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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공간] 서울대 교수들 위험한 제안

    서울대 교수 63명이 서울대 관악캠퍼스 부지 내에 핵폐기장을 유치하자는 건의문을 발표했다. 핵폐기장이 주민 안전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확신과 국가와 사회의 큰 짐이 되고 있는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는 애국심에서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부안사태를 불러온 산업자원부는 “우리 사회의 중심축이 주도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라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다. 핵발전이나 핵폐기물 문제로 대학교수들이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일은 드물기는 해도 견줄 만한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독일에서도 저명한 교수 300여 명이 서명운동을 벌이고 기자회견을 연 적이 있다.핵발전 회사들이 지불하는 손해보험료가 핵사고시 인근 주민들의 재산상·인명상의 피해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낮기 때문에 대폭 올려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핵폐기장이 절대 안전하다는 서울대 교수들의 확신과,핵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고 그 피해액은 보험회사들의 지불능력을 초과할 수밖에 없다는 독일 교수들의 우려는 사뭇대조적이다. 이번에 건의문 작성과 발표를 주도했다는 교수는 스스로 세계적인 핵공학자임을 강조했다고 한다.아마 자신의 확신이 과학적 합리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내비추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결과를 가늠할 수 없는 위험요인의 파괴력에 눈을 돌리는 독일 교수들의 태도는 사회적 합리성에 가깝다.과학적 합리성은 핵사고의 산술적 가능성에 대해서 말할 뿐이지만,사회적 합리성은 핵사고 발생시 초래될 수 있는 피해에 주목한다. 과학적 합리성의 특징이 ‘예측 가능한 결과의 계산’이라면,사회적 합리성의 요체는 ‘예측 불가능한 결과의 예방’에 있다. 문제는 서울대 교수들의 주장에서 최소한의 과학적 합리성조차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어느 나라에서든 핵폐기장 부지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지질학적 안정성이다. 부안주민들이 지난 6개월 동안 생업을 포기해가며 항거해온 것도 절차상의 하자 때문만은 아니었다.위도가 지질학적으로 타당한 지역인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이 지원금을 앞세워 주민들의 동의를 매수하려 했기 때문이다. 지질학과 무관한 핵공학자가 주민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호언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관악산 지하동굴이 암반으로 되어있다는 말만 믿고 거리낌 없이 서명에 참여한 다른 교수들의 태도 역시 과학적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 보험료 인상 서명운동에 참여했던 독일의 한 저명한 사회학자는 “현대가 위험사회인 진짜 이유는 위험 그 자체보다는 위험을 감지하는 인간능력의 완전한 마비에 있다.”고 했다.핵폐기장과 같은 위험시설은 즉흥적인 제안의 대상일 수 없다. 서울대 교수들이 뒤늦게나마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 위험 감지능력을 회복하길 바란다. 안병옥 생태학자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 부고/ 애국지사 김두석 선생

