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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美 대선] 퍼스트레이디 선호도 신디가 미셸 ‘앞’

    미국 대선 본선을 앞두고 퍼스트레이디 후보 경쟁에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부인 신디 매케인(사진 왼쪽)이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부인 미셸 오바마(오른쪽)를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온라인 여론조사기관 라스무센리포트가 지난 9일 미 전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호감이 간다.’는 답변은 신디가 49%, 미셸이 48%로 박빙의 접전을 보였다. 그러나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응답에선 신디가 29%인 반면 미셸은 42%로 큰 차이가 났다. 미셸에 대한 비호감 답변율이 높은 것은 지난 2월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미셸이 “어른이 된 후 처음으로 미국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발언해 애국심 논란을 일으켰던 사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61%가 지지후보 결정에 배우자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답변한 만큼 이같은 결과는 오바마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독립운동 교우 137명에 명예졸업장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 서울 중앙중·고등학교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졸업장을 받지 못한 교우들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한다. 16일 중앙고에 따르면 오는 20일 종로구 계동 본교에서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갖고 독립운동에 앞장섰다가 퇴학·무기정학을 당하거나 옥고를 치러 졸업을 하지 못한 교우 137명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기로 했다.3·1운동 학생 대표였던 박민오·이춘학 선생,6·10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권오설·이선호·이동환 선생 등이 대상이다. 동문 문학인인 서정주 시인과 이상화 시인의 시비와 소설가 채만식 문학비도 운동장에 세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최초로 ‘인문학 박물관’ 개관식도 갖는다. 애국계몽운동단체인 기호(畿湖)흥학회가 1908년 당시 종로구 소격동에 ‘기호학교’를 세웠고,2년 뒤 흥사단의 융희학교와 통합되고 다시 기호·호남·교남·관동·서북 등 전국의 지역학회들과 중앙학회로 통합돼 중앙학교란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동문으로는 독립운동가 장지연·강창거 선생, 시인 이상화·서정주, 소설가 채만식 선생 등이 있다. 최근에는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김태현 전 대법관, 정몽준 의원, 영화배우 남궁원, 탤런트 최불암, 권투선수 홍수환씨 등이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김선아 “한국 영화 어려움 피부로 느꼈다”

    김선아 “한국 영화 어려움 피부로 느꼈다”

    “한국 영화의 어려움 살로 직접 느꼈다.” 얼마전 개봉한 영화 ‘걸스카우트’에 출연한 김선아가 “이번 영화를 통해 한국의 영화 현실을 몸소 느꼈다.”고 밝혔다. 17일 오후 2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된 ‘밤이면 밤마다’(극본 윤은경, 연출 손형석)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선아는 “영화가 안됐다고 해서 드라마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며 “영화가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전했다. 이어 김선아는 얼마전 무리한 스케줄에 코피를 쏟았던 데 대해 “평소 겹치기 출연을 싫어하는 데 이번에는 본의 아니게 영화 홍보 일정과 드라마 촬영 일정이 겹치면서 많이 피곤했던 것 같다.”며 “드라마 촬영 현장 분위기가 좋아 기분은 좋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선아는 아버지에 대한 아픔과 동시에 밝고 명랑한 성격의 문화재청단속반 허초희 역을 맡았다. ‘밤이면 밤마다’는 고미술품 감정 및 복원전문가 이동건과 열혈애국 단속반 노처녀 김선아의 국보 찾기 대소동을 그린 드라마로 오는 23일 오후 9시 55분 첫 방송된다. 서울신문NTN 서미연 기자 / 사진=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월화드라마 3파전 “이산 왕위 내가 받겠다”

    월화드라마 3파전 “이산 왕위 내가 받겠다”

    지난주 방송된 MBC ‘이산’이 32.7%의 시청률로 지난 한주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가운데 그 뒤를 이을 새로운 월, 화극에 대한 관심이 벌써부터 커지고 있다. 시청률을 늘리기 위한 ‘짜집기 방송’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특집 한편으로 보는 이산’ 마저도 지난주 최고 시청률 3위를 기록하면서 각 방송국에서는 ‘이산’ 마지막회를 피하기 위한 줄다리기 편성을 내놨다. 3파전을 예고하며 월, 화 드라마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 드라마에는 저마다의 몇 가지 성공요인이 존재하고 있다. # MBC ‘밤이면 밤마다’, 삼순이 효과 기대할 수 있을까? 우선 가장 유리한 위치에 놓여있는 프로그램이 바로 ‘밤이면 밤마다’다. 이산의 인기를 등에 업고 동일 채널에서 방송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밤이면 밤마다’는 월, 화 드라마 중 1순위에 뽑힌다. 하지만 ‘밤이면 밤마다’의 히든카드는 그 외에도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김선아, 이동건 등 화제를 모으고 있는 출연자가 총 출연한다는 것이다. 김선아는 이미 MBC ‘내이름은 김삼순’으로 브라운관 퀸 자리에 오른바 있으며, 이동건 역시 동생을 잃은 후 첫 번째 복귀작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둘째는 시청률 제조기라 불리는 제작진의 합류다. ‘밤이면 밤마다’의 극본을 맡은 윤은경 작가는 KBS ‘겨울연가’, ‘여름향기’, ‘눈의 여왕’ 등을 집필하며 이미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으며, 연출을 맡은 손형석 PD 역시 MBC ‘굳세어라 금순아’ 공동 연출을 맡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용되는 독특한 소재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극중 이동건은 고미술품 감정 및 복원전문가로 김선아는 열혈애국 노처녀로 등장해 국보를 찾기 위한 에피소드를 실감나게 그린다. # SBS ‘식객’, 출판-영화-방송 삼안타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식객 또한 몇 가지 히든카드로 벌써부터 성공을 예감케 하고 있다. 첫째로 ‘식객’은 이미 원작을 통해 관객에게 인정받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만화뿐 아니라 영화 모두가 성공한 바 있어 이번 드라마 역시 기대해볼 만 하다. 하지만 이미 대중에게 친숙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자칫 식상해 보일 수도 있다는 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하지만 SBS ‘올인’, MBC ‘주몽’ 등을 집필한 최완규 작가가 극본을 맡아 이같은 점을 보완한다. 더욱이 최완규 작가는 SBS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를 통해 이미 김래원과 호흡을 맞춘 적이 있어 최고의 팀워크를 자랑하고 있다. 셋째는 김래원의 2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작이라는 것과 중견 탤런트 최불암은 물론 남상미, 김소연, 권오중 등 출연진이 독보인다. 김래원은 MBC ‘옥탑방 고양이’를 통해 최고 인기 스타 대열에 합류했으며 김소연 역시 오랜 공백을 뒤로하고 ‘식객’에 출연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 KBS 2TV ‘최강칠우’, 사극 붐 이어갈 수 있을까? 월, 화 드라마의 1인자였던 MBC ‘이산’과 수,목 드라마의 1인자인 SBS ‘일지매’는 사극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최강칠우’의 첫 번째 성공요인이 될 수 있다. 트랜드 드라마에 비해 중년의 시청자까지 골고루 섭렵할 수 있다는 게 사극의 가장 큰 장점으로 ‘이산’의 중년 시청자들이 그대로 ‘최강칠우’로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최강칠우’는 드라마에 불고 있는 영웅 열풍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이다. ‘최강칠우’에서 문정혁(에릭)은 타락한 권력층을 처단하는 조선시대 영웅으로 등장해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를 선사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10대, 20대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문정혁이 출연한다는 것과 SBS ‘왕과 나’를 통해 사극 연기를 선보인 바 있는 구혜선을 비롯해 이언, 유아인, 김별, 전노민, 임하룡 등 개성 있는 연기자들의 출연 또한 ‘최강칠우’의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서울신문NTN 서미연 기자 / 사진 = MBC, 올리브나인,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신채호 선생 국적 찾는다

