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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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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씨 등과 더이상 대화 않겠다”/명동성당 경 신부

    ◎“철수요구 묵살… 경찰 막을 명분 없어”/사복경관 문화관 앞 진입,동태 살펴 경갑실 명동성당 수석보좌신부는 20일 하오 9시30분쯤 성당 안 사제관에서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27)와 인권위원장 서준식씨를 1시간 동안 접견한 뒤 기자들과 만나 『번번히 약속을 깨는 사람들과는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경 신부는 『교회가 은신처를 제공한다는 것은 죄지은 사람을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강씨 등이 농성을 벌이는 것은 은신의 의미가 아닌 성당건물의 점거』라면서 『성당에서 나가 줄 것을 몇 차례 요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철수하지 않으면 이제는 경찰진입을 막을 명분이 없다』고 밝혔다. 경 신부가 강씨 등과 나눈 대화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강씨가 20일 이후 검찰에 자진출두하겠다는 의사를 번복하고 계속 농성을 벌이며 성당측이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이날 하오 10시30분쯤 사복경찰관 30여 명이 강씨 등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성당 안 문화관 앞까지 들어와 동태를 살폈으며 경찰이 밤에 문화관 앞에 배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이 들어오자 성당 안 농성자들은 재빨리 셔터문을 내리고 경찰진입에 대비했다. 경찰은 『사복경찰관 30여 명을 배치한 것은 수배자들을 강제연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압박감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 외언내언

    프로야구 선수들의 히로뽕 상용 구속은 다시 한 번 마약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경기력의 향상이나 압박감 해소를 위해 손을 댔다는 이들의 핑계를 멀쩡한 선수들이 흉내나 내지 않을까 두렵다. 유명선수들의 관련이 드러나게 될 경우 청소년들에게 미칠 파문이 걱정이다. ◆구속된 장명부씨는 그가 재일교포 출신인데다 한때 화제의 인물이었다는 데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일본 프로야구계에서도 한때 날리던 선수가 성적 부진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히로뽕을 가까이 하게 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어렵지 않다. 한 일본 TV와의 인터뷰에서 『프로선수는 스스로 자신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프로정신」의 중요함을 누누이 강조하고 『머물고 있는 곳이 바로 고향』이라고 서울에서의 새 삶을 자랑했던 그가 그 프로정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김일융 투수와 비교된다. ◆현재 일본 프로야구의 다이요 훼일스팀에서 일본명 니우라 히사오(39)로 통하는 김은 바로 그 프로정신에 투철해 재기에 성공한 좋은 실례. 대담하지 못해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져 대성하지 못한다는 평을 듣던 그가 한국에서 돌아간 뒤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함으로써 팬들을 열광시켰던 것. 당시 일본 매스컴에서는 『니우라는 프로정신을 몸에 익혀 돌아왔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김 자신도 『프로정신은 바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뤄진다』고 말해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그런 프로의 세계에 히로뽕 침투는 막아야 한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엄청나고 스타급 선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우상처럼 되고 있다는데서 오히려 이들 선수들은 건전한 생활로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것을 소홀히 할 때 프로 스포츠의 존재이유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각 구단에서도 다시 한 번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마약의 확산을 막는 것. 지속적인 단속과 계도로 뿌리를 뽑아야 하는 것이다.
  • 프로야구계 뒤흔든 “히로뽕강타”/장명부·성낙수 구속에 따른 실태

    ◎“경기력 향상·압박감 해소에 좋다” 손대/스타급의 복용사실 드러나면 큰 파문 22일 검찰에 구속된 장명부씨(41) 등 프로야구선수 출신의 히로뽕 상습복용사건은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뤄야 할 스포츠세계에서 경기력의 순간적 향상을 위해 마약류인 히로뽕의 힘까지 빌리고 있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은 특히 지난달 경찰에 구속된 신경외과원장 신영우씨(44) 등 부유층의 히로뽕 상습복용사건에 이어 발생,우리 사회에 마약이 얼마나 깊숙히 침투해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구속된 장씨는 검찰에서 보류선수로 남아 있던 87년 12월부터 함께 구속된 성낙수씨(34)의 권유로 히로뽕에 손을 댔다고 진술했다. 장씨에 이어 술집에서 알게 된 김 모씨(45) 백 모씨(34) 등과 어울려 김씨의 아파트와 여관 등으로 돌아다니며 히로뽕을 물에 타 마시고 주사기로도 맞아왔다는 것이다. 히로뽕의 효력에 대해 장씨는 검찰에서 『히로뽕을 복용하면 몸이 가뿐해지고 마음이 편안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고 다소 효과가 있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성씨는 『빙그레 이글스에 있을 때인 지난 86년 4월 히로뽕을 투약하고 삼성 라이언즈와의 야간경기에 나섰다가 패전투수가 돼 히로뽕이 경기력 향상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성씨는 특히 『빙그레 이글스에 있을 때 함께 선수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이민간 박찬씨의 권유로 히로뽕에 손을 대개 시작했다』고 진술,프로야구세계에 히로뽕 복용이 널리 퍼져 있으리라는 의혹마저 낳게 하고 있다. 