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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억 짜리 금화 훔친 ‘마피아 가족’…10대 청소년도 포함

    50억 짜리 금화 훔친 ‘마피아 가족’…10대 청소년도 포함

    독일 베를린 경찰이 세계에서 가장 큰 금화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는 레바논 출신의 ‘마피아 가족’을 대상으로 재산을 압류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영국 BBC, 데일리메일 등 해외 언론의 19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베를린 보데박물관이 대여하고 있던 세계에서 가장 큰 금화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7년 캐나다 조폐국이 제작한 이 금화는 그 값어치가 370만 유로, 한화로 약 49억 원에 달하며 무게는 100㎏, 지름 53㎝, 두께 3㎝에 달한다. 금화 양면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캐나다를 상징하는 단풍잎이 그려져 있으며, 일반적으로 ‘빅 메이플 리프’(Big Maple Leaf)로 불렸다. 보데박물관은 2010년 12월부터 이 금화를 대여해왔으며, 제작 당시 순도 99.99%라는 전례없는 기록을 세워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이 도난 사건이 조직 범죄단의 소행이라고 보고 조사를 진행해 왔으며, 최근 문제의 조직 범죄단이 베를린에 거주하는 레바논 출신의 마피아 일가라고 결론짓고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는 아흐메드 리모(18), 압둘 리모(18), 비삼 리모(20) 등이며 도난사건이 발생했던 당시 박물관 경비원이었으며 이번 사건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 데니스 W(19)는 이미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리모 일가는 레바논 내전이 심각했던 1980년대에 베를린으로 건너왔다. 현재 베를린에만 500여명에 달하는 리모 일가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중 10~50%는 독일 일대에서 벌어지는 범죄사건에 가담해 왔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리모 일가의 재산은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리모 일가가 범죄와 돈세탁 등으로 축적한 재산을 해외로 보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정확한 사용처는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아파트와 주택 등 부동산 77채를 압수하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경찰은 이들이 훔친 것으로 추정되는 ‘빅 메이플 리프’를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리모 일가가 이미 이 금화를 녹이거나 팔아버린 것으로 보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못믿을 가정간편식’ 경기특사경, 불법 제조·판매 99곳 적발

    제조 일자를 속이거나 곰팡이가 핀 오래된 식자재를 조리에 사용하기 위해 보관하는 등 관련 규정을 위반한 가정간편식 불법 제조·판매업체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가정간편식은 집에서 간단히 데워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완전 조리식품이나 반조리 식품을 말하는 것으로, 최근 1인 가구 증가와 식습관의 변화로 최근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지난달 14∼20일 가정간편식 제조·판매업체 330곳을 대상으로 단속을 벌여 관련 법규를 위반한 99곳을 적발했다고 12일 밝혔다. 적발된 업체 중에는 반찬 전문 프랜차이즈 5개 브랜드의 본사 2곳과 가맹점 19곳도 포함됐다. 적발 내용을 보면 ▲미신고 영업 13곳 ▲제조 일자(유통기한) 허위표시 6곳 ▲기준규격(보존·유통) 위반 5곳 ▲유통기한 경과 원료사용 및 보관 15곳 ▲표시기준 위반 36곳 ▲원산지 허위표시 2곳 ▲영업자 준수사항 위반 등 기타 22곳이다. 성남시에 있는 반찬 전문 프랜차이즈 A가맹점은 본사에서 공급받은 소고기 고추장 볶음의 유통기한이 지났는데도 당일 조리한 것처럼 제조 일자를 허위 표시해 판매하다가 적발됐다. 하남시 소재 B도시락생산업체는 냉장실에 곰팡이가 핀 오래된 식자재를 방치한 것은 물론 제조가공실 바닥과 조리대에도 곰팡이와 음식물 찌꺼기가 있는 등 위생관리가 불량해 단속에 걸렸다. 학교급식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판매하는 핫도그를 제조·납품하는 화성시 소재 C업체는 기름때가 찌들어 있는 불결한 조리기구를 사용하면서 냉동보관실에 걸레와 핫도그를 함께 보관하다 단속에 적발됐다. 적발 업체가 보관 중이던 유통기한 경과 제품 등 8개 품목 983kg도 현장에서 압류했다. 도 특사경은 적발 업체 가운데 반찬 전문 프랜차이즈 업체 가맹점 21곳을 포함해 모두 94곳의 업소 관계자를 형사입건하고 나머지 5곳은 해당 지자체에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경기 체납자 압류품 11일 매각

    경기도가 지방세 고액 체납자의 세금 징수를 위해 압류한 명품가방과 명품시계, 귀금속을 매각한다. 도는 오는 11일 오전 10시부터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 그랜드볼룸에서 1000만원 이상 고액 체납자로부터 압류한 명품 동산 505점을 공개 매각한다고 3일 밝혔다. 롤렉스 시계(감정가 1050만원), 티파니 반지(567만원), 루이비통 가방(230만원), 18K반지(10만원) 등 다양한 금액대의 물품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낙찰자는 현금, 계좌이체로 낙찰대금을 현장에서 지불한 뒤 바로 수령할 수 있다. 공매 물품은 4일부터 경기도(www.gg.go.kr)와 감정평가업체 라올스(www.laors.co.kr)의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도와 시·군은 올해 1~5월 고액·고질 체납자 126명의 가택을 수색해 현금 6억 5600만원을 징수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경기도, 체납자 압류 명품·귀금속 505점 공개 매각

    경기도, 체납자 압류 명품·귀금속 505점 공개 매각

    경기도가 지방세 고액 체납자의 세금 징수를 위해 압류한 명품가방과 명품시계, 귀금속을 매각한다.경기도는 11일 오전 10시부터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 그랜드볼룸에서 1000만원 이상 고액체납자로부터 압류한 명품 동산을 공개 매각한다고 3일 밝혔다. 매각 대상 물품은 샤넬·구찌 등 명품가방 110점, 롤렉스·오메가 등 명품시계 33점, 황금열쇠 등 귀금속 297점 등 총 505점이다. 이날 공매에는 롤렉스 시계(감정가 1050만원), 티파니 반지(567만원), 루이비통 가방(230만원), 18K반지(10만원) 등 다양한 금액대의 물품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매는 사전공개-물품 관람 및 입찰준비-입찰서 작성 및 제출-개찰 및 입찰서 취합-낙찰허가 및 물건인도 순으로 진행한다. 입찰은 가장 높은 응찰가를 제시한 사람에게 낙찰되는 물건별 개별입찰로 진행된다. 낙찰자는 현금, 계좌이체로 낙찰대금을 현장에서 지불한 뒤 공매물품을 바로 수령해 갈 수 있다 공매물품이 가짜로 판명될 경우 낙찰자에게 감정가액의 200%를 보상해 주는 등 낙찰자 보호 장치도 마련돼 있다. 공매물품은 4일부터 경기도(http://www.gg.go.kr)와 감정평가업체 라올스 (http://www.laors.co.kr)의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도와 시·군은 올해 1~5월 고액·고질체납자 126명을 대상으로 가택수색을 실시해 현금 6억5600만원을 징수했다. 도는 이들 가운데 납부의사가 없는 체납자의 명품가방과 시계, 귀금속 등 물품 1200여점을 압류한 뒤 진품으로 판명된 505점을 이번 공매에 내놨다. 경기도는 2015년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압류 물품 공매에 나서 그해 173점(7400만원), 2016년 308점(1억 7400만원), 지난해 531점(2억 4600만원)을 각각 매각했다. 오태석 도 세원관리과장은 “민선7기 주요 공약사항인 ‘조세정의 실현’을 위해 가택수색 등 체납처분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고액·고질체납자에 대한 동산압류와 공매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얻어지는 징수액을 재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기고] 세상유정(稅上有情)/오태환 남대문세무서장

