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암살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냄새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퇴원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봉사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법인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478
  • “민권운동” 투사 요직 기용/만델라 1차조각 언저리

    ◎“흑백갈등 풀자” 백인각료 수명 배정/음베키 후계자 부상… “좌익많다”평 남아공 총선에서 압승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지명한 각료들은 젊은 활동가보다는 과거 흑인인권운동으로 수감됐거나 추방된 노장들이 대부분이다.이에 따라 앞으로 남아공은 만델라를 위시로 2명의 부통령이 될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타보 음베키 ANC 전국위원장이 지난 50∼60년대 활동했던 전 정치범들로 구성된 각료의 지원속에 움직여 갈 것으로 보인다. 데 클레르크 대통령의 제2부통령 지명은 처음부터 당연시됐던 것이지만 ANC는 이밖에도 슬로보,케이스 등 수명의 백인각료를 지명함으로써 이번 새 내각발표를 통해 흑백화합을 강조하는 인상을 주었다.이는 남아공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최대과제가 흑백갈등에 따른 대립과 반목을 어떻게 해소하는 것이냐라는 점임을 새 정부가 잘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체 27명의 각료 가운데 ANC가 발표한 17명중 절반 가까운 8명이 과거 또는 현재 공산당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경력의 인물들이란 점은 남아공이 안고 있는 또다른 과제인 경제회생과 관련,조금은 우려를 나타내는 대목이라고 할수 있다.ANC가 과거 공산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데 대해 국제사회는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한편 남녀평등을 고집스럽게 주장해온 이제까지의 ANC 입장에 비춰볼 때 여성각료가 단 2명 밖에 지명되지 않은 것은 약간 의외로 보인다. 이날 발표된 17명의 각료중 가장 주목되는 인사는 제1부통령으로 지명된 타보 음베키(51).그는 평생을 투사로 살아오면서도 국제적 감각과 부드러움을 갖춰 차기 대통령감으로 인정받고 있다.이번에 만델라가 음베키를 1부통령에 지명한 것은 사실상 그를 후계자로 천명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음베키는 만델라 유고시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게 된다.짐바브웨에서 ANC 혁명위원회의 사무차장등을 역임하면서 80년대 전세계가 남아공에 대해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외교적 역할을 수행했다.20년 이상을 외국에서 살아 다소 민중과 괴리됐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한편 알프레드 은조외무장관은 지난 69년부터 91년까지 ANC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요하네스버그 흑인거주지역에서 보건감독관으로 일하다 정치활동을 이유로 해고되는등 수차례의 투옥경험이 있는 인물이며 압둘라 모하메드 오마르 법무장관(60)은 ANC 최고의 법률가로 만델라의장이 로벤섬교도소에 수감됐을 당시 변론을 담당했다. 조 슬로보 주택복지장관(67)은 백인이면서도 항상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의 선봉에 서온 남아프리카공산당의장 출신.극우 백인단체들로부터 숱하게 공격을 받았으며 부인은 이 때문에 암살당했다.데레크 케이스 현 재무장관(국민당)은 국제투자가들의 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한 이유로 유임된다. 6일 발표되지 않은 장관은 백인주도의 국민당과 잉카타 자유당등 ANC를 제외한 다른 정당에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이날 1차 각료지명을 끝낸 만델라는 『국민화합정부에 발을 들여놓은 모든 정당은 권력을 함께 행사한다고 느껴야 한다』고 했으며 데 클레르크 대통령도 이에 대해 『미래에 자신감을 가진다.서로가 건설적으로 협력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말했다.
  • 만델라,총선승리 선언/중간 개표결과