    애국지사 김두석(金斗石) 선생이 지난 7일 오후 7시50분쯤 노환으로 별세했다.90세. 경남 마산 출신으로 마산 사립의산여학교 교사를 지낸 고인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완강히 거부하고 식민정책에 반대하다 5차례에 걸쳐 구금당했으며 1942년 8월에도 같은 혐의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이같은 공훈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빈소는 서울 적십자병원 장례식장 101호,발인 9일 오전 7시 (02)2002-8931.
  • “핵폐기장 서울대 유치” 교수 63명 건의/학자적 양심? 부안 압박?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 설치 논란에 서울대 교수들이 뛰어들었다. 서울대 단과대 학장 및 대학원장 9명을 포함,14개 단과대 교수 63명은 7일 ‘학자적 양심과 애국심’을 이유로 서울대 부지 내 관악산에 ‘원전수거물관리시설’ 유치를 제안했다.원자핵공학과 생명과학,인문·사회학 분야 등의 저명 교수가 대거 포함됐다.그러나 관악구청 등은 즉각 반대의사를 밝혔다. ●서울대 원전센터 유치론 핵물리학,생명과학 분야의 국제적 권위자인 강창순 원자핵공학과 교수와 황우석 수의대 교수,이무하 농업생명과학대학원장,오연천 행정대학원장 등은 성명서에서 “원전센터 유치가 주민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과학적 확신을 바탕으로 유치 검토를 정운찬 총장에게 건의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문 지식과 정보를 지닌 서울대가 해결의 모범에 나서야 하며 과학자 집단이 앞장서야 한다.”고 덧붙였다.이들은 관악산이 암반 지형이며 교내에 군사시설용 ‘지하 공동’이 있기 때문에 암반 굴착을 통한 ‘동굴처분’ 방식으로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저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부안사태를 보고 교수들 사이에 ‘지식인으로서 양심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겨 지난주부터 논의해왔다고 말했다.이태수 인문대학장,한민구 공대학장,김하석 자연대학장,백남원 보건대학원장,김병종 전 미대학장 등도 서명했다.기자회견에는 국정원,정보과 형사,관악구청 관계자 등도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돌팔매질 당해도 학자가 나서야” 교수들은 ‘순수한 학자적 양심의 발로’라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했다.이들은 ‘부안사태를 방관하는 게 지식인으로서 옮은 태도냐.’가 논의의 출발점이었다고 밝혔다.강 교수는 “원전센터의 서울대 유치는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인문·사회적 측면을 고려한 상징적인 것”이라면서 “전력의 수혜자는 수도권 주민인데 왜 지방에 폐기물 처리장을 만드느냐는 비판도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황우석 교수는 “돌팔매질을 당하더라도 학자들이 나서 안전성을 설득하고 원자력 연구의 수혜자인 서울대로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대학생 오늘 반대집회 그러나 현실화까지는 부안보다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예상 유치 지역은 134만평의 서울대 캠퍼스 중 80%을 차지하는 관악산 일대.전체 교수와 교직원,학생들의 의사가 주요 변수다.대학본부 관계자는 “허무맹랑한 제안이라고 묵살하기 어렵다.”면서 공식입장만 두차례 번복하는 등 갈팡질팡하며 곤혹스러워했다.대학본부측은 “백지상태에서 논의한 뒤 결정할 문제”라고 최종 입장을 밝혔다. 관악구청과 서울시,지역주민,환경단체,군 관련기관 등의 협의가 필수적이며 관악산이 도시자연공원이라는 점에서 공론화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지질조사나 환경평가도 거쳐야 한다. 김희철 관악구청장은 “단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은 경솔한 제안이며 모든 주민의 힘을 동원해 막겠다.”고 발끈했다.유치 찬반론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김종규 부안군수는 “원전센터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면서 “유치에 반대하는 군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와 관련,주민 대표와 대학생 등이 8일 낮 서울대 앞에서 관악산 유치론에 반대하는 기자회견과 집회를 갖는다. 안동환 김효섭 이유종기자 sunstory@
  • [日열도에 뿌리내리는 신보수](2)퇴조하는 호헌세력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 정부가 자위대 파병을 각의에서 결정한 엿새 뒤인 지난 12월15일 국회와 의원회관 사이의 보도에서 조그만 집회가 열렸다.중의원에서 개최 중인 외교방위위원회의 자위대 파병 심의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집회였다.청년 노동자,학생들로 구성된 ‘월드 액션’ 집회의 참가자는 20명을 넘지 않았다.이들은 확성기로 호소하고,전단을 나눠주기도 했으나 지나는 시민들은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았다. 풀뿌리 신보수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사회민주주의 세력을 포함한 중도,좌파진영의 설 땅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보수화 진전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자,시민들에게 파고들지 못한 이들 진영의 전략 부재,노력 부족이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퇴조를 불렀다. 패전 후 일본 정치 ‘55년 체제’의 한 축을 이뤄온 사회당의 후신인 사민당 당사는 일본의 ‘여의도’에 해당하는 도쿄의 한복판 나가타초에 널찍히 터를 잡고 있다.자민당 당사를 뺨치는 커다란 당사이지만 국회의원은 중·참의원 합쳐 12명에 불과하다.의원 253명의 대부대를 거느렸던 사회당 시절(1959년),90년대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한 적도 있는 ‘좋은 시절’과 비교하면 이만저만한 격세지감이 아니다. 작년 총선에서 현역 12명이 낙선하는 바람에 의원을 포함,의원 1명당 3명의 비서가 한꺼번에 ‘실직’했다.정당보조금도 깎여 45명의 직원이 있는 당 본부 운영도 큰 부담이다. 지난달의 당 대회에서 제1야당 민주당과의 통합 제안도 나왔을 만큼 당의 진로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도이 다카코 당수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후쿠시마 미즈호 체제가 출범했으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후쿠시마 당수는 “유사법제에 찬성한 민주당과는 하나가 될 수 없다.사민당에는 사민당의 길이 있다.”고 통합에 극력 반대이다. 민주당(제1야당)의 간 나오토 대표는 “지켜보고 있다.”고 하지만 통합도 생각하는 눈치다.올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다시 의석이 줄어든다면 사민당의 앞날은 그야말로 깜깜하다.공산당(중·참의원 29명)이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 미국계 통신사의 일본인 기자인 히토미 가오리(30·여)는 “평화헌법을 지킨다는 호헌(護憲)은 중요하지만 연금 같은 현실적 문제에 사민·공산당이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없었다.”고 말했다.사민·공산당의 패인이 호헌만을 전면에 내걸었을 뿐,정작 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문제에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주간지 중 거의 유일한 좌파 성향인 ‘슈칸긴요비(週刊金曜日)’는 지난해 8월 ‘패전으로부터 58년,되살아나는 내셔널리즘’이란 21쪽짜리 특집기사를 꾸몄다.6월의 유사법제 통과,이라크 파병의 배경에는 내셔널리즘의 부활이 있다고 본 때문이다. 일본 사회의 우편향을 걱정하는 이 주간지의 야심찬 특집에도 불구하고 반향은 적었다. 편집장 오카다 모토하루는 “3만부의 부수로는 영향을 주기 어렵다.”고 한숨을 내쉰다.1993년 창간 당시 5만부로 출발한 이 잡지의 쇠락은 중도·좌파 진영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오카다는 “90년 이후 경제번영이 끝나고 일본이 침체에 빠지면서 답답한 마음이 커졌다.그런 느낌을 해소하기 위해 강한 일본,강한 국가를 바라는 사람이 늘어났다.”면서 “이런 경향을 우파의 논객,정부가 이용하고 우파 잡지들은 그 틈새에 부수를 늘렸다.”고 풀이한다. 슈칸긴요비의 대칭축에 있는 우파성향의 ‘사피오(SAPIO)’는 지난달 슈칸긴요비의 특집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본의 애국심-어디가 나빠’라는 26쪽짜리 특집을 내놓았다. ‘김정일이 납치를 시인함으로써 일본의 애국심은 눈을 떴다’는 기고를 포함한 이 특집은 서문에서 “분출하는 ‘일본 내셔널리즘’ 비판의 와중,전후 58년간 터부시돼 온 ‘나라를 위해 싸우는 마음’이 시험받고 있다.”고 쓰고 있다.이 잡지는 최근 3만부를 늘려 15만부가 됐다.불황 속의 출판계에서 이례적인 부수 증가다. 호헌이 편집 방침인 슈칸긴요비의 퇴조,‘내셔널리즘 비판’을 비판하며 애국심을 전면에 내세운 사피오의 활기는 변화하는 일본의 축소판이다. 릿쿄대학의 이종원 교수는 “호헌,혹은 사민주의 세력은 반전 평화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일본에서 시대적 역할이 끝난 것 같다.”고 풀이한다.그는 “낡은 사고,낡은 언어만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가지 못했고,새롭게 태동한 내셔널리즘,지역주의(동아시아)를 적극 평가하면서 일본의 새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4일 선거 출마자와 당 간부가 참석한 사민당 간담회.출석한 43명 중 38명이 낙선자였다.이들은 “‘호헌’이라는 말을 젊은층들은 잘 모른다.”면서 사민당의 슬로건인 ‘호헌’의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선거 결과만을 놓고볼 때 사민세력의 부활이 불가능할 것 같지만 반드시 ‘종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이오 준 정책대학원대학 교수는 “사민·공산당 지지자의 고령화가 현저해 두 당이 세력을 늘리기는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사민 세력의 종언이라고 하기도 어렵다.”면서 “여당인 자민·공명당에도,야당인 민주당에도 사민세력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이들 사회민주주의적 사고를 살려나갈지가 관심거리”라고 말했다. marry04@ ■저널리스트 우오즈미의 진단 |도쿄 황성기특파원|저널리스트인 우오즈미 아키라(魚住昭)는 “그렇게 되면 안되겠지만 사민주의 세력이 없어질 가능성이 꽤 높다.”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그는 “혼네(본심)와 다테마에(입장)가 일치하는 새로운 사민주의,즉 가난하고 약한 사람도 행복하게 먹고 살아갈 수 있는,전쟁만은 안된다는 사상을 분명히 갖춘 세력,지금의 사민당을 대체할 세력이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총선 결과는 일본 유권자가 사민주의 세력을 퇴장시키려고 한 것인가. -내셔널리즘의 만연이라고 할까,그런 현상이 최근 10년 동안 급격히 일어났다.9·17 북·일 정상회담에서 나온 납치사건 시인도 사민주의,사민당적인 것에 대한 반감을 강화했다.그런 의미에서 사민주의는 필요없다는 생각이 급속히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아사히신문 조사(2003년 11월)에서 갓 당선된 중의원의 70%가 개헌에 전향적이었다. -산업의 공동화라고 할 정도로 일본 기업이 해외로 가고 있다.그만큼 일본에 있어서 해외 권익이 중요하게 되고 있다.그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군사력이다.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요구도 있지만,한편에서는 장래 해외 권익을 지키려는 일본 경제계의 속셈도 깔려 있다.헌법 9조 개정도 연동하고 있다.당연히 개헌이 일어날 것이다.우리처럼 개헌이 “위험하다.”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니까,(개헌을 막기에는)상당히 절망적 상태다. 그만큼 절망적인가. -예를 들어 동해에서 일본 어선,화물선이 북한 공격을 받아 침몰됐다고 하자.지금의 여론은 절대 북한을 용서할 수 없다.그런 일이 일어나면 일본 여론은 들끓을 것이다.정당방위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해외 공장에서 일본 권익이 침해되거나 몇명이 살해된다든가 하면,과거의 상하이사변같은 일들이 지금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전쟁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망언을 하는 사람이 300만표를 얻는 일은 10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지금 일본 상황은 굉장히 위험하다.더욱이 일본인에게는 과잉 동조(同調) 성향이 있어서 학교,회사 같은 조직이 요구하는 이상으로 동조해 간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구조개혁’과 내셔널리즘과의 관련성을 지적하는 의견이 있다. -못사는 사람도 생활할 수 있도록,계층 대립이 나오지 않도록 한 것이 전후 일본 시스템이었다.고이즈미는 부자와 못사는 사람을 분명히 가르는 미국식 시장원리주의를 일본에 정착시키려 하고 있다.전락해가는 사람이 많다.자영업자,농민,직업이 없는 젊은이들은 불안감을 갖게 되고 갈 곳이 없는 분노는 내셔널리즘으로 흐르게 된다. 정치건 미디어건 중도·좌파의 힘이 없다. -태만의 결과다.이들 진영의 정치가,지식인들은 목숨걸고 헌법 이념을 지켰어야 했는데,그렇게 하지 않았다.이념을 유지해 가는데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자민당도 그렇지만 민주당(제1 야당)은 더 안된다.오히려 젊은 민주당 의원들이 더 무섭고 과격하다. ●우오즈미는 1951년생.히토쓰바시 대학 법학부 졸업.교도통신 기자를 거쳐 1996년 프리랜서로 독립.저서로는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돼버린 걸까’,‘특수검찰’ 등.
  • [日 열도에 뿌리내리는 신보수](1)일본의 신보수 탄생 배경