    [기고] 세상유정(稅上有情)/오태환 남대문세무서장

    1980년대 초반 세무공무원으로 공직에 들어와 초짜를 좀 벗어난 즈음의 일이다. 자잘한 세금이 여러 건 밀려 있던 소규모 자영업자의 사업장에 체납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방문했다. ‘오늘은 빨간(압류) 딱지도 붙이고 좀 모질게 해야지’ 다짐을 해 보지만 노련한 사장님이 곧 죽는 소리를 한다. “요즘 장사가 너무 안돼요. 팔리는 게 있어야 세금을 내지. 나도 일단 먹고살아야는 되는데….” 모질게 먹었던 마음이 금세 약해진다. “사장님, 내가 이거 하나 팔아 드릴 테니 그걸로 세금 먼저 냅시다.” 이렇게 해서 엉뚱한 양복이 한 벌 생기고, 좁아 터진 집안 거실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열대어 수족관도 생겨났다. 맞벌이하는 집사람에게는 차마 염치가 없어서 공짜 양복표가 하나 생겼다거나 아는 사람이 선물한 거라 둘러댔다. 세월이 흘러서 운 좋게 세무서장이 되어 지역 소상공인들과의 현장 소통 모임에 가 보면 자주 하는 말씀이 요즘 세무서 직원들은 납세자 사정은 잘 살피지 않고 너무 법대로만 한다는 불만이 많다. 예를 들어 거래처 채권 압류나 대출은행에 대한 예금 추심은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존폐의 문제인데 너무 규정대로만 한다는 불만이다. 백번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관련 규정과 절차를 지켜 가며 열심히 자기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부하 직원들에게 딱히 잘못을 지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참 난감하다. 그런데 난감한 일이 또 있다. 요즘 납세자들 사이에는 피하고 싶은 세무서 직원으로 이른바 ‘구신녀’가 있다고 한다. ‘9급 신규 여직원’을 지칭하는 말인데, 구신녀에게 걸리면(?) 철저하게 법대로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통에 대충 어물쩍 넘어가려다가는 큰코다치게 되고,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언제부턴가 공포의 대명사가 되었단다. 선배 세무공무원도 예외 없다. “나 여기 과장이었는데”라며 은근히 자기를 내세워 봐야 돌아오는 답은 “그래서요?”다. 선배 대접은커녕 거의 봉변 수준이다. 학연, 지연 등 이런저런 연줄을 내세워 편의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차고 어떻게 보면 당돌하기까지 한 구신녀가 사실 난감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이런 구신녀에게 흔히 말하는 전관예우는 언감생심 말도 못 붙일 일이다. 밝고 신선한 새바람, ‘구신녀 파이팅!’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뭔가 아쉬움이 있다. ‘법대로, 원칙대로 공정한 세금’과 ‘인정 있는 따뜻한 세금’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일까. ‘따뜻한 가슴에도 녹지 않는 냉철한 머리와 냉철한 머리에도 차가워지지 않는 따뜻한 가슴.’ 이것이 가능하다면 정말 신뢰받고 사랑받는 국세청이 될 수 있을 텐데. 나는 그 해법을 찾지 못했다. 똑똑하고 야무진 후배님들이 꼭 찾아내길 바란다. 열심히 응원하고 성원할 테니. 오늘 아침도 여느 날과 같이 버스에 몸을 싣고 남산 1호터널을 지나 사무실에 출근했다. 오전 7시 40분 컴퓨터를 켠다. 어제 퇴근 이후 올라온 결재 문서들을 처리하고, 잠시 오늘 할 일을 머릿속에 챙겨 보고는 늘 가까이 두고 있는 FM 라디오를 켠다. 곧 정년이다. 새삼 이 익숙하고도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음을 떠올린다. 평범한 이 일상의 아침을 나는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 YS·DJ의 ‘킹메이커’… 5·16쿠데타 이끈 ‘영원한 2인자’

    YS·DJ의 ‘킹메이커’… 5·16쿠데타 이끈 ‘영원한 2인자’

    ‘쿠데타의 주역’, ‘풍운아’, ‘영원한 2인자’, ‘처세의 달인’…. 수많은 수식어에서 보듯 지난 23일 별세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2004년 정계 은퇴까지 40여년간 영욕과 부침을 거듭했다.●박정희 정권 2인자… 처삼촌 혹독한 견제 1926년 1월 7일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서 면장이던 김상배씨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교사를 꿈꾸며 서울대 사대에 진학했지만, 부친의 죽음이 인생행로를 바꿔 놓았다. 가세가 기울면서 1947년 교사의 꿈을 접고 육사에 입학한 것. 1949년 6월 육사를 졸업한 JP는 육군본부 정보국에 배속됐고, 작전정보실장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의 조카딸 박영옥(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딸)을 알게 됐고, 결혼했다. 이로써 상사와 부하인 동시에 처삼촌과 조카사위라는 연을 맺었다. 1960년 9월 중령이던 JP는 박정희 소장과 교감해 3·15 부정 선거에 연루된 정치군인들과 부정부패 장성들의 자진 사퇴를 주장하는 정풍(整風) 운동을 일으켰다 하극상의 주모자로 몰려 강제예편됐다. 그러나 이듬해 5·16 쿠데타로 일약 권력의 정점으로 떠올랐다. 5·16의 전면에는 박정희 소장이 나섰지만, 뒤에서 쿠데타를 치밀하게 기획하고 밀어붙인 이는 JP였다. 그의 나이 불과 35세였다. 2인자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박정희 정부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맡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었으나 이른바 ‘4대 의혹 사건’(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 회전당구기 사건)에 휘말려 1963년 2월 공화당 창당을 하루 앞두고 외유에 나서야 했다. 1963년 11월 6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공화당 의장에 임명된다. 하지만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 등 굴욕 외교를 비판하는 6·3사태가 일어나자 또 외유길에 올랐다. JP 공과(功過)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 1965년 한·일 협정과 산업화다. JP는 8억 달러의 경제 보상과 차관을 대가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 보상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 범죄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이 협정을 근거로 일본은 지금도 피해자들의 대일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그는 산업화 시대의 선구자로도 평가받는다. 박 전 대통령을 도와 산업화를 이끌었다. 1960년 79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1980년 1645달러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가 ‘매국노’란 비판을 들으며 받아온 8억 달러의 식민지 배상금은 산업화의 기반이 된 포항제철·소양강댐·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사용됐다. 유신체제가 들어선 1971년, JP는 45세의 나이에 최연소 총리로 임명됐다. 1979년 10·26이 터지면서 공화당 총재로 복귀, ‘포스트 박정희시대’를 이끌 대중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까마득한 육사 후배들인 신군부에 의해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돼 재산을 압류당하고 미국으로 떠났다.●충청맹주로 고비마다 캐스팅보트 1986년 귀국한 그는 이듬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중심으로 35석을 확보, 화려하게 재기했다.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과의 ‘보수대연합’인 3당 합당을 통해 여당으로 변신했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여권의 2인자가 되는 듯했다. 민자당 대표 시절 김영삼 대통령에게 극진한 예를 갖추며 ‘굴신(屈身)의 정치’를 폈으나 YS와 민주계 진영으로부터 2선 후퇴 압력을 받았다. 지분을 가진 창업주임에도 1993년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에서 대표위원으로 강등됐다. 1995년 민자당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해 치른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4명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키고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핫바지론’으로 상징되는 충청지역 정서를 자극해 제3당(55석)으로 재기했다. 1997년 내각제를 고리로 ‘킹메이커’가 됐다. 그해 11월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DJ) 총재와 극적인 DJP 단일화를 이뤄 낸 것. 보수 성향이 짙은 충청표를 끌어모아 공동정권의 축이 됐다. 박정희 정권 시절 정적(政敵)으로 탄압했던 DJ와 손을 잡고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6개월간의 총리 서리 등 국민의정부의 한 축을 이뤘던 그는 1999년 말 내각제 개헌 약속 파기를 이유로 공동정부를 깼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17석에 그치며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결국 다시 DJ와 손잡았다. 민주당에서 의원 3명을 빌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했다. 그러나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요구를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자 공동정부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도 ‘서산의 지는 해’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2년 6·13 지방선거 참패로 ‘충청 맹주’의 위상을 잃었다. 2004년 4·15 총선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탄핵 역풍으로 10선 등정에 실패했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영원한 2인자’ 꿈 많았던 JP, 영원히 잠들다

