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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배님 희망처럼 런던 하늘에 태극기가 펄럭일 겁니다”

    “선배님 희망처럼 런던 하늘에 태극기가 펄럭일 겁니다”

    장면 #1 1948년 7월, 스물아홉 청년 김성집은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부산항을 떠난다. 36년의 일제 강점을 벗어나 ‘KOREA’란 국호로 처음 런던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떠나는 길. 배를 타고 스무 날이 걸려 도착한 런던에서 그는 당당히 역도 미들급 동메달을 따낸다. 대한민국이 올림픽에서 처음 따낸 메달이다. 장면 #2 그로부터 64년 뒤인 2012년 4월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스물둘의 역도선수 원정식(한국체대)은 구슬땀을 흘리며 쉼 없이 바벨을 들어올린다. 이제는 거동이 불편해진 93세의 김성집옹처럼, 런던 하늘 아래 올라갈 태극기와 울려 퍼질 애국가를 눈과 귀로 상상하면서. 제30회 런던올림픽 개회가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64년 전 김옹의 동메달은 엄혹한 시절을 보내던 민족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됐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금메달 13개를 목에 걸어 3회 연속 세계 10위에 드는 것을 목표로 내걸 정도의 스포츠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옹을 비롯한 숱한 국가대표들의 땀과 열정,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2일부터 시작되는 대표선발전을 통과하면 난생 처음 올림픽 무대에 나서는 원정식은 “선배님들의 땀과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꼭 메달을 따겠다.”는 당찬 출사표를 김옹에게 보내는 편지로 갈음했다. 선배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체육대학교 4학년 원정식입니다. 저는 지금 런던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선발전을 통과하면 69㎏급에서 금메달(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64년 전인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선배님께서 우리나라에 첫 메달을 갖고 오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일이나 걸려서 배를 타고 런던에 가셨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값진 메달을 따오신 선배님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선배님의 땀과 노력이 올해 런던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건강 조심하세요. 2012년 4월 12일 후배 원정식 올림 원정식은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역도선수권대회 남자 69㎏급 용상에서 182㎏을 들어 동메달을 따면서 깜짝 기대주로 등장했다. 원주 치악중 1학년때 처음 바벨을 잡은 원정식은 중3 때 전국소년체전에서 3관왕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고, 지난해 전국체전에서는 같은 체급인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배영(33·아산시청)을 따돌리고 이 체급에 걸린 금메달 3개를 휩쓸었다. 원정식은 “중고생 시절부터 코치님들이 ‘열심히 하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올림픽에 대한 동경을 품었다. 2008년 베이징에서 사재혁 선배님이 금메달을 딸 때 나도 저 자리에 서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첫 올림픽을 맞는 설렘을 전했다. 원정식은 “학교 수업 시간에 김성집 선배님에 대해 배웠다. 어려운 시기에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메달을 따고 역도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사연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얼마 전 오른쪽 햄스트링과 허리 부상으로 위축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컨디션이 최상일 때의 90% 정도란다. 원정식은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렌다. 64년 전에 선배님도 메달을 딴 종목이니 나도 열심히 훈련해 좋은 성과를 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노무라 모토유키 日목사,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사죄의 연주

    노무라 모토유키 日목사,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사죄의 연주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 13일 오전 10시 40분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 대사관 주변에서는 플루트에 실린 가곡 ‘봉선화’(홍난파 작곡)의 음률이 애잔하게 울려 퍼졌다. 대사관 건너편에 세워진 ‘평화비’(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일본 야마나시현 베다니교회의 노무라 모토유키(81) 목사가 연주한 것이다. 노무라 목사는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1970~80년대 서울 청계천 판자촌과 경기 화성 등지에 빈민자활공동체의 탁아소를 세우는 등 한국의 빈민 구제활동에 헌신, 한때 ‘청계천 빈민의 성자’로 불렸다. ●‘봉선화’ 연주 절정 이르자 무릎 꿇고 눈물 노무라 목사는 이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로하고, 일본 정부의 조속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 평화비를 찾았다. 두툼한 검은색 배낭에서 악보대와 플루트를 꺼내 든 노무라 목사는 입고 온 점퍼를 벗은 뒤 평화비를 마주 보고 서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기도와 묵념을 올렸다. 이어 플루트를 잡고 한 음, 한 음 차분하게 ‘봉선화’를 연주했다. 곡이 절정에 이르자 연주를 잇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은 노무라 목사는 장미꽃 한 송이를 평화비에 바친 뒤 다시 일어나 ‘진혼가’와 ‘우리의 소원’을 연주했다. 악보 파일에는 ‘애국가’와 ‘아리랑’, ‘아침이슬’ 등의 악보도 들어 있었다. 노무라 목사는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조센진’(조선인)이라 부르며 차별하는 것을 보아 왔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아팠다.”면서 “한국인에 대한 그런 마음을 연주에 담고 싶었고,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기 때문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연주했다.”고 밝혔다. 또 “일본의 침략이 없었다면 ‘봉선화’라는 곡이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곡”이라고 말했다. ●“일본인으로서 당연한 일 하는 것” 노무라 목사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봉사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일본 사람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연주 때문에 대사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갔을지도 모르지만 각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무라 목사는 당초 주한 일본 대사관을 방문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를 촉구할 예정이었지만 “개인 자격으로 왔을 뿐인데 예상보다 취재진이 많이 몰려 대사관 측이 당황했을 것 같다.”며 연주만 마치고 같이 온 지인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노무라 목사는 12일 경남 통영에서 열린 고 제정구 전 의원의 13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0일 입국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미조하타 日 관광청장 방한…서툰 한국어로 애국가 불러

    “동해…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이니나라 마은세(우리나라 만세)…” 지난해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국인의 일본 여행이 급감한 가운데 한국을 찾은 미조하타 히로시(溝畑宏 ) 일본관광청장이 일본 방문을 호소하며 서툰 한국어로 애국가를 불러 화제다. 미조하타 청장은 17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은 한국인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인의 한국 방문은 지난해 지진 직후 급감했다가 다시 늘어나 지난해 11월까지 299만명(전년대비 6.7% 증가)에 달했지만, 같은 기간 일본을 찾은 한국인 수는 151만 명으로 32.2%나 줄었다.”며 일본 관광업계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조나단은 악플러!/윤숙희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조나단은 악플러!/윤숙희