    정부가 무(無)국적 독립운동가들도 ‘가족관계 등록부’(옛 호적부)에 등재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관계자는 15일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가족관계 등록부’를 만들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순국선열, 애국지사에 한하여 다른 법령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가족관계 등록부 등록을 창설할 수 있다.’는 조항(제6조 4항)이 신설됐다. 이 개정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면 단재 신채호, 석주 이상룡, 여천 홍범도, 부재 이상설, 노은 김규식 선생 등 무국적 독립운동가 200여명이 가족관계등록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돼 대한민국 국적을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 이들은 지난 1912년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위해 호적제를 개편하자 일본의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거부했고 광복 후 정부는 일제시대 호적에 등재된 사람들에게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해 사실상 호적도 없는 무국적자가 됐다. 보훈처는 “일제 강점시 일본 호적 등재를 거부하거나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호적을 취득하지 못한 독립유공자들이 가족관계 등록부를 창설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며 개정안이 마련된 배경을 설명했다. 보훈처는 이어 “가족관계 등록부는 생존해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작성되므로 옛 호적법에 따라 호적이 없는 독립유공자는 이 등록부를 만들 수 없었다.”며 “현재까지 등록부가 존재하지 않은 독립유공자들이 등록부를 만들 수 있도록 해 명예 선양과 그 후손들의 자긍심 고취 등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이 개정안은 관련 부처의 의견 수렴을 거쳐 이달 말 또는 다음달 중으로 예고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5년 당시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과 한나라당 임인배 의원 등이 ‘일제시대에 무국적 상태에 있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사망한 사람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국적법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해를 넘겨 자동 폐기됐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사설] 독립지사 국적회복 만시지탄이다

    국적도 없이 구천을 떠돌던 독립지사들의 국적이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아 비로소 회복될 것 같다.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 중이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면 단재 신채호, 석주 이상룡, 여천 홍범도, 부재 이상설, 노은 김규식 선생 등 200여명의 애국독립지사들이 꿈에서도 그리던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만시지탄이다.‘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은 3대가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우스갯말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환갑을 맞고서야 바로잡히게 될 셈인가. 순국선열들이 왜 무국적자가 됐는지 따져보면 그 말뜻을 알 수 있다. 일제가 호적제를 개편하자 지사들은 당연히 등재를 거부했다. 광복후 이승만정권은 일본호적이 있는 사람에게만 호적을 부여했다. 결과적으로 무국적 독립지사의 후손들을 재산상속은 물론 직업 선택, 교육 혜택도 못 받는 ‘법적 사생아’로 만든 것이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국적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미 법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우리 국민으로 여겨왔으며 사망자에게 소급해서 국적을 부여하는 것은 국적법 체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법조계의 주장을 뛰어넘지 못한 탓이다. 조선족, 고려족 등의 국적문제로 비화될 소지에 대한 정부의 우려도 있었다. 다 좋다. 하지만 왜곡된 역사진실을 바로 세우지 않고 민족의 미래를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첫 단추는 순국 독립애국지사에 대한 국적 회복이 되어야 한다.
  • [글로벌 시대]세계는 젊은이를 기다리고 있다/양창영 호서대교수·재외동포연구소장

    [글로벌 시대]세계는 젊은이를 기다리고 있다/양창영 호서대교수·재외동포연구소장

    거리에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로 넘쳐나는데 최악의 청년 실업난을 겪고 있다는 요즈음이다. 그래서 세계도덕재무장운동(MRA)본부가 주최하는 세계 청년학생대회에 참석차 1965년 7월 미국과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당시 필자는 약 3개월 머무는 동안 30여개 도시의 학교와 산업시설들을 돌아보았다. 이 나라들은 이렇게 풍족하게 잘사는데 왜 우리는 가난하게 살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돌아오던 중 일본에서 MRA 지도자로 일본 중의원 의장을 맡고 있던 지바 사부로 (千葉三郞) 선생을 만났다. 그 분은 패전 후 20년도 안 돼 1964년 도쿄올림픽을 열 수 있었고,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해외일본 동포들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사실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정신적 지주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세계를 알아야 일본이 잘살 수 있다.”고 세계화를 주장했다. 이때 일본정부는 많은 일본인들을 미국 등 여러 나라에 진출시켰으며, 이들 후손들이 일본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예와 같이 한국이 발전하려면 폐쇄적인 쇄국정책을 버리고 세계속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며 “한국은 천연지하자원을 비롯한 부존자원은 부족하지만 인적자원은 충분하니 인력을 해외로 진출시켜 세계시장을 상대로 경쟁을 펼칠 때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얘기를 귀담아듣고 한국에 돌아왔다. 이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것이 보국하고, 애국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오늘날까지 나름대로 보다 많은 인력의 해외진출에 노력을 경주해 왔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의 수많은 노력들이 모여 700여만명의 해외동포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며,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어놓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이제 이들 재외동포를 대한민국의 세계화, 글로벌화의 축으로 적극 활용,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들면 세계속에서 한민족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육지면적의 0.07%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이다. 거기에 5000만명이 살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문을 활짝 열고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세계인과 더불어 지구촌에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살아남는 것이 곧 위대한 한민족 시대를 개척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세계화 시대는 인적자원의 역량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이다. 일찍이 해외로 눈을 돌렸던 재외동포의 역사는 애국에 불타는 열정과 불굴의 개척정신에서 출발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낯선 이국땅을 밟아야 했던 선조들이 있는가 하면 빈손으로 고국을 떠나 척박한 땅을 비옥한 토지로 바꾼 이도 있다. 혹독한 가난과 차별 속에서 항상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과 철저한 신용을 쌓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개척했고, 마침내 대한민국 영토 밖에서 가장 큰 경영성과를 창조한 한상(韓商)도 있다. 불굴의 의지와 창의적 발상으로 남다른 배려의 정신과 미래를 꿰뚫는 혜안을 갖고 자신에게는 인색할 정도로 검소하지만, 꼭 필요한 일에는 넉넉하고 후한 인심을 쓰는 해외 기업인도 있다. 무엇보다 ‘헝그리 정신과 도전정신’으로 표현되는 인생 철학을 바탕으로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고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명언을 직접 실현해낸 대표적 한류의 성공모델도 있다. 글로벌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도전과 개척의 뉴프런티어 정신을 갖고 눈을 세계로 돌려야 한다. 가슴은 항상 조국으로 향하되 넓은 세계를 무대로 근면·성실하게 일자리를 찾아 활동하면 성공할 수 있다. 양창영 호서대교수·재외동포연구소장
  • [서울광장] ‘박근혜 총리’카드 버리지 말라/ 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박근혜 총리’카드 버리지 말라/ 함혜리 논설위원