    ◎ANC 62%·국민당 23% 득표/군소정당 포함 거국내각 제의/데 클레르크,“10일 대권 넘길것” 【요하네스버그 연합】 27년간 옥살이를 하는 등 인종차별반대 투쟁에 앞장서온 흑인지도자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75)이 남아공 최초의 다인종선거에서 승리했다. 만델라 의장은 2일 저녁(한국시간 3일 상오) 개표가 약 절반가량 진행된 가운데 ANC가 약 62%의 지지를 얻으며 압도적인 선두를 유지하자 지난 수십년간 그의 곁에서 백인의 탄압을 함께 겪어온 수천명의 지지자들에게 연설하면서 총선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마이크를 움켜쥔 채 감격한 어조로 암살된 미 흑인민권운동가 마틴 루터킹 목사의 표현을 빌려,『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우리는 드디어 해방입니다』고 외쳤다. 만델라의 승리로 집권이 확실해진 ANC는 총선개표가 끝나면 국민당뿐아니라 백인우익정당과 줄루족도 내각 참여요건인 5%의 득표율에 미달하더라도 신정부에 참여시켜 거국내각을 구성,정국안정을 기할 방침임을 밝혔다. 그는 국민당을 이끄는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현대통령을 비롯한 각 정당 지도자들로부터 축하전화를 받았다며 새 거국정부에서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하오 6시에는 4년전 만델라를 석방시킨 이래 정치개혁을 선도해온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국민당 당원들에게 『나는 오는 10일 대통령자리를 만델라에게 넘겨줄 것』이라며 총선 패배를 인정했다.데 클레르크는 새 정부에서 부통령 2인중의 한 사람으로 유력시되고 있다. 그는 연설중 목메인 소리로 험난했던 지난 개혁기간중 아내가 그 자신을 지지해줬음을 상기시키면서 연설을 마치고 백인지도자로서는 드물게 흑인해방노래가사를 빌려,『은코시 시킬렐 이아프리카』(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라고 기원했다. 이날까지 개표상황을 보면 약 2천3백만으로 추산되는 투표수(유권자수와 거의동일)가운데 절반가량이 개표돼 ANC 62.8%(6백9만4천8백7표),국민당 23.6%(2백28만9천9백15표),줄루계의 인카타자유당(IFP) 6.1%(59만1천2백78),백인분리주의계의 자유전선(FF) 2.9%(27만8천7백30표),백인중심의 민주당 1.9%(18만9백85표),흑인과격파 범아프리카회의(PAC)가 1.3%(12만7천8백45표)의 지지를 각각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집계는 3일중 나올 예정이며 ANC측은 최종적으로 58∼62%의 지지를 얻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어 6일에는 첫 민주의회가 케이프타운에서 개원해 만델라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며 이에 앞서 독립선거위원회(IEC)는 이번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졌음을 선언할 예정이다. ◎무효 2%뿐… 흑백어울려 춤·노래/남아공 30년만에 국제기구 첫 복귀/대통령 6일 하원 선출·10일 취임/ANC 총선승리 이모저모 3일 하오(이하 한국시간)현재 55%의 개표율을 보이고 있는 남아공의 선거정국은 4일 밤이나 5일중 독립선거위원회(IEC)가 최종집계를 발표하고 이번 선거가 자유롭고도 공정하게 치러졌음을 선언함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예정이다. 이어 6일에는 4백명의 하원의원이 대통령을 선출하고 선출된 정·부통령이 10일 취임하면 선거정국을 관리해온 과도행정위원회(TEC)가 자동해산된다.이것은 남아공이 명실상부한 흑백공존시대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총선 개표가 예상보다 늦어져 의회 개원이 오는 7일이나 9일로 연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선거관계자들은 전망. ○…이번 남아공총선은 투표방식이 까다로워 무효표가 많이 나올 것으로 당초 전망됐으나 실제로는 8백50만표를 점검한 결과 무효로 처리된 것은 전체의 2%정도여서 ANC측은 크게 안도. 전국의회와 지방의회 의원을 각각 뽑는 두 차례의 투표방식에 대해 ANC는 처음 투표하는 사람들이 두 의회의 성격차이를 모르고 첫번 투표지는 제1지지당,두번째 투표지는 제2지지당에 기표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했다는 후문. ○…만델라는 득표율 1%에 불과한 급진파 PAC(범아프리카 민족주의자 회의)등 군소정당도 정부에 참여시키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표시. 그는 일간신문인 「더 소웨탄」지와의 회견에서 『수많은 남녀 투사들이 고통을 겪은 PAC가 이번 선거에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함께 투옥되고 투쟁한 이들을 정부에 참여시키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고 말해 PAC와 AZAPO(아자니아 인민기구)등을정부구성에 참여시킬 가능성을 시사. ○…남아공은 3일 유엔 산하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투표권을 박탈당한지 30년만에 정회원국으로 복귀. 1백87개국 대표들이 모인 WHO 연례 회의는 이날 지난 64년 남아공의 인종분리헌법을 『WHO의 인도주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예외적 상황』으로 규탄한 결의를 30년만에 철회,유엔기구로서는 처음으로 남아공에 대한 제재를 철회. ○…넬슨 만델라 의장이 이날 ANC의 승리와 함께 『마침내 자유를 되찾았다』고 선언하자 전국에서는 수백만명의 흑인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노래하고 춤추며 기쁨에 넘쳐 열광. 요하네스버그 시내 ANC 본부에서는 승리를 자축하는 밤샘 파티를 벌였으며 인근 흑인거주지 소웨토 주민 수십만명은 한때 백인경찰들과 유혈충돌을 벌이던 거리에서 녹·흑·황금색의 깃발을 흔들고 춤을 추며 「인간물결」을 이루기도. 또 시내 중심부의 칼튼호텔에는 ANC 간부들과 고마틴 루터 킹 목사의 부인 코레타 킹 여사,케네스 카운다 전잠비아 대통령등 저명 하객들이 가득 모여 만델라와 함께춤을 추었으며 여종업원들도 정장한 귀빈들의 시중을 들다 말고 춤판에 휩쓸리는 모습. ○…흑인들의 정치참여요구를 거부해온 남아공 백인의회가 수명을 다하고 해산된데 이어 의사당은 이날 최초의 흑인 의원들을 맞을 준비로 부산한 모습. 오는 6일 만델라가 ANC의 승리를 공식 선포하게 될 새의회는 개원식을 앞두고 관계자들이 백인통치에서 민주정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태를 막으려 안간힘.한 관계자는 4백명의 의원들이 한번에 10명씩 마이클 코베트 대법원장 앞에서 선서한 뒤 본회의를 열어 대통령과 의장을 선출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
  • 닉슨의 역사적 평가(뉴욕에서 임춘웅칼럼)

    지난 22일 세상을 떠난 리처드 닉슨 전미국대통령의 진면목은 과연 어떤것일까.그는 역사에 어떤 인물로 기록될 것인가.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닉슨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기 이를데 없다.「위대한 세계의 지도자」로부터 「권모술수꾼」에 이르기 까지 극단적인 평가들이 함께 쏟아져나오고 있다.그것도 어느편이 됐든 아주 「열정적」이란 점도 특이하다.그를 훌륭한 인물로 보는 사람은 극히 「열정적」으로 그를 옹호하며 그 반대인 사람은 또 아주 「열정적」으로 그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닉슨만큼 존경과 증오를 동시에 받았던 인물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공화당 우파의 지도자로 한때는 닉슨과 경쟁적인 관계에 있었던 배리 골드워터 전상원의원 같은 이는 『닉슨은 의심의 여지없이 미국이 가졌던 역대 대통령중 외교정책에서 가장 탁월한 식견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평가한다.27일 있었던 고인의 장례식을 집전했던 빌리 그레이엄목사도 『나는 그가 금세기들어 가장 위대한 인물중 한사람이라고 믿는다』고 말하고 있다. 닉슨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있는 사람들은 전후 공산주의 팽창에 대한 위협이 심각했을때 그는 반공주의자로 그 위협의 성격을 바로 이해했으며 그가 대통령이 돼서는 또 시대의 흐름을 바로보아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의 문을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소련과는 군축협상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던 점을 들고있다. 그러나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매우 판이한 시각에서 그를 평가하고있다.정책보다는 그의 인간됨,그의 도덕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있다. 74년 연방하원이 닉슨대통령에 대한탄핵안을 채택하려할 당시 탄핵안 문안작성에 참가했던 일이 있는 레이 손턴 의원은 『닉슨은 국익과 개인의 이익을 구별하지 못했다.그는 국익이든 자기의 이익이든 그것에 대한 어떠한 위협도 제거해야 한다고 믿었다』고 비판하고 있다.닉슨정부에서 법무장관을 하다 워터개이트사건담당 콕스검사를 해임하라는 압력을 받고 자신이 사퇴하고만 엘리어트 리처드슨은 닉슨을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으로 묘사하고있다.리처드슨은 무엇보다 닉슨은 그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모두 적으로 보았으며 그는 정적들을 항상 의심하고 공격했으며 또 보복했다고 회고한다. 이러한 상반된 평가는 일반국민들에게 적지않은 혼란을 안겨주고있다.많은 사람들은 워터게이트사건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있다.닉슨은 정치적으로 지극히 비열했던 워터게이트사건을 끝까지 은폐하려다 탄핵직전 대통령자리를 물러나야했던 미국역사상 유일한 대통령이다.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임기를 채우지 못한 사람은 모두 9명이다.케네디등 4명이 암살당했고 루스벨트등 4명이 임기중 자연사했다.닉슨만이 죽지않고 현직에서 물러난 대통령이다. 닉슨은 그의 옹호자들의 주장대로 훌륭한 외교적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인가,아니면 그의 반대자들의 주장대로 비판될 부도덕했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인가.역사는 후자쪽일 것이다.예술이나 학문과는 달리 정치권력은 업적보다 권력의 정당성,그 도덕성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평가돼왔다.그것이 정당성 내지 도덕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있는 것은 정치권력의 기초가 국민의 지지라는 극히 도덕적인 기반위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 “선발개도국 경제 거품화 우려”/외국인 투자과잉… 주가 폭등

