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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산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중국산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생활 디자인으로 인기 중국산 휩쓸자 국내 제조업체 5곳도 안돼 태극기 부대도 중국산 흔드는 씁쓸한 풍경 규격 안 맞고 깃봉도 없는 짝퉁 저질 제품“40개 살 테니까 조금만 깎아줘.” 서울 중구 남대문의 한 문구점 앞에서 태극기 머리띠를 구입하던 한 어르신이 점원에게 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그가 고른 물건은 ‘made in china’. 즉 중국산 태극기다. 중국산임을 알고 사지는 않았겠지만 사실 선택권은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물건을 사며 제조국까지 유심히 살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는 박영효가 1882년 고종의 명을 받아 수신사로 일본에 갈 때 직접 만든 것을 처음으로 역사의 현장 속에서 우리 민족의 얼과 한으로 존재했다.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한 것이 바로 이 태극기다. 이처럼 숭고한 존재였던 태극기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우리 일상 속 문화 코드로 변모했고 정부는 관련 훈령도 개정한다. 속옷, 양말 등 일회용 소모품 등과 같이 태극기의 품위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물품에 대해 사용 범위를 제한하던 것을 삭제하고, “국기의 깃 면에 구멍을 내거나 절단해 사용하는 경우나 국민이 혐오감을 느낄 수 있도록 활용되는 경우”만 그 활용을 제한했다. 전에 없던 태극기 특수였지만 이때 중국산 태극기도 많이 흘러들어왔다.중국산 태극기는 순식간에 시장을 잠식해 나가며 태극기 산업을 위협했다. 국민들의 태극기 게양률도 계속 감소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태극기를 직접 제조하는 업체는 5곳이 채 안 된다. 폐수처리가 필요한 염색은 섬유 공단 안에서 해야 하므로 따로 맡기고 염색이 된 원단을 받아 공장에서 재가공한다. 재단, 재봉 등 대부분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며 등장한 태극기 부대는 국내업체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대규모 행사에 쓰이는 태극기는 중국산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국산은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만큼 질적인 차이도 크다. 태극기는 ‘대한민국국기법’에 따라 제작돼야 한다. 중국산이 이러한 규정을 지킬 리 없다. 규격에 맞지 않는 모양은 물론이거니와 깃봉도 없는 저질이 난무한다. 그야말로 짝퉁이다. 애국을 말하면서 짝퉁 태극기를 흔드는 장면은 못내 씁쓸하다. 올해는 3ㆍ1 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진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 3ㆍ1절을 앞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존중받고 널리 휘날려야 할 태극기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태극기 부대의 부정적 이미지 확산이 시민의 태극기 구매 욕구를 떨어뜨렸고 지자체 또한 태극기 사용에 있어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성수동에서 태극기 제작업체를 운영하는 정구택(69) 동영산업 대표는 ‘태극기에 정치적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이 걱정된다’며 ‘하루 빨리 태극기가 다시 사랑받길 바란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글 사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안양시, 생존애국지사 자택에 독립유공자 명패달기 운동 전개

    안양시, 생존애국지사 자택에 독립유공자 명패달기 운동 전개

    경기도 안양시는 3.1절을 앞두고 최대호 시장이 애국지사 김국주(95) 옹을 방문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21일 밝혔다.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진행되고 있는 생존애국지사 자택 명패달기운동의 일환이다. 지난 20일 최 시장은 경기남부보훈지청장, 광복회안양시지회장과 함께 김국주 옹의 자택을 방문 현관에 독립유공자 명패를 부착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가 예우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김씨 부부와 환담을 했다. 앞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보훈단체장 간담회도 개최했다. 1924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 씨는 광복군 소속으로 일제 강점기 막바지인 1944년 중국 쉬저우(徐州)지역에서 활동했다. 1945년에는 안후이성 하류지구 연락책임자로 임명돼 지하거점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상해지구 공작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광복군 활동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1977년 건국포장을 수상했다. 현재 안양에는 5746명의 국가유공자가 거주하고 있다. 시는 오는 2021년까지 3개년 사업으로 국가유공자 자택 명패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곽병찬 칼럼] 보수 야당이 ‘20년 집권’하려면

    [곽병찬 칼럼] 보수 야당이 ‘20년 집권’하려면

    썩 내키는 표현은 아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 말대로 지금 자유한국당에는 “더이상 개혁보수가 설 땅이 없어 보인”다. 내키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없어 보이’는 게 아니라 없기 때문이요, 둘은 지금까지 과연 한 번이라도 ‘개혁보수’의 둥지가 됐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5·18 광주항쟁 관련자들을 단죄하고, 5·18을 법적으로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신군부의 주력인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단행한 것은 지금의 자유한국당 당사에 사진이 걸려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은 것이니 ‘개혁’이 아니라 ‘혁신’이라는 표현도 아깝지 않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남북 대결 구조라는 민족의 정수리에 박힌 말뚝을 더 깊이 박아 버렸다. 이에 관한 한 그는 이전 군사정권 이상으로 수구적이었다. 1994년 남북은 남북 정상회담을 약속했다. 대결 구조를 변화시킬 획기적 계기였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마자 그는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는 등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심지어 북미 제네바 합의 이행에 딴지를 걸었다. 북한 정권의 붕괴를 기대한 것이지만, 이전의 군사정권보다 더 졸렬했다. 북한을 ‘핵 무장 외길’로 내몬 배경 가운데 하나였다. 정수리의 말뚝을 더 깊이 박았으니, 다른 외과적 개혁은 의미를 갖기 힘들었다. 시비를 거는 게 아니다. 한국의 보수정당에 포기할 수 없는 기대가 있어 하는 말이다. 기대라니? ‘비정상체제’를 끝내기 위한 전당대회가 비정상 집단에 끌려가는 자유한국당의 막장 꼴을 보고도 기대 운운하다니, 제정신인지 의심받을 수 있겠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정수리의 말뚝을 뽑는 데 꼭 필요한 보수정당의 평화 이니셔티브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수는 없다. 독일 기독교민주당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기민당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주도하에 이루어지던 냉전의 첨병이자 동독 및 동구권과의 체제 대결에서 선봉이었다. 1969년 동독에 대한 포용 및 동구권과의 관계개선(동방정책)을 내세운 사회민주당에 정권을 내줬음에도 1980년대 초까지 이런 대결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1982년에야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대부분 수용하면서 재집권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동구권이 기민당 정권을 신뢰하고, 동독 주민들이 서독과의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이런 기민당의 변화 덕분이었다. 기민당은 1982년부터 지금까지 부패 스캔들로 7년간 정권을 내준 것을 제외하고 30년째 집권하고 있다. 우리는 전쟁까지 치렀으니, 보수정당의 평화 주도권은 더 중요하다. 보수정당이 아니면 대결을 통한 북 체제의 파괴라는 환상과 석고처럼 굳어 버린 대북 적대감을 완화하거나 해소하기 힘들다. 보수정당의 지지가 없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화로운 서울 답방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그들의 협조가 있어야 대한민국 열차는 북한을 지나 유라시아로 뻗어 갈 수 있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국가 정책으로 설 수 있다. 한반도 평화 국면은 보수정당에게 기회다. 길은 사민당이 깔았지만 결실은 기민당이 거둔 것처럼 블루오션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진보세력 20년 집권의 꿈’을 이야기했다면, 보수정당은 30년 집권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기회다. 피하거나 거스를 수 있는 흐름도 아니다. 이미 피할 수 없는 대세다. 북미 협상은 이제 어느 한쪽도 발을 빼기 힘들게 됐다. 이승만부터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적대적 남북 관계를 이용해 정권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려 했던 타성 때문에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할 뿐이다. 정두언 전 의원이 말한 ‘집포당’(집권을 포기한 정당)의 행태는 그런 타성의 결과다. 자유한국당판 경기동부연합이라는 ‘한 줌도 안 되는’ 태극기부대에 얹혀 다니고, 유력 후보자가 그 눈치를 보느라 국회와 헌법재판소, 사법부 등 헌법기관의 의결과 결정을 부정하고, 김진태·김순례·이종명 등 ‘5·18 망언’을 입에 달고 다니는 자들이 당을 쥐락펴락하고…. 물론 숨어 있는 다수는 “우리가 대한애국당인가. 김진태 데리고 우리 당에서 좀 나가 달라”는 조대원 최고위원 후보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묻고 싶다. 보수정당은 집권할 의지가 있는가? 그러면 타성을 버리고 독일 기민당의 길을 가라. 20년 집권을 원하는가? 그러면 한반도 평화의 이니셔티브를 잡아라.
  • ‘김구의 비서’ 김우전 前 광복회장 별세

