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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입중압·부모간섭에 무소신 체질화(교육 개혁해야 한다:5)

    ◎눈치보는 학생들/“의대 가라고해서” 과선택도 의존/성적제일 풍토가 요령에 흐르게 한글날이었던 지난9일 서울 강북지역 Y고 3학년 9반 「주례학급회의」시간. 이날 안건은 「한글을 애용하자」는 주제로 53명의 학생들이 세부실천사항과 건의사항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2∼3명의 학생이 『욕을 삼가자』『외래어의 사용을 줄이자』라는 실천사항을 발표했을뿐 대부분의 학생들은 입을 꾹다물고 잠자코 앉아 있기만하여 학급회의는 10여분만에 끝났다. ○반장 되기도 꺼려 담임 김인식교사(45)는 『학급회의 시간에 자기의견을 자신있게 개진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면서 『자신의 발언으로 혹시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하는 심리로 담임선생이나 학우들의 눈치를 보는 학생들이 많다』고 신세대의 일면을 지적했다. 강남 8학군의 대표적 명문고인 D고3학년 담임교사들은 이번 학기초 반장 선출과정에서 상당히 애를 먹었다. 지원자가 없는 것은 물론 다른 학생들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도 한사코 반장자리를 고사했기 때문이다. 입시제도의 변화로내신정적산출의 객관성문제가 대두된 탓에 『반장이니까 실기점수를 잘 준다』는 예전의 관례가 없어지자 학생들이 아무도 반장을 하려고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 교사들의 지적이다. 장명진교사(41)는 『학급이나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하면 내신성적관리에 도리어 손해라는 인식이 학생들사이에 팽배해 있다』면서 『봉사와 다양한 경험을 통한 내적 인격수련 보다는 주변상황의 변화에 따라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적인 속성이 요즘 아이들의 한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중·고교생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주관이나 신념을 갖지 못하고 주위환경과 상황을 의식하며 눈치보기에 급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학교교육이 크게 잘못돼 있다는 것을 말한다.『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력과 그 판단에 따른 실천력을 길러주는 일이 학교교육의 요체』라는 것이 장교사의 설명이다. ○인내·사고력 부족 많은 일선 교사들은 『대학진학등 졸업후 진로에 대한 강박관념과 학부모들의 지나친 간섭과 기대감 때문에 학생들은 갈수록 사고와 행동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학교를 졸업한 김모군(20·재수생)은 당초 자연대에 진학해 순수학문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부모의 강권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 명문대 의예과를 지원할 예정이다. 김군의 고교동기생 가운데 6명의 학생이 김군과 같은 사정으로 한해 재수를 해야 했다. 반면 부모의 권유에 따라 법학과를 1지망,점수가 부족해 자신이 원하던 2지망 신방과에 합격하고 몹시 기뻐했다는 박모군(20·Y대1년)의 경우처럼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교사들은 『학부모나 주변의 「경험으로 축적된 눈치」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결정에 소신을 앞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서울S고 진학지도주임 이산호교사(48)는 『가정에서 성장과정에서부터 인내력과 사고력을 심어주는 교육은 뒷전인채 성적우선·암기위주의 교육을 강요받다보니 학생들이 주변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적당히 대응하는 무소신의 습성이 몸에 배는 것 같다』면서 『요즘 학생들이 한편으로는 개성이 뚜렷해 자기주장이 강하기도 하지만 모든 사안을 쉽게 해결하려는 편의주의와 나약한 이기주의에 젖어있다』고 말했다. 지난4일 하오1시50분.서울 동대문구 C학원 「45일완성」과학탐구반 첫 강의시간에 1백여명의 수강생이 빽빽이 들어차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수강생 박윤희양(20·재수생)은 『이 학원의 과학탐구영역 강의실력이 뛰어나고 1차수능시험에서의 적중률도 높았다는 소문을 친구에게서 듣고 수강접수를 했다』면서 『교과서 진도대로 수업하는 지루한 학교식 강의보다는 짧은 기간에 예상문제풀이식으로 요점정리를 해주는 강의방식이 솔직히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30여년동안 학원강사생활을 한 정모씨(60·Y학원 수학강사)는 『해마다 중하위권 학생들이 입시제도의 변화와 출제경향에 따라 「입시지도를 잘 한다」는 막연한 소문만 듣고 몇몇 학원으로 철새처럼 몰려 다닌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학원에서는 이같이 「눈치」에 익숙한 학생들의 심리를 이용해 입시직전에 「40일·90일 작전」,「파이널 코스」등 각종 단기·속성 프로그램을 마련한다』고 말했다. 영동세브란스병원정신과 과장 이홍식교수(45)는 이에대해 『한마디로 자아정체감의 위기다』고 전제한뒤 『어린 학생들이 교양과 체육,삶의 태도등을 다양하게 접해야 할 나이에 오로지 입시의 틀에만 매달리다보니 자신의 뚜렷한 주관을 형성시킬 기회가 없이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성격이 형성되고 때로는 불안감·우울증·특이한 행동양태 등을 보여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의 전인교육/창의·사고력 육성에 역점/미/도덕·윤리의식 함양 성격교육 필수/영/잠재력발휘 도와… 봉사활동 의무화 미국·영국등 선진국은 획일적인 입시위주의 교육보다 합리성과 다양성에 바탕을 둔 성격교육·가치관교육 등을 통해 전인적인 인격함양을 꾀하고 있다. 특히 유아교육과 초등교육과정에서 올바른 시민으로의 성장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창의력과 사고력함양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의 학교제도는 주(주)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한주(주)안에서도 학교시설·교육의 필요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학제가 운영되고 있다.오리건주의 경우 공립학교를 위한 목표를 학생들이 시민·소비자·생산자·가족구성원 등으로 기능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지식·기술·태도를 개발할 기회를 가지도록 하는데 두고 있다. 성격교육은 지식과 기술의 습득만으로는 복잡한 환경속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요구하는 미래에 대비시킬 수 없다는데 주안점을 두고 학생의 도덕적·윤리적 발달을 꾀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예를 들면 애국심·성실·자제·인내·용기·협동·예의 등의 특성을 모든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처럼 오리건주에서는 기초교육·기술교육 등과 함께 가치관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도 잉글랜드,웨일즈등 각 지역별로 학제 등이 자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국가교육과정」을 통해 기본적인 교육방향만을 제시하고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와 같은 실제적인 교육과정은 각 단위학교가 최종 결정한다. 우리나라처럼 정부에서 제시한 교육과정을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모든 학교는 「교육은 모든 학생 개개인의 욕구에 봉사해야 한다」는 기본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는 모든 학생의 연령·능력·태도에 맞게 학생의 가능한 잠재력을 최대한 구현하도록 모든 학생을 도와야 함을 의미한다. 특히 초등교육에서의 교육과정은 「여왕의 축제」「동물」「계절」등 아동들이 흥미를 가지는 주제에 대해 교과목중심이 아닌 「놀이」를 중심으로 한 「통합교육과정」의 형태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중등교육에서도 20여개의 「실제교육과정」가운데 영어·수학·과학 등과 함께 게임및 야외활동,생애교육과 지역사회봉사,근로경험 등이 강조돼 입시위주의 우리나라 교육현장의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스스로 판단하도록 믿고 맡겨야/더 많은 자유줘야 자신감·소신 길러/학부모·교사들 여유 없어 안타까워/정문희 연세대교육학과 교수(전문가 의견) 어린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달콤한 음식은 좋아하고 쓰거나 시큼한 것은 싫어한다.부드러운 손으로 만져주고 얼러주고 안아주면 좋아한다.그러나 거친 손으로 툭치거나 때리면놀라거나 소리내어 운다.그 아이는 자기에게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스스로 구분할 줄 안다는 말이다.다시말하면 가치판단의 기준이 그 어린아이 안에 존재한다.만약에 어머니가 그 아이의 건강을 위해 쓴약을 주면서 먹으라고 권할 경우 그 아이는 쓴약을 생글생글 웃으면서 먹지는 않을 것이다.자기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켁켁거리면서 거부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는 자기몸이 거부하는 것을 정직하게 행동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유기체 자체에 가치판단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아직 사회화가 덜 되어 있는 어린 아이들은 부모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보다 자기 유기체의 경험대로 진솔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사회화 과정을 거쳐가면서 아이들은 유기체의 지시와 어른들의 가르침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자주 사달라고 주장하면 어른들의 꾸중을 듣게 되거나 매를 맞게되기도 한다.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은 마음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으면 그것은 나쁜 행동이야』『새롭고 재미있어 보이는 장난감을 자주 사달라고 조르는 것은 나쁜 아이야』라는 믿음을 내면화하기 시작한다. 즉 유기체 자신은 『맛있어 먹고 싶다,좋다,재미있다,놀고싶다,가지고싶다』라고 판단하는데 그 때마다 많은 어른들은 그런 행동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주입시킨다.이런 분위기에서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는 학생들은 스스로 판단하는 유기체의 지시와 사회의 기대사이에서 갈등을 느낄 때가 자주 생긴다.그때마다 어른들의 과잉보호와 간섭을 이겨낼 수 없는 청소년들은 점점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고 유기체의 지혜를 무시하거나 억압해야 한다.자기 소신대로 살지 못하고 부모님·선생님이 대표하는 사회규범을 따라가야만 한다는 당위성에 사로 잡히게 된다.그런 청소년들은 결국 『자신이 없는 사람』이 된다.자발성이 부족하고 자주독립정신이 결여되어 책임있게 행동하지 못한다.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불안한 나머지 중요한 결심을 해야 할 때마다 남들의 눈치를살필 수 밖에 없다.왜냐하면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그들 자신의 판단을 믿지말고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들으라고 가르쳐온 셈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권위있는 사람이 결정하여 지시해주면 그 길을 따라가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택한 넓은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안타까운 것은 상황마다 달라지는 남들의 의견을 따르려니까 불안하여 자연히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소신을 가지고 스스로 취사선택하여 책임있게 행동하는 청소년들을 육성하려면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좀더 자유를 허용하여야 한다.가능한 한 그들을 신뢰하고 존중하여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그러나 우리 부모와 교사들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경험하고 배우도록 「내버려둘」여유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 신권위주의 통치(러시아는 어디로:2)