    촛불민심 달래기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인사에서 대통령실장과 국무총리를 교체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면 쇄신이라는 말에 걸맞게 새 총리는 ‘새 출발’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이 바람직하다. 난국 타개를 위해 정치적 영향력과 함께 대중적 지지도 받아야 한다. 지난 10일 내각의 일괄 사의 표명 직후 여권 일각에서 급부상했던 ‘박근혜 총리론’이 설득력을 얻었던 이유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가 어제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를 총리로 임명하는 데에 50.6%가 찬성했을 정도로 일반 여론도 ‘박근혜 총리’를 선호한다. 그런데 ‘박근혜 총리론’이 급격히 가라앉는 분위기다. 여당 지도부와 청와대는 ‘유효한 카드’라는 당초의 입장에서 한발짝 물러나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입장이다. 박 전대표 측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총리직을 정식 제의받은 적이 없다.”면서 설사 제의하더라도 수락할 생각이 없다고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다. 물론 여러가지 정치적 고려에 따른 판단으로 짐작된다. 각자의 유·불리를 따져 본 결과 없던 일로 하는 게 오히려 이익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 깊게 파인 감정의 골도 여전히 치유가 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 이번이야말로 이 대통령이 ‘박근혜 총리’ 카드를 쓸 적기라고 본다. 박근혜 전 대표가 총리로 나서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무엇보다 박 전 대표는 소통부재인 당·정·청의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는 적임자다.50여명의 국회의원을 거느린 박 전 대표가 총리로 나서면 이 대통령은 당내 지지기반 확보로 안정적인 국정을 도모할 수 있다. 박근혜 총리론은 여권 화합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박근혜 총리론은 한나라당내 친이·친박 분란을 비롯한 여권내 권력 다툼이 해소됐다는 것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원칙과 애국을 트레이드마크로 삼는 박 전 대표라면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 이유다.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로서 위기상황을 수수방관한다는 것은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요동치는 정국에서 총리직을 맡는 것이 정치적 리스크가 큰 모험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위기타개책으로 한번 쓰고 버리는 카드가 될지언정 잃을 것은 없다고 본다. 더구나 차기 대권을 꿈꾸는 본인에게 행정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구정물에 손을 담그고 온몸을 던져 국정을 돌본다면 고고한 ‘근혜공주’의 이미지를 깰 절호의 찬스가 될 수 있다. 다만 박근혜 총리론은 책임총리 이상의 권한을 전제로 한다. 현재와 같이 ‘자원외교’나 하면서 외곽으로 도는 그런 총리는 의미가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책임 총리제를 강화해 각 부처의 정책 조정기능을 국무총리에게 줘야 한다. 따라서 이 대통령에게는 권력을 나눠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러나 남은 5년 순탄하게 국정을 수행하려면 이 대통령은 빨리 권력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아직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너무 많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에서 촉발된 촛불집회가 정권퇴진 운동으로까지 치닫는 상황이다. 무정부 상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온 나라가 혼란스럽다. 뻔히 보이는 승부수를 외면해선 안 된다. 문제의 원인이 이 대통령 본인에게 있었듯이 해결의 열쇠 또한 본인이 쥐고 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양성지는 아첨꾼 아닌 주체적 실학자”

    “양성지는 아첨꾼 아닌 주체적 실학자”

