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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 대통령 암살 음모/혐의자 53명 체포

    【카이로 AP 연합】 이집트 당국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과 아테프 세드키 총리의 암살을 음모한 것으로 믿어지는 군인 2명과 여성 1명이 포함된 53명의 회교극렬분자를 체포했다고 보안 소식통들이 19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들은 이들이 또한 카이로 지하철과 기타 공공시설에 대한 공격도 계획하고 있었다면서 이들은 아직 기소되지 않았지만 내달에 재판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 「공연예술의 메카」나윤도특파원 현장리포트(브로드웨이“새바람”:4)

    ◎맨해튼을 거닐며/트라이베카선 드니로 등 명우쉽게 만나/역사의 인물 헤일·그릴리·프랭클린동상 우뚝/구정때면 차이나타운에 용춤 행렬 장관/프랭클린가엔 테디 시어터 등 소극장 많아 『태양은 모든 것을 향해 밝게 빛난다(The Sun it shines for all)』 브로드웨이 280번지,챔버 스트리트와 교차 지점에 있는 시청 부속건물의 외벽 모퉁이에서 브로드웨이 쪽으로 돌출해 있는 작은 시계 「선 클록」(Sun Clock)에 새겨진 이 글귀는 브로드웨이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한면이 50㎝ 정도에 불과한 정육면체의 청동주조물에 8각의 로마숫자판으로 된 이 시계는 스스로 태양이고 싶은 뉴요커들의 심정을 은연중에 대변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래 이 글귀는 19세기 중반 창간돼 1917년에 이 건물로 옮겨왔던 신문 선(The Sun)의 모토였다.뉴욕시청 바로 뒤에 떡 버티고 서서 격동기 미국 현대사의 감시자 역을 맡았던 선은 뉴욕 최초의 페니 페이퍼(한 부 값을 1센트 정도로 정해 누구나 쉽게 사 볼 수 있게 한 신문)로 모든 뉴요커들에게 따뜻한태양 역할을 자청했던 신문이다. 그후 1952년 이 신문이 폐간되고 한동안 선 클록도 멈춰 있었으나 이 시계를 사랑했던 부근의 시청 직원들과 각회사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보수해 놓았다.결국 선은 없어졌어도 선 클록은 뉴요커들의 희망의 목소리로 그자리에 남아 있다. ○남북 6개블럭 연결 남쪽으로 세인트 폴 교회가 있는 풀턴 스트리트로부터 북쪽으로 챔버 스트리트까지 여섯 블록에 이어지는 브로드웨이의 맞은편은 시빅 센터(Civic Center)라 불리는 곳으로 넓은 시티 홀 파크 공원을 중심으로 시청과 각종 부속건물,시경,각급 법원 및 연방사무소 등 뉴욕의 모든 관공서들이 모여있어 뉴욕의 심장부를 형성하고 있다.1870년 최초로 이 공원을 따라 머레이 스트리트에서 워렌 스트리트간 약1백m에 뉴욕의 첫 지하철이 튜브식 공법으로 시험 건설되었다. 이 지역의 브로드웨이는 2백여년 동안 수많은 영웅들을 위한 환영의 거리,축제의 거리이자 데모의 거리,상업의 거리로 발전해왔으며 자연적으로 미국 자유언론의 전통을 탄생시킨 신문의 거리를형성해 왔다. 특히 1811년 완공된 시티홀 앞 광장은 식민지 시절 뉴욕을 방문하는 영국왕을 위한 환영퍼레이드를 벌이던 전통에서 최근에는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홈팀 선수들의 환영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축제가 벌어져 왔다.그뿐만 아니라 1865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후 이틀 동안 시신이 안치됐을 때는 6만여 뉴요커들이 조문을 위해 장사진을 치기도 했던 곳이다. 오늘날 이 거리의 역사는 세사람의 동상이 대변해주고 있다.워싱턴 장군의 부하였던 네이선 헤일(1755∼76)과 언론인 호러스 그릴리(1811∼72),그리고 벤저민 프랭클린(1706∼90)이 그들이다. ○19개 신문가 옮겨가 시청 서쪽의 헤일 대위는 예일대 출신 교사로 독립전쟁이 벌어지자 워싱턴 장군의 군대에 합류,맹활약하다 1776년 9월 영국군에 잡혀 바로 다음날 교수형을 당했다.그가 죽기 전 『내가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나의 목숨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 하고 남긴 말이 영원히 기념되고 있다. 동쪽 브루클린 다리를 향해 서있는 뉴욕 트리뷴창간자 그릴리는 남북전쟁 시대의 개혁가로 노예제도를 공격하고 여성의 참정권 허용, 노동조합 장려 등을 강력히 주장했다.그는 특히 서부 공략을 주장한 『서부로 가라,젊은이들이여(Go West,Young men)』라는 글이 유명하다. 공원 옆 페이스 대학 앞에 있는 미국 정치가의 대부이자 언론인,과학자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새정부 수립시 펜실베이니아 대표로 참석,각 주간 이해 대립 조정자로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으며 자신이 창간한 신문 펜실베이니아 거제트를 한손에 들고 서있다.그 동상 옆에는 헝가리 태생의 조셉 퓰리처가 신문왕국의 발판으로 삼았던 뉴욕 월드 옛사옥이 있다. 이렇듯 시티 홀 파크를 사이에 두고 브로드웨이와 파크로 거리 일대에는 19세기 말 19개의 신문사가 밀집해 있을 정도로 번성한 신문의 거리를 이뤘다.이들은 이 지역에서 1733년 뉴욕 위클리 저널을 창간,영국의 식민통치에 과감히 투쟁하던 존 피터 젱거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유언론의 전통을 세워나갔다.그러나 오늘날 상당수는 없어지거나 더 북쪽으로 이전해 신문의 거리는역사적 이름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이 거리에는 또 근대 상업의 발상지인 브로드웨이 233번지에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있는 울워스(Wool worth)빌딩이 있다.1879년 이 지역에 새로운 형태의 소매점포를 차린 세일즈맨 프랭크 울워스는 5센트·10센트 균일점이라는 다양한 물품을 박리다매로 판매하는 형태로 운영했다. 순수한 소매업만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울워스는 1913년 당시 높이 2백40m,60층의 사옥을 완공시켜 세계 최고의 높이뿐 아니라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더욱이 그는 공사비 1천5백만달러를 은행빚 하나없이 현금으로 지불해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이 건물은 17년간 세계최고의 기록을 보유했으며 아직도 울워스사의 본부로 쓰이고 있다. 이 지역을 지나 챔버 스트리트 북쪽으로 올라가면 브로드웨이의 스카이라인은 마천루 숲을 이루던 남쪽과는 큰 대비를 이룬다.5∼6층 정도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여기저기 중국어 간판이 눈에 들어오면서 브로드웨이는 북쪽의 커낼 스트리트까지 차이나타운의 한부분을 이룬다. 브로드웨이를 서쪽 끝으로 하여 이스트 리버의 맨해튼 브리지까지 넓게 펼쳐진 차이나타운은 구정을 맞아 연일 각종 민속행사가 한창이다.부리부리한 눈에 형형각색의 꽃술이 달린 커다란 두마리의 용이 가게마다 찾아다니며 폭죽을 터뜨리며 1년 동안의 복을 비는 신비한 중국인들의 민속행사들도 브로드웨이의 한부분이 돼 있다. 그러나 브로드웨이의 가장 큰 매력은 역사와의 만남보다도 민속과의 만남보다도 예술과의 만남에 있다.동쪽으로 시빅 센터와 차이나타운을 이끌어온 브로드웨이의 서쪽 일대를 차지하고 있는 트라이베커는 사실상 브로드웨이 예술기행의 출발점이다. ○예술의 감칠맛 더해 「운하 아래 삼각형 모양의 땅」이라는 뜻의 이곳은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백화점들의 창고지역으로 얼핏 보기에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곳이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광맥을 찾듯 빨려들어가게 하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내놓고 보여주기보다는 더듬고 들여다보고 찾아야 가까스로 조금 보여주는 절제된 아름다움은 브로드웨이 예술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요소가되기도 한다. 브로드웨이 예술의 또하나의 매력은 화제 인물의 체취를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어빙 벌린이 성장한 맨해튼 로어 이스트사이드에서 듣는 노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다르듯이 트라이베커에서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를 만나는 것은 뉴욕에 대한 새로운 입문이 된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염세주의적인 월남전 공훈 택시 운전사로 만난 니로와 「뉴욕,뉴욕」에서 사랑에 성공한 색소폰 연주자로서의 니로와 이곳 그리니치 스트리트 375번지 트라이베커 필름센터에서 만나는 니로는 사람도 다르고 뉴욕도 다른 뉴욕이다. 이곳에서 두 블록 떨어진 허드슨 스트리트 110번지의 아파트에 살고 있어 트라이베커의 터줏대감인 니로는 옛 커피창고를 개조해 만든 이 필름센터를 스티븐 스필버그,론 하워드,퀸시 존스 등과 함께 사무실겸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밑에는 트라이베커 그릴이라는 찻집도 공동운영,영화예술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화이트 스트리트 38번지에는 네온 미술가 루디 스턴의작업장이자 갤러리인 「네온이 있게 하라」(Let there be Neon)가 있고 웨스트 브로드웨이와 프랭클린 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에는 자유의 여신상 크라운을 쓰고 있는 테디 시어터,원 드림 시어터 소극장 등 구석구석 창조의 공간들로 채워져 있다. 『자유여,상큼한 자유여(Oh,Liberty,Sweet Liberty)』 프랭클린 스트리트의 한벽면을 장식한 이 글은 브로드웨이의 영원한 모토이기도 하다.
  • 해방정국의 혼란(새로쓰는 한국현대사:6)

