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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신라·고려·조선 잘나갔던 통상국가들 그 속에 세계사 있다

    통일신라·고려·조선 잘나갔던 통상국가들 그 속에 세계사 있다

    국경을 넘은 한국사/안형환 지음/김영사/292쪽/1만 3000원 한국사를 반도의 경계 안에 가둬두기에는 그 웅혼함의 기억이 크다. 대륙을 내달리며 문물을 교류하고, 해양의 거친 바다를 마다하지 않고 사람들이 오갔다. 저자는 역사의 몇 대목을 끄집어내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 8세기 통일신라, 11세기 고려, 15세기 조선이다. 이 세 시기는 개방과 교류를 통해 가장 빛났던 순간들이자 한국사의 전성기에 속한다. 현재까지도 유효한 국가적 지향인 통상국가의 기틀이 이미 역사 속에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개방이라는 열쇳말을 통해 세계사 속의 한국사를 복원하고 한국사 속에 들어간 세계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왜 한국사는 세계사인가’라는 부제를 달게 된 배경이다. 8세기 최고의 문화선진국이던 통일신라 사람들은 동중국해와 황해, 남해를 사실상 지배하며 해양 대국을 만들었다. 또 신라의 승려들은 중국과 인도를 넘나들며 동아시아 불교철학의 수준을 높였다. 11세기 고려는 외국인을 고급 관료로 임명할 정도로 개방적인 국제국가였다. 무역항 벽란도에는 서역인이 드나들고 ‘쌍화점’의 도시 개성에서는 고려의 여인과 아라비아인 사이의 자유연애도 무시로 이뤄졌다. 폐쇄국가라고 여겨지는 조선 역시 15세기에는 한글 창제를 비롯해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발명품이 쏟아져나오며 동시대 최고의 문화수준을 자랑하던 시기라고 분석한다. 게다가 관청의 여자노비에게 130일에 이르는 출산 휴가를 주고, 출산 여성의 수치심을 줄여주기 위해 여자의사를 양성하게 하며 여성성 보호에 힘썼고, 세제 개혁에 대해 논란이 일자 전국 17만여명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했을 정도였다. 진취와 도전의 한국사를 취사선택해 현재적 의미로 기억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분명하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세월호 아이들의 교실 어떻게 할까요

    세월호 아이들의 교실 어떻게 할까요

    오는 6일이면 세월호 참사 발생 600일을 맞는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이 안산 단원고의 희생 학생 교실을 학교 밖으로 옮기는 방안을 내놓은 가운데 2학년 학생들이 쓰던 교실을 존치하자는 유가족들과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30일 경기도교육청과 4·16가족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13일 도교육청은 교실의 책걸상과 칠판, 집기, 유품 등을 학교 인근으로 옮겨 원래 교실 모습대로 재현하는 방안을 유가족 측에 제시했다. 내년 1월에 있을 명예졸업식 이후 안산교육지원청의 별관으로 이전했다가 2년 후 단원고 진입로 옆 시유지(도로부지)에 5층 규모의 가칭 ’4·16민주시민교육원’을 건립해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명예 3학년) 교실 10개와 교무실 1개는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왔다. 학생들이 쓰던 기자재와 유품, 방문자들이 학생들에게 남기고 간 쪽지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교실들에서는 시민단체 4·16기억저장소가 주말마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추모 프로그램 ‘기억과 약속의 길’을 진행해 왔다. 교실 이전안을 내놓은 교육청 측은 “(해당 교실을 존치할 경우) 교실이 모자라 신입생을 받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논리를 편다. 올해까지는 참사 때문에 3학년 학생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은 탓에 교실 운영이 가능했지만 12개 반을 새로 구성할 내년부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실이 그 자리에 유지됨으로써 재학생이 공부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심리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학부모들과 단원고 측 입장도 반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들은 학교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명예 3학년 교실을 재학생들의 학습 공간으로 돌려 달라”며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교육청의 제안에 세월호 유가족들로 구성된 4·16가족협의회 측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고 유예은양 어머니 박은희(44)씨는 “전체 구성원들의 논의를 거쳐야 하지만 현재 각 단위에서 의견을 수렴한 결과 ‘존치’가 우세한 상황”이라며 “해당 교실은 기억과 추모의 공간인 동시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상징되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반성하는 역사적 현장”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이 ‘교실 이전’에 반대하는 것은 지금까지 학습된 정부 당국에 대한 불신 때문이기도 하다. 박씨는 “교육청 측에서 지역사회와 충분한 협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4·16민주시민교육원 건립을 밀어붙이는 현실이 우려된다”며 “정부가 호언장담하던 세월호 인양도 아직까지 완료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지금껏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부당한 현실을 온몸으로 겪어 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유가족들과 뜻을 같이하는 이들로 구성된 4·16교실지키기시민모임도 발족됐다. 권용찬 4·16교실지키기시민모임 실무단장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실종자들도 있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 교실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며 “유가족들의 뜻대로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6일부터 시민모임이 벌인 온라인 서명운동에는 30일 현재 총 5200여명의 네티즌이 참여했다. ‘단원고 교실 존치 논란’에 시민들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대학원생 이모(25)씨는 “굳이 교실까지 보존해 가며 새로 들어올 학생들에게 불편을 끼칠 필요가 있느냐”며 “그보다는 희생을 애도하는 추모비 등을 세우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부 김모(49)씨는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자 하는 유가족들 마음을 정부 당국이 좀 헤아려 줬으면 한다”고 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첫 국가장 5일간의 기록

    26일 영결식과 안장식을 마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국가장(國家葬)을 치른 국가원수로 기록에 남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증으로 서거한 뒤 정부는 국가장법에 따라 24일 황교안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장 장례위원회를 설치하고 장례 기간에 조기를 게양토록 했다. 법에 따라 장례 기간은 5일로 했다. 모두 2222명으로 구성된 장례위원회에는 정부 측 추천인사가 808명이었고, 유족 추천 인사는 부위원장을 맡은 김봉조 민주동지회 회장 등 1414명이었다. 정치적 행동을 같이했던 상도동계뿐 아니라 동교동계 인사들도 적잖이 장례위원에 포함돼 화합과 통합을 상징했다. 서울시가 지난 23일 낮 12시부터 서울광장에 야외 분향소를 차리고 시민의 조문을 받는 등 각 지방자치단체와 재외공관에서는 별도로 분향소를 설치·운영했다. 행자부에 따르면 25일 오후 11시까지 전국 221개 지자체 분향소를 방문한 조문객은 16만 2596명이었다. 지자체 분향소가 본격적으로 차려진 23일에는 3만 9602명, 24일에는 5만 2295명, 25일에는 6만 9399명 등 애도와 추모 분위기가 장례 기간 내내 계속됐다. 국회의사당에 차려진 정부대표 분향소에는 총 3033명이 고인을 애도했다. 지난해 11월 19일 시행된 국가장법은 기존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국장(國葬)과 국민장(國民葬)을 국가장이라는 명칭으로 통합했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국장과 국민장을 놓고 벌어진 논란 이후 두 방식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美 국무장관, 내년 日히로시마 원폭공원 첫 방문한다

