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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스타벅스, 왜 장쩌민 전 주석의 손자에게 팔렸나

    중국 스타벅스, 왜 장쩌민 전 주석의 손자에게 팔렸나

    스타벅스가 중국 진출 26년 만에 토종커피와 애국주의 문화에 밀려 중국 내 사업권의 60%를 40억 달러(약 5조 7600억원)를 받고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브라이언 니콜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는 3일(현지시간) “보위 캐피털과 스타벅스는 중국 내 합작 회사를 설립하며, 스타벅스는 40%의 지분을 유지한다”며 “스타벅스 브랜드와 지적 재산권은 새로운 법인에 계속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된다”고 밝혔다. 스타벅스의 중국 내 사업권을 사들인 보위 캐피탈은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의 손자인 장쯔청이 공동 설립했다. 니콜 CEO는 보위 캐피털의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결합해 현재 8000개 매장을 2만개로 확장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2021년 스타벅스가 한국 신세계그룹에 지분을 넘기면서 현지화 전략을 강화한 것과 달리 중국 매각은 토종 루이싱커피의 공세에 밀린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1999년 베이징에 처음 문을 연 스타벅스는 2017년 설립된 루이싱커피의 저가 공세에 밀려 2023년 중국 커피 시장 일인자 자리를 내줬다. 올 2분기 매출만 해도 루이싱커피는 123억 위안(약 2조 5800억원)에 이르지만 스타벅스는 56억 위안에 그쳤다. 20위안(약 4000원)대의 루이싱커피는 스타벅스보다 10위안 정도 저렴해 중국 전역에 2만 6000개의 매장을 내며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루이싱커피는 나스닥 시장에 주식을 상장한 다음 해인 2020년 분식회계 사건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1억 8000달러(약 2400억 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하지만 기업파산 이후 회생절차를 진행하며 쿠폰 발행, 특화 메뉴 출시, 배달 중심 운영 등 공격적 경영을 펼치면서 기사회생했다. 특히 2023년에는 중국의 유명한 술인 마오타이주와 협업해 ‘마오타이 라테’를 선보여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에 스타벅스도 춘절(설날)을 맞아 ‘동파육 라테’를 내놓았지만, 60위안이 넘는 비싼 가격과 호불호가 심한 맛에 평가가 엇갈렸다. 게다가 미중갈등이 심화하면서 중국 내에서 미국 브랜드 대신 국산을 이용하자는 애국주의 소비 운동이 벌어져 스타벅스의 매출에도 타격을 입혔다. 중국 소셜네트워크에는 8살 난 딸에게 한 엄마가 스타벅스의 손님들을 비난하라고 권유하는 영상을 올리며 “애국심 교육”이라고 주장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베이징의 자금성 안에 들어선 스타벅스 매장은 중국 황실을 상징하는 공간에 미국 브랜드가 입점했다는 논란 끝에 2007년 철수했다.
  • ‘마라탕후루’가 울려 퍼지던 日 도쿄의 명소, 아메요코 시장

    ‘마라탕후루’가 울려 퍼지던 日 도쿄의 명소, 아메요코 시장

    2023년 국내에서 ‘탕후루’(糖葫蘆)가 선풍적 유행을 일으켰다. 숏폼 플랫폼에서 시작된 이 열풍은, 과일 위 설탕 코팅을 깨물 때 나는 ‘바삭’ 소리를 강조한 ASMR 먹방 콘텐츠가 저연령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거리 곳곳에 탕후루 전문 프랜차이즈 매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2024년에는 가수 겸 크리에이터 ‘서이브’가 부른 ‘마라탕후루’가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재미있는 가사로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탕후루 열풍이 서서히 잦아들던 무렵, 바다 건너 일본 ‘아메요코 시장’에서 익숙한 멜로디를 들었다. 처음에는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인파 속 소음이 만들어낸 착각이라 생각하며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분명 ‘마라탕후루’였고, 놀랍게도 번안곡이 아닌 한국어 원곡 그대로였다. “그럼 제가 선배 맘에 탕탕 후루후루 탕탕탕 후루루루루” 이 익숙한 멜로디는 현재 약 400개의 상점이 밀집해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도쿄의 대표 명소, 아메요코 시장의 활기찬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철도고가 아래 500m의 시장 아메요코 시장은 JR 우에노역과 JR 오카치마치역 사이의 철도 고가 아래를 따라 약 500m 길이로 상점들이 늘어선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시장이 시작된 역사적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JR 야마노테선 우에노역에서 시노바즈 출구로 나와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자마자 시장 입구에 닿을 수 있었다. 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 라면의 자존심, ‘농심 신라면’이었다. 이미 K-라면의 위상이 높아져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우리나라 라면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대개 패키지에 그 나라 글자가 새겨진 현지화된 제품이 대부분이다. 라면의 원조인 일본 땅에서, 그것도 패키지에 한글이 새겨진 오리지널 신라면이 매대에 놓여 있는 것을 보자 ‘외국에서 한글이 적힌 제품을 마주할 때면, 자연스레 애국심이 솟는다’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이 풍경은 시장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군 물품 암시장에서 관광 명소가 되기까지 아메요코 시장의 공식 명칭은 ‘아메야 요코초’(アメヤ 横丁)이며, 그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요코초’는 좁은 길, 골목, 작은 음식점이 밀집한 거리라는 의미다. 첫 번째는 ‘아메리카 요코초’(アメリカ 横丁) 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미국 물품’들이 이곳을 통해 암암리에 거래되었기 때문에 ‘아메리카 요코초’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는 ‘아메야 요코초’(飴屋 横丁) 설이다. 당시 설탕이 무척 귀했기 때문에 사탕(飴·아메)이 인기가 많았는데 , 이 곳에 사탕 가게(飴屋, 아메야)들이 많이 모여 있어 ‘아메야 요코초’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전후 혼란 속에서 암시장으로 시작된 아메요코 시장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본격적인 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은 미군의 전쟁 수행을 위한 핵심 병참 기지 역할을 했고 , 이에 따라 더 많은 군수물품이 일본으로 유입되었는데 , 이 물품들이 암암리에 아메요코 시장을 통해 풀리면서 시장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이후 고도 성장기를 맞이한 1970년대에는 저렴한 수입품이 거래되는 공간으로, 각종 해산물과 식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2000년대 이후 대형 쇼핑몰과 온라인 쇼핑에 밀려 수많은 재래시장이 쇠퇴했지만 아메요코 시장은 어중간한 변화 대신 전통시장으로서의 본질과 활기를 지키며 오히려 도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K-드라마와 K-팝의 영향으로 한국 상품 판매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잊을 수 없는 ‘인생 덮밥’의 여운 아메요코 시장은 평일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활기 넘치는 곳이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길거리 음식, 일반 식당, 그리고 선술집이 한데 어우러져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시장에서는 보기 힘든 선술집 문화가 유명한데 서서 마시는 이자카야가 밀집한 구역에서는 다양한 주류와 함께 꼬치구이, 회, 제철 해산물 등을 맛볼 수 있다. 이곳 아메요코 시장에서 먹은 장어덮밥을 두고 초등학생 아들은 “태어나서 먹은 덮밥 중에 가장 맛있는 ‘인생 덮밥’”이라고 말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처음 맛본 한 그릇의 장어덮밥은 어린 초등학생의 마음까지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날 혀끝에 남은 장어덮밥의 여운이 지금도 선명하다. 아메요코 시장은 단순한 시장을 넘어 역사와 추억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앞으로도 도쿄를 찾는 이들에게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로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란다.
  • ‘마라탕후루’가 울려 퍼지던 日 도쿄의 명소, 아메요코 시장 [한ZOOM]

    ‘마라탕후루’가 울려 퍼지던 日 도쿄의 명소, 아메요코 시장 [한ZOOM]