    ◎보수파 유혈진압이후의 정국전개/“옐친 독주” 민주주의 후퇴 우려/보수정당 해산령… 개혁성향 언론도 검열/“눈엣가시” 지방지도자 대규모 숙청 임박 의사당을 감싼 포연이 걷히면서 비상통치를 위한 옐친대통령의 권력장악이 본격화되고 있다.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일정기간 옐친대통령 1인의 「신권위주의」통치는 불가피할 것같다.5일 당장 언론검열제 실시와 함께 보수색깔의 정당·사회단체 해산조치가 이루어졌다.그리고 지방정부지도자 및 정부관리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작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말들이 크렘린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3일 모스크바 일원에 선포됐던 비상사태와 하오11시부터 상오 5시 사이의 통행금지조치는 기약없이 연장됐고 시경계쪽에는 군병력들이 통행차량들에 대한 철저한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다.남은 「폭도」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이기는 하지만 통금시간 내 특별허가증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선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져있다.산발적이지만 시내쪽에는 야간에 총격소리가 끊이지 않고있다. 숙청 1호로 발렌틴 스테판코프 검찰총장이 해임됐다. 그는 지난 2년여 옐친이 의회와 권력대결을 벌이던 시기에 수시로 의회편을 들었던 사람이다.그의 후임으로 시베리아 옴스크시에 사는 무명의 변호사로 옐친의 심복인 알렉세이 카자니크가 임명됐다. 6일에는 발레리 조르킨 헌법재판소장이 크렘린의 압력으로 물러났다.그는 지난달 21일 옐친대통령의 의회해산조치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었다. 권위주의의 도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역시 언론의 통제.정간조치로 프라우다,덴,소베츠카야 로시아등 보수신문들이 5일 아침부터 가판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반옐친논조의 TV시사프로 「600초」도 방영이 중지됐다.그리고 부패혐의로 정직당했다가 의회해산 직전에 복직된 옐친의 심복 블라디미르 슈메이코 제1부총리가 새공보장관으로 임명됐다.그는 취임일성으로『민주주의와 애국심에 기초한 언론의 대오각성』을 촉구했다. 옐친은 6일 언론검열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언론통제는 이미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더이상의 검열도 필요없는실정이다. 언론통제의 화살은 보수신문들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네자비시마야 가제타,세보드냐등 개혁성향의 신문들도 5∼6일 검열로 군데군데 기사가 삭제된 흉한 몰골로 독자들을 만났다. 「구국전선」「노동자 러시아」「공산노동자당」「장교연맹」등 반정부단체들이 불법화됐고 그 대표들은 국가전복기도 혐의로 모두 체포됐다. 지난달 21일 의회해산 포고령때 지방의회는 존속시키겠다는 약속과 달리 옐친대통령은 지방의회도 자진해산해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이번 사태기간중 시종일관 의회편을 든 모스크바시의회는 이미 해산됐다. 옐친대통령은 의회와 권력투쟁중 원군으로 쓰기 위해 소집했던 89개 지방지도자회의에 대해서도 안면을 바꾸었다.의회가 없어진 마당에 추가 자치권한을 요구하는 그들과의 정치거래는 더이상 필요없다는 판단에서이다. 의회해산조치에 반대했던 아무르주지사와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주지사가 해임됐다.이 두사람만 시범케이스로 처벌된 것인지 앞으로 전대상지역을 모두 처벌할지 여부가 향후 정국운영의 중요한지렛대로 부상됐다. 만약 옐친대통령이 유혈진압에 비판적인 지방정부에 대해 모두 메스를 가할 경우 러시아의 권력투쟁은 중앙정부 대 지방정부라는 보다 깊숙한 수렁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불과 이틀 사이에 취해진 이런 숨가쁜 조치들에 대해 일부에서는 「불가피하고 필요하다」는가 하면 힘들게 시작된 러시아민주주의의 퇴보를 들어 우려를 나타내는 시각도 있다. 어쨌든 이제 러시아의 모든 국가권력은 옐친 1인의 수중에 모아졌다.그리고 이제 그에게는 이 「권위」를 잘못썼을 때 비난을 나누어 받을 상대도 없다.모든 책임은 그가 져야한다.
  • 한국부총리와 불란서 여직원(김호준 정치평론)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이 방한선물로 양도한 우리 고문서 1권을 파리에서 서울로 공수해온 프랑스국립도서관의 두 여직원이 마지막 순간까지 책을 껴안고 울면서 내놓기를 거부해 관계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일개 말단공무원이 감히 대통령의 결정에 반발하다니… 그것도 국가의 체면을 중시해야 할 외국 땅에서 눈물까지 펑펑 쏟으며 저항했다니… 관료사회 하면 먼저 상명하복과 보신주의만을 연상하고 있는 우리네로선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어서 그런지 신기하기조차 했다. 더구나 두 여직원이 귀국후 이 고문서반환을 『프랑스의 국익과 합법성에 반하는 행위』라고 항의하며 사표를 냈다는 보도에 접하곤 그들의 투철한 직업의식에 다시한번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 문명사회의 인류양심에 비추어본다면 두 여직원의 저항은 결코 미화할 대상이 아니다.남의 나라에서 무력으로 약탈해간 문화재를 돌려준다는 건 현재의 지구촌 윤리로 볼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한국고문서는 프랑스의 높은 문화의식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그들의 제국주의 만행을 웅변하는 장물일 뿐이다.그걸 계속해서 움켜쥐고 있겠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편협한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다.그러한 이기심은 오히려 인류 양심과 문화의식의 함몰로 규탄되어야 마땅하다.그럼에도 두 여직원의 눈물이 찬양됐던건 한국 관료사회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충실한 직무의식과 떳떳한 소신 표명이 거기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평화의 댐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 출두한 수의의 장세동 전안기부장이 의원들 앞에서 두눈을 바로 뜨고 목을 곧추세운채 당당한 태도를 보인 것이 시중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이유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그는 「오야붕」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걸 자신의 몸으로 막으려는 듯 평화의 댐은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아래 입안,건설됐다고 거침없이 증언했다.5공비리와 관련한 두번째 옥살이로 더이상 떨어질 나락이 없는 그로선 평화댐 건설책임을 몽땅 뒤집어 써봤자 두려울게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평화댐 진상규명과 냉철한 과거 반성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장씨의 막무가내는 실망스런 것이었는지 모른다.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장씨의 태도가 당당하게 비쳐진 까닭은 그렇지 못한 오늘날의 세태 때문이었을 것이다.정치인들의 신의없는 처신과 책임질 일은 요리조리 빠지려고만 드는 관료들의 매끄러움을 뻔질나게 보아온 국민들의 눈에 장씨의 태도가 옛날 소설에나 나올법한 우직한 돌쇠로 비쳐진건 당연하다. 신정부의 경제총수이자 실명제추진의 주역으로 알려진 이경식부총리가 지난주 관훈토론회에서 드러낸 대통령과의 관계에서의 소극성은 문민시대의 소신있는 공직자상을 기대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씁쓸함을 안겨 주었다.대통령의 지시가 경제논리에 맞지않을 때 『노』라고 말한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그런적이 없다고 답변했다.또 장관들이 요즘 「예스 맨」으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대통령 밑의 장관이니까 예스를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당연시한뒤 『그렇다고 대통령앞에서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개진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그의 답변을 뜯어보면 「강력한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예우가 함축돼 있음을 발견한다.동시에 그가 적극적인 직언형이 아니라는 것도 감지할 수 있다. 지금 항간에선 대통령 주변에 직언하는 측근,직언하는 각료가 드물다고 지적하는 소리가 많다.이부총리의 관훈클럽답변은 그런 항설을 사실로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실명제실시와 관련하여 가·차명예금에 대한 자금출처 조사대상이 당초의 1억원에서 3천만원으로 내려간 것도 경제논리에 입각한 주장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각료들이 직언으로 「1억원」을 지켰던들 실명제보완대책은 지금보다 훨씬 가벼웠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영삼대통령은 지난 21일 국회연설을 통해 『분출하는 집단이기주의에 맞서 안될 것은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국민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대통령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인기를 의식해야 할 자리다.더구나 의정단상을 정치적 성장의 배경으로 갖고 있는 김대통령은 누구보다도 국민의 인기에 민감한 정치인이라는 평을 들어왔다.그가 이제 그러한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들에게 얼마든지 『노』라고 말하겠다고 선언한 건 예사로 보아 넘길일이 아니다. 문제는 공직사회다.대통령도 필요하면 국민에게 『노』라고 말하겠다고 공언한 판국에 공직자들만 여전히 보신주의에 파묻혀 줏대없이 군다면 이는 역사의 기대를 저버리는 짓이다.국민들은 각료나 대통령 측근들에 대해 『노』라고 말할 수 있는 근성을 요구하고 있다.그건 대통령의 지시를 거역하라는 뜻이 아니다.투철한 애국심,뚜렷한 소신을 갖고 혼신의 힘을 다해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보좌한다면 「예스」와 「노」를 말하는데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다.재산공개를 통해 깨끗함을 인정받은 공직자라면 무엇이 무서워 소신을 펴지 못한단 말인가.
  • “「집단이기」 자제해야 선진국 도달”/김영삼대통령 국정연설 전문

