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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용비리 無관용’ 사정 바람… 금융권 물갈이 인사 신호탄

    ‘채용비리 無관용’ 사정 바람… 금융권 물갈이 인사 신호탄

    금감원·국정원 자녀 등 16명 특혜 ‘서금회’ 꼬리표·계파 갈등 시각도 그야말로 ‘일파만파’다. 금융감독원에서 시작된 금융권 채용비리 후폭풍이 우리은행 최고경영자(CEO)의 사퇴로 번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두 차례나 ‘채용비리 엄단’을 지시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은행은 지주사 전환 등 각종 사업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의 해묵은 계파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채용비리 의혹 수사가 금감원, NH농협금융지주에 이어 우리은행까지 확산되면서 전 정권에서 임명한 금융권 CEO들이 물갈이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지난해 11월 우리은행의 숙원 사업이던 민영화를 성공시켜 올 3월 연임에 성공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각광받은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출신이라는 눈총이 있었으나 실적과 업적을 고려할 때 순항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예상했다. 그러나 오는 13일 민영화 1주년을 앞두고 채용비리 의혹에 발목이 잡혔다. 의혹 제기 직후 이 행장은 관련 임원 등 3인을 직위 해제하고 특별검사팀을 꾸리는 등 쇄신에 나서면서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그러나 금융당국은 지난달 29일 우리은행 자체감사 중간보고서를 검찰에 통보하고 금융 공공기관과 유관단체를 대상으로 채용비리 전수조사를 착수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같은달 23일 ‘채용비리 엄단’을 지시한 뒤 나온 사후적 조치라고 볼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채용비리 척결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압박감을 느낀 이 행장이 사건 발생 16일 만에 사퇴라는 조기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우리은행 채용비리 의혹의 발단은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이 지난달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16년 우리은행 신입사원 공채 추천 현황 및 결과’라는 제목의 문건을 공개하면서다. 문건에는 총 16명의 이름과 함께 국가정보원과 금감원 직원 등 해당 인물의 추천인이 적혀 있었다. 우리은행이 ‘블라인드 면접 방식이어서 특혜채용은 있을 수 없다’고 해명하자 심 의원은 “제보에 따르면 면접관들이 연필을 사용하게 한다”며 “최종판단할 때 다 지우고 고치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용비리가 드러난 배경으로는 우리은행 내부의 계파 갈등이 지목된다. 우리은행은 1998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병해 탄생했다. 은행 대 은행의 대등 통합이라 현재까지도 출신에 따른 갈등의 골이 깊다. 인사 때마다 출신 은행을 고려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이순우 전 행장에 이어 이 행장까지 두 번 연속 상업은행 출신이 행장이 됐고 이 행장이 연임까지 하자 한일은행 출신의 불만이 높아졌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한일은행 출신이 채용 관련 내부문건을 유출했을 것이라는 관측들이 나왔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정부는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이 행장 사임 등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내부 분란에서 시작됐다”고 귀띔했다. 이번 사임으로 우리은행은 예금보험공사 잔여지분 매각과 지주사 전환을 미뤄야 한다. ‘내홍 수습’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금융위원회 고위관계자는 “행장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신임 행장 선임 절차가 신속히 진행돼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도 18.78%의 지분을 가진 우리은행의 대주주로서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예보와 함께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했다. 금감원이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는 가운데 이 행장이 사퇴하자 금융권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과 금융회사 CEO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이뤄진 만큼 최근 검찰 수사가 그 ‘신호탄’이란 해석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 정권 사람’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채용비리 의혹이 어디까지 번질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단독] 男 41분 vs 女 200.4분…남편들 “다 그렇게 살아”

    [단독] 男 41분 vs 女 200.4분…남편들 “다 그렇게 살아”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서울신문 특별기획 2017년 대한민국 과로 리포트 <4>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짓눌린 워킹맘 236만명의 국내 워킹맘(미성년 자녀를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은 하루 두 번 출근한다. 낮에는 회사가, 밤에는 가정이 일터다. 가사노동 강도가 직장업무와 비교해 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실상 ‘투잡’을 뛰는 셈이다. 1990년대 말 900만명 남짓이던 여성 경제활동인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고용 불안정 탓에 빠르게 늘어 1152만명(2016년)이 됐다. 하지만 육아는 여성 몫이라는 인식은 여전하다. 일과 가정을 모두 잘 챙기길 기대받는 여성들은 일상적 과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심각하면 우울증 등 건강 악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슈퍼우먼’이 되길 강요받는 사회에서 쓰러질 듯 버티는 워킹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복직해봤자 보상 없는 야근과 철야근무가 계속되겠죠. 아기도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싶은데 둘 다 잘할 자신이 없네요.” 중소 음향업체에 다니는 워킹맘 장인실(가명·36)씨는 최근 퇴사를 결심했다. 가계 소득이 반 토막 나는 일이라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엄마이자 훌륭한 직원이 동시에 될 방법은 없어 보였다. 육아휴직을 1년가량 쓸 때도 사내 분위기가 싸늘했는데, 직장에 복귀하면 얼마나 더 눈치를 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장씨는 “4년 일했지만 업무량으로 보면 6~7년치는 해낸 것 같다”면서 “오전 7시에 출근해 새벽 2시 넘어 퇴근하는 날이 1년에 절반 이상이었는데 아이를 키우며 그렇게 살 순 없다”고 말했다. 장씨의 고민은 특별하지 않다. 가정 등을 챙기려 일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은 190만 6000명(54세 이하·2016년 기준)이다. 반면 어떻게든 버텨가며 일과 가정을 모두 도맡는 엄마들도 많다. 이들을 기다리는 건 무한노동이다. 15년차 직장인이자 두 초등학생의 엄마인 이인영(가명·39)씨의 주당 노동시간은 약 75시간이다. 회사 업무와 가사노동 시간을 합친 수치다. 법정노동시간(52시간·연장근로 포함)을 훌쩍 넘는다. 숨 돌릴 틈 없이 하루를 보내는데 늘 시간이 부족한 ‘시간거지’다. 매일 새벽 5시 30분 일어나 대충 씻고 저녁까지 먹을 음식을 넉넉히 만든다. 야근이 많아 아이들의 저녁상을 미리 봐놔야 해서다. 딸과 아들을 깨워 밥을 먹인 뒤 회사에 도착하면 오전 8시. 정규 근무시간 내 업무를 끝마치려면 의자에서 일어날 틈이 없다. 칼퇴근하는 날엔 오후 7시가 조금 넘어 집에 도착하는데, 작업복인 앞치마를 두르고 가사노동자로 변신해야 한다. 저녁상 차리기, 설거지, 청소·빨래에 아이들 숙제 봐주기, 다음날 준비물까지 챙겨주고 나면 벽시계 시침은 ‘12’를 가리킨다.아내와 남편 모두 일하는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팀플레이’다. 하지만 남성의 가사 참여는 여전히 부족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 ‘맞벌이 여성의 일·가정 양립 갈등과 건강영향 연구’(2013년)를 보면 맞벌이 남성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은 41분으로 여성 200.4분과 격차가 컸다. 4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 이효진(가명·33)씨는 “남편은 빨래, 설거지, 분리수거 등 단순한 집안일을 주로 한다”면서 “가짓수만 따지면 가사분담이 잘 되는 것 같지만 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고 털어놨다. 아이 로션은 무엇을 살지, 동네 소아과는 어디가 좋은지, 저녁상에 올릴 음식 재료는 무엇으로 할지, 심지어 어느 은행 금리가 높은지 등 정보를 찾고 고민하는 일은 아내 이씨의 몫이다. 서울신문이 기혼남성 129명에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 빨래, 청소, 분리수거 등을 한다는 응답은 많았지만 육아를 주도적으로 한다는 비율은 12.6%뿐이었다. 이씨는 남편에게 간혹 힘들다고 하소연하지만 “다 그렇게 산다”는 공허한 말만 돌아온다. 이런 현실에서 국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이 ‘1.17명’이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국가는 이런 저출산 탓에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인구절벽을 우려하지만, 당장 절벽 앞에 내몰린 워킹맘은 이를 걱정할 여유조차 없다. “야근, 잔업만 없어도 당장 둘째를 갖겠다”고 말하는 워킹맘이 적지 않다. 이효진씨는 “나라에서 아이를 책임져준다고 해서 낳았는데 당장 맡길 어린이집조차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과로와 시간 부족 속에서 워킹맘의 몸과 마음엔 피로가 쌓여간다. 기혼여성 222명에게 ‘워킹맘’하면 떠오르는 감정을 물었더니 ‘정신없다’(67.6%·복수응답), ‘부담된다’(59.9%), ‘두렵다’(23.9%), ‘불안하다’(16.7%) 등 부정적 어휘를 주로 선택했다. ‘정신없다’를 택한 한 30대 여성은 “24시간 쉴 수 없다. 아이가 울거나 깨면 같이 깨고 화장실 가고 물 마시는 것까지 다 도와야 한다. 아이가 없는 시간에는 직장과 집안일, 장보기 등을 챙기느라 1분 1초라도 멈추면 아이와 가사, 직장 중 하나가 무너진다”고 말했다. ‘부담된다’를 택한 또 다른 30대 여성 응답자는 “워킹맘은 일하고 있지만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는 부담감과 미안함을 항상 가진다”고 했다. ‘외롭다’고 답한 40대 여성은 “난 슈퍼우먼도 아니고, 되고 싶지도 않은데 이해받지 못해 외롭다”고 토로했다. 자신을 챙기지 못한 채 과로하다 보면 마음의 병을 앓기도 한다. 4살과 3살 자녀를 키우는 김신애(35)씨는 ‘독박 육아’(누구의 도움없이 아이를 홀로 키우는 육아) 탓에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재택 근무하며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남편은 자정이 다돼 귀가하는 탓에 육아와 집안일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러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김씨는 “첫째를 낳고 우울증에 걸렸는데 그게 호르몬 변화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8주가 지나도 호전되지 않아 지금껏 약 먹고 있다”면서 “산후 우울증이 아닌 육아 우울증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 하루 종일 있다 보면 “감옥에 갇혔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가사노동을 도맡는 ‘전업맘’은 워킹맘보다 노동량이 덜하지만 일로 인정 못받는 ‘그림자 노동’을 해 고립감이 크다. 기혼여성들은 전업맘 하면 ‘힘들다’(50.9%·복수응답)거나 ‘우울하다’(49.1%), ‘외롭다’(45.0%), ‘불안하다’(38.7%) 등 암울한 감정을 먼저 떠올렸다.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 40대 여성 응답자는 “지금은 자녀양육과 가사로 바쁘지만 아이들이 성장한 뒤 어떤 커리어(직업적 성취)도 남지 않을 것이 우울하고, 남편 벌이만 믿기엔 불안하다”고 답했다. 다른 30대 여성은 “사회적으로 격리된 느낌이다. 분명히 노는 건 아닌데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사회 생활하는 친구나 남편과도 괴리된다”고 말했다. 저출산이라는 재앙 앞에 일하는 엄마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제도가 생겼지만 현실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이고은 공동대표는 “육아휴직하려면 잘릴까 봐 불안해해야 하는 게 너절한 현실”이라면서 “특히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여성은 임신하고 출산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당연한 수순처럼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노동부와 건강보험공단이 연계해 모성보호 위반 사업장을 수시로 점검하는 ‘스마트 근로감독’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별기획팀 5sjin@seoul.co.kr 유대근·김헌주·이범수·홍인기·오세진 기자 서울신문은 기업과 사회가 노동자에 과로를 강요하거나 은폐하는 현실을 집중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독자들이 회사에서 겪은 과로 강요 사례나 과도한 업무량을 감추기 위한 꼼수, 산업재해 승인 과정에서 겪은 문제점 등 부조리가 있었다면 dynamic@seoul.co.kr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 [스포츠&스토리] 음지에서 뜁니다, 평창서 후배들 웃도록