    - 노래 연습이나 더 하고 와라. 하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노래 실력이 늘 리 없지. ㅋㅋㅋ. 조나단이 되면 나는 용감해진다. 두려운 게 없다.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처럼 인터넷이란 바다를 날아다니며 거침없이 행동한다. 부끄러워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인터넷에선 최고 멋진 아이로 변신한다. 긁적긁적 긁적긁적. 몸을 긁으며 가수 미라클 기사에 댓글을 달던 나는 효진이가 떠올랐다. 자기 미니 홈피에 미라클 자료가 많다며 보러 오라고 자랑하던 효진이. 나는 효진이의 미니 홈피에 접속했다. 홈피를 예쁘게 꾸며놓아서 그런지 방문자 수가 많다. 미라클과 관련된 사진과 음악파일도 잔뜩 올라와 있다. 이곳저곳을 살피던 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최효진’이라고 쓴 글귀를 보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웩!’이라는 댓글과 함께 토하는 이모티콘을 달았다. 가슴속에 꾹꾹 누르고 있던 것이 튀어나온 느낌이다. 그러나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내 댓글이 지워졌다. - 헐, 너네 집에는 거울도 없음? 효진이가 지금 미니 홈피에 들어와 있나 보다. 내가 글을 올리기가 무섭게 또 지워졌다. 지우면 지울수록 더 하고 싶어졌다. - 완전 밥맛!! 그러자 효진이가 내 글 밑에 댓글을 달았다. - 조나단, 나한테 감정 있니? - ㄴㄴ. - 혹시 너 미동초 다니니? - ㄴㄴ. 시치미를 떼고 계속 댓글을 달고 있을 때였다. “종일 컴퓨터만 할 거니? 밖에 나가서 산책 좀 하고 와.”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토피에 맑은 공기를 쐬야 낫는다는 둥,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둥, 인스턴트식품 먹지 말라는 둥. 엄마의 잔소리는 애국가 4절보다 길다. 나는 마지못해 일어났다. 컴퓨터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는 게 우선이다. 날씨가 좋아도 딱히 갈 데가 없다. 함께 놀 친구도 없다. 아파트 단지를 세 바퀴째 빙빙 돌고 있을 때였다. 106동에서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나왔다. 앗, 효진이다. 효진이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나는 재빨리 커다란 나무 뒤로 숨었다. 효진이는 나를 보지 못한 듯 그냥 지나치더니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탔다. 일요일에도 학원에 가나 보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컴퓨터를 틀자마자 효진이의 미니 홈피에 접속했다. 대놓고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후다닥 썼다. - 왕재수!!! 한 시간쯤 지났을까? 영어숙제를 끝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효진이의 미니 홈피에 들어갔다. 아직 효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내가 쓴 글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데 내가 쓴 글 밑에 댓글이 두 개나 달려 있다. - 왕재수 때문에 짜증나 -_- - ㅇㅇ 왕재수가 우리 반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누굴까? 누가 이런 댓글을 달았을까? 내가 알기로 효진이를 싫어하는 아이는 우리 반에 없다. 다들 쉬는 시간이면 효진이와 친하고 싶어 효진이에게 몰려들었고, 효진이의 눈에 들려고 주위를 빙빙 돌았다. 나도 그랬다. 그 애의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에 끌려 가까이 다가갔었다. “어머, 네 얼굴 왜 그래? 옮는 피부병 아니니?” 귓가에 효진이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던 그 애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효진이를 더 골려주고 싶었다. 효진이의 사진 밑에다가 분홍돼지 사진을 스캔해서 올렸다. ‘효진이의 진짜 모습’이라는 글과 함께. 내가 사진을 올리기가 무섭게 접속한 아이들이 주렁주렁 댓글을 달았다. - ㅋㅋㅋ. 공주병 환자가 사실은 돼지였네. 핑크돼지! - 핑크돼지가 돼지 콜레라를 퍼뜨리고 있다!! - 더러운 바이러스 덩어리는 지구를 떠나라~ ‘어라? 얘네들 봐라. 얘네들도 나처럼 효진이한테 당했었나?’ 더듬이를 세운 곤충처럼 눈치만 보던 아이들이 갑자기 효진이에게 달려들자, 컴퓨터를 떠날 수가 없다. 수시로 효진이의 미니 홈피를 들락거리며 댓글을 확인했다. 댓글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거칠어졌다. 욕을 하기도 했다. 이상하다. 그런 댓글을 보고 있으려니 처음엔 시원했지만, 긁으면 긁을수록 따가워지는 내 피부처럼 마음이 따가웠다. 다음날, 황사가 찾아왔다. 올해 들어 최악의 황사란다. 뿌연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교실로 들어서자 아이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앨리스가 누구니, 카멜레온이 누구니 하는 소리도 들렸다. ‘조나단은 누굴까?’ 하는 말에 몸이 얼음처럼 굳었다. “네 닉네임이 뭐야?” 효진이의 짝 선화였다. 당황한 내가 더듬거렸다. “왜··· 왜?” “네가 혹시 카멜레온 아니니?” “아, 아니.” ‘더러운 바이러스 덩어리는 지구를 떠나라’라고 했던 앨리스를 떠올리며 나도 선화에게 물었다. “네가 앨리스 아냐?” “말도 안 돼. 내가 왜 앨리스야?” 선화가 핏대를 올리며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들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이 아이들도 나처럼 컴퓨터만 틀면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건가?’ 그때 경쾌하고 맑은 목소리가 문 앞에서 들려왔다. “얘들아, 안녕?”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본 순간, 모여 있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장난기 많은 남자 아이들은 꿀꿀꿀 하며 돼지 흉내를 내기도 했다. “무슨 재미있는 일 있어?” 레이스 달린 분홍 원피스를 나풀거리며 효진이가 다가왔다. 두근두근. 효진이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무것도 아냐. 너 노을 들어봤니?” 선화가 재빨리 효진이를 데리고 자리에 앉더니 미라클 이야기를 꺼냈다. 이내 둘은 엠피쓰리로 미라클의 노래를 들으며 까르륵거렸다. 그런데 첫째시간이 끝나고 난 뒤였다. 뿌연 창밖을 내다보며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목덜미를 벅벅 긁고 있을 때였다. 화장실 갔던 효진이가 눈이 퉁퉁 부은 채 교실로 들어섰다. 울었는지 눈동자가 뻘겠다. ‘드디어 미니 홈피에 쓰여 있는 댓글들을 보았구나!’ 뜨끔했다. 가려운 목덜미보다 가슴이 더 뜨끔했다. 거기 쓴 댓글들을 모두 내가 쓴 것마냥 가슴이 두 방망이질 쳤다. 효진이는 의자에 앉자마자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미라클 팬클럽 회장한테 문자 왔는데, 미라클 언니가 잠적했대. 자살했을지도 모른대.” 효진이는 옆에 있는 선화를 껴안고 교실이 떠나가도록 울음을 터뜨렸다.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있던 효진이는 조퇴를 하고 집으로 일찍 가버렸다. 마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하루가 지났는지 모르겠다.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미라클, ‘모두들 안녕’이라는 유서 남기고 잠적!’ ‘미라클을 벼랑 끝으로 내몬 건 바로 악플!’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듯 미라클에 대한 기사가 잔뜩 올라와 있다. 미라클이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그 원인이 평소에 시달리던 악플이라는 글을 보자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런데 기사 밑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무서운 댓글이 달려 있다. - 차라리 잘됐다. 죽어라 죽어! 소름이 쫙 하고 끼쳤다. 뾰족한 칼에 찔린 것처럼 온몸이 화끈거렸다. ‘어떻게 이렇게 심한 글을 쓸 수 있지?’ 불현듯 효진이가 생각났다. 나는 급히 효진이의 미니 홈피로 이동했다. 지워졌다. 악플들이 싹 지워졌다. 악플뿐만이 아니라 미니 홈피에 있던 글이며 사진이 모두 지워졌다. 대신 ‘모두들 안녕!’이라고 쓴 글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귓가에 효진이가 배경음악으로 깔아놓은 ‘노을’이 점점 크게 들렸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미라클이 죽으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울먹이던 효진이가 떠올랐다. 어쩌면 어쩌면······. 불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올랐다. 나는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나갔다. 황사바람을 뚫고 달리고 또 달렸다 ‘효진이가 위험해. 효진이를 찾아야 해!’ 단숨에 106동 앞까지 달려왔다. 막상 효진이의 집 앞까지 왔지만, 호수를 몰라 주위를 빙빙 돌았다. 한참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뿌연 황사 사이로 레이스 달린 분홍 원피스가 보였다. 효진이다. 효진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다. 한 손에는 ‘언니 돌아와요!’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아프다고 조퇴하고 가더니 미라클을 응원하고 오나 보다. ‘휴, 다행이다. 효진이가 무사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효진이가 다가왔다. “내가 악플을 당해보니까 미라클 언니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이해가 돼. 아이들이 왜 나한테 악플을 다는 걸까?” 갑작스러운 효진이의 질문에 더듬거렸다. “그, 그건······ 잘 생각해봐. 아이들이 왜 그런지.” 발그레해진 얼굴로 효진이의 눈을 피한 채 돌아섰다. 황급히 걷고 있는데, 뒤에서 효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조나단!” 흠칫 놀라 발을 멈추었다. 내가 조나단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내 예감이 맞았어. 네가 조나단 맞지?” 효진이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확신에 찬 말투로 몰아붙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내 홈피에 들어와 악플을 달다니, 너무한 거 아냐? 너 때문에 지금 내가 얼마나 마음 아픈 줄 알아? 넌 정말 비겁한 애야.” 효진이의 말에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네가 먼저 상처줬잖아.” “내가 언제?” “전학 온 첫날부터 날 전염병환자 보듯 했잖아. 네 눈길이, 네 행동이 날 얼마나 힘들게 했는 줄 알아? 악플보다 더 고통스러웠다구!” “야, 그건······.” 당혹스러워하는 효진이를 남겨두고 달렸다. 효진이가 따라오며 ‘조해윤’ 하고 불렀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달리다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조나단 뒤에 숨어서 했던 일들을.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그것은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효진이의 말처럼 비겁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트니 팬들의 응원에 감동한 미라클이 다시 복귀했다는 기사가 떴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댓글을 달았다. - 언니가 돌아와서 기뻐요. 언니 힘내세요! 이상하다. 내가 쓴 댓글을 보고 있으니 오히려 내가 힘이 나는 것 같다. 마음도 한결 편안했다. 그때 누군가가 내가 쓴 글 밑에 댓글을 달았다. - 조나단, 너도 미라클 팬이었구나? 반가워  핑크공주라는 닉네임을 본 순간, 단박에 효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무시하고 다른 사이트로 이동하려는데 댓글이 또 달렸다. - 내일도 황사온대. 학교 올 때 마스크 쓰고 와  어라? 얘 좀 보게. 웬일로 내 걱정을 다하네. 모니터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지금 효진이가 사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 조나단, 전학 왔을 때보다 요즘 피부가 많이 좋아졌더라! 새로 달린 효진이의 글을 보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머뭇거리던 나는 드디어 댓글을 달았다. - 핑크공주, 오늘 입은 분홍 원피스 예쁘더라. 넌 분홍색이 잘 어울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웃고 있을 효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웃고 있듯 그 애도 지금 웃고 있을 것이다. 그날 밤, 조나단이라는 갈매기는 인터넷이란 바다를 그 어느 때보다 멋지고 용감하게 날아다녔다.
  • ‘절대권력’ 아버지 마지막길 배웅 김정은 칼바람 맞고 서있는 인민들 생각했을까

