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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플러스 / “케네디와 19세때 성관계”

    |뉴욕 AFP 연합|미국 역사학자 로버트 댈렉이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폭로했던 당시 백악관 인턴은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있는 한 장로교회 집사인 매리언 파네스톡(사진·60)으로 밝혀졌다.파네스톡은 15일자 뉴욕 데일리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962년 6월부터 63년 11월까지 케네디 전 대통령과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고 털어놨다.그는 63년 케네디 전 대통령이 암살되기 직전에 백악관 인턴을 끝내고 1년 뒤 결혼해 두 딸을 낳은 후 남편과 이혼했다.
  • “케네디는 완벽한 매너 닉슨은 속임수 자주 써”/ 골프로 본 美대통령 정치성향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골프 에티켓을 통해 정치성향을 엿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지는 9일 작가인 돈 반 나타의 최근 저서인 ‘미국대통령의 역사’를 인용,골프장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취하는 에티켓이 정치색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저서에 따르면 최근 17명의 미국 대통령 가운데 14명이 골프를 즐겼는데,이들의 골프 에티켓이 대통령 재직 당시 보인 정치성향과 이상할 정도로 정확히 들어 맞았다는 것.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스윙한 공이 명백히 숲속에 떨어졌는데도 페어웨이 위에 던져 놓고 천연덕스럽게 다시 플레이하는 등 눈에 보이는 속임수를 자주 썼다. 백악관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로 법정에 오르는 등 숱한 스캔들을 일으킨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최악의 골프 에티켓으로 ‘필드의 악동’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최고기록이 78타라고 자랑한 클린턴은 사실 멀리건(타수에 넣지 않는 샷)을 남발하고 착지한 공마저 수십미터 앞으로 던져놓는 등 좋은 점수를 올리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최고의 골프 에티켓을 보인 인물은 암살된 존 F 케네디로 깨끗한 매너에 완벽하고도 부드러운 샷을 구사해 당시 대중의 인기를 모은 깔끔한 이미지와 일치된다는 평을 들었다. 연합
  • 경찰특공대 장비 현대화 / ‘뉴 테러리즘’ 잡는다

    경찰특공대가 ‘뉴 테러리즘’에 맞서는 현대화 부대로 재무장된다. 경찰청은 29일 경찰특공대의 대테러 대응 능력을 한 단계 높이는 ‘경찰특공대 현대화 3개년 추진계획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이를 위해 오는 2005년까지 71억여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뉴 테러리즘’이란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요인을 암살하거나 주요 시설을 파괴했던 종전의 테러와 달리 뉴욕 9·11테러처럼 무차별 인명살상으로 상대에게 최대한 타격을 주는 테러를 가리킨다. ●2005년까지 71억원 투입 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당시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탄저균 테러 공포가 대표적이다.당시 ‘흰색 가루’가 든 우편물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면서 화생방 테러의 위기를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경찰은 현실적으로 가장 우려되는 ‘뉴 테러리즘’의 형태로 화생방 공격을 꼽고 있다.지하철역 등 인구가 밀집한 지역이 화생방 공격에 노출되면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경찰특공대의 장비 수준으로는 화생방 무기를 이용한테러가 발생하더라도 현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돼 있다.실제 지난해 한·일 월드컵 당시 미국팀의 경호요원들은 자국의 화생방 탐지기를 갖고 들어와 직접 테러에 대비했다. ●화생방등 신종 테러 대비 경찰은 우선 생화학 탐지기,특수방독복,방폭 텐트 등을 구입,화생방 장비를 현대화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또 항공·수중테러에 대비한 첨단장비를 보강하고 전남과 부산 지역에 시뮬레이션 사격장을 새로 지을 계획이다. 특히 앞으로 경찰특공대 인력을 신규 채용할 때 화생방이나 특수전에 대응할 능력을 갖춘 사람을 우선 선발하고,화생방 관련 교육시간을 크게 늘릴 방침이다.경찰은 현재 서울경찰청 소속 요원 100여명을 포함,전국 주요 도시에 350여명 규모의 특공대를 운영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세워진 경찰특공대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총기나 폭발물 테러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화생방을 비롯한 다양한 신종 테러방법에 대처할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장택동기자 taecks@
  • 30일 전세계 동시개봉 SF 화제작 Q&A로 미리 본 엑스맨2

    지난 16일 지구촌 팬들과 인터넷 화상채팅을 열어 분위기를 띄운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2’(X-MEN2)가 오는 30일 전세계 관객들을 동시에 만난다. 전편이 ‘좋은 엑스맨’과 ‘나쁜 엑스맨’사이의 대결을 그렸다면,이번엔 ‘엑스맨’과 ‘나쁜 인간’이 맞붙었다. 이야기 전개와 등장인물 관계는 어디까지 진전됐나. -전편이 인물들의 사연 보따리를 잔뜩 풀어놓고 뒷수습을 못한 느낌을 줬다면,속편은 작정하고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누군가가 대통령 암살을 기도한 뒤 여론이 엑스맨(유전자 변형으로 탄생한 돌연변이)을 지목하고,돌연변이를 증오하는 스트라이커 장군(브라이언 콕스)은 엑스맨들의 학교에 전쟁을 선포한다.이 과정에서 엑스맨의 지도자인 사비에 박사를 납치,모든 엑스맨을 죽이는데 이용하려 한다.결국 엑스맨들은 모두 힘을 합친다.이는 원작만화 내용의 4분의1 이상이 진행된 것.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야기 구조에 힘을 쏟다보니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전편만 못하다.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엑스맨의 운명의 괴로움보다는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을 더 소중하게 다뤄 전편만큼 음울한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 새로 등장하는 엑스맨은?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파란 피부에 문신으로 범벅된 나이트 크롤러(앨런 커밍).오프닝 신에서 클래식 선율 속을 유영하듯 연기처럼 흩어지며 이동하는 모습은 신비롭고 아름답다.신세대 엑스맨들의 활약도 돋보인다.전편에서 잠시 얼굴을 비췄던 아이스맨(애런 스탠포드)과 파이로(숀 애쉬모어)가 전면에 부각된다.아이스맨이 얼음벽을 만들고,파이로가 무차별 공격에 분노해 경찰차를 불바다로 만드는 장면은 압권이다.손톱에서 칼날이 나오는 무술의 달인 데쓰스트라이크(켈리 후)도 이번 속편의 유일한 악당이자 동양여성으로 등장한다.피부만 닿으면 에너지를 흡수하는 로그(애너 파킨),손등에서 갈퀴칼이 나오는 울버린(휴 잭맨)등 전편의 인물도 거의 그대로 나온다. 액션과 세트 규모가 더 커졌다던데. -스트라이커 장군의 기지로 쓰이는 11만 평방 피트의 거대한 세트는 캐나다 밴쿠버에 300여명을 투입,다섯달동안 만들어냈다.기차역,자유의 여신상 등에서 결투를 벌여 현실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전편에 비해,금속성의 비밀기지는 미래적이다.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학교 습격신,회오리 기둥 사이를 휘젓는 전투기,우위썬 감독의 스타일을 베낀 듯한 음침한 성당과 비둘기신도 볼거리다.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감한 앵글,초현실적인 분위기 등 SF팬이라면 더없이 좋아할 요소를 두루 갖춘 셈.제작비는 1억5000만달러가 들었다. 전편보다 뜰 수 있을까. -전편은 전세계적으로 3억 달러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렸지만,국내 관객은 서울에서 46만명에 그쳤다.하지만 지난해 성공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새로운 SF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전편 때보다 더욱 유명세를 얻은 스톰 역의 할리 베리,매그니토 역의 이안 맥켈런의 영향력과 여름 극장가의 첫 포문을 열게 되는 작품이라는 점이 최대 이점.위험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에 대한 비판도 요즘 시기에 더없이 적절해 보인다. 김소연기자 purple@
