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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 2세기 언론인의 자세/정진석 한국외대 교수(기고)

    ◎“국민신뢰 받으려면 자정 노력을”/서울신문 “정부­국민의 가교” 독립신문 정신 계승 한국의 언론은 불행한 시기에 출발하였다.그러나 훌륭한 선각자의 정신을 유산으로 이어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행복하다.독립신문이 창간된 1896년은 국민이 위기감에 떨던 무렵이었다.일본 암살객들이 한밤중에 궁중에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난 직후였고,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숨긴 아관파천이 일어나던 무렵이었다. 개화의 선각자 서재필 선생이 미국 망명생활끝에 고국에 돌아와서 느낀 인상은 국민들의 절망감이었다.국민의 생활은 자신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보다 더 비참한 지경이었다.나라의 후진성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가르치는 일,그리고 정부와 국민간에 신뢰를 쌓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 서재필 선생의 결론이었다.이 두가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신문의 발행이었다. 독립신문은 이리하여 우리나라 첫 민간신문으로 탄생하였다.그러므로 서재필 선생은 신문의 상업적인 이익을 앞세우지 않았다.신문발행의 목적이 결코 취리하려는데 있지 않음을 명확히 밝혔다.불편부당,정부와 국민간의 가교,그리고 비판정신이 창간사를 통해서 천명한 신문발간의 목적이었다.세계 어느나라도 최초의 민간신문이 이와같이 시대적 사명을 명확히 밝히면서 출발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독립신문은 민주주의와 주권재민의 사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며 관리는 백성의 종이라고 가르쳐 주었다.관존민비의 사상이 지배하던 전체군주 시대의 신문으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독립신문의 한글 전용은 획기적인 문화혁명이었다.우리의 말과 글을 통해서 자주·개화사상을 전파하여 국민의 자존심을 드높이고,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값을 헐하게 하여 독자의 부담을 줄이려 했던 경영방침도 신문발행의 목적이 개화와 자주,국민계몽이었기 때문에 나타난 발상이었다. 서재필 선생은 영문판 독립신문(The Independent)을 함께 발행하여 우리의 사정을 국외에도 알리려 하였다.그는 1백년 전에 이미 신문의 세계화를 실천하였던 것이다.한마디로 그는 독립신문을 「조선 인민을 위한 신문」으로 규정하였다. 독립신문의 정신은 한국언론의 전통으로 계승되었다.1957년부터 언론계에서 독립신문의 창간일을 「신문의 날」로 정하여 자성의 하루로 삼기로 했던 것도 바로 독립신문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언론인들의 뜻을 모은 것이었다.독립신문 시대에도 기사를 내어 달라고 신문사로 「촌지」를 보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그러나 서재필 선생은 그 돈을 받지 않았다.신문에 광고를 내기 위해서는 규정된 광고료를 받거니와 기사상관으로는 단 한푼도 받지 않을 터이니 앞으로는 돈을 넣어 기사를 청탁하지 말라고 준엄히 꾸짖으며 이를 돌려보냈다는 기사가 독립신문에 실려있다. 언론계가 스스로 채택한 윤리강령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언론인들이 자정을 소리높여 외쳤고,언론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되풀이하기 몇 차례였던가,그런데도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오히려 높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오늘날의 언론인들에게 1백년 전의 독립신문 정신을 배울 것을 감히 권고해본다. 서울신문이 지향하고 있는 권위지,정부와 국민의 가교역할,그리고 상업주의 센세이셔널리즘의 탈피와 같은 시도는 바로 독립신문의 정신을 구현하려는 의지로 평가하고 싶다.민간신문 창간 1백주년은 잔치의 행사가 아니라,새로운 탄생을 위한 아픈 고뇌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선각자 서재필 선생의 가르침이 아닐까.
  • 태,테러방지센터 운영/정상회담때 테러활동 방지

    【방콕 연합】 태국경찰은 25개국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개최를 붕괴시키려는 국제테러분자들의 입국 봉쇄 및 국내에서의 활동 저지를 위한 테러방지센터를 설립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청 부대변인 파이랏 퐁차런경찰 소장은 이 센터의 목적이 ASEM을 앞두고 정보교환,테러활동 예방 및 진압에 있다고 말하고 현재 인터폴(국제경찰)등을 통해 1천2백명의 국제테러리스트와 암살범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태국의 네이션지는 이날 경찰은 일부 외국 테러리스트들이 ASEM 붕괴를 목적으로 태국에 이미 잠입해 있다는 언론보도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네이션지는 그러나 태국에 잠입한 테러리스트들의 소속이나 국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뉴델리 둘째날(김 대통령 아주순방 여로)

    ◎「원칙없는 정치 혐오」 등 간디 어록에 감명/교민 리셉션서 동포노고 치하·단합 당부 아시아 3국 순방 이틀째인 25일 인도에서 취임 3주년을 맞은 김영삼 대통령은 뉴델리 간디묘소에 헌화하고 교민들과 리셉션을 가진데 이어 수행기자들과 기념 오찬간담회를 갖는등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간디묘소 헌화◁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공식수행원 전원을 대동하고 마하트마 간디의 묘소인 라즈 가트를 찾아 헌화환 뒤 기념식수. 이곳은 실제 간디의 묘소가 아니고 참배 공원 성격의 성역. 김대통령은 48년 간디가 암살된 뒤 화장된 장소인 이곳에 마련된 「묘소」 입구에서 이곳의 관례대로 신발을 벗고 별도로 준비된 신발로 갈아신은 뒤 제단앞에 이르러 한국 무관 2명의 도움을 받아 화환을 제단에 얹고 약 1분동안 묵념. 김대통령은 이어 제단을 한바퀴 돌아보았는데 제단 북쪽의 가스불꽃을 보면서 『간디의 정신이 이 불꽃처럼 영원히 살아있다』고 기렸고 제단 남쪽 정면에 새겨진 「오! 신이여」라는 간디가 암살될 때 최후로 남긴 말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기도. 김대통령은 제단 입구로 되돌아나와 방명록에 서명하고 묘소 관계자로부터 간디에 관한 서적 4권과 이곳의 삽화가가 즉석에서 그린 김대통령 삽화를 증정받고 『고맙다』고 인사. 김대통령은 이어 바로 옆 벽면에 새겨진 간디의 어록 일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어록이 씌어진 두루말이를 선물로 받고 환한 웃음.어록의 내용은 「원칙없는 정치,노력없는 부,양심없는 쾌락,특성없는 지식,도덕없는 상거래,인간성 없는 학문,자기희생 없는 신앙」등 간디가 혐오한 7가지 사회악을 정리. 김대통령은 곧 묘소 동쪽으로 1백여m쯤 떨어진 잔디밭에 마련된 기념식수장에서 우리나라의 후박나무 비슷하게 생긴 카담바 1년생을 식수. 간디묘소를 방문한 외국정상들이 차례로 나란히 기념식수를 한 카담바들은 2년만에 4∼5m,3년만에 7∼8m로 키가 자랄 정도의 속성수라고 한 관계자가 귀띔. ▷교민리셉션◁ ○…김대통령은 이날 숙소인 1층 소연회장에서 뉴델리에 거주하는 교민과 상사 주재원 대표 24명을 접견하고 격려. 김대통령은 현동화 한인회장 등참석자에게 한인사회의 활동상과 한국기업들의 진출 상황,네루대학의 한국어과 개설등에 대해 질문하며 깊은 관심을 표시. 김대통령은 특히 반공포로 출신으로 지난 54년 인도에 정착한 현회장과 지기철씨에게 『어려움 속에서도 인도에서 생활해온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점차 커지고있는 동포사회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당부. 김대통령은 이어 『오늘은 내가 대통령에 취임한지 꼭 3년이 되는 날』이라며 『지난 3년간 끊임없이 개혁을 추진,안정을 이룩했다』고 회고. 김대통령은 『오늘 아침 간디 묘소를 참배했는데 그가 남긴 유훈 가운데 「원칙없는 정치,일하지 않는 부,봉사하지 않는 종교는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는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소개. 김대통령은 『앞으로 우리나라와 인도의 협력관계는 빠른 속도로 진전될 것』이라며 『우리 교민들이 인도사람들로부터 정직하고 신용있는 사람들로 인식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강조. 김대통령은 접견이 끝난뒤 소연회장 옆 정원에서 교민대표들과 기념촬영.
  • 북 테러 배후조종 간접 시인/유엔안보리서 남북공방

