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애도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750
  • 美, 北비핵화 없인 제재 완화 없다…IT인력 송출 차단 이어 러시아 위반 비난

    美, 北비핵화 없인 제재 완화 없다…IT인력 송출 차단 이어 러시아 위반 비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조율하는 가운데 북한의 우방인 러시아와 중국의 주도로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가 이완될 조짐을 보이자 강력하게 제동을 걸고 나섰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의 자금줄인 정보통신(IT) 노동자 국외 송출과 관련한 중국·러시아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가한데 이어, 러시아가 대북 제제 조치 위반을 은폐하고 있다고 거듭 비난해 미국과 러시아의 신경전도 격화되고 있다.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13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유엔의 독자적인 (대북제재) 보고서를 자의적으로 수정하고 방해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회원국들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완전히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러시아가 대북제재 조치 위반을 은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 유엔 안보리에 제출된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보고서엔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 계획을 중단하지 않았고, 석유제품의 불법 환적을 늘림으로써 유엔 제재를 위반하고 있다’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이 같은 보고서 내용을 수정하기 위해 전문가 패널들에 압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 패널들은 러시아 측의 요구로 보고서에서 대북제재 위반으로 기소된 러시아인들에 관한 사항을 삭제했다고 한다. 헤일리 대사는 “마땅히 독립적이어야 할 보고서 내용이 러시아의 압력 때문에 변경되고 있다”며 “반드시 보고서 원문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 주재 러시아 대표부의 표도르 스트르쥐좁스키 대변인은 이에 대해 러시아가 여러 차례 보고서의 수정을 요구했고, 이로 인해 보고서의 질이 높아졌다고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말했다. 이어 “이제 우리는 유엔 안보리에서 보고서를 회람하는데 아무런 장애도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엔의 한 외교관은 ‘수정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제재위반 의심행위에 대한 일부 문구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보고서가 채택되려면 상임이사국 5개국을 포함한 안보리 15개 이사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이 반대하고 있어 ‘수정 보고서’의 채택은 불투명한 상태다. 앞서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PAC)은 이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의 자금줄인 정보기술(IT) 노동자 국외 송출과 관련, 북한인 1명과 중국·러시아 기업 2곳에 대한 독자제재를 단행했다. 북한의 사이버 테러와 관련해 지난 6일 북한 해커를 처음 기소한 데 이어 일주일 만에 나온 추가 제재다. OPAC은 이날 북한 국적 기업인 정성화(48)와 중국에 있는 IT업체인 옌볜실버스타, 그리고 이 회사의 러시아 소재 위장기업인 볼라시스실버스타를 각각 제재 명단에 올렸다고 발표했다. 재무부에 따르면 두 회사가 명목상으로는 각각 중국인과 러시아인에 의해 운영되지만, 실제로는 북한인들에 의해 운영·통제되고 있다. 옌볜실버스타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정성화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의 흐름을 관리했다. 특히 볼라시스실버스타는 북한 IT 인력과 옌볜실버스타 근로자들이 지난해 중반 설립했으며, 1년 새 수십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재무부는 정성화와 두 업체가 북한 정부 또는 노동당의 돈벌이를 위한 북한 노동자 송출과 고용을 금지토록 한 미국의 행정명령(13722·13810호)을 위반했다고 제재 배경을 설명했다. 미 정부는 북한에 유입된 자금은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사용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성명에서 “이번 조치는 제3국에 있는 위장기업에서 신분을 숨기고 일하는 북한 IT 노동자들에 의해 북한으로 불법 자금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달성할 때까지 제재 시행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조율 등 북미 간 비핵화 담판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상황이지만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 전까지는 제재를 지속해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미 행정부는 지난달에도 정제유 환적 선박 제재 등 북한에 대해 세 차례 제재를 가했다. 재무부는 북한이 웹사이트·앱 개발, 보안 소프트웨어, 생체인식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IT서비스와 제품을 해외에 판매하고 있다면서 “IT산업이 다른 산업보다 북한 노동력이 개입될 위험이 커진 만큼 기업들은 위장기업, 가명 등 북한 기업이 사용하는 기만적인 행태를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리먼 사태’와 함께 대학 문 나선 이들의 10년 뒤 자화상

