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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열사 열전:4/金相眞 서울농대생(정직한 역사 되찾기)

    ◎할복 자결… 反 유신의 魂으로 부활/학생운동사 목숨 던진 첫 인물/꺼져가던 투쟁의 불씨 되살려/암울한 시대 희망의 새싹 틔워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들으라! 우리는 유신헌법의 잔인한 폭력성을,합법을 가장한 모든 부조리와 악을 고발한다…” 75년 4월11일 상오 11시. 서울대농대 4학년 金相眞은 수원에 있는 농대 캠퍼스에서 그렇게 ‘양심선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격정의 순간이었지만 오히려 차분했다. 그러나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는 비장함에 묻혀 이내 사그라졌다. 선언문 낭독이 거의 끝나갈 즈음. “이 보잘것 없는 생명,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는 말이 나오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순간 그는 품속에서 과도를 빼 치켜들었다. 그리고 하복부를 깊게 찔러 위로 그어올렸다. 그는 친구들에게 들려 택시까지 가며 “애국가를 불러달라”고 했다. 수원도립병원에서 1·2차 수술을 받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중이던 12일 상오 8시55분 그는 앰뷸런스 안에서 눈을 감았다. ○죽어가며 “애국가 불러주오”金相眞 열사는 민주화투쟁 학생운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던진 최초의 인물이다. 주변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는 죽음을 위한 치밀한 준비를 했고,그 파장까지도 충분히 예측했던 것 같다. 75년 2월 朴正熙 정권은 유신체제에 대한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에서의 승리를 내세워 강경으로 선회했다. 정부가 약속했던 구속학생과 교수들의 복학·복직을 불허하고 극심한 언론탄압을 일삼는 등 유신체제가 오히려 폭악화되자 그는 어떤 돌파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미온적인 동료·후배들의 자세도 그를 피할 수 없는 ‘결단’으로 밀어댔다. 그는 ‘양심선언문’과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장’을 꼼꼼히 작성했다. 그리고 4월9일 ‘인혁당 재건 사건’으로 8명이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사형당했다는 소식에 치를 떨며 과도를 구입했다. 인혁당사건은 10년 뒤인 95년 모방송사가 법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우리 사법사상 ‘가장 치욕스런 판결’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김상진기념사업회 安鍾健 회장(50·방송대 교수)은 “相眞이는 복학후 되도록 시위에서 빠지려고 했다. 그러나 74년말부터 급격히 암울해지는 시대상황에 매우 당혹스러워했고,무언가 돌파구를 찾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회고했다. 安회장은 金相眞 열사와 고등학교 및 대학 같은 과 동기다. 그는 또 “相眞이가 할복 전날 밤 자신을 찾아와 칼을 보여주며 가족과 애인 걱정을 했다”고 전한다. “相眞형은 항상 ‘이래선 안되는데’라고 중얼거렸어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때다’‘내가 해야할 것 같다’고 결의를 나타내기도 했구요”후배 鄭鉉敦씨(축산·74학번)의 회고다. ○시위 확산에 긴급조치 9호 선포 朴正熙 정권은 金相眞의 죽음이 반유신의 상징으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숨을 거둔 지 15시간만에 장례식도 없이 화장하게 했으며,서울대 농대를 사실상 폐쇄했다. 각 대학에도 휴교·휴강 조치를 내려 4월 중순까지 25개 대학이 전면 휴강에 들어갔으며,시위 주동자의 대량 연행과 구속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는 5월13일 체제에 관한 어떤형태의 반대의견이나 행동도 금지하는 긴급조치 9호를 선포했다. 그러나 서울대생 1,000여명은 5월 22일 관악 캠퍼스에서 기어이 ‘金相眞 열사 장례식’을 거행하고 긴급조치 철폐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5·22사건’이다. 朴炯圭 목사는 95년 金相眞 20주기 행사때 “모든 사람들이 좌절할 때 꺼져가는 민주화운동의 불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댕긴 이가 金相眞 열사”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튼 민주화와 정의의 물길을 우리가 제대로 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반문했다. 당시 5·22사건으로 수배됐던 金槿泰 의원(국민회의)은 “金相眞형과 그 사건은 아직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진정한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제의 폭압아래 똑같은 나이(27살)에 옥사한 尹東柱의 ‘서시’는 그의 이상이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金相眞 열사는 尹東柱의 ‘서시’처럼 한점 부끄럼 없이 살려고 노력했다. 그는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간직한 채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민주화투쟁은 오늘의 민주주의로 승화됐고 밝은 미래의 희망으로 존재할 것이다. ◎어머니 朴載娟 여사의 통곡/“정부에 의한 명예회복 평생소원” “에미로서 자식 마음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고 혼자 고통을 겪다 가게 했어요…” 金相眞 열사의 어머니 朴載娟 여사(80)가 아직도 못내 아쉬워하는 점이다. ‘군대까지 다녀와서 데모에 끼겠느냐’며 항상 어머니를 안심시키던 아들. 그가 죽자 슬픔과 원망이 뼈에 사무쳤지만 朴여사는 차차 목숨을 던져야 했던 아들의 장한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相眞이는 유난히 정이 많고 심지가 깊었어요. 친구를 무던히도 좋아했지요. 친구들을 몰고와 내가 음식상을 내오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어요” 어머니는 95년 20주기 행사때 손수 음식을 장만해 벽제 묘소로 가져가 100여명의 아들선·후배 동료들을 먹였다. 朴여사는 아들이 죽자 병원에서 “제발 화장하지 말고 묘를 쓰게 해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포항에 있던 맏아들을 불러올려 억지로 설득해 화장을 강행했다고. 그녀는 “화장터로 쫓아가 ‘우리가 뿌릴 터이니 유골단지를 달라’고 해 중앙청 옆 법륜사에 감췄다”고 했다. 그로부터 1년후에 金相眞 열사는 벽제공원묘지에 묻힐 수 있었다. 朴여사는 현재 서울 갈현동 자그마한 한옥에 혼자 산다. 신경통과 위경련을 앓고 있지만 심하지는 않은 듯했다. 고려컨테이너 부사장인 맏아들 상운씨와 대한투신 원주지점장으로 있는 둘째아들 상근씨 등 8남매가 모두 건실하게 살고 있어 흐뭇하다고 했다. 그녀는 “아들이 공식적으로 정부에 의해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을 죽기 전에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후배 鄭赫基씨의 맺힌 恨/“긴 겨울 몰아낸 ‘민주햇살’ 빛 봐야” 김상진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鄭赫基씨(42·산야농산 대표)는 “相眞이 형이 죽은 이후 학생들은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재야나 지식인들이 자기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金相眞 할복사건이 유신독재정권이 내리막길을 걷는 시대적 분기점이 됐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朴正熙 정권의 폭압이 절정에 달해 정권 말기적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죠. 공권력으로는 도저히 국민의 항거를 막기 힘들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건 당시 축산과 새내기였던 그는 金相眞 열사가 할복하는 순간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뒤에 있던 선배들은 그가 칼을 빼드는 순간 그 뜻을 얼른 알아차리고 덮쳤지요. 그러나 정작 저는 ‘단순히 각오를 다지기 위해 빼들었겠지’했어요. 그런데 막상 할복하고 쓰러지자 정신이 멍하고 아찔했습니다” 그는 “그후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鄭씨는 지난 95년 기념사업회가 출간한 金相眞 열사 평전 “긴겨울 얼음뚫고’의 정리작업을 맡았었다. 3년이나 걸린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는 “죄책감에 대한 빚갚음의 의미도 있지만 相眞이 형의 진실이 진정한 역사로 기록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화가 후퇴하고 권력이 부패하면 언제라도 제2,제3의 金相眞이 나올수 있다”는 鄭씨. 그는 “全·盧 시대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며 “지금의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이 항상 경계해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金相眞 열사 연보 ▲1949년 金東壽·朴載娟씨의 3남6녀중 여섯째로 서울에서 출생 ▲1962년 혜화국민학교 졸업 ▲1965년 보성중학교 졸업 ▲1968년 보성고등학교 졸업,서울대농대 축산학과 입학 ▲1971년 군입대.경기 포천의 공병대에서 근무 ▲1974년 2학기 복학 ▲1975년 4월11일 서울대 수원농대 교정에서 유신정권의 허위성을 고발하는 ‘양심선언문’낭독하고 할복 자결 ▲1975년 4월12일 상오 8시55분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도중 사망