    ◎정치개혁엔 자기희생 반드시 필요 존경하는 국회의장,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작년 10월13일 저는 9선의 국회의원으로서 마지막 연설을 마치고 제 정치역정의 애환이 배어 있는 이 국회의사당을 떠났습니다.오늘 저는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해온 대통령으로서 여러분과 더불어 국정을 논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저는 그동안 성심을 다해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해 왔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하루하루가 고뇌의 나날이었습니다.중요한 결단을 할 때마다 무서운 책임감으로 더 할 수 없는 고독을 느껴야 했습니다.오직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저는 온갖 형태의 권위주의적 규제와 제한을 풀었습니다.안기부와 기무사의 기구를 축소하고,정치사찰을 중지시켰습니다.문민시대에 걸맞게 군의 개혁을 단행했습니다.이제 군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국민의 신뢰받는 군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습니다.이렇게 저는 문민시대의 정치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대통령의 재산을 먼저 국민앞에 공개했습니다.그것이 공직자윤리법의 개정으로 이어져 공직자의 재산공개를 제도화하게 되었습니다.법에 따라 공직자의 재산공개가 이번에 최초로 이루어졌습니다.이제 공직자는 국민앞에 투명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입니다. 공직자의 재산공개는 우리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입니다.저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또 그렇게 실천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참다운 권위와 강력한 지도력은 지도자의 솔선수범과 도덕성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저는 지도자의 도덕성이야말로 건강한 사회,건강한 나라의 밑바탕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저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헌정사의 정통성을 확립했습니다.상해 임시정부 요인 다섯 분의 유해를 봉환하여 국립묘지에 모셨습니다.조선총독부 건물과 그 관저를 철거키로 했습니다.5천년 민족문화의 정수를 보전,전시할 박물관을 새로 짓기로 했습니다. ○나라운명과 직결 새 정부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4·19,5·18 그리고 6·10 민주항쟁의 연장선위에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그리하여 문화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을 회복하고 있습니다.잃어버린 애국심을 되찾아 신한국 창조를 향한 열정으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습니다.선열들의 피가 우리에게 광복을 안겨주었다면,우리는 피와 눈물과 땀으로 제2의 광복,제2의 건국을 이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30년이상 쌓인 부정부패를 척결해 나가고 있습니다.권력으로 재산을 만들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뿌리뽑힐 때까지,그리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관행이 우리의 생활과 의식속에서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우리 자신에 대한 채찍질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것은 우리가 다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아픔입니다. 저는 지난 8월12일 금융실명제를 실시토록 하는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표했습니다.금융실명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근절하고,깨끗한 사회,맑고 힘있는 사회로 가는데 절대로 필요한 제도입니다.금융실명제 없이는 건강한 민주주의도,활력이 넘치는 자본주의도 꽃피울 수가 없습니다.자유로운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금융실명제야 말로 총체적 개혁의 중추요 핵심입니다.개혁중의 개혁입니다. 금융실명제 아래서만 성실한 기업,땀흘려 일한 사람들의 부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깨끗한 부와 땀흘려 모은 재산은 국민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신성한 노동에 허무감을 안겨주는 놀고 먹는 풍조가 사라질 것입니다.성실하게 일하면,일한 만큼 보상받는 정직한 사회가 이루어질 것입니다.실명제는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우리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도 실명제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합니다.저는 실명제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여러분께서 대통령 긴급명령을 동의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앞으로도 실명제 정착에 끝까지 협력해 주시기 바랍니다.국민 여러분께서도 다소의 불편이 따르더라도 실명제에 적극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우리 국민의 이익,국가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실명제에 대한 일부의 오해와 염려가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실명제의 진정한 목적은 실명제 문화의 정착에 있습니다.실명제는 미래지향적으로 운영될 것입니다.실명자금의 비밀은 반드시 보장될 것입니다. 국회의원 여러분, 이제까지 대통령의 책임아래 이루어진 변화와 개혁은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에 따른 것이었습니다.대통령으로서 역사와 국민앞에 떳떳하게 그리고 양심에 비추어 한점 부끄러움 없이 내린 결단이었습니다.그리고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저는 국회가 입법기관으로서 개혁의 역사적 소임을 다해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국회 스스로 일련의 개혁적 입법을 통해,우리의 정치를 일신시켜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정치개혁은 깨끗한 선거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부정선거,타락선거가 발붙일 수 없도록 선거혁명을 이룩해야 합니다. 정당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자생력을 가져야 합니다.정치자금은 투명해야 합니다.이러한 정치개혁을 이룰 때,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이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정치개혁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치지도자 여러분의 자기희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저는 국회의원 여러분이 부정과 타락이 없는 선거제도는 물론 대담한 정치개혁을 통해서 참다운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정착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국민과 더불어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될것 저는 또한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제 문민시대가 열렸습니다.국력을 소진시키는 대결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정당은 창조와 정의를 위해 경쟁해야 합니다.우리 국민의 생명력과 우수성을 최대한 신장시키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분출하는 집단이기주의에 맞서 당당하게 안될 것은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우리는 과거를 청산하되,과거에 매달려서는 안됩니다.지난날의 갈등과 반목으로 세계와 미래를 향한 민족의 진운을 멈추게 해서는 안됩니다.우리는 이제 과거에 대해 화해하고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국회가 달라져야만 합니다.국회는 국가발전 전략을 수립하고,창조적인 토론을 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세계와 미래를 내다보는큰 정치를 해야만 합니다.저는 30년이상 계속된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대를 정치인으로 살아왔습니다.이제 저는 여와 야를 떠나 우리 공동체의 현실에 대해 함께 고뇌하는 정치,21세기 위대한 신한국의 창조를 향해 함께 달려가는 정치를 해나가자고 제안하는 바입니다.우리 함께 정치다운 정치,멋진 정치를 펴 나갑시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우리에게는 지금부터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안으로 우리사회의 인간화,민주화로 정의로운 화해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밖으로 우리의 활로를 세계와 미래로 넓혀 나가야 합니다.우리는 전진하면서 개혁하고 개혁하면서 전진해야 합니다.우리가 대전엑스포의 성공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앞으로 건설될 고속전철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세계속의 한국」의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영종도 신공항의 건설은 아시아 태평양시대의 중심으로 가는 민족웅비의 대역사입니다. 세계는 지금 냉전의 시대를 지나 경제전쟁,기술전쟁,정보전쟁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우리는 이 경쟁을 이겨내야만 합니다.세계 문명의 중심 축에 우뚝서야 합니다.우리의 지나온 역정과 현실은,우리가 극복할 과제의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 민족은 새로운 문명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습니다.우리에게는 민족의 독립과 나라의 민주화를 향해 달려온 도덕적 힘이 있습니다.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경제적인 저력이 있습니다.이 두가지 힘을 하나로 합해서 신한국을 창조해야 합니다. 신한국은 선진국의 위상과,도덕국가의 위상을 함께 갖는 조국입니다.부강한 민족국가의 틀과 새로운 문명이 결합된 사회입니다.우리는 자율과 창의의 신경제를 통해 반드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민족정기와 높은 문화로 도덕국가를 이 땅에 건설할 수 있습니다.전통문화와 첨단문명을 창조적으로 결합하여,새로운 문명의 모델을 이 땅에 이룩할 수 있습니다.한국은 분명 새로운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변화와 개혁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미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세계의 정상들이 잇따라 한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며칠전에는 프랑스의 미테랑대통령이 다녀갔습니다.세계인들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개혁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습니다.이제 우리는 도덕적으로,떳떳하게 세계속에서 어깨를 겨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한국인으로 태어난데 대하여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한국은 유엔의 요청에 따라 소말리아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함으로써 세계평화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앞으로도,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더 적극적으로 세계평화와 인류의 안녕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우리 외교는 이러한 자신감에 따라 민주·자유·복지·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신외교로 전환하고 있습니다.우리 외교는 세계속의 한국으로,그리고 미래지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그러나 세계가 변하고 있는데,한반도만이 유일한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습니다.우리는 안보문제에 결코 방심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평화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화해와 협력을 거쳐 남북연합 그리고 1민족 1국가로 가는 3단계 통일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민주적 절차,공존공영,민족복리라는 세가지 통일정책의 기조를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북한의 핵 의혹이 해소된다면 우리는 남북사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우리는 이스라엘과 PLO사이의 숙명적 적대가 위대한 평화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왜 우리는 같은 민족으로서 무기를 버리고 화해하지 못하는지 실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저는 북한이 하루속히 민족의 공멸을 가져올 핵 의혹을 씻고,공존공영과 민족복리의 마당으로 나올 것을 촉구해 마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저는 경제를 살리는 일이 대통령이 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믿고 있습니다.우리는 신경제 5개년 계획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합니다.이를 위해 정부는 재정·금융·행정의 개혁과 더불어 성장잠재력을 강화할 것입니다.국제시장기반을 확충해 나갈 것입니다.성실한 기업이 마음놓고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보장할 것입니다. ○북 핵의혹 씻어야 저는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말합니다.우리 모두 공동체 의식으로 먼저 경제를 살립시다.근로자가 살아야 기업이 살고,기업이 살아야 근로자가 살 수 있습니다.온 세계가 미래를 향해 뛰는데,우리만 내몫 찾기로 서로 다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내 몫만을 요구하는 집단이기주의야 말로 한국병중의 한국병입니다.이 한국병을 고치지 않고는 결코 선진국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노사분규를 비롯하여 내 몫만을 요구하는 집단이기주의를 자제해 줄 것을 호소합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우리나라는 좀 덜한 편이지만,세계적인 기상이변으로 농사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냉해 때문에 노심초사하신 농민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우리는 냉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정신으로 농업의 국제경쟁에서 이겨내야 합니다.우리는 오늘의 고통분담으로,내일 꿈과 희망의 신한국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국민여러분,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인간을 필요로 합니다.우리 사회의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는 우리의 교육이 개혁되어야 합니다.인간교육,공동체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창의력을 키우는 교육,과학기술교육이 바로 그것입니다.앞으로 정부는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저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말합니다.여러분은 오늘의 현실에 굳게 서서 세계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이제 거리에서 학교로 돌아가 도서관의 불을 밝혀야 합니다.여러분이 공부해야만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여러분의 미래와 우리 민족의 미래가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변화와 개혁은 때로 고통스럽고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개혁정책에 기꺼이 협조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우리의 변화와 개혁은 체제의 안정과 강화를 위한 것입니다.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기정비의 과정입니다.제도개혁과 의식개혁으로 자기 정비를 향한 노력이 각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기를 기대합니다.하루 속히 자기 정비의 기틀을 마련하고,국민과 더불어 이제부터는 오직 전진만을 선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저는 이 땅에 선진국가,도덕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입니다.저에게 꿈이 있고 소원이 있다면,오직 자랑스러운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 뿐 입니다. ○교육개혁에 박차 저는 임기 마지막 날까지,헌법에 명시된 대로,「국가를 보위하며,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시키고,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해야 하는」 대통령의 직무를 혼신의 힘을 다하여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조국에 대한 애정과 정열을 남김없이 바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웁시다.큰 이익을 위하여 작은 이익을 양보합시다.우리 모두 꿈과 희망을 가집시다.마침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집시다.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민족입니다.더 멀리 더 크게 내다봅시다.21세기는 바로 6년 앞에 있습니다.앞으로 몇년이 우리 민족의 진운을 결정할 것입니다.힘을 합하여 세계로 미래로 나아갑시다.새 역사를 창조합시다. 1993년 9월21일 대통령 김영삼
  • 재미학자 방선주씨,OSS의 「NAPKO 계획」 공개