    [스포츠&스토리] 음지에서 뜁니다, 평창서 후배들 웃도록

    고기현, 솔트레이크 쇼트트랙 金 강릉 아이스아레나 운영 조율 운동 선수들에 은퇴 뒤 모델 제시 박진습, 근대 5종·크리켓 뛰어 좌석 안내·인력 배치 등 맡아 “경기장 안팎 선수 위해 노력”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25일 기준 107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수들은 메달 색깔을 바꿀 시간이라는 믿음 아래 막바지 체력과 적응 훈련에 한창 땀방울을 쏟는다. 못지않게 음지에서 땀을 흘리는 이들도 많다. 한때 누구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세계 대회에서 국민 마음을 쥐락펴락하곤 했다. 지금은 주인공들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경기장 곳곳을 돌며 올림픽 준비에 여념이 없다. 바로 평창조직위원회에서 일하는 김윤만(44), 김소희(41), 변천사(30) 등을 비롯한 20명의 국가대표 출신 베뉴(경기장) 매니저들이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최연소 금메달리스트 고기현(31)과 전 크리켓 국가대표 박진습(27)을 만났다.선수 마음은 선수 출신들이 잘 알아서 그럴까.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500m에서 금메달, 10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고 매니저는 선수들의 부담감이 가장 클 무렵이라고 했다. “그 긴장감과 압박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해 본 사람은 알잖아요. 그런데 지나치면 몸과 마음이 모두 무거워지고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올림픽이라고 해서 특별한 의미를 주지 말고 평상시처럼 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그렇게 못해 성적이 들쭉날쭉이었다고 털어놨다. “대회를 앞두고 긴장하는 스타일이어서 특히 가족들이 보는 국내 대회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쇼트트랙 후배 선수들을 만나면 이야기를 해주기보다 많이 들어줘요. 긴장하지 말라고 말이죠.” 올림픽 예상 성적에 대해서는 후배들에게 부담을 줄까 봐 “잘할 겁니다”라고 했지만, 메달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커서인지 “잘해야 한다”고 웃었다. 그는 지난해부터 조직위 빙상 베뉴운영부에서 일하고 있다.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이 열리는 강릉 아이스아레나 운영과 관련해 매니저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이슈를 조정·협의한다. 오케스트라로 치면 지휘자 역할이다. 그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팀원과 상의해 계획안을 꾸리고, 방향을 정해 나가는 게 참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선수와 조직위 간 소통도 맡는다. “선수 불편이 없도록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조직위와 경기장 사정을 알다 보니 다 들어줄 순 없습니다. 역지사지가 쉽지만은 않네요.” 그는 개척자로서 후배들에게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열여섯 살 때 금메달을 땄고 부상으로 조기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10대 때 인생의 단맛, 쓴맛을 모두 봤다. “다섯 살 때 스케이트를 탄 뒤로 올림픽 금메달이 유일한 목표였어요. 올림픽 이후 삶에 대한 설계가 없었던 거죠. 너무나 긴 인생이 남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어깨, 팔꿈치를 크게 다쳤으니 암흑기였죠. 은퇴 이후 뭐든 닥치는 대로 해야 했어요. 경기위원을 지냈던 연맹에서 쇼트트랙 담당자로 재취업도 했습니다. 이젠 바닥을 치는 게 예전처럼 무섭지 않습니다.” 박 매니저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대학에서 근대5종 선수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선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켓 국가대표로 뛰었다. 스키 강사 아르바이트를 한 인연으로 경기도 알파인스키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지금은 경기장 좌석 안내를 비롯해 관리인력 배치, 유실물 센터를 운영하는 베뉴운영기획부에 몸담았다. 인터뷰 마지막에 소원을 곁들였다. “우리 선수들이 평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도록 경기장 안팎에서 열심히 뛸게요.” 평창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18번홀 ‘극장샷’… 제주 강풍 잠재운 토머스