  • 白雪 무궁화/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사학자이던 호암(湖岩) 文一平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무궁화의생리를 ‘조개모락(朝開暮落)’으로 표현하고 여름부터 가을까지 지속적으로 피는 꽃의 끈기를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 군자의 이상’에 비유한 바 있다. 영문학자 李敭河는 ‘요사라든가 망집,오만을 찾아볼 수 없이 어디까지나 점잖고 겸허하고 너그러운 대인의 인내’는 ‘감탄 없이는 바라볼 수 없다’고 찬양해 마지않았다. 그러한 무궁화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우리 민족의 수난사 못지않은 우여곡절과 파란이 얼룩져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첫째가 일제때의 민족정신 말살정책이다. 그들은 한국인의 의지로 상징되는 무궁화를 뿌리째 뽑아 없앴고 국사도 배울 수 없게 하고 애국가도 부를 수 없게 했다. 그러나 황성신문을 발행하던 한서(翰西) 南宮檍이 배화여학교에 재직하면서 여학생들에게 조선지도에 무궁화를 수놓게 한 것이 전국적으로 퍼져 여염집에서도 무궁화 지도를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하나는 지난 56년의 ‘국화 논쟁’이다. 일부 지식층은 ‘실속없는 꽃’이라는 이유로 국화를 다른 꽃으로 바꾸자는 주장을 폈으나 이미 국가의 정신적 이미지로 정착된 만큼 ‘통일이 될 때까지 그대로 두자’는 의견으로 논쟁은 매듭지어졌다. 무궁화가 국화가 된 연도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과 1920년대 도산(島山) 안창호가 청산같은 웅변을 통해 조선을 ‘무궁화 동산’으로 부른 것이 국화가 된 동기로 해지고 있다. 그동안 무궁화는 좀더 아름답게 피어나기 위해서 수없이 개발되어왔으며 배달계로 분류된 백색만 해도 ‘옥선’‘한마음’‘한빛’‘일편단심’등 수십종에 이른다. 다만 이 무궁화들에는 백색에 붉은 단심(丹心)이 있는데 비해 광복절에 맞춰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선보인 무궁화에는 꽃 가운데 단심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꽃 전체가 눈부신 흰빛을 띠기 때문에 꽃이름도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백설’로 명명됐다. 긴 시험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을 보인 이 꽃은 어쩔 수 없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한국인의 기상에 걸맞는다는 느낌이다. 언제까지나 지지 않는 동방의 꽃으로 한라에서 백두까지 줄기차게 퍼져가기를 기대해본다.
  • 취임축가/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지난 93년,16년만에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킨 미국 클린턴 대통령 취임행사 첫날에는 백악관앞 광장과 링컨기념관에서 다이애나 로스,레이 찰스,퀸시 존슨 등 인기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있었다.다음날은 케네디센터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갈채’‘청소년을 위한 갈채’공연과 저녁엔 캐피털센터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국가인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를 열창했다.제42대 미국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날에는 메조소프라노 마릴린 혼이 역시 국가를 불렀고 웨이크 포레스트대학 교수인 흑인시인 마야 안젤라가 축시를 낭독했다.유명작곡가나 시인에게 따로 작사나 작곡을 의뢰하지 않고 ‘애국가’와 ‘축시’를 취임축가·축시로 쓰고 있다. 내일이면 우리도 50년만에 처음 이룬 여야 정권교체로 야당출신의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취임식을 갖게된다.나라 안팎이 IMF몸 살로 어수선한 형편이라 호화취임식은 엄두도 못내지만 어쨌든 다른때에 비해 그 절반 수준에서 검소하게 치러질 모양이다.그래선지 지금까지 유명작곡가에게 의뢰했던 취임축가 없이 KBS가주관한 ‘겨레의 노래’공모에서 당선한 ‘아,동방의 아침의 나라’가 취임축가를 대신하고 있다. ‘아,동방의 아침의 나라/햇빛이 찬란하다/반만년 역사속에 갈고 닦은 슬기로움/새시대 열리는 이땅위에/우리 모두 힘을 모아 나아가자’로 시작되는 전주는 아침햇살이 떠오를 때의 찬란한 느낌과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전진,힘과 용기를 주는 멜로디가 신선하다.한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69세의 김경희씨가 ‘새벽기도후 받은 영감’을 노랫말로 적었고 바로 그의 따님인 임준희씨가 작곡,소프라노 조수미가 서울시향의 반주에 맞춰 노래부른다.우리의 취임식은 국가적 난국을 극복하려는 장중하고 맑고 힘찬 분위기로 국민적 화합과 용기를 북돋우는 자리일 수밖에없다.지난번에는 최영섭 작곡의 ‘해뜨는 아침의 나라’가 취임축가로 창작됐으나 그날 하루 일회성으로 그치고 말았다.오늘의 축가는 ‘겨레의 노래’로 만들어진만큼 국민화합을 다짐하는 노래로 계속 불려져도 괜찮을 것같다.
  • 국채 콘서트/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후조처럼 이역을 떠돌던 작곡가 안익태는 바르셀로나에서 조국 하늘을 바라보면서 ‘코리아 환타지’‘강상의 논개’‘흰백합화’ 등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음악으로 만들었다. 그가 ‘애국가’를 작곡한 것은 1935년 부다페스트에서였으나 ‘애국가’를 처음 들은 것은 1950년 6·25 참상을 전하는 뉴욕의 텔레비전 뉴스에서다.그는 당시 그가 지휘하려던 뉴욕 필하모니의 레퍼토리를 ‘애국가’가 들어있는 ‘코리아 환타지’로 바꿔 넣었고 ‘애국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나는 하나님의 영감을 조국에 전했을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음악인들의 조국에 대한 사랑은 ‘나의 조국에 태양은 빛난다’의 쇼스타코비치나 쇼팽과 시벨리우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쇼팽은 러시아군이 조국 폴란드의 혁명운동을 탄압한다는 소식에 ‘혁명 에튀드’를 작곡했고 39세로 파리에서 사망할 때는 바르샤바의 흙을 유해에 뿌렸으며 그의 심장은 이송되어 바르샤바 성십자가교회에 안치되었다.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핀란디아’도 러시아 치하에 있던 핀란드가 1919년 독립할 때까지 핀란드 국민을 격려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음악은 통분과 우울,기쁨과 희망이 교차될 때마다 민중의 마음을 움직여 왔고 예술가들은 ‘조국’의 뿌리가 없이는 어떤 위대한 창작도 탄생될 수 없음을 증명해 왔다. 나라 전체가 경제위기로 움츠러든 마당에 음악인들의 ‘국채 판매 촉진’ 해외콘서트는 여간 반가운 노릇이 아니다.‘조국을 위하여(Salute to Korea)’란 타이틀을 내걸고 2월과 3월 서울을 비롯한 미국·일본 순연에서 정부가 발행한 1백억 규모의 국채 판촉에 앞장 선다는 것이다.국제적으로 명성을 굳힌 정명훈을 필두로 신영옥과 장영주,판소리 명창 안숙선과 가야금 명인 양승희가 협연하여 해외교포들에게 한바탕 ‘조국애’를 분발시키게 된다. 음악은 다른 예술이 할 수 없는 설득력으로 그때마다 민중의 희노애락에 깊이 참여해 왔고 민중을 다스리며 선동하고 용기와 힘을 주었다.민족의 단합과 일체감을 촉구하고 한국인의 강인한 민족정신에 호소하려는 음악인들의 의지에 공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국호·상징물 제정(대한민국 50년:2)