  • 럼즈펠드 문건 계기로 본 ‘매파’들의 실체 / 美제국 움직이는 ‘장막뒤의 新保守’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베이징 3자회담을 앞두고 미 국방부가 북한 지도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문건을 만들어 회람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북한의 정권교체가 미국의 목표가 아니라는 백악관과 국무부의 숱한 해명에도 이같은 문건이 나돈 것은 부시 행정부 내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숨은 세력’들이 있음을 반영한다.이들은 단순히 매파로 불렸던 기존 공화당 보수주의자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이들은 ‘신보수주의자(neocon)’로 불리며 이라크 전쟁에서 보여줬듯이 국제사회의 여론과 관계없는 독자적인 선제공격론을 맹신한다.딕 체니 부통령과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필두로 백악관과 행정부 요직을 차지,부시 행정부를 지배하고 있다.9·11테러 이후 전면에 부상했으나 사상적 토대는 2세대에 걸쳐 5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면 이들은 감독에 비유된다.때문에 미국을 꿰뚫고 있는 인사들은 부시 대통령의 연설보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독설가들은 부시 대통령을 이들의‘꼭두각시’로 보기도 한다.친(親) 이스라엘계인 이들의 면면을 알고 나면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눈에 들어올 정도다.잇따라 터지는 대북 강경론도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한때 사의를 표명한 것 역시 네오콘들의 위세에 밀려서다. ●21세기 새로운 미 제국주의의 서막 1991년 3월 당시 체니 국방장관은 펜타곤에서 극비 보고를 받았다.냉전 이후 미국의 안보에 관한 새로운 전략이다.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됐으나 이를 주도한 인물은 당시 국방정책 담당 차관이었던 월포위츠다. 그는 브리핑에서 “가까운 장래에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우월성’에 위협이 되는 국가나 세력들에 대해 예방적인(preventive)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정책이 채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체니는 이듬해 이같은 개념을 수용한 ‘국방계획지침(DPG)’을 발표했다. 월포위츠는 1981년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기습했던 것을 모델로 삼았으며 미국도 이라크와 시리아 등 미래의 ‘적’들을 겨냥,강력한 군사력 행사를 주장했다.그러나 당시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등은 이같은 선제공격 개념에 제동을 걸었다.특히 1992년 말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함으로써 이 독트린은 수면밑에 가라앉았다. ●다시 기회 포착에 나선 네오콘들 1995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암살을 계기로 네오콘들의 활동이 재개됐다.이번에는 헨리 잭슨 전 상원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유대계인 리처드 펄 전 국방자문위원장이 중심이다.그는 1969년 의회 무기통제에 관한 연구에서 월포위츠와 함께 일한 인연으로 신보수주의의 선봉에 섰다. 미국계 유대인 연구기관의 도움으로 그는 1996년 중동평화를 위한 오슬로 협정의 무용론을 피력하며 테러리스트에 강력히 맞서야 한다는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했다.오슬로 협정의 ‘확실한 중단(clean break)’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해 터키 및 요르단과 협력,시리아를 봉쇄하고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그룹에는 찰스 페어뱅크스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교수,더글러스 페이스 현 국방정책 차관,로버트 로웬버그 선진전략·정치연구소(IASPS) 회장,미 기업연구소(AEI) 회장을 지낸 존 볼턴 국무부 군축협상 차관 등이 포함됐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내건 신보수주의의 기치 1997년 초 워싱턴 시내에 위치한 AEI의 5층 사무실에서는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라는 싱크탱크가 출범했다.세금 감면을 위한 새로운 전선이라는 경제적 마인드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클린턴 행정부를 압박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의 일방적 정책을 위한 군사력 증강을 목표로 삼았다. ‘위크리 스탠더드’의 편집장인 윌리엄 크리스톨과 로버트 캐건 카네기재단 선임연구원이 주동이 됐다.창립멤버로는 체니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월포위츠 부장관,페이스 국방차관,피터 로드맨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엘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담당,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 등이 포함됐다. 크리스톨의 하버드대 룸 메이트인 프란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댄 퀘일 전 부통령 등도 가세했다.크리스톨과 캐건의 아버지인 어빙 AEI 연구원과 도널드 예일대 교수도 이들의 사상적 지주로 참여했다. 크리스톨과 캐건은 PNAC의 창립선언에서 미 외교정책의 지향점을 군사력에 우위를 둔 ‘우호적 글로벌 패권’으로 정의했다.크리스톨은 특히 200년간 유지돼 온 미국의 ‘반(反) 식민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9세기와 달리 미국은 유럽보다 강대하며 국제사회의 안보와 질서를 위해 미국이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의 일환으로 PNAC는 1998년 1월 클린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이라크와의 전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부활한 체니·월포위츠 독트린 2000년 9월 부시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기 직전 PNAC는 새로운 보고서 ‘미 국방의 재건:새로운 세기를 위한 전략과 군,그리고 자원’을 발표했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이 주도했으며 1991∼93년 체니와 월포위츠가 내놓은 선제공격 개념을 재도입했다.이는 지난해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전략으로 공식 채택됐다. PNAC는 당초 공화당 후보 지명전에서 부시가 아닌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지지했다.그러나 지명전에서 승리한 부시가 체니를 러닝 메이트로 지명,전화위복이 됐다. 체니는 부시 대통령의 취임에 앞서 정권이양을 책임졌고 이를 통해 월포위츠 등 네오콘들을 대거 중용했다.반면 대선에서 부시를 도운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나 스코크로프트 전 안보보좌관 등의 중도 온건파들은 철저히 배제됐다.부시 대통령의 외교적 경험이 일천해 실질적인 대통령으로 불리던 파월 국무장관과 실용주의적 현실주의자인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입지도 당연히 크게 좁아졌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1998년 미사일 확산을 경고하는 이른바 럼즈펠드 보고서를 냈으나 월포위츠와 울시 전 CIA 국장이 주도,네오콘의 골수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다만 1969년부터 럼즈펠드의 참모를 지낸 체니의 추천으로 국방부의 좌장으로 나섰다.럼즈펠드는 처음 네오콘들의 독주에 사의까지 고려했으나 지금은 신보수주의편에 완전히 돌아섰다. ●대북 강경 대응 주문부시 대통령은 네오콘들에 둘러싸였으나 이들의 정책을 처음부터 적극 반영하지는 않았다.파월 장관보다 월포위츠의 ‘군단’들에 기울어진 게 사실이지만 이라크와의 전쟁을 계획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러나 9·11테러는 네오콘들이 염원하던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외교정책을 현실로 옮기는 발판이 됐다. 때문에 한때 9·11테러의 음모설까지 나돌았다.오사마 빈 라덴의 능력만으로는 비행기 자살공격이 성공할 수 없으며 알 카에다가 아닌 미국내 보이지 않는 손의 방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최소한 이스라엘의 정보당국인 모사드의 관여설은 신빙성있게 나돌았다.실제 1998년 이스라엘 스파이의 네트워크인 ‘X 위원회’ 멤버를 추적한 결과 월포위츠와 리처드 펄,페이스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들은 ‘악의 축’이라는 표현이 나오도록 부시 대통령을 압박하고 설득했다.월포위츠 등은 9·11 직후 이라크 전쟁을 주장,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결국은 1년6개월 만에 이를 관철시켰다.북한에 대해서도 미래의 위협으로 간주,강경책을 서슴지 않고 있다.사실상 대북 군사행동을 의미하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모든 옵션’도 이들의 아이디어다. mip@ ■사상적 배경·인맥 신보수주의자들은 1899년 독일에서 태어난 레오 스트라우스의 영향을 받았다.그는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나치 당원인 마틴 하이데거의 제자였으나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로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대학에서 그의 사상을 전파했다.프랑크푸르트의 유대계 좌파 학자들도 미국에 정착하면서 우파로 변신했다.그들은 이른바 ‘로마제국의 현대화’를 주창,세계 경찰국가로서 미국과 영국 등의 역할을 강조했다.월포위츠는 시카고대에서 스트라우스의 제자인 앨런 블룸 교수로부터 수학했다.후쿠야마 교수는 블룸 교수가 코넬 대학에 있을 때 제자가 됐으며 하버드 대학원에서는 크리스톨 편집장과 함께 역시 스트라우스의 제자인 하비 맨스필드 교수로부터 배웠다. 중국과 북한 등 동북아 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콕스 위원회’에서 강경론을 펼친 루이스 리비는 월포위츠가 예일대에 있을 때의 수제자다.스트라우스가 배출한 박사들은 100명이 넘고 이들의 제자들도 수십명을 헤아려 학계와 언론계,연구기관,행정부 등의 요직에 이들의 인맥이 뿌리내리고 있다.
