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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윤옥 시인 ‘서간도에 들꽃 피다’ 출간

    3·1절을 앞두고 여성독립운동가 20인을 기리는 시를 쓴 이윤옥의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얼레빗 펴냄) 2권이 나왔다. 지난해 광복절에 같은 이름의 시집 1권을 냈던 시인 이윤옥은 2권에서 훈·포장을 받은 204명의 여성독립운동가 중 15명과 이름 없는 5명의 애국지사를 추모하고 있다. 묵묵히 독립운동가를 뒷바라지한 허은·이은숙·이해동 여사, 교육운동에 뛰어든 김마리아·김순애·차미리사·최용신·하란사, 광복군으로 활동한 오희영·이화림, 제주 해녀조합을 이끈 부춘화 여사, 기생으로 만세 운동을 이끈 변매화 등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생애를 시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 [데스크 시각] 검사 엄상섭 그리고 검찰개혁/이기철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검사 엄상섭 그리고 검찰개혁/이기철 사회부 차장

    검찰이 위기다. 국가의 중추적 법집행 기관으로서 신뢰의 위기는 국가적 문제다. 공정한 법집행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국민적 신뢰 회복의 지름길이다. 위기의 검찰에는 개혁이 절대적이다. 검찰 개혁 하면 효당 엄상섭이 생각난다. 효당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법조계, 특히 검찰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대쪽 검사’ 김익진과 함께 한국 검찰의 두 기둥으로 꼽힌다. 효당은 검사와 정치인을 지내면서 오늘의 형법과 형사소송법, 검찰의 뼈대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효당은 1907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32세 때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일제강점기에 검사를 지냈다. 광복을 맞아 일제시대에 검사를 지낸 다른 7명과 함께 사직했다. “검사생활, 이것이야말로 왜정 압력하에서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치시던 애국지사들에 대하여는 지금도 면목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정하에서 검사를 지냈다는 것은 한없이 후회되는 일입니다. 굴절했고 왜제 통치에 협력을 하였다는 것만은 아무리 사과를 해도 오히려 모자랄 것입니다.” 그가 단행본 ‘권력과 자유’에서 밝힌 친일 반성문은 가장 통절한 반성문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후 지조 없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듯 ‘고집불통’으로 변했다. 재야에 있던 그를 미군정은 검사로 발령냈다. 신생국의 검사로서 법령을 정비하다 1949년 9월 검찰을 떠났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민의원 선거를 통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한국전쟁의 피란길에서 세 아들을 잃었다. 1960년 5월 3일 효당은 헌법기초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다 뇌내출혈로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효당은 대한민국 건국시대에 국가권력의 핵심이 되는 형법과 형사소송법 제정의 중심에 섰다. 제정 헌법 정신에 맞게 형사재판의 민주화와 형사소송의 정치도구화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 효당은 이를 실현하는 도구로서 현재의 검찰조직 큰 얼개인 검찰청법을 마련했다. 검찰청법을 입안할 때 그가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검찰의 ‘독립과 견제’였다. 검사의 신분보장과 법무부 장관의 개별 사건에 관한 지휘권 배제를 주장해 관철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고등검찰청 폐지론이다. 범죄수사에서 기민성을 발휘하고, 수사 및 형사정책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명령계통의 간명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고등검찰청 같은 중간단계는 필요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검찰이 법원에 대응하는 조직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 부분은 60여년이 흐른 지금으로서도 상당히 독창적이다. 여기에 그쳤다면 효당은 검사의 관점과 이익을 대변한 인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가 평가받아야 할 부분은 검찰에 대한 외부의 견제장치 도입을 제안한 점이다. 물론 사법경찰의 검찰전속화가 전제돼 있다. 효당은 검찰의 ‘권력 강대화와 독선의 폐단을 예방하기’ 위해 검찰위원회를 설치, 검찰권을 감시하자고 강조했다. 검찰위원회는 외부인을 포함해 10~11명으로 구성된다. 그의 의견이 다소 설익은 느낌이지만 외부 통제를 과감히 도입해 검찰의 강대화와 독선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 이전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디어였다. 시민의 참여로 검찰의 공정성과 독립성, 책임성을 강화시키자는 요즘의 주장과 맥락이 같다. 그의 발상이 아직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를 검찰은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 최근 검찰은 법원과 경찰의 협공을 받는 형국이다. 스스로 개혁하는 데 실패한 탓이다. 법률가인 검사는 수사전문가도 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비전과 전략을 갖고 수사를 전문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거악과 맞서는 ‘고독한 전사’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의 참다운 공익의 대표자로 거듭나야 한다. 효당이 제안했던 검찰위원회의 참뜻이다. 검찰은 효당처럼 과거 잘못을 절절하게 반성하고, 시민의 통제를 받는 개혁의 길을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 실기하면 중수부가 아니라 대검찰청 자체가 존폐 문제에 내몰릴 수 있다. chuli@seoul.co.kr
  • 용산, 효창공원 금연구역 지정

