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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경 온다는 게 좋아” 이경실 위로한 ‘아이콘택트’[종합]

    “역경 온다는 게 좋아” 이경실 위로한 ‘아이콘택트’[종합]

    개그우먼 이경실이 채널A ‘아이콘텍트’를 통해 근황을 공개했다. 9일 방송된 채널A ‘아이콘택트’에서는 개그우먼 박미선이 MBC 예능 프로그램 ‘세바퀴’에서 함께 활약한 이경실에게 눈맞춤을 신청했다. 이날 박미선은 눈맞춤 전 진행된 인터뷰에서 ‘세바퀴’ 출연 당시 친했던 멤버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방송 생활 30년 넘어서 보니까 남는 건 사람밖에 없다”며 “‘세바퀴’ 때 너무 즐거웠고, 재밌었다”며 자매 같았던 동료들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세바퀴’ 멤버들은 방송 종영 이후에도 정기 모임을 가지며 우정을 쌓았지만, 각자 바쁜 스케줄 탓에 모임이 이뤄지지 않아 마지막으로 다 같이 만난 게 벌써 2년이나 지났다고. 박미선은 ‘세바퀴’ 멤버 중 이경실을 눈맞춤 상대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내가 언니한테 너무 못한 거 같다. 나 살기도 바빴고,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항상 생각은 있지만 그걸 표현 안 하고 살았다”고 밝혔다. 처음으로 눈을 바라보며 마주 앉은 박미선과 이경실은 말없이 눈맞춤을 하는 시간이 어색한 듯 수다를 떨고 싶어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진지한 눈맞춤을 이어갔다.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이경실은 근황을 묻자 “도인 같이 살았다. 친구들하고 같이 등산 다녔다. 한라산에서부터 백두산까지도 가고,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중에 제일 높은 칼라파타르도 다녀왔다”며 “마음의 끈을 놓으면 병에 걸릴 거 같아서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계속 밖으로 여행을 다녔다”고 답했다. 또 박미선이 자신을 눈맞춤 상대로 초대했다는 말에 “미선이는 모자람이 없는 아이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버릴 게 없는 아이”라며 애정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미선이와 만나자고 얘기한지만 2년 된 거 같다. 더 자주 못 만난 게 아마 나 때문에 더 못 만났을 거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일을 안 하는 상태였고, 그러니까 아마 만나는 게 꺼려지지 않았을까 싶다”고 털어놨다. 눈맞춤이 끝난 후 박미선은 이경실에게 “곱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강한 모습의 이경실이 아니라 내가 아는 모습”이라며 “난 언니의 고운 모습을 안다. 언니가 어떻게 살아왔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언니가 잘 아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이경실도 “나는 널 점점 알아가면서 또 다른 나를 보는 거 같았다”고 공감했다. 이후 박미선은 이경실이 힘들었을 당시 곁에 있어 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털어놨다. 하지만 이경실은 “난 너희들한테 미안했다. 그냥 너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 같다. 곤란했을 거 같다”며 오히려 더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또 이경실은 “어려운 일 겪으면서 느낀 게 내가 건강해야 다시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산에 다니고 운동했다”며 “이 산을 잘 넘어야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걸 발판으로 뭔가 더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 순간 박미선이 소환한 선우용여와 조혜련이 등장했고, 오랜만에 다시 보인 ‘세바퀴’ 멤버들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혜련은 “친하지만, 그 사람에게 어떤 얘길 꺼내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미선 언니가 용기를 냈기에 우리가 양 날개가 되기로 하고 온 것”이라고 말했다.여전한 입담을 자랑하는 네 사람은 ‘세바퀴’ 당시 즐거웠던 추억부터 서로에 대한 미안함 등을 털어놓으며 그동안 못다 한 진심을 나눴다. 특히 이경실은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멤버들에게 “내 주변 사람들이 내가 일을 안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불편해한다는 걸 안다”며 “내 걱정 한다는 것도 알고 왜 연락 못 하는지도 안다. 그냥 내가 시간을 잘 보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을 걱정해주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이날 선우용여는 “역경이 온다는 게 좋다. 역경이 감사하다. 날 깨닫게 해주고 날 발전하게 해주고 이제는 빛만 보이는 거다. 앞으로 더 좋은 일만 생길 거다”라고 이경실을 응원했다. 박미선은 ‘세바퀴’ 멤버들이 전처럼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고 이경실에게 제안했고 이경실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네 사람은 포옹하며 한 달에 한 번씩 모이기로 뜻을 모았다. 한편 이경실은 2003년 동갑내기 전 남편 손 모 씨의 폭행으로 이혼을 한 후 2007년 9세 연상의 사업가 최 모 씨와 재혼했다. 그러나 최 씨는 2015년 8월 지인의 아내를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10월을 선고 받았고, 이경실도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500만 원 지급 판정을 받았다. 이경실은 그 사건 이후 방송국의 섭외전화가 끊겼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김사부’ 안효섭 “한석규는 나의 정신적 지주”

    ‘김사부’ 안효섭 “한석규는 나의 정신적 지주”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에서 타고난 수술천재 외과 펠로우 서우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안효섭(25). 2015년 tvN 드라마 ‘바흐를 꿈꾸며 언제나 칸타레 2’로 데뷔한 그는 이번 작품으로 5년만에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이 작품에서 김사부(한석규)의 가르침으로 진짜 의사로 성장하는 모습을 밀도있게 그렸던 그는 드라마 출연자들 가운데 가장 의지한 사람으로 한석규를 꼽았다. 안효섭은 “한석규 선배님이 연기적으로도 그렇고 어른으로서도 가이드라인을 잘 잡아주셔서 굉장히 의지를 많이 했다”면서 “정신적 지주도 돼주시고 항상 응원해주시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배우로서의 롤모델로도 한석규를 꼽은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낭만닥터 김사부2’”라면서 이번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독서와 클래식 음악 감상으로 감수성을 키운 그는 “평소에는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을 선호한다”면서 “극중 서우진과 실제 성격도 싱크로율이 높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진중한 태도가 매력인 그는 “먹는 CF가 욕심난다. 뭐든 복스럽게 먹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방송가에 20대 남자 배우 기근 현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안효섭은 신작 드라마들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등 안방극장의 기대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는 “배우로서 아직 갈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는 것이 목표”라고 의지를 다졌다. 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영상 문성호 김형우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이병도 서울시의원 “장애인가정의 임신·출산·양육 지원 확대”

