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애국심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호수비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창원시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카카오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준우승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96
  • [길섶에서] 염색과 내복/이목희 논설위원

    나이를 먹어가면서 정말 하기 싫은 일이 두가지 있다. 첫째는 머리 염색이고, 둘째는 내복을 입는 것이다. 남들은 동안이라고 하지만 세월은 속일 수 없는지 아침에 머리를 감은 뒤엔 흰머리가 얼마나 늘었나 훑어보게 된다. 어느 아침,5∼6년은 염색하지 않고 버티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복을 언제부터 입지 않았는지 기억이 감감하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분명히 입었다. 그때는 왜 남자아이에게도 빨간 내복을 입혔는지….“빨강은 따뜻한 색이고, 잡귀를 쫓아준단다.” 어떤 어른이 그렇게 설명했지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 자주 빨아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본다. 중학교 2,3학년 시절부터는 “그깟 추위쯤이야.”하면서 내복을 멀리했던 듯싶다. 몇년 전부터 겨울이면 무릎이 시렸다. 추위가 매서웠던 올겨울은 더 그랬다. 내복의 유혹이 강렬했다. 마침 정부와 시민단체가 내복입기 운동을 벌였다.“차제에 에너지 절약운동에나 동참할까.” 나이가 아니고, 애국심 때문에 내복을 입는다는 자기합리화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오늘내일 미루다 보니 입춘이 저앞에 다가오고 있다. 일단 올해는 젊게 보내고 내복 고민은 다음 겨울에 해야 할 것 같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실전논술] 한국인의 사고하는 태도 문제점과 해결책

    ●다음 글을 읽고, 한국인이 사고하는 태도에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서 그 해결책을 제시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며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사고는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에 의해서, 이성의 엄격하고 보편적인 법칙을 따라서 어떤 사실·사태·사건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문자 그대로의 ‘이치(理致)’의 추구력을 말한다. 진리와 오류는 반드시 증명되어야만 한다. 증명하려는 불 같은 의욕이 없는 사고는 있을 수 없으며 이성을 등한히 하는 사고는 사고의 죽음과 마찬가지다. 참된 사고에는 엄청난 지적 긴장이 수반돼 피땀나는 지적 노력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저 결론만을 찾으려는 가지가지 유혹이 사고하는 과정 속에 항상 따르고 있음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한국인의 사고의 빈곤은 모든 학문의 영역에서 뚜렷하게 독창적인 이론이 하나도 한국에서 세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증명되거니와 학계나 문화계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학자, 지식인들의 태도 혹은 경향 속에서 한국의 사고가 얼마만큼 자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인의 사고하는 태도에서 대략 세 가지 경향을 들 수 있다. 첫째, 사대주의이다. 멀쩡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신문, 잡지에는 그런 말 대신 알 수도 없는 외국어를 쓰려는 경향이 근래 심해지고 있다. 빌려 쓴 외국어가 흔히 잘못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우습고도 가슴 아픈 일이다. 이러한 경향은 잠재적이나마 외국어 숭배의 심리를 반증한다. 사대 심리는 여기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외국 문학의 인기, 무조건적인 외국인 학자에 대한 엄청난 관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용상으로 볼 때, 별로, 아니 전혀 관계도 없는 기사나 원고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것이라고, 외국의 것이라고, 무조건 대대적으로 신문이나 잡지에 보도되고 실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권위주의는 일종의 사대주의이다. 왜냐하면 사대주의는 근본적으로 외국 문화의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인 사고의 권위주의에서 일종의 사대 사상을 또한 찾아볼 수 있다. 대단치도 않은 학술론·잡문에도 필자의 학술적 양심·유식을 보이려는 듯이 흔히 외국 문서의 참조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하면, 필요도 없는데 공연히 외국어를 원문대로 삽입한다. 그뿐 아니다.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기에 앞서 이미 권위 있는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의 견해를 인용함으로써 그 주장이 옳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은근한 압력이 많다. 그러나 사고는 권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참다운 사고는 우선 권위를 일단 비평적으로 대하는 데서만 출발한다. 어떠한 사실 혹은 주장은 권위 있는 사람이 그것을 인정해서 옳아지는 게 아니다. 어떤 사실이 정말이라면 그것은 단순히 사실이 정말이기 때문이요, 어떤 주장이 옳다면 그것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에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사대주의의 반동으로 나타나는 국수주의이다. 이 경향은 첫째의 경향에 비해서 약하지만 무시 못할 경향이다. 국수주의적 사고는 ‘옳고’,‘그름’의 기준, 가치의 기준을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념 혹은 감정에 두고 있는 사고 방식이다. 한 이론이나 주장은 그것이 동양인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옳은 것이 되고, 한 예술 작품은 그것이 한국인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좋아진다. 사대 사상? 열등 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동양적인 것, 한국의 것을 무조건 무시하는 자학을 해서는 안 됨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애국심이나 어떤 감정에 좌우되어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택함은 사고하는 태도가 아니라 사고의 자위 행위이다. 자위 행위가 건전한 기쁨을 가져오지 않음을 물론이거니와 그런 행위를 하는 본인에게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해로움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적 사고의 특색은 냉소주의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냉소주의자들은 전혀 사고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어떤 우연이나 딴 이유에 따라 사고하는 사람들, 즉 학자·교수·문화인이란 명칭을 받게 된 사람들이거나 혹은 사고할 능력은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사고하기를 중지한 게으름뱅이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 자신을 사고인의 범주 속에 넣고 있고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삼사십이 못 되어 이미 ‘도(道)’에 통해서 우주적 고차원에서 관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들의 눈에는 무엇을 더 알고 따지고 캐 보려는 모든 지적 노력이 철없는 짓으로 보인다. 그들에게는 열심히 수학을 따지고 예술을 논하며 정의를 찾으려는 사고가 유치한 것으로 보이고, 참다운 사고는 그러한 작은 사고의 테두리를 넘어서 주말이면 낚싯대나 잡고 바라보는 구름 속에서만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사고의 죽음을 의미한다. 냉소주의자들은 사고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고를 부정하는 패배자에 지나지 않는다. -박이문 <한국인> ●지문의 분석 이 글은 한국인에게 사고의 자립이 필요한 이유와 그 방안에 대해서 언급하기 전에 먼저 한국인의 사고하는 태도를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반성하고 있는 글이다. 먼저 자립성이 없는 한국인의 사고로 이성적 활동이 빈약하고, 이성을 등한시하는 한국인의 사고는 빈곤하다고 보고 있다. 참된 사고에는 지적 긴장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한국인이 어떻게 사고하는가를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 하나는 외국어 숭배 등의 사대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외국의 것이라면 무조건 숭배하는 사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한 사고의 권위주의는 일종의 사대 사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사고의 자위 행위로써의 국수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국수주의는 이념과 감정 등에 가치의 기준을 두는 사고 방식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사고의 자학 행위, 자위 행위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사고를 부정하는 패배자의 자세인 냉소주의도 지적하고 있다. 학문적 진리를 따지고 천착하려 하기보다는 현실을 벗어나 자연에서 소요하는 행위가 참다운 사고라고 보는 관점이다. 글쓴이는 이러한 태도는 사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냉소주의적 사고 방식은 사고를 부정하는 패배자의 모습이라고 여기고 있다. ●출제의도와 생각하기 이 문제는 한국인이 지니고 있는 단점이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한 뒤에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를 묻는 문제이다. 즉, 나 개인이 아닌 우리 민족의 모습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지를 성찰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러면 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 한국인이 자립적인 사고를 갖지 못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이 논술에서 찾고자 하는 사고의 자립을 위한 방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문제 해결을 위한 정신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 보도록 하는 데 중요한 출제 의도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관점에서 사고의 자립을 위한 방안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두 가지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논술 문제는 애초에 분량상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내용을 마구 늘어놓으면 논리적인 서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사고 방식 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성찰해야 할 필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머문다든지 너무 주관적인 색채가 가미되면 문제에서 의도하고 있는 바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방식으로 문제의 핵심적 원인을 진단한 다음에 그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 나라 교육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중 하나로 사물에 대한 올바른 비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문제 해결 방안으로 이러한 문제점에서 해결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하게 되면 자립성이 있는 사고를 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구체적인 수업 현장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전개할 수도 있고,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토론이 일반화되는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마무리를 짓는 것은 논술의 기본적인 성격에서 벗어나는 태도이므로 지양해야 한다. ●어떻게 쓸까 우선 주제의 방향은 논제에서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사고의 자립을 위한 방안’ 정도로 정리하면 된다. 이와 관련된 주제문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주성과 독립을 위해서 사고의 독립이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의 서론 부분에서는 우리의 사고 과정이라든지 사고 방식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고의 자립성을 찾을 수 없는 상황 비판하는 정도에서 논의를 도입하면 될 것이다. 이 때 유의해야 할 것은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방향이 분명히 제시되면 글의 방향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본론 부분에서는 사고의 자립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면 된다. 먼저 본론의 처음 부분에서는 사고의 자립을 위한 교육적인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사고의 자립과 관련된 우리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개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나타내는 특징들인데, 예를 들면 주입식 교육의 수업이 지닌 폐해를 생각해 그러한 점을 지양하고 비평적 교육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본론 둘째 부분에서는 한국적 사고의 자립을 위한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 정신이 요구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결론 부분에서는 앞서 논의한 내용을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사고의 독립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은 없다는 점을 논의의 전제로 하여 한국인에게 사고의 자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하면 된다.
  • 김호연 빙그레회장 ‘보훈문화상’ 수상