프로야구계 주변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선수들 사이에 경기력 향상이나 압박감의 해소 등을 핑계로 히로뽕을 복용하는 일이 잦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또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우리나라 프로야구계의 간판스타들인 K모·J모 선수 또한 히로뽕을 복용했을 가능성이 크며 이 때문에 이들이 다른 구단으로 방출됐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어 이들의 히로뽕 복용사실이 밝혀질 경우 프로야구계는 물론 또 한차례 사회전반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장씨는 69년 일본 돗도리현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일본프로야구의 명문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난카이 호크스 등에서 투수로 활약하다 국내 프로야구 발족 이듬해인 83년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했다. 장씨는 그해 시즌에서 30승을 올리는 등 맹활약을 했으나 거친 경기 매너와 언사로 코칭스태프와 불화가 잦았으며 그 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86년 빙그레 이글스로 이적된 뒤 재계약을 맺지 못해 보류선수로 남게 되면서 마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장씨는 88년 2월부터는 코치로 변신,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코치로 일했으며 지난해 10월 롯데를 떠난 뒤 최근에는 뚜렷한 활동없이 모 스포츠일간지에 야구관전평을 쓰고 있어 과거 프로야구선수로서의 화려한 명성이 점차 퇴색해가는 인상이 짙었다. 성씨는 76년 경북고가 고교야구를 제패할 때의 주역투수로서 경희대를 거쳐 82년 프로야구 창설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면서 눈길을 끌었으나 기대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86년 1월 빙그레 이글스로 이적한 성씨는 87년 1월까지 1년 동안 선수생활을 한 뒤 프로야구계를 떠났으며 그해 8월부터 모 대학 야구부 코치로 일해왔다. 장씨와 성씨는 쇠퇴기에 있던 시절 빙그레 이글스에서 만나 서로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하면서 가까이 지내게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 명지대 유 총장 혼수상태/「강군 장례」로 과로… 자택서 졸도

    ◎서울대병원 입원 명지대학교 유상근 총장(69)이 강경대군의 장례가 끝난 지난 19일 하오 자택에서 졸도,서울대학교 병원 내과 중환자실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으나 의식불명인 상태이다. 유 총장은 강군 사건 이후 강군의 장례문제로 학생들과 마찰을 빚는 등 격무와 정신적인 압박감에 시달려오다 강군의 장례식이 끝나자 뇌출혈을 일으켜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 후세인의 모험…“조기 지상전 유인”/이라크는 왜 카프지를 기습했나

    ◎“전격선공”… 침체된 군 사기 만회작전/다국적군 전력 탐색·「겁주기」 분석도 지난달 17일 걸프전쟁이 발발한 이래 다국적군의 계속된 공습으로 땅속에 움츠려있기만 하던 이라크군이 첫 기습선제공격을 가하고 나섬으로써 걸프전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걸프전쟁의 제2라운드라 할수 있는 지상전이 이라크의 선제공격으로 그 서막이 오르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이라크는 30일 이번 공격이 「지상전의 첫 신호탄」이라고 선언했으며 이번 공격은 지난달 26일 후세인대통령 주재로 열린 혁명최고회의에서 계획했던 것이라고 발표,그동안 몇차례 있었던 우발적인 교전상황과는 전혀 성질이 다른 것임을 시사했다. 다국적군의 전력탐색을 위해 행한 것으로 보이는 이라크군의 이번 기습공격은 이라크 지상군의 전력과 다국적군의 허점을 한꺼번에 노출시킨 듯하다. 이라크 지상군병력은 31일 하오 다국적군의 대규모 반격으로 퇴각하기는 했으나 교전 이틀동안 치열한 시가전을 벌이며 격렬히 저항,그 규모에 비해 전력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이라크는 이번 공격에 구식 T55탱크와 장갑차 등만을 동원했는데도 불구하고 사우디국경 공격에 성공함으로써 다국적군 지상방어망은 허점을 드러냈다. 현지 소식통들은 이라크가 29일 야음을 틈타 카프지내 정유시설에 미사일공격을 가한 뒤 투항을 위장해 국경을 넘어 진격해 왔다고 전해 국경지역을 방어하고 있는 사우디군과 다국적군과의 교신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이라크의 이번 공격은 본격적인 지상전에 대비한 탐색전의 성격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들은 후세인대통령이 본격적인 지상전이 벌어질 것에 대비,다국적군의 전략과 작전지휘체계 등을 사전에 탐색,사전준비를 갖추기 위해 이같은 모험을 감행했다고 지적한다. 이들 전문가들은 또한 이번 공격은 다국적군의 연이은 공습에 따른 이라크 국내 민심동요를 막고 지상전에서의 「작은 승리」로 침체된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취한 조치라고도 풀이한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의 기습공격은 조기 지상전을 유도하려는 후세인의 복선이 깔린 계획된 전략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이라크는 개전이래 다국적군의 계속된 공습으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엄청난 군전력의 손실을 맛보았다. 비록 핵심부대의 전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지 모르나 기타 지상전을 위한 병참·보급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 지기 때문에 공군력에만 의존하며 지상전 태세가 미비한 다국적군의 허를 찔러 조기에 지상전을 유도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후세인대통령의 의도를 간파한 미국은 이번 공격에도 불구하고 조기 지상전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가 이번 공격을 지상전의 첫 시작이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계획표에 따라 전쟁을 수행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0일 미 백악관은 『이라크군의 기습공격이 지상전의 개시를 뜻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이라크 기습공격으로 미 해병 12명이 사망한 이 시점에서 미국은 이라크가 언제든지 다시 공격해 올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과 함께 국내의 반전분위기를 고려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돼 지상전 개시시기를 예정보다 앞당길 가능성은 보다 높아졌다. 더욱이 이라크의 이번 공격은 단순히 지상군만을 동원했던 것이 아니라 이라크해군 전함 6척까지 동원된 수륙양명 작전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은 장차 다시 있을 이라크군의 선공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본격적인 조기 지상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남쪽 언론은 「학습용」이 아니다(사설)

