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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 경찰 발포/팔인 주민 22명 사망

    【예루살렘 로이터 AP 연합】 예루살렘시의 통곡의 벽 부근에서 8일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충돌,경찰의 발포로 팔레스타인 시위대 22명이 숨지고 최소한 3백명의 팔레스타인인 및 이스라엘인들이 부상했다고 이스라엘 군라디오 방송이 보도했다. 경찰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날 상오 11시(현지시간) 통곡의 벽 부근 경찰서에 방화하고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고 있던 수천명의 유태교 신자들에게 돌을 던지자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해산키 위해 실탄ㆍ고무탄ㆍ최루탄을 발사했다고 목격자들과 이스라엘 라디오 방송이 전했다. 이같은 사망자수는 지난 88년 4월16일 팔레스타인 게릴라 지도자 아부 지하드의 암살에 항의하기 위한 팔레스타인인의 시위 당시 경찰의 발포로 14명이 숨진 이래 최대의 희생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 암살기도 혐의/장교 5명 처형/후세인

    【카이로 UPI 연합】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암살을 기도했다는 이유로 지난주 최소한 5명의 정예대통령 경호부대소속 장교들을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서방 및 아랍권 외교관들이 9일 밝혔다. 이들 외교관은 암살음모 장교들에 대한 후세인대통령의 처형지시 보도는 이라크가 지난달 2일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후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며 이것은 후세인대통령의 철권통치하에 있는 폐쇄국가 이라크에도 내부적인 반대가 자라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점령된 본국을 향해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한 쿠웨이트 라디오방송은 3명의 이라크대통령 경호장교들이 후세인대통령 암살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지난 8일 처형됐다고 이날 아침 보도했다. 바레인의 한 서방 외교관은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후세인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암살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들어 지난주 자신을 경호하던 최소한 5명의 대통령경호원에 대한 처형지시를 내렸다』고 말했으나 처형된 장교들의 이름은 밝히기를 거부했다.
  • 사담 후세인 압정내막 낱낱이 폭로(세계의 사회면)

    ◎「공포의 공화국」 유럽서 불티/“사담,범아랍권 지배를 갈망… 전쟁이 필요한 인물”/사찰ㆍ처형 밥먹듯… 정적은 아예 씨말려/자치요구 소수족 6천명 독가스 살해 「겁없는 사내」로 통하는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겁나게 하는 책이 있다. 「공포의 공화국」이 바로 그책. 런던에 체류하고 있는 이라크의 망명학자 사미르 알 할리가 지어 미국에서 출판된 이 책은 후세인의 집권과정과 폭정의 내막을 낱낱이 폭로,바그다드로부터 저자에 대한 암살지령이 내려져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저자는 보복이 두려워 공개석상에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책의 출판도 전화와 우편연락만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름도 물론 가명을 사용했다. 페르시아만 사태 이후 유럽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이 책속에 나타난 후세인과 그의 압정의 실상을 간추려 소개한다. 바그다드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유혈속에서 생을 마친다. 소위 「인민의 적」을 처단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합리화 된다. 주요건물의 옥내외 기념물,큰 거리 교차로 등지에는요소요소 비밀감시 카메라가 장치되어 있다. 탄압의 집행자는 비밀경찰이다. 후세인은 집권후인 73년 비밀경찰 조직을 재정비,확대 개편했다. 이라크의 정보조직은 암,에스티크 바라트,무카바라트 등 3개 기구로 나뉘어진다. 그중 암은 종전의 비밀경찰을 현대화한 기구로 국내 사찰을 전담하고 있다. 소련 KGB와 협력협정을 맺고 있는 암은 KGB의 조언에 따라 비밀 탐지기 도청장치 등을 설치 관장하며 KGB등 소련 정보기관 파견요원 교육,소련과 국교가 없는 나라에 대한 첩보활동을 맡고 있다. 에스티크 바라트는 망명 이라크인의 추적 감시,외국군사 정보탐지,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지중해 연안국가들에 대한 정보수집 등 대외적인 첩보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무카 바라트는 정치사찰 담당기구이다. 이라크에서는 이들 정보사찰기구들에 의한 고문이 긴급사태에 대한 대책으로 설명되고 있다. 직장에서 혹은 밤중에 자택에서 연행되어 간 사람이 몇주 또는 몇달뒤에서야 가족에게 사망사실이 전달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시신은 육안으로 분간하기조차힘들다. 「소사」또는 「익사」라는 간단한 공의의 사망진단서가 첨부되어 있을 뿐이다. 밀고는 나라 어느 구석에서나 의무처럼 행하여지고 있으며 정보원은 자기 친구나 동료들에 대한 보고서를 내기도 한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집권층을 욕하는 말은 반드시 수집,보고되게 마련이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이라크에서 3백50명의 사상범이 사형당했다고 보고하고 있으며 또다른 기구에서는 7백89명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를 확인할 길은 없다. 얼마전에는 40명의 쿠르드족 지도자들이 「식중독」으로 떼죽음을 당했다. 이는 식중독이 아니고 생선속에 투입된 극약에 의해 독살된 것이다. 이것이 비밀경찰의 수법이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총리,군사령관,혁명위원회 위원장,집권 바트당 제1서기,문맹퇴치위원회 의장 등 그에게 붙여진 직함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라디오에서는 한시간에 30분 이상,그러니까 2분에 한차례 꼴로 그의 이름이 직함과 함께 흘러나오곤 한다. 그는 「암흑속에 빛나는 큰 별」이며 「위대한 인민의 영도자」로 추앙된다. 그의 생일은 국경일로 정해져 온 국민이 경축토록 강요당한다. 젊은 나이에 정치적 암살극의 주동인물로 등장한 후세인은 68년 바트당의 쿠데타에 참여,혁명위 부위원장이 됐으며 79년 아메드 하산 알 바크르 대통령을 사임시키고 최고의 실권자가 됐다. 그의 잔혹성은 이란과의 전쟁때 코람샤 전투에서의 패배를 이유로 군장교 3백여명을 처형한데서 잘 나타나고 있으며 스스로 사형집행의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집권과정에서도 숱한 고문과 숙청을 자행했으며 정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어떤 이유를 붙여서건 제거하고야 만다. 특히 쿠르드족에 대한 그의 학대는 도가 지나칠 정도이다. 이란과의 전쟁이 끝난 다음날 이라크는 쿠르드족 거주지역인 쿠르디스탄지방에 독가스 폭격을 가해 사흘만에 6천명을 살해했다. 이같은 공격은 석달동안이나 지속됐고 그로인한 사상자는 숫자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쿠르드족에 대한 이라크의 탄압은 후세인의 영원한 명령이다. 74년에는 인구 2만5천명의 자코마을과 2만명의 칼라 알 디자마을을 없애버렸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산으로 도망했고 그들의 도피생활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의 지도이념 즉 바트당의 노선은 스탈린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혼합한 것이며 절대지배를 지향하고 있다. 그는 역사마저도 사실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시각」에서 기술되어져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바트당의 범아랍권 지배를 갈망하고 있으며 이같은 그의 오랜 꿈은 실현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이를 위해 그에게는 전쟁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전쟁이든 간에.
  • 북한 공작원 70∼80명 홍콩서 암약/홍콩지서 보도

    ◎중국 상사직원 위장,마카오 거쳐 잠입/KAL기 폭파등 테러 전담… 무기밀매도 홍콩에는 현재 70∼80명의 북한인들이 위조여권과 주민증을 갖고 첩보 요원으로 암약중이며 이들은 거의 모두가 중국 회사직원 신분으로 위장하고 있다고 29일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들이 중국 광동성 광주에서 포르투갈령 마카오를 거쳐 홍콩에 잠입하고 있으며 마카오엔 약 2백명의 북한인들이 상사 주재원 등으로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평양당국은 광주의 수많은 중국국영 기업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마카오 행정권의 일부가 중국측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마카오에서의 북한인활동은 매우 자유스러운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이 모든 주권을 행사하는 홍콩의 경우 북한에서 입경비자를 신청하면 대부분 거절을 당하거나 매우 까다로운 조사를 받기 때문에 북한인들은 주로 마카오에서 여권ㆍ주민증 등을 위조,홍콩에 들어온다고 포스트지는 전했다. 이 신문은 이어 홍콩거주인으로 가장한 북한인들이 서울을 비롯한 자유세계국가 주요도시를 오가며 첩보활동을 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포스트지에 따르면 마카오가 특히 첩보활동계획을 세우는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김현희의 KAL기 폭파는 물론 미얀마 아웅산묘지 폭발사건등의 음모도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북한측 요원들은 한국에 대한 테러외에도 무기 밀매,평양정권에 적대적인 요인 암살지령등의 업무를 마카오나 홍콩에서 수행중이라고 이신문은 밝혔다.
  • “예각대치속 협상 모색”… 중동사태