    18번홀 ‘극장샷’… 제주 강풍 잠재운 토머스

    레시먼과 생애 첫 연장전 돌입 18번홀 환상 트러블샷 명승부 저스틴 토머스(24)가 미국 남자프로골프(PGA) 투어에 나선 뒤 첫 연장 승부 끝에 웃었다. 토머스는 22일 제주 서귀포시 나인브릿지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국내 첫 PGA 투어 ‘더CJ컵@나인브릿지스’(총상금 925만 달러·104억원) 최종 라운드에서 마크 레시먼(34·호주)을 누르고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토머스와 레시먼은 합계 9언더파 279타로 경기를 마쳐 연장전을 벌였다. 바람과의 사투, 연장 18번홀의 환상적인 트러블샷이 더해지면서 드라마틱한 명승부가 연출됐다. 제주 바람은 이날도 거셌다. 태풍 ‘란’의 영향으로 시속 40㎞의 강풍이 불었고 바람의 방향도 수시로 바뀌면서 타수를 까먹은 선수들이 속출했다. ‘데일리 베스트 스코어’가 전날보다 1타 준 4언더파 68타(팻 페레즈)에 그칠 정도였다. 잘 치는 것보다 실수를 덜 해야 했다. 16번홀까지 공동 선두였던 토머스와 레시먼은 17번홀(파3)에서 바람 방향을 잘못 읽어 모두 티샷이 짧아 보기를 범했다. 18번홀(파5)에선 서로 회심의 승부샷을 뽐냈다. 레시먼이 핀까지 261야드를 남겨 놓고 환상적인 3번 우드샷으로 먼저 2온에 성공해 버디를 잡아냈다. 이에 토머스도 5번 우드샷으로 두 번 만에 그린에 올려 버디로 응수했다.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 연장 18번홀에선 압박감에 모두 티샷 실수를 저질렀다. 토머스는 러프에 빠졌고, 레시먼은 한 술 더 떠 카트 도로에 들어갔다. 하지만 레시먼은 돌담과 나무 사이를 꿰뚫은 트러블샷의 진수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승부는 두 번째 연장 홀에서 갈렸다. 레시먼의 두 번째 우드샷이 워터헤저드에 빠진 반면 토머스의 두 번째 우드샷은 그린 가까이 붙었다. 결국 버디를 잡은 토머스가 2017~18시즌 첫 우승을 신고했다. 통산 7승이자 PGA 아시안 투어 3승째다.그는 “(첫날을 뺀) 지난 3일 동안 강한 바람 때문에 힘겨웠고 인내심을 갖고 차분하게 경기한 게 주효했다. 특히 오늘 18번홀에서 좋은 우드샷이 나왔다”고 말했다. 대회에 앞서 전망한 우승 스코어과 관련해 “날씨가 좋으면 16~20언더파, 바람 불면 8~12언더파로 낮아질 것으로 봤는데 오늘 우승 스코어(9언더파)를 보면 내 예상이 맞았다”며 웃었다. 토머스는 11번홀에서 갤러리가 티샷한 공을 건드리는 다소 황당한 경험을 했다.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던 그는 “웨지샷을 잘해서 버디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갤러리 문화에 대해 “연장을 두 번이나 치르면서 에너지가 떨어졌을 때 팬들의 뜨거운 응원이 힘이 됐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국 선수로는 김민휘(35)가 합계 6언더파 282타 4위로 가장 앞섰다. 10번홀 어프로치샷 실수에 따른 더블보기가 뼈아팠다. 안병훈(26)은 버디를 6개나 잡았지만 1·13번홀 트리플보기와 16번홀 보기로 타수를 1타 까먹어 4언더파 284타 공동 11위에 그쳤다. 김경태(31)가 2오버파 290타로 공동 28위, 노승열(26)과 최진호(33)가 4오버파 292타로 공동 36위에 자리했다. 최진호는 “제주 바람은 (PGA 투어 선수보다) 우리가 익숙한데 그 점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서귀포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최경주 “한국서 첫 PGA… 후배들 꿈 갖게 될 것”

    최경주 “한국서 첫 PGA… 후배들 꿈 갖게 될 것”

    배상문 “감각 회복” 김시우 “톱10” 리슈먼 “KPGA 경험이 도움 돼” 미국남자프로골프(PGA) 투어 ‘더CJ컵@나인브릿지스’(CJ컵) 개막을 이틀 앞둔 17일 한국 선수들은 국내 최초의 대회 개최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선전을 다짐하는 출사표를 던졌다.이날 서귀포시 CJ나인브릿지 골프클럽에서 연습 라운드를 마친 최경주(47)는 공식 인터뷰에서 “예전 이곳에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를 개최하면서 여자 후배들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 PGA 투어 대회가 열리니 남자 주니어 선수나 후배 프로들도 힘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꿈을 갖게 될 것이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CJ나인브릿지 골프클럽은 대대적인 개조 작업을 거쳐 코스 난이도를 PGA 투어 눈높이에 맞췄다. 내리막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르막 경사인 이른바 ‘한라산 브레이크’(그린 착시현상), 제주의 강한 바람 등이 승부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227개국에서 TV중계를 하며 10억명이 지켜볼 전망이다. 군 전역 후 세 번째 대회 출전인 배상문(31)은 “이번 대회가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대회”라고 밝혔다. “실전 감각 회복이 급선무인데 그래도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보고 그걸 모아 보면 잘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다짐했다. 김시우(22)도 “어느 대회보다 더 잘하고 싶다. ‘톱10’에 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허리 부상이 나아져 좋은 플레이로 보답하겠다”며 도전장을 던졌다. 올해 2승을 포함해 통산 PGA 투어 8승을 거둔 ‘지한파’ 마크 리슈먼(34·호주)은 “다시 (한국을) 방문할 수 있어 기쁘다”며 코리안투어를 경험한 게 PGA 투어 활동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2006년 한국남자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 뛰며 그해 지산리조트 오픈 우승을 차지했던 리슈먼은 “한국은 필드가 좁아 덕분에 공을 좀 더 직선으로 칠 수 있었다. (우승을 위한) 나흘간의 압박감을 견디는 것도 도움이 됐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레임 맥다월(38·북아일랜드)은 “한국의 안보나 상황에 대해 주최 측에서 많은 정보를 보내줘 걱정하지 않고 왔다. 훌륭한 선수들도 참여하고, 필드도 굉장히 좋다”고 말했다. 갤러리도 개막 전부터 대회장을 대거 찾으면서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PGA 스타인 저스틴 토머스(24·미국)를 비롯해 아담 스콧(37·호주), 이안 폴터(41·잉글랜드)의 연습 샷을 보며 “와∼”라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CJ컵은 총상금 925만 달러(약 104억원), 우승상금 166만 달러(약 18억원)로 메이저대회(디오픈 총상금 1025만 달러)에 버금간다. KPGA 투어 대회 총상금(평균 7억 6000만원)의 13배를 웃돈다. 페덱스컵 랭킹 60위권 38명을 포함해 78명이 출전한다. 우승 트로피는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모티브로 해서 제작돼 출전선수 78명의 한글 이름을 담았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메디컬 인사이드] 추워지면 ‘쥐어짜는 심장’…고단한 외침을 들어라

    [메디컬 인사이드] 추워지면 ‘쥐어짜는 심장’…고단한 외침을 들어라

    70%가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사망 증상 곧 완화 식도염·위궤양 오해 흡연·고혈압 등 7대 위험 피해야 심장근육에 혈액을 공급해 주는 관상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혀 혈액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을 ‘허혈성 심장질환’이라고 합니다. 지방질이 혈관 벽에 쌓여 딱딱해지는 죽상경화증과 혈전이 주요 원인입니다. 허혈성 심장질환자는 날씨가 쌀쌀해지는 겨울철, 특히 12월에 급증합니다. 기온이 내려가면 혈관이 수축돼 발병 위험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겨울이 오면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히는 ‘급성 심근경색증’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슴을 감싸 쥐며 쓰러지는 모습으로 각인된 질병이지요. 실제로 허혈성 심장질환자의 70%가 심근경색증으로 사망할 정도로 위험합니다.그런데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병은 따로 있습니다. 심근경색증의 전조증상처럼 다가오는 이 병은 잠시 쉬면 증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안심하기 쉽습니다. ‘난 아직 건강하다’고 호언장담하며 운동을 기피하고 흡연과 과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결국 심근경색증으로 죽게 됩니다. 관상동맥이 좁아져 호흡곤란과 가슴 통증이 생기는 ‘협심증’입니다. 협심증 환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비만과 고지방식 위주의 식단, 운동 부족이 주요 원인입니다. 1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협심증 진료 인원은 2011년 57만 2581명에서 2015년 63만 4605명으로 늘었습니다. 2015년 기준 급성 심근경색증 환자가 9만 4577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훨씬 많은 수준입니다. ●무리할 때 생기는 가슴 통증이 신호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증상’입니다. 협심증 증상은 가슴 중심부를 쥐어짜는 느낌으로 시작됩니다. 통증과 압박감은 심장이 위치한 왼쪽 어깨나 팔 안쪽으로 퍼져 나갑니다. 하지만 심근경색증과 달리 증상은 대개 1~2분, 길어도 15분 이내에 사라지기 때문에 식도염이나 위궤양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가슴 통증은 협심증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광제 중앙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스트레스나 정서불안도 가슴을 조이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며 “협심증 증상이 뚜렷이 구분되는 이유는 주로 빠르게 걷거나 계단을 오를 때, 운동을 할 때, 무거운 물건을 들 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평소 담배를 피우는 김진모(63)씨는 3개월 전부터 이런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등산할 때 빨리 걸으면 숨이 차면서 앞가슴이 조이는 느낌이 들고 왼쪽 팔이나 턱으로 퍼지는 느낌까지 들었다고 했습니다. 다만 바위에 앉아 쉬면 증상은 곧 가라앉았습니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아직 완전히 막히진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한 느낌이 든 김씨는 곧바로 병원을 찾아 아스피린 등을 활용한 약물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이 교수는 “만약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점차 통증 시간이 길어지고 심지어 가만히 있을 때도 통증이 나타나다 심근경색증으로 이어진다”고 말했습니다. 40대를 넘기면 협심증 위험이 급증합니다. 허혈성 심장질환자 10명 중 9명은 50대 이상 중·노년층입니다. 동맥경화 진행 속도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흡연,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비만,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 ‘7대 위험요소’를 피해야 합니다. ‘올리브유 같은 식물성 기름은 혈관 건강에 이롭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다른 지방 섭취를 줄이는 기능이 있을 뿐 과식하면 동물성 기름과 마찬가지로 해롭습니다. 호두나 땅콩 등에도 지방이 포함돼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식물성 기름도 과식하면 해롭다 몸속 총콜레스테롤양은 200㎎/㎗ 이하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백질은 지방질이 많은 육류 대신 달걀이나 우유를 통해 적당히 섭취하고 일주일에 3~4회, 하루 30분 이상 운동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과거 달걀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인다는 누명을 썼지만 하루 1개 정도 섭취하면 오히려 대사증후군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과일, 채소, 곡물, 무지방 및 저지방 우유, 생선, 콩, 닭고기를 골고루 적당히 먹는 것도 협심증 예방이나 병의 진행을 막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미 증상이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중하다면 약물 치료와 스텐트 시술을 받게 됩니다. 스텐트 시술은 혈관 내부로 긴 관을 넣고 풍선이나 금속 스텐트를 사용해 좁아진 관상동맥을 넓히는 치료법입니다. 김영학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전신 마취를 하지 않고 요양 기간도 없어 장점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병이 더 진행되면 몸속 혈관을 절제해 심장을 가로질러 이식하는 ‘관상동맥 우회술’을 시행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김 교수는 “최근에는 관상동맥 우회술 성공률이 97% 이상으로 높아져 비교적 안전하게 시행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협심증을 앓고 있다면 응급약인 ‘니트로글리세린’을 갖고 다녀야 합니다. 가슴통증이 생겼을 때 혀 밑에 넣어 녹여 먹거나 스프레이로 뿌리면 서서히 통증이 사라지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사항도 있습니다. 이 약은 습기와 햇빛에 노출되면 약효가 사라지기 때문에 꼭 갈색용기를 사용하고 겉면에 표기된 유효 기간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약을 먹어 증상을 완화했거나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고 안심하는 분들이 있는데 협심증은 평생 관리하는 병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몸 관리를 게을리하면 재발하거나 심근경색증으로 이어집니다. 김 교수는 “스텐트 시술을 받은 환자도 협심증이 같은 자리에서 재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금연과 체중조절, 식이요법, 약물복용, 운동을 평생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단독]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15년간 남은 건 ‘비만’