    김호연 빙그레회장 ‘보훈문화상’ 수상

    빙그레 김호연 회장이 2005년 보훈문화상을 수상했다고 회사측이 19일 밝혔다. 김 회장은 순수 민간 기업인으로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회장과 백범 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부회장, 김구재단 이사로 활동하면서 선열들의 독립·애국정신을 함양해 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 회장은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이사로 활동하며 서울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기념관 건립에 큰 역할을 했으며, 백범 사상 연구 관련 출판물 발간도 지원하고 있다. 또 후손없이 서거한 이봉창 의사의 기념 사업회도 후원하고 있다. 그는 이봉창 의사의 업적을 알리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지난 10월 ‘광복 60주년 기념 이봉창의사 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이밖에 김 회장은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김구재단을 통해 매년 150여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황영기 행장의 ‘우리銀 토종론’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은 12일 월례조회에서 작심한 듯 ‘토종은행론(論)’을 강하게 주장했다. “토종은행이란 지분의 과반수를 내국인이 소유하고, 경영도 한국인이 하는 은행을 말한다. 우리은행과 거래를 하면 이익의 88%가 국내로 오지만 다른 은행의 수익은 대부분 외국인이 차지한다. 정부 공공기관도 아무 생각없이 외국계 은행과 거래하고 있는데, 이를 그대로 두는 것은 토종은행으로서 권리를 방치하는 것이다.”예금보험공사가 우리금융지주(우리은행의 모회사)의 지분 78%를 갖고 있고, 외국인 지분율은 11.5%로 낮은 우리은행이 토종은행을 강조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86.1%, 신한지주는 60%, 하나금융은 72.7%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100%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시중은행 가운데 국내자본이 장악한 은행은 우리은행뿐이다. 그러나 이날 황 행장이 나름대로 토종은행의 정의를 내리고, 외국계 은행과 거래하는 공공기관에 대해 언급하고, 외국인 주주에 대한 배당을 문제삼은 것에 대해 은행권은 “‘상도의’를 넘어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경쟁은행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세련된 화술의 소유자로 정평난 황 행장이 왜 이런 ‘도발’을 했을까. 해답 역시 “경쟁자가 불편한 것은 나에게는 즐거움이다.”라는 황 행장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비록 은행권에서 ‘공동의 적’이 되더라도 토종은행이 이슈로 부각될수록 우리은행에는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다. 은행간 치열한 경쟁의 분수령이 될 내년에는 월드컵이라는 국가적인 행사가 있다. 우리은행으로서는 애국심에 호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황 행장은 “일부 은행들은 노사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통합을 앞둔 은행들은 고객이탈이 불가피하며, 어떤 은행은 규모를 키우지 못하면 존립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내년은 우리은행이 자체 성장할 수 있는 최적기”라고 강조했다. 결국 인수·합병(M&A)의 혼란기를 틈타 경쟁은행의 고객을 빼앗아 오는데 ‘토종은행론’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경쟁은행들도 이런 ‘노림수’를 모르지 않는다. 일부 은행들은 “황 행장의 발언에 반응하면 오히려 말려드는 꼴”이라며 언급을 피하고 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황교수 옹호는 선동주의” 네이처 “철저조사 필요”

    황우석 교수의 윤리 문제를 줄곧 제기해 온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한국에서 일고 있는 황 교수 옹호 움직임을 ‘애국적 선동주의’로 맹비난했다. 이 잡지는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제목의 최신호(1일자) 사설을 통해 “한국의 국익은 깃발을 흔들며 애국심에 호소하는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황우석 실험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엄격하고 공식적인 조사를 통해 가장 잘 수호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사설은 윤리위반 파문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황 교수에 대한 재정지원을 유지키로 약속하고 줄기세포 허브 주관자들은 황 교수의 사임을 거부할 것임을 밝혔다고 전했다. 네이처는 18개월 전 황 교수의 윤리위반 가능성을 최초로 제기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사설을 통해 정부의 공식 조사를 촉구한 바 있다.런던 연합뉴스
  • [이사람] 육군소장에서 혁신전도사로 변신 ‘혁신사관학교’ 김선규 원장