    ‘김구의 비서’ 김우전 前 광복회장 별세

    광복군 출신으로 광복회장을 지낸 애국지사 김우전(金祐銓) 선생이 20일 오전 8시 12분쯤 별세했다. 98세. 192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법학과에 재학 중 재일 학생 민족운동 비밀결사단체인 조선민족 고유문화유지계몽단에 가입해 활동했다.1944년 1월 일본군에 징병돼 중국으로 파병되자 부대를 탈출해 그해 5월 광복군에 입대했다. 그는 이어 중국 제10전구 중앙군관학교 분교 간부훈련단 한광반을 졸업한 뒤 곧바로 광복군 제3지대 소속으로 미국 제14항공단에 연합군 연락장교로 파견됐다.1945년 3월 한미공동작전계획(OSS 훈련)에 따라 미군 OSS(국방부 전략지원사령부) 본부에서 광복군 무전기술 교재와 한글암호문을 제작하고, 국내 독립운동가와의 연락 임무 등을 수행했다. 같은 해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의 기요 비서(기밀을 다루는 중요한 비서)에 임명돼 활동하다가 해방과 함께 귀국해 경교장에서 김구 선생의 개인비서로 일했다.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선생은 1992년 광복회 부회장, 1999년과 2015년 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 2003년 광복회장을 각각 맡았다. 그는 2003년 2월 광복회장 취임 이후 2004년 4월까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 월급 전액과 본인의 독립유공자 연금을 합친 돈 5000만원을 독립유공자 손·자녀 지원용 장학금으로 쾌척해 훈훈한 감동을 줬다. 선생은 ‘1948년 남북협상에 대한 역사인식의 부족과 왜곡’, ‘한국광복군과 미국 OSS의 공동작전에 관한 연구’,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에 관한 역사 재조명, ‘한국광복군의 OSS 특공작전’ 등 다수의 논문과 ‘김구통일론’, ‘김구선생의 삶을 따라서’ 등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2남 2녀가 있다. 발인은 22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빈소는 서울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이다. (02)2225-1004.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정 군사작전 5일 앞두고 日 패망…물거품 된 ‘자주독립의 꿈’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정 군사작전 5일 앞두고 日 패망…물거품 된 ‘자주독립의 꿈’

