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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 공직기강 암행 감찰

    감사원이 추석을 전후해 암행감찰에 나선다.신용불량자로 파악된 일선 공무원들은 집중 감찰 대상이다. 감사원은 7일 ‘추석절 공직기강점검 및 취약분야 비리실태’ 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감사원은 50명의 감사관을 파견,전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1,2차에 걸쳐 앞으로 한 달간 특별 감찰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1차 조사에서는 취약업무와 문제성 있는 업무 비리를 조사할 것”이라며 “일부 신용불량자 공무원들이 관용카드를 사적인 용도에 사용하는 등의 비리가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고 계좌를 관리하는 회계직과 물품구매 담당 공무원 가운데 신용불량자는 200∼300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감사원은 이 신용불량자들이 회계담당으로 배치된 기관을 취약부문으로 분류하고 비리 관련 혐의를 조사한다는 것이다.감사원은 이외에도 보상금 지급 관련 업무상의 비리 등 5개 문제성 있는 업무에 대해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감사원은 또 오는 20일부터 추석을 전후해 2차로 공직기강 점검 차원에서 공직자들의 복무상태를 점검키로 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사설] 인천시장에게 배달된 현찰 2억

    안상수 인천시장이 출처를 알 수 없는 2억원이 전달됐다면서 감사관실의 클린센터에 신고했다고 한다.아직 누가 돈을 보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2억원이 현금으로 상자에 담겨 있었던 점으로 보아 청탁용 뇌물일 가능성이 높다.이 사건은 안 시장이 신고했기 때문에 드러난 것이다.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뇌물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점에서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당장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검은 돈의 출처를 명백하게 가려내야 할 것이다. 아직도 많은 시민들은 공직사회의 뇌물풍조가 여전하다고 믿고 있다.최근 대검찰청은 뇌물죄로 처벌받은 공무원들에게 추징한 돈이 한해 평균 1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의 통계이니까 지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공무원들이 뇌물을 받은 범죄사실이 밝혀져 추징금을 선고받은 것만 100억원에 이른다니 밝혀지지 않은 뇌물은 실로 엄청난 규모라고 봐도 틀림없을 것이다.공직이 부패한 국가는 결코 일류국가가 될 수 없으며 시민들의 일할 의욕마저 떨어뜨린다.정부와 시민사회는 공직사회의 뇌물풍조 추방에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감사원,국무총리실,부패방지위원회가 추석을 앞두고 공직감찰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명절을 앞두고 연례행사격의 암행감찰이나 펼치는 정도로는 공직부패를 뿌리뽑지 못한다는 점을 정부는 잊어서는 안 된다.공직자들의 뇌물관행을 없애는 데는 무엇보다 공직자들이 정신무장을 새롭게 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시민들도 의식을 바꿔야 한다.뇌물의 고발과 제보를 활성화해 전국민이 뇌물감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 반부패청렴상 받은 서홍덕 감사원 감사관

    “공무원이 국민의 세금에 손대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지요.” 17일 한국부패학회와 시민단체 클린코리아가 공동 주관한 반부패청렴상 시상식에서 금상을 받은 감사원 서홍덕(54) 감사관.감사원에서뿐만 아니라 공무원 사회에서 ‘암행어사’로 통한다.23년간 감사원 재직기간 중 절반 이상을 공직자 직무감찰에 매달렸다.비리 공무원들에게는 그야말로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그의 손을 거쳐 옷을 벗은 비리 공무원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주로 기관장급 간부들이다.굵직굵직한 비리 사건 이면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이 때문에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그에게 제보하는 경우도 많다.최근 수뢰혐의로 구속된 모 기관의 사장 역시 같은 케이스다.상납요구를 견디다 못한 신고자가 “이런 경우도 있다.”며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의 청렴성도 유명하다.뇌물공세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한번은 모 기관에 나가 회계부정감사를 벌이면서 이상한 부분을 발견해 담당자를 조사하게 됐는데,다음날 그의 집으로 담당자의 부인이 찾아왔다.“냄새가 난다 싶었지요.그 사람을 집중 추궁했더니 과거 5년 동안 공금 10억원가량을 가지고 이자놀이를 해왔더라고요.” 서 감사관은 “직무감찰을 나갔던 초기에는 청탁을 해보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소문이 나면서 최근에는 청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내가 조사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수백,수천명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근무한다.’ 그의 생활신조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前특수부검사, 뇌물수사 서바이벌북 펴내

    ‘뇌물수사가 시작되면 돈을 준 업자와 통화하면 안 된다.증거인멸의 인상을 심어줘 불리하다.압수수색은 의외로 신속히 진행되기 때문에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 전직 특수부 검사 출신의 김주덕(52) 변호사가 뇌물수사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낸다.‘암행어사 출두요’(가칭)라는 제목으로 360쪽 분량에 이르는 이 책에는 압수수색에 대비하는 방법,당사자간 말맞추기,대질조사를 받는 방법 등이 상세하게 담길 예정이다. 김 변호사는 이 책이 결코 뇌물수수를 방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그는 “검은 돈에 관한 적나라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 줌으로써 공직자들이 평소에 몸조심을 하고,억울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로 쓰여졌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수사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당황하다가 방어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리곤 한다.”고 설명했다.침착하게 대응방법을 찾아야만 공직자가 억울하게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체포됐을 때 가족이나 변호사에게 즉각 알리라는 것이 김 변호사의 첫번째 조언이다. 다음은 검찰 수사의 내용을 대강이라도 파악하는 것.검찰이 보안 속에 수사를 하기 때문에 내용 자체를 알기 쉽지 않지만 이미 조사를 받고 나온 참고인을 통해서라도 내용을 파악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여러 뇌물수수 사건에서 증거인멸이 시도되지만 결국에는 사소한 거짓말에서 비리가 탄로난다고 결론짓는다.한 예로 공직자가 뇌물로 받은 5000만원을 업자로부터 빌렸다고 말을 맞췄더라도 검찰이 돈을 수표로 빌렸는지,돈을 빌린 장소는 어디인지,이자와 변제기일은 어떻게 정했는지 등을 추궁하면 결국에는 거짓말이 탄로난다는 것이다.결국 억울하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방법은 있지만,거짓말로 죄를 면하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역사인물 통해 배우는 리더십’ 특강 이이화 씨

    “세종과 정조 임금은 조선조에서 가장 탁월한 리더십을 지닌 수성과 개혁의 군주였습니다.특히 정조는 기득권 세력을 제거하고 개혁정치의 꽃을 피우기 위해 수원에 화성(華城)을 세우고 천도할 뜻을 품었지요.” 역사학자 이이화(67)씨는 얼마전 ‘한국사 이야기’ 22권 완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때문에 그에게 역사 속의 작은 단어만 툭 던져도 즉석에서 고구마 줄기 꿰듯 흥미진진하게 이어나간다.입담 좋은 그가 17일 오전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 초청으로 서울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역사인물을 통해 배우는 오늘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대상은 경제인 등 100여명.여기에서 그는 ‘정조의 천도계획’을 잠깐 언급,눈길을 끌었다. 그는 “정조는 암행어사 제도를 이중삼중으로 강화해 중앙과 지방관리의 비리를 척결하려 무척 노력했다.”면서 “화성 축성을 통해 이상형의 신도시를 세우려 했다.”고 말했다.이 신도시는 곧 ‘새로운 천도’를 의미했으나 정조는 속내를 결코 드러내지 않고 일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겉으로는 아버지(사도세자)와 선왕에 대한 ‘효’를 명분으로 내걸었다는 것이다. “정조는 스스로 몸을 낮추고 실학의 장려,암행어사의 권한을 강화한 내정의 개혁,인권개선,노비추쇄법 폐지,적서와 지역차별 철폐 등 일련의 강도 높은 개혁정책을 구사했습니다.또 한양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을 제거하고자 ‘천도’라는 빅카드를 구상하게 됐지요.” 당시 30세의 정약용은 정조의 명을 받아 왕실 서고와 규장각에 비치된 각종 서적,그리고 중국에서 들여온 서적 5000여권 등을 토대로 화성의 설계를 도맡았다. 그는 “정조는 개혁에 강한 열정을 가졌으나 꼼꼼하고 결벽한 성품 때문에 결국 종기와 울화병으로 49살에 생을 마감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정조는 또 평소 여자를 너무 멀리한 나머지 자손의 희귀로 왕실약화를 초래해 결국 개혁정치가 중단됐다.”고 말했다.만약 정조가 자식을 여럿 낳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가정해 보았다. 그는 지금의 천도 논란에 대한 질문에 “서울을 버리면 안된다.(서울은)경제와 문화가 융성한 도시여야 한다.”면서 “순수 행정기능만 옮기는 것은 분산의 의미로 바람직하지만 만약 천도라면 국민여론을 반드시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말미에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면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으냐는 질문에 “평가받을 시간이 더 남았다.아직도 우리나라는 한국적 품성과 가치를 중요시한다.”면서 “말을 좀 줄이고 조심하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1)草衣 선사의 꿈(下)

