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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선주 “연희단거리패 김소희 선배님, 익명 인터뷰 접니다”

    홍선주 “연희단거리패 김소희 선배님, 익명 인터뷰 접니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했던 배우이자 어린이극단 끼리 대표 홍선주씨가 최근 JTBC ‘뉴스룸’에서 이윤택 전 감독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익명으로 인터뷰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밝혔다.홍선주는 당시 인터뷰를 통해 “2004, 2005년 (이윤택 연출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가슴 쪽에 손을 넣어 피한 적도 있으며, 발성을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사타구니 쪽에 막대기나 나무젓가락을 꽂고 버티라고 하기도 했다”라고 폭로했다. 이어 “극단 내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고, 그로 인해 임신하거나 낙태한 친구도 있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이윤택) 선생님에게 누가 되는 것이고, 네가 잘못한 일이다며 여자 선배들이 여자 후배들을 질책하고 비난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홍선주는 “다른 선배들 때문에 2차적인 상처를 받았다. 이윤택 선생님이 안마를 원하니 들어가라고 한 것도 여자 선배였다”면서 “옆에서 성추행 행위를 부추기고 종용하고, 또 힘들어하는 후배에게 ‘사회 나가면 더 힘든 일도 겪는다’며 면박을 준 여자 선배들이 더 원망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이어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에 대해 “안마를 조력자처럼 시키고 후배들을 초이스하는 역할을 했었다. 안마를 거부했더니 쟁반으로 가슴팍을 밀고 치면서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이냐. 빨리 들어가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김소희 대표는 이 주장에 대해 “저희 극단이 잘못한 일로 책임감은 크지만 JTBC 뉴스에 나온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저도 너무 놀라 손이 떨린다. 방송국측에 정정신청 해놓았다. 인터뷰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사실을 밝히는 데 필요한 조치가 있다면 다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홍선주는 21일 페이스북에 “접니다. JTBC ‘뉴스룸’ 손석희 씨와 전화 인터뷰하고 영상 인터뷰까지 한 사람 접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는 “김소희 선배님. 저 찾으셨다고요? 해명하고 싶으시다고요? 찾으셨으니 하세요”라고 말하며 “극단을 운영하는 입장이기에 혼자만의 선택을 할 수 없었고 특히 어린이들과 함께하기에 그 아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익명으로 인터뷰한 배경에 대해 밝혔다. 이어 “하지만 아이들이 언젠가 알게 되더라도 이해하리라 믿는다”고 적었다. 홍선주는 “윤주 선배님. 매 순간 그리워했고, 함께이길 바랐습니다. 근데 처음으로 선배님이 이곳에 없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 지현이와 뜻을 함께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습니다. 나중에 선배님 만나면 지현이랑 같이 무릎 꿇겠습니다”고 덧붙였다. ‘윤주 선배’는 연희단거리패의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2015년 8년 간의 암투병 끝에 고인이 된 故 이윤주 배우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지현’은 이윤택 연출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 바 있는 배우 김지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윤택 연출가는 성추행과 성폭행 의혹에 지난 19일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다”라고 사과했지만 성폭행 의혹에 대해선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희단거리패에서 상임연출을 맡고 있는 오동식씨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윤택 연출가가 기자회견 리허설을 했으며, 극단 고위 관계자들은 폭로가 나올 때마다 피해자들 실명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내부적으로 단속하는 행동으로 가해사실을 은폐하고 축소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사망 신생아 주치의 측 진술 거부 “감염 경로 먼저 밝혀야”

    사망 신생아 주치의 측 진술 거부 “감염 경로 먼저 밝혀야”

    서울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실장이자 주치의인 조수진 교수가 지난해 12월 16일 신생아 4명이 연쇄 사망한 지 한 달 만에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했다. 하지만 조 교수는 건강상의 문제로 조사가 시작된 지 2시간도 채 안 돼 귀가했다. 경찰은 조만간 조 교수를 비공개로 재소환할 방침이다.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6일 조 교수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러 신생아 사망에 대한 책임 추궁을 시도했다. 경찰은 중환자실 총책임자인 조 교수가 신생아들이 오염된 주사제를 맞고 사망하는 동안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고 보고 있다. 조 교수는 이날 낮 12시 45분쯤 경찰에 출석하며 “죄송합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조 교수의 변호인인 이성희 변호사는 “아직 구체적인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 부분이 먼저 밝혀져야 한다. 병원의 전반적인 직제를 봐야 하며, 상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될 때 배정받은 예산을 어떻게 지출해 왔는지 등 총괄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단순히 현장에 있었던 간호사와 전공의, 주치의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아울러 “조 교수는 출근하지 않아도 됐는데도 출근해 회진을 했다”며 사건 당일 자리를 비웠다는 의혹을 적극 해명했다. 조 교수는 오후 2시 40분쯤 조사를 마치고 나왔다. 광수대 관계자는 “조 교수가 건강 문제로 진단서를 제출했다”면서 “조사도 변호사가 2~3장 분량의 의견서만 제출했을 뿐, 조 교수가 진술을 거부해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조 교수가 현재 암투병 중이고 오늘도 항암제를 맞고 와 정상적으로 조사를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라면서 “이번 사건의 영향으로 우울증까지 왔다”고 전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을 통해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4명이 시트로박터 프룬디균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리고 조 교수와 전공의, 간호사 등 5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평창 갑니다… 눈물의 최다빈, 기적의 차준환

