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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입북 뒤 불륜의심 아내 살해…국내 송환된 60대 징역 10년

    밀입북을 함께 한 아내가 북한 당국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고 의심해 살해한 60대 남성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 김용관)는 살인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모(65)씨에게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2011년 5월 자녀들은 남겨놓은 채 아내와 함께 중국에서 압록강을 건너 밀입북했다. 그러나 아내가 북한 지도원과 친밀하게 대화하는 현장을 목격한 이씨는 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후 제3국으로 송환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단식 투쟁을 하는 등 초대소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아내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한 이씨는 결국 2011년 10월 초대소에서 아내를 목 졸라 살해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이씨와 부인의 시신을 판문점을 통해 인계했고 이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밀입북 뒤 아내 살해 50대 징역 10년

    밀입북을 함께한 아내가 북한 당국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고 의심해 살해한 60대 남성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김용관 부장판사)는 살인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모(65)씨에게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막노동 등을 하며 근근이 생활해 온 이씨는 2004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주최한 비전향장기수 정순택씨의 강연을 들으며 북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려운 형편에 건강까지 악화되자 더이상 한국 생활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이씨는 가족과 함께 밀입북하기로 결심했다. 2006년 3월 가족을 데리고 중국으로 건너간 이씨는 주중 북한대사관에 밀입북 요청을 했지만 자녀들의 의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씨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2011년 5월 자녀들은 남겨놓은 채 부인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북한에 들어갔다. 이씨는 그해 6월부터 북한의 초대소에서 생활하며 입북 동기 등에 대해 집중 조사를 받았고, ‘김일성 회고록’이나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 등 북한 사회주의와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책을 읽었다. 그러나 이씨의 북한 생활도 순탄치 못했다. 부인이 북한 지도원과 친밀하게 대화하는 장면을 목격한 이씨는 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제3국으로 송환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단식 투쟁을 하는 등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부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한 이씨는 결국 2011년 10월 초대소에서 부인을 목 졸라 살해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이씨와 부인의 시신을 판문점을 통해 인계했고, 이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씨는 실정법을 위반하고 밀입북해 북한 구성원들과 회합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기까지 했다”며 “죄책이 매우 중한데도 피해자가 죽음에 동의했다고 진술하는 등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점을 고려해 양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張라인’ 사업 올스톱… 무역일꾼·주재원 불시검열 등 공포 확산

    ‘張라인’ 사업 올스톱… 무역일꾼·주재원 불시검열 등 공포 확산

    “요즘 단둥(丹東) 일대 (남한 방송을 볼 수 있는) 위성TV까지 모두 철거됐어요.” 북한의 ‘장성택 처형 사건’ 이후 북한 정세 불안이 확대되면서 중국의 북한 접경 지역인 단둥에도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소위 ‘장성택 라인’과 거래하던 사업이 전면 중단된 가운데 북한 무역 일꾼과 주재원들을 상대로 한 감시 등 경계 활동이 대폭 강화되면서 공포감마저 엄습하고 있다. 장성택 라인을 통해 철광석·석탄·수산업 분야 등에 투자했던 중국 기업들은 북측의 태도 변화로 사업이 ‘올스톱’ 상태에 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둥에서 만난 한 중국인 사업가는 29일 “광산 개발 계약을 하고 자금은 물론 관련 장비까지 보내 놨는데 공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북한의 불가측성에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대북 사업가는 “장성택 처형 직후 북한과 거래하던 중국 회사들이 북에서 나온 사람들로부터 일제히 사찰을 당했다”고 말했다. 장성택 계열로 알려진 승리무역 소속 인력은 전원 북으로 소환된 것으로 전해졌다. 승리무역은 그동안 석탄 수출을 통해 국가가 급하게 필요로 하는 자금을 마련해 왔는데 현재 북한 당국이 해당 기업을 정비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죄목에 “나라의 귀중한 자원인 석탄을 헐값으로 팔아버리는 매국 행위를 했다”고 적시한 바 있다. 한국 공산품을 북으로 들여가던 무역도 움츠러들었다. 단둥은 북·중 교역의 70% 이상이 이뤄지는 무역 중심지다. 10년 넘게 북 무역 일꾼을 상대로 생활용품을 팔아온 O상사 박모 사장은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보위부 사람들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북한 무역상들을 상대로 한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평상시엔 김치냉장고까지 가져가는 등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지만 분위기가 나쁠 땐 북 무역상들이 한국 제품을 가져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보위부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단둥에 있는 북 무역 일꾼들과 주재원들은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한 교민은 “장성택 처형 이후 단둥에 증파된 보위부원이 일꾼 및 주재원 집에 불시에 들이닥쳐 검열하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남한 TV를 시청할 수 있는 안테나를 모두 철거했다”고 전했다. ‘사상교육’과 ‘호상(상호)감시’도 강화됐다. 그는 “지난 17일 김정일 사망 2주기를 전후로 북으로 불려 들어간 사람 중에는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야근 순찰과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고 중국 환구시보가 지난 28일 보도했다. 신문은 예년에 비해 야근 순찰 병력이 늘었고 국경 초소 안에 최소한 2명의 병사가 배치됐으며 10m 간격으로 순찰을 담당하는 병력도 생겼다고 전했다. 단둥의 한 교민은 “탈북자 검거조가 파견됐다는 소문도 파다하다”고 전했다. 중국군도 이 일대의 군사훈련을 강화했다. 앞서 관영 신화통신은 단둥에 주둔한 중국군이 지난 24일부터 군사 훈련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반면 북·중 간 무역교류는 여전히 활발하다는 평이다. 현지 한 무역상은 “단둥~신의주를 잇는 압록강대교를 지나는 트럭들의 행렬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면서 “연초 김정은 생일(1월 8일), 김정일 생일(2월 16일), 김일성 생일(4월 15일) 등이 몰려 있어 앞으로도 생필품들이 계속 북한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세관의 통관 절차도 이전과 차이가 없다는 전언이다. 한 사업가는 “목록에 없는 물품을 수송차량 앞자리 등에 끼워 넣어도 중국 측 세관원들이 여전히 봐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편 북·중 경협을 상징하는 황금평 일대는 공장을 짓기 위한 기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발표와 달리 공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중국 측 경계요원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북한군 초소에는 북한 군인 1명만 나와 있었다. 북한은 2011년 장성택 주도로 중국 측에 황금평 개발을 요구한 바 있다. 현지 한 교민은 “황금평 개발을 주도하던 장성택이 처형됐는데 공사가 제대로 이뤄지겠느냐”면서 “애초부터 황금평에 별 의욕이 없던 중국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 된 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둥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데스크 시각] 동북아 신냉전구도의 딜레마/오일만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동북아 신냉전구도의 딜레마/오일만 정치부 차장

