 핵심중의 핵심이다. 40대 사장은 지난 88년 朴世勇 그룹구조조정본부장이 48세로 사장에 오른 뒤 10년 만이다. MK의 경복고 후배인 탓에 MK라인의 핵심으로 분류되지만 학연 때문에 고속승진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드물다.朴世勇 사장이 사석에서 “생물학적 나이를 따질 만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평할 정도의 재사(才士)이다.李사장이 맡은 기획조정실장 자리도 눈여겨 볼 만하다.인사,재무,구매,기획 등 사실상 모든 실권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朴사장은 한때 MH(鄭夢憲 회장의 애칭)라인으로 분류돼 왔다.현대상선에 오랫동안 몸담았다는 이유다.그러나 鄭周永 명예회장의 직계다.현대상선,현대종합상사 사장과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중임을 맡고 있는 만큼 중립적인 처세가 눈에 띈다.사실 朴사장은 MK,MH를 막론하고 모두 자기사람으로 분류하고 싶어 하는 인품의 소유자라는 것이 중론이다. MH라인의 핵심인물로 지목되곤 하는 李益治 현대증권사장도 鄭명예회장 비서출신의 직계로 보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다.이른바 ‘MK사단’ 멤버들의 부상도 예상된다.柳仁均 현대산업개발·盧灌鎬 인천제철·朴正仁 현대정공·趙洋來 써비스 사장 등이다.
  • 日 간사이공항 르포(인천신공항 성공을 위해서:3­2)

    ◎시설 수준급…‘허브’ 역할은 미흡/바다위 거대도시 연장… 느낌 쾌적/심야활용도 극히 낮아 기능 축소/아시아·미주·유럽 연계에 취약 【간사이 黃性淇 특파원】 ‘바다에 떠있는 거대한 도시’ 오사카 상공에서 내려다 본 간사이(關西)국제공항은 반듯한 직사각형의 인공섬이었다.오사카만과 공항을 이어주는 3,750m의 ‘연락교’(連絡橋)는 공항에 연결된 젖줄처럼 보였다. 일본 최초의 허브(중추)공항의 기치를 내걸고 지난 94년 문을 연 야심찬 공항. 지난 1일 오전.공항청사는 일본 각지와 해외로 드나드는 일본인,아시아계 외국인들로 붐볐다.개항 4년째여서인지 깨끗하고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바깥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청사 안은 포근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을 비롯,1주에 국제선 658편,국내선 504편이 뜨고 내린다.여객수로는 세계 공항 가운데 42위.한해 여객수 3,470만명으로 세계 9위인 김포공항에는 못미치지만 개항 4년의 역사를 따진다면 비약적 성장이다. 중국여행을 다녀왔다는 야기 다케시(八木健·58·아나운서)씨는 “세계 주요공항과 비교하면 시설면에서 대단히 쾌적하다”고 말했다. 청사를 나서면 오사카(大阪)행 리무진버스나 급행열차가 대기하고 있고,고베(神戶)등을 다니는 배의 선착장도 있다.공항역 건너편에는 닛코(日航)호텔,다카시마야 백화점이 입주해 있는 에어로프라자도 들어서 있다.승객편의를 최대한 고려한 인상이다. 154만평의 ‘구코시마’(空港島·인공섬의 애칭)는 공항경찰 등 상주인원 1만8,000명,하루 5만4,000명의 승객들로 붐빈다.웬만한 소도시를 뺨친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모습과는 달리 간사이공항은 취재를 계속할 수록 허브공항이나 ‘24시간 공항’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해 5월 타이항공이 이곳을 경유하는 방콕∼LA편을 취항시킴으로써 간사이공항측은 24시간 공항의 체면을 간신히 세웠다.타이항공 말고는 고작 화물편 몇편만 하오 10시∼상오 6시에 취항하고 있다.심야 시간대는 공항이 거의 텅텅 비는 것이다. 허브공항으로서도 지리적 측면에서 아시아와 미주나 유럽으로 연결하기에는 영종도 국제공항보다경쟁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세계 곳곳을 잇는 국제간 허브공항이라기보다 일본 국내와 국제를 연결하는 축소된 개념의 허브공항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밖에도 간사이 공항은 뜻밖으로 취약한 점이 많았다.190여개에 이르는 음식점,선물가게는 주머니사정이 여의치 못한 이용객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간단한 점심 1끼에도 1,000엔(9,000원)이상.비행기 착륙료도 B­747의 경우 91만엔(6,280달러)으로 홍콩(3,000달러)보다 갑절,로스앤젤레스(1,000달러)의 6배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공항의 핵심시설인 터미널도 국제선 이용승객에게는 불편했다.4층에서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타려면 최고 500m 이상 모노레일을 타고 가야했다.일본어나 영어를 모르는 외국인은 이용법을 몰라 걸어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2개 허브공항의 고민/간사이 지반 침하/덴버 지하철 고장 【오사카 黃性淇 특파원·덴버 崔哲昊 특파원】 공항이 가라앉는다? 간사이 국제공항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인공섬인 ‘공항도’(空港島)가 조금씩 가라앉는 지반침하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공항 문을 연 94년부터 3년간 1m 남짓 섬 전체가 내려앉았다.심지어는 섬이 바깥쪽에서 중심부로 향해 5∼10㎝가량 수평 이동한 사실도 확인됐다.수직침하는 예상했었으나 수평이동은 전혀 뜻밖의 일이다. 지난해 공항터미널 맞은편에 호텔이 들어선 에어로 프라자 건물과 공항 역사간 연결부위가 틀어져 공항주식회사측이 8,000만엔을 들여 긴급 보수를 하기도 했다. 지반침하는 해상공항이 안고 있는 숙명이다.건설본부측은 “87년 착공때부터 60년동안 11.5m의 지반침하를 예측해 부지 조성 및 시설건설을 했다”고 설명했다. 간사이공항이 들어선 해저는 충적층 아래 홍적층이 겹쳐 있는 지형.침하된 지반은 수분을 다량 함유한 충적층에서 이뤄진 것으로 2∼3년이면 안정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홍적층이다.공항부지나 시설물의 무게에 따른 홍적층의 지반침하는 서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본부측은 “처음 예상한 속도대로 지반침하가 이뤄지고 있으므로 60년이 지나야 침하현상이 끝날 것”이란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덴버공항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본관터미널에서 승강장 건물까지 컴퓨터로 자동 제어되는 지하철. 본관과 가장 가까운 승강장 건물A까지는 덴버시의 자랑거리인 무지개를 본뜬 구름다리가 놓여 걸어갈 수도 있으나 나머지 B,C건물까지는 지하철을 이용해야만 갈 수 있다.우리나라 지하철의 반만한 크기의 경전철이 4대씩 운행된다.물론 안에 좌석은 없다. 이 지하철은 7분간격으로 운행된다.모든 운행은 자동으로 컴퓨터에 의해 작동된다.물론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얼마전 이 지하철이 갑자기 운행중에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다.20여분간의 사고로 비행기에 타고 내려야할 승객들이 꼼짝 못하고 지하철에 갇히거나 이동을 못하는 대형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그 뒤부터 지하철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동하는 대안이 검토되고 있다.