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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복형제 40kg 나갈 때…23kg로 짧은 생 마감한 9살

    이복형제 40kg 나갈 때…23kg로 짧은 생 마감한 9살

    가로 40cm, 세로 60cm 여행용 가방. 초등학교 3학년 23kg에 불과했던 9살은 그 안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의붓어머니 A씨(43)는 아이를 가방에 가두고 외출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가방 안에 소변을 봤다는 이유로 다른 가방으로 들어가게 했다. 7시간 동안 가방 안에 갇혀 끝내 의식을 잃고 하늘나라로 간 아이의 몸에는 여러 흉터와 멍 자국, 담뱃불로 지진 듯한 자국이 발견됐다. 부검 결과 가방 속에 웅크린 자세로 장시간 갇혀 산소 부족으로 장기가 붓고 손상되는 다장기부전증으로 인한 심정지로 사망했다는 소견이 나왔다. 어린이날조차 머리를 다쳐 병원치료를 받았던 아이. 의붓어머니에게 학대당하는 기간 동안 아이의 친아버지는 일 때문에 다른 지역에 가 있었고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경찰은 조만간 친아버지도 학대 과정에서 가담 또는 방조했는지, 직접적 학대 행위 여부에 대해서 조사할 예정이다.의붓어머니 A씨의 소셜미디어에는 친자녀에 각별한 애정을 표하는 사진과 글이 올라와 있었다. A씨는 2018년 숨진 의붓아들과 같은 나이이던 친아들의 사진을 올린 뒤 ‘우리 아드님 40kg 먹방 찍자’라는 글을 올리는 가 하면 ‘사랑스러운 딸래미, 공주’라며 자녀의 상장을 자랑하기도 했다. 공분한 시민들은 A씨의 계정으로 가 “지 자식은 40kg 숨진 아이는 23kg 그러고도 사람이냐”며 비난하는 댓글을 달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의붓어머니의 신상을 공개하고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참하고 있다. 하늘로 간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살던 아파트 상가에는 추모 공간이 만들어졌다. “나는 3세 딸을 둔 302동 아저씨야. 지나가다 한번쯤 마주쳤을 것 같아 더 슬프고 화가 난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렴”이라고 적힌 포스트잇과 과자와 꽃 등이 놓였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결혼 전 성관계? 회초리 맞자” 공개 회초리 맞은 커플

    “결혼 전 성관계? 회초리 맞자” 공개 회초리 맞은 커플

    인도네시아의 한 커플이 공개 회초리를 맞았다. 6일 AFP통신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아체주에서 한 남녀가 공개적으로 각각 회초리 1백 대를 맞았다. 이들은 마스크 착용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조치를 지키면서 공개 회초리를 맞았다. 이들은 결혼 전에 성관계를 맺었다가 적발돼 공개 회초리를 맞았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강한 아체주는 인도네시아에서 유독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엄격하게 지킨다. 음주, 도박, 동성애, 불륜, 공공장소 애정행각 등을 저지른 이에게 태형을 가한다. 종교경찰이 위반자를 단속한다. 인도네시아에는 현재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대중 집회가 금지된 상태지만 지역 당국은 감염 방지 안전 규정을 지켰다며 공개 태형을 강행했다. 인도네시아는 온건하고 관용적인 이슬람 국가로 분류됐으나, 수년 전부터 원리주의 기조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6일 993명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발생해 누적 확진자 수는 3만514명이 됐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에서 노점상이 ‘상전’이 된 까닭은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에서 노점상이 ‘상전’이 된 까닭은

    지난 1일 오전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의 허름한 주택가. 이곳의 맵고 얼얼한 맛의 무침요리 노점인 ‘쑤자마라반(蘇家麻辣拌)’에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불쑥 찾았다.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끝낸 뒤 첫 현지시찰 일정이었다. 리 총리는 이 노점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몇달 간 수입은 얼마나 줄었는지, 직원들의 임금은 잘 챙겨주고 있는지 등 영업 상황을 꼬치꼬치 물었다. 그러면서 “노점 경제는 중요한 일자리 창출원(源)이자 가오다상(高大上·고급스러움, 당당함, 품위있음을 의미하는 신조어)과 같은 중국의 생기(生機·삶의 희망)”라고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추켜세웠다. 그의 이 같은 행보는 “많은 중저소득 계층이 창업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준다”며 중앙 정부가 단속과 정리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노점 영업에 전면적으로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財新) 등이 4일 보도했다. 중국에 돌연 노점상이 ‘상전’(上典) 대접을 받고 있다. 중국 경제가 코로나19 사태로 큰 충격을 받은 가운데 고용과 내수 진작을 위해 중국 정부가 그동안 단속 대상이던 노점상과 소상인 영업을 갑작스레 적극 권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에서 ‘노점 경제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길거리 경제와 노점 영업, 이동 상점 등을 올해는 문명도시 평가 항목에서 제외한다”고 선언했고 노점상 제한을 완화하면 5000만개 일자리가 생긴다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규제해온 노점상을 양성화해 ‘노점 경제’를 중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복안이다. 중국에서 노점상 경제가 ‘대접’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6년 문화혁명이 끝나고 농촌지역으로 하방(下放·지식인을 농촌·노동 현장으로 보냄)됐던 지식 청년들이 도시로 되돌아왔다. 이들은 취업난이 극심해지자 좌판을 깔고 음식 등을 팔기 시작했고 정부가 이를 허용했다. 개혁·개방 이 경제가 급속 성장하며 경제 수준이 높아진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 정부는 ‘도시 정비’를 내세워 노점 단속을 실시하면서 대도시에서는 노점을 찾기 어려워졌다.중국에서 노점 경제가 다시 주목받는 것은 중국 경제 상황이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충격으로 심각한 고용 문제에 부닥친 것이다. 코로나19가 진정국면에 접어듦에 따라 산업생산 등 일부 지표가 미약한 회복세를 보이지만 민생 안정의 핵심 지표인 도시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인 6.0%를 오르내리고 있다. 가뜩이나 중국의 공식 실업률에는 취약 계층인 농민공(農民工·도시 이주 농촌 노동자)의 고용 동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올해 전인대에서 사상 처음으로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못했다. 국제경제 연구기관들은 대체로 중국이 올해 기껏해야 1%대 초반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본다. 중국 정부는 올해 도시 실업률 목표와 도시 신규 취업자 목표를 지난해보다 후토한 각각 6.0%, 900만명으로 잡았는데 이는 중국 당국 역시 올해 고용 안정 유지가 녹록지 않은 상황임을 잘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정부는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고용 안정과 기본 민생 보장을 제시했다. 코로나19 사태와 미국과의 갈등 격화라는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중국은 대외수출보다는 내수 확대를 통한 경기 회복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투자나 생산 관련 지표와 달리 소비 지표 회복이 가장 더뎌 중국 정부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점 경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저소득 소비 계층 중심의 노점 경제를 살리면 전통시장과 관광 경제, 야간 경제가 살아나고 이는 결국 내수 회복을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노점은 소자본으로 쉽게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저소득층과 자본이 부족한 청년들이 생계를 위해 진출하기 쉬운 사업 ‘모델’인 셈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노점에서 싼 음식과 물품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갑을 열기가 더욱 쉽다. 일자리 창출, 저소득층 소득 보장과 소비 촉진의 효과를 모두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점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노점 경제를 가장 먼저 활성화한 곳은 쓰촨(四川)성 청두(成都)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청두시는 코로나 상황이 완화된 지난 3월부터 ‘교통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경우 도로를 점유해 노점을 할 수 있다’는 지시를 내리고 2000개 넘는 노점 허용 구역을 지정했다. 리 총리는 전인대 폐막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영세기업과 노점상 경제가 고용 안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쓰촨성 청두에서 지난 두 달 간 3만 6000개의 노점 가판대를 설치해서 10만개 일자리를 창출한 사례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이에 따라 충칭(重慶)시와 상하이(上海)시,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 장쑤(江蘇)성 난징(南京),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후난(湖南)성 창사(長沙),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산둥성 칭다오(靑島) 등 중국의 주요 도시가 노점 영업을 위한 구역을 거리에 조성하는 등 노점 경제 살리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19 발발지로 지역경제가 직격탄을 입은 후베이성 이창(宜昌)시의 경우 오는 7월 31일까지 매일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 공휴일에 주요 상권 9곳을 노점상 영업 구역으로 지정해 잡화, 먹거리 장사를 하도록 허용했다. 충칭시는 1만㎡(약 3025평)의 영업 공간을 마련해 노점상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중국의 대기업들도 노점상 지원에 나섰다, 가전 유통업체인 쑤닝(蘇寧)그룹은 중국 전역의 야시장 노점상들에게 자사 매장의 냉동고를 활용한 보관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텅쉰(騰訊·Tencent), 알리바바(阿里巴巴), 징둥(京東·JD닷컴) 등 거대 정보기술(IT)기업들은 앞다퉈 노점상과 소상인들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텅쉰그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인 웨이신(微信)은 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입은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생기 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위챗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중소기업의 디지털화를 지원하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보조금·사업 지도·마케팅 지원 사업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그룹의 금융 자회사 알리페이도 “총리, 우리는 소규모 사업자를 돕겠다는 우리의 2020년 계획을 실천하고 디지털 활동을 통해 그들의 수입을 20% 늘리고, 온라인 대출을 20% 올릴 것을 약속한다”고 공언했다. 전자상거래 기업인 징둥 역시 중소 사업자와 노점상, 소규모 점포주 등을 돕기 위한 지원책을 내놓았다. 징둥은 500억 위안(약 8조 5000억원) 규모의 제품을 구매할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소규모 사업자 1명당 10만 위안을 무이자로 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노점 활성화 정책이 중·저 소득 계층의 생계난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는 있겠지만 커다란 경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전위(楊震宇) 중위안(中原)증권 애널리스트는 “(노점상에 대한) 완화된 정책이 수요와 공급 양측을 모두 증가시킬 것”이라면서도 “노점 경제는 단지 거시경제 문제 해결의 수많은 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에서 투자자들은 맹목적으로 따라붙으려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관악중앙도서관, 첫 문화큐레이터에 신지영 작가 선정