    평창 갑니다… 눈물의 최다빈, 기적의 차준환

    최다빈(18·수리고)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평창행을 확정지은 터였다. ‘가장 먼저 누가 떠오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난해 6월 암투병 끝에 돌아가신 어머니라며 울먹였다. 최다빈은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가 계셨다면 잘했다고 말씀하셨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혀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듯한 모습이었다.최다빈은 7일 서울 양천구 목동빙상장에서 열린 피겨 국가대표 선발 3차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26.01점을 얻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얻은 64.11점을 합해 총점 190.12점이다. 어린 나이 때문에 평창 출전 자격이 없는 유영(14·과천중·204.68점)에 이어 3차 선발전 2위를 차지한 것이다. 1~3차 선발전 합계 540.28점을 쌓은 최다빈은 한국 여자 싱글에 배정된 2장의 평창행 티켓을 가장 높은 점수로 가져갔다. 남은 한 장은 3차 대회에서 176.92점을 더하며 1~3차 합계 510.27점을 기록한 김하늘(16·평촌중)에게 돌아갔다.최다빈에게 2017년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시기였다. 그해 2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여자 싱글 금메달을 획득하고, 두 달 뒤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에서는 ‘톱10’에 들며 올림픽 출전권 쿼터 2장을 한국으로 가져오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얼마 뒤 어머니의 별세로 힘든 시기를 보냈으며 새로 교체한 부츠도 발에 맞지 않아 고생했다. 발목 부상까지 겹쳐 정상 컨디션에서 훈련을 이어 가기엔 너무 벅찼다. 최다빈은 올림픽을 앞둔 마지막 고비에서 깔끔한 연기를 선보이며 ‘해피엔딩’을 엮어 냈다.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한 치 실수도 없이 깔끔한 연기를 뽐냈다. 첫 과제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훌륭하게 소화해 수행점수를 0.7점 얻었고, 가산점이 있는 후반부에도 가벼운 몸놀림으로 연달아 점프를 성공시켰다.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프리스케이팅에서 받았던 126.24점에 불과 0.23점 모자란 도드라진 연기를 선보인 뒤 주먹을 불끈 쥐며 오랜만에 환한 미소를 보였다.남자 싱글에서는 차준환(17·휘문고)이 대역전극을 벌이며 평창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차준환은 1차 선발전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206.92점에 그쳐 이준형(22·단국대·228.72점)에게 21.8점 뒤졌다. 2차전에서도 이준형이 1위를 차지해 둘의 점수는 27.54점으로 다시 벌어졌다. 3차전 쇼트프로그램에서 84.05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이준형에 20.29점 차로 좁혔지만 평창행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였다. 차준환은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시즌 사용해 높은 점수를 기록했던 ‘일 포스티노’로 과감하게 프로그램을 교체했다. 자신의 ‘필살기’인 쿼드러플 살코도 깨끗하게 처리하며 수준급 연기를 자랑했다. 경기를 마치자 차준환을 지도하는 브라이언 오서(57) 코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달아 박수를 쳤다. 결과는 168.60이라는 고득점. 반면 지난해 네벨혼 트로피 대회에서 5위에 오르며 남자 싱글 올림픽 쿼터 1장을 한국에 가져온 주인공인 이준형은 트리플 악셀과 살코에서 각각 큰 실수를 저질러 아쉬움을 더했다. 결국 차준환은 1~3차 대회 총점 684.23으로 이준형(682.10점)을 2.13 차로 제치고 ‘작은 기적’을 일궜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공개적인 신상필벌 日 야구 이끈 ‘鬪將’

    공개적인 신상필벌 日 야구 이끈 ‘鬪將’

    일본의 전후세대 첫 ‘1000승 감독’으로 야구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했던 호시노 센이치 라쿠텐 골든이글스 부회장이 지난 4일, 71세를 일기로 별세하면서 일본 전역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방대한 양의 기사와 화보, 어록 등을 통해 ‘열혈남아’, ‘투장’(鬪將), ‘어록 제조기’ 등으로 불렸던 그의 생애를 자세히 조명하고 있다. 호시노 전 감독은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조직 운영과 선수 조련을 통해 약팀들을 강팀으로 변모시켜 온 것으로 유명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호시노 리더십’을 다루면서 “팀 개혁에 대한 견해나 선수 기용법은 기업의 조직 전략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야구팬뿐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그의 리더십은 관심을 모은다”고 전했다.●1년여 암투병 숨겨 팬들 충격 호시노 전 감독은 지난 2일 지병인 췌장암이 급격히 악화돼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이틀만인 4일 오전 5시 25분 숨을 거뒀다. 2016년 7월 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했지만 이를 주변에 전혀 알리지 않아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을 접한 팬들의 충격이 더욱 컸다. 주니치 드래건스의 에이스 투수였던 그는 1969년 데뷔 이후 통산 146승(121패 34세이브)을 거뒀다. 1974년에는 그해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사와무라상’을 받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주니치 드래건스, 한신 타이거스,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 비주류, 최하위 또는 신생팀을 맡으며 4차례의 리그 우승 및 1차례의 재팬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 특히 주니치 감독 시절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 등 국내 선수들과 함께해 한국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강해지기 위해 공개적 신상필벌” “이기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하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공개적인 신상필벌을 통해 각성을 이끌어내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평소에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비정한 지도자’를 자처했다는 말을 즐겨 했다. 2015년 6월 한국기업 등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입단 때부터 등을 두들겨주고, 선수의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축하 메시지도 보내주는 친근한 사이가 많았지만 결단의 순간만큼은 늘 비정함을 유지하려 애썼다”고 했다. “선수단 미팅 때 전체를 놓고 개개인 선수의 플레이 실수를 혼내고 또 칭찬을 하곤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사례를 이용해 선수단 전체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일관되게 사용했기 때문에 선수들과 오해나 갈등은 없었습니다.” ●주니치 시절 선동열 감독과도 인연 이런 스타일은 한국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주니치 감독 시절 선동열 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2군으로 강등시키면서 “그렇게 할 거면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채찍질을 했고 이후 선 감독은 완벽하게 부활했다. 고생한 선수에 대해서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라쿠텐 감독 시절인 2013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재팬시리즈 최종 7차전 때였다. 3점 차로 리드하며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던 9회, 호시노 감독은 전날 160개의 공을 던졌던 에이스 투수 다나카 마사히로(현 뉴욕 양키스)를 등판시켰다. 다나카는 최종 우승을 확정 지으며 환호성을 올리는 그날의 영웅이 됐다. 선수 혹사에 대한 논란도 일었지만, 그는 “역사를 쓰는 무대의 마지막 장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선수를 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태균 기자 windsea@seoul.co.kr
  • ‘I loved it all’ 병마도 이기지 못한 부부의 사랑