결국 자랑거리로 등장했던 지하철 이동수단이 덴버공항의 가장 취약점이 돼버린 것이다. ◎모범사례 간사이 공항/건설·운영 일원화 잡음 줄여/초기에 주체선정 논란/주식회사 설립 위탁/민자참여로 사업 원활 【오사카 黃性淇 특파원】 일본 오사카(大阪) 간사이공항의 건설 및 운영 주체는 초기부터 간사이 국제공항주식회사가 맡아오고 있다. 84년 6월에 설립된 간사이공항주식회사(關空)는 건설과 운영을 일원화함으로써 간사이공항을 건설까지 10년,개항후 4년에 이르기까지 큰 잡음없이 일본의 대표적인 허브공항으로 도약시켰다. 이런 간사이공항의 건설 및 운영주체 일원화는 처음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68년 일본 운수성이 처음 일본 관서지방의 항공수요를 충당할 목적으로 관서공항 건설계획을 세우고 주식회사를 설립할 때까지 여러차례 건설 및 운영 주체에 관해 논란이 있었다. 도쿄 하네다(羽田)공항,오사카 이타미(伊丹)공항처럼 국가가 도맡아 건설·운영하거나,나리타(成田)공항처럼 건설과 운영을 공항공단같은 준(準) 국가기관이 떠맡는 방식이 거론됐다. 이 두가지 방식은 한결같이 건설과 운영의 주체가 일원화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또 하나의 방식으로 공항용지의 조성작업을 공단 등의 기관이 맡고,운영은 제3자에 맡기는 2원화 방식도 검토됐었다. 그러나 건설과 운영을 정부가 떠맡건,공단을 설립해 맡기건 막대한 재정부담때문에 일본 정부안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다. 운수성은 ▲국가 재정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공항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건설·운영을 일원화하고 ▲민간과 지방자치단체도 사업에 참여시킨다는 대원칙을 세웠다. 이런 원칙이 간사이공항주식회사가 탄생한 배경이었다.이 중에서도 민간기업의 활력을 신공항건설사업에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가 높게 평가됐다.지분은 정부투자 6분의 4,지자체 6분의 1,민간자본 6분의 1로 구성됐다. 간사이공항주식회사는 건설·운영의 주체가 일원화된데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민간이 두루 참여하는 주식회사였기 때문에 사업의 추진이 어느 사회간접자본(SOC) 건설때보다 손쉬웠다.국가의 추진력,지역주민의 협력,민간의 활력 등 3박자를 고루 갖추었던 셈이다. 간사이공항주식회사 경영기획부 야마모토 히로유키(山本博之) 과장은 “과거 방식과는 달리 민간과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함으로써 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됐고 건설·운영이 일원화됨으로써 특히 2기 공사를 앞둔 시점에서 예산편성 등의 짜임새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좋은 환경 만들기/柳一相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서울광장)

    환경은 우리의 삶을 감싸고 있는 모태이며 삶의 피부가 숨쉬는 현장이다. 그래서 환경보호는 바로 우리의 삶을 지키는 일이다. 환경은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으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하나가 되어 삶의 질을 결정해준다. 자연환경의 보존을 둘러싼 사람들의 견해도 둘로 갈린다. 수질 공기 토양 등을 현재 상태로 보존하고,변화를 가져올 인공적인 노력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주장이 있는 한편,현재의 자연환경이 주는 제약을 인간의 능력으로 제거해가면서 더욱 안락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에 두 주장의 대립이 구체적으로 한강수계에서 지역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40%에 이르는 수도권 주민들의 물에 대한 관심은 비상(非常)하다. 팔당호에 유입되는 수자원의 청결성 유지는 낙동강수계에 대한 지역주민의 요구만큼 절박하다. 그러나 수년 전 벌어진 대구권과 부산권의 환경갈등은 경제적 생산을 둘러싼 대결이라고 볼 수 있지만,한강수계의 주민 상호간 갈등은 한계생존과 풍요한 생활간의 갈등 및 물질생산과 토지소유간의 복합적인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강유역은 수도권 주민의 레크리에이션 단지에서 더 나아가 향락산업의 기지가 되었거나 심지어는 개인별장과 일부 기업의 편의시설로 가득 차 있다. 이 가운데는 권력이나 금력을 이용하여 토지 형질을 무단변경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한강유역의 땅값은 공익과 무관하게 크게 올라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 정부가 팔당호의 수질개선을 위해 환경유해시설을 강력하게 정비하려고 나선 것은 다수 국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의지의 정당한 발현이다. 환경부가 환경수질의 오염원천을 제거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땅값의 지속적 상승을 기대한 특정소수에게는 경제적 고통을 부담시킬 수 있다. 최근 이런 고통분담을 거부하는 일부 주민들의 집단행동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생명의 근원인 물을 담보로 이권흥정을 벌이려고 한다는 일반의 의심을 살 수도 있다. 자연환경의 보존도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토지가 개인의 사적 이윤을 적립해두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환경지상주의로만 나가서 인구밀도가 높고 국토면적이 협소한 우리나라에서 수도권에 위치한 제조업체의 생산활동까지 위축시켜서는 안된다. 지난 5∼6월경처럼 환경보호측면만 우선하여 단속을 벌이면서 연약한 중소기업 사업주들을 무더기로 구속하는 것은 원활한 노동력 공급과 생산효율성을 두루 고려할 때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물론 기업가들도 환경조건에 맞는 생산활동 대신에 부동산투기로 주민들과 결합하여 땅값을 올려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자동차의 천국 미국이라지만 오리건주 유진시에서는 자동차길보다 자전거길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환경보호론자들이 사회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포틀랜드로 흘러가는 윌라메트강을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에 유진시는 미국에서 보기 드문 ‘은퇴자의 천국’이라는 애칭을 얻고 있다. 이제는 시민세력들이 나서서 지역주민 상호간의 문제 및 중소기업과의 이해대립을 조정해야 한다. 자연환경과 친화하면서 국민경제도 살려갈 수 있도록여론을 비롯한 사회환경을 개선해주는 일을 할 때다. 큰 강의 상류지역 주민이나 이해관계자들도 과연 무엇이 지역특성에 맞는 발전인가를 심사숙고 한다면 더욱 좋으련만!