    ◎평양지칭않고 아웅산 사건 등 거론/북,의장에 항의… “도독제발저린격”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남북한이 국제 테러리즘 문제를 놓고 직간접적인 대결을 펼쳐 각국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올해 안보리에 처음 진출한 우리나라와 북한간에 벌어진 「테러 공방」에서 북한측은 스스로 지난 83년의 랑군 아웅산 폭파암살사건과 87년 KAL 858기 폭파사건의 「배후조정국」임을 시인하는 「악수」를 둔 것으로 평가됐다. ○…우리측 박수길유엔대사는 지난달 31일 무바라크대통령 암살미수사건과 관련한 안보리 공식회의에 참석,국제테러를 강력히 규탄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면서 사례로 아웅산 폭파사건과 KAL기 폭파사건을 언급.박대사는 『당시 모든 물증이 확보돼 테러의 배후 조정국가가 확인됐음에도 국제사회가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면서 『이번에는 국제테러리즘의 범인을 반드시 체포·처벌해야 한다』고 강조.박대사는 발언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북한을 직접 거명하는 대신 「테러 후원국가」라고 우회적으로 표현. ○…북한 박길연대사는 2주일만인 지난 13일 갑자기 안보리 의장인 올브라이트 미국대사(여)와 면담을 갖고 한국 박대사가 국제 테러리즘 규탄발언중 두 사건을 언급한데 대해 강력히 항의.그는 『한국대사가 그것을 북한과 연계시킨 사실은 한국이 안보리 지위를 나쁜 목적을 위해 악용하고 있다는 증거』라면서 『한국대사의 발언은 현재의 한국의 정치적 위기와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주장.그는 나아가 『그같은 행동은 앞으로 한반도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고 사태악화에 대해 안보리가 책임을 져야 하며 특히 미국은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생트집.올브라이트 대사는 『당시 모든 안보리 이사국들도 국제테러행위에 대한 개별적이고 구체적 사례들을 언급하였으므로 한국대사의 발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하고 북한 박대사의 항의를 안보리에 보고하겠다고 약속. ○…14일 열린 안보리 비공식회의에서 올브라이트 대사는 북한 박대사의 면담내용을 요약보고한 뒤 안보리가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제시.올브라이트 대사는보고 말미에서 『공직생활 중 가장 이상한 면담이었다』고 소개했으며 각국 대표들은 여러차례 웃음을 참지 못했다는 것.우리측 박대사는 보고가 끝난 뒤 발언에 나서 『북한을 지칭하지 않은 채 두 사건을 언급했는데도 북한이 공식항의를 제기한 것은 기이하고 흥미로운 일』이라고 지적하고 「도둑이 제발 저린 격」이라는 우리 속담을 인용하자 안보리 각국 대표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고.
  • “크렘린 다음 주인은 대머리”라고?(박갑천 칼럼)

    『크렘린의 다음 주인은 대머리』.지금 러시아에 번져나고있는 우스개라 한다.역대의 크렘린주인이 한사람 걸러 대머리였기에 나오는 말이다. 우선 소비에트연방을 건설한 레닌이 대머리였다.그를 이은 스탈린이 다보록머리였고 그다음의 흐루시초프는 대머리였다.다시 브레즈네프의 다보록머리에 이어 안드로포프 대머리,다보록머리의 체르넨코를 대머리 고르바초프가 잇고 그를 이은 옐친은 새하얀 다보록머리다.그런데 다음의 강력한 대통령후보 두사람(주가노프와 체르노미르딘)이 모두 대머리니 어느 쪽이 되든 대머리­다보록머리 전통은 이어진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기묘한 우연의 일치를 곧잘 찾아낸다.그러면서 망상스런 의미부여를 하며 즐긴다.미국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한때 나돌았던 입방아도 그것이다.그건 링컨대통령으로 거슬러오른다.그가 암살된건 재선된 다음해인 1865년이었다.한데 처음 당선된 해는 1860년.그해로부터 쳐서 20년마다 당선된 사람은 재임중에 죽어온다는 내용이다. 정말이다.1880년 당선된 가필드는 이듬해 20대대통령으로 취임하여 넉달만에 암살된다.25대 매킨리는 1900년 재선됐으나 다음해 무정부주의자의 저격으로 숨진다.1920년 당선된 하딩은 샌프란시스코 여행중에 급사하고 1940년에 3선된 루스벨트는 44년 4선된 다음 종전을 앞두고 병사한다.60년당선자 케네디도 암살된다. 그「법칙」대로라면 80년,70줄노령으로 당선된 레이건대통령도 이승사람이 아니어야한다.하지만 재선임기 마치고 퇴임하여 며칠전엔 85회생신을 맞고있다. 역시 호사가들의 언거번거한 주먹구구놀이엔 구멍이 뚫린다.그러므로 크렘린의 다음 주인으로도 남몰래 근사모아온 털북숭이가 들어설지 누가 알랴. 땅이름에 부여하는 예언성·신비성도 사람들의 그런 호기심과 맥이 통한다.가령 평양서쪽 30리에 있다는 부산현의 신비를 보자.그 왼쪽언덕에 석장군상이 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 거기서 흐른 피가 부산현에서 멎었다.임란때 평양까지 온 왜군이 부산현을 못넘었으니 전해내려오는 비참­『왜놈들이 부산으로부터 쳐들어와 부산에서 멈춘다』가 그럴싸해진다(「국포쇄록」).남녘부산과 북녘부산을 꿰어맞춘 견강부회 전설이다. 흥미로운 우연의 일치에 상식과 논리를 뛰넘는 일들이 세상엔 많다.하지만 관심은 가져볼망정 별쭝나게 신비성에 빠져들 일은 아니다.생각하자면 이승을 영위하는 섭리의 뜻이 하나같이 신비 그것 아닌가.
  • “대시리아 협상 낙관”/페레스 이스라엘 총리

    【런던 AP 연합】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총리는 1일 이츠하크 라빈 전 총리가 암살된 데 따라 새로운 위임을 받기 위해 조기총선을 요구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페레스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또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이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방문할 때마다 평화협상에 어느 정도의 진전이 있었다면서 크리스토퍼 장관이 내주 다시 양국을 방문할 때 새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시리아와의 협상전망을 낙관한다고 말했다.
  • 일재 식민사관 맞선 애국계몽 사상가/이달의 독립운동가 신채호선생