    ◎송진우,「건준」 맞서 「국민대회준비위」결성/여운형 내세운 우익의 「합작」노선 반대/“「임정」지지”표방… 고하 피살로 좌익 타격/하지, “「인공」은 소련과 밀접한 관계… 활동 중지”명령 1945년 해방정국은 아주 혼란스럽게 저물어갔다.당시 사회상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있다면 미 국무성이 J R 하지 중장에게 파견한 정치고문 H M 베닝호프의 보고서일 것이다.미군이 진주한 이후 9월15일에 작성한 이 보고서는 「조금만 불똥이 튀어도 폭발할 화약통,그것이 남한의 상황」이라고 기술했다. 그의 말대로 남한은 과연 화약통이었을까.어쨌든 1945년이 세밑에 다가선 12월30일 상오6시 송진우를 저격한 서울 원서동 76의 총성을 시발로 정치테러가 잇따랐다.뒷날 여운형·장덕수·김구로 이어진 암살사건은 해방정국의 혼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송진우는 여운형이 주도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인민공화국(인공)을 선포하자 이에 맞섰다.그래서 건준이 인공을 선포한 다음날인 9월7일 우익지도자 3백80명과 함께 국민대회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아직 중국 중칭(중경)에서 돌아오지 못한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를 지지하고,국민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모임이었다.송진우의 죽음으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다만 건국대회준비위원회는 9월16일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창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 해방정국의 판도를 선점한 인공의 실체를 먼저 딛고 넘어가는 것이 당시 사회상을 돌아보는 수순이 될 것이다.인공이 병아리라면 달걀 격이기도 한 건준은 194508월15일 발족되었다.여운형은 8월14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으로부터 일본 패전소식을 들은데 이어 다음날 15일 아침에는 정무총감 엔도(원등륭작)의 방문을 받는다.행정권을 이양할 테니 맡아달라는 부탁을 해온 것이다.이를 수락한 여운형은 그날밤 자신을 위원장으로 하는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부위원장은 안재홍이 맡았다.이와 더불어 5개의 부서를 두고 2천여명의 청년·학생으로 건국치안대도 조직되었다. 건준에 송진우·장덕수등은 불참했으나 안재홍·김병로·이인등 우익및 중간노선의 인물과 박헌영계열의 좌익세력,정백 중심의 장안파 공산당계열이 들어왔다.말하자면 좌우합작성격을 띤 건준은 지방조직도 확대,8월말까지 1백45개의 지부조직이 이루어질 정도였다.그러나 건준은 건국에 실패하고 말았다.좌익계열이 재빨리 조직을 확대,건준을 장악하고 미군이 진주하기 이틀전인 9월20일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을 선포한 것이다. 미군이 서울에 진주한 이후 9월12일 하지장군이 시공관에서 정치인들과의 대화를 모색할 때 33개 정당대표가 등록한 것으로 되어 있다.이렇듯 복잡다단한 정치상황은 하지의 정치고문 베닝호프가 9월15일 미 국무성에 보낸 보고서에 나타난다.그는 9월말에 가서 이들 정당을 두 집단으로 분류했는데,민주적 보수집단과 급진 또는 공산주의가 그것이다.특히 미군정은 급진주의 주요세력으로 인민공화국을 주목했다. 그래서 미군정은 인민공화국을 도전세력으로 간주하게 되었다.이는 공식명칭에 국가를 상징하는 「국」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유일한 정부를 표방했기 때문이다.더구나 인공은 1946년3월1일 총선거 실시를 골자로 하는 특별조치까지 마련해놓은 상태였다.이에 대해 군정장관 아놀드는 10월10일 한국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군정이 남한의 유일한 정부』라고 못박고 『군정은 다른 형태의 모든 정부를 통제할 권한을 갖는다』고 선언했다. 인공은 이에 맞서 11월 전국인민위원회대표자대회에서도 공화국명칭을 여전히 사용했다.하지는 맥아더에게 보낸 보고서(미 외교문서시리즈 제6·1945년)에서 「인공은 가장 강력한 공산주의 지지세력이고 소련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전했다.그리고 골수 공산주의자가 아닌 상당수의 좌익세력이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인공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 옳겠다고 판단한 하지는 맥아더에게 이 대목에 대한 평가도 구했다. 맥아더로부터 「어떠한 결졍을 내려도 지지할 것」이라는 회신이 돌아왔다.하지는 마침내 인공에 대한 활동중지명령을 내린다.이에따라 주한미군 방첩대(CIC)는 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간판을 떼어버렸다.이렇듯 인공은 미군정 아래서 좌익세력규합 이외에 다른 의미를 거두지 못한 채 사실상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승만과 김구는 인공중앙인민위간판이 내려지기 얼마 전에 귀국했다.이승만은 10월16일,김구는 11월23일에 각각 돌아왔다.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귀환문제,특히 이승만문제는 워싱턴·토쿄(맥아더사령부)·서울(미군정) 사이에 사전조율되었다(미 육군작전국문서 한국편 1945년10월).하지는 한국인의 정서를 고려,이승만·김구·김규식의 귀환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미 국무성은 중국 중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망명지로부터 귀환이 허가되었음을 통보하면서 어디까지나 개인자격 귀환임을 강조했다.여기에는 이승만도 포함되었다.미 국무성은 귀환자들에게 「38도선 이남지역에 머무는 동안 군정당국의 법과 규칙을 준수한다」는 서약서를 받도록 하는 조치도 잊지 않았다.이승만은 귀국 2주만에 반소(반소)논쟁을 벌였다.이에 국무성은 서약을 유의토록 환기시키면서 곧 소련과 가질 교섭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반응을 즉각 보였다. 국제간에 이해가 엇갈린 정치전략은 변화무상한 것인가.철저한 반공주의자에다 항일운동가라는 점을 들어 서둘러 귀국시킨 미국이 이승만에게첫 제동을 건 것이다.김구 역시 이승만과 같은 이유로 여의도 군용비행장을 거쳐 조국땅을 밟았으나 그다음 12월2일 군산비행장에 내린 임정요인들은 고국의 산하조차 바라보지 못하는 미군 장갑차에 실려 서울에 왔다.이승만과 김구의 환국은 다른 정치판도의 변화를 예고하는 서막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승만의 존재는 하지로 하여금 각양각색의 정치단체통합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겨주었다.당시 이승만의 명성은 대단해서 모든 정당이 거의 다 의장직 수락을 제의해올 정도였으니까….이승만은 귀국한 지 1주일도 안되는 10월23일까지 50여개 단체대표를 만났다.그 결과는 독립촉성중앙회 결성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인공과 공산주의자들이 등을 돌려 좌우익 골은 더욱 깊어갔다. 한편 38도선 이북 소련군 점령지역 평양에서는 9월3일 국내파 공산주의 중심인물의 하나인 현준혁이 암살되는 것으로 정치투쟁조짐을 드러내고 있었다.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위원장 조만식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그의 죽음은 한반도 해방정국의 암살1호로 기록된다. 이에 앞서 소련군사령관 치스차코프의 명령에 의해 10월8∼10일 평양에서 북조선 5도대회가 열린데 이어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설립(10월13일)되었다.그리고 김일성이 모습을 드러낸 평양시민대회(10월14일)가 열렸고,들러리정당 조선민주당이 창당되는등 소련의 의도대로 착착 돌아갔다. 역사에는 결코 가정이 없다고 한다.하지만 이런 명제를 무시하고 남북한의 많은 세력이 구심점을 갖추었거나 연합전선을 폈더라면 외세에 의한 분단이 없었을지도 모른다.해방정국은 건국의 옷을 입기는커녕 첫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었던 것이다. ◎해방뒤 「첫 정치희생자」는 현준혁/「사회장사진」국내 첫 발굴/「송진우 저격」 3개월여전 평양서 적위대에 피살/「9월3일 암살」 묘비서 확인… 「소관련」시사 논문도 우리는 해방정국에서 암살1호하면 45년 12월30일에 숨진 송진우를 흔히 떠올린다.그러나 사실상의 첫 희생자가 이보다 3개월이나 앞서 9월3일 평양에서 소련 민정당국과 결탁한 반대파에 암살된 공산주의자 현준혁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흔치않다. 그는 1906년 평남 개천의 소지주 집안출신으로 경성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에서 교수를 지낸 인물.8·15해방을 서울에서 맞아 장안파공산당의 평안남도 책임자로 임명됐다.그달 18일 평양에 도착한 직후 조선공산당 평남지구위원회와 적위대를 조직했다.소련군이 진주한 무렵 다른 공산주의 세력을 압도하고 8월27일 조직된 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될 정도였다. 당시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남의 공산주의 세력은 소련파·화요파·적색노조파등이 복잡하게 얽힌 형국.소련에 대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하던 그는 소군정과 관계가 좋지 못했고 이를 빌미로 반현준혁파들은 그를 반소분자나 부르주아로 몰아세웠다. 그가 심하게 마찰을 빚었던 상대는 평양 보안서장을 거쳐 평양시 적위대장에 임명된 송창겸과 일제때 포목조합 이사장을 지낸 장시우등 소련파.김일성 영입 계획을 추진하던 소련 민정당국은 결국 송창겸과 장시우등 친소적인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현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9월3일하오1시 소련 민정사령부서 회의를 마치고 소련제 스리쿼터를 타고 돌아가다 적위대 복장의 괴한에게 총을 맞고 숨졌다. 그의 죽음에 대해 일본 도쿄대 와다 하루키(화전춘수)교수는 자신의 논문 「소련의 대북한 정책」에서 「암살범이 누구이든 현준혁의 죽음은 소련측으로는 좋은 일이었던 것 같다」고 기술했다. 현준혁의 암살날짜가 지금까지는 9월28일로 알려졌으나 최근 하와이대 서대숙교수가 평양에서 촬영한 묘비 기록을 통해 9월3일로 확인되었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소련당국이 의도적으로 현준혁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러준 당시의 사진도 긴급 입수했다. 이날 암살에 대한 또 다른 설은 당시 민족주의 진영의 거목인 조만식 휘하의 반공주의자들의 거사란 주장도 있다.그러나 현준혁은 당시 조만식을 신뢰하는 사이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약하다는 반론이다.
  • 「케네디가 신화」 이룬 안방마님/로즈여사 타계