    ‘절대권력’ 아버지 마지막길 배웅 김정은 칼바람 맞고 서있는 인민들 생각했을까

    눈이 펑펑 내리는 평양에서 28일 김정일 영결식이 거행됐다. 금수산기념궁전(생전에 김일성이 집무를 보던 곳으로 그의 1주기를 맞아 9억 달러를 들여 리모델링한 시신 보관소) 광장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서 눈에 띄는 그림은 운구차를 후계자 김정은과 당·정·군 최고위 간부들이 호위를 했다는 것이다.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다섯 차례나 참배한 김정은은 이날 침통한 표정으로 검은색 운구차량에 한 손을 올리고 광장을 걸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17년 전 김일성 사망 당시 시신이 안치될 궁전에서 운구차량을 맞았던 김정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국화 목란꽃으로 단장된 운구차는 주요 행사 때 그가 즐겨 타던 링컨 컨티넨털이었고 주변은 경호용 모터사이클 수십 대가 배치됐다. 김정일이 생존에 받던 경호 그대로였다. 뒤로는 장의위원들이 탄 100여 대의 벤츠승용차와 수십 대의 소형버스들이 따랐다. 궁전을 출발한 영구차를 수십여 대의 모터사이클과 지프차들이 엄호하며 시작된 장례행렬은 혁신거리, 전승광장, 천리마거리, 평양체육관 광장 등을 지나 충성의 다리와 통일거리를 거쳐 평양시내를 한 바퀴 돌아 다시 귀환했다. 김정은이 운구차를 호위한 모습과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라는 그림만 빼 놓으면 김일성 영결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필자가 평양에 있을 당시인 1994년 7월 19일 김일성 영결식에 동원되어 노동당에서 지시받은 행사장소인 통일거리 평양면옥(냉면전문점) 앞에 나갔던 상황을 상세히 전하면 이렇다. 19일 새벽 2시까지 본 행사장소로부터 300m 지점의 예비 집합장소에 나갔다. 오전 4시부터 이곳에서 안전원(경찰)들이 참가자의 얼굴과 신분증을 정확히 대조했다. 오전 5시부터 200m 지점을 통과하는데 이곳에서 보위원들이 휴대용 전자감식기로 참가자의 신체와 소지품을 깐깐히 검사했다. 오전 6시부터 100m 지점에서 전신용 보안검색대를 세워 놓고 양쪽에 호위총국(대통령경호실) 요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3시간 동안 초긴장 상태에서 보안검색을 마친 참가자들은 오전 7시부터 대기했다. 곳곳에 설치된 대형스피커에서는 각종 추모방송이 나왔다. 외국의 정상들과 국제기구, 단체들에서 보내 온 조전, 남조선의 양심 있는 지식인, 문화인, 종교인들이 보내 왔다는(실지는 모두 대남기관에서 조작하여 만든 것) 애도편지, 공화국 각 지역에서 올라온 인민들의 충성편지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전 10시부터 행사요원의 안내에 따라 30분 간격으로 연습이 진행됐다. “모두 집중하십시오. 연습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영구차가 들어섭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북한에서 애국가보다 더 많이 불리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 가 울려 퍼졌다. 그러면 참가자들이 누구 할 것 없이 “어버이 수령님! 이렇게 가시면 안 됩니다.”,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김정일 장군님이 계십니다.” 등 온갖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것이었다. 이어서 ‘김정일 동지의 노래’를 열창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아버지 김일성을 잃은 슬픔을 아들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으로 바꿔 변함없는 자식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인민들의 충성의 맹세이다. 낮 12시쯤, 필자의 20m 앞으로 운구행렬이 지나간 시간은 단 5분도 안 되었다. 그 순간을 위해 꼬박 10시간을 긴장했으니 허무한 생각도 들었다. 의아한 것은 왜 진행요원이 “진짜로 행사 시작입니다.”라는 말을 안 했을까인데 그것은 김정일 경호수칙으로 절대 비밀이다. 북한에서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라고 불리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환영하는 어떤 행사도 대부분 연습 중에 거행되었다. 평생을 인민의 축복 속에 세상의 부귀영화를 모두 누려온 김정일이 갔다. 절대 권력자였지만 그도 나약한 인간이기에 신이 부르면 주저 없이 가는 존재였다. 그의 아들 김정은이 아버지의 운구차에 손을 얹고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으나 사나 그 제도를 끝까지 핵으로 지켜야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했을까? 아니면 눈이 펑펑 오는 날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뛰쳐 나와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한 고맙고 순진한 인민들에게 조금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을까? 그 불쌍한 인민들의 굶주림과 가난을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멋진 생각을 했으면 좋으련만. ‘소설 김정일’ 저자
  • [사설] 통합진보당 애국가 의미 되새겨봐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가 통합한 통합진보당의 창당 대회가 주목된다. 당의 앞날을 점쳐 보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느냐, 아니냐가 큰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창당 대회는 당초 다음 달 15일쯤 열릴 계획이었으나 다음 달 말이나 2월 초순으로 연기될 것 같다. 일반 국민들이 생각할 때에는 당연시되는 애국가 제창이 당 내에서 여전히 논의 대상이라는 사실 자체가 국민에게는 통합진보당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창당 대회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기로 했다는 일부 보도가 있긴 했지만 당 지도부 등은 아직 결론을 낸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만큼 당내 여러 세력 간에 이견이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태극기 대신 민노당기를 걸고,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 왔던 민노당 측은 애국가를 부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참여당 측은 수권정당으로 민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내에는 서로 다른 세력들이 모여 하나의 당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막상 한지붕 한가족이 되고 보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11일 창당 보고대회에서도 태극기를 걸고 국민의례는 했지만 애국가는 생략했다고 한다. 내년 창당 대회의 식순도 거기에 준해서 진행된다면 애국가를 부르지 않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얘기다. 정당도 국가가 있어야 존립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통합진보당이 자칫 국가를 부정하는 듯한 모양새를 조금이라도 내비친다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기는 어렵다. 애국가란 단순히 국가에 충성을 다짐하는 노래가 아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도 그 나라의 국기를 걸어 주고, 국가를 연주해 주는 것처럼 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올해 4분기 민노당은 5억여원, 국민참여당과 진보신당은 각각 1억 6000만원을 국고보조금으로 받았다. 국가로부터 혜택은 받으면서 마치 국가를 부정하는 듯한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는 정당이라면 국고보조금은 물론 법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없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6)괴산 삼송리 소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6)괴산 삼송리 소나무