    [단독]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15년간 남은 건 ‘비만’

    야근→ 수면부족→ 폭식 매일 악순환입사 때 75㎏ 몸무게 어느덧 90㎏간수치·지방·혈당 모두 ‘빨간불’근성으로 버텨라? 망가진 내 몸은? “회사에 헌신한 15년간 남긴 건 건강기록부에 적힌 지방간과 고지혈증뿐이네요.” 중소기업에서 지적재산권 업무를 담당하는 박호영(45·가명)씨는 최근 병원에서 종합건강검진 결과를 받고 가슴이 철렁했다.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간수치, 혈당 등이 모두 정상 범위를 웃돌았다. 정밀검사를 할 필요 없이 거울만 봐도 볼록 나온 배와 퀭한 눈은 그의 몸 상태가 얼마나 악화했는지 한눈에 보여 준다. 15년 전 입사지원서에 적혀 있던 ‘키 180㎝·몸무게 75㎏’이라는 준수한 수치는 사라졌다. 대신 체중계의 화살이 90㎏을 가리킨 지 오래다. 그는 “중소기업을 일터로 택한 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되자’며 앞만 보고 달렸는데 허탈하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과로는 단순히 개인 생활을 빼앗는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건강까지 갉아먹는다. 과로사나 과로자살 등 극단적 사례가 아니더라도 과로하는 직장인 다수는 몸의 이곳저곳이 망가지고 있다. “해가 갈수록 건강기록부에 병이 하나씩 더해진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학계의 최근 연구를 보면 장시간 근로가 비만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결과가 많다”면서 “몸에 포만감을 주는 렙틴 호르몬이 억제되고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그렐린 호르몬이 증가하면서 식욕이 왕성해진다”고 설명했다. # 하루 5시간만 잔 사람, 복부비만율 1.6배 높아 실제 서울대 의과대학 박상민·김규웅 교수 연구팀이 지난 3월 국민건강영양조사(2008~2011년)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수면시간이 하루 5시간 이하면 7시간씩 자는 사람에 비해 복부비만 비율이 1.61배, 전신비만 비율이 1.32배 높다. 연구진은 수면 부족에 따른 호르몬 불균형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미국 국립수면연구재단이 밝힌 연령별 권장 수면시간은 만 26세 이상일 경우 7~8시간이다. 박씨에게도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다. 새벽 2시쯤 잠들어 고작 4시간 눈을 붙였다 일어나는 날이 많았다. 13시간 시차가 나는 미국 지사와 특허출원 등을 놓고 논의할 일이 잦아 취침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박씨는 “보통 자정이 돼야 통화를 할 수 있어 팩스 원고나 이메일을 미리 써놓고 기다렸다가 시간에 맞춰 보내곤 했다”면서 “잠을 못 자니까 계속 피곤하고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게 됐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3~4일 정도는 밤늦게 일을 끝내고 “고생했다”며 동료들과 간단한 술자리를 가졌다. 과로는 비만만 낳는 게 아니다.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등은 과로가 키우는 대표적 질환들이다. 김인아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근로시간이 길어지니 최소 수면시간을 못 지키고 당연히 운동할 체력은 안 되는데 스트레스가 쌓이면 먹는 것으로 푸는 일이 순환한다”면서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콜레스테롤 상승과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등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심하면 우울증… 정신질병 산재도 3년새 48%↑ 장시간 노동은 감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심하면 마음의 병으로 번지기도 한다. 게임 프로그래머인 김모(37·여)씨는 장시간 노동 탓에 우울증을 앓게 됐다. 2010년 게임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김씨는 게임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내놓으라는 상사의 지시에 밤낮없이 일했다. 주어진 시간이 짧을수록 압박감은 커졌다. 그는 “기획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가 순차적으로 업무를 진행하는데 앞 공정이 지연되면 내가 작업할 시간이 확 줄어든다”면서 “그럼에도 회사는 무조건 시간 안에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하니 밥 먹듯 밤을 새우지 않고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근성으로 버티던 김씨도 한순간 일이 버거워졌고 자신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상사에 대한 불만만 쌓였다. 우울감도 깊어져 최근 4개월 사이 서울의 한 자치구 정신보건센터에서 10번이나 상담을 받았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 2012년 내놓은 ‘근로시간이 건강 및 사고에 미치는 영향 연구’ 자료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로자들이 우울증, 불면증을 앓은 경우가 주 40시간 이하보다 각각 2.13배, 1.86배 높았다.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우울증, 불안장애 등 자신의 정신질병이 ‘업무상 재해’라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보험급여를 신청한 경우도 매년 늘어 지난해 125건을 기록했다. 2013년 84건과 비교해 48.8% 늘어난 수치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은 “요즘은 장시간 노동이 신체 건강보다 정신적 차원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고 말했다. 그는 “우울증을 포함한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이 많다”면서 “오래 일하면 스트레스를 받아도 해소할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오빛나라(법률사무소 인정) 변호사는 “일본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스트레스 검사를 매년 1회 이상 시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면서 “검사 결과 스트레스가 높은 것으로 판정되면 사업장은 근로자 신청에 따라 의사와 상담을 받도록 하고 근무지 변경, 근로시간 단축, 심야작업의 축소 등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직원의 정신건강을 체크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에 몰랐다고 발뺌하기 어렵다. # 주당 60시간 땐 심장질환·사망위험 2배 증가 과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뇌·심혈관계 질환이다. 정인철 아주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2013년 내놓은 ‘노동시간과 심혈관계 질환 위험도’ 연구 자료에 따르면 주 60시간을 넘겨 노동하는 집단에서 40~50시간 미만 일하는 집단에 비해 4배 넘는 심혈관 질환이 발생했다. 다른 연구들도 전반적으로 주당 근무시간이 55~60시간 이상일 때 심장질환의 발생 또는 사망위험이 1.5~2.3배 증가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 직업별 질병 리스트 등 예방 시스템 만들어야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동자들이 자신이 아프다는 것, 현장에서 나 자신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실제 병들었을 때 어떻게 구조요청을 보내야 하는지 방법을 알아야 한다”면서 “정부가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을 많이 했을 때 질병으로 이어지는지 직업병 리스트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리스트에 포함된 질병이 발견되면 휴직을 권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팀 bulse46@seoul.co.kr 서울신문은 기업과 사회가 노동자에 과로를 강요하거나 은폐하는 현실을 집중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독자들이 회사에서 겪은 과로 강요 사례나 과도한 업무량을 감추기 위한 꼼수, 산업재해 승인 과정에서 겪은 문제점 등 부조리가 있었다면 dynamic@seoul.co.kr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 출근길 심장마비로 떠난 조진호 부산 감독

