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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뜯어보기] ‘강남역 살인 사건’ 5개월, 끝나지 않은 논란

    [뉴스 뜯어보기] ‘강남역 살인 사건’ 5개월, 끝나지 않은 논란

    끔찍한 살인에도 조현병 참작 징역30년 선고수락산 살인범 등 잇단 조현병 주장…악용 가능성 우려도 ●‘강남역 살인 사건’ 재구성…“여성에게 무시당해 화가 났다” 지난 5월 17일 오전 1시 7분쯤. 서울 서초구 강남역의 한 상가건물 공용 화장실에서 20대 초반의 여성이 끔찍하게 살해됐다. 세면대 앞을 서성이던 남자는 여성이 용변을 마치고 나오자 흉기를 뒤로 숨긴 채 여성을 용변칸으로 밀어 넣었다. 여성이 다급히 휴대전화를 만지자 흉기로 한 차례 찔러 쓰러지게 한 뒤, 즉사할 때까지 흉기를 휘둘렀다. 그날의 폐쇄회로(CC) TV에는 숨진 여자친구를 발견하고 발버둥 치며 오열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담겼다. 도대체 누가, 왜… 범인은 곧 검거됐다. 그가 체포 직후 “여성에게 무시당해 화가 났다”고 진술하면서 ‘여성 혐오’ 논란과 함께 사건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세간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던 이른바 ‘강남역 살인 사건’이다. 범인은 사건이 발생한 상가 주점의 종업원으로 일하던 김모(34)씨. 눈빛이 어딘가 서늘한 느낌이 있지만 언뜻 보기엔 그저 평범한 남성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일면식도 없는 A(23·여)씨를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잔인하게 살해했다. 수사 과정에서 그는 ‘조현병’(정신분열)을 겪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중·고교 시절부터 ‘여자들이 내 흉을 보고 다니는 것 같다’는 망상 등으로 병원 진료를 받았고, 2009년 조현병(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이후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가출한 뒤 치료를 중단하면서 증세는 심해졌다. 여성들이 일부러 자신의 길을 가로막거나 어깨를 치고 간다는 등 피해 망상이었다. 검찰 조사에서 그는 살해 동기에 대해 다소 황당한 주장을 내놨다. 지난 5월 15일 공터에서 담배를 피던 중 젊은 여성이 담배 꽁초를 자신의 발등 위에 던져, 이를 계기로 여성을 살해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조사 중에도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에 죄송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기사 검색 등을 통해 자신이 ‘유명인’이 된 것처럼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 조현병 참작, 징역 30년...‘타당한 결론이었나’ 논란 법원은 지난 14일 김씨에게 징역 30년형을 선고했다. 단일 사건에 대한 유기징역으로는 법정 최고형이었다. 그러나 ‘조현병’을 이유로 유기징역에만 그쳐 논란이 됐다. 앞서 검찰은 김씨에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당시 법정에서 A씨의 어머니는 하염 없는 눈물을 흘렸다. “우리 딸 눈도 못 감아주고 어떡해…” 그러나 김씨는 선고 전 결심 공판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뤄진 일로서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김씨가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 수법이 매우 잔인하며, 반성의 여지가 없고, 재범의 우려성도 있다고 봤다. 여성 혐오 논란과 관련해선, 평소 김씨가 여성보다 오히려 남성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고, 이를 상대적 ‘약자’인 여성에게 표출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어릴 때부터 엄한 아버지 밑에서 혼이 나고 주눅들어 지내며 강제 입원을 당하기도 했다. 법원과 검찰의 판단을 종합해봤을 때, 김씨가 이번과 같은 잔인한 범행을 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재판부도 이와 같은 입장에서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피고인의 가석방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임을 지적해둔다”고 적시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피고인의 형량을 정함에 있어 부득이 심신미약 상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현병 때문”이라는 김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를 놓고 여론은 들끓었다. ‘재범 위험성이 있음에도 영구 격리시키지 않는 것이 타당한지’, ‘국민의 혈세로 살인범을 치료하며 달라지길 기다려야 하는지’ 등 네티즌도 의구심을 표출했다. 잠잠했던 사형제 찬반 논란까지 제기됐다. 선고 결과에 수긍이 가지 않는다는 전문가들도 많았다. 특히 전문가들이 눈여겨 본 부분은 김씨의 ‘판별력’과 ‘계획성’이다. 김씨는 애초부터 남성은 제외하고 정확히 여성만을 범행 대상으로 지목했다. 무차별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방어하기에 좀 더 쉬운 가녀린 여성을 피해자로 선택한 것이다. 미리 흉기를 준비하고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남성들을 보내고 기다리는 치밀함도 보였다. 재판부도 “이 사건 범행이 계획적 범행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결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계획성만으로 조현병의 영향 때문에 (범행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는 모호한 표현을 들어 피고 측의 주장을 수용했다. 사용한 흉기를 감추지 않은 점 등의 이유에서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판결문에 따르면 범행 당시 조현병이 발현된 상태였는지 명확하지 않고, 과거 행적이나 당시 정황에 비춰 추정하고 있다”면서 “살인과 같은 중대 범죄에 있어 심신미약 상태를 판단할 때에는 매우 엄격한 팩트 판단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나도 조현병 환자에요”…‘조현병’ 악용하는 범죄자들 물론 김씨와 같이 정신질환으로 살인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의료계 등에선 조현병 환자들을 치료의 대상이 아닌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할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각에선 심신미약에 대한 폭 넓은 정상참작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또 다른 이유를 제기한다. 주취 감경과 마찬가지로 범죄자들의 ‘방패막이’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각종 사건·사고에서 검거된 범인들이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나는 조현병 환자”라고 주장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수락산 살인범’ 김학봉(61)씨가 대표적이다. 수락산에서 60대 여성 등산객을 살해한 그는 줄곧 자신이 환청과 망상으로 조현병 증세를 앓았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대통령 암살 계획이 있다고 청와대에 전화를 건 50대 남성 역시 조현병을 주장하고 있다. 익명을 요한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우울증 약을 복용한 전력이 있거나 정신과 진료를 받은 기록 등이 있으면 이를 근거로 의뢰인에게 정신질환을 주장하도록 하는 변호사들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정신질환이 법적 처벌을 최소화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범행 당시 범인이 정신질환으로 인해 의사결정 능력 및 사물판단 능력이 미약함이 명확해야 한다”며 “과거의 병력 등을 바탕으로 ‘가능성’에 의해 심신미약 감경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승 박사는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한 판단을 해선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건에 “만족한다”던 김씨는 30년이 지난 뒤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내가 암살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혁명” 횡설수설 총격범

    “내가 암살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혁명” 횡설수설 총격범

    사제 총기 재료 사서 인터넷 보고 제작 주민들 “당시 숨어서 벌벌 떨어” 몸서리 오패산 사제 총기 난사범 성병대(46)가 부동산 중개업자 이모(68)씨를 죽일 생각으로 범행을 계획했으며 경찰과의 총격전까지 계획에 있었다고 진술했다. 조준사격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자신의 총에 맞아 숨진 김창호(54) 경감에 대해 “사인에는 의문이 있다”고 주장하는 등 망상에 빠진 듯한 말을 늘어놓았다. 21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강북경찰서의 유치장에서 나온 성씨는 기자들이 범행 동기를 묻자 “생활고 때문에 이사 가게 됐다. 부동산 사장(부동산 중개업자 이씨)이 우리 누나에게 집을 소개해 줬다”며 “그 집에 가게 되면 가스폭발 사고로 암살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씨가 횡설수설하자 경찰이 급히 성씨를 호송차로 끌고 갔고 취재진이 성씨를 쫓아 가며 계획적인 범행이었느냐고 묻자 그는 “네”라고 짧게 답했다. 숨진 경찰에게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돌려 취재진을 바라보며 “사인에는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북부지법에 도착한 뒤에는 “총격전을 계획하고 청계천 을지로에서 재료를 사 총을 만들었다. 부동산 사장을 죽일 생각을 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또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온 뒤에는 “그분(고 김 경감)은 링거 주사제를 맞는 과정에서 독살당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작위로 총을 쐈다”며 경찰을 조준사격했다는 것을 부인하면서도 “경찰과의 총격전을 각오했다. (범행) 두 달 전부터 유튜브를 보고 총기 제작법을 익혔다”고 말했다. 강북경찰서로 돌아와 유치장에 입감되기 직전에는 “이번 사건은 혁명이다.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소리쳤다. 성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일관적으로 비상식적인 진술을 해 왔다. 경찰은 성씨의 정신병력을 확인 중이다. 또 조만간 성씨가 살해하려 했던 부동산 중개업자 이씨를 찾아가 조사할 계획이다. 이날 경찰서 인근에서 성씨의 얼굴을 본 강북구 번동 주민들은 지난 19일 밤의 악몽을 떠올리고 몸서리쳤다. 상점 주인 A(45·여)씨는 “총소리가 나고 아기를 업은 여성이 ‘총을 든 남자가 묻지 마 살인을 하고 다니는 것 같다’며 우리 가게로 뛰어들어 왔다”면서 “가게 문을 잠그고 아기 엄마와 카운터 밑에 숨어 벌벌 떨었다”고 전했다. 이날 북부지법 신현범 영장전담부장판사는 “범죄 혐의의 소명이 있고 도주 우려가 인정된다. 범죄의 중대성에 비추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충분하다”며 성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경찰은 즉각 성씨를 구속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오패산터널 경찰 총기 살해범’ 성병대 구속…“암살 당할까봐 범행”