    ‘I loved it all’ 병마도 이기지 못한 부부의 사랑

    아내가 죽기전까지 유방암 치료 단계들을 빠짐없이 사진으로 남겨 진실한 사랑을 실천한 한 남자가 있다.사진작가인 안젤로 메렌디노와 지금은 오래전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 제니퍼가 그 주인공이다. 2005년 8월 더운 여름 어느날 당시 일자리를 찾고 있었던 안젤로는 제니퍼와 마주쳤다. 그는 즉시 그녀가 자신의 짝이라는 것을 알았고 만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만 초대해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결혼 5년 만에 아내 제니퍼가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됐다.제니퍼의 병세가 점점 심해지면서 안젤로는 큰 결심을 했다. 그는 아내의 암투병과 치료과정을 사진으로 담기로 결정했고 이 세상 그 어떤 사진보다 아름답고 의미있는 순간들을 남겼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가는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슬픔이지만 아내에게 ‘암의 얼굴’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이게 하고 싶었다. 결국 제니퍼는 2005년 4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안젤로는 아내를 기리기 위해 비영리 단체인 ‘Love You Share’를 설립다. 현재 이 단체는 유방 암 치료를 받는 여성들을 돕고 있다.사진·영상=KevOnStage/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죽었다는 얘기 들은 후 행복이란 말 더 자주 써요”

    “죽었다는 얘기 들은 후 행복이란 말 더 자주 써요”

    암투병 후 일상 속 사랑 담아 ‘명랑투병’하니 푸념 안 하게 돼 “상처는 광안리에 쏟아버려요” ‘오랜 벗’ 법정 스님의 편지도 소개 “내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오히려 기도도 많이 받고 기쁨과 즐거움, 행복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게 돼 축복의 기회를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2011년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 ‘기다리는 행복’(샘터)을 출간한 이해인(72) 수녀는 자신을 둘러싼 과거 해프닝에 대해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감사해했다. 이해인 수녀가 말하는 해프닝은 재작년 겨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쫙 퍼진 타계설. 2015년 12월 19일 저녁 부산의 한 성당에서 강의를 하던 이 수녀에게 동료 수녀가 다급하게 달려와 속삭였다. ‘어머. 수녀님이 지금 막 돌아가셨다는 뉴스가 퍼지고 있어요.’ 당시 SNS에는 이해인 수녀의 유작이라는 익명 시가 돌았고, 급기야 미국의 한 지역 일간지에 추모시까지 게재됐다.19일 서울 용산구 ‘성 분도 은혜의 뜰’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해인 수녀는 그때를 회상하며 “내가 죽었다는 가짜뉴스는 용서가 되는데 유작이라는 내 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했다”며 웃음 지었다. ‘기다리는 행복’은 이해인 수녀가 건네는 ‘사랑의 인사’다. 이 책에는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내고 수도자이자 작가로 살아온 이 수녀가 2008년 대장암 투병을 시작한 후 묵상하고 기도해 온 소소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사랑과 위로가 담겨 있다. 이날 기자들 앞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간 자신의 시 ‘오늘의 행복’처럼 말이다. “삶은 나를 더욱 설레게 하고 고마움과 놀라움에 눈뜨게 하고 힘들어도 아름답다 살 만하다 고백하게 하네”. 지난 9년 동안 심신을 괴롭힌 암조차 특별한 존재가 됐다. “처음부터 ‘명랑투병’ 한다고 큰소리를 쳤고, 단 한 번도 병 때문에 눈물 흘리거나 푸념하지 않았어요. 항암주사를 맞을 때마다 배에 덮었던 분홍 타월조차 나와 함께 고통의 시간을 보낸 동료로 느끼게 됐고, 고마워하게 되더라구요. 스스로 용기를 주는 말을 많이 하고 감사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책은 이 수녀가 깨달은 삶의 지혜뿐 아니라 기도와 묵상, 다양한 벗들과 교류한 ‘러브레터들’도 담고 있다. 법정 스님과 주고받은 편지와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에게 전하는 글이 대표적이다. 특히 작은 오해로 서로 날 선 감정을 주고받은 법정 스님이 이 수녀에게 보낸 편지는 따뜻한 배려가 느껴진다. “내 괴팍한 성미 때문에 (…) 수녀님 마음에 입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면 광안리 바다에다 다 쏟아버리셔요. 물결 따라 흘러가도록요.” 맨 마지막 장에 배치된 ‘처음의 마음으로 기도일기’는 이해인 수녀 자신을 위한 글이다. 새해는 1968년 5월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들어온 이해인 수녀가 수도자가 된 지 50년이 된다. 수도서원을 한 그해 1년간 일기 형식으로 쓴 짧은 글 140여편이 수록돼 있다. 오래전 기록이지만 스물세 살 젊은 수녀의 순수함과 풋풋함이 날것 그대로 전해진다. “수도 생활과 작가 그 두 가지를 하는 게 고단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스스로 견뎌 온 것, 저를 견뎌 준 사람들에게 늘 감사드리고 싶어요. 젊은 시절의 열정은 그것대로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저를 객관화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좋아요. 세월이 지날수록 성장하는 느낌, 그게 삶의 선물 아닐까요.”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서울포토] 2012년 해고 후 첫 출근하는 이용마 기자

    [서울포토] 2012년 해고 후 첫 출근하는 이용마 기자

    11일 2012년 파업 당시 해직됐다 복직된 이용마기자와 함께 복직 후 첫 출근을하고 있다. 이용마기자는 암투병중이다 2017.12.11 이호정 전문기자 hojeong@seoul.co.kr
  • 김진아 사망, 김보애 딸 임종 못 본 이유? “당시 병명은..”

    김진아 사망, 김보애 딸 임종 못 본 이유? “당시 병명은..”