    ◎48년 7월1일 제헌국회서 ‘대한민국’ 확정/제헌국회 헌법기조위원회/대한민국·고려공화국·한·조선 논의/이승만 의장 ‘대한민국’ 상요 대세로 1948년 7월1일 제21차 회의가 열린 제헌국회 본회의장.의원들은 헌법기초위원회가 제출한 헌법 초안을 놓고 2차 독회에 들어갔다.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 신익희 부의장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항목부터 축조심의에 들어갔다.이승만 의장(독촉)이 먼저 발언권을 얻었다. “국호개정이 제일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국호는 차차 국정이 정돈되어 가지고 거게에 민간의 의사를 들어가지고… 그러니까 국호문제에 있어서는 다시 문제 일으키시지를 말기를 또 부탁하는 것입니다”(국회 속기록) 이에 대해 최운교 의원(무소속)이 헌법기초위에서 심의한 국호가 몇가지며 그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했으나 반대에 부딪쳤다.이어 1조를 원안대로 통과시키자는 동의를 재청·삼청까지 얻어냈다.이때 조봉암 의원(무소속)이 제동을 걸었다.조의원은 “우리민족이 다 그렇게 만족치 않을 것이니 다음에 제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했다.그는 1차 독회에서도 “대한민국이란 말은 역사적 합리성으로 보거나 체제로 보거나 형식적 법통으로 보거나 천만부당하다”며 반대했었다. ○찬성 163·반대 2로 통과 이승만 의장이 다시 발언에 나서 고칠 필요가 있으면 다음에 하고,일단 원안대로 통과시키자고 무마했다.의회는 거수표결에 들어가 제1조를 재석 188명에 찬성 163명,반대 2명으로 통과시켰다.한민족의 새 역사를 열어 나갈 신생국의 이름은 이같은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확정됐다.1948년 8월15일 정부가 출범하기에 앞서 한달 보름전 일이다. 새나라 출발에는 국호 제정이 선결과제지만 이승만의 모두 발언에서 알 수 있듯 나라이름을 짓는 데는 많은 진통이 따랐다.국호가 갖는 상징성이 지대한데다,당시 좌우가 갈리고 정당·사회단체가 난립한 상태에서 각기 주장하는 바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미군정 때 장차 수립할 우리 민족의 국가 이름으로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지지를 받았다.좌우대결이 치열해지면서는 남한지역과 우파는 대한민국을,북한지역과 좌파는 조선을 지지하는 ‘남대한·북조선,우대한·좌조선’으로 굳어져 갔다. ‘대한’이라는 국호는 대한제국 때 처음 쓰였다.1897년 고종이 중국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국임을 강조하느라 황제를 칭하면서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1919년 상해에 자리잡은 임시정부도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따라서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당연한 우리나라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를 부인하는 세력들이 해방후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예컨대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는 1945년 9월6일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함으로써 ‘대한’이라는 국호를 부정했다. 1947년 5월 미소공동위원회는 남북한 각 정치세력에게서 임시정부 수립대강에 관한 답신서를 받았다.이에 따르면 한민당이 결성한 임시정부수립대책협의회와 신익희 주축의 입법의원은 ‘대한민국’을,좌우합작위원회가 주도한 시국대책협의회는 ‘고려인민공화국’을 주장했다.민주주의민족전선은 건준이 선포한 ‘조선인민공화국’에 집착했고,건준을 부정하는 북조선노동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국호를 규정했다.각 정치집단은 국호제정을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다툼의 방편으로 이용한 것이다. 제헌국회가 구성된 뒤 헌법기초 위에서 논의한 국호로는 ‘대한민국’‘고려공화국’‘한’‘조선’ 등이 있었다.이때도 일부에서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국호를 제정하자고 주장했다.그런데 5월31일 열린 국회 개원식에서 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사용함에 따라 이 이름은 제헌의원들간에 대세로 자리잡았다. 국호에 관한 찬반 논의는,이승만 행정부가 1950년 1월16일 국무원 고시 제7호인 ‘국호 및 일부 지방명과 지도색 사용에 관한 건’을 법률로 제정하자 자연 소멸됐다.“우리나라의 국호는 대한민국(또는 한국)으로 하고,북한 괴뢰정권과의 확연한 구별을 위해 조선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45년 12월 첫 태극기 게양 국호외에 국가의 상징인 국기·국가도 제정과정에서 많은 논의를 거쳤다.태극기는 대한제국이 정식 인정해 상해임정이 이어받은 국기였다.태극기는 1945년 12월24일 처음으로 미군정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성조기와 함께 게양됐다.당시 조선성냥회사 사장인 신창균이 하지 장군의 보좌관에게 부탁해 성사시킨 것이다.미군정은 이듬해 1월14일 군정청 광장에서 태극기 게양식을 가짐으로써 국기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무렵 만담가 신불출은 공연에서 태극기가 국기로서 적당하지 않다고 비아냥거렸다가 포고령 위반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이처럼 좌파세력을 포함한 일부에서 거부하긴 했지만 민심은 태극기 사용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다만 그 도안이 다양한 데 문제가 있었다.독립문에 새긴 것,구왕실 소장품,미군정 문교부에서 공포한 도안,우리국기보양회가 제안한 모양 등 여러가지 태극기가 뒤섞여 사용됐던 것이다.현재의 태극기는 1949년 10월15일 문교부고시 제2호로 공포됐다. 그리고 애국가 가사는 1910년쯤 거의 완성됐으며 안익태가 곡을 붙인 현재 애국가는 1946년 5월 ‘임시 중등음악 교본’에 실려 널리 알려졌다.그러나 제헌국회에서는 “국가는 적당한 시기에 남과 북 전체 민족의 의사로서 제정하자”며 논의를 유보했다.따라서 애국가는 사회관행상 국가로서 불릴뿐 아직도 법적으로는 공인받지 못한 상태이다. ◎“성조기와 함께 미군정청에 태극기 게양하자”/45년 하지 장군보좌관에 요구 성사 시킨 신창균옹 미군이 서울에 진주한지 석달여만인 1945년 12월24일 미군정청 국기게양대에 태극기가 성조기와 나란히 게양됐다.일제의 사슬에서 벗어났다고는 하나 과연 독립을 이룰 것인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던 그때 이는 국민에게 크나큰 위안을 준 ‘사건’이었다. 그같은 선물을 국민에게 전한 신창균옹(90)은 1940년부터 마카오에서 임시정부의 연락책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였다.45년 4월 귀국한 그는 미군이 진주하자 9월 중순 하지 장군의 보좌관인 윌리엄스 중령을 찾아갔다.중령의 아버지는 선교사로 입국해 공주 영명고교 교장을 지냈고,그 때문에 중령은 한국땅에서 태어나 소년기를 보냈다.신옹은 윌리엄스 교장에게 세례를 받은 인연으로 동갑내기인 중령과 친하게 지냈다. 중령을 만난 신옹은 “미군정청에 성조기가 휘날리는데 이곳은 조선땅 아닌가.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도 함께 게양하자”고 요구했다.중령은 그의 말에 찬성하면서 “혼자 결정할 사항이 아니니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12월 중순 신옹이 군정청의 연락을 받고 가보니 중령은 이미 귀국했고 후임자가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태극기를 게양하기로 결정했으니 태극기를 빨리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한국사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태극기는 미군정 당국으로부터 당당하게 국기로서 대우받게 됐다. 신옹은 이후 조선성냥공장의 사장으로 새나라 경제부흥에 힘쓰는 한편 임정 요인들이 귀국해 만든 한국독립당에서 연락부장 등을 맡으며 활약했다.1948년 김구가 남북협상차 평양을 방문할 때 수행하기도 했다.이후 일관되게 진보정치운동을 벌였으며 현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남측본부 의장을 맡고 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문화부 차장) 최병렬(문화부 차장급) 김종면(문화부 기자) 박정현(정치부 기자) 서정아(정치부 기자) 강선임(DB부 기자)
  • ‘애국가락지’로 중기지원/기증자에 추후상환 추진