    ‘오패산터널 경찰 총기 살해범’ 성병대 구속…“암살 당할까봐 범행”

    사제 총기로 경찰관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성병대(46)씨가 경찰에 구속됐다. 성씨는 자신이 암살될 수 있었다는 등 횡설수설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21일 살인·특수공무집행방해·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성씨를 구속했다. 성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한 서울북부지법 신현범 영장전담부장판사는 “범죄혐의의 소명이 있고 도주 우려가 인정되며, 범죄의 중대성에 비추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성씨는 19일 오후 강북구 번동 오패산터널 입구에서 직접 만든 사제 총을 고(故) 김창호 경감에게 발사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김 경감은 성씨가 같은 건물 세입자인 이모(68)씨를 길거리에서 폭행한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가 변을 당했다. 강간죄 등으로 9년 6개월간 복역하고 2012년 출소한 성씨는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였으나 범행 당시 발찌를 훼손하기까지 했다. 앞서 이날 오전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나와 법원으로 향한 성씨는 취재진에게 “자신이 암살될 것을 우려해 경찰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등 횡설수설했다. 경찰은 성씨에게 둔기로 머리를 맞은 이모씨를 상대로 피해자 조사를 해 범행 동기와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법적 구속 기간 열흘째인 28일 이전까지 피해자·피의자 주변 지인과 가족 등을 조사해 수사를 마무린 한 뒤 성씨를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라며 “송치 직전 오패산터널 입구 등 범행 현장에서 현장 검증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뉴스 뜯어보기] ‘강남역 살인 사건’ 5개월, 끝나지 않은 논란

    [뉴스 뜯어보기] ‘강남역 살인 사건’ 5개월, 끝나지 않은 논란

    끔찍한 살인에도 조현병 참작 징역30년 선고 수락산 살인범 등 잇단 조현병 주장…악용 가능성 우려도 ●‘강남역 살인 사건’ 재구성…“여성에게 무시당해 화가 났다”지난 5월 17일 오전 1시 7분쯤. 서울 서초구 강남역의 한 상가건물 공용 화장실에서 20대 초반의 여성이 끔찍하게 살해됐다. 세면대 앞을 서성이던 남자는 여성이 용변을 마치고 나오자 흉기를 뒤로 숨긴 채 여성을 용변칸으로 밀어 넣었다. 여성이 다급히 휴대전화를 만지자 흉기로 한 차례 찔러 쓰러지게 한 뒤, 즉사할 때까지 흉기를 휘둘렀다. 그날의 폐쇄회로(CC) TV에는 숨진 여자친구를 발견하고 발버둥 치며 오열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담겼다. 도대체 누가, 왜… 범인은 곧 검거됐다. 그가 체포 직후 “여성에게 무시당해 화가 났다”고 진술하면서 ‘여성 혐오’ 논란과 함께 사건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세간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던 이른바 ‘강남역 살인 사건’이다. 범인은 사건이 발생한 상가 주점의 종업원으로 일하던 김모(34)씨. 눈빛이 어딘가 서늘한 느낌이 있지만 언뜻 보기엔 그저 평범한 남성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일면식도 없는 A(23·여)씨를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잔인하게 살해했다. 수사 과정에서 그는 ‘조현병’(정신분열)을 겪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중·고교 시절부터 ‘여자들이 내 흉을 보고 다니는 것 같다’는 망상 등으로 병원 진료를 받았고, 2009년 조현병(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이후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가출한 뒤 치료를 중단하면서 증세는 심해졌다. 여성들이 일부러 자신의 길을 가로막거나 어깨를 치고 간다는 등 피해 망상이었다. 검찰 조사에서 그는 살해 동기에 대해 다소 황당한 주장을 내놨다. 지난 5월 15일 공터에서 담배를 피던 중 젊은 여성이 담배 꽁초를 자신의 발등 위에 던져, 이를 계기로 여성을 살해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조사 중에도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에 죄송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기사 검색 등을 통해 자신이 ‘유명인’이 된 것처럼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 조현병 참작, 징역 30년...‘타당한 결론이었나’ 논란 법원은 지난 14일 김씨에게 징역 30년형을 선고했다. 단일 사건에 대한 유기징역으로는 법정 최고형이었다. 그러나 ‘조현병’을 이유로 유기징역에만 그쳐 논란이 됐다. 앞서 검찰은 김씨에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당시 법정에서 A씨의 어머니는 하염 없는 눈물을 흘렸다. “우리 딸 눈도 못 감아주고 어떡해…” 그러나 김씨는 선고 전 결심 공판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뤄진 일로서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김씨가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 수법이 매우 잔인하며, 반성의 여지가 없고, 재범의 우려성도 있다고 봤다. 여성 혐오 논란과 관련해선, 평소 김씨가 여성보다 오히려 남성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고, 이를 상대적 ‘약자’인 여성에게 표출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어릴 때부터 엄한 아버지 밑에서 혼이 나고 주눅들어 지내며 강제 입원을 당하기도 했다. 법원과 검찰의 판단을 종합해봤을 때, 김씨가 이번과 같은 잔인한 범행을 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재판부도 이와 같은 입장에서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피고인의 가석방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임을 지적해둔다”고 적시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피고인의 형량을 정함에 있어 부득이 심신미약 상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현병 때문”이라는 김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를 놓고 여론은 들끓었다. ‘재범 위험성이 있음에도 영구 격리시키지 않는 것이 타당한지’, ‘국민의 혈세로 살인범을 치료하며 달라지길 기다려야 하는지’ 등 네티즌도 의구심을 표출했다. 잠잠했던 사형제 찬반 논란까지 제기됐다. 선고 결과에 수긍이 가지 않는다는 전문가들도 많았다. 특히 전문가들이 눈여겨 본 부분은 김씨의 ‘판별력’과 ‘계획성’이다. 김씨는 애초부터 남성은 제외하고 정확히 여성만을 범행 대상으로 지목했다. 무차별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방어하기에 좀 더 쉬운 가녀린 여성을 피해자로 선택한 것이다. 미리 흉기를 준비하고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남성들을 보내고 기다리는 치밀함도 보였다. 재판부도 “이 사건 범행이 계획적 범행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결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계획성만으로 조현병의 영향 때문에 (범행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는 모호한 표현을 들어 피고 측의 주장을 수용했다. 사용한 흉기를 감추지 않은 점 등의 이유에서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판결문에 따르면 범행 당시 조현병이 발현된 상태였는지 명확하지 않고, 과거 행적이나 당시 정황에 비춰 추정하고 있다”면서 “살인과 같은 중대 범죄에 있어 심신미약 상태를 판단할 때에는 매우 엄격한 팩트 판단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나도 조현병 환자에요”…‘조현병’ 악용하는 범죄자들 물론 김씨와 같이 정신질환으로 살인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의료계 등에선 조현병 환자들을 치료의 대상이 아닌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할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각에선 심신미약에 대한 폭 넓은 정상참작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또 다른 이유를 제기한다. 주취 감경과 마찬가지로 범죄자들의 ‘방패막이’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각종 사건·사고에서 검거된 범인들이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나는 조현병 환자”라고 주장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수락산 살인범’ 김학봉(61)씨가 대표적이다. 수락산에서 60대 여성 등산객을 살해한 그는 줄곧 자신이 환청과 망상으로 조현병 증세를 앓았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대통령 암살 계획이 있다고 청와대에 전화를 건 50대 남성 역시 조현병을 주장하고 있다. 익명을 요한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우울증 약을 복용한 전력이 있거나 정신과 진료를 받은 기록 등이 있으면 이를 근거로 의뢰인에게 정신질환을 주장하도록 하는 변호사들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정신질환이 법적 처벌을 최소화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범행 당시 범인이 정신질환으로 인해 의사결정 능력 및 사물판단 능력이 미약함이 명확해야 한다”며 “과거의 병력 등을 바탕으로 ‘가능성’에 의해 심신미약 감경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승 박사는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한 판단을 해선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건에 “만족한다”던 김씨는 30년이 지난 뒤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모습 드러낸 성병대, 범행 동기 묻자 “암살 위협 느꼈다”