    ‘영원한 2인자’ 꿈 많았던 JP, 영원히 잠들다

    ‘영원한 2인자’ ‘정치 풍운아’로 통하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해온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그는 꿈많은 사나이였다. 어려서 선생도 해보고 싶었고, 군에서는 정풍(整風)도 해보고 싶었고, 제대해서는 혁명도 해보고 싶었으며, 혁명한 뒤에는 대권을 향해 도전도 했었다. 그러나 그가 애송하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싯구인 ‘잠들기 전에 가야할 몇 마일’을 끝내 가지 못한 체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향년 92세.●박정희의 2인자로 출발한 정치 인생 1926년 1월 7일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서 그 당시 규암 면장이던 김상배씨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공주중학교 재학 당시 급장과 검도부장으로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검도는 4학년 때 입단을 했고, 승마와 그림도 즐기는 낭만의 소년이었다. 그러나 서울사대 2학년 때 맞은 부친의 죽음은 인생 행로를 바꿨다. 가세가 기울면서 3학년 때인 1947년 교사의 꿈을 접고 육사에 입학했다. 육사를 졸업한 뒤 맡은 첫 보직은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났다. 육본이 대구에 피난했을 당시 중령이던 박 전 대통령 곁에와 하숙하던 조카딸 박영옥도 알게 됐다. JP가 메모를 보내 프로포즈를 하고 박 중령이 권하여 결혼을 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과 부대에서는 상사와 부하, 인척으로는 처삼촌과 조카사위라는 인연을 맺게 됐다. 전쟁이 가고 휴전이 왔다. 4.19가 오고 이승만이 갔다. 그도 당시 혼란스런 시대 상황과 맞물려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결정적인 사건은 1960년 9월에 일어났다. 당시 중령이던 JP는 박정희 소장과 교감을 가진 뒤 육사 8기 동기생 11명과 함께 3·15 부정 선거에 연루된 정치군인들과 부정부패 장성들의 자진 사퇴를 주장하는 국군 정풍운동을 일으켰다. 하극상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이듬해 박정희 장군의 5.16 군사 쿠데타를 주도하면서 본격적인 2인자 시대를 열었다. 이 때 JP의 나이 35세였다. 그러나 이후 펼쳐진 인생 항로는 순탄치 않았다. 그해 6월 10일 박정희 의장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으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초대정보부장을 지내고, 공화당 창설을 주도하면서 실세 2인자로 부상했으나 창당 과정에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 회전당구기 사건)‘에 휘말린다. 그 여파로 1963년 2월 창당을 하루 앞두고 박 의장의 권유에 따라 외유길에 나서야 했다. 그 유명한 ’자의반 타의반‘의 첫 번째 시작이다. 1963년 11월 6대 총선 때 고향인 부여에서 당선되면서 옛 공화당 의장에 임명된다. 하지만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이 불거져 굴욕 외교를 비판하는 6·3사태가 일어나자 그는 또다시 외유길에 올랐다. 1966년 다시 공화당 의장에 복귀했고, 1969년 3선 개헌 때는 반대 의견을 주장하다가 결국 박 전 대통령에 설득되어 개헌 작업에 앞장섰다. 이어 유신체제가 들어선 1971년 45세의 나이로 총리에 임명, 75년까지 국내 최연소 총리로 활약했다. 총리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있던 그는 1979년 10·26 사건이 터지면서 공화당 총재로 복귀, 박정희 이후 시대를 이끌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5공 신군부의 5·17조치와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되면서 재산을 압류당하고 미국 유랑 생활을 떠났다. 그는 10.26 직후 어느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나를 태평양 한 복판에 내놓고 가셨다.”고 술회한 바 있다. ●고비 마다 캐스팅 보트로 영향력 1986년 귀국한 그는 이듬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면서 다시 일어났다. 13대 대선에 출마해 득표율 8%로 4위에 그치며 고배를 마셨으나 1988년 13대 총선에서 원내교두보를 확보, 정치 무대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면서 주요 정치 세력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윽고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과의 3당 합당을 도모하면서 다시 여당으로 변신했고,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여권의 2인자 자리도 확보한다. 민자당 대표 시절 김영삼 대통령에게 극도의 예를 갖추며 ’굴신(屈身)‘의 정치를 폈으나 YS와 민주계 진영으로부터 ’정치 생명이 다했다‘며 2선 후퇴 압력을 받음으로써 다시 위기를 맞는다. 지분을 가진 창업주였음에도 불구하고 1993년 그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에서 대표위원 강등된다. 1995년 민자당을 돌연 탈당, 같은해 소리소문없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해 치른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4명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킨 데 이어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는 ’핫바지론‘으로 상징되는 충청권의 지역 정서를 업고 55석의 제3당으로 재기하는 데 성공하면서 다시 한 번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다. 그의 제 2 황금기를 알리는 서곡이었다. 1997년 두 번째 대선 고지 등정에 나서면서 내각제를 고리로 다시 한 번 킹메이커가 된다. 그해 11월 3일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극적인 DJP 야권후보 단일화 합의를 이뤄낸 것. 합의문 서명식장에는 ‘단일후보로 정권교체, 내각제로 정치발전’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그는 여권 성향이던 충청표를 끌어모아 공동 정권의 한 축이 됐다. 비록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1998년 2월 총리 임명 뒤 6개월 동안 ’서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기도 했으나 ’DJ대통령, JP 총리‘ 시대의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후 잇딴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충청권도 그에게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9년말 내각제 개헌 약속 파기를 이유로 공동 정부 파기를 선언했다. 2000년 4·13 총선 대비용이라는 말이 나왔다. 총선 결과는 참패. 17석에 그치며 원구성에 실패하자 다시 DJ와 손잡았다. 당시 17인을 원내교섭단체로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민주당으로부터 의원 3인을 빌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이어 이듬해인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요구를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결국 공동 정부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이와 함께 그도 ’서산의 지는 해‘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2년 6.13 지방 선거 참패를 계기로 자민련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졌고 그 해 대선에선 후보도 내지 못하며 ’충청 맹주‘의 위상을 잃기 시작했다. 2004년 4·15 총선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탄핵 역풍을 맞아 17석은 급기야 4석으로 줄었다. 단 한 석의 비례대표 의석도 배분받지 못하면서 비례대표 1번에 이름을 올렸던 그는 10선 고지 등정에 실패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합 당시에는 경선 이틀 전 YS와 전격 회동을 갖고 5촌 조카인 박근혜 후보 대신 “경제 살리기를 할 수 있는 유능한 후보가 선출돼야 한다”고 주장,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며 정계 원로로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2008년 말 뇌경색으로 병원 신세를 졌지만 2010년 초인적인 재활운동 끝에 회복하기도 했다. JP는 ’3김‘ 가운데 가장 오래 현실 정치에 남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었다. 영호남의 대립구도 속에 충청도가 캐스팅 보트를 쥘 수 밖에 없었던 특수한 한국적 정치 상황과 항상 힘있는 쪽과 손을 잡는 그의 현실감각 어린 처신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정치적 장수가 가능했다. 기회주의자라는 평가와 함께 소수의 힘을 극대화한 실용주의자라는 평가가 동시에 나온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영원한 2인자’, ‘정치 풍운아’ 김종필 떠나다