    내년 4월부터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된다. 용산구는 ‘용산구 금연구역 지정 및 간접흡연 피해방지 조례’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효창공원을 자역 첫 금연구역으로 지정한다고 22일 밝혔다. 3월까지 계도 및 홍보기간을 거친다. 용산구는 ‘담배연기 없는 도시 만들기’를 위해 지난 10월 해당 조례를 공포했다.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은 지방자치단체가 간접흡연 위험이 높은 장소를 자체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위반 땐 과태료를 물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효창공원은 백범 김구 등 애국지사 묘소를 포함한 데다 효창어린이공원, 효창운동장 등과 가까워 시민들의 발길이 붐비는 곳이다. 용산구는 금역구역 시범운영 뒤 성과에 따라 추가 지정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단속반 2개조가 2인 1조로 교대하며 계도 및 단속 활동을 편다. 담배 없는 도시 만들기는 성장현 구청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사업으로 알려졌다. 성 구청장은 10여년 전 담배를 끊고 지금까지 금연을 실천하고 있다. 앞서 용산구는 한남동 오거리~유엔 빌리지 1.36㎞ 구간을 금연홍보거리로 조성해 금연문화 확산 캠페인 등을 벌이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청주 “유공자 예우 이 정도는 돼야지”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시민들은 확실하게 예우하겠습니다.” 충북 청주시가 전국 최초로 병역명문가 예우 조례를 제정한 데 이어 독립유공자 등의 지원책 마련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21일 시에 따르면 ‘청주시 독립유공자 지원조례’가 최근 제정됨에 따라 내년부터 청주지역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은 매달 3만원의 보훈명예수당을 받는다. 지급 대상자는 순국선열이나 애국지사 또는 유족들로 지급일 현재 청주에 주소를 두고 있으면 된다. 현재 50여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 지원과는 별도로 충북의 지자체가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에게 보훈명예수당을 주는 곳은 충주에 이어 청주가 두 번째다. 청주시는 또 월 5만원씩 지급되고 있는 참전명예수당의 거주제한(청주시에 1년 이상 거주)을 내년부터 폐지키로 했다. 지급일 기준으로 청주시에 거주만 하면 참전명예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상자도 100여명 늘어나 청주지역에서 참전명예수당을 받는 인원은 총 2600여명이 된다. 전국에서 참전명예수당을 주는 지자체는 150여곳에 달하지만 거주제한이 없는 곳은 많지 않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시는 최근 ‘청주시 공공시설 내 매점 및 자동판매기 설치에 관한 조례’도 개정, 우선 자격기준에 독립유공자와 국가유공자, 유가족을 포함시켰다. 시 주민복지과 이정희 주무관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유공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하고, 나아가 후세들의 애국심 함양을 위해 이 같은 조례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박원순 시장에게 바란다] “순국선열 박물관으로…수유동에 역사를 심자”

    [박원순 시장에게 바란다] “순국선열 박물관으로…수유동에 역사를 심자”