    ◎“미,일제말 한국인 특공대 조직 추진”/지하 저항운동 목적… 45년 하반기 투입 계획/징용포로로 구성… 일 항복으로 중단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5년 하반기.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특수훈련을 받은 한국인 특공대가 서울과 평남 진남포등지로 잠입,현지조직을 만들어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처럼 지하저항운동을 벌인다」 이같은 상황은 소설속의 한 장면이 아니라 당시에 실제로 추진된 작전계획의 내용이었다.「NAPCO 계획」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작전은 다만 일본이 예상보다 일찍 항복하는 바람에 중단됐을 뿐이다. 그동안 역사의 그늘 속에 묻혀있던「NAPCO 계획」의 실상이 재미 한국인 학자인 방선주씨(아메라시안 데이터 리서치 소장)에 의해 밝혀졌다.방소장은 이에 관한 연구결과를 오는 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독립기념관부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방소장이 미국립문서보관소의 OSS(전략첩보국·CIA의 전신으로 1943∼45년 존속)관련자료를 입수,분석한「NAPCO 계획」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등 재미독립운동가들은 중국및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구성된 게릴라부대를 조직,일제에 대한 적후방 교란작전을 벌일 것을 미정부에 요청한다.미정부는 그 필요성은 인정했지만 이승만을 통한 특공대원모집을 거부하고 OSS에게「NAPCO 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했다. OSS는「1개조 5명이내의 공작조 10개를 구성,우선 한국내에 침투시켜 첩보·지하조직결성등의 활동을 벌여 2천3백만 한국인의 지지를 얻은 다음 이 공작조를 나중에는 일본으로 보내 사보타지·무장저항운동으로 이어나간다」는 세부계획을 확정했다.공작조는 잠수함을 타고 잠입하기로 했으며 상륙지점으로는 서울·진남포·서산·목포등지를 선정했다. 공작원은 한국에 연고가 있는 유학생과 사이판·괌등지에서 포로가 된 징용자 가운데 선발하기로 했다.이에따라 44년11월에는 OSS요원인 한국인(이태모로 추정)이 포로로 위장,수용소에 들어가 직접 요원을 뽑았다. 45년3월에는 문서상에 A∼H로 표시된 8명의 요원이 미국 남캘리포니아의 산타카타리나섬등지에서 유격전투·파괴·낙하·교신·선전등의 각종 훈련을 받고 있었다.방소장은 이들이 유일한(당시 50세·유한양행창업자) 이초(49·시카고YMCA 체육과 출신) 변일서(44·OSS요원) 차진주(39·미네소타주립대 ROTC 출신) 이근성(35·이왕가 혈통) 김강(43·금속화학기술자) 변준호(43·사회과학연구회 회원)임을 밝혀냈다.그러나 나머지 요원 1명의 신원과「NAPCO」의 의미등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방소장은『일본이 일찍 항복하는 바람에「NAPCO 계획」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고 아쉬워 하고『그러나 일의 성사여부와 상관없이 요원들의 불굴의 애국심과 용기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임정선열 유해봉환 대통령 담화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3·1운동을 계기로 수립된 세곳(서울·노영·상해)의 임정이 통합된 단일 민주정부입니다. 민주공화정을 표방하고 3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도입,대한민국의 법통을 세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것을 전문에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새정부는 상해 임시정부의 문민적인 정통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오늘 상해 임시정부의 대통령,국무총리,의정원 의장,법무총장,신민회총감등 요인의 유해를 우리땅에 모셔오는 것은 우리나라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밝히는 것이 됩니다. 정부로서는 유해를 모셔다가 국민제전으로 장례를 치르게 된것을 참으로 뜻깊게 생각하며 커다란 자부와 긍지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망국의 한을 품고 풍찬노숙하면서 나라를 찾으려 하셨고 그 과정에서 쓰러져 이국의 땅에 묻혔습니다. 살아 생전에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독립이 다 된 날,본국에 돌아와 영광의 입성식을 한 뒤에 죽는 것이었습니다. 백범 김구선생은 일찍이 『생전에 한번 정부 정청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문지기』가 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노백린군무총장은 『단 한번이라도 정복을 입고 말을 탄 채 조국의 남대문으로 입성』하기를 소원했으나 해방되기 22년전에 돌아가셨다가 60년만에 한줌의 재로 되어 돌아오셨습니다. 이제 뒤늦게나마 조국에 유해를 모시게 되었으니 저 세상에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조국은 어제의 비운과 좌절을 딛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고 있습니다. 조국의 땅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봉환하지 못한 87위의 유해 봉환을 위해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그 분들과 그 가족들의 못다한 한을 풀어드리고 항일독립운동의 민족정기를 계승,발양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박은식대통령은 민족의 「통사」를 쓰고 「독립운동의 혈사」를 썼으며 독립을 이룩한 뒤에 광복사를 자신의 손으로 쓰기를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마지 않더니 1925년에 돌아가시니 최초의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신규식국무총리는 을사조약때 『망국인으로 살기보다는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지사의 길』이라면서 자살을 기도,한쪽 눈이 사시가 되셨습니다. 이분은 유명한 「한국혼」이라는 글에서 『오호라,동포여,치욕을 알리는 피는 선열들이 이미 뿌리고 갔다.치욕을 씻기 위한 피는 우리들이 흘려야 할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말씀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던 「애국」이란 말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유해 봉환을 계기로 애국에의 열정이 우리의 가슴속에서 되살아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분들이 애국의 충정 하나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셨듯이 우리 역시 그같은 애국심을 가지고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이 그때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것처럼 우리는 오늘의 조국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독립운동이 그때의 애국이라면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경제를 살리며 국가기강을 바로 잡아나가고 맡은 바 책무를 다하여 새로운 조국을 건설하는 것이 오늘의 애국입니다. 광복절과 10일 제전일을 앞두고 우리 국민 모두는 경건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영령들에 대해 뜨거운 존경과 감사를 바쳐주기를 희망합니다.이기간중에 국민의 자발적인 참배가 줄을 이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우리안에 도사리고 있는 애국심이 뜨겁게 소생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제2의 건국을 이룩해내야 하겠습니다.
  • 상해임정 5위 봉환을 보고/이현희 성신여대(특별기고)

    순국하신지 70여년만에야 꿈에도 못잊던 조국의 품안에 안겨 영면할 수 있게 되었다.대한민국 임시정부(1919∼45)27년을 다진 다섯분,박은식 신규식 노백린 안태국 김인전선생의 유해가 이역땅에 묻힌지 70여년만에 문민정부의 외교적 결실로 봉환의 꿈을 이루게 됐다. ○70여년만에 조국품에 5위분은 대개가 1920년부터 1926년사이 초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해시대(1919∼32)에 그 기반을 다지거나 화합과 광복정책의 방략,전략전술등을 인출해 내던 지혜로운 분들이었다.거개가 40대에 순국하신 아픈 기억을 일제하의 우리국민들에게 안겨주신분들이다. 백암 박은식은 민족사학자요 유학자이며 언론인,교육·개화사상가로서도 당대를 누비던 개결한 선비였다.임정에 참여하기 전후로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등 뛰어난 저술을 통해 일제강점하에서 좌절·방황·자포자기하던 내외 겨레에게 소생하는 민족혼을 심어주었다.이승만임정대통령의 뒤를 이어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지도체제를 국무령중심으로 고치고 물러난뒤 곧 서거하셨다.항상『나는 대통령에 연연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던 그는 돌아가실 때는 『벼슬은 때가 되면 하는 것인데 정작 국민의 심복임을 아는 사람이 적소.독립투쟁은 단결이 가장 중요하오』라면서 당시의 임정요인들간의 갈등을 우려하고 경계하셨다. 예관 신규식은 구한국군에서부터 시작해 191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이듬해 신해혁명때 손문을 도와 중국 혁명동지와 안면을 넓히면서 임정의 기반을 닦았다.동제사·혁명당·신한청년당등의 조직을 통해 임정을 실질적으로 수립,선포케 하는데 중심역할을 맡아 동분서주하였다.국무총리와 법무총장등을 역임하면서 중국 광주에 있던 손문의 호법정부를 방문,최초로 임정의 국제적인 승인을 얻어내는 외교적인 개가를 올렸다. 그는 한국혼,민족정기·의식·철학을 강조한 분이다.그는 『민족혼이 빠지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외쳤다. 계원 노백린은 전통적인 무관으로서 이미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구한국군에서 무관학교교장등을 지낸뒤 임정에 참여,국군통수체계를 정립하는데 기여했다.그뒤 미국으로 건너가 비행사 양성소를 열고 비행사를 길러 공군창설의 기반을 굳힌뒤 3·1운동이후 상해 임정으로 다시 합류해 군무총장(국방장관)국무총리를 역임하다가 서거하셨다. ○애국의 진솔함 엿보여 그는 1926년 운명직전 상해의 10평 남짓한 누옥에서 말달리는 시늉을 하면서 『가자 서울로,내조국은 한국이다.어서가자』라고 외쳤다.슬프기까지 한 나라사랑의 진솔함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동오 안태국은 임정과는 직접 관련이 적다.도산 안창호선생의 인척으로 상해에 와서 활동하다가 1920년 5위분중에서 제일 먼저 작고하셨다.1907년 신민회를 조직하는데 핵심역할을 했고,데라우치조선총독 사살계획에 연루돼 오랫동안 옥고를 치렀다.도산은 그에 대한 추도사에서 『동오선생은 선비집안 출신으로 오로지 순수한 애국심만으로 나라사랑의 큰 뜻을 평생 펴왔다』고 그의 애국충절을 기렸다. 경재 김인전은 목사출신이었다.고향은 충남 서천이나 평양신학교를 나온 총신계통의 골수신앙인이었다.교육입국의 기치아래 후진을 양성하다가 3·1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뒤 상해임정에 합류하였다.학무총장대리·학무차장과,임시의정원 부의장·의장을 역임하고 태평양회의 외교후원회간사등 임정후원단체를 조직하는데 앞장섰다.외국인 풍모가 풍긴 도덕성이 뛰어난 분이었다.임정의 재정등 안살림을 도맡았고 요인들이 분열하지 않고 화합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분이었다.그는 『우리가 누굴 탓할 계제가 못됩니다.내자신을 돌보면서 근신하고 가치기준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합시다』고 강조해왔다.설교조의 웅변에 상해 3·1예배당안은 늘 숙연했었다. ○역사적의미 되새겨야 상해 만국공묘에는 아직도 윤현진 김가진 이영선등 알 수 있는 분들의 묘가 더있다.이번 유해봉환은 그 시작이어야한다.이를 계기로 나라사랑의 큰 뜻을 펴다가 이역만리 타국땅에서 순국하신 더많은 애국선열의 유해를 그리던 조국강산으로 모셔와야 할 것이다.오늘부터 9일까지의 참배기간동안 국립묘지를 찾으며,그리고 10일의 안장식날 조기를 달며 우리는 그러한 역사적 의미를 엄숙히 되새겨야 할 것이다.그것이 애국의 실체를 후손에게 가르치고,수많은 희생이 오늘의 한국을 탄생시켰다는 역사적사실을 후손에게 되새기게 하는 교훈이 될 것이다.
  • 임정선열 5위 70여년만에 돌아오다/문민법통 새정부서 계승발전