    ‘영원한 2인자’, ‘정치 풍운아’ 김종필 떠나다

    ‘영원한 2인자’ ‘정치 풍운아’로 통하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해온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92세. 그는 꿈많은 사나이였다. 어려서는 선생을 하고 싶었다. 군에서는 정풍(整風)을, 제대해서는 혁명을 원했다. 혁명한 뒤에는 대권을 향한 도전도 했다. 그러나 그가 애송하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싯구인 ‘잠들기 전에 가야할 몇 마일’을 끝내 가지 못한 채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박정희의 2인자로 출발한 정치 인생 1926년 1월 7일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서 그 당시 규암 면장이던 김상배씨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공주중학교 재학 당시 급장과 검도부장으로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검도는 4학년 때 입단을 했고, 승마와 그림도 즐기는 낭만의 소년이었다. 그러나 서울사대 2학년 때 맞은 부친의 죽음은 인생 행로를 바꿨다. 가세가 기울면서 3학년 때인 1947년 교사의 꿈을 접고 육사에 입학했다.육사를 졸업한 뒤 맡은 첫 보직은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났다. 육본이 대구에 피난했을 당시 중령이던 박 전 대통령 곁에와 하숙하던 조카딸 박영옥도 알게 됐다. JP가 메모를 보내 프로포즈를 하고 박 중령이 권하여 결혼을 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과 부대에서는 상사와 부하, 인척으로는 처삼촌과 조카사위라는 인연을 맺게 됐다. 전쟁이 가고 휴전이 왔다. 4.19가 오고 이승만이 갔다. 그도 당시 혼란스런 시대 상황과 맞물려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결정적인 사건은 1960년 9월에 일어났다. 당시 중령이던 JP는 박정희 소장과 교감을 가진 뒤 육사 8기 동기생 11명과 함께 3·15 부정 선거에 연루된 정치군인들과 부정부패 장성들의 자진 사퇴를 주장하는 국군 정풍운동을 일으켰다. 하극상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이듬해 박정희 장군의 5.16 군사 쿠데타를 주도하면서 본격적인 2인자 시대를 열었다. 이 때 JP의 나이 35세였다. 그러나 이후 펼쳐진 인생 항로는 순탄치 않았다. 그해 6월 10일 박정희 의장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으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초대정보부장을 지내고, 공화당 창설을 주도하면서 실세 2인자로 부상했으나 창당 과정에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 회전당구기 사건)‘에 휘말린다. 그 여파로 1963년 2월 창당을 하루 앞두고 박 의장의 권유에 따라 외유길에 나서야 했다. 그 유명한 ’자의반 타의반‘의 첫 번째 시작이다.1963년 11월 6대 총선 때 고향인 부여에서 당선되면서 옛 공화당 의장에 임명된다. 하지만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이 불거져 굴욕 외교를 비판하는 6·3사태가 일어나자 그는 또다시 외유길에 올랐다. 1966년 다시 공화당 의장에 복귀했고, 1969년 3선 개헌 때는 반대 의견을 주장하다가 결국 박 전 대통령에 설득되어 개헌 작업에 앞장섰다. 이어 유신체제가 들어선 1971년 45세의 나이로 총리에 임명, 75년까지 국내 최연소 총리로 활약했다. 총리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있던 그는 1979년 10·26 사건이 터지면서 공화당 총재로 복귀, 박정희 이후 시대를 이끌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5공 신군부의 5·17조치와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되면서 재산을 압류당하고 미국 유랑 생활을 떠났다. 그는 10.26 직후 어느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나를 태평양 한 복판에 내놓고 가셨다.”고 술회한 바 있다. ●고비 마다 캐스팅 보트로 영향력 1986년 귀국한 그는 이듬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면서 다시 일어났다. 13대 대선에 출마해 득표율 8%로 4위에 그치며 고배를 마셨으나 1988년 13대 총선에서 원내교두보를 확보, 정치 무대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면서 주요 정치 세력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윽고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과의 3당 합당을 도모하면서 다시 여당으로 변신했고,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여권의 2인자 자리도 확보한다.민자당 대표 시절 김영삼 대통령에게 극도의 예를 갖추며 ’굴신(屈身)‘의 정치를 폈으나 YS와 민주계 진영으로부터 ’정치 생명이 다했다‘며 2선 후퇴 압력을 받음으로써 다시 위기를 맞는다. 지분을 가진 창업주였음에도 불구하고 1993년 그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에서 대표위원 강등된다. 1995년 민자당을 돌연 탈당, 같은해 소리소문없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해 치른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4명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킨 데 이어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는 ’핫바지론‘으로 상징되는 충청권의 지역 정서를 업고 55석의 제3당으로 재기하는 데 성공하면서 다시 한 번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다. 그의 제 2 황금기를 알리는 서곡이었다. 1997년 두 번째 대선 고지 등정에 나서면서 내각제를 고리로 다시 한 번 킹메이커가 된다. 그해 11월 3일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극적인 DJP 야권후보 단일화 합의를 이뤄낸 것. 합의문 서명식장에는 ‘단일후보로 정권교체, 내각제로 정치발전’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그는 여권 성향이던 충청표를 끌어모아 공동 정권의 한 축이 됐다. 비록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1998년 2월 총리 임명 뒤 6개월 동안 ’서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기도 했으나 ’DJ대통령, JP 총리‘ 시대의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그러나 이후 잇딴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충청권도 그에게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9년말 내각제 개헌 약속 파기를 이유로 공동 정부 파기를 선언했다. 2000년 4·13 총선 대비용이라는 말이 나왔다. 총선 결과는 참패. 17석에 그치며 원구성에 실패하자 다시 DJ와 손잡았다. 당시 17인을 원내교섭단체로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민주당으로부터 의원 3인을 빌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이어 이듬해인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요구를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결국 공동 정부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이와 함께 그도 ’서산의 지는 해‘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2년 6.13 지방 선거 참패를 계기로 자민련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졌고 그 해 대선에선 후보도 내지 못하며 ’충청 맹주‘의 위상을 잃기 시작했다. 2004년 4·15 총선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탄핵 역풍을 맞아 17석은 급기야 4석으로 줄었다. 단 한 석의 비례대표 의석도 배분받지 못하면서 비례대표 1번에 이름을 올렸던 그는 10선 고지 등정에 실패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합 당시에는 경선 이틀 전 YS와 전격 회동을 갖고 5촌 조카인 박근혜 후보 대신 “경제 살리기를 할 수 있는 유능한 후보가 선출돼야 한다”고 주장,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며 정계 원로로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듯 했으나 뇌경색이 발병하면서 입원하기에 이른다. 이후 건강을 회복하면서 자신의 아호를 딴 ‘운정회’를 창립하고, 회고록을 내는 등 활동을 이어갔다. JP는 ‘3김’ 가운데 가장 오래 현실 정치에 남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다. 영호남의 대립구도 속에 충청도가 캐스팅 보트를 쥘 수 밖에 없었던 특수한 한국적 정치 상황과 항상 힘있는 쪽과 손을 잡는 그의 현실감각 어린 처신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정치적 장수가 가능했다. 기회주의자라는 평가와 함께 소수의 힘을 극대화한 실용주의자라는 평가가 동시에 나온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회생 절차 ‘조기 졸업’ 이훈 “좌절하고 계신 분들, 저를 보고 부딪혀 보세요”

    회생 절차 ‘조기 졸업’ 이훈 “좌절하고 계신 분들, 저를 보고 부딪혀 보세요”

