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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랍 한국인 1명 피살] “현지인들이 미안해 해요”

    아프간 현지인들은 저를 만날 때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미안해합니다. 한국사람들이 자신들을 도우려 왔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죠. 지난 24일 밤 한국인 피랍자 8명을 풀어준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25일 오후 7시 15분(한국시간 오후 11시 45분) 아프간 방송에서 탈레반이 한 명을 살해했다고 나오면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말 악한 사람이 아니면 하지 못할 일을 했다면 개탄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은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애도기간입니다.30년간 이탈리아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본국으로 돌아온 이 나라의 마지막 국왕 모하메드 자히르 샤가가 지난 23일 돌아가셨기 때문이죠. 현지 사람들은 전 국왕이 돌아가신 경건한 시기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데 충격을 받은 분위기 입니다. ●현지인들 “국왕 애도기간중 탈레반 화해 제스처 기대했는데…” 현지 언론들은 외신의 보도를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확실하지도 않고 탈레반이 이번 애도 기간에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 선전하려는 제스처 일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현지인들은 맞교환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탈레반의 만행을 잘 알고 있는 현지인들은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잡아놓은 탈레반 지도급 인사들을 풀어준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그래서 “탈레반이 조건 없이 인질들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민들의 걱정은 지금이 아니라 향후에 한국 정부가 이곳의 봉사활동을 제한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다양한 경험과 기술을 가진 단기 봉사자들이 와서 많은 활동을 했는데 이것이 법적으로 금지가 되면 자연스럽게 위축되겠지요. 그래서 교민회를 중심으로 각 단체 대표들이 매일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강제 출국이 이루어진다면 이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교민들의 삶의 기반이 이곳에 있는데 이것을 모두 버리고 가는 것은 어려움이 많기 때문입니다.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지금까지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고 진행되고 있는 활동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사업, 보건소사업, 교육사업, 지역개발사업, 구제사업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을 중단하고 철수하는 것은 현지인들과의 신뢰에 금이 가는 행동입니다. 정부에서 강제출국을 시키면 어떡하느냐는 이야기도 오가곤 합니다. ●“봉사활동 제한으로 교민들 설 자리 위축될까 걱정” 한국봉사단이 피랍된 가즈니 지역은 현지인들도 가기를 꺼려하는 곳입니다. 현지 운전기사들도 그 지역을 통과해야 할 때면 최고 속력으로 지나갑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프간은 중앙정부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으로 18개 군으로 이루어져 있고 936개 마을에 140만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으로 봉사활동을 오시는 분들은 한국에서 현지를 잘 아는 사람에게 충분한 사전 교육을 받고 오시길 당부합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지역이나 국가의 정치적인 상황, 종교적인 상황, 문화적인 상황 등을 충분히 숙지해야 합니다. 2003년 타지키스탄에서 누군가가 이슬람사원에 몰래 들어가 붉은 페인트로 정문과 기초석에 십자가를 그려놓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러한 짓은 절대 안됩니다. 또 의욕만 앞서서 개별적으로 가가호호를 방문해 선교를 하는 것 역시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수백년 또는 수천년 내려온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이단시하거나 무시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단기 봉사자들 몇몇이 감정적으로 섣불리 선교활동을 하게 되면 그것으로 인해서 수년간 봉사활동을 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피랍된 모든 한국인이 무사하게 돌아오길 진심으로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윤성환씨는 한국인 23명이 납치된 아프간 카불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윤성환(35·굿네이버스 아프간 지부장)씨가 25일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지 소식을 이메일로 서울신문에 전해왔다. 그는 2002년 세워진 카불 국립 이브니시나 응급병원과 카불 주내 보건소 3곳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이들 병원에서는 하루 500명가량을 진료한다. 지난 7년 동안 타지키스탄에서 활동을 했고, 올해부터 가족과 함께 아프간으로 옮겨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또 한국과 일본, 핀란드 등 국제자금으로 설립된 여성교육문화센터에서 문맹퇴치교실, 컴퓨터 교실, 영어교실, 공중보건교육, 문화교실 등을 운영하며 여성 권익보호를 실천하고 있다. 현재 아프간에는 동의·다산부대를 제외하고 교민 15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 착륙중 화물터미널 충돌 최소 200명 사망… 브라질 최악 항공기 참사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17일 오후 6시50분쯤(현지시간) 승객과 승무원 176명을 태운 탐(TAM)항공사 소속 에어버스 A-320여객기가 국내선 전용 콩고냐스 공항에 착륙하던 중 화물터미널과 충돌하면서 폭발해 최소 200여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현지 언론들은 화물터미널에서 근무하던 희생자까지 포함, 사망자가 최대 250명 선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는 브라질 사상 최악의 항공사고다. AP,CNN 등 외신들은 이날 상파울루 소방당국의 발표를 인용, 탑승자 전원을 비롯해 화물터미널에서 근무하던 직원 20여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탑승자 명단에는 한국인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브라질 최남부 포르토알레그레에서 출발한 항공기는 콩고냐스 공항에 착륙하던 중 활주로에서 미끄러져 화물터미널과 충돌한 뒤 인근 워싱턴루이스 도로까지 밀려났다. 이어 항공사 소속 주유소와 충돌하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이 때문에 생존자를 기대하기 힘들고, 시신 수습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항공기가 이용한 활주로는 전날부터 내린 폭우로 매우 미끄러운 상태였다고 CNN 등은 전했다. AP는 콩고냐스 공항의 활주로가 짧아 대형 항공기의 이착륙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수년 전부터 제기됐다며 이번 참사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보도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사고 직후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 사고수습과 대책마련을 지시했으며 이날부터 3일간을 국가 애도일로 선포했다. 대통령궁 측은 콩고냐스 공항의 완전 폐쇄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콜롬비아에서도 이날 승객과 승무원 등 54명이 탑승한 여객기가 폭우속에 산타마르타시 시몬볼리바르 공항에 착륙하려다 바다에 떨어져 6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도둑 잡고 웃던 미소 영원히…”

    “시민의 안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해 온 그대는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셨습니다.” 법규를 위반한 오토바이를 단속하다가 오토바이에 치여 숨진 고 신균식(34) 경사의 영결식이 18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엄수됐다. 신 경사의 아내 박혜영(28)씨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잠이 든 딸 가영(3)양을 어루만지며 밀려오는 슬픔에 힘없이 눈물만 쏟아냈다. 영결식에는 신 경사의 가족과 동료, 국회의원과 기관장 등 3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신 경사와 함께 망원지구대에 근무한 박만선 경장은 고별사를 통해 “함께 중앙경찰학교를 나오며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자던 푸른 약속이 사라졌다.”면서 “짧은 만남 긴 이별이지만 한밤에 도둑을 잡고 웃던 미소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오열했다. 홍성삼 마포경찰서장은 “고인은 항상 먼저 현장에 뛰어간 베스트 파트너였다.”면서 “민생치안 현장에서 항상 앞장선 진정한 국민의 파수꾼이던 고인의 영전에 머리를 숙여 명복을 빈다.”고 안타까워했다. 영결식을 마친 뒤 유족과 동료들은 신 경사가 근무하던 망원지구대에서 노제를 지냈고, 신 경사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1999년 4월 순경 공채로 경찰에 투신한 신 경사는 이날 경장에서 경사로 진급됐고,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 신 경사는 지난 12일 오전 11시15분쯤 서울 마포구 성산초교 앞에서 안전모를 쓰지 않고 무면허로 훔친 오토바이를 몰던 강모(27)씨를 단속하다가 오토바이에 받혀 쓰러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친 뒤 16일 오후 숨졌다. 신 경사를 친 강씨는 살인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희귀 난치병 도전과 정복](38) 뇌동정맥 기형