    ‘리먼 사태’와 함께 대학 문 나선 이들의 10년 뒤 자화상

    미국에서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던 2008년에 대학 문을 나선 이는 150만명으로 추산된다. 역대 가장 불행한 대학 졸업반이란 자조가 넘쳐나는 모양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빚더미에 올라 어쩔 수 없이 자녀를 덜 갖게 됐고, 적지 않은 마음의 생채기를 강요당했다. 그 중 한 명인 영국 BBC의 뉴욕 비즈니스 담당 킴 기틀선 기자는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전문가와 2008년 졸업반 동기들에게 10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고 14일 소개했다. 우리네 삼포 세대와 참 많은 것이 닮았다 싶어 가급적 필자의 문체를 그대로 옮기려 한다.첫째 우리는 덜 자녀를 갖게 됐다. 10년 동안 미국 여성들은 인구통계 지표들이 예측했던 것보다 무려 480만명 정도를 덜 낳은 것으로 파악된다. (‘사라진 아이들이 수백만’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케네스 존슨 뉴햄프셔 대학 교수는 “매년 출산 자료를 들여다볼 때마다 신생아 숫자가 늘 것이라고 예측하는데 매번 틀린다”며 “20대 여성들의 출산 포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짚었다. 문제는 격차가 자꾸 벌어진다는 것이다. 존슨 교수는 “금융위기를 경험하며 취업 시장에 진입한 20대 초반 여성들은 아예 한 명도 갖지 않는다”며 “이들은 이전이나 이후 세대의 어떤 그룹보다 무자녀 비중이 높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문제는 대공황 때의 여성들처럼 출산을 잠시 보류한 것인지, 아니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네바다 라스베이거스 캠퍼스를 졸업한 노라 캐롤은 금융위기 탓에 가정을 꾸리는 일의 시작을 미뤘을 뿐이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커리어를 일구고 주택을 살 돈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 그녀는 “이 모든 일에는 시간이 걸렸는데 임금이 낮은 일자리일수록 더 길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뒤 이제는 첫 아기가 생기길 기다린다고 했다.둘째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모아놓은 돈이 적다. BBC가 주관한 영국 내 조사를 봐도 지금 30~39세인 사람들은 지난 10년 동안 평균 재산이 7.2% 줄었고, 매년 2057파운드를 손해 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미국인들은 이전 세대들의 사례를 분석해 예측한 것보다 34%나 재산이 축났다고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은 주장했다. 이유는? 손에 덜 쥔 채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08년에 대학을 졸업한 이들의 중간소득은 연간 4만 6000달러밖에 안된다. 이 액수는 2002년 25~34세의 대학 졸업자들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8%가 줄어든 것이다.셋째 우리는 주식시장을 혐오하게 됐다. 밀레니엄 세대의 5명 가운데 둘은 주식에 손을 댔다. 하지만 연방준비기금에 따르면 7000달러 정도 밖에 투자하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하루에 다우존스 지수가 500포인트나 폭락하는 것을 본 이들은 겁에 질리기 마련이다. 올 여름 S&P 500 지수는 금융위기 후 325%나 올라 상당히 견고한 활황을 보였으나 2008년 대학 졸업반들은 그 과실을 따먹지도 못했다. 넷째 우리는 집도 안 산다. 25~34세인 밀레니엄 세대의 주택 소유 비율은 2015년 37%로 이전 세대의 그것보다 8%가 빠졌다. 영국에선 거의 절반 수준이다. 애도 덜 낳고, 재산도 적고, 주택시장의 거품이 빠질 때 구입 연령이 됐다는 점 등 여러 갈래 설명이 가능하다. 이 세대가 주택을 구입할 시기가 됐을 때는 이전 세대가 처음 주택을 구입했을 때의 재산 가치보다 훨씬 떨어졌다. 2013년 18~33세가 매입한 주택의 중간가격은 13만 3000달러였는데 2007년에는 19만 7000달러였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기관에 대한 믿음은 위기 이전에도 떨어지고 있었지만 한 세대로서 우리의 믿음 지수는 현저히 낮다. 퓨 채러터블 트러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대체로 다수의 사람은 믿을 만하다”는 명제에 우리 세대는 17%만 동의했는데 우리 앞 세대는 31%, 부모 세대는 40%였다. 놀랄 것도 없이 기관에 이르면 우리는 월스트리트를 가장 불신한다.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을 나온 에릭 프레이저는 졸업 당시만 해도 금융업은 인기 있는 일자리였으며 무해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터져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이들의 얼굴이나 이름이 오르내리자 생각이 바뀌었다. 이어 더 이상 추락할 것이 없다는 점에서 희망의 조짐(silver lining)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그 때를 전후해 인력시장에 들어온 우리는 겸손함을 배웠는데 그 전에 졸업했더라면 과연 같은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9년 응어리 딛고…쌍용차 해고자 전원 복직한다

    9년 응어리 딛고…쌍용차 해고자 전원 복직한다

    내년 6월까지 119명 공장 복귀 마무리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전원이 공장으로 돌아온다. 13일 금속노조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에 따르면 쌍용차 노사가 이날 해고자 전원 복직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대규모 구조조정과 옥쇄파업 이후 해고자 3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응어리’로 남았던 쌍용차 문제가 9년 만에 해결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잠정 합의안의 핵심은 여전히 복직되지 않은 해고자 119명 전원을 내년 상반기까지 복직시킨다는 것이다. 합의안대로 이행되면 쌍용차 구조조정 사태 10년이 되기 전 해고자들이 모두 공장으로 돌아갈 길이 열린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정리해고 사태 10년을 맞는 2019년 6월 이전까지 해고자 전원을 복직시키라고 요구해 왔다. 구체적인 합의안 내용은 14일 오전 공개될 예정이다. 금속노조는 이날 밤 잠정 합의안을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에게 설명했다. 쌍용차지부는 16일 조합원 총회를 개최해 내부 동의를 받을 예정이다. 사측도 인도 마힌드라 본사의 승인을 받은 뒤 합의안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합의안은 쌍용차 사측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노조(기업노조) 등 노·노·사 교섭을 통해 전격 도출됐다. 앞서 이날 오전 최종식 쌍용차 사장은 홍봉석 기업노조 위원장,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주중씨의 분향소를 찾았다. 쌍용차 사장이 분향소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최 사장은 분향소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과 유가족들께 애도 말씀을 올린다”며 “2009년 경영악화로 정리해고를 한 뒤 많은 직원들이 아픔을 겪었고, 다시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을 경영진을 대표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9년간 버텨낸 해고자들이 빨리 공장으로 돌아가 땀내나는 작업복을 입고 쌍용차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1세대 인권 변호사’ 한승헌, 국민훈장 무궁화장 받는다

    ‘1세대 인권 변호사’ 한승헌, 국민훈장 무궁화장 받는다

    ‘1세대 인권 변호사’ 한승헌(84) 전 감사원장이 사법부 70주년을 맞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는다.대법원은 13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 전 감사원장에게 국민훈장 중 최고등급인 무궁화장을 준다고 밝혔다. 시국 사건 1호 변호사로도 불리는 한 전 감사원장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 동백림 사건,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등 수많은 시국 사건의 변론을 맡는 등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자신 또한 1975년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규남 의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썼다가 구속되고,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의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감사원장을, 참여정부 시절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을 맡는 등 사법 개혁과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애쓴 공로도 인정받았다. 한 전 감사원장 외에도 고 이영구 판사와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가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는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문 대통령 위로에 일본 국민들, 아베 대신 “감사합니다”

    문 대통령 위로에 일본 국민들, 아베 대신 “감사합니다”