    「통일축구」 제2차전이 서울서 열리고 있는 동안 평양 중앙방송이 전했다는 「남측 취재기」는 우리를 답답하고 우울하게 한다. 『도로 양편에 수많은 탱크들이 포신을 쳐든 채 배치되어 있었다』든가,『우리(북한) 선수단을 환영하려는 시민을 골목 안으로 끌고가는 요원 모습도 있었다』는 대목,또는 만찬장에서 『일부러 우리 선수(북측)를 낯선 사람틈에 앉혀 정신적 압박감을 주었다』는 보도기사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필수 무슨 곡해인 것 같아 마주앉아 속시원히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 보도의 전체적 맥락을 보면 그렇게 풀어볼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모든 「곡해」가 실은 의도적인 것인 듯하기 때문이다. 남쪽의 경우 「통일축구 2차전」은 『있는 그대로의 일상』 속에서 열리고 자연발생적인 대응만을 하고 있다. 남쪽의 계획이 그렇다는 것은 북쪽이 알고 있었어야 할일이고 틀림없이 알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군부대가 거기 있으면 있는 그대로,학교가 거기 있으면 있는 그대로 일과를 진행하고,생활하던 시민이 지나가던 북측 선수가 눈에 띄어 손을 흔들면 흔들 수 있고 그럴 생각이 없으면 안흔들 수도 있었다. 일부러 그림자도 없이 감춰버리지도 않았거니와 환영객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지도 않았다. 아주 중요한 것은 「동원」할 뜻이 있어도 남쪽의 시민들은 동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손을 흔들거나 반가워하며 탄성을 올린 사람들은 1백% 자발적인 것이다. 평양의 중앙방송 보도중 절벽처럼 깜깜하게 체제의 차이를 실감하게 되는 대목은 「어용 언론」 운운한 부분이다. 이 말은 남쪽의 언론이 통제하에 있다는 해석을 묵시적으로 나타내려함인 모양이지만,그 역을 또 같은 보도기사 내용이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임진각으로 가려던 범민족대회 추진본부환영단과 학생을 당국이 가로막은 「내막」을 제1라디오의 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제1라디오만 공영방송인 KBS라디오다. 그들 말대로 『일제히 평양회담을 비난하도록』 통어할 수 있는 「어용 언론」이 있다면 으레 그 안에 포함될 KBS라디오가 「내막」을 보도했다는 표현은 모순이 아닌가. 남쪽의 언론은 당이나 체제,정부 또는 특정의 어느 개인이나 집단에도 「복무」하지 않는다. 따라서 남쪽 언론은 「인민의 학습용 교재」도 아니다. 단지 국민의 「알 권리」에 봉사하고 「표현의 자유」를 누릴 뿐이다. 그러므로 「진실보도」만이 최상의 가치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통일축구」는 「통일로 가는 장정」중의 한 소로일 뿐이다. 『통일을 향한 열망의 시금석』이라고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다. 또한 이번 「통일축구」의 왕래는 어디까지나 공식 당국에 의해 합의되고 주선된 것이다. 그런데도 공식 주선이나 정당한 언론의 태도는 부정하고 이쪽의 반체제 활동가만을 눈에 불을 켜 찾고 그들의 언행만을 부각시키려고 애쓰는 것이야말로 상대방의 「체제비판」이라는 것도 우리가 지적하고 싶은 말이다. 중요한 것은 북측 언론의 그런 태도까지 남쪽 언론의 거울에는 낱낱이 비친다는 사실이다. 학습의 기능도,통제의 기능도 하지 않는 우리 언론을 남쪽 국민은 자율적 역량으로 충분히 섭취하고 있다는 것을 통일의앞날을 위해 북측도 깊이 인식해두어야 할 것이다.
  • “남측서 무례한 손님 접대”/평양 중앙방송,「통일축구」 취재기

    ◎“환영나온 시민 골목으로 끌고 가고/어용언론선 평양회담 일제히 비방” 북한은 23일 제2차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리는 것과 때를 같이해 한국측이 서울을 방문한 북측 선수단에게 무례한 손님대접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용신문」을 동원해 북한을 비방ㆍ중상하는 등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저해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이날 상오 7시 「보도」(뉴스)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에 참가할 북측 선수단 일행이 판문점에서 서울에 오는 동안 도로양편에 수많은 탱크들을 배치했으며 전민련과 전대협의 환영행사를 저지하고 북측 선수단을 환영하려는 시민들을 요원들이 골목 안으로 끌고 가는 등 무례한 손님대접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21일 저녁 김우중 한국축구협 회장이 주최한 만남에 대해서도 북측 선수들을 생소한 사람들 속에 앉힘으로써 그들에게 정신적 압박감을 주었다고 비난했다. 북한 중앙방송의 주요 「보도」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북통일축구경기를 위해 서울을 방문한 우리 축구선수단과 그 일행은 첫 시작부터 불미스러운 일에 부딪쳐 불쾌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판문점에서부터 서울에 이르는 근 2백리의 구간에는 남녘 겨레의 심정을 반영한 환영구호들도 적지 않게 걸려있고 손을 흔들며 환영하는 각 계층 인민들의 모습도 보였으나 이에 정반대되게 불신과 반목을 고취하는 일들도 우리 선수단의 면전에서 벌어져 그들의 가슴마다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졌다. 무엇보다도 우리 선수단과 일행은 판문점 남측 지역인 임진각으로부터 문산에 이르는 구간에서 「반갑습니다. 북에서 오신 선수단 여러분 한핏줄 한겨레」라고 쓴 환영구호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도로 양편에 수많은 탱크들이 포신을 쳐든 채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가슴들이 섬뜩했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우리 공화국 북반부의 근로자들과 체육인들은 지난 9일 남북통일축구경기를 위하여 평양을 찾은 남녘 축구선수들을 통일의 사절로 맞이하였고 혈육의 정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우리가 제1라디오의 보도를 통해 경찰이 삼송리검문소 등지에서 임진각으로 가려던 범민족대회추진본부 환영단과 학생들을 가로 막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내막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 선수단을 환영하려는 시민들을 골목 안으로 끌어가는 요원들의 모습도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눈에 띄곤했는데 이런 광경에 부딪칠 때마다 우리의 가슴들은 분노와 비감에 휩싸였다. 반목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예절없는 손님대접은 21일 저녁에 있었던 남측 축구협회 회장의 만찬석상에서도 드러났다. 이날 남측은 우리의 나어린 선수들의 좌석을 상대방의 선수들이 아닌 사람들 속에 정해 놓았다. 특히 우리를 불쾌하게 하다 못해 격분까지 자아내게 한 것은 반목을 조성하는 자들이 우리 선수단의 도착을 기다렸다는 듯이 어용신문ㆍ방송들로 하여금 우리를 비방ㆍ중상하는 포문을 열게 한 것이다. 어용신문들에 평양시내 5만명 청년학생들이 출연하는 대집단체조 「일심단결」을 시비하는 글이 실렸는가 하면 어용언론인들은 학생소년궁전에 어린 소조원들이 평화를 절규하고 반핵구호를 외친 것도 시비의 대상으로 삼고 임수경 학생의 석방을 요구해 나선 것도시비의 대상으로 삼았다.