    “수유동 통일연수원 밑 부지에 시립 근현대사 박물관을 지어 북한산 둘레길 중심의 역사문화관광벨트가 완성되길 바랍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15일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중요한 획을 그은 순국선열묘역 21기(基)와 문화예술인들이 잠들어 있는 수유·우이동 일대에 역사문화의 숨결을 되살릴 때”라고 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의암 손병희(1861~1922) 선생과 몽양 여운형(1886~1947), 이준(1859∼1907), 이시영(1869~1953) 선생 등 17명의 전시공간을 조성해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역사·문화·자연 자원을 활용해 문화 관광 명소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박 구청장은 “이미 애국지사들의 유물과 자료를 상당수 확보해 놓았다.”며 “당시 시대상황과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박물관이 건립된다면 시민들의 문화체험현장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민 운동시설과 둘레길이 부지 중앙을 통과하고 있는데다 4·19국립묘역 남쪽을 통해 접근이 가능하다. 북한산 남쪽 자락인 이 일대에 고려 말~조선 초 청자 가마터가 20여곳이나 발견돼 발굴이 진행 중이라는 이점도 갖췄다. 장인이나 문화·예술인촌이 인근에 들어설 경우 이와 연계한 역사·문화·예술 콘텐츠 개발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이~신설동 경전철까지 완공되면 둘레길과 연계한 테마별 관광코스가 갖춰져 서울을 대표하는 역사문화체험의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체험공방에서 제작된 도자기, 목공예, 그림, 짚공예품 등을 전시하고 관광객들의 프로그램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구는 올해 박물관 부지 선정 및 전시계획을 위한 기본현황조사를 마쳤고 강북 웰빙 관광벨트 조성사업을 위한 용역을 시행 중이다. 박 구청장은 “박물관 예정부지를 국립공원 지역에 건립할 경우 공원시설 반영을 위한 계획변경이 필요하고 자연환경영향성 평가용역 시행이 필수여서 사업비 130억원 지원 등 서울시 협조가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이란 선생 별세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운동을 펼친 애국지사 이란 선생이 9일 오후 11시 20분 별세했다. 86세. 강원 춘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1938년 춘천중학교의 항일 학생결사 조직인 상록회의 활동이 일본 경찰에게 발각된 뒤 학생들의 항일 의식을 높이고자 ‘독서회’를 만들어 독서운동을 전개했다. 선생의 부친과 친했던 독립운동가 여운형이 춘천을 자주 방문하자 학생들은 그를 찾아가 상하이 임시정부와 세계 정세 소식 등을 들으며 항일 의식을 높였다. 그러던 중 독서운동에 참여하던 고제훈, 원후정, 김영근 등이 일제의 민족 차별에 분개해 1941년 3월 10일 일본 육군 기념일을 맞아 벌인 모의 시가전에서 일본인 학생들과 충돌하는 사건으로 독서회 활동이 발각된다. 이 때문에 체포된 선생은 1년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42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단기 1년, 장기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부순(79)씨와 아들 위찬(KBS 기술국장), 호찬(신화 엔지니어링 이사), 중찬(자영업)씨가 있다. 발인 11일 오전 7시 30분, 장지 대전국립현충원, 빈소 서울 보라매병원.(02)841-7652.
  • 일본인들 “사흘간 한국인 죽일수 있게 해달라”

    일본인들 “사흘간 한국인 죽일수 있게 해달라”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 격분한 일본인들이 사흘동안 한국인들을 죽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자국 정부에 촉구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4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고문서 전시회에는 안 의사의 의거 이후 극명하게 갈린 한국과 일본의 반응, 러·일 관계 등 국제정세까지 묘사된 러시아 역사기록보존소(RGIA)의 문서 111건이 전시됐다. 이에 따르면 서울 주재 소모프 러시아 총영사는 1909년 11월 6일 자국 외무부로 보낸 비밀전문에서 “한국인들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만족스러워했지만 그 감정을 터놓고 드러내지는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전문에서는 “이토 저격 사건이 한국 애국지사들의 정신을 크게 고무시키고 있다.”고 썼다. 반면 일본 도쿄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 직원이 보낸 전문에는 “일본인들은 이토라는 위대한 정치인을 잃은 데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 일본 언론들은 사흘간 한국인들을 죽일 수 있도록 허락해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러시아 외교관들은 이 저격이 러·일 관계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중국 베이징 주재 공사는 “일본이 러시아를 비난하지는 않고 있지만 러·일 관계의 냉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면서 자국이 이토의 장례식에 조문단을 보내야 한다고 건의했다. 러시아의 문서들은 대체로 안 의사를 ‘살인자’ 또는 ‘범죄자’라고 표기했다. 반면 친러 정책을 취했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는 ‘공작’ 또는 ‘희생자’라고 표현했다. 한편 이 문서들은 러시아 고문서 전시회를 계기로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받았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88살 ‘통곡의 쌍둥이 미루나무’ 살려주세요

