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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정주교 변호사·보훈심사위원(특별기고)

    ◎선열들 희생의 의미 되새겨야 6월이면 언제나 내가 어릴때 살던 집마당에 한여름 내내 탐스럽게 피어 오르던 장미넝쿨이 생각난다.초여름도 오기전부터 몇송이인지 헤아릴수 없이 많은 봉우리가 맺히기 시작하여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그 봉우리를 활짝 열어 동네골목 어귀에서부터 그 향기를 느끼곤 했다.이렇게 화사하고 아름다운 때가 되면 또 하나 생각나는 일이 있다.초등학교 몇학년 때인가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현충일과 6·25전쟁기념일을 전후하여 학교에서 단체로 국화 몇송이씩을 손에 쥐고 난생처음 국립묘지를 참배하러 간 적이 있었다.철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 나는 바다처럼 넓은 곳에 끝없이 늘어선 묘비들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오늘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외형이가 단체로 국립묘지에 현장 견학을 간다고 아침부터 부산한 모습이지만 막상 그곳에서 어떤 감명을 받게 될지 자못 궁금하고 조심스럽기만 하다. 우리는 국민소득 1만달러,수출 1천억달러를 달성하는등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고 국가위상은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라로 부상하고 있다.또한 우리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가 되었으며,정부는 동아시아 5강에 집입하였다고 공언하였고,21세기에 돌입해서는 선진 7개국의 진입을 국가목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이러한 결과는 온 국민의 피땀흘린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려니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난 어려운 시대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친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이 밑거름이 되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우리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국권을 회복하여 광복의 기쁨도 누릴사이 없이 남북분단이라는 뼈아픈 역사로 우리 민족이 그토록 바라던 진정한 의미의 광복을 이루지 못한채 6·25라는 동족간의 비참한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이러한 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도처에 남아있다.병상에서 고통을 받고있는 6·25참전 및 파월 전상용사들과 남편,부모 또는 자식을 잃고 외롭게 여생을 보내는 유가족들의 슬픔과 한은 아직 지워지지 않고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의 분위기는 민주화에 편승한 각종 이해집단의 욕구분출과 철저한 지역이기주의나 지나친 개인주의 그리고 물질만능주의로 인하여 도덕과 윤리의식은 실종되어가고 있고 이러한 가치관의 전도로 인하여 국민통합의 구심점이 결여될 소지가 있는데다 특히 국난 미체험세대의 호국의식은 오히려 해이해지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히 수호하고 통일된 세계속의 한국을 만들어 가는데 진력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국민의 당연한 도리이자 책무이며,지난날 나라를 위해 신명을 바친 선열의 공훈을 기리고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또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제의 총칼 앞에 피를 뿌리며 독립을 쟁취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국토와 자유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6·25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전몰군경 및 상이용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결코 오늘날의 민족적 자긍과 국가의 위상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이러한 위국헌신의 정신이야 말로 우리 민족사에 빛나는 최고의 정신적 가치라 아니할 수 없다. 호국보훈의 달이 6월로 지정된 배경에는 주권과 자유수호의 상징인 6·25를 상기하는 달이기도 하지만 예로부터 이맘때쯤이면 조상님의 산소에 사초와 성묘를 하는등 가신 님의 뜻을 기리던 풍습이 있어 6월은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기에는 계절적으로도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뜻이야 어떻든 이렇게 신록이 우거진 풍요로운 계절에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유가족들께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 다시 6월이 지나가는 골목에 서서 오늘 이 땅에서 태어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로서는 다음 세대인 우리의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모습으로 이 나라를 물려주어야 할 것인가,그리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심어줘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는 정녕 무엇일까를 다시한번 겸허하게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 사회표정(홍콩반환 앞으로 1년:3)

    ◎거세지는 대륙풍… 미래불안 점증/「중정부 50년간 자치보장」 확신 못가져/“실력보다 북경과 연줄이 더 중요” 팽배 「대륙인들이 몰려온다」­주권반환을 앞두고 홍콩 현지언론과 주민들이 점증하는 대륙인의 물결과 영향력을 걱정스럽게 비꼬는 말이다. 93년말이후 합법적으로 홍콩에 정착한 대륙인은 12만명.지금도 하루에 1백∼1백50명이 중·영 합의로 합법적인 정착을 위해 국경을 넘고 있다.중국기업의 홍콩상륙도 3천2백20개,상주파견 직원 6만5천6백명으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홍콩·중국 국경간 일반인들의 인적왕래도 계속 늘어 대륙입김이 강해지고 있다는게 정위명 홍콩스탠더드지 편집부국장의 지적이다. 순조로운 사업진행을 위해 중국고위층과 친해보려는 경향도 두드러졌다.홍콩인들이 강택민·전기침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손님에게 자랑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게된 것도 대륙바람중 하나다.몇년전만해도 찾기힘든 북방풍미의 고급음식점이 늘고있고 북경말을 들을 기회도 늘었다.대개 접대받거나 공금사용중 하나다.경제계의 북경향하기는 오래된 일로 패튼 총독이 『재벌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홍콩 이익과 민주주의를 팔아넘기고 있다』고 열내지만 푸념정도로 치부된다.18만여명중 77%가 외국여권을 가졌다는 공무원사회도 북경 눈치보기엔 지지않는다.입조심은 물론이고 레임덕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중문대 정치행정과 옹송연 교수는 지적한다. 외지인을 배척하려는 경향이 심한 연예계에 최근들어 대륙출신의 샛별이 각광을 받고 있다.홍콩입성 14개월밖에 안되는 다이아나 펑 단씨(23).발레리나에서 영화배우로 전향한 호남성출신의 이 여배우는 「실력보다 북경에 힘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성공의 비결」이란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소문의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사회 각 부문에 퍼진 대륙거부반응과 대륙입김 걱정 분위기를 보여준다. 북경측은 기회 있을 때마다 50년이상 현행 홍콩제도 및 자본주의보장등 1국양제 원칙불변을 강조한다.강택민·이붕도 고도자치,홍콩인에 의한 홍콩통치약속에 앞장서고 있다.반환이후도 홍콩은 독자적 재정권·조세권·화폐발행권을 갖는다.무관세정책,외환 자유이동,독자적 여권발급 권리도 유지한다.국제기구에 참가하고 체육행사에도 별도 팀을 파견한다. 그런데도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실질 보장문제에서는 현지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홍콩정부의 로살린 로우 부국장은 월례 전화 여론조사결과 시민의 가장 큰 문제는 『홍콩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조사됐다고 말한다. 천안문사태의 기억과 아직도 모호한 정치일정 및 지도자 선출방법등은 불안을 부채질한다.「중국이 독단적으로 행정장관을 임명하고 임시입법국(의회)을 구성하려한다」는 비난이 일자 노평국무원 홍콩·마카오 담당관실 주임(장관급)이 현지에 와 관계자 및 시민을 만나는 등 여론수렴에 성의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기본권법의 개정 및 입법의회해산방침 등은 현지인들의 중국에 대한 점수를 깎아먹고 있다. 종교·인권단체들의 걱정은 이런 분위기를 뛰어넘는다.「대륙 민주화지원 홍콩위원회」등 민주화지원 단체의 수명이 얼마 남지않은 것은 물론이다.홍콩을 통해 자유를 찾던 대륙 반체제인사도 출루 봉쇄에 직면했다.중국이 내국인 자치종교단체만을 인정하는 관계로 가톨릭단체는 비상사태를 맞고있다. 대륙인들이 보는 홍콩인은 애국심도 귀속감도 인간미도 없이 단지 계산에만 밝은 깍쟁이들이다.반면 홍콩인들이 보는 대륙인은 무식하고 투박하면서도 권력을 이용,위에 올라서려는 위험한 속물로 비쳐지고 있다.언어학상 독일어와 프랑스어의 차이보다 더 큰 북경어와 광동어만큼,대륙인과 홍콩차이니즈의 거리는 넓다.〈홍콩=이석우 특파원〉
  • 일본이 먼저 신뢰의 탑 쌓아야(박화진 칼럼)