  • 한반도에 「교차승인」 기운 감돈다/북한·일본 급속접근의 파장

    북한이 27일 일본에 국교정상화 협의를 제의,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과의 수교는 「2개의 조선」을 인정,분단을 고착화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해온 북한이 갑작스레 태도를 돌변,수교협상을 제의하고 나온 데 대해 갖가지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접근하고 있는 데서 오는 고립감 탈피가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히고 있으나 그렇다면 과연 북한이 「2개의 조선」 반대정책을 포기했느냐는 점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의 태도변화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시각을 정리해본다. ◎도쿄의 반응/“수교 앞세워 경협흥정 치중” 의구심/한·소 수교 견제 전술적 전환 시각도 북한의 전격적인 대일 수교제의는 일본에도 큰 충격파를 던졌다. 전혀 「예상밖의 사태」로서 각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번 제안의 배경에는 어떤 판단이 작용했는가,일본 외무성을 비롯한 관계전문가들은 그 저의 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외무성은 자민·사회 양당 북한방문단과 동행한 가와시마 유타카(천도유) 아시아국 심의관으로부터 상세한 귀국보고를 들은 뒤 대응책을 결정할 방침이다. 27일 평양에서 개최된 북한·일본간의 사상 첫 정부레벨 접촉인 외교 실무담당자 협의에서의 제안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천용복(북한 외교부 부부장)=곧바로라도 국교정상화 교섭을 개시하자. ▲가와시마 유타카=그렇다면,(북한의) 방침이 변했다는 것이냐. ▲천=그렇다. ▲가와시마=지금까지 한반도에 2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것은 분단을 고착화시킨다고 반대해오지 않았는가. 동·서독은 분단국가이면서도 통일국가가 되었다. 게다가 북과 남을 2중 승인하고 있는 국가가 84개국이나 되지 않는가. 일본 외무성은 이같은 북한의 대일정책 전환의 요인으로서 다음 3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한국의 활발한 북방정책에 의한 소련·동구제국과의 눈부신 관계진전에 압도되어 있는 점. 둘째 어린이들의 영양부족마저 지적되고 있는 심각한 경제적 궁핍. 셋째 지난 9월 초순 평양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으로부터 한국과의 국교수립방침을 통고받고 충격을 받았다는 점 등이다. 북한의 정책전환에 대해 일본 외무성 수뇌는 27일 밤 『북한의 지금까지의 공식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을 기초로 자주·자립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일본 정부의 한반도정책에 대해 『한국 일변도로 북한에 적대정책을 취하고 있다. 분단고착화를 위한 한·미군사동맹에 가담하고 있다』는 등 격렬하게 비판해왔다. 이번 일본의 북한방문단이 평양에 도착한 당일인 지난 24일 밤 조선 로동당 주최 환영연에서도 국제부장인 김용순은 인사말을 통해 「2개의 조선」을 합법화하는 것에 의한 한반도 분단고착화는 결코 허용할 수 없다며 종전의 원칙론을 고수하고,한국과의 국교수립을 서두르고 있는 소련을 격렬히 비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일 국교정상화 제안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같은 북한이 일본측에 대해 국교정상화 교섭을 제의한 것은 더이상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한편,『통일의 깃발은내리지 않지만 당분간 정책을 변경,경제중심으로 힘을 쌓아 한국에 대항하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여기에 김일성 주석의 78세라는 나이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이 건재해 있을 때 정책을 전환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김 주석이 이달 중순 중국을 방문했던 것도,한국과의 경제관계를 착실하게 확대해나가고 있는 중국에 대해 『최소한 중국만은 배신하지 않도록 못을 박아두려 했던 것』(외무성 간부)이 아닌가 보고 있다. 북한에 있어서 「2개의 조선」 불인정은 「국시」와 같은 것이다. 그 근간에 영향을 미치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문제와 대일 국교정상화는 응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북한은 남북대화가 진행되고 있던 다나카(전중) 내각시절인 지난 72년을 계기로 『한·일기본조약의 파기가 북한·일본 국교정상화의 전제』라는 방침을 완화,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유연한 자세를 취했던 일도 있다. 그러나 그후 관계개선은 기대했던 것 만큼 진전되지 않았으며,78년 일본 사회당의 아스카다 이치오(비조전일웅) 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국교정상화를 거부,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제와서 느닷없이 국교정상화를 제의한 배경에 대해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한·소 국교수립을 앞두고 한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전술적 전환」이라는 것이다. 30일 뉴욕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소외무장관회담에서 양국의 국교수립은 결정적인 사실로 되어 있으며,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과의 경제교류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균형감각」을 취해 서방측과의 관계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국제적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후계자인 김정일에의 정권이양이 원활하게 될 수 없다는 고도의 정치판단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견해도 유력하다. 또 외무성에는 『북한측에는 제18후지산마루(부사산환)호 석방과 때를 맞춰 일본측으로부터 배상·청구권 문제 등 경제협력의 구체적인 내용을 조속히 끌어내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차가운 시선도 없지 않다. 게오(경응)대오고노기 마사오(소차목정부)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북한의 진의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을 시작함으로써 배상을 빠른 시일내 받아내려는 것이 아닌가. 일본은 국교정상화가 안된 상태에서는 북한에 보상금을 지불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으며,정상화 교섭 없이는 대규모 경제협력을 얻기도 힘들다. 