    모습 드러낸 성병대, 범행 동기 묻자 “암살 위협 느꼈다”

    사제총기로 경찰을 살해한 성병대(46)씨가 법원에서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 강북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던 성씨는 21일 오전 북부지법으로 출발하기 전 모습을 드러내 ‘계획적인 범행이었나’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생활고랑 연결돼서 이사가게 됐는데 이사가는 집이 부동산 사장이 우리 누나한테 소개시켜준 집이거든요. 근데 그 집에 가게 되면 가스폭발 사고로 암살당할 수 있다”고 했다. 故 김창호 경위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사인은 의문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성씨는 21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북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는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살인, 살인미수, 특수공무집행방해, 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 위반 등 혐의로 성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날 열릴 성씨의 영장실질심사는 신현범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맡는다. 성씨는 19일 오후 강북구 번동 오패산터널 입구에서 사제총기를 고(故) 김창호 경감에게 발사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김 경감은 성씨가 같은 건물 세입자였던 이모(68)씨를 길거리에서 폭행한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가 변을 당했다. 성씨는 이씨의 머리를 둔기로 때려 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미수)와 전자발찌를 훼손한 혐의(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 위반) 등도 받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히틀러 ‘나의 투쟁’ 전에도 자서전 썼다”

    “히틀러 ‘나의 투쟁’ 전에도 자서전 썼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Mein Kampf)보다 앞서 발간된 첫 자서전이 발견됐다. 9일 영국 BBC와 독일 슈피겔 등에 따르면 역사학자인 토머스 웨버 영국 애버딘대 교수는 1923년 빅토르 폰쾨르버를 저자로 출간된 ‘아돌프 히틀러: 그의 삶과 연설들’이 실제로는 히틀러가 직접 쓴 자서전이라고 주장했다. 저자 빅토르 폰쾨르버는 히틀러와 나치즘에 열광하다가 이후 실망한 나머지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시도까지 했던 인물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히틀러가 ‘뮌헨 반란’으로 투옥됐을 때 저술해 1925~1926년 출간한 ‘나의 투쟁’보다 앞선 자서전이 되는 셈이다. 현재 하버드대 교환교수인 웨버 교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 서고에서 발견된 문서 등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그는 “폰쾨르버가 이 책을 쓰지 않았고, 히틀러가 루덴도르프 장군(히틀러 협력자)에게 나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보수적인 작가로 이 책의 저자로 나서 줄 사람을 찾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고 책 발행인의 부인이 진술하고 서명한 증거를 찾았다”고 말했다. 웨버 교수는 또한 “폰쾨르버가 이 책이 히틀러가 쓴 책임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아 과거 나치 집단 강제수용소에 함께 갇혔던 한 남성에게 보낸 편지와 이 책이 ‘히틀러의 계획에 따라 그의 적극적인 참여로 쓰였다’고 직접 쓴 문서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히틀러가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을 폰쾨르버를 저자로 내놓은 까닭은 그의 귀족 신분과 전쟁영웅 명성을 이용하려 한 것으로 추정했다. 웨버 교수는 “히틀러의 연설들이 담긴 이 책은 좀 이상한 주장들을 담고 있다”며 “‘오늘날 새로운 성경’이 돼야 한다거나 히틀러의 정치화 과정을 예수가 받은 박해에 비유하는 등 히틀러를 예수와 비교하면서 ‘성스러운’, ‘구출’ 등의 용어들을 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출간된 ‘나의 투쟁’에서 되풀이되는 히틀러의 정치적 자각에 관한 표현들과 거의 비슷한 표현들을 담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린뱌오 죽음과 음모론/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린뱌오 죽음과 음모론/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1971년 9월 13일 새벽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식 후계자 린뱌오(林彪), 그의 부인 예췬(葉群)과 아들 린리궈(林立果), 수행원 등 9명을 태우고 가던 비행기가 몽골 사막에 추락, 전원 사망했다. ‘황위’를 물려받을 황태자의 갑작스런 죽음은 중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로 떠올랐다. 중국 당국은 사고 3주가 지난 뒤에야 “린뱌오가 비행기를 타고 소련으로 도망가다 연료 부족으로 추락사했다”며 “그는 마오 암살 계획을 세웠다가 사전에 발각됐다”고 밝혔다. 소련 당국은 비행기가 원인 불명으로 추락했는데, 시체와 서류 등이 모두 불타 버리는 바람에 탑승객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일각에서는 중국군이나 소련군의 미사일 발사로 비행기가 격추됐다는 음모론이 무성했다. 음모론은 요즘도 유령처럼 떠돈다. 천안함 폭침과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굵직굵직한 사건에 해명되지 않은 의문이 생길 때마다 고개를 쳐든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수년 전 ‘세계 10대 음모론’을 소개했다. 9·11테러 미국 정부의 자작극설, 미 공군기지 ‘에어리어 51’ 외계인 거주설, 엘비스 프레슬리 생존설, 아폴로 11호 달 착륙 연출설, 셰익스피어 가공인물설, 예수 결혼설, 파충류 외계인 지구지배설, 에이즈 개발설, 존 F 케네디 암살 배후설,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망 영국 왕실 개입설 등이다. 당국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며 간단없이 음모론을 제기한다. 9·11테러 자작설이나 달 착륙 연출설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음모론을 부추겼다. 음모론은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거나 사회의 비판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할 때 자주 등장한다. 실체는 없지만 현실을 좀먹는 힘은 강력하다. 위기 상황이나 혼란스러운 시기에 주로 유포되는 이유다. 음모론자들은 사건의 인과관계가 분명해야 믿고, 누군가가 꾸민 일이라고 하면 증거나 가정이 미약해도 쉽게 받아들인다. 알기 쉽고 분명해야 하는 만큼 ‘여러 원인의 복합적 효과’로 설명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 탈레반처럼 자신이 믿는 것이 정답이고 진리인 만큼 절대적 확신을 가진다. 다른 사람의 판단은 의미가 없다. 배움의 많고 적음과도 별 관계가 없다. 이 때문에 사건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단체가 있다고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음모론이 무서운 것은 세상사를 재단해 한쪽만을 본다는 점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공동체 중심의 ‘덧셈의 법칙’이 깨지고, 이기적인 ‘뺄셈의 법칙’만 작동한다. 미국의 석학 노엄 촘스키는 “음모론이란 누군가 세상의 일을 좀더 자세히 알려고 할 때 그것을 방해하려는 사람이 들이대는 논리”라고 비판했다. 세상사를 명쾌히 설명할 수 있으면 오죽 좋겠는가. 그런 점에서 음모론은 매혹적이지만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얼마 전 45년간 베일에 가려졌던 린뱌오 추락사의 실체가 드러났다. 여러 정황상 격추라기보다 ‘조종사의 실수’로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게 몽골 조사단의 결론이다. ‘피가 흥건한 권력암투’를 기대했던 음모론자에겐 조금 맥빠진 결과다. 국가 정책부터 연예인 스캔들까지 갖은 ‘음모론’으로 도배되는 인터넷 세상에서 이들의 옥석 가리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게 문제다. khkim@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린뱌오 죽음과 음모론/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린뱌오 죽음과 음모론/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1971년 9월 13일 새벽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식 후계자 린뱌오(林彪), 그의 부인 예췬(葉群)과 아들 린리궈(林立果), 수행원 등 9명을 태우고 가던 비행기가 몽골 사막에 추락, 전원 사망했다. ‘황위’를 물려받을 황태자의 갑작스런 죽음은 중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로 떠올랐다. 