    2023년 국내에서 ‘탕후루’(糖葫蘆)가 선풍적 유행을 일으켰다. 숏폼 플랫폼에서 시작된 이 열풍은, 과일 위 설탕 코팅을 깨물 때 나는 ‘바삭’ 소리를 강조한 ASMR 먹방 콘텐츠가 저연령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거리 곳곳에 탕후루 전문 프랜차이즈 매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2024년에는 가수 겸 크리에이터 ‘서이브’가 부른 ‘마라탕후루’가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재미있는 가사로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탕후루 열풍이 서서히 잦아들던 무렵, 바다 건너 일본 ‘아메요코 시장’에서 익숙한 멜로디를 들었다. 처음에는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인파 속 소음이 만들어낸 착각이라 생각하며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분명 ‘마라탕후루’였고, 놀랍게도 번안곡이 아닌 한국어 원곡 그대로였다. “그럼 제가 선배 맘에 탕탕 후루후루 탕탕탕 후루루루루” 이 익숙한 멜로디는 현재 약 400개의 상점이 밀집해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도쿄의 대표 명소, 아메요코 시장의 활기찬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철도고가 아래 500m의 시장 아메요코 시장은 JR 우에노역과 JR 오카치마치역 사이의 철도 고가 아래를 따라 약 500m 길이로 상점들이 늘어선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시장이 시작된 역사적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JR 야마노테선 우에노역에서 시노바즈 출구로 나와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자마자 시장 입구에 닿을 수 있었다. 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 라면의 자존심, ‘농심 신라면’이었다. 이미 K-라면의 위상이 높아져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우리나라 라면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대개 패키지에 그 나라 글자가 새겨진 현지화된 제품이 대부분이다. 라면의 원조인 일본 땅에서, 그것도 패키지에 한글이 새겨진 오리지널 신라면이 매대에 놓여 있는 것을 보자 ‘외국에서 한글이 적힌 제품을 마주할 때면, 자연스레 애국심이 솟는다’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이 풍경은 시장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군 물품 암시장에서 관광 명소가 되기까지 아메요코 시장의 공식 명칭은 ‘아메야 요코초’(アメヤ 横丁)이며, 그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요코초’는 좁은 길, 골목, 작은 음식점이 밀집한 거리라는 의미다. 첫 번째는 ‘아메리카 요코초’(アメリカ 横丁) 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미국 물품’들이 이곳을 통해 암암리에 거래되었기 때문에 ‘아메리카 요코초’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는 ‘아메야 요코초’(飴屋 横丁) 설이다. 당시 설탕이 무척 귀했기 때문에 사탕(飴·아메)이 인기가 많았는데 , 이 곳에 사탕 가게(飴屋, 아메야)들이 많이 모여 있어 ‘아메야 요코초’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전후 혼란 속에서 암시장으로 시작된 아메요코 시장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본격적인 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은 미군의 전쟁 수행을 위한 핵심 병참 기지 역할을 했고 , 이에 따라 더 많은 군수물품이 일본으로 유입되었는데 , 이 물품들이 암암리에 아메요코 시장을 통해 풀리면서 시장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이후 고도 성장기를 맞이한 1970년대에는 저렴한 수입품이 거래되는 공간으로, 각종 해산물과 식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2000년대 이후 대형 쇼핑몰과 온라인 쇼핑에 밀려 수많은 재래시장이 쇠퇴했지만 아메요코 시장은 어중간한 변화 대신 전통시장으로서의 본질과 활기를 지키며 오히려 도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K-드라마와 K-팝의 영향으로 한국 상품 판매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잊을 수 없는 ‘인생 덮밥’의 여운 아메요코 시장은 평일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활기 넘치는 곳이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길거리 음식, 일반 식당, 그리고 선술집이 한데 어우러져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시장에서는 보기 힘든 선술집 문화가 유명한데 서서 마시는 이자카야가 밀집한 구역에서는 다양한 주류와 함께 꼬치구이, 회, 제철 해산물 등을 맛볼 수 있다. 이곳 아메요코 시장에서 먹은 장어덮밥을 두고 초등학생 아들은 “태어나서 먹은 덮밥 중에 가장 맛있는 ‘인생 덮밥’”이라고 말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처음 맛본 한 그릇의 장어덮밥은 어린 초등학생의 마음까지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날 혀끝에 남은 장어덮밥의 여운이 지금도 선명하다. 아메요코 시장은 단순한 시장을 넘어 역사와 추억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앞으로도 도쿄를 찾는 이들에게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로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란다.
  • 경기도의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쟁기념관 방문해 평화안보 정책 방향 모색

    경기도의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쟁기념관 방문해 평화안보 정책 방향 모색

    경기도의회 기획재정위원회(위원장 조성환)는 10월 21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방문해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을 접견하고, 경기도의 평화·안보 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방문에는 조성환 위원장(더불어민주당, 파주2)을 비롯해 이경혜 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 고양4), 박상현(더불어민주당, 부천8), 오창준(국민의힘, 광주3), 이성호(국민의힘, 용인9), 이채명(더불어민주당, 안양6) 의원 등이 함께했다. 조성환 위원장은 “경기도는 북한과 접경한 최전방 지역으로서 국가 안보와 평화 정책의 중심축 역할을 맡고 있다”며 “경기도형 안보전시관 건립과 한미동맹 우호기념관 조성 등 도민의 안보의식 제고와 미래세대를 위한 평화·안보 교육 플랫폼 구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 전쟁기념관 방문을 통해 다양한 전시와 운영체계를 직접 살펴본 만큼, 향후 경기도의 평화·안보 정책에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백승주 회장은 “전쟁기념관은 국가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미래세대가 애국심을 함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경기북부의 전쟁 격전지를 교육 콘텐츠나 관광 자원으로 활용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필요하다면 전쟁기념사업회에서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조성환 위원장은 “경기도에는 미군 반환공여구역이 많은데, 단순한 개발보다는 역사적 공간으로 재조명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길 바란다”며 “오늘 방문은 여러모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한 뜻깊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한편, 전쟁기념관은 1988년 9월 ‘전쟁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발족을 시작으로 1994년 6월 개관했으며, 전쟁의 교훈을 되새기고 평화의 가치를 전하는 전시·교육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 ‘모나리자 도둑’ 될뻔했던 피카소의 손바닥만 한 작품 사라져

    ‘모나리자 도둑’ 될뻔했던 피카소의 손바닥만 한 작품 사라져

    가장 도난 사고를 많이 당한 화가로 유명한 ‘입체파의 창시자’ 파블로 피카소의 정물화가 모국 스페인에서 운송 도중 사라졌다.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는 지난 2일 수도 마드리드에서 출발해 그라나다로 향하던 피카소의 1919년작 ‘기타가 있는 정물’의 행방을 경찰이 수사 중이라고 전했다. 사라진 그림은 개인 소장품으로, 인물화 캔버스 규격인 1호(22.7×15.8㎝)보다도 작은 가로 9.8㎝, 세로 12.7㎝의 크기다. 피카소 작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레도르 파인 아트’는 도난당한 그림이 몇 년 전 60만 유로(약 10억원)에 팔렸다고 밝혔다. 6만점 이상으로 추정되는 작품을 남긴 피카소는 1000점 이상의 유작이 도난, 분실, 소유권 분쟁을 겪고 있다. 이번 사고는 카하 그라나다 문화센터에서 지난 9일부터 내년 1월까지 열리는 ‘정물: 움직이지 않는 것의 영원함’ 전시회를 위해 작품을 옮기다 발생했다. 나머지 50여점 이상의 그림들은 무사히 그라나다에 도착해 현재 전시가 열리고 있다. 마드리드에서 그라나다는 자동차로 약 4시간이 걸리는데 사라진 ‘기타가 있는 정물’은 소장자의 집에서 운송회사로 먼저 옮겨졌다. 운송회사는 나머지 전시작품이 모두 준비되자 2일 이동을 시작했고, 목적지 그라나다에서 27㎞ 떨어진 곳에서 야간 정차가 한 번 있었다. 카하 그라나다 센터는 전시 작품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모든 작품을 한꺼번에 옮겼다. 주말이 지나 월요일인 6일 작품의 포장을 벗겨 목록과 확인하던 직원들은 피카소의 작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시회가 개막한 지 1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작품의 행방은 묘연하며, 경찰은 그림이 사라진 시점을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아직 체포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대한 작품 규모와 높은 시장가치, 다양한 크기 때문에 도둑들이 가장 군침을 흘리는 것이 피카소 작품이지만, 작가 본인도 예술품 절도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다. 1911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가 도난당하자 피카소도 조사를 받게 됐다. 피카소는 루브르박물관에서 도난당한 조각상을 갖고 있다가 모나리자 절도범으로 몰릴 뻔한 것이다. 실제 범인은 루브르 직원이었던 빈센조 페루자였는데 그는 이탈리아로 작품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애국심 때문에 모나리자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 B급정서와 밀덕력으로 가득찬 고품질 만화책이라니 [세책길]

    B급정서와 밀덕력으로 가득찬 고품질 만화책이라니 [세책길]