    재해 피해 위로 트윗메시지에일본 네티즌 수백건 댓글달아아베, 호주·대만 정상에만 감사“아베 수상이 문재인 대통령님의 위로에 답하지 않고 있는 것을 일본국민으로서 대단히 기막히고 부끄러운 일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fervour73)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나의 나라 총리 무례가 부끄럽습니다. 일본의 많은 사람은 당신의 말에 격려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우호를 기원합니다”(@feelingbest) 태풍과 지진 재해를 겪은 일본 국민과 아베 신조 총리를 위로한 문재인 대통령의 트위터에 일본인들의 감사 답글이 수백건 달렸다. 반면 아베 총리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일 “태풍과 지진으로 희생된 오사카와 삿포로 지역의 주민들을 애도한다. 유족들과 부상을 당한 분들께도 위로를 드린다”며 “재해가 연이어 발생해 더욱 충격이 클 것이지만 철저히 대비해온 일본의 저력이 발휘될 것으로 믿는다”며 위로전을 보낸 사실을 공개했다.문 대통령 말고도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차이잉원 대만 총통도 같은 날 위로의 트윗을 전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만 쏙 빼고 나머지 두 정상에게만 감사의 답을 보냈다. 스콧 총리에겐 “따뜻한 위로의 말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당신의 친절함에 기운이 난다. 최근 가뭄으로 고통받는 호주인들에게도 위로를 전한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차이잉원 총통에게도 “오랜 우방 대만에서 온 따뜻한 위로에 감사드린다”고 답했다. 일본 네티즌들은 이런 아베 총리의 태도에 부끄러워하며 문 대통령에게 대신 사과했다. ‘일본에서 한국에 시집 온 고양시민’이라고 밝힌 @mikisungold는 한국어로 “존경하는 문 대통령 안녕하세요, 한국에 시집 온 고양시민입니다. 일본 태풍과 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에 위로의 말씀 감사하다”며 “고향을 떠나 늘 일본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하지만 여기 있는 가족들, 그리고 현명한 대통령, 친절한 한국 국민들 덕분에 잘 살고 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트위터 계정 @kumayamakuma는 “미안하다. 아베가 당신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홋카이도와 오사카는 모두 감사드린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한국어에 서툰 일본인들조차 일본어 뒤에 ‘감사합니다’라는 한국어를 적기도 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자살한 엄마 곁에서 4일간 빵과 버터로 버틴 3살 여아

    자살한 엄마 곁에서 4일간 빵과 버터로 버틴 3살 여아

    엄마가 자살한 후 홀로 남은 세 살배기 딸이 사흘간 빵과 버터로 생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6일(현지시간) 영국 BBC, 더선, 메트로 등 외신에 따르면, 사우스 웨일스 출신의 두 아이 엄마 에이미 루이즈 에반스(28)는 지난 4월 7일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5일 사우스 웨일스 경찰은 검시 결과를 통해 그녀의 사인을 발표했다. 경찰 클라이브 모리스는 "침실에서 목을 맨 에반스를 발견했다. 집 안에는 세 살 딸도 있었는데 헝클어진 모습을 제외하면 상태가 양호해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아이가 집에서 3~4일 동안 혼자 머물며 빵 조각과 버터를 먹고 버틴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아이를 병원으로 보냈고, 당시 에반스의 아들은 친부와 함께 있어 무사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경찰은 "에반스의 죽음과 관련해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전혀 없다. 정신 건강이상 이력도 없었다. 다만 그녀가 저녁에 술을 자주 마시곤 했고, 이전에 가정 폭력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그녀가 자살로 숨졌다고 결론 내렸다. 검시관 콜린 필립스는 "사후 조사에서 그녀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혈액 100ml당 137mg이었다"면서 "이는 현재 음주운전 금지 법적 한계치인 혈액 100ml당 알코올 80mg을 훨씬 웃도는 수치"라며 경찰의 결론을 뒷받침했다. 한편 죽기 나흘 전, 에반스는 엄마에게 '끝을 내고 싶으니 딸을 데려가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는 '바보 같이 굴지 말라'며,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그것이 모녀가 주고받은 마지막 대화였다. 지난 며칠 사이 엄마는 딸네 집을 방문하는 등 딸과 연락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딸은 묵묵부답이었다. 에반스의 엄마는 "딸은 행복해했고, 외향적인 편이라 우울증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도 잘 돌봤다"면서 딸의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친구들도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나설 줄 아는 에이미가 우리 중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니 매우 슬프다"며 "그녀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 지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사진=페이스북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맥밀러,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26세에 세상 등진 힙합계 “영웅”

    맥밀러,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26세에 세상 등진 힙합계 “영웅”

    미국 래퍼 맥 밀러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향년 26세. 7일(현지시각) TMZ 등 다수의 외신 매체는 래퍼 맥밀러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매체는 “맥밀러가 LA 산 페르난도 밸리에 위치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며 “맥밀러의 친구가 가장 먼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고 구조대가 달려왔지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또한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맥밀러는 다음달 공연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지자 세계 곳곳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맥 밀러 팬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있다. 특히 맥밀러의 가족은 “그는 가족에게 있어 세상 속 빛과 같은 존재였다”면서 “지인과 팬들에게도 항상 빛나던 사람이었을 것이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Mnet ‘쇼미더머니 777’에 출연한 래퍼 키드밀리(본명 최원재)도 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RIP legend. You‘re my hero(명복을 빕니다 전설. 당신은 나의 영웅)”이라는 글과 함께 그의 사진을 올리며 추모했다. 한편 맥밀러는 약물 남용과 음주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는 지난 5월 두 차례에 걸쳐 음주운전과 뺑소니로 경찰에 체포된 바 있다. 지난 2011년 ’블루 슬라이드 파크(Blue Slide Park)‘로 데뷔한 맥밀러는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와 약 2년 동안 공개 열애를 했고 올해 4월 결별한 바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월드피플+] 결혼하는 손녀 소원 들어주고 영면한 전쟁영웅 할아버지