    [희귀 난치병 도전과 정복](38) 뇌동정맥 기형

    “의술은 곧 문명입니다. 예전에야 간질증상을 보이면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했지만 요즘엔 이런 미개한 행태가 거의 사라졌지요. 다른 요인도 있지만 간질의 원인이 뇌동정맥 기형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임영진 경희의료원 신경외과 주임교수는 신경외과 분야의 손꼽히는 희귀난치 질환인 ‘뇌동정맥 기형’이 뇌출혈과 간질의 주요인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정상인의 혈관 구조는 심장에서 동맥을 통해 흘러나온 혈류가 인체 각 조직으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한 뒤 정맥을 거쳐 심장으로 되돌아오는 순환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동맥과 정맥 사이의 모세혈관을 거치면서 동맥 혈액에 실려간 산소와 영양분이 수많은 세포에 공급되는데, 문제는 더러 이 과정에서 중요한 과정, 즉 혈액이 모세혈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정맥으로 유입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현상을 유발하는 비정상적인 모세혈관을 통칭 뇌동정맥 기형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심장-동맥-모세혈관-정맥-심장의 경로를 거쳐야 할 혈류가 모세혈관을 거치지 않고 곧장 정맥으로 유입되는 것.“동맥과 정맥 사이의 비정상적인 혈류 교통은 역시 비정상적인 혈관 덩어리를 만들게 되며, 시간이 지나면서 이 혈관 덩어리가 점차 커지면 혈류의 속도도 덩달아 빨라지게 되지요. 여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동맥과 정맥 사이에 모세혈관이 없기 때문에 말초저항이 없게 되고, 이 때문에 혈류량이 증가하면서 높은 동맥 혈압이 정맥 혈관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그렇게 되면 당연히 뇌동정맥 기형 주변의 동맥압은 떨어지는 반면 정맥압은 높아져 만성적인 혈관 확장상태를 유발하게 되고, 이런 현상은 점차 혈관의 자동조절 기능을 마비시키게 되지요. 이 같은 동정맥 기형의 혈류 역학적 특성은 다른 질환의 수술이나 색전술로 혈류가 차단될 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병의 확실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태생기 때의 비정상적인 발달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태생기 약 4주쯤에 이르면 뇌혈관이 동맥과 모세혈관, 정맥 등으로 분화하게 되는데, 이 때 혈액이 유입되는 동맥과 유출되는 정맥 사이에 중요한 모세혈관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지요. 이는 곧 동정맥 기형으로 발전합니다.” 이 질환은 전체 인구의 0.14%에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자가 여자에 비해 발생률이 약간 높으며, 증상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연령대는 20∼30대 중반이다. 전체 환자의 3분의2가 40세 이전에 진단을 받는다. 뇌동정맥의 주요 증상은 뇌출혈과 간질이다.“환자의 60∼70%는 뇌출혈,20∼30%는 간질 증상을 보입니다. 또 나머지 5%에서는 두통이나 허혈로 인한 신경장애도 나타나지요.” 특히 주로 20대에게서 많이 발생하는 뇌출혈은 후유증이 심각해 반신마비가 오거나 두통, 구토에 심하면 의식 저하까지 동반한다. 간질, 즉 경련도 흔한 증상이다. 따라서 젊은 사람이 뇌출혈이나 간질 증상을 보이면 뇌동정맥 기형을 의심해 봐야 한다.“이뿐이 아닙니다. 혈관 기형의 혈류역학적 특성인 기형 동정맥 속의 늘어난 혈류량 때문에 기형 부위 주변의 혈류량이 감소해 정상 뇌조직을 손상시키며, 이 때문에 중풍 증상을 보이는가 하면 소아의 경우 기형 부위로 가는 혈류량이 많아 심장의 박출량이 증가하게 되고 이는 심부전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뇌동정맥 기형을 치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적인 경과를 보면 일반적으로 매년 뇌출혈이 생길 확률이 2∼3%에 이르고, 한번 출혈을 경험한 환자가 재출혈을 겪을 확률도 매우 높다. 뇌동정맥 기형이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 교수는 뇌동정맥 치료법이 과거와 달리 많이 발전해 얼마든지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사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뇌동정맥 기형의 치료는 매우 어려운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세수술 기법의 발전과 방사선 수술법의 도입으로 별다른 신경학적인 장애없이 완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치료 방법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한 가지는 미세수술을 통해 동정맥 기형의 병소를 제거하는 것이고, 다음은 뇌동정맥 기형 부위로 혈류가 유입되지 않도록 혈관을 아예 차단하는 색전술이며, 또 하나는 방사선 수술이다. 어떻든 수술을 거치는 것이 가장 명쾌한 치료인 셈이다. “수술의 목적은 기형 부위를 제거, 출혈의 여지를 없애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병소가 머리 부분에 있는 만큼 의사의 숙련도가 중요하지요. 자칫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술 경과에는 의사의 숙련도 외에 병소의 위치와 환자의 신경학적 상태와 나이도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색전술은 도관(導管·catheter)을 뇌혈관에 삽입, 색전 물질을 주입해 기형 혈관을 막는 방법이다. 색전술을 시행하면 병소의 크기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혈류가 다량 유입되는 동맥을 미리 폐색시켜 수술을 쉽게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혈류량이 다시 늘어난다는 점이 문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감마나이프로 방사선을 조사해 동정맥 기형을 치료하는 방법이 선호되고 있다.“고용량의 방사선을 주변의 정상 조직에 피해가 없도록 정밀하게 병소에 쏘아 병변을 파괴하는 치료법으로, 기형화한 병소가 보통 3㎝ 이하인 경우 방사선 치료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입니다. 치료 효과 측면에서 보자면, 방사선을 이용한 다양한 수술 중에서 뇌동정맥 기형 환자들이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이지요.” 방사선 수술의 장점은 또 있다. 외과적 수술과 달리 비침습적이고, 국소적으로 병변에만 방사선을 쏘아 치료하기 때문에 합병증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도 매력이다. “그러나 수술 후 병변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보통 6개월 정도가 걸리고, 그동안에 다시 출혈이 생길 가능성이 있으며, 기형 병변이 직경 3㎝를 크게 넘으면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문제이지요.” 환자의 연령과 병소의 위치 및 크기, 신경학적인 상태 등을 정밀하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의의 자질과 능력이 치료 성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임 교수는 뇌동정맥 기형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맞지 않으려면 갑작스런 두통이나 경련, 의식 저하 등 관련 증세가 보일 경우 지체하지 말고 병원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김재정씨 고소 취소 거부 이후…] 李측 “설득 하겠지만…”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경선 후보측이 딜레마에 빠졌다. 처남 김재정씨가 검찰 고소 취소를 거부해서다. 이 후보측은 김씨가 소를 취소하도록 설득한다는 입장이나 지난 11일 오후부터 김씨측과 접촉은 없다. 이 후보는 12일 캠프 사무실에서 김씨의 소 취소 거부에 대해 “캠프에서 논의를 해보려고 한다. 어떻게 된 것인지.(김씨가)저렇게 나올 정도면 뭔가 각오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어 “김씨와 직접 만날 것인가.”라는 질문에 “오늘(12일)은 접촉할 시간이 없을 것 같다. 캠프 사람들, 법률 관계자들과 상의해 보고 (김재정에게)연락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사람(김씨)은 또 얼마나 억울하겠나. 사업하는 사람이 매일 기자들이 따라 다니고 어려워졌다. 그 사람도 나이가 60이 다 된 사람인데 애도 아니고….”라고 말했다.이 후보는 또 검찰이 자신의 개인정보 유출 정황을 포착한 것에 대해 “개인정보가 흘러나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선진국 같으면 이런 일이 있겠나.”며 “내가 기업할 때 도청당할까봐 외국하고 중요한 전화는 일본에 가서 했다.”고 거듭 불쾌함을 나타냈다.캠프 좌장격인 이재오 최고위원은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캠프로서는 당 지도부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김씨에게) 취소해 주면 좋겠다는 권유를 계속할 것”이라며 “김씨가 다소 억울하더라도 당의 결정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캠프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날 캠프의 소 취소 권유를 거부한 김씨가 당장 입장을 번복할 경우 박 후보측과 범여권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고 당분간 ‘소송 강행’ 입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편 이 후보측 장광근 대변인은 이 후보를 향한 각종 의혹제기가 청와대와 범여권 공작정치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며 청와대를 상대로 5개항의 공개 질의서를 냈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안방극장의 여왕’ 한혜숙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안방극장의 여왕’ 한혜숙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 표지모델편 ⑫] “요즘 같으면 시집이나 가버렸으면 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남자가 있어야 가죠. 일단 나타나줘야 마음을 정해보는 것 아닌가요?” 78년 12월,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슬픔은 이제 그만>의 개봉을 앞둔 스물일곱 살 한혜숙이 선데이서울의 표지를 장식한 기사에서 밝힌 말이다. 쉰여섯 살(1951년 8월 20일생)인 지금 그녀는 여전히 덕수궁 돌담길을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을 남자를 기다리는, 소녀 같은 소박한 꿈을 갖고 있는 독신이다. 한혜숙은 덕성여고를 졸업하던 70년 MBC 탤런트 2기로 김자옥, 박원숙 등과 함께 연예계에 첫 발을 디뎠다. MBC 탤런트로 연기생활을 시작했지만 71년 KBS 청소년 드라마 <꿈나무>의 주연급 탤런트 현상공모에서 여고생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면서 화려한 조명을 받게 된다. 지금은 영화감독이 된 하명중과 사랑하는 연인 역으로 출연하여 단번에 스타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후 74년 국민홍보용 드라마인 KBS <꽃피는 팔도강산>을 통해 안방극장의 트로이카로 자리 잡았다. 1남 6녀를 둔 김희갑, 황정순 부부가 분가해서 지방에 사는 자녀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경제개발에 따라 달라진 생활모습을 간접적으로 조명하는 내용이다. 막내딸로 대한항공 스튜어디스인 한혜숙은, 인생 수업차 신분을 숨기고 속초에서 물지게를 지고 있는 재벌2세 민지환과 짝을 이뤄 출연한다. 70년대의 한혜숙은 꼬리가 아홉 달린 무시무시한 구미호로, 80년대의 그녀는 <토지>(1987)의 최서희로 사람들의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 77년에 시작된 한국 공포물의 고전이랄 수 있는 KBS <전설의 고향>에서 제1호 구미호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잠든 아기 옆에서 남편은 새끼를 꼬고 아내는 바느질하던 단란한 가정의 안방. 남편은 아내가 구미호인줄도 모르고, 일정기간동안 입 밖에 내지 않기로 약정했음을 잊었는지 구미호를 만났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얼굴빛이 점차 변해가는 아내, 마침내 구미호라는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아내는 구미호로 변하고 조금만 더 있었으면 인간이 될 수 있었다며 원통해하며 남편을 죽이려 한다. 그 순간 잠자던 아기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리고 구미호는 차마 남편을 죽이지 못하고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게 인간의 정이로구나”라고 내뱉고는 아기를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당시 TV를 봤던 시청자들은 무섭게 변해가는 구미호의 얼굴에 소름이 돋았던 이 장면을 떨쳐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한혜숙이 처음 구미호 역을 맡은 이후 여자 연기자들 사이에 구미호 배역을 따내려 경쟁이 치열했단다. 한혜숙, 김미숙, 선우은숙 등 구미호로 출연했던 연기자들이 스타덤에 올랐기 때문인데 급기야 ‘구미호 역할을 맡으면 여우혼이 붙어서 반드시 스타가 된다’는 소문까지 생겨났단다. 70년대 영화계에 문희, 남정임, 윤정희 트로이카가 있었다면 TV 탤런트 트로이카로는 한혜숙, 김자옥, 이효춘이라고 할 만큼 안방극장에서 인기를 다퉜다. 한혜숙은 KBS 드라마 <노다지>로 87년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87년 KBS 대하드라마 ‘토지’로 한국방송대상 TV연기자상 등을 휩쓴 지 19년만인 지난해 <하늘이시여> (2005.9.10~2006.7.2)로 SBS 연기대상에서 드디어 대상을 수상했다. 낳은 뒤 이별해야 했던 딸과 기른 아들을 결혼시킨다는 비현실적인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40%가 넘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갔던 까닭은 한혜숙의 가슴 절절한 母情 연기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시집은 물론 애도 낳아보지 못한 한혜숙이 어찌 그렇게 애틋한 엄마 역할을 잘 해내는지 찜질방 등 아줌마들이 모인 곳마다 온통 그 얘기뿐이었다고 한다. <하늘이시여>를 끝낸 그녀는 요즘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영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촬영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36년 전 청춘스타로 <꿈나무>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하명중이 16년만에 감독으로 다시 복귀하는 작품으로, 옛 인연 때문에 출연료도 거부하고 주연을 맡게 된 것이다. 감독과 주연으로 다시 만나 호흡을 맞춘 이 영화는 올 가을 개봉 예정이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당당하고 아름다운 그녀. 성공한 탤런트로 모든 연기자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그녀는 그러나 여자로선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다섯 공주중 맏딸로 태어나 서른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초등학생에서 대학생까지 여동생 넷을 보살피느라 연애할 틈이 없이 어느덧 독신으로 남게 됐다. 연인과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걷는 그녀를 볼 날을 기대해 본다. 물론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표지=통권 524호 (1978년 12월 3일) 박희석 전문위원 dr39306@seoul.co.kr
  • “100년전 궁중무희의 비애 생생히 느껴지네요”