    ◎40m 간격 검문… 이라크,외국인찾기 혈안/서구연 9국 군 수뇌,공동봉쇄작전 협의/철군거부 후세인,“세계지도서 쿠웨이트는 이미 소멸”/쿠웨이트 저항군,“이라크수도 공격 준비” ○아파트촌 정밀 수색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시에서 외국인들을 수색하는데 혈안이 되고 있다고 요르단에 도착한 여행자들이 27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필리핀 기술자는 『이라크군은 아파트촌을 수색하고 있다』면서 『2∼3명의 군인들은 아파트 입구에서 경계를 하고 있으며 거리에는 수십명의 군인들이 아파트쪽을 응시하면서 무리를 지어 외국인들을 찾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파트촌인 삼미야구에서는 40m마다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어 외국인들이 도망가는 것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요르단에 도착한 다른 여행자들은 『이라크군과 팔레스타인들이 주인없는 집을 약탈하고 있다』면서 『쿠웨이트인들의 저항이 점점 커지고 대담해져 이라크군 트럭 여러대가 화염에 휩싸일 정도』라고 말했다.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25일 말했다. 후세인 대통령은 이날 바그다드에서 가진 오스트리아 기자들과의 회담에서 쿠웨이트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런 이름을 가진 국가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쿠웨이트는 이라크의 해양 접근을 막기 위해 미 중앙정보국(CIA)에 의해 세워진 국가라고 주장했다고 이집트의 MENA통신이 바그다드발로 보도했다. 후세인 대통령은 이라크가 외국인들을 인질로 억류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면서 이들 외국인들이 『미국인과 이라크인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이라크내의 전략지역들에 배치됐다고 말했다. ○공격목표 이미 선정 ○…쿠웨이트 저항군은 이라크점령군에 대한 투쟁을 강화하기 위해 「바그다드 심장부내」 목표물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자유 쿠웨이트 라디오방송이 27일 보도. 1961년 쿠웨이트 독립일을 따 「2월25일 그룹」이라고 이름을 붙인 저항단체가 발표한 이 라디오성명은 『이라크 점령군으로부터 조국 쿠웨이트를 해방하고 알 사바 국왕의 왕정을 복원 할 것』을 다짐.페르시아만 전역에서 청취 가능한 쿠웨이트 라디오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일부터 쿠웨이트 국회에서 전파를 내보내고 있는데 방송국 위치는 사우디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성명은 바그다드내 심장부를 공격키 위해 이미 공격대상 선정작업까지 마쳐 놓았다고 첨언. ○서구연합(WEU) 소속 9개회원국의 군참모총장들은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대한 유엔의 금수조치 시행에 필요한 세부계획작성을 위해 27일 파리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군참모총장들은 이날 하룻동안의 비공개회담을 통해 지난주 WEU회원국의 외무국방장관들이 페르시아만에서 자국군대들의 활동을 통합조정키로한 결정의 구체적 시행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WEU는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서독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로 구성돼 있다. 이날 회담이 열리기 앞서 한 군사소식통은 WEU 군수뇌들이 이번 회담에서 페르시아만에 배치된 회원국 함대간의 역할분담 및 대규모 미 해군과의 작전조정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각 회원국 함정들은 자국의 지휘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랍연 “반쪽회담” ○…아랍연맹 21개 회원국중 11개국은 오는 30일 카이로서 긴급 외무장관회담을 개최,페만사태를 논의키로 했다고 튀니지에 있는 한 외교소식통이 전언. 이번 회담에서는 체들리 클리비 아랍연맹 사무총장으로부터 범아랍군을 사우디로 파견키로한 문제에 대해 보고를 들을 계획이라고 이 소식통은 밝혔다. 결국 반이라크 모임이 될 이번 아랍연맹 외무회담에 불참의사를 밝힌 회원국은 다음과 같다. 이라크 PLO 알제리 튀니지 수단 예멘 모리타니 리비아 요르단. ○…이라크는 아랍연맹본부를 튀니스에서 카이로로 옮긴다는 계획에 대해 페르시아만 사태에 임하는 이집트의 자세를 이유로 이를 반대하고 있다고 외교소식통들이 27일 말했다. 이 소식통들은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이 지난 3월 본부를 이집트 수도 카이로로 이전한다는 아랍연맹의 원칙적 결정을 다음주로 예정된 아랍연맹 외무장관회담에서 재검토할 것을 제의했다고 이 소식통들은 밝혔다. 아지즈 장관은 특히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쿠웨이트 침공 8일후인 지난 10일의 아랍정상회담에서 이라크에 대해 편파적자세를 보였다는 점을 비난했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아지즈 장관은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카이로로 본부를 옮긴다는 아랍연맹의 원칙적 결정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구성된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라크는 지난해 이집트의 아랍연맹 재가입은 물론,본부의 카이로 이전 결정을 주도했었다. ○“승무원에 망명 허용” ○…미국은 미국의 대 이라크 무역금수조치 강화노력에 협조하는 이라크 유조선 승무원들에게 망명을 허용할 것을 제의했다고 미국의 고위 관리가 26일 밝혔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미 대통령 안보담당보좌관은 이라크 유조선 선원들 가운데는 미국의 이같은 제의에 따를 경우에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어느정도 우려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은 이들에게 망명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이라크가 24일밤 미 대사관에 대한 전기공급을 중단했으나 대사관 주위에 배치된 군대가 강제로 대사관을 폐쇄하려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으며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6일 TV회견에서 특히 중국 대사관 등 일부 대사관에 이라크인들이 들어 갔다는 보도가 있으나 『미국 대사관에는 아직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 ○“공관 목조르기 작전” ○…이라크는 쿠웨이트 공관폐쇄령 시한이 지난 26일 폐쇄를 거부하고 있는 일부 대사관 주변을 포위하고 수도와 전기 등의 공급을 중단,목조르기 작전을 펴고 있으나 외교관들에게 무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보도는 없다. 미국과 유럽 각국의 외무부에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이라크는 쿠웨이트 공관에 남아있는 외교관들을 몰아내기 위해 단전ㆍ단수ㆍ전화차단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각국 공관은 자가발전 등의 응급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일부 외교관들은 에어컨의 가동이 중단되어 더위로 고통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쿠웨이트의 외교소식통들은 공관폐쇄령을 무시한 외교관들에게 외교관신분 박탈을 선언한 이라크가 지난 25일부터 20여개국 대사관에 대한 봉쇄작전을강화,일부 대사관 주변에 병력과 탱크를 비치하고 식량이 공급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43% “후세인 암살을” ○…미국인 43%가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암살에 찬성하고 있으나 80%는 미국의 대 이라크 기습공격 입장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실시된 뉴스위크 여론조사결과 밝혀졌다. 후세인 암살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도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과 페르시아만에서 군사적 대치상태가 시작된지 1주일만에 실시된 유사한 여론조사 당시의 지지도 34%보다 9% 높아진 것이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7백67명의 조사대상중 68%가 부시 대통령이 중동사태의 외교적 해결에 보다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대답했으며 57%는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에 미국인들이 인간방패로 전략목표물에 분산배치됐을지라도 공격명령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보도했다.
  • 무장봉기 획책 「혁노맹」 적발/사병ㆍ대학생등 48명 검거