    한중일, 지겹지만 닮았고 꺼리지만 떨어질 수 없는지금은 꽤 낯선 얘기가 돼 버렸지만 국제통화기금(IMF)에 대응하는 아시아통화기금(AMF)을 만들자는 논의가 한중일+아세안 차원에서 진지하게 논의되던 때가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동대응 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고민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한중일 정상이 모여 공동협력을 다짐하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김대중은 그 과정에서 꽤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한일관계를 업그레이드했고 한중관계도 튼튼하게 다져놓았다. 중국 주석이었던 장쩌민이 사석에선 김대중을 ‘형님(大哥)’이라 불렀다는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20년 가량 지난 지금으로선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한중일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서울에 설립한 ‘한중일 협력 사무국’은 유명무실해지고 한중일에는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에선 중국인들 몰아내자는 혐오시위가 난무한다. 한중일 모두 주변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이웃나라라는 걸 생각하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현실이다. 동아시아 정세에서 핵심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관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20세기 초반 한국은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한중일은 물론 북미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잡으려 노력했다. 2025년 현재 남북관계는, ‘관계’라고 할만한 것 자체가 없다. 가슴에 김일성-김정일 뱃지를 달고 나온 사람들과 마주 앉아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통일부 공무원이 몇 명이나 될지도 의문이다. 주도권은 언감생심이고 ‘페이스 메이커’라도 하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 됐다. 이런 와중에 한중일을 한묶음으로 묶어서 고민하는 책이 나온 건 여러모로 고맙다. 1839년 아편전쟁부터 1910년 한일 병합에 이르기까지 한중일을 휩쓴 격동의 세월을 무려 20권이나 되는 분량으로 묶은 <본격 한중일 세계사>다. 첫번째 책이 나온 게 7년 전인 2018년이었고 2025년 8월에 스무번째 책으로 완결이 됐다. 전체 분량이 7032쪽이나 된다. 다행히 만화책이다. 쉽게 쉽게 책을 넘길 수 있다. 그렇다고 내용이 대충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무척이나 심오한 통찰력을 만화에 담은 저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저자는 김선웅, ‘굽시니스트’라는 필명을 쓰는 시사만화가다. 굽시니스트를 처음 알게 된 건 2009년부터 시사IN에 연재하기 시작한 ‘본격 시사인 만화’ 덕분이었다. 각종 시사 현안을 엄청난 통찰력으로 풀어낸 시사만화를 보며 단숨에 팬이 됐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으론 하위문화에 조예가 깊어서 오타쿠 문화 패러디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게 가끔 난해하게 느껴지는 게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학원에서 역사교육학을 전공했을 만큼 역사 지식이 해박하다. 그런 장점들이 <본격 한중일 세계사> 곳곳에서 잘 드러난다. 격동의 시대를 다루려면 등장인물이 수없이 많을 수밖에 없다. 굽시니스트는 호랑이와 판다, 고양이 얼굴로 한중일을 표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물론 실제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인물들은 특징을 살렸는데, 그러다 보니 뚱뚱한 고양이나 무섭게 생긴 호랑이처럼 개성이 드러나는 걸 보는 묘미가 있다. (물론 청나라를 다루면서 만주족과 한족을 똑같은 판다로 표현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 청나라 지배를 받았던 몽골을 말로 표현한 것처럼 만주족은 용 정도로 표현하면 어땠을까 싶다.) 20권 410쪽에서 425쪽에 걸쳐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가 나누는 가상 대화 역시 저자가 동아시아 역사는 물론 현실 국제문제를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드러내는 동시에,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깊이있게 보여주는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에 대한 통찰력이 간단치 않다는 생각에 고개를 절로 끄덕거리게 된다. 고종의 표정과 얼굴에서 드러나는 ‘망국의 길’그런 통찰력은 고종에 대한 묘사에서 잘 드러난다. 어린 시절 이후 시간이 갈수록 고종 얼굴은 총명함을 잃고 우유부단한 얼굴이 도드라진다. 을사늑약 이후 밀려드는 반대 상소에도 뚜렷한 답조차 없이 어물쩍 넘어가면서 “내가 곧 대한제국인데, 내가 무너지면 어찌 나라가 보전되겠는가. 내가 아니면 누가 더 뒷일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20권 251쪽)”라고 변명하는 모습에서 시대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는 고종을 잘 표현했다. 의병을 일으켰다가 포로로 잡혀 일본 쓰시마에서 숨진 최익현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최익현의 유령이 “제가 보내드린,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나라 망할 때 자결했다는 내용의 상소문은 잘 받으셨사옵니까?”라고 하자 고종은 “난, 아직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이 있다고요”라고 얼버무린다. 이에 최익현의 유령은 곧바로 “뭐? 황손 몇 명 더 만들기요?”라며 고종의 무책임함을 정면으로 꼬집는다. 을사늑약 체결 직전 이토 히로부미와 대화하는 장면은 국내 애국심을 갖고 있던 정치세력을 참고 넘어가질 않았던 고종에 대한 뼈 때리는 비판으로 읽힌다. 고종은 이렇게 말한다. “거, 그런 중대사는 원래 중추원과 백성 일반의 뜻을 물어 결정하는 것인지라…;;;” 이토는 이렇게 반격한다. “한국은 전제군주정으로, 군주가 만기를 오롯이 홀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정체가 아이옵니다까. 쓸데없는 소리 마시고 얼른 결정 내리시옵소서.” 그 다음 고종의 한탄. “아오;; 중추원 의회 걍 놔둘걸;;” <본격 2차세계대전 만화>를 통해 밀리터리 매니아라는 걸 드러냈던 굽시니스트는 <본격 한중일 세계사>에서도 전쟁사 분야에 상당한 내공이 있다는 걸 과시한다. 아편전쟁이나 태평천국의 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등을 다룬 부분은 구체적인 전투상황을 매우 상세하게 묘사해서 전투상황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사실 태평천국의 난 부분은 너무 상세해서 오히려 분량조절에 실패한 느낌마저 있다) 언어유희를 잘 활용한 풍자와 촌철살인도 도드라진다. 1905년 2월 혁명을 묘사한 대목을 보자. 십자가를 들고 차르에게 ‘먹을 빵을 달라’며 청원하던 시민들은 “차르 우라~! 차르께서 오늘 점심 쏘신다고” 하다가, 군인들의 총격에 쓰러지며 “차, 차르 우…라…질(20권 18~20쪽)”이라고 한다. 곧이어 발생한 총파업에서 노동자들은 “차르 짜르자!(20권 27쪽)”라고 외치고, 총파업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트로츠키는 “트로트 키로 한 곡 뽑아봐요(20권 28쪽)”란 응원을 듣는 식이다. 언젠가 군인들 행태를 풍자한 만평을 보고 한참 웃었던 적이 있다. 국군장병들 시선과 민간인 시선으로 나눈 두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장병들 시선, 지하철에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저 부대는 전투화도 다림질했구나’ ‘야상을 세 줄로 다리다니 대단한데’ ‘아 우리도 모자에 불광 낼 걸’ 하면서 다른 부대와 자기 부대 휴가복을 비교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 다음 일반인 시선. 그냥 다 똑같은 옷을 입고 군복 위에 달린 게 머리라는 것 정도만 기억나는 군바리일 뿐이다. 과장섞어 말한다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이 한중일을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 하다. 한중일은 수천년을 얽히고 설켜왔다. 미워하며 협력하며 수천년을 지지고 볶으며 살아왔다.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진 이런 인연 혹은 악연을 피해 갈 도리는 없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 사람들 습관이나 문화, 자연환경과 가장 닮은 건 중국과 일본 사람들이다. 중국이나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지겹게 닮은 서로를 이해하고 되돌아보는 데 이바지하는 게 <본격 한중일 세계사>가 아닐까 싶다. 사족[蛇足]14권 144쪽에 함경도 원산이라고 나오는데 원산은 사실 함경도가 아니라 강원도다. 20권 381쪽에 등장하는 함경북도 경홍군은 사실 경흥군이다. 경흥군 위치도 책에 나온 것보다 실제론 더 남쪽에 있다. 이 정도면 존경하옵는 굽시니시트가 쓴 책을 열심히 읽었다는 인증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굽신굽신.
  • 순수성 지닌 혁명가이자 시대의 이상 품은 ‘황제의 화가’[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순수성 지닌 혁명가이자 시대의 이상 품은 ‘황제의 화가’[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佛 왕립 아카데미 수상 뒤 로마 유학고대 예술의 애국심 등 고전적 가치화면 구도·인물 동작·절제된 색채로혁명의 파고 앞 시민들에게 되새겨나폴레옹 즉위 뒤 황제 제1화가로알프스 산맥 넘는 ‘전쟁 영웅’ 묘사펜을 든 헌신적 통치자로 그리기도권력·예술 오가며 시대적 언어 창조프랑스 신고전주의 미술을 확립한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는 가장 정치적인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탁월한 화풍과 압도적인 실력으로 파리 아카데미를 장악했던 그는 프랑스 대혁명기에는 혁명의 화가로, 나폴레옹 제국 시기에는 황제의 화가로 불리며 예술과 권력이 교차하는 가장 뜨거운 자리에 서 있었다. 다비드는 단지 권력에 복무한 화가였을까? 그가 남긴 편지와 명언, 당시의 기록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또 다른 다비드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이념적 순수성을 지닌 혁명가이자 동시에 고전의 엄격함과 시대의 이상을 함께 품은 예술가였다. 다비드의 삶과 역사화들은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시대의 언어로 써내려간 한 화가의 실험이자 선언이었다. 첫 번째 명언 “예술에서 아이디어가 표현되는 방식은 아이디어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 문장은 신고전주의의 핵심을 담고 있다. 그는 무엇을 그리느냐보다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회화의 구성과 형식이 사람들의 감정과 인식을 바꾸고 사회 전체의 도덕적 방향까지 제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 그의 생각은 1775년부터 1780년까지 이어진 로마 유학 시절에 결정적으로 형성된다.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다비드는 26세에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의 최고 영예인 로마 대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이탈리아 유학을 떠난다. 고대 로마의 조각과 벽화에서 신화 속 영웅들을 마주하게 된 순간 그는 깨달았다. 미술이 이념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고대 예술에서 애국심과 영웅주의, 도덕적 미덕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읽어냈다. 그것이 혁명 직전의 프랑스 사회에 꼭 필요한 메시지라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간결한 구도, 명확한 선, 인물의 당당한 자세는 그 자체로 도덕적 교훈을 전달한다”는 그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다비드는 고대 예술의 개념과 형식미를 빌려와 프랑스 시민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도덕적인 예술을 펼쳐나간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①는 고대 로마 공화국의 덕성과 희생 정신을 시민들에게 되새기려는 시도가 가장 생생하게 구현된 작품이다. 다비드의 첫 왕실 의뢰작인 이 역사화는 1785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돼 대중과 비평가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신고전주의 미술의 전형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프랑스는 혁명 직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 작품이 전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메시지는 혁명가들과 강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림 속 장면은 호라티우스 가문의 세 형제가 아버지 앞에서 알바 왕국과의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고 맹세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화면의 구도, 인물의 동작, 빛의 분할, 절제된 색채 사용 모두가 작품의 메시지인 도덕적 이상을 관객에게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됐다. 고대 조각처럼 절제된 남자들의 자세, 강직한 수직 구도와 기둥은 결연한 각오를, 슬픔에 젖은 여성들의 곡선형 구도는 감정과 연약함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고대 로마의 영웅담을 재현한 역사화가 아니다. 프랑스 시민들에게 로마 공화국의 가치인 희생, 책임, 공동선을 회화를 통해 일깨우려는 도덕적 제안이었다. 두 번째 명언 “가장 행복하고 경이로운 혁명의 역사를 영광되게 할 애국심과 고귀한 감사의 부름에 응하는 것을 나의 의무로 삼았다.” 1790년,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의 열기를 안고 지방 도시 낭트로 향하며 이런 말을 남긴다. 공화국을 위해 희생한 영웅들의 초상을 그려 달라는 요청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였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시기, 그는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로베스피에르의 측근이자 국민공회 의원이었고 루이 16세의 처형에 찬성표를 던진 자코뱅당원이었다. 혁명은 그에게 예술가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혁명의 이상을 전파하고, 새로운 공화국을 위한 영웅적 서사를 창조하는 데 바치기로 결심했다. 다비드가 혁명이념을 현실에 구현한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마라의 죽음’②이다. 다비드는 혁명 정부의 핵심 인물이었던 장폴 마라가 1793년 7월 암살당한 직후 국민공회의 요청을 받고 그의 죽음을 기리는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붓을 들어 마라의 죽음을 영웅 신화로 승화시켰다. 화면 속 마라는 고통도 분노도 없는 얼굴로 고요히 잠들어 있다. 단순한 구성, 극적인 빛의 처리, 욕조 안에서도 국민의 편지에 답장을 쓰기 위해 펜을 쥔 채 생을 마감한 것으로 연출한 모든 요소가 혁명 정신의 순결함을 강조하며 관객을 감동시켰다. 현실의 죽음을 순교의 모습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혁명가의 죽음조차도 정치적으로 활용한 다비드의 역사화 전략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 그림을 발표한 지 1년 후 다비드는 혁명의 희생자가 된다. 1794년 로베스피에르의 몰락과 함께 다비드는 공포 정치의 책임자로 몰려 체포되고, 두 차례 감옥에 수감된다. 그가 형무소에 있는 동안 많은 제자와 동료 화가들이 그의 석방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들의 간절한 노력 덕분에 다비드는 사면을 받아 감옥에서 풀려나게 된다. 그는 한동안 정치의 전면에서 물러나 조용히 작품 활동에 집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권력의 부름에 응하게 된다. 다름 아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세 번째 명언 “나는 내 영웅의 그늘 속에서 후세로 미끄러져 들어갈 것이다.” 이 말은 자신의 예술적 유산이 나폴레옹의 영광과 함께 기억되길 바랐던 다비드의 야심을 보여 준다. 나폴레옹의 등장은 다비드에게 또 다른 영웅상을 제공했다.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한 것은 다비드의 공화주의적 신념과 맞지 않았지만, 그는 황제의 카리스마에 매료됐다. 그에게 나폴레옹은 예술로 신화화될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자 다비드는 황제의 제1화가로 임명됐다. 그의 붓은 이제 혁명의 이상이 아닌 제국의 전설을 그려 나가기 시작한다.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③은 다비드가 황제의 위대함을 홍보 선전하는 탁월한 연출가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이 1800년 5월,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의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은 전설적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다. 하지만 이 장면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나폴레옹은 능숙하게 말을 탈 수 없었고 실제로는 노새를 타고 험준한 산을 넘었다. 하지만 다비드는 평범한 행군을 한 편의 신화로 바꾸었다. 그는 황제를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늘을 배경으로 거침없이 말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전장을 향해 돌진하는 전쟁 영웅으로 묘사했다. 화면 아래 한니발, 샤를마뉴, 보나파르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나폴레옹을 위대한 정복자의 계보에 올려놓은 의도적인 장치다. 이 작품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에게 직접 포즈를 취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황제는 이렇게 말하며 거절한다. “위대한 고대인들의 초상화가 그들과 닮았다고 생각하는가? 중요한 것은 특징의 정확성이 아니라 성격이다.” 다비드는 이 말을 깊이 새기고 자신의 아들을 말에 태워 포즈를 연출하고 나폴레옹의 군복과 흉상을 바탕으로 신화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뒤 다비드는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에서 보여 준 영웅적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전략을 택한다. 이번엔 칼이 아닌 펜을 든 황제④다. 나폴레옹은 군복을 입고 서재에 서 있지만 그는 군사적 영웅이 아니라 프랑스 국민들을 위해 밤새워 일하는 헌신적인 통치자다. 시계는 새벽 4시 13분을 가리키고, 촛불은 거의 꺼져 가고 있으며, 책상 위엔 펜과 잉크, 법전과 초안 문서들이 흩어져 있고, 황제의 머리는 헝클어졌으며, 스타킹은 구겨져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은 관객들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황제는 쉬지 않고 일하며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지도자다.” 특히 책상 위에 막 초안된 문서가 프랑스 최초의 민법전, 즉 나폴레옹 법전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나폴레옹은 국민을 위한 법과 제도의 창시자이며 헌신적이고 이성적인 근대적 군주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사실적인 초상화처럼 보이지만 치밀하게 구성된 정치적 이미지다. 당대 권력자가 어떻게 미술을 여론 형성의 도구로 활용했는지, 예술가가 권력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어떻게 굳혔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1815년 워털루 전투의 패배로 나폴레옹 제국이 무너지자 다비드는 정치적 보복을 피해 1816년 68세의 나이로 벨기에 브뤼셀로 망명한다. 벨기에 왕은 프랑스의 거장을 따뜻하게 환영했고 다비드는 남은 생을 작품 활동과 제자 양성에 전념하며 유럽 전역에서 존경받는 예술가로 남았다. 물론 다비드에게는 정치적 화가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그러나 “예술은 단지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를, 이상을, 인간을 담는 것이다”라는 다비드의 명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의 말은 권력과 예술 사이를 오가며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해낸 거장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이재준 수원시장, 美 애리조나주 한인회 ‘감사패’ 받아