    “명성황후는 이곳에서 초식동물처럼 쫓기다 숨을 거뒀습니다. 정신적인 어미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걸 두 눈으로 봐야 했던 건 리진만의 비극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을미사변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지요.” 소설 ‘리진’의 작가 신경숙(44)이 10일 오전 독자 70명과 함께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건천궁 앞에 섰다. 프랑스 공사인 콜랭 드 플랑시를 따라 프랑스로 떠났다 돌아온 궁중 무희 리진의 자취를 따라 나선 길이다. 간간이 비가 뿌렸지만, 신씨는 “이건 금방 지나가는 여우비 같은데요.”라며 앞장섰다. 문학평론가 이선우의 사회와 작가의 설명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문학동네와 한국관광공사,YES24 공동 주최로 마련됐다.●경복궁 돌며 리진·명성황후 궤적 밟아답사팀은 오전에 경복궁 곳곳을 돌며 리진과 명성황후의 궤적을 밟았다. 오후에는 명성황후와 고종의 무덤이 있는 홍릉, 여주에 있는 명성황후의 생가를 찾았다. “궁전이라는 곳은 혼자와서 볼 때와 책 읽고 와볼 때가 다른 것 같아요. 저도 어제 여러분께 설명하려고 책을 읽고 와보니 더 뜻깊더군요.” 신씨가 독자들을 처음 안내한 곳은 콜랭과 리진의 첫만남 장소인 영제교. 그곳에서 콜랭은 리진에 반해 카메라를 조끼 안에 넣고 다닌다. 신씨는 “피사체 모르게 찍고 싶어하는 욕망은 그때도 있었나 보네요.”라고 말해 독자들의 웃음을 끌어냈다. 교태전 뒤뜰에서는 리진으로 분한 배우가 멍하니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어머니처럼 품어 주던 명성황후의 죽음을 목격한 뒤다.“왕비가 생을 다한 뒤 리진은 왕비가 살던 교태전에 들어와 사흘간 곳곳을 손으로 짚어 봅니다. 패망을 앞둔 나라에 대한 비애와 아울러 왕비에 대한 비애도 느꼈을 겁니다.” 신씨는 지금까지 우리는 명성황후를 권력자나 국모로만 생각해 왔으며, 그에 대한 왜곡도 적잖이 이뤄졌다면서 왕비에 대해 새로운 이미지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소설 낭독 이어 춘앵무 펼쳐져경회루 앞에서는 콜랭이 리진에게 반하게 된 춤인 춘앵무가 펼쳐졌다. 피리 소리를 배경으로 작가의 소설 낭독이 끝나자, 노란 앵삼을 입은 권효진(23·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씨가 소매를 곱게 들어올렸다. 옷자락이 바람에 흩날리자 경회루를 감싸고 돌던 물결도 같은 방향으로 흘렀다.‘리진’의 팬으로 답사길에 함께 따라나섰다는 소설가 김훈씨는 “경복궁에 여러번 왔었지만 오늘 와보니 진짜 아름답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리진은 전근대와 근대라는 모순을 똑같이 사랑해 근대화 과정에서 무너져 버린 아름다운 생명”이라고 평가했다. 친구들과 함께 문학투어에 참가한 대학생 변희(25)씨는 “소설로 읽었던 아름다운 장면을 실제로 보면 실망할까봐 걱정했는데 작가에게 직접 설명을 들으니 상상한 것 이상을 느낄 수 있었다.”고 흐뭇해했다.취업준비생인 전수정(25)씨는 “하나의 소설이 완성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 같아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학답사를 이끈 작가는 작품의 무대를 직접 둘러 보니 소설을 쓰던 때보다 생생하다고 활짝 웃었다.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신 ‘7대 불가사의’에 만리장성, 거대예수상등 선정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인터넷투표에 의해 새롭게 선정됐다. 세계 신 7대 불가사의(New Seven Wonders of the World) 재단은 7일 중국의 만리장성,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브라질의 거대 예수상, 멕시코 치첸 이차의 마야 유적지, 로마의 콜로세움, 인도의 타지마할, 요르단의 고대도시 페트라를 각각 신(新) 7대 불가사의로 선정해 발표했다. 세계 불가사의로 선정된 각각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만리장성 진시황제가 흉노족에 칩입에 대비해 본격적으로 구축했으며 총연장 6천 700km의 장벽이 동에서 서로 뻗어있는 세계에서 가장 긴 인간 건설 구조물이다. ▲ 인도의 타지마할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으로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에 있는 궁전 형식의 묘역이다. 무굴 제국 황제 샤 자한이 왕비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애도해 1632년에서 1654년 사이에 지었다. ▲ 브라질의 거대 예수상 코르코바두 언덕 정상에 자리한 38m 높이의 거대 예수석상. 브라질인 에이토르 다 실바 코스타가 설계하고 폴란드계 프랑스 건축가 폴 란도프스키가 1931년 10월 12일 세웠다. ▲ 멕시코의 치첸 이차 피라미드 유카탄 반도에서 10~13세기에 번성했던 마야 제국의 도시 치첸 이차에 있는 계단식 파리미드. ▲ 페루의 마추픽추 페루 남부 쿠스코시의 북서쪽 우루밤바 계곡에 있는 잉카 유적지. 15세기 잉카 왕국에 의해 건설됐고, 궁전, 사원, 거주지 등으로 이뤄졌다. ▲ 로마의 콜로세움 서기 80년에 티투스 황제의 의해 완성된 거대한 원형 극장이다. 제정 로마 시대의 오락 시설로 쓰인 곳으로 검투사와 검투사, 검투사와 맹수의 처참한 싸움이 벌어졌다. ▲ 요르단의 페트라 요르단 남서쪽의 고대 산악도시로, 아랍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 교역로의 교차 지점에 있어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며 번영을 누렸다. /나우뉴스 온라인뉴스팀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하늘나라서 행복하길…”