    4부 광복의 여명 : 충칭 시기 ③ 미완의 ‘대한민국’ <끝>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을 창설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5년 8월 7일 미국 첩보기관 전략사무국(OSS)과 한미 연합 군사작전을 최종 합의했다. 20일까지 한반도에 침투하기로 하고 출동 명령을 기다렸다. 하지만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임정으로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자주독립을 위해 쏟아부은 노력이 물거품이 돼 버렸다. ●임정에 너무나도 아쉬운 해방 김구(1876~1949)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광복군을 국내에 진입시키려고 했다. 영국에서 망명정부를 이끌던 프랑스 샤를 드골(1890~1970)이 레지스탕스 부대를 이끌고 파리에 입성했듯 임정도 광복군을 모아 서울로 들어가려고 했다. 미국 OSS와 한반도 진공을 추진하는 동시에 중국 산시성 옌안에 있던 김두봉(1889~1961)의 조선의용군, 소련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김일성(1912~1994)의 항일유격대 등과 손잡고 압록강을 넘어가려고도 했다. 임정이 실제로 미국, 중·소 한인부대와 연계해 대일전쟁을 수행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지금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해방 뒤인 1948년 3월 김구가 안창호(1878~1938) 10주기 추도식 때 한 말이다.“선생이여, 우리 조국이 해방된 것을 10분(100%)으로 보면 7분(70%)은 우리 애국 선열들의 피와 땀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최후의 3분(30%)이 우리 힘으로 되지 못한 까닭에 해방에 기괴한 내용이 담기게 됐습니다.” ●대만, 국제사회 미아 임정 도운 유일한 우방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굳어져 가던 1943년 7월. 임정 수뇌부가 중국 국민당 정부 총통 장제스(1887~1975)를 만났다. 김구 등이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주장해 달라”고 호소했고, 장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해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회담에서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1874~1965) 영국 총리의 반대를 물리치고 한국의 독립을 명문화했다. 당시 인도의 독립운동가로 훗날 총리가 되는 자와할랄 네루(1889~1964)는 한국을 “아시아 식민지 국가 가운데 열강에게 독립을 보장받은 유일한 나라”라고 부러워했다. 카이로 회담은 1914년 이후 일본이 점령한 영토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모인 자리였다.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된 한국은 논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장제스가 예외 조항까지 만들어 도왔다. 1932년 4월 윤봉길(1908~1932)의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를 보고 우리 민족의 항일 의지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국민당 정부(현 대만)는 국제사회에서 ‘미아’가 될 뻔한 임정을 마지막까지 지켜준 유일한 친구였다. 하지만 중국의 노력에도 미국과 영국, 소련 등 열강의 반응은 차가웠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임정을 한반도의 정식 정부로 승인하지 않았다. 루스벨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국의 독립과 임정의 승인은 별개다. 한국 독립운동 단체들이 분열돼 임정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다. 임정은 한반도와 연계가 없다. 중국이 임정을 승인하면 소련도 친소단체를 승인할텐데 이렇게 되면 연합국 내에서 마찰이 생겨날 수 있다.” 처칠도 임정을 인정하면 인도 등 영국 식민지들이 동요할 수 있다고 보고 반대했다. 실망스럽지만 임정 요인들은 모두 개인 자격으로 한국에 돌아와야 했다. 1945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임정 직원과 가족들이 차례로 귀국했다.●임정, 국제정세 못 읽고 선거불참…한독당 소멸 임정 인사들이 귀국하자 시민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김구의 거처이자 임정 청사 역할을 한 경교장(현 강북삼성병원)은 인파로 붐볐다. 1945년 12월 임정 인사들은 서울운동장(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환국 행사에 참석했다. 15만명이 몰려와 이들을 축하했다. 하지만 미 군정은 자신 이외의 어떠한 정부 활동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임정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 김구는 미 군정 규정을 어기고 임정을 사실상의 정부로 간주하려고 해 갈등을 빚었다. 직접적 도화선은 신탁통치 문제였다. 1945년 12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3개국 외상이 만나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결의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임정은 즉각 국무회의를 열고 반탁운동에 나섰다.앞서 임정은 1943년 영국과 미국이 한국을 국제 공동관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중국 충칭에서 ‘재중자유한인대회’를 열어 반대운동을 펼쳤다. 임정 연구의 권위자인 한시준(65)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해방 뒤 임정의 반탁운동은 충칭에서 국제 공동관리에 반대했던 연장선상에 있던 것”이라며 “일제가 패망하면 한국은 곧바로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 임정의 확고부동한 믿음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용옥(71) 한신대 석좌교수는 “당시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논의한 신탁통치안은 (임정이) 반대할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미소 공동위원회는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방안을 내놨다”며 “당시 전 국민이 일치단결해 신탁통치를 찬성했어야 했다. 그러면 분단도 일어나지 않았고 1948년 제주 4·3사건과 여순 민중항쟁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美군정, 비밀리에 임정 해체공작까지 임정은 1945년 12월 31일 ‘국자 1·2호’라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신탁통치를 강행하려는 미 군정 대신 자신들이 정부 역할을 맡겠다는 것이었다. 1946년 1월 1일 미군정 사령관 존 리드 하지(1893~1963)가 김구와 언성을 높여 싸운 끝에 상황을 수습했다. 이때부터 미 군정은 임정을 위험한 존재로 보고 협력 대상에서 배제했다. 비밀리에 임정 해체 공작도 개시했다.이후 김구의 여러 정치적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가 실시돼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졌다. 9월 9일 북한에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됐다. 38선을 경계로 국토와 민족이 둘로 나뉘었다. 임정 세력이 주축이던 한국독립당은 “남한만의 정부 수립에 반대한다”며 총선 참여를 거부했다. 제헌의회에서 정치권력을 얻지못한 한독당은 결국 세를 잃고 와해됐다. 당시 국제 정세와 한국사회 분위기를 제대로 읽지 못한 ‘패착’이었다는 평가가 많다.●주요 임정 지도자들 어두운 말로 주요 임정 지도자들의 말로도 불행했다. 1947년 7월 여운형(1886~1947)은 좌우 합작운동을 펼치다가 살해됐다. 김원봉(1898~1958)은 친일경찰 노덕술(1899~1968)에게 고문을 받은 뒤 월북했다. 그가 자신의 비서였던 중국인 학자 쓰마로(100·미국 거주)에게 보낸 편지에는 “북조선은 그리 가고 싶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남한 정세가 너무 나쁘고 (일부 우익들이) 나를 (죽이려고) 위협해 살 수가 없다”고 적혀 있었다. 한국전쟁을 1년 앞둔 1949년 6월 김구도 안두희(1917~1996)의 총탄에 스러졌다. 그의 나이 73세였다. ‘못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과거시험에 번번히 떨어져 이른바 ‘과거 낭인’으로 살았다. 1919년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임정 문지기라도 하겠다”고 상하이로 찾아가 명망가들이 떠난 이름 뿐인 정부를 끝까지 지켰다. 임정을 독립운동의 구심체로 되살리는 데 누구보다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꿈꾸던 민족단일국가의 염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미완의 건국’으로 남았다.●‘1919년 임정이 대한민국의 시작’ 분명히 그렇다고 임정이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48년 7월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1875~1965)은 취임 직후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를 썼다.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에 임정을 세운 1919년을 대한민국의 시작으로 보고 이를 계승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뉴라이트 등은 “대한민국이 1948년 건국됐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이 아니라) 미국의 힘으로 세워진 나라’라는 속내가 있다. 하지만 이들이 ‘건국의 아버지’로 여기는 이승만조차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 초대 내각 16명 가운데 자신을 포함한 5명을 임정 요인으로 채웠다.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1868~1953), 국회의장 신익희(1892~1956), 국무총리·국방부장관 이범석(1900~1972), 무임소장관 이청천(1888~1957) 등이다. 당시 정부도 한국 독립을 위한 임정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음을 알 수 있다. 1987년 국회는 ‘6월 항쟁’으로 얻어낸 9차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의 법통이 임시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재차 천명했다. 어떤 이들은 연합국이 해방을 가져다 줬다고 말한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일제를 이기지 못했고 국제사회도 임정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제패를 꿈꾸며 전 세계로 세를 넓혀가던 강대국 일본을 우리 혼자 막지 못했다고 해서 독립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또 연합국이 임정을 승인하지 않았던 배경에는 일본 항복 뒤 전리품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 그들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해방은 거져 얻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어느 나라보다도 오래 그리고 치열하게 일제와 맞서 싸웠다. 대한민국은 임정이 중심이 된 독립운동 세력의 길고 긴 투쟁의 산물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계명대 해외 봉사활동 펼쳐

    계명대(총장 신일희)는 이번 동계방학을 맞아 대대적인 해외봉사활동을 펼쳤다. 에티오피아(2018. 12. 30.~2019. 1. 11.)를 시작으로 태국(1. 3.~1. 15.), 콜롬비아(2019. 1. 9.~1. 23.), 필리핀(2019. 1. 13.~1. 25.), 인도네시아(2019. 1. 13. ~ 1. 26.) 등 5개국에 150여 명이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특히 콜롬비아는 최초로 국외봉사활동에 나선 곳으로 중남미에서 유일한 6.25 참전국인 콜롬비아에 나라를 지켜준 것에 대해 보답한다는 의미를 크게 담고 있다. 계명대는 지난해 같은 의미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봉사활동을 펼친 후 올해 두 번째로 에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을 가지기도 했다. 계명대가 콜롬비아에서 봉사활동을 펼 친 곳은 부에나비스타 시이다. 해발 1700m고지에 위치 이곳 작은 마을을 특별히 봉사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6.25참전 용사인 곤잘레스씨가 이 마을에 살기 때문이다. 90세가 넘은 곤잘레스 씨는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였으나, 방문단을 맞이하기 위해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본인의 자택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그러면서 타 지역에 살고 있는 자녀와 손주들을 모두 불러 계명대 방문단을 환영했다. 곤잘레스 씨의 집은 6.25전쟁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집안 곳곳 모든 벽면에는 당시의 사진들이 걸려있었고, 태극기와 콜롬비아 국기를 상시 게양하며, 당시의 모습들을 아직도 생생히 간직하고 있었다. 곤잘레스 씨는 “젊은 시절 비록 다른 나라이긴 하지만, 자유와 평화를 위해 피 흘리며 지켜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한국의 젊은이들이 나를 아직 기억해 주고 이렇게 찾아 준 것 만으로도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다”며 환대했다. 계명대 국외봉사단은 봉사활동 지역과 조금 떨어진 보고타 지역 국군학교내 참전용사비에 헌화하고 묵념의 시간도 가졌다. 소식을 접한 콜롬비아 군에서는 사관생도들과 의장대를 파견해 사열하고 애국가를 연주하며 계명대 국외봉사단을 맞이했다. 콜롬비아 국외봉사단 학생 대표인 손한슬(남, 26세, 경영학전공 4) 학생은“처음에는 단순히 참전용사비에 헌화만 하고 간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까지 맞이해 주는 것을 보고 오히려 감동을 받았다.”며, “오늘 이렇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이 이들이 목숨 바쳐 구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숙연해 졌다.”고 말했다. 이곳 참전용사비는 불국사의 다보탑 모양으로 만들어져 더욱 그 의미를 더하고 있었다. 봉사 본연의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인스띠뚜또 부에나비스타 학교에 학생들은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벽화와 교실 환경 개선 등 노력봉사와 함께 한글교육, 태권도, K-Pop 배우기 등 교육봉사도 병행해서 이루어졌다. 고지대에 위치한 학교를 연결하는 계단에 난간이 없어 어린 학생들의 낙상사고가 빈번했는데, 이번에 난간을 설치해 줘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시에라 인스띠뚜또 부에나비스타 학교 교장선생님은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이렇게 봉사활동을 한 적은 누구도 없었다”며 “첫 봉사를 한 사람들이 먼 한국의 대학생이라는 것에 감동을 받았고, 그들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감동을 받아 너무 감사하고 모두가 소중한 인연 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민주(22·여·유아교육과 3)씨는 “봉사기간 동안 마을 주민들과 너무 친해져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이름도 다 외울 정도로 정이 많이 들었는데, 헤어지려니 눈물이 절로 났다”며, “이곳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동양인들이 자기들을 도와준다는 것에 신기하게 생각하면서도 봉사활동 기간 내 환대해주며 우리를 맞이해줘 오히려 우리가 접대를 받고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김준교 ‘막말’ 사과문 보니…“당의 선배님들께 사죄”