    88살 ‘통곡의 쌍둥이 미루나무’ 살려주세요

    “그는 오늘 조금이나마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시를 읊어주고, 콘서트를 열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속삭이네요. 그가 이제 길어야 10년도 채 못 산다고요. 그러고 보니 어느새 그가 이곳에서 자란 지 88년이나 됩니다.” 쫓아오던 해님이 서쪽 교회당에 걸릴 무렵이던 지난 23일 오후 6시,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앞에선 조촐하지만 뜻깊은 음악회가 열렸다. 디케이 소울(본명 김동규)의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다’는 멀리서도 처연하게 들렸다. 이곳 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독립·민주화운동 열사들의 넋을 달래려는 진혼제인 듯했지만 뜻밖이었다. 이름도 낯선 ‘스토리텔링 콘서트’의 주인공은 무대 앞 사형장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묵묵히 서 있는 미루나무 두 그루였다. 콘서트에 귀 기울이던 ‘키다리 아저씨’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가슴아픈 전설을 들려줬다. 옥사에 갇혔던 독립·민주열사들이 간수(看守)들에게 불려나가면서 겪은 얘기다. 역사관 앞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면회실이지만 오른쪽으로 꺾으면 사형장이었다.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형수들은 미루나무를 붙잡고 꺼이꺼이 울었다는 사연이었다. 문제는 담벼락 안쪽에 서 있는 나무가 같은 시기에 들어선 바깥 미루나무와 달리 너무 왜소했다는 점이다. 2m가 넘는 담벼락에 가려 햇빛을 받지 못해서이겠지만, 마치 독립·민주화의 한(恨)을 풀지 못한 채 스러진 억울한 혼들의 아픔을 오롯이 목격한 쓰라림 탓인지 먹어도 먹어도 나무는 초췌해져만 갔다. 무성한 잎새와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아야 껴안을 수 있는 사형장 밖 나무와 달리 안에 있는 녀석은 삐쩍 마르고 야윈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미루나무의 수명은 최대 100년이랍니다. 생(生)을 얼마 남기지 않았죠.”라는 문 구청장의 말에 주변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문 구청장은 ‘상록수’의 저자 심훈(1901~1936년)이 이곳 옥중에서 쓴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풀 한 포기 없는 마당에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주황빛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빈대, 벼룩이 다투어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생지옥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쯤 되자 콘서트에 온 인근 인창고 학생들도, 관람객들도 모두 숨을 죽였다. 이어 한 사람 겨우 누울 곳에 갇혔던 애국지사들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막는 부채꼴 모양 10칸의 격벽장에서 운동을 했던 이야기 등 형무소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구는 희생정신을 증언하는 이 격벽장을 복원 중이다. 아픈 역사도 기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 구청장은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은 비극이다. 그래서 온라인에 통곡의 미루나무 살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며 머리를 숙였다.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중앙보훈병원 6일 개원

    국가보훈처는 6일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위치한 중앙보훈병원을 신축, 개원한다고 5일 밝혔다. 지난 2005년 말부터 총사업비 2577억원을 투입해 건립한 중앙보훈병원은 지하 4층, 지상 13층으로 600병상을 신축했다. 기존 서울보훈병원의 800병상을 내년 말까지 리모델링할 예정이어서 2014년부터는 1400병상이 운영될 예정이다. 중앙보훈병원은 올해 1000병상을 이용해 국가유공자 특성을 감안한 진료체계를 확립, 최첨단 암치료장비인 선형가속기를 갖춘 방사선 종양학과를 신설하는 등 모두 30개 진료과를 운영하게 된다. 또 암센터와 심혈관센터 등 전문 센터와 뇌졸중·전립선 및 배뇨장애·피부암·당뇨·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수면장애·백내장·관절 등 전문질환 치료를 위한 8개 클리닉도 운영되며 양전자방출 컴퓨터단층촬영기(PET-CT), 자기공명영상(MRI), 심혈관 조영기 등 133종의 첨단 장비들도 갖췄다. 또 2013년까지 500병상 규모의 만성질환센터와 200병상 규모의 재활의학센터를 개설해 운영할 계획이다. 보훈병원은 애국지사와 참전유공자 및 유가족 등 전국적으로 188만여명이 국비 지원 또는 일부 감면 혜택을 받아 이용할 수 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광복 66주년 독립유공자 275명 포상

    국가보훈처는 10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에 공을 세운 김보연 선생 등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275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오는 15일 66주년 광복절을 맞아 포상하는 독립유공자는 애국장 52명, 애족장 101명 등 건국훈장 153명과 건국포장 39명, 대통령표창 83명이다. 그러나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복역하고 제헌의원, 초대 농림부장관, 국회 부의장을 지낸 뒤 진보당 간첩사건에 몰려 처형당한 조봉암 선생은 이번 포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초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에 주춧돌 구실을 한 김보연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한다. 선생은 1920년 상하이 대한인민단 간사와 상의원을 지냈고 1922∼1926년 유호청년회, 임시정부 경제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선생은 또 난징 등지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원, 중미혼합단원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김원영 선생의 부친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했던 민족자본가 이덕환 선생에게도 애국장을 추서한다. 1912년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기도 했던 선생은 1920년 독립운동 자금으로 거금 5000원을 임시정부에 보냈다가 일본군에 발각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한 황보정걸, 김형순 선생도 애국장을 받는다. 1919년 평북 벽동군 읍내에서 조선독립을 외치며 시위투쟁을 벌이다 일본 경찰의 총격으로 순국한 공예수 선생 등 10명도 애국장 포상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 포상을 포함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애국지사는 대한민국장 30명, 대통령장 93명, 독립장 805명, 애국장 3789명, 애족장 4717명, 건국포장 934명, 대통령표창 2331명 등 모두 1만 2699명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씨줄날줄] 국립묘지/박대출 논설위원