    ◎김 대통령 담화/남은 87위 조속봉환에도 최선/어제 상해서 환국… 10일 국립묘지 안장 박은식·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선생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열 5위의 유해가 5일 하오 사후 70여년만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다. 중국 상해 만국공묘에서 국내로 봉환된 임정 선열5위의 유해봉영식은 이날 하오 김포공항 귀빈주차장에서 제전위원장인 황인성국무총리및 제전위원·유족대표·시민등 2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황총리는 봉영사를 통해 『선열들께서는 혹독한 일제의 식민지 통치하에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불굴의 투지와 용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시고 독립운동에 헌신함으로써 이 나라의 법통과 민족사의 맥을 이어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선열 5위의 유해는 박은식선생의 유해를 선두로 김포공항에서 동작동 국립묘지까지 경찰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국립묘지 영현 봉안관으로 운구돼 안치,3부요인과 각계 대표등의 헌화와 분향을 받았다. 유해영결식은 오는 10일 상오7시30분까지 일반조객들의 참배를 받은뒤 상오10시 국립묘지 현충문 앞에서 각계인사와 외교사절·시민 6천여명이 참석,국민장급인 국민제전으로 거행된다. 이번 임정 선열 5위의 유해봉환으로 국내로 봉환된 유해는 28위로 늘었다. 이에앞서 천묘식이 5일 상오 중국 상해 만국공묘에서 봉안단·유족대표등 1백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렸다. 봉환단장인 이충길보훈처차장은 추모사에서 『선열들의 불멸의 정신은 겨레의 가슴속에 면면히 맥을 이어 오늘의 광복과 번영된 조국의 영광으로 결실맺었다』고 말했다. ◎제2건국 이룩 다짐 김영삼대통령은 5일 『새정부는 상해 임시정부의 문민적인 정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선언하고 『임시정부 선열의 유해봉환을 계기로 애국에의 열정이 우리의 가슴속에서 되살아나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임시정부 애국선열 유해봉환에 즈음한 담화문」을 발표,『독립운동이 그때의 애국이라면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경제를 살리며,국가기강을 바로잡아 나가고,맡은 바 책무를 다하여 새로운 조국을 건설하는 것이 오늘의 애국』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오늘 상해 임시정부의 대통령·국무총리·의정원의장·법무총장·신민회총감등 요인의 유해를 우리땅에 모셔오는 것은 우리나라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밝히는 것이 된다』면서 『정부는 유해를 모셔다가 국민제전으로 장례를 치르게 된것을 참으로 뜻깊게 생각하며 커다란 자부와 긍지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아직 봉환되지 못한 87위의 유해봉환을 위해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그분들과 그가족들의 못다한 한을 풀어드리고 항일독립운동의 민족정기를 계승,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우리국민 모두는 경건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영령들에 대해 뜨거운 존경과 감사를 바쳐주기를 희망한다』면서 『이를 계기로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애국심이 뜨겁게 소생해 우리의 손으로 제2의 건국을 이룩해내야 한다』고 다짐했다. ◎87위 조속봉환 지시 김영삼대통령은 5일 미봉환 애국선열 87위도 하루빨리 조국에 안장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박관용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현재 명단이 파악된 87위는 중국에 양기탁등 75위,일본에 강상립등 1위,미국에 서재필등 3위,러시아에 김공사등 8위가 있으나 이중 66위는 정확한 묘소위치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 “임정요인 5위 유해 봉환/애국심 되새기는 계기로”/황 총리

    황인성국무총리는 2일 대전엑스포 개최와 관련,『대전을 중심으로 한 주요도로의 교통소통대책을 마련하고 공항에서의 대테러대책등 안전대책도 재점검하라』고 지시했다. 황총리는 이날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난 이틀간 계속된 엑스포 리허설에 대한 보고를 받고 『엑스포 장내에서 관람객들의 흐름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관리대책을 마련하라』면서 『특히 수준높은 관람분위기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장내방송등을 통한 질서정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황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오는 5일 열리는 상해임시정부 선열5위의 유해봉영식과 관련해 『이번 행사가 선열들의 유해를 봉환하는데 그칠것이 아니라 나라를 잃게 된 이유와 순국선열의 애국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도록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적극 홍보하라』고 당부했다.
  • 「별들의 수뢰」 명목도 가지가지/검찰수사 이모저모

    ◎군사기 진작용 6억에 연구소 설립자금 3억도/보도진 따돌리려 재벌회장 비밀수사로 “눈총” ○…율곡사업 비리를 수사해온 대검중앙수사부는 지난17일 하오4시30분쯤 이종구전장관등 5명에 대한 구속집행을 통해 9일동안의 수사를 매듭짓고 취재진들과 만나 질의응답으로 항간의 궁금증에 답변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 검찰은 이번 수사가 피고발인 개개인의 비위수사에 한정돼 율곡사업 비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무기선정과정등 군전력증강사업에 관련한 의혹 규명에 미흡했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율곡사업 전반에 대해서는 이미 감사원에서 충분히 실사, 적절한 조치를 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따라서 검찰은 사법처리가 필요하다고 고발된 사람들의 비리를 수사한 것』이라고 설명. 검찰의 한 수사관계자는 구속된 4명 대부분이 돈을 받은 사실은 순순히 인정했으나 성능이 떨어지는 무기를 선정하는등 국방업무에 차질을 초래하는 행위를 한 대가가 아니었느냐는 지적에대해서는 한결같이 『20여년동안 군에서만 일해온 애국심이 용납하지않는 일』이라며 흥분했다고 전언. ○…이종구전장관은 삼양화학 한영자씨로부터 받은 6억원에 대해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에서 갖다 준 것으로 알았다』고 주장하다 『군사기 진작용으로 쓰라고 준 것으로 알았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는 것. 또 학산실업 대표 정의승씨로부터 3억원을 받은 김철우전해군총장은 『퇴역한뒤 이 돈으로 「해양전략연구소」를 설립,국가발전에 조금이라고 기여할 생각이었다』고 변명했다는 후문. ○…검찰은 당초 학산대표 정씨로부터 5천만원을 받았으나 감사원 고발대상에서는 제외됐던 권령해국방장관의 동생령호씨에 대한 조사는 이번주초쯤 할 예정이었으나 축소 수사의혹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내부여론에따라 이날 소환·조사를 마무리. 학산대표 정씨와 녕호씨에 대한 조사 결과 정씨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식품판매업체 Y상사 곽모상무의 소개로 권씨를 만나 몇차례 식사를 같이 하면서 『사업자금이 쪼들린다』는 말을 듣고 5천만원이 입금된 가명계좌통장을 건네준 것으로 확인. 권씨는 이 돈을 사업자금등으로 사용했다가 지난 5월초 갚았으며 돈의 일부가 권장관에게 전해진 사실은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강조. 정씨는 권씨를 소개받을 당시에는 형이 국방부차관이라는 사실조차 몰랐으나 나중에 알고 권차관이 현직에서 물러나면 녕해씨를 자신의 회사에 고용할 생각을 했었다고 진술해 로비스트다운 면모를 과시. ○…검찰이 율곡비리와 관련된 재벌회사 회장과 부회장들을 조사하면서 보도진을 따돌린채 검찰의 안가등에서 비밀수사를 한 것으로 밝혀지자 검찰주변에서는 『문민시대에 걸맞지 않는 구태를 여전히 드러내고 지나치게 재벌을 비호하고 있다』고 한마다씩. 검찰은 수사착수 첫날인 12일 조중건대한항공부회장을 몰래 조사한데 이어 13일에는 정몽구현대정공회장을 전격소환했으며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은 15일과 이튿날 두차례나 삼청동 안가로 비밀리에 불러 조사한 것으로 확인돼 오리발수사행태를 재현.
  • 동족이몽(통화통합3년­그 뒤의 독일:중)