    21세기 일본의 첫 총선거(중의원)가 치러진 작년 11월 9일,하나의 키워드가 창조됐다.보수 양당제로의 재편,사민·공산당의 몰락이 일어난 열도를 읽어낼 새 흐름,풀뿌리 신보수이다.열도에 뿌리내려가는 신보수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간단하다.그 흐름이 주류가 되어가고,그 핵인 젊은 세대들이 일본의 주역으로 성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그들은 어떤 일본을 구상하고 있는가,그들이 주역이 되는 일본에 대해 우리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풀뿌리 신보수,침몰해 가는 사민주의,그들과의 새 한·일 관계를 3회에 걸쳐 제시한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세밑인 12월18일 게이오대학.강연에 나선 작가겸 와세다대 교수인 헨미 요(59)는 200여명의 청중 앞에서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고 운을 뗐다. 그의 수수께끼는 이렇다.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다나카 히토시 외무성 심의관 집에 지난 9월 폭발물이 설치됐다.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는 ‘당연한 일”이라는 망언을 했다.“자기와 생각이 다른 인물을 암살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공인으로서 있을 수 있는 국가는 일본 밖에 없다.이런 발언을 하는데도 어떻게 300만표를 얻었는지,그리고 비인간적인,상식적이지 않은,있어서는 안될 발언을 한 그가 어떻게 도쿄도 지사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지.왜 이런 발언을 해도 인기가 있는 건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인가.” 이렇게 호소한 헨미는 “자연발생적인 파시즘의 전조”라고 지금 일본의 현상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다나카 심의관 집에 폭발물을 설치한 범인들이 체포된 것은 12월19일이었다.조총련과 사민당,일본교직원노동조합 건물에 총격을 가하거나 정치인들에게 실탄과 협박문을 보냈던 이들은 ‘도검(刀劍) 벗의 모임’ 회원들이었다.전통적인 우익단체와는 다른 자생적 신보수다.면면을 보면 치과의사,미용실 경영자,주지 등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40∼50대 보통 시민이다. 2001년 한·일 역사교과서 파동을 일으킨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일반 참가자들도 ‘보통’을 자처하는 시민들로 추정된다.이 모임의 가나가와현 지부에 2001년부터 4월부터 10개월간 참가해 회원들을 조사한 우에노 요코(25·당시 게이오대 학생)에 따르면 회원들은 스스로를 ‘침묵하는 다수’로서 보통시민의 감각을 지녔다고 생각한다.2차대전 패전 후 태어난 30∼40대가 주축인 이들은 좋아하는 정치가로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침묵하는 다수”였던 야마모토 헤루미(37)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접하고 1999년 행동파로 변신했다.신보수 정치인의 산실인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인 그는 ‘청년의 모임’을 만들어 1인 시위를 해오다 지금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 간사를 맡아 가두서명 등 “행동부대”로 일하고 있다. 야마모토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실감한다.재작년 9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기 전만 해도 술자리에서 납치,안보 문제를 꺼내면 시큰둥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진지하게 응해온다.군대보유,천황제,애국심을 강조하는 그는 납치 해결 전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해서는 안되는 대북 강경론자이다.그가 주도하고 있는 ‘청년의 모임’ 회원들은 주축이 10대에서 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산케이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도요가쿠엔대학 전임강사 사쿠라다 준(38)은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보수논객이다.그는 천황제,헌법 9조 개정을 통한 군대보유,야스쿠니(靖國)신사 존속,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기본법을 주장하지만,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과격보수와는 약간 다르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일본이 진주만 공격에 나선 것은 “미국의 석유금수 조치로 절망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비유하는 사쿠라다는 “북한을 만족시켜서도 절망시켜서도 안 된다.”고 대북 지원 필요성을 주장한다.그런 점에서 야마모토보다는 온건하다. 좌파 주간지 ‘슈칸긴요비(週刊金曜日)’의 다케우치 가즈하루(33) 기자는 이들을 “좌절을 겪으면서 경제대국의 재현,국제사회에서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군사력에 대한 갈망을 키워가고 있는 세대”라고 정의한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얻은 것은 내셔널리즘”이라고 분석하는 간사이가쿠인대학 아베 기요시(39)교수의 말처럼 풀뿌리 신보수는 1990년대 거품경제의 붕괴와 더불어 저변을 넓히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극우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50)가 등장,젊은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만화 ‘전쟁론’ 등을 통해 침략전쟁을 미화하고,군대 보유를 알기 쉽게 설명해 군사 내셔널리즘의 토양을 다졌다. 이런 가운데 신보수의 지형을 넓히고,단결토록 만든 “패전 후 첫 퍼블릭 메모리”(헨미 요)는 역시 2002년 9월 북한의 납치 시인이었다는 데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일본 국회에서 지한파로 꼽히는 고바야시 유타카(39·참의원)는 일본의 최대 적을 “북한”이라고 꼽는다.그도 헌법 9조 개헌 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신보수 대열에 서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흐름이 “과거 히노마루(일장기)를 흔들던 군국주의적인 것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가네코(63·회사이사)는 올해 두 종류의 연하장을 만들었다.나이든 사람에게 “일본 안보의 위기감”을 주제로,젊은층에게는 “싸우는 일본은 어디로 갔는가.”였다.건설회사 간부로 20여년간 해외를 다니며 ‘강한 일본’을 체감했던 그는 지금의 ‘약한 일본’에 위기감을 느끼는 ‘보통 시민’이다. marry04@ ■ 오구마 게이오대 조교수 |도쿄 황성기특파원|게이오대 조교수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는 “영국,프랑스에서 경기가 좋지 않았던 70∼80년대 이민 배척 운동이 태동한 것처럼 지금의 일본이 그렇다.”면서 “네오나치즘을 했던 사람들이 과거의 나치즘을 알고 했다기보다 경제적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택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선진국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 내셔널리즘이 탄생한 배경은. -1990년 전후 냉전 종언과 불황이 동시에 일본에 찾아왔다.지금은 가난하지도 않지만,과거처럼 고도성장이 되는 시기도 아니다.그런 점에서 첫째,목표가 없어졌다.과거처럼 가난을 딛고 풍부하게 된다거나 좋은 생활을 추구하는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둘째,냉전이 끝나고 미국 일극체제가 되면서 일본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요구가 강해졌다.미·일 가이드라인 수정,자위대 파병 요구 같은 것들이다.셋째,전쟁을 경험한 사람이 사회에서 점점 물러나면서 전쟁기억이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이 세가지가 현재 내셔널리즘으로 불리는 현상의 배경이다. 특징이라면. -패전 직후의 (전통적)우익과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는 분명 다르다.예전의 우익,보수는 전전(戰前)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지만 교과서 모임측은 전전을 모른다.그때를 살지 않았으니까.고도성장기 이후의 사람이 많다.전쟁 전을 몰라서 “전쟁이 좋다.”거나,“한·일병합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라든가 해도 그 말에 리얼리티가 없다. 이전의 보수,우익은 한국 중국에 대해 전통적인 멸시가 있었다.가난한 시절의 한국,중국밖에 모르기 때문이다.지금의 20∼30대들은 한국과의 우호나 한국 문화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얘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일병합은 옳았다.”는 형태로 나타난다. 목표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헤매고 있고,미국의 압력에 의한 군사요구의 흐름 속에서,자신 속에 전쟁체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그래서 명확히 뭔가에 몰두할 수 있는 내셔널리즘이 필요한것이다.신흥종교를 추구하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할까.그들은 ‘천황'에 충성심을 갖지도 않고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 내셔널리즘을 가르치는 세력은 누구인가. -단순히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전통적인 우익들이 먼저 있다.자민당 지지 기반과 연결돼 있고,신도(神道)의식,야쿠자 조직과도 연결돼 있다.이들은 이익 기반과 연결돼 있다.‘새 역사교과서 모임’ 같은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이들은 조직과 연결돼 있지 않고,신도의식 같은 것도 없다. 2002년 북한의 납치 시인이 일본내 여론을 폭발시키고 보수진영을 단결시켰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오구마는 1962년 도쿄 출신.도쿄대 농학부를 거쳐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10년간 근무.도쿄대에서 박사학위 취득한 뒤 현재 게이오대 종합정책학부 조교수.저서로는 ‘민족과 애국-전후 일본 내셔널리즘과 공공성’,‘치유의 내셔널리즘’ 등.
  • 하이 서울, 예스 서울신문/창간정신 그대로...국민 속으로