  • 피살된 러 마피아 거물 국내 폭력조직 개입 의혹

    지난 17일 발생한 부산 영도 러시아 마피아 총기피살 사건의 범인이 잠적한 가운데 사건의 전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부산 영도경찰서는 20일 숨진 나우모프 와실리(54)와 부상당한 니콜라이 안드레이비치(39),현장에서 검거된 알렉세이(28) 등 3명에 대해 인터폴에 정밀신원자료를 요청하는 등 공조수사에 나섰다.경찰은 괴한의 피격으로 숨진 와실리가 러시아 사할린의 최대 폭력조직인 ‘야쿠트르’파의 보스이며 선박 37척을 소유한 거부로 지난해 반대파인 ‘노브후브스카니’파와 선박 조업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다 그 조직의 부두목을 모스크바에서 살해한 뒤 일본으로 도피한 사실을 밝혀냈다.이후 KGB에서 분리된 러시아 연방보안부(FSB)와 노브후브스카니파의 추적을 받아왔으며 일본에서 반대파의 암살기도로 부하 2명이 숨졌다는 것. 신변의 위협을 느낀 와실리는 지난해 12월 부산으로 은신처를 옮겼으며 일본과 태국 등에서 국적세탁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와실리는 그의 부산사무소인 ‘콘코리아서비스’에서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이모(55)씨로부터 선박감독관으로 초청받아 부산에 왔다.이씨는 부산의 폭력조직인 칠성파의 전 조직원으로 현재도 부산 동구를 활동무대로 하는 폭력조직의 두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이 때문에 국내 폭력조직이 와실리의 도피를 도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편 경찰은 렌터카에서 범인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 휴대전화 등 이번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휴대전화 9대에 대해 통화내역을 조사하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무너진 후세인 / 바그다드 구호물품까지 약탈

    이라크전은 끝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바그다드를 비롯한 이라크 도시 곳곳에서 약탈과 방화,암살 등 무법과 무질서가 계속되고 있다. 번화가에서 약탈이 발생한 바그다드에서는 11일 상점 주인과 약탈자간의 총격이 발생,수명이 부상하기도 했다.또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에서는 약탈과정에서 수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키르쿠크시 주지사가 밝혔다.모술에서는 은행을 습격,현금을 훔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부다비TV에 방송되기도 했다. ●시아파 성직자 2명 피살 이에 앞서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에서 10일 아야툴라 압둘 마지드 알 코에이 등 2명의 시아파 성직자가 피살됐다.친미 성향의 알 코에이가 친 후세인파인 하이데르 알 카다르와 만나던 중 성난 군중에 의해 피살된 사건은 앞으로 이라크가 겪을 사회혼란과 폭력사태를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번화가와 정부청사로 시작된 약탈은 병원과 국제구호기관,외국공관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9일 구호물품을 운송하던 캐나다 출신 직원이 총격을 받아 사망한 후 안전 문제를 이유로 구호 활동을 중단했다.‘국경없는 의사회’도 구호 활동 중단을 발표했다.부상자 치료를 위한 의약품이 부족한 작은 병원들은 약탈을 피해 문을 닫고,문을 열고 있는 큰 병원들에는 약탈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상자들이 병원을 찾는 것을 피하고 있다. 미군은 10일 약탈 행위 단속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후세인 추종세력들의 산발적 저항이 계속되고 자살폭탄 공격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미군은 치안 유지에까지 신경쓰지 못하고 있다. 유세진기자·바그다드 외신 yujin@
  • 무너진 후세인 /권좌 빼앗긴 후세인 생애/ 첨단무기에 붕괴된 ‘철권24년’

    미·영 연합군이 10일(이하 한국시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완전 점령함에 따라 1979년 이라크 대통령에 오른 사담 후세인의 24년 철권통치도 막을 내리게 됐다. 역사에 길이 남을 ‘범아랍권 지도자’를 꿈꾸며 많은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대량 살상은 물론 각종 극단적인 조치들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결국 ‘인류의 적’으로 지목돼 처참한 말로를 맞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명성과 권력에 대한 끈질긴 갈망을 버리지 않았던 후세인의 삶은 한마디로 도발과 극단의 연속이었다. ●쿠데타 집권… 한때 진보정책 추진 1937년 4월28일 바그다드 북쪽 중앙 이라크의 시골마을인 티크리트에서 태어난 후세인은 10대 때 바그다드로 옮겨가 아랍바트사회당에 가입하면서 이라크 정치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라크 총리의 암살을 시도,이집트로 도피하는 등 시련의 시기를 거쳐 63년 2월 이라크로 돌아왔지만 64년 다시 투옥됐다.옥중에서 바트당 부총재로 선출된 그는 67년 탈옥,이듬해 쿠데타를 일으켜 같은 바트당원이자 그의 사촌인 아흐메드 하산 알-바크르가 이라크의 새 지도자로 등극하게 됐다. 혁명지휘위원회(RCC)부의장을 맡은 사담은 사실상 권력의 2인자였으며,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많은 진보적인 정책들을 진행했다. 이라크 내 석유회사들의 국유화작업을 진행했던 그는 병원시설을 개선시키고,여성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했으며,국가적인 문맹퇴치 프로그램을 추진했다.또 이라크 사회간접시설 확충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외딴 지역에 전기와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고 도로를 개설하는 등 개혁적인 정책을 통해 민심 획득에 성공했다. ●대통령 취임뒤 정적 처형 오랜 시간에 걸쳐 권력을 다진 후세인은 1979년 대통령으로 취임했다.알 바크르는 질병을 이유로 하야한다고 발표됐다. 후세인은 취임행사가 녹화되고 있는 가운데 고위급 인사들이 가득한 회의실에서 현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적발했다고 말하고 가담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66명이 잡혀갔고 22명은 즉시 처형됐다. 그는 이어 400명의 바트당원을 처형하고 당을 재정비했다.본인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고,정적들의 힘을 약화시키며,자신에게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화학무기등 사용 대량살상 자신의 체제에 반대하는 시아파를 지원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1980년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이라크와 이란 국경 부근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소한 충돌에서 비롯된 전쟁은 8년간 계속됐으며 이라크인 50만명과 이란인 1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뒤 끝났다. 유엔 발표에 따르면 사담 후세인은 1986년 이라크 군대에게 이페릿 같은 독가스와 신경가스를 이란병사들에게 살포하라고 명령했다. 이어 1988년에는 이라크 북부에서 반항하던 쿠르드족 거주지역에 군사공격을 감행했다. 