    ◎자주적 한국 고대사 재구성,민족사관 확립/연해주서 광복활동… 「조선혁명선언」도 집필 단재 신채호선생은 1880년 11월7일 충남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림마을에서 태어났다.정언을 지낸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숙에서 6살 때부터 한학을 교육받아 10살때 행시를 지었으며 12살때 사서삼경을 독파,신동으로 불렸다.18살때 한말유학자였으며 학부대신이었던 양원 신기선의 천원군 목천 사저를 출입하면서 신·구서적을 섭렵,새로운 학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했다. 1898년 성균관에 입학한 선생은 박은식이 주도한 진보적 유학경향을 접하면서 유교학문의 한계를 깨닫고 봉건유생의 틀에서 벗어나 점차 민족주의적 세계관을 키워간다. 26살때인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됐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위암 장지연의 초청으로 황성신문의 논설기자로 입사,애국계몽운동의 이론가로서 이름을 떨치게 된다.당시의 애국계몽운동은 일제에 주권을 빼앗기던 상황에서 실력을 양성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민족운동의 한 방법이었다.그러나 같은해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됨에따라 장지연이 시일야방성대곡의 논설로 조약을 규탄하자 황성신문은 압수조치와 함께 무기정간처분을 받았다. 1906년 영국인 베델이 사주로 있던 대한매일신보의 논설진으로 참가,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통렬히 비판하고 국권회복에 온 국민이 진력할 것을 호소했다. 당시 일본 사학자들은 「조선사」등을 저술,조선이 고대 이래 중국과 일본에 복속했으며 일본은 가야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해 남한을 지배했다는 등의 초기식민주의사관을 퍼뜨리면서 한국침략을 정당화하기에 광분하고 있었다. 선생은 이같은 일제의 거짓학설에 대한 학문적 투쟁을 전개,민족주의에 입각한 자주적이며 실증적인 한국고대사 재구성에 노력했다. 1910년 신민회 간부들은 국내에서의 국권회복운동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먼저 국외 독립운동기지를 구축한 뒤 장차 일제와 독립전쟁을 전개하기로 하고 선생은 안창호·이갑 등과 함께 중국 망명길에 올랐다. 선생은 연해주에서 광복회를 조직하고 권업회의 기관지 「권업신문」의 주필로 활동하는 한편 상해에서는 박은식 등과 박달학원을 세우는 등 국외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북경·천진 등에 유학하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대한독립청년단」의 단장으로 활동했다. 같은해 임시정부 발기회의 참가했으나 의정원 회의에서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추대하자 그가 윌슨대통령에게 한국에 대한 위임통치청원서를 제출한 사실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에 반대하고 퇴장했다.또 상해 임시정부가 노령임시정부와 한성임시정부를 묶어 통합임시정부로 발전할 때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역시 임시정부와 결별하고 반 임시정부의 노선을 걸었다. 무장투쟁노선을 지지하는 언론활동을 한 선생은 의열단의 독립운동노선과 투쟁방법을 천명한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했다.이 선언은 일제의 요인과 기관을 암살·파괴할 폭탄·단총과 함께 의열단원이 휴대하는 필수품의 하나였을 정도로 국내외 동포들에게 적개심과 독립사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 일제당국을 공포에 빠뜨렸다. 1924년 집필된 선생의 「조선상고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씌어진 본격적인 근대 역사방법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이 시기에 「조선상고문화사」「조선사연구초」를 집필,근대민족사학을 확립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이들 역사서를 통해 제시된 선생의 유명한 「아와 비아의 투쟁」사관은 당시의 사회관이나 민족운동노선과 대응하는 것이었다. 선생은 이후 점차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고 1926년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했으며 이듬해 9월에는 이필현과 함께 무정부주의 동방연맹에 조선대표로 참석했으며 1928년 4월에는 무정부주의 동방연맹 북경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 결과에 따라 대만에서 화폐를 위조하는 등 독립운동자금을 염출하는 직접 행동에 나섰으나 일경에 체포돼 10년형을 선고 받고 여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6년 순국했다.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스페인 차기총리 후보 바리오누에보/「바스크족 암살대」 운영 피소

    ◎83∼87년 ETA 진압 당시 【마드리드 로이터 연합】 펠리페 곤살레스 마르케스 스페인 총리의 측근인 호세 바리오누에보 전 내무장관이 바스크족 독립운동 단체인 「바스크조국과 자유(ETA)」진압 작전시 암살대를 운영한 혐의로 25일 공식 기소를 앞두고 대법원에 소환됐다. 집권 사회당 고위 인사인 바리오누에보는 83년에서 87년까지 27명의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을 사망케 한 ETA 진압작전인 이른바 「더러운 전쟁」중 무장 암살 단체와 관련된 혐의 및 납치·공금횡령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바리오누에보는 자신은 이 일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과거 부하직원들이나 보안 책임자들,비밀 형사들,심지어 동료 사회당 지도자들의 증언 내용도 부인하고 있다.
  • 「이」와 공존시대 연「팔」 자치선거(해외사설)

    중동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원에 제1차세계대전하 영국 「두개의 혀」외교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영국은 전쟁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 아랍세력에는 맥마흔협정으로 독립국가를 약속하고 한편으로 유대인에게는 같은 지역에 이스라엘 건국을 인정하는 발포어선언을 발했다.오랜기간 동안 분쟁의 씨앗이 된 「2개의 국가」였다. 그러나 2개국가의 공존이 더이상 꿈이 아닌 때가 온 것일까.팔레스타인자치선거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아라파트의장을 자치정부의 의장으로 선출했다.자치평의회도 아라파트의장의 지지파가 다수를 점할 것이 확실하다.아라파트의장을 사실상의 대통령으로 하는 「정부」가 조직된 것이다. 여러 제약이 있지만 민의에 기초한 「팔레스타인국」 탄생의 전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93년에 시작된 팔레스타인 화평프로세스 제2단계의 마감이다.지난해 11월 라빈 이스라엘총리의 암살 영향이 우려됐지만 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졌다.선거가 무사히 마쳐진데 대해 우선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새로운 자치정부의 민주적인 발전을 내다보면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가장 큰 문제는 평의회의 의석을 아라파트지지세력이 거의 다 차지했다는 점이다.선거를 치른 의미도 색이 바랬다.물론 커다란 이유는 팔레스타인 과격파 하마스 등 자치반대세력의 선거보이콧 때문이다.이들 세력이 일상활동을 통해 팔레스타인 주민의 일부분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자치정부는 평의회에 대표되지 않은 주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제 화평과정은 3단계로 들어간다.점령지 가자,요르단강 서안의 최종적 지위외에도 예루살렘과 유대인정착지의 처리등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여기는 쌍방의 양보가 필요하다.
  • 「독립국 건설의 꿈」 실현 단계로/총선이후의 팔 자치정부

    ◎「이」와 공존으로 중동평화 진전/예루살렘 분할·강경파 설득 과제 이번 총선결과는 한마디로 야세르 아라파트PLO의장이 추구해온 이스라엘과의 점진적 평화정착에 대한 팔레스타인주민들의 지지가 확고함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이번 선거가 지난 93년 제한적인 자치정부 구성을 주내용으로 이스라엘과 체결한 오슬로평화협정에 의거해 치러진 것이기 때문이다.일거에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건설하자는 과격 이상론 대신 아라파트가 주창해온 점진적 독립론이 마침내 주민들에 의해 지지를 받은 것이다.평화협정에 불만을 품고 선거보이콧을 내건 과격파들의 주장은 예상밖으로 철저히 외면당했다. 앞으로 「팔」인들은 아라파트의장의 주도하에 독립국가건설에의 길로 한걸음씩 나아가게 된다.자치의회의 의석 절대다수도 아라파트의 지지자들이 차지했다.하지만 앞에 놓인 난관 역시 한두가지가 아니다.우선 자치정부출범을 보는 기본입장에서 이스라엘측과 큰 차이가 있다.「팔」인들은 이를 독립국건설의 첫걸음으로 보는 반면 이스라엘은 어디까지나 평화적 공존을 위한 제한적인 자치허용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이 시각차는 오는 5월에 시작해 99년까지 끝내기로 한 동예루살렘등 이스라엘 점령지의 최종 지위협상때 장애로 작용할 것이다.「팔」측은 67년 중동전쟁때 빼앗긴 성지인 동예루살렘을 독립국가의 수도로 정하고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반면 이스라엘은 현재 자국 수도인 동서예루살렘을 분리할 의사가 아직 없다.출범하는 자치정부는 이들 영토의 지위문제가 타결될 때까지 존재하는 임시정부의 성격을 갖는다. 보다 불안한 장애물은 역시 이스라엘,「팔」양측에 엄존하는 강경파들의 존재이다.평화론자 라빈 전 이스라엘총리를 비롯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이들의 손에 희생됐다.현재의 평화무드를 깨뜨리기 위해 언제 이들이 암살,테러등을 자행할지 모른다.이와 함께 자치지역의 경제회생,치안확보,유태인 정착민 이주등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물론 이런 예상되는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계속돼온 양측의 뼛속깊은 원한관계에 비추어볼때 자치를 위한 선거가 성공리에 치러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중동평화의 엄청난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같다. ◎아라파트는 누구/PLO 창설… 40년간 독립 투쟁/94년 노벨상 수상… 팔인에 신화적 존재 팔레스타인 선거에서 행정수반으로 당선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66)은 많은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 신화적 존재다.그는 이번 선거를 통해 팔레스타인의 새시대를 여는 위대한 지도자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아라파트는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한 확고한 신념으로 마치 「신화속의 신」처럼 고통받는 팔레스타인인들을 29년간의 비참한 이스라엘 점령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는 1950년대 카이로대학시절부터 팔레스타인을 위한 투쟁을 했으며 지난 68년부터는 PLO를 이끌어왔다.그는 40여년간의 투쟁생활중 여러번 위기를 맞았으나 『나는 잿더미속에서 다시 태어난 불사조』라는 자신의 말처럼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켰다.그는 걸프전당시 이라크를 지지,한때 국제적으로 고립되는등 위기를 맞았다.그러나 냉전후다시 싹트기 시작한 중동평화무드에 편승,중동평화의 중요한 파트너로 등장했다. 그는 이스라엘과의 비밀협상을 통해 지난 93년 오슬로협약을 맺고 94년 역사적인 중동평화협정에 서명,팔레스타인 자치의 길을 열었다.그는 그 공로로 9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아라파트는 그러나 하마스 등 강경파의 비난을 받고 있고 그의 꿈인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해선 앞으로도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는 많은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 미래의 희망으로 존재하고 있다.
  • 요르단왕,이스라엘 첫 방문/텔아비브 경비 삼엄