    출근길 심장마비로 떠난 조진호 부산 감독

    유망한 지도자로 알려진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 부산 아이파크의 조진호 감독이 10일 출근길에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등졌다. 44세.구단 관계자는 “조 감독이 개인 숙소를 나섰다가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심폐소생술에도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인은 심장마비. 조 감독은 지난해 11월 상주 상무에서 자리를 옮길 때부터 심장약을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감독이 이끄는 부산은 올 시즌 경남 FC(승점 70)에 이어 2위(승점 61)를 달리며 내년 시즌 클래식 승격에 대한 희망을 키우던 상황이었다. 오는 25일에는 클래식 수원과의 대한축구협회(FA)컵 4강전을 앞두고 있어 압박감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부재는 팀에 작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조 감독은 지난 8일 경남과의 경기를 마친 뒤 “내가 책임진다. 분패했지만 앞으로 험난한 과정이 남아 있다. 정신적으로 준비를 잘하겠다”며 플레이오프에 임할 경우의 각오를 전했는데 마지막 인터뷰가 되고 말았다. 고인의 부음은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진행 중이던 클래식 상위 스플릿 미디어데이가 끝나 가는 시점에 전해졌다. 2000년 부천 SK에서 선후배로 호흡했던 조성환 제주 감독은 “이게 무슨 소리냐”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침통해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 함께 출전했던 황선홍 FC서울 감독은 “지금도 심장이 떨린다. 다른 감독은 몰라도 조 감독은 스트레스를 받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쾌활했다”며 그의 죽음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고, 최강희 전북 감독도 “정말 밝은 사람인데 안으로는 많은 것을 쌓아 두고 살지 않았나 싶다. 어떤 식으로라도 스스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에 빈소가 차려졌으며 발인은 12일. 유족으로는 부인과 중학생 딸, 초등학생 아들이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단독] 양·시간만 따지는 과로 기준… 직업별 업무 강도·교대제 등 체계화해야

    정부의 과로 판정 기준에는 ‘업무시간이 발병 전 12주 동안 주당 평균 60시간 이상이거나 4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한 경우’, ‘발병 전 1주일 이내 업무의 양·시간이 평상시보다 30% 이상 많아진 경우’라고만 간략히 적혀 있다. 과로 여부를 결정할 때 ‘업무의 강도나 책임, 휴무시간, 교대제 및 야간근로 여부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돼 있긴 하지만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없어 판정위원의 성향 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이 때문에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탓에 병에 걸리거나 사망했는데도 어떤 노동자는 업무상 재해로 승인받고 누군가는 승인받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업무의 질적 특성을 고려해 과로 여부를 결정하도록 판단 기준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업무 강도 정해진 업무시간 안에 얼마나 쉴 틈 없이 일했는지 판단할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은 “시간제 텔레마케터의 경우 4시간만 일하더라도 상담 횟수를 채우도록 해 놨다. 전화를 빨리 끊어 더 많은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광부는 노동 강도가 높아 하루 6시간만 일하게 돼 있다”면서 “직업별 적정 노동시간 기준을 정하고 이를 넘어선 시간과 강도는 과로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근무 형태 야근이나 교대제 근무는 몸을 곯게 한다. 특히 야간 노동은 정상적인 호르몬의 주기적 변화에 교란을 가져와 수면장애와 심근경색, 비만과 같은 다양한 질병을 일으킨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야간 노동을 납이나 자외선과 같은 2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스트레스 기준 세분화 직장 내 스트레스도 과로 판정 때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다. 오빛나라(법률사무소 인정) 변호사는 “일본은 ‘직장에서의 심리적 부하 평가표’를 만들어 조직문화, 직책에 따른 책임, 직장 내 괴롭힘 등 각각의 스트레스 요인이 노동자 정신건강에 미치는 정도를 ‘상·중·하’로 평가한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이런 판정 지침이 없다”고 지적했다. #개인적 특질 같은 일을 하더라도 건강 상태 등에 따라 피로도는 크게 다를 수 있다. 이 때문에 과로 판정 때 해당 노동자의 신체 조건과 건강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최 활동가는 “동료 운전기사들이 하루에 13시간씩 일한다고 해서 최근에 졸음운전 사고를 냈던 경기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장시간 노동이 과로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며 “개별 노동자가 달라진 업무 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 등에 적응하기 어려운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동자 입증 책임 완화 프랑스에서는 노동자의 사망이 과한 업무 탓인지 여부를 고용주가 입증해야 한다. 반면 우리는 입증 책임이 유가족에게 있다. 그러나 출퇴근 기록, 직장 내 컴퓨터 접속 기록 같은 기본 증거조차 수집할 능력이 유가족에게는 법적으로 보장돼 있지 않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은 “유가족이 사망한 노동자 정보를 기업에 요청하면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5sjin@seoul.co.kr ■특별기획팀 유대근·김헌주·이범수·홍인기·오세진 기자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기업과 사회가 노동자에 과로를 강요하거나 은폐하는 현실을 집중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독자들이 회사에서 겪은 과로 강요 사례나 과도한 업무량을 감추기 위한 꼼수, 산업재해 승인 과정에서 겪은 문제점 등 부조리가 있었다면 dynamic@seoul.co.kr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 무너진 변형 스리백…4실점 ‘모스크바 완패’

    무너진 변형 스리백…4실점 ‘모스크바 완패’

    김주영 2자책골 등 수비 구멍 이청용 2도움·무득점 탈출 위안 내일 모로코 상대 첫승 재도전 2018러시아월드컵 본선을 겨냥한 첫 원정 평가전에서 2-4로 완패한 ‘신태용호’가 10일 모로코를 상대로 첫 승리를 노린다.대표팀은 10일 오후 10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스위스 비엘 비엔의 티소 아레나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6위의 모로코와 대결한다. 2014년 6월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알제리에 2-4로 진 뒤 3년 4개월 만에 같은 스코어의 참패를 기록한 신태용호에는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고 있다. 본선이 8개월 남았는데도 수비 주전을 확정하지 못한 가운데 변형 스리백 실험으로 수비 불안만 키웠다. 김주영(허베이 화샤)이 100초 사이 두 차례나 자책골을 헌납했다. 국내파를 제외하고 해외파만으로 23명의 대표팀을 꾸린 점을 감안해도 최악의 결과다. 그나마 월드컵 최종예선 두 경기 ‘골 가뭄’에서 벗어난 점이 희망적이다. 대표팀에서 처음으로 윙백을 소화한 이청용이 권경원(톈진 취안젠)과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의 득점을 모두 도와 무득점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권경원은 ‘신태용호’에 첫 득점을 선사하고 개인적으로 A매치 데뷔전 데뷔골의 영광을 안고도 김주영, 장현수 등과 수비 불안에 한몫했다. 손흥민(토트넘)은 오른쪽 날개로 78분 출전했지만 1년 넘게 대표팀 무득점 수모를 이어 간 반면 기성용(스완지 시티)이 4개월 만에 부상에서 돌아와 30분여를 뛴 것은 긍정적이었다. 신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이틀밖에 스리백 훈련을 못했지만 첫 실험치고는 잘해줬다”며 “자책골 때문에 권경원과 지동원의 활약이 묻혔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8일 이동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모로코전을 준비할 시간은 9일 훈련 하루뿐이다. 때문에 신 감독에겐 모로코를 상대로 다른 전술을 가동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변형 스리백 전술을 다시 들고나올 수밖에 없다. 변형 스리백은 공격할 땐 최종 수비 라인이 일시적으로 포백으로 바뀌어 4-1-4-1 형태가 되고 수비할 땐 양쪽 윙백까지 수비진에 가담해 5백을 이루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런 전술은 선수들의 높은 이해도를 전제로 해 녹아드는 덴 오래 걸린다. 대표팀은 전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면서 주전을 확정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는데 본선까지 8개월밖에 남지 않아 시간에 쫓기고 있다. 모로코전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 팬들의 신뢰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압박감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도 관건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속보]숨진 도태호 수원 부시장, 뇌물혐의 수사에 압박감 느껴 극단적 선택한듯