    김준교 ‘막말’ 사과문 보니…“당의 선배님들께 사죄”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저 딴게 무슨 대통령이냐” 등의 막말을 해 논란을 일으킨 자유한국당 김준교 최고위원 후보가 20일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다. 김준교 후보는 이날 “대구 합동 연설회에서 젊은 혈기에 다소 정제되지 못한 표현과 말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이완구 전 총리님과 홍문종 의원님 그리고 당의 어르신과 선배님이 무례하게 느끼셨다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면서 “앞으로 좀 더 자중하고 더 나아진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자유한국당이 사는 길은 선명한 애국우파 정당으로 환골탈태하는 것”이라며 “그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 시민 분들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권에 실망한 중도층도 모두 우리 자유한국당에 몰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19대 대선은 원천 무효이고, 문재인 역시 대통령이 아니므로 제가 현직 대통령에게 막말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현직 대통령을 부정하는 태도를 유지하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당 내 비판에 대한 사과임을 분명히 했다. 앞서 김 후보는 지난 18일 2·27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문 대통령을 민족 반역자로 처단” “짐승만도 못한 주사파 정권” 등의 발언을 해 당 안팎에서 비난을 받았다. 김무성 의원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전당대회가 과격분자들의 놀이터가 되면 안된다”고 지적했고, 이완구 전 총리 역시 같은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당에 해로운 정도가 아니라 기본저긍로 민주주의 질서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1982년생인 김준교 후보는 서울과학고등학교와 카이스트(산업공학 학사)를 졸업하고 대치동 수학강사로 일했다. 김씨는 이회창 전 총리가 2007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사이버보좌역을 했고 2008년 18대 총선 때 자유선진당 후보로 서울 광진갑에 출마했다고 경력 사항에서 밝혔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사설] ‘태극기부대’와 결별 없이 자유한국당 미래 없다

    오는 27일 전당대회를 앞둔 자유한국당에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태극기부대’다. 김진태 후보를 지지하는 2000여명은 어제 대구·경북(TK) 합동연설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연설회 시작 1시간 전부터 “김진태”를 외치며 분위기를 돋웠지만,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등장하자 “김병준 나가라, 빨갱이”와 같은 원색적 표현도 불사했다. 최근 ‘5·18 폄훼’ 논란에 휩싸인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 징계를 김 위원장이 주도적으로 끌어낸 데 대한 불만 표출이다. 당비를 매달 1000원 3개월 이상 낸 책임당원으로 구성된 전체 선거인단 37만 8000명 중 태극기부대는 2%인 800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태극기부대가 전대의 표심을 좌우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들의 강력한 행동력과 조직력이 막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들이 전국 권역별 합동연설회마다 대거 참석해 욕설과 고성 등으로 전대 분위기를 흐리고 ‘세과시형’의 낡은 정치 행태로 정당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부정하는 이들 세력에 표를 얻기 위해 구애하는 후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청년을 대표하겠다며 최고위원에 도전하는 김준교 후보는 “저 딴 게 무슨 대통령이냐”는 등 보수의 품격을 찾아볼 수도 없는 발언은 물론 “이대로 가면 자유 대한민국은 북한 김정은이 독재하는 남조선 인민공화국이 된다”며 ‘문재인 탄핵’을 주장하는 등 극우적 발언을 쏟아냈다. 여권의 잇단 악재로 상승하던 한국당 지지율도 급락 반전했다. 리얼미터가 그제 발표한 이번 주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지난주 28.9%에서 3.7% 포인트 하락한 25.2%로 나타났다. 세 의원의 5·18 망언을 계기로 한국당 내 극우세력이 극대화하면서 중도 성향의 지지자들이 떠나는 것이다. 이제라도 건전한 보수세력의 통합을 위해서는 시대착오적인 극우 태극기부대와 결별해야 한다. 한국당이 중도층을 놓고 더불어민주당과 경쟁하지 않고 ‘박심’(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을 놓고 대한애국당과 다툰다면 집권과는 더 멀어진다.
  • [단독] 신채호 中망명 전 살았던 삼청동 집터 발견…표지석 설치한다

    [단독] 신채호 中망명 전 살았던 삼청동 집터 발견…표지석 설치한다

    사업회, 칠보사 앞 주차장 공터로 추정 새달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열어 검증 망명 전 대한매일신보에 이름·주소 적어 ‘집문서 분실…휴지로 처리’ 광고 내보내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 언론인으로 활동하다 순국한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집터로 추정되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표지석 설치가 추진된다. 이 집은 단재가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 주필과 황성신문 기자로 민족 정기를 진작하고 항일 투쟁을 벌이고, 항일 비밀결사조직 신민회와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하던 1905년부터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사단법인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이건흥 공동대표는 19일 “단재 선생은 1910년 조선이 국권을 상실하는 국치를 예감하고 자신이 살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가옥을 떠나 중국 칭다오로 망명했다”며 “현재 삼청동 칠보사 앞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터가 선생이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에 표지석을 설립하는 방안을 서울시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다음달 서울시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단재 선생이 실제로 살았던 곳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해 사실로 확인되면 표지석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신채호는 중국 망명 직전 주필로 있던 대한매일신보의 1910년 4월 19일자 3면에 ‘본인 소유 초가 6칸의 문권(文券·집문서)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분실하였기에 이에 광고하오니 쓸모없는 휴지로 처리하시오’라는 광고를 실었다. 광고 문안 뒤에 ‘경 북서 삼청동 이통사호 신채호 백’(京 北暑 三淸洞 二統四戶, 申采浩 白)이라고 자신의 주소와 이름을 적었다. 단재가 적시한 이 주소지는 현재 종로구 삼청동 2-1로, 중국 망명 이후 1912년까지 국유지였으나 그 이후 여러 사람의 소유를 거쳐 현재 한 불교재단법인이 소유하고 있다.단재의 며느리 이덕남(76)씨는 이 광고와 관련해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위해 재산과 가족, 목숨까지 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며 “시아버지 단재 선생도 본인 소유의 집을 휴지로 처리하라고 할 정도로 어떤 미련도 없이 중국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단재의 삼청동 가옥터가 발견됐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면서 “단재 선생은 역사서 ‘조선상고사’를 통해 민족주의 사관을 정립하고 언론인으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다가 중국 감옥에서 순국한 혁명적 독립운동가인데, 기념관은커녕 그를 기리는 표지석 하나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美 국기 맹세 거부한 11세 소년 체포...또 애국주의 논란