    【텔아비브 AFP 연합 특약】 후세인 요르단국왕이 10일 이스라엘의 경제수도 텔아비브를 처음으로 공식방문,시몬 페레스 이스라엘총리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후세인 국왕의 방문을 맞아 경찰과 특수부대요원,첩보기관인 신베트 요원 등 6천여명이 시내전역에 깔리는 등 전례없이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텔아비브시내에는 수천명의 학생들이 인도에 나와 요르단국기를 흔들며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찾은 요르단국왕을 맞았다. 이스라엘군 아파치 헬기 두대의 경호 속에 요르단공군 헬기 편으로 수데 도브공항에 도착한 후세인 국왕은 지난해 11월 암살된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총리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병원에 들렀다. 페레스 총리는 『이스라엘이 외국 국가원수를 이처럼 따뜻하게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라빈 총리가 암살됐을 때 후세인 국왕이 보낸 조의에 감사를 전했으며 이에 후세인 국왕은 『중동지역의 평화를 위해 두나라가 파트너가 돼 이렇게 나란히 설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고 답했다.
  • 키신저 전 미 국무의 96세계정세 전망/한승주 전외무 MBC회담

    ◎“북한 내부동요 커지면 개혁노선 택할것”/남북대화 재개돼도 적화야욕 포기안해/일 민족주의 추구로 대미의존 탈피 노려 헨리 키신저 전미국무장관이 3일밤 11시 방영된 MBC­TV 「세계 석학과의 만남」 프로를 통해 한승주 전외무장관과 세계정세 전반에 관한 대담을 가졌다.한 전장관과 키신저박사는 이날 대담에서 북한문제를 비롯한 96년 동북아 정세전망,보스니아와 한반도가 미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 이후의 중동평화 정책 등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를 벌였다.다음은 두 사람의 대담 요지이다. ▲한승주=미국의 대외정책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미군이 보스니아에 파병됐습니다.이로써 국제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이 지속돼야 한다는 쪽과 냉전이 끝난 만큼 그같은 역할을 줄여야 한다는 쪽의 의견 대립이 끝난 것으로 이해해도 괜찮은 겁니까. ▲키신저=그렇지 않습니다.진짜 논쟁은 이제부터 시작될 겁니다.그리고 미국의 개입에 대한 논쟁의 초점은 개입 여부보다는 어느 쪽이 미국의 국익에 보탬이 되는가 하는데 맞춰져야 합니다. ▲한=어떤 특정 문제나 지역이 미국의 국익에 중요하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키신저=예를 들어 미군의 한국주둔과 관련해서 보스니아의 경우처럼 시간적인 제약을 둘 수 없는데,이는 한국이 그만큼 미국의 국익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특정지역을 잃음으로써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생기고 미국의 정치질서가 무너지느냐의 여부가 미국 국익에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잣대입니다. ▲한=96년은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해입니다.대통령 선거 이후 미국의 국내외 정책 변화를 전망해주십시오. ▲키신저=올해 미국정책의 주된 논의는 국내정책 쪽에서 일어날 것 같습니다.공화당이 승리하면 국방을 좀 더 강화하는 정책이 나오겠지만 지금과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한=94년말 이뤄진 중동평화협정 조인과 이스라엘­시리아의 평화무드 조성을 중동의 평화정착 신호로 볼 수 있겠습니까. ▲키신저=올해 중동에서는 평화의 진보가 이뤄지겠지만 어떤 문제도 완전히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이스라엘은 과거처럼 고립되지않고 중동지역의 한 국가로 역할을 할 겁니다.그러나 이란­이라크,사우디­요르단 등의 대결구도는 여전히 계속될 것입니다. ▲한=이야기를 아시아로 돌려보겠습니다.박사께서는 중국이 아시아의 여러나라와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키신저=군사적인 면에서의 위협은 현실성이 없습니다.그러나 경제적으로 중국은 대국이 될 것이고 이로써 지역 또는 세계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것입니다.이같은 국력신장에 따른 영향력 강화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도 그에 걸맞게 성장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습니다. ▲한=아시아국들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반면 미국은 일본과 현재의 안보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키신저=제가 보기에 일본은 민족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즉 메이지 유신 때와 같은 분위기속에서 미국의 의존상태를 벗어나려는 겁니다.일본은 지금까지 자신들만의 대외정책을 수립해보지 못했지만 이제 그같은 상황은 바뀔 것입니다.저는 이것을 군국주의로 부르는데 반대합니다. 주일미군의 존재는 절대로 필요합니다.미군의 일본주둔은 미국이 이 지역의 안정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명백히 하는 동시에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전혀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북한의 앞날을 전망해주십시오. ▲키신저=스탈린식 통제를 계속한다면 북한은 파멸할 것입니다.북한이 중국처럼 공산당을 중립적인 통치기구로 변모시키고 시장경제체제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변화가 필연적인데 그들 스스로 그런 개혁을 시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그보다는 북한 내부의 동요와 불안이 커질때 어쩔 수 없이 개혁을 선택하고 한국과의 대립노선을 포기할 것입니다. ▲한=북한은 요즘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키신저=원조된 식량조차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분배 및 유통구조의 개선이 필요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외부원조는 소수층에게 부정부패의 기회를 줄 뿐입니다. ▲한=한반도의 통일방법에 대해서 박사께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키신저=동독의 붕괴에 따른독일통일에서 북한과의 연관성을 찾기는 어렵습니다.북한은 동독과 달리 대외 의존도가 낮아 체제를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저는 어떤 시점에서 북한이 무력도발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앞으로 한국과 대화를 해나가면서도 북한은 자신들의 강점인 무력을 이용해 국부적인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그렇게 해서 실익을 얻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러시아의 향후 정치와 경제를 전망해주십시오. ▲키신저=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지위를 상실했으면서도 외교정책은 세계지향적입니다.이를 바탕으로 보면 러시아에서는 앞으로 2∼3년 안에 권위주의적인 독재성향의 정권이 들어설 것입니다.한국도 사실 거대여당과 강력한 행정부하에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경제력이 회복되면 러시아는 전처럼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펴나갈 것입니다.문제는 그런 정책이 유럽 쪽에서 취해질 것이냐,아시아 쪽에서 취해질 것이냐입니다. ▲한=양쪽 다 아닐까요. ▲키신저=그럴 겁니다. ▲한=지금까지의 말씀은 우리 모두가 상황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로군요. ▲키신저=평화 유지는 어느 나라의 경우나 제일의 목표여야 합니다.
  • 1995년에 사라진 별들