    ◎동·서의 벽 엄존… 사고 행동 판이/사회복지비 부담 늘어 못마땅/서독출신/“입지 없는 2등국민” 피해의식/동독출신 현재 독일이 안고있는 문제는 크게 ▲끝없이 소요되는 통일비용의 조달 ▲외국난민의 유입 억제 ▲국민들의 근로의욕저하 등을 들 수 있다.앞의 두가지가 당장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가시적 문제라면 세번째 것은 눈에 잘 띄진 않지만 독일사회를 내부로부터 좀먹는 보다 근원적 문제라 할 수 있다. 콜총리를 비롯한 정부지도자들은 동독지역 경제재건에 쓰일 자금조달을 위해 모든 주·국민들이 애국심을 발휘,고통을 분담할 것을 호소하고 있지만 자기중심적 사고에 젖어있는 독일(특히 서독)국민들로부터 별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서독인들은 통일로 갑자기 늘어난 부담에 신경질을 내고 있으며 동독인들은 통일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불만을 숨기려 들지 않는다. 경제통합후 3년이 지났지만 독일은 아직까지 진정한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통일에도 불구,동서독간 생활습관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서독인과 동독인이란 출신이 이들로 하여금 하나의 「독일인」으로 융합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실업수당 등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에나 의존하려는 동독인을 위해 자신들이 희생을 강요받는다는 생각으로 서독인들은 못마땅해 하고 있다.동독인들은 자신들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독인보다 한단계 낮은 2등국민으로 살아야 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이처럼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는 속에서 동독경제재건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이 제대로 염출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연방정부의 부채(재정적자)는 계속 늘어나지만 이를 통한 통일비용조달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통일비용이 제때에 조달되지 못하면 경제는 또 타격을 받게 되고 이는 다시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될 소지를 안고있다. 콜총리는 최근 한 TV인터뷰에서 『통일이 빠른 시일내에 완결되지 못하면 독일도 중부유럽이나 구유고에서와 같이 민족주의 쇼비니즘,외국인 배척감정 등에 따른 쓴 경험을 맛볼 것』이라고 경고했다.그가 말한 「통일의 완결」이란 독일사회가 동서독출신의 두개로 갈라져 각기 겉돌지 않고 하나로 융합하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콜총리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독일사회는 지금 외국인에 대한 그칠줄 모르는 극우테러사건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 독일인들은 테러를 저지르는 「소수」보다는 외국인배척을 반대하는 훨씬 더 많은 「다수」가 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한다.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독일사회상황이 경제난 가중,외국난민 유입문제 해결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의 비능률적 대처,이에 따른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확산 등 극우주의가 발호하기에 더없이 좋은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는데 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독일의 전세대는 이제 무대 뒤편으로 물러났다.그 뒤를 이어 새 주역이 된 독일의 새세대는 그들의 전세대가 갖고 있던 왕성한 근로의욕을 물려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이들은 전세대가 이룩한 경제기적 속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성장한 탓에 처음으로 맞이한 경제난을 앞에 놓고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 부전전투 영웅 이병형씨(예비역 육군중장 전쟁기념사업회장)는 말한다

    ◎“6·25 끝난줄 아는 착각 안타깝다”/안이한 안보관으론 나라지탱 못해/우방지도층 자제의 한국전 희생 본받아야 전선에서 산화한 전우와 두고온 산하를 못잊는 노병 이병형씨(67·예비역 육군중장·전쟁기념사업회장)에게는 아직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사에 길이 남을 전과를 세운 전쟁영웅이기도 한 이씨는 『지금 모든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지난76년 2군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한 이씨는 30년 가까이 군에 있으면서 참군인의 면모를 과시,칭송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다.그의 군인 됨됨이를 높이 산 노태우전대통령도 88년 취임초 그에게 전쟁기념사업회 일을 맡겼으며 장태완전수경사령관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군인의 한 사람으로 그를 꼽았을 정도. ­다른 사람들 하고는 달리 6·25를 맞는 소감이 각별하다고 봅니다만.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합니다.6·25 발발소식을 듣고는 마치 댐밑에 서 있다 댐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전쟁에는 뚜렷한 승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승패없는 전쟁에서는 전쟁을 치른 대가를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6·25전쟁의 승패가 나지 않았다고 보시는 겁니까. ▲전혀 결정이 안났다고 봅니다.이질적인 집단간의 투쟁에서 아직 가부간의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다.김일성이 엄연히 존재하지 않습니까. ­6·25는 어디서 맞았으며 그때 얘기를 좀 들려주시죠. ▲당시 수도사단 18연대 인사참모로 대위였습니다.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원산탈환후 북진할 때는 18연대 1대대장으로 참가 했습니다.전쟁얘기를 다 할수는 없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몇 개 있지요.50년 12월초로 기억되는데 두만강을 90리 정도 앞둔 함북 부령까지 북진해 갔을때 갑자기 연대에서 대대장회의를 소집하더니 철수한다고 하더라고요.중공군 때문이었지만 그날 새벽 이미 2대대 6중대는 선발대로 두만강 쪽으로 출동한 상황이었지요 6중대에는 통신이 안닿아 할 수 없이 남아있는 병력만 철수했습니다.6중대를 먼저 보낸 것은 적의 급속한 진격을 막기 위한 일종의 작전이었지요.당시 6중대장인 이원개소령은 그 사실을 몰랐고…. 고향이 부령인 이소령은 얼마전에 소령으로 진급했음에도 부령전투에 참가하겠다고 고집,중대장으로 남아 있었습니다.나중에 들은 소문에 따르면 6중대 1백60명은 고립돼 유격전을 펼쳤다고 합니다만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고귀한 희생들로 인해 이 나라를 이만큼 지킬 수 있었던 겁니다. 함남 북청출신으로 실향민인 이씨는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작전시 동부전선에서 안강→청송→평창을 거쳐 서림(양양군)지역의 38도선을 돌파한 후 북진의 선봉대열에 서서 간성→양구→화천→신고산을 경유,원산까지 진격한다.원산탈환후 18연대 1대대장이 된 이씨는 대대를 이끌고 함흥을 공격,점령하고 50년10월 하순에는 함흥 북방 신흥지역의 백암산에서 부전호를 따라 남하하는 중공군 5명을 최초로 생포한다.곧이어 1개 중대의 중공군을 기습,매복으로 전멸시켰다. ­최근 탈냉전분위기등 주변상황변화로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많이 해이해진 것 같습니다.국민들이 안보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6·25는 종전된 것이 아닙니다.휴전상태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모두들 전쟁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남북이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협상등이 있고 보니 그렇게들 보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안보관을 개혁하지 못하고서는 나라를 지탱할 수 없습니다.특히 권력층·지도층·부유층에 문제가 있습니다.나서야 할 사람들은 항상 뒤로 빠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이익의 방패로 썼기 때문에 망국의 설움과 6·25를 겪었던 것입니다.군대가는 문제만 해도 지금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권력층·지식층·부유층자제들이 나라를 지키는 데 소극적입니다. 이게 고쳐지지 않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습니다.외국의 지도급 자제들이 6·25에 참전,많이 전사했다는 점을 거울삼아야 합니다.우리의 안보의식을 혁신해야 할 것 입니다. ­6·25때 생명을 내던져 쌓은 군의 신뢰가 최근 많이 실추된 듯 합니다. 군원로로서의 견해는. ▲군은 특별한 조직이 아닙니다.군도 국민의 일부입니다.국민이 합쳐서 군을 이루는 것입니다.국민들 이익에 반대되는 일이 있어선 안될 겁니다.군과 민이 별도라는 개념은 바람직하지 않아요.최근 군내에 「하나회」등 사조직이 문제가 됐다고 들었습니다.군내에선 사조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물론 일부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국민들도 전체 군과 관련지어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는 요즘 전쟁기념관건립에 몰두해 있다.6·25를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을 똑바로 알려주고 애국심을 고취하는데 헌신함으로써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한 노병의 한을 달래고 있다.
  • “노사 다함께 고통 분담을”

    김영삼대통령은 19일 『새정부의 최우선과제가 경제회생에 있는만큼 앞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이경식부총리로부터 경제동향에 관한 정례보고를 받겠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과천정부종합청사 경제기획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제장관회의에 참석,이같이 밝히고 『각 경제부처는 이기주의에 빠져 협의도 하지않은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지 말고 이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회생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촉구했다. 김대통령은 『대기업의 노사분규로 많은 협력업체가 도산위기에 빠지는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제하고 『고통을 분담하는 일에 근로자와 사용자가 따로 있을수 없으며,대통령으로서 누가 더 애국심을 발휘하는지를 지켜보겠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물가안정이 중요하며 특히 서비스요금과 농산물가격이 물가안정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지적,『각 부처 장관은 이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대처해 나가라』고 지시했다. 경제장관회의가 끝난뒤 김대통령은 과천청사내 구내식당에서 8개부처 5급이하직원 6백40명과 오찬을 함께 했다. 이자리에서 김대통령은 『올해 공무원의 임금을 동결한데 대해 가슴아프게 생각한다』며 『내년에는 반드시 대폭적인 처우개선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김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며 『청와대도 예산을 10%절감하는등 앞장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그리고 경제회생에 대한 신념』이라며 『나는 우리의 우수한 공무원들이 나라를 지키는 기둥임을 굳게 믿고 있다』고 역설했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윤세주열사)