    초의의 동다문화(東茶文化)는 한국문화론의 한 원류다.사람이 만든 음식 중에 차보다 더 고결하고 완전한 것은 없다.일반적으로 음식은 주된 재료와 양념으로 부르는 부재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그러나 차는 찻잎 그 자체만으로서 완전한 음식이 된다.하나이면서 모두가 되는 귀한 물건이다.하나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차다.차의 이같은 특성 때문에 일찍이 종교 의식용으로 쓰여졌다.불교 수행자들은 차가 지닌 약리적 효능과 함께 하나이면서 모든 것을 지녔다는 상징성을 받들어 차와 함께 하는 고유의 의식을 만들고 전해왔다. 초의가 차를 이용하여 술로 찌든 조선 후기 사회의 폐습을 타파하기 위한 나름의 시도를 할 수 있게 된 데는,초의 개인의 비범한 능력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지성인들과 깊은 교류를 통한 깨달음도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정약용,김정희,홍현주로 대표되는 스승이자 동무들과의 만남은 초의에게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적극적인 동력이 되었다.초의는 부처의 깨달음이 집약된 화엄사상의 실체를 현실세계에서 구현하고자 했다.즉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 있고,그 관계는 평등하다.’는 존재 상호간의 상생성,연기성,평등성을 차와 차살림을 통하여 실천했다. ●당대 지식인과 폭넓은 교류 모든 것들의 관계를 결정지은 인물이 정약용이었다.초의는 정약용의 실학 사상과 홍현주의 시론(詩論)이나 문장론을 매개로 조선 문인들과 정약용 사이에 오고 간 불꽃 튀는 시론 문답,김정희와의 절절한 교우관계에서 한 지성인이 겪어내는 시대적 고뇌를 곁에서 지켜보았다.누구도 혼자 사는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달았다. 그 때 정약용이 말하기를,‘차를 알고 마시는 민족은 흥하지만,차를 모르고 마시지 않는 민족은 망한다.’는 천둥번개같은 외침이 있었다.음식에 관한 폐습을 혁신시키지 못하면 개인이든 민족이든 끝내 불행해지고 만다는 큰 깨달음에서 얻어진 빛나는 사리였다.여전히 문제는 술에 취해 사는 사회였고,그 사회의 지도자들이 넋을 처박고 사는 술이라는 음식이었고,그 음식에 대한 뒤틀린 습관이었다.중국과 일본은 차문화의 뿌리가 깊고 탄탄한데다 술만큼 차를 숭상했다.그리하여 그들은 역사 속에서 늘 강자였고,지배자로 군림했다. 정약용이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강진에 유배 중일 때였다.정약용은 정치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같은 천주교인인 이승훈,이가환과 함께 채제공(蔡濟恭,1720∼1799)의 계자(系子)가 되었다.조선 후기의 대표적 정치가인 채제공은 불교와 천주교를 원칙적으로는 배격하되 그 장점만은 잘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매우 특이한 정치철학을 실천한 인물이었다.정약용이 처음으로 전라도 지역 암행어사로 나갈 때 그를 추천했던 채제공은 엉뚱하게도 천주교 교인인 정약용에게 한 승려를 만나보도록 권유했다.지리산에서 수행중인 연담(蓮潭) 유일(有一)이라는 승려였다.조선의 유생들로부터는 극단적으로 배척받는 불교와 천주교지만 두 종교가 지닌 민중교화력을 인정하는 채제공으로서는 정약용과 유일을 만나게 해줌으로써 유생들로서는 불가능한 새로운 시대를 위한 논리와 실천방안이 마련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였다. ●‘목탁대신 칼’ 호국불교의 시대 두 사람은 만났다.뒷날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된 이후 정약용에게 차를 가르쳐 준 혜장(惠藏,1772∼1811)이 유일(有一)의 제자였고,초의는 유일선사의 법통을 전수받은 제자였으며,초의와 정약용 또한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아마도 이들의 인간관계에서 우러난 시대정신이 초의의 동다문화를 탄생시키는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특히 초의가 승려로서 확립한 다선일미사상(茶禪一味思想)은 그 뿌리가 깊고 매우 현실적이다.민중의 존재와 삶을 이해하고 돕는 것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는 이른바 보살정신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매우 처절한 실천력을 요구했다.즉 유생들에 의한 불교 배척과 승려 탄압 정책으로 불교의 명맥이 위기에 처했을 때 탁월한 수행자가 등장하여 위기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보살정신을 실천했다. 조선 중기 명종 때의 보우(普愚)는 질식당하기 직전의 불교를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 사실상 조선 불교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보우는 불교 회생을 위해 승과(僧科)를 부활시켜 인재양성의 터전을 닦아 놓고 유생들의 손에 죽임당했다.그가 부활시킨 승과에 합격하여 새로운 인물로 등장한 사람이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였다.두 분은 목탁 대신 칼과 창을 쥐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도탄에서 허덕이는 조선민중을 구하면서 손에 피를 묻힌 불멸의 보살들이었다.살생하지 말라는 지엄한 계율을 위배하면서 동족의 생명을 지키고 구원해 낸 행위에서 우리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정신의 궁극을 읽어낼 수 있다.이 때의 차(茶)는 곧 중생을 상징하며,선(禪)은 곧 부처의 마음이니,조선불교를 호국불교라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초의의 동다문화는 이같은 역사적 뿌리 위에서 새롭게 피어난 중생구원론이기도 하다.즉 사회 지도자의 품성을 올바로 키우고,민족의식을 드높여 키우기 위해 초의가 꾼 또 다른 꿈은 중생들의 살림살이 걱정이었다. ●장 제조법 전파등 중생구제 힘써 1830년을 지나면서 조선사회는 붕괴되어 갔다.모든 세계 인류가 변하고 있는데 조선의 양반사대부들만 중국의 그늘에 스스로 갇혀서 변화를 극력 반대했다.부패와 타락이 주된 흐름이었다.가난한 민중들은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두려움과 배고픔에 시달렸다.끝없는 불안에 지친 민중들은 살림살이의 핵심이 되는 장 담그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가난할수록 장이 있어야만 가난을 견딜 수 있었다.이 시기에 초의가 장 담그는 법을 보다 정확하게 정리하여 가르친 일이나 단방약을 개발하여 세속에 널리 퍼뜨린 것은 초의의 중생 사랑 그 자체였다.단방약은 민중들의 질병을 완화시켜 주기 위한 조치였다.사회 경제적 토대가 붕괴되고 신분질서가 해체되는 혼란 속에서 민중들의 질병은 더욱 심했다.병이 나도 치료할 길이 없었다.가난 때문에 약을 구할 수도 없었다.그 때 초의는 한 두 가지 약초나 조선 산천에 흔하게 자라는 풀잎이나 뿌리 혹은 열매로 간단하게 약을 만들어 먹는 법을 개발하여 널리 퍼뜨렸다.원래 조선의 사찰에는 이같은 단방약에 관한 처방이 여러 가지로 전해져 왔다.승려들 스스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하는 억불정책의 결과였다. 승려들의 질병과 세속인의 질병은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치료 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 초의의 생각이었다.그렇게 개발한 단방약은 매우 빠르게 조선 전역으로 파급되어 많은 민중들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덜어주었다.이같은 생각과 실천의 결과들이 한데 모여서 나온 것이 동다문화였다.언제까지 중국만 바라보고 살 수 없으며,그래서도 안된다고 믿었다.지치고 좌절한 민중들이 희망을 품게하는 일,공자 맹자의 가르침을 외우고 쓰는 일보다 내 나라에서 자라는 곡식과 풀잎을 잘 알고 가꾸어 배불리 먹고 이웃과 나누는 것이 더 급한 것임을 실천하기 위하여 살았던 초의였다.초의의 동다(東茶)는 그렇게 만들어졌다.지금 이 나라 강산에는 차문화가 흥청거린다.東茶를 말하는 이들 대부분이 아직도 중국 차문화를 선전하고 있다.더 늦기 전에 참회해야 한다.정약용 선생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새겨보면서 부끄러워해야 하느니. ˝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1)草衣 선사의 꿈(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1)草衣 선사의 꿈(下)