    관악중앙도서관, 첫 문화큐레이터에 신지영 작가 선정

    관악중앙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 공모사업에 올해 선정돼 신지영(사진) 작가를 첫 문화큐레이터로 선정하고, 오는 12월까지 다양한 문학 프로그램을 추진한다고 5일 밝혔다.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은 공공도서관에 문인이 상주하고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신 작가는 2009년 7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으로 등단했고, 2011년에는 출판사 창비의 ‘좋은 어린이책 기획상’을 받은 바 있다. 신 작가는 “관악구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관심을 바탕으로 주민과 함께 지역의 이야기를 여러 장르로 풀어내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문학을 기반으로 음악, 시각예술 등을 결합해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탐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관악중앙도서관은 또 코로나19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작가의 서재’, ‘우리 도서관 작가 만나기’ 등 비대면 프로그램뿐과 ‘우리는 강감찬 기자단’, ‘조금만 적어도 좋아’ 등 다양한 문학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포토] ‘이것이 땀의 결정체’

    [포토] ‘이것이 땀의 결정체’

    ‘그랑프리(GRAND PRIX)’ 프랑스 말로 사전적 의미는 최고를 뜻한다. ‘대상’이나 ‘최우수상’으로 변역해 쓰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최고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아무나 쓸 수 없는 최고의 존칭이다. 지난 달 31일 수원시 노보텔 앰배서더 수원에서 ‘2020 맥스큐 머슬마니아 제니스 챔피언십’이 열렸다. 이날 대회는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달여가 지체돼 열리게 됐다. 많은 선수들이 겨우내 완벽한 몸을 만들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던 터라 최고 수준의 몸짱들이 출전해 열띤 경연을 벌였다. 50여개 세부종목에서 경연을 벌인 대회는 모두 9명의 그랑프리를 배출했다. 철갑 같은 근육을 자랑한 김양훈이 보디빌딩과 클래식 등 두 분야의 그랑프리를 달성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뚜렷한 이목구비, 짙은 수염 등 강렬함으로 시선을 끈 김정욱이 피지크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스포츠모델에서는 해병대 출신으로 전직 야구선수 출신인 박남진이 남자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고 지난해 주요 피트니스 대회의 모노키니 분야를 모조리 휩쓸어 ‘모노키니 대통령’으로 불리는 백성혜가 여자 부문 그랑프리를 따냈다. 탄탄한 몸은 물론 패션 센스를 주 심사대상으로 하는 커머셜 모델에서는 슈퍼모델을 능가하는 워킹을 보여준 김선영이 여자 부문 그랑프리에, 잘 생긴 조각미남 최정민이 남자 부문 그랑프리에 각각 올랐다. 가장 적은 인원이 참가한 피규어 부문에서는 오지현이 그랑프리를 차지하는 행운(?)을 안았다. 대회의 하이라이트로 불리는 미즈비키니부문에서는 30여명의 여신을 물리치고 발레리나 출신의 원다희가 대망의 그랑프리를 차지하며 12시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김양훈은 “머슬마니아에 4년째 도전하는데 이번에 그랑프리를 받게 됐다. 너무 기쁘고 영광이다”라며 “6개월 동안 닭가슴살을 삶아준 여자친구에게 트로피를 선사하겠다. 오늘은 여자친구와 마음껏 삼겹살 파티를 즐기겠다”며 우승의 소감을 전했고, 미즈비키니의 원다희는 “부상으로 세계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항공권을 받았다. 머슬마니아 라스베이거스 세계대회가 목표다. 한국 피트니스의 실력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16년 동안 야구선수 생활을 하다 부상으로 피트니스로 전향한 박남진은 “가장 중요한 것은 습관이다. 식단과 운동 등 모든 것이 힘들지만 3주에서 4주 정도 열심히 하며 거울 앞에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정말 ‘좋은 중독’이 피트니스”라며 커다란 애정을 표현했다. 페르시아 전사를 연상케 할 정도로 강렬함을 자랑한 김정욱은 “모토가 ‘녹스느니 닳는 게 낫다’다.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며 굵고 짧게 말했다. 20대 슈퍼모델 못지않은 워킹과 표정으로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낸 김선영은 놀랍게도 두 아이의 엄마다. 김선영은 “주부가 되고 엄마가 되는 것은 여자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아이들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 또한 피트니스를 통해 모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하루가 아닌 수개월, 수년에 걸쳐 만들어낸 몸은 대회 최고의 영예인 그랑프리로 응답했다. 그야말로 그랑프리 수상자들은 땀과 열정의 ‘결정체’, ‘완전체’였다. 지난 2009년 머슬마니아를 국내에 소개하며 피트니스 붐을 일으킨 머슬마니아 코리아 김근범 프로모터는 “머슬마니아 제니스 챔피언십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기쁘다. 코로나19로 무엇보다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여러 분야에서 최고의 선수들이 배출돼 기쁘다”며 소감을 전했다. 스포츠서울
  • 공론화로 소각시설 갈등 해결 고창군 화제

    공론화로 소각시설 갈등 해결 고창군 화제

    공론화를 통해 쓰레기 소각시설 갈등을 해소한 전북 고창군의 숙의 행정 성공사례가 전국 지자체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창군은 ‘아산면소각장설치반대대책위’와 대타협을 이끌어내 전국 군단위 최초로 공론화 모범 선례를 기록했다고 3일 밝혔다.아산면 생활폐기물 소각시설은 지난해부터 집단 민원으로 공사가 중단된 사업이다. 소각시설 인근 주민들은 반대대책위를 구성하고 5차례의 집회와 릴레이 시위를 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에 고창군은 지난해 7월 공론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반대대책위와 합의했다. 같은해 10월 2일 갈등전문가 3인, 군민대표, 아산면 주민대표, 주변지역 주민대표 등 10명으로 ‘고창군 소각시설 공론화 협의회’를 구성했다. 고창군도 안정적인 공론화 협의를 위해 소각시설 건설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사업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협의회는 11월 15일까지 45일간 최장 7시간의 릴레이 회의를 갖는 등 8차례 협의 끝에 잠정 합의서를 도출해냈다. 이후 보완 수정 작업을 거쳐 최종 합의서를 작성했고 이에대한 주민 의견 수렴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합의 내용은 ▲공동체 회복 상호 노력 ▲소각시설 내구연한 15년간 운영 ▲환경오염 방지시설 보완 및 환경성 조사 ▲배출가스 원격감시 시스템 실시간 공개 ▲쓰레기 감량 등이다. 고창군은 주민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소각시설의 시공과 관리를 엄격하고 투명하게 시행하고 주민들은 쓰레기 감량 정책에 적극 동참하는 등 지속가능한 사회만들기에 합의한 것이다. 고창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고창군 자원순환 기본 조례’를 제정해 생활폐기물 관리 정책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공론화 과정을 이끈 사회갈등연구소 박태순 소장은 “고창군의 소각장 갈등 해결 성공요인은 단체장의 결단, 상대 배려, 지자체의 유연성, 근거 있는 논의에 지역 공동체의 애정이 결합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창군의 숙의 민주주의 성공 소식이 알려지면서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는 지자체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경남 진주시의 경우 공공의료시설 부활 시책에 고창군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여수 돌산갓’, 지역경제 효자노릇 ‘톡톡’