    ◎의용군 지휘… 중국 화북서 일군과 전투/중학때 연무단 조직,개천절시위 주도/일경수배 피해 망명… 조선의열단 결성/독립단체 규합… 40만명과 교전중 장렬한 최후 윤세주선생은 1901년 6월24일 경남 밀양군 부북면 강천리에서 부친 윤희규선생과 모친 김경이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성품은 겸손했으나 일본 식민지통치에 대해서는 온 생애를 통해서 저항할만큼 애국심이 깊었다. 윤선생은 국민학교때 일왕 출생 기념일에 받은 일장기를 변소에 버릴만큼 일본을 증오했다. ○독립선언서 낭독 그는 밀양의 사립 동화중학에 입학하면서 항일 인사였던 김홍표교장의 영향을 받아 항일 정신을 키워갔다. 윤선생은 김교장의 애국사상에 감화,학교내의 비밀결사인 연무단을 조직했다.연무단은 당시 금지됐던 개천절 기념행사를 갖고 시위를 벌였다.이 사건으로 동화중학은 폐쇄됐다.그러나 윤선생의 가슴에 반일·배일사상은 영원히 남게됐다. 1919년 3월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한 그는 만세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 동지들을 규합했다.13일 하오1시쯤 수천명이 모인 고향장터에서 그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동지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그를 그냥 둘리 없는 일제의 당장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일본경찰의 수배를 피해 그는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일본은 그해 4월14일 부산지법 밀양지청에서 궐석재판으로 윤선생에게 징역1년6월을 선고했다. 만주로 망명한 그는 요령성 유하현에있는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갔다. 신흥무관학교는 당시 국내의 독립운동 비밀단체인 신민회의 결의에따라 이회영형제가 세운 독립군양성 무관학교로 그는 이곳에서 정식으로 군사훈련을 받았다.그는 11월9일 죽마고우 김원봉등 13명의 학생들과 함께 조선의열단을 결성했다. 구체적인 항일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의열단은 조선총독부등 일제 침략기관의 파괴와 원흉들을 살해 하기위한 계획을 세우고 폭탄투척자를 물색하게됐다. 19세의 그는 신철휴 윤치형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했다. 그러나 윤선생일행은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국내동지 50여명과 함께 체포됐다. 5년4개월의 감옥생활을하고 27년 출옥한 그는 중외일보 기자·경남주식회사사장으로 위장,독립운동에서 손을 뗀 양 조용히 지내다가 32년 여름 다시 중국 남경으로 망명했다. ○폭탄투척자 물색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방법도 세련되어갔다.그는 『과거에는 열정과 용기만을 갖고 싸웠으나 앞으로는 혁명적 인생관과 과학적 혁명이론으로 재무장, 정확한 혁명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그는 32년 10월20일 중국군사위원회 간부훈련단 제6대(약칭 조선민족혁명간부학교)에 입교,33년 4월21일 1기로 졸업했다.독립운동전선의 행동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다. 독립운동단체들은 연합준비위원회를 구성한뒤 해외독립운동단체들을 참가시켜 그해 11월10일 한국대일전선통일연맹을 결성했다. 그는 이 단체에서 안병조·김두봉·김규식·윤기섭·최동오 등과 함께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됐다. 이 단체는 33년 7월5일 독립운동가들이 소망하던 민족혁명단을 탄생시키는 모체가 됐으며 그는 이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그는 또 민족혁명당이 일군에 무력으로 대항하기위해 만든 중국과 제휴해 만든 조선의용대에서도 핵심부서인 편찬위원회 주간이 돼 선전공작 활동을 벌였다.그러나 독립운동의 효과는 호전되지 않고 일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어갔다.독립운동을 적극 협력해주던 중국 국민당 정부도 38년 10월25일 무한이 일본군에 함락되면서부터는 중공군과의 내전에만 심혈을 쏟았다. 그는 직접 조선의용대 지대를 이끌고 중일전투에 참가했다.41년 4월에 그는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황하를 건너 화북을 향해 북상해갔다.그는 마침내 태행산 항일 근거지에 도착, 조선의용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칭하고 중공 8로군과 함께 항일 무장활동에 열중했다.그는 모든 대원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지휘자로 존경을 받았다.42년2월 일본군은 4만명의 군대를 동원,태행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5월에는 20개사단 40만명의 병력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해왔다.조선의용군은 불과 3천∼4천명에 불과했다. ○“끝까지 투쟁” 유언 일본군은 전투기와 전차까지 동원,본격적인 군사작전을 폈다.5월29일 항일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조선의용대에 탈출로를 확보하고 탈출할 것을 명령했다.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양쪽 산봉우리 사이의 탈출로를 확보하기위해 두 산봉우리를 조선의용군이 공격,전군이 탈출할 때까지 사수하기로 했다.작전개시 5시간만에 탈출로를 확보했다. 그는 이 전투에서 적탄을 맞고 쓰러졌다.3일 뒤 동지들이 중상을 입고 쓰러진 그를 발견했으나 이미 중태였다.6월3일 그는 석굴에서 숨을 거두었다.『단결해서 적을 사살하기 바란다』는게 동지들에게 남긴 그의 유언이었다.선생의 나이 41세였다. 선생이 전사한 뒤 1주년이된 43년 6월 중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군은 합동으로 윤선생의 추도회를 가졌다.대한민국정부는 80년 윤세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강군과 정병(외언내언)

    월남전의 후유증으로 미국군대의 장래가 무척 어두워졌을 때,군인의 수급을 시장경제원칙에 맡기자고 맨 먼저 제안한 사람중의 하나가 노벨상 수상자 밀튼 프리드먼이었다.다름아닌 지원병제였다.그 논거는 이러하다. 어느 사회에나 전사들이 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그런 사람들이 적지않음은 힘든 훈련과 위험한 작전임무로 이름난 해병대가 어느사회에서나 인기가 높다는 사실이 잘 말해준다.다른 편에는 군대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군인이 되어야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들에겐 평생 종사할 수 있는 직업을 마련해준다.반대로 군복을 걸치는 순간부터 비참해질 사람들이 자신들의 적성에 맞는 직업들에 종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우리사회의 복지증진정책에도 맞는 일이다.대충 이런 내용이다.요컨대 강군과 정병의 요체는 장병 개인개인의 정신이요 적성이며 정서라는 지적에 다름아닌 것이다. 일반사회의 개인 또는 특정 단체들은 궁극적으로는 물질적 가치를 생활영위의 기준으로 삼는다.반면 군은 정의감 애국심등 정신적 가치를행위의 기준으로 삼는 집단이다.군의 도덕적 우월성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말도 된다.유명한 「전쟁론」의 크라우제비츠도 『군대의 무덕은 단순한 용감성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고 썼다.그는 군전력에 관한한 제일 먼저 결정적 순간에 있어서의 수적우월을 강조했지만 보다 중요한것은 「군대의 기질」이 아니라 「군인의 정신」이라고 단언한 것이다. 군은 명예와 사기를 먹고 산다.『명예는 상관에게,공은 부하에게,책임은 자신에게』라는 격언과 교훈은 어느 나라,어느 군대에게도 전승되고 있다.바다를 지키는 해군의 참모총장이나 그토록 인기있는 해병대의 사령관을 지낸 사람들의 불정직,타락,비굴,왜소성을 전해들으며 다시금 군의 명예와 사기를 생각해본다.
  • 6·25참전 퇴역군인 노력동원(북한 이모저모)

    ◎「4월의 봄 예술축전」 곧 개막 ○노동자 160차례 방문 격려 ○…북한은 최근 새세대의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충성심제고 및애국심 고양과 노동의욕 고취를 위해 6·25참전 퇴역군인들을 으로 경제건설 현장에 집중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방송은 1일 『혁명 2세대들인 전쟁참가자 노병들이 혁명3,4세대들에게 당과 수령,조국과 인민을 위해 어떻게 살며 일해야 하는가 하는 뜨거운 마음을 심어주고 있으며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사회주의 대건설장에 대한 노력지원사업을 성심성의껏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6·25참전 퇴역군인들의 이같은 노력지원사업은 북한이 지난해부터 표방하고 있는 는 차원에서 추진되고있는데 최근 몇달 동안에만도 이들은 평양에 건설중인 과 조각군상 건립공사현장을 1백60여차례 찾아가 노력지원과 건설자들의 사기진작에 힘쓰고 있다고이 방송은 전했다. ○연구토론회 잇달아 개최 ○…북한은 지난달 31일 김정일이 「근로자」지 3월호에 기고한 「담화」를 주제로 한 연구토론회와 김정일이 지난 73년에 발표했다는 「영화예술론」에 대한 연구토론회를 잇달아 개최,김정일의 지도자적 이미지와 「업적」을 부각 선전했다. 북한은 이날 부주석 박성철,당비서 윤기복 등이 참석한 가운데 김정일의 「담화」(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할 수 없다)를 주제로 한 중앙연구토론회를 개최,김정일의 이 「노작」이 「원수들의 반사회주의적 책동을 짓부수고 사회주의위업을 옹호·고수하고 완성하는 참된 길을 밝힌 강령적 문헌」이라면서 김정일이 새로운 「사회주의 투쟁」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데 대해 찬양한 것으로 중앙방송이 31일 보도했다. ○음악·무용·기악 등 다채 ○…북한이 김일성의 생일을 기념,연례적으로 개최하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제11회)이 곧 평양에서 개막된다고 중앙방송이 보도했다. 이번 행사에는 세계적인 유명 예술인들이 참가,음악무용부문과 교예(서커스)부문으로 나뉘어 음악·무용·기악·교예 등 다채로운 종목에 걸친 경연을 벌이게 된다고 이방송은 전했다.
  • 조림의 필요성/박태식 서울대 명예교수 산림경영학(굄돌)