    [월드피플+] 결혼하는 손녀 소원 들어주고 영면한 전쟁영웅 할아버지

    2차 대전 참전용사로 활약했던 90대 할아버지는 손녀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해 마지막 임무를 완수한 뒤에야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 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선은 죽기 전 손녀의 소원을 들어주고 영면한 브로니슬라브 그롬 카르봅스키(94)의 사연을 소개했다. 지난 달 30일 폴란드 동부 비알리스톡에서 카르봅스키 할아버지의 손녀 조안나의 결혼식이 열렸다. 할아버지는 용맹 훈장으로 장식된 군복을 차려입고,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손에는 손녀 딸 손을 맞잡고 예식장에 들어섰다. 두 사람 뒤로는 폴란드 영웅이었던 할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군인들의 호위가 이어졌고, 하객들은 연약하지만 굳센 할아버지 모습에 눈시울을 붉혔다. 신부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깊이 숨을 들이마셨으며, 신랑은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두 사람을 보면서 눈물을 멈추려 입술을 깨물었다. 1944년 바르샤바 봉기에 참전한 할아버지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 정권의 포로가 됐지만 가까스로 탈출해 건국 훈장을 받았다. 조국을 위해 싸우며 살아남은 덕분에 뒤늦게 예쁜 손녀를 얻을 수 있었고, 생을 마감하기 전 손녀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최근 건강이 나빠졌음을 알고 있었지만 손녀의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 노쇠한 몸을 이끌고 나타난 할아버지. 신랑에게 손녀딸을 넘겨주면 눈시울을 붉혔던 그는 결국 결혼식을 마친 후 불과 이틀 만에 숨을 거두었다. 폴란드 군 당국은 “그는 한 나라의 영웅으로서 마지막 결의를 보여주고 떠났다”면서 할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전했고, 이를 접한 사람들은 “신부에게 신의 은총이 있길,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할아버지를 애도했다. 사진=더선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日 홋카이도 규모 6.7 강진… ‘2㎞ 산사태’ 마을 덮쳤다

    日 홋카이도 규모 6.7 강진… ‘2㎞ 산사태’ 마을 덮쳤다

    6일 새벽 일본 홋카이도 남부를 강타한 규모 6.7의 강진으로 2㎞에 걸쳐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아쓰마초 가옥들이 흙더미에 파묻혀 있다. 이번 지진으로 아쓰마초 8명, 무카와초 1명, 신히다카초 1명, 삿포로시 1명 등 최소 11명이 숨지고 32명이 실종됐다. 제21호 태풍 ‘제비’가 오사카 등 서일본을 할퀴고 간 지 이틀 만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면서 일본은 큰 충격에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위로전을 보냈다”며 “태풍과 지진으로 희생된 오사카와 삿포로 지역 주민들을 애도한다. 유족들과 부상을 입거나 재산 피해를 당한 분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아쓰마(홋카이도) 교도 연합뉴스
  • 15일 만에 모습 드러낸 김정은, 당 간부 빈소 조문

    15일 만에 모습 드러낸 김정은, 당 간부 빈소 조문

    5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주규창 전 노동당 기계공업부(현 군수공업부) 부장의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공식 활동은 16일 만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묘향산의료기구공장을 현지지도하고,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의 영결식에 참석한 뒤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 중앙통신에 따르면 주규창 부장은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자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장구한 세월 우리 당의 국방공업 정책을 받들어 헌신 분투해오며 나라의 방위력 강화에 특출한 공헌을 한 주규창 동지의 애국충정의 한 생을 돌이켜 보시면서 귀중한 혁명 동지를 잃은 비통한 마음을 안으시고 고인을 추모하여 묵상하시었다”고 전했다. 이날 김 위원장의 조문에는 태종수 현 당 군수공업부장, 리병철 전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홍영칠 군수공업부 부부장, 홍승무 군수공업부 부부장 등 북한의 전략무기 개발을 이끈 군수분야 핵심 관계자들이 수행했다. 김평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강봉훈 등도 빈소에 모습을 드려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원한 레슬러’ 이왕표, 링 위에 잠들다

    ‘영원한 레슬러’ 이왕표, 링 위에 잠들다

    한국 프로레슬링의 대부 이왕표 한국 프로레슬링연맹 대표가 4일 오전 9시 48분 별세했다. 64세. ‘박치기왕’ 김일의 수제자로 1975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한 고인은 세계프로레슬링기구(WWA)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프로레슬링 인기가 떨어진 뒤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레슬링 선수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고인은 2009년과 이듬해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 밥 샙과 타이틀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고인은 2015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공식 은퇴식을 갖고 사각의 링과 작별한 뒤에도 최근까지 프로레슬링 발전을 위해 힘써 왔다. 2013년 담도암 수술을 받은 고인은 기적처럼 병을 이겨냈지만, 최근 암이 재발하면서 치료를 받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졌다. 지난 5월에도 어린이를 위한 행사를 주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을 괴롭혔던 건 프로레슬링의 진실성 논란이었다. 각본은 있지만 피나는 훈련을 통해 묘기에 가까운 기술을 펼치는 프로레슬링에 대해 고인은 “쇼가 아니라 진짜”라며 “프로레슬러는 어떤 격투기 선수와 대결해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담도암 수술을 앞두고 그는 유서를 작성하며 사후 각막을 2004년 망막색소변색증으로 시력을 잃은 개그맨 겸 가수 이동우(48)에게 기증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동우는 “뜻은 고맙지만 선생님의 쾌유를 기원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빈소는 서울 현대 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8일, 장지는 경기 일산 청아공원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트위터에 한국 프로레슬링의 상징인 이왕표씨가 담도암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에 “또 한 시대가 간다”며 애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450여년 전 퇴계 이황 친필 만장 출토