중국 당국은 사고 3주가 지난 뒤에야 “린뱌오가 비행기를 타고 소련으로 도망가다 연료 부족으로 추락사했다”며 “그는 마오 암살 계획을 세웠다가 사전에 발각됐다”고 밝혔다. 소련 당국은 비행기가 원인 불명으로 추락했는데, 시체와 서류 등이 모두 불타 버리는 바람에 탑승객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일각에서는 중국군이나 소련군의 미사일 발사로 비행기가 격추됐다는 음모론이 무성했다. 음모론은 요즘도 유령처럼 떠돈다. 천안함 폭침과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굵직굵직한 사건에 해명되지 않은 의문이 생길 때마다 고개를 쳐든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수년 전 ‘세계 10대 음모론’을 소개했다. 9·11테러 미국 정부의 자작극설, 미 공군기지 ‘에어리어 51’ 외계인 거주설, 엘비스 프레슬리 생존설, 아폴로 11호 달 착륙 연출설, 셰익스피어 가공인물설, 예수 결혼설, 파충류 외계인 지구지배설, 에이즈 개발설, 존 F 케네디 암살 배후설,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망 영국 왕실 개입설 등이다. 당국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며 간단없이 음모론을 제기한다. 9·11테러 자작설이나 달 착륙 연출설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음모론을 부추겼다. 음모론은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거나 사회의 비판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할 때 자주 등장한다. 실체는 없지만 현실을 좀먹는 힘은 강력하다. 위기 상황이나 혼란스러운 시기에 주로 유포되는 이유다. 음모론자들은 사건의 인과관계가 분명해야 믿고, 누군가가 꾸민 일이라고 하면 증거나 가정이 미약해도 쉽게 받아들인다. 알기 쉽고 분명해야 하는 만큼 ‘여러 원인의 복합적 효과’로 설명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 탈레반처럼 자신이 믿는 것이 정답이고 진리인 만큼 절대적 확신을 가진다. 다른 사람의 판단은 의미가 없다. 배움의 많고 적음과도 별 관계가 없다. 이 때문에 사건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단체가 있다고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음모론이 무서운 것은 세상사를 재단해 한쪽만을 본다는 점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공동체 중심의 ‘덧셈의 법칙’이 깨지고, 이기적인 ‘뺄셈의 법칙’만 작동한다. 미국의 석학 노엄 촘스키는 “음모론이란 누군가 세상의 일을 좀더 자세히 알려고 할 때 그것을 방해하려는 사람이 들이대는 논리”라고 비판했다. 세상사를 명쾌히 설명할 수 있으면 오죽 좋겠는가. 그런 점에서 음모론은 매혹적이지만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얼마 전 45년간 베일에 가려졌던 린뱌오 추락사의 실체가 드러났다. 여러 정황상 격추라기보다 ‘조종사의 실수’로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게 몽골 조사단의 결론이다. ‘피가 흥건한 권력암투’를 기대했던 음모론자에겐 조금 맥빠진 결과다. 국가 정책부터 연예인 스캔들까지 갖은 ‘음모론’으로 도배되는 인터넷 세상에서 이들의 옥석 가리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게 문제다. khkim@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딸의 밀고로 ‘마오 암살’ 실패한 후계자, 45년 만에 공개된 의문의 추락사 진실은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딸의 밀고로 ‘마오 암살’ 실패한 후계자, 45년 만에 공개된 의문의 추락사 진실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애장(愛將)’ 린뱌오(林彪·1907∼1971)의 추락사는 조종사의 실수였다.” 중국 문화혁명 기간인 1971년 9월 린뱌오의 비행기 추락사 원인은 연료 부족이나 미사일 격추가 아닌 조종사의 실수라는 보고서가 공개됐다. 마오쩌둥 주석의 후계자로 불리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동안 중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SCMP “연료부족·미사일 격추 아닌 조종사 실수”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몽골 정보기관이 당시 소련군의 지원을 받아 사고 원인을 조사·분석한 러시아어 보고서 사본을 입수해 린뱌오 일행이 탄 비행기가 조종사의 실수로 추락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최근 보도했다. 중국 관계당국은 사고가 난 후 3주 정도 지난 뒤에야 “린뱌오가 마오 주석 암살을 기도하다 실패하고 소련으로 도망가다 비행기 연료 부족으로 추락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고 현장에서 수거한 자료를 근거로 내세우며 린뱌오가 마오 암살 계획을 세웠다가 사전에 발각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군이나 소련군의 미사일 발사로 린뱌오의 비행기가 격추됐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비행기 추락 사고 2개월 후인 1971년 11월 20일 작성된 이 러시아어 보고서는 린뱌오와 그의 부인 예췬(葉群), 아들 린리궈(林立果) 그리고 수행원 6명 등 모두 9명을 태우고 가던 영국제 트라이던트1E가 1971년 9월 13일 새벽 2시 25분쯤 몽골 고비사막 근처에 추락,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이 비행기를 겨냥한 미사일 발사 등 ‘적대적인 공격’은 전혀 없었으며 비행기의 3개 엔진도 추락 당시 별달리 파손되지 않았다. 특히 이 비행기는 시속 500∼600㎞의 속도로 지상에 부딪힌 뒤 상당히 오랜 시간 폭발과 화재가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기체 내에 연료가 충분히 있었다는 의미인 만큼 연료부족 때문에 추락했다는 중국 당국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바오푸(鮑樸) 홍콩 신세기출판사 대표가 올해 초 미국 하버드대 페어뱅크센터 문서고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바오푸는 “어떤 학자도 이렇게 중요한 보고서를 그동안 한번도 열람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천재 군사지도자로 마오 오른팔서 견제 대상으로 린뱌오는 중국 공산당의 항일전쟁과 대장정에 참여했던 혁명가로 중국 10대 원수 중 한 명이다. 그는 미국 국방부가 1930년대 중국 내전을 분석하면서 공산당 류보청(劉伯承), 국민당 바이충시(白崇禧)와 함께 3대 천재 군사지도자로 꼽았을 정도로 뛰어난 군사 지략가이다. 6·25전쟁 당시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총사령관)으로 내정됐지만 그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참전을 고사하는 바람에 대신 펑더화이(彭德懷)가 참전했다.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이 들어선 이후 공산당중앙위원회 부주석, 당중앙군사위원회 제1부주석과 국방부장, 국방위원회 부주석 등 국방 관련 최고위직을 지내며 마오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다. 이후 마오의 대약진정책과 문화혁명을 지지하고 개인숭배를 주도하면서 중국 공산당 내 2인자로 떠올라 1969년 4월 마오의 공식 후계자로 공산당 당장(黨章)에 등재됐다. 하지만 린뱌오는 마오가 류샤오치(劉少奇) 실각 이후 공백이던 국가주석에 오를 것을 건의했다가 주석직을 폐지하려던 그의 눈 밖에 났다. 이에 따라 마오의 비판과 견제의 대상이 되면서 실각한 린뱌오는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듯이’ 공군에 복무 중인 아들 린리궈와 함께 마오 암살 계획인 ‘571 공정(工程)’을 세웠다가 딸 린리헝(林立衡)의 고발로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작전명 ‘571’의 발음이 무장 폭동을 뜻하는 ‘우치이’(武起義)와 같다. 이 문건에 대해서는 조작 논란이 제기된 상태다. 마오 암살에 실패한 린뱌오는 결국 가족과 함께 비행기로 중국을 탈출해 소련으로 망명하려다가 의문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마오 신화가 흔들리고 문화혁명이 ‘사망’을 향해 달려갈 즈음 중국 당국에 의해 권력 핵심에 있다가 ‘배신자’로 낙인 찍힌 그의 죽음은 중국 현대사의 최대 수수께끼 중 하나였다. ●린의 죽음은 문화혁명 종결이자 개혁·개방 도화선 린뱌오 사건 이후 마오는 중국 인민해방군 내부의 린뱌오 인맥을 솎아내기 위해 문화혁명 초기 ‘제2호 주자파(走資派)’로 몰아 숙청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을 등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보면 린뱌오는 중국이 이후 장칭(江靑)·장춘차오(張春橋)·왕훙원(王洪文)·야오원위안(姚文元) ‘4인방’을 제거한 뒤 문화혁명 종결을 선언하고 개혁·개방에 이르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 셈이다. khkim@seoul.co.kr
  • ‘마오쩌둥 후계자’ 린뱌오 추락사의 미스터리가 풀렸다