    ◎시위 선동ㆍ「혁명군」 창설기도/선전지「불꽃」 배포… 우익테러도 계획/치안본부ㆍ보안사 발표 치안본부와 국군보안사령부는 22일 무장봉기를 통한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위해 혁명군대 창설을 준비하면서 각종 시위를 배후조종해온 「혁명적 노동자 계급투쟁동맹」 (혁노맹) 중앙위원겸 사상지도책 박대호씨(26ㆍ서울대 국사학과3년 제적) 등 27명을 붙잡아 국가보안법 위반(반국가단체 구성)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치안본부는 이들중 현재 군복무중인 조재은씨(23ㆍ외대 화란어과3년 휴학) 등 10명은 국군보안사에서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경찰과 군당국은 「혁노맹」조직원들은 「임시혁명투쟁위원회」사건 등과 관련,이미 구속되거나 입건된 21명을 포함해 모두 48명이라고 밝혔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86년 8월 조직됐다가 와해된 「CA그룹」(제헌의회)의 조직원들로 지난89년 8월 경기도 소래에서 전국대의원대회를 갖고 「혁노맹」을 결성,혁명군대 창설을 준비하는 동시에 각종 시위를 배후조종하거나 이적표현물을 제작하면서 노동자ㆍ학생ㆍ연계투쟁을 통해 사회주의 무장봉기를 꾀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지난해3월 외대 등 전국14개 대학에 산하조직으로 「민족민주혁명 학생투쟁연맹」(민학투련)을 조직,지난4월 울산 현대중공업 노사분규때 조직원을 보내 폭력시위를 배후조종하는 등 각종 시위를 선동해 왔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현체제 전복을 위해서는 무장이 선결조건이라고 판단,운동권 출신의 입대예정자를 중심으로 조직내에 「중앙군사위원회」를 마련,군ㆍ경ㆍ예비군의 무기탈취 및 군사훈련 계획을 수립하는 등 혁명군대 창설을 꾀해 왔다는 것이다. 국군보안사령부에 따르면 이들은 「혁노맹 출범선언문」에서 『실제적 전투능력을 구비한 혁명군대와 직업적 혁명가의 전위조직인 혁명적노동자당을 건설해 이를 바탕으로 현 체제를 전복,민주민중공화국을 건설한다』는 사업과제를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위해 우선 각종 무기ㆍ폭발물을 준비하고 광주사태를 연구,시가전에 대비한 도시게릴라 전술을 개발하는 등 현역군대 창설에 주력해 왔다는 것이다. 경찰은 또 이들이 무장봉기 때 군ㆍ경에 대해 물리적타격을 가하는 한편 검거자석방ㆍ우익단체에 대한 테러ㆍ응징인물에 대한 테러 및 암살 등 발치산형태의 투쟁계획을 짜고 있으며 이를 위해 혁명병에 의한 군사훈련계획도 마련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이같은 무장봉기 계획이외에도 정치신문인 「불꽃」을 제작,전국주요서점과 공단 등에 배포해 왔으며 지난해 9월에는 전교조활동과 관련,고교주변에 「고등학생 전국적투쟁으로 민중투쟁의 불길을 당기자」는 등의 유인물을 뿌리기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
  • “신데탕트 수호”… 미의 중동파병/페만작전의 목표 어디에(WP지)

    ◎“탈냉전 여명기”… 이라크의 정면도전 간주/“원유확보” 단순분석은 편향시각 미국의 카터행정부에서 국가안보담당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박사는 지난 16일자 워싱턴 포스트지에 기고한 「페르시아만에서 미국의 진정한 이익」이란 글에서 페르시아만 사태에 개입한 미국의 최대임무는 대서방 원유안정공급이라며 이라크와 협상을 통한 사태해결을 권고한 바 있다. 이에대해 워싱턴 포스트지 고정기고가인 찰스 크라우트해머씨는 19일자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지에 「관건은 원유공급만이 아닌 세계질서」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브레진스키의 주장에 반박하며 강경책을 촉구했다. 다음은 크라우트해머씨의 글 요지이다. 미국이 페르시아만 사태에 개입한 유일한 이유가 원유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냉소적이다. 물론 원유도 중요한 개입이유중의 하나다. 그러나 유일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만일 원유공급및 유가안정이 유일한 문제라면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라크의 산유제한및 유가인상모험에 자발적으로 합세할 경우에도미국이 5만 병력을 파견하는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얘긴데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산유국들이 서방세계에 대항해 자발적으로 단결했던 지난 73년과 79년의 원유파동때는 원유가 유일한 문제였기 때문에 미국내에서 군사개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전적으로 무시됐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원유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페르시아만 사태에 걸려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질서이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과거 30년대 국제질서에 나치독일이 그러했던 것처럼 새로운 국제질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힘없는 인접국가를 정당한 이유없이 정복하고 약탈하는 일이 후세인에게 허용된다면 이제 막 여명이 트기 시작하는 탈냉전시대의 평화는 혼란으로 뒤바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서방국에 의해 주도되는 단극화 체제를 맞아 최초로 행해지는 시험으로서 국제적인 선례가 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크다.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집어 삼키고도 별 문제없이 넘어간다면 이 세계는 규칙도 없고 책임지는 자도 없다는 사실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후세인은 또 다시 인접국 침략을 자행할 것이고 야욕과 군사력을 갖춘 독재자라면 누구나가 후세인의 전철을 뒤따르려 할 것이다. 희생이 두려운 약소국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군사력을 키우든지 아니면 후세인 같은 독재자에 아첨하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이같이 이번 사태에 걸려있는 문제가 매우 중대하기 때문에 미국은 페르시아만 군사개입목표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안문제가 원유만이 아니기 때문에 개입목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어,보존하는 것이상이어야 한다. 사우디 보호이외의 3가지 중요한 목표는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가 무조건 철수하고 왕권이 회복돼야 하며 ▲후세인을 권력에서 축출시키고 ▲이라크의 대량학살능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무조건 철수와 후세인의 몰락을 보장받지 못하는 선에서 타협해서는 안된다. 이 두가지 목표는 상호 연계돼 있다.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략모험에 너무 체중을 실었기 때문에 강압에 의한 무조건 철수는 견디기 어려운 수치인 것이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대이라크 봉쇄조치로 인해 후세인정권이 붕괴되지 않을 경우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굶주린 백성들이 지도자를 갈아치우는 방법도 있다. 후세인은 광인이 아니다. 이번에 계산착오를 일으켰을 뿐 후세인은 냉철하고 계산에 밝은 폭군이다. 이라크에 기아가 찾아들기 전에 그는 체면을 살릴 수 있는 타협을 추구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라크의 철수를 얻어내기 위해 후세인의 체면을 살려주는 타협이나 협상을 받아들인다면 미국은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후세인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은 곧 그를 구해주는 셈이다. 이번에 별탈없이 넘어간다면 다음번에는 핵무기를 앞세워 세계를 위협할 것이 확실한 모험가를 구해주는 것은 미국과 안정된 세계질서의 이익을 크게 잘못 이해하는 결과가 된다. 미국은 후세인의 면을 세워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굴욕감을 느끼게 만들기를 원한다. 아랍문화권에서는 수치와 명예가 특별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후 아랍권의 명예와 수치심을 자극하는 말을교묘하게도 잘 구사해왔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는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비밀요원이나 암살계획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지 그에게 명예로운 퇴각의 길을 터주지만 않으면 된다. 후세인이 소국 쿠웨이트에서 철수하게 되면 전쟁과부가 돼버린 이라크국민들의 슬픔과 수치심,바닥난 재정만이 그를 맞을 것이고 결국 그는 오래 버티지 못하게 될 것이다.〈정리=김주혁기자〉
  • “후세인 암살 모면”/애 통신

    【카이로(이집트) AP AFP 연합 특약】 이집트 국영 중동통신은 16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시도가 불발로 끝난 뒤 일단의 이라크 군장교들및 시민들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요르단에서 인터뷰를 가졌던 소식통들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15일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대통령의 「측근 다수」에 의해 후세인을 살해,제거하려는 한차례의 기도가 실패로 끝났다고 전했다.
  • “테러의 대부” 아부 니달이 움직인다