    부(父) 또는 모(母)가 「장애인복지법」 제32조에 따라 등록한 장애인으로 구성된 장애인가정의 임신·출산·양육 지원을 강화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이병도 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평2)은 기존에 ‘여성장애인’에 한정하여 지원하던 임신·출산·양육 지원 대상의 범위를 ‘장애인가정’으로 확대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서울특별시 여성장애인 임신·출산·양육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지난 6일 제291회 임시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그동안 기존 조례를 근거로 여성장애인의 임신·출산·양육 등을 지원하는 홈헬퍼 지원사업과, 여성장애인(국비 50%, 시비 50%) 또는 장애정도가 심한(종전 1~3급) 남성장애인의 배우자(시비 100%)에 대한 출산비용 지원사업을 시행해 왔다. 그러나 개정된 조례에 따라 앞으로는 대상자의 성별과 장애정도 등에 관계없이 모든 장애인가정이 임신·출산·양육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병도 의원은 “장애인가정의 경우 부 또는 모의 장애로 인한 제약으로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침해되고,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지원 대상의 범위를 확대하고, 임신·출산·양육은 부부가 함께해야 한다는 사회적 관점을 반영하고자 조례를 개정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제명을 「서울특별시 여성장애인 임신·출산 양육 지원 조례」에서 「서울특별시 장애인가정 임신·출산·양육 지원 조례」로 바꾸고, ▲각각의 조문에서 ‘여성장애인’을 ‘장애인가정’으로 변경하여 규정하는 한편, ▲장애인가정에 대한 임신·출산·양육 실태조사를 5년마다 실시하도록 명시함으로써 서비스 지원 대상자의 욕구와 특성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고, 장애인가정의 안정적인 생활을 도모할 수 있도록 했다. 이병도 의원은 “이번 조례 개정을 통해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가정이면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장애 유형별, 자녀 연령별, 장애가족 유형별로 욕구에 부응하는 정책이 마련되어 장애를 가진 부부라도 걱정 없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고, 부모의 장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양육 공백을 빈틈없이 메워 부모와 아이 모두 안정적인 환경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코로나19, 숫자로 남은 사람들/박찬구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코로나19, 숫자로 남은 사람들/박찬구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OOO번 환자, 60대 중반 기저질환자….’ 수십년 인생의 이력과 사연이 ‘몇 번 환자’라는 숫자 하나로 남는다. 남겨진 사람들, 그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희생자의 지나온 일생과 마지막 순간은 어떻게 기억될까. 코로나19가 지나간 흔적에는 ‘그때 몇 번 환자는 어땠지’ 하는 정도의 메마른 기억만 남을지 모를 일이다. 그들의 이루지 못한 꿈, 손주들의 재롱, 소박한 일상의 희로애락에 대한 미련을 공동체는 보듬을 길이 없다. 확진환자에게 할당된 번호가 세 자리, 네 자리 수로 늘어나면서 어느새 바이러스에 순치돼 가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일이 잦아진다. 때로는 개개인의 사연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연번(連番)에 우선 눈이 가는 무신경에 몸서리를 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생경한 일상은 반복된다. 확진환자, 의심환자, 격리조치, 밀접접촉자…. 증상의 정도에 따라 사람을 나누고 규정짓는 단어들이 하루하루 공동체의 치부를 파고드는 듯하다. 바이러스에 취약한 우리 내부의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국내 첫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거의 50일이 지났다. 바이러스의 거침없는 확산에도 놀랐지만 바이러스로 인해 드러난 폐쇄병동의 현실, 사회적 약자들의 실상은 한마디로 충격이다. 바이러스는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공동체의 빈틈을 교묘히 파고들어 똬리를 틀었다. 스러진 약자들과 유언 없는 죽음, 코로나19는 메르스와 사스의 교훈을 망각한 공동체의 치부를 헤집고 들었다. 그뿐인가. 희생과 헌신으로 바이러스와 싸우는 구성원들이 있는 반면 어떤 부류는 혼란의 틈새에서 치부에 연연하거나 거짓 선동으로 혼란을 부추긴다. 누군가는 마스크를 사재기하고 또 어떤 이들은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환자들과 특정 집단에 낙인을 찍는다. 철모르는 극소수의 행태가 아니다. 수사당국이 마스크 매점매석 업체를 강제수사하고 가짜뉴스 유포행위를 단속할 정도라니, 환부는 깊숙하고 곪았다. 바이러스와 싸우기에도 지친 방역당국까지 직접 나서 가짜뉴스와 그릇된 정보들이 현장 의료진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방역 업무에 혼선을 초래한다고 호소할 정도다. 우리를 비웃듯 바이러스는 공동체의 모순과 부조리를 까발리며 스스로 돌아보지 못한 우리 내부의 이기심과 치부를 선연히 드러내고 있다. 반면 일상의 익숙했던 흔적들은 바이러스로 인해 하나씩 지워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방역당국의 표현에 따르면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다. 의심증상을 보이는 사람과는 친구든 가족이든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모임도 자제해야 하고, 온라인·재택 근무가 권고된다. 확진환자가 나온 정부세종청사에서는 전체 17개 동(棟)의 각 동 간 연결통로가 차단됐다. 식당이 없는 동에 한해 점심시간에 일시 해제되는 것 말고는 예외가 없다. 전국 어디서든 확진환자 동선은 차단되고 봉쇄된다. 골목길은 휑하고 일상의 거리에는 마스크와 침묵이 흐른다. 최근 들어 확진환자 증가세가 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지만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정작 이제부터일지 모른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드러난 방역 허점을 되짚어보고 현장 대응에서부터 방역체계에 이르기까지 고칠 건 고치고 보강할 건 보강해야 한다. 바이러스가 또다시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로 스며들지 않도록 공동체 내부의 연대를 다지고 부조리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일도 긴요하다. 위험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 그것이 우리 공동체가 존재하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언제나 절실히 원할 수 있는 어떤 것, 그래서 가끔은 손에 쥘 수도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애정임을 이제 그들은 알게 된 것이다.’(알베르 카뮈 ‘페스트’에서) ckpark@seoul.co.kr
  •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 40일 만에 체포된 용의자는 ‘아빠’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 40일 만에 체포된 용의자는 ‘아빠’

    2019년 8월 22일, 어머니와 함께 집을 보러 가기로 한 은정 씨가 온종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친정 식구들은 전날 밤 보냈던 문자에도 답이 없던 은정 씨가 걱정되어, 밤 9시경 은정 씨 빌라를 찾아갔다. 하지만 불은 모두 꺼져있었고,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밤 11시경,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열고 들어간 가족들. 후덥지근한 공기로 가득 차 있던 집안에서 묘한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은정 씨(가명)와 여섯 살배기 아들 민준 군(가명)은 낯선 방문자가 다녀간 밀실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참혹한 모자의 상태에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발견된 은정 씨는 아이 쪽을 바라보며 모로 누워있었고, 거꾸로 누운 어린 아들의 얼굴 위에는 베개가 덮여있었다. 부검 결과 두 사람의 사인은 모두 목 부위의 다발성 자창. 은정 씨는 무려 11차례, 민준이는 3차례에 걸쳐 목 부위를 집중적으로 피습 당한 상태였다. 몸에 별다른 방어손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둘 다 잠옷을 입은 채 발견된 점으로 보아 누군가 잠든 모자의 목 부위만을 고의로 노려 단시간에 살해한 것으로 추정됐다. 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 미스터리를 파헤쳤다. 전문가들은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강력한 힘으로 찔렀을 것이라 분석했다. 또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위에 올라타 찔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은정씨는 반팔 티셔츠에 속옷만 입은 상태였고 민준이도 얇은 내의 차림이었다. 수사가 거듭될수록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외부침입의 흔적이 없었던 것. 현관문을 억지로 연 흔적도, 베란다나 창문으로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물건을 뒤진 흔적이나 사라진 귀중품도 없었다. 피해자들이 피를 엄청나게 흘렸지만 침대 밖 어디에도 피 묻은 손자국이나 발자국이 없었다. 지문이나 족적 하나 남기지 않고 범인은 어디로 들어와 어떻게 빠져나간 것일까. 10월 초, 사건 발생 40여 일 만에 용의자가 체포됐다. 그날 아내의 행방을 모른다 했던 은정씨의 남편이자 6살 민준이의 아빠 조 모씨였다. 지난해 10월 구속된 후 조씨는 일관되게 무죄를 호소하고 있다. 이 사건은 현재 치열한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남편 “나가기 전까지 두 사람 살아있었다” 살해 당하기 전 8월 21일 오후 은정씨는 근처에 사는 언니 집에 잠시 놀러 갔다고 한다. 민준이의 하원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에 들렀던 민정씨. 모자는 오후 4시28분 집으로 들어갔다. 지인들은 메시지 등을 보여주며 저녁까지도 이상한 낌새가 없었다고 했다. 평소 아침부터 밤까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해왔다는 친구들. 은정씨까지 9명이 함께 한 단체 채팅방에서는 저녁 메뉴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출판 일을 하던 은정 씨는 오후 8시40분께 업무 관계자와도 대화를 나눴다. 언니, 오빠와의 채팅방에서도 오후 8시49분까지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그 이후 은정씨는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빌라 이웃들은 그날 밤 수상한 차량을 봤다고 말했다. 수요일 밤에 있었는데 날이 밝았을 때는 보이지 않았다는 차량. 가끔씩 보였던 검은색 SUV 차량. 그런데 전에는 보였던 블랙박스 불빛이 그날 따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방범CCTV에 차량의 모습이 포착됐다. 은정씨 남편 조씨의 검은색 SUV였다. 조씨는 그날 오후 8시56분 집으로 돌아왔다. 조씨의 차량은 다음날 새벽 1시35분께 집을 떠났다. 조씨는 자신의 작업장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평소 집에 거의 오지 않았다는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아내에게 문자가 와 민준이가 만든 것을 가져다 달라고 해서 시간 맞춰서 갔다. 밤 9시쯤 도착해 아이와 놀다가 배가 고파 혼자 밥을 먹었다. 밤 10시쯤 침대에 누워 다 같이 잤다. 새벽에 잠이 깨 작업장에 가겠다고 집을 나섰다”고 말했다. 당시 아내와 아이가 살아있었다는 것이 남편 조씨의 주장이다. 조씨가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자 가족들과 지인들 모두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은정 씨의 유가족들은 사건 당일 조씨의 행동이 이상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처가 식구들이 돌아가며 은정 씨 안부를 확인했지만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딸의 죽음을 확인한 후 아버지는 “제일 알아야 될 사람이 사위인 것 같아서 전화했다. ‘은정이 갔다’ 이렇게 말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장인과의 통화 후에도 조씨는 응답 없는 은정씨에게 문자 메시지만 보냈다고 한다. 당시 경찰과 온 그를 봤던 이웃 역시 조씨의 모습이 의아했다고 했다. 은정씨 친구들도 “장례식장에서도 잠깐 왔다 갔다고 하고 제대로 못 봤다”고 밝혔다. 모자의 빈소에 잠시 방문했을 뿐 상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조씨 부모는 “갑자기 어저께 만나고 온 자식 마누라가 오늘 죽었다고 한다. 멍해져 버리는 거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항변했다. 조씨는 ‘은정이가 갔다’는 말이 죽었다는 의미인지 꿈에도 몰랐고 모든 것은 은정 씨 가족의 오해와 음해라고 했다. 상주 역할을 못한 것에 대해서도 조씨 부모는 “아들이 갔었는데 못 들어가게 제지하고 막아버린 거다. 장례식장에 나도 갔다. 아들을 못 들어오게 하더라. 무슨 권한으로 그러는지. 살벌해서 전날 장지를 먼저 갔다. 가서 다 보고”고 주장했다. 범인은 모자 살해 후 욕실에서 손을 닦았다 사건 현장에서는 새로운 흔적이 나왔다. 감식 결과 욕실 세면대 배수구, 빨래 바구니 수건에서 피해자들의 혈흔이 발견된 것. 범인은 침실에서 모자를 살해 후 욕실에서 손을 닦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수건에서는 조씨의 DNA가 함께 검출됐다. 조씨 부모는 “집에 갔는데 샤워를 했다. 같이 자고 같이 밥 먹는데 DNA가 안 나왔다는 게 (더 이상하다)”며 집안에서 아들의 DNA가 검출됐으나 조씨의 차량이나 작업장에서는 어떤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현장을 분석한 프로파일러는 “여성과 아이만 있다. 늦은 시간이다. 이 정보를 알고 있지 못한다면 남편이나 다른 가족이 귀가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좁은 동선을 빠르게 들어 와서 저항하지 않는 피해자들을 일방적으로 살해하고 도주하는 과정에서도 침착하게 문을 닫아놓고 간 행동이 면식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을 공격하고 도망가면 되는데 불구하고 아들의 얼굴을 베개로 덮었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느끼는 어떤 감정 때문에,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나 미안함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택근무를 하며 대부분의 일상은 민준이 엄마로 살았다는 은정씨. 사건 발생 무렵 은정씨와 남편 조씨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조씨를 대신해 생활비는 물론 작업장 운영비까지 부담했다는 은정씨. 육아도 그녀의 몫이었다고 한다. 신혼 초부터 작품 활동을 이유로 외박이 잦았던 남편은 몇 년 전부터 집에 거의 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을 보러 집에 오라고 사정을 해왔던 은정씨. 두 사람의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2018년 10월엔 이혼 얘기까지 나왔다. 가족에 무관심한 남편에게 서운함을 표하자 조씨가 먼저 이혼하자고 말했다. 반면 조씨 부모는 아들이 가정에 일부 소홀했더라도 사건 발생 무렵에는 부부 사이가 좋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세 식구는 사건 발생 몇 달 전부터 물놀이를 가거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경찰이 남편 조씨를 범인으로 만들었다는 조씨 부모의 주장은 무엇일까. 경찰은 조씨의 차량과 작업실에 있던 옷까지 꼼꼼하게 조사했지만 직접 증거는 찾지 못했다. 증거를 찾지 못했다. 조씨가 새벽 1시 35분 이후 집에 들어가 모자를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는 이 집을 찾은 마지막 방문자였을까. 조씨는 그날 새벽 1시 35분 집을 떠났다. 경찰은 교통 CCTV를 뒤져 그의 차량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확인했다. 조씨는 곧바로 작업장으로 향했다. 세 식구가 함께 자다 혼자 잠에서 깨 작업장으로 돌아갔다는 조씨. 조씨는 작업실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고 오전 11시가 넘어서 외출했다. 가장 중요한 증거물인 범행 도구는 현재까지도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가족과 경찰이 범행 도구와 관련해 주목한 부분이 있었다. 은정 씨 집에 있던 칼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8년 전 어머니가 스페인 여행에서 사온 6개짜리 칼 세트였다. 제일 작은 과도는 친정집에서 사용했고 현장에서 발견된 건 네 자루 뿐이었다. 전문가는 “한쪽만 날이 있는 칼 같고 길이도 좀 있고 폭도 있다. 부엌칼 형태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칼날 길이는 15cm 전후, 폭은 4cm 이하일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피해자 몸에 남은 자창의 형태를 볼 때 칼날은 매우 예리할 것이라고 한다. 또 범행 도중 몸에 피가 묻거나 발로 밟은 흔적 같은 게 남기 마련인데 범행 현장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조씨 측은 사건 무렵 부부관계가 회복됐다며 범행동기가 없다고 주장했다.잠들었다는 남편, 경마 관련 어플 접속 살인범의 공격에 큰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사라진 은정씨 모자. 수요일 밤 남편이 도착했던 9시께 모자는 살아있었을 것이다.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밤 10시가 넘어 함께 잠이 들었고 1시에 잠에서 깨 작업실로 갔다고 했다. 그런데 밤 12시 다 된 시간, 10시에 잠들었다고 한 조씨가 4분간 경마 관련 어플에 접속한 흔적이 발견됐다. 조씨 부모는 “아들은 접속한 적 없다고 한다. 은정이가 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조씨와 부모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세 명이 있는데 아이는 이걸 할 수 없을 거다. 자기가 안 했으면 부인이 했다는 거다. 부인은 12시에 깨어있었다는 거다”, “일상적으로 휴대폰 어플에 접속할 수 있다. 기록이 있는데 굳이 자기는 자고 있었다고 한다는 건 그 시간에 자기가 깨어있었다는 걸 감춰야 할 이유가 있다는 거다”고 분석했다. 경찰 수사 결과 조씨가 결혼 전부터 한 여성과 만남을 가졌고, 사건 3개월 전부터는 경마 배팅으로 상당한 돈을 사용하고 있었다. 조씨 가족들은 이에 해당 여성이 아들을 일방적으로 좋아했고 외도를 했다 하더라도 살해 동기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반면 이 여성은 조씨가 아내와 화해했던 7월과 8월초까지도 그녀에게 곧 이혼할 거라 말했다고 밝혔다. 또 이 여성은 “아이 보러 안간다고 하고. 부부 사이가 안 좋아서 애도 별로 안 좋아하나 생각했다. 아이에 대해 친자 확인을 해야겠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조씨가 아들에게 별다른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며 친아들이 맞는지 의심하는 발언도 여러 번 했다는 것이다. 범죄심리학자들은 “7월에 화해하고 사과했을 땐 금전적으로 급했던 거 같다. 부인이 자기한테 아이 학원비라도 매달 30만 원씩 달라고 했을 때는 놀라고 황당해했다. 본인한테 효용 가치가 없고..”라고 분석했다. 조씨가 자신의 아내 은정씨를 어떤 존재로 생각했는지가 이 사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1심 재판 중인 조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재판에서 중요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두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간이다. 부검 당시 은정 씨와 민준이의 위에서 죽 상태 음식물이 발견됐다. 통상적으로 식후 6시간 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사람에 따라 편차가 커 논란이 되고 있다. 수요일 저녁 언니가 싸준 스파게티를 먹었던 두 사람. 식후 6시간 내에 사망했다면 조씨가 집에 머물 때와 겹친다. 전문가는 “위 내용물은 참 부정확하기는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가 잘 안된다. 그런데 두 명의 변사자가 동시에 돌아가셨을 때는 범위를 좁힐 수 있다. 한 명이면 단정하기 어려운데 두 사람이다”고 분석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우승하고 싶어서 울산에 왔습니다