    “망한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스스로 부서지곤 합니다. 그러나 저처럼 법 테두리 안에서 절차를 밟아 가며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헬스클럽 사업 실패로 30억원대의 빚을 지고 일반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배우 이훈(45)씨가 15일 서울회생법원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기자와의 만남을 자청한 것은 “저처럼 채권자들이 공포의 대상이고, 재기 못할 것 같다고 좌절하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 텐데, 혹시 제 기사를 읽으신다면 한번 부딪혀 보시라”고 말하고 싶어서다. 사업에 실패해 빚더미에 앉은 이씨는 지난해 2월 일반회생 절차를 시작했다. 일반회생은 채권자 동의를 얻어 10년간 번 돈으로 빚을 나눠 갚고 이자 등을 탕감받는 제도다. 이씨는 스스로 회생 계획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줘 불과 5개월 만에 법원의 관리·감독을 ‘조기 졸업’했다. 자율적으로 회생 계획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회생 절차? 빚 안 갚고 도망간다는 거야?” 오해와 불신들 많은 사람들에게 법원의 회생절차를 밟는다는 것이 곧 파산신청을 한다거나 더 이상 빚을 갚지 않고 면책을 받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경향이 있다. 이씨도 그런 오해를 숱하게 받아왔고, 회생절차를 밟지 않고 빚을 갚는 다른 연예인들과 종종 비교를 당해야 했다. “저도 정면으로 부딪혀 이겨낸 김구라·이상민씨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며 동료들을 언급한 이씨는 “저도 처음에는 방송일을 하면서 금방 갚고 일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저도 참 열심히 했는데 저는 안 되더라고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2012년 헬스클럽이 문을 닫은 직후부터 이씨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매달렸다. “지방 다니면서 돈만 준다고 하면 돌잔치, 칠순·팔순 행사, 정육점 오픈 행사, 결혼식도 솔직히 잘 모르는 분이어도 돈 벌려고 가서 친한 것처럼 사회본 적도 있다. 그렇게 몇 년을 가리지 않고 있을 했는데 저는 능력도 부족하고 인간적으로도 모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구라형이나 상민이처럼은 안 되더라”는 것이다. 원금만 10억여원이었던 빚은 금세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30억여원이 됐다. 게다가 열심히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빚을 꼬박꼬박 갚을수록 채권자들의 독촉은 더 심해졌다고 한다. 가뜩이나 “연예인이니 분명히 숨겨 둔 돈이 많을 것”이라는 의심을 잠재울 수 없었는데, 빚을 갚을수록 “역시 돈과 능력이 있네”, “내 돈부터 빨리 갚아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채권자들의 채근이 심해졌다. 그는 “매일 ‘제발 전화가 안 와 있길’ 기도하면서 잠에서 깨면 수십 통의 부재 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고 토로했다. 급기야 방송사로 가압류 내용증명 등을 보내면서 방송 일마저 줄어들었고, 몇 년간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렇게 버티다 지난해 회생절차를 시작했다. 이씨는 처음엔 “회생 절차가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채권자 1명당 20~30번씩 만나 설득”…인간적 신뢰 쌓여 채권자 70%의 동의를 얻어야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데, 채권자들에게 말을 꺼내자마자 “당신, 빚 안 갚고 도망가려는 거지?”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10년을 거쳐 빚을 갚게 되고 일부는 탕감된다는 회생절차에 동의해 줄 리도 만무했다. “채권자를 설득하는 게 그냥 돈을 갚는 것보다 힘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전국에 있는 10여명의 채권자를 찾아다녔다. 어떻게 설득했느냐 묻자 “일단 만났다. 계속 만났다”고 전했다. 회생절차를 언급하면 즉각 거부감을 갖는 채권자들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거절당하면 또 찾아갔다. 시외버스를 타고 골프장에 있는 채권자를 만나 서울까지 대리운전을 해서 모셔오기도 하고, “당신을 내가 만날 이유가 없다”는 채권자들에 끝까지 매달렸다. 한 명당 적어도 20차례 이상 만나 재기 계획을 설명하자 결국 채권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그는 “자주 만나니 채권자들과 형, 동생하면서 가까워졌다. 그동안의 독촉은 돈 때문이 아니라 나에 대한 신뢰의 문제였음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분들에게 오히려 격려를 받으면서 재기할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악 물고 부딪혀 보시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채권자들을 인간적으로 바라보며 진심으로 자신의 신뢰를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회생 절차를 시작하자 채권자들의 추심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회생 절차가 시작되면 법원에서 지정한 통장에 이씨가 번 수입들을 입금하고, 이 통장에서 들어온 돈을 채권자들에게 매년 분배해 주기 때문에 이씨를 독촉할 일이 줄어든 것이다. 회생 절차를 진행하며 채권자들을 설득하는 것 만큼이나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로 실패 원인을 복기하는 것이었다고 그는 밝혔다. 회생 절차를 악용하는 채무자들을 막고 앞으로 회생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할 수 있도록 회생 절차를 밟으려면 실패 이유에 대해 합리적인 소명을 해야한다. 이씨는 “왜 망했는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실패의 과정을 10년 전 서류까지 찾아내 판사님께 설명을 해야 하니 정말 지옥 같았다”고 돌이켰다. 그런데 사업에 실패할 당시에는 정작 눈에 안 보이고, 그저 남 탓을 하기에 바빴던 실패 요인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씨는 “실패한 분들은 그냥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고, 세상은 지옥 같고 결국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싶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회생 절차는 감정적으로는 할 수 없더라. 어떤 실수를 해서 실패했는지 이성적으로 깨닫게 되더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씨는 회생 절차를 시작한 지난해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닭꼬치 푸드트럭’을 선보이면서 다시금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 만든 닭꼬치를 곧 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왜 실패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봤으니 이젠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실패하더라도 회생법원에 올 일은 없다”고 자신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몰수 비트코인 처리 난감한 檢

    몰수 비트코인 처리 난감한 檢

    “몰수까지는 했는데 처분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네요.”(대검찰청 관계자) 검찰이 지난달 몰수 판결이 난 191. 32333418비트코인의 처분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이 비트코인은 지난달 30일 대법원이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한 안모(33)씨의 유죄를 확정하며 몰수된 것이다. 현재 1비트코인의 시세는 830만원대로, 검찰이 보유한 191비트코인은 16억원으로 평가된다. 당초 검찰은 비트코인을 몰수한 뒤 다른 유가증권처럼 온비드 등 정부 공매시스템을 통해 매각하려 했다. 그런데 막상 비트코인을 처리하려니 예상치 못한 부분들이 발목을 잡았다. 검찰의 가장 큰 고민은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폭이다. 올 1월 2500만원대였던 1비트코인 시세는 현재 830만원대로 3분의1토막이 났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하루 변동폭이 주식은 비교도 안 된다”면서 “매각 기준 가격을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온비드 이용도 쉽지 않다. 온비드는 사용 기관이 자율적으로 공고 시기와 공매 일자, 최저 가격을 정한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가격 변동성 때문에 공고 당시와 입찰일 사이에 시세 차가 클 수 있다. 예를 들어 검찰이 8일을 기준으로 830만원을 최저 가격을 정하고 13일에 입찰을 받는다면, 13일 1비트코인 시세가 1000만원으로 급등할 경우 ‘로또 공매’가 되고, 600만원으로 폭락하면 무조건 유찰이 된다. 캠코 관계자는 “공고를 하고 바로 입찰을 진행해도 규정상 문제는 없지만 그러면 공고 의무화의 취지에 어긋나고, ‘깜깜이 공매’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대검 범죄수익환수부를 중심으로 몰수 비트코인 처리를 연구하고 있다. 공매 대신 시장에 직접 매각하거나, 경매를 통해 처리하는 방법 등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오고 있다. 검찰은 201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으로 압류한 미술품 649점을 차례로 경매를 통해 처분한 바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 법조계 관계자는 “미술품과 달리 비트코인은 그날의 시세가 있다”면서 “상한액이 정해졌고, 가격도 초단위로 변하는데 경매가 가능하겠냐”고 말했다. 또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이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대검 관계자는 “앞으로 몰수되는 가상화폐가 더 늘 것이기 때문에 첫 사례가 중요하다”면서 “몰수물에 대한 매각 기일이 딱 정해져 있지 않아 시간을 갖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고민에 빠진 검찰 “비트코인 몰수는 했는데…어떻게 처분하지?”

    고민에 빠진 검찰 “비트코인 몰수는 했는데…어떻게 처분하지?”

    가격 변동폭이 커 공매 쉽지 않아 미술품처럼 경매도 비현실적정부 방침 안정해져 직접 팔기도 부적절“몰수까지는 했는데 처분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네요.”(대검찰청 관계자) 검찰이 지난달 몰수 판결이 난 191.32333418비트코인의 처분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이 비트코인은 지난달 30일 대법원이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한 안모(33)씨의 유죄를 확정하며 몰수된 것이다. 현재 1비트코인의 시세는 830만원대로, 검찰이 보유한 191비트코인은 16억원으로 평가된다. 당초 검찰은 비트코인을 몰수한 뒤 다른 유가증권처럼 온비드 등 정부 공매시스템을 통해 매각하려 했다. 그런데 막상 비트코인을 처리하려니 예상치 못한 부분들이 발목을 잡았다. 검찰의 가장 큰 고민은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폭이다. 올 1월 2500만원대였던 1비트코인 시세는 현재 830만원대로 3분의 1토막이 났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하루 변동폭이 주식은 비교도 안된다”면서 “매각 기준 가격을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온비드 이용도 쉽지 않다. 온비드는 사용 기관이 자율적으로 공고시기와 공매일자, 최저 가격을 정한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가격 변동성 때문에 공고 당시와 입찰일 사이에 시세 차가 클 수 있다.예를 들어 검찰이 8일을 기준으로 830만원을 최저 가격을 정하고 13일에 입찰을 받는다면, 13일 1비트코인 시세가 1000만원으로 급등 할 경우 ‘로또 공매’가 되고, 600만원으로 폭락하면 무조건 유찰이 된다. 캠코 관계자는 “공고를 하고 바로 입찰을 진행해도 규정상 문제는 없지만, 그러면 공고 의무화의 취지에 어긋나고, ‘깜깜이 공매’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대검 범죄수익환수부를 중심으로 몰수 비트코인 처리를 연구하고 있다. 공매 대신 시장에 직접 매각하거나, 경매를 통해 처리하는 방법 등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오고 있다. 검찰은 201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으로 압류한 미술품 649점을 차례로 경매를 통해 처분한 바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 법조계 관계자는 “미술품과 달리 비트코인은 그날의 시세가 있다”면서 “상한액이 정해졌고, 가격도 초단위로 변하는데 경매가 가능하겠냐”고 말했다. 또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이 시장에 내다파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대검 관계자는 “앞으로 몰수되는 가상화폐가 더 늘 것이기 때문에, 첫 사례가 중요하다”면서 “몰수물에 대한 매각 기일이 딱 정해져 있지 않아 시간을 갖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일본식 가옥 점령 막은 북촌 한옥… ‘서울의 징표’ 되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일본식 가옥 점령 막은 북촌 한옥… ‘서울의 징표’ 되다