    ■100년 역사와 발자취 서울신문이 세상에 태어난 지 올해로 꼭 100년을 맞았다. 1904년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후 서울신문,대한매일을 거쳐 다시 서울신문으로 돌아온 길은 잠깐의 영광에 이은 오랜 질곡의 역사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유언론의 표상이었다.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고,의병운동을 적극적으로 알려 항일투쟁의식을 고취시켰다.외세의 경제적 침투를 반대하고 자주적 산업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신교육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인 것도 대한매일신보였다.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계승하여 1945년 11월22일 다시 태어났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지조있는 선비 위창 오세창을 사장으로 주필 이관구,편집국장 홍기문으로 진용을 짰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애당 권동진과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는 고문으로 추대됐다. 서울신문은 중립지(中立紙)를 표방했지만,언론매체들이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공(人共)’을 국호로 하자는 몽양 여운형이 인사말을 싣고,홍벽초 고문과아들 홍기문 국장이 모두 월북한 데서 알 수 있듯 좌파적 색채를 지녔다. 정부에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던 서울신문이 반공지(反共紙)로 노선을 바꾼 것은 1949년 5월3일 공보처의 발행정지처분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당시 공보처장은 “서울신문이 반정부적이고 이적행위를 하는 신문이라는 비난사례가 허다했다.”고 강변했다.그는 “서울신문은 대통령 지방순시 등 정부발표기사를 타지보다 소홀하게 취급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부는 이후 좌익계열의 간부진을 퇴진시키고 우익인사들로 하여금 서울신문을 속간케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주식 48.8%가 일본인으로부터 이전된 정부소유의 귀속재산이어서 가능했다. 작가인 월탄 박종화 선생이 새로운 사장으로 선임된 것은 이런 작업의 결과였다.이헌구 유치진 김동리 등 우익문화예술단체 문총(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멤버들이 대거 참여했다.이후 주주총회 및 간부인사에서 정부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신문은 그러나 정부의 통제가 미치기 시작한 이후에도 일부 정치적 보도를 제외하고는 비판적인 논조를 버리지 않았다. 1952년 경남 거창군내 6개 마을에서 공비내통혐의자뿐 아니라 양민 500여명까지 무고하게 집단학살하고,또 이를 덮으려 한 이른바 거창양민학살사건 때도 그랬다. 서울신문은 당시 사설에서 “우리는 국민방위군사건의 비극이 생겼을 때 울었지만,거창사건을 말살하려던 웃지 못할 희극을 보고는 또 한번 울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후 미묘한 정치적 상황에서는 정부를 옹호하면서,사회적 문제에는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유지한 서울신문의 불행한 전통은 2002년 사원이 대주주인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종수 기자 vielee@ ■지령 어떻게 되나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의 지령을 이어간다.1904년 7월18일 창간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는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구국의 필봉을 휘두르며 독립정신과 민족정기를 고취하다 한일병합으로 폐간되기까지 6년동안 1651호를 발행했다.그러나 대한매일이 그랬듯이,한일병합 이후 1945년 미군정청에 의해 정간될 때까지 발행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지령은 계승하지 않는다.시대와 역사와 발행 주체가 다른 총독부 기관지의 지령을 합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재창간된 서울신문 지령은 1904년에 창간돼 한일병합 때 폐간된 대한매일신보의 지령,광복이후인 1945년 11월22일 창간돼 1998년 11월10일자로 종간한 서울신문의 지령,그 다음날자로 창간돼 2003년 12월31일자로 종간한 대한매일의 지령을 합한 것이다.2004년 1월1일자 서울신문의 지령은 20095호이다. 독자의 눈과 귀 역할 충실히 대한매일신보가 항일의 기치를 드높였던 전설적인 독립언론인 데 비해 대한매일은 권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미완의 언론이었다.1904년 영국인 배설(裵說)과 양기탁(梁起鐸)선생 등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박은식(朴殷植) 신채호(申采浩) 장도빈(張道斌) 등 애국지사 논객들이 총집결해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침략과 관료의 무능에 맞선 자유언론의 표상이었다.그러나 1998년 11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발행된 대한매일은 같은 이름의 대한매일신보사가 만든 신문이지만 권력의 그림자를 벗지 못했다. 서울신문 임직원들은 1945년 11월22일 서울신문이 창간된 뒤 여당지 또는 관제언론이라는 오명과 질곡의 역사를 겪으면서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정부가 대주주인 신문이 권력의 고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지난(至難)한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1998년 2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관제언론의 피해자라고 믿고있던 DJ정권은 서울신문을 정론지로 탈바꿈한다는 명분으로 그해 11월11일자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다. 하지만 독자와 임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가 아니라 새 권력의 일방통행식 결정이었다. 임직원들은 대한매일로 제호가 바뀐 뒤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이어받고 정론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그러나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한 진정한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는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고,1999년 중반부터 민영화를 다시 추진하여 2002년 1월 결실을 맺었다.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회복해야 한다는 얘기는 2002년 후반기부터 나오기 시작했다.민영화로 터진 물꼬는 막을수 없었다. 최대 주주인 우리사주조합은 지난해 11월18일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회복하는 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72.71%,반대 26.05%로 통과시켰다.12월3일 열린 주주 총회도 전폭적으로 사주조합의 제호 회복안을 받아들였다. 황수정기자 sjh@
  • 이 주일의 어린이 책/왜 미술을 하나요?

    엘리자베스 뉴베리 지음 신상호 옮김 / 동산사 펴냄 미술사조나 유명화가의 작품세계를 단편적으로 조명하는 어린이 미술교양서는 꾸준히 발간돼왔다.하지만 좀더 입체적이고 체계적인 안내서가 아쉬웠다면 ‘왜 미술을 하나요?’ 시리즈를 눈여겨볼 만하다. 지은이는 대영박물관 큐레이터 출신으로 현장경험을 책속에 고스란히 녹였다.전문가적 식견을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흥미진진하게 포장했다. 예컨대 미술이 서사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이렇게 귀띔한다.신화와 전설을 좋아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상상 속의 이야기를 생활용품에 투영시켰다는 해설과 함께 기원전 540년경의 그리스 술항아리 사진을 나란히 배치하는 식이다. 미술이론을 설명하는 데 동원한 소재도 매우 다양하다.메시지를 담는 대화창구로서의 미술기능은,미국 독립기념일 경축엽서에 등장한 샘아저씨 그림으로 이해시킨다.미국(United States)의 첫 글자인 ‘US’를 상징한 표현물 샘아저씨(Uncle Sam)와 성조기,독수리가 어우러져 미국의 애국심과 긍지를 극대화시킨다는 사실을 친근한이야기체로 들려준다. 미술기법에 대한 해설서 ‘어떻게 미술을 하나요?’ ‘미술과 색’ ‘미술의 비밀’ 등이 함께 나왔다.초등 3년 이상.각권 8500원. 황수정기자 sjh@
  • 반론/ 주한미군에 대한 편견을 다시 생각한다