  • “국회운영 잘해 봅시다”/상임위·특위위원장 프로필

    15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이 17일 마무리됐다.지난 5월 말 상반기 국회가 끝난 뒤 세달 가까이 공전을 거듭하다가 정상화된 것이다.여야는 16개 상임위를 반반씩 나눠 가졌다.정당별로는 국민회의 5(1개는 국민신당에 할애),자민련 3,한나라당 8로 배분했다.각 당은 상반기 국회 때 당직·국회직·각료를 맡지 않은 의원을 중심으로 ‘다선(多選)원칙’에 따라 인물을 골랐다.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선출된 상임위원장과 특위위원장의 면면을 소개한다. □상임위·특위위원장 명단 ●한화갑 운영·59·국민회의 ­전남 신안,서울대 외교학과,김대중 선생 비서·특보,13∼15대 의원 ●목요상 법사·63·한나라당 ­경기 동두천,서울 법대,통일민주당 인권옹호 위원장,11·12·15대 의원 ●김중위 정무·59·한나라당 ­서울,고대 정경대,민정당 대변인,환경부장관,국회예결위원장,12∼15대 의원 ●김동욱 재정경제·60·한나라당 ­경남 충무,연대 정외과,한국관광공사 이사장,10·12·15대 의원 ●유흥수 통일외교통상·61·한나라당 ­부산,서울 법대,치안본부장,충남도지사,12·14·15대 의원 ●이원범 행정자치·59·자민련 ­대전,동국대 정법대,6·3동지회장,자민련 수석부총무,11·15대 의원 ●한영수 국방·64·자민련 ­충남 태안,고대 정외과,신민당 대변인,자민련 부총재,9·10·11·14·15대 의원 ●함종한 교육·54·한나라당 ­강원 원주,서울대,상지대 교수,강원도 지사,12·13·15대 의원 ●이협 문화관광·57·국민회의 ­전북 익산,서울 법대,민추협 대변인,국민회의 수석부총무,13∼15대 의원 ●김영진 농림해양수산·51·국민회의 ­전남 강진,전남대 행정대학원,국회 5·18광주특위위원,농어민특별위원장,13∼15대 의원 ●서석재 산업자원·63·국민신당 ­부산,동아대,통일민주당 사무총장,11∼15대 의원 ●박우병 과학기술 정보통신·65·한나라당 ­경북 상주,서울 공대,삼척탄좌 소장,폐광특별입법소위원장,13∼15대 의원 ●김범명 환경노동·55·자민련 ­충남 논산,고려대 정외과,자민련 충남도지부 위원장,14·15대 의원 ●김찬우 보건복지·65·한나라당 ­경북 영덕,경북대 의대,신한국당 경북도지부 위원장,11·14·15대 의원 ●김일윤 건설교통·60·한나라당 ­경북 경주,연대 교육대학원,경주대학교 이사장,민정당 문공분과위원장,12·13·15대 의원 ●김인영 정보·59·국민회의 ­경기 수원,중대 경제과,경기일보 창간 위원장,13∼15대 의원 ●김충조 윤리·56·국민회의 ­전암 여수,고대 법대,국민회의 사무총장,13∼15대 의원 ●김정숙 여성·52·한나라당 ­전북 김제,고대 교육학과,정무2장관보좌관,14·15대 의원 ●김진재 예결(내정)·55·한나라당 ­부산,한양대,민자당 총재비서실장,11·13·14·15대 의원 ◎李協 문화관광위원장/소탈·청렴한 언론인 출신 언론인 출신의 3선의원.조용하고 나서지 않는 성품 때문에 항상 주요 당직등에서 손해를 봤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번 국회직 진출로 뒤늦게 빛을 본 케이스.비서진들과 국회 주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포장마차에서 술자리를 할 정도로 소탈·청렴하다.민추협 초대 대변인 등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金大中 대통령과 인연을맺었다.부인 禹泰慶씨(51)와 2남. ◎金泳鎭 농림해양수산위원장/UR협상때 삭발·단식 전남 당진 출신의 3선의원.지난 10년 동안 줄곧 농림해양수산위를 지켜온 농수산전문가.내정설이 나돌던 국민신당 徐錫宰 의원을 막판에 제치고 ‘전공’을 찾았다는 후문.지난 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반발,제네바에서 삭발·단식농성을 벌여 농·어민에게 인기가 높다.올해 한국유권자운동연합이 실시한 의정활동 평가에서 최우수의원으로 선정될 정도로 부지런하다.부인 尹順南씨(47)와 1남2녀. ◎睦堯相 법사위원장/소신판결 유명… 외유내강 소신 판결로 이름을 떨친 판사 출신이다.원칙에 타협하지 않는 외유내강형으로 통한다.통일민주당과 국민당,신한국당을 거치면서 인권위원장을 도맡았다.이번 상임위원장 인선 과정에서 전문성을 감안,일찌감치 법사위원장 후보로 내정됐다.지난해 당내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李會昌 명예총재 진영에 가담했다.두주불사로 취미는 골프와 바둑.부인 張文榮씨(55)와 1남3녀. ◎함종한 교육위원장/교육개혁 토론회 단골 손님 꼼꼼한성격으로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다.특히 상지대 교수 출신으로 교권(敎權)확립과 청소년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다.교육개혁 토론회의 단골손님.저서도 8권이나 펴냈다.독실한 불교신자로 현재 한나라당 불교신도회 회장.당내에서는 허주(虛舟·金潤煥 부총재의 아호)계로 분류된다.술 담배는 일절하지 않으며 바둑이 취미다.부인 孫源喬씨(54)와 2남. ◎金重緯 정무위원장/뜻 꺽지않는 소신주의자 60년대 말 사상계 편집장을 거쳐 兪鎭午 신민당 당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풍부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면서도 일단 방향을 정하면 굽히지 않는 소신주의자로 정평나 있다.10여권의 책을 펴낼 정도로 탐구력도 왕성.기자실에 들를 때마다 칠판에 커다란 글씨로 ‘물망초(勿忘草)다녀갑니다’라고 적어서 얻은 별명이 ‘물망초’.부인 李宣熙씨(57)와 1남1녀. ◎韓和甲 운영위원장/리틀 DJ… 동교동계 핵심 金大中 대통령과 30여년간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교동계 1세대.67년 7대 총선 당시 운동원으로 金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세 번의 옥고를 치르면서 정권교체의 주역으로 성장.화법과 억양,제스처까지 金대통령을 빼닮아 ‘리틀 DJ’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바른말을 잘해 동교동에서도 한때 변방으로 밀릴 정도의 원칙주의자.鄭順愛씨(50)씨 2남. ◎朴佑炳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노력파… 탄광소장출신 3선 탄광회사인 삼척탄좌의 소장 출신으로 3선에 오른 대표적인 노력파.13대 민정당 공천으로 정치에 입문했다.차분하고 매사에 꼼꼼한 성격으로 성실한 의정활동이 트레이드 마크.모나지 않은 성격에 원만한 인간관계를 자랑하지만 추진력과 돌파력은 미지수다. 특히 지역구 활동에 열심이다.지난 96년 15대 총선 직전 부인과 사별,1녀를 두고 있다. ◎金仁泳 정보위원장/정무 묵묵히 추진 ‘실천가’ 국민회의 입당파 의원 중 일찌감치 상임위원장 후보에 오르내렸다.외향적이기 보다는 묵묵히 일을 완성해내는 실천가형이라는 평 때문에 정보위원장에 발탁됐다는 후문.의원입법으로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 주역이기도 하다.이북에서 단신 월남,고학 등 역경을 거쳐 사업가로 성공,실물경제에도 밝다.약사인 부인 金炳玉씨(57)와 교수·의사인 두 아들이 있다. ◎徐錫宰 산업자원위원장/YS계 1세대… 조직의 귀재 ‘조직의 귀재’로 알려진 상도동계 1세대.61년 동아고 교사 시절 金泳三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89년 4월 동해 보궐선거 당시 후보 매수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정치적 부침을 함께했다.상도동계 맏형격으로 조직을 관리했지만 지난 대선 당시 국민신당에 합류,본류에서 이탈.넓은 대인관계가 강점이지만 추진력은 다소 미흡하다는 평.부인 全順達씨(58)와 2남3녀. ◎金範明 환경노동위원장/실물 경제통… 마당발 정평 한때 섬유업체를 경영한 실물경제통 출신의 재선의원.13대 총선에서 민정당 후보로 고배를 마신 뒤 14대 때 국민당 간판으로 첫 등원.