    450여년 전 퇴계 이황 친필 만장 출토

    경북 안동 풍산읍의 한 무덤에서 퇴계 이황(1501~ 1570)이 직접 쓴 만장(고인을 애도하여 지은 글)이 발견됐다. 3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만장은 길이 128㎝, 너비 39㎝로 고인의 공덕을 기리는 글이 적혀 있고 양쪽 끝에 연꽃 그림이 그려져 있다. 퇴계의 대형 친필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무덤 주인은 퇴계의 처삼촌인 안동 권씨 문중의 권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나온 만장은 퇴계를 비롯해 서애 류성룡의 부친인 류중령이 지은 것 등 모두 14점으로, 묘를 쓰고 453년 만인 지난해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물이 발견됐다. 국학진흥원 측은 “문집이나 다른 문헌에는 전하지 않는 내용이어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국학진흥원은 보존 처리가 끝나는 오는 10월쯤 유물을 공개하고 전시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 PC 보급한 강서구, 수리까지 책임진다

    PC 보급한 강서구, 수리까지 책임진다

    소외계층에 5년간 200여대 전달서울 강서구는 정보소외 가구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사랑의 PC 보급 사업’을 확대한 데 이어 전국 최초로 PC 무상 수리 서비스를 한다고 3일 밝혔다. 강서구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장애인, 국가유공자, 독거노인 등 저소득 가구는 컴퓨터가 고장 나도 출장 수리비 부담 때문에 방치하곤 한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무상 수리 서비스를 도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랑의 PC 보급은 지역 내 정보소외 가구를 대상으로 구청에서 보유 중인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 무상으로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난 5년간 200여대를 전달했다. 구는 사랑의 PC 보급 사업과 무상 수리 서비스를 위해 50~65세 관련 분야 전문가 10명을 모집했다. 구 관계자는 “사랑의 PC 보급 사업에 대한 높은 반응으로 최근 종합복지관, 장애인복지시설, 사회복지시설로 보급 범위를 확대했다”며 “사랑의 PC 사업과 무상 수리 서비스의 주민 이용률을 분석, 인력을 추가로 확보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PC를 건네받은 권모(50·가양동)씨는 “집으로 직접 찾아와 공짜로 PC를 설치해 준 데 이어 언제 어느 때든 요청만 하면 공짜로 수리까지 서비스한다고 하니 정말 고마울 따름”이라며 “실생활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이런 정책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생활밀착형 행정일 것 같다”며 웃었다. 노현송 구청장은 “어렵게 지내는 가구일수록 정보 접근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며 “정보에 어두워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를 없애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레이디스 코드 故 고은비 오늘(3일) 4주기, 꽃다운 나이에 진 별★

    레이디스 코드 故 고은비 오늘(3일) 4주기, 꽃다운 나이에 진 별★

    그룹 레이디스 코드 멤버 故 고은비가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이 지났다. 3일 故 고은비가 사망 4주기를 맞았다. 故 고은비는 지난 2014년 교통사고로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팬들은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편 레이디스 코드는 2014년 9월 3일 오전 1시 32분쯤 대구에서 스케줄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 당시 매니저가 몰던 차량은 경기 용인시 기흥구 영동고속도로 신갈분기점 부근 2차로에서 시속 135.7㎞로 질주하다 빗길에 미끄러지며 방호벽을 들이받았고, 이 사고로 멤버 故 고은비와 故 권리세가 숨졌다. 다른 멤버 3명과 코디 등도 중경상을 입었다. 故 고은비는 사고 당시 세상을 떠났고, 故 권리세는 병원으로 이송돼 11시간 동안 대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레이디스 코드 멤버들은 두 사람의 안타까운 비보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해마다 납골당을 찾아 추모하고 있다. 또 2015년에는 동료 가수들이 함께 부른 故 고은비 추모곡 ‘I’m Fine Thank You’를 발매한 바 있다. 故 고은비는 현재 경기 광주시 분당 한 추모공원에 안치돼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여진 “남의 불행 전시하는 대신 곁에 앉는 법 택했죠”

    김여진 “남의 불행 전시하는 대신 곁에 앉는 법 택했죠”

    감당할 수 없는 비통과 고통 앞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 낼까. 완전한 용서나 애도란 가능할까.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이처럼 영원히 답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은 물음을 내놓고 그 답으로 가는 길을 낸다. 아이를 잃은 부모와 아이가 목숨 걸고 구한 아이. 세 사람이 겪는 감정의 굴곡을 찬찬히 따라가면서다. 영화는 이들의 불행과 죄책감을 ‘포르노’처럼 선정적으로 전시하지 않는다. 대신 절제된 거리 두기와 배려의 시선을 통해 그들의 슬픔과 상실감을 조용히 쓰다듬는다. 순제작비 2억원, 손익분기점 3만명인 이 작은 영화는 그 묵직한 성취로 개봉 전부터 국내외 영화제에서 먼저 눈도장을 찍었다.지난 2월 제6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공식 초청됐고 지난 4월 제20회 우디네극동영화제에서는 신인 감독에게 주어지는 최고 작품상인 화이트멀베리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최우수장편상을 각각 받았다. 배우 김여진(46)이 ‘아이들’(2011) 이후 7년 만의 스크린 복귀를 다시 아이 잃은 엄마 역으로 하게 된 것도 영화의 그런 미덕 때문이다. “이야기의 무게에 압도될까 봐 처음엔 대본을 받고 쳐다도 안 봤어요. 그래도 대본은 보고 거절을 해야겠다 싶어 들여다보는데 마음이 출렁이더라고요. 미숙의 감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다른 사람이 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죠.”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미숙(김여진)과 성철(최무성)은 익사 사고로 고교생 아들 은찬을 잃었다. 슬픔을 삭이고 토해 내는 일상을 반복하던 그들은 아들이 목숨 바쳐 구한 아이 기현(성유빈)과 인연을 맺게 된다. 아들의 의사자 신청에 힘쓰던 성철은 기현의 결핍에 마음이 쓰이고, 미숙은 처음엔 거부감을 갖지만 차츰 아이를 품게 된다. 하지만 은찬의 죽음에 관한 기현의 뜻밖의 고백 이후 세 사람의 관계와 감정은 격렬하게 요동친다.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아이 잃은 부모의 고통은 이름 지을 수 없는 것이죠. 과부, 홀아비, 고아는 있어도 아이 잃은 부모에 대한 호칭이 없는 건 그게 가장 무섭고 힘겨운 형벌이어서라고 하잖아요. 굉장히 극적으로 풀 수 있는 소재지만, 영화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캐지 않고 세 사람의 감정을 따르며 서사를 엮어 가요. 무엇을 떠올리든 영화를 보면 그 생각에 변화가 있을 거예요.”그는 촬영 전 유가족에 대한 대상화를 경계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신동석 감독에게 전했다. 유가족을 대하는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내가 겪고 싶지 않은 불행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일반화가 있는 것 같아요. ‘애 잃은 부모가 어떻게 저럴 수 있어’, ‘저것 봐, 웃어’라면서요. 자신이 생각하는 슬픔이란 상을 그려 놓고 그 상에서 벗어나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작품에서도 힘든 일 겪은 이들이 어떻게 반응하나 호기심을 갖고 불행을 클로즈업해서 보여 주고요. 그렇게 남의 불행을 자극적으로 전시하는 건 안 된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고 그 점에 유념했죠.” 영화에서도 비통에 잠긴 부부에게 지인들은 “보상금 얼마 받았냐”고 묻고 죽음의 진실을 캐려는 부부에게 학교에서는 “아들이 피해자보다 의사자가 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서둘러 사건을 봉합하려 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슬픈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슬픔이 지속되는 사람들을 보면 ‘그만 좀 하지’, ‘작작 좀 하지’라고 하죠. 감당할 자신이 없으니 직시하고 싶지 않은 거죠. 이 영화는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잠시 곁에 앉아 있어 주는 것이면 어떨까 하고 일러 주죠. 슬픔은 위로될 수도, 작아질 수도, 사라질 수도 없는 거니까요.” ‘완전한 애도나 용서란 가능한가’란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면 영화가 돌려주는 답은 감독의 말로 갈음할 수 있겠다. “사람이 그나마 윤리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애쓰는 것은 애도의 감정 덕분일지 모릅니다. 애도와 용서가 완전하거나 완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사람들이 애쓰는 것이 아예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김광섭 시인 첫 신작 ‘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 발간