    “하늘나라서 행복하길…”

    “하늘나라에서 부디 행복하길….” 낯선 이국땅에서 안타깝게 숨진 캄보디아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은 1일 유가족들의 오열과 조문객들의 애도 속에 ‘눈물 바다’를 이뤘다. 전날 마련된 빈소에는 이날도 100여명의 친지와 친구, 정·관계 인사 등 조문객이 찾아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선생님, 왜 여기에 계세요” 빈소에서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영정을 힘없이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빈소가 차려진 지난 30일에 비해 차분해진 분위기였지만 무거운 침묵 속에 간간이 오열하는 목소리가 들려와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고 황미혜씨가 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던 어린이 20여명이 빈소에 들러 헌화하며 “선생님∼”이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한 어린이는 “다정하게 대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흐느꼈다. 고 박진완씨의 동생 준완(35)씨는 “희생자들의 슬픔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냐.”면서 “시간이 흐르면 곧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 이런 참사가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오전 빈소를 찾은 이해찬 전 총리는 “어린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안타까움이 크다.”면서 “여행객에 대한 안전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2시쯤 회의를 열고 발인 날짜 등을 논의했다. 고 조종옥 KBS기자의 장례는 오는 4일 오전 8시30분 여의도 KBS본사에서 회사장으로 치른다. 유가족들은 하나투어 관계자, 사고 항공사인 PMT에어(캄보디아 민간항공) 관계자들과 장례비용 문제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날 오전 PMT에어 측은 1000만원의 장례비를 보상하기로 결정했으나 유족들은 이에 거칠게 항의했다. 박씨는 “유족들은 장례 비용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1000만원으로 통보했다.”고 분개했다. ●보상금 난항 겪을 듯 일부에서는 보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실제 보상 문제를 직접 논의해야 할 PMT에어 본사 측에서는 한국으로 실무자도 보내지 않은 상태다. 또 PMT에어가 생긴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영세한 신생 항공사여서 유가족들이 우려하고 있다.PMT에어 한국 총판매대리점 김주영 영업부장은 “PMT에어가 지금 캄보디아 정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 본사 관계자는 다음 주쯤 도착할 예정”이라면서 “유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보상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유족과 하나투어,PMT에어 관계자는 2일 오후 1시쯤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날 대책 회의에서 하나투어 측은 유족에 도의적 차원의 보상금을 책정,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노대통령 “깊은 애도”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캄보디아 항공기 추락사고로 한국민 13명을 포함한 탑승객 전원이 숨진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하고 그 가족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정부는 사고 수습 및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지원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고 재차 지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WWE 스타’ 크리스 벤와 가족과 사망한채 발견

    ‘WWE 스타’ 크리스 벤와 가족과 사망한채 발견

    인기 프로레슬러 크리스 벤와(40. 캐나다)가 자택에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사망한 채 발견돼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 [동영상] 크리스 벤와 사망…유튜브에도 추모 열풍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 세계레슬링엔터테인먼트)는 26일(한국시간) 공식홈페이지에 “벤와가 그의 가족과 함께 숨진 채 발견돼 수사당국이 정확한 사망원인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를 맡은 조지아주 경찰은 벤와와 그의 가족이 살해됐을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조사중이지만 정확한 사인을 찾아내지 못해 사건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벤와는 평소 정열적인 레슬링 경기로 동료들과 WWE팬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현재 WWE측은 벤와와 그의 가족에 대해 심심한 애도를 표하며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했다. 또 그를 추모하기 위해 과거 경기 장면이 담긴 DVD(타이틀명:Hard Knock)와 다른 동료 레슬러들의 추모사 등을 담은 단편영상을 제작하기로 했다.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국악인]앞서가는 행복한 음악가 - 원장현 명인