    칠백의총(七百義塚)은 사적 제105호다. 임진왜란 때 전사한 700의사를 모신 곳이다. 조헌의 문인(門人) 박정량 등이 세웠다. 민간이 주최였으니 국립묘지는 아니다. 지금은 국가가 사적으로 관리한다. 국영묘지인 셈이다. 현대식 국립묘지 1호는 국군묘지다. 1955년 서울 동작동에 조성됐다. 1985년 대전에 하나 더 지어졌다. 전자는 국립현충원으로, 후자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불린다. 국립 4·19묘지, 국립 3·15묘지, 국립 5·18묘지도 있다. 국립 호국원은 영천, 임실, 이천 등 3곳에 있다. 따라서 국립묘지는 8개다. 국립현충원의 첫 주인은 무명용사다. 1956년 1월 16일 안장됐다. 캐나다 출신 선교사 스코필드는 외국인 1호다. 한국식 이름은 석호필(石虎弼)이다. 그는 애국지사 묘역에 모셔져 있다. 애국 선열 200여위가 안장된 곳이다. 이갑성(李甲成)도 함께 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다. 건국훈장 대통령장도 받았고,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그런데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석호필류(類)는 문제 없다. 이갑성류는 논란이 된다. 5공(共) 인사는 이 범주에 든다. 유학성 전 의원이 스타트를 끊었다. 그는 12·12 쿠데타와 관련해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 확정 판결 2주 전에 사망했다. 대법원은 공소를 기각했다. 법적으론 하자가 없게 됐다. 육군 대장의 경력만 인정받았다. 결국 2006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사자(死者)의 권리만 살아남았다. 이번엔 안현태씨가 논란거리다. 그는 육군 소장 출신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지냈다. 지난 6월 25일 지병으로 숨졌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뇌물 등)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사면돼 잔형 집행 면제를 받았다. 1년 뒤 복권도 이뤄졌다. 그래서 국가보훈처는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결정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맞물려 논란이 커졌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건강 악화로 더 민감한 사안이 됐다. 국립묘지법 제5조 3항은 안장 배제 대상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행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되면 배제된다. 범죄로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돼도 마찬가지다. 사면 복권되면 어떤 경우에 해당될까. 이 조항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유권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항도 있다.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다고 인정된 사람’. 앞으론 이 대목에 더 신경써야 할 것 같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Weekend inside] ‘日의원 울릉도 방문’ 경북도·시민단체 뿔났다