    서울신문이 서울특별시,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4회 서울사방 북촌 편이 6월의 첫 주말인 지난 2일 북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북촌의 기와집 처마 아래로 흐르는 초여름 바람이 시원한 하루였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예약자들이 몰려오면서 집결 장소인 안국역 2번 출구 앞이 갑자기 북적였다. 신문 기사를 보고 예약 없이 무작정 나오거나, 친구 따라 온 몇 명도 무사히 투어에 합류했다. 다만 준비한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이 동나 진행 요원들이 양보해야 했다. 정순희 해설사는 일행을 ‘북촌 신세계’로 이끌었다.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백악산 아랫동네다. 저잣거리인 종로 운종가의 배후도시이기도 하다.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 왕족과 공신, 고위관료들에게 나눠준 알짜배기 땅이다. 왕조의 심장부 북촌은 개화의 발상지다. 근대의 활시위를 당겼다. 1884년 갑신정변 이후 가장 뜨거운 변혁의 물결이 휩쓴 역사의 무대였다. 개화의 사랑방 역할을 한 박규수의 집이 지금의 재동 헌법재판소 자리에 있었다. 이곳에서 박규수, 유대치, 오경석으로부터 개화 세례를 받은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의 집도 반경 200m 안에 모여 있었다. 북촌의 사대부들로부터 발화한 근대 개화사상은 기득권 세력이 추진한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실패했다. 북촌의 붉은 기운은 1919년 3·1운동으로 되살아났다. 계동 중앙고보(중앙고등학교) 숙직실에서 김성수·송진우·최남선·최린 등에 의해 싹텄다. 경운동 보성사(조계사 앞)에서 인쇄된 독립선언서 2만장이 이종일의 집(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전국에 배포됐다. 천도교 대표 손병희의 가회동 집과 불교계 대표 한용운의 계동 집도 지척이었다. 계동 보현빌딩(현대 사옥 맞은편) 자리는 해방 이후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본부가 꾸려진 곳이다. 계동에 살면서 12번의 테러를 당한 여운형은 명륜동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결국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했다. 백송이 있는 헌법재판소는 박규수와 홍영식의 집터이고, 압류당한 홍영식 집터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이 들어섰다. 1993년 헌재가 들어서기 전까지 한성고등여학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경기고등여학교, 경기여고, 창덕여고가 맥을 이었다. 근대 교육과 근대 의료의 모태였다.북촌 한옥은 ‘오래된 도시’ 서울의 징표이자 존재 가치다. 북촌의 영과 욕이라는 우리 근현대사의 씨줄과 날줄이 남긴 산물이다. 기농 정세권(1888~1965)이라는 선각자가 남긴 한옥은 현대 서울에서 가장 돋보이는 문화유산이자 미래유산이다. 한옥을 조선시대의 유물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각종 문화재로 지정된 20여채를 제외한 모든 한옥은 1920~40년대 지어진 도시형 개량 한옥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양반가 한옥은 1870년에 지어진 안국동 윤보선가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도 1913년 준공됐다. 현존하는 서울의 기와집 1만 8000채 중 6000채 이상은 기농이 남긴 선물이다.북촌 한옥은 조선총독부를 위시한 일제 통치기구와 수탈기구, 일본식 가옥의 북촌 진입을 차단한 민간 차원의 방어선이었다. 가회동·삼청동·재동·계동·안국동·사간동·소격동·수송동·견지동·관철동·관훈동·익선동·봉익동·권농동·통의동·체부동·사직동·신문로·명륜동·창신동·이화동·신설동·왕십리·행당동·휘경동·충정로에 남아 있는 한옥 대부분이 기농의 작품이다. 몰락한 왕족과 벌열(閥閱)들의 고대광실을 사들여 필지를 잘게 쪼갠 뒤 중산층용 개량 한옥을 지어 공급했다. 요즘 각광받는 익선동 166번지도 종친 이해승의 누동궁 한 채를 68채의 한옥으로 재개발한 것이다. 국내 최초의 부동산 디벨로퍼인 기농은 “일본인들이 종로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그의 한옥 개발과 북촌 선점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 서울은 적산가옥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기와집이 없는 서울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경남 고성 출신인 기농은 북촌 한옥을 남긴 데 그치지 않고 신간회를 후원하고,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었으며, 조선어학회에 회관과 토지를 기증해 조선어사전 편찬을 도왔다. 춘원 이광수는 “조선물산장려를 몸소 실행할뿐더러…조선식 가옥의 개량을 위해 항상 연구하여 이익보다도 이 점에 더 힘을 쓰는 희한한 사람…나는 정씨의 인격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평가했다. 만해 한용운도 “정세권씨가 백난 중에서 회관을 완성하고자 고군분투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라고 조선물산장려회 기관지에 치하하는 글을 보냈다.한옥은 남았지만 그는 잊혀졌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재산을 강탈당하고, 세 번이나 옥고를 치른 그에게 주어진 것은 달랑 건국훈장 애족장 하나뿐이었다. 서울을 서울답게 만들고, 서울의 미래를 남긴 선각자 정세권을 기리는 날은 없다. 정세권 문화상도 없고, 정세권 동상도 없다. 한편 이날 투어가 끝난 뒤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참가자들은 정세권이라는 인물을 내세운 참신한 기획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진행과 코스, 해설 내용에도 대만족을 표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이원석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종로(종묘에서 사직까지) ●일시 : 6월 9일(토) 오전 10시~12시 ●집결장소 : 종로3가역 11번 출구 종묘광장공원 앞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 용인서 체납 골프장 첫 공매 …체납액 157억

    용인서 체납 골프장 첫 공매 …체납액 157억

    고액의 지방세를 체납한 경기 용인시의 한 회원제 골프장에 대해 공매가 진행된다.용인시는 5일 관내 모 골프장 운영업체인 A법인이 2014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지방세인 재산세 157억원을 체납해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이달 중 골프장 전체 시설(건물·용지)에 대해 공매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체납 골프장에 대한 공매는 2017년 8월 제주도 4개 골프장의 토지에 대해 전국 처음으로 진행된 바 있다. 용인시 관내 골프장에 대해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용인시는 A법인에 현장방문과 우편발송, 전화통화 등의 방법으로 체납 지방세 납부를 독려했으나 골프장 경영악화 등의 이유로 체납세액이 매년 증가함에 따라 지난해 8월 한국자산관리공사에 공매를 요청했다. 골프장의 특성상 일부 토지만을 공매할 경우 골프장 가치가 하락해 낙찰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을 우려해 골프장 전체 용지와 건물 등에 대해 공매를 의뢰했다. 시는 해당 물건의 입지가 좋고 수도권에서 인지도가 높아 실제 공매가 진행되면 높은 경쟁률로 낙찰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오는 12일 이 골프장에 대한 공매 공고를 한 뒤 이달 중으로 공매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이 골프장의 감정평가액은 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장이 낙찰되면 체납액 157억원이 우선으로 변제된다. ‘골프 8학군’으로 불릴 절도로 골프장이 많은 용인시에는 올 5월 말 현재 28개 회원제·대중제 골프장이 운영 중이며, 이 가운데 지방세를 체납한 곳은 공매가 진행되는 한 곳뿐이다. 시 관계자는 “합리적인 사유 없이 고액의 지방세를 장기간 체납할 경우 강력한 체납처분 절차인 재산압류와 공매처분 등으로 강제징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영국 항구에 15개월째 붙들려 있는 선장님 딱하네