    추준석 중소기업청장은 새마을부녀회중앙연합회가 10일 ‘애국가락지 모으기 운동’을 벌여 모금한 금가락지를 중기청에 전달할 경우 시한을 정해 모든 기증자에게 가락지로 갚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추청장은 “3백50만 연합회 회원들이 기증한 가락지를 LG금속에 의뢰,금괴를 만든뒤 적정가격에 팔아 자금을 조성,어려운 중소기업의 회생에 쓰도록 해 연합회의 뜻에 보답하겠다”면서 “중소기업들이 추후 기증자에게 모두 가락지로 상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애국주식(외언내언)

    “차라리 길이 막힐때가 좋았지.요즘 돌아다니는 자동차가 줄어 운전하기가 좀 편해졌는데 그만큼 경제가 어렵다고 생각하니 속이 상해” “주식값이 헐값이 돼서 지금 40조원,약 3백50억달러만 있으면 주식시장에 상장된 모든 한국기업을 살수 있게 됐어.우리 주식의 총시가가 70조∼80조원밖에 안되니 그돈이면 51%의 주식 소유가 가능하다구.불과 몇년전엔 총시가가 1백40조원 정도 됐었는데 말이야”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지원을 받게 되면서 요즘 화제는 온통 ‘경제’다.평범한 주부에서부터 경제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선 어려운 국가살림과 그것이 서민 생활에 미칠 파장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그런 이야기중의 하나로 한 종교지도자는 온국민이 주식 사기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우리 기업이 외국에 헐값으로 넘어가지 않도록하기 위해 국가 기간산업이나 중요한 공기업의 주식을 일반국민들이 사 모아야한다는 것이다. IMF의 요구로 국내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사실상 허용되기에 이르렀다는 보도 또한 나오고 있다.재정경제원이 ‘선진국 기준에 맞추기 위한’ 관련법률안을 앞으로 열리는 첫 임시국회에 제출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다.한말 국채보상운동의 하나였던 ‘애국가락지’ 모으기처럼 ‘애국주식’ 사기 운동이라도 정말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연쇄 부도가 우려되는 이 시점에서 누가 과연 주식을 사려고 하겠는가.일본 주부들은 시장 보고 남은 돈으로 주식을 사모아 미래를 위한 저축을 했고 그런 ‘시장바구니 주식’이 일본 경제를 튼튼하게 했다지만 우리주부들에게 지금 주식 사기를 권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애국주식’ 사기를 개인적으론 실천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머리’보다 ‘가슴’이 앞선 탓일까.아니다.지금까지 한번도 주식을 사본 적은 없지만 우리 어머니·할머니들이 한줌의 쌀을 덜어 놓고 밥을 지었던 그 정신을 본 배워 미래를 위한 작은 저축을 하듯 주식 몇 주를 살 수는 있을듯 싶다.
  • 애국가락지(외언내언)