    드디어 올 것이 온 것 같다.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한판 대결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세계 2위 대국은 늘 최강국에 도전했고 무력을 통해 순위를 결정하곤 했다. 미국이 전후 70년 가까이 유지해 온 ‘팍스 아메리카나 질서’에 넘버2 중국이 고분고분 순응하기 바라는 것 자체가 순진한 발상이다. 시곗바늘을 돌려 보자. 중국은 1894년 9월 17일 압록강 하구의 서해 해전에서 이홍장의 주력 부대인 북양함대가 일본 해군에 전멸됨으로써 아시아 패권을 일본에 넘겨줬다. 청일전쟁 패배 이후 120년의 세월동안 온갖 수모를 겪은 중국이 아시아 맹주 탈환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 바로 최근 발표한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다. CADIZ 선포는 중국의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최종 결단으로 이뤄진 것이나 31년 전인 1982년 덩샤오핑의 오른팔이었던 류화칭(劉華淸) 당시 중앙군사위 부주석의 대양(大洋)전략에 따른 것이다. 규슈~오키나와~타이완을 잇는 제1열도선(第一列島線)과 오가사와라 제도~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에 이르는 제2열도선(第二列島線)을 대미 방위선으로 정했다. 구체적으로 2010년 제1열도선, 2020년 제2열도선을 장악한 뒤 2040년 미 해군의 태평양·인도양 지배를 저지한다는 장기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미국은 어떤가. 2011년 10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선회(Pivot to Asia) 선언이 발표됐다. 미군의 신전략에는 중국의 대함미사일 파괴를 위한 해·공군 공동작전, 중국 해군 함정에 대한 사이버 공격능력 개발, 해·공·해병대에 의한 중국 역내 거점 공격이라는 구체적인 내용도 들어 있다. 미국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중국의 거센 도전을 격퇴하고 인도와 중앙아시아, 동남아 국가들과 다층적인 안보협력망을 구축하는 대중 포위망을 드러내놓고 추진 중이다. 명확한 국가전략 속에서 움직이는 두 거인의 충돌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미·중은 공멸을 피하며 자국의 이익극대화란 관점에서 협력과 경쟁의 복합 다층적 책략을 구사하는 장기 전략에 돌입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동북아 한복판에서 충돌의 여파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제적 운명을 좌우할 중국시장을 온전히 건사하고 안보적 의존도가 높은 미국과도 굳건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묘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찌해야 하나. 미·중 편 가르기에 휩쓸리지 않고 동북아의 중심을 잡는 균형추의 역할만이 우리 외교안보의 생존과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과 미국 모두에 당당한 우리의 국가적 좌표를 설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한·미·일 삼각동맹과 북·중·러 삼국연합이 대치하는 신냉전구도 회귀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한·중 균형외교의 포기이자 미·일 동맹의 종속변수로의 전락을 의미한다. 우리의 존재감과 전략적 가치를 스스로 저버리는 하책 중의 하책이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어찌 보면 남북한의 한반도와 일본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진다는 의미에서 우리에게 기회로 활용할 여지도 크다. 우리의 외교가 기존의 편들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주변 강대국과 남북한 변수까지 아우르는 예술의 경지로 승화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oilman@seoul.co.kr
  • ‘밀입북’ 3명 구속기소… ‘생활고’ 윤봉길 의사 조카 등 포함

    ‘밀입북’ 3명 구속기소… ‘생활고’ 윤봉길 의사 조카 등 포함

    북한에 밀입북해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던 국민 6명 중 남은 3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 가운데에는 윤봉길 의사의 조카도 포함돼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최성남)는 정부의 허가 없이 무단 방북하고 북한 체제를 찬양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윤모(66)씨와 송모(26)씨, 이모(64)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22일 밝혔다. 윤씨 등 3명은 북한에 밀입북해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찬양·고무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윤봉길 의사의 조카인 윤씨는 서울에서 명문고와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 언론사에서 기자와 편집부국장 등으로 일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북한에서 생활하면 윤봉길 의사의 조카이므로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밀입북했다. 윤씨는 2009년 9월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을 통해 자진입북을 신청했으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2010년 1월 직접 두만강을 건너 밀입북했다. 윤씨는 북한에 체류하면서 국가안전보위부 직원 등과 접촉해 한국의 정치 정세, 경제, 사회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등 반(反)국가단체의 구성원과 회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윤씨는 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같은 밀입북자인 송씨와 함께 원산항 부두에 있는 분향소에서 참배하기도 했다. 송씨는 육군사관학교 등에 불합격한 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했다. 그러나 모은 돈을 모두 주식투자로 탕진하면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씨는 대남 선전선동사이트 ‘우리민족끼리’, ‘조선신보’ 등에 몰래 접속해 북한 체제를 동경했고 중국어를 독학해 주중 북한대사관 위치 등 밀입북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이후 2010년 1월 두만강을 건너 밀입북한 송씨는 북한에 머물면서 김영철 북한 정찰총국장을 비롯해 군부와 잇따라 접촉해 미군기지 위치 등의 정보를 제공했다. 또 북한 선전영화와 김일성 회고록 등을 시청하고 사상학습을 받으면서 북한 체제를 찬양·고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밀입북자인 이씨는 생계 유지가 힘들고 건강마저 악화되자 2006년 가족을 데리고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 밀입북을 신청했다. 그러나 자녀들의 의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2011년 5월 부인과 함께 압록강을 헤엄쳐 밀입북했다. 이씨는 북한에서 ‘김일성회고록’,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 등의 책을 읽으면서 북한 사회주의체제와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찬양했다. 그러나 북한 측 당국자와 부인이 부적절한 관계인 것으로 의심한 이씨는 제3국으로 송환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되자 단식투쟁을 하는 등 북한내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이후 이씨는 밀입북 때 갖고 간 돈을 부인이 북측 당국자에게 몰래 건네주는 것으로 오해하고 홧김에 부인을 살해한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앞서 윤씨 등 6명은 지난달 25일 판문점을 거쳐 국내로 송환됐고,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뒤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은 지난 12일에도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무단 방북한 혐의 등으로 김모(43)씨와 장모(42)씨, 황모(55)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업실패·생활고로 밀입북 …“北서 잘해줄것” 막연한 동경

    지난 25일 판문점을 통해 북에서 송환된 우리 국민 6명은 국내에서 사업 실패와 가정불화, 생활고 등으로 일용직 노동활동을 전전하거나 사이버 종북활동을 전개하다 2009∼2012년 밀입북한 것으로 27일 파악됐다. 정보 당국은 북한에서 송환된 김모(44)·송모(27)·윤모(67)·이모(65)·정모(43)·황모(56)씨 등 6명을 25일 판문점에서 체포해 입북 경위와 북한 체류상황 등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당국에 따르면 이들은 2009~2012년 압록강·두만강의 얼음판을 넘거나 중국 유람선에서 뛰어내려 도강하는 방식으로 밀입북했다. 일부는 사이버상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쓴 뒤 자신의 필명이 노동신문에 소개되는 것을 보고서 “입북하면 북한이 잘해 줄 것”이라는 망상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북한에 가면 잘 살 수 있고, 아픈 몸도 요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밀입북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분산, 감금돼 최소 14개월에서 최장 45개월에 걸쳐 조사를 받다가 최근 송환을 앞두고 원산수용소에 집결돼 조사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북한으로부터 인도받은 여성 유해의 살해범으로 지목된 남편 이씨는 “원산초대소 체류 중 동반자살을 하려고 처를 목 졸라 죽이고 나도 죽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이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정보 당국은 이틀간의 조사를 바탕으로 27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며 구체적인 밀입북 경위와 북한체류 행적 등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 추가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WCC 총회 ‘평화열차’ 북한 통과 사실상 무산