    ◎“대서방 테러 강화” 후세인 특명 받고 다시 일선에/“해결사” 악명… 제2전선 구축 시도할 듯/5백여명 살해 경력… 친서방국들 “비상” 서방 정보기관들이 「원자탄 보다 위험한 존재」로 손꼽던 테러의 대부 아부 니달이 최근 몇년의 칩거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활동을 재개게할 것으로 보여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과 친서방 아랍국가들에 대한 테러공격을 통해 「제2전선」을 구축하려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현재 바그다드에 체류중인 것으로 알려진 아부 니달은 지난 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테러분자 가운데 한명이었다. 한때 팔레스타인 테러사건이 터졌다하면 늘 그 배후인물로 지목되던 아부 니달은 그러나 그의 공ㆍ사생활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어 얼굴이나 거처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부 니달은 지난 84년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이듬해 서독ㆍ프랑스 등 서방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내 아들 비삼마저 내 정체를모른다』고 공언하고 있는 그는 철저한 비밀주의로 일관해 그를 인터뷰했던 기자들 마저 그가 진짜인지 의심할 정도이며 현재까지 알려진 그의 사진조차 신빙성이 없다. 아부 니달은 「투쟁의 아버지」란 뜻의 아랍어 가명이고 그의 본명은 「사브리 할릴 바나」로 알려져 있다. 올해 53세인 아부 니달은 요르단강 서안의 자파에서 부유한 감귤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기를 유복하게 보냈다. 그의 아버지 할림은 팔레스타인의 저명인사로 한때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초대 대통령 차임 와이즈만과 가깝게 지내기도 했으며 그의 형 모하메드는 아직도 이스라엘 점령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서 장사를 하며 부유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베이루트에 정착했던 아부 니달은 그곳에서 미국인대학에 입학,엔지니어교육을 받았다. 그후 그는 「6일 전쟁」이 발발했던 67년 아라파트가 직접 관장하는 PLO소속 「파타」조직에 가입,고속승진을 거듭하다 70년엔 수단의 하르툼 PLO 본부장이 됐다. 그러나 그는 74년 아라파트가 이스라엘과타협하려 하자 이에 반발,아라파트암살을 시도했으며 이때문에 PLO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아부 니달은 그뒤 독자적인 테러조직을 양성했으며 대표적인 그의 조직으로는 「파타혁명위원회」가 있다. 이 조직은 비밀결사로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지만 추종세력이 2백∼5백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따. 그의 조직은 과거 1백여차례 이상의 테러공격을 감행,5백이 넘는 인명을 살해했고 특히 지난 82년에는 주영국 이스라엘 대사에 대한 테러를 저질러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게 만들기도 했다. 자신의 조카인 PLO의 온건파 참모 사이드 하마이를 살해할 정도로 냉혹한 그는 또한 『나는 아랍인들의 불행을 해결하는 해결사』라고 자처하는 등 과대망상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는 인물이다.
  • 한국정치 「대결구도」 벗어나야 한다/민주정치 정착을 위한 특별좌담