    대금의 명인 원장현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안국동의 멋진 3층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칭찬해 마지않는 아들딸과 음악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아내와 걱정 없이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 완철은 이미 최고 수준의 대금 연주자로 국립국악원 연주단원이고 딸 나경 역시 서울 음대 졸업반이면서 전국 국악경연대회를 석권할 만큼 뛰어난 해금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온 가족이 음악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할 만큼 실력 있는 개개인이어서 국악인이면 모두 부러워할 정도다. 음악만 해온 원장현이지만 자동차도 외제 볼보를 타고 로터리클럽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지나는 사람들이 집에 들르면 차 한 잔이라도 따뜻하게 대접할 만큼 여유 있게 산다. 1982년 서울에 올라와 83년 국립국악원에 입단한 원장현은 처음 아쟁으로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이 되었다. 그 후 거문고로 바꾸어 단원생활을 하다가 나중에야 자기 전공인 대금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애초부터 대금을 전공했지만 국립국악원에서 대금 연주자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그가 왼손잡이여서 대금을 왼쪽으로 잡고 불기 때문이었다. 고수는 왼손잡이라도 상관없이 무대에 세우면서 대금만은 오랫동안 무대에 세우지 않았던 과거 편견 때문에 원장현은 아쟁과 거문고를 상당 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는 음악가가 되었다. 1950년 전남 담양 출생인 그는 아버지(光俊 : 대금) 삼촌(光浩 : 거문고의 인간문화재)이 모두 음악가인 음악 가문 출신이어서 중학생 때부터 음악생활을 시작했다. 김용기에게 처음 대금을 배웠고 김동식에게 대금산조를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 제일 크게 영향을 준 사람은 한일섭이다. 민속악의 천재라 불리던 한일섭은 그분 생의 마지막 무렵에 원장현을 만나 본인이 생각하는 멋진 대금산조 가락을 구음으로 가르쳐 주었다. 한일섭은 대금 연주자가 아니었지만 한주환과 오랫동안 활동한 영향도 있고 하여 정말 멋진 대금산조 가락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전수받은 대금 가락을 실제 악기에 올려 연주한 것은 원장현이다. 그런데 85년 국립국악원의 무형문화재 제66회 공연 때 원장현은 바로 그 대금산조를 연주하게 되었는데 그 대금산조의 이전 연주자가 없기 때문에 ‘원장현류 대금산조’라고 발표했다. 원장현류 대금산조가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남들은 누구의 뒤에 자기를 세우려 난리를 치는 시대에 30대의 젊은 연주자가 떳떳하게 자기류의 작품이라고 발표했으니 그 생각 자체가 대단한 것이었다. 이후 그는 멋진 대금산조 작품의 창시자가 되었고 그 음악을 녹음한 음반은 엄청난 양이 팔려 나갔다. 뿐만 아니다. 93년 <원장현의 음악세계>와 98년 <날개>를 음반으로 냈는데 그 음반 역시 수억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많이 팔렸다. 2001년에 낸 <항아의 노래>도 계속 잘 팔리고 있는 음반이다. 이런 음반들의 음악은 모두 원장현이 직접 작곡하여 녹음한 것들이다. 악보로 그리는 작곡이 아니라 옛날 명인들처럼 그냥 본인의 구상대로 악기로 직접 연주하는 그런 작곡 방법이다. 딸 나경이 건반악기를 하기 때문에 함께 작업하면서 새 음악을 구상하기도 한다. 그런 민속 감성의 음악들을 음반으로 내놓아 큰돈을 번 것이 원장현이다. 한때 인사동 거리에서 판매한 적이 있는데 매일 200만 원 정도의 음반이 팔렸었다고 한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았을 때도 음반 매장에서 음반을 가지러 온 직원을 볼 수 있었다. 원장현은 남을 앞서가는 생각을 하고 그런 것 여러 가지를 실천했기 때문에 지금 잘 사는 국악인이 되었다고 본다. 음반도 그런 예이지만 공연도 특별한 공연을 많이 했다. 93년에 시작한 ‘원장현과 아시아음악’이라는 공연은 중국의 음악가를 초청하여 공연하고 또 다음번에는 인도의 음악가를 초청하여 공연하는 식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 음악가를 초청하여 그 나라 음악과 한국음악을 비교 감상할 수 있도록 음악회를 하는 것이다. 이런 음악회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장현의 음악에 매료된 재일 교포 도쿠마루(德山 洪允茂) 씨가 적극 후원했기 때문인데 이후에는 원장현 스스로 이 음악회를 계속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생겨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후원자도 생기고 매표도 잘 되고 하니까 가능한 일이다. 원장현 가족은 모두 음악을 한다. 부인 조경주는 서울 음대에서 해금을 전공했으면서 고전무용도 솔로를 할 정도로 잘 춘다. 아들은 대금을 전공했고 딸은 해금을 전공했는데 원장현의 누이동생 원경애도 가야금을 전공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함께 호주에 가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일본에 가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원경애 씨가 일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일본 공연은 더 자주 하게 된다. 도쿄(2000년)에서도 했고 오사카(2005년)에서도 했다. 금년 가을에도 일본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원장현은 30대에 대금산조로 일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제자도 많이 길러내었다. 부인과 함께 금현국악원을 88년에 설립하여 일반인 전공자 할것없이 제자를 길러내었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그가 펴낸 대금산조의 악보가 3000부 이상 팔렸으니 그 숫자만 봐도 그의 음악을 하는 대금 인구가 많을 것이라는 것이 짐작된다. 대학교수가 된 제자들만 따지더라도 서울대의 임재원, 수원대의 임진옥, 영남대의 안성우, 전북대의 이화동 등 여러 명이고 각 악단에서 활동하는 전문인이 수두룩하다. 이런 그의 활동이 널리 알려져 그의 고향 담양에서는 그의 대금 부는 실물 형상을 조각으로 만들어 주기도 했고 금년 제4회째인 담양전국대나무악기경연대회를 만들어 하게도 했다. 대회의 일반부와 학생부 우승자에게는 원장현의 호를 딴 동려상(東呂賞)을 준다. 그가 태어난 고향이 그를 훨씬 높여주고 그의 예술을 많이 위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원장현은 행복한 사람이다. 국악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국악만 하고 사는데 남들보다 잘 살고 남들에게 덕을 입히며 살고 있다. 지금 다섯 번째 음반을 구상하고 있다는데 좋은 음반 만들기 바라고 가을에 있을 가족들의 일본 공연도 잘하기 바란다. 글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삶과꿈 4월호
  • ‘월북 대대장’ 강태무 사망

    ‘월북 국군 대대장’ 강태무(82)씨가 사망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조선인민군 중장 강태무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해 고인의 영전에 화환을 보냈다.”고 18일 보도했다. 경남 고성 출신으로 육사 2기생인 강씨는 1949년 5월 육군 8연대 2대대장(소령)으로 복무하던 중 대대병력을 이끌고 강원도 현리 부근에서 월북했다. 월북 후 그는 인민군 대대장, 연대장, 부사단장으로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종전 직후에는 28세의 나이에 소장(우리의 준장)으로 전격 승진했으며 군단급에서 부사령관을 지내기도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1970년대 3대 저항가수 양병집(Ⅱ)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1970년대 3대 저항가수 양병집(Ⅱ)