    월드컵 공동개최는 한·일관계의 오랜 불신과 반목을 청산하고 신뢰와 화합의 새로운 관계를 발전시킬 역사적인 계기가 될수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소리를 자주 듣는다.물론 그것은 한·일양국이 이제부터 하기에 달렸지만 잘못하면 신뢰는 커녕 불신의 골만 더욱 깊게 만들 위험도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그럼에도 역시 그것은 한·일관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기할수있는 하늘이 준 흔치않은 역사적 기회라 생각해야 할것이다. 「월드컵정상회담」으로까지 불린 최근의 제주도 정상회담은 한·일 양정상의 그러한 공동인식을 기초로 하는 것이었다고 할수있다.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는 말할것 없고 양국관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한 기폭제로 활용하려는 강한 의지의 실천을 보여주는 것이었다.한·일 양국 모두의 희망찬 21세기를 열어가기 위해선 우선 이제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국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재정립이야말로 필요불가결의 절실한 요건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002년까지는 아직도 6년의 세월이 있고 월드컵의 성공적 공동개최와 한·일관계의 혁명적 발전을 위한 노력을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가야하는 것인가.한·일양국은 그점부터 진지하게 생각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제주도회담은 바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 할수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일본쪽의 과거사 사죄와 망언,그리고 우리의 반발이라는 악순환의 되풀이를 볼때마다 느끼는 것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의 한·일관계에 대한 양국 특히 일본쪽의 솔직하고 올바른 인식과 자세라 생각한다.그것을 기초로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일이 급선무이며 결자해지의 순리가 아니더라도 그 작업은 일본에서부터 먼저 시작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오늘 우리인구의 절반은 2차대전 당시 어린이였거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었다.그러나 선인들은 그들에게 가혹한 유산을 남겼다.우리 모두가 과거로부터의 귀결에 관계되어있고 과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이제와서 과거를 바꾼다든가 없었던 것으로 할수는 없다.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현재까지도 볼수없게 된다』 폰·바이츠제커 전 서독대통령 연방의회연설의 한대목이다.우리가 일본에 대해 바라는 것은 이처럼 솔직하고 양심적인 역사인식의 자세다. 김영삼 대통령은 최근 일본 도쿄신문과의 회견에서 『한국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일본과 힘을 합해서 전진하려하고 있으나 이를 위해서는 일본이 세계 모든 국가로부터 존경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바 있다.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가장 하고싶은 말의 한마디라 할수 있다.일본이 신뢰와 존경받는 이웃이 되기를 우리는 바란다.그것은 월드컵의 성공적 공동개최와 그것을 역사적이고 획기적인 한·일 선린우호협력관계 발전의 계기로 만들어 가기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의 하나다. 일본평화·안전보장연구소 아오키 마사미치(저목정도)회장이 일본의 우파시사주간지 세카이슈호(세계주보) 96년 신년특대호에 쓴 권두언 「외국의 일본불신」은 일본이 왜 어떻게 반성해야할 것인지를 잘 지적하고 있다. 『일부 외국인이 일본에의 불신감을 노골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불쾌하다.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일본 및 일본인에 대한 불신이 존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일·러전쟁때부터 일본이 한국,중국에 대해 한 일을 상기하면 한국과 중국국민이 일본에 대해 불신감을 갖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동맹우호의 미국인 까지도 일본및 일본인을 진심으로 신용하지 않는 것은 과거 1세기간의 역사에 비추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일본이 항상 옳고 나쁜 짓은 일체 않았다는 식으로 역사를 미화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역사의 미화에 열심인 것은 대체로 애국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다.애국주의는 때때로 망국주의가 되고만다.자국이 잘못했을 때는 그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할일은 주저없이 확실히 사죄해야한다.그래야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게 될 것이다.일본인은 자기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부끄럽고 자신에 불리한 일은 숨기려드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가 일본인·일본정부 특히 잘못된 애국주의의 가면을 쓰고 망국의 망언을 일삼는 극우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우리는 일본과 일본국민이 21세기를 맞으면서 적어도 이정도는 진심에서 우러난 솔직한 자기반성의 기초위에서 새출발해 주기를 바란다.세계적으로 특히 이웃의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일본의 21세기가 어떤 것이 될지 일본은 냉정히 생각해 보아야 할 세기말의 중요한 역사시점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심의·논설위원〉
  • 러시아는 무엇을 꿈꾸는가/주가노프 지음(화제의 책)

    ◎신생 러시아 현실과 나아갈 길 러시아 대통령선거에서 옐친과 팽팽한 대결을 벌이고 있는 주가노프(62·러시아 공산당 당수)의 저서 「수평선 너머」를 번역한 책.지난 92년 러시아공산당을 재창당하며 구 소련 부활을 주창해온 그는 이 책에서 신생 러시아의 현실과 새로운 세계질서아래 인류문명의 미래,러시아의 지위와 역할 등을 폭넓게 조망한다. 주가노프는 제정 러시아의 슬라브 민족주의와 구 소련의 패권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최근 러시아 사회에 다시 확산되고 있는 대러시아 민족주의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나아가 그는 『위대한 러시아는 러시아 공동체정신과 애국주의,인민성 등 문화적·도덕적 전통의 계승을 통해서만 건설할 수 있다』며 공산주의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강대국」이란 저서를 통해 이미 보여줬듯 주가노프는 러시아 지정학 연구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다.지정학적 주체로서의 러시아는 9세기 혈족관계에 있던 동슬라브 종족들의 통합결과 형성됐다고 적고 있는 지은이는 구 소련이 세계 사회주의체제에 니카라과를 무리하게 편입시키려고 하는등 지정학적 개념을 상실한 까닭에 미국의 전략적 도전앞에 무력했다고 지적한다.한울,김명호 옮김,7천원.
  • 주가노프“러 내전 가능성”/옐친 통제력 상실…결선투표 취소 우려

    【모스크바 로이터 AFP 연합】 겐나디 주가노프 러시아 공산당당수는 20일 최근 크렘린궁의 잇따른 음모와 인사개편에 이어 러시아가 점차 내전속으로 빠져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6일 실시된 1차 대선투표에서 옐친(35%)보다 3%포인트 뒤져 2위를 차지한 주가노프 당수는 이날 공산주의자들의 연합체인 민족애국동맹 명의로 발표된 성명에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면서 오는 3일로 예정된 결선투표가 취소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 성명은 『(주가노프가 이끄는) 민족애국동맹은 러시아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음을 선언한다.점차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는 노쇠한 옐친을 둘러싼 내부알력이 내란으로 확대돼 비극적 결말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민족혼 깃든 도시 대련(압록강 2천리:34)