    농경을 살림살이의 근간으로 삼고 살아가는 대개의 민족들은 나무를 비롯한 자연물을 경배의 대상처럼 신성하게 여겨왔다. 애국가에 소나무를 등장시키는 우리도 물론이다. 유난히 소나무를 좋아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소나무 가지를 꺾어 태어났음을 알리고,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살면서, 소나무 장작을 태워 지은 밥을 먹고 자라다가 소나무로 만든 관에 들어가 죽는다.”는 말을 할 정도로 소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소나무를 빼놓고 우리의 정신문화나 살림살이를 표현할 방법은 찾을 수 없다. 사정은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지난해의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소나무라고 대답한 우리 국민은 전체의 67.7%나 될 정도다. 소나무라는 이름에서부터 우리가 좋아하는 나무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소나무는 나무 앞에 ‘솔’이 붙어서 이루어진 이름인데, ‘솔’은 ‘우두머리’ ‘으뜸’을 뜻하는 순우리말 ‘수리’에서 나왔다. 소나무를 ‘나무 가운데 으뜸’으로 본 것이다. 그런 소나무 가운데에서 ‘왕소나무’라는 별명이 붙은 나무도 있다. 그야말로 ‘으뜸 중의 으뜸’인 나무다. 천연기념물 제290호인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소나무가 그렇다. 물론 왕소나무라는 별명은 이 지방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어서, 굳이 이 나무가 왕이어야 할 합리적 까닭을 찾는 건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 이 나무를 ‘왕’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귀하게 여긴 사람들의 충정에 깊은 뜻이 있을 뿐이다. ●소나무의 으뜸으로 여기며 지킨 나무 나무가 있는 삼송리는 글자 그대로 오래전에 세 그루의 훌륭한 소나무가 있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세 그루 가운데 두 그루는 고사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금은 ‘왕소나무’로 부르는 한 그루의 소나무만 남아 있다. 마을에서 붙인 별명이라고는 하지만, 삼송리 소나무는 실제로 왕으로 불러도 될 만한 의젓한 분위기를 갖추었다. 왕소나무는 마을 뒤편의 낮은 언덕 위에 서 있는데, 그 곁으로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들이 둘러서 있어서 마치 하나의 작은 솔숲처럼 보인다. 왕소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소나무들도 족히 100살은 넘어 보이는 큰 나무들이다. 마치 가운데에 위엄을 갖춘 임금이 자리를 잡고 그를 호위하는 무사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서 있는 듯한 분위기다. 호위무사처럼 둘러선 소나무들은 모두 18그루였다. 그러나 최근 이 나무들 가운데 4그루가 사라졌다. ●왕을 위해 희생된 4그루의 호위무사 왕소나무에 바짝 붙어 서 있던 4그루의 나무가 예리한 톱날로 잘린 밑동만 드러낸 채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 바람에 멀리서 보아 순한 곡선을 이루었던 솔숲은 가운데가 잘려나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솔숲 전체적인 모습이 흉측해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생경한 모습이다. “그냥 보기에는 예전 모습이 좋아 보였지만, 왕소나무의 생장에 문제가 있었어요. 한쪽에 높은 키로 늘어서 있는 소나무들 때문에 왕소나무는 반대편으로만 가지를 뻗었잖아요. 그렇게 오래 놔두면 왕소나무는 균형을 잃게 될 수도 있겠지요.” 괴산군청 문화관광과의 문화재 관리 담당인 김영근씨의 이야기다. 실제로 왕소나무를 볼 때에는 적잖은 아쉬움이 있었다. 멀리서는 무성한 솔숲이 좋아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한쪽으로 비스듬하게 솟아오른 왕소나무의 줄기가 조금은 불편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나뭇가지를 한쪽으로만 펼친 것도 그랬다. 하지만 바로 곁에 늘어선 다른 소나무들이 꽤 큰 나무여서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8년이었지요. 전문가들의 조사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어요. 왕소나무를 더 오래 보존하려면 생육 공간을 확보해 주어야 했지요. 결국 곁의 다른 소나무들을 베어내야 했지만, 그 나무들도 큰 나무여서 머뭇거렸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4그루를 희생시키기로 했어요.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 4그루를 위한 고사를 지낸 뒤에 신중하게 베어냈지요.” 왕소나무를 호위하며 수백 년 동안 왕의 위엄을 지켜준 소나무들의 슬픈 운명이었다. 그래도 왕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이 땅에서 사라져야 했던 소나무를 위해 고사를 지내며 명복을 빌어준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있었기에 다행이지 싶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왕소나무에서 마을 당산제를 지냈고, 그 주위의 소나무들도 신성하게 여긴 나무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웅장·기묘… 또다른 별명 ‘龍松’ 600살쯤 된 것으로 짐작되는 왕소나무는 키 13.5m, 줄기 둘레 4.91m의 매우 듬직한 수형의 소나무다. 땅에서 3m쯤 되는 높이에서 나무 줄기가 둘로 갈라지면서 다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지를 펼친 왕소나무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뿐만 아니라, 수천의 가지들은 하나같이 기묘하게 비틀리고 배배 꼬이면서 뻗어나갔다. 급하지 않고, 웅장하되 매우 기묘하다. 신화 속의 용이 하늘에 오르는 형상이 꼭 이렇지 싶다. ‘용송’(龍松)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붙은 것도 그래서다. 보면 볼수록 이 나무를 왜 ’왕소나무‘로 부르는지 이해할 수도 있을 만큼 장엄한 모습이다. “당장은 조금 어설퍼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이 빈 공간으로 왕소나무가 가지를 뻗을 겁니다. 물론 시간이야 적지 않게 걸리겠지만 왕소나무뿐 아니라, 곁의 소나무들까지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으로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당장 조금 불편하고 아쉽더라도 다음 세대를 내다보며 한 그루의 나무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걱정과 지혜로운 수고가 고마울 수밖에 없다. 글 사진 괴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신흥학우단가’ 조국서 장엄하게 울려

    ‘신흥학우단가’ 조국서 장엄하게 울려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항일음악회조직위원회·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 ‘항일음악회’가 24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조선의 노래’ ‘애국’ 등 잇따라 무대에 항일음악회는 1911년 신흥무관학교 설립 전후부터 광복 때까지 의병과 독립군들이 불렀던 대표적인 항일음악들을 전문 성악가들과 합창단, 군악대의 노래와 연주로 재구성했다. 음악회는 메조 소프라노 정유진(명지대 강사)의 ‘조선의 노래’(이은상 작사·채동선 작곡)로 막이 올랐다. 이어 바리톤 유훈석(중앙대 강사)의 ‘애국’(작사 미상·헨리 케리곡), ‘혁명가’(작사·작곡자 미상) 등이 잇따라 무대에 울려 퍼졌다. 코리아남성합창단은 ‘애국가’(작사 미상·스코틀랜드 민요), ‘대한소년기개’(작사 미상·스테프 곡) 등을 불렀다. 이어 수도방위사령부 군악대와 코리아남성합창단이 ‘대한제국 애국가’(작사 미상·프란츠 에케르트 곡)와 ‘신흥학우단가’(신흥학우단 제정·포스터 곡)를 불렀다. 특히 “조상의 세우신 옛나라 어디메뇨/ 충용한 무리야 그 은혜 끝까지 잊으랴….”로 시작하는 신흥학우단가는 국악계 원로인 노동은(중앙대 국악대) 교수에 의해 올해 처음 발굴<서울신문 11월 14일자 1면>돼 이날 고국의 무대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신흥학우단가는 1916년 12월 26일 신흥학우단 강습소에서 열린 10회 정기총회에서 정식 단가로 의결된 곡으로, ‘스와니강’으로 유명한 미국 작곡가 포스터의 ‘The Old Folk At Home’(고향사람들)의 곡을 차용했다. ●독립군 2100여명 배출… 국군의 뿌리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인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4월 신민회(新民會) 회원인 이회영·이동녕·이상룡 선생 등이 중국 지린성에 세운 항일 군사교육기관이다. 신흥강습소로 시작해 자리를 옮겨 다니며 신흥무관학교로 이름을 바꿨으며, 1920년 문을 닫을 때까지 2100여명의 독립군을 배출했다. 지청천·이범석 장군 등이 학교 교관으로 활동했으며, 이 학교 출신 독립군은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인 올해 기념 음악회를 가져 뜻깊다. 앞으로도 신흥무관학교의 의미가 잊혀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박원순 서울시장 인터넷 취임식] 집무실 ‘희망 메시지’ ‘비밀 골방’ 공개… 7만여 시민들 시청

    [박원순 서울시장 인터넷 취임식] 집무실 ‘희망 메시지’ ‘비밀 골방’ 공개… 7만여 시민들 시청

    온라인 생중계로 치러진 박원순 서울시장의 취임식은 아기자기한 ‘아침 방송’과 비슷한 형식이었다. 박 시장은 앞사람에게 말을 건네듯 편안한 톤으로 전 과정을 직접 진행하며 ‘정보기술(IT) 기반’을 활용해 시민들과의 벽을 허무는 모습을 보였다. 박 시장은 첫 화면에서 “제가 여러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죠. 이만큼 사랑합니다.”라며 손으로 큰 하트를 그려 인사한 뒤 비서실 직원을 차례로 소개하며 집무실 문을 열었다. 박 시장은 먼저 메모가 한가득 붙은 벽면으로 카메라를 이끌었다. 선거 과정에서 만난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둔 ‘박원순 시장에게 바란다’ 코너였다. 박 시장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라며 “시간 날 때마다 보며 시민들의 바람과 간절함을 느끼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정면으로 보이는 책상 오른편에 기울어진 책장에 대해서는 “기울어진 양쪽 책장의 균형을 잡아 주듯 저 역시 우리 사회 갈등과 대립을 조절하고 모든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시장이 되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시장은 본인의 캐리커처와 직접 쓴 책, 지하철 벤치마킹 보고서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업무 중 휴식을 위한 ‘비밀의 골방’과 화장실까지 소개했다. 외빈으로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 등이 참석해 박 시장 혼자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은 연출되지 않았다. 부시장단과 이정관 복지건강본부장, 이인근 도시안전본부장도 참석했다.박 시장은 태블릿PC를 통해 인터넷에 올라온 시민들의 질문을 확인하고 답변을 하기도 했다. 이날 취임식 시청자는 총 7만 4423명으로 집계됐으며, 시민들은 총 5100건의 댓글·트위트 등을 올리며 호응을 보냈다. 50분간 이어진 온라인 취임식에 이어 시청 인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번개팅’이 계속됐다. 재개발·뉴타운과 관련된 민원이 쏟아졌고, 한 시민은 박 시장을 붙들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신흥학우단가 95년만에 발굴