    ▷국내◁ ◎전 국무총리 진의종씨 해방후 상공부차관과 한전부사장을 거쳐 8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10대 선거에 낙선한뒤 10·26 이후 보사부장관으로 입각.11·12대 민정당의원으로 당선된뒤 대표위원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의학박사 장기려씨 지난 25일 서울 백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별세한 「한국의 슈바이처」.서울대·가톨릭대 의과대학교수를 역임했으며 68년 영세민을 위한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했고 79년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민법학자 안이준씨 지난 3월19일 서울 중앙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 향년 65세.안교수는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뒤 경희대교수로 재직했으며 민사법학회장을 지냈다.주요 저서로는 민법총칙,채권법 등이 있다. ◎법조인 김성일씨 법관의 정도로 일컬어졌으며 10월31일 상오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60세의 나이로 순직.그는 서울법대를 졸업한 후 천안지원 판사를 거쳐 대법원 재판연구관,제주지법원장을 역임했다.간결한 판결문 정착에 애썼다. ◎전 대법관 김갑수씨 강직한 대법관의 대명사로 꼽혀온 변호사.1월26일 하오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향년 82세.김변호사는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나와 평양법원판사를 거쳐 법무·내무차관을 역임했고 지난 60년 대법원장 직무대리 시절 군사정권에 맞서다 법복을 벗었다. ◎충남방적 이종성 회장 지난 70년 부실기업인 국안방적을 인수한지 10년도 안돼 오늘날의 충남방적으로 키웠다.81년에는 국민당에 입당,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국민당의 부총재·전당대회의장 등을 거쳤다.공직자·기업인·정치인으로 거듭된 변신을 하면서도 성공을 거뒀다. ◎명창 김소희여사 우리 시대의 소리꾼.지난 4월17일 78세로 별세.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기능보유자로 우리 국악의 양갈래를 이루는 「동편제」소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국창」.그의 소리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로 제1회 한국국악대상,대한미국 문화예술상등을 수상했다. ◎추상조각가 문신씨 지난 5월24일 73세를 일기로 타계한 추상조각의 거장. 국내보다 세계화단에서 더 명성을 떨친 추상조각가로 90∼92년 미술의 본고장 유럽을 순회하며 가진 회고전에서 호평을 받았고 91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기사 훈장을 받았다. ◎작곡가 윤이상씨 세계적인 음악가이면서도 끝내 이역땅에서 유명을 달리 한 비운의 예술가.지난 11월4일 78세를 일기로 독일땅에서 서거한 그는 「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꼽힐 만큼 큰 족적을 남겼다.67년 동백림사건으로 「이데올로기의 멍에」를 쓰고 71년 독일에 귀화했었다. ◎작곡가 길옥윤씨 지난 3월 17일 68세로 별세한 우리 가요계의 대표적인 작곡가. 대표작으로는 「서울의 찬가」 「이별」 「빛과 그림자」 「4월이 가면」. 가요생활 50년을 통해 작사·작곡·편곡한 노래가 3천여곡이 넘는다. 서울 세종로공원에 「서울의 찬가」 노래비가 건립됐다. ◎소설가 김동리씨 지난 6월 17일 82세로 별세한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60여년 작품활동을 통해 「무녀도」「황토기」「사반의 십자가」「을화」등 1백여편의 장·단편소설을 남긴 현대문학의 증인.서라벌예대 교수,한국문인협회장을 역임했다. ◎레슬링선수 송성일씨 위암으로 1월29일 타계한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1백㎏급 국가대표선수. 자신의 몸에 암세포가 번지는 것도 모른 채 위암으로 투병중인 어머니를 걱정하며 혼신의 투혼을 발휘,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배구선수 김병선씨 대학졸업을 불과 4일 앞둔 2월21일 심장마비로 숨진 남자배구의 큰 별. 2m의 장신으로 성균관대학 1년 때부터 부동의 국가대표 센터로 활약하며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데 주역을 담당했다. ◎경제학자 고승제씨 함남 출신으로 학술원회원을 지낸 원로 경제학자.일본 릿교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서울대·고려대·연세대 교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한국경제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대림창업주 이재준씨 지난 39년 대림그룹의 모태인 부림상회를 세워 목재업과 건자재업에 진출한뒤 한평생 건설 외길을 걸어왔다.한국전쟁후 복구특수를 활용해 기반을 다졌고60년대 중반부터 해외건설사업에 주도적으로 나섰다.지난 88년 장남인 이준용 대림그룹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겼다. ▷국외◁ ◎반전기수 풀브라이트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의 설립자이자 베트남전 당시 「권력의 오만」을 출간,반전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인물.지난 2월10일 워싱턴 자택에서 90세로 타계했다.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맹비난,미군의 베트남철수에 기여했다. ◎전 일 총리 후쿠다 지난 7월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그는 대장상과 외상 및 자민당 간사장을 역임한 뒤 76년 미키 다케오 전총리에 이어 67대 총리로 취임,중국과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고 도쿄국제공항 개항등 현안을 처리했다.그는 86년 중의원 14선을 역임한뒤 90년 정계에서 은퇴했었다. ◎미 언론인 레스턴 미국 언론인들의 최고상인 퓰리처상을 두번이나 수상하는등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언론인중의 한 사람.지난 12월6일 워싱턴DC의 자택에서 암으로 숨졌다.그는 뉴욕타임스에서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제임스 레스턴 칼럼」을 연재,필명을 떨쳤다. ◎중 실용주의거두 진운 중국의 최고실력자 등소평과 함께 모택동사후 중국정치를 요리해온 인물.지난 4월10일 노환으로 90세에 사망했다.모택동으로부터 「당내 제일의 경제통」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50년대부터 실용주의 경제노선을 지향,모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중동평화 상징 라빈 지난 11월4일 텔아비브에서 중동평화협상 지지집회에 참석중 극우파학생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그는 군생활 28년을 거치는 동안 아랍세계와의 6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었으며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모색한 평화노력으로 9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케네디 모친 로즈 1월 1백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그녀는 19 14년 조지프 페트릭과 결혼,케네디가와 인연을 맺은후 대사의 아내로서,대통령과 두 상원의원의 어머니로서 최상의 영광을 누렸으나 9명의 자녀중 두명의 아들이 총탄에 목숨을 잃는 암살의 비극을 겪기도 했다. ◎전 영국총리 윌슨 60년대와 70년대초 영국 노동당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으며 79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그는 29세때 하원에 진출한뒤 2년후 무역장관으로 취임해 최연소 입각기록을 세웠다.64년 총선에서 승리한뒤 총리 재임기간동안 줄곧 미국의 베트남 파병요청을 거부하고 반전무드를 조성해 영국노동당 시대를 주도했다. ◎전 일 부총리 와타나베 지난 9월 72세를 일기로 사망한 그는 『한일합방은 원만하게 체결됐으며 36년간 통치했지만 식민지 지배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는 망언을 남긴인물.63년 고향에서 중의원에 당선된이래 대장상·당정조회장등 요직을 거쳤고 대북한 쌀지원 협상에서는 막후조정을 벌였다. ◎영국시인 스펜더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자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지난 7월 86세로 타계했다.그는 20세기 영국의 인도주의적 사상을 대표한 강력한 자유주의적 운동을 펼쳤으며 30년대 비평가들로부터 이 시대의 가장 저명한 3인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고의 양심 질라스 공산주의의 모순을 비판한 저서 「새로운 계급」으로 유명한 티토치하 유고의 대표적 반체제인사.83세를 일기로 4월20일 심장병으로 사망.부통령에 올라한때 티토의 후계자로 지목되기까지 했으나 공산체제에 염증을 느껴 반체제 이론가로 변신했다. ◎백신개발 선구자 소크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해 인류를 불구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킨 의료계의 선구자.80세를 일기로 지난 6월23일 사망했다.뉴욕대학 의학부를 졸업,면역학및 세균학을 연구했으며 「소크백신」개발 후에는 샌디에이고 소크연구소에서 다발성 경화증과 암연구에 몰두했다.
  • 1995년 지구촌/보스니아내전 종식·중동평화 “최대축복”