    아메리칸 포크에 당시 한국 현실을 빗댄 가사로 대부분 채워져 있는 양병집의 첫 음반 ‘넋두리’의 금지 사유는 ‘가사와 창법 저속’이었다. 결국 ‘저주받은 걸작’이 되어버린 이 음반에는 대체 어떠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을까. 첫 곡은 우디 거슬리의 ‘뉴욕타운’을 개사한 ‘서울하늘’이다.‘내 안경이 졸도할만한 서울에 올라와 나도 한번 벌고 싶어 헤매 다녔으나 내 맘대로 되지 않더라.’는 푸념은 1970년대 이농(離農)의 드림과 좌절이다. 그럼에도 ‘노래나 한 번 불러 보자.’는 식의 자조 섞인 넋두리가 바로 1970년대 젊은이들의 또 다른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산업사회로 넘어가던 과정에서 벽이 되어버린 문턱에서의 어쩔 수 없는 넋두리인 셈이다. 피터 폴 앤드 메리가 발표한 미국민요 ‘위프 포 제이미’를 전혀 다른 내용의 우리말로 개사한 ‘잃어버린 전설’은 또 어떤가.‘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참다, 참다 스러져간 꽃’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이른바 최루탄 가득한 거리에서 이미 사라진 젊은이들을 애도하는 노래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동시에 사회 전반에 드리웠던 월남 파병문제, 그리고 산업화의 그늘을 떠올리게 한다. 전래가요 ‘타복네’는 어머니로부터 들으며 자란 노래다. 모친 김경패(金景貝)여사는 정태춘 곡인 ‘양단 몇 마름’의 2절 가사를 직접 만들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후에 ‘다시 부르고 싶은 노래들(88년)’ 음반을 통해 발표하는 ‘엄마엄마 아 엄마’와 독립군가였던 ‘부활가’ 등도 그의 모친이 유년시절에 귀동냥으로 배웠던 노래를 소중한 패물 건네듯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들이다. 한때 새로운 미국국가로 추천되기도 했던 유명한 곡 ‘디스랜드 이즈 유어 랜드’는 분단국가, 한국의 젊은이 양병집에게로 와서 ‘너와 나의 땅’이 된다. 이 노래가 나올 즈음, 거리마다 마을마다 나붙은 구호는 온통 반공·방첩이었고 분골쇄신이었다.‘빨갱이’라는 용어가 그러했듯 온 국민 전체가 집단으로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때로 이남과 이북에서 제각기 불리는 노래는 똑같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으되 그 통일에 깊이 박혀 있던 서로간의 공통 인식은 전혀 달랐다. 때문에 ‘백두산에서 제주도까지, 너(이북)와 나(이남)의 땅’이라는 노랫말 주장은 이데올로기라는 이념 아래 금기시된 논조였고 언어였다. 음반은 ‘노래나 불러보자’는 ‘서울하늘’에서의 넋두리로 시작되어 풍자, 관조 등을 거친 뒤 ‘나는 다시 기타를 집어 들고 그 다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자조 섞인 말로 끝맺는다. 과거형의 시제를 사용했지만 노래만큼은 현재진행형이 되어주길 바라는, 그래서 그는 노래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다분히 포함시키고 있다.(계속)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호르몬제 잘만 쓰면 ‘약’ 된다

    호르몬제 잘만 쓰면 ‘약’ 된다

    ‘폐경기 호르몬치료는 득일까, 실일까.´ 최근 일부에서 호르몬을 이용한 폐경 치료가 유방암을 유발하거나 뇌혈관 질환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일반인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많은 경우 호르몬치료 말고는 폐경으로 인한 상실감과 이후 초래되는 골다공증 등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극복할 수 있는 뾰족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말 호르몬치료는 폐경 극복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일까. ●갱년기 증상 ‘안면홍조´ 가장 많아 영동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이병석 교수팀이 지난 5월부터 두달 동안 이 병원을 찾은 폐경 여성 285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폐경기 여성의 절반 이상이 심각한 갱년기증상을 겪으면서도 암 발생과 체중 증가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기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바이엘 헬스케어(바이엘쉐링제약)가 새 갱년기증상 치료제 ‘안젤릭’ 출시를 앞두고 의뢰한 이 연구에서 폐경기 여성의 86.6%가 두 가지 이상의 갱년기 증상을 복합적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체적인 갱년기 증상으로는 안면홍조가 74.8%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발한 59.6%, 가슴 두근거림(심계항진) 50.1%, 근육통 49.2% 등이었다. 정신적인 증상으로는 응답자의 53.4%가 기억력 감퇴를 들었으며, 불면증(51.1%), 우울증(46.6%) 등도 많았다. ●소극적 대처로 치료 적기 놓쳐 응답자들이 갱년기증상 관리를 위해 가장 먼저 취한 방법은 ‘의사 상담’(43.9%)이었으나 상담이 치료로 연결된 것은 일부였다. 많은 여성들이 폐경을 ‘노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으로 인식해 치료를 하지 않거나(18.2%), 운동 및 식이요법(11.6%),‘건강식품(5.6%)’ 등을 이용했으며, 호르몬치료를 받은 여성은 전체의 16.2%에 불과했다. 갱년기 증상 해결책으로 호르몬치료를 꼽은 사람은 39.6%였으나 실제 이 치료를 받은 사람은 절반에도 못 미친 것. 이처럼 갱년기증상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는 치료 적기의 상실로 이어졌다. 호르몬치료를 받은 68% 중 갱년기증상이 나타난 직후부터 치료를 받았다고 답한 여성은 44.8%로 과반수에도 못 미쳤다. 이는 ‘가능한 한 빨리 호르몬치료를 시작하라.’고 권고한 최근의 국제폐경학회 치료 가이드라인과는 다른 현상이다. 왜 이처럼 호르몬치료를 기피하는 것일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 실제로 호르몬치료를 받지 않는 폐경 여성 84명 중 22.6%는 부작용을,20.2%는 암 발생에 대한 두려움을 호르몬치료 기피 이유로 들었다. 호르몬치료를 받다가 중단한 이유도 ‘부작용 때문’이 가장 많았다. 호르몬치료를 받은 사람의 70.6%가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이 중 54.1%가 체중 증가 등 체형 변화를 들었다. 체중 증가 정도는 23.8%가 2㎏,30%가 3㎏,41.3%가 4㎏이 늘었다고 답했으며, 유방통과 위장장애도 각각 16.4%,13.1%였다. ●암 유발 등 부작용 실제보다 과장 암 발생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김정구(대한폐경학회장) 교수는 “호르몬치료에 따른 부작용 위험이 실제보다 과장됐으며, 그나마 위험은 주로 60세 이상의 고령자에게 해당돼 40∼50대 여성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보다 유방암 환자수가 훨씬 많은 미국에서 평균 63세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WHI(호르몬요법과 암과의 연관성 조사) 연구 결과를 우리나라에 원안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윤병구 교수도 “호르몬치료는 갱년기증상 개선뿐 아니라 노년기의 골다공증 및 골절 예방, 대장암 발생률 감소 등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며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 적절하게 호르몬제제를 사용하면 삶의 질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데이비드 스터디 국제폐경학회장은 “많은 여성이 갱년기증상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호르몬치료 여부는 개개인의 득실을 따져 결정될 문제”라며 “호르몬치료가 유방암 발생률을 24% 높인다는 2002년 WHI 연구는 조사 대상국의 인구학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돼 2007년 재연구를 시행한 결과 호르몬치료와 유방암 발생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었으며, 이 치료가 오히려 대장암 발생률을 37%나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소방본부, 안전체험 사고 문책 인사 집단반발

    소방방재청이 지난달 발생한 안전체험 사망사고와 관련, 김한용 서울시 소방방재본부장을 7일 뒤늦게 경질하자 소방관들이 인사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경찰과 마찬가지로 특수직 공무원인 소방관들이 소속 기관장에 대한 인사조치를 문제삼아 반발하는 사례는 이례적이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 직원들은 8일 ‘서울본부장 지휘책임에 관한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사고를 원만하게 수습했는데 정치적인 판단으로 뒤늦게 지휘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이런 식이라면 문원경 소방방재청장이 최종 책임을 지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성명에서 직원들은 김 본부장은 사고후 장례식장에 거의 상주하면서 유족들을 위로했는데 문 청장은 장례기간에 한번도 조문을 오지 않았고, 김 본부장은 애도 기간이라며 휴일(2일)에 예정된 서울본부 직원 테니스대회도 취소했는데 문 청장은 평일(1일) 소방방재청 개청 3주년 행사를 성대히 열면서 국악공연을 한 점 등을 지적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지하철 5~8호선 객차 중앙 7인석 1곳 임산부등 약자 ‘배려석’ 지정