    [Weekend inside] ‘日의원 울릉도 방문’ 경북도·시민단체 뿔났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독도에 긴장감을 안기는 무리는 절대 환영할 수 없다.’ ‘우리 땅 독도를 지켜내자.’ 독도가 긴 장마 뒤에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독도 침탈’의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독도의 모섬인 울릉도를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본 의원들은 다음달 1일 하네다공항을 출발, 2일과 3일 포항을 거쳐 울릉도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경북도지사 “비이성적·시대착오적 행위” 우리 국민은 흥분할 수밖에 없다. 특히 독도를 관할하는 경북도와 지역 시민단체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연일 규탄 성명과 시위로 쏟아내고 있다. 우리 관광지인 울릉도를 외국인들이 찾는다니 반길 일이지만, 그게 단순히 즐기는 관광 목적이 아니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29일 규탄 성명서를 통해 “일본의 비이성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도발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우리 땅 독도를 국제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책동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김 지사는 “독도 영유권은 민족자존의 문제로서 절대로 양보나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 뒤 “새달 5일 독도 서도에 신축한 주민숙소 준공식을 갖는 등 영토수호 의지를 굳건히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성명서를 발표하는 자리에는 이인술(86·광복회연합지부장) 옹 등 애국지사 3명도 함께 참석해 ‘독도 수호’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김유태 농협경북본부장은 독도를 지키는 데 써 달라며 1억 5000만원의 ‘독도수호성금’을 김 지사에게 전달했다. 경북도의회 독도수호특별위원회 소속 의원, 푸른 독도·울릉도 가꾸기회 회원, 울릉군의회 의원 등 300여명도 울릉도 도동 소공원에 모여 일본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대구변호사회 “日의원 입국은 위법” 앞서 대구지방변호사회도 성명을 내고 “독도 영토 야욕 목적의 일본 국회의원 입국은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놓았다. 경북지역 10개 보훈·안보단체 대표 100여명은 지난 25일 포항 여객선터미널에서 일본 의원들의 울릉도 입도 계획을 규탄하는 궐기대회를 가졌다. 이용진 푸른 독도·울릉도 가꾸기회장은 “독도 영유권을 침탈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일본 의원들이 울릉도 방문을 강행할 경우 독도 관련 단체들과 연합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최악의 경우 몸싸움 등 극한 충돌이 예상된다. ●국민성금 태양광 발전으로 생태계 보호도 우리 땅 독도를 지키려는 국민의 열의만큼이나 독도를 따듯하게 달구는 친환경 설비도 있다. 지난해 여름 국민성금으로 동도에 건립된 태양광 발전시설이 요즘 진가를 십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순수한 국내 기술과 자재로 만들어진 독도 태양광 발전시설은 발전용량이 55㎾ 규모로, 독도등대(15㎾)와 독도경비대 건물(유류저장고 30㎾, 발전기실 10㎾)에 각각 설치돼 있다. 이들 태양광 발전시설은 민간단체인 한국전기공사협회가 산하 회원사들의 성금 30억원과 한전KPS㈜ 출연금 5억원 등 총 35억원으로 모금해 건립했다. 공사 후에 발전시설은 등대를 관리하는 포항항만청과 경비대를 관리하는 경북지방경찰청에 각각 이양됐다. 독도 태양광 발전시설은 지난 1년 동안 하루평균 태양광 전력 120~150㎾를, 등대 발전시설은 45~60㎾를 생산해 왔다. 특히 일조량이 풍부한 요즘은 발전용량보다 7~8배나 많은 전력을 생산할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태양광은 독도를 지키는 경비대원들과 등대원들에게 깨끗하고 밝은 빛을 제공하고 있다. 독도경비대는 연간 전기사용량의 25% 이상을, 등대는 95% 이상을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 발전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1300㎾급 디젤 발전기로 화력발전에 의존해 왔다. 덕분에 연간 3000만~4000만원 정도의 연료비 절감 효과는 물론 대기오염과 폐기물 발생, 기계적 진동이나 소음도 크게 줄었다. 태양광 발전시설이 천연기념물인 독도(제336호)의 생태계 보호와 평화롭고 깨끗한 이미지를 드높이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독도에는 작렬하는 태양빛 아래에서 괭이갈매기들이 군무(群舞)를 춘다. 파도가 스쳐 지나가는 바위틈에는 땅채송화, 술패랭이, 참나리꽃이 은은한 향기를 내뿜으며 무리지어 피어 있다. ‘독도의 마스코트’인 경비대의 삽살개는 꼬리를 흔들며 뛰어다닌다. 독도에 상주하고 있는 울릉군청 공무원 이임종(42)씨는 “태양광 발전시설이 가동된 이후 독도는 완전한 무공해 청정지역으로 변모했다.”고 자랑했다.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행사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기념 행사가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9일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 양성기지였던 신흥무관학교의 설립 100주년 기념 행사를 10일 오후 4시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잔디광장 야외 무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일반 시민, 학생 등 6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기념식 후에는 장사익, 크라잉넛, 역사어린이합창단 등의 공연이 이어진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 3월 신민회의 국외 독립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 결의로 탄생했다. 신민회 결의 후 이회영 6형제, 이상룡 등 안동의 애국지사들이 망명하면서 1911년 4월 중국 유하현 삼원포 고산자에 독립운동 기지를 마련하고 자치 기관으로 경학사를 설립했다. 2개월 뒤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에 부설 기관인 신흥강습소를 설립했으며, 1912년 통화현으로 이전한 뒤 이듬해 건물을 신축해 신흥중학교로 개칭했다가 각지에서 지원자가 몰려오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배출된 독립군은 청산리전투 등에 참여했으며 3·1운동 뒤에는 지청천, 이범석 등 뛰어난 무관들이 신흥무관학교에 합류했다. 입학 지원생은 계속 늘어났지만 일제의 박해가 심해지면서 1920년 가을에 폐교됐다. 이에 지청천은 생도 300여명을 이끌고 백두산 지역의 안도현에서 홍범도 부대와 연합했고, 김좌진 부대를 뒤따라 대한독립군단 결성에 참가하는 등 이후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시대의 지성 김준엽 선생의 영면 기원”