    우승하고 싶어서 울산에 왔습니다

    프로축구 울산 유니폼을 입고 11년 만에 K리그로 복귀한 이청용(32)이 “우승을 하고 싶어서 울산에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분데스리가 2부 VfL 보훔에서 지난 3일 울산으로 완전히 이적한 이청용은 5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입단 기자회견을 갖고 김광국 울산 단장으로부터 등번호 ‘72’가 새겨진 새 유니폼을 받았다. ‘72’는 이청용의 생일(7월 2일)에서 착안했다. “11년 만에 K리그에 돌아왔다. 국내 팬들 앞에서 매주 경기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문을 연 이청용은 “유럽축구에 더는 미련이 없어서 복귀했다”고 설명했다. 이청용은 “제가 울산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우승하고 싶어서다”라고 강조했다. 울산은 2005년 이후 K리그 우승 경험이 없다. 이청용도 서울에서 뛸 당시 2006년 리그컵에서 정상을 밟아 본 게 우승 경력의 전부다. 그러면서도 그는 “물론 지금 우승을 논하는 건 좀 이르다”면서 “우승을 보고 시즌을 달려간다기보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청용은 “더 나이를 먹어 선수 생활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보다 최고 수준에서 경기를 할 수 있을 때 돌아오고 싶었다”고 K리그 복귀 배경을 설명하면서 “다만 위약금 문제는 FC서울과 다시 얘기해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청용은 FC서울을 떠나 볼턴에 입단할 때 K리그 복귀 시 다른 팀과 계약하면 6억원 가량의 위약금을 내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FC서울은 내가 가장 애정을 가진 팀 중 하나다. 울산 유니폼을 입었다고 해서 그 마음이 변하는 건 아니다. 어려서부터 프로 생활을 시작한 곳이고 축구선수로서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곳”이라면서 “이번 시즌 순위경쟁에서 잘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나타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경기도, 코로나19 현장대응 강화...역학조사관 59명 추가 임명