    ‘여수 돌산갓’, 지역경제 효자노릇 ‘톡톡’

    여수시 대표 특산품인 돌산갓이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지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2일 여수시에 따르면 돌산갓은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4개월 동안 9742t이 생산돼 전년 대비(8791t) 1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액은 84억 6000만원을 기록, 전년 52억원에 비해 63%가 증가했다. 매출 단가는 4개월 평균 ㎏당 877원으로 작년 4개월 평균 591원에 비해 48%가 증가해 매출액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으로 가정에서의 갓김치 주문이 평년에 비해 1.5배 이상 증가한게 주 요인이다. 이로인해 생갓 품귀 현상으로 높은 가격이 형성되면서 ‘봄 갓’ 재배면적 확대와 생산량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시 관계자는 “병해충 발생 정보와 올바른 방제 방법을 알리고 돌산갓의 적기 수확을 위해 현장지도를 강화하겠다”며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농산물과 ‘돌산갓’에 많은 애정과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시는 3년 전부터 고온기 병해 저항성이 높고 추대가 늦은 돌산갓 종자를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 종자의 균일성, 생산성 검정 후 4~5년 후 품종 출원을 계획하고 있다. 여수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장군의 아들까지 알 수 없는 죽음 당해…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軍 변하지 않아”

    “장군의 아들까지 알 수 없는 죽음 당해…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軍 변하지 않아”

    “훈이 생각하면 너무 기가 막혀. 내 마음을 정리해서 표현할 문구를 아직까지 못 찾았어. 슬픈데 얼마나 슬픈지, 고통스러운데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아직도 정확히 말할 수가 없어요.” 육군 장교의 부인으로 평생 ‘꽃길’만 걸으며 살았던 ‘사모님’이 50대 중반에 돌연 ‘투사’가 됐다. 아버지를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가겠다는 아들을 말리면서도 내심 자랑스러웠던 것은 그만큼 남편이 몸담았던 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가 22년째 군을 상대로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초소에서 사망한 김훈(당시 25세·육사 52기) 중위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고, 자살한 것으로 몰아간 것을 잘못했다는 말을 군으로부터 듣기 위해서다.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동에서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77·육사 21기) 예비역 중장과 함께 만난 어머니 신선범(76)씨 눈에는 아들을 먼저 보낸 참척(慘慽)의 아픔을 풀어내는 내내 연신 눈물이 맺혔다. 19년 만에 순직 결정 직후 국가 배상 ‘다시 시작’ 김 중위는 숨진 지 19년 만인 2017년 10월 가까스로 순직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부모에게는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었다. 부모는 “국방부가 사망 원인을 자살로 고집하며 20년 가까이 순직 결정을 미뤘다”며 순직 처분 다음해 국가를 상대로 다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곧바로 항소해 지난달 20일 항소심 판결이 선고될 예정이었다가 재판부의 변론 재개 결정으로 오는 25일 다시 재판이 열리게 됐다.사망원인 여전히 외면… 1심 패소·오는 25일 항소심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심 재판 과정은 어땠나. “재판은 분노의 연속이었다. ‘진상규명 불능’일 경우 순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근거 조항이 없었다며 1심이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그사이에도 우리는 국방부에 ‘훈이의 사망 원인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과거 훈이를 자살로 몰며 순직 결정을 미뤄 온 데 대해 사과하면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런데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던 지난 4월 13일 국방부는 재판부에 낸 참고서면에서도 ‘재판 중인 사항에 관하여는 공식 답변이 제한된다’며 끝내 우리를 무시했다.”(김) -국가(국방부)를 상대로 낸 소송이 이번이 두 번째다. “2000년에는 군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훈이가 자살했다고 결론 내고 사망 사건을 은폐·조작했다고 소송을 냈다. 2006년 대법원에서 군의 1차 수사 과실이 최종 인정됐고, 처음 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고 명백히 밝혔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2009년 10월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 냈다. 이후 추가 조사도 안 이뤄졌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순직 처분을 미루고, 여전히 국회 국방위원회를 비롯한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훈이를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자로 몰았다. 2017년 5월 정부가 바뀐 뒤 군 의문사가 ‘적폐’로 규정된 뒤에야 그해 순직 처분이 됐다. 두 번째 소송에서는 대법원 판단 이후 11년간의 시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김) -순직 결정으로 유족들의 요구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인식도 있다. “그래서 순직 처분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거다. 우리는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훈이는 ‘직무수행 중 사망한 사람’으로 분류됐다. 애국자로 정당한 예우를 받아야 한다. 가끔 만나는 사람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됐으니 다 끝난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런데 군 안에서는 여전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약한 군인으로 기록돼 있다. 처음부터 제대로 조사하기는커녕 진실을 덮은 뒤 순직 결정을 미뤄 온 그 시간들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돌려놓고 싶은데 여전히 국방부는 훈이 사망 원인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김) “장군의 아들도 의문의 죽음… 우리가 멈추면 軍 안 변해” -어떤 과정들이 특히 고통스러웠나. “훈이 아빠가 3성 장군 출신으로 평생 군에 몸담았는데도 훈이가 떠난 그 순간부터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았다.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공공연히 훈이가 자살했다’며 우리의 목소리를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1998년 12월 특별합동조사단이 꾸려져 재수사를 할 때도 ‘형님, 형수님’ 하며 따랐던 후배 장군마저 ‘조사단 회의를 지켜보게만 해달라’던 우리를 부하들을 시켜 끌어냈다(당시 특조단이 연 법의학자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8명 가운데 가족들이 추천한 노여수 박사만 유일하게 타살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후 특조단은 1999년 4월 다시 한번 김 중위의 사망 원인을 자살로 발표했다).”(신)-김 중위의 사망으로 가족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겠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결국 가족들이 나서야 했다. 훈이와 함께 근무했던 전역한 병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었고, 훈이 육사 동기생들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확보했다. 서울역 버스정류장 앞에서 약국을 하던 친언니가 문산에서 오는 버스에서 내리는 군인들이 볼 수 있도록 약국 벽에 훈이 사진과 제보 요청 글을 써 놓기도 했고, 진상을 밝혀 달라는 내용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평생 정갈하고 예쁘게 삶과 가정을 꾸려 왔던 나의 인생이 거친 길을 헤매고 시도 때도 없이 울분을 토하는 것으로 뒤바뀌었다.”(신) “훈이가 떠난 그날 오후 군에 남아 있던 동기로부터 ‘너희 집 무슨 일 있니? 훈이가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은 뒤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마음 편히 밥을 먹은 날이 없다(김척 예비역 중장은 1997년 예편). 우리뿐 아니라 훈이 동생까지 평온하던 가정이 깨지다 못해 하루아침에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지옥 속에 들어갔다. 훈이가 갑자기 떠난 것도 아프지만 그 죽음이 헛되게 매도당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군인을 하겠다’던 아이였고 워낙 올곧은 원칙주의자여서 육사 동기생들 사이에서 별명이 ‘곰’이었다. 그런 훈이를 두고 ‘부모의 강압적인 입대 권유 등 가정 환경의 영향을 받아 우울함으로 자살했다’고 한 군을 용서할 수 없었다.”(김) -군 의문사 진상을 밝히기 위해 싸우는 부모들이 여전히 많다. “내가 멈출 수 없는 게 바로 그 이유다. ‘장군의 아들’도 이렇게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하고, 엘리트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그 진실을 풀기가 이토록 힘든데 다른 부모들은 오죽하겠나. 간단한 자료 하나 얻기도 어렵다. 3성 장군을 지낸 사람이 어떻게 군을 상대로 그렇게 싸우냐고 나무라는 이들도 많았는데, 내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더 싸워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싸우지 않으면 군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순수하게 나라를 위해 고생하는 군인들이 많은데 군에서 혹시 잘못되더라도 명예로울 수 있다는 믿음을 그들에게 줘야 한다.”(김) -22년째 이어 온 싸움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고 싶나. “진실을 밝히는 것과 진심의 사과를 받는 거다.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국방부가 공식 사과를 한다면 소송도 취하할 것이다. 오히려 재판은 국방부가 ‘당시 법령 등 근거가 명확지 않았다’며 순직 결정을 미뤄 온 이유를 합리화할 수 있는 면피 수단이기도 하다. 소송은 돈 때문이 아니라 훈이가 정신질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는 거다. 아버지이자 전우로서 훈이 죽음의 진실을 밝혀야만 하는 의무가 나에게 있다. 훈이 사건은 또 다른 ‘드레퓌스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가족들은 군의 규정을 어긴 누군가의 큰 잘못을 덮기 위해 훈이가 죽게 된 것이라 믿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밝혀졌듯 언젠가 훈이 죽음의 진실도 밝혀질 것으로 믿고 그때까지 버텨 낼 것이다.”(김) “우리 훈이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대에서 군인들과 함께 뛰고 자라면서 군인을 꿈꿨다. 육사를 졸업하고도 공수부대에 자원하려고 했다. 군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이 컸다. 나 역시 군인의 아내로 살며 군을 사랑했다. 부대 병사들 간식이며 생일잔치까지 챙겨 줬고, 수색대대를 떠난 뒤에도 수색대 병사들만 보면 반가워서 남편 주려고 산 떡이나 담배를 아낌없이 쥐여 보냈다. 편안히 군 생활에만 신경쓸 수 있도록 철저하게 내조했다. 국가를 위해 평생 헌신한 남편이 자랑스러웠고, 그 길을 이으려던 아들이 멋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군이 이토록 잔인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지난 시간들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다.”(신)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소방관 딸 순직 보상금 32년 전 이혼한 생모에게 지급 법정다툼