    금년도 48회의 식목일을 맞으면서 올해의 국내 조림예정면적을 살펴보니 3만여 정보에 약 8천만주의 나무를 심는 것으로 돼 있다.이 수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매년 심던 조림면적으로 볼때 적은 수치이다.우리나라에서 나무를 많이 심던 1970년대에는 매년 10만정보가 넘는 면적에 3억주 이상의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그리하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나무를 많이 심는 나라로 꼽혔다.과거의 나무 심는 일은 산주가 이익을 내려고 한것이 아니라 헐벗은 산림을 녹화하여 국토를 보전하려는 정부와 국민의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꾸준히 노력한 결과 1960년대 정보당 평균 축적이 10㎥정도이던 것이 이제 40㎥정도로 증가되어 한일합방이 되었던 1910년대의 축적을 유지케 되었다. 세계 선진임업국의 평균 축적(독일 2백96㎥,일본 1백13㎥)에 비하면 보잘것 없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국토는 녹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과거에는 나무의 질은 생각지 않고 구하기 쉽고 잘 사는 나무위주로 심었던 관계로 용도에 적합하지 않은 나무가 많았다.그러므로 앞으로할 일은 어느정도 자란 나무를 질이 좋은 나무로 바꾸어 심는 일과 이미 심은 어린 나무를 솎아 주어서 잘 키우는 일이다.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에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국민이 협력해서 나무를 심었으나 이제와서는 그러한 애국심이나 애향심에 호소하여 나무를 심고 산을 가꾸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이제 조림은 이익을 전제로 한 경제원칙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978년부터 목재 수입을 자유화하고 국내 목재생산을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간 목재수요의 90%가 수입되고 있어 국산 임목값은 10년전이나 다름이 없다.10여년전에는 산에서 나무를 1㎥ 매각하면 인부를 7∼8명 쓸수 있었으나 현재는 인부 한명을 쓰기 어렵게 되었다.농산물 수입을 1997년까지 완전 자유화할때 초래될 결과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고 있으나 임업은 이미 10여년전에 자유화된 목재수입으로 현재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그래서인지 국내조림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므로 올해부터 해외조림을 시작하는 기업이 많이 나오고 있다.자본은 이익이 있는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지만 나무심는 일의 이익은 물질적 이익만이 아니고 수원함양,자연보존,환경보호등의 공공적 이익이 있으므로 공공적 이익에 해당하는 일부를 기업에 보조하여 국내 조림의 진작을 도모하는 것이 요망된다.
  • 불필요한 법령 정비/김 대통령

    김영삼대통령은 2일 『정부는 과거 비상국무회의에서와 같이 비정상적인 조치로 만들어졌거나 국민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는 법령은 문민시대에 걸맞게 과감히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날상오 청와대에서 황길수법제처장으로부터 금년도 업무보고를 받은 뒤 『새정부의 개혁정책이 국정전반에 튼튼히 뿌리내릴수 있도록 제도적기틀마련에 진력해주기 바란다』고 말하고 입법예고제도를 더욱 활성화할 것을 지시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이병대보훈처장으로부터 업무계획을 보고받고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고 신한국을 창조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식 개혁』이라고 전제,『호국충정의 정신이 국민공동체 의식의 바탕이 되도록 민족정기와 애국심을 고취하는데 주력하라』고 지시했다.
  • 도심 농협직판장/“고추·버섯 등 향토의 맛 팝니다”

    ◎지역특산물·육류·야채 등 염가 판매/천궁·구기자 등 약재·건강식품 인기 수입농산물의 범람속에서도 우리농산물을 애용하는 분위기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몇년전부터 농협이 중심이 되어 도심곳곳에서 여는 주말장터 특산물전 슈퍼마켓 등은 우리 농산물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룬다. 이같은 호응에 힘입어 최근에는 우리 농산물 상설매장이 하나 더 늘었다.지난 3월중순 서울 신림동에 새로 문을 연 「내고향 농·특산물전문백화점」이 그것.우루과이라운드협상의 농산물수입개방에 대비해 생산농민과 도시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이 농·특산물전문백화점은 전국 1백70개 지역농협에서 올라온 각종 농산물을 비롯해 지역특산물,정육등 우리땅에서 나는 먹거리 6백여종을 갖추고 있다.이 백화점에 드나드는 하루 인구는 6천∼7천명,매출액은 7천여만원에 이른다. 이같은 성황의 원인으로 운영을 맡고있는 농협관계자들은 먼저 저렴한 가격에 우수농산물을 구할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용산과 신림동 등의 상설매장을 비롯한전국 대도시의 농협직판점은 대부분 산지 농민들과의 직거래로 일반 시중보다 싼 시세를 유지하고 있다.내고향 농·특산물전문백화점의 노우영상무는 『백화점의 이익보다는 생산농민과 소비자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손익분기점만 맞춘다는 차원에서 수송비 매장운영비 등 최소한의 수수료만 물건값에 덧붙여 팔고있다』고 말한다. 또한 농협의 이미지를 걸고 다양하고 싱싱한 우수농산물의 공급을 확대,소비자들에게 농협 농산물은 믿고 살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우수농산물 출하를 위해 철저한 상품관리지도와 포장기술의 개선,가공식품화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각종 서비스도 확충하고 있다.실례로 용산과 신림동 상설매장의 경우 고객을 위해 고향정취를 돋우고 일반슈퍼매장과 에스컬레이터를 설치,고객들의 원스톱쇼핑을 가능하게 하고있다. 이같은 농협직판장들은 소비자들이 농·특산물을 접할 기회를 늘림으로써 우리의 식단을 다양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다.우리농산물 판매장에서는 계절마다 성수기를 맞는 각종 채소및 과일뿐만 아니라각 지역특산물을 수시로 구입할수 있다.각 지역의 맛과 풍미를 자랑하는 농·특산물을 보면 ▲경기도의 경우 연천의 참깨와 율무,화도의 무말랭이,용인 파주 영종도의 쌀 ▲강원도의 경우 인제의 녹말가루,홍천의 대추,오대산의 메밀가루 ▲충청도의 경우 당진과 진천의 쌀,청양의 표고버섯과 구기자,박달재의 고춧가루,금천의 각종 국수,상촌의 호도,태안의 참기름 ▲경상도의 경우 영양의 고춧가루,상주의 참기름,산청의 곶감 ▲전라도의 경우 순창의 고추장,나주의 찹쌀 현미 녹두,산내의 토종꿀 ▲제주도의 경우 함덕의 키위 등이다.신림동 농·특산물백화점에서 팔리는 주요 농·특산물의 시세를 알아보면 ▲파주의 일반미가 20㎏에 3만5백원 ▲순창의 고추장이 1㎏에 9천9백원 ▲금천의 쑥·감자·칡·메밀국수 등이 1천9백∼2천8백원 ▲태안의 참기름이 3백20g에 8천5백원이다. 건강식품에 대한 수요도 많은데 비만과 고혈압에 좋은 한약재인 울릉도 천궁이 6백g에 8천8백원,감기와 천식 예방에 효능이 있는 제주도의 귤·더덕·도라지진피가 1봉에 4천5백원,피부에 좋은 청양의 구기자가 3백g에 8천5백원 등이다. 이같은 농·특산물들은 우선 각종 오염으로 물든 수입농산물의 범람속에서도 안심하고 사먹을수 있다는게 큰 장점.최근 국내에 거래되는 농산물의 80%는 수입농산물로 산지표시가 돼있지 않아 일반소비자들이 모르고 사먹고 있는 실정이다.농업중앙협의회 박준식이사는 『수입농산물이 현재는 가격이 싸지만 농산물의 수입개방으로 우리 농업이 몰락하면 비싸게 수입될수밖에 없을것』이라며 무분별한 수입농산물 소비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이같은 수입농산물의 위세 앞에 「우리것을 지키자」고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우리것이 좋다」고 말로만 외치는 것에 머무를수 없는게 우리 농산물이 처한 급박한 현실이다.한 농협관계자는 우선은 현재 20%선인 농협을 통한 직거래비율을 높이기 위해 산지와의 자매결연을 추진하고 주말장터를 확산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 민족분쟁 해결사/코사크족,옐친에 충성맹세

    ◎맹목적 애국심 유명… 독립운동 진압 선봉/영화 「대장 부리바」서 용맹 과시한 유목민 러시안의 코사크족이 보수파의 공격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려있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코사크족은 옐친대통령이 원할때를 대비하여 그를 도울 군대조직을 뒷받침하는 「코사크 임시 행정부」까지 설치했다. 이같은 코사크족의 중앙정부에 대한 충성다짐은 옐친대통령이 최근들어 이들에게 토지소유권을 되돌려주고 자치권 확대를 허용해준 것에 대한 보답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 「대장 부리바」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용맹스런 코사크족은 독립국가연합(CIS)내 각종 민족분규를 진압하는 선봉대로 나서는가 하면 때로는 분쟁의 「해결사」로서 활약하고 있어 다른 종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코사크족은 루마니아와의 합병에 반대하는 몰도바내 소수 러시아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몰도바에도 파견돼 몰도바의 독립운동을 진압하고 있다.이들은 또 지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러시아­그루지야 전투에도 참여,그루지야 북부를 장악하는등 그루지야내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의 투쟁을 돕고 있다. 최근 사할린정부는 쿠릴열도 반환을 요구하는 일본세력에 대한 대항세력으로 코사크족을 불러들였다.쿠릴열도를 개발하는데 일본의 자금이 필수적이라고 느끼면서도 그곳의 많은 관리들은 일본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사크가 방랑자·모험자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처럼 유목생활을 했던 이들은 카자흐를 중심으로 구소련령을 통틀어 6백50만명을 헤아린다.이들은 기마술이 뛰어나고 호전적인 전통을 갖고 있어 소수종족집단 뿐아니라 CIS인구의 반이상을 차지하는 러시아인들조차 이들의 부활을 두려워하고 있다. 코사크족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이후 소련초기에 심한 탄압을 받았으나 지난 90년 코사크 민족운동이 다시 일어나 현재 1백만명이 넘는 청년들이 군대에 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오늘날의 코사크족의 움직임은 많은 CIS국민들로 하여금 60여년에 걸친 치열한 민족분규였던 카프카스 전쟁의 망령을 되살리게 하고 있다.중앙정부에 대한 코사크의 맹목적인 애국심이 과거 그들이 차르왕실에 바쳤던 충성심과 너무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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