미 국무부는 화학무기 살포,대규모 사형집행 등을 통해 5만∼10만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비밀경찰 동원 언론·국민 통제 80년대 이란과의 전쟁에서 후퇴하고 1991년 걸프전에서는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에게 패한 뒤 사담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빈번히 일어났고,이라크는 오랫동안 유엔의 경제제재조치를 받아왔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사담 후세인은 여전히 이라크에서 강력한 권력을 유지했다.비밀경찰이 국민들을 감시했으며 후세인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경우 가차없는 처벌을 가했다. 이라크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후세인은 자신의 이미지를 잘 유지하기 위해 철저한 이미지 관리와 선전을 이용했다.그는 대중들 앞에서 절대 노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노안으로 돋보기 없이는 글을 읽을 수 없어도 그는 대중 앞에서 안경 쓴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TV카메라도 허리디스크 이상으로 절뚝거리는 그의 걷는 모습을 절대 방영하지 못했다. ●비리폭로땐 가족까지 총살 항상 암살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그는 일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그는 밤에 비밀 장소에서 4∼5시간만 자고 모든 음식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준비되고 검사를 거치도록 했다. 많은 적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족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사담의 사위 중 2명은 95년 이라크를떠나 이라크 정부가 화학무기,생물학무기,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증거를 숨기고 있다고 서방 국가에 말했다. 이런 행동을 너그러이 용서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이라크로 돌아왔던 그들은 결국 총살 당했다. 함혜리기자 lotus@ ■후세인 이라크 통치 일지 ▲1979년 △7월16일=사담 후세인 이라크 혁명지휘위원회(RCC) 부의장 이라크대통령 취임,집권 바트당서기장 겸 혁명지휘위원회 의장취임 ▲1980년 △3월18일=4년간의 위임통치를 위한 헌법승인 △9월22일=이란·이라크전 발발 ▲1981년 △6월7일=이스라엘 공군 오시라크 핵원자로 공격(바빌론작전) ▲1988년 △3월17∼18일=이란을 지지하는 쿠르드족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으로 5000여명 사망△8월20일=이란·이라크전쟁 종료 ▲1990년 △8월2일=이라크군 쿠웨이트 침공 ▲1991년 △1월17일=미국주도 이라크 공격(사막의 폭풍작전)△2월28일=이라크전 종료 ▲1995년 △10월15일=79년 취임이후 첫 국민투표서 99.96% 지지 획득 ▲1998년 △12월16∼19일=미국 이라크에 500여발의 미사일 공격 ▲2002년 △10월15일=7년 임기 대통령에 100%투표와 100%지지로 당선 ▲2003년 △3월20일=미·영연합군 공격시작 △4월9일=미군,바그다드 함락
  • 부시의 전쟁 /美軍 바그다드 전격장악 숨은 주역은 ‘비밀부대’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미군이 바그다드 중심부를 장악하면서 별다른 저항에 부딪히지 않은 이유가 비밀부대의 사전 정지(整地)작업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의 정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들은 이미 3월초 이라크에 잠입,요인암살과 정보수집 등의 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8일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지난 5일 미·영 연합군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최측근 알리 하산 알 마지드 장군의 주거지를 폭격한 것도 비밀부대의 정보수집활동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앞서 1일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제시카 일병 구하기’작전의 주역도 이들이었다. 비밀부대의 인원은 대략 1만 1000명 수준.6일 USA투데이 인터넷판에 따르면 CIA의 전직 군장교 출신 요원 20∼30명을 비롯해 델타포스·그린베레 등 특수부대와 공군·해병대 선발병력 등 미군 1만여명이 포함됐다.영국 SAS요원 300여명과 호주 및 폴란드 특수군도 합류했다. 현재 비밀부대의 최우선 목표는 후세인 대통령을 생포하거나 그의 사망을 확인하는것이다.바트당 당직자와 공화국수비대 지휘부 등 주요 지도자를 암살하는 것과 컴퓨터 바이러스를 이용,이라크측 군통제시설과 전력·통신 시설을 파괴하는 것도 주요 임무다. 그동안 바그다드에서는 생물·화학무기가 숨겨진 것으로 의심되는 10여곳을 장악했으며 대통령궁과 공화국수비대본부에 폭격을 유도하기도 했다.이라크군의 수공(水攻) 가능성이 큰 하디타댐을 확보했고 통신망을 장악,이라크 군과 수뇌부간의 대화를 도청하기도 했다.6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바그다드 거리 곳곳에까지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연합군 특수부대가 퍼져 있다.”고 전했다. 서부 사막지역에서는 활주로 장악과 함께 이라크군의 스커드 미사일기지를 파괴했으며 시리아에서 무기를 들여오던 공화국수비대의 무기공급선도 차단했다.남부에선 유정(油井)확보를 비롯,북부 페르시아만을 장악해 이라크군의 무기조달과 지휘부의 국외탈출을 막았다.또 북부에선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무장단체 안사르 알 이슬람에 대한 연합군의 폭격을 유도했다. 황장석기자 외신 surono@
  • 부시의 전쟁 /개전 16일째 전황- 美특수부대 후세인궁·지휘소 급습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개전 16일째를 맞은 4일 미군은 바그다드 서쪽으로 16㎞ 떨어진 사담 후세인 국제공항을 장악했으나 시내로의 진격은 서두르지 않고 있다.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은 3일 연합군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고립시킬 것이며 시가전을 피할 것이라고 말해,바그다드 ‘고사작전’을 시사했다.바그다드 공습은 4일에도 방공망 시설을 중심으로 계속됐다. 바그다드 시내에서는 개전 이후 처음 정전이 발생,요인암살 등의 임무를 띤 특수부대의 투입설이 제기됐으나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다. 전력은 4일에도 끊겨 상하수도 시설까지 마비시켰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날 노스 캐롤라이나 레젠 기지를 방문,“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만 남았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지하통로 발견 제 3 보병사단은 3일 밤부터 사담 후세인 국제공항을 공격했다.밤새 폭격을 가해 이곳을 지키던 이라크 특수 공화국 수비대 제 1여단과 4개 부대에 큰 타격을 입혔으나 이라크군의 저항은 이튿날까지도 계속됐다.그러나 미군은 4일 새벽녘부터탱크를 앞세워 공항 일부를 장악한 뒤 군사 시설로 사용되던 건물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이라크는 공항 주변의 민간 거주지역이 피격돼 100여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미군이 공항을 장악하면 연합군에 대한 병력증강과 보급로 확보가 용이하기 때문에 중부군은 바그다드 진격시 공항을 첫 목표물로 삼았다.특히 이 공항은 바그다드 시내까지 지하터널로 연결돼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됐다. ●전기·수도시설 마비된 바그다드 3일 밤 바그다드 시내는 정전으로 암흑속에 빠졌다.공항 공격 직전 바그다드 외곽에서 일련의 폭발이 있은 직후 일어났다.이유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은 연합군의 특수부대가 바그다드 남쪽 발전소에 ‘정전유도용’ 폭탄을 투하한 뒤 시내로 잠입했다고 보도했다.마이어스 합참의장은 중부사령부가 바그다드의 발전시설을 타깃으로 삼지 않았다고 부인했다.