따라서 우선 국교수립을 목표로 한다는 형식을 내놓았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이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고 일본과 국교를 맺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한편 시즈오카(정강)대학 이즈미 겐(이두견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지난 연초부터 줄곧 일본과의 관계개선 준비를 해왔다. 일본의 국내정치가 당시 안정되지 못해 시간이 걸렸던 것뿐,의외성은 없다. 북한측은 배상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교수립이 전제가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북한의 논리로는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더라도 「2개의 조선」을 인정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일본이 북한을 적시하지 않고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라도 국교를 맺는 것은 가능했다.북한은 기본자세를 변치 않고 있다. 일본이 통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오해」가 풀린다면 분단고착화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국교수립이라는 것이 된다. 다만 교섭은 쉽사리는 진전되지 못할 것이다. 우선 배상 문제에 대해 일본 국내의 합의조성이 필요한데,거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일본 정부는 또 한국의 반응에도 배려하며 교섭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대응/핵협정 가입 등 평화보장장치 선결/남북한 대화 고려,속도조절을 희망 한소 양국이 30일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양국 수교 문제를 공식 협의하는 등 한소 수교가 임박한 가운데 북한이 일본측에 오는 11월 국교정상화 협의를 공식 제의함으로써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질서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방북중인 일본의 가네마루(김환신) 전 부총리 일행이 『북한과 수교 전이라도 배상 문제를 정치적 결단으로 해결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일·북한 관계개선이 급진전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정부는 일·북한 관계 급진전 관련보도에 대해 깊은 우려의 뜻을 일본 정부측에 전달하는 한편 이 보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강력한 대일 대응조치를 강구할 방침이어서 일·북한 관계개선 문제는 한일간 외교마찰을 불러일으킬 소지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대북한 관계개선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일·북한 접근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범위내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특히 남북대화와 관계진전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7·7선언에서 북방정책 추진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여건조성을 위해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정부는 북한이 대남 적화통일노선을 포기하거나 핵안전협정에 가입하지 않고 남북 관계개선이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일·북한간 급속한 접근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리어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일·북한이 접근하게 된 근본 동인은 한소 수교인 것으로 외교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즉 한소 수교로 인해 일본과 북한의 「충족욕구」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과거 독점적인 동맹국이었던 소련을 잃게 된 북한은 일본을 경제협력 파트너로 인식하게 됐으며 일본은 동북아의 주도권을 소련에 뺏기지 않기 위해 「북한카드」를 이용하게 됐다고 관측된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남북간 경제협력을 모색하지 않고 일본과 긴밀한 경제협력을 하게 되면 결코 남북 문제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관계자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본이 경제적 활로를 찾고 있는 북한을 이용,핵안전협정 가입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한일관계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일본이 대북접근에 적극적인 이유로는 또 ▲미·중국 수교의 닉슨쇼크(70년초) 이후 북한과의 수교는 미국보다 먼저 하겠다는 내부방침 ▲경제력에 상응한 국제정치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압박감도 들 수 있다. 더욱이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한반도 4강중 내심 한반도 통일에 가장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일본인 점을 감안할 때 「북한 카드」를 활용해 정치대국으로 운신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하겠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북한 관계개선을 장기적으로 볼 때는 북한의 개방과 개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일·북한 관계 급진전과 관련,우려하고 있는 핵심은 현상황에서 북한에 일본의 돈이 들어가면 중단기적인 면에서 북한의 대화·개방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소련의 원조 중단,중국의 대북 경제협력 한계성에 비추어 북한은 지금 상당한 경제적 곤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이런 때에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돈이 들어가면 오히려 전반적인 대외개방보다는 김일성 노선의 고수 강화쪽으로 기울어질 공산이 큰 것이다. 우리 정부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대목도 없지 않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북한과 수교전 배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언한 것은 지난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보상 문제를 오랜동안 어렵게 처리했던점을 감안할 때 한일 관계를 고려치 않은 처사라는 지적이다. 