    ◎다원시대 맞춰 전향적 통일정책 펼때/“70% 넘는 중산층” 대변할 정당 나와야/세대교체돼야 개혁 가능… “물러가라”식은 곤란,여건 성숙 기다리는 슬기를(서울신문 광복 45주년 특집) 광복 45주년을 맞아 그동안 우리 정치가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오늘의 정국상황을 점검하는 동시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치상을 원로,여야 정치인,학자 등 4자대담을 통해 진단·평가해본다. 지난 45년간 우리 정치에서의 명과 암은 각각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시점은 어떤 상황이며 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를 정리했다. □참석자〈가나다순〉 나종일〈경희대대학원장〉 송원영〈전 국회의원·5선〉 최기선〈국회의원·민자당〉 홍사덕〈민주당부총재〉 △나종일교수=우리가 일본통치에서 해방된 지 45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45년간 제약과 난관도 많았고 심지어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는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45년 당시 우리와 형편이 비슷했던 나라들의 발전상과 현재 우리의 발전된 모습을 비교해보면 나름대로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비교·평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송원영 전의원=정치가 정체됐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해방후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암살같은 비인도적 행위는 사라졌다는 점에서 크게 나아졌다고 봅니다. 해방직후인 45년 12월 송진우선생에 이어 장덕수·여운형·김구선생 등이 백주에 권총으로 살해됐지요. 이승만박사도 두번이나 암살을 모면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일들은 정리된 듯해요. 또 이박사가 남조선 단독정부수립의 필요성을 47년도엔가 밝힌 것으로 생각되는데 당시 극도로 이데올로기의 대립상을 보였던 세계정세를 감안할 때 어쩔 수 없었던 선택같았습니다. 단독정부라도 세우지 않으면 어디로든지 빨려들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아직도 단독정부수립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 나름대로 평가할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교수=해방후 좌우이념투쟁에 이어 전쟁도 겪었고 60년대이후에는 빠른 경제사회변혁이 있었습니다만 심한 부정선거양상이 사라졌다는 것도 한 특징이 되지 않겠습니까. △송 전의원=부정선거 양상이 근절됐다고 얘기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제헌국회의원 선거는 미 군정이 관할했었는데 상당히 공정하게 치러졌고 2대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3·4대에 이르러 환표등 부정행위가 노골화되었고 3·15 부정선거가 타락의 극치였다고 볼 수 있지요. 그 뒤 많이 좋아지긴 했으나 제헌선거에 비하면 나아졌다고 단정짓긴 어렵습니다. ○주권의식 확고해져 △최기선의원=해방당시 절대빈곤의 처지에 빠져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와 중국의 상황이 비슷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당시 수많은 농민이 굶어죽는 상황에서 대지주의 수탈이 계속됐고 이에따라 공산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를 택했지요. 지난해 중국에 가봤더니 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우리와는 굉장한 격차가 벌어져 있는 것같았습니다. 우리의 발전상을 실감할 수 있었으며 공산권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에 있어 지난 45년은 권위주의·봉건주의에서 탈피하는 시대였다고 봅니다. 지난 87년의 6·29 선언도 국민적 의지에 절대권력을 가진 정권이 손을 든 것으로 파악되며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란 인식이 확고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민족자존및 자주의식이 고양되고 있는 것도 큰 변화입니다. 최근의 용산 미군기지 이전,한국 군작전권 이양 등이 그 실례이며 최근 미국의 우리에 대한 태도도 상당히 달라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과거의 무조건 반공주의에서 벗어나 남북화해등 전향적 통일추구 자세로 돌아선 것도 눈에 띕니다. 한마디로 현재 상황은 권위주의적·외세의존적 자세에서 벗어나는 대전환기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나교수=태평양전쟁이 끝나기 2년전쯤 미 국무부와 영 외무부가 공동으로 전후처리문제를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영측 연구는 유명한 역사학자 토인비가 주도했는데 세계 각지에서 얻은 정보의 분석결과 한국은 근대국가의 경험이 없고 분파주의의 정치행태가 심하므로 당분간 신탁통치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토인비의 얘기가 얼마나 옳았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근대국가 경험미숙,분파주의외에도 제약요인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우선 굉장히 가난했습니다. 47년인가 이승만박사가 하와이 동포에게 독립정부 준비자금 1만달러 지원을 요청한 사실도 있었습니다. 돈이 있어야 여유있는 정치를 할 수 있을텐데 그러지를 못했어요. 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유엔의 지지로 찾으려 했던 것처럼 외세의존도가 너무 높았고 이념대립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던 것도 발전의 큰 제약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회·경제분야 등에서 일부 소외계층도 생겼고 단독정부가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와 비슷했던 나라들이 겪어온 길을 보면 우리가 모두 나빴다고 말하기도 어렵지요. ○사회·경제보다 뒤져 △홍사덕부총재=민주주의는 산업사회에서 발전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볼때 해방이후 우리의 가장 큰 성공은 산업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입니다. 해방 당시에는 5인이상 기업체가 1만여개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전체인구의 75%가 월급쟁이 혹은 월급쟁이가 부양하는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확고한 기초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우리 정치의 가장 큰 실패는 이들 월급쟁이가 자신의 정치이해를 표현하는 기회가 봉쇄돼 있다는 것이지요. 호남출신 월급쟁이와 영남출신 월급쟁이가 서로 하나라는 인식을 갖지 못하게끔 지방주의·분파주의가 제도화 됐다든지 이데올로기에 착색되어 자신들의 이해표출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게 됐다든지 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앞으로 진정한 정치근대화를 위해서는 이들 월급쟁이가 정치적으로 뭉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교수=산업화의 성공을 통해 국가영역과는 다른 사회영역이 상당히 확장되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겠지요. 이전보다 정부통제영역이 상당히 축소되어가고 있으며 6·29 선언도 이런 사회적 배경을 깔고 나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정치분야에서의 성취가 사회·경제분야보다 못하다는 얘기가 많아요. △송 전의원=정치의 정체 내지 후퇴의 근본요인은 집권자가 법을 안지킨 때문이라고 봐요. 이박사나 박정희씨가 무리하게 정권연장을 하려한 데 대한 반작용이 야당의 의원직 사퇴등 후진적 정치행태를 계속 이어가게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65년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야당의원들이 총사퇴했다가 일부는 번의하기도 했는데 현재 야당의원들의 사퇴서 제출사태도 그때와 비슷한 듯해요. 이것은 결국 정치가 정체되어 있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의원직 사퇴라는 일이 외국에서는 절대 없습니다. 우리도 사퇴서를 내면서 진짜로 사퇴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의원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사퇴서를 낸다는 것 자체가 옳지 않은 일인데다 정부·여당도 그것을 수리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홍부총재=저는 송선생님과 견해를 조금 달리 합니다. 사퇴서 제출은 다른 방법이 없는데서 나온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전에 단순한 제스처로 사퇴했던 분들은 어쨌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원래 뜻이 관철되지 않는 한 번복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또 그것을 기대합니다. △최의원=해방이후 우리 정치는 독재냐 민주화냐 하는 대결논리에서 정권타도 투쟁이 그 핵심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다양하고 복잡다기해진 사회에서의정치는 투쟁만으로는 되질 않습니다. 각계각층의 이익이 상충되는 상황에서 절대악도 절대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에서 반독재투쟁시대는 지나갔다고 보며 건전한 정책대결로 국리민복을 추구해야 될 시점이라 봅니다. 미소가 적대·대결관계를 청산하고 탈이데올로기의 기치아래 화해·협력하고 있는 마당에 좁은 국내에서 투쟁·대결구도를 마냥 지속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의원직 사퇴서제출은 신중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택해준 신분이기 때문에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하기 싫다고 그만두는 자리가 아닙니다. 또 이 상황의 의원직까지 던질 상황인가에 대해서는 제자신 여당에 몸담기전 상당한 야당생활을 했음에도 도저히 납득이 안갑니다. ○힘센 편이 더 큰 책임 △나교수=양측에서 보면 서로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여권에서 보면 역시 날치기통과를 할 수밖에 없게끔 야당이 상황을 유도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판단할 때 힘센 사람이 책임도 더 느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형제간에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형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송 전의원=앞서 정치발전이 안되고 있다는 지적을 한 것도 이런 것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65년 한일협정때 의원직 사퇴서제출 파동을 언급했습니다만 당시 지구당에 사퇴서를 내면 자동적으로 의원직 사퇴가 이뤄지는 데도 지구당에서는 사퇴서를 접수만 한 뒤 사퇴서를 떼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사퇴서를 낸 의원들은 자신을 속이고 지역구 선거주민들을 속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또 다시 벌어지고 있는데 뭔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사퇴서 제출과 같은 의회투쟁방식은 절대 지양되어야 합니다. 또 지난 임시국회때 여야가 좀더 사려깊게 지자제법안문제등을 다뤘다면 오늘날과 같은 대립양상은 피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느껴집니다. △나교수=그럼 이제 앞으로 우리 정치에 대한 전망을 좀 해 주시죠. 우리 정치가 제 모습을 갖고 주어진 여러과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은 어떻게 모색될 수 있을지 말씀해 주십시오. 항간에 제기되고 있는 개헌문제,세대교체문제,통일문제 등과 연계해 풀어나가 볼까 합니다. ○「길드정당」 벗어나야 △홍부총재=우리 정치가 본래의 모습을 갖추려면 우선 정당정치가 당연히 지녀야 할 모습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당은 수공업시대의 기술자와 직공관계와 같은 길드(Guild)정당과 부당하게 만들어진 권력을 지키기 위한 정당,2가지 뿐이었습니다. 전체 국민의 75%를 차지하는 셀러리맨들의 이익을 진정으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이 시간까지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정치가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바람직한 모습의 정당이 나타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지고 정치길드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물러나는,즉 인적청산이 이뤄지면 우리의 정치문화도 한단계 높게 발전할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사회내부의 점진적 개혁도 가능하고 그 바탕위에서 진정한 평화통일문제등도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의원=지금 시점은 세계적인변혁의 시대로서 국내적으로도 급변하는 상황속에 있습니다. 현정국상황등과 관련해 3당합당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지만 앞으로 국가보안법·안기부법 등 안보관련법안에 대한 과감한 개폐와 지자제법안 처리등을 통해 여권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시킬 것입니다. 야당도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반독재투쟁의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다양화시대에 맞는 정책대안을 제시하는등 국민들에게 수권능력을 갖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할 것입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국회나 법정등에 나서 증언을 하느냐 하는 등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소외계층에게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느끼게 하고 풍요의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야가 한발짝씩 물러서서 타협의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정치적 투쟁과 대결의 시대가 마감되는 상황변화가 이뤄졌는 데도 투쟁과 대결구도를 계속 지속해나가길 원하는 인물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다양화되고 평화의 시대를 담당할 세대가 나와야 할 때라고 봅니다. ○세대교체론 신중을 △송 전의원=세대교체문제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새로운 정치를 지향한다고 주장하려면 당연히 3김씨의 퇴진이 전제가 돼야 합니다. 그러나 세대교체문제는 현재 우리의 정치적 어려움이나 국내외여건등을 고려,신중하게 거론돼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나교수=정치인이 물러난다,물러나지 않는다 하는 문제는 주변의 명분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정치인을 하나 길러내는 데도 오랜 시간과 경륜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영국사람들은 정치인 한명이 나오려면 3세대가 걸린다고들 합니다. 오랫동안 정치를 했고 시대에 맞지 않으니 이제 그만두라는 식의 발상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역시 여건이 성숙되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홍부총재=4반세기 전부터 대권쟁패를 해온 사람들이 세대교체주장을 무산시키기 위해 무한 방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측에서는 무한공격을 할 경우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이기 때문에 지난 대통령선거이후에도 무한공격을 삼가해온 것입니다. 따라서 언제까지 무한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3당통합도 무한방어의 한 편린이라고 생각합니다. △송 전의원=최근 개헌문제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습니다만 이 문제는 총선때 묻는 것이 원칙이라고 봅니다. 3당통합으로 의석수를 인위적으로 개헌선인 3분의2를 확보한 뒤 개헌을 강행한다는 것은 일반 상식으로도 용인될 수 없습니다. 개헌의지가 있다면 총선이후에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정리=최태환·이목희기자〉
  • 후세인의 딜레마/부시의 “파병도박”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입,이라크의 사우디 위협 등으로 중동사태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인 강경입장과는 달리 양측이 모두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일자 뉴욕 타임스지가 소개한 「부시의 도박」을 요약하고 후세인의 어려움을 정리해 본다. ◎승부수 던진 「미 모험」/후세인 축출 않고는 불안 여전/「위협제거」 목적달성은 미지수 부시 미대통령은 사우디에 미군을 파병,미국의 경제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단호한 조치를 취했으나 부시는 이로 인해 결과가 분명치 않은 중동위기에 미국과 그 자신의 운명을 함께 하는 도박을 하는 결과가 됐다. 부시대통령의 결정 뒤에 있는 이해관계는 원유의 원활한 공급 및 가격억제라는 점에서 분명하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쿠웨이트를 침공함으로써 이제는 사우디를 위협하고 OPEC를 지배할 위치에 이르렀다. 부시대통령은 세계경제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는 원유에 대한 주도권이 사우디와 다른 OPEC회원국들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사우디에 대한 이라크의 위협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부시는 단계적으로 후세인과 대결하는 상황이 됐다. 후세인이 미국에 도전하고 세계원유 비축분의 반을 삼켜버릴 소모전에 미군을 끌어들인다면 미국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이랍지도자들은 공개적으로 외세와 동맹관계를 맺지 않을뿐 아니라 다른 국가를 파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라크가 먼저 이 규칙을 위반,쿠웨이트를 침공했기에 사우디도 이라크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아랍세계의 비난을 각오하고 외세인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중동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4가지의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첫째는 후세인이 미군을 자극하지 않은 채 쿠웨이트점령을 계속하는 경우이다. 후세인은 아랍세계를 그의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악의적인 반사우디 캠페인을 벌일 것이다. 둘째는 후세인이 사우디에 군사행동을 하거나 미군에 발포하는 경우이다. 후세인은 미사일과 독가스 및 이란과의 8년전쟁에서 숙달된 1백만군을 보유하고 있다. 셋째는 이라크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가 이라크를 질식시켜 후세인이 협상을 제의하는 경우이다. 넷째는 이라크군부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후세인을 축출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미국정부가 가장 바라는 희망사항으로 이렇게 된다면 중동위기가 빨리 해결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군의 조속한 철수를 가져오게 된다. 사우디에 파견된 미군의 임무는 쿠웨이트를 원래상태로 하는데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비록 후세인이 쿠웨이트로부터 당장 철수하더라도 그는 사우디를 위협하는 강력한 세력으로 남을 것이며 아랍세계를 통한 반사우디 캠페인을 선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이유로 부시는 이라크에 정권이 교체되지 않는한 목적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갈림길에 선 이라크/“확전이냐 협상이냐”… 선택 고심/아랍권 외면ㆍ내정 불안에 초조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국제압력에 굴복해 상황을 다시 쿠웨이트 침공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국제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낼 여력을 지금 이라크가 갖고 있는가가 바로 후세인의 고민이다. 후세인으로선 아랍의 일원으로서 미군의 주둔을 허용한 배신자(?) 사우디까지 응징하고 싶겠지만 현 중동위기의 불똥을 사우디에까지 확산시키기엔 이라크가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크다. 후세인의 어려움은 ▲이라크에 일제히 등을 돌린 아랍권의 외면 ▲서방의 경제제재가 미칠 타격 ▲예상외로 신속한 대응을 보이는 서방 군사력의 위협 ▲이라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반후세인 세력의 도전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직후만 해도 상황전개를 주시하며 미온적 대응을 보이던 아랍권은 위기사태가 사우디 침공으로까지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이라크가 쿠웨이트 합병을 선언함에 이르자 사우디와 이집트를 축으로 한 반이라크 전선이 형성돼 아랍형제들에 대한 후세인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이란과의 8년 전쟁으로 파탄직전인 이라크경제에 국제적인 경제제재조치가 남길 타격은 후세인의 목을 조이기에 충분하다. 수입의 대부분을 원유수출에 의존하는 이라크로선 원유수출의 봉쇄는 곧 생명선의 차단이나 다름없다. 또 원유수출이 이뤄지지 않으면 막대한 전비조달이 불가능해 이라크가 자랑하는 군사력도 무용지물로 전락할 우려마저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에 맞서 미ㆍ영ㆍ불ㆍ소 등 선진국들이 보인 신속한 군사적 대응도 이라크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들 선진강국은 이미 페르시아만지역에 전함들을 파견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전력을 증강시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라크가 아랍내의 군사대국이라고는 해도 이들 선진강국의 연합세력과 정면대결을 벌이기엔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자칫하면 이라크 나라전체가 초토화할지도 모르는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이들과의 정면대결에 나서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라크 북부에서 오래전부터 반후세인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준동,82년 이후 끊임없이 나돌고 있는 후세인에 대한 암살기도설과 쿠데타위협 등 내정불안도 후세인으로선 간단히 보아넘기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후세인은 자신에 대한 암살기도를 피하기 위해 매일밤 거처를 옮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현 위기의 장기화로 경제사정이 더욱 악화될 경우 국민의 55%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집권수니파에 반기를 들 가능성도 충분히 점칠 수 있는 상황이다.
  • 50대 한국인발명가/한밤 LA서 피살