    대한매일 12월11일자 15면 ‘열린 세상’에 실린 이철기 동국대 교수의 글 ‘주한미군을 다시 생각한다’를 읽고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붓을 들었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은 아니며,이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대안 제시는 미래 한·미 관계의 발전을 위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데에는 공감한다.그러나 그의 글에는 일련의 정제되지 않은 증오와 편견이 담겨 있을 뿐 자신이 역설한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논리와 사고’는 간 곳이 없다. 우선 이 교수는,미국이 세계전략상의 필요에 따라 주한미군을 신속대응군으로 재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이는 주한미군이 더이상 대북억제력이 아니라는 점을 미국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러한 주장은 주한미군의 역할 다변화를 한반도 방위의 포기와 동일시하는 근본적인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한미군 재배치가 연합군사능력 발전과 대북 전쟁억제력 제고를 전제로 추진된다는 점은 정상회담을 비롯한 그동안의 한·미 협의과정에서 수차례 재확인한 사실이다.물론 장래에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위에만 국한되지 않고 보다 확장된 역할을 추구할 수도 있으나,이는 한반도 방위의 한국화라는 우리 목표와도 충분히 조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주한미군은 첨단무기와 정예 병력으로 인해 그 자체로도 중요성을 지니지만,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안보공약을 상징적으로 표상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즉 한반도 방위에서 기여가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미군 주둔이 한반도 전쟁억제를 보장하는 의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혹자는 남북 화해·협력과 역내 국가와의 선린우호관계 구축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생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그러나 전쟁 억제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의 선의만을 일방적으로 기대한 채 한 국가의 안보를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를 생각해 보라. 현행 한·미 연합방위 체제하에서는 우리 군의 미래지향적 재편과 자주국방이 불가능하다는 주장 역시,자주국방의 본질과 개념을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오늘날 미국을 제외하면(어떤 측면에서는 미국까지도) 순수하게 제 힘만으로 모든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배타적인 단독 국방’과 ‘자주국방’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개념이다.또한 사회복지 소요가 점증하는 우리 현실에서 단독국방을 위한 무리한 재원 염출이 과연 바람직한가를 되묻고 싶다. 다음으로 한반도 전쟁억제력으로서의 주한미군의 의미가 상실되어 가므로 주한미군의 이전비용을 우리측이 부담해야 할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방위비 분담의 근거 역시 희박해진다는 논리는 ‘동맹’의 기본 속성을 잘못 해석한 결과이다.동맹의 요체는 위협인식의 공통성과 함께 호혜성에 있다.그의 주장은 동맹 유지를 위한 우리의 부담은 지지 않으면서 미국에 대해 요구할 것은 다 해보자는 무책임한 국가이기주의(사실 동맹관계가 아닌 일반적인 관계에서조차도 이러한 일방적 수혜를 요구한 전례는 없으며 이 자체가 오히려 굴욕적이다.)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이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안보위협하에서 더 많은 방위비를 분담하는 일본과 독일의 사례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 일각에서 반미적인 것은 애국적인 것이요,미국의 정책에 대해 어떠한 면으로든 비판을 가하는 것이 양심적인 지식인의 의무인 양 치부되며,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발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수구적이고 반민족적인 행위로 매도되는 흐름이 생겨났다는 것을 필자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침묵이 오히려 이러한 편에 서 있는 사람들(물론 이 교수의 글은 근래 들어 주한미군에 가하는 다른 비판들에 비해 매우 점잖은 편에 속한다.)에게는 묵시적인 동의나 논쟁에서의 굴복으로 비추어질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쓴다.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 [열린세상] 정체성의 위기

    다사다난했던 2003년 한해도 조용히 역사 속으로 저물어 간다.국가적으로 핵문제와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사회적으로 정치개혁과 대선자금 비리수사가 연일 언론의 뉴스 초점이 되었던 한해였다.각 정권마다 시대정신에 따른 시대적 소명이 있었다면,이로 인해 금년에 출발한 노무현 정권은 시대적 소명이 정치개혁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야당 후보보다도 훨씬 적은 돈을 쓰고도 당선이 되었기 때문에 정치자금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에 나온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시대정신이 이와 같이 정치개혁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치개혁법안이 정치권에 의해 표류 내지는 개악되고 있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다.선거철에는 국민을 위한다고 단상 위에서 유권자들에게 큰절까지 하는 쇼를 하면서,일단 금배지를 달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기득권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일부 의원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암담할 따름이다. 이제 우리 국회도 대수술을 하고 정치개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그리고 민생문제와 민족문제만큼은 당리당략을 떠나야 한다. 정치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한다.우리 국민들도 냉소적으로 정치권을 방관하지만 말고,항상 깨어있어 내년 총선에서 올바른 선택을 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양심적이고 애국적인 일부 정치인에게는 용기있게 격려도 하고,힘들지만 정치권을 감시하는 관련 시민단체에도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 최근 모 일간지는 2003년 한해 동안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가 ‘우왕좌왕(右往左往)’이라고 밝혔다.이 말은 우리사회의 각 부문이 자신의 정체성과 본분을 망각하고 방황한 데서 연유한 것 같다.모든 실수를 자신 안에서 찾기보다는 타인의 책임으로 돌리거나,무조건 타인의 화려한 겉모습을 비판없이 본뜨다 보니 온 결과로 보인다. IMF위기 이후 우리사회에 가장 인기 있는 단어는 경쟁력이었다.경쟁도 우리사회를 활성화하는 데 필요하지만 무엇을 위한 경쟁이냐를 확실하게 해야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유익성을 가져온다.좋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고시에 합격하기 위해서,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그 수단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왜 대학에가야하고,고시를 합격해서 무엇을 하겠으며,영어를 왜 잘 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목적과 동기를 동시에 항상 성찰해야 한다.무조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을 제압하고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는 그러한 경쟁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의 위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온다. 이제까지 어느 한해가 안 중요한 해가 없었겠지만,2004년은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물론 총선과도 관련해 다른 어느 해보다도 우리에게는 의미심장한 한해가 될 것 같다. 최근 한 영국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 민족의 IQ가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왔다.우리 민족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5000여년의 역사를 일궈온 민족이다.우리 민족은 내년에도 현재 우리에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인 정치개혁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전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관 민족관 세계관 등에 관한 정체성이 확고히 서 있어야 한다. 아무리 우리사회가 물질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은 항상 도덕성과 한국적 문화적 정체성에 기반을 둔 역사관,민족관,세계관을 젊은 세대에게 고집스럽게 몸으로 보여주고 견지해야 한다.나라의 경제와 복지도 풍부한 정신문화와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기초 위에서 더욱 탄탄해진다.과거 권위주의시대와 군사독재시절에 반독재투쟁의 행태가 아니라,잘못된 것은 반드시 합법적 절차를 거쳐 바로잡는다는 고집스러운 선비정신이 우리의 정체성의 위기와 관련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아쉽다. 이 장 희 한국외대 법대 학장 국제법
  • 전용일씨 국내정착 어떻게/이르면 3주후 가족과 ‘새삶’

    50년 만에 귀환한 국군포로 전용일(72)씨는 이르면 3주 후쯤부터 남한의 가족들과 새 삶을 살 것으로 보인다.정부 합동조사단의 세밀한 조사를 거친 뒤 그리운 가족들과 설(내년 1월22일)을 함께 지낼 수도 있다.일반 탈북자들이 남한사회 정착을 위해 거치는 ‘하나원’에서의 2개월짜리 교육과정도 생략할 것 같다. 합동조사단 신문 기간은 3∼4주.그동안 외부인사와의 면회,전화통화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전씨의 경우 가족들과의 면회가 허용될 가능성도 있다. 경북 영천에 거주하는 동생 수일(64)씨 등은 조만간 상경해 정부 당국에 용일씨와의 조기 면담을 요청할 계획이다. 전씨가 조사받을 내용에는 포로로 잡힐 당시 상황에서부터 북한에 정착한 이후의 모든 행적이 포함된다. 포로로서 북한에서 겪은 어려움에 상응한 보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북한에서의 행적 조사가 다른 탈북자들과는 달리 보다 세밀하게 이뤄질 것이란 게 정부측 설명이다. 조사를 받는 동안 정부는 전씨의 호적을 회복하고 주민등록증도 발급해줄 계획이다. 거주지는 전적으로 전씨의 선택사항이다.일반 탈북자의 경우 서울 거주 선호도가 높아 제비뽑기 방식으로 거주지를 결정하지만 전씨는 본래 한국민이었던 만큼 본인의 의사에 달려있다. 이미 귀화한 국군포로들이 대체로 가족,친인척이 있는 연고지를 택했는데,전씨도 누나 영록(78),남동생 수일씨,여동생 분일(58)씨 등이 살고 있는 경북 영천이나 대구에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 전씨에 대한 훈장수여도 논의되고 있다.정부 관계자는 “전씨가 입국 직후 ‘50년간 한국군을 위해 복무했다.’고 밝힌 점으로 미뤄 투철한 애국심을 갖고 북한 생활을 견뎠던 것으로 추정된다.” 면서 “그러나 조사 결과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합동조사단은 이와 함께 전씨와 함께 입국한 최응희(67·여)씨 신분도 조사중이다. 최씨가 탈북자인지,조선족인지 불투명한 상태다.탈북자일 경우 통일부에 통보하고 탈북자에 준하는 정착금과 정착에 필요한 절차를 밟게 되지만 조선족일 경우 법무부 소관으로 두사람의 결혼 여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최씨는 24일 공항에서 “지난 10월 전씨를 중국에서 만나 한국에서 같이 살기로 했다.”고만 밝혔었다. 전씨가 북한에서 결혼한 부인은 지난 92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연초 도심속 행사 풍성 “해맞이 멀리가지 마세요”