    ◎미 보스턴 시장 딸… 24살때 결혼/아들 셋 대통령·의원으로 키워/두아들 암살당하는 비운 감내 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어머니 로즈 케네디 여사가 22일 1백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사인은 폐렴에 따른 합병증. 그녀는 미국대통령과 두 상원의원을 키워내는 등 미국신화를 창조한 훌륭한 어머니로 존경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사고와 흉탄에 아들·딸들을 잃은 비운의 여인이었다.그녀는 아들들이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거나 유세장에 직접 나가 지지를 호소하는 등 적극적 역할을 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를 돋보이게 한 것은 지난 63년과 68년 장남인 존 F 케네디 대통령(당시)과 상원의원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됐을 때 보인 기품과 용기였다. 그녀는 지난 1890년7월 존 피츠 제럴드 보스턴 시장의 「귀염둥이」 딸로 태어나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1914년 고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와 결혼,4남5녀를 낳았다.2차대전중 남편이 영국주재 대사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재기넘친 해학과 지적 능력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1944년미국으로 돌아오면서 그녀 자신이 「환희와 고통」으로 표현한 또다른 인생이 시작됐다.장남인 조지프가 미해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비행기 사고로 죽은데 이어 4년 뒤에는 둘째딸 캐슬린마저 비행기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었다.첫째딸인 로즈마리 역시 정신 이상으로 폐인이 되고 말았으나 아들들이 대통령과 상원의원이 되는 기쁨도 맛보았다. 그녀는 평생을 장애아들을 돕는데 헌신하고 70세 때까지 스케이트를 타고 80세까지 골프를 즐기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해왔으나 지난 84년 심장발작을 일으켜 휠체어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킹 목사 추모사업 싸고 대립/미국/유족