    소방관이었던 딸이 순직하자 32년 전에 이혼하고 소식이 끊겼던 생모가 나타나 보상금 등을 수령해 가족들 간에 법정 다툼이 벌어졌다. 31일 전북지역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수도권 소방서에서 일하던 A(63)씨의 둘째 딸(당시 32세)이 구조 과정에서 얻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을 앓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1월 공무원재해 보상심의위원회를 열고 아버지인 A씨가 청구한 순직 유족급여 지급을 의결했다. 그러나 공무원연금공단이 32년 전에 이혼한 생모 B(65)씨에게도 이러한 결정을 알렸다. B씨는 본인 몫으로 나온 유족급여와 둘째 딸 퇴직금 등을 합쳐 약 8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 때까지 매달 91만원의 유족급여도 받게 됐다. 이를 알게 된 A씨는 지난 1월 전 부인인 B씨를 상대로 1억 9000만원 상당의 양육비를 청구하는 가사소송을 전주지법 남원지원에 제기했다. 1988년 이혼 이후 단 한 차례도 가족과 만나지 않은 데다, 둘째 딸의 장례식장도 찾아오지 않은 생모가 유족급여와 퇴직금을 나눠 받는 게 부당하다는 이유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된 가수 고(故) 구하라 씨 유산을 둘러싼 구씨 오빠와 친모 사이의 법적 다툼과 마찬가지로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는 상속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딸들을 키우는 동안 양육비를 전혀 주지 않는 등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이혼 이후 매달 50만씩 두 딸에 대한 양육비를 합산해 B씨에게 청구했다. 이에 B씨는 “아이들을 방치한 사실이 없고 전 남편이 접촉을 막아 딸들과 만날 수 없었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딸들을 위해 수년 동안 청약통장에 매달 1만원씩 입금했다며 “두 딸에 대한 애정에는 변함이 없다”라고도 해명했다. A씨 부녀를 대리하는 강신무 변호사는 “양육 의무를 전혀 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의 유산 상속 권한을 온전히 보장받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며 “현재 이를 제지할 법이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부녀가 매우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전주지법 남원지원 가사1단독 심리로 재판과 조정이 진행 중이다. 선고는 오는 7월께 이뤄질 예정이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장례식도 안 왔는데…” 소방관 딸 순직하자 유족급여 타간 생모

    “장례식도 안 왔는데…” 소방관 딸 순직하자 유족급여 타간 생모

    아버지와 큰딸, 생모에게 양육비 청구 소송“1988년 이혼 이후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아유족급여와 퇴직금 나눠 받는 것은 부당해”생모 “남편이 막아 딸들과 만날 수 없었다” 이혼 이후 연락이 끊겼던 생모가 소방관이었던 딸이 사망하자 32년 만에 나타나 유족급여 등을 받았다. 이에 숨진 소방관의 아버지와 큰 딸은 생모에게 거액의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31일 전북지역 법조계 등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해 1월 수도권 한 소방서에서 일하던 A(63)씨의 둘째 딸(당시 32세)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는 구조 과정에서 얻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을 앓다가 가족과 동료 곁을 떠났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1월 공무원재해 보상심의위원회를 열고 아버지인 A씨가 청구한 순직 유족급여 지급을 의결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이와 비슷한 시점에 어머니인 B(65)씨에게도 이러한 결정을 알렸다. B씨는 본인 몫으로 나온 유족급여와 둘째 딸 퇴직금 등을 합쳐 약 8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 때까지 매달 91만원의 유족급여도 받게 됐다. 이를 알게 된 A씨는 지난 1월 전 부인인 B씨를 상대로 1억 9000만원 상당의 양육비를 청구하는 가사소송을 전주지법 남원지원에 제기했다. 1988년 이혼 이후 단 한 차례도 가족과 만나지 않은 데다 둘째 딸의 장례식장도 찾아오지 않은 생모가 유족급여와 퇴직금을 나눠 받는 게 부당하다고 주장했다.최근 논란이 된 가수 고 구하라씨 유산을 둘러싼 구씨 오빠와 친모 사이의 법적 다툼과 마찬가지로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는 상속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딸들을 키우는 동안 양육비를 전혀 주지 않는 등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이혼 이후 매달 50만씩 두 딸에 대한 양육비를 합산해 B씨에게 청구했다. 이에 B씨는 “아이들을 방치한 사실이 없고 전 남편이 접촉을 막아 딸들과 만날 수 없었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딸들을 위해 수년 동안 청약통장에 매달 1만원씩 입금했다며 “두 딸에 대한 애정에는 변함이 없다”고도 했다. 이번 사건은 전주지법 남원지원 가사1단독 심리로 재판과 조정이 진행 중이다. 선고는 오는 7월쯤 이뤄질 전망이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월드피플+] 코로나19로 졸업식 못치른 학생들 위해 나선 美 스쿨버스 기사들

    [월드피플+] 코로나19로 졸업식 못치른 학생들 위해 나선 美 스쿨버스 기사들

    코로나19로 제대로 된 졸업식을 치르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스쿨버스 기사들이 뭉쳤다. 26일(현지시간) 미국 ABC뉴스는 오하이오주 러브랜드시 학군 스쿨버스 기사들이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특별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여러 학교가 한데 모여 있는 러브랜드시 학군은 18일 스쿨버스 기사들이 학생들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를 공개했다. 학교 측은 학군 내 스쿨버스 기사 7명이 코로나19로 평생 한 번뿐인 고등학교 졸업식을 놓치게 된 학생들을 안쓰럽게 여겼다고 설명했다.졸업을 축하할 방법을 고심하던 기사들은 스쿨버스를 몰고 학교 주차장에 모였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22대의 버스를 옮겨 졸업 연도 ‘2020’을 만들어 보였다. 버스 옆에 나란히 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사진은 고등학교 미술 교사가 드론을 이용해 항공 촬영했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기사 제니퍼 블룸 보우먼은 “우리 중 몇몇은 졸업생들이 유치원생이었을 때부터 학교에 실어날랐을 정도로 오래 학생들과 함께 했다. 스쿨버스 기사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는 것”이라면서 “2020학년도 졸업생들 모두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사 미셸 윈터는 “스쿨버스 기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모험의 일종”이라면서 “학생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각자 마음 한구석에 졸업생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 중 한 명인 리사 무어헤드는 “우리는 학생들이 아침에 등교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이고, 또 하교하면서 마지막으로 보는 얼굴”이라면서 “학생들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늘 웃는다”고 애정을 드러냈다.비록 졸업식은 제대로 치르지 못했지만, 스쿨버스 기사들의 깜짝 선물 덕에 392명의 졸업생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게 됐다. 졸업생들은 23일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졸업식을 치렀으며, 졸업 가운과 졸업장을 받아들고 흩어졌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졸업식 풍경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텍사스주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집집이 돌아다니며 ‘1인 졸업식’을 거행해 주목을 받았다. 부커티 워싱턴 고등학교 교장은 차를 몰고 돌아다니며 졸업생 모두에게 빠짐없이 졸업장을 전달했다. 트램펄린에서 제자와 함께 뛰며 졸업을 축하하기도 했다. 한 제자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 졸업장을 받아들었다. 보도에 따르면 교장은 총 50시간 동안 2000㎞를 주행하며 200명의 졸업생을 만났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어린이 책] 애정 찾아 헤맨 친구, 손 꼭 잡고 지킬 거야