    김광섭 시인 첫 신작 ‘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 발간

    김광섭 시인의 첫 신작 시집 ‘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가 지난 7월 30일 발간됐다. 김광섭의 첫 시집은 검은 성경이 되려고 하는 음악 또는 악의(惡意)이다. 죽음으로 들끓는 이 세계를 처단한 후 애도하는 시인. “죽어 있는 모든 것의 참모습은/살아 있는 것에 대한 애도”(「애도의 시대」)이다. 시집의 표지에 루오(Georges-Henri Rouault)의 검은 예수가 어른거린다.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살아 있는 비애를 알게 되는//(중략)//부끄러움의 역사는 다시 써야 하”는 것이다. 김광섭이 이룩해 놓은 흑암의 비명(碑銘)이 낙인처럼 선명하다. 김광섭은 순절(殉節)한다. “나는 난파”하여 “내가 없는 영원에서” “질병으로 떠돌” 것이다.(「싸움에서 잊힌 자」) 이것이 시인이 짊어진 형벌이다. 김광섭의 시집은 순결한 면류관이다. 책을 덮는 순간 검정이 파열된다. 서쪽 하늘이 운다. 추락한 천사가, 시인이, 우리 대신 죽어 간다. 노래가 뱀의 눈빛처럼 퍼져 온다. “언제나 그렇듯이 희망도 회색으로 변해 가네.”(King Crimson, 「Starless」)”(이상 장석원 시인의 서평 「검은 성경과 검은 예수」에서) 문학평론가 문종필은 “‘죽음’과 ‘삶’ 사이를 오고 가며 자신의 기울기를 적는 시인의 시 쓰기를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보도블록 틈 사이에 서서 외롭게 흔들리는 시인의 몸짓을 어떤 방식으로 만져야 하는가. 그는 그 ‘사이’에서 삶을 살아내는 유령이자 귀신이다. 믿는 행위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 주는 기도와 같다”며 “그가 ‘살아 본 자’와 ‘죽어 본 자’의 옷깃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행위는 간절한 믿음 안에서 작동된다”고 말했다. 한편 김광섭 시인은 1981년 서울에서 출생했으며, 2013년 ‘시작’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회찬의 63번째 생일…SNS에 ‘슬픈 축하’ 물결

    노회찬의 63번째 생일…SNS에 ‘슬픈 축하’ 물결

    회사원 박모(37)씨는 31일 아침에 일어나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오늘이구나.”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은 고 노회찬 의원의 생일이 오늘이라고 알렸다. 잠에서 덜 깬 박씨는 6년 전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는 “부산에서 상경한 고향 후배들과 서울 광장시장에서 빈대떡을 먹고 나왔는데 노 의원이 노점에 앉아 지인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이 홍정욱 전 의원에게 밀려 낙선한 직후였다. 박씨는 “평소 존경하던 분이라 후배들과 함께 ‘노회찬! 노회찬을 국회로!’를 외치니까 다른 시민들도 뒤늦게 노 의원을 알아보고 함께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며 “노 의원이 고맙다고 악수를 청하며 막걸리 한 사발을 내밀었던 게 엊그제 같다”고 말했다.지난 23일 세상을 떠난 노 의원이 31일 63번째 생일을 맞았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축하 대신 고인을 그리워 하는 애도의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나는 노회찬 대표님과 생일이 같다. 매년 생일 아침 노 대표님께 생일축하 문자를 보내곤 했었다”며 “앞으로 문자를 보낼 수 없으나 늘 기억하며 살겠다. 매년 그분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될 것이다. 노회찬 대표님 생신 축하드립니다”라고 적었다. 또다른 트위터 이용자는 “돌아가신 분 생신을 축하하는 일이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립고 보고 싶네요”라며 “그곳에서도 덜 가진 자와 못 가진자들을 위해 투쟁하실 거 같은 분, 오늘 만이라도 이기적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하시고 편히 계셨으면…”이라고 애도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서대문구, 9월부터 저소득 주민 장례 지원 위한 ‘그리다 사업’ 추진