    ‘마오쩌둥 후계자’ 린뱌오 추락사의 미스터리가 풀렸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애장(愛將)’ 린뱌오(林彪·1907∼1971)의 추락사는 조종사의 실수였다.”  중국 문화혁명 기간인 1971년 9월 린뱌오의 비행기 추락사 원인은 연료 부족이나 미사일 격추가 아닌 조종사의 실수라는 보고서가 공개됐다. 마오쩌둥 주석의 후계자로 불리던 그의 죽음은 그동안 중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2일 몽골 정보기관이 당시 소련군의 지원을 받아 사고 원인을 조사·분석한 러시아어 보고서 사본을 입수해 린뱌오 일행이 탄 비행기가 조종사의 실수로 추락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 관계당국은 사고가 난 후 3주 정도 지난 뒤에야 “린뱌오가 마오 주석 암살을 기도하다 실패하고 소련으로 도망가다 비행기 연료 부족으로 추락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고 현장에서 수거한 자료를 근거로 내세우며 린뱌오가 마오 암살 계획을 세웠다가 사전에 발각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군이나 소련군의 미사일 발사로 린뱌오의 비행기가 격추됐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비행기 추락 사고 2개월 후인 1971년 11월 20일 작성된 이 러시아어 보고서는 린뱌오와 그의 부인 예췬(葉郡), 그의 아들 린리궈(林立果), 그리고 수행원 6명 등 모두 9명을 태우고 가던 영국제 트라이던트1E가 1971년 9월13일 새벽 2시25분쯤 몽골 고비사막 근처에 추락, 탑승객 전원 사망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이 비행기를 겨냥한 미사일 발사 등 ‘적대적인 공격’은 전혀 없었으며 비행기의 3개 엔진도 추락 당시 별달리 파손되지 않았다. 특히 이 비행기는 시속 500∼600㎞의 속도로 지상에 부딪힌 뒤 상당히 오랜 시간 폭발과 화재가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기체 내에 연료가 충분히 갖고 있었다는 의미인 만큼 연료부족 때문에 추락했다는 중국 당국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바오푸(鮑樸) 홍콩 신세기출판사 대표가 올해 초 미국 하버드대 페어뱅크센터 문서고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바오푸는 “아직 어떤 학자도 이렇게 중요한 보고서를 한번도 열람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린뱌오는 중국 공산당의 항일전쟁과 대장정에 참여했던 혁명가로 중국 10대 원수 중 한 명이다. 그는 미국 국방부가 1930년대 중국 내전을 분석하면서 공산당 류보청(劉伯承), 국민당 바이충시(白崇禧)와 함께 3대 천재 군사지도자로 꼽았을 정도로 뛰어난 군사 지략가이다. 6·25전쟁 당시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총사령관)으로 내정됐지만 그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참전을 고사하는 바람에 대신 펑더화이(彭德懷)가 참전했다.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이 들어선 이후 공산당중앙위원회 부주석, 당중앙군사위원회 제1부주석과 국방부장, 국방위원회 부주석 등 국방 관련 최고위직을 지내며 마오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다. 이후 마오 주석의 대약진정책과 문화혁명을 지지하고 개인숭배를 주도하면서 중국 공산당내 2인자로 떠올라 1969년 4월 마오 주석의 공식 후계자로 공산당 당장(黨章)에 등재됐다. 하지만 린뱌오는 마오가 류샤오치(劉少奇) 실각 이후 공백이던 국가주석에 오를 것을 건의했다가 주석직을 폐지하려던 그의 눈밖에 났다. 이에 따라 마오의 비판과 견제의 대상이 되면서 실각한 린뱌오는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듯이’ 공군에 복무중인 아들 린리궈와 함께 마오 암살 계획인 ‘571 공정(工程)’을 세웠다가 딸 린리헝(林立衡)의 고발로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작전명 ‘571’의 발음이 무장 폭동을 뜻하는 ‘우치이(武起義)’와 같다. 이 문건에 대해서는 조작 논란이 제기된 상태다. 마오 암살에 실패한 린뱌오는 결국 가족과 함께 비행기로 중국을 탈출해 소련으로 망명하려다가 의문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마오 신화가 흔들리고 문화혁명이 ‘사망’을 향해 달려갈 즈음 중국 당국에 의해 권력 핵심에 있다가 ‘배신자’로 낙인찍힌 그의 죽음은 중국 현대사의 최대 수수께끼 중 하나였다.  린뱌오 사건 이후 마오쩌둥은 중국 인민해방군 내부의 린뱌오 인맥을 솎아내기 위해 문화혁명 초기 ‘제2호 주자파(走資派)’로 몰아 숙청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을 등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보면 린뱌오는 중국이 이후 장칭(江靑)·장춘차오(張春橋)·왕훙원(王洪文)·야오원위안(姚文元) ‘4인방’을 제거한 뒤 문화혁명 종결을 선언하고 개혁·개방에 이르는 실마리를 제공해준 셈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이제는 소녀가 아닌 숙녀로… 소녀시대 서현이 아닌 배우 서주현으로

    이제는 소녀가 아닌 숙녀로… 소녀시대 서현이 아닌 배우 서주현으로

    최근, 드라마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소녀시대 서현이 배우 서주현으로 패션 매거진 <그라치아>의 카메라에 앞에 섰다. 서현은 이번 드라마에서 복수를 위해 신분도 버린 채 암살 계획을 세우는 후백제의 마지막 공주 우희 역을 맡아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번 촬영 역시 한결 성숙해진 모습과 함께 때론 섹시하기도 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최근 뮤지컬과 드라마를 통해 가수에서 배우로 변신한 그녀는 연기 도전에 대해 “이제 소녀가 아니라 숙녀가 되었으니, 그런 모습을 연기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어요. 늘 소녀시대 막내 이미지로만 보니까 아쉬움이 컸거든요. 그래서 제 안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이때 연기로 이미지 변신을 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라고 말했다. 앞으로 꼭 한번 연기해보고 싶은 역할로 킬러와 스파이를 꼽을 만큼 쾌활했던 서현과 함께했던 인터뷰와 화보는 8월 20일 발행된 패션지 <그라치아> 9월호(통권 제 82호)에서 만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오쩌둥, 부인 장칭과 생활비 더치페이”

    “마오쩌둥, 부인 장칭과 생활비 더치페이”

    9월 9일은 신중국을 건설한 마오쩌둥(毛澤東·오른쪽·1893~1976) 전 주석이 사망한 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마오와 함께했던 집사와 경호원, 집무실 관리원 등은 지난 27일 마오를 기념하는 좌담회를 갖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를 풀어놓았다. 마오의 집사였던 우롄덩(吳連登·74)은 마오와 부인 장칭(江靑·왼쪽)이 더치페이(AA制)를 즐겼다고 소개했다. 마오 사망과 함께 문화혁명 ‘4인방’ 주범으로 체포됐다가 1991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장칭은 마오 사망 전까지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우롄덩은 “마오의 한 달 월급은 404위안(약 6만 7000원)이었고, 장칭 월급은 243위안(약 4만원)이었는데, 둘은 생활비를 각자 계산하는 더치페이를 선호했다”면서 “집사로서 둘의 월급을 어떻게 배분해 사용할지가 늘 고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마오가 임종할 때 남긴 현금은 500위안이 전부였고, 124만 위안에 이르는 원고료는 전부 국가에 헌납했다”며 “유가족에게 방 한 칸, 토지 한 뼘 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오보다 8개월 앞서 사망한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 추모식에 마오가 참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우롄덩은 “그때 이미 마오도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태였다”며 “총리 서거 소식을 들은 마오는 반나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고 전했다. 마오를 근접 경호했던 천창장(陳長江·85)은 1971년 9월 13일 마오 암살 계획을 세웠던 린뱌오(林彪)가 소련으로 탈출하다가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을 때를 회상하며 “마오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마오가 말년에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했던 인민대회당 118청(廳) 관리원이었던 리즈펀(李志芬)은 마오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주관했던 1973년 제10차 당대회를 회상했다. 리즈펀은 “기력이 급격히 떨어진 주석을 위해 118청과 대회당 주석단 사이의 통로에 산소 배관까지 설치했으며, 118청 지하실에서는 응급요원들이 24시간 대기했다”고 말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씨줄날줄] 정치 음모론/박홍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정치 음모론/박홍기 논설위원