    ◎IMF/빠른 시일내 시정조치 권고 【워싱턴 로이터 연합】 아시아와 중남미지역 중진 개발도상국가들에 대한 외국인들의 과잉투자가 거품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국제통화기금(IMF)이 20일 경고했다. IMF는 이날 「세계경제전망」 보고를 통해 경제개혁성과에 따라 개발도상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의 2배수준에 달해 올해 5.5%,내년에는 5.8%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같이 진단했다. 이 보고서는 공업국들의 경기회복과 저인플레에 힘입어 많은 개도국들이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경제개혁의 모델로 제시돼 왔던 상당수의 선발 개도국들이 새로운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들 국가의 경우 과도한 자본유입과 주가폭등이 경기과열의 위험과 주식시장의 급격한 변동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방어적인 조치가 없을 경우 주식시장에서 『투기성 투자에 따른 거품(버블)』이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IMF는 이에 따라 일부 국가들은 빠른 시일내에 시정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권고했다. 이 보고서는 거품경제의 위험이 가장 큰 나라를 지적하지는 않았으나 IMF는 지난 수년간 개도국의 모델로 멕시코,아르헨티나,칠레,중국과 인도등을 가리켜 왔었다. IMF의 수석 경제전문가인 마이클 무사씨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IMF의 「우등생」 반열에 끼여 있다고 밝히는 한편 멕시코의 경우 이미 올들어 미국의 이자율상승과 자국 대통령후보 암살사건에 따른 정치소요사태 등으로 인해 상당한 외국자본의 유출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 “「북벌목공 문제」인권차원서 접근을”/박갑동씨 「최근북한정세」강연

    ◎“안보리 핵개입땐 북한 붕괴/김정일이 핵사찰 반대 주도” 전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75·일본 도쿄거주)는 15일 『북한의 김일성주석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수용하려고 했으나 김정일이 반대해 결국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직 북한 고위인사들과 함께 반북한단체인 「조선 민주통일 구국전선」을 결성,상임의장으로 활동중인 박씨는 성균관대 이명영교수(정치학)의 초청으로 내한,이날 하오6시 서울 YMCA회관에서 최근의 북한정세와 「구국전선」의 활동에 관해 강연회를 가졌다. 박씨는 「김일성 테러규탄및 북한동포 인권회복 모임」이라는 주제로 열린 강연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의 개방이 어려운 만큼 이제 통일문제보다 북한 동포의 인권과 생활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 체포된 북한간첩 이복헌이 나와 구국전선 간부들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처럼 북한측으로부터 암살기도와 협박전화,감시를 계속 당해와 본명을 쓰며 활동한 적이 없다』고 폭로했다. 그래서 박씨는 북한정권의 타도를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국민들의 반공의식이 해이해진 것같아 걱정』이라는 그는 『김일성 부자가 있는한 북한에 대한 허황된 인식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의 북한동향과 관련,『북한은 세계적으로 고립돼 있고 사회적으로도 민생이 도탄에 빠진 위기상황에 있어 김일성을 추종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고 조총련도 가족이 북한에 있는 경우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탈퇴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씨는 또 『러시아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인은 같은 동포이므로 다른 귀순자를 받아주듯 인도적차원에서 정부에서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북한의 개방이 앞당겨지려면 외부에서 많은 활동을 해야한다는 뜻에서 구국전선을 발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특히 박씨는 『최근의 핵문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중재에 나서면 북한은 결국 무너질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 해외에 망명정부를 세우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중앙고보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박씨는 재학중 공산주의에 빠져 해방후 남로당 지하총책을 지내다 한국전쟁중 월북,북한 문화선전성 유럽부장을 지냈다. 박씨는 그뒤 북한의 남로당 숙청때 체포돼 박헌영과 같이 총살당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나 북한을 탈출,중국·홍콩을 거쳐 57년 일본으로 망명해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소연방이 와해된 직후인 92년 모스크바에서 결성된 「구국전선」은 박씨와 주소련 전북한대사 이상조씨,전노동당 평양시당위원장 서휘씨,전강동정치학원장 박병율씨등과 이들의 가족등 3백여명이 참가하고 있다.
  •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청산/이연복(기고)