    초의의 동다문화(東茶文化)는 한국문화론의 한 원류다.사람이 만든 음식 중에 차보다 더 고결하고 완전한 것은 없다.일반적으로 음식은 주된 재료와 양념으로 부르는 부재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그러나 차는 찻잎 그 자체만으로서 완전한 음식이 된다.하나이면서 모두가 되는 귀한 물건이다.하나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차다.차의 이같은 특성 때문에 일찍이 종교 의식용으로 쓰여졌다.불교 수행자들은 차가 지닌 약리적 효능과 함께 하나이면서 모든 것을 지녔다는 상징성을 받들어 차와 함께 하는 고유의 의식을 만들고 전해왔다. 초의가 차를 이용하여 술로 찌든 조선 후기 사회의 폐습을 타파하기 위한 나름의 시도를 할 수 있게 된 데는,초의 개인의 비범한 능력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지성인들과 깊은 교류를 통한 깨달음도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정약용,김정희,홍현주로 대표되는 스승이자 동무들과의 만남은 초의에게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적극적인 동력이 되었다.초의는 부처의 깨달음이 집약된 화엄사상의 실체를 현실세계에서 구현하고자 했다.즉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 있고,그 관계는 평등하다.’는 존재 상호간의 상생성,연기성,평등성을 차와 차살림을 통하여 실천했다. ●당대 지식인과 폭넓은 교류 모든 것들의 관계를 결정지은 인물이 정약용이었다.초의는 정약용의 실학 사상과 홍현주의 시론(詩論)이나 문장론을 매개로 조선 문인들과 정약용 사이에 오고 간 불꽃 튀는 시론 문답,김정희와의 절절한 교우관계에서 한 지성인이 겪어내는 시대적 고뇌를 곁에서 지켜보았다.누구도 혼자 사는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달았다. 그 때 정약용이 말하기를,‘차를 알고 마시는 민족은 흥하지만,차를 모르고 마시지 않는 민족은 망한다.’는 천둥번개같은 외침이 있었다.음식에 관한 폐습을 혁신시키지 못하면 개인이든 민족이든 끝내 불행해지고 만다는 큰 깨달음에서 얻어진 빛나는 사리였다.여전히 문제는 술에 취해 사는 사회였고,그 사회의 지도자들이 넋을 처박고 사는 술이라는 음식이었고,그 음식에 대한 뒤틀린 습관이었다.중국과 일본은 차문화의 뿌리가 깊고 탄탄한데다 술만큼 차를 숭상했다.그리하여 그들은 역사 속에서 늘 강자였고,지배자로 군림했다. 정약용이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강진에 유배 중일 때였다.정약용은 정치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같은 천주교인인 이승훈,이가환과 함께 채제공(蔡濟恭,1720∼1799)의 계자(系子)가 되었다.조선 후기의 대표적 정치가인 채제공은 불교와 천주교를 원칙적으로는 배격하되 그 장점만은 잘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매우 특이한 정치철학을 실천한 인물이었다.정약용이 처음으로 전라도 지역 암행어사로 나갈 때 그를 추천했던 채제공은 엉뚱하게도 천주교 교인인 정약용에게 한 승려를 만나보도록 권유했다.지리산에서 수행중인 연담(蓮潭) 유일(有一)이라는 승려였다.조선의 유생들로부터는 극단적으로 배척받는 불교와 천주교지만 두 종교가 지닌 민중교화력을 인정하는 채제공으로서는 정약용과 유일을 만나게 해줌으로써 유생들로서는 불가능한 새로운 시대를 위한 논리와 실천방안이 마련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였다. ●‘목탁대신 칼’ 호국불교의 시대 두 사람은 만났다.뒷날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된 이후 정약용에게 차를 가르쳐 준 혜장(惠藏,1772∼1811)이 유일(有一)의 제자였고,초의는 유일선사의 법통을 전수받은 제자였으며,초의와 정약용 또한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아마도 이들의 인간관계에서 우러난 시대정신이 초의의 동다문화를 탄생시키는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특히 초의가 승려로서 확립한 다선일미사상(茶禪一味思想)은 그 뿌리가 깊고 매우 현실적이다.민중의 존재와 삶을 이해하고 돕는 것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는 이른바 보살정신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매우 처절한 실천력을 요구했다.즉 유생들에 의한 불교 배척과 승려 탄압 정책으로 불교의 명맥이 위기에 처했을 때 탁월한 수행자가 등장하여 위기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보살정신을 실천했다. 조선 중기 명종 때의 보우(普愚)는 질식당하기 직전의 불교를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 사실상 조선 불교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보우는 불교 회생을 위해 승과(僧科)를 부활시켜 인재양성의 터전을 닦아 놓고 유생들의 손에 죽임당했다.그가 부활시킨 승과에 합격하여 새로운 인물로 등장한 사람이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였다.두 분은 목탁 대신 칼과 창을 쥐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도탄에서 허덕이는 조선민중을 구하면서 손에 피를 묻힌 불멸의 보살들이었다.살생하지 말라는 지엄한 계율을 위배하면서 동족의 생명을 지키고 구원해 낸 행위에서 우리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정신의 궁극을 읽어낼 수 있다.이 때의 차(茶)는 곧 중생을 상징하며,선(禪)은 곧 부처의 마음이니,조선불교를 호국불교라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초의의 동다문화는 이같은 역사적 뿌리 위에서 새롭게 피어난 중생구원론이기도 하다.즉 사회 지도자의 품성을 올바로 키우고,민족의식을 드높여 키우기 위해 초의가 꾼 또 다른 꿈은 중생들의 살림살이 걱정이었다. ●장 제조법 전파등 중생구제 힘써 1830년을 지나면서 조선사회는 붕괴되어 갔다.모든 세계 인류가 변하고 있는데 조선의 양반사대부들만 중국의 그늘에 스스로 갇혀서 변화를 극력 반대했다.부패와 타락이 주된 흐름이었다.가난한 민중들은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두려움과 배고픔에 시달렸다.끝없는 불안에 지친 민중들은 살림살이의 핵심이 되는 장 담그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가난할수록 장이 있어야만 가난을 견딜 수 있었다.이 시기에 초의가 장 담그는 법을 보다 정확하게 정리하여 가르친 일이나 단방약을 개발하여 세속에 널리 퍼뜨린 것은 초의의 중생 사랑 그 자체였다.단방약은 민중들의 질병을 완화시켜 주기 위한 조치였다.사회 경제적 토대가 붕괴되고 신분질서가 해체되는 혼란 속에서 민중들의 질병은 더욱 심했다.병이 나도 치료할 길이 없었다.가난 때문에 약을 구할 수도 없었다.그 때 초의는 한 두 가지 약초나 조선 산천에 흔하게 자라는 풀잎이나 뿌리 혹은 열매로 간단하게 약을 만들어 먹는 법을 개발하여 널리 퍼뜨렸다.원래 조선의 사찰에는 이같은 단방약에 관한 처방이 여러 가지로 전해져 왔다.승려들 스스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하는 억불정책의 결과였다. 승려들의 질병과 세속인의 질병은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치료 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 초의의 생각이었다.그렇게 개발한 단방약은 매우 빠르게 조선 전역으로 파급되어 많은 민중들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덜어주었다.이같은 생각과 실천의 결과들이 한데 모여서 나온 것이 동다문화였다.언제까지 중국만 바라보고 살 수 없으며,그래서도 안된다고 믿었다.지치고 좌절한 민중들이 희망을 품게하는 일,공자 맹자의 가르침을 외우고 쓰는 일보다 내 나라에서 자라는 곡식과 풀잎을 잘 알고 가꾸어 배불리 먹고 이웃과 나누는 것이 더 급한 것임을 실천하기 위하여 살았던 초의였다.초의의 동다(東茶)는 그렇게 만들어졌다.지금 이 나라 강산에는 차문화가 흥청거린다.東茶를 말하는 이들 대부분이 아직도 중국 차문화를 선전하고 있다.더 늦기 전에 참회해야 한다.정약용 선생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새겨보면서 부끄러워해야 하느니.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덕일 지음