북한측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제의에 대해 『그동안 견지해온 「1개의 조선」 정책의 변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북한이 교차승인과 2개의 조선 정책으로 전환했는지는 오는 10월16일 제2차 평양총리회담에서 그들이 어떤 태도로 나오는지를 보면 그 허구여부가 확연히 드러날 것으로 관측된다. 앞으로 일·북한 관계개선 속도조절 문제는 한일 양국간 첨예한 외교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이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면 대북 관계개선 속도를 상당히 늦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미 북한의 조속수교 의사를 읽은만큼 일단 대북관계 속도를 조절한 뒤 한소 수교 진전과정을 지켜보면서 대북 관계개선을 추진할 것으로 외교관계자들은 관측하고 있다.〈박정현 기자〉 ◎일 자민·사회당 대표 방북 4박5일/수교원칙엔 접근… 배상액수 등 난제/예상밖 성과로 되레 큰 짐 떠안은 셈 「가네마루 북한방문단」은 너무 많은 것을 안고 돌아왔다.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와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부위원장을 각각 단장으로 하는 일본의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의 출발 당시의 계산은 제18후지산(부사산)호 선원 2명의 석방과 쌍방의 연락사무소 설치만 합의되면 대성공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4일부터 28일까지 4박5일간의 짧은 교섭과정에서 대표단은 스스로 당황할 만큼 많은 것을 얻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국교정상화」 교섭 문제가 공동성명에까지 포함됐다. 가네마루 단장은 묘향산 초대소에서 이틀밤을 머물며 김일성 주석과 3차례의 회담을 가졌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외교적 성과」로 치부한다는 것은 피상적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성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북한측의 치밀한 「전술적 전환」에 타케트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성과」란 하나의 목표를 놓고 대등한 입장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한쪽이 다른 목적을 갖고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은,아무리 상대편이 원하고 있던 사항이라 하더라도 성과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상대방 전략에 대한 「대응의 필요」라는 짐만 지는 셈이다. 북한은 종래의 대일 파이프라인이었던 일본 사회당을 제치고 집권 자민당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조준,전략의 카드를 마음껏 펼쳤다. 국제적 고립상황의 탈피,경제적 핍박의 해소,한국에 대한 견제 등 필요에 의한 카드였다. 어쨌든 이번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의 북한 방문결과는 엄청났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물론 국교정상화 제의였다.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북한당국자들이 27일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과의 수교를 제의해온 것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때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나 『원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다만 『한반도 전체의 안정,긴장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국·미국과도 의견을 교환해가며 교섭을 진전시킨다』는 입장이다. 이번 북한 방문에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자민당의 첫번째 대표단 단장으로서 김일성 주석과 회담했다. 이 자리에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과거 식민지 지배를 사죄하는 가이후(해부)총리의 자민당 총재 명의 서한을 전달하고 충분히 보상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으며,북한·일본 쌍방은 전면적으로 관계를 개선,새로운 우호관계를 수립한다는 데 인식의 일치를 보았다. 28일 하오 발표된 북한 로동당과 자민·사회 3당의 공동성명에는 국교정상화 교섭을 양쪽 정부에 요청한다는 것을 비롯,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와 반성을 명기했으며 보상의 실현을 위해 정부간 교섭을 개시한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또 일본 정부발행 여권에 북한 제외조항을 삭제한다는 사실,도쿄∼평양간 직행편 개설,연락사무소 설치,통신위성의 이용 등 현안도 명기됐다. 전문 8장으로 된 이 공동성명은 당초 28일 상오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보상 문제에 의견이 엇갈려 난항을 거듭,이날 하오 5시 넘어 조인됐다. 기초작업은 자민당의 이시이(석정) 대표단 사무총장,사회당 야마하나(산화) 부서기장 및 북한 로동당 김양건 국제부 부부장 등 사이에 27일 밤부터 28일 상오 8시에 걸쳐 철야로 진행됐으나 결론을 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가네마루 다나베 양단장과 로동당 김용순 서기가 대표자회의를 열어 조정했다. 이날 문제가 된 보상 문제에 대해 자민당측은 『앞으로 양국 정부간의 교섭을 개시,하루라도 빨리 실현에 노력한다』는 취지로 표현하자는 데 대해 북한측은 『실행해야 할 것은 당장 해야 한다』며 직접적 표현을 고집,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했다. 북한측은 대일 국교정상화를 제안해놓기는 했으나 교섭의 본격화로부터 국교수립까지의 타임테이블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보상 문제의 조기타결과 확약을 받으려 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가네마루 북한방문단」은 많은 과제를 안고 돌아왔다. 특히 한일관계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은 『몇년 전 같았으면 한국으로부터 맹렬한 반발을 받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런 일은 없겠으나,한국에 대한 배려 때문에 「황신호」의 서행운전을 해야 할 것은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북한 관계의 급속한 접근은 한국과의 관계는 물론,한반도 정세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는 미국·소련·중국 등 주변제국의 주목을 끌 것은 틀림없으며,일본 정부 자체로서도 일·소 관계 등과 관련되어 극히 어려운 외교교섭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외언내언