    지하철 5~8호선 객차 중앙 7인석 1곳 임산부등 약자 ‘배려석’ 지정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이용하다 불편을 느낀 고객에게는 1회용 무료 승차권인 ‘스마일 티켓’이 지급된다. 지하철 5∼8호선 각량의 중앙 7인석 1곳은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석’으로 지정됐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4일부터 스마일 티켓을 포함해 서비스 전반을 개선하는 ‘고객 서비스 개혁 프로젝트’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스마일 티켓은 지하철의 인적·물적 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느낀 승객이 역무실을 찾아 문제를 제기하면 공사의 잘못을 따져보고 명백한 과실이 있으면 지급된다. 티켓은 기본구간(900원 구간)을 1회 이용할 수 있는 보상 승차권이다. 공사는 또 7호선 운행구간 연장(온수∼부평구청역)에 따라 증편되는 차량의 객차에 이산화탄소 저감장치를 도입한다. 휴대전화 문자 또는 동영상으로 불편사항을 신고할 수 있는 서비스도 실시되고 있다. 냉·난방 불만 또는 위급상황 발생 때, 문자나 동영상으로 신고(010-5678-7851)하면 고객안내센터에서 바로 조치를 취하고 그 결과를 다시 휴대전화 문자로 알려준다. 공사는 이와 함께 유실물로 신고된 물건을 찾으면 휴대전화로 물건의 보관 장소와 연락처를 알려준다. 주인이 원하면 택배 배송(수취인 부담)도 해주고 있다. 아울러 앞으로 새로 제작하는 전동차에는 객실간 연결통로의 문을 없애도록 설계된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이젠 포스트 BRICs] (17) 취재기자 방담

    [이젠 포스트 BRICs] (17) 취재기자 방담

    서울신문은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기획물 ‘포스트 브릭스(Post Brics)’를 연재,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칠레 등 신흥국가로 성장하고 있는 8개국을 소개했다. 현장 취재에 나섰던 기자들은 방담을 통해 이제 우리나라도 우리가 최고라는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서로를 인정하고 공생하는 지혜를 익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취재기자들의 방담 내용을 간추린다. -무엇보다 이번 취재는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의 힘이 놀랄 만큼 폭발적으로 늘고 있음을 확인한 계기가 됐습니다. 세계는 이들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에 깜짝 놀라고 있고 어떻게 하면 이들 시장을 더 확보할까, 어떻게 투자하고 이들의 부상에 어떻게 대응할까에 머리를 싸매고 있습니다. 기자 스스로 세계 경제와 지구촌 부의 지도를 역동적으로 재편하고 있는 나라들의 변화에 너무 무지했구나 하는 반성도 했습니다. 이번 기획이 이들의 놀라운 성장과 부상을 확인하고 한국경제 활력의 방안을 궁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취재를 통해 느낀 것은 한국사람들 스스로 좀더 겸손해져야겠다는 것, 그리고 한국에 대한 홍보가 더욱 강화돼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멕시코와 칠레의 경우 한국을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삼성과 LG의 첨단제품을 사면서도 한국이란 나라를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LG란 회사, 삼성이란 회사의 물건을 사는 것일 뿐인데도 일부 한국 기업인들은 그들을 한수 아래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대도시는 땅투기하는 한국인들로 넘쳐났습니다. 한국 식당에서 한국인들끼리 즉석에서 거래가 되기도 하더군요. 성공한 한국인은 땅장사 잘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입니다. 그런 한국인들의 속성을 이용해 “대통령과 친하다, 총리랑 친하다.”면서 한국인에게 접근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남아공 한인사회에 나도는 소문중 하나는 움베키 대통령이 한국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부통령 시절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괄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한국인들의 남아공 및 아프리카에 대한 태도와 시각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국제사회에서의 매너, 그리고 길게 보고 장기적으로 임하는 자세가 아쉽습니다. ●태국 장관급인사 홀대하다 되레 당해 -우리나라가 겉모습만 따지다가 큰코를 다친 적도 있답니다. 몇 년전 태국 장관급 인사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가 공항에서 쫓겨났답니다. 그 인사가 점퍼에 청바지 차림이었는데, 공항에서 불법노동자라고 판단, 입국이 거부된 것이지요. 그후 태국에서 한국기업이 활동하는 데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베트남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베트남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미국, 일본, 중국보다 훨씬 좋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의 경제성장을 매우 부러워하고 아직도 하노이에서는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이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LG, 삼성, 포스코, 오리온제과 등이 다른 외국브랜드를 제치고 한국 브랜드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다만 앞으로도 선두를 유지하기 위해선 정부가 장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동남아 진출시 우리와 불가분 맞부딪치는 일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일본이 없으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일본과 엮여 있습니다. 예속이라기보다는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봉제, 원목가공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이제 IT(정보기술)산업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원하고 있지만 우리는 저임금으로 원하는 것만 빼먹으려는 게 눈에 보이더군요. 분석적인 접근도 배울 점인 것 같습니다. 제트로(JETRO·일본무역진흥공사)에서 얻은 자료가 코트라나 대사관,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준 자료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자세했습니다. -태국에서는 외국인 소유주식의 지분·의결권을 50% 미만으로 제한하는 외국인 기업법을 개정할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에 JETRO는 태국에 진출한 일본기업 7000여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대다수 기업들은 외국인 기업법이 개정되면 태국에서 사업을 확장하기 어렵다고 응답했습니다. 결국 설문조사로 태국정부에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한 셈이지요. 반면 우리 기업들은 “외국인 기업법을 개정하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외에는 별다른 대응 전략이 없더군요. 위기 대처법도 한국과 일본이 상당히 달랐습니다.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려는 현지화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상당수 멕시코인들은 ‘빨리 빨리’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국인 주재원으로부터 업무와 관련해 채근을 당하면 돌아서서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혀를 차곤 한답니다. -베트남은 유교권 국가인 데다가 얼핏 한국과 많이 비슷하기 때문에 쉽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베트남 사람만큼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도 없습니다. 전쟁의 기억 때문인지 동포애, 민족애도 매우 강합니다. 만만하게 봤다가 큰코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게 현지인들의 이야기입니다. -한 나라를 접근할 때 한덩어리로 보면 안 됩니다. 종족이 다양하고 소득수준과 성향도 다릅니다. 기업가들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그들에게 주입하려고 하기 보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기반을 다지는 작업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외국진출때 위축도 문제지만 과신도 문제 -현지 진출때 해당국 정보가 너무 없어 지레 위축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잘 안다고 과신하는 것도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컨대 터키는 한국전 참전국가로, 우리나라와는 ‘형제의 나라’라고 불립니다. 그러다보니 터키 사람들의 ‘선호 외국인 1위’도 한국인이지요. 문제는 한국사람들이 이를 악용, 터키와 터키사람들을 은근히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사업이든, 이민이든, 별다른 준비도 없이 “형제의 나라인데 (터키에) 가면 어떻게 되겠지.”하며 만만하게 보고 덤빈다는 겁니다. 터키의 한인협회장은 “그러다가 쓴맛을 본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며 “그래놓고는 터키의 행정절차가 복잡하다느니, 취업 허가증을 잘 안내준다느니 터키 탓만 한다.”고 혀를 찼습니다.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가들은 하나같이 수하르토 군부정치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민주화과정은 부정한 채 “옛날엔 군부만 잘 다루면 쉽게 성공했는데….”라면서 옛 군부세력과 결탁해 노조를 억압한다든지,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을 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기업가들의 생각은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취재대상이 됐던 대부분의 국가들은 양극화 현상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우선 빈부격차가 극심했고 교육기회의 불평등도 심각했습니다. 나라가 좀더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현지의 지식인들이 한목소리로 주장하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기업이 진출할 때 이런 방식으로 현지 사회 공헌도를 높이는 것이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차이를 우리 기준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등 보편화된 가치 방향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듯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이나 의료분야에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진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와주는 한국에 고마워하면서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협회의 안내를 받아 도서관에 갔더니 ‘한국에서 보내주었다´면서 자랑하듯 책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에나 봤음 직한 책들인 데다 워낙 자료가 빈약해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양극화는 터키에서도 심각한 문제였습니다.CJ의 사료공장이 있는 이네겔을 방문했을 때 건너편 섬유공장의 사장만 해도 자가용 헬기를 두 대나 갖고 있을 만큼 부자들은 돈이 넘쳐납니다. 인구가 7500만명이나 되는 데다 부유층이 이렇듯 확실하다 보니 터키가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오른 거지요. 하지만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빈약해 약점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각국의 빈부격차 해소에 도움주길 -카자흐스탄도 대도시를 조금 벗어나면 아스팔트길이 흙길로 변하고 담이 없는 양철지붕집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빈부격차 현상을 보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20년 가까이 집권 중입니다. 일부에선 부정축재를 많이 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보내고 있는데 현지인에게 ‘왜 대통령을 바꾸지 않느냐?´고 물어보자 “새 사람을 세워서 또 부정한 부를 축적하느니 현재 대통령을 일하게 하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의식이 참 신기했습니다. -맞습니다. 빈부격차보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 재밌습니다. 태국에선 에어컨 없는 300원짜리 버스에서부터 3000원짜리 지상철, 더 비싼 택시까지 각자 주머니 사정에 따라 골라 타고 다니는데 이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없었습니다. 태국인들이 분노할 때는 오로지 국왕을 모독할 때뿐이라고 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좀 다릅니다. 수하르토 이후 부정부패와 싸워가며 여러번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공공의 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하지만 개인적인 문제로 돌아서면 낙관적입니다.30평이 넘는 집에 하인이 먹고 자는 방은 2평 남짓했습니다. 한국인 집 주인이 큰 방을 사용하라고 했지만 스스로 거절을 하더랍니다. -종교의 영향도 큰 것 같습니다. 대부분 동남아는 이슬람국가인데 이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지 않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역시 베트남은 좀 다르다는 얘기인데 유교국가인 덕분에 열심히 일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식이 매우 강합니다. 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은 마치 우리나라 1960∼70년대를 방불케 합니다. 젊은이들은 회사를 다니면서 야간대학, 어학학원을 다니면서 자기개발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은 베트남의 성장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터키 등 이슬람국 투자의 가장 큰 애로점은 역시 ‘인샬라(신의 뜻대로)’로 모아지더군요. 투자협상을 진행할 때나, 현지 근로자들을 다룰 때나, 뭔가 일이 꼬이거나 벽에 부딪친다 싶으면 어김없이 이 인샬라를 외치는 통에 복장이 터진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터키에서 만난 한 자영업체 한국인 사장이 이슬람권 적응과정은 곧 인샬라 적응과정이라고 했겠습니까. ●이슬람국가선 ‘인샬라(신의 뜻대로)´가 애로점 -아프리카의 경우 가장 특징적인 것은 검은 자본가, 검은 중산층, 검은 기업 등 블랙파워의 빠른 성장과 확산입니다. 시장확보는 물론 전략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도 현지 흑인기업들과 전략적인 제휴관계를 만들어 나갈 때라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합니다. 눈에 띄게 성장한 블랙파워의 부상은 아프리카 지역뿐 아니라 지구촌 차원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블랙파워의 부상에 어떻게 편승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미국 같은 큰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게 아니라 우리와 가까이 있는 동아시아, 그 다음 큰 나라로 확대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우리가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합니다. -남아공을 취재하면서 우리 경제, 우리의 생존이 상당 부분 해외에 의존해 있으면서도 이를 절실하게 느끼지 않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특히 자원전쟁시대 아프리카의 중요성과, 그 관문이자 교두보인 남아공의 위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국가적인 장기계획이나 대책이 정말 있기나 하는지 반문하게 됐습니다. -한국의 베트남에 대한 투자가 다른나라를 제치고 올해 1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시장이 개방되면서 각국이 앞다투어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이미 보이고 있습니다. 현지 기업인들이 베트남을 ‘엘도라도(황금의 나라)’라고 칭송하면서 우르르 몰려오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기회의 땅인 것은 맞지만 시장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열려 있는 만큼 경쟁은 더욱 격화될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포스트 브릭스(Post Brics) 국가들의 성장은 장기적으로 한국의 경쟁상대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도 합니다. 어느새 급속도로 성장해 한국을 일본과의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처럼 만든 중국의 예에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해당 국가들이 어떤 방향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발전노력을 기울이는지를 면밀히 분석해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칠레의 경우 핀란드를 모델로 해서 IT 생명공학(BT)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네트워크 연동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들과 경쟁관계가 되든 협력관계가 되든 상대국가들의 발전모델을 우리나라의 이익에 어떻게 접목시킬지에 대한 분석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女談餘談] 결혼식과 장례식/김균미 경제부 차장