    경기도, 코로나19 현장대응 강화...역학조사관 59명 추가 임명

    경기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 증가에 대응하고자 4일 한의사, 치과의사를 포함한 시군 공중보건의사 59명을 역학조사관으로 추가 임명했다. 이로써 도 역학조사관은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있던 6명에다 이번까지 세 차례 충원을 통해 모두 87명으로 늘어났다. 이날 임명된 역학조사관은 코로나19 상황 종료 때까지 31개 시군에서 역학조사 임무를 수행한다. 17개 시군에는 해당 시군의 공중보건의 34명이 역학조사관으로 활동하며, 기존 공중보건의가 없는 14개 시군에도 25명을 배정했다. 이들은 평시에는 시군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고, 확진자가 발생하면 해당 시군의 심층 역학조사와 현장 대응을 지원한다. 앞서 도는 지난 1월에 민간 전문가 10명, 2월에 공중보건의 12명을 역학조사관으로 추가 임명한 바 있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르면 시도지사는 감염병의 유입 또는 유행으로 역학조사 인력이 부족한 경우 의료인을 역학조사관으로 임명해 일정 기간 직무를 수행하게 할 수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임명장 수여식에서 “단 한명의 감염자를 놓치면 그 사람으로 인해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며 “역학조사관들의 손에 수백 명, 어쩌면 수백만 명의 목숨과 공동체의 운명이 달려있으니 책임감과 애정을 갖고 총력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4
  • [열린세상] ‘함께’ 싸우는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양중진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열린세상] ‘함께’ 싸우는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양중진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큰애가 초등학생이던 8년 전 우리 집은 동물원이 됐다. 사연은 이랬다. 어느 날 퇴근해 보니 집에 토끼 두 마리가 들어앉아 있었다. 평소 동물을 기르고 싶던 아이가 친구로부터 덜컥 분양을 받아 온 것이다. 일주일 후 또 다른 식구가 생겼다. 아이가 학교 앞에서 오리 두 마리를 사 온 것이었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일주일 후 병아리 두 마리가 새로운 식구로 추가됐다. 역시 하굣길에 아이의 눈에 띈 덕분이었다. 때문에 한동안 아내는 아이들 키우랴 동물들 키우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우리 집 종합 동물원은 한 달 만에 문을 닫았다. 손으로 자꾸 만져 보며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던 아이들의 애정을 오리와 병아리가 견뎌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문을 닫진 않았다. 토끼들이 여전히 건재한 채로 베란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토끼의 평균 수명은 6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집 토끼들은 만으로 8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을 서로 할퀴고 부대끼며 거뜬히 살아 내고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가 ‘함께’하면 평균수명을 훨씬 넘겨 살 수도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지구상에는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를 포함해 최소 스물네 종의 인류가 살았다. 불과 5만 년 전까지만 해도 네 종이 호모사피엔스와 공존했다. 그중에서 네안데르탈인은 수십만 년 동안 종족을 유지하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뇌는 호모사피엔스보다 컸다. 체격도 크고 힘도 좋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호모사피엔스는 현재까지도 살아남아 있다. 이유가 뭘까. 학자들은 ‘함께’하는 집단의 크기가 종의 운명을 갈랐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기껏해야 7~8명으로 집단을 이루어 생활한 반면 호모사피엔스는 많게는 400명 정도의 집단을 이룬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집단의 크기가 두 인류의 운명을 갈랐다고 한다. 더 큰 집단의 크기가 더 넓은 소통과 교류의 기회를 갖게 했고, 이것이 결국 호모사피엔스를 생존의 길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걱정과 근심이 가득하다. 사람 사이의 접촉이 전염의 통로가 된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하다. 공기를 통한 전염이 아니라는 점이 다행이고 사람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점이 서글프다. 전문가들은 접촉과 교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는다. 하루 접촉자를 세 명 이내로 제한하는 사회학적 방역이 필요하다고도 한다. 때문에 각종 행사가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프로스포츠는 관중 없이 경기를 하거나 중단됐고, 개막도 연기됐다. 한국 천주교는 236년 만에 처음으로 성당의 미사가 중단됐다. 학교도 개학을 연기했다. 일부 기업은 재택근무나 특별휴가를 활용하고 있다. 개인적인 약속도 대부분 미루는 추세이다. 물론 접촉이라는 유전적인 본능을 제어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필요하다면 잠시 미뤄 두어야 한다. 그것이 소통을 끊자는 의미가 아님을 우리는 안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호모사피엔스는 사회적 교류를 통해 종족을 보존하는 ‘함께’의 가치를 유전적으로 지닌 종족이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훈훈한 소식이 그것을 증명한다. 격리 중이던 인턴 의사들이 지도교수에게 조기 복귀를 간절히 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천 명이 넘는 의료진이 생업을 제쳐두고 바이러스와의 싸움에 뛰어들었다. 성금과 물품 기부를 통한 응원도 줄을 잇고 있다. 소방관들을 위해 써 달라며 소방본부에 익명으로 마스크를 기부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손님이 끊겨 시름에 젖은 세입자의 월세를 몇 달 동안 감면해 주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바이러스에 맞서고 있다.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저력이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바이러스와의 싸움 최일선에서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 의료진과 여러 방면에서 지원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함께’ 싸우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도.
  • “‘뉴트론 잭’ 같은 기업지도자는 없었다”

    “‘뉴트론 잭’ 같은 기업지도자는 없었다”

    트럼프 “그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 찬사대규모 감원 의미 ‘중성자탄’ 별명 언급 생전에 이병철·정주영 회장 등과 교류 “‘뉴트론 잭’과 같은 기업지도자는 없었다. 그는 나의 친구이자 지지자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전날 타계한 잭 웰치 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이같이 추모했다. 미국 제조업의 아이콘이자 ‘세기의 경영자’로 추앙받은 웰치 전 회장은 생전에 대규모 감원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사람만 사라지게 하는 폭탄과 같다는 의미로 ‘중성자(뉴트론) 폭탄 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날 트위터를 통해 고인의 별명을 언급하며 애정을 표현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함께 훌륭한 거래를 이뤄냈다. 그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추억을 되새겼다. 고인이 20년간 몸담았던 GE의 래리 컬프 CEO는 성명을 내고 “오늘은 전체 GE 가족들에게 슬픈 날”이라면서 “그는 우리 회사의 모습과 비즈니스 세계를 다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는 잭이 원했던 것을 정확히 함으로써 그의 유산을 계속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1981년 최연소 GE 회장으로 올랐던 고인은 회사를 맡은 초기 120억 달러였던 시가총액을 그가 은퇴할 때 세계 2위 규모인 5050억 달러로 올려놓는 성공신화를 썼다. 월스트리트저널은 GE의 뿌리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 GE’는 웰치 전 회장이 일궜다고 평가했다. 과감한 구조조정과 숱한 인수·합병 등 고인의 경영방식은 다른 기업인과 경영학도들에게 교과서처럼 평가됐지만, 대규모 감원으로 얻어진 ‘뉴트론 잭’은 훈장이자 조롱이기도 했다. 웰치 전 회장은 물러나면서 제프리 이멜트 전 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했지만 GE는 이후 버블닷컴 붕괴와 9·11 테러, 글로벌 금융위기 등 악재를 만났다. 생전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웰치 전 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과 교류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정주영 회장과 사업을 논의하다가 이해관계가 엇갈리자 정 회장의 제안으로 팔씨름까지 벌인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99년 방한 때 고 김대중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는 “한국의 경제는 세계 각국에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며 “세계가 한국 국민들의 에너지와 경제회복 속도에 대해 놀랍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칭송하기도 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블루 드래곤, 11년 만에 K리그 누빈다…이청용 ‘구단 최고 대우’ 울산 입단

    블루 드래곤, 11년 만에 K리그 누빈다…이청용 ‘구단 최고 대우’ 울산 입단

    울산 현대, 이청용 영입 공식 발표··· “구단 최고 대우”연봉 10억원 이상 추정, 계약 기간은 3년으로 알려져 윤빛가람 이어 이청용까지··K리그 최고 미드필드 꾸려‘블루 드래곤’ 이청용(32)이 울산 현대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11년 만에 K리그로 돌아왔다.울산 현대는 3일 “국가대표 미드필더 이청용을 구단 최고 대우로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앞서 울산은 전날 밤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 보훔으로부터 이청용에 대한 이적 합의서를 받은 뒤 이날 메디컬테스트와 계약 등 입단 절차를 밟았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구FC에서 울산으로 둥지를 옮긴 골키퍼 조현우의 연봉이 10억원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어 이청용은 이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또 계약 기간은 3년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겨울 이적시장에서 국내 최고 미드필더 가운데 한 명인 윤빛가람을 영입한 울산은 이청용까지 가세하며 국내 최고의 미드필드 진용을 꾸리게 됐다. 전날 귀국한 이청용은 구단을 통해 “우승이라는 확실한 목표를 가진 울산 현대에 와서 기쁘다”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K리그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구단에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보여줘서 입단을 결심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축구선수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준 FC서울과 팬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면서 “이젠 울산 선수로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겠다”고 덧붙였다. A매치 89경기에 출전해 9골을 넣은 이청용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누빈 베테랑 윙어다. 2004년 FC서울에 입단한 뒤 2007년부터 셰놀 귀네슈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1군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활약, 당시 팀 동료였던 기성용(마요르카)과 함께 한국 축구의 차세대 에이스로 각광받았다. 2009년 당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소속이던 볼턴 원더러스의 유니폼을 입고 유럽에 진출해 맹활약을 펼쳤으나 2011~12시즌 개막을 앞두고 열린 프리시즌 경기에서 정강이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해 1년가량 그라운드를 떠나기도 했다. 2015년 프리미어리그 크리스털 팰리스로 둥지를 옮겼다가 지난 시즌부터 보훔 소속으로 뛰었다. 한편, 이청용은 2009년 FC서울을 떠날 때 K리그 복귀시 타 팀과 계약하면 6억원 정도의 위약금을 내기로 합의했지만, 아직 이 부분은 완전히 매듭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청용의 이적은 보훔과 울산 간 정식 계약에 따른 것으로 이청용이 울산 선수로 등록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울산 관계자는 “위약금 부분은 선수와 FC서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외따로운 그곳에서 홀로 서정꽃 피우다