    이재준 수원시장, 美 애리조나주 한인회 ‘감사패’ 받아

    미국 애리조나주 한인회 임애훈 회장이 25일 수원시청을 방문해 이재준 수원시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애리조나는 수원시의 국제 자매도시인 피닉스시가 있는 주다. 임 회장은 “2024년 피닉스시 방문을 인연으로, 한인회 주요 행사마다 축하 인사와 격려를 통한 이재준 시장님의 관심과 따뜻한 성원은 교민 사회 연대를 굳건히 하고,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고양하는 데 큰 힘이 됐다”며 “애리조나주 한인사회를 대표해 교민들 정성을 모아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달한다”고 밝혔다. 수원시와 피닉스시는 2021년 10월 자매결연을 체결했다. 2024년 1월 피닉스시를 방문한 이재준 시장은 애리조나한인회와 함께 ‘애리조나 한국전 참전비’를 참배하고, 애리조나한인회와 간담회를 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국전 참전용사 1명이 함께했다. 임 회장은 이날 애리조나주 마크 켈리(Mark Kelly) 상원의원의 친서도 이재준 시장에게 전달했다. 마크 켈리 의원은 친서에서 “애리조나는 피닉스와 수원이 자매도시로서 쌓아온 굳건하고 변함없는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며 “수원시의 지속적인 번영과 수원·애리조나 시민들의 변치 않는 우호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원은 세계적인 혁신과 산업의 중심지로 인정받고 있으며, 애리조나 역시 첨단 제조와 반도체 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며 “이러한 공통의 강점을 바탕으로 양 지역사회가 새로운 기회를 함께 창출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재준 시장은 “지난번 수원시 대표단이 피닉스시를 방문했을 때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신 애리조나한인회에 감사드린다”며 “애리조나 한국전 참전비를 참배하면서 자랑스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애리조나한인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수원시도 협력하겠다”라고 말했다.
  • 219조 부호 아르노의 분노…프랑스 부자세 두고 나라 들썩