    실학의 완성자,개혁군주 정조의 오른팔,500여권의 방대한 저술,문학·역사·철학·과학기술 등 온갖 학문을 섭렵한 르네상스적 인물,행정의 최일선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실천적 지식인….다산 정약용의 이름은 곧 우리 역사의 자부심이다.그러나 실제로 다산은 타고난 천재라기보다는 노력형에 가까웠다. ●정조 보좌 조선 근대화 이끌어 그가 성균관에 입학한 지 6년이 지나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자 정조가 꾸중을 했다는 일화는 다산의 이같은 일면을 잘 보여준다. 역사평론가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씨가 펴낸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전2권,도서출판 김영사)은 실학과 선진 과학문물,인간중심의 새로운 사상으로 침몰해가는 조선사회를 구하려 했던 다산과 그 형제들의 이야기다. 다산은 왕권을 위협하는 노론 벽파에 둘러싸인 정조를 현명하게 보좌하며 합리적 행정과 산업의 근대화를 이끌었다.역사상 최초의 계획도시인 화성의 대역사를 이룩했으며,암행어사로 민생을 살피거나 지방관으로 근무하며 개혁사상을 현실에 접목하는 데 매진했다.곡산부사로 일할 때 베푼 선정은 나중에 그가 국문을 당할 때 지배층이 민심이 두려워 그를 사형에 처하지 못했을 정도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남인 계열인 다산과 그 형제들의 든든한 후견인이었던 정조가 1800년 급서하면서 다산이 누린 영광은 막을 내렸다.다산의 집안은 1801년 신유박해로 풍비박산이 났다. 정조 치세에서 억눌려 있던 노론 벽파가 어린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에 나선 정순왕후를 앞세우고 남인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에 나선 것이다.한국천주교사에 길이 남을 교리연구가인 막내형 정약종은 천주교 신앙을 고수하다 장남 철상과 함께 사형됐으며,조선 최초로 영세를 받은 매형 이승훈 또한 순교했다.다산과 그의 둘째 형 정약전이 제사 문제 등 성리학과 충돌되는 점 때문에 천주교를 저버린 것과 대조적이다.다산의 이복맏형 정약현은 그의 사위가 황사영인 탓에 갖은 고초를 겪었다.정조 사후 멸문지화에 가까울 정도로 몰락한 집안에서 다산과 정약전이 목숨을 건졌지만 그들은 각각 전라도 강진과 흑산도에 유배됐다.두 형제는 살아선 다시 만날 수 없었다.다산은 무려 18년 만에 유배에서 풀려났다. ●지배권력 집중공격에 만신창이 삶 책은 다산은 물론 박해로 점철된 삶을 민중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정약전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다룬다.정약전은 유배지 흑산도에서 어부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삶에 동화됐고,‘복성재’라는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다.저자는 사대부들이 모두 경전 연구에 매달리는 현실에서 민중의 삶에 직접적 도움을 주는 어류생태를 연구한 정약전이야말로 진정한 실학자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조선후기 인물사 3부작 완결편 이 책은 저자의 조선 후기 인물사 3부작의 완결편이다.1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선 사후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송시열과 노론이 조선사회를 주자학 유일사상 체제로 만들고 이를 명분으로 노론 일당독재를 구축하는 과정을 그렸으며,2부 ‘사도세자의 고백’에선 사도세자가 정신병자여서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노론 일당의 전제에 맞서 싸우다 살해된 것임을 밝혀냈다.이번에 펴낸 3부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선 주자학 유일사상과 노론 일당독재 체제에 맞서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려 했던 정조와 다산 형제들의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다뤘다.저자는 다산과 그의 형제들을 성리학 이데올로기에 의해 경직화된 체제로 치닫던 조선후기라는 시대를 거부하고 열린 사회를 지향한 선구자로 자리매김한다.각권 1만29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3)여자라는 이름의 논개(下)

    논개가 왜장을 죽이고 자신도 투신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됐다.그런데 왜장 기다 마코베의 죽음이 있은 뒤 진주성에 주둔하던 왜적들이 스스로 진주를 떠나자 진주사람들은 이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논개의 혼이 왜적들을 물리친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그리하여 남강 기슭 맨바닥에 조촐하게 제상을 차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올렸다. 진주 사람들이 보기로는 진주는 물론 조선 모두를 돌아보아도 민중들의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국가와 유생 관리들에 대한 미움과 원한을 씻어내고 위로해 주는 사람으로 논개만 한 이가 없었다.민중들이 비록 무지하고 빈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인정과 의리,사람과 하늘 사이에 있어야 할 생명존중과 함께 사는 이치를 알고 실천하는 것으로 치자면 양반관료들보다 훨씬 나았다.양반관료들은 자기 이익과 편리를 지키기 위해 민중들이 글 배우는 것을 막고,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게 했으며,끝없는 의무와 복종만을 강요하는 법과 제도를 휘둘러 왔었다. 더욱이 임진왜란이 터진 뒤로 보여 준 양반관료들의 비겁함과 무능은 극치를 이루었고,그런 자들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날까지 살아 온 것을 후회했다.공자 맹자며 유학이며 성리학,향교 서당이며,정승 판서 따위가 그토록 치사하고 졸렬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왜적이 쳐들어오자 양반관료들은 우마차에다 금은보배와 첩실까지 챙겨 싣고는 깊은 산중으로 도망쳤다.오도 가도 못하고 남은 민중들은 고스란히 왜적들에게 유린당했다.그때 논개라는 기생이 왜장을 죽이고,놀란 왜적들이 황망히 진주성을 버리고 도망가자 진주는 금방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그 공적은 단연코 논개에게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그래서 남강 기슭에다 제상을 차려 놓고 울면서 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민중의 마음이었다.솔직하고 진솔한 예절이었다.이런 광경을 서울에서 내려 온 암행어사가 보았다.진주성 전투가 남긴 가장 감동적인 사건이자 양반관료들에 대한 묵시적 항거이기도 한 이 사건은 곧 정부에 전해졌지만 정부에서는 묵살해버렸다.부끄러웠기 때문이리라. ●도망치기 바빴던 양반들 버젓이 공신에… 그 후 진주성 전투에 대한 논공행상이 있었다.그런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진주성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온갖 핑계로 다른 곳에 있던 양반관료들과 도망가서 숨어 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온 양반들이 공신으로 오른 반면,전라도에서 의병으로 와 죽은 이들의 이름은 아예 들먹이지도 않은 것이다.몇 몇 대표급 전라도 의병장들은 전쟁공훈자로 이름이 올랐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모두 제외되었다.게다가 하나같이 남자들뿐이었다. 화려한 직함과 함께 사당에 위패가 모셔지고,봄 가을로 나라에서 장만한 제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렸다.어떤 때에는 왕이 손수 지은 축문이 내려지기도 했다.진주사람들이 보기로는 당연히 논개의 이름도 공훈자 반열에 올라야 하고,사당을 짓고 제수도 내려주는 것이 온당한 처사라고 여겼지만 유생들이 장악하고 있는 조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논개의 이름을 거론하는 자 없었다.험한 말로 개나 소도 훈장을 받는데 어찌하여 논개를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는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민중들의 서운함 안에는 그동안 국가로부터 천시당하고 억압받았으며 수탈과 능멸로 고통받아온 자신들의 불만도 들어 있었다. 그때부터 논개가 죽은 날만 되면 진주사람들이 남강가에 모여서 성대한 제사를 올리기 시작했다.그 잘난 남자들은 위패 위에 올라서 사당의 향내를 맡으며 국가가 내린 제물을 받았다.논개는 민중 개개인들이 장만한,소박하지만 진실이 어린 조촐한 제물들을 받았다.제상이 없을 때도 있었다.강가 모래 위에다 거적을 깔고 그 위에다 제물을 진설했다.유교 예절에 따른 제상 배열이 아니라 민중들이 마음대로 차린 제상이었다.향로 대신 모래를 모아서 향을 피웠다.제사에는 수백 명의 제관들이 참여했다.그들 어느 누구도 논개의 형제나 친인척이 되는 이는 없었다.논개를 안다거나 만나본 사람도 없었다.다만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그런데도 제 부모 형제의 제사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엄숙했다.누가 참석하라고 지시한 것도 아니었다.논개의 죽음에 감동한 민중들 스스로가 제관이 된 것이다. ●진주 민중 146년간 탄원… 영조때 사액내려 제사가 끝난 뒤엔 논개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토론이 벌어졌다.대표자가 뽑히고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도 만들어졌다.대표자 중에는 정식(1683∼1746) 같은 선비도 있었다.그를 중심으로 한 비대위에서는 먼저 진주목사와 경상우병사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이렇게 시작된 탄원서는 그 뒤로 대를 이으면서 계속되었다. 진주목사나 경상우병사로 부임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 탄원서로 골머리를 앓았다.참으로 집요하게 계속되는 탄원서 중에는 가끔 비변사나 왕에게까지 전달된 적도 있었다.그러나 묵살로 일관했다.진주사람들도 오기가 있었다.끝까지 가보자며 탄원서를 쉬임없이 올렸고,그때마다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을 추가시켰다.그러기를 146년 동안이나 계속했다. 결국 조선 정부에서도 더는 논개의 공적을 묵살할 수 없었다.그리하여 1740년(영조16) 정부에서는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란 사액(賜額)을 내려 논개의 공적을 공식화했다.죽은 지 146년 만에 사당이 지어지고,위패가 모셔져 눈비 맞으며 강가에서 민중들이 모시던 제사가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 후 진주목사 정현석은 논개의 삶이 지닌 역사적 큰 뜻을 기려서 ‘의암별제(義岩別祭)’라는 매우 소중한 제례의식을 창안하여 논개의 삶을 기림과 동시에 진주사람들의 끈질기고 뜨거운 논개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킨 행사를 만들었다. 의암별제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단순한 제사의식이 아니라 조선의 넋과 멋을 모두 담고 있는 악(樂),가(歌),무(舞)를 근간으로 3일 밤낮 계속되는 화려하고 장엄한 대제전으로서 민족예술을 지향했다는 점이다.또한 논개의 죽음이 지닌 자유정신과 혁명성을 담아내기 위해 제사가 끝난 뒤 사흘 밤낮으로 뒤풀이가 벌어지는데,사방에서 몰려든 인파가 남강가에서 축제를 벌였다.이리하여 의암별제는 진주 특유의 풍류가 되었고 문화잔치였으며 전국 최초의 예술행사의 전형이 되기도 했다. ●성계옥 선생 82년 만에 ‘의암별제’ 재현 이렇듯 품격과 재미를 균형있게 구비한 의암별제를 통하여 논개 정신의 불멸성을 민중 속에 심어오던 이 예술행사는 한일병합 이후 총독부로부터 조선민족주의 선전 행사로 지목되어 탄압받다가 끝내 금지되었다.의암별제를 주도했던 진주기생들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촉석루에 숨어들어 제사를 모시기도 했다.발각당한 기생들은 고문을 받아 의암별제 명맥이 끊어졌다.그 뒤 나이 든 기생들은 해마다 제사 때가 되면 촉석루 대신 의암에 올라 주먹으로 바위를 치면서 절규하기도 했다. 의암별제는 단절된 지 82년 만인 1992년에 성계옥 선생에 의하여 재현되어 다시 볼 수 있게 된,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식의 제사의식을 겸한 예술의 한 형식이다. 이렇듯 논개는 진주사람이나 전북 장수인들만의 논개가 아니라 한국인의 가슴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조선의 마음이다.논개의 근대성은 오늘날 한국 여성들의 진취성과 도전정신의 원류이자 성차별의 시대상을 온 몸으로 극복해 낸 한국여성의 전설이다.혼자서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여럿이서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눈 앞의 이익을 좇는 삶은 이웃의 삶까지 더럽힌다는 역사적 교훈을 오늘에 다시 되새기게 한다.‘여성을 바로 보지 못하면 인간의 미래는 어둡다.’는 명제를 우리에게 안겨 준 논개. 올 봄 진주에는 논개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축제가 열린다.사랑하는 사람들이여,논개를 만나거든 물어보시라.누가 논개를 죽었다고 하는지.˝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3)여자라는 이름의 논개(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3)여자라는 이름의 논개(下)