    외따로운 그곳에서 홀로 서정꽃 피우다

    2019년이 다 가는 세밑에 춘천에서는 이색적인 문학 행사가 하나 열렸다. 강원문학을 소설과 시 양쪽에서 이끌어 온 전상국 선생과 이상국 선생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전상국 선생의 전집 첫 권인 ‘동행’과 이상국 선생의 문학자전 ‘국수’ 출간을 기념해 두 분의 이름을 따서 ‘상국’이라는 이름의 북 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우리에게 ‘아베의 가족’이나 ‘우상의 눈물’로 유명한 전상국 선생, 농촌 사회의 활력과 그늘을 동시에 투시해 온 이상국 선생은 모두 ‘강원도의 힘’을 선명하게 일군 대가급 문인이다. 특별히 이상국 선생의 ‘국수’는 40여년 동안 고향을 지키며 다듬어 왔던 삶과 생각, 시와 산문을 망라해 ‘시인 이상국’을 들여다보는 투명한 창(窓)이자 조감도가 되기에 족한 뜻깊은 지표가 돼 줄 것이다.그렇게 ‘서정시의 힘’으로 일생을 살아온 이상국 시인이 이번에 한국작가회의의 새로운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선생이 작가회의를 맡게 된 것은 두 가지 점에서 특징적인데, 하나는 선생이 주로 지역에서 활동해 온 문인이라는 점이고, 다른 것은 선생이 강한 저항시보다 깊은 서정시에 충실했던 시인이라는 점이다. 그의 이사장 선출로 인해 작가회의의 시선이 지역이나 자연 같은 문학의 다양한 심층적 원리로 확장해 갈 예감을 얻게 되는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일 것이다. ●고독한 시인의 탄생 이상국 시인은 1946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1976년 ‘심상’에 ‘겨울 추상화’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시에는 양양, 속초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동해바다의 그윽한 서정이 흐르고 있고, 윤색이나 과장, 언어 조탁 같은 인위적 색채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구성하는 시가 아니고 자연스럽고 간결하게 흐르듯이 쓰여진 맛이 깊다. 그는 시인 박목월 선생과 두 번의 인연을 떠올렸다. 먼저 스물여섯 살 때다. “강원일보로 등단했는데 그때 박목월 선생과 박남수 선생이 심사를 했어요. 돌아가신 이성선 시인이 박목월 선생이 ‘심상’을 만드셨으니 그리로 한번 나가 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해서 몇 해 후 ‘심상’으로 재등단했습니다. 그때가 1976년이니까 벌써 45년째네요.”그 후 이상국 시인은 박목월 선생을 서울 원효로에서 한 번 봤고, 얼마 후 라디오에서 선생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첫 시집 낼 때 강원일보에 연락해서 작품을 받았습니다. 신춘문예라는 허울을 쓰고, ‘문밖’이라는 상징으로 시대를 표현하기는 했는데, 난삽하고 정말 마음에 안 들었어요. 결국 시집에 실리지 못했습니다. 그때 박목월 선생께도 죄송했지요.” 1985년에 첫 시집 ‘동해별곡’을 내고 이상국 시인은 자신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농촌 사회를 재현하면서 거기서 살아가는 이들의 소박한 삶을 따뜻하게 옹호하는 시세계를 이어 간다. 해체 일로에 있던 농촌 현실과 농민의 삶을 형상화한 그의 초기작은 잘 절제된 핍진성으로 평단의 깊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심상’이 진하게 녹아 있어 저항적이고 사실적인 ‘농민시’와는 큰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다. ‘내일로 가는 소’, ‘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등에서 선생은 퍽 다채로운 소재와 어법을 통해 농촌 현실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고, 시적 형식의 완결성을 통해 전통 정서나 정신적 경지까지 아우르는 내밀한 욕망을 실현해 갔다. 이러한 지향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얻어낸 결과가 아니라 철저하게 고독하고 외따로운 곳에서 스스로 터득하고 심화해 간 기율 같은 것이었을 터다. 이상국 시인은 “스승이나 도반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문밖에서 서성거리며 문학을 스스로 깨우쳐 갔다”고 떠올렸다. “문학을 배워 갈 때 강원도에는 ‘갈뫼’라는 동인지가 있었어요. 고교 은사였던 소설가 윤홍렬 선생께서 1969년에 속초 지역 문인들과 함께 ‘갈뫼’를 창간하셨지요. 동인으로는 이성선, 최명길 등 선배들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자연이나 인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셨는데 저는 그때부터 조금 겉돌았지요.” 스러져 가는 고향 지역에 대한 애정이랄까. 엄혹했던 역사를 두고 스스로 문학을 만들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사를 하거나 따끔한 말씀을 주실 분이 안 계셨다. “그게 오히려 제 나름의 방법과 생각을 정리해 가는 길도 되었으니 꼭 손해 보지는 않은 듯해요. 어쨌든 생래적으로 제 안에는 농경 정서와 산천에서 일하는 사람의 정서가 들어와 있었고, 거기에 현실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결합하면서 시세계를 일구고 지탱해 온 거지요.”●원만해진 마음과 품 초기 시에 담겼던 농경 사회의 리얼리티는 후기로 오면서 인생철학을 담은 실 존적 세계로 이월해 간다. 삶의 근원에 대한 섬세한 사유와 자연 사물에 대한 미시적 관찰 같은 데로 흘러온 것이다. 이처럼 ‘집은 아직 따뜻하다’ 이후로 근작 ‘달은 아직 그 달이다’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는 시인 자신의 세계관이나 신념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과 풍경과 순간을 스스로의 내면과 견주고 어울리게 하는 과정에서 발원돼 간다. 그래서 손쉬운 의인화나 안이한 계몽적 알레고리로 떨어지지 않는 특유의 서정적 긴장을 형성하게 된다. 그는 초기 시가 현실에 대한 부딪침과 기다림에서 나왔다면,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인생을 다르게 본 결과를 후기 시라고 했다. “누구는 불교에 바탕을 둔 관조나 달관으로 설명했는데, 일리는 있지만 저는 그저 나이 들면서 사물이나 순간을 편하게 바라보자 하는 생각으로 시를 썼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안에 선적 직관도 들어가 있게 된 거지요.” 쉰다섯에 절집에 들어가 10년 있었으니 알게 모르게 불교와 친해졌을 수도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모서리들도 비교적 원만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진 것 같다는 거다. “품을 키워 가면서 단정한 쪽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상국 시인은 10년 동안 만해마을 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수많은 작가를 만나고 돌보고 그들과 함께했다. 작가들은 한결같이 외롭고, 소소한 일에 좋아하고, 대체로 고독이나 슬픔에 젖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래서 더 사람의 깊이에 도달할 수 있게 됐다고 술회한다. 그렇게 지역에서, 사람의 변방에서 살아온 선생이 이제 커다란 규모의 한국작가회의를 맡았으니, 그 느낌은 어떨까? 한국작가회의라면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를 거쳐 권위주의 정부 때 저항의 전진기지 역할을 감당했지만, 지금의 민주 정부에서는 역할이 최소화될 가능성이 혹시 있지 않을까? ●청정한 그만의 세계 “40년 전은 시절이 엄중했고 많은 작가가 감옥에 갔지요. 이제 많은 시간이 흘러 전선이 뚜렷하지 않고 작가회의의 정체성도 변화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지역’이라는 의제나 소통과 배려의 문제도 크게 대두했고요. 물론 반칙이나 불평등이나 폭력을 해소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더불어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억압들과 싸워야지요. 하지만 싸움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 않겠는가, 당연히 좋은 세상을 향해 문학은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유 때문에라도 이상국의 시는 초월이나 탈속 편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자연의 은밀한 성스러움과 인간 사회의 실물성을 동시에 탐침하면서 선생은 삶의 감각과 성찰을 끊임없이 결속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이법을 온몸으로 긍정하면서 그 안에서 인간이 상실한 삶의 근원적 가치를 발견하고 노래하는 것이 선생 스스로 한 세상을 건너가는 오래된 방법이 돼 줄 것이다. “시집을 일곱 권 냈는데 6년 터울 정도였어요. 조만간 동시집이 나올 거예요. 무안하기는 한데, 모서리는 닳고 숨어 있던 부드러움이 나온 결과가 아닐까 하고 스스로 위안합니다. 어쨌든 제 시가 가지는 촌스러움을 유지하면서,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위엄을 노래해 가겠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상국 선생의 시를 통해 사라져 가는 것들의 잔영을 증언하는 시인의 따뜻하고도 고단한 운명을 만나게 될 것이다.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신성한 순간의 마지막 기록자로서, 선생은 늙어 가는 눈으로 보는 한계가 있겠지만 바로 그 한계에 충실하면서 청정한 자신의 세계를 완성해 갈 것이다. 분주하게 속초와 서울을 오가며 감당해 낼 작가회의 이사장으로서의 큰 행보와 함께 말이다.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 “중학생 딸은 아빠가 씻겨주면 안 되나요?”

    “중학생 딸은 아빠가 씻겨주면 안 되나요?”