    미국 외교장관(국무장관)이 처음으로 내년 일본의 원자폭탄 피폭을 상징하는 장소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한다. 26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미국과 핵보유국인 영국, 프랑스 외교장관이 내년 4월 10~11일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의기간 피폭지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하고 위령비에 헌화한다. 원폭 자료관 등이 갖춰진 평화기념공원은 히로시마 원폭 피해와 그 참혹성을 상징하는 장소다. 미국은 그동안 원폭 투하의 정당성 등을 이유로 외교장관인 국무장관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방문을 회피해 왔다. 미국은 주일미국대사가 해마다 원폭 투하일을 맞춰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열리는 ‘히로시마 평화기념식’에는 참석했으나 이에 대한 논평은 피해 왔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원폭 투하를 당했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자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G7 국가 중 핵보유국이 아닌 독일·이탈리아·캐나다 외교장관이 히로시마를 방문한 적이 있다. 유일한 핵 사용국인 미국 외교장관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방문은 일본 외교의 성공으로 평가된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단출한 해외 조문단

    26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國家葬) 영결식에 본국에서 조문단을 파견한 나라는 일본, 카타르, 스리랑카, 바레인 등 4개국이었다. 일본에서는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단장이 아베 신조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조문단은 아베 총리가 “한·일 관계 발전에 많은 공적을 남기신 데 경의를 표하며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고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전했다. 벳쇼 고로 주한 일본 대사도 함께했다. 카타르에서는 무함마드 빈살레 알사다 에너지·산업부 장관을 보냈다. 스리랑카에서는 와산타 알루위헤어 농림부 정무장관을, 바레인에서는 왕족이자 국영석유가스회사 최고경영자인 알 칼리파가 참석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은 주한 외교사절단이 참석했다. 미국에서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와 캐슬린 스티븐스 전 대사 등이 참석했다.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 대사, 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도 자리를 지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11개국 정상은 박근혜 대통령 앞으로 조전을 보냈다. 토니 탄 싱가포르 대통령, 쯔엉떤상 베트남 국가주석 등도 조전을 보내 왔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 때는 미국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등 10여명의 조문단을 파견하는 등 규모가 상대적으로 컸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 때는 3개국이 본국에서 조문 사절을 파견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전국이 다 내 고향”… 생전 뜻 따라 고향 흙 대신 마사토 뿌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오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불꽃처럼 타올랐던 88년 인생의 마지막 육신은 장군 제2묘역 우측과 장군 제3묘역 왼쪽 능선에 자리잡았다. 2012년 차남 현철씨가 지관인 황영웅 영남대 교수와 함께 둘러보고 정해둔 곳으로, 풍수지리상 봉황의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발인 예배는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가 집전했으며 유족과 김수한 전 국회의장, 김덕룡 전 의원 등 측근, 정관계 인사 100여명이 함께했다. 40분에 걸친 발인 예배 후 조문은 정오까지 이어졌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관을 실은 검은색 링컨 리무진과 유족, 장례식 참석 인사들을 태운 버스들이 국회로 이동했다. 영결식을 마치고 국회를 떠난 운구 차량은 오후 4시 10분쯤 서울 상도동 사저를 들렀다. 동네 주민 100여명은 골목 입구에서부터 도열해 눈시울을 붉히거나 휴대전화 사진을 찍으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라고 쓰인 검은 플래카드도 내걸렸다. 장손 성민씨가 영정을 들고 약 5분간 집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장남 은철씨 등 직계가족 15명이 뒤를 따랐다. 현관 복도를 지나 왼쪽 안방, 맞은편 식당을 지난 영정은 고인이 손님을 맞이했던 거실에서 제자리로 한 바퀴를 돌았다. 거실 벽면 가운데는 고인이 직접 쓴 ‘송백장청’(松栢長靑) 휘호가 걸려 있었다. 1969년 성북구 안암동에서 거처를 옮긴 이래 고인이 46년간 거주했던 상도동 자택은 고인은 물론 주변인들에게 단순한 집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민주화 운동의 거점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과 함께 민주화 논의의 성지였다. 고인이 차량 초산 테러를 당했던 곳도, 23일간 가택연금을 당했던 곳도 이곳이었다. 이어 운구 행렬은 자택에서 500m가량 떨어진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앞을 지났다. 생전의 김 전 대통령이 “매일 출퇴근하고 싶다”고 되뇌었다던 곳이다. 방향을 튼 운구 차량은 당초 예정 시간인 오후 4시보다 40분 늦게 동작구 사당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마지막 의식은 국군 의장대의 받들어총, 조악 연주와 함께 시작됐다. 충혼당 앞에서 열린 안장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 헌화·분향, 운구, 하관, 흙을 관 위에 뿌리는 허토 순으로 이뤄졌다. 250석 규모의 식장 맨 앞줄엔 부인 손명순 여사 등 유족 대표와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자리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외 동교동계 인사들, 장의위원, 일반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차남 현철씨가 유족 대표로 헌화했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조문객 대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장례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헌화했다. 운구는 조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약 150m 떨어진 묘소 예정지까지 10여분간 이뤄졌다. 11명의 의장대가 태극기로 감싼 관을 조심조심 옮겼다. 현철씨는 하관하는 모습을 먹먹한 얼굴로 바라봤다. 뒤늦게 도착한 손 여사는 양쪽의 부축을 받고 맨 앞에 서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관을 지켜봤다. 허토 의식 후 평소 고인과 친분이 깊었던 고명진 목사가 부활대망예배를 집전했다. 본격적인 허토가 시작되자 현철씨는 무궁화가 그려진 관 상판 위에 흰 국화꽃잎을 두 손으로 수북이 집어 두번 뿌리고 흙을 뿌렸다. 전 국회의장들도 한 삽씩 손을 보탰다. 관이 흙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자 참지 못한 현철씨가 “아버님, 아버님” 소리 내어 흐느꼈다. 손 여사의 충혈된 눈에서도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군악대의 조총 발사, 묵념 속에 참석자들은 각자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고인의 고향인 경남 거제도에서 가져온 흙 대신 일반 마사토가 허토에 사용됐다고 한다. “전국이 다 내 고향”이라고 했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서다. 관은 유족들이 마련한 것으로 고동색에 윤기가 조금 도는 나무 무늬만 있는 수수한 관으로 알려졌다. 묘소 봉분 앞에는 ‘제14대 대통령 김영삼의 묘’라고 새겨진 3.49m 높이의 목재 임시 묘비가 세워진다. 돌로 제작한 실제 비석은 내년 1월쯤 제막한다. 안장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현철씨는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아버님께서 하늘에서라도 우리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지켜보시리라 생각한다”면서 “아버지의 유언인 ‘통합과 화합’이 우리 사회와 국민 전체에 큰 울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조문객 발길이 나흘째 이어졌다. 