    【로스앤젤레스연합】 여러개의 발명특허를 가진 한국인 발명가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피살돼 특허품 시판과 관련된 암살이 아니냐는 의혹이 대두되면서 사건이 확대되고 있다. 피살된 사람은 미국에서만 4가지 자동차부품관련 특허를 가지고 있는 남우철씨(50)로 남씨는 로스앤젤레스의 한인밀집거주지역인 글렌데일의 자기 아파트앞 잭슨스트릿에서 가슴에 총을 맞은 피살체로 지난2일 상오3시15분쯤 신문배달원에 의해 발견됐다.
  • 쿠웨이트 이라크 어떤 나라인가

    ◎전쟁외채 6백억달러… 1백만의 대군 ▷이라크◁ ▲영토=면적은 43만8천3백㎢로 북부 산악지대와 남부 습지로 구성. 이라크를 둘러싼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남동쪽에서 만나 전장 1백92㎞의 샤트 알 아랍 수로를 형성,걸프만으로 흐르고 있다. 이라크는 터키(북),이란(동),걸프만(동남쪽),사우디아라비아(남),요르단과 시리아(서)에 둘러싸여 있다. ▲군사=지난 79년 사담 후세인대통령 집권후 군사력 증강 추진. 현재 병력수는 1백만명 가량으로 의무병역제. 18세이상 남자 21∼24개월 복무. 육군 95만5천명(민병 48만명 포함),군단 7,기갑사단 7,기계화사단 7,주력전차 5천5백대,해군 5천명,프리깃함 5척,초계정 20척,공군 4만명,미그기 등 5백13대 작전기 보유. ▲인구=1천6백만명중 다수가 시아파 회교도이나 집권세력은 수니파. 그밖에 기독교마을과 북부지방에 3백50만명에 이르는 쿠르드 반군 거주지역이 존재. 공용어는 아랍어로 인구의 81%가 사용. 15%는 쿠르드어 사용. 수도는 바그다드로 4백60만명 거주. ▲경제=석유비축량은 1천억배럴. 80∼88년까지의 대이란전으로 석유수출 격감. 그러나 터키와 사우디 통해 파이프라인을 건설했으며 현재는 하루 3백만배럴 수준으로 회복. 대이란전으로 6백억∼7백억달러의 외채 부담. ▲역사=16세기이래 오스만 터키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1916년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21년 영국의 통제를 받는 왕국이 됨. 58년 7월14일 카셈중장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독립. 63년 바트당의 압둘 살람 아레프가 카셈을 암살하고 대통령에 취임,이어 그의 동생 라만 아레프 참모총장이 대통령직 승계. 68년 바트당 온건파의 쿠데타로 바크르장군이 대통령에 취임. 바크르 정부하에서 69년부터 부통령을 지낸 사담 후세인이 79년 평화적 정권교체로 대통령에 취임. ◎석유,하루 백만배럴 생산… 병력 2만명 ▷쿠웨이트◁ ▲영토=1만7천8백19㎢의 영토를 갖고 있는 쿠웨이트는 북쪽과 서쪽으로는 이라크,남쪽과 서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그리고 동쪽은 페르시아만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군사력=병역제도는 2년 의무복무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대학생에 대해서는 1년 복무를 인정하고 있다. 89년 현재 1만6천명의 군병력과 2백80대의 탱크를 보유하고 있다. 공군의 경우 2천2백명이 복무하고 있으며 미라주 F1­C전투기 25대,스카이호크공격기 30대,연습기 1대,헬기 40대,수송기 6대를 보유하고 있다. 또 호크 지대공미사일도 갖추고 있다. 해군의 경우 2천1백명이 복무하고 있으며 미사일 적재함정및 해안순찰선을 포함,약 1백척의 선박을 갖고 있다. ▲인구=1백70만 쿠웨이트 인구중 4분의1이 수도 쿠웨이트와 그 인근에 살고 있다. 인구의 절반이상을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아랍인이며 팔레스타인인도 30만명이 있다. 대부분의 쿠웨이트인들은 수니파 회교도이지만 인구의 30%가량은 시아파를 믿고 있다. 이란 시아파의 후손들은 약 15만명 정도이다. 알사바 가문이 1756년 아라비아 오지에서 이곳에 이주,정착한 후 쿠웨이트를 계속 통치하고 있다. 인구의 70%이상이 공식어인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10%는 쿠르드어,4%는 이란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이다. ▲경제=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인 쿠웨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유이다. 국토의 1%만이 개간돼 있는 쿠웨이트의 지난 88년 개인소득은 1만3천6백80달러이며 89년 상반기(1∼6월) 석유생산량은 하루 1백3만7천배럴이었다. ▲역사=영국이 1899년 이 지역의 주도적인 세력이 되기 이전에는 몽고인,아랍 칼리프,그리고 터키 오토만제국이 번갈아가며 황량하고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이 지역을 지배해 왔다.〈연합〉
  • 아랍권 맹주 꿈꾸는 후세인/대이란 전쟁 주도… 권력기반 다져