    원로배우 김보애가 뇌종양 투병 중 14일 별세한 가운데, 딸 배우 김진아의 사망이 재조명되고 있다.故(고) 김진아는 지난 2014년 암투병 끝에 사망했지만 사망 직후 그녀의 병명이 공개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김진아의 동생인 배우 김진근은 이와 관련해 지난 2014년 SBS ‘좋은아침’에 출연해 김진아 사망 원인을 뒤늦게 밝혀 눈길을 끌었다. 당시 방송에서 김진근은 “병명을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우리한테는 병명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운을 뗀 후 “물론 그렇다고 병이 창피한 건 아니지 않나. 우리도 언젠가 그런 병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라고 말했다. 이어 김진근은 “누나는 사실 오랫동안 면역 체계 질환 중 하나인 희소병 경피증을 앓았다. 그것 때문에 피부에 이상이 오고 그러면서 혈액순환도 안됐다”며 “그게 지속적으로 가다 보니 몸에 이상이 생겨서 종양이 생겼고, 그게 암이 됐다. 종양 제거 수술을 해서 잘 된 줄 알았는데, 미국에 돌아갔는데 종양이 다시 생겼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이후 무서울 정도로 급격하게 종양이 커지면서 급작스럽게 위급한 상태가 됐다”고 덧붙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경피증은 자가면역성 질환으로 피부가 두꺼워지고 딱딱해지는 병이다. 한편 당시 방송에서 김보애는 먼저 세상을 떠난 딸 김진아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 바 있다. 김보애는 “딸이 떠나기 전, 미국 하와이에서 딸과 3개월을 지냈다. 딸이 서울에 가있으라고 하더라. 그래서 서울에 왔다”며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미국에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3달이나 함께 있었으면서 임종을 못 봤다. 내가 죄인이다. 내가 먼저 갔어야 했는데”라고 눈물을 흘렸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오페라가 현대미술을 만났을 때

    오페라가 현대미술을 만났을 때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은 1832년 5월 초연된 희극 오페라로 아름답고 부유한 여인 아디나와 시골 청년 네모리노가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이루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로 유명한 이 오페라를 현대미술 작품과 함께 감상하는 이색적인 전시가 열리고 있다.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사랑의 묘약-열 개의 방, 세 개의 마음’에서는 한국과 대만, 미국, 일본, 스페인 등 작가의 회화, 조각, 일러스트, 사진, 영상 작품 100여점이 아디나와 네모리노 등 오페라 주인공들의 감정에 따라 분류된 10개의 공간에 소개되고 있다. 오페라 줄거리를 따라가며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는 크게 남자의 마음, 여자의 마음, 사랑을 이루어 하나가 된 마음 등 세 가지 주제로 분류돼 있다. 좀 억지스러운 면도 있지만,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 순진하고 성실한 농부 네모리노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 주는 작품은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다쿠 반나이의 콜라주 작품이다. 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하사관 벨코레가 연적으로 등장해 아디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스토리는 점토 조각을 만들어 이를 3D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한 이르마 그루엔홀츠의 작품과 함께 걸렸다. 다급해진 네모리노가 엉터리 약장수에게 사랑의 묘약을 구입하는 대목에서는 안민정 작가의 ‘콩깍지에 관한 연구’가 등장한다. 자신을 보고도 태연한 체하는 네모리노의 모습에 아디나가 느끼는 공허함을 표현한 ‘아디나의 방2’에서는 빛을 주제로 작업하는 정보영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상대가 다가와 주기를 갈망하는 마음을 표현한 ‘아디나의 방4’는 설치미술가 신단비와 미디어아티스트 이석이 뭉친 신단비이석예술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실제 연인인 두 작가가 각각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함께 진행하고 두 개의 이미지를 하나로 만든 사진작품과 영상이미지, ‘둘이 함께 앉아야만 앉을 수 있는 의자’ ‘두 낫 세퍼레이트’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또 대만 출신 사진작가인 신왕의 사진작품과 암투병하는 아내를 웃게 하기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며 핑크빛 발레복을 입고 촬영하는 ‘투투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았던 밥 캐리 등 외국 작가들의 작품도 다수 출품됐다. 서울미술관 안진우 팀장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에게 우리가 근원적으로 열망하는 순수한 사랑의 가치를 재고하고 풍부한 감성 경험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한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2018년 3월 4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숨은 강자’ 양희영·‘깔끔’ 유소연

    ‘숨은 강자’ 양희영·‘깔끔’ 유소연

    ‘7차례 톱10’ 양희영 1타차 단독 2위 세계 1위 유소연 버디만 4개 공동 3위톰프슨, 암투병 엄마 살뜰히 챙겨 화제US여자오픈의 ‘숨은 강자’ 양희영(28)이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세계 랭킹 1위 유소연(27)은 보기 없는 깔끔한 플레이로 우승 후보다운 실력을 뽐냈다. 양희영은 14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파72·6668야드)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여자오픈(총상금 500만 달러) 1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2개를 묶어 5언더파 67타를 쳤다. 선두 펑산산(28·중국)에게 1타 뒤진 단독 2위다. 양희영은 이 대회에서 우승만 없었을 뿐 강한 면모를 이어 왔다. 지난해까지 모두 10차례 출전해 7차례나 ‘톱10’에 들었다. 2012년과 2015년에는 준우승을 했고 지난해에는 공동 3위에 올랐다. 유독 강한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사실 다른 대회와 똑같은 루틴을 갖고 똑같이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회 중 하나여서 즐겁게 플레이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유소연도 보기 없이 버디만 4개를 골라 내 4언더파 68타로 공동 3위에 올랐다. 그는 “샷도 퍼팅도 나쁘지 않아 보기 없는 라운드를 펼칠 수 있었다”면서 “내일(15일)은 파 5홀에서 더 많은 버디를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리디아 고(20·뉴질랜드)도 버디 6개와 보기 2개로 4언더파 68타, 공동 3위에 자리했다. 국내 프로대회에서 ‘아마추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최혜진(18)은 해외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 갔다.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6위에 깜짝 이름을 올렸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렉시 톰프슨(22·미국)은 이날 라운드 내내 자궁암 투병 중임에도 갤러리로 따라나선 어머니를 살뜰하게 챙긴 것이 더 화제였다. 톰프슨은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여인”이라면서 “엄마와 함께한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언더파 71타로 공동 29위에 올랐다. ‘골프 여제’ 박인비(29)는 5오버파 77타(공동 124위)로 컷 탈락을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티샷이 불안한 데 이어 그린 적중률도 44.4%에 그치는 등 전반적으로 샷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한편 1라운드는 비로 인해 경기 진행이 약 2시간 동안 중단됐다. 출전 선수 156명 가운데 45명이 1라운드를 마치지 못했다. 이들은 다음날 잔여 경기를 치르고 2라운드를 이어 간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임재범, 아내 암투병 병원비로 생활고 시달려..