    신흥학우단가 95년만에 발굴

    독립군을 양성해 항일투쟁을 이끈 신흥무관학교의 학우단가(學友團歌)가 95년 만에 빛을 봤다.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인 신흥무관학교는 지난 1911년 4월 신민회(新民會) 회원인 이회영·이동녕·이상룡 선생 등이 중국 지린성에 세운 군사교육기관이다. 1920년 문을 닫을 때까지 2100여명의 독립군을 양성했다. 지청천·이범석 장군 등은 학교 교관으로 활동했다. 신흥학우단은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1913년에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자 학교 동창회 조직이다. 국악계 원로인 노동은(65) 중앙대 국악대학 교수는 13일 “우리 민족의 항일 의지를 담은 신흥무관학교 학우단가를 이 학교 설립 100주년째인 올해에야 발굴했다.”고 밝혔다. 학우단가는 1916년 12월 26일 신흥학우단 강습소에서 열린 10회 정기총회에서 정식 단가로 의결된 곡이다. 신흥학우단가는 2종이었으나 박은환 선생이 지은 ‘신흥학우단 단시가(團是歌)’만 전해지고 있을 뿐 공식 단가인 ‘신흥학우단가’는 신흥학우보에 그 존재와 가사가 기록돼 있으나 곡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다. 노 교수는 신흥학우보의 단가 의결 내용 중 ‘곡은 수절가(守節歌)와 같다.’는 내용을 근거로 지난 8월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수절가’의 곡을 확인, ‘신흥학우단가’를 발굴했다. 노 교수는 “1910년대 대부분의 항일가요가 평양에 세워졌던 광성중학교의 ‘최신 창가집’에 실린 노래의 가사를 바꾼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 1914년에 만들어진 최신 창가집의 항일가요를 분석한 결과, 공식 신흥학우단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새로 밝혀진 신흥학우단가는 ‘스와니강’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 작곡가 포스터의 ‘The Old Folk At Home’(고향사람들)을 차용했다. 서양음악을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던 당시 대부분의 항일가요는 서양 곡에 가사를 붙여 불렀다. 애국가도 안익태 선생의 ‘코리아 판타지’가 발표되기 전까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에 가사를 붙여 불렀다. “열악한 조건에서 항일독립운동을 벌이느라 새로 곡을 쓰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노 교수의 설명이다. 새 ‘신흥학우단가’는 오는 24일 서울 숙명여대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 항일음악회에서 처음으로 연주될 예정이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565돌 한글날… 경축행사 다채롭게

    행정안전부는 오는 9일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김황식 국무총리 등 국가 주요인사와 주한 외교단, 한글 관련단체, 교사, 학생 등 3000여명을 초청한 가운데 565돌 한글날 경축행사를 연다고 6일 밝혔다. 1부 경축식은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김종택 한글학회장의 훈민정음 서문 봉독, 한글 발전 유공자 포상 등으로 진행되며 애국가는 가수 BMK와 한음국악어린이합창단 등이 함께 부를 예정이다. 2부 경축공연은 세계적 서예가인 이상현 작가의 한글 작품을 배경으로 제작한 미디어아트 ‘한글로 통한다’가 상영되고 용비어천가를 토대로 창제된 궁중정재음악 ‘붕래의’가 원형에 가깝게 복원돼 선을 보인다. 또 주한 대사부인 합창단은 서울시어머니합창단 등과 함께 ‘신아리랑’을 부른다. 광화문 일대에서는 한글누리 어울림마당(공연·춤·무용), 세계문자와 한글(전시), 외국인 한국어 겨루기 등의 행사가 열리고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서울시와 한글문화연대의 ‘제4회 한글 옷이 날개’ 행사도 개최된다.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은 이날 하루 무료 개방된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中 인권사각지대를 말하다] ‘인권’ 변호 이유로 60일 감금

    [中 인권사각지대를 말하다] ‘인권’ 변호 이유로 60일 감금

    “너는 인간이 아니야.” 중국에서 ‘재스민 시위’ 시도가 이어지던 지난 2월 공안에 끌려가 구금됐다가 두 달 만에 가까스로 풀려난 인권변호사 장톈융(江天勇·40)이 당시의 끔찍했던 악몽에 대해 입을 뗐다. 장 변호사는 1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풀려난 뒤 처음으로 당시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과 협박, 욕설과 위협, 세뇌 공작 등을 낱낱이 폭로했다. 그는 에이즈 관련 인권운동가나 파룬궁 수련자 등의 변호를 맡으며 당국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아 왔다. 악몽이 시작된 것은 지난 2월 19일이었다. 이튿날에는 중국의 첫 번째 재스민 시위가 예정돼 있었다. 우선 이틀 동안 극심한 구타가 이어졌다. “모른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무자비한 폭력이 쏟아졌다. 참다 못한 그가 둘째날 밤 “당신들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왜 이런 비인간적인 짓을 하느냐.”라고 울부짖자 “너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요된 반성과 세뇌 공작은 물리적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한 뒤 ‘보고하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열렬히 사랑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교육을 받겠습니다.’라는 문장과 애국가요 3곡의 가사를 암송해야 했다. 한 구절이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담당 요원들은 가족을 볼모로 한 협박, 생매장 위협 등으로 장 변호사를 황폐화시켰다. 끊임없는 반성문 제출이 이어졌다. 당초 의도한 대로 ‘세뇌됐다’고 생각한 당국은 60일 만에야 그를 석방했다. 물론 조건이 따라붙었다. 장 변호사는 앞으로 인권 관련 사건을 맡지 않고,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8개 항목을 담은 서약서에 서명한 뒤 가까스로 풀려날 수 있었다. 중국 정부는 올 초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에도 여파가 닥칠 기미를 보이자 장톈융 등 인권운동가 수십명을 구금하는 등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선 바 있다. 장 변호사는 “그들은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길 원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살고 싶지 않다.”고 폭로 이유를 밝혔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자유로운 음악 여정 25년이었죠”

    “자유로운 음악 여정 25년이었죠”

    명지휘자 고(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그를 두고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했다. 주빈 메타도 “한 세기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라고 극찬했다. 소프라노 조수미(48)를 두고 하는 얘기다.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베르디극장에서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질다 역으로 데뷔한 조수미가 어느새 국제무대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보헤미안의 모습 시각적으로 표현” 조수미는 3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5주년 기념음반 ‘리베라’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동양인이 오페라 주역을 맡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면서 “카라얀의 비서가 우연히 ‘리골레토’ 공연을 보고 카라얀에게 얘기한 게 2년 뒤 카라얀과의 음반 녹음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데뷔 시절을 회상했다. 이탈리아어로 ‘자유’를 뜻하는 ‘리베라’는 지난 16일 세계 최대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발매됐다. 앨범 제목과 관련해서는 “의식주 욕구 다음으로 중요한 게 자유가 아닐까 생각해 왔다.”면서 “내가 원하는 목소리로 모든 종류의 음악을 자유롭게 시도하고 도전했기 때문에 지난 25년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구속 없는 자유로운 음악의 여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앨범은 조수미의 음악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국 작곡가 김택수가 편곡한 ‘집시 카르멘’을 비롯해 클래식 레퍼토리는 물론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메들리, 드보르자크의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 ‘우리의 소원’ ‘애국가’ ‘아리랑’이 결합된 ‘통일의 노래’ 등을 실었다. ●24일 올림픽공원서 기념공연도 오는 24일에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테너 조지프 칼레야,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등과 함께 25주년 기념공연도 갖는다. “지나온 25년을 돌아봤을 때 지금이 가장 절정기라고 자신한다.”는 조수미는 “한국에서는 오페라 ‘마술피리’ 중 기교가 강한 ‘밤의 여왕’ 아리아를 아직 라이브로 불러본 적이 없다. 언제가는 꼭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1만~5만원. 1577-5266.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대구세계육상 D-2] 성대한 IT 개막쇼… 마지막 날엔 불꽃쇼

    베일에 싸였던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개회식과 폐회식 모습이 드러났다. 개회식은 짧고 간소하지만 정보기술(IT) 강국의 이미지를 응축해 세계인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다양한 행사로 준비했다. 개회식은 오는 27일 오후 7시부터 45분간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다. 외국인 유학생과 지역 대학생 등 200여명이 참가국 국기를 들고 입장하면서 서막이 열린다. 이어 한국 전통문화인 ‘다듬이 환영 퍼포먼스’에 맞춰 VIP들이 입장한다. 태극기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기가 게양되고 애국가 제창, 환영사와 개회사 등으로 진행된다. 개회 선언 후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표현한 영상 쇼 등 대구 및 한국의 이미지를 간결하고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공연이 펼쳐진다. 또 한국의 세계적인 마라토너 손기정의 육상 정신을 담은 ‘손기정의 꿈’이 대형 액정표시장치(LED)로 상영되고 육상의 꿈과 도전, 미래정신을 나타내는 어린이들의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마지막 행사로 클래식 스타의 연주와 인순이·허각의 대회 공식주제가 공연, 전 출연진이 함께하는 피날레 공연 및 불꽃놀이로 밤하늘을 화려하게 밝힌다. 앞서 오후 6시 30분부터 30분간 식전행사로 응원단 퍼포먼스와 주제곡 부르기, 대회 마스코트인 살비와 삽살개를 활용한 응원 퍼포먼스가 계획돼 있다. 폐회식은 대회 마지막 날인 9월 4일 오후 9시 10분부터 30분간 열린다. VIP 입장과 선수단 입장에 이어 대회 9일간의 열전을 담은 하이라이트 영상이 방영된다. IAAF기 하강 및 전달, 차기 개최지인 모스크바 홍보영상 및 공연이 펼쳐진다. 인기 가수의 축하공연과 불꽃 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한편 26일 두류공원 야구장에서 열리는 전야제는 축하 쇼와 불꽃 쇼 등이 110분간에 걸쳐 성대하게 펼쳐진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전남 중학생들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찾아