    [속보]숨진 도태호 수원 부시장, 뇌물혐의 수사에 압박감 느껴 극단적 선택한듯

    26일 오후 저수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도태호(57)수원 제2부시장은 경찰로부터 뇌물 수수혐의로 수사를 받았으며 검찰에 구속영장까지 신청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도 관계자에 따르면 자살한 도 부시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경찰로부터 지난 25일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 도 부시장은 수원시에서 부시장으로 재직하기 전인 2010년 국토부 기조실장 시절 경기도 지역 건설업자 등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것에 대해 추궁을 받았으며 혐의를 일부 시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찰은 도 부시장에 대해 검찰에 뇌물수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수사에 압박감을 느낀 나머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 중이다. 박현갑 기자 eagleduo@seoul.co.kr
  • 인류를 핵전쟁에서 구한 페트로프 전 중령, 나홀로 죽음 맞다

    인류를 핵전쟁에서 구한 페트로프 전 중령, 나홀로 죽음 맞다

    냉전이 한창이던 1983년 9월 26일 새벽,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옛소련 방공군 중령은 모스크바 외곽의 비밀 군사기지에서 당직 근무 중이었다. 미국의 미사일 기지를 감시하던 위성과 컴퓨터에서 갑자기 경보가 발령됐다. 미군이 미니트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다섯 기를 발사했다고 표시돼 있었다.짧은 시간 페트로프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그가 보기에 이 경보는 위성과 컴퓨터의 오류로 인한 것 같았다. 미국이 소련을 선제공격한다면 미사일을 고작 다섯 발만 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자국 영토의 지상 레이더망에 날아오고 있는 미사일에 대한 경보도 없었다. 하지만 경보가 사실이라면 조국의 존망이 자신의 손끝에 달려 있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관계는 40년을 이어온 냉전 기간 최고조의 긴장 관계였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일컬으며 군비 경쟁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불과 3주 전에는 소련군이 영공에 잘못 진입한 대한항공 007편을 격추시켜 미국 상원의원을 포함한 탑승자 269명이 몰살하는 참사까지 벌어졌던 터였다. 페트로프는 5분 남짓 시끄럽게 울리는 경보 속에서 여러 정보를 차분히 종합한 끝에 경보가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상부에도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 바짝 긴장해 있던 군 간부들이 일제히 보복 핵공격을 지시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오판한 것이었다면 몇분 뒤 미국의 첫 미사일이 소련 땅에 첫 폭발을 일으킬 긴박한 순간이었다. 23분 뒤였다면 모든 것이 파괴돼 “내가 오판했다는 것을 입증할 모든 증거들이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2013년 BBC와 인터뷰를 통해 “직감에 따른 결정이었다. 확률은 50대 50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의 직관은 옳았다. 해당 경보는 위성이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적 미사일로 오인한 탓에 발령된 것이었다. 절체절명의 극한 상황에서 냉철한 판단을 내려 핵전쟁을 막아낸 페트로프는 상부에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추궁당한 뒤 조기 전역됐다.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그의 업적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인류를 핵전쟁의 위기에서 구해낸 페트로프가 지난 5월 19일 홀로 지내던 모스크바 외곽 프리야지노의 자택에서 숨을 거둔 사실이 뒤늦게 지난 18일(현지시간) 알려졌다. 77세. 평소 그의 업적을 세상에 알려온 독일의 평화운동가 겸 영화감독인 칼 슈마허가 지난 7일 페트로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는데 아들 드미트리가 대신 받아 아버지의 죽음을 알렸다. 슈마허는 온라인 등에 알렸고 보름 뒤에야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 등이 이 소식을 전했다. 페트로프는 2014년 자신을 소재로 슈마허가 제작하고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내레이션을 맡은 다큐멘터리 영화 ‘세상을 구한 남자’를 통해 “그건 내 일이었다. 난 그저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 장소에 마침 내가 있었을 뿐이며 그게 전부”라고 담담하게 밝혔다. 심지어 10년을 함께 산 아내조차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고 덧붙였다. 페트로프는 2013년 BBC 인터뷰를 통해 “내가 할 일은 손을 뻗어 전화기를 들고 상부에 보고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며 “마치 뜨거운 프라이팬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엄청난 압박감에 자리에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돌이켰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국무총리실 감사 받은 부여군청 공무원, 숨진 채 발견

    국무총리실 감사 받은 부여군청 공무원, 숨진 채 발견

    충남 부여군청 소속 공무원이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10일 부여경찰서에 따르면 수개월 전 국무총리실 감사를 받았던 한 부여군청 공무원 A씨(6급·53)가 전날 오후 5시 40분쯤 자신의 부모 묘소 인근에서 목매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숨진 A씨를 발견한 그의 후배가 119에 신고했으며, 경찰은 사체 근처에서 A씨가 남긴 유서를 발견했다. 유서에는 “엄마 곁으로 먼저 간다.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을 유서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가족과 지인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다. A씨는 지난 6월 하도급 공사와 관련해 국무총리실 감사를 받았으며 이 탓에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온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커버스토리] “할머니 연세 보면 文정부가 마지막 기회… 끝까지 진실 알릴 것”

    [커버스토리] “할머니 연세 보면 文정부가 마지막 기회… 끝까지 진실 알릴 것”

    “할머니들 연세를 생각하면 이번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 기회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안신권(56) 나눔의집 소장은 8일 “할머니들의 건강이 점점 악화돼 향후 5년 내에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실 것 같아 걱정된다”며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안 소장은 2001년부터 17년째 나눔의집에서 할머니들 곁을 지켜오며 일본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위해 뛰고 있다. 안 소장은 2004년에 별세한 김순덕 할머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안 소장이 나눔의집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세상을 하직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다. 김 할머니는 나눔의집에 사는 할머니들을 이끄는 대장이었다고 한다. 안 소장은 “김 할머니는 해외에 나가서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피해 사실을 증언했고, 그림도 참 잘 그렸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2001년 일본 역사 교과서 논란이 일었을 때 김 할머니가 ‘일본은 소니처럼 전자제품을 잘 만드는데 왜 교과서는 잘 만들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내가 교과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던 게 지금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안 소장은 할머니가 한 명씩 돌아가실 때마다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책임감에 짓눌린다고 토로했다. 그는 “할머니들과 함께 싸우는데 할머니들은 돌아가시고 나만 남아 있다”면서 “할머니들이 원하시는 것이 이뤄지지 않으니까 압박감도 크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아쉬운 점도 내비쳤다. 특히 안 소장은 모두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외교부가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서 검증하는 배경에 의문을 품고 있다. 안 소장은 “민주적인 절차는 중요하지만 할머니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합의 폐기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소장은 “최근 합리적인 절차만으로는 일본을 설득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1965년 국교정상화 때 대일 청구권은 마무리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머니들의 사과 요구에 입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소장은 ‘평화의 소녀상’이 마지막으로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일본도 소녀상 문제에서만큼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서다. 안 소장은 “일본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해외에 소녀상을 많이 건립해야 한다”면서 “해외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역사 문제가 아닌 순수한 인권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에 보편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기가 한층 수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안 소장은 “시간은 흘러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 끝까지 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루이스 ‘아름다운 우승’에 스폰서도 통 큰 기부

    루이스 ‘아름다운 우승’에 스폰서도 통 큰 기부

    최경주재단도 1억여원 전달 미국 휴스턴을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의 피해 복구에 “상금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스테이시 루이스(32·미국)의 선행에 스폰서들도 ‘통 큰’ 기부로 화답했다. 루이스는 4일(한국시간) “메인 스폰서인 KPMG가 자신의 우승 상금액만큼 기부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우승 상금은 19만 5000달러(약 2억 1000만원)로 KPMG도 같은 금액을 성금으로 내놓는 것이다. 다른 스폰서인 ‘마라톤 오일’도 100만 달러(약 11억 2000만원)를 휴스턴에 기부하기로 했다. 루이스는 “마라톤 오일은 휴스턴 갤버스턴에 사무실과 정유소를 갖고 있다. 그들은 기부금을 공개하지 않기를 원했지만 큰 금액이어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원이 믿기지 않는다”고 고마워했다. 루이스와 스폰서 기부액을 모두 더하면 15억원 수준이다. 그는 “집을 다시 세우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오게 도울 수 있을 것”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루이스는 ‘기부 발표로 시합에서 압박감을 받았나’라는 기자 질문에 “잘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격려하고 내가 잘하기를 원했다. 휴대전화와 소셜미디어에 너무 많은 메시지가 왔다. 가장 많은 격려를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결혼한 루이스는 이날 남편 제러드 채드월의 깜짝 방문에 눈물을 보이며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정말 힘들었고 좌절감을 느꼈다. 남편과 우승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무척 특별하다”고 감격스러워했다.한편 최경주재단도 휴스턴 주민들을 위해 10만 달러(약 1억 1000만원)를 기부했다. 최경주는 “2000년부터 2009년까지 휴스턴에 살았기 때문에 나에게 특별한 장소”라면서 “고통받는 지역 주민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국내외 톱랭커, 한화클래식서 ‘진검승부’