    ◎공원관리국 공사에 반발… 생가 폐쇄/당국/“96올림픽전 유적지 확장” 개발 강행 미국 흑인해방 운동의 지도자로 비폭력적 평화운동에 앞장서온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탄생 66주년을 맞아 킹목사 유적지의 확장 계획을 놓고 유족측과 연방공원관리국측의 심한 대립으로 유적지 입장이 잠정 폐쇄되는 등 킹목사 유업을 기리려는 추모객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16일 킹목사 탄생기념일을 맞아 필라델피아에서는 자유의 종을 울렸으며 연방공휴일로 전국 각지에서 기념행사들이 성대하게 펼쳐졌다.그러나 막상 조지아주 애틀랜타시 스위트 어번 지역의 킹 목사 유적지를 찾은 관광객들은 생가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4만6천여평의 킹 목사 유적지는 킹 목사의 생가를 비롯,시무하던 교회,묘소,학교,기념재단인 킹센터 등이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킹 목사가 39세인 1968년 암살될 때까지의 활동상및 각종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어 미국내 인권옹호의 성지로 매년 수많은 추모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러나 오는 96년 올림픽 경기와 때맞춰몰려들 관광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이 유적지를 관할하고 있는 공원관리국측이 지난해 올림픽 후원사들의 협조를 얻어 유적지내에 1천1백8십만달러를 들여 교회및 방문자센터를 신축키로 결정하자 킹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미망인 코레타 스코트 킹 여사(67) 등 유족측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미 이곳에 6천만달러를 투입해 첨단정보장치를 갖춘 종합인권교육센터를 설립,대대적인 인권테마공원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수립해 놓고 모금중에 있는 유족측은 당국의 처사를 『킹목사의 숭고한 정신과 그 유산을 대중들로부터 유리시키는 계획』이라며 강력한 반발을 보였다. 그러나 시간에 쫓기게 된 공원당국이 지난해 11월 유족들의 동의없이 그대로 공사를 강행하자 유족측은 지난 연말 가장 중심부인 킹 목사의 생가를 폐쇄시키는 등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1980년 역사공원으로 지정된 킹목사 유적지는 미국내에서 뉴욕 자유의 여신상,필라델피아 독립홀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나 여러가지 편의시설이 부족해 올림픽 이전에 어떤 형태로든 정비를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원관리국측은 주장하고 있다. 한편 68년 킹 목사 서거 직후 킹 여사에 의해 세워진 킹센터는 인권옹호를 위해 일할 미래의 세대에 비폭력적 원칙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60여명의 연구진및 5백만달러의 연간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 이라크 군부쿠데타 적발/후세인암살모의/장교14명체포… 장군1명처형

    【테헤란 AFP 연합】 이라크 공군 소속 일단의 장교들이 사담 후세인대통령의 암살과함께 쿠데타를 기도했으나 실패했다고 이란 관영통신 IRNA가 15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암만의 이라크 소식통의 말을 인용,이같이 전하고 쿠데타를 기도한 14명의 장교가 체포되고 이들중 두목인 모하마드 마즐로움 알­달리미이 장군은 처형됐다고 말했다. 이 통신은 또 이들의 쿠데타는 저격수들이 알 라마디 궁 부근서 후세인대통령을 저격하는데 실패한뒤 좌절됐다면서 그러나 미수로 끝난 쿠데타가 언제 발생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이 보도와 관련,이라크 당국이나 망명중인 이라크 반체제인사들로부터 아직 아무런 논평이 없다고 이 통신은 덧붙였다.
  • 멕시코 경제 “NAFTA 몸살”/“부러움속 출발” 1년후의 모습

    ◎대미적자 눈덩이… 페소화 급락/물가상승… 인플레 불안도 고조/잇단 정치적 암살사건 겹쳐 나라 “흔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출범한 94년은 멕시코로서는 약속과 번영의 한해로 여겨졌다.이 나라는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협정을 운영하는 관계로 전세계 투자가들의 부러움을 받는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북미자유무역협정 출범 1년을 맞는 멕시코는 엄청난 정치 및 경제적 변동으로 얼룩졌다.인디언의 반란,일련의 암살사태,마약 및 페소화의 하락 등의 사태를 겪었다.그런가하면 외국투자가들은 수백만 달러를 잃었다.또 멕시코 증시는 44%나 하락했다. 고위인사에 대한 일련의 암살사건은 이 나라를 흔들어 놓았다.지난 3월에는 여당 대통령 후보에 이어 9월에는 사무총장이 살해됐다.마약거래자들은 미국과 멕시코의 사법당국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멕시코 북서부를 배회했다.이처럼 올해는 불확실성 속에서 출발해 불확실성 속에서 끝났다. 전임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대통령은 지난달 1일 멕시코는 시장경제이행계획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자평했다.물론 NAFTA는 수백개의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인플레율을 한자리 숫자로 만들어버린 살리나스 전대통령의 주요업적 가운데 하나였다.그는 그간 멕시코가 많이 변했다고 전제한 뒤 인플레·만성적자·실업률 증가 같은 현상은 이제 더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다시 일어나고 있다.치아파스주의 인디언 반란에 뒤이어 나타난 페소화의 하락은 다시 임금상승 및 인플레의 우려를 일으켰다.소설가 겸 사회평론가인 오메로 아리드히스씨는 멕시코의 번영이라는 이미지가 잔혹한 현실하에서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2주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미주정상회담에서 라틴 아메리카 지도자들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오는 2005년을 서반구의 무역장벽을 철거하는 해로 결정한 바있다.NAFTA는 이 계획의 주춧돌이다.이 무역협정은 미국·캐나다 및 멕시코를 연결하는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했다.그 규모는 3억6천만 소비자와 연간 6조달러의 생산물 산출이다. 확실히 NAFTA는 약속의 조짐은 보였다.올해 첫 6개월간 미국의 대멕시코 수출은 지난해 수준보다 16% 늘어나 2백45억달러에 이르렀다.또 멕시코의 전체수입은 21%늘어 2백34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수출이 수입과 발을 맞추지 못해 무역적자폭은 커져갔다.이는 멕시코가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다는 사실을 의미한다.이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 페소화의 약세였다. NAFTA 지지자들은 이 조약의 장기목표가 단기간의 위기로 가려져서는 안된다고 역설한다.관세가 15년간에 걸쳐 없어지기 때문에 적극적인 이익은 점차적으로 느껴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주멕시코 미국대사관의 대니얼 돌란 경제참사관은 『멕시코는 가망성 있는 곳』이라고 전제한 뒤 『미국은 멕시코의 후퇴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 관계자들은 29일 멕시코에서 경제안정화 방안에 관해 논의했다.세디요 대통령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4%,인플레율을 4%로 각각 내다본 바있다.그러나 이런 전망은 페소화의 하락으로 바뀌어야할 전망이다. 수백만의 가난한 멕시코인들은 이 자유무역협정의 영향이나 혜택을 받지못하고 있다.아무도 NAFTA의 발효로 미국이나 멕시코 양쪽에 얼마나 많은 직업이 창출됐는지를 모른다.멕시코 정부는 실업률이 20년만의 최저치인 6.9%까지 떨어졌다고 말한다.그러나 이는 불완전 고용과 미국 내의 멕시코 불법노동자 3백만을 감안하지 않은 숫자다.
  • 꿈·환상·모험의 나라로 여행/읽을만한 어린이 도서 풍성