    ◎안중근의사 조국에 잠재운 여순감옥 그대로/홍구공원 거사 가담 애국단출신 노인 생존/대륙진출 관문… 한국 보따리장사꾼 “북적” 요령성 대련시는 이 도시의 한 구역인 여순으로 해서 금세기 초에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1905년의 러·일전쟁에서 전략적 격전장이었던 여순은 일본의 승전지이기도 했다.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한 것이어서 그로부터 40년 뒤인 1945년 소련 원동방면군 사령관 바실레스키원수등 수많은 별들이 패전지에 와서 승전의 묵념을 올렸다. 우리에게도 대련시 여순은 귀에 설지 않다.안중근의사와 함께 기억되는 도시다.1910년 3월26일 일제가 안의사를 처형한 여순감옥 건물은 아직도 대련시에 남아있다.역사의 거인이 잠든 대련.압록강구에서 서남으로 5백16㎞,대동강구 남포로부터는 6백24㎞가 떨어진 발해만의 이 도시는 우리와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각별한 감회가 와닿는 대련에 와서 많은 조선족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이화림(91)할머니다.그 유서깊은 도시에 걸맞게 민족의 혼을 지킨 여인이기도 했다.1920년 평양 숭의여학교 유아사범반을 졸업하고 1930년 3월 상해에서 김두봉의 소개로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한인애국단은 김구 선생이 이끌었는데,그녀는 이 때에 선생을 처음 만났다.김구 선생의 비서격으로 일하면서 선생의 침식을 도맡아 돌보았다. 그녀는 이봉창의사의 일본천왕암살 미수사건과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사건에도 관여했다.1932년 1월8일 천황이 열병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가지고 상해를 떠나는 이봉창의사한테 작탄 두개를 감출 수 있는 내복을 지어주었다.그리고 1932년 4월29일 일본천황 생일기념식장인 상해 홍구공원에는 본래 그녀가 윤봉길의사와 부부로 가장하여 잠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그래서 거사전에 홍구공원의 지형지물을 세밀히 조사하여 김구선생에게 직접 보고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거사 며칠을 앞두고 윤의사의 단독거사로 계획이 바뀌었다.그녀는 1936년 김구 선생 곁을 떠나 광주로 갔다가 다시 남경으로 거처를 옮겨 조선민족당 총무 부녀국 위원으로 일했다.이어 일본군의 남경공격을 피해 중경으로 나 앉았다.그녀는 중경에서 김구선생을 극적으로 상봉했으나,선생과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다.중경에서 상봉했을때 그녀는 한인애국단시절 자신이 공산당이었다는 사실을 선생에게 고백한 것이 만남의 끝이 되었던 것이다. 김구 선생은 그녀의 고백을 다 듣고나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그 말씀은 『이제부터 다시 만나지 맙시다』라는 한마디였다고 한다.이후 그토록 흠모했던 선생을 중경땅 지척에 두고도 한 차례도 만나지 못했다.그녀는 김약산조선의용대부녀대 대장으로 있다가 해방을 맞은 1945년 연안중국의과대학에 들어갔다.그러고 나서 오늘의 연변의학원 전신인 중국의과대학 제1분교에 배치되었다. 그녀는 한때 북한으로 소환되어 인민군 제6독립군단 전선의무소 소장을 지냈다.1952년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중국으로 들어와 심양의사학교 부교장,연변위생국 국장을 연임했다.문화대혁명 당시는 한인애국단에서 활약한 것이 죄가 되어 3년동안 옥고를 치르고 나와 1984년 대련시 시찰원(시장대우)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그녀는 일생동안 아껴 모은돈 1만원을 연변작가협회에 내주었다.연변 작가협회는 그 돈으로 화림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가슴속 깊이 맺힌 회한이 있다면 김구선생을 평생 못 모신 것이다.이념의 차이로 가장 존경하는 어른과 인연을 끊게 된 것은 비극인지도 모른다.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념의 허상이 무너진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대련은 한국을 향해 문이 활짝 열렸다.지난해부터 대련∼인천간 여객선이 매주 목·일요일 대련항을 출항한다.또 매주 월·수·금요일에는 비행기가 서울을 향해 뜨고 있다. 대련∼인천간은 중국과 한국을 잇는 최단거리의 작항해로다.따라서 운임도 싸기 때문에 중국 동북시장 맛을 본 한국의 보따리 장사꾼들이 대련으로 몰려들고 있다.천진은 상대적으로 여객이 줄어 오는 음력설을 전후로 해서 노선이 폐쇄될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어떻든 간에 대련은 한국에서 중국 동북방을 잇는 관문도시로 떠올라 날로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대련시 서강구 빈해로 부가장 해변가에는 빈해호텔(빈해대하)이 자리했다.대련시 10대 풍치지구의 하나인 부가장 해변가의 이 호텔에는노래방과 나이트클럽을 겸한 한미가무술집이 있다.연변국발실업총공사가 빈해호텔과 6년 계약을 맺고 운영하는 이 업소는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만큼 손님들이 들끓는다.말하자면 대단한 성업인 것이다. 연변국발실업총공사는 지난 93년에 창업한 기업.기업과 무역이 불황기였을 때 간장과 된장·고추장을 생산하는 고려식품공장,급수설비와 열교환장치를 만드는 유한회사 이외에 장림목재공장 등 3개 계열업체를 세웠다.그러고 나서 빈해호텔에 한미가무술집을 냈다. 한미가무술집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잘 되기로 말하면 빈해호텔도 마찬가지다.해수욕철인 여름이 오면 1백20개 객실은 일찍 동이 나 버린다.한꺼번에 3백20명이 들어갈 수 있는 호텔도 늘 북새통이다.겨울 얼마동안은 손님이 뜸하나 한미가무술집은 철을 타지 않았다.그래서 빈해호텔측은 김일웅 회장과 합작으로 한국부를 최근 개설했다.대련으로 몰려오는 한국 장사꾼 유치를 겨냥한 것이다. 한국부 책임자는 서울출신인 박동렬(28) 부장.젊은 사람이었지만 의욕이 대단한 그는 승부수가 들여다 보인다고 했다. 『저는 소신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이 호텔의 위치가 우선 그만입니다.부두까지 15분,공항까지는 25분 거리고 문만 나서면 역과 번화가로 통하는 버스가 수시로 다닙니다.한식전문 식당이 있고 연락만 하면 부두와 공항에 나가 손님을 모셔오고 있습니다.각종 티켓은 물론 무역상담도 해주는 등 모든 서비스를 제공해 주니까 잘 될 겁니다』 대련시의 조선족은 그리 많지 않아 5천2백50명에 불과하다.그러나 조선족 부동인구는 상당히 많아 조선족문화관이 주최하는 민속절 행사에는 8천여명이나 몰려든다.이 가운데는 한국인과 북한인들도 포함되어 있다.한가지 흥미를 끄는 일은 대련시 조선족 소학교의 남북한 어린이들의 공학이다.대련에 사는 남북한 기업인들의 자녀들은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이 이 학교 계영자(48) 교장의 귀띔이다. 『한국 아이들은 활발하고 자기의사를 대담하게 표현하디요.반면 북한 아이들은 소박하고 수줍어하는 편입네다.그런데 아주 친하게 어울리는 것을 보면 형언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 들디요.하기야 아이들에게 무슨 이념이 있겠습네까만…』
  • 월드컵 응원가 제정/정부 공식의전절차 개편 검토/국가상징자문위

    총무처는 17일 태극기·애국가·무궁화 등 국가상징과정밑 의전절차를 시대변화에 맞게 발전 시키기 위한 국가상징자문위(위원장 최창규)를 구성,활동에 들어갔다. 이날 첫 회의를 연 자문위는 앞으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태극기등 국가상징을 드높이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총무처는 자문위를 통해 월드컵축구대회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국민적 응원가를제정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 미군유해 찾기와 애국심(박화진 칼럼)