    ◎옴교 독가스 살포·불 연쇄폭탄테러로 “홍역”/각국의 부패권력자 「사정칼날」에 걸려 수난/일·사할린 대지진 등 천재지변 잦고 에볼라 등 전염병 창궐 인류 최악의 비극이라 할 2차대전이 끝나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유엔이 창설된지 50년이 된 95년.이같은 의미를 되새기기라도 하듯 지구촌은 평화를 향한 두가지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오랜 분쟁의 대명사 중동에서 평화의 기운이 무르익기 시작했고 2차대전 이후 유럽 최악의 비극이라는 보스니아 내전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냉전종식 이후 불거지고 있는 민족간·종교간 갈등의 대표적 전형이라 할 보스니아내전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25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채 3년반만에 분쟁 종식의 돌파구를 찾았다.또 이츠하크 라빈 전총리가 암살되는 희생을 치르기는 했지만 팔레스타인 자치협정이 이행에 들어섬으로써 베들레헴이 팔레스타인에 넘겨지는 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해묵은 분쟁이 하나둘씩 타결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이와 함께 요르단과오만 등 주변 아랍국들과 이스라엘간의 분위기도 과거의 적대일변도에서 벗어나 공존을 모색하는 동반자의 길로 접어드는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북아일랜드에서의 해묵은 분쟁 역시 95년 한해를 통해 해결의 발판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 등 95년 한해 동안 지구상의 해묵은 많은 분쟁들이 타결의 실마리를 찾아 인류는 평화진전을 위해 많은 것을 기록할 수 있었다. ○르완다 난민 대학살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게 마련.인류의 역사가 늘 그래왔듯이 95년도 전쟁과 평화가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보스니아와 체첸에서의 끝없는 유혈분쟁 소식이 1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르완다에선 정부군이 난민수용소를 공격,2천여명을 사살하는 학살극이 빚어졌다.또 중국이 핵실험을 실시한데 이어 프랑스마저 일련의 핵실험을 재개,타히티에서 반프랑스 유혈폭동이 며칠째 계속되는 등 핵문제를 둘러싸고 긴장이 계속됐다. 95년에는 또 일본에서 발생한 옴진리교의 독가스 살포사건,미국 오클라호마에서 벌어진 연방정부청사 폭탄테러와 프랑스에서의 연쇄 폭탄테러등 테러가 유난히 극성을 부려 사람들의 마음에서 불안이 사라지지 않게 했다.게다가 5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일본 고베에서의 대지진과 2천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사할린 네프테고르스크에서의 지진,유럽지역을 휩쓴 폭우과 폭설 등 천재지변마저 잦아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졸이게 했다.그런가 하면 에볼라 바이러스,살 파먹는 괴질 등 낯선 전염병들은 물론 콜레라같은 오랜 전염병들이 다시 창궐해 인류를 긴장시켰다. ○핵문제로 긴장 계속 새해 벽두(2일) 요르단강 서안 점령지구에서의 유태인 정착촌 확대를 선언,평화에의 희망에 불을 지폈던 라빈 전이스라엘총리는 중동평화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극우 유태주의자의 총탄에 쓰러짐으로써 세계인들에게 아픔을 주었다.또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도 이디오피아를 방문하던 중 무장괴한들로부터 암살 기도를 받아 황급히 이집트로 되돌아갔고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그루지아대통령 역시 간신히 암살을 모면하는 등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암살 기도도 끊이지 않았다. 한편 95년 1월1일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예고된 세계의 경제대전은 미·일 자동차분쟁을 둘러싸고 미국이 일본에 대해 1백%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등 세계는 이제 치열한 경쟁과 경제전쟁의 시대로 바뀌었음을 실감나게 했다.WTO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 등은 WTO 제소라는 위협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제몫 챙기기에 열중했고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많은 나라들은 제몫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게 됐다. 경제적 측면에선 95년 일본 엔화의 초강세와 달러화의 약세가 가져온 파장이 1년 내내 계속됐다.한때 1달러당 80엔대 선까지 올라가는 등 끝이 없어 보이던 엔화의 강세는 현재 1달러당 1백엔을 조금 넘는 선에서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의 경제상황에 따라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르는 세계경제의 불발탄과 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엔화강세 달러약세 95년 세계경제의 또다른 뚜렷한 추세는 블록화 현상이 가속화했다는 점이다.아직 완전한 실현을 이루기까지는 극복해야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유럽 7개국간 국경통제를 해제하는 쉥겐조약이 발효되고 마드리드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단일통화의 이름이 유로로 결정되는 등 유럽통합은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이에 맞서 아세안의 지역경제화,남미 등지에서의 지역경제화 등이 활발히 거론되고 그 실현을 위한 발걸음을 착실히 내디딘 한해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사회주의에서 벗어나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러시아와 폴란드 등 몇몇 과거 공산주의 나라들은 이같은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서 개혁의 성과가 미미한데 따른 국민들의 불만이 『그래도 옛날이 좋았다』는 과거로의 회귀와 연결되면서 다시 공산당이 득세하는 풍조를 나타냈다.폴란드의 민주화를 이끈 영웅 레흐 바웬사 대통령은 공산당의 거센 바람에 밀려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예프스키에게 대통령의 자리를 내주어야 했고 러시아에서는 주가노프의 공산당이 제1당으로 부상,좌경화의 바람을 더욱 거세게 했다. ○러·파 공산당 득세 95년 한국이 두 전직대통령의 비리 처단과 과거청산 문제로 떠들썩했던 것처럼 지구촌 곳곳에서도 부패한 권력자들이 법망의 그물에 걸려 수난을 당했다.이탈리아에서는 줄리오 안드레오티 전이탈리아총리가 마피아와 연루된 혐의로 법정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외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총리 등 3명의 전직총리가 법정에 서게 됐다.한때 멕시코 경제개혁을 이끌어 칭송받았던 카를로스 살리나스 전멕시코대통령은 자신과 가족들의 폭넓은 비리가 파헤쳐지면서 부인과 자녀들을 데리고 미국으로의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중국에선 최대의 부정·부패사건이라고 일컬어지는 왕보삼 전북경 부시장의 자살사건으로 대대적인 반부패 숙정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빌리 클라스 나토 사무총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사임 압력을 받아오다 끝내 불명예퇴진하기도 했다. 한편 과거 군사독재 시절 수많은 실종자들을 낳는 등 어두운 기억의 상처 속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칠레 등 남미국가들에서는 참다운 과거청산 없이는 올바른 미래를 건설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군사독재 시절의 어두운 과거를 씻기 위한 노력이 활발히 진행됐다.이같은 부패단절과 과거청산의 움직임은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못하도록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인류를 위한 밝은 조짐으로 중동과 보스니아에서의 평화 회복 움직임 못지 않게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옴진리교의 독가스 살포 사건)과 미국(오클라호마 연방정부청사 폭파 사건)에서 벌어진 두가지 테러사건은 또다른 측면에서 인류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다.정치와 경제 두측면에서 모두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두나라에서 발생한 테러는 일본의 경우 신흥종교의 위험성을,미국의 경우 무정부적 극우주의자들의 위험성을 일깨우면서 현대의 물질문명 속에서 목표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못하면 어떤 위험 속으로 빠져들 수 있을지에 대해 경각심을 부르게 한 사건이었다.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방문으로 야기된 미·중국,중·대만간의 갈등은 중국의 대만 무력침공 위협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동북아 정세에 긴장을 높여주었다.여기에 중국에 대한 반환이 1년 앞으로 다가옴으로써 야기되고 있는 홍콩의 불안,홍수피해에 따른 기근으로 식량폭동설까지 나도는 북한의 상황 악화 등이 겹쳐 동북아 정세는 극도로 혼미해졌다. 보스니아와 중동에서의 평화는 결국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는 내년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클린턴 미대통령이 업적을 쌓기 위해 적극 매달렸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그러나 95년에 이룩한 몇가지 평화진전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은 저마다 자신의 몫만을 늘리기 위해 열심일 뿐 진실로 평화만을 위해 전념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같다.정신적 지주를 잃은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테러의 참담한 예를 보면 인류는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도 한발한발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도 한다. 96년 한해는 오직 평화와 축복만으로 가득찬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보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지…
  • 서울신문 선정 1995년 10대뉴스/국외