마당발로 통할 만큼 폭넓은 추진력이 돋보인다는 평.지난 6·4지방선거 때 지역구인 논산군수 후보로부터 금품수수 혐의로 구설수에 오르기도.朴泰俊 총재를 집중 설득해 환경노동위원장을 따냈다.부인 李榮淑씨(49)와 1남1녀. ◎李元範 행정자치위원장/몸 사리지 않는 행동파 당을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행동파.다소 거친 듯 하면서도 번뜩이는 기지를 갖춘 독설가라는 평.지난 95년 6·27지방선거 때 민자당 金潤煥 의원의 ‘핫바지론’을 맹공한 지원 유세로 맹활약.이를 계기로 이듬해 총선에서 대전지역 공천을 얻기도.기회가 닿을 때마다 총리인준 주장을 꺼낼 만큼 金鍾泌 명예총재에 대한 충성심이 두텁다.부인 李相淑씨(52)와 3남. ◎韓英洙 국방위원장/논리정연한 차세대 주자 4전5기(4顚5起)끝에 등원해 5선(選)에 이른 중진의원.고려대 4년 재학 중 4·19 직후의 제5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JP를 제외하고 유일한 자민련내 계보 보스.추종하는 원내외 위원장이 50명 안팎에 이른다. 지난해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JP에 도전할 만큼 차세대를 넘보는 주자.논리정연한 언변이 돋보인다.부인 朴仁淑씨(53)와 1남2녀. ◎金一潤 건설교통위원장/2개 대학 설립… 성격 꼼꼼 성격이 꼼꼼하다.육영사업에 관심이 많아 서라벌대학교,신라고등학교,경주대학교를 차례로 설립,운영하고 있다.15대 상반기 국회에서 건설교통위원회에 소속돼 상임위원장으로서 역할이 기대된다.사회봉사 단체인 라이온스클럽 활동에도 열성적이다.한나라당 내에서 金潤煥 의원 계보로 분류된다.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신앙심이 두텁다.부인 李順子씨(50)와 3남3녀. ◎金燦于 보건복지위원장/의사출신의 인본주의자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로 탤런트 최불암과 닮았다.정치인이기에 앞서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인본주의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실업문제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앞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에서 의원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꿈이다.의사 출신으로 줄곧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보건복지 분야에 정통하다.부인 鄭成順씨(61)와 2남. ◎金東旭 재경위원장/온화한 성격… 집념 강해 온화하고 모나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그러나 골수 야당 길을 걸어와 집념이 강하다는 평.10대 때 원내 진입에 성공했으나 정치규제에 묶여 11대 때는 출마 자체를 못했다.농림해양수산위,교통체신위원회에서 활약했다.재정·경제 분야는 처음이어서 어느 정도 능력 발휘를 할지는 미지수다.한나라당 내 범 민주계로 金德龍 의원과 가깝다.부인 李英子씨(54)와 1남. ◎柳興洙 통일외교통상위원장/영·일어 능통한 관료 출신 매사에 합리적이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정통 내무관료 출신이다.영어와 일어에 능통하고 아시아 태평양의회 포럼 한국총회의장 및 한일의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등 외교통상위원장에 적격이라는 평이다.4년 동안 외무통상위에서 활동,해당 분야에 정통하다.한나라당 내 비당권파인 李會昌계로 분류되며 취미는 독서와 골프.부인 朴惠子씨(58)와 2남1녀. ◎金貞淑 여성특위위원장/여성지위 향상에 전력 활달한 성격에 리더십을 겸비하고 있는 맹렬 여성.여성들의 정치참여 확대 없이는 여성지위 향상이 어렵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정무2장관실 보좌관 등 정·관계를 두루 거쳐 위원장으로서 역할이 기대된다.전국구로 한보사건에 연루된 鄭在哲 의원의 의원직을 승계했다.88년 안양갑 지구당 위원장을 맡아 정계에 입문했다.남편 趙光列씨(57)와 1남. ◎金鎭載 예결특위위원장 내정자/합리적… 경제사정 밝아 합리적이며 치밀한 성격으로 여야 관계가 매끄럽고 실물경제에 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여권 의원으로서는 드물게 의정활동이 활발한 ‘의원 베스트 10’에 뽑히기도.원구성 때마다 상임위원장 하마평에 올랐으나 당내 입지가 약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돈이 많아 ‘돈진재’로 불리며 한나라당 내 비당권파로 분류되고 있다.부인 成孝仁씨(52)와 1남. ◎金忠兆 윤리특위위원장/청렴·성실한 원칙주의자 스스로를 ‘법도와 순리’로 채찍질해 나간다는 성실·원칙주의자.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전남공동의장을 거쳐 13대 때 평민당 공천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당 사무총장을 맡으며 50년 만에 여야 정권교체를 이뤄 DJ의 신임이 두텁다.재산공개를 할 때마다 하위권을 맴돈다.동양화를 즐겨 그리고 노래도 잘불러 별명은 ‘김삿갓’.부인 李順玉씨(53)와 1남2녀.
  • “러 관리 다루는 법 내게 맡겨라”/조달청 姜承鉉 사무관

    ◎끈기·뚝심 돋보이는 대러협상의 명수/“참사관 추방 계기 러시아인 연구 시급” “러시아인들은 ‘벼랑끝 협상전술’에 뛰어납니다. 결렬 직전까지 몰고 가 상대방을 애먹이면서 자기 것을 따냅니다” 조달청 비축2과 姜承鉉 사무관(43). 외교팀을 괴롭히고 있는 러시아와의 참사관 맞추방사태를 바라보는 그의 아쉬움은 남다르다. 姜사무관은 우리나라 유일의 ‘국제원자재 가격조사관’. 알루미늄 구리 등 각종 원자재를 쌀 때 해외에서 들여와 적기에 국내에 공급,시장을 안정시키는 게 그의 일이다. 그는 한·러 경제협력 현물상환 협상에서 가장 많은 대표단 참가 경력을 갖고 있다. 94년 6월부터 지난달 초까지 11번이나 러시아에 다녀왔다. 서울에서의 협상까지 치면 20번 이상 그들과 피말리는 줄다리기를 해왔다. 동시통역사 출신인 그는 87년 조달청에 들어올 때까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등에서 통역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그는 러시아 재무부 한국담당 직원 사이에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상 기피인물)로 통한다. 94년 12월 협상단으로 세번째 파견됐을 때의 일·러시아측이 알루미늄을 100% 현물상환키로 해놓고 막판에 그 중 일부는 현금을 내고 사가라고 다른 말을 했다. 게다가 선불로 결제하라는 것. 며칠간의 마라톤 협상에 이미 초죽음이 된데다 서울행 비행기 출발시간도 얼마남지 않은 시점. 항복할 것인가. 이때 姜사무관의 주장으로 ‘완전 결렬’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맞섰다. 결국 100% 현물상환이 관철돼 우리측의 승리로 끝났다. 이때 러시아 사람들이 자신들 만큼이나 독하다며 모스크바 사람을 뜻하는 ‘모스코비치’란 애칭을 지어주었다. 그는 러시아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들은 보드카 한잔에 친구가 되는 인정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들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조달청 근무중에도 TV영어회화 강사로 활동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료 토플강의도 한다. ‘국내 유일’인 자신의 전공을 계속해 세계 최고의 원자재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다.