    ‘우리 아기 돌반지로 나라경제 살립시다.’이는 새마을부녀회중앙연합회가 ‘애국가락지 모으기’운동을 전개하면서 내건 구호다.‘애국가락지’란 구한말 나라빚을 갚기위해 손가락에 낀 가락지나 장롱속에 감춰둔 소중한 패물들을 아낌없이 내놓은 옛여성들의 애국심에서 비롯된 단어다.1907년,일본으로부터 들여온 1천3백만환의 차관을 갚기 위해 거국적으로 전개된 이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의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서상돈이 주동했다.국채 1천3백만환은 대한제국 존망이 직결된 치욕의 돈이라면서 그는 2천만 국민이“담배를 피지 않고 3개월동안 20전씩만 모은다면 이를 갚을수 있다”고 감연히 앞장 선 것이다.이 운동은 전개된지 한달만에 4만여명이 2백30만환을 모았고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이 이를 지지하여 좀 더 확산됐으나 통감부와 매국적 정치단체인 일진회의 방해로 좌절되고 말았다.이때 참여한 층이 대부분 여성인데다 당시 사회계층의 최하위층에 속하던 기생들이 자신들의 패물을 의연하여 서울 평양 진주 등지에는 여러형태의 애국부인회가설립되기도 했다. 이번 새마을 가족이 전개하는 ‘애국가락지 모으기’는 우리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시점에서 절박한 국민의지를 보여주자는 역시 범국민운동이다.이제까지 정신없이 치닫던 과소비의 열풍을 잠재우고 나라의 구석구석에 절약과 검소,저축의 열기를 확산시켜 경제 도약을 삼자는 취지다.반찬을 줄이고 자가용을 타지 않고 담배 한개비만 덜 피면 ‘하루 한사람이1천원씩 절약’할 수 있으며 이 돈을 모으면 연간 14조4천억원이 된다니 적잖은 액수다.우리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심정’으로 아끼고 덜쓰면서 어려움을 극복해왔다.부도직전의 한 중소기업인은 각자 한사람이 ‘1천원의 온정’을 베풀어준다면 잘나가던 한 중소기업의 부도를 막을수 있다고 호소한다. 장롱속 패물은 언제까지나 싸두고 숨겨두는 것으로는 의미가 없지만 온정을 구하는 이들을 위해 장롱속에서 꺼냈을때 차가운 세상을 비치는 따뜻한 광채를 발하게 된다.
  • 이장희 교수 사전영장 청구

    ◎저서 ‘나는야 통일1세대’ 이적표현 혐의 [박은호 기자] 서울지검 공안1부(김재기 부장검사)는 25일 ‘나는야 통일 1세대’라는 초등학생용 책을 펴낸 한국외국어대 이장희 교수(47·법학과)와 (주)천재출판사 편집장 김지화씨(26·여) 등 2명에 대해 국가보안법위반(이적표현물 제작·배포)협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교수 등이 지난 3월‘나라 이름은 무엇으로 바꿀까’ ‘수도는 어디에’ 등 통일을 주제로 한 초등학생의 원고를 받아 내용을 일부 가감한 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부합하지 않는 내용으로 편집했으며, ‘김일성 장군의 노래’ ‘북한 애국가’ 등 북한 노래를 실은 혐의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교수의 변호인인 안상운 변호사는 “통일원이 모 방송사와 함께 통일 교재로 선정해 캠페인까지 한 책을 문제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 경시대회서 나타난 초·중·고 한자실력

    ◎쓰기 약하고 같은소리 글자 뜻구별 못해/학교 교육관심도 따라 성적 천차만별 단군,애국가,태극기,무궁화,한반도,홍익인간,배달민족.중학교 1학년 한문교과서 맨 앞부분에 나오지만 제대로 쓰기란 쉽지 않은 한자들이다. 성균관대는 지난달 26일 개최한 ‘제2회 전국 초·중·고생 한자·한문 경시대회’에 참가한 2천389명에 대한 채점을 마친 결과,이들 한자를 전부 쓴 학생은 거의 없었다고 12일 밝혔다.특히 배달민족과 단군 등에서 많이 틀렸다. 대회는 초등학생 초급(1∼3학년)과 상급(4∼6학년),중학생,고등학생 등 4분야로 나눠 전국 477개 학교에서 분야별로 3명씩 추천받은 학생들과 한문학습지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했다.문제는 한자 독음달기,쓰기,문장 이해력 등으로 분류돼 60∼68문항이 출제됐다. 채점결과 학생들은 쓰기에 약했다.주경야독의 낮 주자를 책 서로,백두산의 흰 백자를 일백 백으로 쓰는 식이었다. 학생들은 한자의 뜻을 구별하는 것도 어려워했다.많은 학생들이 ‘기술을 습득하다’에서 익힐 습자 대신 주울 습자를,학문의 문자를 글월 문이나 문 문으로 선택했다. 채점 결과,양극화 현상이 뚜렸했다.고교생 분야에서 1등이 150점 만점에 126점을 얻은데 비해 대표학생 3명의 점수를 모두 합해도 100점이 못되는 학교도 있었다.100점 만점으로 환산해 70점 이상을 받은 학생이 10%정도였으나 40점 이하도 57%나 됐다. 대회를 주관한 한문교육과의 이명학 학과장(43)은 “채점 결과 학교장 등이 한문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킨 학교들이 전반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나타냈다”고 밝히고 “한문을 어려서부터 조금씩 공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14일 시상식을 갖는다.
  • “인도적 차원 대북지원 계속”/고 총리 개천절 경축사

    단기 4329주년 개천절 경축식이 3일 상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고건국무총리를 비롯한 3부요인,여야 정당대표,공무원과 시민 등 4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고총리는 경축사를 통해 “단군성조께서 개국한 이 뜻깊은 날을 맞아 국내외 7천만 겨레 모두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민족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하나로 모아나갈 것을 굳게 다짐해야 한다”며 “국민 모두가 더불어 함께 잘사는 민주·복지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바로 홍익인간의 개국이념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총리는 특히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전후 냉전체제의 산물로 빚어진 국토분단으로 우리 겨레가 지난 반세기 동안 같은 동족끼리 화합하고 협력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정부는 앞으로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이고,나아가 농업 경제협력 등 북한의 어려움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축식에서는 개천절의 뜻을 살려 애국가,개천절노래,묵념곡,국기에 대한 경례곡 등이 모두 국악으로 연주됐다.
  • 광복 52돌/애국가 변주 특별음악회