그러나 영국의 더 타임스는 미 중앙정보부 특수공작단(SOG)이 요인암살 등의 극비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투입됐을 것으로 전했다. ●대공포장착 트럭·버스 배치 미군이 바그다드 남쪽 10마일까지 접근하고 공항까지 공격하자 이라크는 방어진을 시내쪽으로 좁히며 시가전에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자동화기와 대공포 등을 장착한 트럭과 버스,이동 통신시스템 차량 등이 시내 곳곳에 배치됐고 일부 병력은 로켓 추진 수류탄 발사기를 지닌 채 시내를 정찰중이라고 MSNBC 방송은 보도했다. 현재 바그다드를 지키는 병력은 연합군에 의해 격퇴된 메디나와 바그다드 사단의 일부와 함무라비·알 니다·아드난 등 3개 사단으로 알려졌다. 마이어스 합참의장은 “이라크군이 수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인지,달아나려 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공화국 수비대가 바그다드 외곽을 따라 동서로 길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군의 지도부는 탈출구가 없으나 일반 장병들은 이라크 재건을 위해 무기를 버리면 생존의 길이 있다고 회유했다. 그는 후세인과 전쟁을 끝내기 위해 협상할 생각은 없으며 그런 발상은 이미 늦었다고 일축했다.CNN 방송은 전쟁이 끝나기 이전에 임시정부가 수립될 가능성을 보도했다. ●미,“생화학전 가능성 낮다” 바그다드 동남쪽 160㎞의 쿠트에서는 미 해병대가 이라크군과 시가전을 벌였다. 일부 이라크군이 미 탱크에 자살공격을 감행했으나 실패했다.나자프에서는 101 공중강습사단이 사담 페다인 등 이라크의 비정규군을 색출하기 위해 시내 건물들을 수색했다.남부 바스라에서는 영국 해병대가 시내 중심부로 진격했으나 산발적인 저항이 계속돼 시내를 장악하지는 못했다.바그다드 북쪽 256㎞에서는 미 특수부대가 대통령궁을 급습했으나 후세인의 일가는 찾지 못했다. 한편 미군은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로 공격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4일 오전부터 생화학 보호장비를 벗어도 된다고 지시했다.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사막의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데 따른 조치로도 보인다. mip@
  • 부시의 전쟁 / 후세인가족 이라크 탈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가족과 친척들이 국외 탈출을 기도했다는 여러 건의 보고를 받았다고 미국 국방부가 31일 밝혔다.그러나 같은 날 이라크 텔레비전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개전 직후 사망설이 나돌았던 장남 우다이(39)가 참석한 가운데 고위 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을 방영,미 정보 분석가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빅토리아 클라크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우리는 후세인 가족이 이라크를 탈출하고 있거나 아니면 탈출을 기도하고 있다는 증거를 목격했다.”고 말했다.증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우리는 최근 아주 고위의 관리 가족 등 일부 가족들이 이라크를 벗어나려 기도하고 있다는 몇몇 보고를 받았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미국 MSNBC방송은 30일 바그다드를 떠나 시리아로 향하는 이라크 피란민들 가운데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첫째 부인인 사지다가 포함돼 있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사지다는 후세인의 이종사촌으로 후세인이 바트당원으로 입당한 1963년 후세인과 결혼해 두 아들과 세 딸을 낳았다. 장남 우다이는 현재 이라크 TV와 이라크 최대 일간지 ‘바빌’의 사장을 맡고 있다.또 젊은층을 겨냥한 FM라디오를 창설하는 등 미디어를 장악,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비정규군 특수부대인 페다인 사담을 지휘하고 있다.1996년 암살미수 사건으로 하반신을 못쓴다.사담 후세인의 주요 측근을 사살,아버지로부터 신임을 잃은 데다 다리 부상까지 겹쳐 후계자 지위를 동생인 쿠사이(36)에게 양보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요르단이나 이란·시리아 등 이웃 국가로 탈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구체적인 행방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함혜리기자 lotus@
  • 이라크 전쟁 게임 속으로...헤즈볼라, 지하드 다룬 게임 ‘특수군’ 배포

    이라크전이 확산되면서 게임계도 난리통이다.이미 출시된 전쟁 관련 게임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었고,이런저런 전쟁 게임들이 대거 출시될 예정이다.특히 ‘커맨드 앤 컨커:제너럴’(Command & Conquer:General,이하 C&C) 처럼 이라크전의 양상과 닮은 게임들이 인기를 끌자,게이머들은 아예 기존 게임을 개조해 이라크전을 흉내내는 프로그램이나 관련 파일을 앞다퉈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온라인 게임업체들도 전쟁에 반대하거나 전쟁 열기에 편승한 다양한 이벤트들을 내놓고 있다. ●전쟁 게임 판매량 급증 게임전문 조사기관 NPD그룹에 따르면 미국의 게임 업체들은 3월 들어서만 전쟁 관련 게임을 10여개 내놓았다.이 중 3게임이 최근 2주간 판매량 10위권에 들었다.여론을 의식해 이라크전을 직접 소재로 삼기보다는 주로 걸프전이나 베트남전,소말리아 전쟁 등 과거의 전쟁을 배경으로 했다.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91년의 걸프전을 배경으로 테이크투 인터렉티브가 만든 게임 ‘사막의 폭풍(Conflict:Desert Storm)'.이라크전 발발후 PC용,게임기용 모두매출이 급격히 늘어났다.테이크투 인터렉티브는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베트콩(Vietcong)’도 곧 출시할 예정이다. 미국의 게임에 반발해 이라크쪽 시각을 담은 게임도 눈길을 끌고 있다.레바논의 게릴라 그룹 헤즈볼라가 최근 만들어 배포한 게임 ‘특수군(Special Force)’은 시온주의자들을 상대로 ‘지하드(성전)’를 벌인다.헤즈볼라는 “서방에서 만들어진 게임들은 대부분 ‘착한 미국’이 ‘나쁜 이슬람’과 싸우고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준다.”면서 “일방적인 미국 중심주의에 대항해 만들었다.”고 밝혔다.한편 미국의 플라스틱스 리얼리티는 6·25전쟁을 배경으로 유엔군이 북한군과 싸우는 ‘코리아:포가튼 컨플릭트(Korea:Forgotten Conflict)’를 곧 출시할 예정이다. ●이라크전 변형 ‘모드' 속속 등장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위자드소프트는 테러리스트 진압을 소재로 한 1인칭 슈팅게임 ‘레인보우식스3-레이븐쉴드’를 20일 출시했고,동서게임채널은 미군 특수부대의 활약상을 담은 밀리터리 3D액션 게임 ‘델타포스:블랙 호크 다운’을새달 중순 발매하는 등 ‘특수’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EA코리아가 2월 중순 출시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C&C.게임쇼핑몰 ‘게임DC’에 따르면 판매량이 급속히 상승해 이번주엔 지난주보다 두 계단 오른 5위를 기록했다.EA코리아는 C&C를 소재로 한 대규모 게임 대회도 곧 개최할 예정이다. 게이머들이 이라크전을 소재로 한 ‘모드’(Modification,변형)를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이는 작게는 ‘누드 패치’처럼 게임 내 캐릭터들을 알몸으로 만들거나,크게는 특수무기나 캐릭터·스테이지를 추가하는 등 게임의 외형을 상당부분 임의로 변형시키는 프로그램들을 총칭한다.아마추어가 취미로 만들거나 개발사가 서비스 차원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출시된지 오래된 게임들에서 주로 나온다.