     오는 30일 부산에서 개막될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의 핵심 이벤트로 관심을 모았던 ‘평화열차’의 북한 관통이 사실상 무산됐다. 따라서 ‘평화열차’는 독일 베를린을 출발해 러시아 모스크바∼이르쿠츠크∼중국 베이징∼단둥 구간까지만 운행하고 참석자들이 배편으로 인천을 거쳐 서울∼부산 구간을 이어 갈 전망이다.  3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따르면 지난달 22∼25일 올라브 퓍세 트베이트 총무를 비롯한 WCC 본부 관계자들이 방북해 북한 당국 및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핵심 인사들과 WCC 평화열차의 북한 통과 문제를 협의했으나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WCC 한국준비위는 8일 일단 평화열차를 출발시키기로 결정했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한국 관계자 60명을 포함한 세계 각국 기독교 관계자 120명을 태운 열차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해 28일 부산에 도착한다.  당초 평화열차는 베이징을 거쳐 북한 접경도시 단둥까지 간 뒤 압록강철교를 건너 북한 땅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평양, 개성, 서울을 거쳐 부산까지 달림으로써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해 세계 각국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는 게 이번 WCC 10차 총회에 앞서 추진해 온 평화열차의 목표였다. WCC와 WCC 한국준비위는 그동안 각국을 돌며 평화열차 홍보와 지원 요청을 계속해 왔으며 미국, 러시아, 중국 당국과 교회 측으로부터 적극적인 동참과 협조를 약속받았다.  이와 관련해 NCCK 관계자는 “오는 14∼15일 WCC 관계자들이 북한 조그련 측과 다시 만나 평화열차의 평양 통과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경색된 남북 관계를 볼 때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평화열차의 아름다운 여정이 미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한편 WCC 방북단은 지난달 평양 방문 직후 스위스 제네바에서 WCC 한국준비위 관계자들에게 방북 결과를 보고하면서 “북한 조그련 관계자들이 WCC 부산 총회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며 “특히 내년 3월 제네바에서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중심이 돼 열리는 아시아평화포럼에 북한이 회원국으로 참여키로 약속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국민 가곡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