    ◎중동패권 거머쥐려 침략도 불사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지난 79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줄곧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해 온 중동의 야심가. 자신은 스스로를 「바그다드의 기사」로 칭하고 있으나 그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바그다드의 도살자」로 부른다. 1937년 4월28일 바그다드 북부 티그리스강변의 티크리트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9개월만에 아버지를 여읜채 숙부 밑에서 자랐다. 18세에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혁명당인 바트당에 입당했으며 1956년에는 친영정권에 항거하는 시위에 참여. 59년 당시의 압델 카림 카셈총리 암살사건에 가담했다가 이집트로 망명했다. 63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집권하자 귀국했으며 9개월후 바트당정권이 쿠데타로 무너지자 체포돼 복역하기도 했다. 66년 석방된 그는 68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재집권하자 혁명위원회 부의장겸 부통령으로 임명되는 등 정상을 향한 도약의 발판을 구축했다. 79년 42세에 평화적 정권교체로 대통령이 된 그는 총리ㆍ총사령관ㆍ혁명위원회 위원장ㆍ바트당총재직을 모두 장악,독재권력의 기반을 확보했다. 중동패권 장악의 꿈을 가진 그는 지난 75년 이란ㆍ이라크 양국이 체결한 수로협정이 불평등하다며 1980년 혁명직후의 이란을 침공,중동역사상 가장 긴 8년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란의 반격으로 한때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미국 및 이란혁명을 두려워 하는 온건 아랍국 사우디와 쿠웨이트의 지원,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정치술수로 오히려 정권기반을 단단하게 구축했다. 철권독재정치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우상화를 꾀하는 등 절대적 지위를 장악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이 끝난뒤에도 중동에서의 패권장악을 위해 군비증강을 부르짖었으며 특히 핵무기ㆍ화학무기 및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역점을 두어 왔다. 그는 이란과의 전쟁기간중 화학무기의 사용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핵무기와 화학무기개발용 부품수입 문제로 미국ㆍ영국 등과 외교적 마찰을 초래해 왔다. 그의 대통령취임후 모두 7번의 암살기도 사건이 있었다. 수니파 회교도인 그는 1963년 사촌인 사지다 톨파여사와 결혼,5자녀를 두고 있다.
  • 로즈여사 100회 생일잔치(세계의 사회면)

    ◎“미국의 왕조”케네디가의 산 증인/영광ㆍ슬픔속 가문의 정신적 지주로/미 의회,7월22일을 「감사의 날」선포/“모든 부문서 1등이 되라”열성적인 자녀교육 「미국의 왕조」라고 불리는 케네디가의 산증인인 로즈 피츠제럴드 케네디여사가 영광과 슬픔으로 점철된 한세기를 보내고 22일 가족들의 축하속에 1백회 생일을 맞았다. 한편 미의회는 이날을 「로즈 피츠제럴드 케네디가에 대한 감사의 날」로 선포,3대에 걸쳐 케네디가를 미국의 최고 명문가로 키워낸 로즈여사의 공로를 기렸다. 고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가족들을 응집시키는 아교풀」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았던 로즈여사는 4남5녀 가운데 둘째아들인 존 F 케네디를 대통령으로,셋째 넷째아들인 로버트,에드워드 케네디를 상원의원으로 키워내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여장부. 그러나 로즈여사의 삶이 행복으로만 가득찼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녀는 1944년 첫째 아들인 조2세의 전사,1948년 둘째딸 캐슬린의 비행기 추락사와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1968년 대통령 선거유세중 로버트를 암살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로즈여사는 슬픔을 가슴으로 삭이며 이를 극복한 초연함과 용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극에서 극으로 모든 행ㆍ불행을 겪어왔던 로즈여사는 1890년 보스턴의 정치인인 존 F 피츠제럴드의 6남매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 역시 케네디가와 마찬가지로 지난 19세기 중엽 아일랜드를 휩쓴 대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가정이었다. 그녀의 부친은 1895∼1901년 하원의원을 역임했으며,1906년에는 보스턴시장을 지내기도 했다. 따라서 허니 피츠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로즈여사는 여유있는 환경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가정적인 조용한 성격의 어머니를 대신해 일찍부터 안주인 역할을 맡아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녀는 명문여대인 웨슬리대 진학을 희망했지만 존 F 피츠제럴드는 그녀를 여동생인 아그네스와 함께 네덜란드의 「성심수녀원」으로 유학시켰다. 로즈여사는 성심수녀원에서의 생활을 통해 침착성과 신앙심을 키울 수 있었으며 이때 체득한 그녀의 독실한 종교관에 입각,그뒤 자신의 딸들을 수녀학교에 진학시키는 열의를 보였다. 로즈여사는 1914년 주영대사를 역임한 백만장자인 조셉 P 케네디와 결혼,케네디가를 세인들의 주목을 받는 가문으로 키워내는데 중요한 몫을 했다. 조셉 케네디부부는 『첫째가 되어야 한다』는 가훈을 바탕으로 자녀들을 강하고 훌륭히 키웠다. 모든 부문에서 2등을 용납치 않은 조셉은 자녀들에게 인습을 무시하고 자신의 규칙대로 살 것을 가르쳤으며 로즈는 경건ㆍ신앙ㆍ엄격함을 가르쳤다. 그녀는 자녀들의 식단ㆍ운동량ㆍ질병을 기록한 신상카드를 늘 지니고 있을 정도로 자녀교육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을 뿐만 아니라 식사시간에 토론을 자주 갖기도 했다. 평소 뛰어난 정치적 감각의 소유자였던 로즈여사는 존 F 케네디가 46년 하원의원에 출마했을 때 선거운동원으로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으며 존 F 케네디가 60년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는 14개 주를 돌면서 무려 46회에 걸쳐 지원연설을 하는 투혼을 보였다. 로즈여사는 평소 『나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정복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무너지면 다른 가족들에게 엄청난 불행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이처럼 정신력 뿐 아니라 10년전까지 수영과 조깅을 즐겼던 강한 체력의 소유자인 로즈여사도 나이는 어쩔 수 없어 요즘은 휠체어에 의지한 채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손자들과 보내는 시간을 낙으로 삼으며 지내고 있다. 그녀는 자서전을 통해 『후손들은 역경ㆍ실망ㆍ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력을 가져야 할 것』이라면서 『신은 우리들이 견디지 못하는 십자가를 지우지 않는다』고 기술,케네디가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흔들림 없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곽태헌기자〉
  • 미 CNN TV 지구촌 뉴스의 총아로(특파원코너)