    규장각은 조선 정조가 즉위한 1776년 개혁정치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고자 세웠지만, 단초는 300년 이상이나 앞선 세조 9년(146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규장각 설치를 건의한 사람은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1415∼1482)였는데, 정조는 규장각을 출범시키면서 그의 아이디어가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한영우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가 내놓은 ‘양성지-조선 수성기 제갈량’(지식산업사 펴냄)은 눌재를 다룬 최초의 본격적인 평전이다.1992년부터 4년 동안 서울대 규장각 관장을 지낸 한 교수는 “눌재를 되돌아보게 된 것은 정조의 정신적 스승의 하나가 그였다는 사실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양성지는 눌재라는 아호처럼 더듬거리는 말투에, 집현전 직제학으로 있으면서 동료들이 사육신이나 생육신으로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할 때 세조의 총신(寵臣)으로 자리잡아 훗날 사림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듣지 못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어눌함을 극복하고자 항상 글로 뜻을 드러내어 ‘아는 것이 있으면 말하지 않고는 못배긴다.(知無不言·지무불언)’는 평을 들을 만큼 자신을 끊임없이 독려한 인물이다. 세조와는 시정개혁과 국방정책의 적극적인 조언자이자 이론가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 인물이기도 했다. 눌재를 제갈량에 비유한 것도 세조이다. 한 교수는 “1970년대 초 ‘눌재집’을 읽고 그 애국적이고 주체적인 경륜에 놀랐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면서 “조선 선비들은 주체성이 없고 중국을 지나치게 숭상한 사대주의자들이었다고 단정한 것은 나뿐 아니라 당시 학계의 일반적인 분위기였으나 ‘눌재집’은 나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뜨렸다.”고 털어놓았다. 한 교수는 눌재를 ‘주체성 있는 실학적 성리학자’로 규정한다. 그는 “눌재의 상소문 대부분은 관념적인 주장보다 병학, 지리, 역사, 문학 등 각 분야의 실용적인 정책 제안을 담고 있다.”면서 “눌재가 추구한 ‘유용지학(有用之學)’,‘경제실용(經濟實用)’의 학문은 18세기 이후 실학의 학문적 토양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눌재 사상의 기본 목표는 ‘자주독립된 부강한 왕조국가의 건설’이었다.”면서 “그는 단군을 전조선왕(前朝鮮王)이라는 역사적 실재인물로 파악하고, 중국과 우리는 제가끔 하늘의 일방(一方)을 차지하여 별개의 건곤(乾坤·구역)을 이루는 나라라고 우리 역사의 독립성을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눌재는 특히 조선은 강토가 본래 요동을 포함한 ‘만리지국(萬里之國)’으로 우리 땅을 수복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군사력의 강화는 물론 명나라 세력이 이 지역으로 뻗어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조의 지나친 부국강병 정책은 지방세력의 희생을 강요하는 부작용을 낳았고, 이런 점 때문에 성종 이후 지방에서 올라온 신진 사람이 눌재를 ‘오직 임금에게 아첨하고 재물을 탐한 노인’으로 보는 근본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한 교수는 분석한다. 한 교수는 “눌재가 300년 만에 망각의 늪에서 빠져나와 위대한 실학자로 부활한 것은 사림 정치가 부작용을 낳으면서 왜란과 호란을 불러오고, 다시금 강력한 지도력과 실용정치를 요구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라면서 “명분보다 실리를 중요시하고, 왕권강화를 옹호하는 실학이 일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그 선구자로 양성지가 주목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조갑제 “촛불집회 참가자는 정신이상자들”

    조갑제 “촛불집회 참가자는 정신이상자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좌파의 선동에 놀아난 바보·천치·정신이상자들” 대표적 보수 논객인 조갑제(전 월간조선 대표)씨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법질서수호-FTA비준촉구 국민대회’에서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강하게 비판해 논란이 되고 있다. 뷰스앤뉴스 등 언론에 따르면 조씨는 이날 대회에서 마지막 연사로 나서 “서울광장 안과 밖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한 뒤 “안에는 좌파의 거짓 선동에 속지 않은 애국시민이 있고,밖에는 선동에 놀아나는 바보·천치·정신이상자들이 모여 부끄러운 줄은 아는지 밤에만 설치는 족속들이 지켜보고 있다.”며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맹비난을 퍼부었다. 당시 서울광장에서는 조씨가 참석한 행사가 한창이었고,경찰 저지선 너머 외곽에는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지난 6일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6·6 난동자들’이라고 규정하며 “이들이 현충일에 서울을 무법천지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촛불집회 참가자들을)‘호로자식들’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말 안 한다.”고 거친 비난을 이어갔다. 조 대표는 또 가족 단위로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을 겨냥,“거짓을 가르치는 어린이 영혼 추행범”이라는 거친 표현도 서슴치 않았다. 그는 이어 MBC와 KBS에 대해서도 “기자생활을 38년간 하면서 MBC 기자 같이 악랄한 날조방송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며 “MBC와 KBS는 선동기관이다.이들에게 언론자유를 줘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투쟁의 방향을 옮겨 날을 잡고 MBC 앞으로 몰려가자.”며 “MBC의 엄기영,KBS의 정연주는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뽑은 민주정권이니 지켜야 한다.”면서도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진실을 지키지 못하고 밀려 이제 우리의 자유와 재산을 빼앗길 정도가 됐다.”고 좌충우돌했다. 연설 후 조씨는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을 사용하라’,‘국군은 국토방위와 헌법보장의 의무 수행에 나서라’,‘학부모는 어린이 영혼 추행범을 색출하라’는 등의 14개 요구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날 그의 발언의 대부분은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사이트인 조갑제닷컴(http://www.chogabje.com/)에서 일관되게 주장해온 내용들이다.현재 이 사이트에는 ‘이런 짓을 하고도 MBC가 무사하겠는가?’ 등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촛불집회를 규탄하는 칼럼과 기사들이 다수 실려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中네티즌 “촛불 든 한국인들 대단하다”

    中네티즌 “촛불 든 한국인들 대단하다”

    ‘6·10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대행진’에 해외 네티즌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일 밤을 넘어 11일 오전 8시 경 끝난 이번 행사는 경찰과 시민 간의 큰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진행됐다. 주최 측 추산 70만 명(경찰 추산 8만 명)이 운집한 이번 행사에 전 세계의 이목도 집중됐다. 특히 최근 고가의 일본 쌀 수입을 두고 논란을 빚었던 중국은 먹거리 수입에 대한 한국 국민의 자율적 시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을 비롯한 많은 언론은 “한국 국민들이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기 위해 초를 손에 들고 서울 한복판을 가득 메웠다.”면서 “한국 정부는 미국 쇠고기 수입 협정으로 인해 국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고 보도했다. 이를 지켜본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인들의 단결력에 매우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네티즌(60.191.*.*)은 “이렇게 거대하고 강력한 국민들은 본 적이 없다.”고 올렸고 또 다른 네티즌(211.144.*.*)은 “중국인도 중국 물건은 쓰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자국 물건을 쓰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며 감탄했다. 또 최근 중국의 일본산 쌀 수입과 관련해 “중국에 일본산 쌀이 들어왔을 때 우리 국민은 뭐하고 있었나”(125.34.*.*), “중국에서 이런 집단 가두시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한국인)이 부럽다.”(218.59.*.*), “일본쌀이 들어올 때 우리도 그들처럼 저항했어야 했다. 한국인들의 용기가 대단하다.”(58.20.*.*) 등의 의견도 쉽게 눈에 띄었다. 이밖에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앞장서는 모습을 보니 한국인들의 애국심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220.160.*.*),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 국민들에게 잘못하고 있다. 그(이명박 대통령)에게 배후가 있을 것”(219.136.*.*) 등 반응을 보였다. 이에 반해 한 네티즌(60.208.*.*) “한국인은 너무 극단적이다. 일부분만 보고 전체는 못보고 있다.”며 “대국(大國)이 되고 싶다면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의견도 일부 있었다. 또 “그렇게 외국 문물에 폐쇄적일 바에는 아예 나라 문을 모두 막아라”(222.26.*.*), “사람들이 과도하게 흥분한 것 같다.”(124,128.*.*)등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네티즌도 있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6·10 촛불집회] 386 정치인 6·10 항쟁 소회