    전남 중학생들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찾아

    전남 지역 중학생들이 광복절인 15일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등을 찾아 독립정신의 의미를 되새겼다. 전남도교육청이 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해 마련한 ‘선상 무지개학교’에 참가한 도내 중학생 200여명은 임정청사 앞에서 조별로 나뉘어 임시정부의 역할과 독립의 의의, 독립지사들의 중국 활동 등 해외 독립운동에 대한 발표문 낭독 등을 하며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이 행사는 광복 66주년에 맞춰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선조들의 삶의 자취와 정신을 배우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학생들은 “독립지사들의 혼이 서려 있는 현지에서 광복절 행사를 하고 독립의 의미를 되새기게 돼 뜻깊다.”면서 “독립지사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불굴의 정신을 이어받겠다.”고 다짐했다. 학생들은 이날 오전 ‘새유달호’ 갑판에서 장만채 교육감이 참석한 가운데 제66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열어 애국가 제창과 함께 한국에서 가져간 태극기를 들고 만세 삼창 하며 독립의 의의를 되새겼다. 선상 무지개학교는 목포해양대학의 실습선 새유달호를 타고 1개월간 국내외를 돌며 견문을 넓히는 체험 활동으로 지난 9일 중국을 향해 출항했다. 17일 일본 나가사키에 입항해 원폭자료기념관, 평화공원 등지에서 해외 문화체험 행사를 하고 오는 20일 귀국한다. 학생들은 앞선 지난 4일 독도를 찾아 ‘과거·현재·미래에도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라는 주제로 독도사랑 글짓기, 그림 그리기, 수비대 위문편지 전달 등의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성적 우수, 모범 학생, 사회적 배려 대상자 등 전남 지역 중학생 200여명과 중국 윈난(雲南)성, 저장성(浙江省)의 학생과 교사 12명도 참가했다. 무안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깔깔깔]

    ●이등병과 고참의 차이 -휴가 나와서 편 이등병:잠자는 시간이 아깝다. 어떻게든 좀 더 놀고 싶다. 부대 안에서 있었던 무용담을 마구 해댄다. 듣는 사람 괴롭히며, 밤을 지새운다. 병장:잠만 자거나, 밀린 비디오 다 보고 들어간다. 같이 놀아 주는 사람도 없다. 집에서는 또 나왔다고 눈치 준다. 학교 친구들에게 연락하면 평소에 안 하던 공부한다고 헛소리한다. -취침 시간 편 이등병:모포 덮어쓰고 고향·애인·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난다. 말년병장:낮에 너무 자서 잠 안 온다. 쫄따구 문 앞에 세워놓고 애국가 나올 때까지 TV를 본다. 다~ 끝나면 아무나 잡고 얘기한다. 잡히는 자는 그날 잠 다 잤다.
  • [김문이 만난사람] ‘한민족사 대학’ 추진 ‘라이파이’ 만화가 김산호 화백

    [김문이 만난사람] ‘한민족사 대학’ 추진 ‘라이파이’ 만화가 김산호 화백

    만화 ‘라이파이’를 아시나요. 검은 테의 안경을 쓰고 머리에 ‘ㄹ’자가 새겨진 반달 모양의 두건을 썼다. 날씬한 몸매에 멋진 옷을 입었다. 태백산맥의 깊은 산속 동굴에 비밀기지를 두고 윤박사가 설계한 멋진 비행선 제비호를 타고 아름다운 제비양과 세계 각국을 돌아 다닌다. 그러면서 세계 평화를 깨뜨리는 악당들과 용감하게 싸우고, 광선총과 긴 밧줄로 모험을 벌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특히 ‘한국산 전사’였기에 대리만족의 통쾌함까지 느껴져 그 열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피너3세와 라이파이’ ‘녹의 여왕 라이파이’ ‘십자성의 신비와 라이파이’ 등 1959년부터 1962년까지 4부작 총 32권이나 발간됐으니 말이다. 이 만화는 한국 최초의 SF 만화라는 데 큰 의의를 담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의 향수를 일으키는 대작으로 꼽힌다. 얼마 전에는 한 TV프로그램 ‘진품명품’에 잠시 소개돼 그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SICAF 코믹어워드 수상자로 선정 ‘라이파이’의 작가 김산호(72) 화백. 지난달 20~2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의 만화·애니메이션 축제 ‘제15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의 코믹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돼 다시 한번 추억의 팬들과 반갑게 만났다. 수상 소식을 듣고 김 화백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해왔다.”면서 “그동안 벌였던 사업은 모두 접었으며 우리 한민족사를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하여 경기 용인에 위치한 작업실로 찾아갔다. ‘아파트 몇동 몇호’라는 말을 듣고 작업실 앞에 서자 한옥의 대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아파트를 이렇게!’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파트 한층을 개조해 마치 한옥같이 꾸며놓았던 것. 역시 상상력이 풍부한 만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콘크리트의 아파트에서도 속세를 잊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 점이 특이해 자꾸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다. 작업실 겸 자택이었다. 안에는 ‘민족사학’과 관련된 많은 책들과 그림들이 진열돼 있었다. 인사를 하면서 김 화백의 명함을 슬쩍 봤더니 ‘만몽 김산호 주신대학교 총장’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만몽(卍夢)은 만가지 꿈을 꾼다는 뜻의 아호. 그렇다면 ‘주신대학교’는 은 무엇일까. 그는 이미 ‘대주신제국사’를 펴낸 바 있다. ‘주신’은 ‘고조선’에서 ‘조선’(朝鮮)의 이두음으로 풀이한다. 그는 ‘대주신제국사’에서 “바른 역사를 아는 것은 자긍심을 높이고,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약속이다. 우리 역사는 그간 너무 많이 왜곡돼 왔다.”면서 “이제 올바른 역사를 통해 자존심을 회복하고, 조국과 민족,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느껴보자.”고 말하고 있다. 주신대학교가 어떤 곳인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쉽게 설명을 덧붙인다. “예전부터 ‘한민족사’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려는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교포 사회에서도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일이라는 점에서 대부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지요. 지난 4월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대학원 대학교 설립인가를 받아냈습니다. 현재 여러 학자와 임원들이 참여 준비를 하고 있으며 오는 10월 로스엔젤레스(LA) 에서 정식 출범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은 어디에 있든 같은 민족이다. 러시아, 일본, 미국 등에 있는 모든 한민족을 껴안아야 한다. 이제 그 역사를 가르칠 때가 왔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던 그다. 이런 노력이 이번에 결실을 맺게 된 셈이다. 국내외에서 ‘한민족사 대학교’를 설립하는 것 자체가 최초의 일이라는 점에서 일단 주목을 끈다. 내년 봄학기 개강을 앞두고 있다는 그는 “이제 남은 것은 한민족사관을 가르칠 교과서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교과서로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여러 차례 살폈으나 대부분 국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데다 민족사학도 제각각으로 통일이 안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김 화백이 앞장서서 ‘민족사 편찬위원회’를 만들고 현재 교과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범한민족사’(PAN KOREAN)란 제목으로 분량이 1500페이지에 달한다. 김 화백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국에는 도서관이 4만 6000여 곳에 달하지만 한국에 관한 역사책이 없습니다. 적어도 미국의 각 주마다 한 권씩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고가 완성되면 영문판을 먼저 발간할 예정입니다.” 또 그는 “30년 이상 우리 한민족에 관심을 두고 작품활동과 그 중요성을 이야기해 왔다.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역량을 이번 교과서 만드는 데 쏟아붓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국사를 가르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사의 내용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란 글에서 ‘한’이 진정한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것을 아느냐고 반문한다. ‘한’은 애국가에서 ‘동해물과 백두산, 하느님’을 뜻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한’은 곧 ‘천손족’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범위를 신시(神市), 단군조선에 뿌리를 둔 모든 종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 즉, 부여, 고구려, 예맥, 옥저, 동예, 말갈, 여진, 만주족은 물론 훈족, 몽골, 거란족 등 우랄·알타이어계 모든 종족을 포함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북만주와 몽골지역을 다녀보면 이런 역사가 보인다.”면서 “우리는 신의 자손들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만큼 강력한 자긍심을 가진 나라는 없다. 중국을 올려다볼 것이 아니라 내려다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에서의 사업을 접고 한국에 다시 나올 때의 주목적은 우리 역사가 왜곡돼 있다는 것을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1978년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중국 역사의 모든 비밀을 간직한 자금성에 걸려 있던 간판들을 보게 됐습니다. 왼쪽에는 한문표기로, 오른쪽에는 만주 글로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수년이 지나 다시 방문했을 때에는 정복자 만주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주의 모든 역사와 문화를 중국으로 흡수하려는 것이지요. 동북공정도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민족사의 교육을 강조했다. 그런 까닭을 다시 물었더니 “우리 한민족사가 잊혀지고 있다. 누군가가 제자리에 갖다놔야 한다. 알고도 못하면 죄악이 아니냐.”고 단호하게 말했다. ●군사독재시절 창작의 자유 찾아 미국행 화제를 바꿨다. ‘라이파이’는 어떻게 해서 태어났으며 미국에는 왜 갔는지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6·25전쟁 때 부산 피란시절 대신동 인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만화에 빠졌다. 당시 일본만화 ‘밀림의 왕자’도 즐겨 보면서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중학교 다닐 적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극장에서 그림을 그려 학비를 벌었다. 이후 만화잡지 ‘만화세계’에 투고했고 게재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1957년 독립군 이야기를 그린 ‘황혼에 빛난 별’로 정식 데뷔를 했다. 이듬해에는 ‘전쟁과 평화’ ‘템페스트’ 등 세계 고전을 만화로 그렸다. 무엇이든 소재가 되면 작품화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라이파이를 상상해냈다. 미국에는 슈퍼맨, 일본에는 아톰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들과 비견되는 것이 왜 없을까 하는 점에서 출발했다. 또한 1950년대의 우울하고 처참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를 지키는 자랑스러운 수호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라이파이는 전쟁의 실의에 빠진 독자들에게 희망과 꿈의 상징처럼 다가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책이 나오는 날이면 독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당시 정확한 판매부수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성경책보다 더 많이 팔렸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1966년 김 화백은 일본에서 출판제의를 받게 되면서 해외진출을 생각했고 기왕이면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미국행을 택했다. 때마침 군사독재 정권의 서슬퍼런 ‘검열’ 또한 국내에서의 작품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터였다. 이후 ‘산호’라는 필명을 김산호로 바꿨다. 만화작가 전문 출판사인 찰튼 코믹스의 전속작가로도 활동한 그는 미국에서 700여편의 작품을 그렸으며 특히 초기 서부활극을 그린 ‘샤이언 키드’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 ‘유령이야기’ ‘용녀’ 등 한국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려 해외에 내놓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아지자 1988년부터 만주를 비롯한 고대사의 무대들을 직접 답사하며 한민족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고 우리 민족의 중심에서 세계를 보는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민족사에 대해 만화와 회화를 넘나들었다. 그의 화실에 이런 소재의 그림이 많은 까닭이다. 2003년 ‘라이파이 동호회’와 팬카페가 생겨나면서 ‘라이파이’도 요즘 다시 살아나고 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김산호 화백은…]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나 1957년 ‘황혼에 빛난 별’로 데뷔했다. 이후 ‘전쟁과 평화’ ‘템페스트’ 등 세계 고전을 만화작품으로 내놓았으며 1959년부터 1962년까지 한국 최초의 장편 SF만화 ‘라이파이’ 전 4부작 32권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 핀 꽃’ ‘모비딕’ ‘유리천사’ ‘검은 박쥐’ ‘해뜨는 나라’ ‘청동마왕’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만화계에 동양풍의 만화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뉴욕 ‘찰스 코믹스’ 만화출판사에서 전속작가 등으로 활동했다. 미국에서는 ‘샤이안 키드’ 등 700여편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1974년 산호그룹 CEO에 취임해 사업가로도 활동했다. 1993년 한민족 역사 다큐만화인 ‘대주신제국사’ 1~3권을 발간한 뒤 2년후 완결편(4~5권)을 펴냈다. 이후 회화극본 ‘두만강’(1996), ‘한국 105대 천왕존영집’(2002), ‘백제, 일본, 그리고 왜’(2003), ‘단군조선’(2005), ‘부여사’(2007) 등 수십 권을 발간했다. 현재 주신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으며 이 대학에서 교재로 쓰일 ‘범한민족사’(PAN KOREAN)를 집필하고 있다.
  • 조폭과 북파공작원 출신이 서로 한판 붙으니…