    국내외 톱랭커, 한화클래식서 ‘진검승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한화클래식이 31일부터 9월 3일까지 강원 춘천시 제이드팰리스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다. 총상금 14억원(우승 3억 5000만원)으로 투어 최고 수준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 투어의 상위 랭커들이 대거 출전한다. 세 가지 포인트로 대회를 즐기면 좋겠다.먼저 ‘프로 잡는 아마추어’로 이름을 높였던 최혜진(18)이 프로 첫발을 뗀다. 최혜진은 올해 KLPGA 투어 대회에 다섯 차례 출전해 두 차례 우승을 거머쥐었다. 준우승 한 차례를 포함해 늘 ‘톱10’을 지켰다. 올해 다승자가 최혜진 외에 이정은(21·3승)과 김지현(26·3승), 김해림(28·2승) ‘빅3’밖에 없다는 점에서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다만 프로의 압박감을 극복하는 게 과제다. 그는 “프로 데뷔 무대라 떨리기도 하지만 아마추어 때처럼 나만의 플레이를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지난해 12월 김효주(22)의 현대차 오픈 우승 이후 끊긴 해외파의 KLPGA 무승 탈출 여부도 관심사다. 고국 나들이로 끝내기엔 자존심이 상한다.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3승에 빛나는 김인경(29)이 선두주자로 나선다. 캐나다 퍼시픽 여자오픈을 건너뛰고 지난 25일 입국해 시차 극복과 컨디션 조절에 애쓴 게 돋보인다. 그는 “브리티시오픈 우승 이후 휴식을 취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남은 기간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데뷔 시즌에 2승을 올린 이민영(25)도 우승 후보로 거론된다. 지난주 ‘니토리 레이디스 골프 토너먼트’ 3위에 오르며 상승세를 탔다. 3년 만에 한국 무대를 밟은 에리야 쭈타누깐(22·태국)은 생애 첫 KLPGA 투어 우승을 노린다. LPGA 통산 4승을 올린 제시카 코다(24)와 신인왕에 도전하는 동생 넬리 코다(19·이상 미국)도 출사표를 던졌다. 마지막은 ‘대세’ 이정은의 시즌 4승 달성 여부다. 다승(3승)과 상금(7억 6900만원), 대상 포인트(422점), 평균타수(69.65타)에서 1위를 달리는 그는 “욕심을 너무 내면 독이 될 수 있다. 퍼트 감이 좋으니 티샷과 두 번째 샷에 집중한다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편성도 흥미롭다. 한·미·일 투어의 대표 선수인 이정은과 김인경, 전미정(35)이 한 조로 출발해 자존심 대결을 펼친다. 김지현과 김해림, 쭈타누깐이 동반 플레이한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캐릭터 살리는 ‘제2의 작품’… 뮤지컬 특수분장의 세계

    캐릭터 살리는 ‘제2의 작품’… 뮤지컬 특수분장의 세계

    ‘캣츠’ 배우들이 직접 고양이 분장… 코끝·턱선 강조 英 초연부터 전통… 땀 흘려도 분장 안 지워져 ‘시라노’ 주인공의 콤플렉스 코, 그래도 못생겨선 안 돼 한국인 얼굴 맞는 비율 찾아… 제작에 두 달 반 ‘헤드윅’ 3단계에 걸친 특수처리 눈썹 제일 까다로워 눈물샘 부위에 글리터 얹어… 인조가발 사용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분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연기력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걸맞은 화려한 ‘변신’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수분장은 등장인물들의 핵심 성격이나 특징을 눈에 띄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작품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작품의 소재와 캐릭터의 성격이 다양해진 만큼 다채로워진 특수분장은 관객들에게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묘미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캣츠’, ‘시라노’, ‘헤드윅’도 분장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제작진의 설명을 바탕으로 무대 위 특수분장의 세계를 들여다봤다.‘캣츠’ 국내에서 단 한 차례도 실패한 적이 없는 스테디셀러 뮤지컬 ‘캣츠’는 배우들의 실감나는 고양이 분장으로 유명하다. 모두 다른 이름과 개성을 지닌 고양이 30여 마리의 섬세하고 정교한 분장은 전문가의 손을 거쳤을 것 같지만 사실 배우들이 직접 한다. 제한된 인원의 분장사들이 수십 명의 배우에게 한꺼번에 분장을 해 주기 어려운 까닭에 1981년 영국 웨스트엔드 초연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다. ‘캣츠’ 제작팀에 따르면 “분장은 ‘인간’ 배우가 고양이가 되는 일종의 마지막 단계”다. 우선 메이크업 디자이너가 여러 각도에서 각 캐릭터를 표현한 일러스트를 통해 메이크업의 특징과 주의 사항을 배우들에게 알려 준다. 처음에는 분장 디자이너가 전체 메이크업을 해 주고, 그다음에는 반은 분장 디자이너가, 나머지 반은 배우가 완성하는 식으로 스스로 분장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처음엔 서투를 수밖에 없어 1시간 30분 이상 걸릴 때도 있지만 분장이 손에 익은 배우들은 빠르면 40분 안에 완성한다. 2014년 새롭게 리바이벌한 버전을 들여와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이번 공연에서는 분장이 조금 달라졌다. 이전에는 얼굴 전체를 분장으로 채웠다면 이번에는 코끝과 턱선 사이 부분을 강조해 철저하게 고양이처럼 보일 수 있도록 했다.특히 ‘캣츠’의 대표 넘버인 ‘메모리’의 주인공 그리자벨라의 변화가 눈에 띈다. 그리자벨라는 한때 아름다웠으나 다른 고양이들에게 외면받는 고양이다. 이전 공연에선 번진 립스틱 자국이나 헝클어진 머리카락, 주름으로 그리자벨라가 겪은 풍파를 강조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그리자벨라의 화려하고 매혹적이었던 과거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도록 주름은 없애고 부드러운 눈매를 강조해 신비로움을 더했다. 배우들은 캐릭터별로 색깔이 다른 기본 베이스를 바르고 색조 화장을 한 후 가루 파우더를 바른다. 일종의 코팅 작용을 하는 파우더 덕분에 배우들이 연기하는 동안 땀을 흘려도 분장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 이후에는 고양이의 요염함과 당당함을 살리기 위해 눈, 코, 입 주변에 정교한 라인을 그려 넣는다. 의상이나 가발로 가려지지 않는 목 부분까지 메이크업을 마무리하면 완성.‘시라노’ 구제불능의 로맨티시스트이자 문학적 재능까지 겸비한 낭만 검객의 애절한 사랑을 담은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단연 주인공 시라노의 길쭉하고 못생긴 코다. 어릴 적부터 흠모해 온 록산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할 정도로 거대한 코는 그에게 큰 콤플렉스다. 당연히 코 분장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보기에는 길쭉한 형태의 단순한 모양이지만 제작진은 코를 제작하는 데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한다.김성혜 분장 디자이너가 처음 시라노 대본을 읽었을 때 했던 생각은 ‘남들과 다른 코를 지녔지만 절대로 못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콤플렉스를 강조하더라도 배우들의 얼굴과 맞지 않게 너무 크거나 뭉뚝하거나 긴 모양이면 자칫 우스꽝스럽게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3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얼굴에 안정적으로 붙어 있으면서도 노래를 할 때 어떤 압박감이나 방해를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다. 김 디자이너는 인종별 코 모양에 대해 장시간 자료 조사를 한 끝에 한국인 얼굴에 맞는 적당한 비율을 찾아냈다. 수많은 재질로 샘플을 제작하고 수정, 보완 작업을 거친 뒤 지금의 결과물을 완성하기까지 2달 반이 걸렸다. 코를 배우의 얼굴에 부착할 때 사용하는 분장용 글루 역시 여러 번의 선택 과정을 거쳐 가장 부착성이 뛰어난 제품을 선정했다. 코의 재료는 비밀에 부쳤다. 시라노를 연기하는 배우 홍광호, 류정한, 김동완의 코 디자인은 모두 동일하지만 각자의 코 비율이 달라 실제로 부착하면 조금씩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세 사람의 피부톤이 달라 코 색깔로 어떤 배우의 것인지 구별 가능하다고 한다.‘헤드윅’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 록가수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선 주인공 헤드윅의 과장된 메이크업과 금발 가발을 빼놓을 수 없다. 과거의 아픈 상처를 딛고 음악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하는 헤드윅의 의지와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2005년 국내 초연 때부터 ‘헤드윅’에 참여한 채송화 분장 디자이너는 “매 시즌 헤드윅을 연기한 배우들의 분장 디자인이 한 번도 겹친 적이 없었다”며 “공연 자체가 배우가 끌고 가는 힘이 큰 데다 각 배우가 해석한 헤드윅의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에 분장팀의 역할이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헤드윅의 분장 포인트는 뭐니 뭐니 해도 헤드윅의 여성성을 강조할 수 있는 화려하고 진한 화장이다. 특히 얇고 섬세한 곡선을 살린 눈썹이 중요하다고 한다.남자 배우들의 원래 눈썹을 가리기 위해 3단계의 특수 처리를 거친다. 눈썹을 감추는 이 작업에만 10분 이상 소요된다. 얼핏 간단해 보이는 이 과정은 수년간의 노하우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까다로운 작업이라고. 파운데이션과 파우더를 바른 이후 짙은 아이라인을 그리고 눈두덩 가운데와 눈물샘 있는 부위에 흔히 ‘반짝이’라고 부르는 글리터를 얹는다. 조명을 받았을 때 헤드윅 눈에 눈물이 맺힌 듯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헤드윅이 착용하는 한껏 부풀어 오른 형태의 가발은 보통 머리숱보다 3배 많은 숱의 인조 가발을 사용한다. 인모 가발은 무대에서 지나치게 평범해 보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체력 좋은 남자 배우들도 1시간 10분간 진행되는 분장 과정을 견디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탓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거나 어떤 배우들은 부족한 잠을 자기도 한다고. 그래도 불편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건 헤드윅 분장이 배우에게 선사하는 특별한 감정 때문이다. 채 디자이너는 “헤드윅 분장을 마치면 배우들이 다들 슬퍼진다고 말하는데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헤드윅의 인생이 분장에 투영되기 때문”이라며 “캐릭터의 독보적인 매력 덕분에 다시 출연한 배우들은 자신이 새롭게 해 보고 싶은 눈화장이나 헤어스타일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는 데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무리한 조사로 죽음 내몰았다” 부안교사 유가족, 전북교육청에 법적 대응