    논개가 왜장을 죽이고 자신도 투신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됐다.그런데 왜장 기다 마코베의 죽음이 있은 뒤 진주성에 주둔하던 왜적들이 스스로 진주를 떠나자 진주사람들은 이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논개의 혼이 왜적들을 물리친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그리하여 남강 기슭 맨바닥에 조촐하게 제상을 차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올렸다. 진주 사람들이 보기로는 진주는 물론 조선 모두를 돌아보아도 민중들의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국가와 유생 관리들에 대한 미움과 원한을 씻어내고 위로해 주는 사람으로 논개만 한 이가 없었다.민중들이 비록 무지하고 빈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인정과 의리,사람과 하늘 사이에 있어야 할 생명존중과 함께 사는 이치를 알고 실천하는 것으로 치자면 양반관료들보다 훨씬 나았다.양반관료들은 자기 이익과 편리를 지키기 위해 민중들이 글 배우는 것을 막고,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게 했으며,끝없는 의무와 복종만을 강요하는 법과 제도를 휘둘러 왔었다. 더욱이 임진왜란이 터진 뒤로 보여 준 양반관료들의 비겁함과 무능은 극치를 이루었고,그런 자들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날까지 살아 온 것을 후회했다.공자 맹자며 유학이며 성리학,향교 서당이며,정승 판서 따위가 그토록 치사하고 졸렬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왜적이 쳐들어오자 양반관료들은 우마차에다 금은보배와 첩실까지 챙겨 싣고는 깊은 산중으로 도망쳤다.오도 가도 못하고 남은 민중들은 고스란히 왜적들에게 유린당했다.그때 논개라는 기생이 왜장을 죽이고,놀란 왜적들이 황망히 진주성을 버리고 도망가자 진주는 금방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그 공적은 단연코 논개에게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그래서 남강 기슭에다 제상을 차려 놓고 울면서 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민중의 마음이었다.솔직하고 진솔한 예절이었다.이런 광경을 서울에서 내려 온 암행어사가 보았다.진주성 전투가 남긴 가장 감동적인 사건이자 양반관료들에 대한 묵시적 항거이기도 한 이 사건은 곧 정부에 전해졌지만 정부에서는 묵살해버렸다.부끄러웠기 때문이리라. ●도망치기 바빴던 양반들 버젓이 공신에… 그 후 진주성 전투에 대한 논공행상이 있었다.그런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진주성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온갖 핑계로 다른 곳에 있던 양반관료들과 도망가서 숨어 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온 양반들이 공신으로 오른 반면,전라도에서 의병으로 와 죽은 이들의 이름은 아예 들먹이지도 않은 것이다.몇 몇 대표급 전라도 의병장들은 전쟁공훈자로 이름이 올랐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모두 제외되었다.게다가 하나같이 남자들뿐이었다. 화려한 직함과 함께 사당에 위패가 모셔지고,봄 가을로 나라에서 장만한 제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렸다.어떤 때에는 왕이 손수 지은 축문이 내려지기도 했다.진주사람들이 보기로는 당연히 논개의 이름도 공훈자 반열에 올라야 하고,사당을 짓고 제수도 내려주는 것이 온당한 처사라고 여겼지만 유생들이 장악하고 있는 조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논개의 이름을 거론하는 자 없었다.험한 말로 개나 소도 훈장을 받는데 어찌하여 논개를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는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민중들의 서운함 안에는 그동안 국가로부터 천시당하고 억압받았으며 수탈과 능멸로 고통받아온 자신들의 불만도 들어 있었다. 그때부터 논개가 죽은 날만 되면 진주사람들이 남강가에 모여서 성대한 제사를 올리기 시작했다.그 잘난 남자들은 위패 위에 올라서 사당의 향내를 맡으며 국가가 내린 제물을 받았다.논개는 민중 개개인들이 장만한,소박하지만 진실이 어린 조촐한 제물들을 받았다.제상이 없을 때도 있었다.강가 모래 위에다 거적을 깔고 그 위에다 제물을 진설했다.유교 예절에 따른 제상 배열이 아니라 민중들이 마음대로 차린 제상이었다.향로 대신 모래를 모아서 향을 피웠다.제사에는 수백 명의 제관들이 참여했다.그들 어느 누구도 논개의 형제나 친인척이 되는 이는 없었다.논개를 안다거나 만나본 사람도 없었다.다만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그런데도 제 부모 형제의 제사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엄숙했다.누가 참석하라고 지시한 것도 아니었다.논개의 죽음에 감동한 민중들 스스로가 제관이 된 것이다. ●진주 민중 146년간 탄원… 영조때 사액내려 제사가 끝난 뒤엔 논개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토론이 벌어졌다.대표자가 뽑히고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도 만들어졌다.대표자 중에는 정식(1683∼1746) 같은 선비도 있었다.그를 중심으로 한 비대위에서는 먼저 진주목사와 경상우병사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이렇게 시작된 탄원서는 그 뒤로 대를 이으면서 계속되었다. 진주목사나 경상우병사로 부임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 탄원서로 골머리를 앓았다.참으로 집요하게 계속되는 탄원서 중에는 가끔 비변사나 왕에게까지 전달된 적도 있었다.그러나 묵살로 일관했다.진주사람들도 오기가 있었다.끝까지 가보자며 탄원서를 쉬임없이 올렸고,그때마다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을 추가시켰다.그러기를 146년 동안이나 계속했다. 결국 조선 정부에서도 더는 논개의 공적을 묵살할 수 없었다.그리하여 1740년(영조16) 정부에서는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란 사액(賜額)을 내려 논개의 공적을 공식화했다.죽은 지 146년 만에 사당이 지어지고,위패가 모셔져 눈비 맞으며 강가에서 민중들이 모시던 제사가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 후 진주목사 정현석은 논개의 삶이 지닌 역사적 큰 뜻을 기려서 ‘의암별제(義岩別祭)’라는 매우 소중한 제례의식을 창안하여 논개의 삶을 기림과 동시에 진주사람들의 끈질기고 뜨거운 논개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킨 행사를 만들었다. 의암별제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단순한 제사의식이 아니라 조선의 넋과 멋을 모두 담고 있는 악(樂),가(歌),무(舞)를 근간으로 3일 밤낮 계속되는 화려하고 장엄한 대제전으로서 민족예술을 지향했다는 점이다.또한 논개의 죽음이 지닌 자유정신과 혁명성을 담아내기 위해 제사가 끝난 뒤 사흘 밤낮으로 뒤풀이가 벌어지는데,사방에서 몰려든 인파가 남강가에서 축제를 벌였다.이리하여 의암별제는 진주 특유의 풍류가 되었고 문화잔치였으며 전국 최초의 예술행사의 전형이 되기도 했다. ●성계옥 선생 82년 만에 ‘의암별제’ 재현 이렇듯 품격과 재미를 균형있게 구비한 의암별제를 통하여 논개 정신의 불멸성을 민중 속에 심어오던 이 예술행사는 한일병합 이후 총독부로부터 조선민족주의 선전 행사로 지목되어 탄압받다가 끝내 금지되었다.의암별제를 주도했던 진주기생들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촉석루에 숨어들어 제사를 모시기도 했다.발각당한 기생들은 고문을 받아 의암별제 명맥이 끊어졌다.그 뒤 나이 든 기생들은 해마다 제사 때가 되면 촉석루 대신 의암에 올라 주먹으로 바위를 치면서 절규하기도 했다. 의암별제는 단절된 지 82년 만인 1992년에 성계옥 선생에 의하여 재현되어 다시 볼 수 있게 된,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식의 제사의식을 겸한 예술의 한 형식이다. 이렇듯 논개는 진주사람이나 전북 장수인들만의 논개가 아니라 한국인의 가슴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조선의 마음이다.논개의 근대성은 오늘날 한국 여성들의 진취성과 도전정신의 원류이자 성차별의 시대상을 온 몸으로 극복해 낸 한국여성의 전설이다.혼자서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여럿이서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눈 앞의 이익을 좇는 삶은 이웃의 삶까지 더럽힌다는 역사적 교훈을 오늘에 다시 되새기게 한다.‘여성을 바로 보지 못하면 인간의 미래는 어둡다.’는 명제를 우리에게 안겨 준 논개. 올 봄 진주에는 논개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축제가 열린다.사랑하는 사람들이여,논개를 만나거든 물어보시라.누가 논개를 죽었다고 하는지.
  • 감사원, 공직기강 특별 감찰