    조폭과 북파공작원 출신이 서로 한판 붙으니…

    애국가와 함께 단정한 태권도복을 입은 한 중년 사내가 입장한다. 다른 선수들보다 10살 이상은 더 많아 보인다. 강한 포스가 느껴진다.애국가에서 갑자기 빠른 비트의 음악으로 바뀌고 사내가 도복을 벗어 던진다. 24일 오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국내 유일의 프로종합격투기 ‘로드FC 003 EXPLOSION’.대회의 7번째 경기에 출전한 조직폭력배 출신 파이터 이한근(42·정심관 소속)선수와 국군정보사령부 부사관 출신 김종대(31·팀포스)선수가 8각의 케이지 안에서 우뢰와 같은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서로를 노려본다. 국군정보사령부는 과거 북파공작원 양성으로 유명했던 육군 첩보부대 HID(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의 후신. 조폭과 북파공작원이란 독특한 이력을 지닌 두 선수의 스페셜 매치는 경기 이전부터 화제가 됐다. 프로경기는 두 선수 모두 처음인데 대략 승리는 김 선수의 차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몸놀림이 빠른 김 선수의 펀치가 이어졌다. 이 선수는 갑작스런 공격에 무릎을 꿇는 등 2차례 다운 위기를 맞으며 금세라도 무너질 듯 보였다. 간간이 손과 다리를 뻗어 보긴 했지만 육중한 덩치 때문에 경기가 쉬워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일방적인 공격에 당하는 찰나, 두 선수가 서로 카운트펀치를 날렸다. 그 충격에 이 선수가 먼저 쓰러지는 듯 했으나 이내 바로 몸을 곧추세웠다. 반면 지칠 줄 모르던 김 선수는 밑동을 잘라낸 나무마냥 “쿵”하는 소리를 내고 링에 쓰러졌다. 관중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파상공세에 밀리던 이 선수가 관중석의 예상을 깨고,1라운드 1분18초만에 짜릿한 KO승을 쟁취한 것이다. 이 선수는 경기 직후 링 위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데니스강 등이 출전하는 로드FC의 미들급 토너먼트에 도전해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까지 운동 파트너로 동생이 많이 도와줬는데 앞으로도 계속 (나와)함께 한다면 하겠다.”라고 밝혀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다음은 선수 대기실 앞에서 서울신문과 단독으로 가진 인터뷰 주요 내용. →오늘 경기 어땠나? 승리의 요인은 뭔가. 힘 좋은 젊은 선수들과 하면서, 난 나이가 많은 노장 선수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을 대신해서 뛴다고 생각했다.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두려고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 김종대 선수도 열심히 했지만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이번 계기로 격투기 종목이 많이 흥행됐으면 좋겠다. →이 순간 지금 누가 가장 생각나는지. 시합 중 세컨드(격투기 경기 중 선수를 돌보는 사람)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실제로 현재 아무런 생각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처음 프로 무대에서 경기를 한 소감은. 다른 좋은 선수들도 많은데 나 같은 선수에게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 노력한 만큼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쉽지만, 오늘 KO로 좋은 결과가 나와 좋다. →운동을 왜 시작했고 얼마나 됐나. 주먹만 믿고 의미 없이 방탕하게 살다 후회했다. 체육관을 하면서 의미 있는 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하면서 달라진 점은. 예전에는 쉽게 포기하고, 비전 없이 막 살았다. 운동을 접한 후 지금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정신이 생겼다. 또한 체육관을 차리려는 비전도 생겼다. →조폭 시절 실전과 격투기와 어떻게 다른가. 예전에 막 싸움은 기 싸움이니 안 밀리고, 한·두번 주먹질에 싸움이 끝났다. 하지만 이 운동은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과 하나 뻗으면 두 개 나오는 식의 공식이 있다. 예전에는 내 기세대로 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강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이 무섭고 내가 움츠려 든다. →종합격투기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이 먹고 운동을 하려다보니 힘도 들고, 특별한 직업도 없으니 경제적 부담도 든다. 게다가 젊은 선수들 감각을 쫓아 가려다보니 힘들다. 동영상을 찾아보고 해야 하는데 부족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정도까지는 시합을 뛸 수 있으면 몸 관리를 잘 해서 나이가 많아 직접 못 뛰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계속 뛰고 싶다. 그 후 환경이 된다면 체육관을 장만하여 보람되게 살고 싶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아무런 기술도 없이 벌써 42살이다. 다른 일을 하려는 마음은 있어도 42살에 돈도 없고 무엇을 하겠나? 나 같은 경우 운동을 하고 있으니깐 망정이지 마음이 있어도 못하고 있는 분들 많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고 생각한다. 용기내서 열심히 하길 바란다. 나는 현재 종교가 있다. 하늘에 계신 높은 분 무서워하면서 성실히 살려고 노력중이다.. 취재 성민수PD 촬영 장고봉PD globalsms@seoul.co.kr
  • [평창 2018 이렇게] 우리가 평창의 주역! 金사냥은 이미 시작됐다