    임재범, 아내 암투병 병원비로 생활고 시달려..

    가수 임재범이 생활고로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알려졌다. 최근 방송된 종합편성 채널 MBN ‘아궁이’에서는 지난달 갑상선암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가수 임재범이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이날 이지애는 “가수 임재범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 방송에 출연했다고 밝혔다”라고 전했고, 문화평론가는 “임재범은 수입을 만드는 재주가 없는 사람 같다. 어려운 시절 물 아끼려고 샤워도 안 했다고 한다. 담배 살 돈도 없어 길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워 폈다더라”라고 덧붙였다. 이어 연예부 기자는 “밥을 하려고 해도 쌀이 없었다고 한다. 어린 딸을 굶겨야 했다. 아버지로서 마음이 아팠을 거다”라고 말했고, 이지애는 “원래 임재범은 방송에서 잘 볼 수 없었다. 방송 출연이 생활고 때문이었다던데”라고 물었다. 이에 문화부 기자는 “‘나는 가수다’ 방송 당시 출연 가수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임재범이 나온다더라. 나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소속사 대표도 왜 나가는지 의문이었다고 한다. 임재범은 무대 공포증이 있었고, 큰 인기로 인해 찾아온 스트레스에 시달렸었다. 또 생방송 중 잠적을 자주한 그가 먼저 출연 의사를 밝혔다더라”라고 답했고, 한 패널은 “아내의 병원비가 임재범이 평생 번 돈보다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도균은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 나가기 직전에 나를 만났었다. 우리끼리 알고 있었던 얘기인데 안 할 수가 없다. 전기세도 못 낼만큼 어려웠다. 록 밴드를 결성하자고 제안을 하더라. 그런데 그 당시 음악 시장이 록 밴드를 하기에는 여의치 않아 거절을 했다. 차라리 솔로 가수로 활동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조언했다. 서운 했겠지만 밴드 결성을 안 했기 때문에 ‘나는 가수다’로 성공할 수 있었던 거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임재범은 최근 방송 활동을 하지 않고 부인 간병에 힘쓴 것으로 알려졌다.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것도 아내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2001년 결혼했으며 슬하에 딸이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임재범 부인 별세, 과거 무대서 눈물 흘린 이유는?

    임재범 부인 별세, 과거 무대서 눈물 흘린 이유는?

    가수 임재범의 아내인 뮤지컬 배우 송남영 씨가 12일 암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45세. 그런 가운데 과거 임재범이 아내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 무대가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011년 3월 케이블 채널 MBC에브리원 ‘수요예술무대’에 오른 임재범은 당시 마지막 곡으로 ‘독종’을 불렀다. 무대 위에서 감정에 이입해 노래를 부르던 임재범은 노래 말미에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관객들은 그의 진심이 담긴 눈물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두 달 후 임재범은 MBC ‘일밤-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이후 자신의 아내 송남영의 암 투병 사실을 팬카페에 고백했다. 그는 “제가 ‘수요예술무대’ 때 왜 그리도 몸이 안 좋고 눈물을 보였는지 이제야 설명으로 아셨으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한편, 송남영 씨는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해 뮤지컬 ‘명성황후’, ‘페임’, ‘겨울 나그네’, ‘하드록 카페’ 등에 출연했다. 2001년 임재범과 결혼한 송남영 씨는 슬하에 딸 하나를 뒀다. 사진=MBC에브리원 ‘수요예술무대’ 방송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임재범 아내 송남영 씨, 암투병 끝 12일 별세...향년 45세