    지금 평양에선 6·25때 전사 내지 실종한 미군유해 발굴봉환을 위환 미·북유해협상이 1주일째 진행중이다.얼마전 뉴욕회담에서 미국이 그동안의 유해송환에 보여준 북한의 노력에 사의를 표하고 대가로 2백만달러(약 16억원)을 지급하며 금년 10월이전에 유해발굴 미·북 공동작업을 개시하기로 합의한데 따른 실무회담이다.미국정부가 보이는 이같은 미군 전사·실종자유해 찾기노력의 집요성과 끈질김에 놀라고 의아스러워 하는 사람이 많을지 모른다. 이미 46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유해를 찾고 발굴하는 일은 물론 신원확인도 사실상 불가능하리만큼 지난한 상황이라 하지 않는가.6·25당시의 주로 미군인 주한유엔군 실종자수는 8천1백72명이며 최근까지 북한이 넘겨준 유해는 1백62구였다.그나마 말·소등 동물뼈를 제하고 미군유해로 확인된 것은 4구 미만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해찾기에 열심인 미국의 행동이 이해하기 힘들고 어리석게까지 보일지 모른다.특히 유물론의 공산북한 당국자들에겐 더욱 그랬을 가능성이 많다.그러나 바로 그점에 미국의 장점과 강점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미국은 월남전 실종자 유해송환을 위해서도 많은 돈과 끈질긴 노력을 쏟은바 있다.유해송환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하거나 실종된 장병들을 국가와 정부가 영원히 잊지않고 찾는다는 의지의 과시라 할수 있다.클린턴대통령 재선이라든가 대북관계 개선이라는 정치적 목적도 작용하고 있을지 모르나 북한과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할수있을 것이다. 유해송환 노력에서 보듯 사자의 경우를 포함,미국정부의 철저한 자국민보호는 유명하다.특히 해외국민에 대한 미국정부의 보호는 세계적인 선망의 적이 되고있다.그것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국가에 대해 강한 긍지와 애국심을 갖게 하고 분열·갈등이 불가피한 다인종·다민족에 자유방임의 민주국가인 미합중국의 국가적 단결력 지탱 및 강화의 중요원동력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미국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우리는 오랜 역사와 문화전통의 단일민족국가임을 자랑하고 있다.그때문인진 몰라도,그리고 미처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진 몰라도 그동안 우리 국가와 정부의 자국민보호 및 애국심고취 노력은 부족하고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일제 36년,6·25동란의 시련기등을 통해 우리국민들이 보여준 자발적이고 본능적인 애국·충성심은 단일민족국가의 당연한 장점이었는진 몰라도 미국인들의 그것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이라 할수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족하단 말인가.본능적인 애국심 발휘는 다행스런 일이지만 그것으로 끝나선 안되는 일임을 광복 및 6·25이후의 우리경험과 미국정부의 끈질긴 실종미군 유해찾기 노력에서 보여준다고 할수있다.특히 오늘의 우리상황은 더욱 그렇다고 할수있다.한때 듣기만 해도 가슴설레이게 하던 애국·애족이란 말도 언제부터인가 사라진지 오래다.그것은 분단과 전쟁,그리고 가난의 혼돈속에 애국심 고취노력은 커녕 애국과 매국의 상벌도 제대로 못가린 우리 근대사의 오점이 남긴 불가피한 결과의 하나라 할수있을것이다. 최근 우리정부가 그러한 역사과오 시정과 바로잡기 노력을 배가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특히 93년의 박은식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비롯한 신규식,노백인,안국태,김인전선생등 상해임정요인 다섯분 유해봉환 및 국립묘지 안장은 눈물겨운 민족사적 쾌거였다고 할수있을 것이다.나머지 87위의 유해 봉환노력과 작년의 광복 50주년을 계기로한 독립유공자 1천4백42분의 새로운 발굴·포상등 노력은 역사적인 업적의 하나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정부는 97년부터 독립유공자의 손자·손녀에게도 대입특례를 부여하고 98년부터 국가유공자 기본연금을 18% 예산증가율(96년 기준)이상으로 대폭 인상·현실화 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애국하면 3대가 망한다」는 자학의 말이 더이상 용납돼선 안될 것이다.정부는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 뿐아니라 6·25와 월남전 전몰·부상자 및 그후손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의 따뜻한 손길과 응분의 보훈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할것이다.그것은 그들의 애국에 대한 너무도 당연한 보훈인 동시에 가장 중요하고 자랑스런 역사바로잡기의 하나이며 새로운 애국·애족을 고무·고취하는 민족백년대계의 씨뿌리기요 기초작업임을 잊어서 안될 것이다.호국·보훈의 이 6월에 미국정부의 열성적인 실종미군유해 찾기노력을 보며 하게 되는 생각이다.〈심의·논설위원〉
  •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현충일(송정숙 칼럼)

    21년만이다. 『…민족의 얼이 서린 이곳,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도 우리는 선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현충탑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서도 우리는 호국영령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우리는 영령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합니다.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해야 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우리는 대통령의 육성으로 읽는 현충일 기념사를 들었다.다 읽고난 끝에 잦아드는 목소리로 「대독!」하고 덧붙이는 소리를 듣지않아도 되는 기념사였다.분초를 쪼개도 감당할 수 없는 많은 행사에 다 대통령이 참석하기를 요구할 수는 없다.그러나 그자리서만은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꼭 보고싶은 자리가 있고 대통령의 육성으로 꼭 듣고싶은 기념사가 있다.현충일은 그런 날이다. 왜냐하면 이날은 국가의 근본을 생각하는 날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목숨을 총탄삼아 나라위해 바친 영령들이,빛나게 발전해가는 조국을 못잊어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날이기도 하기때문이다.그러므로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단순히 추모하는데 그쳐서는 안됨』을 강조하며 그분들의 희생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통일된 세계중심국가를 건설하는 원동력으로 삼자고 호소하는 기념사를 듣게된 올해 현충일은 각별했다. 그래서 『온국민이 진실한 마음으로 국가유공자와 유가족,그리고 아직도 병상에서 고생하는 전상자들을 보살피고 위로하는 것을 나라의 기풍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결의에 뜨거운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56년에 훈충일이 제정된 뒤 꼭 40년이 지났다.70년 북한 공작원의 박대통령 위해폭파사건이었던 현충문사고 이후 현충일 추념제전의 의식은 국무총리 참석을 전례로 해왔다.그 의식이 올해로 격상되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용사가 밀림에서 전사한 전우를 밤마다 보는 괴로움때문에 정신을 앓는 영화가 있다.불타는 밀림에서 피투성이가 된 전우가 손을 저으며 『나를 여기서 데려가 달라!』고 절규하는 악몽이다.그 역시 베트남 베테랑인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위싱턴에 있는 베트남전 기념공원을 찾아간다.그곳의 그 장엄하고도 비장한 검은 기념비에서 깨알처럼 새겨진 전우의 이름을 확인하고,울며 쓰다듬어보고 그리고 소리높이 이름불러 그 전우가 돌아왔음을 느껴보고 나서야 정신증세를 가라앉히게하는 장면이 있다. 전장에 버려진 전쟁용사들을 위해 조국은,그 이름을 확인하고 울며 쓰다듬어보고 소리높이 불러서 위로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우리는 그런 일에 소홀해 왔다.현충일마저 그저 전몰군경 유가족의 제삿날정도로 생각하거나 더러는 그냥 쉬는날로 생각하여 행락인파가 혼잡을 이루는 날로 여기게도 되었으며 조기같은걸 다는 일은 아예 잊고 지내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세월에 퇴색하기 쉬우므로 이런 현상은 적건 많건 나타난다.그러나 제전의 의식이 약해짐으로써 그것을 촉진시키는 허물까지 우리는 저질러온 것이다.게다가 우리는 어쩐일인지 많은 진보연하는 지식인들의 폄하까지 곁들여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싸운 용사」를 기리는 일을 주눅들게 만들기도 한 혐의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이 바로잡혀야 한다.그런 계기를 이번의 「의식 격상」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맛보게 한다.그것은 과거 지향의 것이 아니므로 희망이다.사회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국가 목표를 향해 가야 할 지금에 바로 맞는 희망이다.21세기 세계중심국가 건설,한민족 통일국가 이룩,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등 나라의 진운을 걸어야 할 하고많은 과제들을 성취하는 원동력을 그곳에서 우리는 찾을 수 있다.국민안보의식과 애국심 고취는 올바른 시민정신 함양의 기저를 이루기때문이다.「바로 세워지는 역사」의 출발점도 그곳에서 비롯된다. 4반세기 만에야 「격하」를 회복하고 『경건히 머리숙여 명복을 빌며 삼가 국민의 이름으로 추념사를』를 올리고 호국영령들앞에 「빛나는 미래」를 다짐하는 대통령을 보는 일은 안도와 기쁨이다.〈고문〉
  • 김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