    [김문이 만난사람] 국민 가곡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

    추석을 전후로 ‘금강산’은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과 실망, 두 가지를 동시에 안겨줬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13만명이나 된다. 이들의 한을 어떻게 달랠까. 노래 한 곡 불러 본다.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그리움으로 손을 뻗어본다. 하지만 금강산은 여전히 ‘저편의 너’이자 단장(斷腸)의 메아리다. ‘그리운 금강산’은 홍난파의 ‘봉선화’(1919년) 이후 한국 가곡 역사에서 가장 애창되는 노래이다.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지만 가사와 곡을 음미하노라면 시보다 아름답고 소설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쉼없는 작곡 ‘그리운 금강산’이 작곡·발표된 지 올해로 꼭 52년. 그동안 ‘통일 주제가’이자 ‘민족 가곡’으로 널리 사랑받아 왔다. 국내뿐만 아니라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그리고 세계적인 음반회사 데카에서 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마이 월드’(My World)에도 수록될 만큼 국가 대표급 가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를 작곡한 최영섭씨. 그는 추석 직후부터 이산가족 상봉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오는 20일 음반이 나올 예정이어서 ‘그리운 금강산’ 이후 민족 가곡의 완결편을 선보이게 된다. 올해 나이 85살에도 불구하고 작곡에 여념이 없는 최씨를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먼저 최근 작곡한 노래 ‘아 우리 독도여’와 일본 위안부들의 한을 달래는 ‘그 누구가 알리오 소녀의 눈물을’이 담긴 CD 한 장을 건네준다. 보름 전 작곡했다는 설명과 함께. ‘아 우리 독도여’라는 가사를 들여다봤다. ‘삼천리 이 강산에 바위섬 하나/내 한 점 고운 살 던진 독도여~’ 이어 위안부 노래가사가 바로 나온다, ‘그 누가 알리오 서러운 눈물을/머나먼 이국땅에 어린 몸으로~’ 다음 이어진 얘기는 이산 가족 상봉의 노래다. “9월 중순에 두 곡(아 우리 독도여, 그 누가 알리오 소녀의 눈물을)을 작곡했고 이달 20일쯤 이산가족 상봉의 노래인 ‘금강산 가는 길’이 완성됩니다. 그러니까 ‘그리운 금강산’부터 시작해 조국을 생각하면서 곡을 만든 것이 100곡이 되는 것이지요. 나름대로 우리 가곡 역사에 의미가 있겠지요.” 작곡 중인 ‘금강산 가는 길’의 가사 내용을 잠깐 살펴봤다. ‘볼수록 아름다운 우리 금강산/망향가 부르다가 흘러간 청춘/저 하늘 달빛 속에 어리는구나/이제야 보고 싶은 그리운 얼굴~’ 작시는 시인 고산 최동호씨가 했다. ‘그리운 금강산’에서 시작해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노래여서 사뭇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가 작곡한 노래는 대부분 조국 강산과 연관이 있다. ♬혹평도 딛고 “그동안 우리의 조국, 삼천리 금수강산, 그리고 민족의 ‘정’이라는 가곡집을 5권 출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강과 산, 바다, 그리고 인정을 소재로 한 가곡이 100곡이 되더군요. 이번에 나오는 이산가족 노래가 그 완결편입니다. 보세요. ‘그리운 금강산’부터 시작해 ‘압록강은 흐른다’, ‘백두산은 솟아 있다’, ‘낙동강 칠백리’, ‘한강의 노래’, ‘남산에 올라’ 등 주로 조국의 산하를 작곡했거든요.” 작시한 최동호 시인과는 평소 자주 만났다. 그러면서 ‘아 우리 독도여’와 ‘그 누가 알리오 소녀의 눈물을’ 작곡하게 됐고 추석 때 이산가족 상봉 노랫말을 지어달라고 했단다. 그는 그동안 300여곡을 작곡했으며 그 가운데 3분의1은 민족 가곡, 그러니까 조국을 생각하면서 작곡한 것이 100곡이 된다. 예를 들어 ‘그리운 금강산’은 그리움과 금강산의 아름다움, 통일의 염원을 담았으며 최근 발표한 ‘아 우리 독도여’에는 한국인의 기백을, 위안부 노래에는 슬픔을 녹였다. 이달 발표될 이산가족의 노래에는 그리움과 다시 헤어지는 가슴 아픈 절절한 심정을 표현했다. 이어 ‘그리운 금강산’으로 얘기를 옮겼다. 2000년 8월 15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앞마당에 한옥집만 한 크기의 노래비가 세워졌다. 2009년 강화도 통일평화전망대에도 그만한 크기로 노래비가 세워졌다. 최씨는 “해외에 다니면서 수백개 노래비를 봤는데 ‘그리운 금강산’만 한 크기의 노래비는 보지 못했다”면서 기네스북에 올려주면 안 되겠느냐며 웃는다. 그러면서 슈베르트의 ‘보리수’ 노래비는 숲속에 묻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노래를 많이 사랑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의 고향은 강화도이며 학창시절은 인천에서 보냈다. 시곗바늘을 옛날로 돌린다. 한 시인이 음악가를 꿈꾸는 중학생과 인천 앞바다를 거닌다. 시인은 오른쪽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시인은 “이봐, 한 수 읊을 테니 적어 봐”라고 했다. 그러고는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라고 소리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닷바람이 불었다. 성질 급한 학생은 “다음은요?”라고 보챘다. 시인은 또 목구멍 속으로 술을 꼴깍 넘기며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학생은 이튿날 가곡을 만들어 화답을 했다. 시인은 고 조병화씨다. 광복 직후 경복중학교에 다니던 학생 최영섭이 인천 앞바다를 거닐 때의 일화다. 최씨는 1954년 처녀 가곡집을 냈다. 그러자 서울신문 문화면 전체에 다음과 같은 글이 게재됐다. ‘악보 출판치고는 사상 최악이다. 그러나 이 청년의 장래를 정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시 작곡가 나운영씨가 주저 없이 나서 역설적으로 호평했던 것이다. “저는 ‘그리운 금강산’ 덕분에 명성과 부를 얻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학교 교가나 회사 사가들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빈털터리 삶 그러나 지금은 서울 모래내 반지하 월세방에 산다. 왜 그런지 살며시 물었다. 16년 전 재혼한 부인한테 돈을 몽땅 줬는데 집 나가서 여태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며 웃는다. 그 부인을 미워하느냐는 질문에 “글쎄, 올 줄 알았더니 오지 않더구만요”라고 한다. 최씨의 첫 부인은 세 아들을 낳고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참 동안 혼자 살다가 방송국 PD의 중매로 둘째 부인을 만나 살았지만 1997년 헤어졌다. 평생 살려고 약속했던 부인에게 재산을 다 주고 났더니 빈털터리가 됐다. 그룹 ‘들국화’ 멤버였던 큰아들이 함께 살자고 하지만 집에 쌓인 책이며 음악자료들이 정들어 혼자 지내기로 했다. 눈치 보는 게 하나 있다. 집에서는 소주를 마시고 밖에서는 맥주를 마신다. 혹시 ‘그리운 금강산’ 작곡자가 강소주나 먹는 처지가 됐나, 하는 시선 때문이다. ‘그리운 금강산’ 탄생 당시로 화제를 돌렸다. 1961년 8월이다. KBS가 남산에 있던 시절이다. ‘남산에 올라’, ‘한강의 노래’, ‘낙동강 칠백리’, ‘백두산은 솟아 있다’ 등의 곡을 발표할 때였다. 하루는 한용희(‘파란 마음 하얀 마음’ 작곡자)씨가 남산 ‘산실다방’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다짜고짜 “최 선생. 한강, 백두산, 낙동강을 다 작곡하면서 정작 금강산은 왜 안 하는 거요”라고 말했다. 최씨는 아차 싶구나 하는 생각에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한상억(1992년 작고)씨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안 그래도 가사를 이미 써 놨으니 가져 가시오”라고 했다. 그날로 최씨는 밤새 오선지에 음표를 그렸다. 이튿날 방송국에 악보를 전달하고 녹음에 들어갔다. 서울대 음대 동창인 이남수씨가 지휘했다. 3일 뒤부터 KBS 가곡프로그램 ‘이주일의 노래’에 연달아 방송됐다. 팬레터가 쇄도했고 32세의 청년 최영섭은 일약 가곡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지금에야 밝히는 진실. ‘그리운 금강산’의 첫 대목에서 ‘누구의 주제련가~’의 주제는 ‘주재’(主宰)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아름다운 금강산을 주재했다는 뜻인데 처음 악보집을 인쇄할 때 ‘주제’라고 나온 것이 그대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최씨는 6살 때 강화도 동네 병원에서 축음기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었다. 또 마니산에 올라 연평도 쪽에서 들려오는 ‘경기 뱃노래’에 매료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호르겔 피아노를 처음 접하면서 음감을 확인했고 이화여고에 다니는 누나한테 음악을 배웠다. 인천중학교 시절에는 바이엘과 체르니를 독학으로 배웠다. 1949년 경복중학교 6학년 때 첫 작곡 발표회를 가졌다. 서울대 음대 시절 김성태 선생을 만나면서 오늘날 민족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다. “제 나이 85살입니다. 생전에 통일을 봤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내후년이면 광복 70주년이거든요. ‘그리운 금강산’도 더 이상 불려지면 안 될 텐데요.” 헤어지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탁소에 옷을 맡기면 ‘금강산’이라고 이름을 적어요.” 선임기자 km@seoul.co.kr ■최영섭 작곡가는 오선지와 한평생 지휘자로도 활약 1929년 인천 강화군 화도면에서 태어났다. 인천중학교를 거쳐 경복중·고교 재학 때 이화여대 임동혁 교수에게 작곡 이론을,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서 김성태 교수에게 작곡 이론을 각각 사사했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지휘과 수석 교수 칼 스터라이히 교수한테는 지휘법을 사사했다. 인천여중고, 인천여상고, 이화여고, 한양대 음대, 상명대 음악과, 세종대 음악과에서 교직 생활을 했다. 인천애협교향악단을 창립, 상임 지휘자를 맡았다. 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 부이사장, 한국작곡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서울작곡가 포럼 고문, 한국가곡문화예술협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인천시문화상(1959년), 경기도문화상(1961년), 한국음악상(1996년), 세종문화상(2001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은관·2009년), 세일문화재단가곡상(2010년) 등이 있다.
  • [시론] 완공 임박한 신압록강대교와 북중 경협의 미래/임을출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시론] 완공 임박한 신압록강대교와 북중 경협의 미래/임을출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북한 신의주 건너편에 자리잡은 중국의 단둥(丹東)시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으나 20세기 초입에 일찌감치 개항돼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 진출 관문으로서 빠르게 발전하였다. 그렇지만 남북 분단과 냉전의 지속은 단둥을 고립된 변경도시, 나아가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남게 만들었고, 이에 따라 단둥은 개혁·개방의 단물을 가장 늦게 맛보아야 했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늦었지만 단둥은 이제 더 이상 변방의 소도시가 아니다. 중국 동북 지방의 물류 및 산업도시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둥은 지경학적으로 남북한과 소통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발전의 한계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궁극적으로 남북한과 육로와 철로 등으로 통해야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둥의 향후 발전은 북한의 개방 속도와 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둥 기업들은 광물자원이나 농수산물 수입처로서만 북한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각종 중국산 제품의 판매 시장으로서도 주목하고 있다. 최근 개막한 제9차 평양 가을철 국제상품전람회에 단둥을 포함한 랴오닝(遼寧)성 내 중국 기업들이 대거 참석한 점 등이 이를 부분적으로 입증한다. 중국 자동차 비야디(BYD)를 판매하는 ‘단둥유룡수출입유한공사’ 관계자는 “최근 평양 시민의 차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유심히 볼 대목은 지금 북·중 간에 한창 추진 중인 신압록강대교 건설과 황금평경제특구 개발 움직임이다. 특히 현지에서 바라본 신압록강대교의 건설 모습은 향후 북·중 경협의 빠른 확대발전 가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올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경제 제재에 동참하면서 일시적으로 북·중 간 미묘한 긴장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나, 적어도 신압록강대교 건설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은 듯했다. 또한 현지 교역상들과의 인터뷰에 근거하면 북·중교역 규모도 예년 수준은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교역 거점인 평안북도 신의주 남부와 랴오닝성 단둥 랑터우(頭) 신도시를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 건설 작업은 현재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이미 완공된 대교 주탑의 높이는 140여m에 이르고, 현재 일부 단절된 구간만 상판을 조립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신압록강대교는 18억 위안(약 3300억원)의 건설비용 전액을 중국이 부담해 기존 압록강 철교에서 8㎞ 정도 하류 지점에 건설되고 있다. 이 대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황금평경제특구도 일부 언론을 통해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물론 기존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가고 있었고, 대규모 건설 장비 등이 이동되는 장면이 포착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개발이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황금평 입구에 ‘황금평경제구’라는 표지석을 비롯해 세관과 보안시설·관리실이 세워졌고, 순찰용 도로가 건설되었으며, 일부 전력망의 설치도 이뤄진 듯하다.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고,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가 여전한 상황에서 중국만이 홀로 ‘속도위반’을 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목격한 북·중 접경도시 단둥의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마치 무언가를 집어삼킬 듯이 북한을 향해 뻗친 신압록강대교의 위압적인 자태는 향후 북한의 개혁·개방 진전 등 적절한 조건만 충족되면 북·중 간에 획기적인 물적, 인적 왕래가 이뤄질 수 있음을 전망케 한다. 총연장 3.026㎞의 신압록강대교는 내년 7~9월쯤 완공될 예정이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을 자신들의 한 성(省)으로 편입시키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단둥 기업인의 목소리가 ‘비약’에 머물길 바라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지지부진한 남북관계와 북·중 경협에 대한 우리의 전략 부재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 [씨줄날줄] TSR과 북극항로/서동철 논설위원