    [이사람] 육군소장에서 혁신전도사로 변신 ‘혁신사관학교’ 김선규 원장

    “육군사관학교에 버금가는 국내 제일의 인재를 육성하는 아카데미로 만들겠습니다.” 지난 8월 충남 아산시 아산온천관광단지에 개원한 ‘혁신사관학교’ 김선규(55·육사28기) 원장은 10일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혁신사관학교는 우리사회의 혁신과 개혁을 가르치는 도장으로 도요타생산방식(TPS)을 연구·전파해온 한국산업교육센터(KPEC)의 교육기관이다. 김 원장은 군에서 잔뼈가 굵은 육군 소장 출신답게 말과 행동에 ‘절도’가 배어 있었다.‘혁신합시다.’‘확 바꾸겠다.’‘1등 인재로 육성하겠다.’는 등 혁신사관학교 홈페이지 인사말에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한국산업교육센터 정광열 대표는 “교육기관이라는 특성상 학자나 전문가에게 원장을 맡기는 게 어떨까도 생각해 봤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다.”면서 “삼고초려 끝에 김 원장을 모셔왔다.”고 영입배경을 설명했다. 국방 정책을 다룬 전략가에다 열정으로 무장한 김 원장보다 더 나은 적임자를 찾을 수 없었다는 얘기였다. 육사 졸업 후 서울대 사회과학대와 미 스탠퍼드대학원(경제체계학 석사)을 마친 학구파로 늘 책과 붙어 산다.“요즘 사회를 제대로, 다시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낮췄다. ●TPS 경험은 충격 김 원장과 TPS와의 만남은 우연히 이뤄졌다. 군 예편 후 연구원과 대학 강의(충남대 초빙교수)로 보내던 그에게 혁신사관학교 개원 소식이 전해졌다. 군 개혁에 참여했고 직접 경험도 해봤지만 처음엔 구체적인 내용을 몰라 반신반의하다 결국 참여를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국내 교육과 일본 현장 체험을 소화한 김 원장은 “도요타 공장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춤을 추는 것 같았다.”면서 “당시 교육은 상식을 깨는 충격의 연속이었으며 우선 내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두말없이 원장직을 수락했다.”고 소개했다. 원장이라는 직위를 빼면 혁신사관학교에서 그는 아직 주변인이다. 강의조차 이론으로 무장한 전문 강사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교육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교장 선생님으로, 외부에 나가 혁신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전도사로서는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TPS의 핵심은 낭비제거, 현장과 이익중심, 고객중심”이라며 “근간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을 감사하는 자세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경제, 기업혁신분야의 인재 양성으로 귀결된다. 한편으론 IMF를 거치며 퇴색된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일에 대한 열정을 찾아 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항상 사회생활을 시작할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주문한다. 이를 반영하듯 교육은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진이 참석한 가운데 교육생 스스로 작성한 ‘개인의 변화계획서’ 발표로 마무리된다. 이 때문인지 개교 3개월도 안 돼 교육생이 벌써 1000명을 넘어섰다. 공무원을 비롯해 대기업·중소기업 사원,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계층도 다양하다. 김 원장은 “혁신은 시대정신이지만 급진적인 변화보다 지속적인 개선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IMF 지원 펜타곤이 주도 그는 직업 군인으로서의 경력도 화려하다. 야전지휘관뿐만 아니라 국방 정책·전략분야 책임자까지 두루 섭렵했다. 특히 한·미동맹관계 실무자(중령)로 국장(소장)까지 오른 첫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1996년 7월부터 만 2년간의 주미 국방무관 생활은 ‘국가 부강의 필요성’을 다시한번 일깨워 줬다. 그는 “IMF가 터지자 주변국에서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돈이 없어 도시락을 싸서 대사관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도 했다.”며 당시의 고충을 들려줬다.IMF 극복이 가능했던 요인은 국민들의 애국심과 시의적절한 외교전략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내놨다. 지도자가 나서 통일 이후 처음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펜타곤이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인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전국민 금모으기 운동’이 시선을 끌면서 실시간으로 중계되기까지 했다고 회상했다. 사실 그는 준비된 혁신 메신저이다.1994년 평시작전권 환수 당시 ‘윈윈 전략’을 내세워 양국간 큰 갈등 없이 임무를 마무리했다. 사단장 시절에는 ‘인생대학론’을 내세워 새로운 병영문화를 직접 만들어 시행하기도 했다. 전초(GP) 총기사건 이후 대두된 혁신안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확산시키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지휘관의 신념이 필요한 대목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가 봉사 모델 세울 터 김 원장은 예비역 장성들의 적극적인 사회활동도 권장했다. 수십년간 체득한 조직운영 및 경영 노하우를 활용하지 못해 사장시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야전에서 호령하던 그 정신과 자세를 살려 자신의 능력을 찾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후회가 미래의 희망을 덮게 되면 빨리 늙는다.”면서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산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전남 나주(55) ▲광주일고 ▲육군사관학교 28기 ▲국방부 정책기획국 연합방위과장 ▲주미 국방무관 ▲합참 C4I부장 ▲제8보병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연구위원, 충남대 초빙교수
  • [새광고] 독도배경 깨끗한 이미지 강조

    롯데칠성음료㈜의 칠성사이다가 천연기념물 제336호인 독도를 배경으로 한 비주얼 광고를 선보였다. 맑고 깨끗한 이미지의 칠성사이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독도를 배경으로 삼아 제품 특성을 극대화했다. 독도에 대한 칠성사이다의 접근법이 좀 다르다. 우리땅이라는 애국심, 어획량이라는 경제성 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둬야 할 깨끗함의 상징으로서 다가선 것이 특징이다.
  • 국수주의 자극 ‘포스트 고이즈미’ 경쟁

    |도쿄 이춘규특파원|‘포스트 고이즈미 경쟁은 민족우월 의식·국수주의적 애국심 자극 경쟁부터(?)’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후계경쟁이 시작된 가운데 유력 차기 주자들이 일본민족 우월의식을 자극하는 국수주의 경쟁에 불을 댕겼다. 취임 후 매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 높은 인기를 유지한 ‘고이즈미 학습 효과’로 풀이된다. 차기 주자 가운데 한 명인 아소 다로 총무상이 15일 국수주의를 자극하는 듯한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아소 총무상은 규슈국립박물관 개관식 축사에서 “하나의 문화, 하나의 문명,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를 갖고 있는 국가는 일본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이 16일 보도했다.이날 행사에는 후쿠오카 주재 한국총영사 등 한국과 중국 관계자를 포함,800여명이 참석했다. 아소 총무상 사무실은 “유럽 등은 침략이나 민족 이동으로 문화 등이 변했지만 일본은 국가 형성 과정에서 그런 역사가 거의 없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역시 가장 강력한 차기 후보로 거론되는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대리 주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아베 간사장대리가 고문으로, 그를 외곽에서 지원하는 자민당내 ‘평화를 원하고 국익을 생각, 야스쿠니참배를 지지하는 젊은 국회의원모임’이 초선의원들에게 가입을 권유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16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18일 활동을 재개하는 이 모임에는 당내 신인 의원 83명 중 14명이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모임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지지를 내걸고 지난 6월 출범했다. 이 모임의 활동 재개는 대북 강경파로 국수주의를 자극해온 아베 간사장대리의 차기행보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taein@seoul.co.kr
  • [의회] ‘반탁 학생운동’ 공적비 세워주오