    임재범 아내 송남영 씨, 암투병 끝 12일 별세...향년 45세

    가수 임재범(55)의 부인인 뮤지컬 배우 송남영 씨가 12일 암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45세. 임재범은 지난 2011년 MBC ‘일밤-나는 가수다’에 출연했을 당시 팬카페에 아내 송남영 씨에 대한 글을 올렸다. 그는 ‘제 아내 송남영, 암 투병 중에 있어요. 여러분의 기도 부탁드립니다’라며 아내의 암투병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제 아내가 저와의 결혼 10주년 기념일을 즈음해 병원서 갑상선 암을 진단받고 갑상선 암 제거를 했고, 간, 위로 전이됐다는 추가 진단을 받았다”며 “육체의 병보다는 아내가 무척 외롭고 힘들어할 때, 한 여인의 남자로 남편으로 많이 아프고 힘이 든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또 “제가 (케이블 채널 MBC 라이프) ‘수요예술무대’ 때 왜 그리도 몸이 안 좋고 눈물을 보였는지, 이제야 설명으로 아셨으리라 믿는다”며 “많은 기도로 회복의 기적을 아내가 누릴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들은 송남영 씨의 별세와 함께 재조명되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송남영 씨는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해 뮤지컬 ‘명성황후’, ‘페임’, ‘겨울 나그네’, ‘하드록 카페’ 등에 출연했다. 지난 2001년 결혼한 두 사람은 슬하에 딸 하나를 뒀다. 임재범은 최근 방송 활동을 하지 않고 부인 병간호에 힘쓴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0호실이다. 발인은 14일. 사진제공=연합뉴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암울했던 70년대 ‘금서의 시대’… 詩, 상처입은 국민을 위로하다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암울했던 70년대 ‘금서의 시대’… 詩, 상처입은 국민을 위로하다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詩)는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는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이다. 1980년대를 겪어 보지 못한 독자라면 그를 국회의원으로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말하자면 “서정시의 전성시대”를 살았던 세대에게 도종환은 언제까지나 시인이다.‘접시꽃 당신’은 암투병 끝에 먼저 세상을 떠난 시인의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연작시인데, 이것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될 줄은 시인도 전혀 예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김용택, 서정윤 시인과 마찬가지로 교사로 일하며 틈틈이 시를 썼다. 김용택은 ‘섬진강 연작’을 발표하며 자연을 노래했고, 서정윤은 풍부한 감수성을 바탕에 두고 간결한 시어로 풀어 쓴 ‘홀로서기’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뒀다. 1980년대에 들어서 서정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1970년대가 금서(禁書)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 이어진 군사정부는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녕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책들을 검열했고, 이미 유통된 책들은 모조리 수거해 없애버렸다. 단행본은 물론 잡지사도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작가들은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찾지 못해 궁핍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러한 억압에 저항하는 작가들도 적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보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애틋한 사랑을 노래하는 작품이 서점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1960~70년대에 주로 소설이 큰 인기를 누렸다면 이제 다양한 서정시집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당시 시집의 인기는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홍보수단이 발달한 지금도 이만한 판매수량을 능가하는 베스트셀러 시집은 나오지 않고 있다.시집 인기몰이의 첫 시작은 이해인 수녀로부터다. 종교인이면서 1970년대부터 시집을 발표해 온 그가 1983년에 펴낸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가 2년 후인 1985년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전에 출판된 시집도 덩달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대형 서점에서 집계한 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펴보면 1985년 당시 연간 베스트셀러 순위 2위가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였고 그 아래 3, 4위도 모두 이해인 수녀의 시집이 차지했다. 사실상 이해인 수녀 혼자서 출판계를 석권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1985년은 또 다른 의미에서 역사적인 해인데, 분단시대 동인이 함께 펴낸 시집 ‘분단시대 판화시집’에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연작이 처음으로 실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었다. 시인이 아내와 사별한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작품을 썼다는 실제 사연이 알려지자 독자들의 관심은 한꺼번에 도종환 시인에게 쏠렸다. 이듬해에 ‘접시꽃 당신’ 단행본 시집이 출간됐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작은 시집은 100만부 이상이라는 믿기 힘든 판매고를 올리며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시를 탄생시킨 애틋한 순애보는 2년 후인 1988년 이덕화, 이보희 주연으로 영화화까지 되어 도종환 시인의 인기를 연예인급으로 올려놓았다. 그로부터 수십년 세월이 지났지만 ‘접시꽃 당신’은 여전히 한 해에 수천권씩 판매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식지 않았다.도종환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시인은 서정윤이다. 그는 도종환과 마찬가지로 교사로 일하며 시를 썼는데 1987년에 펴낸 시집 ‘홀로서기’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단번에 ‘접시꽃 당신’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도종환의 시가 조금은 성인 취향인 반면 서정윤은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엄청났다. ‘홀로서기’는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학생용 노트나 책받침 같은 문구류에도 사용되는 등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인기가 쏟아져 시집 자체만도 300만부 이상이나 팔려나갔다. ‘홀로서기’ 시리즈는 후속편 여러 권을 펴내며 오랫동안 사랑받았고 그 판매량은 지금의 기준을 가지고 생각해도 믿기 힘든 수치였다.1990년대는 마광수, 하일지, 장정일 같은 작가들이 포스트모던 소설을 펴내던 시기였으나 여전히 서정시집의 인기는 잦아들지 않았다. 다만 작품들의 성향은 조금씩 사랑과 연애 감정을 가볍게 드러내는 쪽으로 바뀌었다. 90년대가 시작되는 첫해에 출판된 칼릴 지브란의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는 감성적이면서도 지식인다운 문체로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뒤이어 1992년에는 미국 작가 예반의 시집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크게 히트했다.그리고 마침내 엄청난 사건이 터진다. 1992년에 원태연의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가 출판된 것이다. 마치 대중가요 가사를 옮겨 놓은 듯 가볍고 유치한 내용을 담은 시집을 보며 독자들은 “이런 것도 시라고 할 수 있나?”라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사랑시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원태연의 작품은 신세대 젊은이들의 감성을 사로잡으며 삽시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뒤로 류시화가 등장하기까지 몇 년간은 완벽하게 원태연의 시대였다.원태연은 이듬해에 앞서 발표한 것보다 제목이 더 긴 ‘손 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라는 시집을 펴내며 인기를 이어 갔고 이런 식으로 시를 쓰는 방식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일이 될 만큼 비슷한 시집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종류의 시집은 ‘감성시집’, ‘낙서시집’, 또는 ‘이쁜이시집’이라고 불리며 200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이어 갔다. 원태연은 이후에 신승훈, 백지영, 손담비 등이 부른 히트곡에 작사를 담당하며 지금까지도 우리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다.이런 흐름 사이에서 류시화는 1997년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펴내며 ‘한국의 칼릴 지브란’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류시화는 IMF 사태로 전 국민이 충격에 사로잡혔던 때에 나타나 흡사 명상서적을 떠올리게 하는 잠언 같은 시로 많은 독자들의 마음에 위로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꾸준히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인디언과 네팔 원주민이 전하는 삶의 지혜를 책으로 엮어내는 등 편집자 역할도 이어 가고 있다. 시의 모양은 이제 저항시, 서정시, 사랑시처럼 특정한 이름을 붙이기 힘들 정도로 다양해졌다. 시인의 역할이나 시의 쓰임도 그와 함께 상당히 넓어졌다. 앞으로는 또 어떤 시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건드릴지 기대가 된다. 시는 곧 그 시대를 잘 설명해 주는 문학이기 때문에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들이 좋아했던 시집을 통해 지나왔던 날들을 돌아보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지금 이 세상도 천상병의 시처럼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는 기억을 가지게 되길 희망한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신부가 결혼식 때 부케 대신 던진 것은?(영상)