    [어린이 책] 애정 찾아 헤맨 친구, 손 꼭 잡고 지킬 거야

    우리 집에 왜 왔니?/황지영 글/이명애 그림/샘터/160쪽/1만 1000원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친구와 같은 모둠이 됐다. 모둠 과제를 위해 우리 집에 왔던 친구는 매일같이 우리 집에 드나든다. 내 방을 자기 방처럼 쓰고, 엄마와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며 나보다 더 우리 집 ‘인싸’(인사이더)가 된 것만 같다.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과 질투에 휩싸이는 나. 대체 얘는 왜 자꾸 우리 집에 오는 걸까?제14회 마해송문학상을 수상했던 황지영 작가의 신작 ‘우리 집에 왜 왔니?’는 같은 모둠이 된 주인공 한별과 예빈이의 이야기다. 알고 보니 예빈은 한별이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집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했다. 두 아이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예빈이의 비밀이 밝혀진다.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온기를 잃은 집, 이후 회사로 숨어 버린 아빠와 방에서 나오지 않는 엄마. 그런 상황에서 예빈이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다른 이의 집을 헤매고 또 헤매었던 것이다. 여기서 어린 한별의 어리지 않은 행동이 빛을 발한다. 한때 나를 초조하게 했던 친구이건만, 한별은 예빈의 손을 꼭 잡고, 아빠를 대면해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돕는다. ‘난 노력하지 않아도 이예빈이라는 미로에서 저절로 빠져나오게 될 거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137쪽)는 다짐은 얼마나 귀한가. 노력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기꺼이 노력하겠다는 선언이니까. 어른으로서도 이해 가는 아이들의 심리전과 무책임한 어른들 앞 책임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렸다. “우리가 어리다고 슬픔까지 어린 건 아니”(157쪽)라는 한별의 말 앞에선 절로 숙연해진다. 여러 지점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갑질 당한 경비원, 왜 죽음 선택했을까 [강주리 기자의 K파일]

    갑질 당한 경비원, 왜 죽음 선택했을까 [강주리 기자의 K파일]

    끝없는 ‘갑질 문화’, 개인·사회 모두 망가뜨려아파트 입주민의 폭행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은 경비원 고(故) 최희석씨는 딸들을 매우 사랑한 가정적인 아빠였다. 그가 남긴 마지막 봉투에서는 현금 30만원과 딸의 이름, ‘사랑해’라는 글귀가 발견됐다. 최씨는 지난달 21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주차 관리를 위해 입주민의 차를 밀었다는 이유로 해당 주민에게서 폭언과 폭행해 시달리다 지난 10일 투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화목했던 평범한 가장, 그는 왜 극단적 선택을 한 걸까. “갑질, 인간 존엄성 짓밟는 ‘인격 살인’” “매슬로 인간욕구 5단계 중 존경·소속감 두 단계에 큰 타격…버티기 힘들었을 것”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갑질 행위에 대해 ‘인격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는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살 행위는 여러 사건이 누적돼 발생하는데 최씨의 경우는 갑질을 당한 것이 ‘방아쇠’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개 갑질에 취약한 사람들은 수용적이고 현실에 순응적이며 반박보다 참는 성향을 많이 띠는데 이를 악용한 갑질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인격 말살 행위이자 준인격적 살인에 해당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갑질 행위는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의 인간의 욕구 5단계 중 두 단계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최씨는 매슬로 단계 중 존경 받고 싶은 욕구와 사랑(소속감) 받고 싶은 요구에 큰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연관이 된 부분이라 정상적인 생활을 해왔더라도 견디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슬로의 인간의 욕구는 1단계 생리적·생명유지 욕구, 2단계 안전의 욕구, 3단계 사회적 및 소속감(애정)의 욕구, 4단계 존중 받고 싶은 욕구, 5단계 자아실현 및 성취의 욕구로 이뤄진다. 사회적 분위기가 폭력을 지양하는 사회로 바뀌면서 최씨가 받았을 상대적 타격이 더 컸을 가능성도 언급됐다.‘갑’ 위협 반복→자존감 손상→공포·불안감→만성무력감→개인 행복·주관적 삶 포기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왔던 최씨의 경우 개인의 인격적 착취와 무시를 당하면서 신체적·심리적 고통이 매우 컸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갑의 위협이 반복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과 공포감, 가장으로서 지켜나갈 힘이 없고 (역고소 등) 되레 피해를 줄 것이라는 판단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씨는 입주민 A씨의 괴롭힘이 계속되자 지난달 경찰에 고소했지만 A씨로부터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맞고소를 당했다. 곽 교수는 무엇보다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판단이 최씨를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갑의 위치에 있는 입주민에 대항할 수 없었던 최씨는 목소리를 내는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한 듯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최씨는 생전에 남긴 유서에서 “A씨에게 맞으면서 약을 먹어가며 버텼다”면서 “(경비원)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고 산에 가서 100대 맞자고 하더라. (A씨가) 길에서 보면 죽여버린다고 했다”며 두려움과 억울함을 호소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 27일 상해와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된 입주민 A씨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국민 10명 중 9명은 ‘갑질 피해 경험’갑질 제도적 해결 불신, ‘언론에 폭로’ 선호 “갑질도 ‘모방학습’…당하면 더 약자에 되풀이”“갑질 피해 누적될수록 법·사회 신뢰도 떨어져” 실제 각종 연구에서는 한국사회에서 갑질로부터 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갑질을 억제하고 해결할 사회 규범이나 법·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소셜미디어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언론에 기대어 ‘폭로’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들이 빈번해지는 추세다. 정한율 한국리서치 전문위원과 조계원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교수의 ‘갑질 문화에 대한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2018년 한국 성인 10명 중 9명이 갑질을 경험했고 ‘사법 조치’·‘공공기관 상담·청원’ 등 제도적 해결보다 ‘피해자 규합 집단행동’, ‘SNS-언론에 폭로’가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가해자에 대한 ‘망신주기’는 가능하나 실제적 권력 균형을 가져오기 어렵고 여론이 수그러들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갑질, 개인·사회 모두에 부정적 영향 끝없는 ‘갑질 피해’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크다고 봤다. 개인에게는 상대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자존감을 손상시키고 수동성을 강화해 개인의 행복하고 주관적인 삶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당한 모욕을 더 약자에게 되갚는 ‘갑질의 악순환’도 나타난다. 손상된 자존심을 보상 받기 위해 더 취약한 ‘을’에게 갑질로 되갚아 주는 것이다. 곽금주 교수는 “어린 시절 가정폭력이 ‘학습’ 행위를 낳듯이 갑질도 당하면 ‘모방 학습’이 기계적으로 나타나기 쉽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도 갑질 피해를 많이 입은 사람일수록 법의 공정성과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 교수는 “갑질에 순응·굴복하는 경험이 누적될수록 사회의 신뢰자본이 뚜렷하게 약화된다”면서 “이는 갑질 문화가 피해자 개인에 그치는 게 아닌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 약화 등 한국의 정치사회 시스템의 위기로 전환된다”고 우려했다. 문화심리학자 한민 우송대 교수는 이러한 갑질이 지위의 고저, 신분의 귀천 등 서열에 따른 특권과 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오랜 한국사회의 권위주의적 문화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갑질 처벌 대폭 강화해야…치료명령 필요”“무료 상담실 활성화 등 접근성 높여야” 전문가들은 ‘인격 살인’인 갑질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만성적인 악질 가해자의 경우 치료 명령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갑질에 대비해 중재 제도를 만들고 무료 상담실 등을 활성화해 피해를 당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를 충분히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동우 교수는 “갑질에 대한 법적 처벌을 강화하는 반면 갑질 가해자는 자기애적 경계성 장애를 가진 경우들이 많고 공격성이 높아 치료 명령이 필요하다”면서 “갑질 피해자의 경우 자기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방어 훈련과 심리적 치료로 면역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곽 교수는 “해외에는 커뮤니티내 상담시설이 복지시설처럼 잘 되어 있다”면서 “갑질을 당했을 때 상담시설을 떠올려 찾아오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 홈페이지에는 공공분야 ‘갑질피해 신고센터’가 운영 중이며 정부민원안내 ‘국민콜110’ 홈페이지에서도 ‘갑질피해상담’ 코너가 마련돼 있다. 민간분야의 갑질 피해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 제보와 상담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강주리 기자의 K파일은 강주리 기자의 이니셜 ‘K’와 대한민국의 ‘K’에서 따온 것으로 국내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취재파일입니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사까지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온라인 서울신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포토] ‘전직 승무원’ 이한아, 상큼한 미모와 볼륨감