특히 김 전 대통령과는 질긴 악연이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가거나 장남을 통해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정적’을 배웅했다. 전 전 대통령은 오후 4시쯤 굳은 표정으로 빈소에 들어섰다. 다소 야위었지만 몰려든 인파 속에서 혼자 거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정정한 모습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고 눌러 적은 뒤 영정 앞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목례와 분향을 한 뒤에는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유족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조의를 표했다. ●전 前대통령 유족들 위로 후 10분 뒤 떠나 김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35년 악연’은 10·26 사태 직후인 1980년 전후부터 시작됐다. 김 전 대통령은 12·12 사태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상도동에 가택 연금을 당했다. 1983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23일간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정권에 맞섰다. 취임 이후에는 하나회 척결을 통한 숙군을 단행했고, 1995년에는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군사반란 주도와 수뢰 혐의로 구속했다. 전 전 대통령은 헌화 뒤 접객실에서 현철씨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건강 상태를 묻는 현철씨에게 “나이가 있으니 왔다 갔다 하는 거다”라며 “이제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먹고 그러니까 좀 나아졌다”고 답했다. 이어 “임의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자다가 싹 가버리면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가족을 위해서도 그 이상 좋은 일은 없다”고 말했다. 10분간의 짧은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떠나던 전 전 대통령은 취재진을 향해 “수고들 하시라”라고 말했지만 ‘(조문을) YS와의 역사적 화해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고 떠났다. 역시나 김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구속되는 악연을 가진 노 전 대통령은 장남 재헌씨를 대신 보냈다. 재헌씨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셨고 한때 아버님과 국정도 같이 운영하셨고, 이어서 대통령도 되셨다”며 “정중히 조의를 드리는 것이 도의라고 생각하고 아버님도 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현철씨는 미소를 지으며 조문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YS 막내딸 “부친의 過 부각돼 안타깝다” 재헌씨는 아버지가 특별히 전한 메시지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 거동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서 정중하게 조의를 표하라고 전하셨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이 YS정부에서 겪은 ‘고초’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은 딱히 없었다”고 말했다. 83세인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연희동 자택에서 10년 넘게 투병하고 있다. 영결식을 하루 앞둔 빈소에는 김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간직한 사회 각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1987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 운동을 할 때 찾아뵙고 (단일화를) 요청드린 적이 있었다”며 “그 이후에 (김 전 대통령이) 그걸 못 해서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말했다. 15대 총선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른바 ‘YS키즈’ 정의화 국회의장도 독일 공식 일정을 일부 취소하고 급거 귀국해 빈소를 찾았다. 정 의장은 “외환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고인에게 다 가하는 측면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오해를 할 수가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이) 안 계셨으면 우리는 유신독재로 다 망치는 거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막내딸인 혜숙씨도 기자들과 만나 “모든 지도자는 공과 과가 있다”며 “과가 부각된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결혼 후 미국 워싱턴 DC서 생활해 온 그는 “평소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며 “업어주시기도 하고, 막내딸이니만큼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야구선수 박찬호씨는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조언해 주면서,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 국민에게 사랑 받는 선수로 성장하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신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LA 다저스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둔 박씨를 청와대로 초청해 “올해 우리나라는 빛낸 가장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칭찬했었다. ●신동빈·권오준·삼성 사장단 등 재계도 애도 서거 첫날부터 빈소를 지켰던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김기수 전 대통령 수행실장은 이날도 아침 일찍부터 조문객을 맞이했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정병국 의원도 나흘째 빈소를 지켰다. 재계에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최상순 한화그룹 부회장, 이관우 전 한일은행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유족들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영결식을 준비하기 위해 문상객을 맞이하는 틈틈이 회의를 했다. 유족들은 26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 예배를 가진 뒤 영결식이 열리는 여의도 국회로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 집안이 3대째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있어 예배 형식으로 발인을 하는 것이다. 예배가 끝난 뒤 운구차는 서울대병원을 떠나 오후 2시쯤 국회에 도착할 예정이다. 전국에 설치된 220여개 분향소에는 지금까지 15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다녀갔다. 여의도 국회에 설치된 정부 대표 분향소에는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의원들과 강신명 경찰청장, 박근희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주요 사장단 50여명 등이 방문하며 추모 행렬을 이어갔다. ●정상회담한 日 무라야마 전 총리도 분향소 찾아 해외에서도 조문이 이어졌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는 도쿄의 주일본 한국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고인에 대한 예를 표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인연이 있는 무라야마 전 총리는 지난 22일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그 시대 한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6일 영결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비롯한 중국 정부 조문단도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 1층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류 부부장은 방명록에 “침통한 심정으로 애도를 표시한다”(沈痛悼念)는 글을 남겼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롱다리’도 힘들어…키 195㎝ 여성 모델의 사연