    “시대의 지성 김준엽 선생의 영면 기원”

    “영원한 ‘시대의 지성’ 고(故) 김준엽 선생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8일 광복군 출신으로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 사회과학원 이사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안암동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각계각층 주요 인사들의 발길이 이틀째 끊이지 않았다. 고인의 광복회 시절 사진들이 놓여 있는 빈소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등 각계 단체와 인사들이 조화를 보내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빈소에는 아침 일찍부터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김신 백범김구기념사업회장 등 김 전 총장과 생전 각별했던 인사들이 찾아와 고인의 마지막 자리를 지켰다. 이 전 총리는 고인을 ‘존경스러운 광복군 출신 리더’로 돌이켰다. 그는 김 전 총장에 대해 “해방 후 한국 내에 일제의 영향이 남아 있던 시절 후배들이 우리나라의 독자적 발전 방안을 고민하도록 독려하셨다.”면서 “학자로서 민족적 긍지를 갖고 매사 주도적으로 나서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총리는 “김준엽 선생 덕분에 한국에서 사회과학의 기틀을 제대로 다질 수 있었으며 70년대 북한에 대한 연구가 쉽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공산권연구회를 만드는 등 통일문제에 일찍이 눈뜬 선구자였다.”면서 “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중국통에 머물지 않고 직접 중국 주요 각지에 한국학 연구를 널리 전파하신 분”이라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김 전 총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중국통으로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분”이라면서 “학문적으로뿐 아니라 국제관계에도 큰 공적을 쌓은 분인데 뒤를 이을 후학이 어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밤에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 한승수 전 국무총리, 임종인 전 국회의원,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장호권 사상계 대표이사 등이 빈소를 다녀갔다. 김 전 총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4일간 치러진다. 영결식은 10일 오전 8시, 발인은 오전 9시이다.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이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강정상 선생

    광복군에 입대해 항일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 강정상 선생이 30일 별세했다. 83세. 1928년에 태어난 선생은 1943년 4월 중국 제남중학교 재학 중 장세국 등과 항일 비밀결사대 조직을 시도했으며, 이듬해 6월에는 광복군 김학규 장군 명의의 지하공작원으로 입대해 일본군의 이동 상황과 군수품 야적지, 부대 위치와 병력의 배치상황 등을 파악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변덕영(77) 여사와 1남1녀가 있다. 발인은 1일 오전 6시, 장지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4묘역, 빈소는 춘천 호반병원. (033)252-0046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박문 선생 별세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애국지사 박문 선생이 29일 새벽 4시 1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98세. 1913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1938년 9월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민족문학잡지사를 설립, 경영하기로 하고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돼 1940년 6월 28일 당시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민족문학지인 ‘문장’(文章)이 경영난에 처해 있을 때 운영 자금을 제공하고 1941년 9월 폐간될 때까지 종사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1남 1녀가 있다. 발인은 31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4묘역, 빈소는 서울보훈병원. (02)478-2899.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부고] 항일 애국지사 오경복 선생

    일제 강점기 때 국내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 오경복 선생이 지난 24일 별세했다. 89세. 1922년 황해 송화에서 태어난 선생은 광성중학교에 다니던 1940년 동지 5명과 함께 항일결사를 조직해 조선 민족의 참상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민족의식을 키웠다. 1941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에 유학했으나, 1942년 12월 항일결사 조직이 발각되는 바람에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이듬해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대통령 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 부인 하영희 여사와 2남 1녀가 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김영일 광복회장 별세

    애국지사 효운(曉雲) 김영일 광복회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10시 50분쯤 별세했다. 87세. 1925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1943년 12월 중국으로 망명해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광복군으로 활동했다. 1945년 8월 국내 진공작전을 위한 미 OSS(정보처) 특수훈련을 받던 중 광복을 맞았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와 1966년 국민대학교 행정학과를 각각 졸업하고 주월 십자성부대 사령관, 육군 보병 사단장, 육군대학 총장을 거쳐 1979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고인은 예편 후에도 한국해외개발공사 사장, 광복군동지회 회장, 광복회 부회장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지난 2008년 6월 제18대 광복회장에 당선돼 현재까지 광복회를 이끌어 왔다. 생전에 독립운동 선열 위패 봉안전 건립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고, 초·중·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근대사 교육에 힘썼다. 제90주년 3·1절을 기해 경제 위기극복을 위한 ‘10% 나눔 범국민 모금운동’을 펼쳤고, 최근까지 대법원의 친일재산 환수 결정 취소 판결에 불복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로를 기려 은성화랑훈장과 충무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에 이어 1977년 건국포장과 1990년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신금화 여사와 1남 3녀가 있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4일 오전 9시 30분. (02)3410-6914.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나들이하고 독립정신도 되새기고”