    기차로 유럽 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한국인의 꿈이다. 그런데 이 ‘꿈의 철도’는 이미 가까워졌다. 문산과 개성 사이 27.3㎞의 경의선 구간은 2007년 복구됐다. 경의선은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철도와 이어진다. 이곳에서 만주통과철도(TMR)는 하얼빈을 거쳐 러시아 카림스코예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합류한다. 베이징에서 출발한 중국횡단철도(TCR)는 카자흐스탄을 거쳐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울란바토르를 경유하는 몽골통과철도(TMGR)는 울란우데에서 TSR과 만난다.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지면 당장이라도 유럽 철도 여행은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유럽이나 중앙아시아로 가는 수출 화물은 러시아 보스토니치나 중국 롄윈(連雲)까지는 일단 바닷길로 가야 한다. 최근 한국과 유럽의 심리적 거리를 더욱 가깝게 하는 두 개의 뉴스가 전해졌다. 하나는 북한의 나진과 러시아의 하산을 잇는 54㎞ 구간의 철도가 5년 동안의 공사를 마치고 개통됐다는 소식이다. 부산항에서 나진에 이르는 동해안 철길은 아직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경부선과 경의선을 이용한 다음 평양에서 나진으로 가는 평라선으로 갈아타면 얼마든지 TSR과 연결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가 북극항로의 시험운항에 나섰다는 뉴스였다. 석유화학 원료를 실은 특수 건조 유조선이 러시아 서쪽의 우스트루가항을 떠나 광양항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아직은 여름 한철에 그치고 있지만, 지구온난화가 진전되어 2020년쯤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통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물류비를 아끼는 것은 물론 TSR과 TCR의 높아진 콧대를 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TSR이 우리 기업의 관심권에서 한동안 멀어진 것도 2000년대 중반 이후 400%에 이르는 운임 인상 때문이었다. 선박보다 비싼 TSR 운임은 물동량이 크게 줄어들고 나서야 엇비슷해졌다. 대안으로 떠올랐던 TCR도 마찬가지다. 운송 시간은 느렸고, 운임 역시 선박보다 싸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와 거래하는 수출 기업들조차 TCR을 놔두고 이란의 항구에서 화물을 내려 트럭에 다시 싣는 고육지책을 쓰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시베리아와 만주 벌판, 카자흐와 몽골의 초원을 달리거나, 북극해를 항해하는 것은 모두 꿈이다. 하지만 꿈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하게 열린 루트는 철저하게 ‘실리의 길’로 이용해야 할 것이다.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마지막 ‘미개통 구간’인 북한과의 협상도 꿈보다는 실리로 접근해야 풀리지 않을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lr
  • 잔치 잔치 열렸네~ 전국 곳곳 ‘책 잔치’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책 잔치가 전국 곳곳에서 펼쳐진다. 2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도서관, 학교 등이 연대해 전국 각지에서 6700여건의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풀뿌리 독서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지역 독서활동가가 170여개 독서 활동에 참여하며, 인문학자와 함께 관련 지역을 탐방하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이 전국 120여개 도서관에서 11월까지 진행된다. 지역주민이 관심을 둔 주제를 바탕으로 지역 대학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서아카데미 강좌’가 11월까지 운영되며, 취약지역 주민을 위한 ‘문학 작가 파견 사업’도 전국 70개 도서관에서 열린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 이미륵 전시회를 비롯해 디지털북페스티벌, 장애인 독서한마당 등 풍성한 행사를 마련했다. 13일부터 10월 27일까지 본관 1층 로비에서 열리는 ‘이미륵:독일이 사랑한 동양의 현인’ 전시회에는 도서관이 소장한 이미륵 개인 문고 자료를 중심으로 미공개 서신, 친필 원고, 유품, 친필 서예 작품 등 80여점이 전시된다. ‘디지털북 페스티벌 2013’(24~26일)은 최신 기술을 활용한 전자책 전시 및 체험을 통해 디지털 출판시장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30일에는 제3회 장애인 독서 한마당이 열린다. 각 지역에서는 ‘책 읽는 학교, 책 읽는 직장, 책 읽는 마을’(서울 성북), ‘보수동 책방 골목 책의 소리를 듣자’(부산 중구), ‘찾아가는 북콘서트 책 마실 가자’(경기 화성) 등의 다양한 독서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오는 25일 서울 서대문 구립 이진아도서관에서는 독서문화진흥에 기여한 유공자를 발굴해 포상하는 ‘제19회 독서문화상 시상식’이 열린다. 파주 북소리(9월 28일~10월 6일, 파주출판도시 일대), 와우북페스티벌(9월 18~23일, 마포 홍대주차장 주변) 등의 대형 행사도 이어진다. 다음 달 23일에는 도서관, 출판, 독서 관계자 3000여명이 참여하는 제50회 전국도서관대회가 제주에서 열린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남남북녀 연애소설로 포장된 묵직한 위로