    ▷옴진리교 도쿄 가스테러◁ 3월20일 상오 8시쯤 도쿄 지하철역에서 발생한 옴진리교도들의 독가스 살포 사건은 12명의 사망자와 5천5백여명의 부상자를 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이 사건은 하늘의 심판에 앞서 자신이 인간들을 심판하겠다는 아사하라 쇼코 교주의 허황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져 신흥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고베 대지진… 5천명 사망◁ 1월17일 일본 효고현 남부 고베시에서는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인 진도 7.2의 강진이 발생,5천2백43명의 사망자와 6명의 실종자,2만6천여 이재민,14조1천억엔(약 1백8조원)의 재산손실을 냈다.전문가들은 특히 고베 지진이 장차 환태평양화산대의 지진활동이 활발해질 것임을 예고한다고 밝혀 주변국들을 한층 긴장시키고 있다. ▷미 오클라호마 폭탄데러◁ 미국 오클라호마시 연방청사앞에서 4월19일 대규모 차량폭탄이 터져 1백69명의 사망자와 4백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미국 역사상 최대의 폭탄테러로 기록된 이 사건은 미국 심장부에서 발생했다는 점과 사회 전반을 적대시하는 극우단체의 소행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각도시 연방 청사에서는 한동안 대피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불 핵실험 국제사회 비난◁ 국제적으로 비핵화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가 9월5일 남태평양의 무루로아 환초 지하에서 3년반만에 핵실험을 재개한데 이어 지금까지 4번의 핵실험을 강행,국제사회로부터 커다란 반발을 샀다.프랑스는 그러나 앞으로도 2차례 더 핵실험을 할 예정이라고 공언,반핵여론을 악화시키는 한편 제3세계 국가들의 핵무장 유혹을 부추겼다. ▷러­체첸 편화협정 “무산”◁ 지난해말 러시아의 무력침공으로 촉발된 체첸 내전은 지금까지 3만여명의 희생자를 내는 비극을 초래했다.체첸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반군과 이를 저지함으로써 여타 지역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에 쐐기를 박으려는 러시아는 지난 7월30일 평화협정의 체결에도 불구,한치의 양보 없이 맞서고 있어 아직까지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라엘 라빈 총리 암살◁11월4일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시청앞 광장에서 벌어진 이츠하크 라빈 총리 암살은 중동평화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충격적 사건이었다.수사 결과 범인은 라빈 총리의 평화정착 노력에 불만을 품은 극우 유태인 단체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결국 이 사건은 이스라엘 내부의 극우이념이 중동평화의 최대 걸림돌임을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보스니아 평화협정 체결◁ 「세계의 화약고」 발칸 반도에 평화를 가져다줄 보스니아 평화협정이 내전 발발 3년반만인 12월14일 프랑스의 엘리제궁에서 조인됨으로써 25만명의 희생자를 낸 유고내전에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이에 따라 미국 등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의 6만여 병력은 앞으로 1년간 평화이행군의 이름으로 보스니아에서 협정이행 상황을 감시하게 됐다. ▷중의 대만 무력침공 위혐◁ 지난 6월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방문으로 야기된 미·중 갈등이 급기야 중국의 대만 무력침공 위협으로까지 이어졌다.중국은 특히 대만 부근 해역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실험을 하는등 여러차례무력시위를 벌여 긴장을 고조시켰다.특히 대만내 통일 여론을 자극하고 반이등휘 정서를 부추기기 위해 내년 3월 대만 총통선거때까지 위협을 강화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살인혐의” 심슨 무죄평결◁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미식축구 스타 O.J.심슨의 전처 살인 혐의에 대한 재판이 사건 발생 1년4개월만인 10월4일 뜻밖의 무죄평결로 막을 내렸다.미국에서 걸프전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재판비용만도 1천만 달러(약 77억원)가 들어간 이 「세기의 재판」은 미국 배심원제도의 문제점과 인종문제 등 갖가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WTO 체제 공식출범 1년◁ GATT(관세무역일반협정)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무역질서 관장기구인 WTO(세계무역기구)가 1월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식출범했다.WTO는 GATT보다 더욱 강화된 권한으로 국가간의 무역 자유화를 촉진하고 공정성 여부를 감시하는 국제기구다.WTO 출범으로 세계 각국은 장벽 없는 열린 마당에서 생존을 건 처절한 무역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됐다.
  • 백범암살 사건은 정권적 차원 범죄/국회조사위 결론

    국회 법사위 「백범 김구선생 암살진상조사소위」(위원장 강신옥)는 15일 『백범선생의 암살은 정권적 차원의 범죄』라고 최종결론을 내렸다. 조사소위는 이날 회의를 열어 지난 2년여간의 조사활동을 마감하며 채택한 보고서를 통해 『백범 선생 암살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내리진 않았지만 부하들이 이전대통령의 뜻을 알아차리고 저지른 정권적 차원의 범죄』라고 규정했다.
  • AP 올10대뉴스/「보스니아 내전」1위/40국 언론기관 대상조사

    ◎라빈 암살­불핵실험 재개 2·3위 랭크 AP통신이 미국을 제외한 40개국의 신문,통신,라디오및 TV 방송국 등 1백57개 언론기관을 상대로 조사한 금년 10대 뉴스는 다음과 같다.(총점은 1위 10점,10위 1점을 기준으로 합산한 것이고 괄호 안의 숫자는 1위로 선정한 기관수) ▲1위=보스니아 내전과 평화협정,1천2백57점(59)▲2위=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1천2백43점 (63)▲3위=프랑스의 핵실험 재개,8백1점(6)▲4위=옴진이교,동경 지하철에 살인가스 살포,5백29점(4)▲5위=고베 대지진으로 6천여명 사망,4백91점(6)▲6위=오클라호마 시티 정부청사 폭파,4백67점(1)▲7위=체첸 내전,4백26점(1)▲8위=살인혐의 O.J 심슨 무죄방면,3백43점(1)▲9위=중동평화 진행,2백94점(3)▲10위=이슬람 근본주의 발호,2백79점(2)
  • 총기류 암거래 성행/안기부/권총 등 미등록 10만정 유통 추정