    다 큰 자녀를 부모가 씻겨주는 것을 놓고 온라인상에서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2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예비 중학생 A양이 올린 글이 논란이 됐다. A양은 “아버지가 지난해까지 늘 씻겨주려고 했다. 화장실 문을 닫고 ‘혼자 씻겠다’고 말을 해도 완강하시다”고 말했다. 이에 아버지의 행동에 혼란이 생긴 A양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냐”고 조언을 구했다. 이를 본 네티즌은 대부분 “선을 넘은 행동”, “이제 그만”,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된다”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A양에게 “거절 의사를 제대로 밝혀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에는 KBS2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일명 ‘스킨십 父’, ‘스킨십 아빠’로 불린 최 씨가 악플러들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 사건이 있었다. 최 씨는 당시 개인 SNS에 “웃자고 하는 예능 방송에는 제발 그냥들 웃으십시다”며 “명예훼손, 모욕, 업무방해, 허위사실유포 등 죄목이 4가지나 된다”며 경찰에 제출한 고소장을 공개했다. 내용은 이렇다. ‘안녕하세요’에 아빠의 과도한 애정표현과 스킨십에 불편해하는 고등학교 2학년 딸이 출연했다. 사연자는 “아빠가 눈만 마주치면 뽀뽀하고, 얼굴을 혀로 핥는다. 배를 만지고 배에 바람을 분다. 설거지를 할 때 엉덩이를 만진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또 “남들이 아빠랑 저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볼 때가 있다”면서 등교 중에 아버지와 뽀뽀하는 모습을 본 학교 선생님이 오해를 해 교장실에 끌려가 가족관계증명서까지 제출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사연자의 14살, 10살 여동생들도 아버지의 과도한 스킨십이 싫다고 말했다. 14살 여동생은 “제 엉덩이는 아무도 안 만졌으면 좋겠다”며 아직도 목욕할 때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와 씻겨준다고 말해 충격을 더했다. 사연자는 아버지의 스킨십을 거부한 적이 있는냐는 질문에 “하지 말라고 했더니 ‘내 새끼는 내 몸’이라고 하면서 삐쳤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몇 살까지 자녀를 씻겨야 할까. 전문가들은 “자녀가 원할 때까지(수치심을 느낄 때까지)”라고 입을 모은다. 보통 자녀가 초등학생이 되고 학년이 올라가면 저절로 “엄마 내가 씻을게”, “아빠 내가 씻을게”한다. 처음엔 혼자 대충 씻고 나오는 아이들이 못마땅해도 기다려줘야 한다. 부녀, 모자지간이라도 성적수치심을 느낀다면 성폭력임을 기억해야 한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동마다 재난대비시설 지도 만들어 제공해야”

    서울시의회는 1월 의정모니터링으로 시민의견 심사회의에 접수된 44건 가운데 임재혁씨의 ‘동네전문가가 만드는 우리동네 안전지도 비치하기’를 선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임씨는 동 단위로 재난대비시설 정보를 모은 지도를 만들어 동주민센터에서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현재 서울안전누리 사이트에서는 재난대비시설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지진 옥외 대피소, 지진 실내 구호소, 무더위 쉼터, 민방위 대피소, 비상 급수 시설, 수해 대피소, 이재민 임시 주거시설 등이 별도로 나뉘어 지도에 표시돼 있다.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보기 어려울뿐더러 일일이 클릭해 보기가 불편하다. 임씨는 기존 서울안전누리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 외에도 안전 관련 정보를 추가하자고 건의했다. 재난대비 시설 정보를 특화시켜 도로 상습 결빙, 물고임 구간, 공사 구간, 경사 구간, 무단횡단 사고 발생 우려 구간, 불법 주정차 상습 구간, 자전거 사고 우려 구간 등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유용한 정보를 추가하자는 것이다. 이 밖에도 소방서, 보건소, 응급실이 있는 병원, 지진 옥외 대피소, 지진 실내 구호소 등도 표시해 관심 있는 주민들에게 배포하자고 덧붙였다. 임씨는 “지역의 안전을 대표하는 공무원과 동네 사정에 밝은 주민들이 함께 우리동네 안전지도를 만들면 어린이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도 참고할 수 있다”며 “동네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높아지고 안전 의식도 향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의회는 의정 발전과 선진 의회 구현을 위해 20세 이상 시민 237명을 모니터 요원으로 위촉해 시 정책이나 의정 활동에 대한 의견을 매달 듣는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해쉬스완, ♥ 여자친구와 애정행각 질문에 보인 반응은?

    해쉬스완, ♥ 여자친구와 애정행각 질문에 보인 반응은?

    래퍼 해쉬스완이 승무원 여자친구와의 열애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해쉬스완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승무원 여자친구 A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여러 장 공개하며 달달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24일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날 해쉬스완은 여자친구와의 첫 만남에 대해 “처음에 술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마음에 들어서 술자리 중간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 처음 봤지만 마음에 든다. 만나보자’고 고백을 해 사귀게 됐다”고 말했다. 해쉬스완의 여자친구 A씨는 170cm의 큰 키에 상당한 미모를 자랑할 뿐 아니라,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이력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쉬스완은 장신인 여자친구와의 애정행각에 대해 묻는 짓궂은 질문에 “꼭 서서만 뽀뽀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말라”고 답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A씨 또한 “키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건 너무 편견”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정민경♥김정균, 20년 배우 동기→결혼 “밥만 먹여주면 돼”

    정민경♥김정균, 20년 배우 동기→결혼 “밥만 먹여주면 돼”

    배우 김정균이 결혼한다. 25일 김정균의 깜짝 결혼 소식이 알려졌다. 특히 김정균의 예비신부가 그와 데뷔 동기인 배우 정민경으로 알려져 더욱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정균과 정민경은 지난 1991년 KBS 탤런트 14기로 데뷔했다. 동기 모임을 통해 소통하던 두 사람은 동기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6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김정균은 이날 방송된 SBS ‘불타는 청춘’에 출연해 직접 정민경과의 결혼 소식과 러브스토리도 공개했다. 이날 김정균은 “15년간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예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며 “결혼식을 알리는 게 쑥스러웠다. 두 번이나 하게 돼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결혼을 결정한 지 세 달 됐다. 알고 지낸 지 20년 된 동기”라며 “탤런트 동기 모임이 있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술을 안 먹는 친구다 보니 밥을 두 그릇 먹더라. ‘왜 이렇게 밥을 많이 먹니?’ 하니 ‘저는 밥이 좋아요’라고 하더라. 내가 관심을 보이고 볼 때마다 그런 마음이 드니 예뻐 보였다”고 예비신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농담으로 “밥만 먹여주면 되겠니?”라고 했는데 그게 부부의 연으로 이어졌다고.‘불타는 청춘’을 통해 김정균과 정민경의 웨딩 화보도 공개됐다. 미소가 닮은 두 사람은 환한 얼굴로 부러움을 샀다. 프러포즈 영상에서 김정균이 정민경을 향한 세레나데를 부르고 꽃다발을 증정하는 모습도 공개됐다. 정민경은 전화연결을 통해 “김정균을 너무 사랑한다”고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멤버들은 김정균의 어느 부분에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는지 궁금해 했다. 정민경은 김정균이 순수하고 착해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광규가 “밥만 먹여주면 결혼한다고 했다면서요”라고 묻자 정민경은 “진짜 저는 밥만 먹여주면 돼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2·8독립선언서 국내 반입, 3·1만세 시위… 평생 독립 위해 싸운 ‘열사’

    2·8독립선언서 국내 반입, 3·1만세 시위… 평생 독립 위해 싸운 ‘열사’