    음모론은 위기의 경고등과 같다. 넓게는 그 사회, 좁게는 그 조직의 불확실·불안정 탓에 불신과 의구심이 팽배하다는 증후다. 음모론은 경쟁과 투쟁이 불가피한 정치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수시로 고개를 들고 있다.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좌·우 이념도, 보수·진보 정파도 가리지 않는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저항하기 위해 활용되는 것이다. 강자에게는 도구, 약자에게는 무기나 다름없다. 미국 역사학자 대니얼 파이프스는 음모론을 ‘둘 이상의 사람이 불법적이거나 범죄적인 행동을 함께할 목적으로 담합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저서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가 성립하는 다섯 가지 최소 요건을 제시했다. 권력을 지닌, 둘 이상의 사람들(음모집단)이, 어떤 뚜렷한 목적을 위해, 비밀스런 계획을 짜서 중요한 결과를 불러올 사건을 일으키는 것으로 규정했다. 음모론은 대체로 합리적 의심 또는 악의적인 의도에서 출발하고 있다. 미심쩍은 비판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을 때 공고해지고 확산된다. 묵살하거나 억압할 때 커질 수밖에 없다. 목적성이 짙은 유언비어나 괴담도 음모론의 한 범주다. 지난 15일 발생한 터키 쿠데타에 대한 자작극설이 나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반대파를 제거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쿠데타를 꾸몄을 것이라는 음모론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휴가지인 마르마리스에서 전용기를 타고 이스탄불로 이동할 때 쿠데타군의 F16 전투기 2대가 따라붙었으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표적인 근거다. 쿠데타 세력의 어설픈 작전도 석연치 않은 데다 준비해 놓은 듯한 대규모 숙청 진행도 음모론 중의 하나다. 음모론은 폭발성이 강하다. 터무니없어 보이던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일의 틈새를 그럴싸한 논리로 파고들어서다. 유명 인사에게 음모론이 덧씌워지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미국 여배우 메릴린 먼로(1926~62)의 자살, 영국 다이애나(1961~97) 황태자비의 교통사고 사망을 둘러싼 갖가지 음모설이 아직도 나도는 이유다. 미국 존 F 케네디(1917~1963) 전 대통령의 암살도 마찬가지다. 리 하비 오스왈드가 암살범으로 판명됐지만 중앙정보국(CIA)의 음모설, 연방수사국(FBI)의 개입설, 쿠바의 보복설 등이 항간에 떠돌고 있다. 새누리당이 때아닌 정치 음모설에 휩싸였다. 새누리당 친박계 서청원 의원이 어제 4·13 총선의 ‘공천 개입 녹취록 파문’과 관련, “음습한 공작정치 냄새가 난다”며 음모설을 주장하면서다. 당권을 장악하려는 친박·비박계 간 갈등의 산물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숱하게 봐 온 정치 음모론의 전형이다. 정치를 비롯한 음모론을 막을 묘책은 따로 없다. 다만 책임 윤리와 투명성이 치유의 수단임에는 확실하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흑인 분노의 시위 중 경찰에 조준… 5명 피살 ‘美 충격’

    흑인 분노의 시위 중 경찰에 조준… 5명 피살 ‘美 충격’

    3명 체포·1명 사살… 경찰 “테러” 규정 용의자 “경찰 총기 사용에 기분 나빠 범행” 미국에서 경찰의 흑인 총격 사망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에 대응하던 경찰관 5명이 7일(현지시간)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경찰관 사망자 수는 72명이 희생된 2001년 9·11테러 후 사상 최악으로 기록됐다. 이번 사건은 경찰을 조준한 저격 ‘테러’로, 평화적으로 규탄시위를 벌이던 흑인들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고 CNN과 AP 등이 전했다. 텍사스주 댈러스 경찰은 이날 저녁 8시 45분쯤 시위대 수백명이 댈러스 시청에서 800m가량 떨어진 거리를 행진하며 경찰의 총기 남용을 규탄하는 시위 도중 발생한 경찰 10여명을 향한 조준 총격으로 경찰 5명이 사망하고 경찰 7명과 민간인 2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총격은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경찰은 여성 1명을 포함해 용의자 3명을 붙잡았다. 또 다른 용의자 1명은 엘 센트로대학 옆 주차장에서 경찰과 1시간가량 교전하다 경찰이 터트린 폭탄에 의해 사망했다. 경찰은 이 용의자를 제거하기 위해 ‘폭탄 로봇’을 사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용의자는 최근 경찰의 총기 사용에 대해 ‘기분이 나빠서’(upset)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CNN이 전했다. 경찰은 또 체포된 용의자들의 인종이나 종교에 대해 밝히지 않았지만, 죽은 용의자가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백인들, 특히 백인 경관들을 죽이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용의자는 조사 과정에서 댈러스 곳곳에 폭탄을 설치해 놨다고 주장해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으나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지 경찰은 이번 사건을 “테러”로 규정했다. 댈러스 경찰서장 데이비드 브라운은 “용의자 2명은 저격범으로, 1명은 건물 주차장의 ‘높은 위치’에서 매복 형식으로 경찰을 향해 조준 사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목격자 이스마엘 데저스는 “한 저격범은 전투복 차림이었고 총기는 제법 큰 잡지로 숨겼다”며 “저격범은 미리 계획한 것처럼 건물 기둥 뒤에서 탄약을 꺼내 장전했다”고 말했다. 전직 연방수사국 특별요원 스티브 무어는 “저격범들이 서로 다른 두 곳에서 공격한 점으로 미뤄 총기 공격은 오래전에 계획했고, 기회를 엿봤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총격 소리가 들리자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한 시위 참가자는 “처음에는 (총성을) 불꽃놀이의 폭죽 소리로 알았다”며 “총성은 한참 동안 울렸고, 시위 참가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숨을 곳을 향해 달렸다”고 말했다. 댈러스 시내 쇼핑가는 문을 닫았고 모든 전철과 버스 등 교통 편은 운행이 정지됐다. 그러나 2014년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발생했던 약탈과 방화 같은 흑인 폭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총격에 대해 “정당한 법 집행에 대한 사악하고 계획적이며 비열한 공격”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6일 흑인 남성 필랜도 캐스틸(32)이 미네소타주 세인트 앤서니시 팰컨 하이츠에서, 또 다른 흑인 남성 앨턴 스털링(37)이 5일 루이지애나주 배턴 루지에서 경찰 총에 맞아 숨지기도 했다. 두 사건 모두 백인 경찰에 의해 흑인이 사망한데다 동영상으로 사건 당시 정황이 생생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항의 시위가 확산됐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캐스틸은 올해 경찰의 총격에 숨진 506번째 민간인이며 123번째 흑인이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서울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대작 전쟁, 대박 전쟁