    탄핵정국을 맞아 공무원 복무기강 확립 특별지시가 내려진 가운데 감사원은 16일부터 한달 동안 ‘비상정국 공직기강 특별감찰반’을 구성,암행감찰에 들어가기로 했다. 감사원은 14일 “총선 직전인 다음달 14일까지 특별감찰반을 운영,고위 공직자 중심으로 암행감찰에 들어가는 등 탄핵에 따른 공직기강 해이를 적극 단속하겠다.”고 밝혔다.특별조사국장 지휘 아래 3∼4개 팀을 구성,현장 감찰에 주력하는 한편 정부 각급 기관의 감사기구와도 협조체제를 유지키로 했다. 감사원은 “재정경제부 등 비상근무체제로 전환한 기관의 비상근무 상태와 고속철도 개통 등 시한을 두고 추진하는 정책의 정상처리 여부 및 기관장·고위 공직자의 업무수행 태도 등도 중점 감찰대상”이라고 설명했다.현재 진행 중인 감사활동은 정상적으로 수행하되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내부 협의를 거쳐 실시 시기를 조정키로 했다. 한편 탄핵정국 속에서도 대한주택공사 직원 2명이 근무시간에 도박을 하다 적발됐다.14일 국무조정실 감찰반에 따르면 주공 용인동백지구사업소 소속 김모(47)씨 등 직원 2명이 지난 12일 오후 경기 용인시 동백지구 아파트 건설현장 내에 있는 현장사무소에서 민간 건설업체 직원 2명과 이른바 ‘훌라’ 도박을 벌이다 현장에서 적발됐다. 최광숙기자 bori@˝
  • [레저+α]

    ●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 숲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생명의 숲 기행’을 3월14일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하안미 소나무 숲에서 연다.전문가와 함께하는 숲 탐방 프로그램으로,숲에 서식하는 동물과 자생식물도 알아본다.신청은 3월2일부터 홈페이지와 전화로 받는다.참가비는 2만원.www.forest.or.kr,(02)3673-3236. ●한국관광공사 2000년부터 지자체와 공동으로 심사해 발표한 ‘깨끗한 식당’을 책으로 묶어 내놓았다.전국 대형서점에서 판매중이다.전국 165개 시·군·구 가운데 119개 시·군·구의 346개 식당에 대한 상세지도와 기본 메뉴,주변 관광지 등이 포함돼 있다.‘깨끗한 식당’은 관광공사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1차 심사를 하며,외식 전문 교수들의 2차 암행 심사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책값 9500원.www.visitorkorea.or.kr,(02)7299-542. ●서울프라자호텔 오는 1일부터 ‘유노미아패키지’를 판매한다.세미 스위트룸이나 디럭스룸 1박과 조식이 포함되어 있으며,덕수궁입장권과 샌드위치,과일,음료수가 포함된 피크닉세트를 함께 나누어준다.투숙객을 상대로 추첨을 통해 서머패키지 이용권,스위트룸 숙박권도 나누어준다.1박 기준 18만∼23만원.(02)310-7710. ●휘닉스파크 저렴한 가격에 가족들이 스키강습을 즐길 수 있는 ‘아이사랑 엄마사랑 스키캠프’ 패키지를 판매한다.20평형 콘도 1박,식사(3식),렌털 및 리프트(2일),스키 초급강습(1일차 오후,2일차 오전)을 포함하고 있어 처음 스키를 배우는 가족에게 적합하다.가격은 4인 기준 39만 7000원(2인 26만 6000원).3월6일,13일 2차례 운영된다.(02)527-9527. ●롯데월드 아름다운 우리산천을 표현한 ‘분경작품’ 전시회를 28일부터 4월25일까지 롯데월드 어드벤처 1층에서 연다.바위산 골짜기마다 울긋불긋 꽃을 피운 ‘꽃피는 봄 골짜기’를 비롯해,기암절벽 사이 빽빽이 나무들이 들어찬 ‘북한산 자락’,골짜기 사이에서 내려오는 물이 시원한 폭포를 연상시키는 ‘구룡폭포’ 등 아름다운 우리 산천을 표현한 대표작 100여점이 전시된다.(02)411-2000. ●몸속 탐험전 180m짜리 거인의 몸속으로 들어가 인체 내부를 모험하는 ‘몸속 탐험전 2004’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다.4월22일까지.인체와 성에 대한 재미있는 체험학습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의학에 대한 기초 지식과 건강관리의 필요성 등을 느끼게 한다.입장료는 성인 1만 2000원,어린이 1만원이다.www.bodyadventure.co.kr,(02)793-3606.˝
  • 설 연휴 공직기강 특별감찰

    설 연휴를 앞두고 일선 공직자들의 금품수수와 향응접대,근무지 이탈 등 기강해이 사례가 급증하면서 정부가 ‘고강도 단속’에 나선다. 11일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합동점검반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공직자들의 금품수수와 근무이탈 등의 사례가 급증,올들어서만 점검반에 금품수수사례 5∼6건을 포함해 수십여건의 기강해이 사례가 적발됐다. 이에 따라 상시적인 공직사회 암행감찰을 벌이고 있는 정부합동점검반은 설을 앞두고 현장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감사원도 12일부터 공직기강 특별감찰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합동점검반은 지난 9일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직원 구모(7급)씨가 경기도 남양주시 S건설 사무실에서 건설업자 백모(40)씨 등 3명과 함께 판돈 487만원을 걸고 속칭 ‘훌라’ 도박을 하는 현장을 잡아 남양주경찰서로 넘겼다. 남양주경찰서는 구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백씨 등 2명을 상습 도박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당시 도박에서는 공무원 구씨가 300만원 이상을 딴 상태로 접대를 위한 ‘잃어주기’ 도박으로 추정된다는 게 합동점검반의 설명이다. 앞서 지난 8일에는 농업기반공사 평택지사 이모 과장 등 직원 5명이 근무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1시부터 평택시내 음식점에서 관련업체 직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 뒤 함께 당구를 치다가 합동점검반에 적발됐다. 점검반은 오후 4시30분이 넘도록 당구 게임이 끝나지 않자 현장을 덮친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점검반 관계자는 “설 연휴가 다가와서인지 새해들어 기강이 많이 문란해졌다.”면서 “미미한 액수의 떡값,상품권 수수까지 포함하면 하루에도 몇 건씩 잡히지만 경미한 것은 현장에서 주의를 주는 것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설을 앞두고 현장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감사원도 12일부터 직원 60명을 투입,공무원의 금품·향응 수수,업무추진비와 기관 신용카드의 개인 사용,근무수당 허위청구 등에 대한 집중 단속에 들어갈 방침이다. 조현석기자 hyun68@
  • “교육틀 바꾸려면 대안학교 키워야”/‘교육개혁 외길’ 43년… 풀무학교 홍순명 대표교사