    남남북녀 연애소설로 포장된 묵직한 위로

    탈북자 성옥의 첫 번째 집은 북한의 ‘하모니카 집’이었다. 여덟 세대가 웅숭그리고 있는 건물의 맨 끝 집. 겨우내 추녀 아래 매단 명태를 마르는 족족 떼어 먹던 집. 추레하지만 성옥에겐 엄마가 사는 그리움의 공간이다. 성옥의 두 번째 집은 서울 달동네의 반지하방이다. 내 집인데도 ‘혼자’라는 절망과 무망(無望)이 덮쳐 오는 배반의 공간이다. 그런 그녀가 꿈꾸는 세 번째 집을 그려 주겠다는 남자가 등장한다. 이경자(65)의 새 장편 ‘세번째 집’(문학동네)에서다. ‘세번째 집’은 죽음과 맞닿아 본 적이 있는 여자 성옥과 집을 짓는 남자 인호가 교감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탈북 여성과 남한 남자의 연애 소설로 압축하는 것은 성급하다. 탈북자의 전형을 되풀이하는 소설은 더더욱 아니다. 실제 한 탈북 여성을 모델로 한 성옥이라는 인물의 내면으로 침잠해 북한, 탈북자에 대한 편견을 걷어 낸다. 3대에 걸친 성옥의 가족사를 통해 개인의 삶을 옭아매는 질곡 같은 현대사도 꿰뚫는다. 일제 시절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일본 후쿠오카 탄광으로 징용된 할아버지, 일본 규슈의 모지항에서 태어나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옮겨 간 아버지, 북한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남한으로 탈출한 성옥. 저마다 고향을 달리하며 조센징, 귀국자, 탈북자라는 꼬리표에 휘둘려 온 비운의 3대다. 작가는 지난 3년간 탈북자 수십명과의 인터뷰, 자료 조사에 매달려 인물들을 세심하게 조형해 냈다. 압록강을 거친 주인공의 탈북 경로와 할아버지, 아버지의 흔적이 깃든 일본 후쿠오카까지 답사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북한자료관을 제집처럼 오가며 김정일 신년사, 북한 교과서, 북한 영화 등으로 탈북자들에게 스며든 이념과 체제의 정서를 체감했다. 탈북자라는 소재는 작가의 전작을 부감해 보면 낯설지 않다. ‘사랑과 상처’(1998)는 식민 시절부터 분단 직후인 1932~1960년을, ‘순이’(2010)는 휴전되던 해인 1953년을 배경으로 했다. 작가는 “고향이 이번 소설을 키워 낸 뿌리”라고 했다. “제 고향이 강원도 양양이에요. 38선 이북이라 북한 지역이었다가 전쟁 나고 휴전이 되면서 남한이 된 땅, 소위 수복지구죠. 이로 인해 제 무의식 속에는 이념 때문에 삶이 박살 나 본 이들의 상처와 슬픔이 스며들어 있었던 거죠.” 그간 차별받는 여성, 이념 때문에 삶이 무너진 이들의 상처에 천착했던 작가는 ‘세번째 집’을 통해 문학관의 변화도 보여줬다. “40대까지는 제 주장을 강하게 발현하고 독자를 긴장시키는 소설을 썼어요. 나이가 들면서는 어떤 이념, 체제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것 그 자체보다 더 귀한 건 없다 싶더군요. 그래서 소설가는 독자를 이롭게 하고 위로하는 몫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문학관이 바뀌었어요. 누가 먹어도 탈이 안 나는 음식처럼요.” ‘이성의 호기심을 넘어 그리고 본능의 깊은 켜들을 지나쳐, 성옥의 생의 원형질 같은 것으로 자신의 혼이 스며드는 느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수복지구 기념관의 도면을 상상할 때 성옥의 불행과 슬픔과 고통이 상징부호처럼 느껴지곤 했다.’(63쪽) 건축가 인호는 수복지구 기념관을 지으면서 슬픔을 배태한 성옥의 삶의 경로를 쓰다듬는다. “인호는 우리가 북한, 탈북자에게 가졌으면 하는 태도와 감정을 지닌 인물”이라는 작가의 설명처럼 남녀 관계에 갇히지 않고 인류애로 나아가는 성숙함이 돋보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당신의 책]

    사상이 필요하다:다른 세상을 꿈꾸는 정치적 기본기(김세균 외 8인 지음, 글항아리 펴냄) 지난 2월 정년 퇴임한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명예교수가 정치적 교우들을 초청해 함께 기획했던 마지막 학부 강의인 ‘정치와 정치이념’의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강내희, 손호철, 심광현, 조희연, 우희종, 이도흠, 하승수, 홍세화가 참여했다. 336쪽. 1만 5000원.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현대사(정재민 지음, 나남 펴냄) 외교부 독도법률자문관으로 활동한 정재민 판사가 계속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을 국제법을 토대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220쪽. 1만 2000원. 일본의 조선학교(김지연 사진, 눈빛 펴냄) 3·11 일본 대지진 후 도호쿠와 후쿠시마의 조선학교 모습을 담은 사진집. 일본 내에서 정규학교로 인정받지 못한 탓에 보수 비용을 지원받지 못하고 기숙사를 임시 교실로 꾸려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학교 풍경이 130여장의 사진에 담겼다. 280쪽. 1만 7000원. 국경을 걷다(황재옥 지음, 서해문집 펴냄) 북한 전문가인 저자가 전직 통일부 장관 등 4명의 지인과 함께 압록강 하구 단둥에서 두만강 하구 팡촨까지 1376.5㎞를 답사한 8박 9일간의 기록. 북한의 민낯과 빠르게 변화하는 북한과 중국의 교류 현황, 국경선 주변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르포 형식으로 풀어썼다. 256쪽. 1만 5000원. 선택(미하일 고르바초프 지음, 이기동 옮김, 프리뷰 펴냄) 동서냉전 체제를 종식시켰다는 찬사와 소련의 해체를 초래한 배신자라는 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는 전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자서전. 정치인으로서의 회고록이기 이전에 부인 라이사와의 만남과 사랑, 가족에 대한 헌신을 고백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440쪽. 2만 1000원. 겟 리얼(일레인 글레이저 지음, 최봉실 옮김, 마티 펴냄) BBC에서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하는 저자가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 조작 과정을 폭로한 책. 환경을 고민하는 척하는 다국적 석유기업, 정해진 대본에 따라 녹화·편집되는 리얼리티쇼, 은밀하게 가짜 시민운동을 조직하는 억만장자 등의 예를 살펴본다. 304쪽. 1만 6000원. 파는 것이 인간이다(다니엘 핑크 지음, 김명철 옮김, 청림 펴냄) ‘새로운 미래가 온다’ ‘드라이브’를 쓴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지금은 누구나 세일즈하는 시대이며, 광의의 판매 활동이 생존과 개인적 행복을 가름하는 중요한 가치”라고 주장한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세일즈를 어떻게 인지하고 활용할지에 대한 제언을 담고 있다. 312쪽. 1만 6000원. 일상을 바꾼 발명품의 매혹적인 이야기(위르겐 브뤼크 지음, 이미옥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일상에서 흔히 쓰는 물건들에 얽힌 뒷이야기를 모았다. 노트북, 현금자동지급기, 미끄럼틀, 종이컵, 껌, 비누, 토스터 등 다양한 물건의 탄생 배경이 간결하게 소개된다. 388쪽. 2만 3000원. 난 방학에 국제활동 다녀왔다(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 엮음, 도어즈 펴냄)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19명의 청춘들이 세계 16개국에서 각양각색의 주제로 펼친 국제활동의 생생한 경험담. 국제활동 희망자들을 위한 전문가의 조언을 부록으로 실어 실용도를 높였다. 264쪽. 1만 3000원. 공부하는 힘(황농문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몰입전문가인 홍농문 서울대 교수가 공부를 어떤 다른 목표를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닌, 그 자체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자아실현을 이루게 하는 몰입학습법을 소개한다. 288쪽. 1만 4000원. 문명의 교류와 충돌:문명사의 열여섯 장면(성해영 외 지음, 한길사 펴냄) 서울대 인문학 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의 ‘문명공동연구’ 시리즈의 하나로, 이질적인 문명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만남의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404쪽. 1만 8000원.
  • 정전 60년… 구로의 두 영웅 다시 살다