    [포토] ‘전직 승무원’ 이한아, 상큼한 미모와 볼륨감

    전직 승무원 이한아 씨가 2020 미스맥심 콘테스트에 참가해 독자 투표를 통해 TOP 20위권 안에 진입하면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미스맥심 콘테스트는 월간지 MAXIM(이하 ‘맥심’)의 일반인 모델 대회로 맥심의 간판 스타를 독자 온라인 투표로 선발하는 이벤트다. 대회에 참가한 이한아 씨는 “제가 맥심을 예전부터 보고 있었어요. 그냥 맥심 그 자체가 멋지다고 생각해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냥 멋져요”라며 맥심에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 이어 이한아 씨는 “날 떠난 전 남친들 보면 날 꼭 뽑아주고 알겠지?”라며 귀여운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이전에 승무원으로 재직했던 이한아 씨는 완벽한 비율의 시원시원한 기럭지, 화사한 미소로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맥심 촬영을 마쳤다. 독자 온라인 투표를 통해 TOP 20에 진입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이한아 씨는 섹시 코스프레 화보 미션을 거치면서 새로운 맥심 화보와 영상으로 다음 투표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사진제공=맥심코리아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신간] 진솔한 그리움이 별처럼 다가오는 격려·위로 담아

    [신간] 진솔한 그리움이 별처럼 다가오는 격려·위로 담아

    처음으로 가는 연습(문문자 지음, 연인M&B 펴냄, 168쪽, 1만 1000원) 저자의 두 번째 시집이다. 구성을 보면 ‘사랑, 그 향기로 몸을 씻고 꽃춤을 추다’ 편에서는 그리움과 행복을 안고서 영원한 약속을 다짐하고 있고 ‘시골의 꼬부랑길엔 슬픈 낭만의 기타줄이 운다’ 편엔 시골의 낭만 속에 숨은 어머니·아버지에 대한 향수, 그리고 농사일의 고단함과 자연에의 순응을 노래했다. ‘여심은 시심에 묻혀 나의 이유를 외치다’ 편엔 중년의 여인이 돼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힘든 일상을 이겨 내고자 하는 자신을 토닥이고 있다. ‘가족은 별이 되어 가슴속 주머니를 채운다’ 편엔 언제나 힘이 되고 용기를 주는 가족에 대한 애정과 어머니·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되뇌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지구인극장] 테슬라 사장의 현실판 부부의 세계!! 현실 속 ‘아이언맨’이 불륜남이라고요?!

    [지구인극장] 테슬라 사장의 현실판 부부의 세계!! 현실 속 ‘아이언맨’이 불륜남이라고요?!

    오늘 지구인극장의 주인공은 세계적인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사장님이자, 괴짜 천재이고, 동시에 '똘끼' 충만한 언행으로 연일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일론 머스크입니다. 수많은 대기업을 이끌면서도 가끔 체신머리 없는 언행과 기행으로 논란을 만드는 머스크의 철없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요? 28살에 이미 백만장자 대열에 들어선 머스크, 알고보니 숨바꼭질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30세 생일파티 당시 영국의 성을 빌린 후, 이십여 명을 초대해 밤새도록 숨바꼭질을 했고요. 코스튬 파티를 열고 다스베이더 등으로 변장한 적도 있다고 하죠. 뿐만 아니라 머스크는 일본 대중문화에도 상당한 수준을 가진 덕후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의 가상 아이돌 캐릭터 ‘하츠네 미쿠’의 콘서트에 가지 못했다며 한숨쉬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고. 일본의 만화캐릭터인 ‘카케구루이’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공개돼 덕후 인증을 하기도 했죠. 고지식한 대기업 사장님 이미지가 아니어서 어쩐지 친근하긴 한데요. 범접하기 어려운 머스크의 취미생활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2016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한 고릴라를 추모한다면서 곡을 올렸는데, 이게 쓸데없이 고퀄리티라 사람들을 의아하게 한거죠. 심지어 이 곡은 아마추어부터 유명 아티스트들까지 작업물을 공유하는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라갔고, 유명 프로듀서와 래퍼까지 기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역시 대단한 머스크’라는 반응을 얻었습니다. 고릴라를 추모하는 따뜻한 마음까지 가진 우리 머스크 사장님, 이쯤에서 칭찬 한번 날릴까 했는데, 최근에는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연상케 하는 불륜으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죠. 지난 3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으로도 익숙한 월드스타 조니 뎁의 개인 팬트하우스에서 조니 뎁의 전처인 엠버 허드와 머스크가 껴안고 있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머스크는 자신이 엠버 허드를 만났을 때는 이미 조니 뎁과 이별한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조니 뎁은 자신이 엠버 허드와 결혼한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부터 그 둘이 만나기 시작했다고 반박하는 상황이고요. 엠버 허드는 조니 뎁과 이혼한 지 8개월 만인 2017년 머스크와 열애를 인정했기 때문에 2016년 8월 이혼 이후 계속되고 있는 두 사람의 진홁탕 싸움에서 머스크도 발을 빼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불륜 드라마 주인공으로 전락해버린 머스크 사장님은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뻘짓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난 3월 머스크는 “코로나바이러스 패닉은 바보같다”, “아이들은 면역 걱정이 없다” 등의 망언을 SNS에 올려 제대로 까였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한 지역에 환자들을 위해 인공호흡기를 기부하겠다고 했다가, 인공호흡기가 아니라 양압기라는 사실이 알려져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고요. 정신 못 차린 머스크, 지난달에도 SNS에 당장 미국을 지역 봉쇄로부터 해방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파시즘이다 등의 망언을 남겨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죠. 개인적으로 사장님이 SNS를 좀 끊으셨으면 좋겠네요! 세계적인 기업을 이끌면서도 연이은 말실수 글실수로 대차게 까이는 일론 머스크. 공인인 만큼 아무쪼록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현실 속 아이언맨’으로 남아주길 기대해 볼게요. 그럼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구성·출연 송현서 / 촬영·편집 이상오
  • [길섶에서] 식물맹(植物盲)/이동구 수석논설위원