  • 韓 총무 “院구성 거래 안한다”/국회정상화 협상 본격화

    ◎“총리인준 협상 대상 아니다” 쐐기/오늘 총무회담… 의장단 배분 등 험로 15대 후반기 국회 원구성 협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29일 국민회의는 韓和甲 총무대행을 원내 사령탑으로 선출했다.30일부터 3당 총무협상에 돌입한다. 그러나 국회의장단 배분과 국무총리·감사원장 인준처리 등 난제들이 얽혀 있어 쉽지 않은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韓신임총무도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국무총리 인준문제는 결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원구성 협상과 관련,“쉽지 않지만 인내를 갖고 풀어가겠다”며 ‘거래’가 아닌,‘원칙있는 협상’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앞서 ‘韓대행­李允洙 의원’의 총무경선 대결은 ‘무투표 당선’으로 싱겁게 막을 내렸다.‘반(反) 동교동 정서’를 결집하겠다던 李의원이 정견발표 도중 돌연 ‘경선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李의원은 연단에 올라 동교동계의 독주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연설 말미에 “그러나 지금은 당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선배 동료들의 충고를 수용,경선을 포기한다”고 기습 선언했다. 安東善 의원은 즉각 “청첩장까지 돌린 뒤 식장에서 결혼을 포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경선 출마를 자신의 정치적 선전에 이용하는,매명(賣名) 행위와 다름없다”고 격렬히 비난했다.일부의원들은 “李의원이 현격한 세 불리를 의식해 선수를 친 것”이라며 ‘韓총무 대세론’의 기류를 전했다. 韓의원은 총무 선출 뒤,당내 일각에서 일고있는 ‘동교동 독주론’을 강한 톤으로 반박했다.“고통은 우리가 분담하고 영광은 주위사람에게 돌린다는 각오로 지금껏 일해왔다”고 섭섭함을 전한 뒤,“누가 자리를 차지하느냐가 아니라,누가 일을 잘하느냐를 놓고 심판해야 한다”며 당내화합을 역설했다. ▷한화갑 총무는 누구인가◁ 韓총무는 지난 30여년간 金大中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온 동교동 1세대 가신그룹의 선두주자.지난 67년 총선 당시 金의원의 선거 운동원으로 인연을 맺었고 ‘金大中 내란음모사건’등에 연루,수차례나 옥고를 치르는 등 金대통령과 정치적 부침(浮沈)을 함께 했다. 외모와 말투,제스처까지 金대통령과 흡사,‘리틀 DJ’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소탈한 성격에 오랜 야당시절 체득한 치밀성이 돋보인다는 평.부인 鄭順愛 여사(50)와 2남.▲전남 신안(60) ▲목포고·서울대 외교학과 ▲평민당 총재특보 ▲14·15대 의원
  • 한심한 경찰/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종합상사 주재원으로 몇년 전 독일 뒤셀도르프에 살던 朴모씨는 귀국직전어느 날 밤,부모 모시는 문제로 부인과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다.손찌검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높아지며 매우 심각한 분위기였다.그렇게 한참 싸우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경찰관 2명이 웃으며 서 있더라는 것이다.그들의 손에는 포도주 한 병이 들려 있었다.“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왔으나 집안문제인 것 같아 포도주라도 나눠 마시며 조용히 해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朴씨는 패전후 나치의 망령을 떨쳐버리고 국민의 봉사자로 다시 태어난 독일경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오마와리 상’(걸어서 순찰하는사람)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일본경찰도 전후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있다고 한다.동네 구석구석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범죄예방에 힘쓰고 아무리 하찮은 가정 일이라도 의논상대가 돼주는 ‘친근한 이웃 아저씨’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일본경찰은 또 주민들의 전화를 받으면 먼저 끊는 법 없이 친절하게 대답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보비 아저씨’로 불리는 영국경찰은 뛰거나 빨리 걷지도 않는다.경찰관이 뛰면 주민들이 불안해한다는 이유에서다.2인1조인 순찰조의 유일한 무기는 곤봉이다.각종 여론조사에서 영국경찰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직업으로 꼽히며 청소년들의 장래희망조사에서도 3위다.국민의 신뢰가 얼마나 두터운가를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리의 경찰은 어떤가.21일자 조·석간을 통해 알려진 경찰에 관한 몇가지 보도는 참담함마저 느끼게 한다.대구에서는 강도피해자가 파출소를 찾아가 신고했으나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로 떠넘겨 4시간 30분동안 세군데 파출소를 옮겨다녀야했다는 것이다.그 피해자는 지친 끝에 “빼앗긴 물건 안찾아도 좋으니 제발 집에 좀 보내달라”고 애원까지 했다고 한다.서울에서는 검문하던 경찰관이 시민을 파출소에까지 끌고가 마구 때려 중상을 입히고 단순 교통사고를 음주운전사고라고 윽박지르며 돈을 받은 경찰관이 구속되기도 했다.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받드는선진국 경찰과 비교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나라의 법질서를 수호하는 경찰의 개혁없이는 우리 사회의 장래도 없다.경찰개혁,지금 당장 시작해 완전히 다시 태어날 때까지 계속하라.