    갑신년 해맞이는 서울에서….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과 전통적인 일출명소인 삼각산 시단봉,아차산 팔각정,용왕산 용왕정 등에서 새해 1월1일 오전 7시를 전후해 시민들을 위한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올해 처음 해맞이 행사가 마련된 하늘공원(해발 100m)은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져 멋진 일출장면을 연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다.마포구(구청장 박홍섭)는 공원이 도심에 위치해 많은 시민들이 찾을 것으로 보고 ‘해오름 퍼포먼스’,풍선날리기 등 재미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옛 이름을 되찾은 삼각산의 시단봉(해발 612m)에서는 강북구(구청장 김현풍)가 준비한 뜻있는 행사로 해맞이를 의미있게 만끽할 수 있다.해뜨기 전 오전 7시부터 풍물놀이로 흥을 돋운 후 지역과 국가발전을 염원하는 기원문이 낭송된다. 일출이 시작되면 만세삼창과 애국가를 부르며 각자의 소원을 주문한다.특히 참석자중 가장 연장자가 ‘희망찬 강북,행복한 강북’ 구호를 외치는 등 이웃간 덕담으로 새해를 맞는다. 같은 시각 아차산(296.9m) 팔각정에서도 의미있는 해맞이 행사가 펼쳐진다.광진구(구청장 정영섭)는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경기도 등지에서 2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중이다.먼저 사물놀이패가 새벽어둠을 가르며 식전행사로 풍물한마당을 펼친다.일출에 맞춰 해맞이 기념연주,소망풍선 날리기,신년메시지 낭독,덕담 등을 서로 나눈다.광진문화원 어린이 소리패 ‘까치소리’는 일출에 맞춰 최근 인기를 끄는 TV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가를 새해 선물로 선사한다. 양천구(구청장 추재엽) 목2동 용왕산에서도 해맞이 행사가 열려 희망찬 양천의 발전과 가정의 행복을 비는 ‘새해 해오름맞아 풍물놀이’와 ‘개천대고(開天大鼓) 타고’가 펼쳐진다. 이동구 황장석기자 yidonggu@
  • 전국 해넘이·해돋이 명소/지는 해 보고 한해 마무리 뜨는 해 보고 새해 설계를

    한 해를 마무리할 때다.해가 뜨고 지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자연의 섭리지만,연말 연시에 감상하는 일출·일몰은 보통 때와 달리 각별함을 준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어지러웠던 한 해를 마무리짓고,뜨는 해를 보며 새해를 설계하는 여행을 떠나보자.동해안의 일출 명소와 서해안의 일몰 명소,일출·일몰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한다. ■ 서해안 일몰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 있다.붉은 햇덩이가 물 위에 닿으며 황금빛 잔영을 드리우는 오메가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는 곳.해수욕장 앞바다에 정겹게 박힌 할아비바위와 할미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해넘이 풍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 풍광으로 꼽힌다. 방포항과 꽃박람회장 주차장 사이를 연결한 이른바 ‘꽃다리’ 위가 감상 포인트다.일몰 감상과 함께 수백년 수령의 해송 수만그루가 빽빽하게 들어선 안면도 휴양림 일대의 소나무 숲이 둘러볼 만하다.특히 눈 온 뒤의 소나무 숲은 따뜻한 겨울의 운치를 느끼기에 그만이다.태안군청 문화관광과 (041)670-2225. ●변산반도 격포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은 수려한 경치와 함께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수많은 책들을 겹겹이 쌓아놓은 듯한 채석강쪽에서 위도 방향으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격포해수욕장 끝에서 시작되는 해안도로도 멋진 드라이브코스. 이곳 말고도 곰소항쪽으로 가다가 모항이나 솔섬 등에서 보는 해넘이도 장관이다.인근의 내변산 산행,천년고찰 내소사 답사,변산온천 등과 연계해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부안군청 문화관광과 (063)580-4449. ●강화 분오리 수도권에서 당일로 다녀오기 좋은 곳.강화도 분오리∼장화도 해안에서 바라보는 해넘이가 아름답다.서쪽으로 동막리∼장화리 바닷가에 늘어선 카페에 들아가 차를 마시며 해넘이를 즐겨도 좋다.30∼40년 전 학교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교육박물관,강화역사박물관 등이 인근에 있어 들러볼 만하다.강화군청 문화관광과 (032)930-3221. ■ 동해 일출 ●포항 호미곶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호미곶은 한반도를 호랑이 모습이라고 할 때 꼬리 끝부분에 해당하는 곳.일찍이 최남선이‘조선 최고의 일출’이라고 했을 정도로 이름난 해돋이 명소다. 호미곶 해맞이광장에선 31일 밤부터 새해 첫날 아침까지 전야제 공연 및 대형 솥에 떡국을 끓여 나누어 먹는 행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인근 등대박물관이 들러볼 만하다.포항시청 (054)245-6114. ●동해 추암해변 강원 동해시 북평동 추암리는 우뚝 선 촛대바위 끝으로 솟는 해돋이가 유명하다.삼척과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애국가 영상에 나오는 장면이 바로 이곳이다.추암해변에서도 31일 밤부터 동해시가 주관하는 해돋이 축제가 다채롭게 열린다.주변 볼거리로 설경이 아름다운 무릉계곡,천곡천연동굴 등이 있다.(033)530-2227. ■ 일몰·일출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곳 ●당진 왜목마을 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2리.해변이 남북으로 뻗어 있어 일출·일몰은 물론 월출까지 볼 수 있다.당진 화력발전소 앞 선착장에서 멀리 석문면 장고항 노적봉과 국화도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해넘이는 여기서 5분 거리인 대호방조제 중간에서 서해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여수금오산 금오산 중턱의 향일암은 예부터 일출로 유명한 곳.하지만 여기서 30분 정도 더 올라가 금오산 정상에 오르면 장엄한 일몰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광활한 호수를 연상케 하는 가막만 뒤로 펼쳐진 수많은 섬 너머로 지는 해넘이는 황홀함을 안겨준다. 해 떨어진 뒤 반대편 바다에서 쟁반 같은 달이 둥실 떠오르는 월출도 볼 만하다.향일암 종루 처마에 달린 풍경 너머 떠 있는 달 구경도 좋다. 금오산 아래 임포마을에서 정상에 올라 일몰을 감상하고 향일암을 거쳐 마을까지 내려오는 데 3시간 정도 잡으면 넉넉하다.여수시 관광홍보과 (061)690-2225.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
  • 정치플러스/조병옥사업회 “김희선 사퇴를”

    김영삼 전 대통령이 명예회장으로 있는 유석 조병옥 박사 기념사업회는 16일 성명을 통해 “김희선 의원은 새빨간 거짓말을 날조해 애국지사의 명예를 훼손한 언행을 즉각 취소,사과하고 즉시 국회의원직을 사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이어 “조 박사는 건국 공로자이며 이승만·안창호·서재필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일제의 강압으로 두 번이나 옥고를 치러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훈했다.”며 조 박사가 광주학생운동사건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중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김 의원은 지난 14일 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부친인 조 박사에 대해 “김두한 드라마(SBS 야인시대)에 미화가 됐지만 친일인사였다.”고 주장했다.
  • 남극 세종기지 조난사고 사망 故전재규 연구원 국립묘지 안장·의사자 인정 논란