    꽃이나 식물들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몇 가지를 제외하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식물맹 수준이다. 꽃 이름이나 식물들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엄청 부럽다. 올봄에는 가족이 함께 나들이할 곳도 마땅찮고 해서 도심 공원들을 몇 번씩 찾았다. 평소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봄꽃이나 식물들에 호기심이 새록새록 생겼다. 창포인가, 수선화인지, 무슨무슨 아이리스라는 학명의 꽃들이 여럿 있어 일일이 물어본 적도 있다. 생김새가 비슷비슷해 정확히 구분하기는 여전히 어려웠지만 어설프게라도 수선화와 창포꽃을 구별할 수 있게 돼 뿌듯했다. 세상사 마음 가는 것이라야 그것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된다. 꽃과 식물, 나무들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없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는 말은 핑계일 것이다. 집에서 키우는 몇 종류 되지 않는 화초들조차 그 이름을 모르고 살았으니 미안함마저 든다. 사무실 책상 뒤에 놓아둔 난 화분을 수차례 고사시킨 것도 모두 이런 무관심 때문이 아닌가. 이름 모를 잡풀이든, 화초든, 풀벌레든 모든 살아 있는 것에 좀더 애정을 쏟아 보고 싶은 계절이다. yidonggu@seoul.co.kr
  •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 ― 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 감독님만의 선수 지도 철학이 있는가. “감독인 나의 스타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선수들 각자의 장점을 발굴하려고 노력한다. 선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은 한다. 선수들이 배구를 하면 스트레스에 굉장히 많이 노출되는데 선수들 얘기를 경청하면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려고 도와준다. 배구가 재밌다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다. 선수 시절에 내가 싫었던 건 웬만하면 강요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대로 하기 싫었지만 도움이 됐던 것들은 이해를 시키려고 하는 편이다.” ― 올시즌 유일한 이적생인 고예림 선수가 ‘새 직장’ 현대건설이 다른 점으로 소통을 많이 하는 점을 꼽더라. “선수들이 저하고도 얘기를 많이 하지만 훈련 시간에 선수들끼리 대화하는 시간을 준다. 수비와 세터 간 호흡은 어떤 식으로 맞출 건지, 어느 위치에서 수비할 건지 등을 얘기한다.” ―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 하루 일과를 설명해주시면. “주중에는 오전 8시 30분 스태프 미팅을 마치고 오전 훈련을 하고, 점심먹고 오후 훈련을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내 자신을 돌아본다. 혹시나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선수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선수들이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 운동 외에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나. “훈련 시간 중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책을 많이 보는 편이다. 고전도 많이 읽는다. 최근에는 패스트와 한중록을 읽었다. ―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격언이 있나. “항상 겸손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어느 위치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 감독님을 두고 주변 사람들이 차가워보인다는 얘기를 하더라. “저는 정적인 사람이다. 여행보다는 책 읽기, 돌아다니기보다는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굉장히 단호하다. 과거 일에 끙끙 앓고 미련 두기보다는 앞으로 계속 가는 스타일이다. 정에 이끌리지는 않는다. 꽤 오랫동안 나름대로 주변 사람들 말도 들어보면서 묵묵히 숙고(熟考)한 뒤에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고 그 뒤로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만약에 잘못되면 그건 내가 책임져야하는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차가워 보인다는 얘기를 듣지 않나 싶다.”― 고교시절부터 함께한 김철용 감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두 분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제가 일신여중으로 스카우트 됐는데 김철용 선생님도 제가 고등학교 갈 때 일신여상에 부임하셨다. 고3 언니들이 전국체전이 끝나고 실업팀으로 간 뒤인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반부터 고등학교 체육관에 올라가서 연습을 했는데 그때 선생님을 처음 뵀다.” ― 김철용 감독은 당시 A속공을 가장 잘하는 1학년 이도희를 공격수에서 세터로 전향시켰다고 하던데. “사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세터를 시키려고 했는데 제가 하기 싫다고 했다. 세터들이 워낙 욕을 많이 먹으니까 하기 싫었다. 중학교 때는 신장이 큰 편이라 항의가 받아들여졌는데 고등학교 올라가니 배구 선수 치고는 신장이 170cm로 작은 편이라 안 먹혔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때도 공격수였는데 당시 주전 세터였던 임혜숙 언니가 1학년 중반쯤 국가대표팀에 차출돼서 나가는 바람에 세터 자리가 비었고 그때 김철용 감독님이 세터를 시켰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선생님이 시키면 하는 거였다. 제가 1학년때 고3 언니들이 좋은 경기력을 갖고 있었다. 토스를 초보자가 하는데도 언니들이 받아주고 잘 때려주니까 계속 이겼던 것 같다.” ― 초등학교 1학년때 육상 선수를 하다가 10살 때 배구를 시작하셨다. 배구를 시작한 배경은. “키가 커서? 어렸을 때는 잘 뛰고 그랬나보더라. 몸이 약한 편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말랐는데 부모님이 몸이 약하니까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지 않겠냐고 해서 하게 됐다. 제가 막내라 아버지가 저를 되게 예뻐하셨다. 아버지가 처음에는 운동하는 걸 별로 안좋아하셨는데 학교 선생님이 설득했다. 그뒤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잘 해주셨다.” ― 김철용 감독과 이도희 감독 본인의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고교랭킹 1위로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가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 흥국생명이 이다영을 데려갔다. 이다영이 부진할 때 믿고 기용해 리그 최고 세터 수준으로 키운 걸로 아는데. 현대건설 팬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큰 것 같다. “아쉽지 않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FA는 전적으로 선수 본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존중한다. 거기 가서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애정을 갖고 그 선수를 키웠기 때문에 그 선수가 좋은 선수가 성장하길 바란다. 팬들의 그런 비판은 2018~2019 시즌에 이다영 선수가 힘들어할때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최근 이다영의 대체자인 세터 이나연 영입도 화제였다. “아직까지 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단계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좀 있다. 이 선수가 얼마나 따라올지, 이 선수가 내가 얼만큼 발전 시킬 수 있을지가 문제다. 이 선수랑 같이 훈련해보면서 이 선수가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보이게 하는 게 제 역할이다. 단점은 안 보이게 하면서 장점 부각되게 하는게 제 역할인 거 같아서. 이나연 선수는 자신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 이다영 선수는 당연히 포함 될테니 이다영 선수를 빼고 코치 시절부터 통틀어서 감독님 밑을 거쳐간 세터 중에 기억에 남는 세터를 말해달라. “염혜선 선수는 굉장히 열심히 하는 선수여서 좀 더 잘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효희 도로공사 코치는 선택이 굉장히 좋은 선수여서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사실 흥국생명 이영주 선수가 기억에 남는다. 공격수 였다가 세터로 전향한 선수였다. 프로팀에서 제일 처음 가르쳤던 선수라서 구질도 좋고 그래서. 운동을 좀 더 오래 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김다인 선수가 제 밑에서 올해 3년째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 선수가 잘 성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수원시청에서 뛰던 김주하는 결혼 뒤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감독님과 닮았다. 감독님도 수원시청에서 뛰셨다. “코로나19로 포스트시즌을 치르지 못하면서 리베로 김주하 선수를 선보이지 못하고 끝난게 아쉬웠다. 김연견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대체자가 필요했는데 이영주는 너무 어렸고, 고유민은 리베로 자리를 부담스러워해서 레프트 백업으로 원위치했다. 그래서 김주하 선수에게 부탁을 했고 흔쾌히 허락을 해줬다. 김주하는 우리 팀의 주전 리베로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이다. 수원시청에서 선수생활을 했는데 이번 시즌 개인사로 작년에 그만둔 것 같더라. 몸이 좀 많이 아팠는데 몇개월 쉬고나니까 괜찮아졌다고 하더라. 김주하 선수는 체력이라든지 고질적인 부상이 있다. 충분히 체력 보강을 해야 시즌때 아프지 않고 시즌을 마칠 수 있다고 많이 얘기를 했다.” ―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어둑한 근대사에 돋보기…행간 속 민족을 사색하다