    ◎임정수립 75주년 아침에 4월13일 오늘은 이역만리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가 수립 선포된지 75주년이 되는 날이다.1919년4월10일과 11일 프랑스 조계 김신부로 22호에서 29명의 의원으로 임시의정원을 구성,국호·연호및 관제를 의결해 국무원을 선거함과 함께 임시헌장을 선포함으로써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출범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이는 4월13일 내외에 선포되었다. 임정은 말할 나위없이 3·1운동의 한 결정체였다.독립을 선언한 이상 정부의 수립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그리하여 이 무렵 무려 8개곳에서 임정이 수립 선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실제로 활동한 정부는 한성정부,노영정부,상해정부였으며 이 정부들은 1919년9월15일 ①임정의 위치를 상해로 ②법통은 한성정부의 법통을 계승 ③노령정부는 해소된다는 선에서 통합되었다.이는 헌법개정으로(1차) 이루어졌다.그리고 2차 개헌(1925년)에서는 국무령제(의원내각제)를,3차 개헌(1927년)에서는 국무위원제(집단지도제)를,4차 개헌(1940년)에서는 주석제를,그리고 5차 개헌(1944년)에서는 주석·부주석제를 채택함으로써 모든 당파의 임정으로의 합류와 정치적 상황에 대처해 나가면서 법통을 유지해 왔다.그 사이 임정은 연통제와 교통국의 설치,외교활동,군사활동 등 외로운 항쟁을 지속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임정도 정부조직으로 환국하지 못했다.개인자격으로 귀국했지만 제2의 독립운동이랄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앞장 설 수밖에 없었다.그후 임정의 법통은 비상국민회의→국민회의(대한국민회)→대한민국에 계승된 것이다. 1948년 제헌 헌법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부를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 국가로 재건함에…」라고 하여 (현)대한민국은 임정을 재건한 것이라 하였으며,5·16헌법 전문에서는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유신헌법에서도 같이 표현),그리고 5공화국 헌법 전문에도 「유구한 민족사…3·1운동의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하였으며,6공화국 헌법 전문에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하여 제1공화국과 함께 임정의 법통을 명시한 것이 특이하다 하겠다.즉 모든 헌법전문에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 하였다.정권의 정당성을 논의할 때 그 정통성이란 무엇인가? 이는 전근대사회에서는 혈연적인 의미를 내포한 「바른계통」 「정당한 혈통」을 뜻하는 적장의 계통을 가리켰다.그런데 근대 이후 대중의 발언권이 강화되면서 대중의 지지를 근거로 한 것인가에 따라 그 정통성 여부가 가려지게 마련이다.임정의 법통이란 정통성에 다름아니라고 할 수 있다.역대정권이 과연 얼마나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임정의 법통을 계승하였는지 의문이다.그 계승한 자취를 체계적으로 밝혀내고 더욱 소중하게 이어나갈 참된 노력이 부족하거니와 어느 의미에서는 독립운동의 전통이 도시 희미하고 그것이 여러가지로 문제시되지 않은데에 여전한 민족적 고난의 씨앗이 깃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근 다행히 중국과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상해의 마지막 임정청사 「마당로4호」가 복원되고 1990년부터는 임정수립기념식이 정부주관으로 행해질 뿐아니라 1993년 이래 임정요인들의 유해가 국립묘지에이장되고 있다.또 멀지 않아 중경의 임정청사가 복원된다고 하니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이런 일들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주공화국이 선포된 김신부로 22호도 정확한 고증을 받아 보존할 가치가 있다.이런 유사한 유적지를 상당수 찾을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보다 더 급한 것은 임정의 법통을 계승한 정부라면 임정주석 김구의 암살 경위부터 밝히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청산하지 못한 역사부터 청산해야 하지 않을까?
  • 양기탁선생/대한매일신보 창간… 항일의식 고취(이달의 독립운동가)

    ◎신민회 결성… 만주서 독립군 양성 주도/의용군 국내에 파견,일제기관 등 습격 양기탁선생은 국운이 꺼져가던 대한제국말기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항일의식과 애국계몽의식을 고취한 언론인이자 신민회등 비밀결사를 통해 무장항일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이다. 1871년 4월2일 출생한 선생은 1938년 4월19일에 운명,이달로서 서거 56주기와 탄신 123주년을 맞게 됐다. 평양 출신인 선생은 소년 시절 영어를 배워 1895년 미국인 게일박사의 한영자전 편찬작업에 참여했다.사전인쇄를 하러 일본으로 건너간 길에 근대화된 일본을 보고 감명받은 선생은 귀국후 개화파들이 모인 독립협회에 가입했다. 1898년 독립협회가 친러 수구파에 의해 해산되는 과정에서 체포돼 조사를 받고 나온 선생은 게일박사의 도움으로 도미,3년뒤인 1901년 귀국했다. 노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에는 대한제국 황실 외교담당부서인 궁내부 예식원 직원으로 임명돼 영어통역 일을 했다. 선생은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조선의 황무지개척권을 요구하는 등 침략을 본격화하자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신문운영이 필요하다고 판단,고종으로부터 황실판공비인 내탕금을 지원받아 신문사 시설을 마련했다. 대한매일신보는 일본헌병대의 출판물 검열을 피하기 위해 당시 영국 데일리 뉴스 임시특파원이던 영국인 배설(Earnest Bethell·1872∼1909)을 사장으로 1904년 창간됐다. 이 신문에는 박은식선생을 비롯,신채호·최익·장도빈등이 제작진으로 참여했다.외국인 명의로 발행돼던 이 신문은 일제 통감부의 검열을 피하면서 「일인입불가」를 출입문에 써붙였을 정도로 강한 반일감정을 나타냈다. 국한문혼용인 국내용 신문과 별도로 영문판을 발행한 이 신문은 통감부의 신문지법에 다른 신문들이 얽매여 의병활동을 폭도라고 표현할 당시 의병활동을 높이 평가하는 등 국권회복운동의 대변지역할을 수행,1만3천여부의 부수를 자랑했다. 일제는 눈엣가시 같은 이 신문을 폐간하기 위해 우선 사장인 배설을 영국영사재판소에 치안방해죄로 고소,중국 상해로 추방했다.배설은 형을 마친뒤 서울로 돌아와 옥고 후유증으로 숨졌다. 선생은 이런 가운데 안창호선생을 비롯한 이동휘·이동령·노백린·이시영·김구선생등과 함께 신민회를 창립,해외독립기지 건설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신민회본부는 대한매일신문안에 두었으며 지방지국은 연락망으로 활용됐다. 전국 8백여명의 애국세력이 집결한 신민회는 1909년 독립군 창건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선생의 집에서 전국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는 해외에 독립군기지를 세우고 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국내진입작전을 펼쳐 독립을 쟁취한다는 「독립전쟁 전략」을 채택했다. 선생은 이 계획에 따라 군관학교를 세울 적당한 장소물색을 위해 만주를 답사했으며 1910년 이동령등이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이처럼 신민회의 활동이 뚜렷해지자 일제는 1911년 양기탁보안법위반사건을 꾸며 신민회 중앙간부 16명을 모두 체포,투옥시켰다. 이어 일제총독 암살사건(일명 105인 사건)을 날조해 신민회원 8백명을 전원 체포,선생은 징역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4년만에 석방된 선생은 평남 강남군 쌍용면 신경리에 유배됐다. 선생은 다음해인 1906년 유배지를 탈출해 만주신흥무관학교와 광복회에서 활동중 다시 일제에 체포,국내로 압송돼 전남 거금도에서 2년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유배에서 풀려난 선생은 동양을 순방중인 미국의원단이 서울역에 도착하자 독립만세운동을 펼쳐 또 투옥됐다. 모친 사망으로 일시 방면된 틈을 타 만주로 도피한 선생은 무장항일단체인 의성단을 결성,봉천의 만철병원 습격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1924년에는 이청천·김동삼등과 함께 대한군정서·통의부등 만주내 무장항일단체를 통합,정의부를 결성하고 의용군을 국내에 파견해 일제기관을 공격하게 했다. 선생은 또 중국내 한국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도 추진,김규식선생등과 함께 1932년 한국대일전선 통일동맹을 구성했다. 1934년 임시정부 의정원 회의에서 국무위원으로 선임된 선생은 국무회의가 자신을 국무령으로 추대하자 이를 수락한뒤 한국독립당·대한독립단·의열단·조선혁명당·신한독립당등 여럿으로 갈라진 독립세력을 규합해 민족혁명당을 결성하는등 독립세력의 분열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선생은 1937년 중일전쟁이 벌어지자 미국과 중국내 독립세력의 재규합을 추진,남경에서 한국광복전선을 결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선생은 이 과정에서 과로로 병을 얻어 1938년 68세를 일기로 숨졌다. 정부는 선생에게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전의사,안중근의사에 영향 줬다”/보훈처,일 외교사료 공개