    ◎국내외 범죄조직 밀반입 늘고 엽총·공기총 불법개조 거래도/“부산텍사스 골목서 공공연히 거래설” 국제범죄조직이나 국내폭력조직에 의한 총기의 국내 밀반입이 늘면서 밀거래가 성행하고 있다.또 엽총·공기총등을 불법개조한 것을 비롯,약 10만정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미등록총기류가 불법유통되면서 인명사고도 함께 늘고 있다. 14일 국가안전기획부에 따르면 지난 91년 이후 공항이나 항만을 통해 국내에 들여오려다 적발된 불법총기류는 63정(실탄 1만3천5백15발 포함)에 이르며 올 들어서만 11월말 현재 15정이 적발됐다. 이로 인한 총기사고도 지난 93년 32건에 10명이 사망한 것을 비롯,지난해에는 40건에 12명이 사망했다.지난 9일에는 수원의 장모씨(21·외항선원)가 여자친구를 가로챘다는 이유로 고등학생을 남아프리카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구입한 권총을 들여와 살해하는 등 지난달말까지 43건의 총기사고로 15명이 사망하는 등 올 들어서도 사고증가추세는 여전하다. 경찰청에 등록된 민간인 총기류는 모두 57만7천여정에 이르며 30개 업체에서 제조돼 1천2백여 판매소를 통해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관계기관의 단속이 소홀한 틈을 타 무려 10만여정에 이르는 총기류가 불법으로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심지어 러시아 선원이 많이 드나드는 부산 텍사스골목 등에서는 불법유통되는 총기를 마음만 먹으면 싼값에 쉽게 구할 수 있는 등 국내에서 총기의 밀거래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 가운데 상당수는 조준경이나 소음기를 부착하고 총열을 개조하는등 인명살상용으로 범죄에 악용될 소지마저 다분하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부여무장간첩 김동식은 만년필형 독총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러시아 연방보안부(FSB)와 해군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던 수중기관총을 북한으로 밀반입하려다 지난달 22일 러시아경찰에 검거된 북한인 한명길의 예에서 드러나듯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과 국제범죄조직이 연계,이같은 특수총기를 국내로 들여와 불순세력이 요인암살등에 이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관계당국자는 각종 불법총기 사용의 증가는 최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구속 등 사회적으로 격변하고 있는 시기인데다 연말연시와 함께 내년 총선도 앞두고 있어 사회불안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미 저명언론인 제임스 레스턴 사망

    ◎퓰리처상 두번 받아… 얄타협정문 특종 보도/워터게이트사건 등 권력부패 단호히 비판 퓰리처상을 두번이나 수상하는등 20세기의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꼽히는 미국 뉴욕타임스신문의 명칼럼니스트 제임스 레스턴이 6일 사망했다.향년 86세.레스턴옹은 지난 87년 평생을 몸담았던 뉴욕타임스신문에 마지막 칼럼을 쓴뒤 89년 자신의 80회 생일때 은퇴해 그동안 오랜 숙환에 시달려왔다.그는 한마디로 세계 언론인들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다.지난 반세기 동안 세기적인 특종을 가장 많이 뽑아낸 언론인.사실 언론인으로서의 명성에 이 이상의 찬사는 필요없을 것이다.그는 2차대전 종전시 연합군의 유엔창설 결정을 특종보도해 첫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이어서 56년 미대통령선거에서의 뛰어난 취재로 두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한국전 휴전계획 특종보도를 비롯,얄타비밀협정문 사본을 미 국무부에서 빼내 뉴욕타임스에 대서특필한 장본인도 그였다. 인간성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통찰력,권력의 본질을 관통해내는 촌철살인의 명문들은 지금도 언론인들에게는고전으로 통한다.케네디대통령이 암살되자 그는 『미국은 한 젊은 대통령의 죽음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 때문에 울고 있다.지금 미국은 과거에 있었던 이 나라의 모든 기쁨을 덮고도 남을 만큼 슬프다』고 썼다. 그는 언론인의 역할을 단순한 정보전달뿐 아니라 칼럼을 통해 비판,대안 제시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이기도 하다.지금은 우리나라 언론에도 보편화됐지만 지난 70년 뉴욕타임스신문에 「제임스 레스턴 칼럼」이라는 자신의 기명칼럼을 처음으로 등장시킨 이가 바로 그였다.이후 89년 마지막 칼럼을 쓸때까지 그는 아름답고 준열한 문체로 전세계의 여론 주도층 독자들을 사로잡아왔었다. 권력의 부패에 대해서도 그는 누구보다도 단호했다.레이건대통령의 이란­콘트라사건이 공개됐을 때 그는 『인기는 사람을 타락시킨다.레이건은 자기가 인기있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좋다고 착각했다』고 썼고 닉슨대통령의 워터게이트사건 때는 『말로는 헌법을 준수했지만 실제로 그가 지킨 헌법조항은 하나도 없다』고 통박했다. 그는 19 09년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11세때 부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왔으며 32년 오하이오주에서 첫 기자생활을 시작한 뒤 AP통신의 스포츠기자를 거쳐 38년 뉴욕타임스로 자리를 옮겼다.그는 53년부터 11년간 이 신문의 워싱턴지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언론인으로서의 최전성기를 구가한데 이어 명칼럼니스트로서 세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아왔었다.
  • 전 육군특무부대장 김창용씨 비밀 일지 발견/서울신문 취재팀

    ◎공산주의자 군침투 실상 등 상술/미 국립 공문서 보존 기록 관리국서 육군 특무부대장이었던 김창용(1920∼56년)의 비밀일지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에 의해 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기록관리국(NARA)에서 발견됐다.2백자 원고지 8백장 분량의 이 일지는 그가 암살당한 이후 주한 미대사관 직원이 번역,미 국부성에 보낸 자료.군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들은 물론 다른 공산주의 세력의 실상까지 밝혀 현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떠올랐다. 이 자료는 우선 국군의 모태였던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송호성 준장도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숙군과정에서 그와 빈번히 마찰을 빚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그렇듯 군 내부에 공산주의 세력이 거미줄처럼 침투,숙군작업에 방해가 돼 사무실을 서대문형무소안에 설치했다고 밝힌 이 일지는 군 외부의 공산주의세력 색출과정도 소상히 보여주고 있다.특히 김수임사건과 고희두사건에 일지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김수임 사건은 그녀의 정부인 주한미군 중령 베트와 김형육등이 관련된 간첩사건이다.정부인 베트중령을 등에 업은 김수임은 미 군정하에서 애인 이강국의 남로당활동을 돕고 의붓오빠인 골수 공산당원 최만용을 함께 월북시켰다.김창룡은 이 일지를 통해 서대문형무소를 근거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국방경비대에 공산당을 침투시킨 이중업을 체포하면서 김수임간첩사건을 들추어냈다고 기록했다. 김창룡일지에 따르면 이중업은 1948년 무장봉기를 기도하다 체포된 것으로 돼 있다.그런데 이중업은 그의 비서격인 김형륙의 도움으로 육군형무소 수감 중에 탈출하고,김형륙은 체포되었으나 곧 전향했다는 것이다.이 때 김수임사건을 실토한 김형륙은 1950년 6·25발발이후 서울에서 공산군에 처형당했다는 대목도 일지에 나온다.사건의 주인공 김수임은 6·25 남침과 더불어 서울이 적의 수중에 떨어질 무렵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고 베트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은 떠돌아다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일지는 김창룡의 조작설로 널리 알려진 1949년의 고희두사건도 명확히 규명했다.고희두는 동대문시장과 청계천시장을 손아귀에 넣었던 당시의 정치깡패 두목.당시 민보단 서울 동대문단장이었던 그는 주먹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우익으로 분류되었으나 김창룡이 공산당혐의를 잡고 붙잡아들여 심문도중 숨졌다.이때 여론은 무고한 죽음으로 애도했으나 김창룡은 그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것과 공산주의자였다고 주장했다.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은 1950년 7월과 8월 고희두 부인이 서울시 여맹위원장으로 활동한 사실로 입증했다. 국사편찬위 김광운 연구원(현대사)은 『서울신문 취재팀이 김창룡일지 원본을 찾는 과정에서 입수한 영문번역본 일지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하면서 『대한민국 초기 건국사와 시대상을 해명하는 데 큰 몫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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