    신부가 결혼식 때 부케 대신 던진 것은?(영상)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한 관객들은 처음보는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국의 한 신부는 어느 결혼식에서도 보지 못한 특별 세리머니로 하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25일(이하 현지시간) 암투병 중인 신부가 결혼 피로연에서 부케 대신 자신이 쓰고 있던 가발을 던졌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일 미국 텍사스주 미들로디언에서 신부 제이미 스테인본과 신랑 존 스티븐슨의 결혼식이 열렸다. 신부 들러리와 신부측 친구들은 부케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신부 뒤에서 행렬을 이루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이 붉어진 신부는 셋 부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카운트다운이 끝난 순간, 제이미는 꽃 다발이 아닌 쓰고 있던 가발을 휙 벗어 던졌다. 16개월 동안의 자궁 경부암과의 긴 싸움을 겪어온 제이미는 하객들에게 도전적인 태도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부케대신 가발을 받은 여성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나왔고, 모두 즐거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고 나서 제이미는 들고 있던 부케를 마저 던졌다. 결혼식날 아침에도 가발을 던질지 결정하지 못했던 제이미는 "가발을 쓰고 있었지만 나는 민머리가 축복 받은 것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민머리는 내게 용기를 준다. 암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 어떤 결과에도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다"며 "평생에 한번 뿐인 절호의 기회에 모두에게 인생에 어려운 과제가 주어지든 중요하지 않다. 모두 다 잘 될거란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가발을 내던진 이유를 밝혔다. 한편, 지난해 1월 처음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은 제이미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려고 마당에서 중고 시장을 열었다가 지금의 남편 존을 만났다. 존은 제이미의 암을 알면서도 항상 옆에 있어줬고, 둘은 아픔을 공유하며 떨어질 수 없는 커플이 됐다. 제이미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에 겁먹지 않을 사람은 없다. 나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암과의 사투에 있어 긍정직인 태도가 중요하다. 사람들이 나처럼 인생에 어떤 순간이 와도 싸워 이겨냈으면 좋겠다"면서 자신의 퍼포먼스가 다른 암환자들이 자신의 상황을 좀 더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길 바랐다. 작년 12월 암이 재발해 화학치료 중인 제이미는 끝으로 "나는 친구와 가족들의 지지와 사랑이 있기에 패배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암을 극복할 것이다"라는 강한 다짐을 남겼다. 사진=데일리메일, 유튜브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 암투병 끝에 지난달 사망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 암투병 끝에 지난달 사망

     1980∼1990년대 ‘슬롯머신 업계 대부’로 불렸던 정덕진(76)씨가 지난달 위암으로 사망했다.  경찰 관계자는 19일 “정씨가 지난달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사망해 같은 달 22일 발인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씨는 사망 전까지 암으로 투병해 왔다.  고아 출신인 정씨는 1970년대 초 서울 청량리에서 전자오락실을 운영하며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정·관계는 물론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2013년 사망) 등 조직폭력배 세력을 등에 업고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1980∼90년대 슬롯머신 업소 9곳을 운영하며 업계 대부로 군림했다. 1993년 슬롯머신 사건 때 세무조사 무마 명목으로 정·관·법조계에 금품을 뿌린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6공 황태자’로 군림한 박철언(75)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엄삼탁(2008년 사망) 병무청장, 천기호 치안감 등 10여명이 정씨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다.  19대 대선에 출마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시 정씨 사건 수사검사였다. 이 사건은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됐다.  정씨는 이후에도 원정도박 등 혐의로 여러 차례 처벌받았다.  그는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와도 인연이 있다.  박 특검은 정씨가 모해위증(다른 사람을 형사처벌 받게 할 목적으로 위증) 혐의로 고소당한 사건에서 정씨를 변호했다. 해당 사건이 무혐의 처분되자 2015년 고소인 이모(65)씨가 앙심을 품고 박 특검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이씨는 항소심까지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정씨는 지난해에도 부동산 매매 문제로 갈등을 빚던 사람들을 공기총으로 협박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이제 제가 엄마에게 상을 차려 드릴게요”

    “이제 제가 엄마에게 상을 차려 드릴게요”

    “우리 엄마께서 암으로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가난했지만 엄마와 함께 지냈던, 엄마가 차려주셨던 밥상이 그립습니다. 무엇보다 더 보고 싶은 것은 엄마의 얼굴입니다.” 지난해 전북교육청 공모전에서 동시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동시 ‘가장 받고 싶은 상’이 최근 공개돼 누리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시는 어버이날인 지난 8일 전북교육청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됐다. 시를 쓴 주인공은 전북 부안군 우덕초등학교에 다녔던 학생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은 암투병 끝에 지난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추억하며 시를 썼다. 20일 확인한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손글씨가 눈길을 끈다.가장 받고 싶은 상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짜증 섞인 투정에도 어김없이 차려지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런 상 하루에 세 번이나 받을 수 있는 상 아침상 점심상 저녁상 받아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해도 되는 그런 상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때는 왜 못 보았을까? 그 상을 내시던 주름진 엄마의 손을 그때는 왜 잡아주지 못했을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을까? 그동안 숨겨놨던 말 이제는 받지 못할 상 앞에 앉아 홀로 되뇌어 봅니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고마웠어요.” “엄마, 편히 쉬세요.”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엄마상 이제 받을 수 없어요. 이제 제가 엄마에게 상을 차려 드릴게요 엄마가 좋아했던 반찬들로만 한가득 담을게요. 하지만 아직도 그리운 엄마의 밥상 이제 다시 못 받을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울 엄마 얼굴(상)  시의 마지막 장에는 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밥상 앞에서 웃는 얼굴로 서 있는 모습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다큐멘터리 3일(KBS2 일요일 밤 10시 40분) 2007년 5월 3일 첫 방송 이후 500회에 걸쳐 사람 사는 냄새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3일’의 특집 방송 2부. 경북 영주 금광리 수몰지구,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만났던 서영이, 종로 피맛골의 달걀장수 김철령씨, 노량진 고시촌 취준생 오가영씨, 장성 편백나무 숲에서 암투병 중인 아내를 간호하던 김용관씨, 재개발 예정 구역 옥수동에서 만난 신혼부부 이성민씨,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 중이던 이각경(현 KBS 뉴스라인 앵커) 아나운서 등 프로그램 출연자들을 다시 만나 그들이 2017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 본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MBC 토요일 밤 11시 45분) 아이돌 밴드 FT아일랜드의 멤버이자 ‘초보 집사’인 이홍기와 최종훈이 각자 키우고 있는 반려묘들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다. 고양이 병원 전문의 김명철씨를 초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고양이에 대한 다양한 속설과 오해를 풀어 보고 궁금증을 해결한다. ■미운 우리 새끼(SBS 일요일 밤 9시 15분) 박수홍의 미팅 현장이 공개된다. 이날 배우 최대철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하게 된 박수홍은 손헌수, 최대성과 함께 정장을 차려 입고 미팅 장소로 향했다. 여성들이 현장에 등장하자 박수홍과 친구들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아들들의 미팅 현장을 스튜디오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들도 긴장 속에 아들의 ‘미팅 성공’을 기원했다.
  • 양천구, 故이윤혁씨 실화 ‘뚜르’ 내일 상영