    오늘 우리는 마흔한번째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신명을 바치신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그 분들의 위훈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전 순국선열과 전몰호국용사의 영전에 다 함께 머리 숙여 안식과 명복을 빌고 감사와 경의를 표했습니다.온 국민은 지금 이 순간 조국의 의미를 새롭게 헤아리고,진정한 나라사랑,참다운 겨레사랑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슴속 깊이 되새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애국선열들은 빼앗긴 나라의 광복을 위해 낯선 이국땅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을 위한 투쟁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으로 우리는 나라를 되찾고 민족의 자존을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6·25전쟁때는 수십만 용사들이 이땅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위해 장렬히 산화했습니다.우리는 애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민주주의와 정의가 바로 선 나라를 만들기위해 그동안 참으로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민주주의와 번영은 애국선열과 호국용사들이 뿌린 희생의 씨앗을 우리의 피와 땀으로 가꾸어낸 소중한 열매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선열과 호국용사들의 충의를 현창하고 그 후손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것은 역사를 바로세우는 첫걸음입니다.민족정기를 드높이고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기위해 우리는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해외에 흩어진 애국선열의 유해를 이곳에 옮겨 모시고,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동시에 독립운동유적지를 복원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국가유공자와 그 후손들이 명예와 긍지를 가지고 살아갈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습니다.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명예를 회복하고 12·12군사 쿠데타를 단죄하는 것도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입니다.역사가 바로서야 법과 정의가 구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정의와 법이 살아있어야 나라를 바로세우고 미래를 올바로 열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단순히 추모하는데 그쳐서는 안됩니다.그분들의 충의와 희생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통일된 세계중심국가를 건설하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온 국민이 진실한 마음으로 국가유공자와 유가족,그리고 아직도 병상에서 고생하는 전상자들을 보살피고 위로하는 것을 나라의 기풍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순국선열과 전몰용사들이 몸바쳐 다시 찾고,지킨 이 나라를 물려받은 우리는 그 분들이 못다이룬 뜻을 펴나가야하는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온 겨레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자주독립국가의 건설이 선열들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세계사의 중심무대에서 활약하는 일류국가,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적극 기여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호국영령들의 유지를 받드는 길입니다.민족의 얼이 서린 이곳,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도 우리는 선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충탑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서도 우리는 호국영령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우리는 영령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합니다.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해야 합니다.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힘있는 나라,세계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통일국가를 만들어 선열들의 간절한 소망을 이룩해야 합니다. 애국영령들의 영전에서 21세기 세계 중심국가를 건설하여 위대한 한민족의 시대를 열어 나갈 것을 다함께 다짐합시다.오늘 뜻깊은 현충일을 맞아 저는 다시 한번 선열들의 영전에 경건히 머리숙여 명복을 빌며,온 국민의 이름으로 삼가 추념사를 올립니다. 호국영령들이시여,부디 안식을 누리소서.
  • 재일민단/제2의 도약 채비/창립 50돌 맞아 대대적 사업

    ◎지방참정권 획득 역점… 대중운동 전개/교포 2·3·4세 결집,조직 재정비 계획 오는 10월 창단 50주년을 맞는 재일한국민단이 대대적인 기념행사와 함께 제2의 도약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준비하고 있다. 민단은 46년 재일조선인연맹(조련)에 반대하는 반공청년조직인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과 「신조선건설동맹」등 20여단체 2천여명이 중심이 돼 「재일조선거류민단」으로 출발했다. 현재 도쿄의 중앙본부아래 49개 지방본부,3백39개 지부에 50만명의 단원을 거느리고 있는 민단은 그동안 1세교포들의 남다른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발판으로 조총련과 일본사회의 차별의식이라는 두 적과 끊임없이 투쟁하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교포사회의 고령화와 2·3세 젊은 교포들의 조직이탈,갈수록 심해지는 재정난,급변하는 주변정세 등 적잖은 난관들로 고비를 맞고 있어 이번 50주년 기념행사가 조직을 재정비하고 교포들을 결집시키는데 촉매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민단이 올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지방참정권의 획득.세금은 똑같이 내면서 지역주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지금의 위치가 일본에서의 교포차별을 제도적으로 심화시키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조직의 역량을 최대한 쏟아붓고 있다.이를 위해 민단은 일단 국회의 지방자치법 개정심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방의회에 지방참정권을 지지하는 의견서를 채택하도록 촉구하는 한편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대중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3천3백여곳의 자치단체가운데 1천2백여곳에서 이미 의견서가 채택됐으며 올해안에 1천7백여곳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단은 또 창단 반세기를 맞은 만큼 그동안 갈등과 대립 관계로 일관해온 조총련과도 민족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화와 교류활동을 모색하고 있다.이와 함께 교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3·4세들에게 모국방문과 민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대폭 늘려 「젊은 세대 끌어안기」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민단 중앙본부의 신용상 단장(70)은 『1세교포들과 달리 2·3세들은 민단을 자신의 조직으로 여기지 않아 일하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민단이 1세들만의 잊혀진 조직으로 남게 될지,아니면 2·3세들 사이에 뿌리를 내리게 될지 기로에 서있는 만큼 올 한해의 사업 성과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50주년 기념식은 오는 10월26일 도쿄 국립요요기경기장에서 단원·귀화동포·일본인 등 1만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릴 예정이다.〈도쿄=이순녀 기자〉
  • 보훈정책/황창평 처장 인터뷰(국정 어떻게 돼갑니까)