    ◎겨울방학 맞아 출판사들 앞다퉈 출판/「교과서에 실린 명작」「문학상 수상작」 시리즈 출판/「마틴 루터킹」「삼강행실도」「만화… 경제」도 선보여 겨울방학을 맞아 서점가에 어린이책들이 쏟아져 나왔다.동화책하면 으레 「인어공주」나 「피노키오」따위 세계 고전명작들을 연상하기 쉽지만 요즘에는 훨씬 다양한 형태와 주제를 가진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우선 눈에 띄는 책들이 새롭게 기획한 외국 명작동화시리즈이다. 「세계 교과서에 실린 명작동화」(전 9권,일과놀이 펴냄)는 각 나라 국민학교 저학년 교과서에 실린 동화·동시들을 모은 책.어느 나라나 아이들에게 상상력·어휘력·사고력들을 키워주기 위해 최고 수준의 작품들을 교과서에 싣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야말로 대표작들이라고 할 수 있다.내용이 재미있으면서도 나라마다 특색이 있어 아이들에게 그 나라 정서를 알려준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현재까지 미국·일본·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이탈리아·남미국가편이 나왔고 곧 영국·이스라엘편을 낼 계획이다. 이에 견주어 중앙미디어에서 낸 「세계 아동문학상」시리즈 6권은 독일·프랑스·미국·오스트레일리아·노르웨이의 이름높은 아동문학상 수상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6권 모두 최근 작품들이어서 고전명작과는 또 다른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를 현대 감각으로 보여준다. 장편동화이고 신나는 모험이야기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한길사에서 펴낸 「꿈과 모험의 나라 나르니아」시리즈(전 7권)는 영국의 학자이자 공상소설 작가인 C S 루이스의 대표작이다.어른들은 갈 수 없는 곳,사람과 동물이 함께 어울리는 환상의 땅 「나르니아」에서 벌이는 모험이야기로 각권마다 등장인물과 사건전개가 달라 다양한 즐거움을 준다.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박상률씨가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겼다. 이밖에 「어린이 글짓기 소프트 200」,「마틴 루터 킹」,「삼강행실도」시리즈,「만화로 배우는 경제」시리즈들이 권할만한 책이다. 「어린이 글짓기…」(문학동네 펴냄)는 엄마시인 12명이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글을 쓰게 할까」를 함께 고민하다 내놓은 글짓기교재.논설·설명·기록문과 동화·동시등 각 장르별로 자세히 설명하고 예문을 곁들였다.시인 이탄·박제천씨가 편집했다. 창작과비평사가 낸 「마틴 루터 킹」은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싸우다 암살당한 흑인목사 킹의 일생을 그린 전기.그동안 어린이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삶을 통해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만화로 배우는…」(전 2권,능인)은 어린이라도 경제개념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 아래 줄거리를 가진 만화로 쉽게 풀이했으며,「삼강행실도」(전 3권,서해문집)는 나라사랑·부모사랑·이웃사랑등 3가지 주제로 나눠 그같은 삶을 산 선조들을 소개함으로써 교훈을 주고 있다.
  • 멕시코 물가 폭등/페소화 하락 영향… 이번주 60%

    【멕시코시 AP AFP 연합】 멕시코의 페소화 시세가 23일 외환시장에서 연 4일째 떨어졌으며 이같은 하락으로 일부 소비재 가격이 금주에 60%나 상승했다. 페소화의 대 달러 시세는 계속되는 투기와 투매로 22일 전일보다 16% 떨어진 달러당 4.60 페소였으나 23일에는 소폭 하락하는데 그쳐 4.70페소로 거래됐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소폭 하락이 정상으로 다소 돌아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멕시코 금융시장을 뒤덮은 불안이 완화되어 가고 있는 징조라고 말했다. 멕시코는 올해 1월1일의 북미자유무역협정 발효후 유망한 새 투자대상으로 부상했으나 금년초 동남부의 치아파스주에서 발생한 반란사건,계속되는 정치적 암살사건및 페소화가 과대평과됐다는 생각 등이 투자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쳐 12월 한달동안에만 약 60억달러의 자본이 해외로 도피된 것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했다. 금주의 금융시장 위기는 이같은 이유외에도 지난 20일 정부가 페소화의 환율 변동폭을 확대한다고 발표,페소화가 15% 평가절화됨으로써 촉발됐다. 이밖에 22일 정부는 페소화의대달러 환율 변동폭을 60일간 자유화하는 비상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때문에 페소화의 평가가 30% 더 떨어졌다.
  • “「백악관 수난」 원인 불투명”/잇따른 총격… 전문가들 대책 부심