    양천구, 故이윤혁씨 실화 ‘뚜르’ 내일 상영

    서울 양천구는 20일 양천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을 상영한다고 18일 밝혔다.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은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세계 최대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 49일간 3500㎞를 한국인 최초로 완주한 고(故) 이윤혁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윤혁씨는 체육교사를 꿈꾸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보디빌딩, 스쿠버다이빙을 즐겼다. 2006년 23살 때 ‘결체조직 작은원형 세포암’에 걸렸다. 전 세계적으로 200여명에게만 나타난 희귀암이다. 의사는 당시 말기여서 최대 3개월만 살 수 있다고 했다. 3년간 수술과 항암치료를 거듭하며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2007년 랜스 암스트롱의 저서 ‘1%의 희망’을 읽고 생애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았다. 랜스는 암을 극복하고 투르 드 프랑스에서 7번이나 우승했다. 윤혁씨는 진통제로 버티며 훈련을 거듭한 뒤 2009년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했다. 7월 4일 모나코를 출발해 8월 20일 파리의 개선문까지 49일간 3500㎞를 완주했다. 이듬해인 2010년 7월 15일 2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윤혁씨가 양천구 주민이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 윤혁씨의 어머니와 얘기를 나눴는데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둔 엄마의 입장에서 마음이 울컥했다. 이렇게 훌륭한 청년이 우리 주민이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윤혁씨의 어머니 김성희씨는 “지금 병과 힘겨운 싸움을 하는 분이 있다면 우리 윤혁이 이야기를 보고 힘을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월드피플+] 간호실습생 된 암 극복 소녀, 16년 전 간호사와 재회

    [월드피플+] 간호실습생 된 암 극복 소녀, 16년 전 간호사와 재회

    자신의 힘든 어린 시절에 위로가 됐던 사람과 똑같은 일을 하게 되어 재회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클라라 마키에비츠(20)는 어릴 때 병원에서 투병하며 암을 이겨냈다. 그리고 간호학과 학생이 됐고, 간호실습생으로 파견된 곳은 자신이 암투병하던 바로 그 병원이었다. 당시 자신을 돌봐줬던 간호사 케이트 파이와 16년 만에 다시 만났고, 함께 일하게 됐다. 그들의 우연한 만남은 2001년 클라라가 고작 4살 나이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acute myeloid leukaemia, AML) 진단을 받으며 시작됐다. 클라라는 오랜 시간 병원에서 머물며 몇 차례의 수술과 화학요법을 받았지만 힘든 시기를 의젓하게 참고 견뎠다. 그러던 중 한 임상 실험이 그녀의 생명을 구하는데 도움이 됐고, 50%였던 생존 확률을 깨고 암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됐다. 클라라는 병원을 떠났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그곳을 잊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투정을 부려 아빠가 애를 먹었을 정도였다. 클라라는 “내가 있었던 곳은 꽤 작은 중환자 관리 병동이었다. 때때로 아이들 중 누군가가 병실로 돌아오지 않아도 왜냐고 묻지 않을 만큼 생존확률이 높지 않았다. 슬프고도 무서웠지만 간호사들은 항상 우리를 즐겁게 만들었다. 프로다웠고 너무 잘해줘서 설사 섭섭한 감정이 생겨도 오래가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특히 케이트는 내게 특별했다. 엄마가 자리를 비웠을 때, 내 침대로 와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이불 아래에 누워 함께 영화를 보았다. 마치 큰 언니 같았다”고 설명했다. 케이트와 자신을 돌봐줬던 다른 간호사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클라라는 10살때부터 자연스레 간호사의 꿈을 꾸게 됐다. 그들을 존경했고 자신도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졌다. 사우샘프턴 대학 간호학과 1학년이 되어 실습 나온 어린이 병원에서 케이트와 다시 연이 닿은 것이다. 클라라는 “출근한지 세 번째 되는날, 낯익은 여성이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명찰을 살펴보려고 했는데,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단번에 ‘나 너 알아’라고 말했고, 나 역시 ‘나도 당신을 알아요’라고 답했다. 우리 둘다 오래 전 교환했던 사진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에게 보여주었다”며 만남을 반가워했다. 이제 수간호사가 된 케이트도 “당시 클라라는 치료를 잘 견뎌낸 아이였다. 클라라와 함께 지냈던 병원의 어린이 병동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2003년 문을 닫았다. 클라라는 다른 병원에서 후속 치료를 받았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그런데 사우샘프턴 병원에서 클라라를 다시 보게 돼 놀랐다. 내겐 여전히 그때처럼 똑같아보였다”고 기쁨을 드러냈다. 또한 “간호사들은 12시간을 근무하기에 체력이 강하면서도 서로 강한 유대감을 지닌다. 아이들이나 환자의 가족들과도 중요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를 보고 자란 클라라가 왜 간호사가 되고 싶어하는지 알 것 같다. 클라라는 자신이 직접 고통을 경험하고 병을 이겨냈기에 앞으로 훌륭한 간호사가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사진=데일리메일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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