    영국 항구에 15개월째 붙들려 있는 선장님 딱하네

    선장이 배를 버리면 안된다는 말이 있다. 영국 그레이트 야머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 말라비야 트웬티에 15개월째 붙들려 있는 인도 뭄바이 출신의 니케시 라스토기(43) 선장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BBC가 1일 전한 데 따르면 처음 이 배가 항구에 도착한 것은 지난 2016년 6월이었다. 그는 12명의 다른 선원들과 함께 지난해 2월 임무 교대로 승선한 뒤 지금까지 이 배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12명은 모두 인도로 돌아갔지만 그는 지난해 9월 새로 승선한 선원 셋과 함께 배에서 지내고 있다. 선주가 지난 1월 부도를 내고 더 이상 선박 운용을 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국제운송노동자연맹(ITF)은 2015년 10월 이후 이 배에 승선한 33명의 선원이 제대로 임금을 지불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물론 4명은 지난해 2월부터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라스토기 선장은 배를 떠나면 낙오자가 되는 것이라고 배에서 내리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ITF는 2016년 11월부터 이 배를 압류해 선원들을 고용한 인도의 ICICI 은행에게 68만 8000달러(약 7억원)의 체불 임금을 지불하라고 압박했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ITF의 조사요원인 폴 키넌은 이 배를 팔아 체불 임금을 해결하고 선원 등 4명을 인도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레이트 야머스 항구가 정박 비용으로 원래 가격의 3배를 부과하는 “19세기 선박법”을 적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항구를 관장하는 필 포츠 회사의 대변인은 “법적 해결 과정”을 진행 중이라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이 배의 자매 격인 말라비야 세븐은 애버딘 항구에 억류됐다가 지난해 11월 인도로 돌아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250만대 자동차稅 9000억 미납 ‘체납 공화국’

    250만대 자동차稅 9000억 미납 ‘체납 공화국’

    자동차세나 자동차 관련 과태료를 내지 않은 체납 차량이 전국 250만대에 달하고 체납액도 9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상습 체납 차량을 일제 단속해 번호판을 영치(국가가 피고의 물건을 보관)하기로 했다.23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5월 현재 자동차세와 차량 관련 과태료를 체납한 차량은 모두 249만대로 전국에 등록된 차량 대수인 2276만대의 11% 수준이다. 이들 차량의 체납액은 총 8730억원(자동차세 6278억원, 과태료 2452억원)이다. 이 가운데 3건 이상 체납해 고의성이 의심되는 차량은 69만대로 전체 자동차세 체납 차량의 28%이며, 체납액도 3900억원으로 전체 자동차세 체납액의 62%나 된다. 체납 차량은 지방재정 건전성과 조세 평등을 해치는 주된 요인이라고 행안부는 설명했다. 특히 고의 체납 차량의 핵심인 대포차량(자동차등록원부상의 소유자와 실제 차량 운전자가 다른 차량)은 세금·과태료를 내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 범죄에도 악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행안부는 24일을 ‘상습 체납 차량 번호판 영치의 날’로 정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단속에 나선다. 대상은 자동차세 3건 이상 또는 차량 관련 과태료 30만원 이상 체납 차량과 대포차량 등이다. 이날 단속에는 전국 243개 지자체 공무원 4000여명과 경찰관 300여명이 참여한다. 차량 탑재형 영치시스템 360대와 모바일 영치시스템 700대도 동원한다. 번호판이 영치된 체납자는 체납액을 납부해야만 번호판을 되찾을 수 있다. 번호판을 영치해도 체납액을 납부하지 않는 차량과 대포차는 압류 및 소유자(또는 점유자) 인도명령 후, 명령불이행 차량은 강제 견인 및 공매 처분 등을 통해 체납액을 충당한다. 지난해에도 ‘영치의 날’을 운영해 번호판 14만 601대를 영치하고 체납액 40억원을 받아냈다. 다만 국민 경제활동 등을 고려해 2건 이하 체납 차량이나 생계형 차량은 직접 영치 대신 영치 예고를 실시해 경각심을 주기로 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경기도, 고액체납자 무기명 예금증서·매출채권 첫 압류

    경기도, 고액체납자 무기명 예금증서·매출채권 첫 압류

    고액체납자의 무기명 정기예금증서에 대한 압류가 처음으로 이뤄졌다.23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1000만원 이상 고액체납자 3만 7000여명을 대상으로 이행보증보험증권 거래내역을 전수조사해 44명의 무기명 예금증서 26억 5200만원과 31명의 매출채권 189억 2500만원 등 75건 215억원 규모의 채권을 적발, 압류 조치했다. 고액체납자의 이행보증보험증권을 전수조사해 무기명 예금증서와 매출채권을 압류하기는 경기도가 처음이다. 이행보증보험증권은 일정 규모 이상의 납품이나 공사 등 경제활동 시 의무적으로 발급받아야 하는 증권으로 SGI서울보증에서 주로 발급한다. 도는 지난 1월 SGI서울보증에 고액체납자들의 명단을 전달하고 최근까지 거래내역을 점검해 이들이 예치한 무기명예금증서와 매출채권을 확인했다. 은행에 가져가면 즉시 현금으로 환전이 가능한 무기명예금증서는 무기명으로 소유권 이전이 가능한 예금증서로 만기가 지나도 이자가 붙는 점에서 양도성예금증서와는 차이가 있다. 매출채권은 원청업체로부터 받을 수 있는 외상판매대금을 말한다. 재산세 등 1100만원을 내지 않은 건설업체 대표 A씨는 2005년 모 은행에서 발행한 8800만원 상당의 무기명예금증서를 SGI서울보증에 담보로 제공하고 이행보증보험증권을 발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적발된 무기명예금증서는 모두 소유권 이전 시 발행금융기관 등록이 의무화된 2006년 이전에 발행된 것으로 A씨 등이 납세회피, 불법상속 등의 목적으로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고 도는 설명했다. 5억 6600만원을 체납한 B건설업체의 경우 SGI서울보증에서 이행보증보험증권을 발급받아 모 부동산신탁회사와 2020년 1월까지 62억원 상당의 공사비를 받기로 계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도는 해당 부동산신탁회사가 B건설업체에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하도록 압류 조치했다. 오태석 경기도 세원관리과장은 “사실 무기명예금증서 같은 경우는 가택수색을 하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이행보증보험 증권 거래내역 조사를 더욱 확대해 세금 납부 회피를 목적으로 숨겨둔 은닉재산을 모두 찾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美 켈로그, 식량난 베네수엘라 철수… 마두로 “공장 몰수”

    극심한 경제난으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철수를 발표한 미국 식품업체 켈로그의 현지 공장을 몰수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미 미시간주에 본사를 둔 켈로그는 이날 성명을 내고 “경제 악화와 원재료 부족, 급격한 물가 상승, 엄격한 가격 통제 등 경제적·사회적 악화 때문에 영업 중단을 결정하게 됐다”면서 “향후 상황이 개선되면 다시 영업을 재개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 중부 마라카이시에 있는 켈로그 공장에는 약 55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지만 공장은 이날부터 노동자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이 공장에서는 베네수엘라인들이 아침으로 먹는 시리얼의 75%를 생산한다. 베네수엘라 시리얼 시장은 중남미에서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켈로그뿐만 아니라 최근 다국적 기업들은 수년 사이 경제 위기와 살인적인 물가상승에 허덕이는 베네수엘라에서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 앞서 클로록스, 브리지스톤, 킴벌리클라크, 제너럴 밀스, 제너럴모터스 등은 생산시설을 폐쇄하거나 영업을 축소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켈로그가 떠나게 되면 식량난은 더욱 심각해진다. 베네수엘라 식료품 상점과 슈퍼마켓에는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시민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고 있다.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인 베네수엘라는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석유 수입에 의존해 포퓰리즘 정책을 펼쳤지만, 2013년 전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집권 이후 유가가 급락하면서 인구 약 3000만명 가운데 4분의3이 식량 부족으로 평균 8.7㎏의 체중을 잃을 정도로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오는 20일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서 연임을 노리는 마두로 대통령은 공장을 국가에서 압류해 노동자들이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대선 유세에서 “켈로그사의 철수는 헌법에 위배되는 불법행위라 몰수를 위한 법적 절차를 시작했다”면서 “공장을 근로자들에게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킴벌리클라크가 철수할 때도 마두로 대통령은 생산 시설을 모두 압류했다. 카를로스 라라자바발 베네수엘라 기업연합회장은 “정부가 민간 영역을 계속 올가미로 죄고 있다”면서 “정부 정책에 변화가 없다면 기업들은 계속 켈로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북한, 중국에 석탄수출 재개할까...? ‘헐값 매각’ 움직임도