    남극 세종기지 조난사고로 사망한 고 전재규 연구원의 국립묘지 안장과 의사자(義死者) 인정 문제를 놓고 정부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관련법인 ‘국립묘지법’과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 규정상 어렵다는 입장과 국가를 위한 고인의 희생 정신을 충분히 고려해 예외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주무부처인 국방부와 보건복지부의 의견을 수렴해 일단 ‘불가’ 입장을 밝혔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14일 4당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을 통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인정’ 목소리가 다시 힘을 받고 있다. ‘세종기지 조난사고 대책반’이 설치됐던 국무조정실은 지난 13일 ‘장례 및 보상대책’을 논의하면서 고인의 국립묘지 안장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대신 의사자 인정 문제는 긍정 검토키로 했다.고 전 연구원의 보상금은 산재보험금과 특별위로금 등 1억 5000만∼2억여원이지만 의사자로 인정될 경우 1억 5400만여원의 추가보상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일단은 모두 쉽지 않다는 게 관련부처의입장이다. ‘국립묘지법’은 순국선열,애국지사,전몰군경에 한해 국립묘지 안장을 허용하고 있고,대통령령인 ‘국립묘지령’도 국가나 사회에 공로가 있는 사망자 중 국방부 장관의 제청에 의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지정한 자로 한정하고 있다. 의사자 인정문제도 복지부 ‘의사상자 심사위원회’가 오는 17일 전체회의에서 토의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할 예정이지만 일단 의사자로 보기 어렵다는 실무 의견을 내놨다. 법에는 의사자를 ‘직무외의 행위로서 타인의 생명·신체·재산의 급박한 위해를 구제하다가 사망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는데,고인의 구조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그의 업무이기 때문에 ‘직무외의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센데다 노 대통령이 “실무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지만 다시 한번 논의하라.”고 지시하면서 논란이 재연될 전망이다.특히 고인의 모교인 서울대 학생회 등은 “국립연구소인 세종기지에서 조난당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애쓰다 운명한 만큼 당연히 국가를 위해 몸바친공로가 인정돼야 한다.”며 지난 12일부터 ‘전 연구원 국립묘지 안장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국립묘지 안장이 허용되면 의사자 인정도 그만큼 수월해진다. 국무조정실 최경수 사회수석조정관은 “지난 83년 아웅산 테러사건이후 일반인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사례가 없으며 현재로서도 국가유공자 인정여부에 대해 논란이 많다.”면서도 “정부는 고인의 희생정신을 기려 의사자 인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 전 연구원의 국립묘지 안장과 의사자 인정 여부는 관련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오는 16일 국무회의와 17일 의사상자 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최종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조현석기자
  • [씨줄날줄] 국립묘지

    남극 세종기지에서 조난을 당해 사망한 젊은 과학도 고 전재규 대원은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이 있는가,없는가.유족의 국립묘지 안장 요청에 대해 정부가 일단 자격 없음을 통보한 것을 계기로 이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대종을 이루는 내용은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들은 세종기지의 1차적 임무는 과학 연구지만 궁극적 목표는 자원 확보와 국가 영역의 확장 등 국익에 있는 만큼 임무 중 희생된 사람은 전사자 못지않게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또 고인은 조난당한 대원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섰다가 스스로 죽음을 맞은 숭고한 희생자라는 시각,국가를 대표해 파견된 과학자의 죽음을 경시한다면 그 누가 다시 같은 길에 나서겠느냐는 과학자 사기론 등도 힘을 받고 있다.이에 반해 안장 불가론은 현재의 법 규정 요건에 맞지 않는다,현재도 이 법 규정 때문에 안장 혜택을 못 받고 있는 119대원 등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 등을 내세운다.개중에는 고인을 묻을 자리가 없다면 친일파와 정치군인 자리를 파내라거나,한때의인기영합주의로 법과 원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강경 발언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도 뜯어보면 국가 유공자나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자는 국가의 이름으로 기려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문제는 법 규정과 이의 해석,그리고 이들을 수용할 만한 정부의 의지와 능력인 것이다.현행 국립묘지령은 안장 대상으로 국가 또는 사회에 공헌한 공로가 현저한 사람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지정할 수 있고(3조5항),묘역의 종류로 외국인 묘역과 함께 일반묘역을 설치하도록(6조) 규정해 융통성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다만 선례가 없을 뿐이다. 이번 일을 우리의 국립묘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국립묘지가 국군묘지에서부터 출발하긴 했지만 국가 유공자가 어찌 군인,애국지사,정치인뿐이겠는가.과학기술자,예술가,체육인들도 뚜렷한 국가적 업적이 있다면 후손들이 기리고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우주왕복선 챌린저호 과학자들을 비롯해 탐험가,권투선수,야구 고안자 등 많은 민간인들의 묘가케네디 대통령 묘와 똑같은 면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를 더 이상 놀라운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신연숙 논설위원
  • 잘못된 한국정보 1850건 발견/제5회 인터넷 한국 오류 사냥대회

    ‘애국가는 북한의 국가(國歌)다.’‘한국은 17∼18세기 중국의 종속국이었다.’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은 국내외 네티즌이 참가한 가운데 ‘제5회 인터넷 한국 오류 사냥대회’를 열어 외국 인터넷사이트에 올라 있는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 1850건을 발견했다고 10일 밝혔다. 홍보처에 따르면 지난달 5일부터 30일까지 열린 대회에 국내외 네티즌 169명이 참가,모두 1850건의 오류를 찾아냈다는 것이다.70%인 1300여건은 동해를 ‘일본해’로 잘못 표기한 경우로 집계됐다.주요 오류 사례로는 세계국가소개 사이트(www.nationalanthems.com)에서 애국가를 북한의 국가로,다른 외국 국가를 대한민국의 국가로 소개했다.세계지도제공 사이트(www.djuga.net)는 동아시아 지도의 울릉도 지점에 명칭없는 섬을 그려 놓고 이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켰다가 홍보처의 요구로 최근 시정했다. 영국의 세계역사정보 사이트(www.spartacus.schoolnet.co.uk)는 한국이 1637년 중국 제국의 일부로 병합됐으며 1895년까지 독립하지 못했다며 한국을 중국의 속국처럼 표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현석기자
  • [사설] 젊은 과학도의 남극 꿈은 계속돼야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활동 중이던 대원 8명의 조난 소식에 온 국민이 가족과 함께 가슴을 졸이며 하루를 보냈다.다행히 7명은 극적으로 구조됐지만 27세의 젊은 과학도 1명은 끝내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우리는 지진학자가 될 꿈을 키우고 있었던 전재규 연구원의 안타까운 죽음에 비통을 금치 못하며 그럴수록 고인이 견지했던 순수한 탐구와 도전 정신,애국심을 동력삼아 국운 개척의 힘찬 전진을 계속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뻔했던 이번 사고에서 그나마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대원들의 끈끈한 동지애 덕이었다.기지운영 15년 동안 공들인 국제협력도 1등 공신이다.같은 킹조지섬에 기지를 둔 러시아,중국,우루과이,칠레,아르헨티나 등은 열성적인 구조 활동으로 대피해 있던 대원들을 발견해 내는 값진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젊은 과학자들과 운영 요원들을 체감온도 영하 40∼50도의 극한지에 보내놓고 막상 국가는 할 일을 다했는가에 대한 비판이 많다.남극기지가 미래의 자원개발에 대비한 기득권 확보,극지 국가로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 정립 등 국력 신장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과학자들은 1978년 남극해 크릴 조사를 시작한 이래 꾸준한 연구 성과를 축적해 1989년 마침내 남극에서 배타적 의사결정권을 갖는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지위를 획득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그러나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후원은 너무나 미미하다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정부는 이번 사고가 나자 극지 탐사의 기본 장비인 쇄빙선 건조와 제2기지 건설계획을 밝히고 있지만 이는 과학자들이 4∼5년전부터 요청해 온 것들이다.대원들 대부분이 1년 넘는 월동근무를 위해 직장을 포기하고 가지만 귀국후 아무런 보장이 없는 것도 문제다.사고가 나야만 관심을 보여서는 도약을 기대할 수 없다.당국은 과학자들의 도전정신을 부축할 획기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테러, 이젠 남의 일이 아니다/EBS다큐 ‘테러의 실체를 찾아서’