    ◎“모방범죄 재발 가능성… 일반인 통제”/“정부에 대한 적개심 표출” 의견 눈길 미국 백악관 주변서 잇따라 발생한 총격사건으로 보안문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으나 이를 설명할 뚜렷한 행동양태가 발견되지 않아 사태 재발을 막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범죄 전문가들이 토로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마빈 볼프강 범죄학교수는 20일 백악관 정문밖에서 주거부정의 한 남자가 칼을 휘두르자 경찰이 발포하는 소동이 벌어진뒤 『다른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상징적 제스처를 취할 현실적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볼프강교수는 이같은 모방 폭력의 위험성 때문에 일시적이나마 백악관 부근 펜실베이니아가 일부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을 봉쇄할 필요가 있다고 제의했다. 그를 비롯한 범죄 전문가들은 백악관 주변서 지난 9월이후 4번째 발생한 보안위반 사건의 성격을 딱부러지게 하나로 규정하지 못해 당혹스러워 하고있다.이들은 그러나 백악관이 문제인물이나 적개심 있는 사람들의 분명한 목표물이 되고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사회학자인 리처드 원더리치는 이에대해 『지금은 혼란한 시기다.정부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말했다. 미국 공원 경비경찰은 20일 마르첼리노 코니엘(33)로 밝혀진 주거부정자에게 2발의 총을 쏘았으며 그는 인근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에도 위독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보안소동의 발단은 지난 9월 12일 소형 비행기 한대가 백악관 뜰에 불시착하면서 조종사가 숨진 사건. 또 지난 10월29일에는 백악관밖 펜실베이니아가 보도에서 한 남자가 29발의 반자동소총을 난사했다.범인 마틴 듀런은 그후 대통령 암살미수죄등 15가지 죄로 기소됐다. 지난 17일 이른 아침에도 백악관 남쪽뜰 밖에서 총탄이 발사돼 백악관 건물에 맞았으나 범인을 잡지 못했다.
  • 이봉창의사 옥중수기 발견/일 재판소 서고서

    ◎신문·재판기록도 함께 【도쿄=강석진특파원】 일제침략기에 도쿄에서 히로히토(유인)일본왕 암살을 기도했던 항일 독립투사 이봉창의사의 옥중 수기와 함께 이의사의 신문 및 재판기록과 관련된 일본 외교문서가 14일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씨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일본 최고재판소 서고에서 62년만에 발견된 옥중수기 및 관련기록은 지금까지 일본정부가 일왕 위해와 관련된 내용이라는 이유로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으나 최근 하타노 아키라(진야장)전 일본법무상의 주선으로 이번에 햇빛을 본 것이다.
  • 최초의 영화사/불파테 설립 98돌 기념전/파리 퐁피두 센터서 내년

    3월까지 열려/초기 영사기 등 3천점 전시/희귀영화 3백편 상영… 불 영화사 한눈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영화를 산업화한 인물은 프랑스인 샤를 파테다.파테는 꼭 1백년전인 1894년 파리 근교 뱅센 숲근처의 전시장에서 미국의 에디슨이 만든 축음기를 처음 보고 당시 7백프랑에 구입한다. 파테는 다음해 런던에서 영사기를 산지 1년만인 1896년 동생과 함께 파리의 리슐리에 거리에 영화제작사인 파테회사를 차리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98년동안의 프랑스 영화뿐 아니라 세계 영화산업의 역사가 그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 언론들이 파테 개인을 영화계의 「최초의 황제」라고 부르기에 서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이런 파테 영화전시회가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지난달말부터 시작해 내년3월6일까지 열리고 있다. 퐁피두센터의 중앙에 자리잡은 전시장에는 이 회사의 상징인 수탉 로고와 함께 초기단계부터 2차대전때까지의 영화제작 기구 3천점이 전시돼 있다.이곳에서 볼 수 있는 희귀영화만도 3백편. ○백년전 축음기 선봬 무성영화시대초기에 실물 대신 그림을 그린뒤 돋보기로 확대해 촬영하던 당시의 기구와 모습들이 전시장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더 들어가다 보면 목소리를 전해주던 1백년전의 축음기 10여종도 그 역사를 뽐내고 있다. 전시장내의 특별관에는 1912년 가정에서 볼 수 있도록 개발된 미니 영사기로 가로30㎝,세로 20㎝의 작은 화면에는 3분짜리 단편 희극영화를 볼 수 있다.텔레비전이나 비디오의 시초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셈이다. 프랑스 최초의 장편영화인 「달갑지 않은 사건들」(1908년)이나 영화예술의 정상으로 꼽히던 「귀즈공작의 암살」(1909년)등의 영화선전 포스터는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늑대와 함께 춤을」이나 「연인」,「마르고 왕비」등 최근의 포스터도 함께 나붙어 있어 포스터만 보고 있더라도 프랑스 영화사를 알수 있다. 파테가 자랑하는 것은 뉴스영화인 파테 주르날.한국의 대한뉴스에 해당하는 파테 주르날은 오래전 극장에서 사라졌지만 1908년부터의 프랑스 사회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한다.무엇보다 파테는 뉴스영화를 만들기 위해 아시아지역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에 처음으로 카메라기자를 포함한 특파원을 내보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1백주년 기념전도 전시장 한쪽에서는 1910년대 뉴욕·모스크바·빈·런던·캘커타·싱가포르·도쿄등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만든 계약서도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 당시 파테의 위력을 실감 할 수 있다.파테는 1차,2차대전을 겪으면서 황혼기에 접어들어 이탈리아인의 손에 넘어가기도 하는등 그동안 명맥만 겨우 유지해왔다. 그러나 파테는 지난8월 프랑스 재력가인 제롬 세이두씨가 인수한뒤 대규모 투자를 하는등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2년뒤의 1백주년을 맞아 과거의 영광을 되살린다는 부흥운동을 펼치고 있다.
  • 불,방글라작가 국빈 대우/32살 여류 나스린,회교교리비판 유명

    ◎테러위협 받아… 경찰1천명 경호작전 국가 정상이 아니면서 정상의 대접을 받는 일은 흔치 않다.그런데 프랑스에서는 한 방글라데시 여인이 국가정상에 버금가는 접대를 받고 있다. 32세의 방글라데시 여류 작가인 타스리마 나스린은 지난 24일 파리 부근의 오를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프랑스 경찰의 삼엄한 경호를 받았다.국가원수의 방문시에도 특별한 때만 배치하는 테러전담 경찰까지 동원됐다. 프랑스 언론이 나스린씨의 도착 사실을 알리면서 별도로 방글라데시를 소개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한 여성에게 특별대우를 하는 것은 나스린씨가 테러 대상이기 때문이다.나스린씨는 남성우위의 회교국가인 방글라데시에서 여성의 권위를 찾는 내용의 소설 「라자」(수치라는 뜻)를 쓰고 난뒤 법원으로부터 이슬람교의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방글라데시의 회교 근본주의자들은 나스린에 대한 지명수배를 내렸고 그녀는 테러의 제일 목표가 됐다.요즈음 파리 시내의 길거리에서 동남아인은 무조건 경찰의 검문대상이다. 프랑스가 작가들에게 국가원수급 경호를 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옛 소련의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나 「악마의 시」를 써 이란의 회교주의자들의 암살 대상이었던 살만 루시디의 경우가 있다. 프랑스 당국은 나스린씨가 프랑스에 머무르는 다음달 3일까지 10일동안 모두 1천2백여명의 경찰이 경호에 투입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프랑스도 당초에는 자칫 국내에서 테러를 당할 경우 추락할 국가 위신을 생각해 나스린씨의 입국에 소극적이었다. 프랑스는 당초 나스린씨가 입국사증을 신청하자 입국하지 말라는 식으로 24시간 체류비자를 발급하겠다고 밝혔다.이때문에 나스린씨는 지난 8월 방글라데시를 떠난 뒤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아파트에서 계속 머물러야 했다. 그러다 인권신장을 위해 테러의 대상이 된 사람의 입국은 인권보호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뒤늦게 10일간의 비자를 발급해줬다.
  • 영화심의 논란/강한섭 서울예전교수·영화평론가(굄돌)