    서울 서대문구는 가족이 없거나 유가족의 생계가 어려워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구민을 위해 빈소를 제공하고 장례의식을 주관해 주는 일명 ‘그리다 사업’을 한다고 1일 밝혔다. 고인이 기초생활수급 장제급여 지원 대상이면서 유족이 미성년자나 장애인, 또는 75세 이상인 경우가 대상이 된다. 고독사한 주민을 위해 이웃들이 마을장례를 치르는 경우에도 지원된다.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유가족이나 이웃은 관할 동주민센터로 신청한다. 서대문구는 민관협력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의료법인 동신병원, 서울한겨레두레협동조합과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서대문구는 사망처리를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하며 동신병원은 시신을 안치하고 빈소를 제공한다. 조합은 장례의식을 주관한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추모와 애도의 시간 없이 삶의 마지막 순간 배웅 받지 못하고 떠나는 주민이 없도록 협약을 추진했다”면서 “유가족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인의 장례를 포기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다.(02)330-1863.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황민 음주운전 사고’ 사망자 뮤지컬배우 故 유대성에 애도 물결

    ‘황민 음주운전 사고’ 사망자 뮤지컬배우 故 유대성에 애도 물결

    배우 박해미 남편 황민의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한 뮤지컬 배우 故 유대성에 가족과 동료 배우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지난 27일 경기 구리시 강변북로 남양주 방면 토평 나들목 인근에서 배우 박해미 남편이자 공연기획자 황민이 몰던 차량이 갓길에 정차 중이던 25t 화물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 황민은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104%로 술을 마신 뒤 운전대를 잡았다. 이 사고로 동승했던 2명이 사망하고, 황민을 포함 3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날 사망한 배우는 故 유대성으로, 그는 2010년 서울종합예술학교에서 뮤지컬을 전공한 인재다. 유대성은 작사, 작곡이 모두 가능한 싱어송라이터로 대학 재학시절 첫 앨범 ‘그녀는 울어요’를 발매하기도 했다. 퍼포머그룹 파란달 소속인 故 유대성은 오는 9월 1일 구리아트홀에서 열리는 해미뮤지컬컴퍼니 공연에 객원 연출과 음악감독 제안을 받고 참여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끼많고 정 많았던 그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동료 뮤지컬 배우들은 깊은 슬픔을 표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 서미정은 자신의 SNS를 통해 “친한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며 “잘못을 저지른 유명배우 남편만 언론에서 언급하고 제 친한 오빠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심경을 전했다. 이어 “무대를 사랑하고 언제나 무대에서 빛났던 유대성 배우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그를 추모했다. 뮤지컬 배우 황정원 역시 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참담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위에서도 항상 평소처럼 응원해주고 힘주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다. 고맙고 미안하고 존경하고 사랑한다. 배우 유대성, 당신은 누구보다 빛났다”고 유대성을 추모했다. 이루다 또한 “어느새 같이 공연 3번을 함께 했던 아이, 내가 참 좋아했던 아이”라고 고인을 추억하며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마음을 전했다. 한편 전날인 29일 방송된 채널A ‘사건 상황실’에는 故 유대성 아버지가 출연해 허망한 심정을 털어놨다. 유 씨 아버지는 “(황민이) 맨날 술만 먹였다. (아들에게) 많이 들었다. 아들이 (황민이) 술 먹고 운전을 해서 걱정이 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찍히면 (공연에) 출연을 못 하니 아버지가 참아야 한다더라”라고 덧붙였다.유 씨 아버지는 MBC ‘생방송 오늘아침’ 측과 인터뷰에서 “아들 하나 있는데 죽었다. TV에 나오는 게 (아들) 꿈이었다. 죽으니까 TV에 나오네”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한편 33세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故 유대성은 용인추모원에 안치됐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50 넘으니 덤으로 사는 인생, 의미있는 일 고민”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50 넘으니 덤으로 사는 인생, 의미있는 일 고민”