    ‘롱다리’도 힘들어…키 195㎝ 여성 모델의 사연

    남들보다 뛰어난 신체조건을 필요로 하는 직업인 모델을 꿈꾸는 사람들 중에는 신장이 기준에 미치지 못해 좌절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오히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큰 키 때문에 모델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미국 여성이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언론 데일리메일은 24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주 샌 루이스 오비스포 시에 살고 있는 195㎝의 장신 여성모델 채이스 케네디(22)의 사연을 소개했다. 신장이 클 뿐만 아니라 모델답게 우월한 신체 비율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다리 길이는 무려 129㎝로, 세계 기록 보유자와 비교해도 고작 2.2㎝가 모자란 수준이다. 옷을 구매하거나 영화관을 갈 때 등 일상 속에서 무수한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는 신체조건이지만 케네디는 자신의 몸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처럼 자신의 키와 '롱다리'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13세에 이미 성인남성의 평균 신장보다도 큰 185㎝의 장신을 기록했던 그녀는 늘 ‘기린’과 같은 별명을 달고 살아야 했고 많은 놀림을 당했다. 연애도 쉽지 않았다. 현재 그녀는 193㎝인 남성과 교제하고 있으나 이전까지는 연애 상대를 찾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나보다 작은) 남자들은 내 신장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았고, 그렇다고 나보다 큰 남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며 “특히 고등학생 시절엔 내가 대부분의 남학생보다 압도적으로 컸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청소년기를 지나 성장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특별한 신체를 점점 장점으로 여기게 됐다. 케네디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장신인 편이 더 낫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런 그녀가 처음 모델의 꿈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나이에 맞지 않는 케네디의 큰 키에 관심을 가진 몇몇 모델 기획사들이 채용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오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이들은 그녀의 성장이 예상과 달리 멈추지 않고 계속되자 그녀에 대한 관심을 끊고 말았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모델 활동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녀는 “대다수 모델 기획사 채용기준에 명시된 신장 상한은 180㎝다. 이런 기획사들을 찾아가면 내게 ‘외모는 마음에 들지만 키가 너무 커 함께 일할 수 없다’고 말한다”며 자신만의 애환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이어 “LA에서 신장 상한성이 가장 높은 모델 기획사조차 182㎝이하를 채용 조건으로 삼고 있다”면서 “특히 대형 기획사들은 모두 나 정도의 신장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본인이 사랑하는 모델 활동에 있어 큰 방해가 되는 요소임에도 불구, 케네디는 본인의 큰 키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녀는 “나는 내 긴 다리와 큰 키를 사랑한다”면서 “이것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특성”이라고 전했다. 사진=Top photo/Barcroft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민주화·큰 인물’ 부각 속 정치적 함의 압축

    ‘민주화·큰 인물’ 부각 속 정치적 함의 압축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는 ‘방명록 정치’가 한창이다. 특히 정치권 인사들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남긴 메시지에는 정치적 함의가 가득했다. ‘사자성어형’, ‘업적 칭송형’, ‘명복 기원형’, ‘에피소드형’ 등 그 형태도 다양했다. 어떻게 하면 남다른 메시지를 남길까 고민한 흔적도 엿보였다. 여권 인사들은 대체로 김 전 대통령이 ‘큰 인물’이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역사의 거인, 영면하소서’라고 남겼다. 박찬종 변호사는 ‘直情徑行(직정경행·생각한 것을 꾸밈없이 행동으로 나타냄)의 신념의 지도자’라고 적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길 없는 곳에 새 길을 열고 문 없는 곳에 큰 문을 여신 시대의 큰 별께 바칩니다’라고, 홍준표 경남지사는 ‘담대함으로 대한민국을 개혁하신 업적을 우리 국민들은 모두 기억합니다’라고 썼다. 야권 인사들은 주로 ‘민주화’라는 업적을 기리는 데 초점을 뒀다.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는 ‘각하의 정치 역정은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는 24일 ‘영원한 민주주의 지도자’라고 적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 땅에 민주화의 역사를 만든 큰 별’이라고, 같은 당 안철수 의원은 ‘고인의 민주화에 대한 신념과 헌신은 국민들 가슴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라고 썼다. 천정배 의원은 ‘군정 종식의 역사적 위업을 남기신…’ 이라며 민주화를 강조했다. 여권으로 정계에 입문했다가 지금은 야권에 몸담고 있는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민주 정신과 개혁 정신은 우리 역사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라는 방명록 글귀로 김 전 대통령의 업적과 인물 됨됨이를 동시에 칭송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전 의원도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 낸 우리 시대 거인’이라고 쓰며 양쪽을 아울렀다. 방명록은 개성 넘치는 내용들로 넘쳐났다. 수천명이 펜을 잡았지만 똑같은 글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사자성어로 강렬한 울림을 던졌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라는 의미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한 선대 정치인들의 투쟁과 희생의 산물임을 잊지 말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단 네 글자에 압축해 담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민주주의를 일으킨 천하장수’라고 표현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통합과 화합의 그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며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을 되새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 전 대통령의 좌우명을 인용해 ‘大道無門(대도무문)의 그 길 우리가 따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자신의 이름 외에 가장 짧은 메시지를 남긴 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만 썼다. 일반 시민인 박종숙씨는 애도의 편지로 방명록의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권철현 전 주일대사는 ‘저를 정계로 이끌어 주셨던 각하. 감사합니다’, 이낙연 전남지사는 ‘아침에 가면 사모님의 시래깃국, 밤에 가면 대통령님의 와인을 주셨던 상도동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라고 추억담을 기록했다. 이 밖에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등 방명록 작성을 하지 않은 정치권 인사도 적지 않았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訪北 일자 조정 중… 결정된 것 없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3일(현지시간) “이른 시일 내에 북한을 방문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이날 미국 뉴욕 주유엔 한국대표부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분향소에 들러 애도를 표한 뒤 특파원들과 만나 “지금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방북 일정에 대해) 말씀드릴 수 없지만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방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긍정적 신호가 오고 있고 언제 방북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서로 일자를 조정 중에 있다”며 “하지만 아직 (일정이)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최근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한 ‘11월 23일 방북’ 가능성 이외에 다른 일자를 북한에서 알려 왔느냐는 질문에 “아직 온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 총장은 “방북 문제를 추진하는 것이 그렇게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예민하고 민감한 문제가 많이 있기 때문에 조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반 총장은 방북 추진 배경과 관련,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남북한 간의 평화와 화해를 도모하고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저의 방북을 포함해서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간 남북한 간의 관계라든지 정세가 여러 가지로 여의치 않다가 최근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두 차례 유엔을 방문한 계기에 둘이서 만나 (방북 문제를) 논의했다”고 강조했다. 연내 방북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 점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말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박대통령 “복면 시위 금지해야… IS도 얼굴 감추고…”