    ◎“유공자 실버타운 2천세대로 확대”/희생자 정당한 평가에 시책 중점/고엽제 후유의증환자 지원 확충 6월이 되면 가장 바쁜 국무위원이 보훈처장이다.해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기 때문이다.그러나 6월 6일 현충일이 갈수록 행락의 날로 변질되고 있는데 대해 누구보다 안타까워 하는 이가 황창평 국가보훈처장이다. 황처장은 31일 서울신문 이경형 정치부장과의 인터뷰에서 『국가유공자가 국민으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고,존경과 예우를 받으며 영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같은 보훈철학이 국민들에게 인식되고,정책적으로 실현되는데 힘을 쓰겠다고 강조했다. ­보훈이념이 국민들에게 널리 인식돼 있지 않다고 보는데요. ▲6월과 현충일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생각은 6·25전쟁 등 국난을 겪은 유공자의 기일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이 나라를 이룩한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들에게 늘 감사하고 존경하며 예우하는 풍토가 이제는 자리잡아야 합니다.남북대치의 상황에서 보훈과 국가안보는 동전의 양면같은 것입니다.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호국·보훈의 달인 이달,국가 유공자와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특별한 계획은 있습니까. ○초중고 추념식 권장 ▲현충일 추념제전을 비롯,크고 작은 행사가 한달동안 치러질 것입니다.올해에는 특히 교육부의 협조를 얻어 전국 초·중·고교별로 자체 추념식을 갖도록 권장했습니다.국난을 치러보지 못한 국민이 70%를 넘어선 상태에서 자라나는 학생들이 한번쯤 6월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노년기에 접어든 국가유공자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여생을 지낼 수 있도록 할 대책은 있습니까. ▲보상금은 그동안 꾸준히 인상됐으나 국가 재정 형편상 공훈과 희생에 상응한 충분한 수준은 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점은 있지만 점차 개선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이밖에 취업,교육의료,주택자금 지원 등 부수적인 지원을 병행하여 생활 안정을 도모토록 하고 있습니다.보다 큰 문제는 이분들의 연령이 고령화,노인성 질환과 전상으로 인한 만성질환이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보훈처는 이달안에 4백52가구가입주할 수원 보훈복지타운 준공식을 가지는데 이어 노령화된 국가유공자들이 안락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실버타운을 2천가구까지 늘릴 계획입니다.또 충주에도 미망인 휴양시설도 곧 개관하는 등 다양한 노후복지 증진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민족정기 선양사업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요. ○취업·주택자금 지원 ▲해외 애국선열 22명을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독립유공자 1천8백54명을 추가로 발굴한데 이어 올해에도 숨은 독립유공자를 최대한 발굴,추가 포상할 계획입니다.해외에 안장된 선열의 유해봉안과 묘소의 현지단장 및 실태조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특히 보훈처를 중심으로 전개해온 민족정기선양사업을 지방화,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범정부 사업으로 확대,모든 국민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한 민족자존의 회복과 「역사바로세우기」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국을 비롯,호주,에티오피아 등 참전국에 대해서도 보은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지난 4월 호주 한국전 참전 기념탑 건립 지원을 위해 호주 현지에서 한국대사 및 보훈처 관계관이 건립부지 헌납식에 참석했고 공사비도 정부에서 일부(1억2천만원)를 지원할 계획입니다.에티오피아에 대한 지원은 국제로터리클럽,한국선명회,기업체 등 민·관 지원협의회를 통해 참전용사 위주의 지원운동 활성화 및 지원방안을 협의했고 현재 도로 개·보수,보건소 건립,자활생산공장 건립,의약품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월남전 참전용사가운데 고엽제 후유증 환자에 대한 대책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유족 지원방안 마련 ▲현재 고엽제와 관련,지금까지 7천4백71명의 신청서를 접수받아 5천2백70여명에 대해 정밀검사를 실시했습니다.그 결과 10개 질병에 해당되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 1천26명에 대해서는 상이군경과 동일한 보상과 예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19개 질병에 해당되는 고엽제 후유의증환자 2천6명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지원 방안을 확대,장애 정도에 따라 월 20만∼4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고,본인과 자녀에게 교육,취업보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이밖에 지원재단설립 기금조성과 고엽증 2세 환자 1백22명 및 이미 사망한 유족 1백68명에 대해서도 적절한 지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내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제대군인연맹(WVF) 총회가 열리는데 준비는 잘 돼갑니까. ▲세계제대군인연맹은 세계 74개국 2백여개 단체로 구성된 국제 비정부 기구로서 우리나라는 56년에 가입했습니다.97년 총회에서는 전쟁희생자 재활,군비축소,세계평화운동추진 등의 의제를 갖고 국내외 인사 3천여명이 참석합니다.현재 정부지원위원회 및 실무준비단을 구성,회의개최에 차질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정리=황성기 기자〉 ◎황 처장 회견 언저리/“보훈정신 진정한 이해 필요” 거듭 강조/28년간 안기부 맨 경력… 추진력 돋보여 『장관이 휠체어를 탄 참전용사와 사진을 찍으면서 무릎을 꿇고 앉더군요.그 용사와 키높이를 나란히하기 위한 것이었지요.미국 「보훈정책」의 한 단면을 보았어요』 28년간 「음지의 인물(안기부 맨)」로 대공 정보·보안업무에 종사하다가 94년말부터국가보훈업무의 총책으로서 전력을 투구하고 있는 황창평 보훈처장.그는 지난해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거행됐던 미군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우리도 이제 「보훈정신의 진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훈정책의 방향이 단순한 구제,원호차원을 벗어나 국민정신함양,민족의 정체성 확립으로 대전환해야한다고 강조했다.이런 말을 하는 그의 모습은 종교처럼 숙연하기까지 했다. 집무실에서 마주 앉기가 무섭게 『보훈업무에 대해 먼저 설명을 하겠다』며 그의 「보훈철학」을 강의했다.우선 언론이 보훈시책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단단히 교육을 시키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회견을 갖는 1시간여 동안 그의 「저돌적인 추진력」「좌고우면 않는 일벌레」의 체취를 곳곳에서 느낄수 있었다.『평소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대해 후회를 말자』는 것이 그의 생활신조라고 했다.늘 「음지」에서 일하면서 「양지」를 지향해야하는 「안기부 맨」의 절제가 몸에 배어있어 쉽게 나서거나 말수가 헤픈 것은 결코 아니었다.그러나 보훈업무홍보에만은 그렇지가 않았다.건국포장,대통령표창을 받은 독립유공자에 대한 연금혜택확대등 당면 현안과 문제점을 설명하는데는 솔직담백했고 고집마저 번득였다. 안기부에서의 공직봉사경험이 보훈업무수행에 보탬을 주고있느냐는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국가안보와 보훈업무는 동전의 양면』이라며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을 국가가 적극 보살피고 존경을 하면 그것이 바로 안보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죄도 많이 지었는데 국가를 위해 몸바친 분들과 그 가족들을 보살피고 그분들의 정신을 기리는데 일조함으로써 그 죄를 회개하는 심정으로 업무에 임하고있다』고 말했다.마치 보훈총책의 신앙고백처럼 들렸다.집무실을 나선후에도 계속 귓가에 쟁쟁했다.〈이경형 정치부장〉
  • 「신한국 영입파」 10명 대야 포문

    ◎“「무소속 여 입당」 정쟁에 이용말라”/자유의사 따른 선택을 정치볼모 삼다니…/총선패배 호도위한 장외투쟁 중단해야 4·11총선이후 신한국당에 입당한 당선자 10명이 야권의 대여공세에 「방패막이」로 나섰다.이들은 27일 상오 여의도 신한국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장외투쟁을 맹렬히 비난했다.예정에 없는 회견이었다.자신들의 신한국당 입당을 빌미로 한 장외투쟁을 즉각 중단하라는 것이 이들의 회견요지였다. 회견은 황성균당선자(경남 사천)가 배경을 설명하고 원유철당선자(경기 평택갑)가 결의문을 낭독하는 순으로 이어졌다.민주당 출신의 이규택(경기 여주) 최욱철(강원 강릉을) 황규선(경기 이천)당선자와 무소속의 박종우(경기 김포) 김재천(경남 진주갑) 백승홍(대구 서을) 박시균(경북 영주) 임진출(경북 경주을)당선자가 배석했다.입당자 11명중 외유중인 김일윤당선자(경북 경주갑)를 빼고는 모두 참석했다. 이들은 회견에서 『4·11총선의 민의는 신한국당이 주체가 돼 세대교체와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하라는 것이었고 우리들은 이런 시대적 소명과 헌법에 보장된 정당선택권을 바탕으로 자유 의사에 따라 신한국당 입당을 결심한 것』이라고 입당이유를 밝혔다.「여권의 갖은 협박과 회유에 의한 결과」라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대여공세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들은 『야당은 우리의 신한국당 입당을 국회개원과 연계시키고 헌법소원까지 제기하며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자기당에 입당하면 애국자요,신한국당에 입당하면 변절자인가』고 야권공세를 맞받아쳤다.나아가 『야당측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과 국가,지역발전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야권에 대해 『총선패배 책임론이 제기되는 등 당내의 복잡한 사정을 호도하기 위해 우리의 입당문제를 볼모로 삼는 정치적 음모를 즉각 중단하고 국회의 정상적인 개원을 위해 노력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이 회견은 일단 전날(26일) 야권의 보라매공원집회에서 자신들이 집중비난을 받은 데 대한 반발의 성격이 짙다.한 당선자의 말처럼 『우리를 들먹이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심경에 따른 것이다. 이날 회견은 야권의 장외공세의 명분을 희석시킨 효과도 거뒀다는 분석이다.야권으로부터 「정권의 협박에 의한 희생물」로 규정받은 당사자들이 정면으로 이를 부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표면적으로나마 장외 공세의 주요 명분의 하나를 잃었다는게 정치권의 공통된 해석이다.〈진경호 기자〉
  • 박성수 정문연 교수 「한국독립운동사론」 펴내