  • 제임스 녹스 폴크(美國의 대통령 문화:17)

    ◎美 영토 2배로 확장해낸 ‘전쟁 영웅’/멕시코와 3년전쟁서 텍사스州 등 7개州 점령/중앙銀 개설­관세인하 등 국가재정 안정 주력 【콜럼비아(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인내의 술잔은 이제 비었습니다.멕시코는 우리의 영토를 침범했고 미국인의 피를 미국 땅 위에 흐르게 했습니다.” 1846년 5월12일,텍사스병합을 위해 멕시코의 선공을 기다리고 있던 11대 미국대통령(1845­1849) 제임스 녹스 폴크는 선전포고를 위해 의회에 보낸 교서의 앞부분에서 이같이 단호한 결의를 나타냈다. 미역사상 유일하게 하원의장 출신인 그는 미국의 기존 영토를 두배로 확장,서부 경계를 미시시피강에서 대서양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동시에 미국을 대륙국가로 만든 용감하고 뚝심있는 대통령으로 미국민들에 기억되고 있다.폴크는 7대 대통령으로 대중의 시대를 개막시키고 영토확장의 불을 당겼던 앤드루 잭슨의 열렬한 추종자로 ‘영 히커리’(Young Hickery)라는 애칭으로 불렸다.잭슨의 강인함을 히커리나무에 비유해 붙여졌던 ‘올드 히커리’에서 따온 것이었다.○40세때 연방하원의장 피선 1795년 노스 캐롤라이나주 멕킨버그 카운티에서 스코틀랜드인 후손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폴크는 10살때 아버지를 따라 테네시주 콜럼비아로 옮겨살게 됐으며 그후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을 다닌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다.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다시 테네시로 돌아와 당시 하원의원이던 필릭스 그룬디의 지도로 법학을 공부,24세에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여 콜럼비아에서 개업했다. 폴크는 스승이 앤드루 잭슨의 친한 친구였던 것을 계기로 잭슨과 교류를 갖게 됐으며 민주당에 입당하게 됐다.그는 주하원의원을 거쳐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후 1835년에는 하원의장에 선출됐다.나이 40세때 였다.168㎝로 미국인으로서는 작은 키에 체격이 다부져 ‘땅딸보 나폴레옹’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던 그는 7선의원으로 두차례 하원의장을 역임한뒤 39년에는 테네시주지사에 당선됐다.그는 자연스레 반 뷰렌 대통령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지목됐으나 지명도가 낮다는 이유로 민주당 전국전당대회는 그의 후보지명을 거부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는 연거푸 주지사 선출에서 고배를 마시게되자 마치 그의 정치생명은 끝난듯이 보였다.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으며 마침내 44년 볼티모어 민주당 전국전당대회가 그에게 행운을 안겨주었다.당시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반 뷰랜과 루이스 캐스가 끝내 승자를 가리지 못하자 9차 투표에서 당의 화합을 이룰 인물로 폴크가 극적으로 부상,후보로 지명됐던 것이다. 정치생명이 끝난 것으로 알려져 있던 폴크의 지명에 대해 헨리 클레이를 후보로 지명했던 상대편인 휘그당은 해보나마나한 게임이라며 냉소를 보였다. 그들은 ”제임스 녹스 폴크가 누구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폴크가 대통령에 부적격자라는 점을 집중 강조했다.반면에 폴크는 당시 미국민들의 영토확장 욕구를 간파,“텍사스와 오레곤의 병합”을 구호로 내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단임으로 그 약속을 이룰 것임을 공약했다. 선거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폴크의 승리로 끝났다.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취임사에서 ‘한 당의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임을 강조,소신있는 통치를 위해 당의 영향력에 분명한 선을 긋는 단호함을 보였다. 그는 취임 이듬해부터 3년간 계속된 멕시코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텍사스에 이어 뉴멕시코,아리조나,캘리포니아,네바다 유타주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한 것은 물론 멕시코시티까지 함락했다. ○스페인령 쿠바도 구입 시도 폴크는 멕시코 전체를 미국령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까지도 있었으나 48년2월 강화조약으로 전쟁은 끝났으며 멕시코정부는 1천500만달러라는 헐값에 오늘날 미국땅의 7분의1에 달하는 1천300만㎢의 땅을 미국에 양도해야 했다. 폴크는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구입,멕시코만을 내해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성사단계에 이르렀으나 의회의 반대로 쿠바 구입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오늘날 미국사가들이 당시 폴크의 선견지명을 따랐다면 오늘날처럼 미국이 쿠바로 인해 골치를 썩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간선거 이후에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휘그당이 다수당이 되는 바람에 집권 후반기 정국운영에 많은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관세 인하를 위한 새 관세법과 워싱턴에 중앙은행,주요도시에 국유은행을 설치하는 독립은행법을 통과시키는등 국가의 재정안정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일벌레 폴크’라고 불릴 정도로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의 폴크는 1849년 대통령 퇴임후 콜럼비아의 사저로 돌아와 3개월만에 과로와 콜레라로 54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19세기 상류층 생활용품 집대성”/임기중 최초 우표발매­첫 야구경기 개최도/존 스탠위치 폴크 박물관 큐레이터 【콜럼비아(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테네시주 주도(州都) 내슈빌에서 남쪽으로 60㎞ 떨어진 인구 3만의 콜럼비아시는 11대 대통령 제임스 폴크의 체취가 곳곳에 서려 있다.웨스트 스트리트 7가에 위치한 폴크 대통령의 사저는 폴크 생전의 유품들을 잘 정리해놓고 있었으며 큐레이터 존 스탠위치씨는 폴크 관련 22개소의 위치와 사연을 기록한 ‘폴크 따라 걷기’라는 소책자를 주며 한차례 돌아볼 것을 권했다. ­먼저 이 소책자에 관해 설명해달라. ▲시내에 산재한 폴크가(家)와 관련된 유적들을 걸어다니면서 체계적으로 볼수 있게 만든 것이다.폴크가의 집들과 부친 새뮤얼 폴크가 딸인 나오미의 결혼기념으로 선사한 집.폴크의 변호사 사무실,당시 법원,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폴크의 환영대회가 열렸던 스테이트 뱅크 앞 광장,그들이 출석하던 교회,학교 등 모든 것이 나타나 있다. ­박물관으로 꾸며진 사저의 소장품은 어떤것들이 있나. ▲이 집은 1816년 폴크가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에 공부하러 가있을때 지은 집으로 폴크가 대통령 퇴임후 돌아와 숨질때까지 살았다.퇴임후 백악관에서 가져온 집기들과 19세기 테네시 상류층이 사용하던 생활용품들이 잘 보관돼 있다.그 가운데 특히 폴크가 부인에게 선사한 취임기념 부채,폴크의 선거포스터 등은 매우 귀중한 것이다. ­부인 사라 폴크는 어떤 유형의 퍼스트 레이디 인가. ▲사실상 폴크의 보좌관으로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폴크 못지 않게 부인도 일을 좋아했다.그들이 백악관에 들어온후 백악관 내에서 술과 파티와 카드가사라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이들은 오락은 일에만 탐닉했다. ­소개할만한 폴크의 또다른 업적은.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업적이 많다.스미소니안 박물관 개관,최초의 우표 발매,미국내 최초의 야구시합 개최 등도 그의 임기중 일이다.