    美 국기 맹세 거부한 11세 소년 체포...또 애국주의 논란

    미국의 한 중학교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하고 교사와 논쟁을 벌이던 쿠바 출신 11세 학생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9일(현지시간)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 들어서 애국주의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 현장에서 헌법상 표현의 자유 논란이 재개된 상황이라 미 전역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플로리다주 레이크랜드 로턴차일스 미들 아카데미 6학년에 재학 중인 한 쿠바 학생은 지난 4일 국기에 대한 맹세(Pledge of Allegiance) 시간에 기립을 거부했다. 학급 보조교사가 나무라자 이 학생은 미국 국기가 인종차별적이라며 대들었다. 화가 난 교사는 “그게 그렇게 나쁘다면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말했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학생도 “난 여기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되받았다. 교사는 결국 대화를 포기하고 교무실에 연락했다. 학교 행정관과 교직원이 교실 밖으로 나갈 것을 요구했으나 학생은 거부했다. 교사는 이 과정에서 학생이 자신을 위협했다고 주장했으나 학생은 폭력을 쓰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결국 학생은 교내 지원 경찰관에 의해 연행됐다. 미 대법원은 1943년 수정헌법 1조를 근거로 학교가 학생들에게 국기에 경례하거나 서약을 낭독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학교 대변인은 논란이 격화할 움직임을 보이자 “학교는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면서 “보조교사가 그런 정책을 몰랐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학교측은 이 교사를 당분간 학급에 배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최근 국기에 대한 맹세를 둘러싸고 논쟁이 뜨겁게 일었다. 국기가 국수주의 정책과 인종차별을 상징한다는 주장 때문이다. 미프로풋볼(NFL) 선수 콜린 캐퍼닉은 2016년 8월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기 전 국민의례 시간에 기립 대신 무릎을 꿇는 시위를 벌였다. 다수의 선수들이 캐퍼닉의 시위에 동참하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트럼프 대통령 등도 앞장서서 캐퍼닉을 비난했다. 시위 이후 모든 프로풋볼팀과의 재계약이 불발된 캐퍼닉은 NFL과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자라 화장품 광고에 기미 가진 모델 기용, 중국 여성 욕보이는 것?

    자라 화장품 광고에 기미 가진 모델 기용, 중국 여성 욕보이는 것?

    스페인의 패션 브랜드 자라가 최근 새로운 화장품 광고에 기미를 가진 중국 여자 모델을 기용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중국인들은 중국 여성을 추하게 그리고 싶어하는 것이냐고 자라 쪽에 묻고 있다. 모델업계에서는 ‘징 웬’으로 통하는 리징웬은 새 화장품 시리즈 광고에 기미를 그대로 드러낸 얼굴로 등장해 중국인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에서 발행되는 영자 신문 글로벌 타임스는 기미 때문에 외모가 “독보적이게” 됐다고 지적했지만 중국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중국인이 기미를 갖기 힘들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그녀를 옹호하며 이 나라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더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광저우성 출신인 리징웬은 최근 5년 동안 모델계에서 잘나가고 있다. 캘빈 클라인과 H&M 등 유명 럭셔리 브랜드의 모델로 활약했다. 그녀는 이번 논란에 대해 반응을 하지 않았지만 기미가 불편하다고 털어놓은 적은 있다. 2016년 10월 패션잡지 보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렸을 때 정말 싫었다. 왜냐하면 아시아인들은 보통 갖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며 “고교 때는 늘 감추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괜찮다. 좋아하니 됐다”고 말했다. 깨끗하고 말간 피부는 수십년 동안 중국 뿐만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서 더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그녀가 자라의 광고 시리즈에 등장한 것은 중국판 웨이보 등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중국인에 대한 중상이나 명예훼손이란 성난 표현도 등장했고 “기미가 잔뜩 있고 파이 모양 얼굴을 가진 아시아 모델을 기용하는 것은 서구인에게 아시아 여성에 대한 인상을 잘못 심어 인종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는 이마저 있다.중국의 유튜브에 해당하는 피어(Pear) 비디오는 자라 대변인과의 인터뷰를 전했는데 이번 광고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것이지 중국을 특정해 내놓은 것이 아니라며 “스페인 사람들의 미학은 다르다. 우리 모델들은 모두 순수한 얼굴로만 사진에 나온다. 그래서 사진이 다 똑같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중국인들로부터 리징웬이 놀림을 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지적을 하는 이도 있었다. 중국인의 열등감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것에 대한 관점을 더 폭넓게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부 누리꾼들은 중국 정부의 애국심 지침 때문에 해외 브랜드의 광고에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과격한 주장을 늘어놓는 것 아니냐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런데 자라의 광고 캠페인은 지난해 럭셔리 브랜드 돌체 & 가바나가 중국 모델이 젓가락으로 피자를 먹는 광고 사진을 내보내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것과 여러 모로 비슷하다고영국 BBC는 18일(현지시간) 지적했다. 문제의 모델 주오예는 나중에 이 광고에 얼굴을 내민 것이 “커리어를 망칠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한 이용자는 기업이나 개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이 중국인 전체를 모독하는 것으로 확산되는 트렌드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 역시 열등감의 발로로 보인다는 것이다. 돌체 & 가바나 사건 이후 “외교적 갈등까지 비화됐는데도” 이런 광고들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이런 트렌드를 파악한 광고 캠페인이 의도적으로 겨냥한 것이란 지적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도 “과잉대응”일 뿐이라며 “우리 동포 중 일부는 그다지 애국적이지 않으며 그들은 단지 (자라를 겨냥한) 포위 공격에 참가함으로써 우리 조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고 싶어할 따름”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강남에서 시작한다