최근 이라크전 관련 ‘모드’들이 나오는 게임들의 공통점은 1인칭 액션 게임.‘맥스 페인’이나 ‘퀘이크3’등에 인터넷에 도는 ‘후세인-부시 스킨’ 등을 설치하면,후세인을 암살할 수도 있고,반대로 게이머가 후세인이되어서 부시와 맞대결할 수도 있다. ●온라인선 대규모 클랜전 늘어 3D 온라인 게임 ‘세피로스’의 6개 클랜은 이라크전에 맞춰 최근 대규모 전쟁을 벌이고 있다.세피로스 관계자는 “일부 게이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접속자 수가 평소의 3배는 늘었다.”고 전했다. 온라인 게임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이나 ‘다크에덴’도 마찬가지.게임내 공성전,길드전에 참여하는 게이머 수가 평소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반전 아이템·이벤트도 봇물 무협 온라인게임 ‘천상비’는 지난 24일 몬스터로 분한 미군 병사와 장갑차를 사냥하는 반전(?) 이벤트를 벌였다. 사이버 미팅 게임 ‘캔디바’를 서비스하는 ‘써니와이엔케이’도 최근 ‘평화를 위한 작은 한걸음’ 캠페인을 시작했다.게임 내에서 ‘평화의 날개’ 등 아바타를 장식하는 반전 아이템을 무료배포,이용자들에게 반전 시위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아동과 여성 이용자가 많은 온라인게임 ‘비엔비’에서도 ‘전쟁이 싫어요’‘반전 시위 세트’ 등 반전 관련 아이템들이 인기를 모으고있어,‘전쟁’은 당분간 이용자의 성별·연령층과 게임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한동안 게임계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채수범기자 lokavid@
  • 일본인 쓰루게사토시 ‘천주교도 안중근’ 복간 도와주세요

    |기쿠치(일본) 황성기특파원| 일본인으로는 드물게 안중근 의사의 족적을 취재해 책으로 엮었던 쓰루 게사토시(59)가 절판된 책의 복간을 도와줄 한국인 독지가를 찾고 있다. 한국에서도 번역출판(1997년 인지당 출간)된 쓰루의 ‘천주교도 안중근’(1996년 일본 자유국민사 출간)은 일본에서는 초판 4000부를 찍고 절판됐다. “일본어판이 필요하다는 문의를 여기저기서 받고 있지만 한번 절판된 책을 재출간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것 같다.”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는 출판사의 사정이 작용한 탓이다. ‘천주교도 안중근’이 비록 소량이나 일본에서 수요가 생겨나고 있는 것은 그가 촉탁직원으로 몸담고 있는 구마모토현 기쿠치(菊池)시가 ‘규슈지역 한정 한국인 무비자 특구’를 일본 정부에 제안하면서부터이다. “‘특구를 추진하는 기쿠치시에 쓰루라는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을 테마로 책을 썼다는데 도대체 어떤 내용으로 썼는가.’라는 문의가 더러 온다.주로 특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지만….”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원어로 된 그의책을 구하려는 수요도 있다고 귀띔한다. 안중근과 만난 것은 25년 전쯤이었다.그가 참가한 일본 문부성의 청소년 의식조사에서 두 나라 청소년은 싫어하는 나라 2위로 한국은 일본을,일본은 한국을 꼽았다.그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결과”였다. “기념관에서 안중근이 여순감옥에서 썼던 글을 보고는 첫눈에 반했다.” 그래서 시작된 안중근과의 만남은 20년에 걸친 취재를 통해 한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그는 천주교도 안중근이 암살을 결행하게 된 인간적인 고뇌의 발자취를 쫓았다. 쓰루는 “한민족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안중근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26일로 순국 93주기를 맞은 안 의사를 추모했다. marry01@
  • 후세인 이번에도 건재할까...대통령궁등 숙소 20여곳 매일 거처 옮겨 공격피해

    그가 잠드는 곳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그는 절대 전날과 같은 장소에서 자지 않는다.먹는 음식은 모두 독성 검사를 거쳐야 한다. 미국 등 서방국가로부터 ‘독재자’‘극악한 테러리스트’라는 평가를 듣지만 이라크 국민들에게는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위대한 영웅’으로 존재하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바로 그다.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제시한 최후의 시간이 코앞으로 닥쳐오고 있지만 누구도 그가 물러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망명이나 투항은 명예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후세인의 사전에는 없기 때문이다. ●매일밤 거처 옮겨 바그다드에는 대통령궁을 비롯해 후세인이 거처로 사용하는 곳이 20여개에 이른다.그러나 누구도 후세인의 숙소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이라크내 반발 세력이나 미국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다.후세인은 밤이 이슥해서야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에 일어난다.수면시간은 평균 4시간에서 길어야 5시간.그의 하루 일과는 수영으로 시작된다. 그의 거처에는 매주 바닷가재와 생선 등 신선한음식 재료들이 비행기로 공수된다.이들 식재료는 전문가들의 방사능 테스트와 분석을 거친다. 대통령 숙소들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고 모든 곳에서 그를 위한 세끼 식사가 준비된다.이 역시 어디에 후세인이 있는지 감추기 위해서다. ●철저한 이미지 관리 후세인에 대한 이라크 국민들의 지지는 치밀하게 계산된 이미지 관리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올해 65세이지만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외견상 징후는 어디에도 없다.머리는 언제나 검은 잿빛으로 염색돼 있으며 등과 허리도 젊은이처럼 꼿꼿하다.키 188㎝,몸무게 95∼100㎏의 건장한 체격에 잘 재단된 양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작고 뚱뚱해 보이는 관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돋보인다.공개된 회의 석상에서는 절대로 돋보기 안경을 착용하지 않는다.조금이라도 늙거나 나약하게 비쳐지면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잃고 특히 정적들로부터 공격의 빌미를 주며,쿠데타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긋난 디스크 때문에 걷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텔레비전이나 대중 앞에서 걷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힘있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계산된 것이다. ●“이슬람세계 영웅으로 남고 싶다” 부인과 두 아들 등 그의 가족들은 무척 사치스러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후세인 자신은 오히려 검소한 편이다.문란한 밤 생활에 대해 갖가지 소문이 많지만 측근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전한다. 후세인은 돈이나 쾌락보다는 아랍의 장구한 역사 속에 자신의 역할을 자리매김하는데 관심이 있다.그는 이슬람 세계의 진정한 영웅으로 남고 싶어한다.미국의 압도적인 승리가 예상되는 이번 전쟁에서 물러서지 않고 고국에서 명예로운 죽음을 맞겠다는 각오다. 19권이나 되는 그의 전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심이 없다.500년 뒤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원하는 영광을 누릴지는 미지수다.모든 독재자가 그렇듯이 그의 통치행위는 독선과 잔인함으로 점철된 탓이다. 함혜리기자 lotus@