    ◎미서 석방후 러 망명… 같은 집에서 살아/“이등방문 저격에 밀접하게 연관” 추정 친일 미국외교관 스티븐스를 저격,체포됐던 전명운의사는 보석으로 석방된 직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안중근의사와 같은 집에서 살았다는 사료가 처음 공개됐다. 이는 전의사가 안의사의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당시 조선통감)암살에 직접 관여했거나 안의사의 의거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돼 주목된다. 국가보훈처는 5일 이같은 내용이 담겨 있는 일본의 외교사료 「스티븐스 조난사건」을 공개했다. 이 사료는 안의사를 연구해온 국제한국연구원장 최서면씨(67)가 최근 일본에서 입수,국가보훈처에 기증한 것이다. 이 사료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던 전의사의 행적과 재판진행과정,블라디보스토크 망명 이후의 생활 등을 기술해놓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전의사가 구속·기소된뒤 일본측은 현지 변호사를 동원,사형 또는 무기형을 받도록 공작했으나 그의 애국심에 감동한 미국변호사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보석금도 물지않고 석방됐다는 것이다. 그 뒤 전의사는 곧바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독립운동단체 「동의회」에 가입했으며 안의사와 같은 주소지에 거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안의사는 전의사가 블라디보스토크로 온 다음해인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전의사와 안의사가 밀접하게 연관돼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일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전의사를 암살하기 위해 동포매수작전을 펴는 등의 방법을 사용한 사실도 이번 사료에서 확인됐다.
  • 「임정 법통잇기」 문민정부 의지/서재필·전명운선생 유해봉환 의미

    ◎우리민족 자존심 회복에도 큰 도움 유해가 4일 미국에서 봉환된 서재필박사와 전명운의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뒤 이역만리에 묻혔던 독립운동가들이다. 서박사는 조선말 위기에 처한 민족의 현실을 구하기 위해 우리나라 처음으로 순한글 민간신문 「독립신문」을 발행한 언론인이자 정치가·독립운동가로,전의사는 친일 미국외교관의 저격을 기도한 항일투사로 민족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독립신문은 개화기에 독립운동과 자주근대화의 기폭제가 된 독립협회의 창설을 이끌었다는 점이 높이 평가돼 후세에는 독립신문이 발행된 1896년 4월7일을 기념,매년 4월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해놓고 있다. 지난해 박은식·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선생등 상해임시정부요인 5위의 유해가 봉환된데 이어 이번에 다시 두 독립운동가의 유해가 봉환된 것은 유족과 민족의 오랜 염원에 의한 것이다. 현정부는 상해임시정부의 문민전통을 잇고 있음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국선열의 유해 국내봉환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같은 정부의의지는 김영삼대통령이 지난해 박은식선생등을 봉환할 당시 『이들 선열을 모시는 것은 새정부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힌데서도 엿보인다. 정부는 이에 따라 지난해 처음으로 중국정부에 협조를 촉구,중국이 유해봉환요청을 수락하자 지난해 6월 선열봉환국민제전 계획을 확정함으로써 선열유해봉환을 국민적 행사로 끌어올렸다. 따라서 두분 유해의 환국은 문민정부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40여년간을 이역만리에 방치해 왔던 독립유공자들의 유해를 모국에 모시게 됐다는 점에서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커다란 계기가 됐다는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864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송재 서박사는 1882년 과거에 급제,김옥균·서광범·박영효등 개화파인사들과 폭넓게 교유했다. 서박사는 1884년 갑신정변에 적극 가담했으나 정변이 「3일천하」로 끝나자 미국으로 망명,컬럼비아의과대(현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한뒤 제이슨이라는 이름으로 미국국적을 취득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개화파에 대해 무죄가 선언되자 귀국,중추원고문으로 임명된 그는 국민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그뒤 미국으로 건너간 서박사는 현지에서 광복운동을 펼쳤으며 87세로 생을 마감했다. 한편 전의사는 19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이던 미국인 스티븐스가 친일언행을 일삼자 그를 암살하려한 독립운동가이다. 1884년 서울에서 태어나 16세때 하와이로 이민간 전의사는 철로공사장등지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미국내 항일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그는 당시 미국내의 반일감정을 무마키 위해 미국에 돌아온 스티븐스가 「일본의 한국지배가 한국에 유익하다」는 요지의 연설을 하자 이에 격분,1908년 3월23일 샌프란시스코 페링역에서 권총으로 스티븐스를 쏘았다. 전의사는 대부분의 독립운동가처럼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1947년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서·전선생 유해 봉환하던 날/이 부총리는 3백여명 경건한 환영 ○…서재필박사와 전명운의사의 유해는 4일 하오 2시30분 대한항공 061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반세기만에 그리던 고국 품에안겼다. 선열들의 유해와 영정은 이란 승객들이 내리고 난뒤 비행기안에서부터 국방부 의장대에 의해 운구돼 일반 입국장을 거쳐 공항청사 밖에 대기중이던 6대의 운구용무개차에 영정과 훈장,유골순으로 옮겨진뒤 국립묘지로 봉송됐다. ○…선열들의 유해 봉송에는 미국 현지에서 서박사의 종증손인 서동성씨(59·미국 변호사)와 전의사의 둘째 딸 전경련씨(71),사위 표한규씨(53)등 유족과 봉환단장인 김시복국가보훈처 차장,서박사의 고향인 전남 보성의 유준상의원(민주당),오세응의원등 20여명이 동행했다. 또 유해 봉환위원장인 이영덕부총리와 이충길국가보훈처장,김승곤광복회장이 공항에 나와 유해 봉환식에 참석했으며 서박사의 종손인 서희원 전 이화여대 교수(70),전의사의 종손인 전의식씨(49·서울신문 TV가이드부 부국장)등 유족과 각계인사등 3백여명이 유해를 맞았다. ○…서박사의 유해 환국이 성사된 데는 미국 뉴저지주에서 사업을 하는 재미교포 장익태씨(58)의 숨은 공로가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서박사의 종손인 동성씨와 선후배관계인장씨는 지난 59년 미국으로 건너가 서박사의 유해가 방치되다시피 한 것을 보고 지난 68년부터 지금까지 납골당을 관리해 왔다는 것. 10년 전에도 서박사의 유해를 봉환하려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무산됐다고 밝힌 장씨는 『이제야 유해가 환국하게 돼 한편 섭섭하면서도 감사하다』면서 『84년 작고한 서박사의 둘째딸 서 뮤리얼씨가 겨울에 난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아 내가 유골을 돌보게 됐다』고 말했다. 장씨는 서박사의 유해가 처음 안치됐던 챌튼힐의 납골당이 비가 새는 등 관리가 부실해지자 지난 83년 유해를 필라델피아 웨스트로렐힐로 옮겨 관리해 왔다.
  • 대선후보 암살공모 멕시코 용의자 체포