    대작 전쟁, 대박 전쟁

    여름 극장가 블록버스터 ‘봇물’ 천만 영화, 5년 연속 이어질까 4년 만에 맥이 끊길까. 올해 상반기 천만 영화가 나오지 않으면서 ‘여름 블록버스터’ 전쟁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역대 천만 영화 15편 중 6편이 7~8월 개봉작이었기 때문이다. 천만 흥행을 차치하고서라도 현재 영화 시장이 소강상태라 영화계에서는 ‘암살’과 ‘베테랑’이 영화 팬들을 시원하게 만들었던 지난해 여름이 재현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흥행을 크게 좌우할 개봉일 샅바 싸움도 치열하다. 김형호 영화시장분석가는 “여름 성수기 중에서도 8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관객이 특히 몰리는 기간”이라며 “최근 2~3년 한국 영화가 여름을 지배했고 올해도 그럴 것으로 예상되지만 흐름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터져줄 때도 됐다”고 분석했다. 국내 4대 메이저 투자 배급사가 선택한 빅4가 일주일 간격으로 여름 시장을 공략한다. 모두 제작비 100억원대 작품들이다. 좀비 재난물 ‘부산행’(NEW)이 새달 20일 가장 먼저 출격한다. 후반 작업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첫선을 보인 지난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의 반응이 무척 뜨거워 일찌감치 개봉일을 확정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열차라는 제한된 공간에 인간과 좀비를 몰아넣는다. 공유와 마동석 등은 사랑하는 딸과 아내,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좀비가 가득한 객실을 뚫고 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인다. 화끈한 액션에 웃음과 눈물까지 주는 ‘순정 마초’ 마동석의 연기가 키포인트다.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연상호 감독이 처음 연출한 실사 영화다. 전쟁물 ‘인천상륙작전’(CJ엔터테인먼트)은 일주일 뒤 스크린에 걸린다. 빅4 중 가장 많은 16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6·25전쟁의 전세를 뒤집게 한 인천상륙작전의 방아쇠를 당긴 영흥도 첩보전의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포화 속으로’를 연출한 이재한 감독의 작품이다.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에, 애국심을 자극할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에는 이정재, 이범수, 진세연, 정준호 등이 출연한다. 특히 할리우드 스타 리엄 니슨이 맥아더 장군으로 열연해 더욱 화제다. 이어 ‘덕혜옹주’(롯데엔터테인먼트)가 8월 4일 스크린에 걸린다. 최근 스릴러 ‘비밀은 없다’에서 절정의 연기를 펼친 손예진이, 일본에 끌려가 비운의 삶을 살아야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이덕혜를 연기한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며,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에서 여성 관객들의 기대가 높다. 빅4의 마지막 주자는 또 다른 재난물 ‘터널’(쇼박스)이다. 8월 11일 개봉이 확정적이다. 퇴근길에 만든 지 일주일밖에 안 된 터널이 무너지며 고립된 한 남자가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그를 구하기 위한 터널 바깥의 이야기를 다룬다. ‘끝까지 간다’의 김성훈 감독이 연출했다. 하정우, 오달수, 배두나 등이 열연했다.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추하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천만 요정’ 오달수가 기대가 크다고 꼽은 작품이다. 8월 개봉 예정인 ‘국가대표2’(메가박스)는 다크호스다. 수애를 주인공으로, 급조된 여자 아이스하키 팀 이야기를 그리며 감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 작품에도 오달수가 감독으로 나온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에는 ‘제이슨 본’(7월 28일)과 ‘수어사이드 스쿼드’(8월 4일)가 단연 눈에 띈다. ‘제이슨 본’은 ‘본’ 시리즈 세 편으로 세계 첩보 액션물의 흐름을 바꿔 놨던 맷 데이먼이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9년 만에 다시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둘은 “사상 최고 스케일”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조커(재러드 레토), 데드샷(윌 스미스), 할리 퀸(마고 로비) 등 DC코믹스를 대표하는 사고뭉치 악당들이 팀으로 뭉쳤기 때문에 모범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는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 멀리사 매카시를 앞세워 27년 만에 리메이크되며 여성 버전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코믹 SF물 ‘고스터버스터즈’(8월 중)와 최근 교통사고로 사망한 안톤 옐친의 유작이 된 SF물 ‘스타트렉 비욘드’(8월 중)도 영화 팬들이 기다리는 작품이다. 장외 대결도 후끈하다. 같은 주 개봉하는 ‘인천상륙작전’과 ‘제이슨 본’은 내한 맞대결을 펼친다. 맷 데이먼과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제이슨 본’ 아시아 홍보 투어의 첫 순서로 7월 8일 한국을 찾는다. 13일에는 리엄 니슨이 한국을 방문해 ‘인천상륙작전’을 독려한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美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 권총 암살 기도한 10대 청년 기소

    美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 권총 암살 기도한 10대 청년 기소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69)의 암살을 기도하다 체포된 10대 남성이 기소됐다. 20일 미 네바다주 지방법원에 제출된 소장에 따르면 마이클 샌퍼드(19)는 지난 18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트레저 아일랜드호텔 내 극장에서 열린 트럼프의 유세 현장에서 경찰관의 총을 빼앗으려고 총 손잡이를 쥐었다가 체포됐다. 샌퍼드는 체포 후 미 국토안보부 비밀경호국 요원에게 “트럼프를 죽이기 위해” 캘리포니아주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왔다고 말했다. 샌퍼드는 이전에 총을 쏴본 적이 없어서 전날 총 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사격연습장에 갔으며,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계획이 실패할 경우 “트럼프 암살을 다시 시도하기 위해” 애리조나주 피닉스 유세 입장권도 구매했다고 밝혔다. 수사관들은 샌퍼드가 영국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그의 정확한 국적은 밝히지 않았다. 샌퍼드는 미국에 18개월 간 머물렀고, 캘리포니아주로 오기 전 뉴저지주 호보컨에 체류했다고 말했다. 또 약 1년 동안 트럼프 암살 계획을 준비했으며 범행 계획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샌퍼드는 이날 오후 법정에 출석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링 위에서… 인종차별 맞서… ‘74년 인생’ 벌처럼 쏘고 하늘로 나비처럼 날아갔다

    링 위에서… 인종차별 맞서… ‘74년 인생’ 벌처럼 쏘고 하늘로 나비처럼 날아갔다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장례식이 오는 10일(이하 미국 동부시간) 오후 2시 고인의 고향인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KFC 염! 센터’에서 거행된다. 알리 가족의 대변인 밥 건넬은 4일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취재진을 만나 가족끼리 비공개 장례식을 치른 뒤 어린 시절을 보낸 거리 등을 돌고서 공개 장례식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털, 스포츠캐스터 브라이언트 검블 등이 추도사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챔피언 3회·타이틀방어 19회 알리는 지난 3일 밤 늦게 생명 보조장치로 연명해 오던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의료기관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건넬은 사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자연적 이유에 따른 패혈성 쇼크”라고 설명했다. 세 차례 세계 챔피언을 지내며 19차례 타이틀을 방어하는 등 20세기 최고의 복서로 꼽히는 그는 은퇴 3년 만인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으며, 2014년 12월 폐렴으로, 지난해 1월에는 요로 감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은퇴 후 파킨슨병 30여년간 투병 12세 때부터 아마추어 복서로 활동한 그는 1960년 로마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땄다. 그러나 흑인이란 이유로 패스트푸드점 출입을 금지당하자 메달을 강에 던져버리고 프로로 전향했다. 1964년 2월 WBA와 WBC 통합 챔피언 소니 리스턴을 누르고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뒤 캐시어스 클레이란 노예 이름을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개명했다. 1967년 베트남전 징집 통보를 받고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가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1970년 복귀해 이듬해 조 프레이저에게 생애 첫 패배를 당했으나 1974년 조지 포먼을 캔버스에 눕히고 챔피언 타이틀을 되찾았다. 1981년 트레버 버빅에게 판정패하며 은퇴했을 때 통산 전적 56승(37KO) 5패였다. ●인종차별 반발 금메달 강에 버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성화 점화 후 남자농구 결승전 하프타임 때 36년 전 강물에 던져 버렸던 금메달을 다시 목에 걸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단순한 복싱 챔피언을 넘어 민권운동가, 링 위의 계관시인이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보폭도 넓었고 거침이 없었다. 리스턴과의 대결 직전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고 했고, “난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내가 위대함을 알기 전부터 이 말을 해왔다”고 했으며,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와 같은 명언을 남겼다. 인권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가 “링 안에서는 챔피언, 링 밖에서는 영웅”이라고 갈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급진 민권운동가 맬컴 엑스와 교류하면서 흑인의 자부심과 독립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고 흑인 무슬림 단체 ‘네이션 오브 이슬람’ 활동에 대한 이견으로 맬컴과 결별했지만, 맬컴이 인종차별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하자 뒤늦게 자책하기도 했다. 30년 넘게 파킨슨병과 싸우면서도 유엔개발계획(UNDP) 친선대사를 맡아 평화의 메신저로 활동했으며 지난해 12월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의 무슬림 혐오 발언이 이어지자 “정치 지도자라면 마땅히 이슬람 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점잖게 꼬집기도 했다. ●흑인 독립의 아이콘·평화 메신저 스포츠 스타와 유명 정치인들도 앞다퉈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 클리블랜드의 르브론 제임스는 “링 밖에서 더 위대했던 영웅”이라고 했고, 미국프로야구(MLB) 디트로이트의 투수 저스틴 벌랜더는 “영원한 안식을(RIP). 모두에게 영감을 주신 분”이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옳은 일을 위해 싸운 사람이었다”며 그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트럼프조차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그가 1998년 UNDP 친선대사로 활동한 점을 회고하면서 “그는 원칙과 매력, 재치와 우아함으로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싸웠고 이를 통해 인류애를 고양시켰다”고 추모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다 함께 영화 보면서 에너지도 아끼는 동대문