    박대통령 “복면 시위 금지해야… IS도 얼굴 감추고…”

    “오늘 예정에 없던 국무회의를 긴급히 소집한 이유는 이번 순방 직전과 도중에 파리와 말리 등에서 발생한 연이은 테러로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고, 이에 어느 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급박함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예정에 없던 국무회의 소집의 이유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당초 황교안 국무총리가 주재하기로 돼 있었지만, 전날 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기로 하면서 장소도 청와대로 바뀌었다. 열흘짜리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이튿날 박 대통령은 여독도 풀리기 전에 13분간 걱정과 호소, 비판을 쏟아냈다. 앞서 순방 직전인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도 23분간 노동·경제활성화 9개 법안을 열거해 가며 국회를 압박했었다. 박 대통령은 ‘특히’ 등의 단어를 반복해 사용했다. 왼손을 자주 들어올리며 힘을 주어 말했고, 한숨도 여느 때보다 많이 내쉬었다. ●테러방지법 입법 촉구박 대통령은 “각국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선제적인 대책들을 세우는 반면 우리나라는 테러관련 입법이 14년간이나 지연되고 있다. 빅데이터를 비롯해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을 갖고 있음에도 각종 법적인 규제로 테러 대응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권 전체가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라면서 “최근 위조 여권으로 국내에 체류하면서 국제 테러활동을 지지하던 외국인이 구속됐는데 우리 역시 테러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정부 각 부처는 협조해 테러 관련 정보수집과 인적·물적 취약점 제거 등 테러 대비활동을 강화하면서 유사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유지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의 관련 보고 이후에는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국제적으로 모두가 경악하고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그래도 허점이 있을 수 있다”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지, 희생이 벌어지고 나서는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민노총 대규모 집회먼저 집회의 성격을 ‘불법 폭력 사태’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불법 폭력집회 종료 후에도 수배 중인 민노총 위원장은 경찰의 추적을 피해 종교단체에 은신한 채 2차 불법 집회를 준비하면서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 수배 중인 상황에서 공권력을 무시하고 계속 불법 집회를 주도하는 것은 정부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엄정 대응 방침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어 “특히 구속영장이 발부된 민노총 위원장이 시위 현장에 나타나서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며 폭력 집회를 주도했고, 대한민국의 체제 전복을 기도한 통합진보당의 부활을 주장하고,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까지 등장했다”고 비판했다.박 대통령은 “특히 남과 북이 대치하는 상황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고 전 세계가 테러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때에 테러 단체들이 불법 시위에 섞여 들어와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복면 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IS(이슬람국가)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얼굴을 감추고서…”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국민을 불안에 몰아넣고 국가 경제를 위축시키며 국제적 위상을 떨어뜨리는 불법 폭력행위를 뿌리 뽑기 위해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모든 국무위원들은 비상한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고,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며 “그 수준에 맞는 집회시위 문화를 정착시켜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국가장 준비 박 대통령은 “고인이 마지막 길을 편안하게 가실 수 있도록 행정자치부에서는 장례식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해주길 바란다”면서 “마지막으로 삼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YS 마지막까지 통합·화합의 길로… 전두환·노태우도 장례委 포함

    YS 마지막까지 통합·화합의 길로… 전두환·노태우도 장례委 포함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주관하는 장례위원회에 정파를 뛰어넘는 인물이 총망라됐다. 행정자치부는 24일 입법·사법·행정부 전·현직 고위공무원, 대학총장, 종교계, 재계 등 각계각층 2222명으로 이뤄진 장례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고인의 유지인 화합·통합 정신에 걸맞게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때의 2375명과 비슷한 규모로 마련했다. 같은 해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땐 1404명이었다. 행자부 관계자는 “국민들에게 부담을 끼치지 않도록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는 유족들의 의견에 따라 영결식 초청인사도 최소화할 생각으로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관례에 따라 정부가 황교안 국무총리를 장례위원장에 추천했고 유족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장례위 고문 101명 가운데는 고인이 재임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 탄압과 비자금 은닉 등으로 법정에 세웠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포함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이름을 올렸다. 나머지는 5부 요인과 정당 대표, 국무위원, 국회의원 등이다. 6명을 위촉한 부위원장엔 김봉조 민주동지회장이 유족 추천으로 포함됐다. 장례위원엔 고인의 거주지 기초단체장인 이창우 서울 동작구청장과 국회 원내대표, 상임위원장 등 입법부 248명을 비롯해 사법부 30명 등 2108명이 위촉됐다. 한편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 실현에 공헌했으며 일·한 우호 협력관계 진전에 기여했다”고 애도한 뒤 “정부 특사를 조문차 (한국에)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전 총리도 방한해 26일 영결식에 참석할 계획이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국회엔 검은색 대형 애도 현수막… 지방 200여곳 6만여명 조문