    누구나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앞다퉈 목소리를 높인다.그러나 아무나 선뜻 발벗고 나서는 것은 아니다. 충남 홍성에 자리잡은 대안 학교인 풀무학교 전공부(2년제 대학)의 홍순명(사진·66) 교사 대표.지난 1957년 춘천농업고등학교 교사로 교직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3년 뒤 풀무학교로 옮겨 지금까지 43년간 교육 개혁을 향해 묵묵히 걸어왔다. “아이들을 그저 ‘빨리 그리고 대량으로’ 가르치는 현 학교 교육은 산업화 시대의 산물일 뿐입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독창적 판단력이 중요한 이 시대에 지식 암기 위주의 교육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교육을 바꾸기 위해서는 대안 학교를 양성해야 합니다.규모가 작고 유연성을 갖췄기 때문에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의 개성 살려주는 교육이 중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교육 개혁을 주장하는 홍 대표는 아이들 개성을 살리는 교육이 결국 우리 사회를 살린다고 말한다. “성적에 따라 진로를 선택했다가 결국 적응하지 못한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손해 아니겠습니까.” 그는 무엇보다도 전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학교 교육이 ‘더불어 사는 것’을 가르치지 못하고 경쟁만을 부추기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정경 유착하는 사람들이 어디 지식 교육이 부족해서 그렇겠습니까.지식 교육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건 아닙니다.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암기 능력이 아닌 건전한 판단력입니다.” 전인 교육을 시키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으랴.하지만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홍 대표는 “전인 교육이 진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장애 요인이 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풀무학교 졸업생 100%가 대학 진학을 하고 있다. “몇몇 아이들은 흔히 말하는 명문대에 가기도 합니다.하지만 명문대 가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저희 학교 입학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1937년 강원도 횡성서 태어난 홍씨는 17세 되던 해에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군 제대 후 원래 다니던 춘천농업고등학교로 복직하는 것을 포기했다.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대안 학교가 있다고 해서 풀무학교로 가기로 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수직적인 데다가 입시 교육을 하는 기존 학교에 크게 실망했습니다.그러던 차에 풀무학교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달려갔습니다.” 풀무학교는 1958년에 세워진 국내 최초의 대안학교.오산학교 설립자 남강 이승훈 선생의 손자 이찬갑씨와 주옥로씨가 문을 열었다. 규모가 작고 전인 교육을 중시하며 개성을 존중하는 ‘새 교육상’을 실천하겠다는 사람들이 만들고 가꾼 학교다. 홍씨도 그 중 한 사람.1987년부터 정년 퇴임한 지난해까지는 교장을 맡았다. 지금은 2001년 세워진 대안대학인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려서일까.지금 풀무학교는 꽤 인기다.5년여 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온 아이들이 문을 두드려 경쟁률이 3대1 정도나 된다. 이만큼 학교가 자리 잡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10여년이면 안정될 줄 알았던 학교가 20,30년이 돼도여전히 어려웠다.‘생활을 통해 배운다.’는 원칙하에 학생들과 함께 밭을 일구고 공동 생활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예산 문제도 늘 고민거리였다. 이에 비하면 생계 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론 넉넉하진 않았습니다.하지만 생계는 주관적인 것 아니겠습니까.전 삶의 보람에 초점을 맞춰 살았고 그래서 ‘정신적인 수입’이 많아 풍요롭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감각에 맞춰 전래동화 다시 써 그는 얼마 전 책을 냈다.심청전,춘향전 등 전래 동화를 새롭게 쓴 ‘들풀들이 들려주는 위대한 백성 이야기’.퇴임을 앞두고 간접적으로나마 아이들에게 수업할 방법을 찾다가 책을 쓰게 됐다. “전래 동화가 아이들 심성을 기르는 데 큰 역할을 하는데,아무래도 오래된 글이다 보니 요즘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그래서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래 동화는 서민의 덕을 옹호하고 평등을 지향한다.이런 점들은 받아들이되 가족 이기주의,남녀 차별주의 등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돼제일 먼저 한 건 민생 안정 이런 게 아닙니다.연적을 제거하는 것이었죠.춘향만 해도 그렇습니다.‘여자의 미덕은 순종’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데 이는 양성 평등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홍 대표가 새로 쓴 ‘흥부전’에는 마법과 같은 박이 없다.흥부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심고 자라난 박으로 호박엿을 만들어 돈을 번다.‘대박’을 꿈꾸는 시대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두 명의 고3학생이 홍 대표를 찾아왔다.졸업 논문을 준비하면서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을 보며 홍 대표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풀무학교 학생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했다.“고위 공무원이나 이름만 대면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답이 먼저 돌아왔다. “모두 두각을 나타내기보다는 더불어 살 줄 알고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제겐 모두 소중합니다.세상엔 주연 못지 않게 조연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글 사진 홍성 나길회기자 kkirina@
  • [데스크 시각] 공무원들의 ‘수당빼먹기’

    해외에서 공금을 유용해 온 외교관들만 근무기강이 해이해진 게 아니다.이른바 ‘엘리트 집단’이라고 하는 외교관의 비행은 크게 보면 공관장들이 주범이지만 지방자치단체 말단 공무원들의 공금 ‘삥땅’과 뇌물수수도 그에 못지않다. 요즘 정치권의 대형 뉴스에 가려 언론에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알게 모르게 국민의 혈세가 슬금슬금 새나가고 있다. 울산시에서는 관급공사를 맡고 있는 6급 공무원이 차명으로 ‘뇌물통장’을 개설해 놓고 한달에 많게는 2000만원씩 송금을 받아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전북도의 한 주사는 ‘간 크게도’ 청사내에서 관급공사를 설계변경해준 대가로 470만원이 든 봉투를 챙기다 현장에서 암행감사에 적발됐고,전남 장흥·진도·신안군 일선 공무원들도 해마다 양식장 피해액을 허위신고하거나 부풀리는 수법으로 공금을 축내왔다. 강원도 모 자치단체에서는 수해복구 공사를 발주해준 대가로 계장은 500만원,과장은 200만원을 받아 하위직 실무책임자가 더 ‘끗발’이 세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그런가 하면 자치단체들이 요즘 경기불황 탓으로 세금이 잘 걷히지 않는다고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양심불량 공무원들은 초과근무수당을 빼먹는 데 혈안이다.시·군 또는 광역단체에 따라 한해 10억원에서 100억원 가까이 배정된 초과근무수당 가운데 상당액이 허위로 지급되고 있다는 것이다.퇴근시간 이후 일할 때 지급되는 근무수당은 시간당 직급에 따라 대략 4500∼5500원선이다.일주일에 2∼3차례 밤에 나와 인식기에 체크를 하는 것만으로도 연간 300만∼400만원가량의 수당을 챙길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시청이나 구청 인근에 거주하거나 퇴근 후 술을 마신 공무원들이 밤늦게 청사로 들어와 체크기를 사용하는 사례가 적발되기도 하고,각 실·과별로 돌아가며 밤늦게 퇴근하면서 여러 장의 카드를 한꺼번에 긁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초과근무수당을 임금보전 정도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수당 빼먹기에 골몰하는 공무원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카드체크기,지문인식기는 물론 정맥·홍체인식기 등 최첨단 장비에 대한 얌체 공무원들의 적응도가 의외로빠르기 때문에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방지책이 없다. 민선 자치단체장도 ‘내 식구’를 감싸주는 온정주의를 버려야 한다.근무기강 확립을 위해 법과 복무규정을 엄정히 집행한다면 이런 좀도둑이 왜 생겨나겠는가. 한때 풍문으로 나돌던 ‘결근하지 않고,일하지 않으며,쉬지 않는다.’라는 공무원 3대 철칙(?)이라는 게 있었다.매일 제시간에 꼬박꼬박 출퇴근하니 윗사람에게 책잡히지 않고,뭔가 서류를 들고 만지작거리지만 정작 결정을 하지 않으니 책임질 일이 없어 대충 정년까지 무사히 간다는 말이다. 공무원 신분을 빗대 흔히들 ‘철밥통’이라고 한다.‘한번 공무원이면 영원한 공무원’이란 뜻만이 아니다.예산을 호주머니 돈인 듯 사용하는 풍조에 대한 비판의 뜻도 담겨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노인·장년·청년 가릴 것 없이 실업사태에 떨고 있지 않은가.만약 비슷한 처지의 외국 공무원에 비해 급여가 적다면 적정한 수준으로 현실화시켜 주는 대신 공직수를 줄이고 부정과 비리를 엄벌해 나가야 할 것이다.가랑비에 옷 젖듯이 공무원들이 야금야금 ‘공돈 챙기기’에 중독되면 언젠가 우리 사회의 근간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윤 청 석 전국부 차장 bombi4@
  • 감사중인 도청 식당서 뇌물받아/ 수뢰도 밥먹듯?