    219조 부호 아르노의 분노…프랑스 부자세 두고 나라 들썩

    초부유층 겨냥한 ‘부자세’ 논란프랑스가 추진하는 초부유층 대상 ‘부자세’ 도입 문제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제안은 자산 1억 유로(약 1637억 원) 이상을 보유한 약 1800가구에 매년 2%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프랑스 정부는 재정적자 확대와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대안으로 검토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경제 파괴” vs “조세 정의 실현”유럽 최고 부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21일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부자세는 프랑스 경제를 파괴하려는 좌파 이념의 공격”이라고 말했다. 아르노 가문은 포브스 기준 1570억 달러(약 219조 원) 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LVMH는 루이비통과 디올 등 세계적 럭셔리 브랜드를 거느린다. 그는 “나는 이미 프랑스에서 최대 납세자 중 한 명”이라며 “추가 세금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투자와 자본 유출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자세 제안을 주도한 가브리엘 쥐크만 교수는 “나는 연구자일 뿐이며 조세 회피와 부의 집중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부자세를 통해 연간 최대 200억 유로(약 32조7000억 원) 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쥐크만의 멘토로 알려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아르노의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제자의 입장을 적극 옹호했다. 정치적 압박과 마크롱의 딜레마 세바스티앙 르코르뉴 총리는 내년 예산안을 준비하면서 사회당의 압박을 받고 있다. 반영하지 않으면 불신임 표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의 86%가 부자세 도입에 찬성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아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는 친기업 기조를 흔들지 않으려 하지만 재정적자와 불평등 심화를 방치하기도 어렵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우리 경제를 파괴하는 것은 부자세가 아니라 국가 지원은 받으면서 연대 의무를 거부하는 초부유층의 애국심 부재”라고 직격했다. 마린 톤들리에 녹색당 대표도 “부자세 논의가 막바지에 왔다는 증거”라며 “아르노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자본 이동의 불확실성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프랑스 내부 갈등을 넘어 글로벌 자본 이동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초부유층과 기업 자본이 대거 이탈하면 투자 환경은 약화하고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초부유층이 프랑스를 떠날 경우 예상 세수는 50억 유로(약 8조2000억 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한다. 만약 아르노 회장이 실제로 ‘탈프랑스’를 선택한다면 파급은 더욱 커진다. 아르노 개인과 LVMH 계열사가 내는 세금이 사라지면서 정부가 기대하는 세수는 크게 줄 수 있다. 파리 증시 1위 기업인 LVMH의 본사 이전은 투자자들에게 ‘프랑스 리스크’를 각인시키며 증시 자금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좌파가 “애국심 없는 거부”라고 공격하는 반면 우파는 “과도한 증세가 기업 탈출을 불렀다”고 반격하며 정국 혼란이 심화할 수 있다. 프랑스 사회는 단기적으로 좌파 논리에 공감할 가능성이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용과 성장 둔화를 체감하며 갈등이 커질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스위스나 모나코, 싱가포르 같은 저세율 국가가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하면서 ‘프랑스 모델은 더 이상 부자와 기업을 붙잡아둘 수 없는가’라는 의문이 확산할 수 있다. 전망: 경제와 정치의 시험대 이번 논란은 조세 정의 실현과 경제 경쟁력이라는 두 축의 충돌을 상징한다. 아르노는 “경제 경쟁력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쥐크만은 “조세 정의 실현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맞선다. 마크롱 정부가 어떤 해법을 내놓느냐에 따라 프랑스의 경제 정책뿐 아니라 유럽 자본 시장에도 파장이 일 수 있다. 다만 LVMH 같은 럭셔리 그룹이 생산 기반까지 프랑스를 떠날 가능성은 작다. 루이비통·디올·셀린 등은 ‘메이드 인 프랑스’(프랑스산)를 브랜드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장인 공방과 기술은 수 세대에 걸쳐 축적돼 해외에서 대체하기 어렵다. 본사나 지주회사의 주소는 옮길 수 있어도 루이비통 가방에서 ‘프랑스산’ 표기가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부 화장품이나 주류처럼 해외 생산이 가능한 품목은 예외지만 핵심 제품군은 프랑스 생산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
  • 219조 부호의 분노…루이비통 제국, 부자세에 반기 [핫이슈]

    219조 부호의 분노…루이비통 제국, 부자세에 반기 [핫이슈]

    초부유층 겨냥한 ‘부자세’ 논란프랑스가 추진하는 초부유층 대상 ‘부자세’ 도입 문제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제안은 자산 1억 유로(약 1637억 원) 이상을 보유한 약 1800가구에 매년 2%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프랑스 정부는 재정적자 확대와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대안으로 검토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경제 파괴” vs “조세 정의 실현”유럽 최고 부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21일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부자세는 프랑스 경제를 파괴하려는 좌파 이념의 공격”이라고 말했다. 아르노 가문은 포브스 기준 1570억 달러(약 219조 원) 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LVMH는 루이비통과 디올 등 세계적 럭셔리 브랜드를 거느린다. 그는 “나는 이미 프랑스에서 최대 납세자 중 한 명”이라며 “추가 세금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투자와 자본 유출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자세 제안을 주도한 가브리엘 쥐크만 교수는 “나는 연구자일 뿐이며 조세 회피와 부의 집중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부자세를 통해 연간 최대 200억 유로(약 32조7000억 원) 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쥐크만의 멘토로 알려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아르노의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제자의 입장을 적극 옹호했다. 정치적 압박과 마크롱의 딜레마 세바스티앙 르코르뉴 총리는 내년 예산안을 준비하면서 사회당의 압박을 받고 있다. 반영하지 않으면 불신임 표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의 86%가 부자세 도입에 찬성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아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는 친기업 기조를 흔들지 않으려 하지만 재정적자와 불평등 심화를 방치하기도 어렵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우리 경제를 파괴하는 것은 부자세가 아니라 국가 지원은 받으면서 연대 의무를 거부하는 초부유층의 애국심 부재”라고 직격했다. 마린 톤들리에 녹색당 대표도 “부자세 논의가 막바지에 왔다는 증거”라며 “아르노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자본 이동의 불확실성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프랑스 내부 갈등을 넘어 글로벌 자본 이동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초부유층과 기업 자본이 대거 이탈하면 투자 환경은 약화하고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초부유층이 프랑스를 떠날 경우 예상 세수는 50억 유로(약 8조2000억 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한다. 만약 아르노 회장이 실제로 ‘탈프랑스’를 선택한다면 파급은 더욱 커진다. 아르노 개인과 LVMH 계열사가 내는 세금이 사라지면서 정부가 기대하는 세수는 크게 줄 수 있다. 파리 증시 1위 기업인 LVMH의 본사 이전은 투자자들에게 ‘프랑스 리스크’를 각인시키며 증시 자금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좌파가 “애국심 없는 거부”라고 공격하는 반면 우파는 “과도한 증세가 기업 탈출을 불렀다”고 반격하며 정국 혼란이 심화할 수 있다. 프랑스 사회는 단기적으로 좌파 논리에 공감할 가능성이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용과 성장 둔화를 체감하며 갈등이 커질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스위스나 모나코, 싱가포르 같은 저세율 국가가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하면서 ‘프랑스 모델은 더 이상 부자와 기업을 붙잡아둘 수 없는가’라는 의문이 확산할 수 있다. 전망: 경제와 정치의 시험대 이번 논란은 조세 정의 실현과 경제 경쟁력이라는 두 축의 충돌을 상징한다. 아르노는 “경제 경쟁력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쥐크만은 “조세 정의 실현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맞선다. 마크롱 정부가 어떤 해법을 내놓느냐에 따라 프랑스의 경제 정책뿐 아니라 유럽 자본 시장에도 파장이 일 수 있다. 다만 LVMH 같은 럭셔리 그룹이 생산 기반까지 프랑스를 떠날 가능성은 작다. 루이비통·디올·셀린 등은 ‘메이드 인 프랑스’(프랑스산)를 브랜드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장인 공방과 기술은 수 세대에 걸쳐 축적돼 해외에서 대체하기 어렵다. 본사나 지주회사의 주소는 옮길 수 있어도 루이비통 가방에서 ‘프랑스산’ 표기가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부 화장품이나 주류처럼 해외 생산이 가능한 품목은 예외지만 핵심 제품군은 프랑스 생산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
  •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광화문 광장 훼손하는 시대착오적 발상… ‘감사의 정원 조성’ 즉각 철회하라”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의 ‘감사의 정원’ 조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논평을 냈다. 다음은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박수빈 대변인 논평 전문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6.25 참전국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은 상징 공간 ‘감사의 정원’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국군과 6.25전쟁에 참전한 22개 국가를 상징하는 6.25m 높이의 화강암 돌기둥 23개를 세우고 지하에는 참전국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시설 공간이 들어선다. 수백억의 혈세가 투입된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대표의원 성흠제)은 민주주의와 시민 주권을 상징해 온 광화문광장을 사유화해 정치적 공간으로 변질시키려는 오세훈 시장의 시대착오적 발상을 강력 규탄한다. 오세훈 시장은 이미 지난해 광화문광장을 국가상징공간으로 조성하고 사업비 110억 원을 들여 100m 높이의 게양대에 가로 21m, 세로 14m인 대형 태극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권위주의적·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던 바 있다. 당시 서울시가 근거로 내세웠던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 조성’ 관련 적합한 상징 조형물을 묻는 설문조사는 애초에 조성을 전제로 한 ‘답정너’ 조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국토교통부와 국가건축정책위원회도 광화문광장을 국가상징공간으로 정한 바 없고, 사전협의 또한 전혀 없었다고 즉각 반발했다. 당시 두 기관이 서울시에 ‘관계 기관 간 사전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항에 대한 정정 보도자료 배포’와 함께 ‘유사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관련 협의 준수’ 등을 요청하면서 서울시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한 발 물러나는 듯했던 오세훈 시장이 이번에는 이름만 ‘감사의 정원’으로 바꾼 ‘전체주의 굿즈’를 또 다시 들고 나왔다. 거대한 국가상징물로 철 지난 애국심 마케팅을 벌여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1990년 용산 전쟁기념관 광장에 6.25전쟁 당시 참전했던 22개 국가의 국기와 기념비를 조성하고, 그들의 희생과 자유수호 의지를 기리고 있다. 광화문광장으로부터 약 5km 거리에 대규모 참전기념 시설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수백억을 들여 참전 기념물을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는 재정 여력이 부족하다며 올해 더 이상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지 못한다고 했다. 경기도가 불필요한 전시·치적 사업 대신 지역사랑상품권을 추가 발행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광화문광장은 4·19혁명, 촛불혁명, 내란 세력에 맞선 빛의 혁명을 이루어 낸 민의(民意)의 ‘광장’이다. 군부독재 정권을 몰아내고 정치적 자유와 참여 민주주의를 이뤄낸 시민의 공간이다. 6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수도 서울의 얼굴이며, 매일매일 새로운 역사·문화·정치·경제가 꽃을 피우는 대한민국의 심장이다. 광장은 ‘공론의 장’이며, 이는 곧 그 자체로 민주주의 상징이다. 시민이 원하는 광화문광장은 7m의 검은 돌기둥으로 둘러싸인 갈등의 공간이 아니라, 소통과 참여를 바탕으로 민주주의가 생동하는 열린 공간이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시민의 광장에 대한 정치적 사유화 계획의 즉각 철회를 오세훈 시장에 엄중 촉구한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박수빈
  • 김용호 서울시의원, ‘제75주기 호국영웅 연제근 상사 및 12인 특공대원 추모식’ 참석