    1987년 6월 항쟁과 2008년 6월 촛불집회.21년의 간극을 두고 다시 촛불이 타올랐다. 독재타도·호헌철폐를 외쳤던 광장에,42년의 독재를 끝내겠다며 성공회대 꼭대기 종탑에서 42번 울렸던 타종 소리를 기억하며, 다시 광장에 선 사람들이 있다.386 정치인들이다. 거대 담론에 빠진 무능한 세력, 민주화의 성과를 독식한 기득권 세력,386 정치인들의 현주소나 다름없다. 군부독재의 권력 이양식이 치러졌던 21년전 10일,‘귀환’한 이들의 소회는 그래서 남달랐다. ●“대중과의 간극 메우는 중” 통합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의 손을 잡고 집회에 나왔다. 여기저기 모여앉은 386세대 가족들을 보며 민주주의는 결코 물러날 수 없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송 의원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 사회의 모든 문제를 고민하는 세대로서 무거운 짐을 진 것 같다.”며 화두를 던졌다. 어느샌가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이름,386 정치인. 송 의원은 “주도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과 공감하며 간극을 메우는 과정”으로 2008년 촛불의 의미를 받아들인다.6월 항쟁이 이룬 민주주의 성과들이 역진할 때, 끝까지 지켜내고 진전시키는 것이 스스로의 임무라고 다짐한다.1987년 당시엔 인천지역 노동자로 집회에 참여하면서, 이한열 열사 장례 추진위원을 지냈다. 당시 동국대 ‘호헌철폐와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애국학생투쟁위원회’위원장이었던 민주당 최재성 의원. 수배 중이었던 터라 서울 노량진 뒷골목 자취방에서 6월의 벅찬 열기를 숨죽여 느껴야 했다. 최 의원은 촛불행진 중에 “국민들은 진보하는데 정부는 여전히 답보 상태”라며 말문을 열었다. 정치권도 진화하는 국민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386 정치인에 대한 가혹한 ‘평가’엔 단호하다. 최 의원은 “386 정치인들은 태생적으로 탈권위적이다. 국민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세력”이라면서 “우리 사회에 386을 대신해 진보적인 국민들과 잘 조응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대안세력으로 거듭나려면 “스스로 변질되지 않으면서, 정체성을 중심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정당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장 보며 대한민국 에너지 느껴”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은 1985년 11월 서울 미 문화원 점거 투쟁으로 구속돼 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때문에 6월의 현장에 동참하지 못했다. 정 의원은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대한민국의 에너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정권퇴진을 요구했던 87년과는 차이가 있다.”면서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는 것 해야” 우상호 전 민주당 의원은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우 전 의원은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루고 나서 다시는 대규모 거리 시위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과 국민이 직접 부딪히는 현장은 386 정치인으로서 각별한 각오를 다지게 한다. 우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위기의 원인을 모르는 것 같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총선 패배 뒤에도 386을 향한 비판은 여전히 따갑다. 우 전 의원은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양보하지 않는 한 국민과 함께 싸우는 게 야당의 역할”이라면서 “386 정치인들은 더 명확하게 싸워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날 이한열 열사 국민장이 재연되자 일각에선 ‘386이 민주화운동 연장선상에서 촛불민심에 편승하려고 한다.’는 우려가 들려왔다. 우 전 의원은 “무슨 소리냐. 그럴려고 했으면 진작에 우리가 집회를 주도했을 것”이라면서 “6월 광장에서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가르는 발상 자체가 정파적이고 불순한 시각”이라고 되받아쳤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서울대 법대 새내기 때 겪은 6월 항쟁을 ‘신천지’로 기억했다.‘내 삶의 밑바닥 힘’이었다고 한다.386정치인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인정하면서도 “시대의 주역들이 늘 존중받는 것은 아니다.”면서 “타협하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국민들에게 결실이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 세대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구혜영 한상우기자 koohy@seoul.co.kr
  • “월드컵 예선 남북전 제3국·제주도 희망”

    22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남아공월드컵 3차예선 6차전을 치를 예정인 북한이 끝내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경기를 갖자고 떼를 썼다. 대한축구협회는 10일 오후 북한 개성에서 남북축구 대결과 관련한 실무접촉을 가졌지만 북한이 제3국이나 제주 개최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날 협의에는 한국 대표단 단장으로 이회택 축구협회 부회장이, 북한에서는 손광호 조선축구협회 부위원장이 참석했다. 서울 경기에 민감한 북한은 이번에는 “현재 남측의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선수단 안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제3국 개최 카드를 빼어 들었다. 평양에서 열기로 했던 3차예선 2차전을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 불가’ 논리를 앞세워 중국 상하이로 옮겨 치른 북한이 서울 경기 역시 다른 곳에서 개최해야 한다는 억지 논리를 편 것이다. 한국 대표단이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미 지난 5월3일 공문을 통해 경기 장소 및 시간 등에 대해 양측 협회 및 경기감독관, 심판 등 대회 관계자에게 최종 통보했으므로 북측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음을 전달하자 북한은 또다시 경기 장소를 제주도로 하자고 수정 제안했고 한국측은 이마저 단호히 거부했다. 제주도가 경기를 하기에 좋은 장소이긴 하지만 서울이 안전하지 않다는 점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서였다. 이로써 회담은 종료됐고 북한은 이날 원래 논의할 예정이었던 북한 선수단의 입국 및 이동 편의, 숙소 문제, 훈련 문제 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 최종 입장을 조만간 서면으로 축구협회에 통보하기로 했다. 그러나 북한이 끝내 서울 경기를 거부하게 되면 FIFA가 몰수패를 선언할 수 있어 막무가내식으로 계속 버티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재일교포 여대생 강정자(姜靖子)양 -5분데이트(147)

    재일교포 여대생 강정자(姜靖子)양 -5분데이트(147)

    『한국인 의사와 결혼하고 싶다』고 한마디로 솔직하게 털어놓는 강정자양. 이화여대서 열린 재일교포 하기학교에 참가한 교포 여대생 가운데서 「픽·업」된 표지아가씨-. 『어쩌면 일본에서 듣던것과 그렇게 달라요』 8월16일 수료식을 끝내고 서울과 부산을 둘러본 강양은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렇지만 그쪽 언어 풍속이 몸에 배었으니…』조금 불안스러운 눈치. 1952년 5월22일생. 일본서 낳아서 그곳에서 자랐다. 「오사까」시에 있는 「하고로모」초급대학 가정과 졸업반이데 고국에 온것은 처음이다. 「오사까」시 교외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면서 회사고문을 맡고있는 아버지 강봉수(姜鳳秀)씨의 2남2녀중 셋째. 아버지는 일본 「게이오」대학과 청산학원을 마친 「인텔리」로 독립운동을 하느라 감옥 출입도 한 열렬한 애국자란다. 이번 귀국한 길에 삼촌 김영호(金榮皓)교수(이화여대)와 고모부 윤인호교수(서울대)를 비롯, 친척 어른들을 전부 찾아 뵙고 떠날 계획. [선데이서울 71년 8월 29일호 제4권 34호 통권 제 151호]
  • 개인 미디어의 힘