  • 이라크 반전활동 마치고 귀국한 본사 명예논설위원 서상섭의원“美 도덕적 민주주의 회복해야”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하면서 반전·평화운동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17일에도 일부 여야 의원들이 ‘한국군 이라크 파병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측의 파병방침 재고를 촉구했다.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 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이라크 전쟁 임박설의 파장이 심대하다. 반전활동을 위해 3명의 의원과 함께 바그다드를 방문하고 지난 15일 귀국한 한나라당 서상섭(徐相燮·53) 의원은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특히 이라크 방문동안 대한매일에 5회에 걸쳐 ‘바그다드 통신’을 연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방송사나 잡지사 등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면서 평화운동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서 의원은 이번 주부터는 그동안 밀린 지역구 활동에도 주력할 예정이다.그의 지역구(인천 중·동·옹진)는 북한과 접경을 이룬 서해 5도 등을 포함하고 있어 안보문제에 민감한 곳이다. ●반전활동은 평화 위한 것 서 의원은 인터뷰 내내 이번 7박8일간의 이라크 방문은 반전보다는 평화 활동에 무게가 실렸음을 강조했다.특히 우리와는 혈맹관계인 미국 주도의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활동이 반미로 비쳐지는 시각을 극히 경계했다. 그는 “미국 내에서도 도덕적 민주주의를 원하는 요구가 많다.”면서 “이번 이라크 방문활동은 미국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유엔결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부시 행정부에 경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라크 정신세계 파괴(?)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감행하는 의도에 대해 서 의원은 우선적으로 “대부분 중동국가가 친미정권인데 이라크는 이슬람 정신에 입각한 국가로,미국은 전쟁을 해서라도 이라크 정신세계를 파괴하고 이슬람 세계의 정신적 지주를 없애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물론 추정매장량 1200억 배럴에 이르는 이라크의 석유자원 주도권 확보도 전쟁의 목표로 보았다.그는 “이라크인들은 알라신의 선물로 보는 석유자원이 ‘신의 저주’가 돼 총알·포탄으로 날아오는 것으로 보더라.”고 현지의 분위기를 전했다. 아울러 이라크 전쟁은 미국 군수산업 팽창 의도의 일환이라고도 분석했다.군수산업의 세계 1위 공급능력을 가진미국이 전쟁산업을 통해 수요를 창출,미국경제의 버팀목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내용이다. ●유엔 무력화 의도의 일환 서 의원 본인의 이라크전에 대한 시각도 독특했다.그는 이라크 사태 전개과정이 “미국이 유엔 기능의 정지 내지는 무력화 의도가 작용하는 것 같다.”면서 “유엔이 최근엔 미국의 의도대로 되지 않자 유엔 분담금을 내지 않는 등 유엔 자체를 약화시켜,유엔의 국제분쟁조정 기능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감지된다.”고 분석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이 반전 분위기 확산이란 추세를 돌파하기 위해 ‘방어적 선제공격’의 개념을 도입,유엔을 무력화시키면서 세계의 패권을 유지키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반도 문제해결 선례 우려 서 의원은 인터뷰에서 여러차례 유엔결의 없이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감행하면 이것이 한반도위기 해결의 선례가 될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다.그는 “미국이 이라크 사태 해결 이후 일방적으로 북한을 치겠다면 어쩌겠나.”라고 의문을 던졌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한반도에서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보장하는 대신 이라크 공격에 협조해 달라는 것은 미국의 유인책이고,우리 측에서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삼겠다.’고 생각하는 건 패배주의적인 허위 의식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후세인 제거에 나서는 건 이라크 국민의 자주권을 침해하려는 주장이라며 “이라크 문제나 북한문제는 해당국 국민이 스스로 선택할 사안”이라고 ‘국민주권론’을 주장했다. ●후세인은 이라크의 상징 후세인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서 의원은 “1급 암살의 표적이기 때문에 아무도 거처를 모른다더라.”면서 “이라크 방문 때 라마단 부통령 등을 전쟁비상체제 돌입 때문에 못만난 게 아쉽다.”고 했다.그러면서 “후세인은 개인이 아니라 이라크 지도력의 상징인 것 같더라.”고 의미를 해석했다. 이라크 현지의 분위기와 관련,서 의원은 “후세인의 독재에 반기를 든 국민들도 엄연히 존재하지만 걸프전 이후 이라크 상·하층부의 유대감이 자동적으로 강화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라크 사태를 포함한 중동분쟁의 원인과 관련,“이라크와 이란 전쟁처럼 중동분쟁은 ‘물전쟁’이란 측면도 강하다.”면서 “또 한편엔 2500만 쿠르드 민족의 독립국가 건설 문제도 이라크 및 중동분쟁 해결의 주요 변수”라고 소개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 서 의원은 “각국의 국회의원들이 연대,반전 평화활동을 펼치는 문제도 동료 의원들과 협의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라크 반전활동 의원들에 대해 ‘인기영합주의’‘소영웅주의’라는 시각엔 단호히 거부했다.이날도 동료의원으로부터 이같은 빈정거림을 받은 서 의원은 “이라크행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고 강조했다. ●서상섭 의원은 누구인가 서울대 신문대학원 재학 시절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3년여 수배와 옥살이를 했던 민주화운동가 출신 초선 의원.지난 92년 3김 청산을 통한 정치개혁을 기치로 내건 ‘나라정책연구회’에 참여한 뒤 시민운동단체에서 활동했다. 이춘규기자 taein@
  • 국제플러스/진지치 암살용의자 200명 검거

    |베오그라드 AFP DPA 연합|조란 진지치(50) 세르비아 총리의 암살 용의자에 대한 치안 당국의 검거가 계속돼 13일까지 200여명의 용의자가 검거됐다고 네보이사 코비치 세르비아 부총리가 밝혔다. 코비치 부총리는 이날 B92 TV와의 회견에서 검거자 중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 정권 시절 세르비아공화국 보안사령관을 지낸 조비차 스타니시치와 특수경찰부대장 출신으로 용의자 1순위에 올라있는 밀로라드 루코비치의 전임자인 프랑코 시마토비치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 세르비아 총리암살 용의자 체포

    |베오그라드 AFP 연합|조란 진지치(사진·50) 세르비아 총리의 암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40여명의 조직원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세르비아 경찰이 13일 밝혔다.자르코 코라치 세르비아 부총리는 이날 B92 라디오 방송을 통해 “경찰이 진지치 총리 암살 사건의 배후로 거명된 한 단체의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검거했다.”면서 “그러나 여전히 상당수의 용의자들이 행방을 감췄으며 지하로 숨었다.”고 말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을 축출한 친서방 지도자인 진지치 총리는 지난 12일 저격범들의 총탄에 맞아 암살됐다.