    오래전부터 우리네 가정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청소년들의 비행과 이에 관련된 가출이다. 툭하면 집을 나가 소식을 끊거나 말썽을 부리고 있어 많은 부모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특히 요즘은 인신매매를 위한 유괴나 납치로 인한 강제성 가출이 많아 가정은 물론 사회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가출은 시대가 변화하면서 그 내용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70년대초까지만 해도 도시를 향한 농촌 청소년들의 무작정 상경이 사회문제를 제기했으나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소외감을 느낀 노인가출,신흥종교에 심취한 부녀자들의 집단가출등 다양하다. 또 소녀가출이 급증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요즘의 상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이 청소년가출. 지난 한햇동안의 비행학생 1만9천7백20명 가운데 가출학생은 전체의 30%인 5천9백42명이나 되고 있다. 비진학 학생들까지 포함하면 상단한 숫자에 달할 것이 틀림없다. 또 가출청소년중 소녀의 경우를 보면 지난 83년에는 6%에 불과하던 것이 88년에는 50%로 크게 늘어났다. 상당부분이 윤락ㆍ미혼모 발생과 연결돼 있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실종여고생이 40일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인신매매범에 의한 납치여부로 딸을 가진 부모들의 애를 태웠으나 생존사실에 안도하는 그 이상으로 이번 가출은 또다른 아픔을 남겼다. 이 여고생이 미군상대 사창가인 「용주골」에 몸담고 있다가 왔기때문이다. 더욱이 이곳에는 구인광고를 낸 레스토랑의 소개로 가게 됐다는 데서 못된 어른들의 수심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더욱 충격을 주는 것은 가출원인. 입시준비로 인한 정신적 압박감 때문이라는 데서 현실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입시생이 고층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고,병원에 입원하고,각종사건에 끼어들고… 보통문제가 아니다. 누구의 잘못인가. 가정과 사회가 하나로 진학위주의 교육풍토를 개선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데에 온 힘을 쏟는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어른들의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 실종 여고생 40일만에 가족품에

    ◎“입시 지겨워 가출”… 『기지촌』생활 20대 여자 “취직”유혹… 사창가 넘겨/전단보고 이웃주민이 찾아 신고 속보=등교길에 실종돼 인신매매범에 의한 납치의혹을 불러일으켰던 여고생 김모양(18서울S여고3년 4월18일자 본보 사회면 머리기사 보도)이 집을 나선지 40일만인 28일 하오 경기도 파주군 파주읍 연풍리 미군상대 사창가인 「용주골」에서 한 시민에게 발견돼 가족들의 품속으로 돌아왔다. 김양은 일단 입시준비에 따른 정신적 압박감 때문에 가출한 것으로밝혀졌으나 가출뒤 취업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사창가의 한 포주에게 넘겨진 것으로 드러났다. 김양의 가족들은 지난달 19일 상오6시30분쯤 김양이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선뒤 실종되자 이틀뒤인 21일 경찰에 신고 했으며 실종 한달만인 지난 18일 본지에 크게 보도되면서 인신매매범의 소행추정을 둘러싸고 TV특집프로가 마련되는 등 세간의 관심을 끌어왔다. 김양은 경찰에서 『평소 몸이 약해 체력장 시험이 크게 걱정됐고 대학입시를 앞두고 가족들의 『공부압박이 견딜수 없어 가출했다』고 말했다. 김양은 실종 이틀전인 지난달 17일 하오3시쯤 모잡지에 구인광고를 낸 서울관악구 신림동 M레스토랑과 S레스토랑에 전화를 건뒤 하오5시쯤 이곳으로 찾아 갔다는 것이다. 이어 18일 하오1시쯤 김양은 S레스토랑에서 20대여인을 만나 이력서를 건네준뒤 가출을 결심,다음날인 19일 상오6시30분쯤 학교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 19일 하오2시쯤 이 20대 여인은 김양을 만나 『내삼촌인데 좋은곳에 취직자리를 알선해 줄것』이라면서 김양을 30대 한 남자에게 인계했고 이남자가 이날 하오7시쯤 김양을 데리고 택시로 「용주골」에 도착해 30대가량의 한 여자 포주에게 넘겼다는 것이다. 김양은 이 사창가를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창가와 이웃주점을 상대로 일수놀이를 하던 유모씨(40대 가량)가 서대문경찰서에서 배포한 「사람을 찾습니다」란 전단을 보고 김양을 확인,경찰이 김양을 찾아냈다.
  • 13포인트 빠져 또 최저치/연3일 내리막… 지수 「7백55」기록

    ◎노사분규 여파… “증시불안 팽배” 증시 밑바닥이 또다시 통째로 흔들렸다. 25일 주식시장은 약세 기조의 압박감이 가중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현 장세에 대한 불안 심리가 만연돼 시시각각 하락세가 깊어만 갔다. 개장 첫지수는 마이너스 1.3포인트 였으나 이후 한번도 반등하지 못한채 종일 비슷한 속도의 장중속락세에 압도당해 13.40포인트나 밀려나고 말았다. 이에따라 종합주가지수 7백60대가 허물어져 종가 지수는 7백55.07까지 떨어졌다. 이 종합지수는 17개월여전인 88년 11월14일(7백53.57)이후 최저수준이며 4일장 전(4월20일)에 기록된 최근 최저지수를 12.38포인트의 큰폭으로 하향돌파한 것이다. 종합지수는 7백대추락(4월14일)이후 한때 7백90대까지 올라서기도 했으나 연 10일장 동안 7백대에 묶여있다가 이날 7백50대까지 침몰하게 됐다. 8백붕괴의 상처가 아물기는 커녕 한층 심각한 주가붕락 사태 돌입이 우려되고 있다. 이날 하락으로 주가는 3일 연속 25포인트 미끄러진 것이며 하락폭이 5∼6포인트에 그친 전 2일장과 달리 이날은 폭락장세로 치달리고 말았다. 이틀동안 자제기운이 역연하던 하락세가 투자자들의 불안심리 팽배에 따라 아래로 분출되고 만 셈이다. 그러나 이날 시장 주변여건은 전보다 악화되었다고 볼 수 없었다. 증권사사장단이 증시안정기금을 마련키로 합의했으며 올 경제성장률이 예상을 웃돌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이날의 멈출줄 모르는 내림세는 그전까지 매도를 꾹눌러 참아왔던 물량이 다수출회된 반면 매수세는 늘어나지 않은데서 나온 것이다. 결국 이날의 관심사인 증시안정기금이 증시의 불안정을 가속화시킨 셈이다. 세로써 남아있을 때는 달리 기댈 데라곤 없던 투자자들의 기대를 끌어모아 주가를 나름대로받쳐 왔으나 일단 모습을 드러내자 그 순간을 매도시점으로 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만 것이다. 기금내용이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투자심리의 밑바탕이 허약하고 시장에너지가 취약하다는 증거이다. 기금설립이 가시화되어 버리자 사람들은 「바라볼 것」을 잃어 버리면서 증시기조 자체를 보다 민감하게 느껴 불안해진 것으로 여기에는 KBS사태ㆍ현대중공업파업등 노사분규와 여당내분등 정국의 불안정이 한술 더 떴다. 거래량은 전날보다 14만주 늘어난 5백32만주였으며 6백64개 종목이 내린 반면 25개 종목만이 올랐다.