    탈북민 1세대 강철환 대표가 말하는 ‘한국 생활’“이젠 한국에서 더 오래 살았습니다. 북한에서 24살 때까지 살았고, 한국에서 27년째 살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가까워지기는 했는데···. 나이가 들면 고향이 그리워진다던데 그래서인지 북한에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북한 인권에 관한 일을 하고 북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보니깐, 그런 것인가 합니다.” 제21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끝난 다음 날인 27일 서울시 중구에 있는 강철환(51) 북한전략센터 대표 사무실을 찾아갔다. 남북 문제나 통일 이슈에 관한 이야기는 그가 수도 없이 인터뷰했을 터이니 이보다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와 인터뷰하고 싶어서 찾았다. 그는 “뭐, 인터뷰는 많이 해봤지만 이런 인터뷰는 처음 해봅니다.”라며 말문을 연다. 자연스럽게 이산가족 상봉이 화제에 올랐다. “부모님이나 친지들과 헤어진 실향민들이 금강산에서 이산가족들을 만나던데, 이젠 제가 이산가족이 된 지 25년이 넘었어요. 이분들의 절망 같은 그리움 이런 게 제게도 똑같이 밀려오는 거죠. 북한에 부모님과 동생들도, 많은 친구도 남아 있고···. 절절한 그리움이 어떤 것인지 나이 50이 넘으면서 조금씩 알겠더라고요.” 북송된 재일교포 3세인 그는 9살 때인 1977년 재일 조선총련 간부 출신인 할아버지가 정치범으로 몰리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이혼한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들 모두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10년간 참혹하게 지내다 풀려났다. 이후 요덕 근처에서 5년가량 지내다 1992년 탈북해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귀순’이 아닌 탈북민 1세대인 셈이다. 한양대를 마치고, 한국전력에서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3년 근무했다.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다 그만두고 2007년부터 북한에 인권과 자유 등을 확산시키는 북한전략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수용소의 노래, 평양의 어항’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는데, 강 대표에게 인생이란.☞ 제가 가장 귀염을 받아야 할 9살부터 11살까지 요덕수용소에서 지냈습니다. 수용소에서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항상 언제든지 죽는다는 생각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20~40대를 한국에서 보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제 인생의 황금기였죠. 친구들과 만나서 여행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저랑 같이 수용소에 끌려갔던 많은 아이 가운데 저만 인생을 이렇게 살고 있으니, 나이 50이 넘어가니깐 이제 덤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는 덤으로 사는 인생, 이미 죽었어야 하는 인생인데···, 그래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합니다. 처절한 생활을 했던 그에게 어떤 꿈을 꾸는지를 물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옛날에는 북한에 잡혀가는 악몽을 자주 꾸었지요. 소스라치게 놀라 깨기도 하고. 한 10년 지나니 꿈에 한국과 북한이 섞여 나오더라고요. 북한에 잡혀 가 고문을 받는데 유엔이 나와서 감시한다든지, 이런 신변안전에 관한 꿈이 섞여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꿈에도 잘 안 나와요. 꿈도 사회에 적응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생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전력에 다닐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전기요금을 장기간 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기 공급을 끊는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서울 성북동 한 단란주점의 전기를 끊자 업소 주인이 식칼을 들고 ‘다 죽인다.’며 욕설을 난리를 쳤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도망가는데 저는 같이 욕설을 하면서 맨주먹으로 싸우려 했지요. 그때 제 말투가 이상하고 도망을 안 가니 업소 주인이 칼을 내던지고 이야기를 하다 나중엔 친구가 됐습니다. 또 한 번은 금호동에 전기를 끊은 집이 몰래 전기를 훔쳐 쓰나 싶어서 찾아가보니 촛불을 켜고 지내더군요. 그때까지 한국의 좋은 모습만 봤는데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대학 다닐 때 남쪽의 학생들과 통일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갔더니 “반역자”라며 욕설을 해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갈 때 자원봉사를 한다는 외국인 두 명과 한국인 여성 직원 한 명이 컴퓨터 작업에 한창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외국인 여성 한 명이 더 나와 일하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면엔 북한에서 발행한 한반도 지도가 걸려 있었다. 맞은편 서가엔 북한 관련 책들이 꽂혀 있었다. 낡은 책들이 보이기에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북한의 학교 교과서”라며 끄집어내 보여줬다. 바스러질 듯 누런 종이에 적힌 활자의 잉크마저 바래서 글씨를 읽기가 어려웠다. 교과서 위쪽에 성경책이 꽂혀 있기에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네, 15년 됐습니다.”고 답한다.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다닌다고 했다. - 한국 생활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은.☞ 와서 보니깐 지연과 학연 이런 것이 보기보다 강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고향과 출신 같은 지역주의, 학교와 학벌과 같은 학연, 가족주의 이런 데 탈북자 출신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탈북자들은 더욱 소외되고···. 북한은 독재를 강화하면서 끼리끼리 모여 세력화하는 것을 철저히 방지했습니다. 북한에서 고향이고 나발이고 뭐 다 필요없이 흩어버렸습니다. 지역주의 이런 게 없지는 않지만 상당히 완화됐습니다.북한의 인권 운동을 빼고는 그가 어떻게 지낼까. “대학 졸업한지 20년이 넘었는데 갑자기 친구들이 옛날 찍었던 사진을 단톡방 이런데 올려요. 거칠고 투박했던 시절인데, 이때가 엊그제 같은데 참 빠르게 세월이 지나갑니다.” 학교 친구들 만나서 옛날 이야기하고, 몸무게가 늘어 걱정이라는 고민도 한단다. 해외에는 웬만큼 나가볼 만한 나라는 다 가봤다고 했다. 한국의 평범한 50대 남성의 모습이었다. - 예멘 난민이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한국정부가 난민협약에 가입돼 있어서 난민쿼터를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분단국가기에 한국은 엄청난 난민 발생 가능성을 예상해야 합니다. 따라서 한국만큼은 북한 난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유엔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북한에 예멘 정도의 자유가 주어지면 북한주민 절반이 국경선을 넘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도 중국엔 10만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 난민이지요. 우리 가족, 우리 동포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외국 난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일의 순서가 맞지 않다고 봅니다. - 탈북자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이 곱지 않다.☞ 북한 사람은 기회가 없어 배우지 못했고, 문화생활을 못 했기에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탈북자들을 이등국민 취급하고, 열등하게 취급하는 어떤 선입견 같은 것이 있어요. 지금이야 한국에 사는 탈북자가 3만명이니 눈에 띄는 분쟁이 없겠지만 나중에 통일이 되면 5000만명대 2500만명이 되면 큰 분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를 깔보거나 무시하고 이등국민 취급하는 그런 선입견 빨리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경쟁이 없는 사회에서 살다가 자본주의 무한경쟁은 우리 탈북자들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저는 후배들에게도 당부합니다. 후배들이 북한 출신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누군가의 사소한 한마디의 말에 상처를 입습니다. 그런데 ‘사소한 말에 신경 쓰지 말고, 그 말이 악의적이지 않으면 대범하게 넘겨라.’고 충고합니다. 예전에 제가 밥을 먹는데 “야, 너는 수용소에서 쥐도 잡아먹었다는데, 고기를 남기면 되겠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분은 되게 나빴지만 대수롭잖게 넘겼지요.그는 요즘의 젊은 탈북자들은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진출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똘똘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후배들도 많아요. 지금은 탈북자를 위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도 많아졌어요. 우리야 한국에서 기자 한 것이 최고의 사회 진출이었지만, 국제무대에서 활동이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정치도 하게 되는 후배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강 대표는 “한국사회가 그동안 통일을 준비한다고 말하면서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준비위원회 자문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 회의의 주요 사업으로 ‘DMZ박물관’을 건립하자고 논의하더라고요. 민간 업체에 맡기면 되는 것을 이 위원회가 주요 안건의 논의하는 것을 보고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