    정부합동감사를 받고 있는 전북도 공무원이 도청 구내식당에서 뇌물을 받다 현장에서 국무총리실 암행감찰반에 적발됐다. 전북 전주중부경찰서는 28일 도청 구내식당에서 농업기반공사 간부로부터 금품을 받은 도 농림수산국 농업기반과 권모(44·토목 6급)씨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권씨는 지난 27일 오후 5시5분쯤 전북도청 제2청사 구내식당 커피 자판기 앞에서 농업기반공사 부안지사 기반조성부 사업1과 박모 과장(45·3급)에게서 현금 470만원을 받은 혐의다. 허름한 양복과 점퍼 차림으로 현장에 잠복중이던 3명의 암행감찰반은 권씨가 노란색 대봉투를 받아 2청사 3층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뒤따라가 신분증을 제시하고 봉투에 현금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 신병을 경찰에 넘겼다. 경찰 조사결과 농업기반공사 박 과장은 최근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성계지구 농촌용수개발사업 시행계획 변경을 승인해준 대가로 권씨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업은 지난 2000년 10월 농업기반공사가 발주한 사업으로 총사업비가 239억5000만원이고,삼성물산과 아산종합건설이 공동으로 도급받아 시행하고 있다.현재 공정률은 40%다. 그러나 경찰은 돈을 건넨 박 과장이 출석요구에 불응해 이날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신병확보에 나섰다. 권씨도 “박씨와는 동향이어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로 220만원은 두달 전 박 과장에게 빌려준 것이고,250만원은 설계변경에 대한 급행료로 받았다.”고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 경찰은 권씨가 도청 구내식당에서 버젓이 돈을 받은 점을 중시하고 권씨의 통장 계좌추적에 나섰으며,상납여부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감찰권 이양’ 양측 입장/ 검찰 자체 암행감찰 상시화 법무부 ‘감찰위’ 신설 이원화로

    법무·검찰 개혁을 주도하는 법무부 정책기획단이 조만간 감찰권 이양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채택할 예정이어서 검찰감찰권 문제가 또다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이에 따라 강금실 법무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간의 불화설까지 야기했던 감찰권 이양문제가 어떻게 매듭지어질 지 주목된다.검찰은 검찰 중립성 훼손 등의 이유를 들어 감찰권 이관을 반대하고 있다.반면 법무부는 엄정한 기강확립을 위해서는 자체감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자체 감찰기능 대폭 강화 검찰은 자체 감찰권을 한층 강화해 감찰권의 법무부 이관을 막는다는 방침이다.우선은 대검 감찰부 중심이었던 감찰 기능을 일선 고검과 지검으로 분산시켰다.서울고검부터 감찰 인력과 기능을 재정비했다.최근에는 일반직 2명을 선발,서울고검 산하 지검·지청의 암행감찰을 전담토록 했다.일선에서 비위 혐의가 불거질 경우 감찰반을 파견하던 형식에서 탈피,암행감찰을 상시화해 비위 혐의를 사전에 적발토록 했다.이들 일반직 2명의 신분이 노출되면 효과가 떨어질 것에 대비,신분은 철저히 보안에 부쳤다. 서울고검 형사부 소속인 감찰담당 검사의 활동도 활성화하기로 했다.현재 서울고검 감찰담당 검사는 일선 지검·지청 차장검사급인 이영우(사시 21회)·박경순(〃 22회) 검사 등 4명이 맡고 있다.이들 감찰 전담 검사들도 일선 지검·지청에 대한 암행감찰은 물론 사무·직무감사도 직접 나선다는 방침이다. 특히 종전에 대검 감찰부에서만 해오던 무죄평정의 기능도 1일부터는 일선 고검으로 대폭 이양했다.무죄평정이란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됐을 경우,수사검사의 기소에 문제가 없는지를 따져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것이다.무죄평정 기능의 상당부분을 고검으로 이양한 것도 일선 수사검사에 대한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서다. 대검은 지난 4월 송 총장 취임 이후 감찰담당 연구관을 1명 충원했다.앞으로는 특수수사 경험이 있는 고참검사를 대거 충원할 계획이다.대검의 감찰 결과를 보더라도 종전과는 다른 분위기다.검찰 관계자는 “종전에는 1년에 평균 검사 1명 가량이 징계위에 회부됐지만 지난 4월 송 총장 취임 이후에만 8명의 검사가 징계위에 회부됐다.”면서 “이같은 결과만 보더라도 검찰 자체적인 감찰기능 강화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감찰권 신설로 가닥 법무부는 검찰의 자체 감찰 외에 외부에서 별도로 검찰을 감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강 장관은 지난 3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엄정한 복무기강 확립을 위해 감찰권을 법무부로 이관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보고한 바 있다.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7월 전국검사장회의 당시 송 총장을 만나 대검 감찰부를 법무부로 이관할 것을 주문했다.검찰 수뇌부에 대한 감찰을 하기 위해서는 검찰총장 직속 기구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현재 법무부는 검찰 감찰권의 ▲법무부 완전 이관 ▲법무부-대검 이원화 ▲제3의 기관 신설 등 다양한 방안을 놓고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 가운데 법무부는 종전 검찰의 감찰기능은 그대로 두되 법무부에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감찰위원회를 신설하는 이원화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이는 법무부로 감찰기능을 완전히 이관하는데 따른 검찰내부의 반발도 잠재울 수 있는 데다 법무부도 감찰권을 가질 수 있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앞으로 감찰위원회를 통해 검찰의 자체 감찰이 미흡할 경우 다시 감찰을 하거나 청주지검 김도훈 전 검사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면 법무부가 직접 감찰한다는 방침이다.법무부는 사건처리 및 일반 사무감사는 대검이,검사와 직원들의 비리 관련 감찰은 법무부가 담당하는 이원화 방안도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자들도 법무부에 감찰권을 추가로 신설하는데 찬성하는 분위기다.방송통신대 강성남 교수(행정학)는 “행정서비스 기능이 중복되면 행정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으나 조직의 감시·감독기능인 감찰은 중복돼야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충식 홍지민기자 chungsik@ ■해외사례 일본은 ‘검찰관적격심사회’를 통해 신분보장과 동시에 검찰권을 견제하는 것이 특색이다.심사회는 총리부 소속으로 국회의원,법무성 관리와 변호사 등 외부인사를 포함한 11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모든 검찰관에 대해 3년마다 정기심사(감찰)를 실시하며 법무대신이나 일반인의 청구에 의해 각 검찰관을 수시 심사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의 경우 징계권을 법무부장관이 갖는다.프랑스 검찰총장,법무부 사법감찰실장 등은 단순 경고처분만을 내릴 수 있다.그러나 프랑스 법무부장관도 자문기구인 징계위원회를 통해야만 의무위반을 하거나 품위를 손상한 검사에게 징계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은 의회가 검찰권에 대한 견제역할을 하고 있다.감찰도 상원의 인준을 통해 대통령이 임명,공정성이 담보된 차관급 감찰관에 의해 실시된다.법무부 장관이 연방검찰총장을 겸하고 있으며 법적으로 신분보장이 돼있지 않은 연방검사장 등도 상원인준을 거쳐야 해임할 수 있다.반면 경찰도 수사권과 공소권을 갖고 있는 영국은 상대적으로 검찰권이 약하다.영국은 검사에 대한 임명권을 검찰총장이 가지고 있다. 홍지민기자 icarus@
  • 추석 앞두고 공직기강 암행 감찰

    행정자치부는 추석을 앞두고 공직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오는 10일까지 감찰요원을 대거 투입,지역별로 집중적인 암행감찰을 벌이고 있다고 7일 밝혔다. 행자부는 2인 1조로 4개의 암행감찰팀을 수도권과 영남권,호남권,충청권 등 4개 권역에 투입해 추석 전까지 집중 감찰을 전개키로 했다. 중점 감찰 대상은 공직자 행동강령을 위반하는 수준의 금품과 선물수수 행위를 비롯해 조직 내부적으로 공무원간 금품과 선물을 주고 받는 행위,추석연휴를 앞두고 해이해질 수 있는 당직근무 및 비상대비 태세 등이다. 장세훈기자
  • 우리 만화 한·일 첫 애니메이션

    한국과 일본이 만화 ‘신암행어사’(양경일 그림ㆍ윤인완 글)를 원작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한일 양국이 한국 만화를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을 합작하는 것은 처음이다. 애니메이션 작업에는 한국에서 원작만화 판권을 갖고 있는 대원씨앤에이홀딩스가 캐릭터플랜과 함께 참여하며,일본에서는 ‘선데이GX’를 발행하는 쇼가쿠칸(小學館)을 비롯,이마지카 엔터테인먼트,닛쇼이와이(日商岩井),클록웍스,하쿠호도(博報堂) 등이 가세해 순수제작비 30억원을 일본과 한국에서 70%와 30%씩 각각 분담한다. 내년 가을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개봉할 계획이다.
  • 철도 안전 부실업체 ‘3진아웃’ 전국 공사현장 암행감찰 착수

    열차 안전수칙을 이행하지 않은 철도 공사현장 시공·감리업체에 대해 ‘삼진 아웃제’가 적용된다. 첫 적발시 통보,두번째는 서면경고 및 안전관리 이행각서를 제출받고 세번째 지적시는 현장대리인(현장감독) 및 감리원 교체와 함께 업체에 대해서는 부실벌점을 부과하게 된다.퇴출 및 벌점을 받은 관계자와 업체는 이후 철도공사에서 불이익은 물론 공사 참여가 사실상 제한된다. 철도청은 4일 이같은 내용의 철도공사현장 안전 확보를 위한 관리지침을 마련,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철도청은 관리지침 이행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공사현장 안전지원 전담반’을 구성해 전국 철도공사 현장에 대한 암행감찰에 착수했다.인근 역장과의 운전협의와 작업시작전 안전교육,열차감시원 배치,공사현장 감독자 입회 여부 등이 주요 점검사항이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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