    국회엔 검은색 대형 애도 현수막… 지방 200여곳 6만여명 조문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24일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정·재계 주요 인사와 일반 시민의 추모 행렬이 사흘째 계속되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저마다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그의 정신을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까지 사흘간 서울대병원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총 2만여명을 훌쩍 넘겼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국가 개혁을 하신 분인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많은 국민이 비난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새롭게 다시 한번 재조명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과거 검사로 활약하며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까지 붙었던 홍 지사는 1996년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YS키즈’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 김 전 대통령과 결별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홍사덕·이철 의원과 함께 꼬마 민주당을 창당했던 이기택 전 의원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이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오늘의 이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 데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가장 탁월한 공을 세운 분”이라며 “이분의 민주주의 정신을 따라서 이 나라가 더욱 성숙한 국가로 발전돼 나가길 빈다”고 말했다. ●김기춘 “민주화 과업 이룩한 역사적인 국가원수” 안희정 충남지사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를 잃어 매우 애통하게 생각한다”며 “우리에게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할 책무가 맡겨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조문록에 ‘고인께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계실 때, 저는 이제 막 민주화 운동에 합류한 꼬마 대학생이었습니다. 고인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고 삽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1992년 14대 대선을 이틀 앞두고 부산 초원복집에서 지역 기관장들과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하며 ‘우리가 남이가’라는 건배사를 외쳤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유족을 위로하면서 한동안 빈소에 머물렀다. 김 전 비서실장은 “김 대통령께서는 산업화 토양 위해서 민주화의 역사적 과업을 이룩하신 역사적인 국가원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 그리고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도 사흘째 빈소를 지켰다. 재계에서는 손경식 CJ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이 발걸음을 했다. 손 회장은 “고인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금융실명제 등 선진 제도를 도입한 훌륭한 지도자”라며 애도를 표했다.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는 ‘일본 국민과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 깊이 조의를 표한다’라고 조문록에 쓴 뒤 “큰 위인을 잃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애써 슬픔을 참아가며 문상객을 맞이했다. 차남인 현철씨는 아침 일찍 나와 빈소를 지키며 문상객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예를 표했다. 이어 오전 11시쯤 휠체어를 탄 채 빈소에 등장한 손명순 여사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슬퍼했다. 손 여사는 좋지 않은 건강에도 불구하고 4시간가량 빈소를 지켰다. 김 전 대통령의 처남 손성환(82)씨는 빈소를 찾아 “새해마다 상도동에서 세배를 해서 이번에도 가게 될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가진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정수선(61·여)씨는 태극기에 싼 액자를 소중히 안은 채 장례식장을 찾아 “1970년 부산의 한 선거 유세장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나 사진에 사인을 받았는데 그것을 액자에 넣고 태극기에 싸서 여태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정씨가 “꼭 대통령이 되세요”라고 소리치니 김 전 대통령이 “꼬맹이가 귀엽다”며 사인을 해줬다는 것이다. 정씨는 “살아 계셨을 때 다시 한번 직접 뵙고 싶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야 이렇게 찾아왔다”며 눈물을 보였다.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주범 김용남씨도 빈소 찾아 일명 ‘용팔이 사건’으로 알려진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의 주범인 김용남(64)씨도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은 김씨를 만난 뒤 “(김씨가) 목사가 됐다더라. 조문을 길게 하진 않았으나 기도하고 묵념을 오래 했다”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정부 대표 분향소에는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연합 의원 30여명은 국회 분향소를 찾아 단체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정부 분향소가 위치한 국회 본관 전면에는 ‘근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삼가 애도합니다’라고 적힌 검은색 대형 현수막도 새로 내걸려 한층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가 이뤄졌다. 전국 자치단체에 설치된 200여곳의 분향소에도 이날 오후 6시 현재 6만명이 넘는 조문객이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를 표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시 대계마을 생가 옆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사흘 동안 3000여명이 방문했다. 이곳 분향소에는 김 전 대통령이 졸업한 장목초등학교 재학생 67명 전원이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거제가 지역구인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도 “1990년대부터 김 전 대통령의 경호 담당으로 인연을 맺어 왔다”며 하루 종일 분향소를 지켜 눈길을 끌었다.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는 동교동계(김대중 전 대통령 가신 그룹) 권노갑·김옥두·이훈평 전 의원과 상도동계 정병국 의원, 김덕룡·박희부 전 의원 등이 상주를 자처하며 조문객을 맞았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도 상도동계가 함께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조문을 받으며 품앗이한 전례가 있다. ●반기문 “국제사회 존경받는 나라 노력” 해외 주요 도시에 마련된 분향소에서도 추모 행렬은 계속됐다. 주한 미국대사 출신인 성 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겸 부차관보는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소재 주미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에 미국 정부 대표 자격으로 찾아 조문을 했다. 김 부차관보는 헌화와 묵념을 한 뒤 “우리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한 김 전 대통령을 매우 존경한다”며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이 민주주의로 기적적인 변모를 하는 데 가장 중심적 인물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욕 대한민국 유엔대표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고인의 뜻을 따라 대한민국이 잘 살고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정부는 해외 주재 우리 공관에 분향소를 마련해 공관원들과 교민들이 찾을 수 있도록 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의사 출신 정의화 국회의장 “퇴임 후 대북 보건지원 사업”

    의사 출신 정의화 국회의장 “퇴임 후 대북 보건지원 사업”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24일(현지시간) “국회의장 퇴임 후 보건의료지원을 포함한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우어줄라 맨레 한스자이델 재단 이사장을 만나 이같이 말한 뒤 “한스자이델 재단에서 북한을 위해 추진 중인 사업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고 국회의장실이 전했다. 신경외과 의사 출신이기도 한 정 의장은 “특히 동·서독 의료보건협정 체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은 독일 통일에 부러움과 존경을 갖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뤄 세계 인류평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맨레 이사장은 “정 의장이 북한과의 대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남북 대화는 과정의 어려움은 있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고 답했다.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 “김 전 대통령의 서거일은 독일의 지도자인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의 국장일”이라면서 “양국 국민은 큰 지도자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할 것”이라고 조의를 표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특별기고] “자유민주주의 향한 헌신·희생 국가발전 커다란 밑거름 될 것”

    [특별기고] “자유민주주의 향한 헌신·희생 국가발전 커다란 밑거름 될 것”