    ◎30여년의 연구 결산 논문 59편 한권에 묶어/주요사건·사실 평가… 역사연구 방법론 제시 지난 30여년동안 독립운동사 연구에 힘써온 박성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그동안 발표한 연구논문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냈다.정문연 연구총서의 하나로 최근 간행된 이 논문집은 「한국독립운동사론」. 59편의 논문이 들어있는 이 책에서 박교수는 독립운동과 직접 관련된 의병전쟁,애국계몽운동,3·1운동,상해임시정부등 주요 사건·사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물론 자신의 역사관과 역사연구 방법론을 폭넓게 펼쳐 보이고 있다. 그는 먼저 한국에서 민족운동은 『이념적 분열에도 불구하고 1896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반세기동안 절대독립 노선을 고수했다』고 보았다.그리고 그 민족주의가 외국의 예처럼 사회주의나 제국주의로 변질되지 않고 『방어적이며 자위적이고,민족 내적통합을 이루는데 전력을 다한 평화주의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했다.따라서 통일을 앞둔 이 시대의 민족주의도 일제강점기에 전개된 민족주의와 민족운동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박교수는 자신이 틈틈이 관심을 보여온 고대사 부문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그는 단재 신채호,백암 박은식등 일제하 민족사학자들이 『전통 유교사관이 갖는 도학적 이념과 헤겔의 역사철학을 수용해 일제 침략으로 빚어진 역사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면서 그들의 역사관을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현재 사학계에서 위서로 취급하는 「단기고사」「규원사화」「환단고기」등의 사서에 대해서도 『덮어놓고 매도할 것이 아니라 면밀히 비판·검토해 잃어버린 상고사를 되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용원 기자〉
  • 국회사무처 개원준비 어떻게(정가초점)

    ◎입법활동 돕게 「이슈 브리핑제」 도입/14때 법 제정·개정자료 의원들에 제공/컴퓨터 교체… 국회내 근거리통신망 추진 15대 국회 개원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6월5일 하오로 예정된 개원식의 국민의례 때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게 된다.지난 국회개원 때까지는 1절만 불렀다.행정부의 공식행사와 형평을 맞추기 위해서다.개원식행사용 안내 프로그램에도 애국가의 악보와 가사를 4절까지 기재했다. 여야 정당은 아직 개원협상을 시작하지도 못했지만 국회 사무처는 법적 개원일에 맞춰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정당들에 손짓을 하고 있다. 지난 3월5일 발족한 「15대국회 개원준비 종합상황실」이 개원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사령탑이다. 국회 개원준비작업은 크게 두 가지.15대 의원들이 빠른 시일안에 입법활동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하는 입법 보조작업과 사무실 단장등 입법환경 개선작업이다. 우선 의원들의 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이슈 브리핑」제도가 눈에 띈다.선진형 국회로 변모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작업이다.「이슈 브리핑」이란 최근 신설된 법제예산실에서 지난 14대 국회의 각종 법률 제·개정작업 현황을 사안별로 의원들에게 설명해주는 것이다.지난 국회에서 처리된 입법현황과 지난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들을 정리해 의원들에게 설명하고 자료를 제공한다.의원들이 입법활동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는 효가를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와 함께 첨단장비도 새롭게 도입된다.정보화시대에 걸맞는 의정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컴퓨터 체제」를 갖추는 작업이다.현재 의원회관 각 사무실에 비치돼 있는 286급 퍼스널 컴퓨터(PC)를 전부 최신형인 586급 PC로 교체하고 구형 도트 프린터도 레이저 프린터로 바꿨다.모두 8억7천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인터넷을 통해 외국의 각종 법률안등을 의원회관에서 신속하게 검색,입법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국회내 근거리통신망(LAN)을 이용하는 방안도 마련중이다.지금까지는 국회에 제출한 법률안을 보려면 본청까지 직접 가 복사를 해야 했으나 LAN을 이용하면 사무실에서 바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국회 사무처는 상시국회에 대비해 상임위 활동까지 생중계가 가능하도록 관련 장비를 갖출 예정이다.현재 국회 본회의장에만 설치돼 있는 케이블TV 중계용 카메라를 상임위 전 회의장에 설치한다는 구상이다.이밖에 낡은 국회 시설물을 교체하고 의원회관 사무실 도배및 새 냉장고와 TV를 들여 놓는등 의원들의 기분맞추기 작업도 한창이다.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첨단 국회로의 변모와 15대 의원들이 입법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정작 주인공들이 등원의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김경홍 기자〉
  • 6급공무원 대거 5급 승진/직제개정안 새달 마련

    ◎중아직 8% 5급으로 상향 조정/「국가상징 자문위」 올 하반기 발족/정보공개법 연내 제정/「행정개혁 방안」 청와대 보고 정부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법으로 제한된 정보외에는 국민들에게 알리는 정보공개법을 올해안에 제정키로 했다. 또 중하위직 공무원의 사기를 높이고 공직을 활성화하기 위해 6급 정원의 일정 비율을 5급 정원으로 조정,주사(6급)를 사무관(5급)으로 대거 승진시키는 공무원직제개정안을 내달 마련키로 했다. 조해령총무처장관은 15일 상오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문민정부 행정개혁의 추진상황과 향후과제」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보공개법은 공개 또는 비공개의 정보의 범위를 각부처가 설정,공개대상 정보는 국민들이 원할 경우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는 또 행정처분으로 국민권익이 침해되는 사례가 없도록 하기 위해 행정처분 때는 사전통지를 하도록 하고 이의가 있을 때는 청문의 절차를 거치도록하는 행정절차법도 연내에 마련,국회에 상정키로 했다. 하위직 공무원의 승진기회를 늘려주기 위해 현재 국가직 8,9급공무원이 7,8급으로 승진하는데 필요한 연한을 8∼9년에서 7∼8년으로 각각 1년씩 단축키로 했다. 총무처는 현재 중앙부처의 6급직위중 10%를 줄인뒤 이중 8%를 5급직위로 전환,주사의 사무관 승진폭을 넓혀주고 대신 2%는 충원을 하지 않는등의 방식으로 직제를 개정,전체 정원을 줄여나가기로 했다. 총무처는 이와함께 국기·국화·애국가등 국가상징물에 대한 인식제고와 관리강화를 위해 올 하반기 민간전문가 중심의 「국가상징자문위원회」를 총무처장관 자문기구로 발족,상징물에 대한 유래·의미·제작경위·규격등을 연구하고 해설서도 발간할 방침이다.〈구본영 기자〉
  • 유해에 쏟는 미국의 마음을 보며(박갑천 칼럼)