  • 앤드루 존슨(美國의 대통령 문화:16)

    ◎‘세기의 부동산거래’ 러서 알래스카 사들여/‘無學의 양복장이’서 링컨 피살뒤 대통령 승계/재임중 남북전쟁 수습·국민상처 치유에 헌신 【그린빌(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저는 9살때부터 양복일을 배웠습니다.정치를 해오면서 나 자신이 양복쟁이 출신임을 감추려한적은 한번도 없습니다.왜냐하면 마름과 재단의 정확성,솔기솔기 마다의 세심한 주의,또한 고객과 약속 날짜의 준수 등 양복쟁이로서 몸에 익힌 사항들이 정치생활의 원칙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했기 때문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암살로 갑작스레 대통령직을 승계,미국의 17대 대통령(1865­1869)에 취임한 앤드루 존슨이 취임후 기자들에게 자신의 직업과 관련해 한 말이다. ○의회 도전 강력하게 맞서 동부 테네시의 소도읍 그린빌에서 양복점을 경영하며 정치인으로 성장한 존슨 대통령의 존재는 전임자의 탁월한 업적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그러나 그는 남북전쟁으로 갈기갈기 찢겨진 미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또 의회의 도전에과감히 맞서 대통령의 권한을 수호해냈다.세기의 부동산 거래라고할 러시아로부터 720만달러에 알래스카 구입도 그의 재임중 일이다. 무엇보다도 무학(無學)의 양복쟁이에서 미합중국 대통령에 오른 그의 입지전적 생애는 일반대중 모두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널리 기억되고 있다. 1865년 4월14일 밤,워싱턴 DC 한복판의 포드극장에서 연극 관람중 남부 과격주의자인 존 부츠에 의해 링컨 대통령이 피격된지 하룻만에 사망하자 남북전쟁의 전후처리문제로 시끄럽던 미정국은 혼돈의 와중에 빠지게 됐다.재선된 링컨의 임기가 시작된지 불과 40일만 이었다. 15일,뜬 눈으로 밤을 지샌 부통령 존슨은 링컨이 눈을 감은 극장앞 3층집의 옆방에서 각료들이 모인 가운데 대법원판사 새몬 체이스 앞에서 취임선서를 했다.그는 링컨의 정책을 계승하면서 자유정부의 원칙과 대중의 권익보호에 압장설 것임을 강조했다. 당시 최대 현안은 항복해온 남부 주들의 재건문제 였다.링컨과 마찬가지로 존슨은 현 지도자들에게 주정부를 맡기는 점진적인 재건계획을 지지했다.또한 남부에 취해졌던 해상봉쇄령을 풀고 대사면령도 내렸다. 같은 공화당 내에서도 점령군의 입장에서 남부 반란자들을 혹독하게 다룰 것을 주장해온 북부 중심의 과격파들은 이같은 존슨의 유화책에 크게 반발했다.의회는 남부 전역에 군사정부를 설치하고 400만 자유노예를 위해 강력한 자유노예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그러나 존슨은 거부권으로 맞섰다. 대통령의 유화책을 악용한 남부의 기득권층들은 여전히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며 흑인들에게 사적인 형벌을 가하는 등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됐다. 대통령과 의회와의 불협화음은 점차 심화됐으며 이는 양자간에 보다 큰 권력장악을 위한 힘겨루기 양상을 띄어갔다.마침내 중간선거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급진파는 자신들의 주장이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존슨의 축출을 모의하게 됐다.그러던 차에 존슨이 급진파와 가까운 국방장관 애드윈 스탠턴을 해임하자 상원 동의 없이 대통령 임의로 각료를 해임할수 없다는 공직신분보장법 위반을 구실로 대통령 탄핵안을 표결에 부쳤다. 두달여의 논란 끝에 68년 5월,탄핵안은 하원에서 128대 47로 통과 됐다.이어 상원의 표결로 존슨의 대통령직 존속 여부가 결정되는 순간 이었다.그러나 전체 54명중 35명만 찬성,3분의 2 선에서 1표가 모자람으로 존슨은 아슬아슬하게 미 역사상 최초의 탄핵을 면할수 있었다. ○이웃 구둣방집 딸과 결혼 69년 대통령 퇴임후 존슨은 고향으로 돌아와 연방의회 진출을 다시 도모했다. 두차례 하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했으나 74년 마침내 상원의원으로 선출돼 뜻을 이뤘다.그러나 7개월후 6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1808년 노스 캐롤라이나의 랠리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존슨은 3세에 부친이 죽자 생활이 어려워진 모친이 돈을 받고 9세때 양복점집으로 보냈으며 어깨넘어로 양복일을 배우게 됐다.그러나 양복점 주인과 어머니와의 계약이 21세때까지라는 사실을 알게되자 그는 15세때 그곳을 도망쳐 여러곳을 전전하다 18세때 그린빌에 정착,양복점을 개업하게 됐다. 그는 성실하게 일했고 솜씨 또한 좋아 이내 유명해졌으며 이듬해에는 이웃 구두방집 딸인 엘리자 메카들과 결혼해 자리를 잡게 되었다.메카들은 남편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매사에 열심인 존슨은 남다른 학구열을 보였다. 그의 양복점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활발한 토론을 벌이는 마을의 사랑방이 되었다.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있던 그는 20세에 시의원으로 선출됐으며 2년후에는 시장으로 선출됐다.그후 주하원,주상원의원을 거쳐 연방하원에 진출했으며 테네시 주지사,상원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다.그는 모든 선출직을 단계적으로 거쳐 링컨의 러닝메이트가 됐던 것이다. ◎“노력하는 서민 대통령으로 인식”/사적지 박물관·옛양복점·私邸·묘지 등 보존/“생전에 쓰던 재단기구서 존슨의 숨결 느껴”/카렌 래핑웰 존슨사적지 안내 담당관 【그린빌(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애팔래치아 산록 구릉에 위치한 그린빌시가지 한복판에 자리잡은 앤드루 존슨 국립사적지의 카렌 래핑웰 안내담당관은 “앤디(존슨 대통령의 애칭)가 양복지을때 사용하던 가위,다리미,골무 등을 볼때마다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면서 “지금도 양복점 건물 안으로 앤디가 들어설 것같다”며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존슨 사적지는 어떻게 구성돼 있는가. ▲비지터 센터를 중심으로 박물관과 옛양복점,옛집 등이 있고 메인스트리트에 사저가 있으며 시가지 남쪽에 앤드루 존슨 국립묘지가 있다.특히 앤디가 경영하던 양복점은 목조건물로 부식돼가고 있기 때문에 1958년 국립공원국의 관리로 되면서 건물 외부에 기념관을 지어 실내건물로 만듦으로써 이건물을 영구보존 할수 있게 됐다. ­존슨의 양복점에 얽힌 에피소드는. ▲앤디는 18세때 개업해서 12년 동안 양복점을 운영했다.시의원,시장,주하원의원 때까지 그의 직업은 양복쟁이 였다.그의 양복점은 매우 장사가 잘됐던 것으로 전해진다.양복점을 그만둔 후에도 자신의 옷은 손수 지어 입었으며 주지사 시절 우정의 표시로 이웃의 켄터키 주지사에게 양복을 지어 선물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린빌 시민들의 존슨 대통령에 대한 반응은 어떠한가. ▲앤디 생존시의 그린빌은 인구 500명 이었으나 오늘날은 1만4천명의 큰도시가 됐다.그러나 대통령의 도시에 사는데 대한 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비지터 센터 옆 길모퉁이에의 동상과 도시 남쪽에 우뚝 솟은 국립묘지의 중앙에 높은 기념탑을 세운 것은 이곳 시민들이다. ­존슨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링컨의 그늘에 묻히고 의회의 강한 견제로 라이딩스의 대통령 평가 순위는 41명중 39위로 바닥권이다. 그러나 그는 서민대통령으로 노력하는 대통령으로 미국민들에게 심어져 있다.