    정전 60년… 구로의 두 영웅 다시 살다

    스물한 살에 자원 입대한 지 불과 일주일. 7사단 8연대 1대대 1중대 화기소대 소속으로 낙동강 전선, 그것도 영천전투에 투입됐다. 전황은 암담했다. 경북 일부와 경남 지역을 제외하곤 모두 북한군 손에 떨어졌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한 달 넘게 밀고 밀리는 공방이 펼쳐지고 있었다. 1950년 9월 4일 이른 저녁 영천 냇가 동남쪽 언덕 참호에 몸을 담았다. 북한군은 칠흑 같은 어둠을 틈타 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를 건너 언덕을 기어오르며 총을 쐈다. 우리도 총을 쏘았다. 조준할 새도 없었다. 총알이 어디쯤 날아가 박히는지 보지도 못했다. 두려움이 컸다. 총탄이 떨어지자 육박전이 시작됐다. 함성과 착검 소리가 난무했다. 대검을 소총에 꽂고 참호에서 튀어 나갔다. 장작 패는 도끼처럼 소총을 휘두르고 찌르고 막기를 거듭했다. 발로 차고 차였다. 난리통에 참호로 굴러 떨어지며 정신을 잃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 8중대를 찾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몸 위로 무너져 내린 병사들을 헤치며 기어 나왔다. 여기저기서 위생병을 찾았다. 전장은 어느새 울음소리, 사람 찾는 소리로 뒤섞였다. 그렇게 동이 트고 있었다. 삶에서 가장 긴 밤이었다.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던 박주성(85)씨의 이야기다. 영천전투를 기점으로 전세가 뒤집히며 박씨는 북진의 선봉에 섰다. 파죽지세로 평양에 입성했다. 하지만 압록강을 앞두고 중공군과 마주쳤다. 격전을 벌이며 묘향산 인근 용문산 고지에 태극기를 꽂기도 했다. 기쁨도 잠시. 중공군에 잡혀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우 12명과 함께 지옥 같았던 하풍광산 포로수용소에서 탈출,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정전 60주년, 전쟁 영웅의 생활은 녹록지 않다.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에서 얼마 되지 않는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원망은 없다. 남은 생에 소원이 있다면 중부전선 어딘가 누워 있을 동생의 유해를 찾는 것이다. 한 달 먼저 입대했던 네 살 터울 동생은, 박씨가 훈장을 받던 그해, 1952년 열아홉 나이로 전사했다. 박씨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구술 자서전(왼쪽)이 최근 출간됐다. 생생한 참전 경험과 회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 전쟁 이후 삶까지 담았다. 포항·영덕 전투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명수(87)씨의 자서전(오른쪽)도 함께 나왔다. 이씨는 북한군 전차 3대를 파괴하고 포로로 잡힌 전우를 구출하는 특공 임무를 이끌어 대한민국 사상 병사 최초로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영웅이다. 그는 현재 구로구 소재 한 요양원에서 부인의 간호를 받으며 병마와 싸우고 있다. 자서전은 이성 구로구청장의 아이디어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지역 현장을 돌다가 이들의 삶을 접하고는 기록으로 남겨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 구청장은 “그 큰 공훈에 비하면 작은 것이지만 함께 전장에 섰던 다른 많은 이들의 공덕까지 기록한 것으로 받아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여자 동아시안컵] 피는 진했고, 北은 강했다

    [여자 동아시안컵] 피는 진했고, 北은 강했다

    태극낭자들이 강호 북한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아쉽게 졌다. 그러나 피는 하나로 흘렀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한국여자축구대표팀은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3동아시안컵 여자부 1차전에서 북한에 1-2로 역전패했다. 김수연(스포츠토토)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허은별(4·25축구단)에게 거푸 연속골을 내줘 무너졌다. 2005년 8월 16일 고양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대회 이후 8연패.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 상대전적에서도 1승1무10패로 열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남북대결인 만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관중들은 따뜻한 박수로 격려했고, 흰색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선 북한 선수들은 관중석을 향해 두 팔을 벌려 화답했다. 오길남 북측 선수단장과 문장홍 북측 축구협회 부회장은 류길재 통일부 장관, 박종길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등과 함께 VIP석에 앉았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약 35명도 관중석을 지켰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회원들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조국은 하나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경기 내내 “조~국통일”을 외쳤다. 관중은 총 6530명. 훈훈한(?) 공기와 달리 그라운드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북한 선수들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전사’로 돌변했다. 왼쪽 가슴에 백호와 인공기를 나눠 단 선수들은 90분 내내 몸을 날리며 서로를 쫓았다. FIFA 랭킹 16위 한국이 한 수 위인 북한(9위)을 상대로 기선을 제압했다. 김수연이 전반 26분 먼저 골망을 갈랐다. 지소연(아이낙)이 때린 슈팅이 수비수에 맞고 나오자 달려들며 강력한 슈팅을 다시 날렸다. 1-0. 그러나 리드는 잠시였다. 전반 36분 코너킥 때 한국 수비가 흐트러진 사이 허은별이 동점골을 터뜨렸다. 허은별은 2분 뒤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머리로 정확히 받아넣어 역전까지 시켰다. 두 팀은 후반에도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지만 추가골은 끝내 터지지 않았다. 어린 선수들로 짜여진 북한 선수단은 승리가 확정되자 껴안고 환호한 뒤 골대 뒤 관중석으로 뛰어가 손을 흔들며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에게 답례했다. 두 골을 몰아친 허은별은 단단한 체격(165㎝ 60㎏)과 저돌적인 돌파로 승리를 견인했다. 포지션은 수비수로 등록됐지만 A매치 7골(20경기)을 터뜨린 라은심(압록강축구단)과 ‘투톱’으로 자주 나섰다. 2011년 독일 FIFA여자월드컵에서 약물 양성 반응이 나와 18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고, 최근에 복귀했다. 북한은 당시 도핑에서 5명이 걸려 2015년 캐나다 월드컵 출전길이 막혔고, 국제 무대에서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1990년 남북통일축구 때 선수로 만난 뒤 23년 만에 조우했다는 두 감독은 덕담을 건넸다. 윤덕여 한국 감독은 “2015년 캐나다월드컵을 앞두고 일본, 북한 등 세계적인 팀들과 겨루는 건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면서 “북한이 잘했던 부분을 배우고 부족한 것은 보완하겠다”고 했다. 김광민 북한 감독은 “남측이 전보다 많이 발전했다”면서 “남측의 완강한 공격에 우리는 소심한 경기를 했고 선제골까지 내줘 당황했지만 두 골을 넣어 회복할 수 있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국은 오는 24일 화성에서 중국과 2차전을 치르고, 북한은 25일 같은 장소에서 일본을 상대한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朴대통령 “국사, 대입 평가 반영해야”

    朴대통령 “국사, 대입 평가 반영해야”

    박근혜(얼굴) 대통령은 10일 국사교육 강화 방안과 관련, “학계나 교육계와 의논해 이것을 평가에 어떻게든 반영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중앙언론사 논설실장·해설위원장들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이렇게 중요한 과목은 평가 기준에 넣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국사 과목을 대입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한국사를 대입 수학능력시험 필수 과목으로 반영해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을 높여야 한다는 교육계 일각의 주장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향후 어떤 식으로든 학생들의 성적 평가에 현재보다 비중 있게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또 북핵 문제와 관련,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만나 북핵 문제가 나왔을 때 그분들 생각은 단호했으며 절대 핵은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리 총리는 ‘(북한이) 핵실험을 해 압록강 그쪽의 수질검사를 해보니 나빠졌다. 이것은 주민들한테도 해가 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런 문제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소개했다. 또 “개성공단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나눌 때는 ‘신뢰가 중요한데, 사업을 하고 투자를 했는데, 저렇게 되면 중국이 가더라도 힘든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오갔다”고 말했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中 북해함대 잠수함 우리 해군에 첫 공개