    연저지인이라는 말이 있다.글자뜻 그대로 종기를 입으로 빨아고친 어진 행동이다.「사기」(손자·오기열전)에 나온다. 위나라 장군이 된 오기는 싸움터에서 졸병과 함께 생활 한다.자기먹을 양식은 스스로 메고 다닌다.종기앓는 병졸을 보자 그는 고름을 입으로 빨아낸 다음 약을 발라준다.이 소문을 들은 병졸의 어머니는 통곡 한다.장군께서 종기를 빨아주다니 그런 영광이 없는데 청승맞게 왜 우느냐는 주변의말에 그어머니는 이렇게 게정피운다.­『모르는 소리들 마오.지난 해에도 오장군은 그애아버지 종기를 빨아 낫우었지요.그애아버지는 싸우다 죽었답니다.이번엔 그 자식이 죽을 차례 아닙니까』.장군의 온정에 감격한 병졸은 목숨걸고 싸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말은 장군의 부하사랑을 뜻한다.그러나 진실에서라기 보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위선의 행동이라는 뜻을 곁들인다.오기란 사람의 행적을 볼때 위선임은 더 분명해진다.그가 노나라에서 벼슬하고 있을 때다.제나라가 쳐들어왔다.대신들 가운데는 맞설대장으로 오기를 추천한 사람도 있었으나 그 아내가 제나라귀족 딸이라해서 흉하적하는 편이 더 많았다.그는 제아내를 죽여 두마음 없음을 보인다.그런 냉혈한이 진심으로 고름을 빨았겠는가. 미국이 북한과 마주앉아 유해찾기협상 벌인 일을 보면서 생각해본 고사다.『50년이 다된 그까짓 뼈다귀를…』해버릴수 있는 일.더구나 존상사 것인지 조지소위 것인지 알기나 하겠는가.하건만 적잖은 돈을 주면서까지 찾아가겠다고 협상을 벌인 나라가 미국이다.물론 세상일이란 보기나름.오기장군의 고름빨기 같은 구석을 읽을 수도 있다.『우리의 국민사랑은 이렇다』하는 내세움이 느껴지는 것 아닌가.그것은 굳건한 애국심을 자극하는 「위선」으로 비치기도하고.하지만 거기서 미국의 의젓한 성숙성을 본다.설사 위선이라 해도 고름은 아무나 빨수 없는것.나라의 명에따라 싸우다 죽은 사람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자세가 훌륭하지 않은가.그래서의 미국이로구나 싶어 다시 한번 느꺼워지는 마음이다. 시일이 흐르면 유해는 고국으로 가게 될 것이다.「장자」(지락편)에 장자가 초나라 가는 길에 해골과 대화하는 대목이 있다.장자가 해골한테 살을 붙여 살려주겠노라고 해도 해골은 인간의 고통을 어찌 다시 짊어지겠는가면서 거절 한다.하지만 아까운 청춘을 사른 해골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자 다시 살붙여 새삶을 살아보려 할것인지 모른다.협상타결에 축배라도 들고들 있겠지.〈칼럼니스트〉
  • 독립기념관 제3전시실 내일 재개관

    ◎애국지사 고문장면 작동모형 등 전시 독립기념관(관장 박유철)은 일제침략관인 제3전시관을 전면 보완해 14일 새롭게 문을 연다. 4개월에 걸친 공사끝에 일반에 선보이는 제3전시관은 종전의 정적인 단순 나열식 전시에서 벗어나 새로 수집된 자료를 보강해 과감하고 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첨단 영상매체를 이용해 시청각 효과를 최대한 살린 게 특징.청소년과 일반인들이 한국 독립운동사를 흥미롭고 진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몄다는 게 독립기념관측의 설명이다. 「명성황후 시해장면 모형」과 일제경찰에 끌려가는 「애국지사 호송장면 모형」,애국지사의 고문당하는 동적인 장면과 비명소리를 연출한 「고문장면 작동 모형」을 새로 만들었고 애국지사들의 고문장면을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고문체험의 공간」마련과 함께 종군 위안부에 대한 만행을 영상물로 제작한 「정신대 영상물」도 전시했다.이밖에 일제침략과 관련한 포스터,전단,신문기사및 통계자료를 관람객이 직접 작동해 볼 수 있는 자료검색실과 20여대의 모니터가 연출하는일제침략 종합영상,창씨개명 관련자료와 군용기 강제 헌납자료등 일제침략의 실상을 보여주는 50여점의 자료가 새로 선보인다. 한편 독립기념관은 14일 상오 11시 문화체육부와 보훈처,충남도 관계자,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원,독립운동단체 및 학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3전시관 개관식을 갖는다.이날 개관식이 끝난 뒤에는 서울예술단이 진혼무,지신밟기,사물놀이등으로 꾸미는 진혼식에 이어 독립기념관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명의의 성명서도 발표된다.〈김성호 기자〉
  • 북한산 컬러TV 오늘 인천도착/LG전자

    ◎20인치 250대… 올 내수용 2만대 반입 예정 북한에서 조립·생산된 LG전자의 컬러TV 2백50대가 10일 국내에 반입된다. LG전자와 LG상사는 9일 북한의 대동강텔레비죤 수상기 공장의 애국천연색분공장에서 생산된 20인치 컬러TV를 실은 제3국적선이 남포항을 떠나 10일 인천항에 입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LG전자는 북한산 컬러TV를 하역하는 대로 LG전자 구미공장으로 옮겨 품질검사를 마친 뒤 일부는 전국 주요도시의 대리점과 직판장을 통해 판매하고,일부는 사회복지단체 등에 기증할 계획이다. 북한산 컬러TV는 모델명이 CNR-2009로 시판가격은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과 값(27만8천원)이 같다.LG는 올해 내수용 2만대를 들여오고 내년에는 20인치를 포함,모델을 다양화해서 4만대의 북한산 컬러TV를 반입해 일부는 수출도 할 계획이다. 한편 LG는 이 제품의 생산을 위해 지난 3월6일부터 19일까지 태국의 LG전자(LG밋트르) 공장으로 북한기술자 7명을 불러 기술연수를 시켰던 것으로 밝혀졌다.LG는 당초 중국에서 북한기술자들을 교육시킬 계획이었으나 중국은 국내 방송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해 국내와 같은 방식의 태국공장을 택했다는 후문이다.〈박희준 기자〉
  • “중국의 5·4운동은 사상과 지식혁명”(해외사설)

    「5·4운동」77주년이 막 지났다.인민일보는 기념사설을 실었고 북경대학에선 「5·4」청년절 기념식이 열렸다.이 기념식에는 북경 65개 대학의 당 및 학생회 간부 2천여명이 참석했으며 정치국위원겸 국무원부총리 이람청은 「조국의 미래와 청년의 역사임무」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청년들은 1919년에 애곳,북경에서 젊은지식인들에 의해 벌어졌던 한 감동적인 운동을 되새겼을 것이다.당시 북경의 학생들은 베르사유조약과 국권상실의 치욕을 반대하는 의거를 시작,시위·파업·철시 그리고 군벌정부의 체포학생 석방과 내정 및 외교정책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했다. 「5·4」운동의 의의는 제국주의 침략에 반대하는 애국주의 운동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더 큰 의의는 사상과 지식 혁명이라는데 있다.대규모 현대화운동이며 전통의 비판과 옛것에 대한 재평가,민주와 과학에 대한 탐구를 통해 현대적이고 문명적인 중국을 건설해 보려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 「5·4」운동 전후의 전통봉건 및 유교타파 현상을 놓고 문화혁명과 같은 의미에서 평가하는 시도도 있다.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이 운동이 지식사상 혁명이며 이성과 설득,논리적인 추론으로 맹목적 숭배와 교조주의를 대체하려는 운동이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5·4운동정신」의 요체는 전통 반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이성과 지식을 소중히 하고 이를 보편화하려한 노력에 있다.이견과 이의를 포용하고 학생과 지식인이 제기한 당국자와 다른 의견도 포용하는 것이 바로 5·4운동 정신이 지향한 점이다.오늘날까지 이 운동을 기념하고,전진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5·4운동 77주년인 바로 그날,우리는 당국자와 이견을 지닌 북경대 대학원생이었으며 89년 민주운동 기간중 북경의 대학생 자치연합회 지도자였던 한 젊은이가 만기출옥한 뒤 공안의 감시와 핍박으로 집도 직업도 없이 막다른 길에 몰린 끝에 미국으로 탈출했다는 슬픈 소식에 접했다. 북경대의 기념식에 참석했던 학생들이 이 소식을 알았다면 류강,그 자신이 물었던 질문을 똑같이 되풀이 했을지 모르겠다.「중국은 이처럼 거대한데 왜 일개 서생조차도 수용할 수가 없는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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