    김용호 서울시의원, ‘제75주기 호국영웅 연제근 상사 및 12인 특공대원 추모식’ 참석

    서울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의정활동하고 있는 김용호 의원(국민의힘, 용산1)은 지난 16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제75주기 호국영웅 연제근 상사와 12인의 특공대원 추모식’에 참석해 영령을 기리고 유족과 함께 뜻을 나눴다. 이번 추모식은 6·25전쟁 당시 포항 탈환작전에서 장렬히 전사한 연제근 상사와 12인 특공대원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사)호국영웅연제근 기념사업회(이사장 연제은, 회장 김남권)가 주관했으며, 국가보훈부와 국립서울현충원, 증평군청, 곡산연씨종친회, 육군본부, 육군부사관학교, 제3보병사단, 제37보병사단이 후원했다. 김 의원은 올해로 3년째 연제근 상사 추모식에 참석했다.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김 의원은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다”라며 “연제근 상사와 12인의 특공대원이 보여준 용기와 애국심은 세대를 뛰어넘어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의원은 “서울시의회에서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한, 호국영웅들의 정신을 시민과 함께 되새기고, 나라를 위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하고 든든한 서울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추모식에는 유족과 참전용사, 군 관계자, 시민 등 200여 명이 함께해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고 묘역 참배와 헌화, 묵념으로 숭고한 희생을 추모했다.
  •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가 전하는 사연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가 전하는 사연

    2002년 한일월드컵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 있어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온 국민이 붉은 색으로 하나 되어 뜨거운 응원을 보냈던 당시, 거리 응원의 상징은 단연 태극기였다. 젊은 여성들이 태극기를 패션 소품처럼 몸에 두르고 응원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를 두고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태극기 활용에 찬성하는 쪽은 젊은 세대가 태극기를 통해 애국심을 표출하고 새로운 응원 문화를 창조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국기는 국가의 존엄한 상징인데, 이를 몸에 두르는 것은 국가를 모독하거나 상징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태극기의 시작과 변천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태극기가 최초로 공식석상에 등장한 것은 1882년 미국과의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로, 김홍집의 주도로 역관인 이응준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883년 고종이 태극과 건곤감리 4괘를 그린 태극기를 조선의 공식 국기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태극기의 공식적인 제작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하던 태극기의 모양은 제각각이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도 통일된 규격이 없었다. 마침내 1949년 10월 ‘국기제작법고시’가 제정되면서 현재 태극기 규격이 확정되었다.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진관사 태극기’의 의미2009년 5월 26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 부속 건물 칠성각 복원 공사 중 벽 속에서 독립신문류들과 함께 태극기 한 점이 발견되었다. 이 태극기는 독립신문의 발행 시기로 미루어 볼 때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탄 흔적과 여러 곳에 남은 구멍으로 보아 실제 3·1 운동에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학계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백초월 스님’을 주목한다. 그는 만해 한용운, 백용성 스님과 함께 ‘불교계 3대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진관사는 그의 항일운동 근거지였다.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형태여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순히 재활용을 넘어, 일제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의식을 동시에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태극기는 2021년 10월 보물 제2142호로 지정되었다. 태극기, 어린 날의 기억과 어른이 된 지금어린 시절,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는 태극기 그리기 수업이 있었다. 그리기 쉬운 국기를 가진 일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음양오행과 태극, 건곤감리 4괘 등 태극기가 가진 준엄한 의미를 체득하기 어려웠고, 일부는 태극기를 예쁘게 그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 아이들에게 태극기는 자랑스러운 국가의 상징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태극기는 여전히 그리기 어렵고, 건곤감리 순서가 혼동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태극기가 사랑스럽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태극기를 사용하는 목적과 방법, 의미는 다를지 몰라도 그 모든 것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는 사실이다.
  •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가 전하는 사연 [한ZOOM]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가 전하는 사연 [한ZOOM]

    2002년 한일월드컵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 있어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온 국민이 붉은 색으로 하나 되어 뜨거운 응원을 보냈던 당시, 거리 응원의 상징은 단연 태극기였다. 젊은 여성들이 태극기를 패션 소품처럼 몸에 두르고 응원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를 두고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태극기 활용에 찬성하는 쪽은 젊은 세대가 태극기를 통해 애국심을 표출하고 새로운 응원 문화를 창조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국기는 국가의 존엄한 상징인데, 이를 몸에 두르는 것은 국가를 모독하거나 상징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태극기의 시작과 변천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태극기가 최초로 공식석상에 등장한 것은 1882년 미국과의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로, 김홍집의 주도로 역관인 이응준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883년 고종이 태극과 건곤감리 4괘를 그린 태극기를 조선의 공식 국기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태극기의 공식적인 제작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하던 태극기의 모양은 제각각이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도 통일된 규격이 없었다. 마침내 1949년 10월 ‘국기제작법고시’가 제정되면서 현재 태극기 규격이 확정되었다.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진관사 태극기’의 의미2009년 5월 26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 부속 건물 칠성각 복원 공사 중 벽 속에서 독립신문류들과 함께 태극기 한 점이 발견되었다. 이 태극기는 독립신문의 발행 시기로 미루어 볼 때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탄 흔적과 여러 곳에 남은 구멍으로 보아 실제 3·1 운동에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학계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백초월 스님’을 주목한다. 그는 만해 한용운, 백용성 스님과 함께 ‘불교계 3대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진관사는 그의 항일운동 근거지였다.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형태여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순히 재활용을 넘어, 일제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의식을 동시에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태극기는 2021년 10월 보물 제2142호로 지정되었다. 태극기, 어린 날의 기억과 어른이 된 지금어린 시절,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는 태극기 그리기 수업이 있었다. 그리기 쉬운 국기를 가진 일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음양오행과 태극, 건곤감리 4괘 등 태극기가 가진 준엄한 의미를 체득하기 어려웠고, 일부는 태극기를 예쁘게 그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 아이들에게 태극기는 자랑스러운 국가의 상징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태극기는 여전히 그리기 어렵고, 건곤감리 순서가 혼동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태극기가 사랑스럽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태극기를 사용하는 목적과 방법, 의미는 다를지 몰라도 그 모든 것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는 사실이다.
  • “8세 어린이 손에 수류탄을”…군국주의 러시아, 어린이 군사 캠프 ‘논란’