    최근 이라크에서 벌어진 한국인 근로자 피습사건은 테러의 공포가 이제 ‘강건너 불’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테러 예방은 가능한가,그리고 테러범의 실체는 무엇인가. EBS가 이러한 의문을 파헤친 해외 다큐멘터리 두편을 묶은 ‘테러의 실체를 찾아서’를 10일과 17일 오후10시 연속 방영한다. 미국 PBS방송사가 제작한 1편 ‘테러예방,가능한가’는 지난해 가을 알카에다 세포조직 적발과 체포과정을 통해 미국의 테러 예방정책이 어떻게 현장에 적용되는 지를 보여준다. 9·11직후 미국은 FBI와 CIA간의 정보장벽을 허무는 ‘애국법’을 통과시켰다.테러 예방을 목표로 제정된 이 법은 공권력 남용과 인권 침해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실제로 테러용의자들의 이웃인 예멘계 미국인들은 이 법으로 인해 테러와 무관한 혐의로 기소를 당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대외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동시에 국내에서도 정부기관의 권한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통해 공포심을 조장하는 무분별한 테러수사 이상의 근본적인 테러 억제책을 촉구한다. 2편 ‘자살폭탄테러범,그들은 누구인가’는 이슬람 원리주의 행동단체의 실상을 보여준다.프로그램을 만든 영국 방송사 ‘채널4’는 사상 처음으로 자살공격을 시도하다가 생포돼 수감중인 5명의 육성고백을 생생히 담았다.17세의 마흐메드는 차량 폭탄테러용 폭발물을 지니고 이스라엘에 잠입하다 체포됐다.그는 모든 행동은 스스로의 결정이었으며,순교를 통해서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24세의 마지는 폭탄 제조혐의로 수감중이다.그가 만든 폭탄은 버스 테러에 사용돼 50명이 죽었다.프로그램은 ‘순교자적 행동’이라고 칭하는 자살폭탄 공격이 아랍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무엇이 이들을 극단적인 순간으로 내모는지를 파헤친다. 이순녀기자 coral@
  • 부고/애국지사 임도식 선생

    애국지사 임도식(林燾植) 선생이 6일 오후 2시 15분쯤 지병으로 별세했다.81세. 경북 울진 출신인 고인은 춘천중학교에 재학중이던 1938년 독서운동을 통해 항일 민족의식을 붇돋우는데 힘썼고,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1942년 5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광복으로 출소했다.1977년 대통령 표창,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분옥 여사와 3남 3녀가 있다.빈소는 서울 경희의료원.발인 9일 오전 8시.(02)959-7499
  • 반가워 땡땡/佛대표만화 땡땡 24권 국내 첫 완간 10대 소년기자의 좌충우돌 모험그려

    사례 하나.샤를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절대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그런 드골 대통령은 재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소설가 앙드레 말로에게 자신의 인기를 이렇게 자랑한 적이 있다.“내 라이벌은 ‘땡땡(Tintin)’ 하나뿐이여∼!” 사례 둘.1982년 벨기에 천문학회는 목성과 화성 사이에서 발견된 소행성에 ‘에르제(Herge) 행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자국 만화가 ‘에르제’(본명 조르즈 레미,Georges Remi,1907∼1983)의 75회 생일을 기념하자는 천문학자들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사례 셋.지난 1월말 열린 세계적인 만화축제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 개막식은 프랑스 남서쪽 보르도 인근의 소도시 앙굴렘의 ‘마렝고 광장’을 벨기에 만화가 에르제의 이름을 따 ‘에르제 광장’으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프랑스가 ‘허구의 아들’로 입양한” ‘땡땡’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국내 최초로 완간 동그란 얼굴에 닭벼슬 머리,키 140㎝의 10대소년 기자 땡땡은 프랑스가 전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영웅이다.프랑스 일간지 ‘르 주르날 드 디망쉬’에 따르면 프랑스 가정의 절반이 땡땡 시리즈를 소장하고 있고,50여개 언어로 전세계 60여개국에서 3억부 이상 팔렸다. “땡땡은 디즈니의 모든 캐릭터를 합친 것보다도 의미있다.”(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는 말이 허풍처럼 들릴 수 있지만,미국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이를 그대로 긍정한다.“땡땡은 내 작품 세계에 디즈니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이 최근 국내의 솔 출판사를 통해 24권 전량이 최초로 번역·완간됐다.1980년대 중반 월간 소년만화잡지 ‘보물섬’을 통해 부분연재되거나,90년대 중반 출판이 시도됐었지만 전편이 완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지난 99년에는 MBC에서 ‘틴틴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21편이 방영되기도 했다.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교재로도 쓰여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소년 기자 땡땡이 흰강아지 밀루와 함께 동서고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겪는 모험담형식이다.콩고 이집트 티베트 페루 등 유럽인들에게 이국적인 지역들을 주무대로,나중에는 바다밑,극지,사막,심지어 달까지 악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간다.조지 루카스가 “영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땡땡의 모험’을 원형으로 했다.”고 고백할 정도.여기에 각국의 지리·역사·문화·과학 등을 재미있게 녹여내 프랑스 초등학교에서는 교재로도 사용된다.팔레스타인 문제,남미의 정치·경제적 상황,영국의 인도 식민지 문제 등 20세기 세계사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담겨 있다. 땡땡은 1929년 당시 21세의 젊은 만화가 에르제가 벨기에 가톨릭계 보수 일간지인 ‘20세기’의 어린이잡지인 ‘르 프티 벵티엠’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필명인 에르제는 본명의 머리글자 ‘GR’를 거꾸로 해 불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벵티엠’을 통해 ‘소비에트에 간 땡땡’으로 처음 시작한 땡땡 시리즈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인기가 높아졌다.1930년 첫 출판 당시 고작 5000부가 팔렸던 ‘소비에트에…’는 지난 81년 재출간때는 3개월 만에 10만부가 팔려 나갔다.에르제는 1930년부터 1976년 ‘땡땡과 카니발 작전’까지 벨기에의 카스테르만 출판사를 통해 23권의 땡땡 시리즈를 내놓았다.24권인 ‘땡땡과 상어호수’는 원작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에서 스틸 컷을 뽑아 만든 것이다. ●‘땡땡 스타일’의 핵심은 명료성 에르제는 생전 ‘소심하다’느니 ‘결벽증 환자’라는 놀림을 살 정도로 ‘명료성’에 집착했다고 한다.미려하고 깔끔한 외곽선을 얻기 위해 종이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선을 반복해서 긋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에르제의 ‘명료성’은 작화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이야기 전개방식,칸 구성,인물 창조 등 곳곳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명료함은 ‘땡땡 스타일’이라는 별명을 낳았다. 1969년 미국이 유인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기 15여년 전에 그려진 ‘달 탐험 계획’(1953년)과 ‘달나라로 간 땡땡’(1954년)을 보면 왜 유럽 과학자들이 동호회까지 만들어가며 땡땡 시리즈에 열광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정확한 과학기술 지식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달 착륙 과정은 지금보아도 실감이 날 정도.이것 말고도 로켓,수륙양용전차,가변익 비행기,잠수함 같은 복잡한 기계들을 정확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상상,만화적이지만 정교한 그림으로 묘사해냈다. ●땡땡의 정치적 성향? 땡땡은 종종 서구중심적·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초기작인 ‘소비에트로 간 땡땡’에서처럼 구소련을 부정선거와 납치,고문이 자행되는 나라로 그리는가 하면,‘서구가 미개한 동양을 개화시켰는데도 은혜를 모른다.’는 식으로 동양 식민지인들의 독립운동을 폄하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은 에르제의 한계라기보다는 당시 유럽인들의 한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히려 땡땡 시리즈는 뒤로 갈수록 ‘푸른 연꽃’(1946년)에서처럼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변화된 시선을 담아낸다.일본의 남만주 기차선로 폭파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푸른 연꽃’은 제국주의로 경도되는 일본과,그를 지지하는 서구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다. 땡땡은 ‘티베트에 간 땡땡’(1960년)에서는 중국인 친구 창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한다.달라이 라마는 “서구인들이티베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소중한 책”으로 ‘티베트에…’를 소개하기도 했다.기본적으로 땡땡은 다른 문화의 소중함을 이해·포용하려고 노력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다. 사실 땡땡의 ‘색깔’은 프랑스 국회에서도 공식적인 격론을 벌이는 문제다.국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캐릭터인 만큼 각당의 ‘영입 경쟁’이 치열한 것.프랑스 우파 제1당인 공화국 연합당은 “특출한 애국심과 역사관으로 볼 때 땡땡은 우리 당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이에 맞서 온건 좌파인 사회당은 “중국인 소년 창을 구하고 동지로 삼는 반인종주의적 행동으로 볼 때 땡땡은 사회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쨌든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의 땡땡에 대한 의견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의 한 마디로 통일되는 듯 싶다.“고마워요,에르제.” 채수범기자 lok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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