    ◎가톨릭음악원,15일 중림동성당서 광복절을 맞아 안익태 작곡 ‘애국가’ 주제를 변주한 특별 음악회가 열린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가톨릭음악원(원장 차인현 신부)은 15일 하오 서울 중림동 성당 내 최양업기념관에서 ‘관현악을 위한 애국가주제에 의한 24개변주와 푸가’연주회를 갖는다.차인현 신부의 지휘로 고려교향악단,무지카 시크라합창단과 아마뚜스합창단,싼타마리아 빈첸시오 합창단 등이 참여하는 대형무대. 고려교향악단의 95회 정기연주회를 겸한 이번 음악회에서 로마 교황청 성음악대학 주임교수 이탈로 비앙키 신부가 한국인을 위해 작곡한 ‘관현악을 위한 애국가 주제에 의한 24개변주와 푸가’연주무대가 마련되는 것.로마 교황청 성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차신부는 “광복 52주년 기념일을 맞아 애국가와 관계되는 곡을 연주하는데 큰 뜻이 있다”며 “특히 외국의 신부가 우리 국민과 국가를 위해 작곡한 곡이 감동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연주회에는 또 가톨릭음악원에 재학중인 첼로의 이지현·바이올린 김소연·피아노 백승은 등이 출연,하이든의 첼로 협주곡,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등을 연주한다.
  • 위로하라 위로하라 위로하라(송정숙 칼럼)

    머리를 남정네처럼 깎고 남방 계열사람들이 그렇듯 피부빛깔이 갈색이 된 ‘훈’할머니는 먼곳에 넋을 두고온 사람처럼 김포공항 청사 한 복판에 망연히 서서 ‘아리랑’을 불렀다.그것만이 생소한 고국의 관문을 통과하는 의례이기라도 하듯 ‘아리랑’을 불렀다.본래 이름도,고국말도 못하는 그가 한국인임을 입증받을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것 뿐이라는듯 부르고 있는 그의 아리랑은 처연했다. 언론들은 그렇게 부른 그의 아리랑이 “또렷한 발음”이었다고 묘사했지만 그의 ‘아리랑’은 “발음”보다는 가락이 분명했다.구성지고 청승스런 가락.‘아리랑’을 그렇게 흘려내듯 한숨섞어 부르는 것이 ‘조선사람’식이다. 우리민족 특유의 것이라는 ‘한(한)’의 정서를 말할때 우리는 ‘아리랑’을 인용한다.아리랑은 그 감수성을 대변할 수 있는 전형이다.집을 떠나 먼 외국을 돌다가도 이국땅에서 문득 아리랑의 가락을 만나면 우리는 금방 다리에서 힘이 빠지며 ‘고국’이 서리서리 그리워 그자리에 주저앉고 싶어진다.억지로 보내진 여행도 아니고 호강스런여행을 하다가도 공연히 서러워지게 하는 가락이 아리랑이다.‘애국가’가 울리면 저절로 손이 가슴에 올려질지언정 그렇게 눈물이 나지는 않는데 ‘아리랑’은 듣는 순간 가슴을 파고들어 그립고 서럽고 따뜻함이 엉겨진 뜨끈한 덩어리를 명치끝에 솟게 한다. ○그녀가 부른것은 아리랑 남방땅에서 얻은 가무잡잡한 혼혈의 손녀들을 동반하고 너무도 이국적이어서 망연할 뿐인 고국땅을 찾은 ‘훈’할머니에게서 저절로 흘러나온 한숨같은 노래.그것이 아리랑인 것은 당연하다.다른것은 다 망각의 피안으로 사라지고 ‘아리랑’만이 그렇게 체내에 박혀있다는 것은 그가 틀림없는 조선여인임을 말해준다.그리고 그 시대에 ‘남양군도’로 끌려가서 살아남은 조선여인이라면 그것은 일본이 강제로 동원했던 일본 군대위안부인 것이다. ‘훈’할머니는 자신의 이름이 ‘나미’라고 했다.그의 이름이 ‘나미’라는 것은 어쩐지 좀 안 어울린다.가요를 약간 혀짧은 소리로 부르던 어떤 여가수를 연상시키는 ‘나미’라는 이름은 ‘훈’할머니시대의 ‘조선의 딸들’의이름은 아니었다.너무 ‘현대티’가 나는 것이다.아리랑이 신음이나 한숨처럼 몸에 밴 조선여인인 그가 간직해온 이름이므로 틀림이 없을 터인데 왜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인 것일까. 혹시 ‘나미’가 아니고 ‘남이’인 것은 아닐까.‘남이’일수도 있고 ‘남이’일수도 있다.또는 끝자가 ‘남’으로 끝나는 이름일수도 있다.‘정남’‘후남’‘영남’‘순남’으로 사내 남자를 붙여 ‘남’으로 끝나게 한 이름이 우리의 딸들에게는 많았었다.“사내동생을 보아라”는 주술적 효력의 기대로 붙여준 이름들이다. ○그 소원만은 풀어주어야 끝자가 ‘남’일 경우 집안에서는 “남이야!”하고 불렀을 것이다.“남이야!”는 “나미야!”와 같은 발음이다.그러고보면 ‘나미’라는 박래품 냄새나는 이름의 숙제도 풀린다. “내이름은 나미,가족을 찾아주세요”‘아리랑’을 부르며 그는 서툰 글씨로 쓴 분홍색 청원서를 내보였다.그 소원만은 풀어줄 수 있어야 우리는 ‘조국’의 자격을 운위할 수 있다.천만명의 이산도 찾아준 우리다.온갖 기법도 터득한 처지고모든 사회적 정보의 전산망 자료화작업도 거의 완성했음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그런 우리가 ‘훈’할머니의 가족도 못찾아준다면 전산망이 아무리 잘되어있다해도 허망한 것일 뿐이다. ○‘훈’할머니가 던지는 잠언 황량하기가 사막처럼 되어가는 우리를 한탄하는 자리에서 한 종교 목회자가 자신이 발견한 경전 귀절을 소개한 일이 있다.그의 신이 가르치는 ‘말씀’중에서 “위로하라.위로하라.위로하라”는 말을 찾아냈다고 했다.잠재의식에서 “아리랑가락”을 발굴하여 들고 우리를 찾아온 ‘훈’할머니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름을 확인해주고 가족을 찾아주는 일이다.그러는 것이 “위로하고 위로하고 위로하는 길”이다.증오와 비난과 험구로 상처만 증폭되어가는 우리의 어리석은 오늘을 반성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 할수 있는대로 우리서로 위로하고 위로하고 위로하자.
  • 뇌졸중 최형우 고문 “용의 눈물”