    “100만학도의 반탁운동을 기리는 공적비를 보라매공원에 세워주세요.” 11일 열린 제 159회 서울시의회 임시회에 반탁운동을 기리는 공적비를 세워달라는 청원이 접수돼 관심을 모았다. 청원은 (사)한국반탁반공학생운동기념사업회(위원장 유호필) 명의로 서울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 장영호 의원에게 접수, 소개됐다. 이들은 청원서를 통해 광복과 함께 1948년 8월15일 정부수립이 끝날 때까지 펼쳐진 100만학도의 반탁운동을 이끌었던 전국학생연맹의 자주독립정신과 애국정신을 기리는 공적비를 보라매공원 내 충혼탑 우측에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공적비명은 ‘대한민국 건국·호국·애국투사 공적비’로 정했다. 이들이 요구한 공적비의 크기는 너비 10.8m에 높이 3.048m 크기의 입상. 건립에 필요한 재원 3000여만원은 전액 기념사업회가 부담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회 장영호 의원은 “반탁반공학생운동에 참여한 애국정신이 수구보수로 치부되고 국가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면서 “후세들에게 애국심을 길러주기 위해 공적비 건립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씨줄날줄] 김영옥 옹/박홍기 논설위원

    미국 역사상 육군 전투대대를 지휘한 첫 소수인종 장교, 미국·프랑스·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받은 무공훈장 20여개, 한국전쟁에서의 무패신화 창조…. 한국계 미국인 김영옥(86)옹의 이력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전쟁영웅 김영옥’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미국 국적자라는 이유로 한국정부가 그를 외국인 취급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이민 2세인 그는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침공 이후 초급장교가 부족해지자 사병에서 장교후보생으로 추천됐다. 동양계로는 유일했다. 소위로 임관한 뒤 하와이 출신 일본계 2세로 구성된 제100보병대대의 소대장으로 부임해 유럽 전선으로 배치된 뒤 이탈리아·프랑스 등지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지금도 프랑스 동북부 브뤼에르 지방의 독일군으로부터 해방된 지역에서는 ‘카피텐(대위) 김’이라는 전설적인 인물로 남아 있다. 지난 2월 프랑스 정부는 2차 대전 종전 60년을 맞아 그에게 최고무공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했다. 그는 46년 명예 제대한 뒤 세탁소를 운영하다 ‘부모의 나라’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50년 9월 자원 입대했다. 미 7사단 1대대의 지휘를 맡았던 그는 전투에서 단 한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다. 휴전선의 중부전선이 화천 쪽에서 북으로 치솟아 있는 모양도 그의 대대가 진격해 승리한 결과이다. 미국 교민들 사이에서 그가 ‘전쟁 영웅’이자 ‘이민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는 한국전쟁에서 얻은 파편과 총알 때문에 상처투성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해외 동포라는 이유로 그의 무공을 평가하지 않았다. 그의 사회봉사 활동만을 인정,2003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을 뿐이다. 정부는 줄곧 해외동포들의 포용 방침을 밝혀왔다. 하지만 로버트 김 사건에서 보듯 정작 조국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김 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포의 애국심을 인정하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암 투병을 하는 그는 항상 말한단다.“나는 100% 한국인이며,100% 미국인”이라고. 정부가 최근 그에게 군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서훈키로 결정했다. 동포사회를 껴안는 차원에서도 뒤늦게나마 다행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자유의 몸’ 로버트 김 일문일답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당초 예정됐던 2007년 7월보다 20개월 앞당겨 형 집행이 만료돼 자유의 몸이 된 로버트 김은 버지니아주 마나사스파크 자택에서 5일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갖고 “그동안 성원해준 국민들이 없었다면 이런 기쁜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다음달 고국 방문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소감은. -꿈만 같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국민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법원으로부터 통지를 받고 아내와 하이파이브(손인사)를 했다. 건강도 좋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젊은이들이 미국을 잘 모르고 너무 이상적으로만 생각한다. 정직하고 남을 도와주려던 미국의 옛날 문화가 많이 희석되고, 요즘은 외국인과 이웃을 경계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미국 연수와 조기 유학에까지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듯하다. ▶고국에서 할 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했나. -국가관이나 이념이 흔들리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여러가지 얘기를 해주고 싶다. 미국의 형무소 생활에 대한 책을 발간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누구를 가장 먼저 만날 것인가. -우선 돌아가신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 후원회를 구성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들, 친·인척들도 만나야 하고. 또 동생도 있으니까. ▶법원에서 언제 연락이 왔나. -오늘 편지가 왔더라. 원래 판사는 보호관찰 집행 정지를 승인했는데, 정부에서 반대해 왔다. 그런데 두달 전쯤 담당 관리가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판사와 내 문제로 대화를 나눴다면서 여권을 만들어 보라고 하더라. 좋은 소식이 올 것 같아 그때부터 매일 법원 통지를 기다렸다. ▶북한 정보를 제공했던 백동일 대령과는 연락하나. -서신을 교환하는데 오늘도 축하 이메일을 보냈더라. 애국심 강한 군인이었는데 타의에 의해 그만두어 안타깝다. 그분도 한국을 위해 일했는데, 우리가 미국을 그렇게까지 의식할 필요는 없는데…. ▶미국 언론의 반응은.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는 관심을 가졌다가 지금은 다 잊은 듯하다. dawn@seoul.co.kr
  • [길섶에서] 늦둥이/이목희 논설위원

    식사자리에서 늦둥이가 화제에 올랐다.40대 후반에 예쁜 공주님을 얻고 좋아하는 친구 얘기를 들으며 모두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괜히 정관수술을 일찍 했나, 일순 후회가 됐다. 그래도 그때는 ‘애국심’에서 한 것인데…. 1980년대말 예비군 동원훈련을 가니 먼저 정관수술 희망자를 골라낸다. 일주일 훈련면제를 강조했다. 다음으로 헌혈자를 불러낸다. 하루 훈련면제다. 아들 둘을 낳았으니 이젠 됐다는 생각에 정관수술반에 합류했다. 승합차를 타고 노고산 훈련장을 떠나 도착한 곳은 회사 근처였다. 서울시청 뒤 조그마한 비뇨기과에서 공짜 정관수술이 이뤄졌다. 의사가 “자를까요, 묶을까요.”라고 묻기에 “확실하게 해달라.”고 했다. 아마 자른 듯싶다. 묶으면 복원이 좀 쉽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같이 수술받았던 선배는 후유증 때문에 입원까지 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식사자리의 다른 친구가 아는 척했다.“이제는 거꾸로 복원수술에 의료보험 혜택을 주니 생각해보라.” 의사 친구가 손을 내저었다.“정관수술 후 십수년이 지났으면 복원이 쉽지 않다.”며 “나중에 손자를 봐주든지, 입양쪽이 나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열린세상] 설마와 역시로 평가되는 北·日관계/윤민호 일본 금융정보센터 특별연구원