    #3·1운동 100주년… #강남에서 시작한다

    서울 강남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빛 날려라! 태극기’ 캠페인을 한다고 18일 밝혔다. 구 관계자는 “전 구민과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휴대전화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캠페인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스마트폰 배경화면을 태극기로 물들이는 ‘디지털 태극기 게양 캠페인’을 한다. 디지털 태극기 인증 사진을 찍은 후 해시태그(#빛날려라_태극기, #내손안의_태극기, #삼일운동_100주년, #강남에서시작한다)를 달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하면 된다. 손가락을 이용해 3과 1을 표시하고 인증하는 ‘핑거사인’ 캠페인도 곁들인다. 젊은이들이 쉽게 동참할 수 있도록 네이버와 유튜브, 트위터 등을 통해 행사 내용을 알린다.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와 펀데이코리아네트웍스의 커뮤니티를 통해 지역 내 거주 외국인들의 참여도 추진한다. 태극 엠블럼도 제작됐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남과 북이 하나 돼 3·1절 100주년의 문을 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디지털 태극기와 엠블럼은 인스타그램(www.instagram.com/gangnam_3.1)을 통해 내려받을 수 있다. 구는 올 3·1절 기념행사를 1일 밤 12시 개최한다. 삼성동 코엑스 앞 SM타운 외벽에 설치된 국내 최대 전광판(가로 82m·세로 22m)을 비롯해 32개 옥외전광판에 31분간 태극기를 띄운다. 구 관계자는 “1919년 들불처럼 번졌던 그날의 함성과 애국의 물결이 어둠에서 빛으로 재현된다”고 했다. 정순균 강남구청장은 “이번 행사는 100년 전 기미년 만세운동을 SNS상에 구현하고 이 땅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획됐다”며 “단순히 태극기 게양에 머물렀던 3·1절 기념행사를 강남만의 문화적 자산으로 자랑할 수 있는, 뜻깊은 축제로 디자인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들의 100년 전 뜨거운 함성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들의 100년 전 뜨거운 함성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한다면,/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하략)’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시인인 심훈(1901~1936)은 시 ‘그날이 오면’에서 조국의 광복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노래했다.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심훈처럼 독립을 간절히 염원했던 선열들의 항일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문화재청이 마련한 특별전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이다. 이번 전시는 19일부터 4월 21일까지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제10·12옥사에서 열린다. 1910년 경술국치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까지 긴박했던 당시 상황과 선열들의 발자취를 재조명하는 자리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18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매천 황현 선생의 유물,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 및 의거자금 송금증서 등 살아있는 자료들을 통해 항일 독립의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전시는 도입부를 시작으로 총 3부로 구성된다. 도입부에서는 조선말기 우국지사 매천 황현(1855~1910)의 유물이 눈에 띈다. 1910년 경술국치에 항거하는 황현의 결연한 뜻을 담은 칠언절구 4수의 한시 ‘절명시’를 비롯해 황현의 후손들이 100년 넘게 소장해온 또다른 자료 ‘사해형제’(四海兄弟)와 신문 자료를 모아놓은 ‘수택존언’(手澤存焉) 등이 최초로 공개된다. 특히 ‘사해형제’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한용운이 황현의 죽음을 기리며 쓴 애도시 ‘매천선생’(梅泉先生)이 수록돼 있어 눈길을 모은다. 홍영기 순천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한용운이 1913년 ‘조선불교유신론’을 간행한 뒤 전국 유명 사찰을 순회하며 강연을 했다”면서 “구례 화엄사에 갔을 때 황현의 동생을 만나 이 시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1부 ‘3·1운동, 독립의 꽃을 피우다’에서는 등록문화재 제730호인 ‘일제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를 만나볼 수 있다. 안창호, 윤봉길, 유관순, 김마리아 등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 4857명에 대한 신상카드가 소개된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지역 3·1운동 수감자와 여성 수감자의 활동 상황도 살펴볼 수 있다. 지난해 각각 등록문화재 제713호와 제738호로 등록된 이육사의 친필 원고 ‘편복’과 ‘바다의 마음’도 전시된다.2부 ‘대한민국임시정부, 민족의 희망이 되다’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한 다양한 유물이 소개된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조소앙이 ‘삼균주의’(三均主義)를 바탕으로 독립운동과 건국의 방침 등을 정리한 등록문화재 제740호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과 두터운 천 위에 일본 국왕을 처단할 의지를 맹세한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이다. 나라의 광복과 환국의 긴박했던 상황을 조명하는 3부 ‘광복, 환국’에서는 백범 김구가 1949년에 쓴 붓글씨 ‘신기독’(愼其獨·‘홀로 있을 때도 삼가다’는 뜻)과 1945년 11월 초판 발행된 등록문화재 제576호 ‘한중영문중국판 한국애국가 악보’가 공개된다. 다만 문화재청은 유물의 보존 환경을 고려해 복제본을 전시하기로 했다. 전시 개막일인 19일과 3월 1일, 4월 11일에만 유물 원본을 전시한다. 이밖에도 문화재청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22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항일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활용’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열고, 3월 1일부터 31일까지는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실에서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가제)을 선보일 예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김병준 향해 “XX놈아” 욕설·야유 쏟아진 한국당 연설회

    김병준 향해 “XX놈아” 욕설·야유 쏟아진 한국당 연설회

    오는 27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구에서 18일 열린 대구·경북(TK) 합동연설회에서 김진태 당 대표 후보를 응원하는 지지자들이 김병준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욕설과 야유를 퍼부었다. 이날 대구 엑스코 행사장에서 열린 전당대회 후보 TK 합동연설회에서 김 위원장이 등장하자 김 후보를 응원하는 피켓을 든 지지자들과 일부 당원들이 야유를 보냈다. 피켓에는 ‘진태없이는 진퇴양난’, ‘세대교체 혁명 미래의 아이콘’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들은 김 위원장을 향해 “XX놈아” 등의 욕설과 “민주당으로 돌아가라”, “김병준 나가라”, “빨갱이” 등과 같은 거친 말들을 반복적으로 쏟아냈다. 김 위원장이 “조용히 해달라. 여러분들이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알고 있다”면서 입을 뗐지만 고성은 잦아들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굳은 표정으로 마이크를 쥔 채 1분 간 연설을 중단했다. 이후 사회자가 “김 위원장이 여러분을 뵈려고 일부러 왔다. 여러분 마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상황 정리에 나섰다. 하지만 소용없었다.결국 김 위원장은 김 후보 지지자들로부터 계속 야유를 받으면서도 연설을 이어갔다. 김 위원장은 “이번 전당대회는 자유한국당의 새출발을 다짐하는 매우 중요한 디딤돌”이라면서 “당이 새롭게 태어나서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막아내야 한다. 우리는 정말 힘든 고통의 시간을 넘어 오늘 이 자리까지 왔다”고 밝혔다. 김 후보 지지자들은 조대원 최고위원 후보에게도 야유와 욕설을 퍼부었다. 조 후보는 지난 15일 대전에서 열린 호남·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 “여러분들이 ‘김진태, 김진태’ 외치는데 우리가 무슨 대한애국당인가. 여러분들은 우리 당을 살리는 게 아니라 우리 당을 망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반면 청년최고위원 경선에 나선 김준교 후보는 지난 연설회에 이어 이날도 ‘문재인 탄핵’을 주장했다. 김준교 후보가 ‘문재인 탄핵’을 외칠 때마다 객석에선 “문재인을 탄핵하라”고 호응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佛경찰 독립운동가 서영해 사찰 보고서 첫 확인

    佛경찰 독립운동가 서영해 사찰 보고서 첫 확인

    1920∼1940년대 프랑스에서 유럽 열강들을 상대로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함을 알린 독립운동가 서영해(1902∼1956년 실종)에 대한 프랑스 경찰의 사찰 보고서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재불 독립운동사학자 이장규씨(파리7대학 한국학 박사과정)와 파리 7대 마리오랑주 리베라산 교수는 최근 프랑스 경찰문서보관소에서 1936년 11월 23일 작성된 경찰의 서영해 사찰 문건을 찾았다고 17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밝혔다.이 문서에는 서영해의 출생 사항(1904년 부산 출신의 독신 한국인), 프랑스 입국 시점(1920년 12월 13일), 파리에서의 언론·정치활동 등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특히 서영해가 1928∼1929년 잡지 ‘유럽’(L‘Europe)과 문학잡지 ‘세계’(Monde)와 협력했다고 언급한 것과 ‘반(反)파쇼반전투쟁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점이 눈에 띈다. 반파쇼반전투쟁위원회는 프랑스 작가 앙리 바르뷔스가 설립해 1933∼1939년 활동한 진보성향 지식인들의 단체로 추정된다. 경찰은 보고서에서 “(서영해의) 정치적 관점에서 주목할만한 다른 것은 없었고, 프랑스에 대한 태도도 괜찮다”고 평가했다. 파리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통신원으로 활약했던 서영해에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中 ‘애국주의 영화’ 3년째 흥행가도