    【멕시코시티 AP 연합】 멕시코 검찰당국은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 멕시코대통령 후보 암살사건에 직접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두번째 용의자를 체포,구금중이라고 28일 밝혔다.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곤살레스 검찰차장은 이 용의자의 이름은 「트란킬리노 산체스 베네가스」이며 그가 암살범인 마리오 아부르토 마르티네스와의 공범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미 정부문서보관소/분가작업 한창

    ◎워싱턴 건물 비좁아 메릴랜드 “제2둥지”/6만㎥분량 자료 보관… 선반길이 8백32㎞/사료 부식막게 포장상자 특별주문 제작 미국「정부문서보관소」는 건국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백여년에 걸친 미국사의 방대한 자료와 기록을 보관하고있는 곳으로 유명하다.이 보관소가 최근 분가를 위한 이삿짐 나르기에 한창이다. 수도 워싱턴에 위치한 이 보관소는 그동안 엄청난 분량의 사료에 비해 협소한 공간,시설 부족등으로 보관상 어려움을 느껴오다 메릴랜드주 칼리지 파크에 최첨단시설을 갖춘 제2보관소가 마련됨에 따라 살림살이를 덜게된 것이다. 새로 건축된 제2문서보관소는 9개의 연구실을 갖춘 최첨단시설을 자랑하고 있으며 한꺼번에 5만8천㎥분량의 자료를 보관할수 있다.사료를 보관하는 선반의 길이가 8백32㎞에 이르며 고도의 보안장치를 통해 이를 관리한다.또 사료의 부식을 막기위해 7단계의 공기여과장치가 설치돼있다.사료보관 창고는 물건에 따라 실내온도를 달리하고 있다.컬러영화필름 보관구역은 섭씨 영하 3.9도를 유지하며 종이 기록이나 지도의 보관구역은 섭씨 21도를 유지하도록 한다.습도는 항상 30∼45%사이를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 새 보관소는 이와함께 앞으로 사료가 늘어날 것에 대비,규모를 확장할수 있도록 설계돼있다. 이번에 제2보관소로 옮겨질 사료중에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사건들에 관한 자료나 기록이 많이 눈에 띈다.독립전쟁(1775∼1783년)및 남북전쟁(1861∼1865년)관련 기록과 사진,25대 윌리엄 매킨리대통령(1897∼1901년)의 취임연설장면을 찍은 사진필름,루스벨트대통령의 노변담화를 담은 테이프,케네디대통령이 암살될 당시 타고있던 승용차의 앞유리,닉슨의 사임을 몰고왔던 워터게이트사건의 도청 녹음테이프등 미국의 역사를 돌이켜 볼수있는 것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이밖에도 UFO나 외계인을 찍은 사진,2차대전중 나치 포로수용소의 수용자 명단,히틀러의 정부였던 에바 브라운의 앨범등을 비롯해 1천1백만장의 각종 지도와 건축도안,7백만장의 사진,11만2천2백74권의 영화필름,20여만개에 달하는 음성및 녹화테이프도 있다. 사료 운반작업은치밀한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향후 3년간 6백80만달러의 비용이 소요되고,동원되는 차량수도 모두 1천1백33대에 달한다.운반될 사료의 포장규모도 올림픽경기를 치를수있는 수영장 6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문서보관소측은 특히 사료의 운반과정에 크게 신경을 쓰고있다.대부분이 낡고 오래돼 운반도중에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이미 20세기 이전의 지도나 문서들은 누더기처럼 해졌거나 심하게 변색된 상태다. 운반계획은 5년전부터 추진됐는데 모든 과정이 치밀하게 계획됐으며 사료의 부식을 막기위해 빛과 산성분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포장상자가 특별히 고안됐다.
  • 멕시코 반란 재연 조짐/민족해방군,대정부 평화협정 보류

    【산 크리스토발(멕시코) AP 연합】 멕시코 남부지역에 거점을 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최근 정부가 전쟁을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평화협정안을 일단 보류키로 함으로써 사태가 또 다시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25일 성명을 발표,정부측이 집권 제도혁명당(PRI)대통령 후보의 암살사건을 반군에 대한 공격의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1일 경제파탄에 항의,멕시코 최남단 치아파스에서 일어난 반군봉기의 평화적 해결노력이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됐다. 이들 반군은 성명에서 또 정부군이 최근 수일동안 병력을 대폭 증강하고 반군거점인 남부지역에 공습을 가하는등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 미,신용편의 지원/60억불 규모될듯

    【워싱턴 로이터 연합】 미국은 24일 멕시코의 여당 대통령후보 암살사건으로 멕시코가 금융상의 혼란을 겪을 것에 대비해 60억달러의 신용편의를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로이드 벤슨 재무장관과 미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알랜 그린스펀 의장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이른바 임시 「스왑 편의」를 두 기관이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며 『미국은 멕시코의 경제정책에 대해 강력한 지지를 계속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 멕시코 여 대선후보 피살/유세도중 총탄 2발 맞아