    금년 여름, 일본 열도에서는 ‘설마와 역시’라는 단어가 일반국민 사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첫번째,9월11일의 중의원선거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이 설마 과반수의 의석은 유지하겠지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의회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전의석의 3분의2를 확보하여 역시 고이즈미라는 평가를 받았다. 두번째,9월13일부터 베이징에서 열렸던 제4차 6개국 협의 결과 설마로 생각되던 북한의 완전 핵 포기와 일본과의 대화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그러나 그 다음날 북한의 경수로 제공요구에 역시 믿기 어려운 북한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일본에서 북한에 대한 전달과 평가는 주로 매스컴에 의하여 이뤄지고 있다. 설마라고 여겨졌던 2002년 9월의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방문과 매스컴에서 주장하던 의문투성이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북한이 인정하여 역시 북한이라는 부정적인 결론을 남겨주면서 그것은 시작되었다. 지금, 일본의 최대 관심사항은 1년 이상 끊어진 양국 정부간 공식대화의 시작과 매스컴에 가장 많은 화제를 제공하고 있는 일본인 납치자들의 문제이다. 설마 약속한 실무자들의 회합을 개최하는 대가로 다른 요구가 있을지에 대하여 벌써 매스컴이 슬며시 역시 북한이라는 부정적인 인상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역대 일본의 정치지도자들 중에서 북한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의 1년 정도 남은 임기중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특히 국민들에게 설마라는 인식과 역시라는 결과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국교정상화의 길을 여는 선택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국민에게 행동으로 정치를 알리려는 고이즈미 총리의 마지막 행보가 과연 북한으로 선택이 될지 자못 궁금하다. 지금,1년후에 등장이 예상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들 중에는 누구도 북한과의 관계에 적극적이거나 호의를 가진 정치가가 없어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번이 일본과 북한의 관계개선의 아주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설마 누군가가 고이즈미 총리의 행보를 흉내내어, 역시 일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기대를 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는 정치적 요인보다는 경제적 관계가 중요시되어야 한다. 지금 북한은 핵문제와 일본인납치 문제로 일본과의 정상적인 경제교류를 못 하고 있다.2000년까지 북한의 무역 상대국중, 중국과 같은 수준이었던 일본이 2004년에는 북한의 무역총액에 대하여 중국과 비교하여 5분의1 수준으로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이다. 또한 중국의 대북한 투자도 2003년에는 130만달러였는데 2004년에는 8850만달러로 급증하고 있다.2004년도 한국과 중국의 무역총액이 793억달러, 중국과 북한의 무역총액이 3억 8000만달러이다. 지금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강 하나(1㎞도 안 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중국과는 인접 마을과 같은 관계이다. 바다(200㎞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일본과는 인접 국가의 관계이다. 필자는 1988년부터 정기적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금년 9월에도 베이징을 방문하였다. 베이징거리에는 이전보다 휠씬 많은 한국메이커의 자동차가 거리를 누비고 있다. 택시를 타면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한국 사람은 애국심이 강하여 한국메이커의 자동차를 탄다는 중국운전사의 대답이다. 또한 북한 음식점도 눈에 띄게 늘었다. 안타깝게도 맛보려던 북한산 맥주가 없어 북한을 알 기회를 놓쳤지만 간접적으로 북한의 낙후된 유통구조나 뒤처진 도로사정을 실감하였다. 정치와 경제는 균형이 맞아야 한다. 북한은 정치와 경제가 중국에 치우친 모양새이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하여서는 북한 자신이 하루빨리 균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한반도 문제에 대하여 설마와 역시라는 표현으로 자기만족의 보도를 일삼는 일본의 매스컴의 태도에 흔들리는 일본국민의 마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윤민호 일본 금융정보센터 특별연구원
  • 美 또 허리케인 비상경계령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남부의 멕시코만 지역을 강타했던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사망자 수가 당초 일부에서 우려했던 1만명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보인다고 미 언론들이 10일(현지시간) 정부 및 군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또 지금까지 확인된 외국인 사망자는 없다고 국무부가 밝혔다. 카트리나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에서는 침수지역에서 물빼기 작업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전기와 상수도가 다시 공급되기 시작하는 등 ‘희망의 조짐’이 보인다고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 언론들이 전했다.●부시 지지도 38% 취임이래 최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날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카트리나 재난을 9·11테러 공격에 비유하면서 피해 극복을 위한 미국인의 단결과 용기, 애국심 발휘를 호소하고 피해지역을 “과거보다 더 활력 있도록” 재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카트리나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 등의 여파로 부시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도는 38%로 내려가 2001년 취임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고 뉴스위크가 보도했다.지난 8,9일 미국인 1000명을 상대로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 국내든 국외든 어떤 위기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지에 대해 응답자의 52%가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55%는 부시 대통령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연방재난관리청장 교체 부시 대통령은 카트리나에 대한 정부의 초기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난 여론에 따라 마이클 브라운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을 교체할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따라 카트리나 구호 작업은 뉴올리언스 구호·구조 작업을 지휘 중인 타드 앨런 해안경비대 부사령관이 맡게 된다고 AP는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일 피해지역을 처음 시찰했을 때 브라운 청장에게 “많은 일을 했다.”며 격려한 바 있다.●당국 시신수습 취재통제 철회 미 정부의 ‘카트리나 합동대책반’은 언론의 희생자 시신 수습활동 취재를 통제하려다 CNN이 소송을 제기하자 철회했다.당초 미 당국이 밝힌 취재금지 명분은 “죽은 자의 프라이버시와 명예보호”였으며,FEMA측은 사진기자들에게 시신 사진을 찍지 말도록 요구해 왔다. 그러나 CNN은 짐 월튼 회장의 지시에 따라 카트리나 희생자 수습활동을 “완전하고 공정하게 취재하는 것을 어떤 기관도 제한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며, 법원은 즉각 ‘무접근’ 방침을 해제하라는 가처분을 내렸다. 카트리나로 인한 피해 복구가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열대성 폭풍 ‘오필리아’가 세력을 크게 확장, 미국 남동부지역을 위협하고 있다고 기상예보관들이 밝혔다.국립 허리케인센터는 플로리다주 북부지역과 조지아·사우스캐롤라이나 등지의 주민들에게 앞으로 며칠간 오필리아의 진행 방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며 비상경계령을 내렸다.한편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는 카트리나 구호 대책이 지연된 이유가 인종차별 때문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역겨운’ 이야기라고 말했다고 CNN이 보도했다.그녀는 미시시피주의 피해 현장을 둘러보는 길에 미국도시라디오방송(AURN) 기자에게 “부시 대통령이 국민 모두에게 신경쓰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솔직히 그같은 이야기는 모두 역겨운 발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dawn@seoul.co.kr
  •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권형진·이종훈 엮음