    어둑한 근대사에 돋보기…행간 속 민족을 사색하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자 원로 비평가인 임헌영(79) 선생의 이미지는 불가피하게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선명하게 각인된다. 이른바 ‘남민전 사건’으로 인한 투옥과 시련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로 상징되는 사회운동에의 투신이 한 축의 면모라면, 다른 한 축은 치밀한 자료 섭렵을 통해 한국 근현대문학의 실증적·사상적 연구를 축적해 온 면모로 귀납된다. 그 가운데 연구소에서 오랜 열정과 공력을 다해 펴낸 ‘친일인명사전’(2009)의 성과는 우리 근대사의 어둑한 순간들을 현재로 소환해 반성적 자료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세 권 분량에 4300여명을 수록한 이 책의 성과는 두고두고 임헌영 선생의 생애를 집약하는 표지가 돼 줄 것이다.●알리고 밝히고 세워 가야 할 역사 친일 행적을 밝히는 게 쉬울 리 없다. 당시 작업에 대한 폄하와 공격도 상당했다. 선생이 연구자들에게 강조한 점은 이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 조상 다루듯 하라.’ “많이 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뺄 수 없을 경우에만 넣도록 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창의적 교육관이 아니라 단순히 수동적 집행에 머물렀던 교육자 같은 이들은 모두 빠졌죠.” 민족사적 관점에서 반성적 자료가 되기에 족한 이들, 제국주의 협력의 자의식을 가진 이들만 추린 모종의 정예화 결과인 셈이다.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한쪽에서는 당사자인데도 이러한 과정을 흔연하게 받아들인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분들이 준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파인 김동환의 자제 김영식 선생은 전집에 아버지가 쓴 친일 문건을 다 실었어요. 아버지가 사죄할 기회가 없었는데 자신이 대신 사죄한다면서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큰 힘을 줬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어쨌든 인명사전 출간 후 친일 청산에 대한 긍정적 지지자는 많이 늘어났고, 다수 여론조사에서 친일 청산 여론이 70%가 넘는다고 했다. “우리 연구소는 시민단체 가운데 가장 역사의식이 투철한 구성원들로 이뤄진 것 같아요. 이제 저희 과제는 오늘도 여전히 일본이 옳았다고 하면서 학문이나 예술이나 경제 논리로 포장하는 이들과의 싸움에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도 일본의 새로운 파시스트들과의 싸움이 중요하지요.” 최근 연구소는 각고의 노력으로 서울 청파동에 새 건물을 마련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튜디오를 만들어 팟캐스트를 찍고 그걸 유튜브에 공개해 일반 시민들과 연구소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일본 파시즘 지지 세력과 우리 쪽 일부 세력이 보여 주는 정치적 화음에 주목할 때 아직도 연구소가 알리고 밝히고 세워 가야 할 역사의 흐름이 만만치 않은 듯했다. 물론 일본에도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우경화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있고, 우리 쪽에도 민족 경험을 훼손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현재형을 돌파해 제대로 된 민족사를 쓰기 위해 선생의 헌신과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친일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된 연구소가 펼치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과거사 청산 작업 역시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국내외를 망라한 작가들의 정치의식 탐색 사실 인터뷰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선생이 오랜만에 두 권의 역저를 잇달아 낸 데 있었다.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역사비평사, 2019),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소명출판, 2020)가 그것이다. 두 책은 대조적 속성을 띠고 있다. 앞의 것이 광폭의 발품과 해박한 독서력을 기반으로 해외에 눈을 돌렸다면, 뒤의 것은 한국소설의 맹장들에 대한 정치적 관점에서의 독법이 담겼다. 먼저 유럽문학 기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감옥에서 나와 여행을 못 다닌 게 원통했어요. 문화센터 같은 데서 강의하다가 외국 문인들의 박물관 방문 프로그램을 계획했는데 모집이 잘돼 제 뜻대로 계획도 짜고 진행도 했어요. 성공적이었지요. 이 책에서 다룬 분들은 모두 평화, 반전, 반제국주의의 작가들이에요. 민중적 정치의식을 가진 분들의 문학을 테마로 한 결과이지요.” 책은 영독불러의 황금분할을 이루고 있다. 푸시킨, 톨스토이, 고리키, 스탕달, 위고, 괴테, 횔덜린, 헤세, 바이런, 로런스 등이 선생의 열정적인 답파(踏破)와 재구성에 의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에세이풍으로 써 가는 선생의 친절하고도 에두름 없는 문장들이 책의 가독성을 한결 높여 준다. 위대한 작가들의 사생활, 특별히 외도 경험 같은 어둑 한 측면까지 훤칠하게 재현했다.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는 어떠할까? “우리가 위대한 시민혁명을 했는데도 여전히 발전된 정치의식이 빈곤하다는 것을 최근 절감했어요. 늘 흔들리고 위태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소설가들을 통해 역사를 올바로 보는 눈, 정치를 제대로 하는 힘을 빌리자고 생각했지요. 이왕이면 독자가 많은 작가들을 골랐어요. 되도록 각주를 빼고 연애소설 읽듯이 쉽게 풀어 갔습니다.” 책에는 장용학, 이호철, 최인훈, 박완서, 이병주, 남정현, 황석영, 손석춘, 조정래, 박화성, 한무숙 등이 담겼는데, 문학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이병주가 다가올 것 같고, 문학의 자의식이 큰 분들에게는 최인훈과 남정현이 매우 유의미하게 다가올 것 같다. “정치사 비판의 현장 중계는 이병주 선생이 최고봉이에요. 어떤 정치평론가도 못 따라가요. 최인훈 선생은 우리 문단의 고질병인 파벌을 넘어선 범례로 다루면 좋겠고요. 그 지성의 날카로움과 처연함이 단연 빛나지요.” 아직도 우리에게는 ‘정치’라는 말을 향한 기대와 혐오의 엇갈림이 있다. 그러나 정치야말로 가장 첨예한 예술이 아니던가. 책 서문에 인용된 나폴레옹의 말처럼 모든 공동체에서는 “정치가 운명”이 아니겠는가. 그 점에서 이 책은 선생의 사회적 실천의 연장선상에서, ‘비평가 임헌영’의 두께를 한 뼘 늘려 줄 것이다.●고단하고도 외로운 길 선생은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그 후 카프(KAPF)나 해방기에 대한 자료를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모았고 자료집을 냈으며 그 논리와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진력했다. 선생은 1980년대 이후 우리 지성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해방 전후사의 인식’ 시리즈에서도 단골 필자였다. 이쪽을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등단하기 전부터 카프에 대한 애정을 가졌어요. 해금 전부터 납월북 작가에게 관심이 많았고요. 그때는 대학 도서관에서 자료를 카메라로 직접 찍었어요. 해독이 잘 안 되면 살아 계신 분들께 전화로 직접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을 걸었지요.” 임헌영 비평은 참여문학, 민족문학, 리얼리즘, 민중문학에 이르는 패러다임을 모두 품고 있다. 안으로는 동학농민혁명, 4·19혁명,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과 관련한 문학에 대해 꾸준한 비평을 해 왔고, 밖으로는 글로벌 시대의 해외동포문학에 대한 탐구도 줄기차게 수행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외연을 넓혀 갔다. 이처럼 선생은 근현대 민족 수난사와 함께하면서 디아스포라 문제에도 눈을 떴다. 물론 선생은 서정적이고 예술적인 언어도 세상에 많이 내놓았다. 이 점, 선생을 설명하는 데 퍽 중요한 균형추가 아닐 수 없다. 마침 연구소 곁 숙명여대에서 재직하는 권성우 교수가 동석을 해 줬는데, 권 교수가 선생께 ‘앞으로 어떤 책을 내고 싶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북한문학 한번 정리해야 하고요. 해외동포문학도 중요합니다. 해외동포 쪽은 제가 제일 먼저 손대지 않았나 싶어요. 문학사회사, 특별히 필화사에 애정이 가요. 아마도 필화사가 제일 먼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이후로 두 분의 치열한 대화가 오갔다. 재일조선인문학, 특히 김석범과 김시종과 서경식에 대한 경험적 대화는, 비록 즉각적이었지만 임헌영 선생의 경험과 사유가 어디까지 뻗어 나가 있는지를 실물적으로 알려 줬다. “젊은 작가들의 세계를 평하기에는 이제 제 비평의 틀이 안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변해도 문학의 원칙은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그걸 훼손하면 안 됩니다. 원래 문학은 문학 하는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어요. 교양의 정점에서 문사철을 모두 이끌어 갔습니다. 손끝으로 하는 문학 말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문학을 지금도 옹호하고 또 대망하고자 합니다.” 굵직한 의제들을 버리고 쇄말주의에 빠진 우리 문학에 대한 원로다운 문제 제기인 셈이다. 선생의 말씀처럼 근본적 문학의 위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되 변하지 않을 문학을 위해, 여전히 현재형 의제인 민족사 복원을 위해, 선생이 걷는 고단하고도 외로운 길은 아직도 가파르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 길은 누군가는 걸어 우리에게 비춰야 했던 오랜 지남(指南)으로 남을 것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광주시,배우 최승경·임채원 부부 홍보대사로 위촉

    광주시,배우 최승경·임채원 부부 홍보대사로 위촉

    광주시가 배우 최승경·임채원 부부를 ‘광주시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신동헌 시장은 25일 오후 시장실에서 배우 최승경, 임채원 부부에게 홍보대사 위촉장을 수여하고 ‘광주시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이에 따라 최승경·임채원 부부는 오는 2022년 5월 24일까지 광주시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각종 홍보 콘텐츠 제작과 주요 행사에 참여하는 등 광주시 홍보활동에 적극 나서게 된다 이번 광주시와의 인연은 최씨가 지난 20여 년간 곤지암 일대의 음식문화 거리와 토마토, 토란 등 광주시의 건강한 농산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광주시를 꾸준히 방문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작됐다. 광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홍보대사를 맡은 최승경·임채원 부부는 친환경 명품도시, 너른고을 광주의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임채원씨는 “평소 가족이 함께 소머리국밥과 같은 지역의 특색 있는 먹거리를 함께 즐기며 광주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됐다”며 “먹거리에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먹거리와 더불어 볼거리에 대해 열심히 홍보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신 시장은 “부부가 함께 홍보대사로 참여해 매우 기쁘다”며 “가족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사계절의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가득한 광주시를 알리기 위해 적극 활동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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