    ◎병원뜰 산책… 중순께 퇴원 한방치료 계획/어눌한 의사표현… 아침 잠깬뒤 한숨 버릇 4월 11일 뇌졸증으로 쓰러져 서울대병원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신한국당 최형우 고문이 이달 중순 퇴원한다.뇌졸증에 효험이 크다는 한방치료를 받기 위해서다.동국대 송석구총장의 강력한 권유로 퇴원과 동시에 동국대 분당 한방병원에 입원한다.지난달 30일에는 절개된 머리뼈 봉합수술을 받았다.애국가,아리랑같은 노래도 부르고 서울대병원 뜨락을 산책하기도 한다.유아수준이던 언어구사 능력도 어린이정도로 좋아졌다.몸무게도 13㎏이나 빠졌지만 건강은 최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드물지만 민주계의 온산(최고문 아호)계 관리를 대행하고 있는 김정수 의원(부산 부산진을)과 노승우 의원(서울 동대문갑) 등 최측근 정치인과도 면회도 한다.이들 정치인을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부둥켜 안고 운다고 측근이 전했다.얼마전 한보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김수한 의장의 검찰소환소식을 우연히 TV뉴스를 보다 알게 됐다고 한다.그러나 가족들은 최고문이 최근의 어지러운 정국에 관한 뉴스를 보고 흥분할 것을 걱정해 TV드라마인 「용의 눈물」만 시청하도록 하고 있다.최고문은 잠을 깨는 아침이면 한숨을 쉬는 버릇이 생겼다.민주계 좌장으로,대권 도전의 꿈을 불살랐던 「용」으로서 날개를 접어야 하는 한숨과 눈물이다.
  • 소나무 거리(외언내언)

    남산위의 저 소나무/철갑을 두른듯/….애국가 가사의 한구절.소나무는 애국가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래동화·민요·속담 등에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그림에도 빠져서는 안되는 단골소재.예부터 소나무는 우리민족의 정서에 가장 친숙한 나무였다. 나무껍질은 검붉고 비늘모양,잎은 바늘형상으로 한반도와 중국·일본등지에 분포되어 있다.한그루씩만 보면 모양새가 그리 아름답지 않고 열매인 솔방울도 별 쓸모가 없다.경제적으로는 효용가치가 적은편.한옥의 건축재로 주로 쓰이고 있지만 옛날에는 땔감으로 많이 사용했다.그러나 보릿고개로 상징되던 참담했던 가난의 시절,소나무껍질을 벗겨 굶주린배를 달래던 일을 오늘의 할아버지·할머니세대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옛날에는 산마다 소나무가 울창 했었다.산만이 아니라 큰마을 어귀에는 소나무숲이 있었고 이곳은 마을 사람의 운치있는 쉼터였다.애국가 가사에 나타나듯 서울의 남산도 소나무숲이 자랑거리였다.그러나 남산의 소나무는 외래종인 아카시아의 강인한 번식력과공해에 밀려 날로 줄어들고 있다.전체삼림면적 68만여평 가운데 소나무숲은 13만여평으로 겨우 20%를 차지하고 있다.이에 비해 아카시아숲은 소나무숲의 2배나 되는 25만여평에 달한다. 서울시 종로구청은 「사라져 가는 소나무숲을 되 살리자」는 운동의 하나로 성균관대입구에서 대학로까지 150m 구간의 보도양쪽에 소나무 50여그루를 심어 「소나무거리」를 조성키로 했다.오는 3월 심어질 가로수 소나무는 5년이상 가꾸고 다듬은 우량품종.어쨌든 반가운 일이다.거리뿐 아니라 도시의 공원이나 집뜰에 소나무를 심어 우리의 전통적인 조경문화로 정착시키는 것도 좋을듯 싶다. 실제로 본사 사옥을 비롯해 서울도심에 있는 몇몇 빌딩주변에는 소나무가 심어져있어 독특한 멋을 자랑하고 있다.소나무거리가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되기를 바란다.
  • 민족감성으로 본 동해/양태진 영토문제연구가(굄돌)

    우리 민족에게 동해는 국가의 영역이상으로 신성시되어온 바다이다.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은 내륙에서는 백두산을,해양으로는 동해를 가장 신성시해 왔다.그런 까닭에 동해에 대한 민족적 감성은 다른 민족에 비해 각별하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 애국가 첫줄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하는 구절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었다고 본다.이와 함께 민중적 외경심은 민속신앙화되어 일찍부터 황해나 남해에서의 재반 행사 이상으로 동해 제신을 위한 치제에 정성을 다 하였다. 나라에서도 동해신사를 두어 봄·가을로 제사를 받들었음을 세종실록지리지 양야도호부조에 기록하고 있다.이밖에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자마자 동해로 달려가 평생 갈고 닦은 불심과 학문을 정리,동해를 향해 간곡하게 민족 구도를 기원했다. 이처럼 동해는 국가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민중적 삶속에 깊숙히 밀착되어 왔다.따라서 동해는 단순한 지리적 방위 개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자의적 풀이를 보더라도 동은 일과 목의 합성문자로 만물이생동하기 시작할때 해의 방향을 의미하는 동시에 해돋이를 상징하고 있다.오행으로 볼때에도 동은 목성으로 사절기 가운데 봄이며 오색 가운데 청색에 해당된다.여기에서 청구니 청해라는 말이 생겨 난 것이다.수많은 전적의 책 이름이나,동맹이라는 옛적 제천의식의 명칭에서 보듯이 「동」은 우리 한민족의 감성을 짙게 담고있다.이러한 동해에 대해 여타의 해양 명칭과 같이 방위상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동해를 동영 동명 창해 창영 창명 슬해 영해 명해 등으로 표시한 적은 있으나 이러한 표현 역시 음운상으로나 의미상으로 어디까지나 「동」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어 특별한 대안이 없는 한 동해명칭 논란은 우리 스스로는 자제했으면 한다.
  • 지나친 신앙생활 이혼사유/대법원 판결