    나치즘 운동에 목숨을 바친 호르스트 베셀. 마오쩌둥 시대의 ‘붉은 전사’ 레이펑. 스탈린 시대의 스타하노프.‘영원한 천리마’ 길확실.‘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이승복…. 눈밝은 이들은 금방 알아차렸겠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파시즘 체제에 각광받은 ‘영웅’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스탈린이나 마오쩌둥, 김일성, 박정희처럼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역사영웅’이 아니라, 대중적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영웅, 즉 ‘대중영웅’이었다. 노동영웅, 천리마영웅, 소년영웅, 반공영웅 등등. 이들 다양한 대중영웅들은 언제 왜 등장했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권형진·이종훈 엮음, 휴머니스트 펴냄)는 파시즘 체제에서 ‘영웅’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꼼꼼히 파헤친 책이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가 기획했다. 책에 따르면 대중이 본격적으로 영웅숭배의 대상으로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부터다. 가족을 떠나 참호에서 몇 년 동안 최악의 순간들을 경험해야 하는 병사들을 묶어두고, 남자없는 후방에서 여성들이 무기공장에서 일하도록 만들기 위해 민족심과 애국심이 무한대로 강조되었고, 권력은 이들의 희생이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을 주어야 했다. 저자는 대중영웅에서 권력의 필요 못지않게 ‘나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대중의 욕망을 읽어낸다. 스탈린 시대 공산주의 이념의 순교자로 만들어진 소년영웅 파블릭 모로조프 기념관에 근무하는 한 직원이 서방 언론 취재에 응하면서 한 발언이 시사적이다. ‘그는 영웅이 아닌 단지 자그마한 어린애였을지 모르죠. 그러나 그 시대 우리는 영웅이 필요했어요.’2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독도가 영토분쟁지역이라니요…”

    “독도가 국제법상 ‘영토분쟁지역’이라니요….” 올해 외무고시(39회)에 수석합격한 여대생이 1일 공식 출범한 ‘사이버독도해양청’ 근무를 자원했다. 주인공은 서울대 영어교육과 4년으로 01학번인 장혜정(24)씨. 공직 입문에 앞서 남은 1년간의 대학생활을 뜻있게 보내기 위해 사이버독도해양청 근무를 자원했다. 장씨는 “외무고시 준비를 시작하면서 독도가 영토분쟁지역인 것을 알았다.”면서 “애국심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국제사회에선 다르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평소 한·일관계에 관심이 많아 외교관의 길을 선택한 장씨는 시험기간에 유독 한·일관계법 분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장씨는 “전문외교관으로서 소양과 지식을 갖추면서 ‘독도지킴이’ 역할도 충실히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내년부터 외교부에서 정식으로 근무하게 되는 장씨는 한·일관계를 담당하는 ‘동북아1과’에 배치돼 일하고 싶다는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사이버독도해양청에는 장씨 외에도 지난해 외교통상부의 국제법 논문경시대회에서 1등을 한 최현용(25·경희대 법대 4년)씨와 1953년부터 56년까지 ‘독도의용수비대장’을 지내다 86년 숨진 홍순칠옹의 차녀 홍연숙(49)씨 등이 직원으로 위촉됐다.사이버독도청은 국민 공모를 통해 선출된 박춘호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을 청장으로 총무, 법률, 홍보, 독도환경 등 4개팀으로 나뉘어 활동한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여의도 in] “김혜경 대표 北으로 가라”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가 북한의 국립묘지격인 애국열사릉 방명록에 “당신들의 ‘애국의 마음’을 길이 새기겠다.”고 서명한 것을 놓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지난 23∼27일 당 방북단을 이끌고 평양을 찾은 김 대표는 24일 신미리 애국열사릉을 방문, 참배한 뒤 방명록에 이같이 적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나라당 김형렬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의도가 의심스러운 부적절한 내용”이라며 사과와 해명을 촉구했다. 대표적 보수파인 김용갑 의원은 한술 더 떠 “김 대표는 자신이 애국하는 북한으로 가라.”며 검찰수사를 요구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항일독립투사들의 애국심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므로 소모적 논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노동당 김배곤 부대변인은 “사상은 다르지만 나라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헌신한 동포에게 기본적 예의를 표한 것”이라며 “남북간 신뢰를 무너뜨리려는 악의에 찬 기도를 중단하라.”고 맞받았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정책진단] 출산휴가 급여 전액 국가부담 검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충격을 줄 인구지진이다.’-인구학자 폴 엘리스 ‘우리사회의 뿌리를 흔드는 심각한 문제다.’-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심각성에 대한 국내외 정치인·학자들의 진단이다. 그만큼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21세기 세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평생낳는 자녀 수)은 1.16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오는 2050년에는 지금보다 600만여명이 줄어든 4234만명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주무부처인 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많은 출산을 이끌어 내기 위해 애국심에 호소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저출산·고령화대책본부 발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저출산 정부정책을 진단했다.●정부의 각종 당근책 총동원 저출산에 대한 정부 대책의 핵심은 자녀를 힘들이지 않고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육아지원시설 확충, 출산지원 등이 주요 내용이다. 장기적으로는 다자녀 가구에 대한 세제혜택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우선 90일 동안 산전·산후 휴가 급여 가운데 60일을 기업이 부담토록 했던 것을 전액 국가가 부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45일 한도내에서 유산ㆍ사산 휴가제를 실시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 보육료 지원대상도 도시가계 평균소득(올해 기준 월 311만원)의 60% 미만 가구에서 130% 미만 가구로 확대,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혜택이 돌아가도록 할 예정이다. 특히 다자녀 가구에 대해선 국민주택 특별 공급과 국민임대주택 우선권 부여, 주택기금 대출한도 확대 및 대출금리 인하 등 각종 주택우대 정책을 강력 추진할 방침이다. 출산을 독려하기 위한 실질적인 혜택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밖에 정부는 ▲육아휴직급여 50만원으로 인상, 대체인력 채용시 장려금 지급 ▲불임부부에 대한 불임 시술비 지원 등을 고려 중이다.●위원회 발족 등 기구개편도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범정부 차원에서 다루기 위해 대통령직속의 저출산고령화위원회를 만들 예정이다. 이는 지난 5월 공포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따른 것이다. 여기서는 저출산의 원인과 근본적인 대책을 주축으로 한 장기계획을 세우게 된다. 구체적인 대응체계는 30일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된다. 저출산에 대한 세부적인 시행계획과 자금집행은 복지부 산하의 저출산·고령사회대책본부가 맡을 예정이다.1급인 대책본부 본부장은 외부 민간전문가를 영입하기로 했다.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2)-동생 김호연 빙그레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2)-동생 김호연 빙그레회장家