    ◎정국 긴장 고조… 혐의자 현장서 체포 【멕시코시티 AP 로이터 연합】 멕시코의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던 집권 제도혁명당(PRI)의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 후보(44)가 23일 북부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선거유세도중 괴한의 2차례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고 대통령실 대변인이 23일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콜로시오 후보가 유세도중 머리와 복부에 한차례씩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으나 수술도중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콜로시오 후보의 암살 동기에 대해서는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다.멕시코 대선은 오는 8월 21일로 예정돼 있었다. 이번 암살사건은 연초 남부 인디언 농부들의 무장봉기로 가뜩이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던 멕시코 정국에 긴장을 더해 줄 것으로 예상된다. 아즈텍 TV 방송을 비롯한 현지 언론들도 콜로시오 후보가 병원으로 후송,즉각 복부수술을 받은뒤 부상정도가 심한 뇌수술에 들어갔으나 이날 하오 11시쯤(이하 현지시각) 수술대위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살리나스 대통령은 콜로시오 후보가 숨지기직전 국영 라디오방송을 통해 짤막한 성명을 발표,이 사건을 『치욕적인 행위』라고 규정하고 『오직 조국을 위해 봉사하려던 숭고하고 선량한 인간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검찰총장에게 이번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번 암살사건과 관련,과거 장례회관 직원이었던 올해 23세의 마리오 아부르토를 암살기도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했다고만 밝히고 더이상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한편 살리나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8일 콜로시오를 집권 제도혁명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했었다.
  • 남아공 내전위기 고조/시스케이주 붕괴… 테러·유혈충돌 확산

    【비쇼·요하네스버그(남아공) 로이터 연합】 남아공의 명목상 흑인 독립자치지구(홈랜드)인 시스케이 정부의 요청에 따라 남아공군대가 22일 시스케이 접경에 대거투입된 가운데,줄루족 근거지 나탈주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인카타자유당 세력간 유혈충돌이 확산되고 암살·테러행위가 증대하는등 4월의 첫 다인종총선을 앞두고 남아공 곳곳에서 혼란이 심화됨으로써 전면적 내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비소(남아공) 로이터 연합】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스케이 자치주정부가 23일 병기고를 장악한 경찰과 군인들의 반란으로 붕괴됐다고 현지관계자들이 전했다. 이들은 수백여명의 경찰과 군인들이 지난 22일 자치주 고위관리들을 인질로 잡은 뒤 일부는 풀어주었으나 여전히 30명을 억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아공동부해안일대 7천7백㎦지역을 관할하는 시스케이자치주의 군벌지도자인 오우파 그코조준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자신은 남아공내 4개 자치주 가운데 하나인 보푸타츠와나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방화·폭력사태를 피하기 위해 사임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로 시스케이자치주에서 유혈사태나 무정부사태가 빚어지지 않도록 지원해줄 것을 남아공당국에 요청했다.
  • 북한군 “천하무적” 주장/중앙방송/전국 요새화로 철벽

    【내외】 핵사찰문제를 둘러싸고 최근 「전쟁불사」를 천명하는 등 강경입장을 보이고 있는 북한이 22일 북한군은 『그 어떤 강적도 요절낼 수 있는 무적의 전투대오』라고 주장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이날 「우리 당의 자주 자립 자위노선의 정당성과 생활력」제하의 논설프로에서 전인민의 무장화와 전국의 요새화 등 4대군사노선의 실현으로 「철벽의 요새」로 변모하게 됐다면서 『오늘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이 공화국을 암살하려고 정치 군사적 압력과 경제적 봉쇄를 강화하고 있지만 우리의 사회주의는 절대로 허물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남한폭력단 「조평통」 연결 공작/동남아 암약 간첩 구속

    ◎이복헌씨,6차례 밀입북 국가안전기획부는 10일 동남아의 국제범죄 조직에 가입한뒤 6차례에 걸쳐 북한을 오가며 동남아 일대에서 간첩활동을 해온 이헌복씨(34)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지난 90년4월 사기 혐의로 수배되자 친형 순헌씨(38·농업)의 명의로 위조 여권을 발급받아 동남아로 출국,태국 방콕주재 북한대사관의 주선으로 지난 92년4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6차례에 걸쳐 북한에 들어가 평양 근교 초대소에서 간첩교육을 받은 뒤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일대에서 간첩활동을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안기부의 조사결과 이씨는 지난 91년9월부터 방글라데시 다카에 본부를 두고 동남아 일대를 무대로 청부테러·마약밀매 등을 전문으로 하는 국제범죄조직 「AS」에 가입,중간보스로 활약하면서 지난해 6월 1차로 조직원 50여명을 북한에 보내 인민무력부대 산하 특수부대에서 6개월간 사격·테러·납치·암살등 특수훈련을 받게한뒤 북한측에 훈련 대가로 1백50만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또 입북 기간중 김정일을 만나『조국통일을 위해 일해달라』는 격려와 환대를 받고 「조평통」간부 최승갑,이석 등으로부터 ▲남한 폭력단 보스를 포섭해 「조평통」과 연결할 것▲해외에서 반북투쟁중인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상임의장단 박갑동(74),이상조(72),강상호(73)유성철(73)서휘씨(74) 등을 제거할 것 등 10여가지의 공작지령을 받고 활동해 왔다는 것이다.
  • 미,이란·이라크 2중봉쇄 검토/적대행위 차단

    【워싱턴 AP 연합】 앤서니 레이크 미백악관 국가안보 담당 보좌관은 이란과 이라크의 대미적대 행동을 막고 이들 국가를 「이중 봉쇄」하기 위한 새로운 안보정책을 28일자 「포린 어페어」지 최신호에서 제시했다. 그는 또 북한 쿠바 리비아등과 함께 이란·이라크를 「무법적」이고 「반동적인」국가라고 지목했다. 레이크보좌관은 그러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정부와 이란 회교원리주의 정부를 구분,빌 클린턴미행정부는 후세인체제 전복을 노리는 이라크 망명인사들을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이란 관계에 언급,이란이 『세계적으로 테러와 암살의 최대 배후 지원국』이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우리는 책임있는 당국자간 대화를 유지할 용의가 있다』며 관계개선 가능성을 예견했다. 그는 특히 이란이 걸프지역의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고 전제,이를 막기위해 미국과 우방국들이 화학및 핵무기 제조물질의 이란 유입을 막는데 협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또 이같은 협력을 통해 이란이 『북한등 현재의 공급국가들』로부터 미사일을 도입하지 못하도록 지속적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 「팔」 과격파,대이 보복전 선포/헤브론 총격학살사건 이모저모