  • 사랑은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다/황산성 변호사(서울시론)

    ◎사리사욕만 쫓는 옹졸함 버려야 새해가 왔습니다. 1990년도는 힘벅찬 새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말처럼 달리고 또 쉴틈없이 달리면서 방향을 잘 잡아야 하는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는 새해입니다. 고르바초프의 기치아래 바웬사를 낳은 폴란드를 위시하여 동ㆍ서독의 해빙,체코ㆍ루마니아 등 동구권의 급격한 변화를 뉴스로 듣기만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무슨 변화가 있을지에 대한 감도 잡지 못하는 역사적 악순환과 우를 범하는 변방국가로 또 낙인 찍히고 싶지는 않겠지요. ○판도 뒤바꾼 고르바초프 게다가 90년대 말은 지구종말론의 심리적 압박감도 큰 부담이 됩니다. 실제로 인류 모두가 공동으로 자연에 대한 중대하고도 심각한 문제인식과 애착을 쏟지 않으면 지구는 죽어가고 있는 형편 아닙니까. 죽기 전에 지구본을 거꾸로 뒤집어 놓고 『여기 한반도가 상고머리 명당자리요!』 큰소리 한번 쳐 보아야 할 터인데요. 과소비 무절제 분규몸살 수출부진 경기침체 등 방정맞은 단어들은 내동댕이 치고 이 한반도에서 심호흡이라도 마음놓고쉬다가 후회없이 한번 살다 갑시다. 이 시대에 위인이 나타났습니다. 고르바초프에 대한 감탄과 찬사가 막히지를 않습니다. 저도 그를 가장 존경하고 그가 추진하는 모든 개혁들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는 사명감도 투철하고 행동력ㆍ결단력이 있으며 통찰력도 뛰어나고 거기에다 희망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는 현대인의 상상을 초월하고 무궁무진한 변수로서 역사의 판도를 뒤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가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세워나가는 전략이라고 그를 과소평가하는 말도 있습니다만 공산독재정권하에서 혼자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왜 인류애ㆍ자연애ㆍ역사애까지 들먹이며 모험을 할까요. 신의 무기를 동원했다,선의 대가이다라는 신출귀몰한 표현으로 그를 경탄해마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정신은 「사랑」이 바탕일 것입니다. ○「위인」 없는 우리의 현실 그는 천하대국의 지도자 부시의 기를 죽일 수도 있지만 부시가 열등의식을 가질까봐 매사를 양보하는 자세로 협상에 임했다니 그는 사랑이 출렁출렁 넘치는 멋쟁이 사나이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만한 활동무대만 주어지면 그와 같은 위인이 없었는줄 아십니까. 절대군주체제하에 세종대왕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생활의 편의시설과 문자를 만드셨습니다. 이순신장군은 자신의 지위와 영광보다 그 위에 조국과 백성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공사간 위난을 극복하는 인내를 후손에게 귀감으로 보이셨습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는 사랑을 실천한 인물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젊은 세대가 우러러 존경할 만한 위인을 찾지 못하고 고 박종철군 고 이한열군 등 애석한 죽음에 매달려 있는 안쓰러운 모습을 아직도 지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배움에 한계가 없는 학원에서 세계가 다음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김일성을 쳐다보는 몰상식한 우리의 젊은 세대를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새해가 왔다고 해서 목표를 지나치게 크게 설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장애자,집없는 사람들,철거민들,고아,노인들,근로자들 등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대해 주시고 희망있는 장래를 보여주시면 됩니다. ○「희망있는 장래」 제시를 그리고 곳곳마다 정의와 공평이 그 의미대로 살아 움직이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매사에 「사랑」이라는 잣대로 빗대어 보면 우리의 역사는 변화 발전할 것이며 우리 모두가 위대한 삶을 맞이할 것입니다. 한반도의 지형을 토끼모양에서 달리는 말모양으로 바꾸어 봅시다. 잽싸게 달리다가 낮잠자는 모습이나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교활한 사기꾼 모습을 지우고 저 북한의 백두산까지 아니 연변까지 희망차게 달리는 말을 그려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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