    ‘한번 들어서면 뒤를 볼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김호연(50) 회장의 경영 ‘일방 통행론’이 진행된지 횟수로 13년째.1992년 ‘미운오리 새끼’였던 빙그레는 2005년 확실한 ‘백조’가 됐다. 당시 부채 비율 4000%대는 50%대로,230억원대의 시가 총액은 무려 20배 가까이 늘어난 4300억원대로 껑충 뛰었다.10년간 누적적자 100억원은 놀랍게도 2004년에 순이익 350억원으로 바뀌었다. 이같은 변신은 빙그레와 김 회장이 처했던 극한의 조건들이 이뤄낸 절묘한 조화 덕분이다. 그룹 신규 투자에서 항상 ‘찬밥 신세’였던 빙그레는 김 회장이 취임한 이후부터 한화와의 단절을 통해 자력 갱생의 계기를 만들었고, 한때 경영능력에 대한 오해를 뒤집어쓴 김 회장은 처절한 구조조정으로 수익성과 성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특히 빙그레의 뛰어난 경영 성적표는 일방적으로 제기됐던 김 회장의 ‘자질 오해’를 깨끗이 불식시켰다. 내성적이며 말수가 적은 ‘충청도 양반’ 스타일인 김 회장에게 10년 이상의 기나긴 구조조정을 성공케 한 원동력은 뭘까. 불명예를 안고 무너지기엔 너무나 억울해서였을까. 아니면 성공해서 반드시 보여줘야만 했던 오기였을까. ●형제 분가 김승연-호연 형제의 분가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92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될 당시 시작된 형제간의 재산권 분할과 관련된 소송은 여론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건의 발단은 당시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의 사장인 김호연 회장을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명예 퇴진시킨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김 회장으로서는 공격적으로 유통업을 확장시키려는 순간에 경영 감사에서 이런 사실을 통보받자 너무나 어이없어했다고 한다. 한양유통은 인수 시절부터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데다 증자가 없어 한층 악화됐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회사에서 저를 밀어낸 것은 사실상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이 사건 이후 6개월 가량 두문불출했다.‘경영능력이 부족하다.’는 낙인 때문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였다. 이 때문에 그는 2004년 4월에 수상한 ‘한국의 경영자상’에 유독 애착이 간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일련의 사태 이후 재산권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자, 약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3년 6개월의 법정 공방을 거치면서 김 회장은 모친인 강태영(78) 여사를 비롯한 가족과 지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강 여사의 칠순을 맞아 대학 은사인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형제간 화해를 권유하자 김 회장은 이를 받아들여 소송을 취하했다. 강 여사는 당시 “칠순 잔치보다 가족들의 화합이 더 중요하며, 형제들의 잔치 비용을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좀 서먹해진 것도 있지만 과거 형님과의 갈등은 해소됐다.”면서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형제간 모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10년 구조조정 92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될 때 빙그레의 부채 비율은 4183%,10년간 누적적자가 100억원이나 되는 자본잠식 상태였다. 당시 기업 평균 부채비율이 420%대였던 점과 비교하면 무려 10배나 높은 수치였다. 한때 한화그룹의 ‘캐시카우’로서 그룹의 투자 자금을 조달했던 옛 위용은 사라지고,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았다.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다. 시장 점유율 1위는 의미가 없다. 수익성을 개선시킬 여지가 없는 사업은 과감히 잘라야 한다.”는 김 회장의 경영판단 아래 강도높은 사업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김 회장은 우선 가지치기를 시작했다.‘썬메리’ 베이커리 사업을 삼립식품에 매각했으며, 냉동식품과 초코케이크 등 비주력 사업은 시장 철수를 단행했다. 특히 초코케이크 사업 철수로 인해 유휴 상태였던 생산라인을 가동시키기 위해 아이스크림 경쟁사인 롯데제과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도 받는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았다. 빙그레 구조조정의 핵심은 주력 사업인 라면과 스낵사업 부문이었다.80년대 중반 겨울철 비수기 주력 사업으로 시작한 라면과 스낵사업은 매년 30억∼40억원씩의 적자를 기록하는 빙그레의 ‘두통거리’였다. 김 회장은 2003년 3월 라면사업 철수와 스낵사업의 국내 영업권 위탁이라는 고강도 처방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매수자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회장의 이같은 구조조정과 현금 흐름의 개선 노력은 92년 부채비율 4183%에서 외환위기 당시인 98년 360%,2004년에는 53.7%로 줄어든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학구파에서 몽골 인연까지 김 회장은 재계의 학구파로 유명하다. 경기고와 서강대 무역학과를 나온 김 회장은 일본 히도쓰바시(一橋)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 석사 학위도 땄다. 또 지금은 서강대에서 경영학과 박사 학위를 밟고 있다. 그의 독서량은 경영인들 중에서도 다독으로 손꼽힌다. 하루에 한 권 이상을 읽는 편이니 그야말로 ‘독서광’이다. 또 빙그레의 구조조정이 만들어준 김 회장과 몽골의 인연은 각별하다. 서울 압구정동 사옥을 매각하고 남양주시 도농동으로 본사를 옮긴 빙그레는 남양주가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와 자매결연을 맺은 덕분에 자연스럽게 몽골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 등의 잦은 방문이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김 회장은 김구재단을 통해 몽골 유학생들을 지원했고, 몽골 정부는 2001년 김 회장을 명예영사로 임명했다. 김 회장은 또 ‘몽골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후원했으며, 특히 최근에는 차남 동만의 아이디어로 몽골 수흐바토르 테뮤렐 종합학교에 어학실습실 설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여기에 김 회장은 바가반디 몽골 전 대통령의 딸인 바야르마씨와 서강대 동문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2005년 3월 한국과 몽골의 우호 협력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몽골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북극성 훈장은 몽골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러브 레터로 결혼하다.’ 김 회장과 김미(48)씨는 떠들썩한(?) 연애 결혼으로 유명하다.‘끼리 문화’가 지배적인 재벌가에선 이례적이다. 보통 정략 결혼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더러 연애 결혼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 커플은 정말 뜨거운 사이였다. 한화 김종희가(家)의 2세 가운데 유일한 연애 결혼 케이스다. 김 회장과 김미씨의 인연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간다. 서강대를 다니던 김 회장과 이화여대를 다니던 김미씨는 명문가의 자제로서 서로 얼굴은 알고 있었던 사이. 호감을 갖고 데이트를 즐기다가 김 회장의 공군장교 입소 훈련으로 한층 각별해진 사이로 발전했다. 김미씨의 ‘러브 레터’로 김 회장은 당시 연애편지를 가장 많이 받는 훈련생으로 부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편지와 함께 김미씨가 곱게 접어 보낸 종이학은 김 회장의 군 생활 내내 함께 했다고 한다. 이들은 5년 넘게 연애를 했다. 김 회장의 군 생활이 길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형인 김승연(53) 회장의 ‘싱글’도 이들 연애를 길게 했다. 김 회장의 얘기다.“훈련소에서 저의 연애 스토리는 꽤 유명했습니다. 아내에게 답장을 쓰는 것도 중요한 하루 일과였죠. 지금도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나 종이학들은 아내가 추억으로 잘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엔 형님 결혼이 어서 이뤄지기를 기다린 적이 많았습니다.” 김승연 회장이 백두진 전 국회의장의 부인인 허숙자 여사의 중매로 1982년 10월 서영민(44)씨와 결혼식을 올리자, 김 회장도 그 다음해 2월 김미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회장과 김미씨는 장남 동환(22)-장녀 정화(21)-차남 동만(18) 등 2남1녀를 뒀다.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처가는 독립운동가(家) 산실 김 회장의 처가는 국내 독립운동가(家)를 대표할 만한 명문가다. 김미 여사의 조부가 민족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이며, 큰어머니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고 안미생 여사다. 김 여사의 부친은 교통부 장관과 타이완 대사, 공군 참모총장, 국회의원 등을 지낸 김신(83)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이다. 김신 회장은 임윤연(작고) 여사 사이에 김진­김양-김휘-김미 등 3남1녀를 뒀다. 김진(56)씨는 동서통상과 글로볼씨스텍 대표이사를 거쳐 DJ정권 시절인 98년 대한주택공사 감사를 역임했다. 또 참여정부 들어서는 대한주택공사 사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미국 남가주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행정학 석사 학위를 땄다. 차남 김양(52)씨는 최근 주중국 상하이 총영사에 임명됐다. 이로써 그의 집안은 4대째 상하이와 인연을 맺게 됐다. 김구 선생은 1919년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건너갔으며, 이듬해는 선생의 모친인 고 곽낙원 여사와 부인인 최준례 여사가 상하이로 갔다. 김 총영사의 부친 김신 백범 기념사업협회 회장 역시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김 총영사는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고, 외국계 회사 근무와 기업체 운영 등으로 경제 경험이 풍부한 데다 상하이가 갖는 독립운동의 상징성을 감안해 발탁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젖소 사료를 제조·판매하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EBT 네트웍스의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시티뱅크 서울지점 부장과 컴퓨터 코리아 부사장 등을 거쳤다. 3남 김휘(50)씨는 광고인으로 나라기획 이사와 멕켄 에릭슨 상무를 거쳐 지금은 광고대행사 ㈜에이블리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한국관광공사 비상임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원을 나왔다. 김 회장은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라는 인연으로 독립운동가 추모사업에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회장은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이사로 활동하며 서울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기념관 건립에 큰 역할을 했으며, 현재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백범 사상의 학술연구과 관련 출판물 발간도 지원하고 있다. 김 회장은 또 후손 없이 서거한 이봉창 의사의 기념사업회도 후원하고 있다. 그는 이봉창 의사의 업적을 알리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10월9일 ‘광복 60주년 기념 이봉창의사 마라톤 대회’를 연다. 이밖에 김 회장은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김구재단을 통해 매년 150여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천재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커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겠습니까. 좋은 것을 주고 싶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고…. 하지만 저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가장 큰 자산은 균형 잡힌 가치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똑똑한 천재로 키우기보다 평범하지만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김호연 회장) 김 회장과 김 여사는 자식들에게 유난히 사회봉사 활동을 강조한다.‘우리’라는 단어의 참 의미를 깨우쳐주기 위해서다. 독립운동가(家)의 후손다운 자녀 교육법이다. 큰 아들 동환군이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을 보낼 때다. 김 여사가 아들 손을 잡고 찾은 곳은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한 맹인교회. 설거지나 청소 등 맹인들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도우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아들에게 가르쳤다. 모자(母子)는 동환군이 중3이 될 때까지 6년간 매년 여름을 맹인교회에서 봉사하며 지냈다. 또 외환위기가 한창인 98년에는 성공회 ‘푸드뱅크’ 주관의 노숙자 돕기 자원봉사에 김 여사와 3남매가 함께 참가해 서울역 광장에서 석달간 식사 배식과 설거지 등을 하기도 했다. 김 회장도 해비탯(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자녀들을 참여시켜 함께 집을 짓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 김구선생 손녀 김미 여사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사치 안 하고, 겸손하고, 얘들 교육에 관심 많고요. 또 독립운동가 후손답게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는데, 일은 조용히 하려고 해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굉장히 쑥스러워하고 꺼려합니다.” 김호연 회장이 보는 부인 김미 여사의 평이다. 김 여사도 국내 여느 재벌가의 며느리처럼 공식적인 바깥 활동을 거의 안한다. 김 여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봉사 활동도 ‘왼손이 하는 일, 오른 손도 모르게’ 하는 식이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대외 활동을 한다.6년간 맹인교회의 도우미로서 활동했고, 여전히 어린이 교육사업에 앞장서고 있지만 남들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김 여사의 이런 배경에는 국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家)로서 사회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과 조부 백범 김구 선생의 명예에 혹시나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몸가짐을 조신하게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김 회장과 자녀들이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는 것도 김 여사의 영향이 크다. 특히 김 여사의 봉사 활동은 살아있는 자녀 교육이 됐다. 김 여사는 자녀들에게 명문가의 사회적 책임을 가르치며, 균형 잡힌 가치관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여사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지인의 설명이다.“김 여사의 모친인 임윤연 여사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김 여사는 중2 때부터 집안 살림을 챙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상 어린 시절부터 주부 역할을 해오신 거죠. 그래서 그런지 차분하고, 조용할 뿐 아니라 일처리도 깔끔합니다.” 김 여사는 현재 국내·외 아동의 건강과 교육을 비롯해 결손·빈곤 가정 어린이 지원사업 등을 펼치는 국제 어린이 보호재단인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의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한편 백범 김구 선생은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지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1905년 11월부터 1907년 2월까지 황해도 장연에서 대한매일신보 지사장으로 민족신문 보급에 애썼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시청 덮은 태극기 1000원에 팝니다