    “8세 어린이 손에 수류탄을”…군국주의 러시아, 어린이 군사 캠프 ‘논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군사훈련 캠프에서 실제 살상 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22일(현지시간) 8세 소년에게까지 수류탄 투척 훈련을 시키는 러시아의 군사 체험 캠프 현장을 소개했다. 전날 러시아 남부 돈강에 있는 훈련장에는 8∼17세 아이 83명이 모여 우크라이나전 참전용사 출신 교관들의 지휘 아래 행군에 나섰다. 대부분은 적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색과 무늬가 얼룩덜룩하게 디자인된 위장 군복을 입고 있었고, 진짜 무기와 장난감 무기를 섞어 들고 훈련에 임했다. 아이들은 실전에 임한 듯이 모래사장과 얕은 물가에서 배를 땅에 대고 기어가는 포복 훈련도 수행했다. 가장 어린 참가자인 8세 이반 글루셴코는 ‘가장 기억에 남는 훈련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즉각적으로 “수류탄을 던져본 것”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참가자 안톤은 “내가 왜 여기 있냐고요? 나의 미래를 군 복무에 걸고 싶다. 조국을 위해 복무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내 사명에 충성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참가자 다비드는 ‘행군’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볼 수 있었다면서 “내 의지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해줬다”고 했다. 훈련이 끝나자 몇몇 아이들은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참가자들은 우크라이나 국경과 가까운 로스토프 지역의 코사크족이 운영하는 생도 그룹의 일원이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이 이런 훈련이 건강한 애국심을 심어주고 전쟁으로 훼손된 국가적 회복력을 키우는 데 이바지한다고 보고 있다. 이런 캠프도 어린이에게 군 복무에 필요한 기술을 교육하는 광범위한 추세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강화된 ‘학교의 군사화’를 견제하고 실상을 조사하는 아동권리 보호단체인 ‘네 노르마’는 청소년에게 군대식 훈련을 시키고 학교에서 무기 사용법과 군사 드론 제작법을 가르치는 것은 일종의 ‘세뇌와 선전’이라고 비판했다.
  • 김용일 서울시의원, 광복 80주년 나라사랑 기도회 및 음악회 참석

    김용일 서울시의원, 광복 80주년 나라사랑 기도회 및 음악회 참석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에서 의정활동하고 있는 김용일 의원(서대문구 제4선거구, 국민의힘)은 지난 17일 서대문구 연희동 원천교회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기념 나라사랑 기도회 및 음악회’에 참석하여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지역 사회와 국가 발전을 위한 마음을 다졌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서대문구 기독교장로연합회 주관으로 개최됐으며, 주일 저녁 예배와 함께 진행됐다.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예수님 사랑! 겨레 사랑!’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창천교회 박춘화 원로목사의 강연을 시작으로, 1부에서는 정치 안정과 경제 회복(박기홍 목사), 사회 안정과 질서 회복(이선우 목사), 국가 안보와 평화 통일(조광민 목사), 한국교회와 민족복음화(신은성 목사), 서대문구 발전과 지역복음화(이종무 장로), 서대문구장로연합회 부흥(신준성 장로) 등 다양한 기도와 함께 차별금지법 등 악법 제·개정 철회를 위한 백운주 목사의 강연과 기도가 진행되었다. 이날 기도회에서는 서대문구의 발전과 지역 복음화를 위한 기도가 진행되어 참석자들의 나라 사랑과 지역 사랑의 마음을 더욱 숙연하게 만들었다. 3부 음악회에서는 색소폰, 트럼펫 합주를 시작으로 독창, 중창, 찬양대 합창, 그리고 서울드림윈드 오케스트라의 목관 연주 등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져 참석자들에게 한여름 밤의 낭만적인 추억을 선사했다. 이후 다과회에서는 관계자들과 참석자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 의원은 이날 행사를 광복 80주년을 맞아 애국심을 고취하고 지역과 공동체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행사라며, 행사를 주관한 서대문구 기독교장로연합회와 장소를 제공한 원천교회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또한 “나라 사랑과 지역 사랑은 결국 같은 맥락”이라며, “서울시의원으로서 지역 발전을 위한 예산 확보에 최선을 다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더불어 살기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라는 다짐을 밝혔다.
  • 문화행사 즐기며 광복 80주년 의미 되새겨볼까

    문화행사 즐기며 광복 80주년 의미 되새겨볼까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제주 곳곳에서 열려 관심이다. # 제주도문화예술진흥원, 관동대학살 다룬 연극 ‘안녕 간토’ 24일 공연제주도 문화예술진흥원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관동대학살을 다룬 연극 ‘안녕 간토’를 오는 24일 오후 3시와 6시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한다고 15일 밝혔다. 문화예술진흥원은 천주교 제주교구 사회사목위원회, 재단법인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 구럼비유랑단과 함께 이번 공연을 마련했다. 연극 ‘안녕 간토’는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 간토 지역에서 발생한 조선인 학살의 비극적 역사를 무대에 되살린 작품이다. 잊혀진 진실을 예술의 언어로 재현해 시대의 아픔을 마주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연을 맡은 구럼비유랑단은 제주의 수눌음과 삼무정신의 이어나가고자 제주 거주 예술가들이 2014년 설립한 비영리 단체다. 지난 10년간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다양한 공연 활동을 펼쳐왔다. 이희진 제주문화예술진흥원장은 “광복80주년을 맞아 선조들의 아픔을 되새기기고자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며, “현재와 미래세대가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고 마주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제주항일기념관, 초등생 교육체험프로그램·태극기 쿠키 등 애국심 함양 만들기행사도제주도 보훈청 제주항일기념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도내 지역아동센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항일기념관 찾아가는 교육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은 원거리 등 환경적 요인으로 제주항일기념관 방문이 쉽지 않은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제주의 항일정신을 알리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마련됐다. 지역아동센터별로 역사교육 전문 강사가 현장 방문해 수업을 진행한다. 지난 12일 외도동 소재 새순지역아동센터를 시작으로 9월 8일까지 ▲담쟁이(서홍동), ▲삼육(성산읍) ▲신흥(남원읍) ▲꿈지킴이(애월읍) 등 15곳의 지역아동센터에서 교육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광복절 당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방문객 대상 애국심 함양 만들기 체험행사가 진행된다. 나라상징을 주제로 한 애국심 함양 만들기 체험으로 ▲나라사랑 화분 ▲태극기 쿠키 ▲독립운동가 블록 ▲무궁화 슈링클스 열쇠고리 ▲태극 바람개비 만들기 등 쉽고 재미있는 만들기 체험으로 구성됐다. #제주국제평화센터, 광복의 빛, 평화로운 제주의 밤’ 주제 전시관·도서관 야간 무료 개방도는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4일간 제주국제평화센터(서귀포시 중문관광로 227-24) 전시관과 베릿내 작은도서관 등을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광복의 빛, 평화로운 제주의 밤’을 주제로 한 야간개장은 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세계평화의 섬 제주’가 지닌 평화의 가치를 제주 여름밤 빛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주상절리를 모티브로 한 유리 아트리움 구조의 독특한 외관을 가진 제주국제평화센터는 행사 기간 동안 빛과 조명을 활용한 야간 경관을 연출해 관람객들이 평화 콘텐츠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야간개장 기간에는 별도 입장료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과 체험이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제주국제평화센터 공식 홈페이지와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양보 제주도 관광교류국장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도민과 관광객들이 평화의 의미와 제주의 가치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행사를 준비했다”며, “공감과 소통을 통한 다양한 평화 문화 확산 사업을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귀포, 시민참여형 문화예술행사… 서귀포 음식점 영수증 지참땐 공영관광지 입장료 절반 할인서귀포시는 원도심과 도서관, 공연장 등을 무대로 시민 참여형 문화예술행사를 연달아 선보인다. 8월 한 달간 서귀포시청 행정자료실과 도서관운영사무소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광복 관련 도서를 소개하는 북큐레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새연교 상설 주말공연과 원도심 문화페스티벌에서도 광복8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 및 프로그램도 진행되며 산지물 물놀이장에서 개최되는 ‘제22회 한 여름밤의 미니콘서트’에서는 태극기 나눔로 참여형 축제로 분위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한편 서귀포시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지난 14일부터 31일까지 서귀포시 소재 음식점 영수증을 지참한 방문객에게 입장료 50%를 할인하는 특별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행사기간동안 영수증(종이, 모바일 등)을 지참한 관광객은 서귀포시 공영 관광지 6개소(천지연폭포, 정방폭포, 천제연폭포, 주상절리, 산방산·용머리해안, 감귤박물관)에 대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 [공직자의 창] 광복 80년, 태극기는 통합과 공존의 깃발이다