    가정의 달이었던 5월 유난히도 주위에 결혼식과 장례식이 많았다. 되도록이면 찾아보려 애쓰는 편이지만 솔직히 생각처럼 여의치는 않다. 당연한 면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결혼식보다는 상가를 찾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마음도 그쪽으로 더 쏠린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몇해 전까지만 해도 결혼식에 가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당혹스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 결혼식과 얽힌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아주 가까운 사람의 결혼식도 아니었다. 단지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놓고 신랑의 손을 잡을 때,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절을 할 때, 비록 순간적이지만 이같은 상황들이, 감상적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한때는 지루하게 느껴졌던 주례의 ‘말씀’도 너무 당연해 무감각했던 부부간 도리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됐다. 그런가 하면 상가에 가서는 상주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 보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상주와 얼굴을 마주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른 눈길을 다른 곳으로 옮기곤 한다. 상주에 대한 애석함 뒤로 부모님과 시어머니 등 가까운 친척 어른들에 대한 생각이 끝없이 딸려 올라온다.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무심했던 건 아닌지, 세월이 우리 부모님들은 비켜가는 줄로 착각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하며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평소 무의식적으로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하시던 어른들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면서 돌아오는 길에 잘해야지 수없이 다짐한다. 하루나 갈까. 잘해야지 하는 다짐은 다음날 바쁜 일상속으로 되돌아가는 순간 까맣게 잊혀진다. 그러다 어느 날 가까운 이의 부음을 접하면 다시금 마음을 다잡곤한다. 마치 가톨릭 신자들이 주일마다 고해성사를 하듯. 결혼식장과 상가를 찾는 것은 돌이켜보면 당사자들에 대한 축하와 애도 못지않게 이처럼 소중한 나의 인연들에 대한 되새김인 것 같다. 김균미 경제부 차장 kmkim@seoul.co.kr
  • 日 자살파문… 아베 설상가상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9일 아침 내각회의에서 마쓰오카 도시가쓰 농림수산상의 자살에 대해 ‘통한’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애도한 뒤 “앞으로도 결속해 국정에 힘써줄 것을 거듭 당부한다.”며 파문의 확산을 경계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위기는 한층 심화될 것 같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아베 총리가 6개월 전부터 불거진 마쓰오카 농수상의 정치자금 의혹을 자신과 우파 단체에서 10년 이상 함께 일해온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감싸 오다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며 파상공세를 펼 태세다. 여당인 자민당 내부에서도 “당과 내각에 심한 바람이 일 것 같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게다가 마쓰오카 농수상의 정치자금 의혹에 연루된 농수성 관할 공공법인 ‘미도리시겐기구’의 전신인 삼림개발공단의 야마자키 신이치(76) 전 이사가 이날 오전 5시15분쯤 자신의 아파트 6층에서 투신자살, 아베 정권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야마자키는 미도리시겐의 담합사건에서 문제가 된 발주 시스템의 작성과 정치권의 창구로 지목돼 도쿄지검 특수부의 조사를 받아 왔다. 야마자키는 26일 자택 압수수색을 받은 데다 28일에 이어 이날도 검찰에 소환될 예정이었다. 때문에 ‘미도리시겐기구’로부터 담합을 통해 사업을 낙찰받은 구마모토현의 40개 업자들에게 2005년부터 3년 동안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마쓰오카 농수상에 이은 야마자키의 자살은 농수상의 의혹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마쓰오카 농수상의 자살로 촉발된 고질적인 ‘정치와 돈’의 문제는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피할 수 없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마쓰오카 농수상을 두둔한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해명해야 할 부담마저 안고 있다. 마쓰오카 농수상은 아베 총리·농수산성 사무차관 등 공직자 6명에게 유서를, 국민과 후원회 측에 편지 2통을 남겼다. 아베 총리는 이날 저녁 “유서에는 농수상의 가족과 농업정책 이외에 정치, 돈과 관련된 이야기는 없었다.”며 유서 내용을 공개했다.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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