    북한, 중국에 석탄수출 재개할까...? ‘헐값 매각’ 움직임도

    북한 무역상들이 유엔의 대북 제재 완화 기대를 틈타 중국에 대한 석탄수출 재개를 추진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중국 무역상들을 인용해 11일 보도했다.이에 따르면 중국 무역상들은 지난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데 이어 6월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리게 되면서 북한 측의 석탄공급 제안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북한 핵 문제로 악화한 북중,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한반도 긴장 해소와 유엔의 제재 완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에 따른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석탄은 외화벌이를 위한 주요 수출품이다. 북한의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은 2016년 북한에서 약 20억 달러(2조1380억 원) 규모의 석탄 2250만t을 수입했다. 그러나 유엔이 북한산 석탄 금수조치를 한 이후인 작년 10월부터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는 것이 중국의 공식 자료다. 중국의 한 석탄 무역상은 “김정은이 베이징을 방문한 날 북한 무역상이 내게 접근해 북한 남포항에 있는 (석탄) 재고물량을 원하는지 물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무역상이 수천t의 무연탄을 보유 중인데, 유사한 중국 제품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t당 30∼40달러(3만2000∼4만2000 원)에 팔겠다는 의향을 보였다고 전했다. 북한의 석탄 생산업체와 무역업체는 국유화돼 있지만, 수출 제품의 가격과 물량을 결정하는 것은 허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중국 산시 성에서 생산되는 무연탄 가격이 t당 160∼172달러(17만3000∼18만4000 원)인 것과 비교하면 북한산 무연탄의 가격 경쟁력이 크다. 아직 대북 제재가 해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 무역상들이 헐값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중국의 한 무역상도 “(북한산 무연탄) 가격이 유난히 좋지만, 북한 정부에 의해 다시 압류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사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대북 제재 이전에는 대금의 20∼30%만 내고 북한산 석탄을 들여올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선불로 줘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복병 만난 ‘대고려전’/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복병 만난 ‘대고려전’/황성기 논설위원

    올 연말 전시를 앞두고 있는 ‘대고려전’이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대고려전은 고려 건국 1100년을 맞아 세계사적으로 ‘KOREA’를 널리 알린 고려(918~1392년)를 고찰해 보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야심 찬 기획이다. 첫째 복병은 해외에 있는 고려 문화재를 빌려 오는 게 순탄치 않은 점이다. 한·일 관계가 해빙되고 있다지만 우리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일본 측이 마음을 열지 않고 임대를 꺼리고 있어서다. 교류가 있는 국공립박물관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사립박물관, 사찰로부터 빌리려는 고려 불화·불상, 나전칠기 등은 대전고법에 계류 중인 ‘도난 불상 사건’ 여파로 애를 먹고 있다.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직지심체요절’(1337년 간행)도 사정은 비슷하다. 프랑스 측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가 한국 내에서 전시되는 동안 우리 정부가 한시적으로 압류나 몰수를 금지한다’는 압류면제법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반드시 직지를 돌려준다는 ‘보험’을 프랑스가 요구한 셈인데, 국회에서 논의하다가 지금은 답보 상태다.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직지를 국내에서 볼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른 복병도 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전시 기간(12월 4일~2019년 3월 3일) 중 서울에 모셔 온다는 계획이지만 그리 간단치 않다. 해인사 본사와 말사의 주지 회의가 조만간 열리는데 여기서 승인하지 않으면 대장경 반출은 어렵다. 해인사 대장경은 두 차례 바깥나들이를 했다. 1993년 ‘한국의 책문화 특별전’에 대장경 2매, 2010년 ‘국제기록문화전시회’에 1매가 바깥 바람을 쐰 것이다. 밝은 소식도 있다. 4·27 남북 정상회담으로 문화예술체육 분야 교류에 물꼬가 트인 것은 숱한 복병 속에 다행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북한 국보 ‘고려 태조(왕건)상’ 등 50점을 임대한다는 방침이다. 50여점에는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한 개성 만월대에서 나온 금속활자 등이 포함돼 있다. 박물관은 대고려전에 ‘국제도시 개경과 고려 왕실의 미술’ 코너도 두는데, 북한의 협조를 기대하고 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4월 3일 평양에서 만난 박춘남 문화상에게 대고려전에 북한의 참여를 제안해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역사적인 ‘고려 1000년’ 1918년은 일제강점기로 어떤 기념행사도 치르지 못했다. ‘고려 1100년’ 2018년은 남북이 고려를 통해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대고려전이 불교가 꽃피운 고려 문화의 정수, 팔만대장경의 출품 등으로 더 풍성해졌으면 한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설정스님, PD수첩 방송금지가처분 신청

    설정스님, PD수첩 방송금지가처분 신청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설정 스님 3대 의혹’을 다룬 MBC PD수첩의 방송을 금지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조계종은 “PD수첩이 불교계 일각의 의혹 제기를 비롯해 현재 소송 중에 있어 객관적 사실로 특정되지 아니한 사안까지도 포함해 방송을 제작하고 있다”며 25일 서부지방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전날 ‘PD수첩’은 오는 5월 1일 방송 예정인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3대 의혹’의 예고편을 공개했다. 이에는 ‘폭력·여자·돈 조계종의 민낯’ ‘의혹의 중심 설정스님’ 등의 자막과 함께 명진 스님, 유흥주점 사장 등과의 인터뷰를 담았다. 조계종 기획실장 금산 스님은 “만약 방송이 이뤄질 경우 사실과 다르거나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사실인 양 보도한다면 검토를 거쳐 손해배상 청구, MBC 사장 퇴진 운동 등 모든 조처를 취할 것”이라며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받아들여 종단이 바로 서는 계기로 삼겠다”고 덧붙였다. 설정 스님은 이날 조계종 총무원에서 열린 봉축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것이 내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확실하게 밝히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그는 “(의혹을) 확실하게 국민 앞에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 사람들 앞에서 변명하고 싶지는 않다”며 “(여건상) 당장 이뤄지지는 않고 있지만, 노력하고 있다. 어느 날 확실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단 자정 작업과 관련해서는 “종법 절차를 밟으면서 실현해야 하므로 쉽게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종단이 바로 서는 모습을 차근차근 보여주겠다고 했다.지난해 총무원장 선거 당시 불교계 일각에서 설정 스님을 상대로 학력 위조 의혹, 수덕사 한국고건축박물관 등 거액의 부동산 보유 의혹, 은처자 의혹 등을 제기한 바 있다. 설정 스님은 당시 서울대 학력 위조 의혹을 인정했으며, 은처자 의혹은 부인하면서 향후 이에 대해 확실히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속가의 형인 전흥수 대목장이 조성한 한국고건축박물관 소유 논란과 관련해서는 “박물관이 건축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해 가압류를 당한 뒤 강제 경매 위기에 처했고 박물관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정 스님이 우선 개인 명의로 매매예약 가등기를 한 뒤 수덕사로 이전하려 했던 것”이라며 설정 스님이 박물관에 대한 소유권을 지닌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었다 조계종 관계자는 “박물관의 막대한 부채 때문에 수덕사로 당장 명의를 이전할 수 없었다”며 “명의 이전 작업이 진행 중이며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설명했다. 설정 스님은 은처자 의혹 등을 제기한 불교 매체를 상대로 명예훼손소송과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이 언론사 역시 이이 대해 맞소송을 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설정 스님은 앞서 “모든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내 유전자부터 채취해 법원에 제출하겠다”고 밝혔지만, 친자 의혹을 받는 당사자가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데다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조계종 관계자는 설명했다. 한편 조계종은 설정 스님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정중하게 공문과 질문지를 보냈다는 PD수첩 측의 주장에 대해 “지난 16일 조계종 기획실 홍보국에 PD가 전화를 걸었고 질문지를 보내달라는 요청에는 정식 공문도 아닌 이메일 질문지를 보냈을 뿐이며 24일에야 MBC대표이사 사장 명의로 작성된 공문을 홍보국으로 전달해왔다”고 반박했다. 또 “강지웅 CP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담당 PD와의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했지만, 담당 PD는 조계종과의 만남 자체를 거부하고 있으며, 수덕사에서 설정 스님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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