    [평창 2018 이렇게] 우리가 평창의 주역! 金사냥은 이미 시작됐다

    환희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7년 뒤 안방에서 치러지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진정한 ‘우리들 잔치’로 만들려면 성적이 중요하다. 한국은 안방에서 유독 훌륭한 기량을 발휘해 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종합 4위에 올랐고,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 때도 4강 진출을 일궜다. 한국은 지난해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효자 종목’ 쇼트트랙을 비롯해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까지 골고루 금메달을 따내며 종합 6위(금 5·은 4·동 1)를 차지했다. ‘평창의 주인공’을 꿈꾸며 땀 흘리는 꿈나무들이 있기에 안방에서는 더 빛나는 성적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강원도 평창을 금빛으로 수놓을 새싹들은 누가 있을까. ■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키즈 “21세 파워… 97라인 기대하라” 피겨스케이팅에는 현재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린 1997년생 김해진(과천중)·박소연(강일중)·이호정(서문여중)·조경아(과천중)·박연준(연화중·이상 14) 등 ‘김연아 키즈’가 대세다. 2018년에 21세로 절정기를 구가할 소녀들이다. 선두 주자는 단연 김해진. 2010~11시즌 부상 때문에 주니어 데뷔 시즌에 고전했지만, 최상의 몸 상태만 유지한다면 김연아의 뒤를 이을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와 올해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 4월 전국종별선수권대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김해진은 국내 여자싱글 선수 중 김연아와 유이하게 실전에서 트리플 5종 점프(토루프·살코·루프·플립·러츠)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스케이터다. 1997년 동갑내기 스케이터 중 생일이 가장 늦은 박소연도 친구들보다 한 시즌 늦게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시리즈를 노크한다. 지난해 전국종합대회 2위에 오르며 김해진과 엎치락뒤치락 발전하고 있다. 지난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시리즈 2개 대회에서 모두 10위권 안에 진입하며 성공적으로 데뷔한 이호정도 두 번째 시즌에서 더 큰 도약을 노린다. 최휘(13·과천중)·남수빈(11·문원초) 등 후발주자들도 평창올림픽이라는 목표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 스피드스케이팅 빙속 3인방 “2018년에도 팔팔한 청춘이야” 스피드스케이팅은 지난해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찬란한 성적을 썼다. ‘빙속 삼총사’ 이승훈(23)·모태범(22·이상 대한항공), 이상화(22·서울시청)가 나란히 금메달을 따며 ‘스피드 코리아’의 탄생을 알렸다. 평창까지는 아직 7년이 남았지만 올해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4번째 우승을 차지한 이규혁(서울시청)의 나이가 33세란 걸 감안하면 평창에서도 ‘빙속 3인방’이 울리는 애국가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꾸준한 관리가 뒷받침된다는 전제하에서다. 스타를 꿈꾸는 낭자들도 큼지막한 떡잎을 피웠다. 올 2월 아스타나-알마티동계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낸 노선영(22·한국체대), 김보름(정화여고), 박도영(덕정고·이상 18)이 쑥쑥 성장하고 있다. 아시아와 세계 수준과의 격차는 분명하지만 어린 나이에 뚜렷한 목표까지 생겼으니 못할 것도 없다. 중·장거리에 강점이 있는 선수들이라 개인전은 물론 호흡이 중요한 여자 팀추월에서도 충분히 메달을 노릴 만하다. 주니어월드컵 500m·1000m 부문에서 2~3위권의 성적을 거둔 김현영(17·서현고)도 올 시즌 성인 무대 출격을 준비 중이다. 놀라운 기록 단축을 보여주는 고병욱(21)은 이승훈과 함께 장거리의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고, 하홍선(20·이상 한국체대) 역시 중·장거리의 차세대 기수로 관심을 끌고 있다. ■ 쇼트트랙 노진규 “안현수 뒤 이을 황제는 바로 나” 쇼트트랙은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의 ‘효자 종목’이다. 스파르타 훈련으로 탄탄한 기술을 갖추었고 영리한 작전까지 더해져 쇼트트랙 최강국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 동계올림픽은 곧 쇼트트랙과 같은 말이었다. 밴쿠버동계올림픽까지 쇼트트랙이 따낸 메달만 37개(금 19·은 11·동 7)에 이른다. 외국에서 “한국은 여름에는 양궁하고 겨울에는 쇼트트랙 하나 봐.”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차원이 다른 클래스다. 시즌마다 대표선수가 물갈이되는 탓에 평창의 기대주를 섣불리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누가 뽑히더라도 본전치기는 하리라는 믿음이 있을 뿐이다. ‘황제’ 김동성(31)-안현수(26)-이호석(25·고양시청)의 뒤를 이을 차세대 에이스로는 현재 노진규(19·한국체대)를 꼽을 만하다. 2011 국제빙상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에 오르며 개인 종합우승까지 차지했다. 타임레이스(일정 구간의 속도로 선발하는 방식)로 치러진 선발전에서 태극마크를 단 터라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노진규는 시니어 데뷔 시즌부터 무대를 평정하며 외국 선수들의 ‘견제 대상 1호’로 떠올랐다. 현재 나이를 감안하면 2014년 소치올림픽에 이어 2018년 평창올림픽까지 노릴 만하다. 지금은 패기로, 2018년에는 노련함으로 무장될 예정이다. 지난해 여중생으로 선발전을 1위로 통과한 김담민(16·부흥고)도 2010~11시즌 월드컵대회와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대회를 경험하며 향후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스키·썰매·컬링 등 “초특급 기회… 이번엔 빛 반전 보여주마” 동계올림픽 전체 금메달(92개) 중 절반(46개)을 차지하는 스키 종목도 안방에서의 반전을 꿈꾼다. 알파인스키는 1998년 나가노올림픽 21위가, 스키점프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단체전 8위가 최고 성적이다. 메달권과는 엄연히 격차가 있는 셈이다. 국제스키연맹(FIS)에 등록된 한국 선수는 230여명으로 저변부터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지만 올해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올림픽에서 희망을 쐈다. 김선주(26·하이원)가 알파인스키 2관왕, 정동현(23·한국체대)이 슈퍼복합 금메달, 이채원(30·하이원)이 크로스컨트리 프리스타일 금메달을 차지했다. 밴쿠버올림픽에서 활약했던 모굴스키의 서정화(남가주대), 스노보드의 김호준(CJ인터넷·이상 21) 등도 기량을 갈고 닦는다면 충분히 정상권을 두드릴 수 있다. 세계 수준과 격차는 분명히 있지만 ‘홈 어드밴티지’가 있다. 밥 먹듯 연습했던 익숙한 코스에서 경기를 치르는 건 공식, 비공식 연습을 통해 몇 번 슬로프를 타보는 게 고작인 외국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다. 실전마다 가파른 슬로프에서 지레 겁먹었던 선수들은 안방에서 자신감 있게 활주하며 기량을 100% 발휘할 수 있다.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등 아직 걸음마 단계인 썰매 종목도 국내 경기장이 완공되면 세계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해외를 떠돌며 전지훈련을 하던 대표팀이 실전이 치러질 코스에서 연습하며 감각을 유지한다면 ‘0.01초 싸움’에서 이변을 꿈꿀 수 있다. 컬링도 전략 종목으로 꼽을 만하다. 손이 섬세하고 두뇌 싸움에 능한 한국이 육성할 가치가 있는 종목이다. 세계 랭킹 13위의 여자컬링은 지난해 아시아태평양선수권에서 밴쿠버 동메달을 딴 중국을 물리치고 우승하며 가능성을 발견했다. 약체로 평가받는 아이스하키 역시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프로야구] 1799일만의 선발… KIA 한기주 ‘아쉬운 패전’

    KIA 한기주가 프로야구 1군 마운드에 오른 건 약 2년 만이었다. 지난 2009년 9월 25일 광주 넥센전에 등판했었다. 657일 전 상황이다. 선발 등판은 2006년 8월 9일 대전 한화전이 마지막이었다. 1799일 전이다. 14일 한기주가 광주 두산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경기 전 애국가가 울릴 땐 혼자 고개를 숙였다.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패전이었다. 3이닝 동안 2안타 3볼넷 2실점했다. 1-2로 뒤진 4회초 차정민으로 교체됐다. 경기는 두산이 KIA에 11-2로 이겼다. 사실 오랜만의 등판 치곤 나쁘진 않았다. 직구 최고 152㎞를 찍고 평균 140㎞대 후반을 유지했다. 변화구 각도도 좋았다. 다만 좌우 제구력에 문제가 있었다. 한기주는 “개인적으론 만족스럽다.”고 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지점이다. 사직에선 롯데가 한화에 4-3으로 신승했다. 롯데 사도스키는 6과3분의2이닝 7안타 무실점했다. 5승째다. LG-SK(잠실), 넥센-삼성(목동) 경기는 비로 취소됐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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