    ◎아라파트 노선 맹비난… “암살하겠다”/라빈,“같은 동포로서 부끄럽다” 사과 25일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시에서 일어난 총격 학살사건은 반세기의 원한관계를 끝내려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평화협상에 적신호를 던져주고 있다. 총기 사건이 터지자 팔레스타인측은 곧바로 이스라엘점령지 전역에서 폭력시위를 벌이고 있다.특히 그동안 평화협정을 둘러싸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의 유화적 정책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온 과격파들은 「자치협정이 파기될때까지」 이스라엘에 보복작전을 펴겠다고 선포,사태는 확산될 조짐이다. 아라파트도 이날 지난해 9월 체결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평화협정이 총기사건후 신뢰성을 잃었다며 이번 사건에는 이스라엘군이 연루돼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아라파트와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사건직후 다음주 워싱턴에서 평화회담을 재개하는데 동의해놓고 있어 막바지에 이른 평화협상이 예정대로 마무리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이에 대해서는 아라파트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추진하는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라는 게 서방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또 라빈총리도 이번 사건에 대한 세계적인 비난 여론에 따라 과격한 유태인정착운동이 약화,고립될 가능성이 커 그의 입지가 오히려 넓어지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전세계인이 주시하는 가운데 미국 백악관에서 아라파트와 라빈 총리가 평화협정을 선언하며 악수를 나눈지 5개월여만에 일어난 이번 최대유혈참사는 전세계적으로 비난여론을 빗발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협상을 가로막는 양측내 과격파들에 대한 대응책에 있어 어느 정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이의 성공여부가 중동평화시대를 앞당기느냐 마느냐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태확산◁ 팔레스타인 과격파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하마스」등은 이스라엘과 모든 유태인 정착민들을 합법적인 목표물로 간주하고 이를 향한 공격을 선언했다.이들은 아라파트의 평화노선이 이번 사건을 야기했다고 비난하면서 그를암살하겠다는 경고를 내리기도 했다. 또 이스라엘 점령지역및 남부레바논 난민촌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차량공격,거리행진등 항의시위를 거세게 벌였다. ▷평화협상재개◁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25일 헤브론 사건직후 라빈총리와 아라파트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팔레스타인 자치이행협상을 위해 워싱턴에 협상대표단을 파견해줄 것을 요청해 수락의사를 받아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라빈 총리는 헤브론 회교사원에서 「한 정신병자」가 저지른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만행으로 중동평화 협상이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아라파트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인으로서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각국반응◁ ▲미국=빌클린턴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끔찍한 비극」이라고 말하고 중동평화의 어려운 과업이 더욱 복잡하게 꼬여지게 됐다고 했다. ▲러시아=외무부 성명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이번 학살에 대해 비난입장을 취하고 있다해서 완전히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며 과격주의자에 의한 평화회담 좌초를 막기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고 촉구했다. ▲이집트=이번 사건이 점령지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안전보장과 예루살렘의 지위문제를 중동평화협상의 의제에 포함시켜야 할 필요를 극명하게 확인해줬다고 했다. ▲이란=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이 살아남기위해서는 무장봉기로 이스라엘을 공격해야만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유엔=갈리 사무총장은 헤브론 회교사원의 만행을 신랄히 규탄하면서 유태인 정착민에 의한 또다른 유사사건의 재발 방지에 힘쓸것을 촉구했다. ◎학살범 골드 스타인은 누구/대위 출신… 아랍인 치료 거부한 의사 헤브론시 팔레스타인인 학살사건의 범인 바루크 골드스타인(38)은 아랍인에 대한 폭력행사를 주창하고 이들을 이스라엘에서 몰아내야한다는 극단적 주장을 펼치다 지난 90년 피살된 유태교 랍비 메이르 카하네의 추종자.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골드스타인은 81년 유태계 학교인 예시바대 의대를 나와 당시 카하네가 책임자로 있던 「유태 방위동맹」에 가입했으며 이스라엘로 이주해서는 카하네가 만든 반아랍단체인 카치당의 열성분자로 활동했다. 골드스타인은 11년전 이스라엘에 정착,헤브론시 부근 과격성향의 유태인들이 모여사는 키르야트 아르바 정착촌에서 응급의로 일하면서 아랍­유태인들간 충돌로 인한 희생자들을 치료해왔다. 동료들은 골드스타인이 아랍인들을 너무도 혐오해 아랍인에 대한 치료를 거부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동료들은 골드스타인이 지난해 12월 절친한 친구와 그 아들이 이슬람 과격파에 의해 살해당한데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괴로워 했다고 전했다.그후 아랍인들에 대한 테러를 염두에 둔듯한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 미­일 뉴리더의 자존심/나윤도 국제2부차장(오늘의 눈)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렸던 미일정상회담에서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본총리가 구체적인 「수치목표」에 합의하라는 클린턴 미대통령의 다그침에 단호하게 「NO」라는 대답으로 맞선이래 일본의 대미무역 흑자폭 완화방안을 둘러싼 대립이 첨예화해가고 있다. 호소카와총리는 『이제 미일관계는 성숙한 대인의 관계에 들어섰다』고 회담의 결렬을 오히려 만족스럽게 말한 반면 클린턴대통령은 『일본과의 무역전쟁도 불사한다』면서 강력한 대일보복조치를 지시했다. 「미국의 변화」와 「일본의 개혁」을 내세운 전후세대의 지도자로서 이들이 지난해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탈냉전시대의 뉴리더로 부상했을때 두 지도자는 비슷한 성향과 이미지로 세기말적 혼란을 잘 대처해나갈 환상의 콤비로 기대를 모았다. 특히 이들의 정치적 신념이 「케네디」라는 공통분모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은 일종의 신선감까지 주기에 충분했다.16세때 고교생대표의 한명으로 백악관을 방문,케네디대통령을 면담하면서 받았던 인상이 정치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는 클린턴대통령은 스스로 변화의 책임을 강조하고 미국의 경쟁력 회복을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내세웠다. 1963년 케네디의 암살때 대학졸업반 학생으로 큰 충격을 받아 닥치는대로 케네디 관련서적을 읽게됐다는 호소카와총리는 지난해 출판된 「일본신당 책임있는 변화」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46세의 젊은 대통령을 당선시킨 미국정치의 역동성은 케네디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일본사회에 필요한 것은 케네디가 세계를 향해 내던졌던 이상주의』라고 역설했다. 결국 현재 클린턴과 호소카와의 대결은 케네디의 「뉴 프론티어」정신이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비관적인 양상으로까지 발전하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50여년전 미일간에 전개되었던 역사를 음미해볼 필요는 있을것 같다.1930년대 후반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며 중국에 이어 인도지나 침공을 계획하자 미국의 루즈벨트대통령은 41년 7월 일본과의 경제전을 선포하고 석유·항공연료·고철등에 대한 수출금지와 미국내 일본자산의 동결등 강경제재조치를취했다. 이에대한 일본측의 대응은 5개월뒤 진주만폭격으로 나타났다.당시 총리는 취임 한달된 도조히데키(동조영기)였지만 그 준비는 5년동안 장수총리를 역임했던 고노에 후미마로(근위문마)에 의해서 추진됐다.공교롭게도 고노에총리는 호소카와총리의 외할아버지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