    “너희들은 왜 죄 없는 사람을 핍박하느냐.” 취조관의 질문에 김마리아는 되받아쳤다. 왜경은 가죽 채찍과 대나무봉을 휘두르고, 양팔을 엇갈리게 결박해 천장에 매달아 놓고 팽이처럼 돌리며 때렸다. 옷을 벗기고 쇠갈퀴로 가슴을 찌르고 불로 지졌다. 살이 터지고 온몸이 피로 물들었다. 일본에 유학 중이던 마리아는 2·8독립선언서를 허리띠에 숨기고 국내로 들어와 고향 황해도로 자금을 모으러 갔다가 3·1운동 소식을 들었다. “여학생들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마리아는 황에스터, 나혜석 등 11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3월 5일 서울역광장 등에서 대규모 만세 시위가 벌어졌고 마리아와 모교인 정신여학교 학생들도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다음날 학교에 왜경이 들이닥쳐 마리아를 포승줄로 묶어 끌고 갔다. “선생님!” 학생들은 울부짖었다. 마리아는 고문으로 코와 귀에 고름이 고이는 등 만신창이가 됐다. 지옥 같은 서대문형무소로 옮겨졌다가 그해 7월 24일 증거 부족으로 석방됐다.김마리아는 1892년 7월 11일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서 태어났다. 13살 때 어머니마저 여읜 마리아는 1906년 6월 서울로 가 서울 연동여학교(정신여학교로 개명)에 입학했다. 마리아의 작은언니 미렴과 오현관·오현주 자매 등은 누룽지를 함께 먹으며 공부했다고 해서 ‘누룽지방 형제’라고 불렸다. 1910년 6월 졸업한 마리아는 모교 교단에 섰다. 정신적 지주였던 교장 루이스는 마리아에게 유학을 권했다. 1915년 5월 마리아는 일본 도쿄여자학원에 입학했다. 졸업이 다가올 즈음 민족자결론이 무르익었다. 1919년 1월 모임에서 황에스터는 “국가의 대사를 남자들만이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열변을 토했다. 2·8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사람은 남학생 11명이었지만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는 마리아와 황에스터 등 여학생들도 참석했다. “최후의 일인까지 자유를 위하는 열혈을 유(流)할지니….”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일본 경찰이 습격해 회관은 아수라장이 됐다. 마리아도 끌려갔다가 풀려났다. ●애국부인회 결사부 만들어 직접 독립운동 3·1만세 시위 주도로 악랄한 고문을 받은 몸에서는 고름이 흘렀다. 그사이 숙부 필순이 이역만리에서 일본인 의사가 준 우유를 마시고 숨졌다. 틀림없는 독살이었다. 마리아는 분루를 삼키며 또 다른 길을 모색했다. 몸도 성치 않은 마리아의 의지는 놀라웠다. 석방된 지 석 달도 안 된 1919년 10월 19일 뜻을 같이하는 여성 16명이 모여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했다. “부녀들도 남자들처럼 혁혁한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마리아는 말했다. 마리아는 회장이 되고 시도 지부장을 뽑는 한편 결사부를 만들어 직접 독립전쟁에 참여하고자 했다. 한 달 만에 회원이 2000여명으로 늘어나고 현재 가치로 수억원인 6000원을 상하이 임시정부에 보냈다. 그러던 11월 어느 날 ‘누룽지방 형제’ 오현주가 불쑥 찾아왔다. 오의 안내로 임정 밀사를 자칭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부인회의 활동을 캐묻는 것이었다. 10여일 후 마리아가 수업을 하고 있을 때 종로경찰서 왜경들이 들이닥쳤다. 마리아는 수갑이 채워져 연행됐다. 오현주의 배신이었다. 마리아는 붙잡힌 동지들에게 “어떤 고통을 당해도 비밀을 알려 주지 말자”고 당부했다. 간부들은 포승줄에 묶여 서울역으로 끌려갔다. 그 밀사는 대구경찰서 소속 경찰이었다. 군중은 “여성독립단이여, 용기를 내시오.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다. 대구로 붙잡혀 간 간부는 52명이었다. 끔찍한 고문이 자행됐고 회장인 마리아에게 더 혹독한 고문이 가해졌다. 장작개비를 두 무릎 사이에, 쪼개진 대나무를 두 팔 사이에 끼우고 몸을 빨래 짜듯이 비틀어 댔다. 마리아는 신음도 내지 않고 고통을 견뎌 냈다. 그러자 고무 호수를 코에 끼우고 물을 넣었다. 마리아의 얼굴과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대구 검사국에 송치된 마리아는 깜짝 놀랐다. 만세 시위 때 심문한 가와무라 검사가 자진 전근을 해온 것이었다. 가와무라가 생년월일을 묻자 마리아는 “서력 1892년…”이라고 했다. “어째서 대일본제국의 연호를 쓰지 않는가”라고 하자 마리아는 “일본 연호를 배운 적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고문에 고문이 더해져 마리아는 몸이 퉁퉁 부었고 정신 이상 증세도 보였다. 일제는 마지못해 병보석을 허가했다. 가와무라는 ‘일본의 국적(國賊)’이라며 징역 5년을 구형했고 1심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됐다.●임시의정원 의원 임명… 中서도 항일운동 마리아는 중국 망명을 결심했다. 몰래 병원에서 빠져나와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 1921년 7월 21일 중국 땅을 밟았다. 고문 후유증은 여전해 몇 달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마리아는 1922년 임시의정원 황해도 의원에 임명됐고 대한여자청년회를 조직하는 등 항일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창조·개조·옹호파로 분열돼 있었다. 1년에 가까운 통합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실망스러운 상황에서 마리아는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 1923년 7월 12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지만 건강은 계속 나빠 병석에 눕는 날이 많았다. 힘들게 미주리주 파크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대학 연구학생을 거쳐 뉴욕 컬럼비아대 사범대학원에 진학, 1929년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마리아는 뉴욕에서 황에스터 등 옛 동지를 만나 근화회를 조직했다. 혈혈단신 마리아의 유학 생활은 몹시 고달펐다. 점원, 행상, 보모 등을 전전하며 학비를 벌었다. 연민과 애정을 느끼고 혼인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미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며 거절했다.1932년 7월 마리아는 11년의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 땅을 밟았다. 일제는 감시와 협박을 계속하면서 거주지와 직업을 제한했다. 마리아는 다음해 함남 원산 마르타윌슨 여자신학원 교수로 부임했다. 신사참배를 거부해 탄압을 받았고 신학원도 폐교당했다. 악독한 고문의 후유증은 전신을 짓눌렀다. 마리아는 쓰러졌고 1944년 3월 13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제와 맞섰던 52년 인생을 마감했다. 언니 미렴은 유골을 대동강에 뿌렸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열사의 모교 정신여학교는 정신여중고로 바뀌어 1978년 서울 송파구 잠실동으로 이전했다. 종로구 연지동에는 옛 교사(校舍)와 수령 550여년의 교목(校木) 회화나무가 그대로 남아 있다. 교정 한쪽에는 서울보증보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서울보증보험과 종로구청의 노력으로 지난해 회화나무 옆에 열사의 흉상을 건립하고 탐방로를 조성했다.●유품은 치마저고리·수저 한 벌이 전부 잠실종합운동장 옆 정신여중고 교정에 들어서면 또 다른 흉상과 ‘김마리아관’(대강당)이 눈에 들어온다. 교장실에서 만난 최성이 정신여고 교장은 “열사는 평생 독립운동을 했고 사실상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원”이라면서 “사단법인 김마리아기념사업회 주도로 추모 사업을 펴고 있는데 업적에 비해 낮은 훈격을 높이려는 노력이 무산돼 아쉽다”고 말했다. 한평생 외롭게 살다 간 열사의 유품은 치마저고리와 수저 한 벌이 전부다. 그런데 치마저고리를 자세히 보면 오른쪽 섶 길이가 짧다고 한다. 최 교장은 “고문으로 열사의 한쪽 가슴이 없어져 양녀 배학복이 한쪽 섶을 짧게 해서 손수 만들어 드린 한복”이라고 설명했다. 몇 안 되는 유품은 강당 1층의 작은 공간과 동창회 사무실에 전시돼 있다. 숙원 사업인 기념관 건립은 진척이 없다. 그래도 올해 두세 교과서에 열사의 이야기가 실린 것은 성과라면 성과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서울 영등포구, 저소득 장애인 맞춤형 집수리 서비스

    서울 영등포구, 저소득 장애인 맞춤형 집수리 서비스

    서울 영등포구가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안전하고 편리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저소득 장애인 주거편의지원 사업’을 실시, 오는 28일까지 대상자를 모집한다고 21일 밝혔다. 일상생활, 외출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에게는 무엇보다 내 집안에서 편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 개선이 절실하다. 이에 구는 대상자의 장애유형·장애정도, 행동패턴과 거주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인별 맞춤형으로 집을 수리함으로써 주거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위험요소를 제거해 자립을 지원하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주거 개선 내용은 ▲맞춤형 싱크대 설치 ▲현관 문턱 제거 ▲경사로 설치 ▲안전손잡이 설치 ▲디지털 리모컨 도어락 설치 ▲기타 편의시설 설치 등 다양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애유형별로 주방 사용 방식이 다른 점을 고려해 싱크대, 수전 높이 등을 이용자 개개인에게 맞춰 조절하는 맞춤형 싱크대를 설치한다. 휠체어 등 이동의 편의성을 높이는 현관 문턱을 제거하고, 집 주변 경사로를 설치한다. 이밖에도 안전성을 높이는 벽면 안전손잡이와 미끄럼방지 바닥타일 설치 등 다양한 방식의 주거 개선이 이뤄진다. 지원대상은 중증장애인 중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 계층(중위소득 50% 이하) 가구이며 비용은 전액 무료다. 기준 중위소득 50~60% 이하 가구도 개조비 30% 본인부담 조건으로 지원 가능하다. 임차가구일 경우, 주택소유주가 집수리 공사와 1년 이상 거주 조건에 동의해야 한다. 구는 신청 가구를 대상으로 현장실사를 통해 장애인 개개인의 실내이동유형, 거주환경 상태, 개선 요구사항 등을 파악하고, 장애중증 정도와 소득수준, 개조의 시급성 등을 고려해 최종 지원 대상자를 선정한다. 희망자는 오는 28일까지 신청서와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 동의서를 구비해 거주지 관할 동 주민센터에서 신청하면 된다. 임차가구의 경우 임대인 동의서가 필요하다. 올해는 총 8가구를 모집한다. 기타 대상자 모집과 관련해 궁금한 점은 사회복지과로 문의하면 된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주거생활에 불편을 겪었던 저소득층 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다양한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나 혼자 산다’ 기안84, 건물주→새 보금자리 공개 “천사 방문”

    ‘나 혼자 산다’ 기안84, 건물주→새 보금자리 공개 “천사 방문”

    최근 건물주가 돼 화제를 모은 기안84가 새 보금자리를 공개한다. 21일 방송되는 MBC ‘나 혼자 산다’ 334회에서는 새로 이사한 기안84의 뉴 하우스는 물론 그의 집들이에 초대받은 특급 게스트가 공개될 예정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날 기안84는 찾아올 손님을 위해 급하게 집 정리를 하는가 하면, 준비한 선물을 손수 포장까지 하는 모습으로 손님맞이를 했다. 초인종 소리와 함께 등장한 스페셜 게스트는 묵직한 집들이 선물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이에 기안84는 “이사의 요정처럼 선물을 들고 오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천사가 아닌가”란 달달한 멘트를 쏟아내며 각별한 애정을 과시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기안84는 의문의 손님과 새 집을 둘러보며 추억에 잠기는 모습으로 시선을 끈다. 두 사람은 과거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은 물론, 추억을 공유했던 각종 아이템을 보며 ‘첫사랑을 만난 듯한’ 설렘을 만끽한다고 해 게스트 정체에 관심이 쏠린다. 또한 반가운 마음에 기안84는 “왜 이렇게 예뻐졌어요? 고와졌네”라는 설렘 유발 멘트를 던지는가 하면, 뜻깊은 선물을 건네며 게스트와 돈독한 사이임을 확인한다고. 이어 웃음을 찾기 힘든 기안84 선물이 공개된다. 21일 금요일 밤 11시 10분 방송되는 ‘나 혼자 산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결혼식 일주일 전 파혼 통보” 이상아, 3번의 이혼 이유 [종합]