  • 앤드류 잭슨(미국의 대통령 문화:14)

    ◎미 영토 확장 크게 기여한 전쟁영웅/개척농민 유복자로 변호사·의원·대법판사도/귀족정치서 대중정치시대 연 첫 서민대통령 【내슈빌(미테네시주)=나윤도 특파원】 미국의 7대 대통령(1829­1837) 앤드류 잭슨은 미합중국 정치문화에 ‘대중시대’의 개막을 의미하는 이른바 ‘잭소니안시대’을 전개시킨 대통령으로 전 미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당시 6명의 전직 대통령이 버지니아,매사추세츠 등 동부 출신의 대농장주 후손으로 좋은 정규교육을 받은 ‘신흥귀족’ 출신이었던데 반해,그는 가난한 개척농민의 유복자로 통나무집(log cabin)에서 태어났으며 정규학교라고는 문턱도 밟아본적이 없었다.그 때문에 첫 ‘서민대통령’으로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미국의 영토를 확장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전쟁 영웅으로 추앙되어 대통령에 오른 잭슨은 대통령직 자체를 ‘최고의 지위’라기 보다는 ‘일할수 있는 기회’로 인식했다.그는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했으며 미국 정치사에서 현대적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시킨 대통령으로남아 있다.그래서 그는 강인함 또는 단단함의 상징인 히커리나무에 비유되어 ‘올드히커리’(Old Hickery)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올드 히커리’ 애칭 영국과의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67년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으로 노스 캐롤라이나의 시골에서 태어난 잭슨은 태어나기 직전 아버지의 병사로 홀어머니에 의해 양육됐다.성질이 급하고 거친 그는 싸움질을 일삼아 아들을 목사로 키우고 싶었던 어머니의 꿈은 일찌감치 포기해야할 정도 였다. 장로교 목사로부터 가까스로 글을 깨친 그는 14세때 독립군 민병대에 가담,소년병으로 영국군과의 전투에 참가했다. 잭슨은 용맹스럽게 싸웠으나 이듬해 영국군에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그러나 적개심에 불타던 그는 구두를 닦으라는 영국군 장교의 명령에 불복,그로부터 칼로 머리를 맞아 깊은 상처를 얻게 됐다.그는 평생동안 그 상처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다녔다. 포로교환으로 풀려나온 그는 솔리스베리의 한 변호사 밑에서 법률공부를 시작,20세때인 1787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이후 테네시주 내슈빌로 옮겨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96년에는 새로 주로 승격된 테네시주의 연방하원의원에 선출됐으며 이어 상원의원,테네시 대법원 판사를 역임했다. 그의 호전적인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1812년 미합중국의 선전포고로 영국과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 였다.4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민병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잭슨은 인디안과의 전투에서 연승,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으로부터 미군 중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서남부 전체 미군의 지휘권을 얻게 됐다. 잭슨은 플로리다 펜사콜라 전투에서 승리,플로리다를 장악했으며 15년 겨울,뉴올리언스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영국군과 미군과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사령관을 포함한 2천600명의 사망자를 낸 반면,미군은 단지 8명의 사망자만 냈을 뿐이었다. ○영군과 전투서 대승 세계 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방적 승리로 기록된 뉴올리언스의 승전은 영국민에게는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줬다.그동안 군사력 열세에서 유럽 강대국들에 소극적 대응을 해오던 미국은 자신감을 갖게 됐으며 국제사회에 독립국가로서의 위력을 과시하게 됐던 것이다.지금도 뉴올리언스 시가지 한복판에는 포효하는 말에 탄 그의 동상이 높이 서있다. 이같은 그의 업적은 그를 자연스레 1824년 새로 태어난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부상시켰다.잭슨은 1차투표에서 승리했으나 과반수에 미달했고,2차투표에서 정치적 흥정에 의해 존 퀸시 아담스에게 고배를 들고 말았다.그러나 잭슨은 4년후 다시 도전,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됐다. ○첫 암살대상자 기록도 잭슨은 작은 정부를 강조하면서 정부와 국민이 어떻게 하면 가까와질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율의 관세제도를 개혁,관세율을 낮추었으며 예산절감을 통해 연방예산의 잉여분을 주정부에 골고루 이월할 것을 제안했다.따라서 그는 연방정부가 공공복지사업이나 건설사업 등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반대했다.정부의 지나친 부채는 국민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까지 주장했다.이같은 국민편에 선 통치는 그의 재선을 무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잭슨은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많은 시행착오도 일으켰다.친구들을 요직에 등용,‘주방내각’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인사행정의 난맥상을 보인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특히 그는 이혼녀인 부인 레이첼을 따라다니는 악의적 소문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그 문제로 대통령이 되기전까지 많은 사람들과 결투를 벌이곤 했다.그는 또 1935년 실패로 돌아갔지만 암살기도가 발생,역대 미대통령 가운데 처음 암살대상이 되는 기록도 세웠다. 그의 주요 업적으로는 ▲영토의 확장 ▲귀족정치에서 대중정치로의 전환 ▲연방정부의 부채청산으로 건전재정 확립 ▲부패한 연방은행의 규제제도 확립 등이 꼽히고 있다.대중정치의 확립은 라이딩스의 미대통령 랭킹에서 잭슨은 42명 가운데 비교적 높은 8위에 랭크되고 있다.그는 69세 대통령을 퇴임하여 자신의 농장인 내슈빌 교외의 허미티지에서 78세로 숨을 거둘때까지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 ◎잭슨 유적지 ‘허미티지’/평생 가꿔온 사저… 테네시주 내슈빌 위치/55만평에 정원·교회·농장·후손들의 집도 【내슈빌(미테네시주)=나윤도 특파원】 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유적지로 지정된 ‘허미티지(Hermitage)’는 잭슨이 평생을 가꿔온 사저로 컨트리뮤직으로 유명한 테네시주의 주도,내슈빌에 위치해 있다. 외딴집이라는 의미의 허미티지는 55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에 잭슨과 그 가족이 기거하던 맨션을 중심으로 부인 레이첼을 위해 만든 정원과 교회,후손들의 집 등 각종 부속건물과 농장으로 돼있다.비지터센터 뒤에 위치한 맨션에는 잭슨 생존 당시의 실내장식과 함께 가재도구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18세기말∼19세기 중반에 이르는 당시 미국 상류사회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이 터는 잭슨이 내슈빌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며 1804년부터 조금씩 구입해 모은 것으로 오늘날의 형태가 갖춰진 것은 대통령 재임중인 1833년 무렵이며 37년 대통령 퇴임후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허미티지는 워싱턴 교외에 위치한 조지 워싱턴 사저인 마운트버논과 함께 미국내 대통령문화 보존의 한 본보기로 유명하다.1889년 애미 잭슨에 의해 창립된 허미티지부인회에 의해 보존되고 운영되고 있으며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이 부인회는 내년 2월 창립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애미 잭슨은 자식이 없던 잭슨 대통령 양아들의 아들인 잭슨3세의 부인이다.그녀는 45년 잭슨 사망후,수십년 동안 역사적 장소가 일부는 팔려나가고 퇴락해가는데 안타까움을 느낀 끝에 허미티지부인회를 결성,유적지키기에 나섰던 것이다. 30년 앞서 결성된 마운트버논부인회와 함께 허미티지부인회는 남자들이 남북전쟁의 와중에서 전쟁에 휩쓸려 있는 동안 부인들의 힘으로 문화유적을 지켜낸 훌륭한 본보기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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