    개인 미디어의 힘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 둘째 날인 7일 저녁, 서울 세종로 청계광장에 천막 언론사 하나가 떴다. 천막엔 ‘시민기자단’이란 다섯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고, 안팎에선 같은 글귀를 새긴 푸른 완장 찬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갔다. 서로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은 이들은 DSLR(디지털 일안반사식) 카메라를 들고 각자 맡은 현장으로 달려갔다. 카메라 커뮤니티 ‘SLRclub’ 회원 150여명이 자발적으로 만든 이 기자단은 5월말부터 집회 현장 곳곳을 누비며 매 순간을 기록했다. 한 시민기자는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을 채증해 처벌근거로 삼는 것과 반대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경찰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채증해 시민을 보호한다.”며 활동취지를 밝혔다. ●현장의 사각지대 생생히 전달 바야흐로 ‘미디어 생태계’가 급변하고 있다. 기성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던 개인들은 촛불집회를 거치며 스스로 언론이 되는 동시에, 자신이 확보한 정보를 근거로 기성 언론보도를 평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신문·방송 등 기성 언론은 정보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놓고 타 언론사가 아닌 개인과 경쟁해서 이겨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촛불집회는 무엇보다 ‘미디어적 사건’이다. 제도권 언론의 입장에선 개인 미디어라는 힘겨운 경쟁자와 맞닥뜨리게 됐다.”는 말로 이 같은 현상을 요약했다.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개인 미디어 힘의 원천을 정보 장악력에서 찾는다. 촛불집회 내내 거리에선 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 휴대전화 카메라를 든 시민들이 독립적 미디어의 역할을 하며 기성 언론에 뒤지지 않는 ‘취재의 힘´을 보여줬다. 지난 1일 앳된 얼굴로 피 흘리는 모습이 인터넷에 공개돼 네티즌들을 안타깝게 했던 ‘애국소녀’(25·경일대 사진영상학부 4년)의 사진도 시민기자단의 작품이다. 보수언론이 괴담 확산의 ‘원흉´으로 지목했던 1인 미디어들은 제도권 언론이 외면해왔거나 접근하기 힘든 현장의 사각지대를 생생하게 전하며 기성 언론을 압도했다. 김 교수는 “인터넷에 공개된 정부와 제도권 언론의 과거발언과 기사를 네티즌들은 철저하게 검증해 앞뒤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밝혀낸다.”면서 “개인 미디어의 최대 장점은 불완전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검증 기능이 부여돼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시 대상으로 전락한 보수언론 감시의 주체였던 제도권 언론이 개인 미디어의 감시 대상으로 전락한 것도 큰 변화다. 개인 미디어 활성화란 동전의 앞면 뒤엔 제도권 언론에 대한 불신이 존재한다. 최 교수는 “시민들이 ‘배후세력’이란 말로 민의를 왜곡한 보수언론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면서 향후 보수언론은 개인 미디어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 충격에서 당분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도한 일반화와 지나친 감성주의 등 개인 미디어의 한계를 꼬집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확인없이 유포해 국민적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식의 비판이다. 그러나 변화된 환경에서 언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인 미디어의 긍정적 도전을 적극 받아들이는 한편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언론은 개인 미디어의 장점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변화된 상황에 적응을 꾀하겠지만 근본적인 신뢰회복을 위해 몸부림치지 않으면 개인의 위협을 절대 극복하지 못한다.”면서 “개인이 가진 정보의 양과 정확성이 기성 언론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언론이 왜곡된 정보를 진실인 양 호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언론정보학회는 12일 ‘이명박 정부의 소통, 민주주의의 소통-촛불과 미디어 공론장’이란 주제의 특별세미나를 개최, 촛불집회가 몰고온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 양상을 살핀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촛불발언’ 정선희 3개 프로 하차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관한 설화(舌禍)로 홍역을 치르는 개그우먼 정선희(36)가 MBC FM4U ‘정오의 희망곡 정선희입니다’를 비롯해 자신이 진행하는 3개의 MBC 프로그램 MC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정선희 소속사의 한 관계자는 6일 “정선희씨가 많은 시청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의미에서 문제가 된 라디오 방송을 포함해 ‘불만 제로’,‘이재용 정선희의 기분 좋은 날’에서 자진 하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정선희는 지난달 22일 ‘정오의 희망곡’에서 자전거를 분실한 청취자의 사연을 전하면서 “아무리 광우병이다 뭐다 해서 애국심을 불태우며 촛불집회를 하지만 환경오염을 시키고 맨홀 뚜껑을 가져가는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범죄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많은 네티즌들의 항의를 받았다. ▶MBC FM4U ‘정오의 희망곡 정선희입니다’발언 녹음파일 서울신문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크로스오버 아티스트’ 신문희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크로스오버 아티스트’ 신문희 교수