    “결혼식 일주일 전 파혼 통보” 이상아, 3번의 이혼 이유 [종합]

    배우 이상아가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을 했던 과정을 털어놨다. 17일 방송된 SBS플러스 ‘김수미의 밥은 먹고 다니냐?’에서는 90년대 ‘책받침 여신’이었던 이상아가 출연했다. 그녀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 배우 김혜수, 하희라와 함께 ‘88 트로이카’로 불리며 하이틴 스타로 활약했다. 그러나 연이은 결혼 실패로 톱스타의 삶에서 멀어져갔다. 이상아는 근황을 묻자 “생애 처음으로 반 고정으로 드라마를 찍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길어서 많이 힘들다. 대본에 내 대사가 언제 나올지 기다린다”고 전했다. 다이어트로 인한 거식증 “눈으로 먹어” 김수미가 매생이국 한상차림을 내오자 이상아는 “맛있다”면서도 “잘 먹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하루에 한 끼 먹는다. 전 하루 걸어 다닐 수 있는 정도로, 최소한만 먹는다. 맛집 찾아가는 사람들을 제일 이해 못 한다. 그런 지 10년 정도 됐다”고 밝혔다. 김수미는 “한 번도 살이 찐 것을 보지 못했는데 다이어트 때문에 강박이 생겼느냐”고 물었다. 이상아는 “출산하고 체질이 바뀌면서 98kg까지 쪘다. 그때 너무 지옥 같았다.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 거식증에 걸렸다”고 고백했다. 이상아는 “지금도 벌써 눈으로 먹었다. 보기만 해도 이미 먹은 듯하다. 뷔페 가면 아예 못 먹는다”고 덧붙였다.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 김수미는 세 번의 이혼을 한 이상아에게 “예쁜 여자들이 남자 보는 눈이 없다. 당시에 이만한 얼굴과 몸매가 어디 있었나. 연기도 괜찮게 했다. 할리우드 내놔도 괜찮은 애가, 최고의 배우가 될 수 있는데 왜 사생활 때문에 일을 못할까 안타까웠다”고 속상해했다. 이에 이상아는 세 번의 결혼과 이혼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결혼을 하면 할수록 빚이 늘어났다”며 “나는 계속 일하고 있는데 왜 계속 빚이 늘어날까 이상했다”고 고백했다. 또한 “세 번의 결혼 모두, 결혼 전에 브레이크가 있었다. 그럼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아는 첫 결혼에 대해 “4개월 연애하다가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됐다. 묘하게 인연이 돼서 분위기가 사건을 만들고 그 때문에 결혼했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을 소개받는 날 남자 쪽 부모님이 다치면서 병문안을 가게 됐다. 병원에 가서 뵈니 갑자기 결혼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면서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결혼을 이렇게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결혼은 첫 결혼 이혼 후 1년 만에 진행됐다. 이상아는 “그때는 계산적으로 결혼했다. 첫 번째 실패했기 때문에 여유 있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생각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2세 계획을 가졌고 임신했다. 그런데 언론에 혼전 임신이 알려지면서 결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결혼 일주일 전 남편이 결혼하지 말자고 해서 결혼식장에서 많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두 번째 결혼도 1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그 또한 아기 돌사진 때문에 1년을 버틴 것. 이상아는 “두번째 이혼은 돌잔치 치루고 헤어졌다. 아기 돌 사진은 찍어야 할 것 같아서. 빚이 너무 많아진 것이 이유다. 제가 보증을 다 서줬었다. 사람들이 그걸 답답하게 생각하는데 부부가 잘 살기 위해서 해보려고 하는 건데 배우자가 보증 서달라는 말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라고 토로했다. 당시 빚이 7~8억 정도였다는 이상아는 “조금씩 갚기도 하고 협박 전화도 받았다. 이사 가려고 짐을 먼저 뺐다가 컨테이너에 맡기면서 급하게 이혼을 결정했다”며 “난 한부모 가정 혜택이 잘 되어 있는지 몰랐다. 우리나라가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 그것도 모르고 혼자 아이를 키웠고, 우리 딸은 지금 스무살이 됐다. 잘 컸다”고 말했다. 세 번째 결혼은 두 번째 이혼 후 곧바로 진행됐다. 이상아는 “딸 아이 돌잔치 치르고 바로 세 번째 결혼을 했다. 결혼은 곧 가족이라는 그림을 갖고 있었다. 딸이 어릴 때 새 아빠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때 당시에 힘들었는데 저를 도와준 남자가 있었다. 이런 남자는 의지하면서 살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김수미가 “그럼 왜 헤어졌냐”고 묻자 이상아는 “나중에 힘들어서 헤어졌다. 결혼할수록 빚이 늘어났다. 세 번째는 13년 살았다. 또 바닥을 치니까 헤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김수미는 “굳이 이혼을 해야했냐. 같이 바닥 치면서 이겨내면 안되냐”고 물었고, 이상아는 “자꾸 싸우고 힘들고 지치더라”고 한숨을 쉬었다. “엄마처럼 안 산다”는 딸“결혼이 또 있을까? 이상아는 딸에 대해선 ”내가 남자 만나는 것 절대 싫어한다. 딸도 상처 받은 게 있으니 크니까 어느 순간에 욱 하더라. 저에게 화를 내고 울면서 하는 이야기가 ‘엄마처럼은 안 산다’고 하더라. 전 그 때 다행이라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나한테 결혼이 또 있을까? 불안하더라“라면서도 ”전 혼인신고를 좋아하는 것 같다. 가족이 내 것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수미는 일종의 애정결핍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법적으로라도 남편을 내 것으로 하고 싶은 것이다. 재산이 내 명의로 되어 있으면 좋잖아. 그런 것과 비슷한 것“이라면서 ”어머니가 74세신데 최선을 다해 드려라. 톱스타인 딸이 아픔을 여러 번 겪으면서 어머니 가슴이 수십 번 난도질 당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상아는 엄마 이야기에 ”첫 이혼 때 자살을 몇 번 생각했다. 너무 힘들었다“며 결국 눈물을 흘렸다. 김수미는 ”남자를 좋아하는 애인줄 알았는데 양심적이고 도덕적이고 마음이 여리다. 약질 못하다. 약은 애면 혼인신고 안 한다. 앞으로는 돈이 있어야 한다. 작품 섭외가 많은 것도 아니다. 지금부터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돈 벌 생각을 해라. 무슨 프로든 나가고 밥 세 끼 꼭 먹고“라고 당부하며 ”앞으로 당당해져라. 내 사생활 때문에 내 배우의 모든 이력까지 무시하지 마라라고 해라. 그것 때문에 주눅 들지 말아라. 너의 세 번의 이혼 경험은 앞으로 살아나가는데 최고의 명약이 될 것“이라고 응원했다. 마지막으로 김수미는 ”죽기 전에 최고 좋은 남자 만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상아는 김수미의 엄마 같은 질책과 조언, 그리고 응원에 눈물을 닦았다. 방송 이후 18일 이상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방송 잘 봤어요. 김수미 선생님과 윤정수 씨, 그리고 제작진들께 진심으로 애정 담긴 방송으로 만들어주심에 감사하단 말씀 전하고 싶네요“라며 ”오늘은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1984년 광고 모델로 첫 데뷔한 이상아는 KBS 드라마 ‘산사에 서다’로 배우로 입문했다. 영화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너와 나의 비밀 일기’를 비롯해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 등에 출연하며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로 활약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사랑의 불시착’ 현빈♥손예진, 실제 연인 의심되는 현장 사진

    ‘사랑의 불시착’ 현빈♥손예진, 실제 연인 의심되는 현장 사진

    ‘사랑의 불시착’ 현빈♥손예진의 아름다운 투샷이 공개됐다. 17일 tvN 드라마 공식 SNS 계정에는 “에델바이스가 피는 나라에서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둘리커플의 투샷”이라는 글과 함께 여러 장의 스틸컷이 게재됐다. 사진에는 서로의 허리를 감싼 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현빈과 손예진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극 중에서 애틋한 재회를 한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손예진이 펑퍼짐한 원피스에 보라색 니트를 걸치고 있는 사진은 임신을 연출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극 중에서 북한군 장교 리정혁 역을 맡은 현빈은 “리정혁과 윤세리의 예기치 못한 만남이 특별한 행복이 되었듯, ‘사랑의 불시착’ 또한 시청자분들에게 그런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품에 임했다. 여러분 곁에 리정혁이 행복하게 안착할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사랑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라고 애정 가득한 종영 소감을 전했다. 손예진은 “세리를 연기하면서 많이 웃었고, 많이 울었다. 무엇보다 정말 행복했다. 제 연기 인생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할 멋진 작품을 할 수 있게 돼서 감사했고 우리 드라마를 사랑해주셨던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러분들 덕분에 지치는 순간에도 힘내서 끝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며 ‘사랑의 불시착’과 윤세리 캐릭터에 대한 진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 16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케이블, IPTV, 위성을 통합한 유료플랫폼에서 가구 평균 21.7%, 최고 24.1%를 기록,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에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수성하며 ‘국민 로코 드라마’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는 자체 최고 시청률 경신과 동시에 tvN 드라마 역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수치로 ‘도깨비’의 기록 20.5%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포상휴가는 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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