    「데미지」 「투캅스」 「추락」 「엠마뉴엘부인」 「너에게 나를 보낸다」그리고 「해적」.금년 한햇동안 여론의 도마위에 오른 문제의 영화들이다.창작의 자유와 영화심의라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영화들은 이런 「유명한」 영화들만은 아니다.오늘도 상영과 방영불가의 판정을 받아 공개가 금지된 영화들의 리스트는 계속 늘어가고 부분 삭제된 영화수는 그보다도 훨씬 많다. 영화창작자들은 보통 이러한 심의의 존재에 분통을 터뜨리며 창작자유의 완전한 보장을 요구한다.그러나 영화가 범죄 증가와 풍속저해의 한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심의강화를 목청 높이 외치고 있다. 영화심의가 여론의 주제로 떠오를 때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편저편으로 나뉘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비판한다.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 모두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영화심의는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주장은 매우 논리적인 것 같지만 영화심의를 규정하고 있는 영화법이나 방송법도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반면에 흉악한 범죄만 발생하면 마치 마녀사냥식으로 범죄와 영화를 결부시키는 주장도 속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허구가 금방 드러난다.영화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에도 살인마들은 수없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하는 서구의 논리로 대한민국의 영화작가가 누려 마땅할 창작의 자유를 논해서는 안된다.또 마찬가지로 종교,국가 그리고 가족의 보수적 가치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영화작가에게 윤리적 책임의 갑옷을 씌워서는 안된다. 자유를 절대시하다가 포르노와 폭력영화의 함정에 빠진 서구의 상황도,자신의 종교에 비판적인 소설 하나도 수용하지 못하고 작가에게 암살자를 급파하는 회교원리주의의 모습도 측은하기는 마찬가지다.영화심의에 대한 우리의 논쟁은 그래서 새로운 차원을 필요로 한다.
  • 5공특위 간사 역임 강신옥민자의원(인터뷰)

    ◎12·12 “증원거부 명분 못된다”/역사 바로세우기 그런 방법 뿐인가 민자당의 강신옥의원은 일년째 국회도서관으로 출근을 한다.아예 의원열람실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들어앉아 책도 읽고 조사작업도 한다.국회도서관에는 간혹 들르는 국회의원들이 더러 있지만 상주하다시피 하는 의원은 강의원 뿐이다.도서관의 수위도 의원열람실이 어디냐고 물으면 『강의원을 찾느냐』고 되물을 정도다. 그런 그가 요즈음 매달리고 있는 것은 「백범 김구선생 암살 진상조사」작업이다.묵묵히 혼자서 한다.법사위의 진상조사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이 작업을 「민족의 정기와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민주당이 12·12사건에 대한 역사를 바로잡겠다면서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는 데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한마디로 『방법이 틀렸다』고 했다.또 「12·12」 문제에 대해 『정치적 판단은 지난 89년 5공청산으로 이미 끝났고 역사적 판단은 뒷날에 맡기는 것이지 지금 이 사건을 새로이 정치쟁점화해서 국회를 공전시킬 일은 결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다만 그는 『현재 법률적 판단 때문에 공방이 있는데 이것도 지금 민주당이 하는 것처럼 정치투쟁으로 할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얼마든지 제도권 안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를 거리에 나가서 떠드는 것은 국회의 도리가 아니다』면서 『투쟁에도 룰과 절차가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의회를 공전시키는 것은 불법이자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지난 89년 「5공특위」의 통일민주당 간사로서 「12·12사건」등 과거청산의 일익을 맡았던 그는 『당시 여야 4당대표가 어려운 나라사정을 감안해 「과거청산이 밥먹여 주느냐」면서 정치적 대타협을 한 것』이라고 밝히고 『당시 5공특위위원장을 거쳐 원내교섭단체 대표인 원내총무를 맡았던 이기택대표도 참여했던 일』이라고 상기시켰다. 그는 민주당이 강경투쟁으로 치닫고 있는데 대해 『12·12가 모든 나라일을 제쳐놓고 승부를 걸 일이냐』라고 반문하면서 『싸울 때는 싸우지 않고 합의해 놓고는 이제와서 개인적인 이미지나 이해 때문에 태도를 바꾼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는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12·12」때 김재규의 변호인을 맡았던 그는 『검찰이 12·12 관련자에 대해 범죄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기소를 하지 않은 것은 고뇌에 찬 결정으로 이해한다』면서 『다시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이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역사란 당리당략적인 정치투쟁으로 바로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흐르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정확한 진상을 규명해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비로소 바로세워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듯 했다.
  • 차지철씨 「정치가 암살」 책 냈었다/강신옥의원,국회도서관서 발견

    ◎해방후 정치지도자 테러경위·배경 분석/“백번암살에 자유당 관여”… 배후규명 시도 「10·26 사건」으로 숨진 차지철 전청와대경호실장이 백범 김구선생을 비롯,송진우 장덕수씨등 해방정국 정치지도자들의 암살경위와 배경을 분석해 저술한 책자가 발견됐다. 이 책은 특히 백범선생 암살의 배후에 당시 정권의 고위층이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해 유신시대 정권 막후에서도 이 사건의 배후규명 작업이 시도됐음을 시사하고 있다. 국회 법사위의 「백범선생시해사건 진상조사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신옥의원(민자당·전국구)은 13일 차 전경호실장이 지난 78년 청와대경호실 이름으로 펴낸 「암살자」라는 3백여쪽짜리 단행본을 국회 도서관 금서목록에서 발견,공개했다. 대외비 표시가 돼 있는 이 책의 제본은 「5·16」거사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고 박정희 전대통령 통치 때 사실상 정부간행물센터 역할을 했던 광명인쇄공사가 맡았다. 차 전실장은 서문에서 육영수여사의 피격을 막지 못한 청와대 경호팀의 자괴감을 피력한 뒤 대통령과 주요인사의 경호에 만전을 기하려는 뜻에서 책을 발간했다고 밝히고 있다. 케네디 전미국대통령 암살사건등 각국의 암살·테러유형과 배경,경호의 문제점등을 분석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이 책은 해방후 정치지도자의 암살사건에 절반이상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백범선생 암살사건에 대해 이 책은 『사건배경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던 김구주석에 대해 정권욕에 사로잡힌 자유당정권 고위인사들이 조종한 사건으로 추측된다』고 밝히고 있다.특히 『이승만박사와 정견을 달리한 김구주석에 대해 장은산중령,김지웅 등을 사주하고 이들의 부하장교 안두희 한국상등 10여명의 행동대원들을 움직이게 한 정권 고위층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경호문제에 대해서는 『사건 당일에도 암살정보가 있었으나 소지품 검색없이 권총을 허리에 찬 안두희에게 요인과의 면접을 허용한 것은 경호상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송진우 전한민당당수 암살사건에 대해서는 『경호원이 부로닝권총으로 응사하려 하였으나 불발돼 범인들이 도주하는등 장비점검이 소홀했다』고 적고 있다.장덕수 한민당정치부장사건에 대해서는 『경호경비가 불완전한 일반 정치지도자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위장된 범인에 대한 경계가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결론부분에서 이 책은 해방정국 암살테러사건의 특징을 ▲배후규명 미흡 ▲테러범 다수가 유학 학병 등으로 일본과 연관을 맺은 점 ▲청년들의 범죄심리를 이용한 점 ▲범인들이 따르던 윗사람의 암시에 좌우됐다는 점 등으로 요약했다.
  • 암살된 친아버지·남편뒤이어 정계입문/스리랑카 첫여대통령 쿠마라퉁가