    깐깐 오월에 미끈 유월이라! 해가 길어 일하기 지루해 ‘깐깐오월’이라면, 보리 거두고 모 심고 할 일 많아 미끄러지듯 지나간다고 해서 ‘미끈유월’이다. 정열을 퍼붓듯 유월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지난주, 서울 강남의 노천 카페에서 한 여인을 만났다.‘크로스오버 아티스트’, 유럽에서는 동양의 훌륭한 성악가, 또 지도력이 뛰어난 젊은 성악교수로 잘 알려진 여인이다. 국내에서는 비록 ‘대중스타’는 아니지만 노래를 한번쯤 들은 사람은 특유의 음색과 창법에 귀가 절로 솔깃해진다. 이날따라 비도 오는데 여인에게 노래부터 한 곡 청했다. 잠시 주저하더니 ‘저 산자락에 긴 노을 지면 걸음걸음도 살며시 달님이 오시네, 참 아름다운 많은 꿈이 있는 이 땅에 태어난 행복한 내가 아니냐∼’ 대중음악, 드라마음악, 국악의 여운을 담으면서 파워넘치는 성악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제목이 ‘아름다운 나라’라고 했다. 노랫말에는 우리 민족,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녹여냈다. 우리나라의 자긍심을 심어줄 만한 노래로 ‘애국가’ 외에는 많지 않아 새로 곡을 만들었다. 여인은 특히 여창가곡의 인간 문화재 홍원기 선생한테 가곡을 전수받았다. 하여, 한 곡 더 부탁했다.‘어이∼, 아흐∼’라고 하면서 ‘꺾음새’와 ‘시김새’의 장단을 손바닥으로 무릎팍을 탁탁치면서 뱉어낸다. 그러다가 여인은 쏟아지는 비를 보더니 “비를 엄청 좋아하는데….”라고 흥에 겨워했다. 장난끼가 발동돼 여인에게 뚱딴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지금 내리는 비가 몇도인 줄 혹시 아시나요?” “???…, 아마 좀 차갑겠죠.” 대답 대신 노래를 불렀다. “비가 오도다, 비가 오도다∼.” 여인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썰렁한 ‘개그’를 하면서 기자생활을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이쯤해서 화제를 옮겼다.1981년 세계적인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와 미국의 전설적 포크음악 가수 존 덴버가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당시 둘은 ‘퍼햅스 러브(Perhaps Love)’를 1∼2소절씩 나누거나 함께 부르거나 하면서 각자의 개성과 영역을 잘도 넘나들었다. 당대 최고 음악가의 목소리에다 ‘사랑이란 아마도∼’의 서정적인 노랫말과 멜로디로 전 세계인의 가슴을 휘어잡았다. 마국차트 59위, 영국차트 32위까지 올랐다. 지금은 ‘파페라’라는 말이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성악가와 팝가수가 함께 노래한다는 것은 최대의 사건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이후 성악가가 팝뮤직을 부르고 팝가수가 성악을 부르는 일이 많아졌다. 국내에서는 대중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3년 ‘하여가’라는 제목으로 2집 앨범을 발표할 때 국악과 랩을 잘 조화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 성악가 조수미씨가 TV드라마 ‘명성황후’의 주제가 ‘나 가거든’을 불러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이처럼 ‘크로스오버 음악’이란 서로 다른 장르를 넘나들며 교차시킨다는 뜻이다. 완전히 뒤섞어서 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르를 결합하면서도 장점을 잘 살려내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융합’의 의미인 ‘퓨전’과는 조금 다르다. 요즘 ‘크로스오버 음악가’로 한창 이름을 날리는 여인, 앞서 대화를 나눴던 바로 우크라이나의 오데사국립음대 신문희 교수. 지난 2004년 국내에서 ‘무니’라는 이름으로 크로스오버 음악 1집 앨범(The Whispering of the Moony)을 발표하면서 이 분야의 선구자적 역할을 자임했다. 그가 최근 4년 만에 2집 앨범(The Passion)을 냈다.‘아름다운 나라’ 외에 1962년 나온 피터 폴&메리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500마일(500 Miles)’,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에서 ‘사랑의 괴로움을 그대는 아는가(Voi Che Sapete)’, 그리고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간다고 하지마오’ 등 동서양,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총 10곡을 내놓았다.1집이 월드뮤직에 비중을 많이 뒀다면 이번에는 우리 가사의 비중도를 높였다. 이에 대해 “크로스오버 장르에 익숙지 않은 대중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주목받는 까닭도 이같은 정열적 ‘시도’에 있지만 가곡과 성악을 전공하고 유럽 굴지의 음악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크로스오버 음악세계’로 뛰어들었다는 점이 더욱 이채롭게 다가온다. ▶크로스오버 음악가로 나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우리나라는 현재 크로스오버 음악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클래식이 보수적으로 계속 머물지 말고 이제는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러던 차에 성악가 조수미씨의 동생이 매니저를 맡아 2004년 제1집을 내게 됐지요. 평론가들은 ‘숨은 명반’이라고 높이 평가했지만 홍보가 잘 안돼서 그런지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또 한국적인 크로스오버를 해보자는 생각에서 한국인이 소름끼치도록 좋아하는 음악, 그런 생각에 ‘아름다운 나라’에 굿거리장단도 삽입했지요.” 크로스오버 음악이 국내에 채 도입되기 전 그가 1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에서 활발히 움직였다. 이로 인해 국내 모 언론사에서 정한 ‘한국을 빛낸 여류인사 50인’에 뽑히기도 했다. ▶크로스오버란 어떤 것인가요. “이미 세계 음반계는 클래식과 팝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IT산업의 발달도 이를 거들고 있지요. 크로스오버라는 장르로 두 음악을 초월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서로의 장점과 정체성을 살린다는 의미에서 파페라와 퓨전음악과는 분명 다릅니다.” ▶원래부터 음악적 재능이 탁월했나요. “열두살때 CM송을 죄다 따라부를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음악선생이 저한테 ‘여창가곡’을 해보라며 권했고 인간문화재 홍원기 선생한테 추천을 해줬습니다. 그러다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공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성악으로 돌아섰지요.”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법대에 진학하라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성악가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 친척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국제정치학 교수로 있어 다른 나라보다 영국행이 보다 쉽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음악적 연고가 없었던 그는 무작정 영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왕립음악학교에 찾아가 명성이 높았던 줄리 케너드 성악과 교수에게 제자를 삼아줄 것을 여러번 간청, 결국 허락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이 부분에 이르자 언론에 대한 일부 불만도 털어놨다. 자신의 이력 중 ‘왕립음악학교’와 관계된 부분인데 첫 인터뷰때 왕립음악학교 졸업으로 기사가 잘못 나가는 바람에 수정이 잘 안돼 신경이 거슬린다는 것. 성악은 왕립음악학교에 재직 중인 줄리 캐너드 교수를 사사했을 뿐 졸업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꼭 써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후 신 교수는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중앙음악학교에 입학, 성악 정규 코스 및 피아노과정을 3년만에 이수했다. 졸업 후에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오데사국립음대 교수에 최초의 동양인이자 역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 특히 세계적인 콜로라투라 성악가 조앤 서덜랜드가 심사위원을 했고, 또 성악가 조수미씨가 입상했던 빈센조 벨리니 콩쿠르(이탈리아 시칠리아)에 2002년 최연소 심사위원이 됐던 점이 유럽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평균 연령이 60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30대의 최연소 심사위원은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런 그가 이제 막 시작단계나 다름없는 국내 ‘크로스오버 음악계’에서 성악과 국악, 가요 등을 넘나들면서 어떻게 새로운 분야를 이끌어갈지 사뭇 기대된다. 그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이렇게 말했다.“한국이란 사회에서 대중적 이름이 없이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자 외로움이지요. 하지만 열심히 활동해서 우리나라의 음악발전은 물론 팬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하겠습니다.” 오는 11일 경기도 화성에서 열리는 세계요트대회에 초청돼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름다운 나라’ 등을 열창한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서울 출생 ▲1985년 창덕여고 1학년때 인간문화재 홍원기 여창가곡 사사 ▲87년 창덕여고 졸업 ▲90년 영국 왕립 음악학교 줄리 케너드 교수 성악 사사 ▲96년 이탈리아 중앙음악학교 졸업, 동 대학에서 성악·피아노 정규과정 이수 ▲2000년 우크라이나 오데사 국립음대 최초 동양인·역대 최연소 교수 ▲01년 오데사 국립 오페라단 지도교수 ▲02년 이탈리아 빈센조 벨리니 국제 콩쿠르 최연소 심사위원 ▲03년 2010년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 한국-캐나다 이민 40주년 기념공연 ▲04년 미 국회의사당 초청 최초 성악가 ▲05년 호암예술상시상식 단독 초청공연, 크로스오버 앨범 제1집 ‘더 위스퍼링 오브 더 무니´(The Whispering of the Moony) 발표 ▲07년 우크라이나 정부 동양인 최초 교육공로상 수상 ▲08년 한국인 우주인탄생 기념공연 스페이스 2008 오프닝·피날레 공연 ▲08년 5월 크로스오버 앨범 제2집 ‘더 패션´(The Passion) 발표 ▲현재 오데사 국립음대 교수,2014년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
  • ‘촛불발언’ 정선희 3개프로 하차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관한 설화(舌禍)로 홍역을 치르는 개그우먼 정선희(36)가 MBC FM4U ‘정오의 희망곡 정선희입니다’를 비롯해 자신이 진행하는 3개의 MBC 프로그램 MC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정선희 소속사의 한 관계자는 6일 “정선희씨가 많은 시청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의미에서 문제가 된 라디오 방송을 포함해 ‘불만 제로’,‘이재용 정선희의 기분 좋은 날’에서 자진 하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정선희는 지난달 22일 ‘정오의 희망곡…’에서 자전거를 분실한 청취자의 사연을 전하면서 “아무리 광우병이다 뭐다 해서 애국심을 불태우며 촛불집회를 하지만 환경오염을 시키고 맨홀 뚜껑을 가져가는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범죄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많은 네티즌들의 항의를 받았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기고] 현충일 아침에 생각한다/김양 국가보훈처장