    지나친 신앙생활이 가정 파탄을 일으켰다면 이혼사유에 해당한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특별 3부(주심 안용득 대법관)는 20일 남편 Y모씨가 신앙생활에 몰두해 가사를 소홀히한 아내 L모씨를 상대로낸 이혼 및 위자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Y씨와 L씨는 이혼하고 L씨는 남편에게 위자료 1백50만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 87년 Y씨와 결혼,자녀 2명을 둔 L씨는 90년 여름부터 특정 종교를 믿기 시작,집을 자주 비우고 가사와 아이들을 돌보는 데 소홀히하다 93년부터 정식 교인이된 이후에는 시댁의 차례나 제사는 물론,시부모 생일 등에도 참석을 거부하고 아이들에게는 애국가 제창 및 수혈을 하지 말도록 교육시키는 등 종교활동에 몰두해왔다.
  • “계엄군 과잉진압이 시민들 감정격화”/5·18 항소심 이모저모

    ◎검찰·변호인단 공판내내 신경전 17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3차공판에서 검찰측은 5·18피해자와 목격자를 증인으로 내세워 계엄군의 과잉진압을 부각시킨 반면 변호인측은 총기사용의 불가피성을 두둔하는데 주력했다. 이날 공판에는 전남도청 사수대로 활동하다 징역 7년을 선고받은 피해자 이양현씨(47·사업)와 동아일보 전남도청 출입기자로 현장을 목격한 김영택씨(60)가 증언대에 섰으며 지난 15일 재판부로부터 「피해자진술권」을 따낸 강길조씨(54·회사원)가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5·18피해자가 증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씨는 『진압군이 현장에서 붙잡은 시위대를 팬티만 입힌채 10여명씩 줄줄이 묶어 트럭에 매달아 끌고 다님에 따라 시민들의 감정을 격화시켰다』고 주장. 김씨는 『5월21일 하오 1시 정각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연주되자 공수부대원들이 일제히 발포했다』며 『공수부대원들은 퇴각하는 시위대에게 정조준 사격을 가해 3∼4명이 쓰러지는걸 목격했다』고 증언. 변호인단은 그러나 『공수부대원들의발포는 시위대가 관광버스와 장갑차를 몰고 공수부대원쪽으로 돌진해 1명이 깔려 죽었기 때문』이라며 『애국가는 도청직원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틀었다』고 주장. 변호인단은 또 『당시 계엄군은 M16소총을,시민군은 칼빈소총을 사용했는데 민간인 희생자중 26명이 칼빈총상을 입었다』고 지적. 한편 피해자 진술에 나선 강씨는 『5월20일 광주역앞 차량시위때 전남대 강당으로 끌려온 한 청년은 대검에 머리를 찔려 죽었다』고 증언. ○…공판전부터 강씨에 대한 피해자진술권 채택여부를 두고 승강이를 벌인 검찰과 변호인단은 공판 내내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는 등 시종 신경전을 전개. 상오 재판이 끝난 뒤 『군인들이 과격하게 진압하니까 시민들이 저항한게 아니냐』는 일부 방청객들의 항의에 석진강 변호사는 비꼬는 말투로 『검찰에게 물어봐라』고 하자 김상희 부장검사는 『왜 자꾸 검찰을 걸고 넘어지느냐』며 역정을 내기도.〈김상연 기자〉
  • 대형건물/태극기 24시간 단다/정부 「선양사업」 확정

    ◎눈·비 관계없이 게양… 학교·가정은 낮에만/태극기 티셔츠·무궁화 넥타이 시판 허용 앞으로 정부청사는 물론 공항이나 호텔·백화점·대기업 사옥 등 대형 건물에는 휴일에 관계없이 24시간 태극기를 달게 된다. 또 태극이나 무궁화문양의 디자인이 허용되어 태극기 티셔츠나 무궁화 넥타이의 시판이 허용된다. 정부는 16일 이같은 내용의 「국가상징선양사업추진계획」을 확정하고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는대로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눈이나 비가 오더라도 바람이 심하게 몰아치지만 않으면 계속해서 태극기를 게양하는 방안을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시행키로 했다. 또 대형 건물에는 지금보다 2배이상 큰 태극기를 달도록하는 한편 태극기를 건물벽면에 하늘을 향해 경사지게 게양하는 형태도 허용키로 했다. 한편 대형 건물에는 24시간 태극기를 달되 군부대와 학교,가정에서는 지금처럼 낮에만 게양토록 했다. 조해령 총무처장관은 『지금까지는 태극기와 애국가·무궁화 등 국가상징물에 대해 지나치게존엄성만 강조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앞으로는 국민들이 친근감을 느끼고 국민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상징물로 가꾸어 갈 방침』이라고 이번 계획을 마련한 배경을 설명했다.〈서동철 기자〉
  • 개천절과 국악(외언내언)

    3일 상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우리 민요와 전통가곡을 국악관현악곡으로 편곡한 음악이 은은히 울려퍼지는 가운데 참석인사들이 객석에 자리를 잡으면 국무총리를 비롯한 3부요인이 조선조 궁중행악인 노요곡(일명 길타령)연주속에 단상에 오른다. 이어 개식선언과 함께 국방부 취타대의 팡파르가 울린다.서양악기인 아이다혼이 아닌 태평소 징 꽹과리 나발 나각 북 용고등을 사용한 장엄한 팡파르다.역시 국악반주속에 국기에 대한 경례가 올려지고 국악으로 편곡한 애국가 합창이 울려퍼진다.애국가 선창은 영화「서편제」로 널리 알려진 국악계의 스타 오정해·김명곤씨가 맡는다…. 제4328주년 개천절 행사는 이처럼 국악 연주속에 진행된다.공식 국가행사에 국악만이 사용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참으로 뜻깊은 일이다. 서양에서 유입된 종교인 가톨릭의 국악미사가 정착해 가고 있는 것에 비하면 국조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한민족 최초의 국가를 세운날을 기념하는 개천절에 이제야 국악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늦은 셈이다.앞으로 개천절 행사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행사에도 국악을 사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만 하다. 애국가는 물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국기에 대한 경례에 사용되는 음악등 의식음악의 국악화는 이미 이루어진 상태.애국가는 지난 60년대 창작국악의 선두주자였던 김기수(1917∼1985)가 편곡했고 다른 의식음악도 국립국악원이 3∼4년전 국악으로 편곡해 「오늘의 국가기념일 음악」이라는 컴팩트 디스크까지 나와 있다.이번 개천절 행사에서 보듯 각종 의식에서 사용됐던 조선조의 궁중음악도 활용할 수 있다.마음만 먹으면 국악만으로 모든 국가행사를 치를 수도 있는 것이다. 오랜 서양음악 위주 교육탓으로 국악이 양악보다 더 낯설을 수도 있다.그러나 지금도 국악은 우리에게 「피가 땡기는」 체험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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