    ‘아파트 주민이 모두 모여 영화 보는 2시간 동안 아파트 단지의 모든 전등을 끕니다.’ 5월이지만 여름 같은 날씨가 이어지면서 전력소비량이 점차 늘어나는 요즘, 동대문구가 자칫 낭비되기 쉬운 에너지를 절약하고 아파트 주민들이 화합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름하여 ‘행복한 불 끄기 마을영화제’다. 동대문구는 에너지 다이어트 정책의 하나로 오는 9월까지 매달 22일 오후 8시 지역 아파트단지에서 ‘행복한 불끄기 마을영화제’를 진행한다고 17일 밝혔다. 마을영화제는 에너지 소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5~9월 가정에서 쉽고 즐겁게 에너지 절약에 동참할 수 있도록 저녁 시간 소등 후 실외에서 이웃들과 영화를 관람하는 에너지 축제다. 2012년 전농동 래미안아름숲아파트에서 시작된 마을영화제는 입주민들의 큰 호응으로 점차 다른 아파트 단지로 확산하고 있다. 래미안아름숲아파트에 사는 김모(49)씨는 “평소 보고 싶었던 전지현, 이정재 주연의 영화 ‘암살’을 무료로 보고 에너지 절약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할 수 있게 돼 정말 좋았다”면서 “앞으로도 우리 생활에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는 오는 20일 행사를 여는 제기이수브라운스톤아파트를 시작으로 제기한신휴플러스, 휘경주공1단지, 래미안아름숲아파트, 이문2차 푸르지오아파트 등 6곳이 참여한다. 한편 이번 행사는 영화 시작 전 에너지 문제 관련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자전거 페달을 밟아 직접 전기를 생산해 솜사탕을 만들고 기후변화 사진전을 관람하는 등 다양한 행사로 에너지 절약에 대한 관심을 유도할 계획이다. 유덕열 구청장은 “에너지를 아끼고 문화생활도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지역 주민들이 에너지 절약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황장엽 암살 계획’ 50대男 항소심도 징역 3년 “엄벌 필요”

    ‘황장엽 암살 계획’ 50대男 항소심도 징역 3년 “엄벌 필요”

    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려 했던 50대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이재영)는 17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모(55)씨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회적 파장과 중대성 등을 고려하면 박씨의 죄질이 좋지 않아 엄벌할 필요가 있다”면서 “1심이 선고한 형량이 파기할 정도로 너무 무겁거나 가볍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지난 2009년 11월부터 다음해 10월까지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김모씨의 사주를 받고 황 전 비서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는 “중국과 연계된 조직에서 황 전 비서를 처단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성공하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고, 암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박씨에게 총 2500만원을 건넸다. 박씨와 김씨는 CCTV에 노출되지 않는 외국인을 고용해 대포차로 사고를 내거나 흉기로 질러 황 전 비서를 암살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거래 과정에서 김씨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박씨가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김씨는 박씨에게 범행을 제안하고 북한에서 필로폰을 제조한 혐의로 먼저 재판에 넘겨져 대법원에서 징역 9년이 확정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2200년전 선거의 귀재’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2200년전 선거의 귀재’ 아우구스투스 황제

    18살의 노회한 지략가 로마 시대에 선거와 정략에서 불패를 자랑하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란 인물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카이사르가 14명의 공화파 자객들에게 암살당한 후 원로원에서 공개된 그의 유언장은 그의 죽음 못지않게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카이사르가 그의 재정적, 정치적 후계자로 지목한 사람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7세 사이에 난 아들 카이사리온(작은 카이사르란 뜻)이 그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었다. 옥타비아누스! 듣도 보도 못한 인물 아닌가. 나이는 18살, 카이사르와의 인척관계는 조카딸의 아들이라는 가냘픈 핏줄이 이어져 있을 뿐인, 귀때기 새파란 젊은이였다. ​카이사르와 권력을 분점했던 2인자 안토니우스는 코웃음쳤다. 내 라이벌이 이런 애송이라니, 자신이 권력을 독점하는 데 걸리적거릴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허나, 그것은 속단이었음이 뒤에 전개된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카이사르는 역시 매의 눈을 가진 사내였다. 18살의 이 소년은 알고 보니 기획과 조직의 귀재였을 뿐 아니라,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진 젊은이였다. 게다가 그는 자신을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위선과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냉혈과 노회함 지닌 책사형 인간이었다. 그는 양부 카이사르가 죽고 그 후계자로 자신이 지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일말의 지체함도 없이 몸담고 있던 소아시아의 병영을 떠나 로마로 향했다. 안토니우스가 그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주위의 충고도 그를 붙잡지 못했다. ​그는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의 금고를 틀어쥐고 어깃장을 부림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자신의 계획을 기획하고 추진하면서 우군을 끌어모았다. 정계 실력자인 키케로에게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노회함도 보였다. 그럼에도 나중에 안토니우스와 권력분점에 합의하고 정적 숙청에 나섰을 때 키케로의 이름이 살생부에 올라가는 것에 한마디 반대도 없이 묵인했다. 옥타비아누스는 13년에 걸친 안토니우스와의 오랜 권력투쟁에서 마침내 BC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를 거머쥔 뒤,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고 불리는 초대 황제가 되어 본격적인 제정시대를 열었다. 그의 치세는 기원후 14년까지 계속되었다. 로마 입성 때부터 따지자면 무려 58년이나 되는 셈이다. 원래 아우구스투스는 병약한 체질이었다. 그리고 군사적인 재능도 별로 없었다. 카이사르는 이런 점을 간파하고 군사 재능이 뛰어난 아그리파를 그의 평생 친구로 엮어주었다. 동갑내기 아그리파는 죽을 때까지 아우구스투스 옆을 지키며 군사문제를 도맡아 해결해주었다. ​아우구스투스가 다스린 로마의 반 세기는 그야말로 평화로웠다. '팍스 로마나'는 아우구스투스가 연출한 것이었다. 그 시절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소아시아나 아프리카 북부를 여행하던 나그네는 지금보다도 더 안전한 여행의 자유를 누렸다고 한다. 로마 제국의 기초는 기획과 조직의 귀재인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거의 완결되었다고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아우구스투스가 반석에 올려놓은 로마는 이후 200년간 평화를 누리며 발전했다. 3개 대륙에 걸친 변경의 수비도 견고했고, 이민족의 침입도 없었으며, 국내의 치안도 확보되어 물자 교류도 활발했고, 제국 내의 각지에서 도시가 번영하여 전 로마인과 속주 주민들은 평화를 구가했다. "수고했다, 옥타비아누스"​ 그는 만년의 어느 여름날 나폴리 휴가지에서 그의 생애를 상징하는 듯한 일화 하나를 남기고 있다. ​나폴리 만 안에 뜬 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가까운 배의 어부들이 황제임을 알아보고는 합창하듯이 황제를 향해 외쳤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엔 이렇게 나와 있다. 당신 ​덕택입니다. 우리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도. 당신 덕택입니다. 우리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것도. 당신 덕택입니다. 우리가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지배자에게 이보다 더 뿌듯한 상찬이 있을까? ​ 늙은 황제는 심히 감격해 그들에게 각자 금화 40량씩을 주게 했다. ​조건이 하나 있었다. 이집트 물산을 구입해 다른 곳에다 팔라는 거였다. 그래야 물산유통이 활발해지고 나라의 경제가 향상되어 민생이 나아질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 아우구스투스는 ​그후 얼마 안 되어 백년해로한 아내 리비아 드루실라의 품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리비아와의 사랑 인연을 잠깐 얘기하자면, 그녀는 원래 남의 유부녀였었는데, 한눈에 반한 24살의 옥타비아누스가 그 남편과 담판하여 양보받은 여자였다. 데리고 온 두 의붓아들까지 키운 옥타비아누스는 결국 리비아와의 사이에 아들을 얻지 못하고 첫째 의붓아들인 티베리우스에게 제위를 물려주었다. 홍안의 18살에 권좌에 올랐던 젊은이는 ​양부 카이사르에게서 부여받은 과업을 훌륭하게 마무리하고 77세의 성성한 노인으로 죽음을 맞았다. 만년에 그는 손자들이 몰래 키케로의 글을 읽는 것을 보고는 책을 받아서 뒤적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사람도 참 애국자였지." 옥타비아누스, 그는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아낀 진정한 지도자였다. 카이사르의 선택은 탁월했다. 저승에서 카이사르가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를 만났다면 이렇게 말하며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지 않았을까. "수고했다, 옥타비아누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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