    한국과 중국 해군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 통제 대책을 협의한다. 또한 중국은 우리 해군에 처음으로 북해함대 잠수함을 공개한다. 해군은 9일 최윤희 참모총장이 이날부터 나흘간 중국을 방문, 우성리(吳勝利) 해군사령관과 만나 군사교류 협력 증진을 논의하고 칭다오(靑島)의 북해함대사령부를 찾는다고 밝혔다. 최 총장은 우 사령관에게 NLL 일대에서 중국 어선 불법 조업이 남북의 우발적 해상 충돌을 가져올 위험성을 강조하고 중국 어선의 조업을 통제해 주길 당부할 계획이다. 최 총장은 12일 북해함대사령부를 방문, 톈중(田中) 사령관과 ‘핫라인 실무회의’ 활성화를 비롯해 우리 2함대와 북해함대의 교류 증진 방안을 협의한다. 중국 측은 최 총장에게 1700t급 디젤잠수함과 호위함 등을 공개하기로 했다. 지난달 정승조 합참의장의 방중과 맞물려 긴밀해진 두 나라의 군사 협력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중국의 3대 해군함대 중 가장 늦은 1960년에 창설된 북해함대는 랴오닝성 압록강 하구에서 산둥반도 남부 해상을 책임진다. 4500∼6500t급 핵잠수함 5척과 1500∼3000t급 디젤잠수함 24척을 운용 중이다. 지난 2월에는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6만 5000t급)이 배치됐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 켈로 부대와 카투사/손성진 수석논설위원

    6·25의 전황을 반전시킨 인천상륙작전과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킨 장진호 전투. 유엔군이 주도한 두 작전에는 숨은 한국군 영웅들이 있었다. 바로 켈로 부대원들과 카투사다. 켈로 부대로 불리는 KLO 부대는 미군이 1949년 6월 조직한 비정규 첩보부대였다. 1950년 9월 14일 저녁 7시. 켈로 부대원들은 팔미도 등대의 불을 밝히라는 맥아더 장군의 명령을 받았다. 최규봉 대장과 미군들은 어둠을 뚫고 팔미도에 침투해 치열한 전투 끝에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던 팔미도를 손에 넣었다. 9월 15일 0시 12분, 이들이 등댓불을 밝힘으로써 261척의 유엔군 함정이 상륙작전을 개시할 수 있었다. 첩보부대의 성격상 그들은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원자력학회장을 지낸 원자력 학계의 원로 이창건 박사는 서울대 전기공학과 1학년에 다니다 이 부대의 기획참모로 참전했다. 이 박사는 몇년 전 ‘KLO의 한국전 비사’라는 책을 써 활약상을 알렸다. 8000여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지만 켈로 부대원들은 군번이나 계급, 군적이 없다. 최근 정부가 부대원들이 점호를 받는 모습, 침투하기 직전 모습, 작전지도 등을 확보해 보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6·25 전투 중 가장 처절한 전투로 남은 장진호 전투. 1950년 10월 19일 압록강을 건넌 중공군은 동부전선 장진호 주변 산악에 매복하고 있었다. 미군은 계곡을 따라 북진하다 11월 27일 밤부터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 병사들은 철수 명령을 받고 후퇴하면서 12월 1일까지 혹한 속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살아 돌아온 미군은 385명뿐이었다. 장진호 전투는 병력 손실이 컸지만, 중공군의 진출을 2주나 지연시키는 전과를 남겼다. 이 전투에서 한국인 카투사 875명도 숨졌다. 카투사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싸우고 얼어붙은 발걸음을 재촉했다고 한다. 카투사(KATUSA)는 주한미군에 배속된 한국군이다. 첫 카투사병은 대구와 부산 등지에서 징집됐다. 이들은 1950년 8월 16일부터 일본 후지산 근처에서 훈련을 받았다. 한달도 안 되는 훈련을 마친 카투사들은 곧바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다. 한국 지형을 잘 아는 카투사들은 말이 잘 안 통했지만 미군들에게는 중요한 존재였다고 한다. 카투사는 혜산진 점령, 펀치볼 전투 등에서도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참전 당시 갓 스물의 나이였던 켈로 부대와 카투사 용사들은 정전 60년이 지난 지금 팔순을 넘겨 이미 상당수가 고인이 되었다. 더불어 그들의 전공(戰功)도 점점 잊히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中, 北황금평 경제특구 개발 가속화

    최근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중국이 북한과 공동으로 건설 중인 황금평 경제특구 개발에는 속도를 올리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북한의 핵전쟁 위협에 경제 제재라는 고강도 카드까지 꺼냈던 중국이 내부적으로는 황금평을 통해 경제 원조를 계속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 한미연구소가 자체 운영하는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는 17일(현지시간) 발간한 보고서에서 최근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중국이 압록강 하구 국경지대에서 추진 중인 황금평 특구 개발을 상당 수준까지 진척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지난해 9월 행정 건물 착공식 이후 황금평 입구에 세관과 보안시설, 관리실 등이 세워졌고 도로와 전력망 설치도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황금평으로 연결되는 북한 측 도로가 아직 없는 상태에서 중국 측 입구에는 새로운 도로가 건설되고 장비도 이동하고 있어 중국이 황금평 개발을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작업 속도를 토대로 2~3년 뒤에는 황금평 특구가 실제 가동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보고서는 “황금평 개발 작업은 지난해 12월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대한 중국의 지지 표명 이후에도 계속됐다”며 “최근 중국이 북한의 전쟁 도발 위협 등에 공개적으로 불만으로 표시하면서 비핵화를 압박하는 가운데 이 같은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고 밝혔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中, 북해함대 ‘심장부’ 작전처 한국軍에 첫 공개

    중국 해군이 북해함대의 ‘심장부’를 정승조 합참의장에게 공개했다. 북해함대의 모든 작전상황을 통제하는 작전처가 한국군 장성에게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정 의장은 방중 이틀째인 5일 베이징에서 중국군이 제공한 전용기를 타고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의 북해함대 사령부를 방문했다. 동해함대, 남해함대와 함께 3대 함대 가운데 하나인 북해함대는 핵잠수함 5척을 비롯한 잠수함 29척, 구축함 10척, 호위함 9척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압록강 하구에서 산둥반도 남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책임진다. 지난 2월 중국의 첫 번째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함이 배치됐다. 정 의장은 이날 북해함대와 우리 해군 2함대 간 직통전화가 설치된 작전처를 방문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합참의장 시절인 2007년 북해함대를 방문한 적이 있지만, 당시 중국은 작전처를 공개하지 않았다. 중국 군부의 이 같은 이례적인 환대는 최근 강화되고 있는 두 나라 군 당국 간 신뢰를 보여주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정 의장은 직통전화로 해군 2함대를 연결, “군사교류차 중국을 방문해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 자부심을 느끼고 임무를 잘 수행해 달라”고 격려했다고 합참 관계자는 전했다. 앞서 정 의장은 오전 베이징 ‘8·1 청사’에서 판창룽(范長龍)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면담했다. 1시간 15분가량 진행된 면담에서 정 의장은 수차례 ‘북한의 비핵화’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 부주석도 북한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에 공감했다고 합참 관계자가 전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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