    시청 덮은 태극기 1000원에 팝니다

    시청 본관을 뒤덮었던 태극기를 무료로 나눠주려던 서울시 계획이 선거법에 발목이 잡혀 유료로 전환됐다. 서울시는 23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1000원을 받고 시민들에게 판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당초 광복 60돌을 맞아 지난 10일부터 21일까지 청사 전면을 장식했던 태극기 3600장을 시민들의 애국심 고취와 광복의 의미를 되새긴다는 차원에서 무료로 나눠줄 방침이었다. 시는 시 선관위에서 ‘태극기 무료배부가 기부행위를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86조 및 114조에 위반한다.’는 통보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시 관계자는 “국기란 상징성이 강렬한 것이고, 경축행사 때마다 무료로 나눠주는 일도 많은데 지자체라고 해서 막는 것은 너무 경직된 사고방식”이라고 반발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22일 선관위로부터 통보를 받은 뒤 행사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우려 때문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태극기 배포 취지를 살리면서도 공명선거 구현을 위해 무료로 나눠주지 못하게 돼 양해바란다.’는 안내문을 배포하고 24일 오전 9시부터 신청 접수에 들어갔다. 희망자는 다음달 2일 오후 6시까지 시 홈페이지(www.seoul.go.kr) 팝업창, 또는 배너를 이용하면 된다. 판매는 1인 1장에 한정한다. 신청자가 몰릴 경우 추첨한다. 선정된 개인 및 단체에는 기념문구가 새겨진 케이스에 태극기를 담아 우편으로 보내준다. 전화나 우편으로는 접수를 받지 않는다. 대형 태극기 1장은 서울시에서 보관하기로 했다. 다른 행사를 위해서다. 서울시는 또 다음달 안으로 태극기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공모, 우수작에 뽑히면 상품도 준다. 작품은 서울시의 각종 홍보책자에 게재하고 전시회도 열어준다. 응모 희망자는 서울시 홈페이지를 이용하거나 우편 및 방문접수도 가능하다. 다음달 중 심사를 실시한다.(02)3707-9415,6.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