    中 ‘애국주의 영화’ 3년째 흥행가도

    中 공산당 ‘애국심 고취’ 검열 영향2017년부터 3년째 중국 영화 박스오피스의 수위를 애국주의 영화가 점령하고 있다. 2017년 ‘전랑2’는 무려 56억 7874만 위안(약 8500억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지난해에는 ‘홍해행동’이 중국 전체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17일 중국 영화계에 따르면 최대 성수기였던 올 설 연휴에는 ‘전랑2’를 통해 중국 대표 배우로 떠오른 우징(吳京)이 특별 출연한 ‘유랑지구’가 20억 위안이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유랑지구’는 ‘전랑2’를 뛰어넘는 50억 위안 이상의 흥행을 기대하고 있다. ‘전랑2’와 ‘홍해행동’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테러 위험 속에서 민간인을 구해낸다는 내용이다. 중국 최초의 공상과학(SF) 블록버스터인 ‘유랑지구’는 2015년 동양인 최초로 과학소설에 수여하는 휴고상을 받은 류츠신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휴고상을 수상한 류의 장편소설 ‘삼체’는 한국어로도 번역됐다.‘유랑지구’의 내용은 태양의 노화로 인류가 모두 지하도시에 거주하게 되는데 이어 태양계 최대 크기 행성인 목성과 충돌 위기를 맞은 지구를 중국인의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구해낸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애국주의 영화가 흥행하는 이유는 중국 공산당의 검열 때문으로 분석된다. 영화에 대한 감독 업무가 지난해부터 광전총국에서 공산당 중앙선전부로 옮겨가면서 훨씬 강력한 검열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8일부터 500만 위안 이상 제작비가 투입되는 영화와 인터넷 드라마 제작자는 당국에 장르, 내용, 제작비용 등을 촬영 전 신고해야 한다. 중국 영화를 세계에 알린 5세대 영화감독 대표주자인 장이머우 감독의 신작 ‘일초’는 최근 ‘기술적인 이유’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상영이 취소됐다. 중국에서 ‘기술적인 이유’는 공산당의 검열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관용어법으로, 장 감독의 신작은 중국 공산당이 공과 과가 모두 있다고 규정한 문화대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5세대 감독들의 영화는 1980년대 세계 영화계에서 큰 호응을 받았지만 내부에서는 중국의 궁핍한 현실을 다뤘다는 이유로 탄압 대상이 됐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유관순 서훈 격상’ 딜레마에 빠진 정부 정책

    ‘유관순 서훈 격상’ 딜레마에 빠진 정부 정책

    “유 열사는 대표 여성독립 운동가… 저평가 우려”“이름 없는 유관순 수없이 많은데… 형평성 훼손”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유관순(1902~1920) 열사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가 ‘이번 3·1절을 맞아 유 열사의 서훈을 상향 조정하면 국민께 좋은 선물이 될 것‘’라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는 보도(서울신문 2019년 1월 28일자 1면)가 나오면서부터다. 유 열사의 고향인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 시위를 주도하며 일제의 억압 통치에 저항했던 그의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하지만 학계의 반응은 매우 신중하다. 유관순이 우리나라 독립운동계를 대표할 인물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훈을 높여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이 문제를 두고 국회에서 토론회까지 열렸지만 만족할 만한 해법이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유 열사가 갖는 상징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당위와 ‘국가 상훈제도의 엄밀성과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빅데이터 인지도 4위… 안중근 수준 돼야” 그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3·1운동의 상징적 존재임에도 서훈은 건국훈장 5단계 가운데 3등급에 그쳐 꾸준히 저평가 논란이 제기됐다. 지난 13일 홍문표 자유한국당 의원실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유관순 열사 서훈등급 격상을 위한 국회 대토론회’에서 시민들은 유 열사에 대한 서훈 격상 요구를 쏟아냈다. 토론장을 가득 메운 청중은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로 시작하는 유관순 노래(강소천 작사, 나운영 작곡)를 제창했다. 유 열사의 서훈 격상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홍 의원의 개회사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신을 ‘유 열사의 이화학당 36년 후배’라고 소개한 박인숙 유관순정신계승사업회장은 “유 열사의 희생정신은 인권 존엄의 영웅 정신”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유 열사의 서훈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갖는 상징성에 비해 등급이 너무 낮아 건국훈장 1·2등급만 받는 대통령 헌화도 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유 열사의 인기는 매우 높다. 지난해 국가보훈처가 최근 5년간 뉴스·블로그·트위터 등 빅데이터 139억건을 분석한 결과 유관순은 모두 38만 6844번 언급돼 안중근(1879~1910·106만 5844번)과 김구(1876~1949·64만 8084번), 윤동주(1917~1945·56만 1228번)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여성 독립운동가 중에서는 압도적인 1위다. 유 열사가 서훈된 1962년은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이 5·16 쿠데타(1961) 뒤 정권 정당화 기틀을 마련하고자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건국훈장을 수여하기 시작한 때다. 당시 문교부 산하 공적조서위원회는 저명한 독립운동가 204명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와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저격한 안중근, 상하이 홍커우공원에 폭탄을 던진 윤봉길(1908~1932) 등이 1등급 훈장을 받았다. ●“독립운동 평가 여성에겐 유독 박해” 유관순은 1902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감리교 선교사 엘리스 샤프(1871~1972)의 소개로 1915년 서울 이화학당에 입학했다. 1919년 발발한 3·1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됐다. 그는 모진 고문에 방광이 터지는 중상을 입고 고통받다가 1920년 9월 서대문 형무소에서 1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공적 조서를 보면 그가 옥중에서도 만세를 부르는 등 애국정신이 남달랐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 서훈 공적 심사는 수형 기간과 독립운동 성격 등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유 열사가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활동 기간이 짧았고 당시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이들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해 인지도에 비해 다소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도 이 점을 지적했다. 유 열사를 비롯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공훈이 대체로 낮게 평가됐다는 것이다. 당시 여성이 독립운동 지도자로 부각되기 어려웠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고 독립운동 리더급 인물 중심으로 서훈 대상자를 발굴한 탓에 여성 운동가들의 공적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껏 1등급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여성은 중국인 쑹메이링(1897~2003)이 유일하다. 대만 총통 장제스(1887~1975)의 부인으로 한국광복군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1966년 서훈됐다. 아직까지 국내 여성 독립운동가 중 1등급 서훈을 받은 이는 없다. 남자현(1872~1933)이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아 가장 높다. 그는 3·1운동 당시 중국 둥베이(만주) 지역으로 건너가 무장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동했다. 일본군 장교를 암살하려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영화 ‘암살’(2015)에서 전지현이 맡았던 ‘안옥윤’이 그를 모델로 한 것이다. 지난해 말까지 독립유공 서훈을 받은 여성은 모두 357명이다. 이 가운데 쑹메이링과 남자현을 뺀 나머지는 3등급 이하다. 심 소장은 “유 열사의 훈격 상향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동시에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공로도 재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상훈법에 따르면 일단 정해진 서훈은 조정될 수 없다.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공적이 추가로 발굴돼 새로 추천을 받지 않는 한 유 열사의 서훈 격상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두 가지 해법을 내놨다. 하나는 상훈법을 개정해 후대에 역사적 평가가 달라졌다면 서훈을 다시 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홍 의원을 비롯해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또 하나는 기존 상훈법을 바꾸지 않고 유 열사의 서훈만 올리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지난달 박완주 민주당 의원이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학계 “당시 ‘제 2의 유관순’ 수없이 많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그의 서훈을 높이는 것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저 국민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정확한 근거 없이 훈장 등급을 높이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가 유 열사의 서훈을 높여야 한다는 쪽으로 치우치자 역사학자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은 “토론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윤 전 총장은 “정치인들은 (유 열사의 서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학자는 아니다. 학계에선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객석에서 “방금 한 말에 대해 사과하라”는 야유가 쏟아졌다. 반대로 일부 시민은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왔더니 토론회 주최 측이 사실상 답을 정해놨더라. 이것이 무슨 토론회냐”며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이 문제를 냉철한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17일 “1919년 3월 1일 당시 일제에 항거하다가 사라져 간 ‘유관순’ 같은 학생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면서 “한국 최초의 여성 의병지도자로서 25년 넘게 항일활동에 전념한 윤희순(1860~1935)도 5등급인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데 그쳤다. 상징성 차원에서 유 열사의 서훈만 상향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3·1운동 정신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유관순이 ‘한국의 잔다르크’로 불릴 만큼 독립운동의 대표적 인물이 된 데에는 이화여대의 대대적 홍보가 결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가 대한민국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3·1운동 직후가 아니다. 해방 뒤 친일파 척결 논의가 시작된 1948년 9월부터다. 이때 제헌의회가 친일파 처벌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가동해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 교장 김활란(1899~1970)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는 제자들에게 위안부 지원을 독려할 정도로 일제의 충실한 ‘나팔수’였다. 반민특위가 그를 처벌하려고 하자 이대 측은 ‘친일학교’ 오명을 쓰게 될까 봐 걱정이 컸다. 학교 이미지를 쇄신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수소문 끝에 학교 동문 유관순의 사례를 발굴했다. 이대가 그를 통해 학교의 친일’ 이미지를 세탁하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만약 유 열사가 이화학당을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지금까지도 무명의 독립운동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서훈 논의에는 이런 정치적·역사적 배경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형목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도 “유 열사를 선열로서 기리겠다는 것은 얼마든지 반길 일이지만 훈격을 바꾸겠다는 것은 형평성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일”이라면서 “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쏟아부은 석주 이상룡(1858~1932)도 3등급이다. 유관순을 높이면 이런 분들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것이다. 모든 체계가 뒤집히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유관순 서훈 승격 논란을 계기로 모든 독립유공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여 전면적 재검토에 나서야 주장도 나온다. 서훈 승격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부풀려진 공적에 대한 강등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원론적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 “반대 입장은 아니지만 신중해야” 이날 토론회에 정부 측 참석자로 나온 황후연 국가보훈처 공훈발굴과장은 정부가 독립유공자 포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설명했을 뿐 유 열사의 서훈 상향 조정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변석영 행정안전부 상훈담당 사무관은 “정부가 마치 유 열사 상훈 승격을 반대하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공무원 역시 유관순을 배우고 자랐다. 신중하자는 것이지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검찰, 문 대통령에 “이런 미친 XX” 막말 조원진에 ‘무혐의’…이유 보니