    [기고] 현충일 아침에 생각한다/김양 국가보훈처장

    호국·보훈의 달 6월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무엇을 딛고 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었나를 생각해 보는 달이다. 우리에게는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외세의 침략으로 불안에 떨었던 때가 있었으며,6·25전쟁으로 더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던 때가 있었다.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만주의 거친 벌판이나,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름 없는 산기슭에서 장렬히 산화한 애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자유와 번영 속에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국민 모두가 흘린 땀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조국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모든 현상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적 부작용, 즉 도덕성의 상실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급격한 서구화에 따른 정신적 빈곤 속에서 이기주의 만연과 세대, 계층간 갈등의 벽이 높아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배금주의 풍조와 사회적 통합 해이의 결과라고 할 것이다. 선열들의 위국헌신 정신을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국가보훈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국가보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가 충분하지 못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애국지사나 호국용사들의 위상이 바로 서지 않고는 국민의 가치관과 사회정의가 바로 설 수 없음은 너무 자명한 이치다. 이분들이 국권회복과 국가수호의 주인공으로서 응당히 평가받고,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이 영예로운 것으로 존경 받을 때 국가안보가 튼튼해지고 우리의 미래도 밝아질 것이다. 선진국들이 하나같이 확고한 보훈의식과 발달된 보훈제도를 갖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로 광복의 기쁨을 안은 지 63년,6·25전쟁 발발 58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나라없는 설움과 전쟁의 참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되어가고 있다.58세의 초로가 6·25전쟁 발발 당시 겨우 태어났다. 민족의 비극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세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6·25를 단지 ‘역사’로만 객관화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그러나 6·25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이산가족과,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받고 있는 전상군경과 유가족들이 많이 있다. 그동안 많은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가발전 수준에 비해 시간이 갈수록 국가보훈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국가유공자의 고귀한 희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약해지고 국민들의 호국·보훈의식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정신이 없는 민족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는 세계의 역사 속에서 보아왔다. 그리고 한 민족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민족정신을 유지하고 계승할 수 있는 것은 국가라는 삶의 터전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생존은 곧 나의 생존이며, 그 무엇도 이 생존의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보훈정신을 잊지 않는 국민만이 새로운 시대가 주는 자유와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현충일 53주년을 맞는다. 전에는 현충일이면 국민들이 경건하게 머리 숙여 호국영령들께 묵념도 함께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틀만 연휴가 되면 필리핀이나 호주로 골프여행을 계획하고 행락 일정을 세우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현충일에는 국립묘지나 가까운 현충탑을 찾아 애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시간을 가져보자. 주위의 보훈가족을 찾아보고 조국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면 더욱 좋겠다. 김양 국가보훈처장
  • 안익태 첫 오케스트라 작품 ‘파스토랄레’ 악보 사본 발견

    안익태 첫 오케스트라 작품 ‘파스토랄레’ 악보 사본 발견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1906∼1965)의 첫 오케스트라 작품으로 추정되는 악보 사본이 발견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허영한(51) 교수는 “안익태가 유학했던 미국 필라델피아 시립도서관에서 지난 3월 그의 1936년 작품인 ‘파스토랄레’(Pastorale·전원곡) 악보 사본을 발견했다.”고 5일 밝혔다. 허 교수는 “지금까지 안익태의 최초 오케스트라 작품은 ‘한국환상곡’으로, 작곡 연도는 불확실하지만 연주 기록상으로는 1938년 2월 더블린에서 초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시립도서관에서 안익태 관련 자료를 찾던 중 이보다 1년 6개월가량 앞선 1936년 9월 부다페스트에서 안익태의 오케스트라 작품인 ‘파스토랄레’가 초연됐다는 기록과 악보 사본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또 당시 국내 언론에 부다페스트 공연의 연주곡명이 ‘방아타령’으로 소개된 이유에 대해 허 교수는 “‘파스토랄레’의 주제 선율이 민요인 방아타령과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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