  • 진지치 세르비아총리 피살,괴한 총격… 용의자 2명 체포

    |베오그라드 AP AFP 연합|조란 진지치(사진·50) 세르비아 총리가 12일 암살범들에 의해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세르비아 정부당국이 밝혔다. 현지 B92 라디오방송 보도에 따르면 진지치 총리는 이날 오후 베오그라드의 세르비아 정부청사 바깥에서 괴한들로부터 가슴과 복부에 두 발의 총탄을 맞았다.경찰은 현장에서 2명의 용의자를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세르비아에서 고위층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기도는 지난 2000년 10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축출되면서 계속됐고,개혁성향의 친서방 노선을 취해온 진지치 총리에 대한 암살기도는 지난달에도 한 차례 있었다. 밀로셰비치 대통령 축출에 앞장섰던 진지치 총리는 헤이그에서 진행된 유엔의 국제전범 재판에 적극 협력,밀로셰비치 추종자를 비롯한 정적들로부터 그동안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 석굴암 100m앞 역사유물관 건립 백지화되나

    문화재청이 추진하고 있는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 역사유물관 건립계획이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서도 계속 유효할까. 역사유물관 건립계획이란 석굴암과 똑같은 모형을 석굴암에서 100m쯤 떨어진 아래쪽에 만들겠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단히 어렵다.장소를 새로 물색한다면 모를까,적어도 현재 계획하고 있는 위치에는 불가능할 것 같다. 이유는 간단하다.무엇보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부터 반대에 앞장서고 있다.이 장관은 지난해 5월 석굴암 모형전시관 계획의 철회를 요구하는 ‘석굴암살리기 운동’에 서명했다. 새 정부가 문화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데 현실적으로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사들도 대거 반대한다.특히 노무현 대통령에게 언제든 정책적으로 조언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이 서명에 참여했다.김윤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민예총) 이사장과 영화배우 명계남,문성근씨가 그렇다. 뿐만 아니다.국립중앙박물관장 공모에 원서를 내놓은 4명 가운데 강우방·김옥남 이화여대교수는 가장 열성적으로 반대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유홍준 명지대교수도 ‘석굴암 살리기 운동’에 서명했다.이건무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현직 공무원으로 입장 표명이 어려웠을 것이다.누가 새 관장이 되든 정부 안에서 문화재청의 계획을 옹호할 세력이 전혀 없는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화재청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석굴암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WHC)가 전시관 건립 논란과 관련하여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외교통상부와 합의했지만,문화재청이 지난달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힌 것도 그렇다.“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이유를 단 것으로 알려졌는데,유네스코의 조사로 ‘자연스럽게’ 반대가 많은 계획을 철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유물전시관 건립문제는 조만간 열릴 문화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논의하게 된다.모형전시관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전시관 자체를 건립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후보지가 문제”라고,문화재청은 “다른 후보지를 검토했으나 대안이 없었다.”고 서로 엇나가고 있다.그러나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문화재위원회가 ‘환경과 문화재 파괴’의 논란 속에,정부 안에서도 고립무원한 문화재청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서동철기자 dcsuh@
  • ‘걷기의 역사’ 思惟를 따라 걸어본 적 있나요

    장 자크 루소는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했다.“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 걷기를 처음으로 신성한 이데올로기로 만든 루소에게 걷기는 곧 존재 방식이었다.홀로 산책하면서 그는 사유와 몽상에 잠긴 채 살아갈 수 있었고,자족적일 수 있었으며,자기를 배반한 것으로 여긴 세상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걷기와 사유에 대해 할 말이 많았던 또 한 명의 철학자는 쇠렌 키에르케고르다.“지금 거리 저 아래에서 풍각쟁이의 노랫소리가 들린다.멋지다.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우연하고 사소한 것들이다.”라고 한 그는 일기에서 모든 작품을 걸으면서 구상한다고 고백했다. 미국의 문화비평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레베카 솔닛이 쓴 ‘걷기의 역사’(김정아 옮김,민음사 펴냄)는 사유의 방편이자 영감의 원천인 걷기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인문교양서다.저자는 걷기와 생각하기,걷기와 문화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며 속도 위주의 현대인에게 걸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걷기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 오래됐다.하지만 걷기를 의도적인 문화적 행위로 본다면 그 역사는 불과 몇 세기 전 유럽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저자는 헤겔이 걸었다는 하이델베르크의 필로소펜베크,칸트가 매일 산책했던 쾨니히스베르크의 필로소펜담,키에르케고르가 언급한 바 있는 코펜하겐의 ‘철학자의 길’ 등을 따라가며 걷기와 철학의 관계를 짚어나간다. 걷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수단에서 산책이란 문화적 개념으로 발전했다.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걷기를 즐겼던 인물은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걷기는 그의 삶과 예술의 중심이었으며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자 시를 쓰는 방편이었다.그의 시는 대부분 길을 거닐며 친구나 스스로에게 큰 소리로 읊으면서 지은 것이란 얘기도 있다.워즈워스 이후 걷기는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을 규정하는 징표가 됐다.그러나 18세기까지만 해도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은 야만인이나 기인 취급을 받았다. 걷기는 종종 내면의 투쟁을 상징적 행동으로 옮기는 방식이 되기도 했다.소금을 만들어 영국의 세제법을 이겨낸 간디의 ‘소금행진’이나 ‘마틴 루터 킹 암살 30주년 추모행진’,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이끈 ‘네바다 사막체험’,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반대하는 인디언 부족의 ‘영혼의 달리기 대회’,농민조직을 결성한 케사르 차베스의 탄생을 기린 ‘정의를 위한 행진’ 등에서 보듯 걷기는 다양한 문화적·사회적·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20세기 초는 걷기 클럽의 황금기였다.미국의 ‘시에라 클럽’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국가정책에 저항했고,오스트리아의 ‘자연의 친구들’은 귀족의 공유지 독점에 반대했다.그리고 중세의 방랑학자와 음유시인을 모방한 독일의 ‘소년 방랑 철새회’는 권위주의에 저항했고 포크송을 부활시켰다.정치색에 상관없이 걷기를 즐겼던 이들은 세상을 담장 없는 정원으로 만들었다.갈 곳을 잃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결속감을,산업화로 인한 비인간적 흐름에 저항력을,사회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토피아적 이념을 제공했다.이렇듯 자연에 대한 열정과 맞물린 걷기는 사회적 해방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이 책은 각 도시를대표하는 작가들의 삶을 보여준다.그리고 도시의 역사와 걷기의 역사를 나란히 펼친다.19세기 영국엔 무기력한 군중이 넘쳐났다.당시의 도시 보행 문제를 철저하게 파헤친 작가가 찰스 디킨슨이다.뉴욕을 남성적인 도시로 간주하는 저자는 휘트먼,긴즈버그,오하라,보즈나로빅츠 같은 게이 시인들이 뉴욕 거리를 찬양한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본다.센트럴 파크엔 배회하는 길이 있었다.이곳은 게이들의 배회 장소로 ‘결실의 들판’이란 별명이 붙었다. 파리는 위대한 보행자들의 도시다.파리를 ‘19세기의 수도’라고 부른 발터 벤야민은 ‘만보객(漫步客)’을 학문의 주제로 삼았다.‘파리를 거니는 예민하고 고독한 남자’의 이미지를 풍기는 만보객의 특징은 여유.파리에선 거북을 데리고 산책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1920년대 말 파리에 정착한 벤야민은 자신이 좋아한 문학작품의 한 조연처럼 일생의 대부분을 떠돌며 살았다.위대한 도시의 방랑가였다. 여성의 걷기는 사회적으로 적잖은 제약을 받았다.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그 정황을 생생히 보여준다.저자는 여성이 걷기 위해 치러야 했던 숱한 희생을 보여준다. 19세기 말 영국 여성들은 밤에 부적절한 거리를 걸어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창녀로 몰려 경찰서에서 ‘의학검사’를 받았다.거부하면 감옥에 갇혔으며 검사 결과 처녀인 경우에만 풀려났다.당시 프랑스에서도 경찰은 노동계급의 여성을 임의로 체포할 수 있었다.체포된 여성들은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아 생라자르 감옥에서 혹사당하거나,매춘부로 등록해야만 풀려날 수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미국 시인 실비아 플래스는 열아홉 살 때의 일기에 “여성으로 태어난 것,그것이 나의 끔찍한 비극”이라고 적고 있다.저자는 제인 오스틴에서 버지니아 울프,실비아 플래스까지 여성 작가들이 남성작가들과 달리 협소한 주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같은 여성의 제한된 걷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오늘날 ‘걷기의 상실’을 안타까워한다.그저 러닝 머신 위에서 시시포스처럼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현대의 군상.저자는 그 무기력한 ‘박제인간’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금 걷기의 활력을 회복하자고 호소한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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