    검찰, 문 대통령에 “이런 미친 XX” 막말 조원진에 ‘무혐의’…이유 보니

    지난해 4월 남북정상회담 직후 열린 보수·우익 집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이런 미친 XX”라고 지칭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한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에게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했다. 이 고발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형진휘)는 조 의원에게 지난해 말 무혐의 처분을 했다고 17일 밝혔다. 조 의원은 남북정상회담 다음 날인 지난해 4월 28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서 문 대통령을 가리키며 “핵 폐기는 한마디도 안 하고 200조를 약속하는 이런 미친 XX가 어딨나. 이 인간이 정신이 없는 인간 아닌가. 미친 X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 김정숙 여사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향해서는 “김정은 위원장 기쁨조”라고까지 말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5월 3일 조 의원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고발 전날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판문점 선언’에는 200조니 몇 조니 이런 돈에 관한 정의가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허위사실이며 곧 문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고발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은 사건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수사하도록 지휘했다. 경찰은 문제가 된 조 의원의 발언이 ‘의견 진술에 불과하다’면서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되려면 해당 사실이 허위라는 인식과 명예를 훼손시키려는 고의성이 인정돼야 하는데 조 의원의 고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미친 XX’ 등 욕설의 경우 모욕죄에 해당할 수 있지만, 모욕죄는 친고죄라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하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김진태 데리고 나가 달라” 일침 날린 한국당 최고위원 후보

    “김진태 데리고 나가 달라” 일침 날린 한국당 최고위원 후보

    오는 27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열린 자유한국당 첫 합동연설회에서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조대원 후보가 김진태 당 대표 후보를 응원하는 지지자들과 일부 당원들을 향해 “김진태를 데리고 당을 나가 달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 충청·호남권 합동연설회’가 열렸다.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김진태 의원의 지지자들은 일찌감치 체육관을 찾아 무대 앞 쪽에 자리를 잡고, 김 의원을 향해 쉴새 없이 ‘김진태’를 연호했다. 당 대표 후보로 나선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 의원의 정견발표가 끝나고 최고위원 후보들의 정견발표가 이어졌다. 조 후보는 작심한 듯 “참으로 답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운을 뗐다. 조 후보는 “뉴스를 보니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 지지율은 2%p 올라가고 우리 당 지지율은 3.2%p 빠졌다. 누구 때문에 그런 것인가”라면서 “여러분들이 김진태, 김진태 외칠 때 저는 속으로 뭐라고 생각했는 줄 아느냐. ‘그래. 김진태 데리고 좀 우리 당을 나가달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김진태, 김진태’ 외치는데 우리가 무슨 대한애국당인가. 여러분들은 우리 당을 살리는 게 아니라 우리 당을 망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김 의원 지지자들과 일부 당원들 사이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하지만 다른 당 대표 후보를 지지하는 당원들은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환호와 야유가 뒤섞인 모습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 8일 같은 당의 이종명 의원과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라는 이름의 공청회를 공동 개최했다. 하지만 이 공청회에서 이종명 의원이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매도하고, 같은 당의 김순례 의원이 5·18 유공자들을 괴물집단으로 폄훼해 논란이 됐다. 논란이 커지자 자유한국당은 지난 14일 이종명 의원을 제명했다. 반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김진태 의원과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김순례 의원에 대한 징계는 유예했다. 앞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1~13일 전국 유권자 1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같은 날 공개됐다. 이번 조사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2.5%p다. 이번 조사에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3.2%p 떨어진 25.7%로 조사됐다. 지역별로 보면 특히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울산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크게 떨어졌다. 또 60대 이상과 20대, 학생과 노동직 유권자들 사이에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하락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黃 “보수 통합” 吳 “친박 탈피” 金 “강한 우파”

    자유한국당의 2·27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선거운동 시작 첫날인 14일 “총선 승리를 위해 빅텐트에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내년 총선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화두가 된다면 필패”라며 황 전 총리와 김진태 의원을 견제했다. 황 전 총리는 이날 충청·호남권 합동연설회에서 “내년 총선에서 압승하기 위해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가 바로 통합”이라며 “자유우파 진영 모두가 한국당의 빅텐트 안에 똘똘 뭉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책 공감대를 토대로 진정한 통합을 이뤄 가는 ‘대통합 정책 협의체’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에게는 챙겨야 할 사람도, 계파도 없다. 한국당이 저의 첫사랑이다”고 강조했다. 오 전 시장은 중도층·부동층 표심에 적합하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큰절을 한 뒤 연설을 시작한 그는 “생계를 챙기고 곳간을 채우는 민생지도자로서 합리적 개혁보수주자로서 수도권, 중부권 총선 승리를 이끌겠다”고 했다. 오 전 시장은 특히 황 후보에 대해 “공안검사였고, 스스로 최대 성과를 통합진보당 해산이라고 한다”며 “강성보수로는 무당층의 관심을 얻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제 박 전 대통령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용도 폐기하자는 뜻은 아니다”라면서 “내년 선거에서도 박 전 대통령이 화두가 된다면 국민 눈에는 불행했던 과거가 떠오르기 때문에 우리는 필패”라고 주장했다. 이어 “황교안·김진태 두 분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박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고 공격했다. 일부 청중석에서는 야유를 보냈다. 5·18 민주화운동 모독 발언으로 윤리위에서 징계 유예 결정을 받은 김 의원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연설했다. 그는 “전당대회 나오지 말고 돌아가라고 할까 봐 가슴이 다 벌렁벌렁했다”며 “저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김 의원은 태극기 집회 이력을 강조하며 “당대표가 된다면 애국 세력과 우리 당이 힘을 모아 어깨동무를 하고 싸워 나가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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