    “무리한 조사로 죽음 내몰았다” 부안교사 유가족, 전북교육청에 법적 대응

    제자 성희롱 의혹으로 감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북 부안군 A 여중 B 교사의 유족들이 교육청의 무리한 감사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 유족 측 법정 대리인인 유길종 변호사는 14일 “전북교육청 인권교육센터가 경찰에서 무혐의 처분된 ‘성추행’을 다시 문제 삼으면서 B 교사가 심한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며 “민·형사소송 절차를 밟아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밝혔다.유 변호사는 또 “소송 과정에서 조사관의 강압적인 태도, 편향적 사건처리 등을 입증하여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유족들은 “전북교육청이 학생들을 조사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고인을 성추행범으로 낙인 찍고 출근을 정지시키는 등 무리하게 조사했다”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치욕과 수치심으로 괴로워했다”고 주장했다. 또 “(성희롱 당했다던) 아이들이 문제가 불거진 뒤 ‘사실이 아니다’고 진술하며 탄원서를 제출했는데도 감사를 강행했다”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들 학생은 전북교육청에 낸 탄원서에서 “다른 일 때문에 선생님께 서운한 감정이 있어 성추행당했다고 거짓말했다”며 “선생님을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한 학생은 “다리 떨면 복 달아난다며 무릎을 친 것을 허벅지를 만졌다고 진술했다”고 했고, 또 다른 학생은 “수업시간에 졸지 마라며 어깨를 주물러줬을 뿐인데 잘못 전달됐다”고 했다. 앞서 이 교사는 올해 3월부터 수업시간에 여학생 7명에게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 수사에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이후 전북교육청이 감사에 들어가자 지난 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대해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안타까운 일이며, 유족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라이프 톡톡] 역사학도, 기업결합 분석의 새 역사에 도전하다

    [라이프 톡톡] 역사학도, 기업결합 분석의 새 역사에 도전하다

    “우리는 세 명이 담당하고 있는데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에선 1년 넘게 그 사건을 전담하는 인력만 20명이 넘더라고요.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사건을 잘 마무리한 우리도 대단하긴 하지만 ‘우리도 저 정도 인력이 있다면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공정위엔 3명…美는 한 사건에만 20명” 공정거래위원회 업무 가운데 경제분석은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분야다. 기업의 행위가 경쟁에 해가 되는지 여부를 객관적이며 합리적으로 판별하는 경제분석은 최근 독점·담합 관련 소송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됐다. 하지만 정작 공정위에는 경제분석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박사급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최미강 경제분석과 사무관은 4명밖에 없는 공정위 박사급 인력 중에서도 가장 경력이 오래됐다. 지난 11일 만난 최 사무관은 지금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의 1위 사업자인 AMAT(미국)와 3위 사업자인 TEL(일본) 간 기업결합 심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두 회사는 2013년 기업결합을 신고했고 공정위는 국내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2년간의 심사 끝에 두 기업간 결합이 반도체 장비 시장의 경쟁을 제한한다는 심사보고서를 냈다. 결국 두 회사는 기업결합을 포기했다. 최 사무관은 원래 역사학도였다.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듣게 된 산업조직론 수업이 인연이 돼 대학원에서 산업조직론을 전공했다. 그는 “2011년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공정위에서 박사급 계약직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주저 없이 지원했다”고 말했다. 기업결합 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시뮬레이션해서 분석하는 게 그의 주된 업무다. 최 사무관은 “담합 사건도 최근에는 실제 가격 추이 분석을 통해 담합의 영향을 데이터 분석해서 공정위 사건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2014년까지는 경제분석을 전공한 유일한 박사라서 부담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최 사무관은 “경제분석에 대해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면서 “보안 때문에 외부에 물어볼 수도 없고 혼자서 쟁쟁한 교수들이 쓴 보고서를 반박할 근거를 찾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전문인력 늘려 더 강건한 분석 하고 싶어” 그는 “이제는 공정위 안에서도 경제분석의 중요성을 알아주는 게 기쁘다”면서도 “산업마다 워낙 상황이 제각각인데 4명만으론 체계적인 분석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전문인력이 늘어난다면 좀더 ‘강건한 분석’을 할 수 있어서 공정위 전문성도 높아질 것”이라며 웃었다. 미국은 법무부 반독점국에 소속된 박사급 인력만 45명이다. 이와 별도로 미 연방거래위원회에는 6개 부서에 걸쳐 박사급 인력 77명이 반독점 사건에 대한 조사와 지원,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세계는 기본소득 실험 중] “로봇사회로 일자리 계속 감소…기본소득은 시대 흐름”

    [세계는 기본소득 실험 중] “로봇사회로 일자리 계속 감소…기본소득은 시대 흐름”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인간이 인간으로 살면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해요.”지난달 17일 독일 베를린의 시민단체 ‘마인 그룬트아인콤멘’ 사무실에서 만난 설립자 미하엘 보마이어(32)는 요즘 독일에서 가장 바쁜 유명인 중 하나다. 그가 기획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매년 90명에게 1000유로(약 130만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이 유럽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언론 인터뷰가 밀려들어오고 있다. 그만큼 독일 사회에서 기본소득이 ‘주요 이슈’임을 증명하는 현상이라고 봐도 되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실험에 반응을 할 줄은 몰랐다”며 “처음 구상할 때만 해도 미쳤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한국 언론과는 첫 인터뷰다. 보마이어는 16살 때부터 인터넷 회사를 다니면서 계속 창업을 시도했다. 그러다 수년 전 각종 표지판을 취급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는데 이 사업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매달 1300유로(약 169만원)의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된 그는 바로 직장을 관두었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은 삶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할 수 있었다. 보마이어는 고민 끝에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기로 결심했고, 마인 그룬트아인콤멘을 설립해 기본소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보마이어는 “이 프로젝트가 대표성은 약하지만 최소한 기본소득을 받는 기분과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당연히 국가가 기본소득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업 문제의 장기화, 로봇 사회로의 진입 등 어차피 미래 사회에서는 일자리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완전고용은 불가능한데, ‘일을 안 하면 먹지도 말라’고 강요하고 있죠. 이 노동의 개념을 바꾸어야 해요. ‘국가’는 항상 느리지만 기본소득을 시행할 수밖에 없는 날이 올 겁니다.” 글 사진 베를린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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