    1일은 3·1절 92주년이다. 공휴일이라고 마냥 쉬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3·1절 명소를 찾아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시가 28일 3·1절 관련 역사적 명소 4곳을 소개했다. 1919년 독립선언문이 처음으로 낭독된 종로구 종로 2가 탑골공원은 3·1운동의 진원지다. 당시 수만명의 군중이 만세를 부르며 대한문으로 향했던 유서 깊은 장소다. 지금도 탑골공원에는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장소인 팔각정, 독립운동 부조판, 민족 대표 손병희 선생 동상 등 많은 기념물이 있다. 시는 1991년 공원을 사적 제354호로 지정했으며 2001년 ‘3·1운동 성지’로 재정비 사업을 벌여 2002년 다시 문을 열었다. 마포구 마포동 마포전차종점은 3·1운동 당시 탑골공원을 출발한 시위 군중 중 2000여명이 모여 저녁까지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당시에는 서대문에서 들어오는 전차의 종착역 자리였으며 현재는 마포대교 북단 불교방송국이 있는 다보빌딩이 자리하고 있다. 서대문구 현저동에는 일제 강점기 역사현장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서대문독립공원이 10만 9000여㎡ 규모로 들어섰다. 순국선열추념탑, 3·1독립선언 기념탑, 독립문, 독립관 등을 갖췄다. 특히 1908년 지어져 국내외에서 활동한 수많은 독립투사가 투옥됐던 옥사에는 오늘날 시민들이 역사 체험을 할 수 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 중랑구 망우동의 서울시립망우추모공원은 오세창, 오재영, 한용운, 장덕수, 조봉암 등의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들이 안장된 곳이다. 이곳에는 각계 유명 인사의 묘역과 산책로, 연보 기록비도 있어 민족 역사와 문화에 큰 공을 세운 이들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애국지사 등 176명 3·1절 포상

     국가보훈처는 3·1절을 맞아 미주지역에서 활동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한 고(故) 강영소 선생을 비롯한 176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24일 밝혔다.  보훈처에 따르면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120명(독립장 2명, 애국장 55명, 애족장 63명), 건국포장 27명, 대통령표창 29명으로, 이중 여성은 1명이며 생존자는 없다. 2005년 발족한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이 수형인명부와 범죄인명부, 형사사건부, 판결문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 분석해 국내는 물론 만주, 일본, 미주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를 다수 발굴했다.  발굴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는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대표적 지도자인 강영소 선생. 그는 1909년 1월 미주지역의 통일된 독립운동 단체로 국민회를 결성하고, 1913년 안창호 선생과 함께 흥사단을 조직했다. 1922년부터 1931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지속적으로 독립운동 의연금을 제공했다. 역시 독립장을 받는 유상돈 선생은 1909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일본인 관리를 처단했다가 체포돼 투옥 중 탈옥, 러시아령으로 건너가 1910∼1920년대 중반까지 중국과 러시아 등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포상 대상자가 된 김안순 선생은 간호사로 1919년 3월 10일 전남 광주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돼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김 선생은 그동안 관련 자료에서 ‘김안순’과 ‘김유운’이라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존재해 포상이 보류됐다가 두 차례에 걸친 현지조사와 경찰청에 지문 확인 의뢰를 통해 동일인임을 확인, 대통령표창을 받게 됐다고 보훈처는 설명했다.  이 밖에 1920년대 강원도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돼 옥중 순국한 진홍거 선생과 중국 서간도에서 부민단·한족회 지방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1919년 안도현 내도산에서 독립군 병영지를 물색한 강호석 선생 등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다. 특히 강 선생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인 석주(石洲) 이상룡 선생의 사위로 석주 선생 가문에서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10번째 인물로 기록돼 눈길을 끈다.  이들을 포함해 정부 수립 이후 포상받은 독립유공자는 대한민국장 30명, 대통령장 93명, 독립장 809명, 애국장 3742명, 애족장 4627명, 건국포장 896명, 대통령표창 2246명 등 모두 1만 2443명에 이른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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