    존경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평소 불굴의 의지와 집념이 강한 분이셨고 그간 재활 치료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어 꼭 회복하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릴 날을 기다렸는데 급작스러운 서거 소식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김 전 대통령은 저를 정치에 입문시켜 주신 정치적 스승이고 개인적으로 아버지와 같은 분입니다. 제가 영국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던 시절인 1993년 3월 청와대의 부름을 받아 문민정부에서 공보, 정무비서관으로서 김 전 대통령을 모셨던 5년간은 제 생애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께서는 특히 군정을 종식하고 문민정부 시대를 연 국가지도자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남다른 분이었습니다. 치열한 국익을 다투는 외교 무대에서 김 전 대통령은 주권국가의 입장을 당당하게 내세웠습니다. 취임 초 1993년 11월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를 다룰 때 미국의 포괄적 접근과는 다른 철저한 남북한 상호 사찰을 요구했습니다. 또 한·미 팀스피릿 훈련 중단 문제는 한반도의 중요한 안보 사안인 만큼 당사자인 한국의 대통령이 우선 결정할 문제라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 때문에 정상회담이 예정보다 길어지고, 클린턴 대통령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역사상 처음 한국을 방문한 장쩌민 국가주석은 한·중 간 역사 공조를 통해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됐던 APEC 정상회담에서 ‘시위 산책’을 통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대북 관계에 있어서도 김 전 대통령은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1994년 북한 핵 위기 고조 당시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군사 합동 가능성에 직면해 이를 반대했고,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외교에 의한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 내며 한반도의 위기를 기회로 바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남북 정상회담은 무산됐고 그 귀중한 기회는 현실화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 당시 예정대로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지금도 가장 애석하게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자주 했습니다. 주로 한·미 동맹 현안과 북한 핵 문제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 때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두 분 사이의 마지막 정상회담은 1997년 11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있었습니다. 그때 클린턴 대통령은 “한국은 경제의 기초가 튼튼해서 동남아와 같은 외환위기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상황이 어려워질 경우 미국이 지원하겠다”라고 안심시켰습니다. 며칠 후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평상시에는 워싱턴 백악관에서 전화를 걸지만 이번에는 대통령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이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거두절미하고 “각하, 오늘은 제가 중요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국제통화기금의 긴급구제금융을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심하게 응징받을 것입니다”라고 대본을 읽듯 얘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밴쿠버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발언에 고무됐던 김 전 대통령은 아연실색했습니다. 반기문 당시 외교안보수석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한 부분입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워싱턴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5년 동안 모시면서 국내에서, 그리고 일선 외교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경험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옳다고 믿는 일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투사적인 강인함과 함께 진솔하고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대통령을 5년간 모시면서 청와대 녹지원에서 아침 5시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조깅을 하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30대 중반의 젊은 비서관들은 밤늦게 일하다가 새벽에 늦거나 간혹 빠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루를 빠지면 대통령께서는 그다음 날 새벽 조깅 때 “니 어제 안 나왔제”라고 족집게 지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틀을 연달아 빠지면 대통령께서는 아무 말도 안 하셨습니다. 화가 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새벽에 나가면 대통령께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니 어데 아프노?” 하고 물어보시는 것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께서는 그처럼 따뜻한 인간적인 매력을 갖추신 분이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은 소중한 국가지도자 한 분을 잃었지만 당신께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바치신 헌신과 사랑, 그리고 빛나는 민주화와 세계화의 업적은 앞으로 국가 발전과 남북통일을 위한 커다란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 대도무문의 정신을 저희들이 계속 이어 가겠습니다.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DJ·盧 서거 때와 다른 北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북한은 당일(22일)은 물론 23일에도 별다른 보도를 하지 않았다. 또 조전도 보내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 특별히 조의 입장을 밝히거나 조문단을 파견하진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북한 관영 및 선전매체들도 이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공개 활동 외에 김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선 별다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앞서 북한은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에는 모두 다음날 관영매체를 통해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전을 통해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1993~1994년 1차 북핵 위기가 터졌을 때 김 전 대통령이 ‘핵과는 결코 손을 잡지 않겠다’고 천명하며 강경하게 대처한 데 대해 아직까지도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김 전 대통령을 대북 강경론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당국 또는 김 제1위원장의 명의로 조전을 보내거나 조의를 표할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 시절 북한과의 관계가 좋았다고 평가하긴 어렵지만 남북이 1994년 정상회담 개최까지 합의하는 등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인 바 있고, 중단됐던 당국 간 대화가 기지개를 켜는 현시점에서 북측이 조전을 보내는 등의 ‘예의’를 표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오는 26일 당국 간 대화를 위한 실무접촉 과정에서 우리 측에 간접적으로 조의를 표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롱다리’로 모델하기 힘들어…키 195㎝ 여성 모델의 사연

    ‘롱다리’로 모델하기 힘들어…키 195㎝ 여성 모델의 사연

    남들보다 뛰어난 신체조건을 필요로 하는 직업인 모델을 꿈꾸는 사람들 중에는 신장이 기준에 미치지 못해 좌절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오히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큰 키 때문에 모델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미국 여성이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언론 데일리메일은 24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주 샌 루이스 오비스포 시에 살고 있는 195㎝의 장신 여성모델 채이스 케네디(22)의 사연을 소개했다. 신장이 클 뿐만 아니라 모델답게 우월한 신체 비율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다리 길이는 무려 129㎝로, 세계 기록 보유자와 비교해도 고작 2.2㎝가 모자란 수준이다. 옷을 구매하거나 영화관을 갈 때 등 일상 속에서 무수한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는 신체조건이지만 케네디는 자신의 몸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처럼 자신의 키와 '롱다리'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13세에 이미 성인남성의 평균 신장보다도 큰 185㎝의 장신을 기록했던 그녀는 늘 ‘기린’과 같은 별명을 달고 살아야 했고 많은 놀림을 당했다. 연애도 쉽지 않았다. 현재 그녀는 193㎝인 남성과 교제하고 있으나 이전까지는 연애 상대를 찾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나보다 작은) 남자들은 내 신장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았고, 그렇다고 나보다 큰 남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며 “특히 고등학생 시절엔 내가 대부분의 남학생보다 압도적으로 컸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청소년기를 지나 성장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특별한 신체를 점점 장점으로 여기게 됐다. 케네디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장신인 편이 더 낫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런 그녀가 처음 모델의 꿈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나이에 맞지 않는 케네디의 큰 키에 관심을 가진 몇몇 모델 기획사들이 채용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오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이들은 그녀의 성장이 예상과 달리 멈추지 않고 계속되자 그녀에 대한 관심을 끊고 말았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모델 활동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녀는 “대다수 모델 기획사 채용기준에 명시된 신장 상한은 180㎝다. 이런 기획사들을 찾아가면 내게 ‘외모는 마음에 들지만 키가 너무 커 함께 일할 수 없다’고 말한다”며 자신만의 애환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이어 “LA에서 신장 상한성이 가장 높은 모델 기획사조차 182㎝이하를 채용 조건으로 삼고 있다”면서 “특히 대형 기획사들은 모두 나 정도의 신장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본인이 사랑하는 모델 활동에 있어 큰 방해가 되는 요소임에도 불구, 케네디는 본인의 큰 키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녀는 “나는 내 긴 다리와 큰 키를 사랑한다”면서 “이것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특성”이라고 전했다. 사진=Top photo/Barcroft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된다 생각하면 밀어붙여… 정치 감각 탁월”