    ◎권위적 비판불구 타밀반군과 협상주도 스리랑카 사상 첫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된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여사(49)는 화려한 정치경력,비극적인 개인사,고집스런 신념으로 뭉쳐진 여걸이다. 지난 8월 좌익인민동맹당(PA)을 이끌고 총선에서 승리해 17년만에 정권을 잡은 쿠마라퉁가 여사는 총리에 취임한 뒤 3개월만인 지난달 반군 「타밀 타이거」와 4년만에 평화협상을 열었으며 인플레억제를 위해 식료품가격인하등의 과감한 조치를 폈다. 그녀는 권위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타밀반군과의 협상을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승리를 평화와 협상에 대한 유권자들의 주문으로 받아들이고 협상을 가속화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녀가 스리랑카 최초의 여성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토대는 이미 그녀의 어머니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여사 때부터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아버지 솔로몬 디아스 반다라나이케는 지난 59년 총리직을 수행하던중 암살됐으며 6개월 뒤 시리마보 여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여성총리에 당선됐다.쿠마라퉁가 여사는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경제학박사과정을 공부중이던 지난 72년 어머니의 정치적 해금과 남편 비자야 쿠마라퉁가의 총선출마를 돕기 위해 귀국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88년 남편 쿠마라퉁가가 사회주의정당을 결정한 직후 정부전복을 꿈꾸던 급진 싱할리족단체에 의해 암살당함으로써 그녀는 아버지에 이어 남편마저 정치판의 제물로 보내야 했다. 그녀 자신 또한 암살위협을 받아 영국으로 출국했다 90년 귀국했다. 그녀는 분리독립을 원하는 소수 타밀족(힌두교도)에게는 평화의 희망이 되고 있으나 다수 싱할리족(불교도)은 그녀가 어머니에 이어 권위주의정치를 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 교황청­마피아 정면대결 위기/교황 반마피아운동 발언 발단

    ◎교황/이 국민에 범죄단 근절 투쟁 호소/마피아/신부집에 죽은 양 배달… 보복 위협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마피아조직 근절을 위해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한데 대해 마피아조직이 반마피아운동을 주동하고 있는 신부에게 칼로 목을 베어 죽인 양을 보내 보복을 경고함으로써 파문이 일고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5일 마피아 거점지역인 시칠리아섬 카타니아를 방문한 교황이 미사 도중 행한 반마피아운동 촉구발언 때문.교황은 이날 30여만명의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미사를 집전하면서 반마피아 투쟁을 벌이다 지난해 암살당한 고 피노 푸글리시 신부를 「위대한 시칠리아인」으로 추모한뒤 『시칠리아의 모든 주교들과 이탈리아의 모든 교인들이 마피아에 맞서 용기있게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에대해 마피아는 미사가 끝난뒤 카타니아 교구소속으로 반마피아운동을 벌여온 지노 사체티 신부(55)집앞에 칼로 목잘라 죽인 양을 던져놓았다.마피아는 이와 함께 『당신도 이같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메시지까지 남겼다. 사체티 신부는 팔레르모 근교 교도소에서 죄수들을 교화하는 활동을 하면서 반마피아운동을 벌여왔는데 앞서 지난 9월에도 마피아조직원들에 의해 승용차가 불태워지는 등 위협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뜻하지 않은 마피아의 경고까지 받게 되는 등 카톨릭 교회가 마피아의 새로운 목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황으로서는 강경입장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5월에 시칠리아를 방문했을 때도 『마피아를 비롯한 어둠의 세력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하늘의 명령』이라고 강조했던 교황은 이번에는 『시칠리아인들은 빛과 정의로 무장해 마피아조직 근절을 위해 분발해야 할 것』이라며 더욱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 마피아 세력과 정면대결할 뜻까지 밝히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교황의 이같은 마피아에 대한 강경한 입장은 지난 4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마피아의 거점인 시칠리아 지역에 7천명의 병력을 파견하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나왔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정부와 마피아조직의 오랜 싸움은 이제 카톨릭 교회로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 팔 과격단체 지도자 폭사/회교지하드 소속

    ◎「이」 소행 추정… 보복 다짐/“자치” 가자지구서 첫 폭탄테러 【가자 AP 로이터 연합】 과격파 팔레스타인 정치단체 회교지하드(성전)의 지도자인 하니 아베드(35)가 2일 가자지구에서 승용차에 장치된 폭탄이 폭발하는 바람에 중상을 입은 후 숨졌으며 이 정치단체의 지지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이에 대한 보복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폭발사건이 누구의 소행인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회교지하드의 정신적 지도자 압둘라 샤미는 지난달 19일 텔아비브 거리에서 한 회교도에 의한 버스 폭발로 22명이 숨진 테러사건이 발생한 후 과격파 팔레스타인 단체 회교성전및 하마스의 군사지도자들을 추적해서 살해하도록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이스라엘 군경에 명령했다고 지적,이번 사건이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경찰은 이 폭탄사건을 조사중에 있다고 말했는데 지난 5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가 시작된후 이런 사건이 발생하기는 이것이 처음이다. 아베드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가자시 인근의 과격파 회교도 거점인 라드완에서는 주민들이 거리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소지하고 있던 총을 높이 쳐들면서 『이스라엘을 죽여라』는 구호를 외쳤다. 회교성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경찰이 결탁하여 이 암살사건을 저질렀다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앞으로 이스라엘 군인과 이스라엘 정착민을 표적으로 삼는 무력공격을 격화시키겠다고 다짐했다.
  • 백악관 총격범 “클린턴 암살기도”/동료증언… FBI도 증거포착

    【워싱턴 AFP 연합】 미연방수사국(FBI) 관리들은 지난달 29일 미백악관에 총격을 가한 프랜시스코 마틴 듀란이 빌 클린턴 대통령 암살을 기도했음을 입증해주는 증거가 발견됨에 따라 그에게 암살미수죄 추가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일 보도했다. 듀란은 총격사건 직후 체포돼 현재 4가지 중죄혐의로 구속중인데 미 콜로라도주의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브로드무어호텔에서 그와 함께 근무한 데이비드 밀스씨는 1일(현지시간) 밤에 방영된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듀란이 『대통령 제거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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