    ◎개국 10년… 90국 지도자가 시청/챌린저호 폭발ㆍ상항대지진 등 숱한 특종/세계의 뉴스현장마다 빠짐없이 “출동” 미국의 뉴스전문방영 유선텔레비전인 CNN(Cable News Network)이 처음 방송을 내보냈을 때 험담가들은 「Chicken Noodle News」(닭고기국수 뉴스)라고 조롱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후 CNN은 무서운 경쟁자가 되었다. 1980년 6월1일 세계 최초로 24시간 영상뉴스서비스를 개시한 CNN은 지금세계 TV저널리즘의 주역,지구촌 정보혁명의 핵심 엔진으로 부상했다. CNN의 앵커가 위기 지역으로 달려가 그곳 지도자와 인터뷰를 하면 세계가 이를 지켜본다. 이 인터뷰가 끝나면 CNN은 다른 초점지대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처럼 CNN은 독특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정보의 세계화 시대를 열고 있다. 소련과 동구의 민주화는 텔레비전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촉진됐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CNN 그 내부이야기」의 저자인 행크 위트모어는 『세계가 지켜 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동구의 자신들 개혁에 대해 그런 낙관과 용기를 갖지못했을 것』이라며 『세계가 지켜 보는데 어떻게 유태인 학살이나 스탈린 시대 숙청과 같은 잔인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텍사스 A&M대 저널리즘 교수 돈 톰린스는 『CNN의 세계화가 바로 소련과 동구를 변화시킨 주요 요인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지구촌이 돌아가는 얘기를 알자면 제일 먼저 눈을 돌려야 할 곳이 CNN이다』라는 말이 많은 사람의 입에서 나올 정도로 CNN은 지구촌 뉴스의 열쇠로 자리를 굳혔다. 지난 35년간 빅 스리,즉 ABCㆍCBSㆍNBC의 싸움판이었던 미TV 방송시장에서 시청자들에게 「생기있는 새 채널」이란 인식을 심는데 성공한 것이다. 유선TV가 연결된 미국의 5천5백만 가정 가운데 야간에 CNN에 다이얼을 돌리는 가정은 21만9천∼38만4천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ABC의 「오늘밤의 세계 뉴스」는 1천만 이상의 가정이 시청한다. 그러나 금년 1ㆍ4분기중 미국인들이 TV 뉴스 시청에 소비한 총 시간에서 CNN이 차지한 비중은 27%에 달했다. ABC는 28.3%,CBS는 27.5%,NBC는 17.2%였다. 샌프란시스코 지진,미국의 파나마 침공,중국 천안문 사태 등 보도에서 CNN은 숱한 특종으로 경쟁자들을 압도했고 쟁점을 부각시키는데 앞장 섰다. 그러나 CNN에 대해 뉴스처리에 깊이가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CNN은 미국 밖에서 각국의 유선TV 시청 가정 1천호와 호텔 25만개소,그리고 수많은 기업체 및 정부 청사ㆍ대사관ㆍ증권 거래소 등에 연결돼 있다. 극동과 중남미는 미국내와 같은 CNN 프로그램을 시청하고,유럽 소련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에선 CNN의 해외보급 판매망인 CNNI(CNN International)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CNN은 세계 90개국의 정책결정자에게 중요한 뉴스 공급원이 되고 있다. 폴란드 자유노조지도자 레흐 바웬사,쿠바 수상 피델 카스트로,유엔 사무총장 페레스 데 케야르,요르단 국왕 후세인,리비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는 단골 시청자로 알려져 있다. 금년초 CNN이 소련 공산당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사임설을 보도하자 고르바초프가 직접 나서서 이를 부인해야 할 만큼 CNN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지난해 선거 참관차 파나마에 머무르고 있던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은 호텔방을 나서면서 싸움이 벌어진 것을 보았다. 길 건너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그는 다시 호텔방으로 들어가 미 애틀랜타에서 방영되는 CNN을 틀었다. 지난해 여름 천안문 시위사태 때 부시 미 대통령은 CNN이 방영한 탱크와 시위 학생간의 대치상태를 보고 북경의 무력진압에 반대하는 경고 성명을 내놓았다. 개국 프로그램의 첫 광고 방송을 민권 지도자 버논 조단 암살기도사건에 관한 긴급 보도 때문에 중단했던 CNN은 그후 미상원 청문회 생중계,레이건 미대통령 및 바오로교황 암살기도,영왕실 결혼식,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살해사건 등 인상적인 보도를 많이 남겼다. CNN은 1983년 KAL007기 피추사건,베이루트 미해병대 사령부폭파사건,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사건 보도로 언론상을 수상했다. 충격적인 첼린저호 폭발참사사건을 생중계로 보도한 유일한 방송도 CNN이었다. 미 애틀랜타에 본부를 둔 CNN은 지금 1천7백명의 종업원과 23개 지사를 거느리고 있다. CNN로고를 쓰지 않고 일반 보도물을 제공하는 자매회사로 있다. 일부 전문자들은CNN의 시청률이 한계점에 달했다고 말한다. CNN은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빅 스리의 저녁 뉴스에 대항하는 「오늘의 세계」와 추적 조사 프로를 개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극적 결과는 낳지 못하고 있다. CNN의 뉴스담당 부사장 에드터너는 『「오늘의 세계」가 고정 시청자를 확보하려면 최소한 2년은 걸릴 것』이라고 여유를 보인다.
  • 페루 10일 대통령선거/수도 「비상」선포

    【리마(페루)AFP 연합 특약】 페루정부는 오는 10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폭력발생을 막기 위해 수도 리마시와 인근 항구도시 카야오항에 30일간의 비상사태를 1일 선포했다. 오는 10일 보수주의적인 자유운동당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후보와 무소속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후보간의 결선투표를 방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수십차례의 암살 및 폭탄테러가 발생해왔는데 이는 좌익게릴라단체인 「빛나는 길」의 소행으로 여겨지고 있다.
  • 내무ㆍ재무 역임한 여당의“기둥”/콜롬비아 새대통령 가비리아

    ◎마약문제강경… “암살표적 1호” 콜롬비아 집권 자유당 후보이자 마약 밀매단 소탕의 열렬한 지지자인 세사르 가비리아 트루히요 후보(43)가 27일 실시된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에서 총 유효투표의 47.3%를 획득,26.8%의 지지를 얻는데 그친 사회주의 보수계 정당인 국민구조운동(MSN)의 알바로고메스 우르타도 후보(71)를 물리치고 당선이 확정됐다. 집권 자유당과 현정부내에 요직을 두루 거친 경제전문가로 콜롬비아의 「새 세대의 희망」으로 일컬어지는 가비리아는 지난 74년 수도 보고타 서쪽 약 2백㎞ 떨어진 커피재배 페레이라시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40대에 하원의장을 지냈으며 현 비르힐리오 바르코대통령 정부내에서 재무장관(86년)과 내무장관(87∼89년)을 역임한 그는 지난해 8월18일 자유당의 대통령후보였던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 상원의원이 마약밀매조직에 의해 암살될 때까지 선거운동을 지휘했었다. 폭력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신념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그는 마약밀매조직과 좌익게릴라문제에 대한 강경입장 때문에 이미 「암살표적 제1호」가 되고 있다.
  • 외언내언

    일본에서 「명치의 원훈」으로 추앙되는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암살한 안중근의사는 당시엔 흔치 않는 기독교도였다. 박애와 인도의 기독교적 정신의 그가 살생의 길을 간 것은 『남의 나라를 빼앗고 사람의 목숨을 해치려는 인물을 그대로 두는 것은 죄악』이라는 사상,다시말해 원죄자에 대한 응징에서였다고 연구가들은 지적한다. ◆안의사는 그러나 살아서는 신의 모습으로 묘사됐고 죽어서는 가신으로 모셔지는 존재가 되었다. 두 경우 모두 일본인들에 의해서이다. 1909년 10월26일 안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사살하고 체포되어 이듬해 3월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감시를 담당했던 일본헌병상사 지바 주시치(천엽십칠) 일가가 2대째 안의사를 가신으로 모시고 매일 예배를 보는 것이다. ◆거사직후 당당한 태도의 안의사를 신에 비유한 일본인 얘기는 보다 감동적이다. 이토 사살현장에 있다가 총격의 피해를 입은 만철대표 다나카 세이지로(전중청차랑)는 훗날 이렇게 진술했다.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1분이면 족하다. 나는 당시 현장에서10여분간 안중근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가 총을 쏜 뒤 의연히 서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신을 보는 느낌이었다.그것도 음산한 신이 아니라 광명처럼 밝은 신이었다』 다나카는 이어 『그는 참으로 태연하고 늠름했다. 그같은 훌륭한 인물을 일찍이 본 일이 없다』고 술회했다. ◆일본외무성이 그 산하 관계지 「외교포럼」 6월호에 「안중근과 일한관계사」 「조선독립운동」 「옥중기」등 안의사 관계논문과 사료를 게재했다고 한다. 노대통령의 방일이 계기가 되었는지 그들이 저지른 과거를 사실로서 알고자 해서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또는 민족은 다르나 안의사 개인의 충절을 기리고자 했는지 역시 알 길이 없다. 다만 진실된 역사는 갈수록 생동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이토를 쏜 지점에 80년만에 기념비가 건립되고 이토가 쓰러진 지점에도 기념표지문이 설치되는 오늘이다. 그렇다면 한일과거사에 대한 「통석의 염」이 성의인지 수사인지는 이제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 가봉 반정폭동… 정국혼미/야 지도자 암살 항의

    ◎여당사 난입… 약탈ㆍ방화/일부시에 공수부대 투입… 불서도 군 증파 【리브르빌(가봉) UPI 연합】 가봉 야당지도자인 조셉 레드잠비의 암살에 항의하는 수천명의 가봉인들이 빌딩에 방화를 하는등 폭동이 2일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오마르 봉고 가봉대통령은 24일 비상각료회의를 소집했으며 프랑스는 가봉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증원군을 파견하는 등 가봉정세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목격자들은 레드잠비의 암살에 격분한 일단의 반정부 호전주의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며 이에 대비,정예부대가 봉고대통령궁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한편 가봉공수부대가 석유도시인 포르­장티에 투입되었다고 전했다. 보안소식통들에 따르면 연합야당전선 소속의 호전주의자들이 이날 하오 리브르빌에 있는 봉고대통령이 이끄는 가봉민주당사에 난입,약탈행위를 자행했으며 라디오 텔레비전방송국 등 이 도시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건물밖에는 탱크들이 포진,공격에 대비하고 있다. 봉고대통령은 이날 이같은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군지도자들과장관 연석회의를 소집했다고 관영 가봉통신이 보도했다. 한편 파리의 프랑스외무부는 가봉거주 프랑스인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증원군을 파견했다고 발표했으며 이에 앞서 지중해 코르시카섬의 칼비에 있는 제2외인부대 공수연대가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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