    김영삼(YS)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3일 그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측 동교동계 인사들이 조문 행렬을 이어 가며 고인을 애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이날 차남 홍업씨,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 등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이 여사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 차남 현철씨 등과 악수를 나누며 위로를 전하자 현철씨는 “(어머니가) 충격이 없진 않으시다”고 말했다. 이 여사와 휠체어를 타고 마주한 손 여사는 “오래오래 사세요”라며 건강을 기원했다. 앞서 오전에는 동교동계 좌장 격인 새정치연합 권노갑 상임고문과 이훈평, 박양수 전 의원 등이 빈소를 다녀갔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YS에 대해 한목소리로 “추진력과 결단력이 뛰어났던 승부사”라고 회고했다. 동교동계 막내인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한번은 DJ에게 YS의 장점을 묻자 ‘YS는 된다고 생각하면 끊임없이 밀어붙인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그 예로 1986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위한 서명운동을 추진할 때 DJ가 100만명을 목표로 제시하자 YS가 “100만명이 뭐꼬. 1000만명은 돼야지”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설 의원은 또 “YS와 DJ는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면 서로 말을 높였지만 둘만 있을 땐 말을 놓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밝혔다. 같은 당 문희상 의원은 “두 분이 쪼개졌을 당시 YS의 기분이 나쁠 때 누가 옆에서 DJ 욕을 하면 웃음을 짓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서로 앙숙이었다”면서도 “나라를 위해서라면 서로 굉장히 챙기며 힘을 합쳤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DJ가 생전에 ‘나는 논리적이어서 (일을 진행하려면) 한참 걸리는데, YS는 말보다 행동이 빠르더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DJ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 의원은 “동물적 정치 감각은 YS, 논리적 사고는 DJ가 탁월했다”며 두 전직 대통령의 리더십을 비교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YS 사후 ‘평가 반전’… “민주화·하나회 척결 功이 더 크다”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YS 사후 ‘평가 반전’… “민주화·하나회 척결 功이 더 크다”

    지난 7월 서울신문 창간 111주년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가’란 질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는 0.3%에 불과했다. 박정희(33.6%)·노무현(29.3%) 전 대통령은 물론 ‘숙명의 맞수’ 김대중 전 대통령(12.8%)에 한참 못 미쳤다. 전두환(1.8%) 전 대통령에 못 미쳤고 이명박(0.9%)·노태우(0.5%) 전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난 8월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광복 70주년 여론조사에서도 ‘우리나라를 가장 잘 이끈 대통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김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는 1%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22일 김 전 대통령이 타계한 뒤 고인에 대한 평가는 ‘과’(過)보다 ‘공’(功)으로 무게추가 쏠리는 분위기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인색했던 야권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화의 큰 산”(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온 국민의 애도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 긍정 일색이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추모 열기나 삼삼오오 빈소와 분향소를 찾는 일반 조문객들을 보면 ‘외환위기를 불러온 대통령’보다는 민주화 투쟁과 금융실명제 등 개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 소모적 정치 갈등이 심한 데다 사회의 큰 어른, 원로가 없는 분위기 속에서 현대사의 주역이었던 분에 대한 좋은 평가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김 전 대통령이 ‘하나회’ 정치군인들을 척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과 노무현(정부)도 불가능했고, 그런 측면들이 뒤늦게 평가받는 것”이라며 “보수·진보의 진영 논리가 뚜렷한 상황에서 고인 같은 자유주의자가 설 땅은 없었다. 그래서 저평가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고인에 대해 야박한 평가를 하지 않는 한국 사회 특유의 문화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여전히 3당 합당의 충격은 물론 임기 중 외환위기 초래, 차남 현철씨의 국정 농단 등이 국민의 뇌리에 남아 있지만 한편으로 잠시 미뤄 놓은 것뿐이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전직 대통령에 대해 호불호가 아닌 역사적 맥락에 따른 객관적 평가의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치평론가인 박상병 박사는 “대선에서 국민에게 약속했던 시대적 소명을 완수했는지를 놓고 평가해야 한다. 예컨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과 첫 정권 교체,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권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 경제 살리기, 박근혜 대통령은 보수의 혁신”이라면서 “동시에 시대적 소명에 걸맞은 인재풀을 등용했는지, 핵심 공약 사항을 완수했는지 등을 따져 보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념에 치우쳐 평가해서는 안 된다. 호불호에 따라 사적 감정과 이데올로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며 단기간에 평가가 이뤄지는 것도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도 “모든 전직 대통령은 공과가 있다. 쿠데타처럼 비정상적인 수단을 동원해 정권을 잡은 사람이 아니라면 지도자로 선출한 국민이 있고 제도적 적통성을 가진다”며 “사후에 공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중·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을 뜻하는 ‘양김(兩金) 시대’ 이후 통합·화합의 시대정신을 이끌어 갈 새로운 리더십도 필요하다. 김 교수는 “양김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고 불가피하게 보스 정치나 정치의 사유화 측면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리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며 “다양성과 다원성의 기반 위에서 협의성을 높이는 소통형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박 박사는 “총재나 제왕적 당권을 가진 사람이 공천권을 손에 쥐고 정당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끝났다”면서 “다원화된 원내 시스템의 의사 결정 구조를 통해 당을 실질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권위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이-팔 분쟁이 낳은 참극…오열하는 여군 병사

    이-팔 분쟁이 낳은 참극…오열하는 여군 병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잇단 희생자를 낳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잇는 443고속도로에 위치한 주유소에서 한 이스라엘 병사가 팔레스타인 남성의 습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날 현장에는 시신을 본 한 여군이 울음을 터뜨리며 동료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이 모습은 여러 외신을 통해서 공개됐다. 사망한 이스라엘 군인은 올해 18세로 당시 함께 있었던 다른 여군은 상처를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들을 습격한 남성은 이후 다른 두 여성을 습격하다가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날 오전 예루살렘 중심에 있는 유대인 시장에서는 2명의 팔레스타인 여학생이 70대 팔레스타인 남성에게 가위를 휘둘렀다가 이스라엘 경찰의 총격을 받고 소녀 1명이 숨지고 나머지 1명은 부상을 당했다. 이 소녀들은 자신들이 공격한 남성이 이스라엘인인 줄로 착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요르단 강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 부근에서도 팔레스타인인에 의한 이스라엘인 습격 사건이 두 차례 발생했다. 먼저 1명의 팔레스타인 남성이 이스라엘 군인을 향해 흉기를 휘둘러 병사 1명이 사망했으며, 이어 또 다른 팔레스타인 남성은 행인들을 향해 차를 몰고 돌진한 뒤 도주했다. 최근 두 달간 팔레스타인인에 의한 이스라엘인 습격사건과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들 간 무력충돌로 이스라엘인 20명, 미국인 1명, 팔레스타인인 최소 9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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