    [공직자의 창] 광복 80년, 태극기는 통합과 공존의 깃발이다

    국기는 한 나라의 이념과 가치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공식 상징이다. 국기는 나라의 정체성과 문화,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국민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공동체의 단결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국제사회에서는 한 국가를 대표하는 외형적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국민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내면적 통합의 기능까지 아우르는 것이 국기다. 태극기는 1883년 고종이 국기로 제정해 공포한 이래 140여년 동안 우리 민족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해 왔다. 일제강점기에는 항일과 독립의 상징이었고, 6·25전쟁 당시에는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깃발로 국민의 의지를 북돋웠다.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한 순간마다 태극기는 국민의 염원을 담아 힘차게 펄럭였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 국제 무대에서는 온 국민이 태극기 아래 하나가 돼 감격을 나눴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함,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나타낸다. 가운데 위치한 태극 문양은 음(陰)과 양(陽)의 균형과 조화를 표현하며,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卦)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하는 우주의 원리를 의미한다. 즉, 태극기에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조화롭게 공존하라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하지만 필자는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기 망설여진다”는 뜻밖의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최근 몇 년 사이 태극기가 특정 집단이나 정치 세력의 집회에서 자주 사용되면서, 특정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받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이유였다. 우리 국민을 한마음으로 모았던 태극기가 오히려 이념적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는 깃발로 여겨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혐오와 대결 위에 공존과 화해, 연대의 다리를 놓겠다”고 선언했다. 이념·세대·성·빈부 등 갈등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격화되는 시대에, 건강한 민주주의와 성숙한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화합과 통합의 노력이 절실하다. 본래 태극기에는 평화와 화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려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고비마다 어려운 순간들을 함께 극복하며 국민을 하나로 묶어 준 자랑스러운 ‘태극기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사회를 만들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다시 한번 태극기 아래 하나가 돼야 한다. 행정안전부도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태극기의 의미와 정신을 되새기고자 지난달 30일부터 5일 동안 인천국제공항에서 태극무늬 네임태그와 캐릭터 키링을 배부하는 행사를 열었다. 국민이 일상에서 태극기와 함께하고, 공항을 찾은 여행객들이 전 세계를 오가며 ‘태극기 홍보대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추진한 행사였다. 태극기는 특정 진영의 반쪽 깃발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이어 주는 소중한 연결고리이다. 이번 광복절에는 더 많은 국민이 잊지 않고 태극기를 게양하길 기대한다. 창밖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우리가 이룬 역사적 성취를 기뻐하고, 평화와 화합을 위해 힘써 나가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다시 한번 우리 국민이 모두 태극기 아래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더욱 밝고 희망찬 미래로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
  • 중국 2만명 열병식 예행연습 “복사, 붙여넣기 아냐”

    중국 2만명 열병식 예행연습 “복사, 붙여넣기 아냐”

    중국이 9월 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여는 열병식을 앞두고 2만 2000여명이 참석하는 예행연습을 9~10일 주말 이틀간에 걸쳐 실시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 열병식이 열린다고 전했다. 베이징시 당국은 9일 오후 6시부터 시내 중심 톈안먼 지역 일대 교통을 통제했다. 대규모 경찰력이 철제 바리케이드를 치고 아예 출입을 막았으며 지하철 일부 역이 폐쇄됐다. 시내버스 노선 65개가 우회 운행이나 무정차 통과했고, 시내 여러 공원은 조기 폐장했다. 토요일 오후부터 음식 배달이 중단되는 등 베이징 시민들은 극심한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중국 네티즌들은 “드디어 사진이 나왔는데 몇 초만 봐도 피가 끓는다” “이건 복사 붙여넣기가 아니라 중국 군인이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기대감이 넘친다”는 등 애국심에 넘치는 댓글을 달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기념대회에서 연설하고 국산 신형·현역 무기들이 나오는 열병식을 사열할 예정이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했던 열병식에서는 사거리 1만 1000㎞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둥펑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선보였다. 젠(J)-10, 젠-11, 젠-15 등 최신 전투기도 대거 등장해 공군력을 과시했다. 올해 열병식에서는 J-20, J-35 등 스텔스 전투기로 구성된 편대가 등장할 것이라고 중국 언론들은 전망했다. 열병식에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벨라루스의 알렉산더 루카셴코 대통령 등 여러 해외 정상이 참석 예정이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도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 지도자 가운데 처음으로 열병식 참석을 확정했다. 반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31일 톈진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위해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하지만, 열병식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초청할 것으로 알려져 미중러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낳았다. 하지만 서방 국가 지도자가 중국 열병식에 참석한 전례가 없어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한국 경주에서 10월 31일~11월 1일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하지만 11일에는 미국산 대두 수입을 4배로 늘리라고 시 주석을 압박했다. 또 말레이시아 출신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의 중국 연계 의혹을 들어 사임을 요구했다. 탄 CEO가 인텔에서 일하기 전 운영하던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는 중국 군사 대학에 자사 칩 설계 제품을 판매한 혐의에 대해 지난주 유죄를 인정했다.
  • “대한독립 만세” 울려 퍼진 서울광장… 태극기 언덕 오르고 광복 되새긴다

    “대한독립 만세” 울려 퍼진 서울광장… 태극기 언덕 오르고 광복 되새긴다

    태극기 공방 등 4곳 스탬프 투어무궁화 페이스 페인팅 등 체험도이시영 등 독립지사 150명 소개 “대한독립 만세!” 지난 9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우렁찬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우리 기술력으로 한반도를 달린 첫 열차 ‘해방자호’를 본뜬 독립운동 기록 전시관 ‘광복열차’에서 김영운(72)씨와 시민들이 외친 함성이었다. 이곳은 80년 전 광복절처럼, 81.5㏈을 목표로 독립을 외치며 당시 해방감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씨는 “어릴 적 광복절이면 ‘독립만세’를 외치고 다녔다”면서 “독립운동가를 들으며 서울의 과거 모습을 보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광복 80주년을 맞아 시는 오는 16일까지 독립운동 역사와 서울의 변화를 살펴보는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서울광장을 단장했다. 태극기언덕·해방자호·KTX-청룡·태극기공방 등 4곳을 체험하는 ‘인증 여행’(스탬프투어) 종이도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의 이름인 경성부에서 서울시로 도착하는 열차의 승차권 모양이다. 무궁화 페이스페인팅 등 체험 행사도 풍성하다. 주말을 맞은 시민들은 직접 태극기로 바람개비를 만들고, 독립에 대한 염원을 형상화한 ‘태극기언덕’에 올라 광복의 의미를 되새겼다. 독립 열사나 일본 순사로 분장한 배우들은 시민들과 참여형 공연을 하며 흥을 돋우기도 했다. 태극기언덕 아래 ‘소원터널’에서 중1·고1 딸과 ‘우리나라 화이팅’이라는 메모를 적어 붙인 한소현(46)씨는 “대한독립만세를 난생 처음 외치고 애국심이 되살아나서 이번 광복절엔 직접 태극기를 게양할 것”이라며 웃었다. 아들 이하준(4)군과 방문한 유슬기(35)씨도 “태극기로 바람개비를 만들며 아들이 역사를 체험하고 있다”고 했다. 곳곳에서 독립을 위해 투신한 이들의 얼굴도 만날 수 있다. 전광판에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핵심 인물인 이시영 선생, 대한광복군으로 활약한 이범석 장군을 비롯해 서울 출신 독립운동가 150명을 소개한다. 서울도서관 ‘꿈새김판’에 걸린 안중근 열사의 ‘단지동맹 혈서 태극기’ 속 태극 문양도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조합한 것이다. 태극기를 가슴에 단 손기정 선수가 독립운동가의 응원을 받으며 서울을 뛰는 영상도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해 상영 중이다. 하예은(10)양은 “광복절은 우리나라가 되살아난 날”이라며 “독립운동가의 얼굴을 보며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서울시는 ‘해방자호’에 전시된 명단을 비롯해 발굴한 서울 출신 독립유공자의 서훈도 추진 중이다. 현재와 과거 서울을 한장의 사진에 교차한 ‘리포토그래피’ 전시 공간 앞에도 발길이 이어졌다. 일제 강점기 당시 동물원과 케이블카가 설치된 창경궁과 복원된 현재, 판자촌과 현재의 아름다운 야경이 대조적인 청계천, 경복궁을 가리던 조선총독부 등이 눈길을 끈다. ‘광복 8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의 조정국 총감독과 김미라 예술감독은 “어린 세대나 외국인까지 서울광장에서 광복 이후 80년 간의 변화를 한 눈에 확인하고, 선조들의 광복에 대한 염원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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